이순재 대통령이 펼쳤던 '동아일보', 놓칠래야 놓칠 수 없는 제호 아래 떡하니 버틴 오자, '당청금'. 특정 신문사

혹은 하향평준화되어가는 언론계 맞춤법 실력을 풍자한 게 아닐까 싶었다. 장동건이 참모와 나눈 대화 중

'시장나가고 떡볶이 먹으면 서민정책이야?' '보여주는대로 믿습니다'란 대사야 너무하다 싶게 노골적이었지만,

보통 가정을 꾸리고 사는 최초의 여성대통령 고두심의 아내로서, 어머니로서의 모습은 왠지 조금많이 에둘러서

'같기도 안같기도 한' 누군가의 처지를 떠올리게 했던 것 같다.


웃자고 만든 영화에 죽자고 달려들고 싶지는 않고 그냥, 어렸을 적 잠깐 품었던 '대통령'의 꿈이 문득 떠올랐다.

그때야 워낙 어렸으니 별 생각없이 과학자 되겠다는 짝궁 이겨먹겠다고 난 대통령이나 될까, 서울대 가겠다는

짝궁 이겨먹겠다고 서울대는 시시하고 하바드나 갈까, 이런 식이었던 것 같지만. 조금 머리가 굵어지면서

대통령이란 자리는 뭔가 내가 손을 뻗을까, 생각해 볼 만한 '직업'의 범주에서 벗어나 한줌 정치인들만의

정략적인 계산 결과 얻어지는 자리라 여기게 됐었다. 어쩔 수 없이 뒤가 구리고, 거짓말을 직업적으로 하고,

조선시대 왕과 같은 그런 존재라고.


근데, 이런 대통령도 꿈꿔볼 수 있었던 거다. 이순재 같은 대통령, 장동건 같은 대통령, 고두심 같은 대통령,

그들 역시 별 수 없이 노회하고 얄미운 정치인이고, 각자의 정견에 따른 요상한 정책들을 펼치겠지만, 그래도

꽤나 인간적이지 않은가. 사실은 꽤나 '훌륭'하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고 보면, '꽤나 훌륭한' 대통령을 여태

현실세계에서 만나보지 못한 탓인지도 모르겠다. 뭐, '적당히 훌륭한' 대통령은 한두명 만난 거 같긴 하지만.

웃으라고 만든 영화인 거 같은데, 별 수 없이 자꾸 현실과 비겨보게 된다. 젠장.


한가지, 장진 감독의 작품이란 걸 몰랐다면, 제목만 보고서는 그다지 보고 싶은 맘이 무럭무럭 동하는 영화는
 
아니었다. 왜 이렇게 얌전하고 무색무취한 제목을 달았던 걸까. 좀더 매력적인 문구 없었을까. 이를테면, 음..

음..쉽지 않구나. 그냥 뭐, '이쯤되면 막가자는 대통령질'이라거나, '당선은 됐지만 대통령은 아니더라'. 뭐 요런

제목? 아님 '개나 소, 그리고 대통령' 이런 제목은 어땠을지. 개나소나 다해먹는 대통령질이라는 의미로다가.

이 영화를 보고는 나조차 '내가 대통령이 된다면', 하고 대통령의 꿈을 한번 꿔볼 수 있는 영화였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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