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장자연이 카섹스신과 자살신에 등장한다며 마케팅을 펼쳐 다소 물의를 빚는 영화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었다.


그 영화가 이 영화였는 줄은 모르고 봤다. 꽤 긴 러닝타임, 그녀의 카섹스와 그녀의 자살은 흐름을 받치는 꽤나

중요한 포인트였다고 생각했고, 아마 그녀의 분량을 덜어냈다면 영화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겠다 싶었다. 비록

가고 없는 고인이 영화속에서 싱싱한 육체를 흔들며 신음소리를 내뱉고, 욕조 속에서 손목을 그은 채 죽어있다

해도, 그녀는 연기자로서 마지막 필모그래피를 해낸 거 아닐까. 마케팅에 의도적으로 동원한 측면이 있다면

그건 분명히 그녀의 죽음을 팔아 선전하는 거겠지만, 그녀의 자연스럽고 그럴 듯한 연기는 나무랄 데 없었다.


영화는 다소 가지가 많달까, 좀 많이 쳐냈어야 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러닝타임도 길고, 너무 잡다한 상념과

너무 힘이 들어간 상징들이 즐비하다 싶어, 좀더 밀도있게 응집시켰어야 했다 싶은 부분들이 눈에 띄었다.

꽤나 상류의 삶을 영위하는 30대 초반 세친구들이 보이는 현실적인 삶과 더불어, 장혁의 환상과 상상을

이미지화하여 스크린에 쏘아내면서 영화는 좀 종잡을 수 없이 흐르거나, 때로 관객의 실소를 자아내기도 했던
 
거다. 그러다 보니 중간에 견디다 못해 나가버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던 걸 테고.


'펜트하우스 코끼리'. 아마도 '펜트하우스'가 세 친구 그들의 부족할 것 없는 삶, 허영에 찬 삶을 상징한다면,

때로 구름 위에서 네다리를 휘젓고 혹은 벽면에서 3D 영상으로 나타나는 '코끼리'란 녀석은 그들의 환상이자
 
막연한 지향점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기묘한 제목은 그렇게 현실과 환상을 병치시키고 있는 것 아닐까

생각했다. 내용은 크게 두 개의 흐름이다.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상실한 채 조울증에 시달리는 장혁의 뇌까림,

코끼리만 찾으면 되는 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탄식. 그리고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는 상황에서, 다시

장님 코끼리 만지듯 무언가 막연한 걸 잡고 일어서는 모습. 농도짙은 섹스신과 야하고 야비한 농담들,

그로테스크하고 시니컬한 장면들은 덤이다.


장혁이 어렸을 적 사람이 붐비는 동물원에서 엄마와 했던 약속, 혹시 손을 놓치면 코끼리 우리 앞으로 오라던.

코끼리만 찾으면 되는 건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코끼리 우리도 너무 크고, 주위엔 사람들도 많고, 코끼리란

자식 역시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이리저리 배회하고 있었다며, 인생을 통틀어 가장 두려웠던 기억이라 장혁은

고백하는 장면, 난 여기서 영화가 끝나는 걸까 생각했다. "코끼리만 찾음 되는 건줄 알았는데." 그 말의 울림이

가히 엔딩 수준이었단 말이다. 대학만 가면 되는 건줄 알았는데. 직장만 잡으면 되는 건줄 알았는데. 결혼만

잘하면 되는 건줄 알았는데. 돈만 많이 벌면 되는 건줄 알았는데. 사랑만 하면 되는 건줄 알았는데.


개인적으로는, "내가 나이 삼십 넘어서 이렇게 후지게 살 줄은 몰랐어."라는 대사가 꽤나 와닿았다. 영화 속

인물들은 전부 후지게 살고 있었다. 코끼리 따위는 대마 연기 속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세상, 펜트하우스의

재력으로도 별 수 없는 거다. '가을을 탄다'라는 표현이 내면의 파르르 떨리는 마음을 가을 한철로 몰아넣고

말아버리듯, '사춘기'라는 표현 역시 심약하고 가파르며 위태로운 내면의 풍경을 특정 나이대의 특징인 양

구별짓고 떠밀어버린다. 사실은 '나이 삼십넘어서'도, 혹은 '평생'(이라 해도 좋을만큼의 시간동안) 한결같이

쭈욱 가을을 타고 사춘기/오춘기에 시달리는 건지도 모른다.


제길, 코끼리만 찾으면 되는 건 줄 알았는데. 코끼리만 찾으면 되는 게임이면 참 쉬울 텐데. 어쨌거나 문득

동물원에 가보고 싶어지게 만든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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