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호의 가로세로 바둑판같은 골목길들, 소호 거리라는 실감을 나게 해주는 건 건물밖으로 삐져나온 철제 계단들.

 

 

건물 밖으로 튀어나온 철제 계단, 필요에 따라 땅까지 늘어뜨리기도 하고 올려두기도 한다는 건 끝내 신기하다.

 

 

이래서 문화의 거리, 란 걸까 싶도록 구석구석 숨어있는 재미난 것들.

 

 

아마도 이건 지난 아큐파이 시위 때 붙여놓은 걸까.

건물들이 그럴 듯 하니 어떻게 찍어도 화보스러운 분위기가 물씬하다.

 

 

 

막무가내로 그래피티같지도 않은 글씨들이 그려진 녹슨 철문조차 위에 붉은 크림 하나를 얹었다.

 

 

저 처자분 종아리의 그림은, 설마 타투는 아니리라 믿지만, 왠지 그럴지도 모르겠다.

 

 

 

서로 본체 만체 지날 뻔 했던 두 아저씨는 각자를 이끌고 앞서 가던 개 두마리가 얽히는 바람에 눈이 맞게 되고..

 

 

온통 촘촘하게 세워진 건물과 어디로던 통할 거 같은 철제 계단이 미로처럼 얽힌 속에서 괜히 여행을 떠날 때처럼 설레는 거다.

 

 

덥다 싶으면 무턱대로 가까운 갤러리로 들어가 전시된 작품들도 구경하고 땀도 식히고.

 

 

여전히 저런 스티커도 눈에 띈다. 9/11 is a lie. 그만큼 정부에 대한 불신이 높다는 반증일 텐데, 한국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캠퍼 샵의 시원시원한 디스플레이.

 

 

소호도 예전같지 않다더니-예전이라 함은 이전에 여길 들렀던 2001년쯤-명품 샵들이 사방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그래도 여전히 멋진 샵들과 갤러리, 그리고 어디서든 털썩 가방과 카메라를 던져놓고 커피 한잔에

 

샌드위치 하나를 베어물고 싶게 만드는 까페나 레스토랑들이 즐비한 거리, 소호다.

 

 

 

 

 

 

'광주에서 즐기는 7일간의 아시아문화여행'이라는 홍보 문구가 잘 보여주듯, 올해 최초로 열린 제1회

아시아 문화주간 행사에서는 아시아 각국의 다양한 문화가 서로 만나고 교류하고 녹아드는, 그런 기회를

여러 차례 예비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단연 강력하고 인상적이었던 무대는 역시 음악의 영역에서

아시아 각국의 전통 문화를 서로 소개하고, 알아가고, 끝내 어우러지던 그런 자리들이었다.

2011 광주 월드 뮤직 페스티벌은 문화주간 중에서도 금토일, 가장 중요한 대목에 해당하는 시기를 책임지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클라이막스를 광주 도심 한복판의 금남로공원, 아시아문화마루인 쿤스트할레, 그리고

빛고을 시민문화관과 첨단쌍암공원을 넘나들며 책임져야 하는 월드뮤직 페스티벌, 가장 먼저 만났던 공연은

아시아 각국의 대표 연주자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함께 각자의 고유 악기를 연주하는 장면을 선사했다.

다 같은 아시아인이라고는 하지만 요모조모 뜯어보면 서로 생김새도 딱히 같다고 하기 뭐하고, 표정이나

악기의 음색, 연주법 따위도 다 다르지 싶으니 그런 생각이 조금씩 들기도 했다. 대체 이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키워드가 뭘까. 무엇이 이들을 하나로 묶어서 '아시아'라는 정체성을 만들게 되는 걸까. 세계 인구의

절반 가까이에 해당하는 수억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아시아 대륙을 쪼개어 각자의 민족국가에서 살고

있는 그들이 국가와 민족을 넘어서 '아시아'로 뭉칠 수 있는 에너지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점점 신명나게 고조되는 음악의 힘을 빌어 희미한 힌트가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몰입해 버린 순간 그 다양한 국적, 필리핀, 태국, 방글라데시, 몽골, 베트남 등등의 사람들은 어느새 하나의

덩어리처럼 혼연일체가 되어 있었다. 모양이 많이 달라지고 제각기의 민족성이나 특성에 따라 변주되는

악기의 분화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원형은 지켜지고 있었던 건 아닐까.

뜨겁고 무더운 날씨에도 관객들은 좌석을 꽉 채우고 더러는 뒤에서 서서 구경하기도 했다. 이런 페스티벌의

분위기 중에서 가장 맘에 드는 건 이렇게 활짝 열려 있다는 점. 점잖게 자리에 앉아 연주되는 음악을 즐기던

할아버지는 중절모를 쿡 눌러쓰더니 카메라폰을 들고 무대 앞까지 돌입하셔서 사진을 찍기에 이르셨다.

아마도 카메라폰 쓰는 법을 가르쳐준 손자나 손녀에게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걸 함께 나누고 싶어서 아닐까.

다음 무대는 인도네시아였던가, 왠지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는 남국에서 왔을 법한 뜨거운 피를 가진

이들이 차지했다. 그들의 몸에는 온통 타투가 선연하게 새겨져 있었고, 아슬아슬하게 중요부위만을

가린 채 나풀거리는 천조각은 카메라를 들고 그 빈틈을 노리며 무대 주변을 맴돌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 차림새나 타투들 만큼이나 노래 역시도 생경해서, 이건 혹시 자메이카나 아프리카 같은 멀고도

이국적인 곳에서 온 음악은 아닐까 싶을 정도였지만, 동시에 '아시아'란 지역이 품고 있는 문화적

배경이나 DNA가 이만큼 광범위하고도 풍요롭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공연이 끝난 후에도 인기 만점이었던 이들의 이 멋진 무대의상, 이랄까 혹은 전통의상이랄까.

함께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사방에서 달려와 너도나도 사진을 찍으려는 통에 그냥 스킵하기로 했다.

은근히 여성 관객이나 여성 진행도우미들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끌어낸 듯.

계속 이어지는 공연을 보면서는 계속 그랬다. 넋놓고 그들의 음악을 즐기다가도 어느순간, 어라 근데 이게

아시아음악이라고? 그리고 저 연주자가 아시아사람이라고? 그만큼 음악적인 색깔도, 연주자의 외모나

신체적 특징들도 굉장히 스펙트럼이 넓었다. 그들이 입고 있는 전통의상에서 느껴지는 색감이나 미감 역시

뭔가 여태까지 내가 갖고 있던 '아시아'에 대한 상식이나 선입견이 얼마나 좁고도 편협했는지 돌이켜보게

해줄만큼 충분히 자극적이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무대 뒤에서는 훈훈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이미 리허설이나 공연 중간중간의 조우를 통해

서로 얼굴을 익힌 게 틀림없는 공연자들끼리 어느새 스스럼없는 사이가 되어서 무대 뒤에서 서로 장난도

하고 웃고 떠들며 서로를 격려해주는 그런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던 거다. 이런 게 아마 우리가 바라는

'아시아 문화'의 정수 아닐까. 서로에 대한 열린 마음, 친밀한 감정, 그리고 저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마침 한국과 몽골의 수교 20주년을 맞이했다는 올해, 몽골에서 온 연주자들의 공연도 있었다. 선명한 원색의

옷차림에 독특한 악기들이 이목을 특히 끌었었는데, 그들의 연주가 시작되고 나서는 마치 짙초록색의 드넓은

몽골 초원 위를 내달리는 말위에 몸을 맡긴 듯한 그런 느낌. 초원위를 가지런히 갈퀴질하며 지나는 바람소리를

닮은 그네들의 악기도 그랬지만, 몽환적이고도 격정적인 구령소리같은 노랫소리도 매력적이었다.

 

가만히 보니 현악기의 머리 부분에 조각된 건 다름아닌 말의 머리 모양. 정교하게 말갈기와 주둥이 모양이

새겨져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런 그들의 연주와 노래가 마냥 신기했는지 맨 앞자리에 앉아서 무대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아이들의 뒷모습.

 

 

그렇게 첨단쌍암공원에서의 오픈 스테이지 공연은 일단 막을 내렸다. 아시아 각국, 조금은 친숙한 나라도

있었고 조금은 생경한 나라들도 있었지만 그네들의 연주와 노래를 들으면서 조금씩은 더 반가워지고

친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네들의 다채로운 복장 만큼이나 넓고 다양한 스펙트럼 위에서 만난 아시아

각국의 연주자들, 아마도 그들이 가장 크게 서로에게 자극받고 친숙해진 계기가 된 건 아닐까. 모두가

함께 무대에 올랐던 마지막 연주는 이번 월드뮤직 페스티벌을 통해 그들이 서로 '아시아인'으로 느끼고

하나되는 화룡점정의 순간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북촌한옥마을에 위치한 까페 가회, 저번달에 '타투이스트'의 전시가 있다해서 겸겸 다녀왔었다. 전시는

생각보다 단촐했는데, 아무래도 전시의 방점이 '타투'보다는 타투이스트의 예술 세계에 맞춰져서 그런듯.

가장 재미있었던 작품은 여권에 과감하게 그림도 그리고 낙서도 하고, 심지어 저렇게 타투하듯이

재봉틀로 별이니 배니 종이비행기니 박아놓았던 작품.

북촌 한옥마을은 거의 처음 가봤던 거 같다. 안국역에서 내려선 꼬불꼬불한 길을 지나 자칫하면 못 보고

지나칠 뻔한 조그마한 안내판을 용케도 놓치지 않고선, 빗길을 뚫고 가회 갤러리 까페 입성.


입구에서부터 전시중인 타투이스트 전시 관련한 팜플렛과 달력, 온통 그의 '타투' 작품 사진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북촌 한옥마을을 소개하는 A4 한장 크기의 도보자용 지도도 주었는데, 여태 모셔두고만 있다.

왜 이렇게 비가 자주 오는지 걷기엔 참 좋지 않은 날씨 탓이다.

'타투이스트', 아무리 생각해봐도 한국어로 딱히 바꾸기가 애매한 단어다. 문신술사, 문신전문가, 문신예술가.

혹은...뭐가 더 있으려나. 그만큼 한국에서 '타투', 문신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워낙 부정적이고 척박하단

사실을 반증하는 거 같다. 그 와중에도 이렇게 종이 비행기를 주된 테마로 잡고 타투 아트를 계속해온

아티스트가 있다는 건 그 자체로 박수쳐줄 일이지 싶다. 자기 몸을 도화지 삼아 연습하지 않았을까.


그가 갖고 있는 타투 장비들. 저 총처럼 생긴 것에 잉크통을 꼽고서 펜처럼 피부 위에다가 그림을 그리는

거다. 우리나라에서 타투가 뭐라더라, 공중위생법으로 제재받고 있다던가. 딱히 제재할 법이 없으니 저

타투 장비가 위생적이지 못하다느니 병을 옮긴다느니 따위의 조잡한 꼬투리를 잡고서 제재하고 있다는데,

한심한 일이다. 양성화해서 다양한 예술적 디자인이나 그래픽이 발전하도록 하고, 위생상의 문제가

정 그렇게 신경쓰인다면 제대로 관리하면 되지 않을까.


타투이스트 한 명의 작품만이 아니라, 다른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이 이루어진 결과물들도 전시해 놓았었다.

재봉틀을 이용해 저런 아기자기한 그림들을 수놓고는 소녀의 여린 팔목에 뽀빠이처럼 닻 모양이라거나

조폭처럼 '一心' 이런 한자를 수놓는 센스라니.


뭐 벽면 한쪽으로 그런 그림이나 복합 재료로 꾸며진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이렇게 분방하게 채색된

구두도 한 켤레 놓여있었고. 아무래도 갤러리 까페라 그런지 차 마시기도 괜찮은 분위기였지만, 찻잔을

들고 벽면을 따라 돌아다니며 이런 전시물들을 구경하기에도 괜찮았던, 편한 분위기의 천장 높은 까페.

와중에 발견한 맘에 쏙 들던 아이템 하나. 뱅 앤 올룹슨의 오디오였는데, 저 앙증맞은 빨강 세모모양

스피커가 한눈에 확 꽂혀버렸다. 게다가 조그마한 체구에서 울려나오는 사운드가 전혀 뒤지지 않고.

기억해 뒀다가 나중에라도 꼭 사겠다며..일단 위시리스트에 보관.

에스프레소는 생각보다 많이 연했다. 갈수록 진한 커피를 좋아하게 되는 참이라 조금 실망했지만, 그래도

에스프레소 위의 크리마가 여느 까페 체인의 그것보다 훨씬 풍부하고 부드러웠던 듯. 저렇게 활짝 웃고있는

스푼의 애교에도 맘이 녹아내렸다.


들어갈 때 한장씩 나눠줬던 종이는, 전시 중인 타투이스트의 메인 테마인 종이비행기를 접으라며 미리

접는 선이 인쇄된 종이였다. 내친 김에 종이비행기도 접고, 배도 접고 나서는, 영수증 종이로도 조그마한

종이비행기를 마저 만들어버렸다.

그러고 나니 문득 불붙어 버린 종이접기의 마력. 어렸을 때 만들었던 독수리5형제의 비행기를 만들 수

있을까, 스스로 궁금해져버려서 있는 종이 없는 종이 동원해서 결국 만들고야 말았다. 저렇게 입도 쩍쩍

벌어지는 날렵한 모양의 비행기. 양쪽 옆구리에도 비행기 한대씩 합체분리할 수 있고 위에도 한대

합체해놓을 수 있는 궁극의 비행기였었다. 어렸을 때 커다랗고 두꺼운 달력 종이로 참 많이 만들었는데.

그렇게 비행기도 접고 배도 접고, 까페도 온통 둘러보고, 책도 읽고 하는 와중에도 참 줄기차게 내리던 비.

이제 한국은 4계절이 뚜렷한 나라라기보다는 '우기'가 있는 아열대의 나라가 되어버린 건 아닐까.


비가 그치기를 기다려서 북촌한옥마을을 좀더 돌아볼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비는 그칠 생각이 없었다.

이미 에스프레소는 훌짝 다 마셔버린지 오래. 마치 타투처럼 굵고 선명하게 남아버린 크리마의 갈색 띠만

에스프레소 잔 안쪽에 보름달처럼 떠올랐다.

그러고 보면 내 타투를 보고도 사람들이 '참 잘했어요'라거나 '1등급' 따위의 둥근 도장을 찍어놓은 것

같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나도 이쁘다는 생각은 변함없지만, 조금은 더 밖으로 열려있는 이미지였음

좋았겠다 싶기도 하고, 일단 달과 별을 몸에 새겼으니 다음에는 다른 천체를 새겨서 공간을 넓혀야겠다

싶기도 하고. 무엇보다, 사실 가회 갤러리까페에서 전시회를 열었던 이 타투이스트의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내 꺼만한 게 없지 싶어서 조금은 뿌듯.




갑자기 조문갈 일이 생겼다. 캐쥬얼데이라서 말이 뛰노는 반팔티를 입고 왔는데, 덕분에 타투도

번쩍 눈에 뜨이는 날인데 바로 가야 하게 되어서 어쩔까 하다가 반창고를 덕지덕지.


반창고가 워낙 더덕더덕 붙어있어서 그 자체가 눈에 띌 수는 있겠지만, 윗분의 어르신이 돌아가신

자리에 파란색 별이 막 번쩍거리고 그러는 거보다는 아무래도 낫겠다 싶어서.


이로써 타투는 봉인되었다. 일시적으로나마 밴드 다섯개로.

아 왜 하필 오늘이 금요일인데다가 날씨가 더워가지고. 정장은 아니더라도 겉옷이라도 갖고 왔으면

괜찮았을 텐데 말이다. 타투란 게, 문신이란 게 정말 죽을 때까지 몸에 남아있는 거니까 이런 정도의

불편이야 이미 예상한 바고, 조금씩이라도 이런 데 너그러워지다 보면 나중엔 반창고를 이렇게

덕지덕지 낭비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오랫동안 생각만 하고 있었다.


5년전, 일년반 기약하고 매달렸던 공부를 마치고 태국으로 놀러갔을 때부터 꽂힌 타투였다.

몇 군데 샵을 알아보고 샘플북을 뒤져보았지만 딱히 멋진 도안을 찾을 수가 없기도 했고

조금 무섭기도 하여 그때는 그냥 타투 대신 헤나로 만족하고 말았었지만, 헤나는 역시 일주일도

못 가서 뭉개져버리고 말았었다.


카오산 로드에 숙소를 정하고 나서 마음 내키는 대로 느적느적 놀기로 맘먹은 여행이었다.

눈뜨이면 일어나고, 대충 씻고 걸쳐서는 나가서 쌀국수와 캔맥주 하나로 아침, 오늘은 서쪽으로

걸어볼까 싶으면 서쪽으로 걷고, 동쪽으로 걸어볼까 싶으면 동쪽으로 걷고. 저녁에는 재즈바나

라이브클럽에서 공연을 보고 들으며 맥주를 마시고, 오렌지와 망고, 철지난 두리안까지 과일로

잔뜩 배를 채우며 가져간 책들도 다 읽고 다이어리도 꼬박꼬박 쓰고. 사진도 잔뜩 찍고.


그렇지만 이번에도 카오산에 도착하자마자 눈에 뜨인 건 역시 타투샵들. 돌아다니다 덥다 싶으면

에어콘이 빵빵한 샵에 들어가 샘플북을 뒤적거리며 맘에 드는 도안을 찾았다. 아쉽게도 대개가 무식하고

무시무시한 데다가 큼지막한 녀석들이어서 번번이 땀만 식히고 일어나길 수 차례, 드디어 맘에 드는

도안을 발견했다. 그렇게 커다랗지도 않고, '조폭'스럽지도 않으며, 평생 몸에 새긴 채 살아갈.


타투샵 전면에는 이런 경고문이 붙어있긴 했지만, 사실 위생상의 문제는 딱히 걱정스럽진 않았다.

내가 특별히 심장질환이나 질병이 있는 것도 아니고. 타투 아티스트도 태국의 타투 대회에서

몇차례나 상을 받았던 사람이라고 하니까 실력없고 장비없는 '야매'의 어설픈 솜씨로 예기치

못한 불상사가 있을 거 같지도 않고.


그렇게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몸에 새겨넣을 순간이 다가오니까 살짝 긴장했다.

몸에, 평생, 지워지지 않을 낙인 같은 거니까. 가볍게 생각하면야 어디서 사고로 죽더라도

내 시체는 손쉽게 찾겠구나, 식일 수도 있는 거지만 무거워지기 시작하면 한없어지는 거다.

회사에서 뭐라고 하진 않을까, 친구들이나 가족들은 어떻게 보려나, 주위 여자들은 어떻게

보려나, 나중에 결혼할 때 문제가 되지는 않을까, 나중에 후회하게 되면 어쩌나.


그리고 빠질 수 없는 고민, 주사맞기도 뜨악해하는 내가 일초에 구십번 다다다다 바늘이

찔러대는 타투머신 앞에서 괜찮으려나. 많이 아프진 않을까. 타투 아티스트가 본을 그리고

위치를 맞추어 내 몸에 본을 옮기는 와중에도 슬쩍 진땀이 났다. 새기다가 기절하지나 않을까,

발버둥치다가 바늘에 푹 찔려서 출혈과다로 급살맞는 건 아닐까 따위 망상이 시작됐다.

이미 돈은 다 냈는데, 걍 돌려달라고 하고 도망가버릴까.


근 한 시간, 재봉틀 소리를 내며 맹렬하게 움직이는 바늘이 파란색을 머금었다가 검은색을 머금은 채

몸에 그림을 그려나갔다. 생각보다는 덜 아팠는데 특정 부위에 집중되다보니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아려오는 느낌이었다. 그치만 점점 아픔의 강도가 세지면서도 어느 순간 그정도 아픔에 만성이

되었는지 약간은 시원하다거나 자극적인 쾌감이 느껴지기에 이르렀고, 바늘 끝에서 그려지는 그림을

매의 눈으로 관찰하며 선이 조금 엷다거나 저기 조금 색칠이 덜 되었다는 식의 지적질까지.


흔히 '낙인'을 찍힌 사람은 그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종류의 사람이 되곤 한다. 만화에서든

성경에서든 드라마에서든 언젠지 모르지만 죽고 몸이 썩어질 때까지 변치 않을 그 낙인의 존재가

굉장히 의미심장한 메타포로 쓰이듯이, 타투의 무게 역시 정말 굉장히 무겁구나, 생각했다.


주어진 대로 쓰고 있는 몸뚱이에 내 의지로 결정한 뭔가를 그려넣고, 이 몸은 내가 장악하고

있음을, 이 몸에는 다른 몸들과는 완전히 구별되는 하나의 흔적이 있음을 말없이 보여주는 거니까.

내 몸에 대해서 남들이 뭐라고 하던 어떻게 보던, 그런 거 개의치 않고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며

살겠다는 조용한 저항 같은 걸 수도 있겠다. 최소한 내 몸만큼은 내 의지대로.


어쨌거나 이러저러한 의미 따위야 좋을 대로고, 이뻐 죽겠다. 이걸 찾으려고 몇 개의 타투샵을

뒤지고, 또 몇몇 권의 샘플북을 정독한 보람이 있었다. 이 그림을 새긴 채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느낌이라면 너무 과한 걸까. 최소한 ver.1.0에서 ver.2.0으로 렙업은 한 느낌.


I inked TATTOO.


안동 가일마을 앞머리 300년 묵은 나무엔 뭔가 특별한 게 있었다. 원래 마을마다 오랜 나무 하나쯤

소중히 여기며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목 정도로 생각하는 일이야 왕왕 있다지만, 그리고 300년쯤

나이먹은 나무가 그렇게 아주 희귀한 건 아니라지만, 정작 이 나무에는 용이 꿈틀거리는 문신이

그려져 있었던 거다.

나무 자체의 모양새도 위풍당당하니 에너지가 사방으로 뻗쳐나가는 모습이었지만, 그런

수형이 눈에 들어온 건 한참동안이나 굵은 가지 두 곳에 그려진 그림을 훑어본 다음이었다.

노랑색 몸통에 파란 갈기를 가진 용이 꿈틀거리며 하늘로 치솟는 그림이 마치 조폭들

등짝에 그려진 문신처럼 살짝 으스스하기도 하고, 굉장히 멋져보이기도 하고.

아무래도 이 나무가 이렇게 멋져 보이는 건 이 용그림, 타투를 했기 때문인 거 같기도 하다.

나무 거죽이 벗겨져 매끈하게 드러난 속살이 자칫 밋밋하고 부족해 보일 수 있었을 거 같은데,

그 빈 공간을 화려한 색감의 그림으로 채워넣고 나니까 오히려 더욱 당당해진 느낌.

안동 가일마을, 이 마을에는 조선 정조 때 권씨 가문이 지은 수곡고택 등 오랜 고택들이 많이

남아 있어 '양반마을 안동'의 분위기를 느끼기엔 부족함이 없다고 했다. 이런 멋진 마을 지킴이

나무를 갖고 있으니 아무래도 다른 마을들보다 훨씬 외부의 나쁘고 삿된 것들로부터 잘 버티어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 안동 가일마을.






국립극장, 어제부터 제3회 아랍문화축전이 시작했다. 개막식 행사 때 참석해야 '밥은 먹고 다닐' 수 있어서,

개막공연을 보러 갔다. 총 나흘동안 열리는 문화축전에, 이라크, 레바논, 쿠웨이트, 리비아 이렇게 네 개

국가의 전통 공연이 펼쳐진다. 낯선 나라들의 문화공연이지만 나름 그들의 나라 국가대표로 오는 사람들,

최상의 퀄리티를 보여주는 공연단이 내방한 거다.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앞에 세워진 천막-의도한 건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아랍에서

귀한 손님들을 맞을 때 쓰는 그 천막과 생김새가 닮았다-에서 각종 전통음식도 팔고, 전통의상이나 공예품도

전시해두고 체험해 볼 수 있도록 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 켠에선 헤나 체험도 벌이고 있었는데, 어깨에서 다섯

손가락 마디마디까지 구불구불 이어지는 헤나를 하고 싶었지만 줄이 너무 길어 포기했다.

리비아의 전통 가무. 끊임없이 높고 흥청대는 콧소리가 이어지는 가운데 강렬한 추임새가 중간중간 박자를

끊고 들어왔다. 그리고 마치 칼춤을 추듯, 기묘한 스텝을 밟으며 사방을 자유로이 종횡하는 아저씨와 아줌마들.




공연 실황, 아이폰으로 찍은 거라 그다지 화질이 좋진 않지만 그래도 뭐...쓸 만하지 않나 싶다.

수피 댄스랑 비슷하게 계속 빙글빙글 도는 거 같으면서 또 많이 다르다. 결혼식 때 축하 댄스, 전쟁에서의 승리를

기념하는 댄스, 소녀들이 즐긴다는 댄스, 등등 여러가지 컨셉의 댄스를 보여줬지만 글쎄..스텝이 미묘하게

다르고 음악의 흐름이나 분위기가 살짝 다르긴 한데, 까막눈이라 민감하게 짚어내진 못했다.

빙글빙글 도는 그들의 댄스와 휘영청 꺽이고 뒤집어지는 피리 소리를 한 시간 들었더니 몽롱하다. 가만 생각해

보면 은근 단순한 거 같으면서도 몸을 까딱까딱 박자맞추게 만드는 마력도 있는 거 같고, 괜춘하다.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조금씩 그들이 관객석에 들이대기 시작했다. 관객 코 앞에서 펄쩍펄쩍 뛰기도 하더니

이내 손목을 잡고 한명씩 무대로 올리기 시작했다. 급기야 VIP로 초청받은 외교부 차관이니 G20준비위원장도

손에 태극기와 리비아 국기를 들고 무대에 나와 같이 들썩거렸다.

기대 이상으로 꽤나 재미있고 흥미롭던 공연이었다. 내일모레까지 계속 이런 낯선 아랍 국가들의 전통 공연과

음식, 문화 등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으니 한번 가 볼만 할 거 같다. 더구나 남산에 인접한 국립극장,

그렇게 공기가 좋고 다른 분위기의 서울을 만나리란 것도 미처 몰랐다.



덧댐. 그러고 보니 거기에서 삼천원에 팔던 꾸스꾸스도, 한국에서 맛봤던 것 치고는 꽤나 괜찮았다. 강추~*




어딜 가던 눈여겨보게 되는 건 바로 화장실, 그 나라의, 혹은 그 건물의 특색을 잘 드러내는 표시나 이미지들이

있는 화장실을 만나게 되면 기분이 좋아진다. 상해엑스포의 중추에 자리한 중국관 화장실 역시 인상에 남았다.

고대 갑골문자를 형상화한 걸까, 한자의 초기 형태임에는 틀림없어 보이는 검고 단정한 선이 구불구불.

문득 저런 그림을 몸에 새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이 마지막 글자, 내 성으로 쓰는 글자인 듯.





셀축(Celcuk)행 버스를 타고 '오라이~' 아저씨와 안 되는 영어로 둘다 애써가며 터키어도 몇마디 배워보고,

서로의 지갑도 구경시켜 주고 했다. 그렇게 심심찮게 도착한 셀축에선, 아르테미스 분수대 앞에서 또다시

새로운 아저씨와 친해지고 말았다. 재미있게 말도 잘했고, 맥주도 사준대다가 안주삼아 먹고 있던 도토리도

맛보여줘서 그냥 자연스레 합석하고, 함께 걷게 되었던 거다. 그냥 착한 현지인이라고 생각했는데, 문득 한적한

골목 어귀에 앉히고는 주위를 둘레둘레, 사뭇 긴장한 손짓으로 지갑 속에서 오래 되어 보이는 금화를 몇 닢이나

꺼내 놓았다.


250달러, 150달러, 100달러, 50달러, 40달러, 10달러, 5달러까지...재미삼아 시작한 흥정인데, 급기야 내가 찬

싸구려 목걸이라도 바꿔줄 수 있다고 했다. 에페스에서 일한다느니, 발굴작업하면 그냥 그런 과거의 유물들이

쏟아져나온다느니, 합법적인 루트로는 팔 방법이 없어 그러니 자신의 가족들을 생각해서 사달라느니, 도무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는 그에게 문득 질려버린 걸 느꼈다.

그런가 하면 이사베이모스크 옆의 가게에 있던 그 스무살짜리 아가씨, 뛰어와서 빨대까지 챙겨주는 거 보면

어려보인다고 칭찬해줬던 말이 약빨이 있었던 것 같다. 괜한 말이 아니라 정말, 머리 모양새도 그렇고 얼굴의

솜털도 그렇고..난 부모님이 잠시 안 계신 새 가게를 지키고 있는 중학생쯤으로나 상상했었단 말이다.


오토가르 가는 길 가르쳐주면서 담배도 권해주고 이것저것 유적도 보여줬던 아저씨도 있었다. 이빨을 온통

드러내며 환하게 웃어주었던 그의 주름진 털복숭이 얼굴. 그런 식의 친구가 권하는 담배는, 마다할 수가

없었다. 그런 사람들. 아, 시장에서 만난 카펫집 아저씨는 복숭아티도 사주고 쉬었다가 가라고 살갑게

대해주기까지 했었다. 사람들이 정말 친절하고 밝고 긍정적이랄까.


근데도 침대가 열 몇개 있는 데서 혼자 자려니 무진장 외롭네. 혼자 시장쪽을 돌며 아이쇼핑을 하는데, 문 다 닫힌

유적들을 헛되이 도는데 왜 그리도 허전하던지. 동양인따위 한명도 보이지 않는 외딴 곳에서 혼자 떨궈진

느낌이랄까.

시계를 7시반에 맞춰놓았는데 8시에 일어났다. 알람이 믿음직스럽지가 못하군. 샤워 한번 싹 해서 체온 좀 올리고

바로 체크아웃하고 나섰다. 성요한교회부터 찾아나섰다. 어젯 밤에 멋진 성이라고 생각했던 게 실은 교회유적의

일부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리저리 배회하며 구경을 하다가 어제 그 아저씨를 또 만나고 말았다.

숨겨져 있던 리얼 모자이크를 보여주겠다며 구석으로 끌고 가서는, 또다시 그 금화(라고 쓰고 동전나부랭이라고

읽기로 하자)를 꺼내들었다. 해서 필살기. Traveler's Check도 받아요? 바로 돌아서서 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다가, 그래도 사진이나 한 방 같이 찍어줄까 하는 마음이 동했으나, 그새 다른 여성여행객에게 달라붙어

금화(라고 쓰고 동전나부랭이라고 읽는 그 금화)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사베이모스크 보러 가는 길에 어제 그 아가씨 있는 가게에 다시 들러 물을 샀다.

하맘보러가다가 또다시 동전이랑 '파파 프러블럼'을 호소하는 아저씨한테 잡혀서 잠시 옥신각신하다가,
 
반강제로 그의 귀여운 아이와 함께 사진을 기어코 찍고는 빠이빠이. 모스크에선 비치되어 있던 쿠란을

조심스레 살펴보며 잠시 쉬었다.

그리고 아르테미스 신전을 거쳐 에페스까지 걷기로 작정, 아르테미스 신전은 기둥 하나 딸랑 남은 유적지.

참 친절한-주는 것 딱히 없이도 기분이 좋아지는-사람들을 많이 봤다.

카트를 무겁게 끌고 가던 꼬맹이 아이들, 비록 짐은 얼마 안 되었지만 카트 자체로도 충분히 무거워보였다구.

타투를 멋지게 하고 자전거를 타는 장난꾸러기 녀석들, 포스만은 폭주족이었다. 쉬었다 가라고 자리를 권하는

아저씨에 아까 동전갖고 하맘서 장난친 아저씨까지.

에페스는 멋졌다. 무진장 더운 거 빼고는. 또 어느 가족에게 잡혀 영어실습상대가 되어주기도 하고, 사진도

찍히고, 왠지 손해보는 듯 해서 나도 굳이 같이 찍자고 하고. 에페스서 오는 길에 긴 생머리 여선생님을 만나

마케서 과일 쫌 같이 사서 함께 나눠먹었다. 어찌나 달콤하고 양도 많던지. 남겼다.

푸욱 쉬고 박물관 가서 돌아보고는, 이번에는 오렌지를 사들고 돌아다니다가 카펫 가게들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만난 지야. 아침에 환전해야 해서 여기저기 은행을 찾아보고 환전소를 찾다가 난감하던 중에, 어떤 삐끼

한명이 친절하게도 환전이 가능한 한 기념품 샵에 데려가 주었었는데, 그때 거기 누나가 파랑눈깔 비스무레한 걸

내게 달아줬었다. 그 삐끼가 바로 지야였던 것. 우연찮게 다시 만난 그는 무지 반가워하며 차도 잔뜩 대접해주고
 
카펫도 구경시켜 주고.

차 석잔쯤 마시며 이야기하다가, 문득 지야는 자신의 집에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 시장 들러서 잠시 그의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가는데, 드디어 이곳 사람들이 사는 집까지 들어가보는구나 하고 상당히 기대를 했었다.

지야, 지레, 부탄..이던가, 난장판으로 어질러진 집에 가서 복숭아 먹고 무화과도 먹고. 터키 음악채널 보면서

음악이야기도 하고. 이런저런 장래 이야기랑 블랙코미디, 영화이야기까지. 뭐 약간의 연애나 여자이야기도 나오긴

했지만, 무엇보다도 난 여기서 Radiohead가 먹힐 줄은 몰랐다. 와우. HIgh & dry라거나 Let down..


뭐랄까, POWER of MUSIC.




디자이너랄까, 헤나와 타투는 가격차도 꽤나 컸다. 그리고 생각보다 이 디자이너들은 조폭 느낌의 도안이나, 엉성한

필치의 한자어..예컨대 愛라거나 忠 같은 것들을 선호하는 것 같다.

창가에 붙어있는 한자, 假紋身. 말그대로 헤나는 가짜 문신, 가짜 타투지만 그만큼 부담없이 할 수 있는 것도 사실.

타투를 함 꼭 해보고 싶었는데...헤나로 타협. 50바트짜리 헤나. 한국돈으로 1250원정도? 한 3개월 간다고 하더니

고작 1개월도 안 되어서 벌써 많이 풀이 죽었다. 원래 빳빳한 느낌을 주던 녀석인데.


조폭들이나 할 법한 용틀임하는 그림이나 매화꽃이 화창한 그림들은 너무 거시기해서 맘에 안 들었고, 몇 권의

도안집을 들여다 보다가 내가 발견한 건, 저 얏! 하는 느낌의 귀여운 사람 모양의 밑그림이었다. 왠지 '멋지다

마사루'나 '이나중 탁구부'의 캐릭들이 연상되는 이미지랄까.


세밀한 붓에 헤나 염료를 묻혀서는 살살살 그리는 작업이 은근히 자극적이었다. 촉촉하면서도 살짝 찐덕한 느낌의

염료가 말라붙으며 안겨주던 시원한 느낌이란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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