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축(Celcuk)행 버스를 타고 '오라이~' 아저씨와 안 되는 영어로 둘다 애써가며 터키어도 몇마디 배워보고,

서로의 지갑도 구경시켜 주고 했다. 그렇게 심심찮게 도착한 셀축에선, 아르테미스 분수대 앞에서 또다시

새로운 아저씨와 친해지고 말았다. 재미있게 말도 잘했고, 맥주도 사준대다가 안주삼아 먹고 있던 도토리도

맛보여줘서 그냥 자연스레 합석하고, 함께 걷게 되었던 거다. 그냥 착한 현지인이라고 생각했는데, 문득 한적한

골목 어귀에 앉히고는 주위를 둘레둘레, 사뭇 긴장한 손짓으로 지갑 속에서 오래 되어 보이는 금화를 몇 닢이나

꺼내 놓았다.


250달러, 150달러, 100달러, 50달러, 40달러, 10달러, 5달러까지...재미삼아 시작한 흥정인데, 급기야 내가 찬

싸구려 목걸이라도 바꿔줄 수 있다고 했다. 에페스에서 일한다느니, 발굴작업하면 그냥 그런 과거의 유물들이

쏟아져나온다느니, 합법적인 루트로는 팔 방법이 없어 그러니 자신의 가족들을 생각해서 사달라느니, 도무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는 그에게 문득 질려버린 걸 느꼈다.

그런가 하면 이사베이모스크 옆의 가게에 있던 그 스무살짜리 아가씨, 뛰어와서 빨대까지 챙겨주는 거 보면

어려보인다고 칭찬해줬던 말이 약빨이 있었던 것 같다. 괜한 말이 아니라 정말, 머리 모양새도 그렇고 얼굴의

솜털도 그렇고..난 부모님이 잠시 안 계신 새 가게를 지키고 있는 중학생쯤으로나 상상했었단 말이다.


오토가르 가는 길 가르쳐주면서 담배도 권해주고 이것저것 유적도 보여줬던 아저씨도 있었다. 이빨을 온통

드러내며 환하게 웃어주었던 그의 주름진 털복숭이 얼굴. 그런 식의 친구가 권하는 담배는, 마다할 수가

없었다. 그런 사람들. 아, 시장에서 만난 카펫집 아저씨는 복숭아티도 사주고 쉬었다가 가라고 살갑게

대해주기까지 했었다. 사람들이 정말 친절하고 밝고 긍정적이랄까.


근데도 침대가 열 몇개 있는 데서 혼자 자려니 무진장 외롭네. 혼자 시장쪽을 돌며 아이쇼핑을 하는데, 문 다 닫힌

유적들을 헛되이 도는데 왜 그리도 허전하던지. 동양인따위 한명도 보이지 않는 외딴 곳에서 혼자 떨궈진

느낌이랄까.

시계를 7시반에 맞춰놓았는데 8시에 일어났다. 알람이 믿음직스럽지가 못하군. 샤워 한번 싹 해서 체온 좀 올리고

바로 체크아웃하고 나섰다. 성요한교회부터 찾아나섰다. 어젯 밤에 멋진 성이라고 생각했던 게 실은 교회유적의

일부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리저리 배회하며 구경을 하다가 어제 그 아저씨를 또 만나고 말았다.

숨겨져 있던 리얼 모자이크를 보여주겠다며 구석으로 끌고 가서는, 또다시 그 금화(라고 쓰고 동전나부랭이라고

읽기로 하자)를 꺼내들었다. 해서 필살기. Traveler's Check도 받아요? 바로 돌아서서 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다가, 그래도 사진이나 한 방 같이 찍어줄까 하는 마음이 동했으나, 그새 다른 여성여행객에게 달라붙어

금화(라고 쓰고 동전나부랭이라고 읽는 그 금화)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사베이모스크 보러 가는 길에 어제 그 아가씨 있는 가게에 다시 들러 물을 샀다.

하맘보러가다가 또다시 동전이랑 '파파 프러블럼'을 호소하는 아저씨한테 잡혀서 잠시 옥신각신하다가,
 
반강제로 그의 귀여운 아이와 함께 사진을 기어코 찍고는 빠이빠이. 모스크에선 비치되어 있던 쿠란을

조심스레 살펴보며 잠시 쉬었다.

그리고 아르테미스 신전을 거쳐 에페스까지 걷기로 작정, 아르테미스 신전은 기둥 하나 딸랑 남은 유적지.

참 친절한-주는 것 딱히 없이도 기분이 좋아지는-사람들을 많이 봤다.

카트를 무겁게 끌고 가던 꼬맹이 아이들, 비록 짐은 얼마 안 되었지만 카트 자체로도 충분히 무거워보였다구.

타투를 멋지게 하고 자전거를 타는 장난꾸러기 녀석들, 포스만은 폭주족이었다. 쉬었다 가라고 자리를 권하는

아저씨에 아까 동전갖고 하맘서 장난친 아저씨까지.

에페스는 멋졌다. 무진장 더운 거 빼고는. 또 어느 가족에게 잡혀 영어실습상대가 되어주기도 하고, 사진도

찍히고, 왠지 손해보는 듯 해서 나도 굳이 같이 찍자고 하고. 에페스서 오는 길에 긴 생머리 여선생님을 만나

마케서 과일 쫌 같이 사서 함께 나눠먹었다. 어찌나 달콤하고 양도 많던지. 남겼다.

푸욱 쉬고 박물관 가서 돌아보고는, 이번에는 오렌지를 사들고 돌아다니다가 카펫 가게들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만난 지야. 아침에 환전해야 해서 여기저기 은행을 찾아보고 환전소를 찾다가 난감하던 중에, 어떤 삐끼

한명이 친절하게도 환전이 가능한 한 기념품 샵에 데려가 주었었는데, 그때 거기 누나가 파랑눈깔 비스무레한 걸

내게 달아줬었다. 그 삐끼가 바로 지야였던 것. 우연찮게 다시 만난 그는 무지 반가워하며 차도 잔뜩 대접해주고
 
카펫도 구경시켜 주고.

차 석잔쯤 마시며 이야기하다가, 문득 지야는 자신의 집에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 시장 들러서 잠시 그의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가는데, 드디어 이곳 사람들이 사는 집까지 들어가보는구나 하고 상당히 기대를 했었다.

지야, 지레, 부탄..이던가, 난장판으로 어질러진 집에 가서 복숭아 먹고 무화과도 먹고. 터키 음악채널 보면서

음악이야기도 하고. 이런저런 장래 이야기랑 블랙코미디, 영화이야기까지. 뭐 약간의 연애나 여자이야기도 나오긴

했지만, 무엇보다도 난 여기서 Radiohead가 먹힐 줄은 몰랐다. 와우. HIgh & dry라거나 Let down..


뭐랄까, POWER of 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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