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일찍 잔다고 누웠는데 주위 '아저씨'들이랑 수다떨다가 12시 넘어서야 잠든 거 같다. 눈떠보니 8시반,

아저씨들은 여전히 자고 있고, 알람을 분명 맞춰놨던 시계도 여전히 자고 있다. 샤워하고 체크아웃.

지상열차라 불러야 할까, 터키의 트램은 귀엽기도 하고 편리하기도 하고. 이스탄불 시내를 도는데 매우 유용한

교통수단이었다. 국내 도입이 시급하다, 고 생각할 정도였다.

이집트 바자르 가면서 씁쓸한 기분으로 예니사원을 쳐다봐주고, 바자르 구경하면서 떡같은 것과 피스타치오를

계속 먹어댔더니 나중엔 아침 한끼가 해결되어 버렸다. 그래도 작정한대로 오늘 아침은 보스포러스 해협을

바라보는 어느 벤치에 앉아 고등어케밥과 터키식 요구르트를 먹는 로망을 실천. 저번과는 달리 고등어뼈가

막판에 쵸큼 발견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비린내도 안 나고 역시 괜찮았다. 하긴, 음식을 가린 적이 없다.

비가 상당히 쏟아붓는 바다 위에서 유람선을 타니까 느낌이 또 다르다. 수업 빼먹고 제부도로 바다보러 혼자

들어갔다가 폭우로 배가 끊겼을 때..그때 들어가던 비가 딱 이모냥이었다. 십년만에 올해가 비를 가장 쏟아부을

거라던 이상기후. 흑해로 다가가 이름모를 폐허의 성에 오르니 바닷바람이 귀를 막아버린다. 좋으네.

가슴이 방방 부푸는 느낌.

한참 바람을 맞고 있자니 어느순간 속이 헛헛해져서 배로 돌아가는 길, 한 터키 대학생아가씨와 나눈 담소가

-주로 그녀의 수다를 들으며-배안에까지 이어졌다. 함께 점심으로 양고기 케밥을 먹고. 부두에 다시 도착할

때쯤엔 거의 폭우 수준이었던 비를 피해 그랜드 바자르로 향했다.

시골의 재래시장 느낌인 이집트 바자르와는 달리 나름 격조있으시게도 '뚜껑'있는 아케이드여서 비를 그을

수 있던 그곳을 돌아다니며 구경하고, 삐끼들과 말상대 좀 해주었다.(어쩌면 내가 말상대를 구한 건지도..

삐끼들이 안 잡으면 살짝 섭섭했으니.)

마지막으로 블루모스크랑 아야소피아 주변을 다시금 어슬렁대며 눈도장 좀 다시 찍어주고.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었다. 모스크 안의 분위기하며, 유려하고도 세련된 문양들, 그리고 광선을 걸러내는 저 이뿐 모양의 조그만

창들까지. 터키의 분위기랑 가장 잘 닮았다고 생각한 게 고즈넉할 때의 블루 모스크 분위기 같다고 생각했다.

많은 곳을 돌아본 것 같다. 숙제하듯이 가이드북에 하나하나 체크해가며 '클리어'해간다는 부담스러움보다는

걍 설렁설렁 다니며 여기 사람들하고 많이 놀고, 구간구간 함께 하는 사람들이랑 많이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뭐...아직은 정말 만족스러운 거 같다.

원래 여행 컨셉이 혼자 하는 여행이었는데, 이스탄불 공항에서부터, 아니 인천을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부터

멋진 누님들하고 함께 하고, 또 새로운 친구도 만나고, 그러다 보니 실제로 혼자 여행을 다시 시작한 건

고작 며칠 전이었다. 잠시 만났던 터키쉬 말로는 혼자 하는 여행이 외로워지면 나이가 든 거라 했는데, 글쎄..

또 누군가는 그랬다. 혼자 밥먹는 걸 즐길 줄 알면 어른이 된 거라나.

셀축-아마도 젤 큰 로마시대 유적이 현존하는 지역이라는 그곳-에서 혼자 저녁을 먹으며 거리의 가로등이

하나씩 켜지는 걸 구경했는데, 잠시 헷갈렸다. 어른이 된 건지, 나이가 든 건지.

아, 그리고 나서 카펫가게서 만났던 지야라는 20살 청년집에 놀러가서 환대받고, 과일과 차를 잔뜩 대접받고

왔었다. 지야, 지레, 부탄..삼형제의 장난스러움과 어수선함이라니. 내 군생활을 지탱했던 게 라디오헤드와

하루끼였는데, 지야 이녀석이 라디오헤드 광팬이었다. 같이 Paranoid Android, high & dry 뭐 그런 거

들으면서 화씨 9.11 이야기하고, 앞으로 뭐하고 싶은지 이야기하고. 그는 비엔나에 가서 영화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다. 블랙 코미디를 찍고 싶댔다.

문제는, 이 동네 사람들이 워낙 여행객에 기대어 살다 보니까, 워낙 친구도 많고, 워낙 덧없는(?) 만남도

많을 거 같다는 거다. 사실 나 역시도 첨에 카펫가게에 들어간 건 아이쇼핑도 할 겸 (목도 칼칼한데) 차대접도

받을 겸..괜히 맘에도 없는 카펫으로 고민하는 척하는 연기를 하며 환심을 끌었다 해야 하나. 그들 역시 내게

바가지(알고 보니 바가지였다는..) 씌울라는 의도, 나 역시 낼모레 체크아웃한다며 당장 지갑을 열어 구매할

듯한 뉘앙스, 머 글케 서로 약간은 어긋난 만남으로 시작했었다. 그나저나 숱하게 사람들을 만나고 떠나보내고

했을 그들은, 그 덧없는 '관계'라거나, 우연에 불과할지 모르는 '겹침'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묻고 싶었다. 묻지는 않았다.

계속해서 뒤를 돌아봐야 했다. 내 여행과 끝을 장식하는 모스크의 야경. 터키와 이집트의 모스크는, 마치 쇼윈도의

그것과 노점상의 그것만큼이나 다른 공기와 분위기를 뱉어낸다. 온몸을 내맡기는 오체투지의 자세로 알라의 뜻에

기대는 무슬림들의 뜻은 하나였으되, 터키에선 종종 그 숙연한 모습이 관광객들의 사진 배경쯤으로나 쓰이곤 했다.

관광객들의 알 수 없는 웅얼거림이 천장의 돔을 뒤흔들고, 쫓기듯 설명하고 채근하듯 움직이던 가이드에 내몰려

모스크의 공기는 온통 찢겨진 채 비둘기들을 흥분시켰다.

그래도 나, 한점의 유서깊은 공기를 들이기며 블루모스크의 그 고아한, 부드러운 파스텔톤의 '하늘'을 바라보고

싶은 마음에 마지막 반나절을 오롯이 이 아름다운 모스크에 헌정했다. 구석에 최대한 쑤셔박힌 채 "눈까리가

째져라" 하고 바라보고 또 바라보아..눈가리가 째졌다.

이제 내일 밤이면 터키를 떠나 이집트로. 그동네에선 지금이 딱 무지 덥고 습기도 없어 완전 미이라 되기에
 
최적인 날씨라고 했다. 머, 사막가서 여우나 길들여봐야겠다. 정말 사막에 가면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어쩌면

어린왕자의 '여우'라는 캐릭터는 어린왕자 스스로가 불러낸 '외로움'의 소산, 외로움의 메타포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이제, 이집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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