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가기 전에 이제 좀 히라가나는 읽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외워둔 히라가나에 따르면, 저기

앞에 가는 버스 앞에 붙은 스티커에 써진 말은 '감바로우'. 뭔가 최근 지진과 원전 폭발 사태로 위기에

처한 일본 동북지방에 힘내라고 하는 거 같긴 한데, 짧디짧은 일본어 실력으로도 힘내라는 말은 왠지

'감바떼' 아니었던가 싶었다.


알고 보니 '감바떼'는 힘내라~! 라는 명령형, '감바로우'는 힘내자~! 라는 권유형의 말이라고 한다.

어느 한 특정 지역에 제한된 문제도 아니고 지금 이시간에도 폭발한 후쿠시마 원전에서는 솔솔

고준위의 방사능 물질이 뿜어져 나오고 있을 테니, 누가 누구한테 힘내라 라고 위로하고 명령할

처지는 아닌 게 맞는 거다. 다같이 힘내자, 라고 이야기해야 할 만큼 중대한 상황.

코케시 인형을 전시하고 있던 전시관에서도 일본을 돕자는 팜플렛이 마치 적십자 표시처럼 비치되어 있었다.

게다가 여기저기 일본 본주의 동북쪽 끄트머리의 상점들과 호텔에까지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던 건

후쿠시마 원전의 가동 중단으로 인한 전력 부족 사태. 7월 중순의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에어콘은

비실비실하고, 조명 역시 어슴푸레하니 하나 건너씩 꺼져있던 모습이 단적인 예다.

상점 입구나 호텔 로비에 어김없이 붙어있던 절전대책 관련 공지들. 이제 아오모리를 다녀온지도

두달이 가까워오지만 여전히 별다른 상황의 변화는 없지 않을까. 그다지 상황이 통제되지도 못하고

있는 데다가 사실 점점 더 사태가 전례없는 수준으로 치닫는 건 아닌지, 지금 인류는 전례없는 종말의

위기를 맞닥뜨리고 있으면서도 그새를 못참고 눈돌린 채 다른 자극과 가십을 찾아보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기도 하다.

아오모리로 떠나서 자동로밍된 폰에 제일 먼저 떴던 외교통상부의 안내 문자. '여행제한 지역'이

정확히 어디서부터 어딘지, 아오모리는 괜찮다는 건지 아니라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모호한

문구라서, 결국 의존할 것은 본인의 판단과 현지 여행가이드나 현지인들의 개인적인 판단.


그리고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더이상 일본 원전사태는 '강건너 불'이 아니라 우리 발등에 떨어진

불 같은 거 아닐까 싶다. '감바떼구다사이', 힘내세요~라는 다른 나라, 다른 사람들에 대한 격려가

아니라, '감바로우~!', 힘내자~라는 스스로에 대한 북돋움과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높이는,

그런 구호가 필요한 거 같다. 당장 아무일 없다는 듯 '원전 르네상스' 사기를 치는 정부도 그렇고.




사람들 피난길로 방사능도 함께 달렸다 (시사IN, 2011.09.05)
일본 후쿠시마 현에서 원전 반대 집회가 열렸다. 집회 참가자는 정부가 아무런 지원도, 대책도 세우지 않고 있다며 규탄했다. 사고 당시 주민들이 피난하던 길로 방사능이 집중 확산됐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206호] 2011년 08월 19일 (금) 22:38:47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
아무런 경고도, 어떤 알림판도 없었다. 도쿄에서 후쿠시마까지 신칸센으로 1시간30분. 기차는 조용히 도착했고 인구 30만의 후쿠시마 시는 평온했다. 지극히 일상적인 여행이었다. 피폭을 막는다고 ‘반핵아시아포럼’에서 나누어준 마스크를 쓴 한국의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하나둘씩 마스크를 벗기 시작했다. 후쿠시마에서는 아무도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7월31일 ‘원자력발전소가 없는 후쿠시마를 요구하는 후쿠시마 현민집회’가 열린 후쿠시마는 겉으로는 너무도 조용한 지방의 작은 도시였을 뿐이다.

일본 정부는 원전 30㎞ 이내만을 피난지역으로 고시했다가 4월13일부터 방사선량이 연간 20밀리시버트(m㏜)가 넘는 지역을 계획적 피난지역으로 추가 고시했다. 이타테무라, 미나미소마 시(市) 등이 그곳이다. 연간 방사선량이 20밀리시버트가 넘는 지역들이다. 그러나 이것이 나머지 지역이 안전하다는 뜻은 아니다. 우크라이나 체르노빌에서는 연간 1밀리시버트 이상의 지역 전체를 대피지역으로 정했다(강제 이주 기준은 5m㏜).


ⓒ보건의료단체자연합
7월31일 후쿠시마 집회에 참가한 가족이 ‘어린이들에게 안심·안전한 미래를’이라는 구호가 적힌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일본 정부와 지자체가 측정한 방사선 측정치 7000여 개를 바탕으로 군마 대학 하야카와 유키오 교수가 작성한 방사선 등가선도(아래 그림·http://gunma.zamurai.jp)에서 보이듯 일본 국내의 방사선 확산은 후쿠시마 원전 서쪽으로 영문 V자 모양을 엎어둔 형태로 확산되었다. 일본 민주의료기관연합 피폭대책본부장인 고니시 교지 씨(의사)가 보건의료단체연합과 한 간담회(8월8일)에서 설명한 바에 따르면, 이 집중 방사능 확산 지역은 원전 피난민들의 피난길이었다고 한다. 역V자(Λ) 오른쪽은 116번 국도였고 왼쪽은 고속도로였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달리는 길로 바람도 달렸고 방사능도 달렸습니다.”

이렇게 해서 방사능은 후쿠시마 시도 오염시켰다. 필자가 후쿠시마 시를 방문했을 때에도 역 바로 앞에서 가이거 계측기에 0.79라는 수치가 찍혔다. 이는 연간 피폭 허용량의 6배에 해당하는 수치다. 후쿠시마 시 자치정부가 6월15일까지 조사해 발표한 바에 따르면 학교 교정의 방사선 수치가 특히 높다. 학교의 75%가 시간당 0.6마이크로시버트, 20%는 3.8마이크로시버트가 넘는 수치를 보인다. 각각 연간 피폭 허용량의 약 5배와 33배다.

미국 국립과학아카데미에 따르면 방사능에는 안전한 수치가 없다. 계속되는 피폭은 암 발생률을 그에 비례해 증가시킨다. 더욱이 어린이는 어른보다 감수성이 훨씬 높다. 원전에서 80㎞ 이상 떨어진 후쿠시마 시에서도 아이를 학교에 보낼 수 없다. 얼마 동안이나 그래야 할까? 후쿠시마의 방사선 오염은 주로 세슘에 의한 것인데, 세슘137의 반감기는 30년이다.

후쿠시마 시의 한 공원에서 열린 현민집회. 시에서 남쪽으로 40㎞가량 떨어진 고리야마에 산다는 마스모토 모리코라는 여성이 연단에 올라섰다. “저는 원전이 깨끗하고 안전하다고 배웠습니다…. 정부는 아무런 정보도, 물자도 주지 않았습니다. 고리야마 시에서 가장 위험한 며칠 동안 저는 물과 휘발유를 사러 온 시내를 돌아다녔습니다. 저는 지금 45세입니다. 아이를 낳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지금 중학교 2학년인 우리 둘째 딸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딸은 지금 도쿄 여동생 집에 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언제까지 그래야 할까요? 어린이들을 지켜주세요. 제가 바라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대피지역 바깥 경계지역에서 거주했다는 교사 요시다 히로마사 씨도 연단에 섰다. “저는 공포 속에서 피난을 나왔습니다. 집에서 아무것도 못 들고 나왔습니다. 그러나 제가 지금까지 받은 것이라고는 휘발유 10ℓ가 전부입니다. 정부는 경계지역에서 그냥 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전혀 복구가 안 됩니다. 냉장고를 주문해도 배달은 안 해준다고 합니다. 매스컴에서는 ‘힘내라 후쿠시마’라고 떠들어댑니다. 그러나 도대체 어떻게 힘을 낼 수가 있단 말입니까?”


현민 20% 이미 후쿠시마 떠나

이것이 현실일까? SF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초현실적인 발언이 계속되는 집회 내내 비가 내린다. 사람들이 모두 우산을 받쳐든다. 저 비에는 방사능이 얼마나 들어 있을지, 방사능은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고 냄새도 없다는 말을 드디어 실감한다.




수치로는 잡히지 않지만 이미 수많은 사람이 죽어갔다고 후쿠시마 사람들이 전한다. 원전 재해 복구 과정에서 수많은 노동자가 병원에 실려갔고, 또 피난 과정에서 많은 이가 죽었다고 한다. 정부가 지정한 피난지역에서만 수십만명이 대피해야 했고 대피지역 바깥에서도 200만 후쿠시마 현민 중 약 20%가 이른바 ‘자발적 대피’, 즉 알아서 다른 지역으로 피난을 갔다고 한다. 결국 지금 남은 사람들은 피난할 곳도 돈도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모든 재난의 피해자는 그 지역의 사회 약자들이다.

집회를 마치고 참가자들이 행진한다. “방사능 오염 없는 후쿠시마를 돌려달라” “어린이를 지키자”라는 구호를 외친다. 절실하지만 결코 실현될 수 없는 구호에 가슴이 먹먹하다. 방사능으로 오염된 땅에서는 사람이 살 수 없다. 그리고 체르노빌에서 그랬듯이 앞으로 음식물 등에 의한 내부 피폭이 더 문제다.

다시 도쿄. 일본 사회는 수도에서 1시간30분 거리를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만들었다. 마치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앞으로 재건만 남았을 뿐이라고 일본 정부는 말한다. 일본 시민운동가들은 일본도 변화 중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정부 말을 믿지 않는다고, 이제 시작이라고 말한다. 재앙적인 사고가 터졌어도 그것을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듯한 일본 사회의 답답함은 어쩔 수 없다. 일본에서 사회운동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적으로 본다. 잘못된 권력에 저항하지 않는 사회는 지극히 위험하다. 일본 자본주의의 세련된 외양 속에는 야만이 있다.

문득 한국을 생각한다. 수백만명이 사는 도시 바로 옆에 노후 원전을 두고 우리도 일상을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일본의 핵재앙 앞에서도 여전히 원전 르네상스를 고집하고 강진 9.0을 견디는 원전을 만들라고 지시하는 대통령을 둔 한국은 어떤지.





아무 목적지 없이 그냥 걷기..가 이번 여행을 하면서 괜히 별 이유도 없이 세웠던 고집이었는데

생각보다 그런 건 쉽지 않았던 거다. 가다 보면 문득 지금 방향에 대해 두려움이 생기고, 이쪽이

아니라 저쪽으로 가야 뭔가 중요하고 귀한 걸 놓치지 않을 것 같고, 무엇보다 목적지 없이

휘청대는 걸음 자체에 대한 불안함이 있었던 거 같다. 망망대해에서 무작정 항해하면 이런 느낌이

들지 않을까 싶었다.

조금 타협하기로 했다. 걷다가 여기가 어디쯤인지 지도만 슬쩍 보고 확인하기. 지도를 보고

그곳의 몇몇 이름난 명소를 향해 졸졸 따라가는 길을 인도받으려는 게 아니라, 그냥 정말로

지금 내가 어디에 와있는지만 확인하면 족한 걸로. 누군가 일러주는 대로 길을 가는 건 이미

한국에서 내비게이션의 지령을 따라 운전하는 걸로 질릴만큼 질려버렸으니까.

그러고 나니 조금은 수월하게 걸을 수 있었다. 한참 걸으며 대충 머릿속으로 여기가 어디쯤일지를

상상하다가, 내키는 곳에서 오렌지주스나 망고를 먹으며 쉬기도 하고, 아님 아예 그럴 듯한

까페에 눌러앉아 책을 읽기도 하고, 슬쩍 지도를 곁눈질하며 어디쯤인지를 확인하는 건 나름의

밀고 당기는 리듬감이 느껴져서 좋았다.

길을 가다보면 문득 차들이 쌩쌩 다니는 고가 도로 위를 걷기도 하고, 맨발의 소년이 낚시찌를

던지는 냄새나는 강둑을 지나기도 했다. 누군가가 굳이 담벼락 위에 CCTV처럼 걸어둔 노랑색

물총을 보며 궁금해 하기도 하고, 차도 옆까지 온통 꽃밭으로 가꿔둔 태국인들의 꽃 사랑에

감탄하기도 하고. 더러 황량한 골목으로 부러 꺽어지며 어떤 풍경과 사람들이 숨어있나 슬쩍

기웃거려 보기도 하고. 그러다 문득 동서남북의 방향감, 얼만큼 걸었는지의 거리감이 상실되면

적당한 표지판 앞에서 지도를 펼치는 거다. 여기가 어디지, 하며.

어쩔 수 없이, 랄까 가다 보면 뭔가가 가까워지고 그럼 자연스레 발길이 그리로 향하기도 했다.

뭔가 커다랗고 특이하고 사람과 가게들이 몰려있는 곳들, 몇 대의 대형버스가 관광객들을 토해내고

거두어가는 그런 곳. 인적없는 곳을 한참 떠다니다가 그런 부산한 지점이 가까워진다 싶으면

마치 철가루가 자석의 자장에 이끌리듯 내 궤적 역시 몇 개 지점으로 수렴하고 마는 거다.

그래도, 그렇게 덥썩 일로직진하여 그곳으로 돌입하고 싶진 않았다. 쿡쿡 찔러보고 슬슬

에둘러가며 멀찍이서 감각하다가 우연처럼 이쁜 까페를 발견해서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선그라스를 벗고 시원한 망고&라임 쉐이크를 쭉 빨아서 땀을 식히려다가 차가운 두통에

조금 인상도 써주고. 쿠션을 껴안고 늘어지게 앉아서는 다시 책을 꺼내들어 조금 읽기도 하고.

그렇게 설렁설렁, 이날의 반환점은 왓 아룬이었다.

마음 같아선 그저 걷다가 쉬고 또 걷고, 그렇게 어디로든 거침없이 뻗어나가는 선이 되고 싶었다.

그렇지만 또다시 어쩔 수 없이, 나의 걷기 자체도 해와 달에 귀속되고 마는 거였으니 해가 저물고

어둠이 나리면 슬슬 돌아갈 염려를 할 수 밖에 없는 거다. 그러다 보면 언제나 커다란 원의

궤적을 염두에 두어야 하고, 해가 정점을 찍고 낙하할 무렵 방향을 홱 틀어야 하는 거다.

러시아 민담이었던가, 하루종일 걸어서 원위치로 돌아온 땅이 전부 자기 것이 된다는. 그런

이야기에 빗대자면 나는 하루치 걸어서 무얼 갖게 된 걸까. 어느 광장에 따끈한 대리석 위에서

엉덩이만 비비가 뭐해서 아예 가방을 베고 에라, 누운 채 해가 떨어지고 퍼렇게 멍들다가

까뭇해지는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제 돌아가야 할 때. 여행을 떠나도 돌아갈 곳은 남는다.

여행을 떠나도 돌아갈 곳은 남는다. 원하던 원치 않던. 닭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했다.

조그만 골목에 기대어 테이블을 세우고 음식을 팔았을 허름한 길거리식당, 어디에서나 마주치는

태국 국왕의 얼굴이 어둠 속에서 둥실 떠올랐다.





#1. 아놔, 카메라가 갑자기 두동강 나서 바닥에 철푸덕. 이제 막 길을 나서서 해장국골목서

한그릇먹고 일어나려다가, 엉덩이가 그대로 붙어버렸다.


#2. 황남빵 한박스 사들고 가끔 꺼내먹으며, 비닐봉다리에 담긴 카메라 두조각 달랑거리며

걷고 있다. 대릉원, 첨성대, 계림, 월성과 안압지를 지나 황룡사지에서 잠시 휴식중.

#3. 걷는 것만큼 확실하고 단단하게 이동하는 방법은 없지 싶다. 내가 감내할 만한 속도로

주위사물들을 하나씩 만지듯 분별하며 뒤로 흘려보내고, 주위 분위기에 흠뻑 젖을만큼

스스로와 풍경을 동화시켜준달까.

#4. 경주 시내를 빠져나와 오릉, 박혁거세니 유리왕이니 소설속 인물같은 이들의 소설같은

무덤을 둘러봤다. 저 언덕들은 참 곱게도 잔디를 입혀놨단 생각만 들 뿐, 죽은 이들이 쉬는

공간에서 느껴져야 할 답답함이나 무거운 공기가 없다. 이천년 가까운 시간이 죽음의

무겁고 퀘퀘한 냄새조차 날려버렸다. (그나저나 안내판엔 온통 한자뿐. 그것도 손글씨.)


#5. 박혁거세의 탄생설화가 서린 우물이라 신라의 우물, 나정인가. 예수보다 육십년쯤 먼저

'알'에서 태어난 박혁거세가 발견된 우물이 아직 남아있단 게 더 신기. 우물이니 알이니

동정녀니, 섹스(혹은 불륜)를 숨기거나 신성화하려는 전략이란 점에서 예수나 혁거세나

베들레헴이나 경주 나정이나 오십보 백보.


#5. 나정에서 포석정을 지나 삼릉골로 가는 길이다. 포석정 뒷길로 남산을 오를까 하다가

매표소 아줌마에게 추천을 청했더니 역시 삼릉골로 오르는 게 볼 것도 많고 길도 재밌다고.

남산은 당시 신라인들이 부처가 머물고 있다 생각했던 곳이라 했던가. 골짜기마다 잔뜩

조성된 석탑과 석불 따위 불교 유적들이 대단하다. 아마도 사람들은 산에 기대듯 부처에

기댔던 거다. 아니면 부처에 기대듯 산에 기댔는지도.

#6. 삼릉골이란 이름은 골짜기 입구에 세 개의 커다란 릉이 있어서라고 하지만, 막상

언덕만한 왕들의 무덤이래봐야 남산에 의탁하고 나니 그다지 위신이 안 선다. 왕이

자연에 귀의한 느낌이랄까, 산자락에 오체투지의 자세로 늘어붙은 것 같은 젖꼭지 세개.

#7. 워낙 삼릉골을 따라 조성된 탑이니 부처가 많은지라 이름모를 조각들도 뒹굴고 있었다.

그 중 문득 시선을 사로잡던 저 미묘하게 불룩한 위치와 모호한 손놀림.

#8. 선각육존불, 커다란 바위에 선으로 여섯 부처를 그려놓았던 곳이다. 그렇지만 바위

자체의 무늬와 오랜세월 깍이고 다듬어진 자취 때문에 선을 하나하나 식별하기가 이젠

쉽지 않아진 그림판. 군데군데 청동처럼 녹도 슬었다.

#9. 저 바위의 효용은, 그보다는 저 위로 좀더 올라가서 자리를 잡고 해바라기했을 때다.

왕릉같이 부드럽지만 위엄있는 선을 그려내는 경주의 산들이 바라보였다.

#10. 돌아나오는 길에 어느 새로 짓는 듯한 전통음식점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한옥지붕위로

어벙벙하게 웃고 있는 저 표정, 조그만 눈과 헤벌쭉한 입이 그렇지만 굉장히 다정다감했다.

2010년에 다시 그린 경주인, 신라인의 얼굴일지도.


* 경주남산 가이드맵.




이스탄불의 구시가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관광지 벨트'랄까, 톱카프 궁전-아야 소피아 박물관-

지하 저수조-블루 모스크로 이어지는 그 구역에서 가장 맘 편하게 둘러볼 수 있는 곳은 바로

블루 모스크다. 아야 소피아 박물관과 나란히 마주보고 있으면서도 붉은 빛이 감도는 그것과는

달리 훨씬 포근한 푸른빛 감도는 잿빛 건물이 온화한 데다가 주위에 벤치나 녹지공간도 많이

품고 있어서 쉬기에 좋다. 게다가 내부를 구경하는 것도 공짜, 아무래도 블루 모스크가 가장

맘을 풀어둔 채 쉴 수 있고 또 그만큼 기억도 많이 남길 수 있는 이유다.

블루모스크의 이름이야 당연히 푸른빛이 은은한 이 외관에서 비롯했겠지만,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꾸물꾸물한 하늘 아래서 바라보니 오히려 살짝 칙칙한 잿빛이나 회색빛의 느낌이 강하다. 그렇지만

그 파스텔톤의 한결 가라앉은 색감이 여전히 번뜩이는 황금빛 장식들과 어우러져 던지는 운치란 

또 나름의 매력이었다. 얄쌍하게 뻗은 네 개의 미나렛에서 풍기는 세련되고 단아한 느낌은 한결같다.

블루 모스크 앞 벤치가 비 때문에 축축해지고 나니까 사람들 대신 고양이들이 활개를 쳤다.

인류의 엉덩이가 드리워져야 할 벤치에 뽀송뽀송 곱게 살이 오른 고양이 발바닥이 종종 찍혔다.

카메라를 들이대니 귀찮다는 듯 느적대며 자리를 피하는 고양이 녀석.

옆의 아야 소피아 박물관 2층 창문에서 슬쩍 내비치는 블루모스크의 미나렛과 중앙 돔의 모습.

많이 느낌이 다른 두 개의 거대한 사원이 서로 나란히 붙어 있으니, 게다가 한놈은 파랗고 한놈은

빨개서 좀 우습지만, 그래도 한 눈에 두 건물을 바라보면 꽤나 흐뭇한 광경이 된다.

지도로 바라본 이스탄불의 구시가. 맨 오른쪽 아래의 블루모스크, 그 위로 예레비탄 사라이,

그 위로 아야 소피아 박물관, 그리고 톱카프 궁전까지 딱 하루동안 돌아보기에 좋은 알짜코스.

사실은, 블루 모스크라면 하루가 아니라 일주일이라도 맨날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라볼 수

있겠다는 게 솔직한 본심이다. 며칠짜리 코스가 어디 있나, 그냥 맘이 채워질 때까지 묵묵히

이리도 돌아보고 저리도 돌아보고, 다시 또 뒤로 돌아보기도 하는 게 여행.




오거리 길이 길바닥에 불가사리처럼 널부러져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할 지, 내가 가진 건 손에 쥔 빈약한 지도와 코끝에 감도는 그녀의 향기 뿐.


때론 느낌을 믿어야 할 때도 있는 법이라지만, 돌고 돌아 다시 선 길이 이전과 똑같은 오거리,

게다가 마치 리플레이하듯 똑같은 위치에서 오거리를 바라보고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만다면
 
이제부턴 뭘 어째야 할 지 몰라 그저 술을 마시고 마는 거다.



@ 도쿄, 아키하바라 뒷골목.



비록 굉장히 낡고 더러워졌지만, 저 낡음이 어느 가방의 어느 모서리에 쓸렸는지, 그리고 저 얼룩이 어느 식당의

점원이 실수로 엎지른 간장 종지에서 번져나왔는지를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가이드북에 절대적으로 빈곤하던 교통지도 중 JR선에 대한 갈급한 욕구를 이 지도 하나로

전부 해갈할 수 있었단 점. 기치조지역의 '지브리 미술관'을 찾아갈 때, 그리고 도쿄 도심을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도는 JR선의 대략적인 그림과 윤곽이 궁금할 때 매우매우 도움이 되었었다.




2010년 5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상해 황포강 인근에서 개최되는 2010 상해엑스포는 개도국에서 개최되는

최초의 엑스포이자 사상 최대 규모의 행사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여의도 2/3 규모의 부지에 192개 국가, 50개

국제기구, 18개 기업관, 50개의 도시관이 참가하며 연인원 7000만명의 관람객을 기대하고 있다고.

엑스포장은 국가관과 국제기구관이 있는 푸동지역의 A, B, C존, 그리고 기업관과 도시관이 있는 푸서지역의

D, E존으로 나뉜다.

푸서지역 주요 전시관 위치. 한국기업연합관은 12개 국내기업이 연합관을 구성하여 참가한 형태로, 엑스포

참가사상 연합관 참가는 전례가 없는 일이다. 이번 엑스포에서 외국기업연합관은 한국기업연합관과 일본산업관

두 곳 뿐이라고 한다.


그리고 푸동지역 주요 전시관 위치. 한국관 가까이에 북한관이 인접해 있다고 한다. 북한은 상해엑스포에

사상 최초로 참가하여 '강성대국'을 홍보할 예정이라고.





#0. '장 그르니에'라는 섬에 대한 조각지도.

그의 글들은 쉽지 않다. '글'이라는 것이 뭔가를 묘사하고 구체화하는 거라면, 그의 글은 그의 내면 세계와

사고 과정을 묘사하고 스케치하는데 치중하고 있기 때문일 거다. 자칫 난해하다거나 사변적이라는, 어렵게

쓰려고 참 애썼다, 라는 비아냥을 들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의 짧은 단편들은 그의 내면, 그 구석구석에 대한 부분 지도와도 같다. 삶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자신이 누구라 생각하는지, 여행이란 자신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여행을 왜 떠난다고 생각하는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그런 굵직굵직하고도 근본적이랄 문제들에 대해 '장 그르니에'라는 이름의 섬을 조금씩 드러내는

지도인 것이다.



#1. 묘하게 빨려드는 헛된 유희의 중독성, 삶.

'이것'과 '저것' 둘 중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게 삶이다. 두 가지 다 영판 아니다 싶고, "바싹 가까이에서 보면

터무니없을 만큼 치사스런 게 삶"이고, 일정 시간 후에는 죽음으로 흘러가도록 정해져 있다는 건 억지로라도

잊으려 애쓴다. 생일이 다가오면 한 살 더 먹었네,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뒤집어 살 날이 한 해 줄었구나,

라고 생각해도 안 되는 이유는 죽음에 대한 터무니없는 공포심과 터부, 그 이외엔 없지만 말이다. (그런 생각은

'비인간적'이라 거부당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더욱, 유희에 말려들어 덧없는 것 속에서 있지도 않은 것을 찾아 헤매게 되는지 모른다. 이 세상에 항상

좋고 완전한 것이란 없음을 알면서도, 일단 이 세상에 발을 들여놓기만 하면 '악마'의 유혹이 귓전에 맴돌게

되는 거다. "목숨이 붙어 있는데 왜 안 살아? 왜 제일 좋은 걸 안 골라? 왜 좀더 낫게 살지 않아?" 라는. 그말에

따라 달리기를 시작하고 여행을 떠나고. 집 한 채 마련하려고 수십년을 바치고.


니체가 '동일자의 무한반복'이라는 세계의 이미지를 견디어내는 자를 일러 칭했던 '위버멘쉬', '초인'이란

단어는 유사한 현실인식을 궁구하면서도 끝내 삶의 의미를 찾아내는 장 그르니에에 붙음직한 칭호인지 모른다.

그는, 그렇게 무한한 밀물썰물의 진퇴를 반복하는 세상 가운데에서도 어느 순간 충만함을 맛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아무 의미도 없는 파도의 움직임에 문득 의미가 깃드는 순간. 그 한 순간이면 된다. '행복하다'는

말을 진심으로 할 수 있는 자는, 어쩌면 그 '한순간'이란 게 생각보다 인생 곳곳에 숨어있음을 알기 때문일지도.



#2. 여행의 대용품, 섬 찾아나서기.

어딘가로 떠난다는 건, 일상의 더께 속에 깊이 파묻혀 있던 감정들을 하나씩 끄집어내어 툭툭 먼지를 털고

다시금 탱탱하게 충전시키고자 함이다. 그렇지만 장 그르니에의 말을 빌건대, "여행을 해서 무엇하겠는가.

산을 넘으면 또 산이요 들을 지나면 또 들이요 사막을 건너면 또 사막이다. 결국 절대로 끝이 없을 것이고.."

그는 여행이 꼭 필요함을 말하는 동시에, 또 부질없음을 말한다.


더구나 영상 매체와 온갖 미디어를 통해 세상의 낯선 풍경들, 내 멱살을 잡고 흔들어 정신을 번쩍 들게 해줄

그런 풍경들의 파괴력은 반의 반의 반쯤으로 줄어버린 게다. 이미 어디선가 한번쯤 본 풍경, 어디선가

보았던 구도를 답습하고, 꼬리를 문 관광객들의 뒤를 이어 화살표를 따르는 여행이란, (여행을 테마로 했다

주장하는 블로그를 채우려는 사람 입장에선 많이 아이러니하지만) 자칫 티비 다큐멘터리 하나 보는 것만

못한 지루하고 진부한 경험일 수 있다.


다행인 건, 우리 사이엔 아직 신대륙이 남아있다는 것. 남아있는 정도가 아니라 실은 매우매우매우 무궁무진

하다는 것. 장 그르니에의 단편들이 모인 이 단편선의 제목이 '섬'인 이유는, 그가 허무하고 부질없다 느끼는

삶에 애정과 온기, 열정을 불어넣게 되는 이유가 바로 '섬'에 대한 이해, 유대의 욕망이기 때문일 거다. 그는

본질적으로 삶이 무의미하고 공(空)한 것이라는 인식을 양보하지 않지만, 그러면서도 작은 고양이 한 마리,

두 그루의 나무, 한 번의 악수, 어떤 눈길, 그런 것들로 충분히 삶을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한다.



#3. 섬. 점에서 조심스런 말줄임표로, 기어이는 선으로.

김기덕 감독의 '섬', 그 영화를 보고 나서 사람들이 제각기의 해안선으로 외곽을 단단히 둘러친 '섬'같다는

이미지가 단단히 굳어져 버렸다. 망망대해에 혼자만 존재하는 듯 덩그마니 놓여 있는 자그마한 땅덩어리.

사실 그런 이미지는 많은 선인들이 차용했던 것이었고, 그르니에 역시 그 궤를 따르는 것처럼 보인다.

제각기 떠들고는 있지만, 사실 어느 누구에게도 진심으로 이해받지 못한다는, 게다가 결국은 그 섬에서

굶어 죽던 나이들어 죽던 제각기의 삶을 소진하고 제각기 죽어갈 뿐이라는 식의 이미지.


다만 그는 '섬'이 갖는 폐쇄성, 소통불가능성, 본원적인 고독, 외로움 따위의 이미지에 더해, 그 복수의 '섬들'에

대한 여행의 의욕을 불러일으킨다. 저기 저 섬, 한번 여행하듯 떠나보지 않을래? 조금씩 지도를 읽어나가듯

이해하고, 소통해보지 않을래? 육체를 먼 곳에 내동댕이치는 여행이 아니라, 지독히도 가까운 곳에 존재하는

다른 육체와 정신들에 대해 여행을 떠나보지 않으련, 하고 그는 권하는 것이다.


장 그르니에의 '섬'이란 그래서 동떨어진 하나의 점 같은 것이 아니다. 그 점들이 하나하나 이어져 조심스런

말줄임표로 서로를 탐색하고, 결국은 갸냘픈 '선'에까지 이르러 탄탄하고 의지함직한 '관계'를 만들어가려는

움직임의 시초, 일종의 씨앗. 그에겐 '보로메의 섬'이었던 그것은 아직 서로에 뿌리를 뻗지 못한 우리들이다.



#4. 글쓰기. '섬'으로의 친절한 초대장.

글쓰기란 그래서 내겐, 일종의 '작도(作圖)'다. 2009년 10월 20여일 어디메쯤의 나라는 사람은 이런 생각을

품고 있고, 이런 내면을 갖고 있음을 전하려는 지도 그리기나 다름없다. '블로그'라는 도구가 새로운 양 하여

뭔가 그에 걸맞는 뾰족한 수가 있지 않겠나 했지만, 그건 전혀 핵심을 놓치고 있었다. 블로그가 문제가 아니라,

글쓰기가 문제다. 그러고 나면 온갖 광고성 리뷰와 내키지 않는-고역스럽고 '일'이 되어버리는-포스팅의

위험을 벗어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장 그르니에의 '사변적이고 난해한' 글은 어찌 보면 당연한 거다. 그의 글을 읽는다는 건, 전혀 경험치 못한

하나의 세계, 섬 안으로 걸어들어간다는 거나 마찬가지다. 비록 그가 니힐리즘과 실존주의 철학의 역사적

궤적 하의 인물이고, 까뮈를 예비한 인물이란 정도의 배경지식이 있다 해도, 그래서 일정 지역에 몰려 있는

'군도'에 속해 있다 해도 그는 여전히 '섬'인 채로다. 그런 글조차 없었다면 대체 어디에서 '여행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며, 또 대체 어디에서부터 그에게 '들어갈' 수 있을까 싶다.



- 10점
장 그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민음사


다합에서 밥을 먹을 때 찾아왔던 새끼고양이가 있었다. 반가워서 버터바른 빵이나 딸기잼바른 크레페조각같은 걸

던져주다 보니 다음 식사 시간에도 알아서 찾아왔댔다. 스스럼없이 옆에서 세수도 하고 눕기도 하고 뒹굴기도 하는
 
모습을 보니까 전번에 제대로 쓰다듬어줬구나, 하는 확신이랄까.ㅋ 내 허벅지가 만든 그늘에서 편히 웅크리고

쉬고 있는 고양이를 보며, 내 가슴 속에 올려놨던 고양이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이제 나도 누구 한사람 대략

품어줄 만큼은 큰 거 같다고. 그래도 이제 내 호흡에 버거워 주위 사람들 못 챙기거나 신경못쓰는, 소중한 사람을

못 품어주는 일은 없을 거라는 나름의 자신감이 생긴 거 같다.

카이로-시와-알렉산드리아-아스완-룩소-다합-카이로..

마지막을 향해 가는 여행, 카이로를 향해 10시간 버스를 달렸다. 자리가 저번보다 훨씬 편했는지라 문제없이 내내

잘 수 있었다. 어제 중간에 한 잠 자주지도 않고 바다에서 쉼없이 놀았던 게 생각보다 많이 피곤했던 듯. 사실

밤새 달리는 동안 버스는 몇 차례나 멈춰서곤 했었다. 참 이놈의 동네 차도 널럴하게 몰고 다닌다고 생각하며 이왕

멈춰선 김에 해뜨는 거나 보자고 생각했다. 첨에는 아무 이유없이 바다일 거라 믿었던 길 양쪽, 어둠이 양껏

웅크리고 있던 그곳이 실은 먼지 뽀얀 황무지란 사실이 슬슬 드러나기 시작할 즈음, 군인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이미 앞에 멈춰섰던 차를 샅샅이 뒤지고 우리차로 온 참이었다. 모든 짐을 다 꺼내놓고서 하나하나 풀어

헤치며, 가방검사를 하고 있었다. 이건 무슨 생쇼인가, 하고 있는데 결국 내 차례가 다가왔다. 아무리 이집트가

관광객을 보호하고 관광산업을 지키기 위해 군인과 경찰을 온동네에 풀어놓은 경찰국가라고 해도 왠 소지품검사?

어쩌면 다합에서 다른 곳으로 마약이나 다른 물건들이 밀반입될까봐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황무지를

가로지르는 길 한구석에 몰아세워진 채 가방을 줄세워 차례로 열고 있는 모습이란 좀 씁쓸하다. 다른 외국인

여행자들도 다들 툴툴대며 불만가득한 표정이면서도 여권 보여주고 짐 풀어주고.


내 차례는 금방 지나갔다. 어디서 왔냐고 묻고는 여권만 보고 가버렸다. 하긴 혼자서 40명분 가방을 일일이

뒤지는 게 얼마나 짜증났겠어. 조금 후에 버스는 다시 출발했고, 난 다시 편하게 잠들었다. 이번엔 아까보다

조금은 더 편하게 잘 수 있었다. 옆자리에 앉아있던 아저씨가 어느 순간부터 문득 눈에 띄지 않아서 발을

쭉 뻗었다. 그가 잡히지 않기를 기원했다.




○ 국명 : 카타르 (STATE OF QATAR)

○ 수도 : 도하 (DOHA, 인구 : 33만명)

○ 국왕 : 쉐이크 하마드 빈 칼리파 알타니

(His Highness Sheikh Hamad bin Khalifa Al-Thani, Emir of the State of Qatar)

○ 면 적 : 11,521㎢ (경기도 크기 정도)

○ 위 치 : 걸프만 서안에 위치한 돌출 반도 (남쪽은 사우디와 접경)

○ 인 구 : 907,229명 (07.07월 정부 공식 통계)

○ 민 족 : 아랍계 40%, 인도계 18%, 이란계 10%,

파키스탄계 18%, 기타 14%

○ 종 교 : 이슬람교 77.5% (대부분이 Sunni파), 기독교 8.5%,

○ 언 어 : 아랍어(공용어), 영어(통용가능)

○ 정부형태 : 국왕(Emir)을 국가원수로 하는 국왕중심제

○ 의 회 : 자문위원회(Advisory Council), 중앙자치의회(Central Municipal Council,지방의회)

○ 사법제도 : 5개 일반법원 및 특수법원(이슬람(Sharia)법원)으로 구성

○ 독립기념일: 9. 3 → 12.18로 2007년에 변경

(1971. 9. 3. 영국보호령으로부터 독립)

○ 화폐단위 : Qatar Riyal (2008. 9월 현재 US$ 1 = QR 3.64246)

○ 주요산업 : 석유, 천연가스, 석유화학

○ 1인당 국민소득 :$ 80,900 (2007)

○ 국민총생산 : $ 677 (2007)

○ 표 준 시 : GM + 3 (사우디, 바레인과 동일)

○ 기 후 : 사막성 해양기후

-12월~2월 : 10-25℃ (겨울은 짧고 온화함)

-5월~10월 : 33-50℃ (다습한 혹서)

-3,4,11월 : 17-36℃ (비교적 좋으나, 바람이 많이 붐)

-강우량 : 연 10-78㎜ (매우적음)

 

경제현황 및 전망

○ Hamad 국왕 집권 후 종래의 석유 수입에 의존한 경제에서 탈피, 세계매장량 3위의 방대한 천연가스를 본격 개발하면서 카타르 경제는 크게 발전함.

- 러시아 및 이란에 이은 세계3위의 가채 매장량 900조 입방피트의 천연가스 자원을 보유한 국가로서, 세계 1위의 LNG 생산대국인 바, 단일 매장량으로서는 세계 최대의 유전층을 배경으로 2010년까지 연간 7,700만 톤의 가스 생산을 목표로 개발계획을 추진하고 있어, 대규모 천연가스 개발계획에서 가장 앞선 국가로 부상

○ 인구 80만의 소국이지만, 1인당 GNP가 67,000달러로 룩셈부르크, 노르웨이에 이어 3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세계 천연가스 매장량의 14%, 원유의 1.3%를 보유하고 있는 자원부국임.

- 최근 수년간 지속된 국제 유가의 고공행진에 따른 원유 수출 증가('07년 기준 226억 달러), 석유·가스 부문에 대한 인프라 투자 확대, 건설 및 금융 등 비석유부문의 호조 등에 힘입어 카타르 경제는 지난 5년간 연평균 11.5%의 고도성장 유지

과거 5년간 석유·천연가스 관련 산업 개발에 약 153억 달러를 투자하여 원유 생산은 연평균 5.6%, LNG 생산은 연평균 18.7% 이상 증가

○ 카타르 경제에 대한 긍정적 평가

- IMF는 07. 11월 발간된 ‘카타르 Country Report'에서 카타르의 경제전망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향후 천연가스 산업 발전을 기반으로 2012년까지 연평균 12%의 경제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

- 한편, 2007년 세계경제포럼(WEF : World Economic Forum)은 ‘아랍 국가 경쟁력 보고서’에서 카타르의 높은 교육수준과 산업다각화 노력을 강조하며 아랍지역 13개국 중 카타르를 아랍에미리트 다음으로 경쟁력이 높은 국가로 선정하였음.

주요경제지표 및 통계

○ 국내총생산 (GDP)

- 석유․가스 부문의 생산증가에 힘입어 강한 경제성장 세를 보임. 최근 6년간 평균 20% 이상의 초고속성장 시현 중

○ 소비자 물가지수

- 최근 인프라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에 따른 외국인의 급격한 유입, 정부 및 민간기업들의 소비 지속 증가로 수요가 급격히 팽창하고 페그된 달러화 약세로 인플레 문제가 최대 경제 현안으로 대두함.

○ 무역수지

- 카타르는 1996년 WTO 가입 121번째 회원국이 됨으로서 세계자유무역 체제에 편입됨.

- 미국, 일본, 영국, 독일, 이태리 및 프랑스가 주요 무역 상대국이었으나, 중․장기적으로 동아시아에 대한 LNG 및 석유화학제품의 수출이 점차 늘어남에 따라 동아시아국가와의 교역 관계의 비중이 강화되는 추세임.

- 한국은 카타르의 제2위 수출국, 제9위 수입국(제1위 수출국은 일본, 제1위 수입국은 프랑스)

○ 주요경제지표

구분

2002

2003

2004

2005

2006

2007

GDP(억 달러)

194

235

317

425

499

658

1인당 GDP(달러)

28,215

32,096

40,845

52,240

55,461

55,200

경제성장률(%)

7.1

3.5

20.8

6.1

7.1

7.8

재정수지/GDP(%)

8.0

4.3

17.1

9.6

7.5

-

물가상승률(%)

1.0

2.3

6.8

8.8

11.8

13.7

경상수지
(백만 달러)

3,824

5,754

7,552

10,713

9,975

36,110

수출(백만 달러)

10,978

13,382

18,685

25,762

30,595

33,200

수입(백만 달러)

3,650

4,359

5,410

9,064

12,360

15,320

(자료원 : 한국수출입은행, EIU Country Report)

○ 분야별 국내총생산 비중

석유․가스

61.9%

금융 및 부동산

8.2%

제조업

7.3%

건 설

5.7%

무역 및 관광

4.5%

교통, 통신

3.3%


경제정책

○ 카타르는 종래 석유산업에의 의존을 탈피하고 산업다변화 전략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바, 이중 최대 역점 산업분야는 가스 개발산업으로 세계 최대 단일 가스전인 북부가스전 개발을 통해 세계 최대 가스생산 및 공급국가로 도약하겠다는 계획을 실현하는 개발 전략을 적극 추진 중임.

○ 석유․가스등 에너지 산업 외에도 관광, 정보통신, 물류, 보건, 교육 분야 등을 국가기간 산업으로 선정, 대규모 투자를 감행하면서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있으며 동 산업육성을 위한 외국인 투자 유치에도 매우 적극적임.

○ 장기적으로 카타르는 세계최대의 가스수출국으로서뿐 만 아니라 걸프지역의 물류 및 산업 중심지로 부상한다는 국가 발전 전략을 추진중이며 고유가 추세 및 에너지 생산량의 급격한 확대로 현재가 이와 같은 전략을 추진하기 위해 가장 적기라고 보고 향후 5년간 1,300억불을 투자하여 대규모 인프라시설 개발 및 국가 기간산업 확충을 위한 프로젝트 추진 중

최근 카타르금융센터(Qatar Financial Center)를 설립하고 다수의 외국은행들을 유치(‘07년말 32개 예상)하는 한편, 금융기관들에 대한 감독권을 부여하면서 금융부문에서 자율적 규제를 적극 추진중임.

- 7개 카타르 은행, 2개 아랍계 은행, 다수의 외국계 은행이 영업중이며, 이중 중앙은행인 Qatar National Bank가 최대 금융기관임.

- 카타르 중앙은행(QCB)은 은행감독 및 규율에 관한 국제규범에 따라 은행에 대한 감독을 시행하며, 통화정책의 일환으로 재무성 증권을 발행할 수 있음.

○ 특히 산업다변화를 위해 카타르투자자유지대 (Qatar Investment Free Zone), 카타르금융센터(Qatar Financial Center)를 설치하고 외국기업들의 투자유치에 매우 적극적인 바,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중동 국가중 해외 투자를 가장 많이 유치하고 있는 국가중 하나임.




* 위의 자료는 외교통상부, KOTRA, 수출입은행, 한국무역협회, CIA 등의 자료를 기초로 작성되었습니다.






○ 국명 : 사우디 아라비아 왕국 (Kingdom of Saudi Arabia)

○ 수도 : 리야드 (Riyadh, 인구 3백만 명)

○ 국왕 : 압둘라 (Abdullah bin Abd al-Aziz Al Saud) 국왕

  - 두 성지의 수호자(the Custodian of the Two Holy Mosques)로 칭함.

○ 면 적 : 215만㎢ (아라비아반도의 4/5 차지, 한반도의 10배)

○ 위 치 : 아라비아 반도 (북위 16-32도, 동경 36-56도에 위치)

○ 인 구 : 2,700만 명 (2006.7월 현재, 외국인 558만 명)

  - 인구 밀도 : 13.47명/㎢

  - 남자 55%, 여자 45%

○ 민 족 : 아랍족 (90% : 베드윈족 27%, 기타 아랍정착민 73%),

아프리카-아시아인 (10%)

○ 종 교 : 이슬람교 (수니파 90%, 시아파 10%)

○ 언 어 : 아랍어

○ 정부형태 : 이슬람군주국 (정교일치의 국왕중심제)

○ 의 회 : 없음 (국왕이 임명하는 120명의 국정자문위원회가 유사한 역할 담당)

○ 주요정당 : 없음

○ 국제기구가입 : UN, ILO, FAO, UNESCO, WHO, IBRD, IMF 등

○ 독립기념일 : 5월 20일 (1927. 5. 20 국가통일)

○ 화폐단위 : Saudi Riyal (SR) (US$1 = SR3.75365, 고정환율)

○ 산업구조 : 석유/가스산업 47.8%, 서비스업 33.7%, 제조업 9%

○ 주요수출품 : 석유, 석유화학제품

○ 주요수입품 : 기계류, 운수장비, 섬유류, 식품

○ 석유매장량 : 2,643억 배럴 (세계 매장량의 약 23.1%) (OPEC 자료)

○ 천연가스매장량 : 235조 ft³로서 세계 총 매장량의 4% (OPEC 자료)

○ 경제적강점 : 석유자원 풍부 (세계매장량의 25%로 세계 최대)

○ 경제적약점 : 노동력 부족, 과도한 석유산업 의존

○ 1인당 국민소득 :$ 23,200 (2007)

○ 국민총생산 : $ 3,760억 (2007)

○ 표 준 시 : GM + 3 (카타르, 바레인과 동일)

○ 기 후 : 고온건조한 대륙성




* 위의 자료는 외교통상부, KOTRA, 수출입은행, 한국무역협회, CIA 등의 자료를 기초로 작성되었습니다.




아마 도요호텔에서 투숙객들의 편의를 위해 일본어판 관광안내지도 일부를 복사해서 비치해놓은 듯 하다.

한국에서 들고 갔던 가이드북에 나와있지 않은 세부 사항이라거나, 세세한 골목같은 경로를 탐색할 때 꽤나

쏠쏠하게 도움이 되었던 지도였다. 축척이 1:4000이니까 거의 50미터 버전의 내비게이션하고 비슷한 수준아닐까.

후쿠오카 시내 관광을 계획중인 분들에게는 꽤 도움이 될 듯.





왠지 오르세 미술관 앞에서 친구와 만나기로 한 약속은 번번이 깨어지곤 했었다. 팡테온 위 전망대에 올랐다가

굳이 함께 내려가야한다는 안내인의 고집때문에 팡테온서 오르세까지 숨이 턱에 차도록 뜀박질하다가 결국 십여분

늦기도 했고, 노틀담 성당에 잠시 갔다가 예기치 않은 대주교 집전의 미사를 구경하며 오분만, 오분만 하다가 또

십여분 늦어버리기도 했고. 메트로와 버스를 모두 무제한 사용가능한 프리패스를 사놓고는 왜 이용하지 않냐고

타박을 듣기도 했지만, 버스나 메트로가 생각보다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건 서울이나 파리나 마찬가지인 게다.


옷 아래 옆구리 어간이 시뻘겋게 달아올랐으리라 생각될 즈음 멀찌감치서 이 오르세 미술관 간판이 보이면 그래도

잠시 걸음을 늦춰 한숨 돌리곤 했었다. 나 자신만의 은밀한 안도의 상징이 되어버린 오르세 미술관의 간판.


애초 기차역사였던 공간을 미술관으로 개조했다고 한다. 멀찍이 보이는 커다란 시계는 기차 역에 붙어있던 바로

그 시계라고 하며, 둥그런 천장 역시 역사의 외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 공간 한복판에 불쑥불쑥 솟아나온

우윳빛의 대리석상들.

토마 쿠튀르의 "쇠퇴기의 로마인들(la Decadance)"라는 작품의 일부. 중앙 통로의 복판쯤을 커다랗게 차지하고

있는 대작이었는데, 총기와 자정능력을 상실하고 술과 여자, 잔치로 점철된 로마문화의 말기적 징후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술먹고 싸울 듯 인상을 찌푸린 녀석, 여자와 희롱하는 녀석, 술먹고 과장된 몸동작을 취하는 녀석..온갖

인간들이 있었고 그때마다 왠지 지난 날의 내 음주생활과 그로 인한 온갖 사건사고들을 떠올리고 피식 웃음이

났지만, 대박은 이녀석. 술 취해서는 대리석상을 붙잡고 건방진 눈빛을 한채 술을 권하고 있다. 현대로 치자면,

술취해선 마네킹을 붙잡고 뒹군다거나 전봇대와 싸우는 정도..의 애미애비도 못알아본다는 개망나니 수준이 아닐까.

중간중간 앉아서 감상할 수 있도록 대리석 의자가 놓여있었다. 대리석의 선뜻한 차가운 느낌 때문에 오래 앉아있긴

힘들었는데, 그런 자리에 앉아서 몇시간이고 그림을 그리고 있는 사람들도 꽤나 보였다. 너무 자연스러운 광경.

오르세 미술관에 들어서서 한가지 이상했던 점, 왜 카메라를 찍도록 냅두는 걸까. 세계에서 손꼽힐만큼 크다던

이집트 카이로 미술관에 가서도 사진은 하나도 못 찍게 했던 것 같다. 쿠푸왕의 대피라미드 안의 석상에 누워보게

하고 왕의 계곡에 있는 무덤들에 손대고 플래시 터뜨리며 사진찍도록 냅두던 그들이었지만, 박물관에선 최소한

사진을 안 찍게 했던 거 같은데, 여긴 아니다. 오르세 만이 아니라 루브르, 오랑주르..다 그랬다.


덕분에 자유롭게 사진을 찍으며 구경했다. 스스로 정한 제한선은 플래시를 터뜨리지 않기로.

참 오밀조밀하게 공간을 쓰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오르세 미술관의 전경. 언젠가 이야기했던 것 같지만, 불어의

'R' 발음은 대개 'ㅎ'로 발음이된다고 한다. 한국에 있을 때 누군가 파리에 오래 있었다던 사람에게 그 친구가

오르세 미술관이 좋다며, 어쩌구 하고 물었더니 한동안 못 알아듣는 척을 했다는 이야기. "오르세 미술관? 아~

혹시 오ㅎ세 미술관 이야기하는 거야? 오르세가 뭐니 촌스럽게." 라는 식으로 기어코 상대를 면박주고 싶었을까.

이 그림의 제목이 뭐였더라...파라다이스? 환타지? 남자의 로망? 꽃밭? 천국? 실낙원?

도무지 제목은 생각나지 않지만, 저 발랄하고 투명한 색감과 여인들의 말간 속살이, 그리고 저 은박지로 만든듯한

갑옷을 입은 남자의 살짝 흔들리는 표정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내가 너무 감정이입한 걸까. 사실 내가 떠올려낸

저 제목들은 모두 내 기호를 반영하고 있는 게다.

고개를 꺽은 채 허리를 뒤튼 여체. 대담하게 머리칼쪽에 던져둔 두 손 덕분에 농염하게 드러나는 젖가슴.

살집풍만한 허리와 허벅지를 보건대 분명 저 시대와 지금 시대의 미적 감각은 차이가 있지 싶으면서도, 저 조각이

내 마음을 움직이는 건 그 싱싱한 생명력과 리얼한 몸의 움직임 때문이다.

Henri de Toulouse-Lautrec(1864-1901)라는 작가가 계속 눈에 띄었다. 아마 오르세, 혹은 오ㅎ세를 방문한 오늘

내가 건져갈 미술가는 이 사람인가 보다. 거친 몇 개의 선으로 날카롭지만 섬세하게 인물에 숨을 불어넣는다.

그리고 여성의 누드가 단지 이상화된 여신을 묘사하는 것에 국한되어 있던 기존의 풍조와는 달리 여성의 누드가

갖는 통속성이랄까, 그 자체로서 갖는 의미에 집중한 그림이란 느낌이다. 마치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혹은

'올랭피아'가 기존 화단이 고수하던 전통과 도덕적 금기를 깨뜨린 것처럼, 내가 본 그의 그림들은 모두 상당히

도발적이고, 동시에 현대적이란 느낌.

몇몇 보고 싶던 작품들이 전시되지 않고 있던 것은 아쉬웠지만, 얼마전 한국에도 왔다가면서 인사를 건넸던

부르델의 '활을 쏘는 헤라클레스'를 여기서 다시 만났던 거나, 요새 좋아라 하는 인상주의 작품들이 많았던 점은

정말 맘에 들었다.


참, 유의할 점 하나. 총 3층에 나뉘어 전시되고 있는데, 층수로 치자면 0층, 2층, 그리고 5층 이렇게 세 개 층으로

구분되어 있다. 1층과 3, 4층으로 가는 길은 찾을 수도 없으니 행여나 찾으려 노력하는 건 내가 잠시 저질렀던

어리석은 짓을 반복하는 셈이다.




오르세 미술관의 티켓. 아마도 에드가 드가의 그림인 듯한 저 발레하는 소녀들의 모습, 그리고 그 뒷면에 선명히

찍혀있는 5.5유로의 입장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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