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카다역 인근 숙소에서 가까운 전철역까지 걷다 보면 몇군데씩 새로 생겼다는 '신장개업'의 빠찡꼬게임장들을

볼 수가 있었다. 한국에서 바다이야기가 성행했고, 지금도 변종 업소들이 성행하고 있다지만 나와는 별로 인연이

닿지 않는 장소들인 터, 도박장이라고는 몇년전 강원카지노랜드 가서 슬롯머신 하다가 만원정도 기부하고 온 게

전부였다. 시끄러운 소음이 공기중에 붕붕 떠다니고, 그렇지만 아직 신장개업중인지라 약간 어설픈 기류가 흐르는

그 곳에 들어서니 왠 배용준사마와 최지우히메가 보인다.


오...역시 이들이 일본에서 좀 먹히긴 하나 보다 싶기도 하고, 게임기 자체가 온통 겨울연가, 그 둘의 사진으로

도배되어 있는 걸 보니 좀 살짝 질리기도 하고. 대체 저건 무슨 게임일까 잠시 궁금해하다가 돌아서고 말았다.

그 옆라인에 늘어선 또다른 게임기..마치 바다이야기처럼 스크린이 있고, 뭔가 그림이 움직이는 것 같던데 역시

좀처럼 어케 하는 건지 모르겠다. 바글대지는 않더라도 누군가 게임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옆에서 살짝

어깨너머로 배워서 직접 땡겨보기라도 했을 텐데, 워낙 사람도 없고 휑뎅그레한 분위기여서 금방 문밖으로 나섰다.

텐진 쪽으로 가다가 마주친 영화관, 건물 둥근 모서리에 입구가 펼쳐져서는 이런저런 일본영화들을 상영하고 있다.

왠지 간판도 그렇고, 외관도 그렇고 중후하달까, 고풍스러운 느낌이 짙었다. 사실 우리나라도 한 십년전만 해도

종로나 명동즈음의 영화관은 다 저런 느낌 아니었던가 싶은데, 급속히 멀티플렉스관들이 생겨나면서 볼 수 없게

된 게 아닌가 생각했다. 가끔 일제강점기나 6,70년대를 배경으로 한 뮤직비디오나 영화에서나 볼 수 있게 된 정도.

텐진으로 가는 길, 어느새 어둠이 짙게 드리웠고, 야트막한 하천에는 커다란 네온사인 불빛들이 늘어지게 비쳤다.

살짝 비가 내리더니 땅바닥이 금세 촉촉해졌고, 텐진 한 가운데쯤 보도에 박힌 방향 표시판은 공항, 역사 등등의

방면을 안내하며 밟히고, 비에 씻기고 있었다.

안 되겠다 싶어 버스를 타고 다시 하카다역 근처로 돌아나오는 길. 빗방울이 묻어 울룩불룩해진 차창 너머로

어릿하게 굴절되어 들어오는 불빛들. 왠지 모르게 사람을 애잔하게 만들었던 외국의 낯선 밤거리.

하카다역 근처에서 술을 한잔 마시고 들어가려 했다. 일본에 온 김에 제대로 된 이자카야에서 오꼬노미야끼 같은,

일본식 안주들과 따뜻한 사케를 마시고 싶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서울에선 열걸음마다 채이는 이자카야 술집이

역 근처에선 좀체 찾을 수가 없던 거다. 어찌어찌해서 들어간 술집에선 오꼬노미야끼 같은 것 대신 꼬치류를

주로 팔고 있었다.


게다가 메뉴판은 온통 일본어뿐, 영어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곳이어서 옆사람들 먹는 것을 보며 손가락으로 가리켜

음식을 주문해야 했다. 다행히도, 옆자리에 앉았던 분이 후쿠오카에 와서 사신 지 오래되셨다는 한국분이셔서,

그분의 도움을 받아 몇가지 안주류를 무난히 주문하는데 성공. 팽이버섯베이컨말이꼬치, 닭고기꼬치, 관자꼬치,

게다가 실패였다고 후회하고 만 고래고기까지. 울산 사는 군대 선임이 늘 고래고기를 한번 맛보여주겠노라고

약속만 하고 여지껏 못 지켰던 터여서, 늘 고래고기에 대한 선망과 호기심이 넘실대던 터였다. 그렇게 과거의 오랜

욕구를 따라 질러버린 고래고기는, 시커먼 색의 고기가 가지런히 잘려서 한 열 점 나왔던가. 어찌나 짜던지, 또

어찌나 고기가 퍽퍽하던지 한입 살짝 베어물 때마다 사케 한모금을 머금어야 했다.

정말 맛있던 건 이 가리비 구이..랄까. 속이 옹골찬 가리비 하나를 큼직하게 몇조각으로 썰어서는 버터를 조금

넣고 조개구이집에서 굽듯 철판 위에서 굽는 거다. 고소하면서도 짭조름한, 게다가 탱탱거리면서 쫀득거리는

가리비의 식감이란. 손님들이 들고나고 주문하고 호출할 때마다 큰소리로 이럇사이마세~ 아리가또고자이마스~

어쩌구~ 라고 경쾌하게 떼지어 외치는 종업원들의 외침 속에서도 홀연히 그 존재감을 과시하는 가리비.

한참 먹고 마시다가 문득 바라본 자리 앞 철판에선 김을 걷어낸 삼각김밥 모양의 주먹밥이 노릇노릇 구워지고

있었다. 저건 또 뭘까..이미 어느 정도 배도 찼고 술도 오른 상태였지만 한국 돌아가서 저런 걸 또 언제 맛볼 수

있겠어, 라고 생각하고는 싸가기로 했다.

찰지게 모양잡힌 하얀 삼각밥이 철판 위에서 몇번씩 뒤집어지는 동안 꺼뭇꺼뭇하게, 또 누릇누릇하게 익혀졌다.

그리고 얼추 지금쯤 꺼내지 않으면 타지 않을까 싶은 타이밍에 맞춰, 주방장 아저씨가 앞뒤로 간장을 발라주고는

철판에서 건져냈다.

숙소에 돌아가 포장된 삼각주먹밥을 풀고는, 가져갔던 위스키 미니어처병을 홀짝대며 안주삼아 맛을 봤는데 역시

조금 과하게 먹는게 아닌가 싶긴 해도 먹을 땐 먹어주는 게 남는 거란 확신이 들었더랬다. 겉은 누룽지처럼 살짝

딱딱하면서도 간장 때문에 달콤짭조름하고, 속은 밥알들이 쫀득하게 찰싹 엉겨있고. 꽤나 맛있었다.


그치만 주점을 나서면서 살짝 기분이 찜찜했던 건, 왠지 바가지를 썼다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4000엔이 약간 넘을

정도로 나왔는데, 물론 다른 단품 안주들에 비해 월등히 비쌌던 고래고기나 가리비구이를 시켰고 잔술도 꽤 많이

시켰다고는 해도..은근히 머릿를 굴려 예상했던 금액과 적잖은 차이가 있었던 것 같았다. 어쨌든, 맛있게 마시고

먹었으니 됐다고 치고 금세 머릿속에서 휘발시켜 버렸다.

그보다 조금 전 술에 기분좋게 취해서 숙소로 돌아가는 길, 하카다역 옆 굴다리를 지나는데 별 생각없이 한장

찍어본 사진, 카메라도 같이 술을 마셨었던 겐지 사진 속 불빛들이 온통 일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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