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이후 역에 내리면, 다자이후덴만구 이외에도 고묘젠지, 그리고 교토박물관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고묘젠지는

'고케데라-이끼사원'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곳으로, 이끼로 육지를, 흰모래로 바다를 표현한 정원과 돌로 '빛 광'

(光)자를 써놓은 정원, 그리고 아름다운 단풍과 진달래로 유명한 사원이라고 한다.
고묘젠지 입구 모퉁이길에 세워져있는 볼록거울에 꽉 채워진 이웃집 풍경.

고묘젠지는 다자이후텐만구를 돌아보고 나오다 보면 빠지는 조그마한 샛길따라 나타난다.

고묘젠지, 대체 이게 무슨 뜻일까 했었는데 한자를 보니까 좀 풀린다. 광명선사..구나. 안내판의 한자들을 띄엄띄엄

읽어보니 임제종 계열에 속하는 철우원심스님이 약 700년전 창건한 절로서 다자이후텐만구의 결연사라는 거 같다.
절 앞측 정원은 열다섯개의 돌이 빛광자를 나타내고 있다는 큐슈 지방의 유일한 석재정원이라는 듯 하고, 절

내부의 정원은 육지나 섬을 이끼로 표현했고, 하얀모래로 바다를 표현했다는 것 같다. 음...어디까지나 내 맘대로의
해석.ㅋ

들어서려는데 현판의 초록빛이 이목을 끈다. 아마 이끼사원으로도 불리는 이곳의 특징을 감안해서겠지만, 녹색을

사용해 저런 편액 글씨를 써놓은 것은 처음 봤다. 대문 너머 붉은 단풍과 어울려 산뜻한 느낌을 준다.

대문을 지나면 바로 나타나는 하얀 돌 가득 깔린 앞마당 정원. 여기가 아마도 빛 광자 모양으로 돌들이 늘어서

있다는 곳일 텐데, 전혀 알아볼 수가 없었다. 대체 어떻게 그 글자, 光자가 나타난다는 걸까. 외려 눈에 띄는 건

저토록 완벽하게 고랑이 파인 바닥. 긁개 같은 것으로 잘 가다듬어 놓은 거같은데, 그 이랑 틈새에 단풍잎들이

내려앉아 더욱 선명히 굴곡을 드러냈다.

고묘젠지 안으로 들어가면 보이는 큰 방, 방 앞쪽에 마치 무대처럼 꾸며져 있는 이 조그마한 단상과 좌우에 도열한

그림 그려진 문짝은...뭘까. 뭔가 이 신사의 중심부가 여긴가 보다 싶다. 누군가의 죽음을 기억하러 왔는지 검은

옷의 사람들이 이 곳에 무리져 있기도 했고.

이제 절 내부의 정원으로 들어갔다. 사실 들어갈 수는 없는 것 같았고, 모두들 목조건물 대청마루랄까, 내부를

향해 펼쳐진 대청마루, 혹은 열린 복도에 서서 정원을 감상했다. 하얀 모래로 바다를, 초록색 이끼로 땅을 표현했단

설명이 그럴듯 하다. 그렇담 저 튀어나온 괴석들은 바다에 불쑥대며 솟은 섬들이겠고, 저 나무들은...땅덩이의

사이즈와 비례해 생각하건대 거의 하늘을 꿰뚫만큼 높이 솟은 신목이겠군.

이런 정원을 밟게 해놨다면 얼마나 쉬 망가지겠냐만서도, 한번 저렇게 그림같이 잘 꾸며진 정원을 거니는 것도

정말 운치있고 행복할 거 같다. 저 하얀 자갈들의 바다는, 밟을 때 자갈자갈 소리를 내지 않을까.

고묘젠지 본건물과 옆의 건물을 잇는 구름다리. 이 다리를 건너면 뭐가 나올까 해서 살짝 들여다봤더니, 경읊는

소리와 함께 꽤 많은 사람들, 아마도 가족들이 제를 지내고 있었다. 여긴 단순히 관광지가 아니라 실제로 그런

종교의식을 거행하는 곳이었던 게다. 자연 발걸음소리도 더욱 죽이고 걷게 되었다.

이런 식의 대청마루, 혹은 열린 복도. 건물과 바깥 마당을 막고선 저 울타리가 있으니 마루라기에는 좀 그런가.

11월 중순의 일본 후쿠오카, 처마지붕 아래 단풍이 연하게 든 나무들을 담고 싶었는데..지붕 아랫도리가 너무

어둡게 나왔다.

건물 벽면을 따라 쭈욱 돌면서 정원을 완상하다가 한 컷. 정원과 건물 사이를 가르고 있는 저 경계가 선명한 걸

보면, 정말 이 정원은 두고 보기 위해 만들어진 정원같긴 하다. 흔히 일본과 한국, 중국의 문화적 차이를 담벼락

높이가 거의 낮고, 조금 높고, 매우 높다면서 그 의미를 이렇게저렇게 부여하곤 하는데, 정원만 두고 보면 중국과

일본의 정원은 보통 도매금에 묶이곤 하는 것 같다. 한국의 '자연미'에 비해 중국과 일본은 너무 인위적이라거나

특히 일본은 인간과 유리된, 감상용으로서의 정원을 꾸민다거나. 모종의 가치평가가 내재된 그런 지적을 꼭

따르고 싶지는 않지만, 여긴 확실히 그런 감상용 정원이긴 하다.


다만 그런 '감상용'이라는 단어가 갖는 모호성을 생각해 보자면, 저런 풍경을 배경으로 한 채 차를 한 잔 한다거나

사람들과 담소를 나눈다면..굳이 유리되어 있다고 말할 필요는 없지 않나. 당장 유센테이코헨같은 정원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다니면서 풍경에 녹아들었으니, 꼭 "일본의 정원은 이래"라고 말할 것도 아닌거 같기도 하고.

옆건물로 건너가는 길, 조그마한 다다미방안에 무릎을 단정히 꿇고 앉아 격자무늬 창을 통해 정원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

조그마한 물받이 돌그릇...이거 대체 이름을 뭐라고 해야할지 원...에 뭐가 있다고 저렇게 불편한 자세로 몇분씩

카메라를 들이대고 계시던 할아버지 한 분. 그 열의가 좋았다. 그리고 대체 무엇을 찍으시는 건지 무지하게

궁금해져서, 옆에서 여기저기 얼쩡거리며 구경하다가 드디어 빈 자리를 꿰어차고 들어앉았다.

아..!! 작게 탄성이 터졌다. 그 안에 단풍나무가 담겨 있었다. 물에 비친 선연한 붉은 빛의 단풍나무.

옆에는 정말 제대로 된 마루에서 사람들이 단정하게 무릎을 꿇고 앉아서 정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원을 보기도

하고, 옆사람과 이야기도 하고, 아이들이 노는 것에 때론 눈길을 빼앗기기도 하면서, 그렇게 유유자적하는

분위기. 뭔가 이 곳은 다른 질감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저 사람들이 앉아서 보고 있던 풍경. 11월인데, 아직 대세는 청량한 초록빛이다.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서려는데, 가지런히 정리된 게다와 담백한 나무질감의 서랍장이 차분하다.

고묘젠지의 가을 풍경.

그래도 제법 울긋불긋한 느낌인데다가, 하얗게 내려앉은 가을 햇살이 지붕에 서렸다.

2층으로 올라가 난간을 잡고 내려본 고묘젠지의 앞면 정원. 완벽하게 빗살무늬가 새겨진 하얀 자갈정원바닥에

빨간 단풍잎이 고랑마다 내려앉아 더욱 선명하다.

고묘젠지를 들고나는 입구. 엉성하게 연두빛 잎사귀를 틔운 나무가 시야를 가렸다.

뭔가 그럴듯한 포스를 풍기며 가지를 사방에 뻗어나간 붉은 단풍.

2층 지붕에 살짝 가려진 단풍나무. 얼핏 보면 지붕에 불이 붙은 것 같지 않냐...는 강변이었는데, 어떤지 모르겠다.

한바퀴 돌고 잠시 정말 대청마루에 앉아서 좀 쉬었다. 나무의 원색을 최대한 끌어낸 채 별다른 채색이 더해지지

않은 담백하고 단정한 건물이, 붉고 푸른 주변 풍경에 더해져 제법 화려한 느낌도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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