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이후역으로 가는 길, 양옆에 늘어선 상점들이 성업중이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던 건 이 뽑기기계.

마치 수백마리 종이학들이 푸드덕대며 날아오르는 것처럼, 주홍빛 종이가 투명한 원통 안에서 서로 부딪쳐가며

나부끼고 있었던 거다. 저 꼬맹이는 첨엔 다소 움찔거리며 겁내하는 것 같았는데, 아마 저 종이새들이 그악스럽게

휘몰아치는 기세에 겁먹었겠지만, 이내 손을 조심조심 내뻗었다.그 모습을 옆에서 의젓하게 지켜봐주는 오빠.

잠시 지켜보고 있는 사이에도 꼬마손님들이 쉼없이 다녀간다. 닌텐도DS니 WII니 그런 경품이 걸려 있다는 것도

꼬마손님들을 이끈 동기겠지만, 저렇게 원통안에 갇힌 채 맹렬한 기세로 날아다니는 종이를 한번쯤 손뻗어

잡아 보고 싶다는 순수한 호기심이 더욱 크지 않았을까.

사람 참 많다. 다자이후 역에서 다자이후텐만구, 혹은 고묘젠지까지 이르는 그 짧은 구간에 빼곡하게 늘어선 작은

상점들도 꽤 볼만한 게 많아서인지 사람들의 발길이 좀체 서두르는 기색이 없다.

전통의상을 차려입은 꼬맹이가 두손으로 캔을 그러쥐고 마시는데, 어찌나 귀엽던지, 저 말똥말똥한 눈망울하며.

'소녀떼'들도 주말을 맞아 놀러온건가. 아님 하교길에 잠시 들른 건가. 군것질거리를 파는 몇몇 가게에는 여지없이

그네들이 길게 줄을 늘어서있다. 일본 교복이 이뿌단 말은 많이 들었는데, 역시 예외는 있는 법이다.

고명에서 매실향이 조금 나는 찹쌀떡이랄까. 얘들을 머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는데, 소녀떼 팬들을 모아들이고

있던 것의 정체는 바로 이것. 한 개에 105엔, 다섯 개에 525엔, 열 개에 1050엔, 열다섯 개에 1575엔, 스무 개에

2100엔. 많이 산다고 전혀 가격할인이나 덤도 없는 시크한 가격체계.

이곳에서 유명한 건가 보다. 똑같은 걸 파는 가게가 몇개나 늘어서 있었는데, 손님이 많은 집은 줄이 엄청 길게

늘어서 있고 없는 집은 썰렁했다. 만드는 방법은 약간씩 달라서, 어떤 집은 이렇게 손으로 반죽을 떼어 틀에 넣고

만드는가 하면, 또 다른 집은 마치 호두과자 기계처럼 자동으로 움직이는 과정을 통해 만들고 있었다.

이런 식이었는데, 역시 기계로 만드는 곳에는 별로 사람이 모여있지 않았다. 가격이 다르지도 않았는데, 그렇다면

더더욱 손맛이 들어간 (것처럼 보이는) 곳에서 사고 싶은 게 인지상정일 테다. 달다 싶으면서도 쫀득하고 부드러워

금방 먹게 된다. 그렇다고 찰떡처럼 찰지지는 않고 살짝 흐물흐물한 편이라, 많이 사갖고 들고 다니기는 무리였다.


덧붙이자면, 이건 '우메가에모치'라는 떡이라고 한다. 이하는 '후쿠오카 관광가이드북'의 관련 자료 내용.

"스가와라노 미치자네 공이 에노키샤에서 불우한 생활을 보내고 있을 때, '조묘니'라고 하는 노파가 공을 동정하여

가끔 이 떡을 가지고 와서 공의 무료함을 달래주었다고 한다. 공이 서거했을 때 이 떡에 매화나무 가지를 덧붙여

보냈다는 고사에서 기원되어 우메가에모치라고 불리우게 되었다.

이 떡에 공의 영혼이 깃들어 있기 때문인지 우메가에모치를 먹으면 병마를 막을 수 있다는 특효가 있다고 하여

널리 유명해지게 되었다."

좀..앞뒤가 맞지 않고 매화와 떡을 잇는 이야기가 워낙 빈약하다 싶긴 하지만, 어쨌든 병마를 막을 수 있댄다.

근데 왜 스가와라노 미치자네 공은 죽어버린 거지?ㅡㅡ;

한국 관광객이 역시 많은지, 종종 한국어 설명이 병기되어 있는 곳도 눈에 띄었다. 근데 이게 뭥미.."감자기 경단"??

감자 경단이면 감자 경단이지 감자기는 뭐람. 난 첨에 얼핏 '갑자기 경단'이라고 읽었었다. 갑자기 경단이 먹고

싶어지면 와서 먹으란 겐가 했다.

한국인이 이 관광객 틈에 어딘가 스며들어 있겠지만, 일본/중국/한국인의 구분을 잘 해내는 편인 나로서도 찾아

내기가 쉽지 않았다. 11월 중순께 급격한 엔고 추세로 인해 뜸해졌을 수도 있고, 한국관광객들의 여행 비수기라

그럴 수도 있겠고. 서양 관광객도 거의 눈에 안 띄었는데 찍고 보니 용케 비 아시아권으로 보이는 관광객 한명이

사진에 잡혔다.

꼬치는 300엔~ 무지하게 비싼 거 아닌가. 한국이던 일본이던 관광지 주변 물가란 건 참..그렇다.

그렇게 다자이후 역까지 돌아나왔다. 바로 다시 돌아갈까 하다가, 조금 반대편길을 돌아보기로 했다. 그리 넓은

번화가가 펼쳐져 있지도 않고 시골 읍내처럼 한두 블럭에 걸친 상점가가 보여서, 금세 돌아볼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건물들이 폭이 좁다. 대부분 슬림하게 빠진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건물들의 색감도 대체로

차분하고 담백한 느낌이다. 간판도 한국처럼 서로 튀려고 그악스럽게 다툼하는 자극적이고 천박한 색과 모양이

아니라는 게 또 하나의 발견.

"티셔츠가 아주 싸지고 있습니타?" 티셔츠가 싸면 싼 건지 대체 싸지고 있는 건 뭘가. 아주 싸지고 있으니 조금더

기다렸다가 사라는 건가. 이걸 발견하고 재밌어서 한참 실실거렸다.

같은 가게, 티셔츠에 씌여진 일어 단어들을 삼개국어로 설명해 놓았다. "무책임", "우리 길을 간다!", "파란만장",

뭔가 그럴듯한 의미가 있어보이고 적당히 반항기 어려보이는, 딱 내가 좋아할만한 문구들이 적혀있었는데, 마지막

하나 설명을 보고 대체 뭘까 한참 고민해야했다. "깨지만 나무"???? "Bad boys or Bad girls"가 대체 왜 그렇게

번역이 되는 걸까. 게다가 깨지만 나무..란 말은 대체 무슨 뜻이란 말이냐. 근데 정말 "Bad boys or Bad girls"을

한국어로 어떻게 바꿔야 할까 생각해 보았다. 좀 격하게 나가자면 "씨X놈X들", 좀 부드럽게는 "나쁜 녀석들"정도?

하카다 큐슈난지. 대학 다닐 때 동경대에서 교환학생을 왔던 친구가 큐슈 출신 남자였다. 교환학생을 와서 머리로

공부하러 온 게 아니라 '간'을 사용해 공부하러 왔다던 그와 숱한 술자리를 가지면서 배운 몇 안되는 일본어 중

하나. 큐슈난지. 한국에 경상도싸나이가 있듯 일본엔 큐슈난지가 있다고 했다.

우유부단 티셔츠. 아...이 가게 정말 재미있는 티셔츠나 소품들이 많아서 한참동안 구경했다. 저 티셔츠를 입고

있으면 왠지 우유부단해지는 건가.

금세 끝나버린 번화한 골목 뒤에는 또 무슨 신사인지 절인지. 예전 철없을 적 좋아라, 하면서 보았던 일본 만화

"오 나의 여신님"의 주인공들이 사는 절이 이런 곳 아니었을까.


지독히도 남성중심적인 판타지로 가득한 그 만화에서. 찌질한 주인공을 둘러싼 세명의 여신이 가진 이름들은,

알고 보니 게르만 전설에 나오는 세 운명의 여신 노르네스의 이름을 차용한 것이었다. 과거를 아는 우르트르

(울드), 현재를 담당하는 베르트란디(베르단디), 그리고 미래의 여신인 스퀼트(스쿨드). 그치만 개인적으로 이

세명은, 메이드/선생/아줌마(엄마) 취향을 위한 베르단디, 군복녀/SM/누나/직장녀 취향을 위한 울드, 그리고

롤리타(소녀)/안경녀/여동생/교복녀 취향을 위한 스쿨드로 짜여진, 이후 일본의 연애시뮬레이션게임의 섬세하게

분류된 캐릭터 구축을 위한 선행적 작업이 아니었을까 싶다..고 말한다면 너무 과한 걸까.

조금 더 걸어가다가 보게 된 다자이후의 주택가. 다닥다닥.

푸른 대나무밭에 기대선 집들 역시, 다닥다닥.

계속 걸어나가다 보면 어디가 나올까 궁금했는데, 조금씩 풍경이 시골스러워지기 시작했고,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산까지 보이는 걸로 보아 더 가봐야 돌아올 때 힘이 들테니 돌어가자는 판단을 내렸다. 발의 피로도가 누적되는

것을 감수하고 미지의 뭔가 재미있는 것들을 탐사하기엔 이득보다 비용이 커질 뻔한 지점에서 돌아서다.

돌아오는 길에 발견한 고등학교. 학교이름을 저렇게 크게 써두는 것도 한국에서는 못 본 거 같다. 보통 교문에

자그마한 문패를 걸거나 표지석을 세운 게 전부아니었나. 적어도 내가 봐왔던 한국의 학교들은 그랬던 듯.

문득 앞에서부터 오는 버스를 보고 놀랐다. 운전수가 서서 운전하고 있네, 하면서. 잊고 있었는데, 일본은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다. 그리고 다자이후에 온 관광버스들은 모두 저런 분홍색 옷의 안내원이랄까, 조수랄까 앞좌석에

타고 계셨던 거 같다.

돌아가는 길. 개찰구는 뭐, 한국이랑 별반 차이는 없다.

티켓을 사서 처음 들어가면서 넣으면 저렇게 구멍이 뚫려서 나오고, 나오면서 넣으면 그냥 먹어버린다.

텐진행 급행열차. 밝은 하늘색 차체가 둥글둥글한 모양새가 귀엽다.

굳이 일본어를 몰라도 영어 한글이 병기되어 있어 누구한테 물어볼 필요도 없다. 편하면서도 살짝 섭섭한 게,

여행을 가서 모르는 사람 붙잡고 말걸고 길묻고 친해지고, 그런 것들도 재미가 쏠쏠한데 자꾸 표지판에 의존하게

된단 말이다.

다자이후에서 텐진까지. 여긴 거의 일본어밖에 안 쓰였다. 이래서야 까막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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