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을 생각한다 - 10점
김용철 지음/사회평론
이 책은, 이건희와 (아마도) 이재용을 위해 온갖 범법행위를 함께 했던 한 '범죄자'의 최후고백이다. 자신이

이건희를 위해 검찰에, 그리고 삼성 계열사에 범죄를 저질렀다며 벌을 달게 받겠다, 고 양심선언을 했던

한 사람을 그저 미친 사람, 성격 더러운 사람, 심지어는 아예 없는 사람 취급하는 세상에 크게 외치려는 책이다.

"결국 '정사'에는 나에 대한 비난만 남게 됐다. '삼성 비리는 이제 '야사'에만 기록되겠구나' 싶었다."라는

자괴감, 혹은 (중립적인 단어로는) 위기감이랄까. 책을 읽어내리다 보면 정말 본인이 하고 싶던 이야기를

하나도 빠짐없이 활자화하려는 듯한 기분이 느껴진다. 범죄와 관련된 무수한 실명이 등장하고, 자신의 의도와

입장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추가되며, 뭐랄까, 김용철의 삶 중 삼성과 관련된 부분은 남김없이 들어간 것 같다.


그의 양심선언은 잠깐이나마, 통제되지 않은 힘을 휘두르던 우리나라 일등 '경제권력'이 제 입맛에 맞게 요리한

시장경제 판을 정돈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불렀었다. 상식적으로, 지시를 받고 범죄를 직접 저지른

사람이 자신이 저지른 범죄의 내용과 대상에 대해 구체적인 자백을 한 거였으니까. 굳이 "뇌물 수수 범죄에서

'뇌물을 준 사람의 자백'은 직접 증거"라는 변호사의 권위를 빌은 말이 아니어도 말이다. 그런데 그는, 김용철

전 삼성 구조본 법무팀장은 재판에서 졌다. '천문학적 규모의 비자금 조성과 국가 권력 매수를 위한 조직적인

불법 로비'가 죄가 안 되서가 아니다. 법이 불비해서도, 법이 집행된 전례가 없어서도 아니다.

(*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에 따르면 연간 세금 포탈 규모가 10억 원이 넘으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게 된다. 검찰과 법원의 거듭된 봐주기 편법에도 불구하고 이건희는 무려 465억원의 세금 포탈 혐의가
인정되었고, 특검은 삼성 비자금 중 약 4조 5000억을 발견해서 이건희에 돌려줬다.)


상대가 삼성이어서 그랬다, 라고 이야기해도 괜찮지 않을까. 여러 재벌기업 중 하나였다가 김대중과 노무현을

지나며 압도적인 대표기업으로 변신한 채 국가 아젠다를 결정하고, '참여정부'라는 이름도 지어줄 정도의

영향력을 가진 기업이니 말이다. 삼성을 위한 정책을 펴던 공직자가 삼성 사장으로, 삼성을 위한 판결을

내리던 법관이 삼성 변호사로 가는 그런 세상이란 건, 사실 김용철 변호사가 책에서 이야기하기 전부터 익히
 
들어서 살짝 진부하기까지 한 거다. 사람들도 그럴 거다. 그래서, 금세 포인트는 옮겨간다. "왜 삼성만 갖고

야단인데? 언제 우리사회가 법대로 갔어? 일등에 대한 못난 질투가 넘 심하잖아? 삼성이 망하길 바래?"


하지만 김용철 변호사도, 나도,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포인트는 이거다. 삼성이 싫은 게 아니다. 삼성이

글로벌 기업으로 계속 성장하며, 한국 경제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다만 잊지 말기를 바라건대, 한국의 이익과

삼성의 이익, 그리고 이건희의 이익은 대개 일치하지 않으며, 지금은 이건희의 이익을 앞세워 삼성 계열사

임직원과 주주, 국가 경제까지 좀먹기에 이르렀다는 사실이다. 이건희 개인과 일족의 이익을 '보위하기 위해'

국가 조직과 법질서를 농단하고 있으니, 앞엣말은 이렇게 수정되어야 맞겠다. 재판에 진 이유, 상대가 합당한

죄과를 받지 않은 이유는, 상대가 다름아닌 삼성을 조작하며 제뱃속을 채우는 '이건희 일족'이어서 그랬다고.


이건희가 삼성 주식의 몇 프로를 갖고 전체를 휘두르고 있는지, 이재용으로의 승계를 위해 주주 이익을 얼마나

훼손하고 배임행위를 저질렀는지, 금산분리법 폐지나 복수노조 설립금지를 위한 로비 자금을 위해 어떤 불법을

저질렀는지, 검찰과 법원, 국세청과 언론 따위 사회곳곳에 검은 돈을 얼마나 뿌려댔는지 등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고 쉽게 알아 볼 수 있음에도, 아무도 책임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게 현실이다. 그런 '괴물'이 탄생하게 된

데에는 노무현과 김대중의 역할이 컸다. 그들을 두고 좌빨이니 좌익이니 말이 많았지만 역설적이게도 지극히

친기업적인(혹은 친삼성적인) 정책으로 일관했던 거다. 삼성과 국가 사이에 놓인 부등호의 입은 그들의 십년새

확연히 삼성 쪽으로 벌어져 버린 것 같다.


사실 삼성 이야기를 하다보면 굉장한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뻔한 이야기를 대체 얼마동안 해야 제대로 '법과

원칙'이 설 지, 법은 정말 만명에게만 평등한 건지 따위 염세적인 생각이 드는 것이 하나의 이유지만, 반대로

어디까지를 '상식'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지, 또 어디서부터 '원칙'을 들이대야 세상 물정 모르는 이상주의자

라느니 따위의 비아냥을 피할 수 있을지 말이다. 이 책 역시, 어쩌면 "범죄자를 옹호해야 한다는 게 맘에 들지

않아 변호사가 싫다"고 할 만큼 까칠하고 원칙적인 한 성마르고 결벽증 초기단계쯤의 조직부적응자가 자기

성미대로 써갈긴 그런 책이란 비난을 받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내가 몇몇 구절, 그의 진심에 가닿았다고

생각한 부분이 있어서 소개해본다.


"다른 재벌이 삼성보다 더 깨끗한지 아닌지에 대해 나는 잘 모른다. 나는 단지 삼성 비리를 목격했으므로 이를 고발했을 뿐이다."

"한국 사회의 부패는 뿌리가 깊고 넓다. 그래서 어느 한 사람이 전체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사법기관이 다른 영역보다 유난히 더 썩은 게 아님에도, 내가 사법기관의 부패를 유독 강하게 비판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수사와 사법 처리를 담당하는 곳이 썩어버리면, 다른 영역에서 일어난 자정 노력이 허사가 될 수 있다."

"권력층이 부패한 사회는 힘센 자가 아무런 견제없이 횡포를 부리는 무법천지일 뿐, 우파의 이상도 좌파의 이상도 될 수 없다...그래서 나는 모든 시민이 부패에 맞서는 장면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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