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여행 갔을 때 만났던 레스토랑 糖水, 알고 보니 홍콩에 본점을 둔 홍콩 브랜드의 레스토랑이었다.

 

대만과 일본에도 해외지점을 두었을 정도로 잘 나가는 레스토랑이라는데 전반적인 음식들도 괜찮지만

 

레스토랑 이름 그대로 달달한 디저트류가 특징적인 듯. 특히나 하트 모양 망고 푸딩이 탱글거리는 모습이란.

 

Noodles with Wontons in Soup. (45HK$)

 

Wontons with Spring Onions (66HK$)

 

Fried Flat Noodles with Beef in Satay Sauce (75HK$)

 

 

Steamed Egg Custard Buns (25HK$)

 

Steamed Prawns and Pork Dumplings (35HK$)

 

Chilled Mango Pudding (25HK$)

 

 

 

 

 

 

 

 

대만에서도 8,9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복고풍 영화가 유행인 걸까. '점프 아쉰'은 그 시대를 배경으로 한 대만영화다.

 

그렇다고 대놓고 그 시절을 추억하려거나 이쁘게 분칠하려는 투는 아니다. 그 시절 태어나서 자라나 방황하고

 

사랑하고 턱없이 진지하다가 이내 웃음이 빵 터지는 그런 청춘이 있었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 감독의 친형이 살았던

 

삶을 재구성한 실화라고 하니까 더욱 단단하고 거품없는 현실감이 느껴지는 거다.

 

 

영화는 제법 길다. 러닝타임이 두시간이 넘어가니 꽤나 긴 셈이다. 내용이 뭔지도 모르고 그저 '체조'를 소재로 한

 

영화라고만 알고 시사회를 갔는데, 영화 속에 체조도 있고 빗나간 청춘도 있고 남자들의 우정도 있었으며 부모와의

 

화해라거나 살짝 시큰한 사랑 이야기까지, 말하자면 일종의 갈라쇼 같은 영화이기도 했던 거다. '빌리 엘리어트'와

 

'비트'와 '친구' 같은 영화들이 각각 하나에 담았던 이야기가 노련하게 하나의 인물에, 하나의 이야기에 꿰여든다.

 

 

그런 영화는 허를 찌르는 반전이나 감동을 극대화하기 위한 영광의 순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대만 8,90년대의

 

풍경이나 정서가 살짝 오글거릴지언정 줄곧 따뜻한 시선으로 아쉰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가며 다음번 그의 스텝은

 

어디로 얼마나 '점프'하는 게 될지 바라보게 되는 거다. 예측했던 곳에 예측했던 멋진 동작으로 착지할 걸 기대하고,

 

실제로 그가 다소간의 우회나 방황을 거쳐 예측했던 곳으로 무사히, 멋지게 귀환하는 걸 보면 충분하니까.

 

 

자칫 산만하거나 늘어질 수도 있었을 곡절많은 스토리를 탄탄하게 한 호흡으로 꿰어낼 수 있었던 건, 영리하게도

 

감독이 남자의 감정을 적절한 선에서 끊어준 덕이 크지 않을까 싶다. 어머니와의 화해라거나 호출 교환원 그녀와의

 

애틋한 사랑, 비장미와 남성미가 물씬했던 불량 청소년들의 싸움과 비극, 심지어 그가 세계대회에서 멋지게 뜀틀을

 

딛고 몸을 휘돌아 날아가는 마지막 장면에서조차 영화는 먼저 눈물을 보이거나 유도하지 않는다.

 

 

그건, 표현의 진부함을 감수하고라도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는 영화, '재미와 감동'을 모두 갖춘 이 영화가 남긴

 

명대사 하나로 충분히 수렴될 것 같다. "만약 울고 싶다면 물구나무서기를 해. 그럼 더이상 눈물이 흐르지 않을 거야."

 

그 대사를 발판으로 아쉰은 하늘로 날아오를 듯 멋진 도약을 성공시켰고, 감독은 이 영화를 여느 숱한 청춘영화와는

 

다른 차원으로 차별화하는데 성공한 거 아닐까.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누군가를 그리워하기 위해?

삶을 유지하기 위해?

오래 살기 위해?

또는 떠나기 위해?

Let's ride motorcycles!

 

평균연령 81

 

한명은 청각장애

 

한명은 암

 

세명은 심장병


모두가 퇴행성 관절염이 있다.


6달의 준비


13일간의 타이완 여행


1139km


북쪽에서 남쪽으로


저녁에서 낮까지


한가지 간단한 이유로


Dream


for ordinary people with extradinary dreams


 

중국대륙의 보물들 중에서도 귀중하다는 것들만 선별해 무사히 타이완 섬까지 수송해냈다는

그 군사 작전 자체의 이야기만으로도 경이로움을 들게 하는 곳, 타이완의 고궁박물관이다.

부패하고 무능력하던 장개츠의 국민군이 패배를 거듭하며 결국 대륙 밖으로 축출되는 와중에도

그때까지 발굴된 중국 대륙의 국보급 문화재들을 모으고 선별하고 안전하게 포장해서 바다건너

타이완섬까지 수송하는 과정이라는 건, 어쩌면 그 자체만으로도 또 하나의 전쟁이었을 거다.


그 곳을 둘러보다가 문득 '자연이 부르는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다소 당황하지 않을까 싶었다.

남자화장실과 여자화장실이 한 곳에 모여 있지 않고 이쪽 끝과 저쪽 끝에 떨어져 있어서, 중국의

귀중한 유물들을 구경하다가 타이밍이라도 놓칠라 치면 저런 일이 종종 생길 게다. 남자가

다짜고짜 덥썩, 에라 모르겠다 하며 여자화장실로 뛰어드는. 


*  타이완 고궁박물관에서 황제의 다과를 맛보다.

중례츠, 한자 그대로 읽으면 충렬사. 타이완의 '호국영령'들을 모셔둔 일종의 사당이랄까, 아님

현대적인 단어로 고치자면 '현충원' 정도 되려나.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고 선전되는

애국심의 화신들을 모셔두고 살아있는 사람들과 후세의 귀감으로 활용하기 위한 그 공간에서

정작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한 기본적이고 인간적인 공간은 꽤나 홀대받고 있었다는 느낌.


* 파란하늘, 하얗게 작렬하는 태양 아래 붉은 피 흥건한 중례츠(忠烈祠),




* Mother nature is calling me, 직역하면 '자연이 나를 부르고 있어' 정도가 되겠지만 보통

이 문장은 허물없는 사이에서 화장실 다녀오겠다는 의미로 새겨지게 됩니다. 여행을 다니며

결코 빠질 수 없는 '답사지' 중 하나가 그곳의 화장실이란 점에서, 또 그곳의 문화와 분위기를

화장실 표시에까지 녹여내는 곳들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국내외의 특징적인 화장실 사진을

이 폴더 'Number one or number two?'에 모아보고자 합니다. 그 표현 역시 우리말로 치자면

'큰 거야 아님 작은 거야?' 정도겠네요^^





길을 달리다 문득 내다 본 하늘. 사방으로 종횡하는 고가도로와 때마침 머리 위를 지나려는 육교, 그 위에서

흰색 솜뭉치들을 흩뿌려놓은 하늘.

우. 브리즈센터 앞에서 섹시한 포즈를 잡은 그녀의 입에 말풍선을 달아준다면 딴 한 단어. 우♡

단수이로 달리던 길, 어느 다닥다닥한 건물이 비탈을 이루고 있었다.

유난히 새파란 하늘, 오토바이들이 길 앞으로 분리된 좁은 도로 양쪽을 틀어쥔 건물들의 압박.

기차가 지나가는 어느 길목. 어렸을 땐 늘 집앞에 기차가 지나가면 좋겠다 싶었는데, 요새도 변함없는 생각.

어린이 보호구역...이라 하던가. 나라마다 다른 특징을 좀더 선명하게 잡았어야 했는데 차의 속도를 이기지 못했다.

보통우편은 초록색, 급행은 빨간 색. 왜 난 이걸 보고 양념반후라이드반이 생각나는 걸까.

주펀의 메인 골목 들어가기 전, 오랜 건물들의 1층은 전부 사설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었다. 2층은 사람이 살고

1층은 외지인들의 차에 양보하는 그들의 미덕.

주펀에서 내다봤던 해안선. 삼면이 바다로, 그리고 그 바다는 또 철조망으로 겹겹이 둘러쳐진 우리나란 참 특이한 곳.

구비구비 골목길을 버혀내어 임오신 날 밤에 펴내오리라. 주펀의 홍등가 골목길을 숨겨둔 산비탈 마을.

타이페이의 도로를 달렸다. 어디든 도시는 공사중, 어쩌면 이 거대한 무생명의 존속을 위해 쉼없는 공사는

필연적이다. 늘 어딘가 파헤쳐지고, 무너지고 새로 쌓고.

스쿠터의 빨간 브레이크등을 멍청히 보고 있으면, 그리고 누군가가 지극히 무성의하게나마 '레드썬' 비스무레하게

우물거려주기만 하면, 금세라도 최면에 걸려버릴 거 같다.

어둠 속에 둥실 떠올라 낮과는 다른 운치를 녹여내는 한자어 빼곡한 간판들.

베이먼. 여기도 저렇게 관리 안하다가 싸그리 불타 버리면 어떡할라고.

룽산쓰 옆의 화시제야시장을 갔다가 지하철 역사 옆 광장의 벤치가 홈리스들에 점령당한 모습을 보고, 카메라가

반사적으로 올라갔다가 이내 뜨끔했다. 겸연쩍은 김에 그들 위에 가로놓인 기둥에 그려진 그림에 급호기심.

끝내 풀어내지 못한 마지막 궁금증은, 밤이면 밤마다 이토록 화려하게 거리를 불밝히는 저 폭죽같은 모양의

네온사인들, 그들이 광고하는 '빈랑'이 뭘까 하는. 뭘까. 뭐였을까. 무지무지 궁금했는데 끝내 맛도 못 보고

제대로 풀어보지도 못했던 타이완의 수수께끼. "빈랑(賓郞)"이었던가, 그게 뭘까요.







타이페이 시내의 남서쪽, 화시제야시장이 바로 인접해 있는 시끄럽고 번잡한 거리에 범상찮은 누각을 과시하는

절이 하나 있다. 서울로 비기자면, 삼성동 봉은사..라기보다는 도심의 조계종이나 실상사쯤으로 비기는 게

맞을래나. 좀더 번잡하고 오래된 건물들 사이에 콕 박혀 있는 그런 느낌.

타이페이 시내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절, 룽산쓰(龍山寺), 용산사다. 근 삼백년 가까이 된 절인데 벌써 몇차례

천재지변이니 전란에 시달려 온 지라 지금의 건물은 2차 세계대전 후에 재건된 거라고 한다. 근데 이 때깔이나

분위기는 거의 이 도시가 생겨나기 이전부터 버티고 있었던 듯한 터줏대감의 포스.

밖에서는 좀 한적하고 외따로 툭 동떨어진 느낌의 사찰이었는데, 안에 들어가니까 전혀 그렇지 않다. 사람이

바글바글, 단위면적당 인구밀도는 룽산쓰 주변에 비해 꽤나 높겠다.

밑에도 온통 공양물들로 가득하다. 큰 불이라도 난 양 사방에서 태우는 향에서 퍼진 연기는 가실 줄을 모르고,

사방에서 무규칙하게 내부를 돌아다니는 사람 사이에서 순간 길을 잃은 느낌마저 들었다.

사람들은 공양물을 바치고 향을 흔들며 손을 모았다. 조그마한 꼬맹이든, 머리하얀 할머니든, 자력으로 안 되는

일이 세상에는 많은 거다. 어떨 때는 신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이 부러울 때가 있긴 하지만, 아직은.

펄펄 피어오르는 향로 속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푹푹 찌는 지옥에 와 있는 느낌도 살풋.

본당에 안치된 영험하다는 관음보살 외에도 모시고 있는 신들이 많다. 가이드북에 따르자면, 보현보살, 마조,

관제, 삼신할머니 같은 신불들. 제각기의 목적에 맞는 신을 찾아 '성적 올려달라고', '사랑을 이뤄달라고', '돈벌게

해달라고', 그런 것 쯤일까. 문득 든 생각인데, 요새는 '오래 살게 해주세요'는 별로 신에게 빌 꺼리가 못 되는 거

같다. 보통 드라마보면 의사 소매춤 잡고 비는 거 같던데.

한 바퀴 사원을 돌아보니 온몸이 온통 땀투성이, 게다가 살짝 훈제된 햄처럼 향내랄까 탄내가 시즈닝되어버렸다.

아쉬웠던 점은, 뭐 워낙 도심 복판에 있는 절이라 그렇겠지만 그렇다 해도 너무 쉴 만한 공간이 없다는 점. 사실

절이 쉬는 데야 아니라지만, 그래도 한국의 절들처럼 여유로운 부지를 가지고 숨통이 트이는 여지가 없어서.

절 자체의 생김도 그렇다. 단정한 빛깔의 기둥이 열짓고 있는 한국의 담백한 절들과는 영 딴판으로 기둥 하나씩

붙잡고 봉춤 중인 우리의 용님. 화려하고 이뿌지만 폭염 속에서 잠시 앉아 땀 식힐 곳이 넘 아쉬웠다는.

돌아나오는 길, 계속 뒤를 돌아보며 사진을 찍게 되는 건 뭔가 계속 아쉬움이 남고 좀더 돌아보고 싶은

마음때문인 거다. 좀만 더 햇살이 직사하지 않는 시간대에만 왔어도 좀더 멋지게 남길 수 있었을 텐데,

좀만 더 기다려 해가 기울면 조금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을 거 같은데. 어쩌면 정말 어딘가의 모습을

온전히 발견하고 캐내려면, 매 계절, 그리고 하루의 아침점심저녁쯤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봐줄 여유가

있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게 아마 확실할 거다.

뭔가 복잡하고 정교해 보이는 저 처마의 생김생김은, 손을 뻗어 한번 살살 쓸어보고 싶게 만든다. 나무를 깍아

만들 걸까 아니면 뭔가 틀에 찍어낸 걸까.

룽산쓰에서 벗어나 조금 걷다가 길 건너편에서 마주친 스쿠터 한 대, 갈빛 옷을 저며입고 계신 스님 한분이

운전 중이셨다. 저 분은 룽산쓰의 봄여름가을겨울, 아침점심저녁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을 다 알고 있겠지.

살짝 부러워졌다. 사람들이 이토록 꽉꽉 미어지는 곳이 정작 숨기고 있는 표정을 알고 있을 스쿠터 스님.




갈색빛 고운결 진흙으로 빚어낸 것 같은 다기세트를 앞에 두고. 찻잔과 주전자, 퇴수잔까지 빈틈없이 갖춰졌다.
 
모래무지 속에 파묻혀 있던 램프와 삼발이, 묵직한 뚜껑을 열어 성냥불을 당겨 그은 후에 주전자를 얹는다.

도예 수업을 듣고 나서부터 주전자를 보면 재질이 뭐던간에 저걸 흙으로 빚는 상상을 하곤 한다. 날렵한 주둥이를

어떻게 만들어 붙이고, 둥그스름한 저 몸통은 어떻게 매만지고.

찻잎이 가득 담겨 나왔다. 습기찬 날씨에도 고슬고슬하니 잘 말려진 찻잎에서 풍기는 차분한 다향.,

불이 당겨지고 물이 끓으니 열기가 사방으로 퍼진다. 뜨거운 날씨에 차를 얼마나 마시려나 싶었는데 웬걸, 은근히

잘 들어간다. 더운 날씨에 더운 음료지만, 땀도 송글송글 솟긴 하지만, 마치 차가운 음료수 피티병 바깥에

송글송글 차가운 물방울이 응결된 것같은 그런 느낌의 땀이다.

찻집을 나오기 전, 입구에서 쪼르르 정렬해 있는 주전자들이 귀여워서 한 방.


@ 타이완, 주펀.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의 촬영지로 유명한 단수이, 여기까지 와서 그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학교를 찾아보지

않을 수는 없는 일. 진리(眞理)대학 내부의 옥스포드 컬리지로 향했을 때 마주쳤던, 눈부신 칠월의 햇살 속에서

뭔가를 열심히 찍고 있던 한 사람. 인상적이었다.

단수이는 아무래도 타이완의 수도 타이페이에 비길 수는 없이 작고 조용한 도시, 거리를 다니는 버스에서도

나름의 운치와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듯 했다.

진리대학에 향하는 길, 말할 수 없는 비밀의 그녀, 이십년 전의 그녀가 기다리고 있을 거 같은 조바심에 서둘러

오르막을 오르려니 땀이 삐질삐질. 여기도 덥구나, 당연하지만 절절했던 한탄.

원래 영화 촬영지라고 해서 넘 기대를 많이 하고 가면 으레 실망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냥, 애초부터 영화 속

장면을 그려본다거나 그녀들이 뛰어나와 반긴다거나 그런 망상은 없이, 타이완의 대학을 하나 구경한다는

기분으로 돌아보기로 했다. 꽤나 고풍스럽고 오래 되어 보이는 건물들.

타이완에서 최초로 럭비를 시작한 학교임을 알리는 기념비. 왠지 머릿속에서 계속 영화를 빨리감고 되감고 하며

이 곳이 어디에서 봤었는지 스캐닝하는 걸 멈출 수가 없다.

아, 여긴 기억난다! 싶어 가슴이 두근거렸던 곳. 여주인공이 졸업사진을 찍었던 곳이다. 건물 내부는 다

잠겨 있어서 들어갈 수는 없었지만, 이렇게 조그마한 공간 하나를 영화 속 풍경과 맞춰본 것만으로도

당장 영화 속 스토리나 인물들이 훨씬 실감나게 다가왔다.

꼭 영화가 아니어도, 참 이쁜 학교다. 잘 가꿔지기도 했고, 건물 자체도 단조로운 성냥갑이 아니라 이리저리

삐죽빼죽한 실루엣이 뚜렷하다.

담색 학교 건물벽을 스크린삼아 펼쳐지던 야자수와 바람의 희롱 장면. 둘이 껴안고 뒹굴고 엎어지고, 아주

물고 뜯고 장난이 아니었던 격한 정사. 아무래도 해안가에 가까운지라 해풍이 세게 불어대는 거 같다.

무슨 요새나 탑처럼 높이 솟은 저 꼭대기 층에는 뭐가 있을까. 이런 학교에서 공부하면 참 좋겠다, 란 생각도

들었다. 우리학교 자하연에서 굼실굼실 기어나오던 자라들, 거북이들이나 여기 사는 거북이는 비슷하게 생겼구나.

방학중인지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카메라 장비를 둘러메고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으러 온 듯한 사람들이

꽤나 보였다. 그럴 만도 하겠다, 싶도록 구석구석 운치있는 풍경들이 가득하던 커다란 캠퍼스.

진리대학만 있는 게 아니라 다른 중학교, 고등학교, 심지어 유치원까지 옹기종기 모여있어서 조그마한 '학교마을'을

이루고 있는 거 같이 느껴졌다. 학교와 학교를 잇는 길을 따라 담을 넘나드는 담쟁이덩굴.

이미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무슨 학교인지 식별하는 건 포기한지 오래. 그냥 발길 닫는대로 아무 곳으로나

들어가고 돌아보고 있었다. 그러다 발견한 그럴 듯한 풍경. 얼핏 음악당이라는 거 같던데, 단정한 외관이 맘에 든다.

마주보고 선 건물은 '옥스포드 컬리지', 타이완 최초로 세워진 서양식 학교라던가. 문이 잠겨 있어 그냥 한바퀴

외관만 둘러볼 수 밖에, 1880년에 세워진 건물이라는데 굉장히 따뜻한 느낌의 건물이다. 붉은 벽돌때문인 거

같기도 하고, 단층짜리 건물에 자연스레 놓인 기왓장들이 맘을 편하게 해주는지도.

건물 두채 사이에 끼어 있는 연못에 비친 음악당의 그림자.

그 옆에서 발견한 정말 신기한 꽃. 노란 꽃잎 사이에서 하얀색 꽃이 다시 피어나 있는 거다. 아마도 저 노란 부위는

꽃잎이 아니라 커다랗게 발달한 꽃받침일 테고 흰 부분이 꽃잎이라고 하겠지만, 원래 그런 거다. 이쁘면 다

'꽃'이라고 불러주고 싶은 게 사람 심리.

내려오던 길, 바닥에서 발견한 귀엽달까 유치한 그림이 그려진 타일들, 아마도 근처 유치원과 초등학교 학생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겠지만 단호한 가위가 살짝 묘하게 생긴 담배의 밑둥아리를 철컥 자르고 있었다.

환호작약하는 가족, 그리고 머리 위에서 환호작약하는 태양의 환호성.



타이페이에 가서 제일 먼저 맛 봤던 건 '귤주스에 한없이 가까운 그 무엇'이었다. 타이완의 음식들이 중국 본토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 비해서도 깔끔하다고 생각한 이유 중 하나가 이런 식으로 즉석에서 갈거나 짜서 만드는

쥬스류들도 모두 래핑까지 기계로 해서 준다는 점.

뭔가 우리나라 순대볶음이랑 비슷한 거 싶으면서도 간장 소스에 조리된 짭조름한 맛인데다가, 저 위에 있는

온갖것들 중에서 먹고 싶은 것들을 직접 골라 담아 주문하는 방식이라 재미있다. 돼지귀, 내장, 어묵, 두부,

라면 사리(같은 것) 따위 온갖것들을 땡기는 대로 담고 보니 이렇게 수북한 요리가 나오고 말았다. 맥주 한잔이

딱 생각나게 만들던 그런 술안주거리.

여기는 궁관야시장. 타이페이에 스린야시장이니 궁관야시장이니 화시제야시장이니, 여러 곳이 있고 돌아다녀

봤지만, 그걸 하나하나 모조리 찍고 돌아보느니 차라리 한두군데 뺑뺑이 돌아다니는 게 훨씬 재밌지 싶다.

야시장이란 게, 특별하게 꼭 봐야 할 뭔가가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슬슬 돌아다니면서 군것질도 하고 아이쇼핑도

하고 그렇게 현지 사람들하고 어깨 부딪히고 사과도 하고 한국말로 욕도 한두마디 해주고, 그런 데니까.

화시제 야시장에서 발견한 개구리알 파는 가게, 아마 다른 야시장에도 있고 여기저기서 쉽게 눈에 띌 거다.

초록색으로 좀 끔찍하게 그려진 개구리가 딱 버티고 선 간판, 게다가 Frog Egg란 심상찮은 단어도 떡하니

적혀 있고 하여 호기심이 바싹 땡겨져 버렸지만, 사실은 개구리알이 아닌 타피오카. 버블티에 들어가는

그런 쫀득한 동글백이 알들이 가득한 음료수를 파는 가게다.

엄마표 돼지피 양갱, 이랄까. 선지처럼 굳혀진 돼지핏덩이를 아이스크림바 모양으로 만들어서는 저렇게

고물을 꾹꾹 눌러서 주는 거다. 선지처럼 비릿하니 피비린내가 조금 나기도 하면서 고소한 고물맛이 더해져서

꽤나 괜찮던 간식거리. 10NTS면 35를 곱해서..음.......아, 350원. 왜 이리 싸지...불량식품인 건가. 돼지피가

아니라 고무고무를 먹은 건 아니겠지.

망고, 수박, 메론이니 온갖 과일도 팔고 옥수수같은 것들도 팔지만, 그런 낯익은 것들 말고 이렇게 신기한

모양의 '콩'도 판다. 콩이다. 콩을 삶아서 까먹으라고 파는 건데, 밤 삶은 거랑 좀 맛이 비슷하다.

물소 뿔같기도 하고, 악마의 뿔같기도 하고. 저게 대체 어떤 모양으로 자라나는 걸지 감히 상상도 안 갈 정도로

묘한 모양새. 어디가 위쪽으로 매달려있던 걸까.

장소를 바꿔서, 여기는 단수이의 라오제(老街). 타이페이 내의 야시장들과는 약간 다른 분위기를 갖고 있는 게

아무래도 해변가 관광지를 따라 길게 발달한 탓인 듯. 조금은 더 놀거리에 집중되어 있고, 타이페이 야시장과는

군것질 종류도 좀 다르다. 거리 자체가 좀더 깔끔하고 시원시원 넓어보이는 느낌도 있고.

매실주스 일 잔으로 시원하게 더위를 식히며 걷기 시작. 보통 저렇게 얼음이 가득 들어있는 길거리 음식은

외국 나가서 위험하니 먹지 말라고 하지만, 내 경험상으론 타이완은 괜춘한 듯. 온갖거를 다 줏어먹었는데도

5일동안 배탈 한번 없었다.

뭔가 작고 동글동글한 경단을 만드나 했다. 부지런히 메추리알을 까서 후라이하듯 불판 위 구멍에 채워넣는

아주머니의 재빠른 손동작. 메추리알 후라이는 처음 본 듯. 한국에서야 늘 삶아진 거만 까먹었으니.

이렇게 꼬치로 꿰어져서는 귀얄로 소스 살짝 묻히고 솔솔 뿌려주면 맛있는 메추리알꼬치 완성.

단수이가 바다에 연해 있어서 그런가, 해산물 간식거리가 꽤 많이 보였다. 물론 오징어를 바로 잡아올려서

이렇게 오징어구이를 하겠다고 석쇠 위에 올리는 건 아니겠지만.

썩은 두부..라고 해야 하나. 약간 퀴퀴하고 화장실 큰 거 냄새가 배어나오던 두부 조림이랄까. 두부를 약간

발효시켜서 만드는 거 같긴 한데, 마치 홍어집이 가까울수록 코를 찌르는 냄새가 나듯 두부 가까이로 갈수록

그 냄새가 진해졌다.

핫도그같기도 하고 소세지같기도 한 저건, 사실은 돼지 내장껍데기 안에 밥을 가득 채운 채 기름에 튀겨내는

일종의 순대와 오히려 가깝다고 해야 할 거 같다. 쫀득하고 고소하게 기름에 튀겨진 밥이랑 껍데기가 맛나다는.

어설픈 피카츄가 어색한 웃음을 날리며 눈찡긋 중인 이 기계는 일종의 빠찡꼬. 야시장마다 한 켠에 잔뜩 이런

기계를 갖다두고 있는 거 같다. 한번 해봤는데 의외로 잘 풀리는 바람에 쏟아져내리는 구슮들에 파묻혀

행복하게 죽을 뻔 했던. 실제 현금으로 환금은 안 되는 거 같다. 아쉬워라.

두리안을 굉장굉장굉장히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 가게를 발견하고 환호성을 지를 수 밖에 없었다. 무려.....

두리안 튀김!!! 세가지 종류가 있었는데, 기본적으로 두리안 덩어리를 튀김옷을 입혀서 튀긴다는 건 같은 듯.

기름지고 느끼한 과일 두리안은 튀겨도 여전히 과일의 황제다운 맛이 났지만, 다만 향이 많이 죽어있었다.

그래서 두리안의 향이나 식감 때문에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조금은 더 먹기 쉽고 맛들이기 좋을 듯하다.

휴양지 근처 떠들썩한 시장통에서 빠질 수 없는 건 역시 이런 풍선 쏘기 게임. 5번 라인에 있던 10개 풍선이 전부

터져 나간 거 보이는지. 그날따라 굉장히 잘 맞았다. '빙고'를 외친 셈이지만 별로 큰 선물은 없어서 아쉬웠..

대체 뭔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음료들, 선초..신선초인가. 뭔가가 젤리처럼 잔 안에 가득 차 있었고 맛이나 향 역시

약간 한약 냄새 비슷하게 풍겼는데. 뭔지도 모르지만 그냥 신기해 보이는 건 전부 한번씩 시도해본 거 같다.

배불러서 뒤뚱대며 걸어다녀야 했을 정도.

뜬금없이 불쑥 나타난 사당. 사당 양 옆에는 뺴곡하게 가게가 들어차 있고, 그냥 시장통 한복판에 있는 거다.

으레 빠지지 않는 적당히 귀여운 수준의 섹스샵. 귀여운 것들이 넘 많았지만, 저 '나 바빠요'하는 표지는

굉장히 맘에 들어서 사진으로 찍어놨다. 내 방앞에다 저런 거 내걸면 어무니가 시껍하실 듯 하여 사지는 않고.

손대지 말라는 문구가 걸려있는 진열대, 굳이 그런 문구 없어도 손댈 엄두를 못 내게 만드는 징그런 것들.

사람의 부식된 모가지가 거꾸로 매달려 있고, 뚝뚝 끊겨나간 팔목이 레알 돋게 내걸려있으니.

돼지고기 튀김, 일종의 돈까스랑 같은데 굉장히 고소하고 고기도 두툼하게 고이 들어있어서, 이미 맛본 수많은

간식거리들과 함께 저녁 한끼 식사의 화룡점정. '지빠이'라고 닭고기로 만든 것도 있는데 마찬가지로 굉장히

고소하고 맛있었다.

신기하게 생긴 과일. 대체 이름이 뭔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한국어로 이 과일의 이름이 있을 거 같지도 않다.

좀처럼 본 적이 없는 과일이니 뭐, 약간 구아바랑 비슷하면서도 식감은 또 엄청 아삭아삭하고. 군것질거리를

잔뜩 맛보고 마지막에 디저트 삼아 저 이름모를 과일을 아작아작.





어둠에 짙게 깔린 주펀의 길거리, 이번엔 내리막을 따라 내려오던 그 길에서 문득 고양이 한마리를 만났다.

길에 면한 풀숲 사이에서 시원해 보이는 돌판을 돌침대 삼아, 역시나 쿨쿨 자고 있던 녀석.

고지대에서 내려다본 타이완의 동북부 지역의 해안선. 타이완은 커다랗고 토실해서 먹음직스런 고구마처럼

생긴 섬인데, 이렇게 한쪽 끝 바다를 보았다.

낮에 햇살이 지글거리던 때 들렀던 사당에도 다시 들러보고. 뭔가 창백한 형광등 불빛이 중앙에서부터 강렬하게

쏟아져내려 주변의 불그죽죽한 빛깔을 전부 탈색시키는 느낌에 되려 섬뜩하기도 했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건물들, 방들에서 새어나오는 불빛들이 정겹다. 아마 이곳이 금광촌으로 이름을 날리던 때에도

일확천금의 꿈을 바라던 사람들이 저런 곳에서 하루를 마감하며 내일을 기대했겠지.

슬슬 인적이 끊겨가는 산비탈의 작은 마을, 관광객이나 여행자들이 떠난 자리에 가로등 불빛만 남았다.

더이상의 촬영은 무리, 완전 깜깜해져 버려서 불빛들이 너울대다 픽, 하고 꺼져버릴 듯 위태로운 지경이었다.






융캉제 가는 길, 햇살이 박살난 채 사방으로 흩뿌려진 도로 위를 스쿠터로 달리기엔 너무 엄혹하다. 여자들은

긴 옷을 따로 걸치거나 팔토시를 하거나, 잠바를 거꾸로 걸쳐 입거나 해서 노출을 최대한 피하려고 애쓰는 게

뻔히 보인다. 게다가 얼굴까지 꽁꽁 싸매고 달리곤 있지만, 아무래도 태양을 피하기는 힘든 듯.

융캉제라는 곳은, 가이드북을 아무리 보아도 대체 뭐하는 동네인지 딱히 감은 오지 않던 그런 곳이었다.

융캉제라는 묘하게 거칠고 리드미컬한 이름 역시 상상력을 자극할 뿐 그 공간에 대한 아무 힌트도 주지 않았고,

사실 가이드북엔 여기의 '빙관', 망고빙수만을 소개하고 있을 뿐이었고.
이렇게 허름하고 푸근한 건물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고, 온갖 음식점과 샵들이 거리를 채우고 있어서, 뭐랄까

대낮 버전의 야시장이랄까, 한국으로 치면 인사동쯤 되겠지 싶은 느낌.

골목을 거닐다 발견한 오편함, 아마도 빨간 게 급행, 파란 게 보통 우편을 위한 함인 건가. 그렇게 보기에는

양쪽 모두 구멍이 두 개씩 있어서, 뭔지 모르겠다. 어쨌든 색깔 빼고는 대체로 쌍둥이스러운 두 개의 우편함.

융캉제의 어느 골목에서 마주친 체게바라와 마오쩌둥의 초상, 이런 식의 제3세계 혁명지도자들을 기리는 샵은

동남아에서 많이 볼 수 있었는데 타이완 타이페이에서도 만날 줄이야. 근데 사실 이 샵에서 파는 물건들이 이

두 분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더라는.

그리고 또다른 혁명가, 오사마 빈 라덴의 초상도 다른쪽 귀퉁이에 붙어있었다. 미국의 골칫덩이, 세계의 불안정성과

폭력성을 자신의 폭력으로 폭로하는 그는, 테러리스트이자 혁명가라 불릴 만 하다.

그렇게 걷다보니 저 앞에 사람들이 바글바글, 굳이 가이드북을 꺼내들 필요도 없겠다. 노란 색깔로 칠해진 벽면,

우글거리는 사람, 여기가 그 유명하다는 '빙관(아이스 몬스터)'. 융캉제의 보석.ㅋㅋ

의자가 몇개 있긴 하지만, 편안히 앉아서 먹을 공간조차 없어서 대부분 입석이다. 높다란 테이블 위에 망고빙수를

올리고 허겁지겁 먹는 걸 보고, 대체 뭐길래 이렇게들 줄 서서 먹는 걸까 했는데 먹어보니 알겠다. 망고도 잔뜩

들어있고 얼음도 곱게 갈려있고, 놓칠 수 없는 맛이다.

이렇게 메뉴판에는 꽤나 여러가지가 나와있기는 한데, 대부분 같은 걸 시켜 먹는 거 같다. 130NTS짜리

망고밀키프리즈, 밑엣줄 가운데 망고 듬뿍 얹혀있는 그림. 타이밍이 되면 두 번쯤 먹고 싶었던.

빙관 앞에서 정신없이 먹어치우고 조금 걸으려다 보니 바로 옆에 이런 조그마한 놀이터 같은 공원이 있었다.

테이크아웃으로 시켜서 여기 앉아 먹을 걸 그랬단 생각이 살짝. 그치만 테이크 아웃으로 가져나오면 커다란

투명 플라스틱 컵안에 꾹꾹 담아주어서, 거기서 바로 먹을 때처럼 용기에 이쁘게 담겨나오진 않는단 단점이 있다.

딱 봐도 남국의 식생이다. 내리쬐는 태양 아래서 흐느적대며 바람에 너풀거리는 생기잃은 잎사귀들도 그렇고,

열기를 감당치 못했는지 으깨진 생두부처럼 찌글거리는 건물도 그렇고. 그 와중에 싱싱한 건 어린 아이의 웃음.

택시 타고 융캉제를 빠져나오는 길, 융캉제는 정말 뭐가 딱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동네. 내가 짧게 돌아다닌

탓이 크겠지만, 그냥 주택가가 모여 있는 동네에 음식점이나 옷가게 따위가 좀 쏠려있더라 하는 정도. 아,

딘타이펑 본점도 여기에 있다고 들었는데 굳이 찾아가 볼 생각은 안 들었다.


택시 기사 아저씨의 증명서라고나 할까, 택시 뒷좌석에 앉으면 바로 보이도록 조수석 뒤쪽으로 걸려있었다.

타이완의 택시기사 자격증은 요렇게 생겼구나, 해서 한방.

야자수가 미끈하게 자라난 바깥 풍경. 여전히 뱃속에선 망고가 얼음물에 담겨 출렁이고 있어서 마냥 좋던 오후.

그리고 슬쩍 가이드북에서 봤던 듯한, 으리으리해 보이는 처마와 붉은 기둥이 인상적이었던 호텔이 스쳐갔다.

그리고 어딘가쯤에서 발견한 사당. 은근 이런 사당이 도처에서 눈에 띄는 게, 부와 행복을 위해 유연하게 어디라도

기대고 빌 수 있는 중국인, 대만인의 실용성이랄까 유연성을 보여주는 거 같았다.





@ 타이완, 주펀.


후텁한 열기가 커다란 물풍선처럼 출렁대며 골목을 꽉 틀어막던 어느 순간, 길 옆의 찻집으로 피신했었다.

뽀송하고 시크한 에어컨 냉기 대신 적당히 눅눅하고 서늘한 지하실의 분위기가 풍기는 그곳에서 만난 선풍기.

워낙 오래 열심히 바람을 불어대느라 반짝거리는 페인트가 대부분 벗겨 날려간 거겠지만, 여전히 정숙하고

야무지게 돌아가는 선풍기 바람이 맘에 꼭 들었댔다.

꼭 생긴 것마냥 불어대는 바람, 굉장히 심플하고 순박한.








찻집에서 차 한잔 마시며 카메라도 정리하며 시간을 보내다 문득 시간을 보니 꽤나 훌쩍 지나있었다. 맹물은

두잔을 마시기도 힘든데, 차로 마시면 정말이지 쉼없이 물이 들어가는 거 같다. 더구나 이렇게 운치있는 다기와

주전자를 들썩이는 깨알같은 재미도 있다면야.

주펀의 본격적 매력 발산 타임.

치렁치렁 촉수를 내려뜨린 둥근 홍등에 일제히 불빛이 담겼고 음식점이니 기념품점의 알록달록한 색감과

어우러져 왠지 잔치같이 들뜬 분위기를 자아냈다.

군청색 단색으로 무신경하게 칠해버린 듯한 하늘이 평면처럼 주펀의 천장에 덮였고, 모노톤의 하늘이 불쑥

총천연색의 향연으로 반전되고 마는 주펀의 골목 풍경.

녹록치 않은 연륜을 과시하는 홍등 하나가 어, 왜 저기에 걸려있지, 할 정도로 뜬금없는 위치에 덜컥 걸려있었다.

아마도 이전 가게에서 저쯤에 달아놨던 사람들이 있었을 테고, 그 불빛을 보며 감상에 잠기고 흥이 북돋아지던

사람들이 오갔을 테고, 그렇게 생각하니 괜시리 토닥토닥해주고 싶다.

어둠이 살짝 깔리면서 사람들은 더욱 많아진 듯 싶다. 주말이 되면 여행객들 말고도 주펀 인근의 타이완 커플들이

잔뜩 몰려와서 불야성을 이룬다고 하니 조금이라도 한적한 걸 바란다면 주중에 날을 잡는 게 나을 듯.

사탕가게에서 팔던 뾰족한 뿔 모양의 사탕. 사탕이라고는 하지만 손끝으로 꼭꼭 눌러보면 쑥쑥 들어가는 부드러운

느낌인지라, 유가에 가깝다고나 할까. 식감이 독특할 거 같긴 했지만, 아무래도 저 요란한 색깔들은 식용색소

1호와 4호를 적당히 섞어 만들었겠다 싶어서 말았다. 무슨 꽃다발처럼 박스에 담겨있는 사탕송이들.

이건..일종의 콩떡이라 해야 하나. 손가락 마디마디 모양이 새겨지도록 꾹꾹 눌러빚어진 떡 안에는 이런저런

고명들이 들어가 있었다. 우리네 만두를 쪄내는 찜통같은 데서 뜨끈뜨끈하게 쪄내어지는 떡들.

그러고 보면, 주펀이란 곳은 살짝 야시장 삘도 나고, 남대문시장 같은 삘도 나고. 내가 돌아다녔던 곳이

이곳의 역사라거나 탄광촌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곳들이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주펀의 골목들이

빼곡히 끌어안고 있던 것들은 역시 관광객 상대의 음식점, 분식점, 기념품점. 주렁주렁한 홍등만으로

충분히 분위기가 화사해지고 업되기는 하는데, 거기 뭐가 있드나, 하면 딱히...'분위기가 있어' 정도.

아, 그리고 이런 새로운 한글도 볼 수 있다고 말해주면 되겠다. "미ㅡ럼 ㅜ의' 한자니 일본어는 훼손없이 잘만

붙어있는데 한글만 유독 이렇게 글자가 파기된 건 왜지. 쌍기억과 지읒이 사라졌다. ㄲ, ㅈ. 꺼져?

넘치는 간식거리, 돈만 있음 이것저것 자잘하게 사고 싶던 장식품들, 특히나 그 고양이들을 사지 못해서 너무

아쉬웠다는. 그래도 오르락 내리락 주펀의 경사로를 종횡하며 다니다보면 배 꺼지는 건 순간이었다. 땅바닥에서부터

홍등이 내걸린채 지정해주는 높이까지의 공간, 그 공간에 꽉 차 있던 볼거리, 먹거리들.

타이완에 와서 꼭 보고 싶던 것 중 하나가 경극, 중국어 공부를 한다 치면 니하오, 닌꿰이씽, 다음 쯤으로

꼭 나오는 문장, "나는 경극을 봅니다." 따위의 것들. 경극이 대체 뭐길래, 아니, 뭔지야 알지만 실제로 어떻게

흘러가는 연극인지, 실제로 얼굴 바꾸는 걸 눈앞에서 볼 수 있는지 등등이 넘 궁금했는데, 역시 이번엔

기회가 닿지 않았다. 가면만으로 우선 만족.

좁다란 골목을 꽉 채운 채 천천히 진입하는 청소차, 뭔가 굉장히 부조화한 클래식음악을 배경음악 삼아

시끄럽게 깔아두고서 골목 양켠의 쓰레기모듬들을 수거하고 있었다.

이윽고 완전히 어두워지고 만 주펀의 중심가. 사람들이 슬슬 버스를 타고 떠나기 시작했다.






황금산성 주펀의 메인스트리트는 지산제(基山街), 수치루(竪崎路) 정도의 굵은 골목을 따라 달린다.

실핏줄처럼 그곳에서부터 사방으로 뻗어달리는 자잘한 골목들이 주펀의 볼거리, 먹거리를 더욱 풍성하게

해주지만 여하간, 메인스트리트를 따라 우선 돌아보게 되는 게 인지상정.

붉은 홍등이 골목 양쪽으로 끊이지 않고 가지런히 늘어선 모습이 인상적이라는 이곳은, 원래는 산비탈을 따라

올라가는 금광촌이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금이 고갈되고 쇠락해 가다가, '비정성시' 같은 영화로 재발견되면서

관광산업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붓이니 먹이니, '문방사우'를 팔던 가게.

이 문어같이 생긴 건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 하다가 이내 알아챘다. 흐뭇하게 웃고 있는 대가리를 잡고서는

대여섯개 꽂혀있는 다리로 폭폭폭 안마를 해주는 안마기. 들고서 몇번 토닥거려보니 제법 시원했다.

고양이를 팔던 기념품점. 고양이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져서 또 정신못차리고 한참을 넋빼고 구경했다.

특히 저 낚시질하는 고양이, 흐뭇한 미소하며 가지런히 모은 두 손과 두 발(네 발이라 해야 하나..)이라니.

주펀에서 자주 만났던 간식거리 중 하나, 저렇게 두꺼운 깨엿같은 걸 정말 대패로 밀어서 가루를 내서는,

밀가루를 얇게 펴 만든 전병 같은 것 위에 소복히 올리고는 그 위에 아이스크림을 두덩이, 그리고 이국적 향내

가득한 고수를 적당히 썰어 올려서는 말아서 주는 거다.

왠지 '방망이깍는 노인'의 한대목이 떠오르는 할아버지의 대패질, 아 다 깍아졌고만 뭘 계속 대패질하고 있어요.

안 팔아, 이런 참을성없는 것 같으니라고. 아니 어디서 이런 간식을 사온 거에요, 꺠엿 대패질하기가 생각보다

쉽지가 않아서 조금 성글게 갈아도 잇새에 끼고 너무 곱게 갈아도 입술에서 녹아버리거든요. 터헛. 멋진 할아방.

아직 대낮이건만 구간구간 이렇게 터널처럼 위천장이 막힌 골목에서는 이미 홍등이 불이 들어왔다. 온갖

음식점과 찻집, 기념품점, 간식 파는 곳으로 가득한 골목, 돌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문득 마주친 반가운 간식, 뽑기. 박카스병같은 투명한 갈색빛이 은은히 감도는 울트라맨이니 팬더니 따위의

설탕뽑기가 20NTS. 1NTS에 대략 35원이니까 35를 곱하면 700원쯤 하는 셈이다.

죄다 혀빼물고 있는 인형들이 천장에 주렁주렁 매달린 기념품점도 있었다. 혓바닥에 뭐라 써져 있던데, 뭐

자세히 안 봤지만 그런 거겠지 싶다. 복을 빌고 장수를 빌고 행운을 비는 그런 거.

다닥다닥 붙어있던 간판들, 홍등들, 그리고 어깨를 맞부딪히며 걷는 수많은 사람들. 그나마 가게 안에서 솔솔

흘려지는 에어컨 냉기 덕에 숨통이 트였고, 문득 잊었다는 듯 불어오는 바람이 골목통을 한번씩 훑어주는 덕에

그다지 답답하진 않았다.
또다른 간식, 커다란 버섯-아마도 새송이인 듯..-을 통째로 양념장을 발라 석쇠 위에서 구워서는 먹기 좋은

사이즈로 잘라 종이컵에 담아주었다. 버섯도 꼬들꼬들 맛있었고 양념장도 짭조름하니 쳐묵쳐묵 했다는.

이렇게 중간중간 주펀 거리의 풍경을 넣어주면 왠지 함께 골목을 거닐며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효과가 나지 않을까

싶어 부러 사진을 배치해 놓았는데. 효과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럴 땐 차라리 동영상이 나을 수도 있겠단

생각, 내게 체류비와 적당한 월급과 캠코더를 쥐어준다면 평생 여행만 다니며 '걸어서 세계일주' 요런 거

내 나름의 버전으로 꾸며볼 텐데.ㅋ

작고 귀여운 사이즈의 나무신발이 쪼로록 진열되어 있던 기념품점, 열쇠고리처럼 쓰라는 거 같은데, 그보다는

그냥 요렇게 진열하듯 전시해두는 게 훨씬 이쁘겠다.

이건 거의 떡이랑 흡사했다. 안에 소로 들어간 게 콩가루나 견과류, 요런 거라는 점도 그닥 색다를 건 없었고

다만 따끈따끈한 상태에서 들고 다니며 먹기에 딱 좋은 사이즈라서, 정말 주펀에서 돌아다닐 때는 쉼없이

입을 놀리며 걸었던 거 같다.

잘 보이진 않지만, 수치루(竪崎路)라는 이름 아래 '수기로'라고 한글로도 적혀 있다. 아마 드라마 '온에어'에서

이곳의 저녁무렵 홍등 풍경을 워낙 이쁘게 담아놓고 나서 늘어난 한국여행자들을 배려한 게 아닐까 싶다.

산등성을 따라 걷기도 하고, 비탈을 오르기도 하고, 전반적으로 주펀의 오르막을 따라 골목길을 쫓아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 이렇게 '깜찍한' 사진을 내걸고 장사하는 가게도 만나고.

새끼 고양이들을 풀어두고 간식을 팔고 있는 집도 있었고,

또다시 고양이 인형과 장식품과 그림들이 가득한 샵도 만나고.

아직 해가 지려면 몇 시간 기다려야 했다. 주펀 만큼이나 오래된 듯 낡고 헤진 꼬질꼬질한 홍등과 방금 갓 달아둔

신품의 홍등이 얼기설기 매달려 있었지만, 그 홍등들의 행렬이 만들어내는 묘한 흥취와 분위기가 색다른 곳.





연일 폭염으로 혀빼물고 헥헥대게 만드는 요즘, 주펀의 사당에서 만났던 혀빼문 저승사자 이야기.

주펀, 2차 세계대전 후 한동안 금광도시로 '골드러쉬'를 맛보며 불야성을 이뤘던 계단식 마을이다. 타이페이의

북동쪽에 위치해서 버스로 한 두시간 정도 달려야 도착하게 되는 마을.

점점 고지가 높아지는 느낌이 강하다가 어느 순간 확 트인 풍경, 한쪽으로는 산등성을 따라 계단형으로 차곡차곡

채워진 네모난 건물들, 그리고 반대편으로는 타이완 앞 바다와 굴곡진 해안선. 구름들은 저멀리로 밀려난 채

꼬물거리며 쭈삣거리고 있었다. 역시나, 작렬하는 태양.

주펀의 메인스트리트로 가기 위해서는 좀더 경사로를 올라야 했다. 무슨 등산로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각도를

보여주던 그 곳의 길들. 오랜 연륜이 묻어보이는 벽돌건물들과 삐뚤빼뚤한 시멘트 계단이 왠지 살갑다.

짙푸른 하늘, 눈부시도록 하얀 구름, 그리고 동굴속에라도 들어선 듯 온통 깜깜하게 만드는 먹장 그늘.

어느결에 아스팔트 차도 위로 합류해선 차들을 옆에 끼고 걸었다. 사방을 이리저리 찔러대는 화살표들은, 왠지

보는 사람을 더욱 혼란에 빠뜨릴 거 같다는 생각을 잠시.

주펀에 본격 진입했음을 알리는 듯 한 누렁색 기와지붕.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등이 축축해지는 날씨였다.

2층짜리 집의 1층과 2층 사이에 커다란 부채를 꼽아넣으면 이런 모양이 되려나, 얇고 넓은 차양을 올려친 채

햇볕을 가리고 느긋이 퍼진 채 쉬고 있는 주펀의 주민분들. 나름 신경써서 배열한 타일 무늬도, 꽤나 산뜻하게

빛났을 파란색 페인트도 과거의 흥청댔을 분위기를 소근대는 듯 싶다.

사실 조금 당황하고 있었다. 대체 어디서부터가 '관광용' 주펀인 걸까, (난 보지도 않았지만) 드라마 '온에어'에

나온다는 주펀, 여행자들이 찾는 주펀은 어디서부터일까. 원래 그런 거 신경쓰지 않고 외려 일상적인 공간에

더 재미를 느끼긴 하지만, 어쨌든 주펀에 왔으니. 조금 당황하던 즈음에 내가 가진 '주펀 지도'에 내 좌표가

찍혔다. 소영묘昭靈廟.

별 생각없이 들어선 내부에서 딱 마주친 기괴한 인형 두 개. 딱 보고 살짝 허걱, 했다. 이 섬뜩한 얼굴표정하며

두툼한 눈썹털, 그리고 귀신나올 것 같이 정신머리없는 복장까지. 첨엔 그 압도적인 표정과 복장에만 온통

시선이 쏠려 몰랐는데, 사람만한 사이즈의 유리장에 사람만한 사이즈의 인형이 들어가 있었다.

가만히 보니 정신사나운 모양의 꽃관도 쓰고, 왼쪽 분께서는 혀도 길다랗게 빼물고 계시고. 오른쪽 분께서는

금세라도 턱뼈를 덜컥, 떨어뜨릴 것처럼 덜그럭덜그럭. 얼핏 들으니 사람이 죽고 나면 그 영혼을 끌어가는

역할을 하는 귀신탈이라 하니, 우리 식으로 따지면 저승사자겠다.


뭔가 주펀에서 행사나 제례가 있을 때 장식장 속에서 뛰쳐나와 행렬의 앞에 서서 융숭한 대접을 받는 분들이

아닐까, 절로 나오는 이 존대말은 뭘까.

햇살이 드문드문 침투한 사당 내부, 한줌의 햇살이라도 사방에서 번쩍이는 금박과 장신구들에 기대어

사방으로 튀기고 있던 그 공간에서 개의치 않고 고요히 앉아 뭔가를 기원하고 있던 할아버지.

대만의 대부분 사당의 기둥은 전부 이렇게 용이 칭칭 감겨 있었다. 이곳 역시 격하게 올록볼록한 용들이

기둥마다 하나씩 붙잡고는 또아리를 튼 채 대가리를 정면 쪽에 대고 사람들을 위협하려 했다.

사당 옆에 있는 특이한 모양새의 탑. 아마도 도교식 탑이 이렇게 생긴 걸까, 싶도록 낯선 모양이었다.

탑 위에 올라선 사람의 형체하며, 탑의 기단마다 새겨진 사람들의 모습과 기왓장이 올려진 처마에서 꿈틀대는

구름같기도 하고 용비늘같기도 한 무늬.

왠지 사당에 들어설 때보다 더욱 뜨거워져버린 듯한 땡볕. 그나마 선선했던 사당 밖으로 나설 엄두가 나지 않던

발길이 문득 주춤했다. 사당 안의 반들반들한 대리석 바닥에 최대한 몸을 밀착시킨 채 완전 뻗어버린 검정개

한 마리를 밟을 뻔 했다.

아마도 그 검정개한테 밀려난 걸까. 땡볕이 지배하는 주펀, 용틀임한 기둥 뒤로 만들어진 가뭇한 그림자 속에

꼭 맞게 들어간 고양이 녀석도 정신을 놓고 늘어져 버렸다. 조금씩 움직이는 그림자, 슬쩍 삐져나온 꼬리와

뒷발이 맘에 걸려 조금 밀어넣어주고 싶었지만 잠이 깰까봐 참고 말았다.






불꺼진 단수이라오제(淡水老街)의 골목들. 뭔가 앨리스가 맞닥뜨렸던 토끼굴처럼, 저쪽 끝까지 걸어가면 새로운

세계가 잔뜩 일그러진 모습으로 나타날 거 같은 느낌. 유난히 강렬한 주홍불빛이 내 걸음걸음을 주시하고 있었다.

낡고 허술한 차양, 녹슬고 우그러진 철문, 그리고 뭔가 '대롱대롱'의 느낌으로 겨우 매달려 있는 간판. 드문드문

길가를 막고 선 스쿠터와 쓰레기봉투, 종이박스떼기들. 적당히 깔끔하고 적당히 고즈넉해서 마음 놓이던 풍경.





쑨원을 기념하는 국부기념관은 몇 걸음 안 떨어져 타이베이101 빌딩과 함께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슬쩍 치켜

올라간 기와가 위풍당당해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거대한 시멘트 덩어리의 느낌이 더욱 짙은 지라 그렇게

인상적인 건물은 아니었다. 조금 거뭇거뭇해진 시멘트 외장이 남루해 보이기도 했고, 벌써부터 약간 퇴락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쑨원, 열 번에 가까운 혁명을 시도하고 결국 성공시켜 낸, 철학과 실천력을 겸비했던 사람이다. 1911년 신해혁명의

결과 중국 대륙의 '앙시앙레짐'이 무너지고 비로소 근대적인 정치형태가 실험되기에 이르렀지만, 자력으로는

도저히 혁명을 완수할 수 없었던 그는 위안스카이와 같은 군벌의 힘을 업고 말아 이후의 혼란을 자초하기도.


어쨌든 대만, 타이완의 건국 시점은 신해혁명으로부터 기산한다. 올해는 그래서 중화민국(中華民國) 99년.

2010년이란 서력보다 민국99년이란 표기가 더욱 흔하게 눈에 띄었다.

그렇지만 쑨원의 자그마한 동상들보다 더욱 눈길을 끌었던 것은 그 뒤의 반짝거리는 검정 대리석 앞에서 뭔가

뒤를 돌아선 채 연습하고 있던 아이들.

쑨원의 필적이나 그를 기리는 다른 사람들의 필적을 새겨둔 것 같은 검정대리석들이 쭉 이어져 있었고,

아이들은 거울처럼 말갛고 반짝거리는 그 대리석 앞에서 춤 연습을 하고 있었던 것. 이 '국부기념관이 외국인

혹은 관광객에게야 눈도장찍는 장소겠지만, 이들에게는 그저 동네 공원, 춤연습하기 좋은 장소인 게다.

국부기념관 앞의 잘 꾸며진 정원 너머로 보이는 타이페이101.

국부기념관의 정문,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는 듯한 처마가 슬쩍 쳐들려진 정문.

꺼뭇꺼뭇한 뭔가가 하늘에서 걸리적댄다 싶더니, 박쥐처럼 생긴 연이었다.

높은 좌대 위에 거대한 의자 위에 앉아있는 쑨원, 뭔가 명문이 금빛 글씨로 새겨져 있었는데 저렇게 거리를

멀쩍이 떨어뜨려두고 어떻게 읽으란 이야기인지. 그냥 데코레이션이겠거니 했다.

쑨원의 산민주의를 소개하고 있던 국부기념관 내부의 홀. 민족(자유), 민권(평등), 민생(박애). 그가 이런 기치를

들고 신해혁명에 성공한지 99년이 지났지만, 얼마나 성취했는지 답하기란 참 어려운 것들이다. 뭔가 수치화될

수 있는 것들도 아니고, 상대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개념도 아니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얼마만큼 진척되었다고
해서 아 이제 됐어, 충분해, 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가치들도 아니니까.

국부기념관  처마 아래에서도 아이들의 댄스 열정은 뜨겁게 타올랐다. 시멘트 벽면과 두툼한 기둥에서 내뿜는

냉기와 머리 위 지붕 덕택에 시원한 공간에서 꿈틀대는 뜨거운 열정들.

국부기념관 정문 앞 바닥에 그려진 방위표. 중샤오동루(충효동로), 이름 참. 이런 식의 유교적 가치들이 여전히

길이름 위에, 지하철 역이름 위에 유령처럼 서성이고 있으면 쑨원이 말했던 삼민의 가치가 오히려 훼손되는

건 아닐까. 국가에 대한 충성, 가족(가부장)에 대한 효심, 그런 식으로 조직과 공동체에 대한 헌신과 소속감을

강조하는 것, 가뜩이나 개인이 제대로 서지 못한 동양적 풍토에서 조금은 절연해 두어야 할 가치들 아닐지 싶은데.

어느 순간 시원하게 내뻗기 시작한 분수. 그너머 타이페이101, 국부기념관 정문 돌계단에 걸터앉아 바라보이는

타이페이 시내의 풍경.





해질녘 단수이항, 통통배에서 내려 뭍으로 오르는 사람들.

까만 실루엣으로만 남은 저것들-포클레인이니 중장비 따위-가 조금 거슬리긴 하지만, 그래도 검푸른 바다와

파스텔톤이 은은히 번져나가는 하늘이 참 이뻐서.

그리고 다시 떠나는 통통배들, 어둠은 조금 더 깊어졌고 건너편 해안의 불빛도 조금 더 강해졌다.





한자 그대로 읽자면 충렬사, 그리고 중국식 발음으로 읽자면 중례츠, 조금 답답한 게 한자는 뻔히 보이고 무슨

뜻인지, 한국식으로 읽음 어떻게 읽는지 다 알겠는데 좀체 타이완 사람들과 소통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

'중례츠'라는 발음 역시 아무리 책으로 보고 눈으로 익혔어도 좀체 입에 붙지가 않아 여전히 낯설기만 하다.

중례츠, 라는 현판이 걸린 좌우에는 인을 이루라는 뜻의 성인(成仁), 그리고 의를 취하라는 뜻의 취의(取義)라는
 
조금 작은 현판이 걸린 채 내부로 들어가는 세 개의 아치형 정문 위에 걸려있었다.

말하자면 여기는 서울의 현충원 같은 곳이랄까. 일제 세력과 중국 내 공산당 세력과 항전하며 장개석의 국민당

정부를 위해 목숨을 바친, '타이완'의 애국선열을 위한 공간인 거다.

해가 중천에서 약간 이그러지고, 그렇지만 이제 잔뜩 열받은 땅이 한창 열기를 푹푹 쏟아내기 시작하는 오후2시

거칠고 하얀 바닥 표면에서조차 섬광처럼 번뜩이는 햇살이 튕겨나왔다.

북경 자금성 내의 태화전을 따라 지었다는 중례츠, 충렬사의 본전에 얹힌 금색 지붕도 어찌나 반짝거리던지.

처음 도착했을 때만 해도 나 밖에 없다 싶더니, 슬금슬금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관광버스에서 올컥울컥

토해내지고 나니 어느새 북적북적대고 있다. 정문의 뒷면 현판에는 만고유방, 충의천추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이들의 타이완을 향한 '애국'의 의기가 오래도록 전해지리라는 희망과 주문, 그리고 그들의 충성과 '의로움'이

영원히 이어질 것이라는 계시나 점지와도 같은 의미렸다.

공사 중인지라 내부에선 사실 가까이 들어가 살펴보거나 건물 안에 들어가 돌아볼 만한 여지가 전혀 없었다.

아마도 저 누각 아래 있는 흉상도 장개석의 것이 아닐까 싶은데, 그가 공산당에 쫓겨 내려와 원주민을 압박하며

만들어낸 '타이완'이란 나라에 대한 애국의 대가, 애국의 보상을 위한 공간인 셈이다, 여긴.

화려한 문양들, 고궁박물관에서도 느낀 거지만 이들의 용 문양에는 꼭 발톱이 다섯 개다. 황제의 용에는 발톱이

다섯 개, 왕이나 제후의 용에는 발톱이 네 개나 심지어는 세 개. 조선시대 왕의 곤륭포니 의복이나 장신구에

나타난 용의 발톱은 늘 네 개였다. 사대교린의 국제질서와 관념 하의 세계였으니 그게 당연한 거였다.

태양은 양껏 때려부었지만 그래도 바람이 멎지 않아 다행이었다. 내부 양켠으로 쭉 늘어선 깃발을 쉼없이

희롱하는 바람 덕에 '청천백일기'가 휘날리는 걸 원없이 봤다. 파란 하늘에 선명히 박힌 하얗고 강렬한 태양,

그리고 온통 시뻘건 핏빛으로 가득한 대지. 그게 청천백일기에 담긴 의미 혹은 비주얼이라는.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고 정결한 몸과 마음으로 매시 정각에 시작하는 위병 교대식을 보기로 했다. 9시부터

17시까지 문을 연다고 하는데, 그럼 17시 정각에도 교대식을 하는 걸까 아님 그냥 위병들이 들어가고 문닫으면

끝인 걸까 모르겠다. 그나저나, 참 촌스럽고 색이 바랠대로 바랜 표지판. 아무리 여기가 국가를 위해 죽어간

영혼들의 애국심과 용맹을 기리는 공간이라 해도, 산 사람은 싸야 할 거 아니냐.

꼼짝도 않고 밀랍 인형처럼 굳어 있던 위병들이 움직이기 직전. 그들은 숨을 쉬는지조차 눈치채지 못하게

아주아주 얌전히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고, 그러고 있었을 거다.

기합소리와 함께 시작된 위병 교대식. 아마 매 시간마다 정복의 색깔이 흰색과 파란색, 교대로 바뀌나보다.

교대할 위병 두명, 그리고 약간 앞에서 그들을 인솔하는 인솔자 한 명이 팔과 무릎의 각을 탁탁 맞춘 채

구분동작으로 걸어나오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제자리걸음부터 시작해 서서히 굳었던 몸을 풀기 시작한 위병 둘.





다섯 명이서 내부로 스무 걸음쯤 걸어들어가더니 한참을 총도 돌리고, 군화로 착착 소리도 내고, 그랬다.

움직임은 과히 나무랄 데 없어서 볼 만 했지만, 기본적으로 그런 군대 병정놀이따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요새 많이 자제하고는 있지만 또 울컥, 아뉘 그 EBS 강사가 한 말 다 맞잖아. 군대가서 사람죽이는 거 배워오는

것도 맞고, 군대가 애초 사람죽이고 나라지키려고 가는 거잖아. 게다가 그에 더해 온갖 사회의 더러운 꼴의

원형에 익숙해져 오는 것도 맞고, 그렇게 자발성도 없고 동기부여도 안되는 허섭스런 징병제도의 부작용이

긍정적 효과보다 크다 싶으면 다른 방식을 찾아가는 것도 맞는 거고. 근본적으로는 군대나 경찰, 국가로부터

인증된 합법적 폭력집단이 해체되어야 하는 것도 맞는 거고. 뭐가 문제인 거지..?

이들 위병들이나, 이미 이 공간에서 기려길 자격을 획득한 군인들이나, 타이완 쪽에서 보면야 나라를 사랑하고

가족을 지키고 '진충보국'하는 모범사례겠지만, 사실 그들은 적국의 군인과 민간인을 살상함으로써 그걸 가능케

하는 거다. 전쟁터에 총알받이되러 나간다, 는 표현의 어폐는 그걸 숨기는데 있다. 전쟁터에는, 전쟁은, 사람을

죽이러 가는 거다. 그리하여 파란하늘, 하얗게 작렬하는 태양 아래 대지를 온통 적의 피로 붉게 물들이려는 거다.


이 분 파란색 정복에 있는 명찰을 보니 공군의전, 이라고 적혀 있다. 그러면 흰색 정복은 공군이 아닌 육군이나

해군인 걸까. 왠지 삼군이 번갈아 한 시간씩 지키고 있지 않을까 하는 심증이 굳어졌지만, 그걸 확인하자고

한시간이나 더 여기서 개기자니 딱히 볼 거라곤 교대식밖에 없는 곳에 발이 묶일 순 없다 싶어서 포기.

드디어 교대해 줄 병정 둘이 위에 올라섰다. 꼬맹이들은 어찌나 열중하고 보고 있는지 입을 헤 벌린 채 눈도

똥그랗게 뜨고 있는 게 꽤나 귀엽다.

대 위에 올라서고 나서도 한참 계속되는 일사분란한 '구.분.동.작'. 왼다리 들어, 오른다리 들지 말고 왼다리놔.

왼다리 들고 오른다리 부딪혀. 총 한바퀴 돌리고 멜빵끈에 손가락 걸어, 뭐 요런 식의 성마르고 까탈스런

청기백기 게임처럼 한없이 지속될 거 같은 그들의 움직임이 기이한 침묵 속에 계속되었다. 들리는 소리라곤

가끔씩 부딪혀주는 군화발 소리, 그리고 휘둘려지고 꽉 쥐여지는 총에서 비롯하는 철컥대는 쇳소리.

약 십오분에서 이십분, 그렇게 위병 교대식이 끝나고 나니 다시 위병 둘은 밀랍인형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잠시 어물대는 사이 관광객들을 다시 꾸역꾸역 버스 안으로 소환되어 쌩하니 떠나고 말았다. 



병정 둘이 남았다. 왠지 그들이 딛고 선 중례츠의 바닥이 온통 붉은 핏빛으로 보였다.








타이완 도로에는 유난히 스쿠터들이 많다. 평소엔 버스니 승용차니 차선을 오롯이 차지한 차들과 다름없이 씽씽

잘만 달리다가, 일단 어디에고 신호등에 걸려 차들의 속도가 떨어지고 나면 맨 앞으로 스물스물 모여들어

그들만의 무리를 이루는 거다. 그들을 위해 신호등 앞에는 이렇게 스쿠터 전용 신호대기 공간까지 네모지게

만들어두고 스쿠터 모양의 표지까지 그려 두었다.

꼭 그것만 같다. 초등학교 때 자갈과 모래를 막 섞어둔 혼합물을 통안에 넣고 열심히 흔들면 모래는 밑으로 다

가라앉고 자갈들만 슝슝 모래를 뚫고 올라오는 분리 실험. 하나둘 차들 사이를 비집고 앞까지 기어나온

오토바이들이 늘어나다가 신호가 바뀔 무렵이 되면 거의 무슨 폭주족처럼 모여버린다.

밤이라고 다르지 않다. 가게들의 불빛이 대부분 꺼져버린 열두시 가까운 시간에도 일단 빨간 신호등에 불이

들어오고 차들이 멈춰서면, 산개해서 달리던 오토바이들이 어느순간 신호등 코앞에 몰려든 채 부릉거리며

달려나갈 준비를 하는 거다.




@ 주펀, 타이완.


늘 여행에 나설 떄마다 부딪히고 마는, 걷지 못한 길,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

그렇지만 이번 여행에선 외려 다른 마음이 욱씬거렸었다. 그것은 지나온 길에 대한 미련.

인파의 흐름을 거꾸로 역주행을 할지라도 다시 한번 되짚어 돌이키고 싶었던 순간, 장소, 기억들.


그래서, 골목길 아래 황금박물관의 간판이 반짝거리고, 그 너머 퍼렁 불빛이 잉크 번져나가듯

일렁이는 낯선 마을이 있었지만 굳이 골목길을 헤집고 들어가지 않았댔다. 모든 골목들을 전부

샅샅이 열어보려는 건 애초 욕심이었다.





각국의 발렌타인데이가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다는 건 알았지만, 타이완의 발렌타인 데이는 8월 16일이라고 했다.

타이페이101의 1층이나 지하에는 쇼핑몰과 레스토랑들이 있는데 온통 발렌타이데이, 그리고 아버지의 날을

맞는 판촉 행사 중이었다. 아버지의 날..은 언제일까 근데.

전망대에 올라가는 티켓을 사려면 5층, 매표소로 가야한다. 거기에서 바로 89층까지 올라가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야 하는 것. 5층까지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 화려하게 꾸며진 101빌딩의

외관을 담은 포스터가 그럴 듯 하다.

곳곳에 붙어있는 전망대 입구를 가리키는 화살표를 따라 가다보면 금세 도착했다. 높다란 몰 천장이 시원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공간이 넓어 보이게 했었는데, 코엑스몰이나 그런 곳도 천장이 좀만 더 높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천장이 높으면 왠지 좀더 쾌적해 보이고, 여유로와 보인다.

도착한 전망대 매표소. 왠지 매표소 입구에서 서로 얼굴을 마주친 사람들끼리 알 수 없는 경쟁심에 휘말려서

거의 뛰다시피 줄을 섰던 순간. 중국에서 온 단체 관광객도 많이 보였고 드문드문 한국어도 들렸지만 나는

아무것도 안 들리는 척 모른 척.

그리고 드디어 전망대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줄에 합류, 옆에는 왠 전구처럼 똥그란 녀석이 놀란

표정을 짓고 있길래 이게 뭐하자는 플레인가 싶어 요모조모 뜯어봤더니, 아하. 숫자 101을 저렇게 형상화한 것.

그렇게 귀여운지는 모르겠는데, 그래도 101의 숫자를 갖고 참 솔직하게 이미지화했구나 하는 느낌은 강렬했다.

89층, 통유리로 된 사면 너머로 내려다보이는 타이페이 시내의 전경, 당장 방금 다녀왔던 국부기념관의 모습이

조그맣게 보인다.

이제 막 어두워지려는 찰나, 점점이 이어지는 불들이 한순간 팟, 하고 일제히 빛나기 시작했다.

타이페이101 빌딩의 외관에 달려있던 경첩 같은 장식물들, 여기서 자세히 보니까 이렇게 생긴 거였다.

순식간에 어둑해지는 하늘 아래, 불룩 돋아난 실핏줄처럼 점점 도드라져 보이는 불빛들과 더불어 떠올라

보이는 타이페이의 야경, 창문에 거의 코를 박다시피 구경하고 있었는데 문득 눈에 들어온 경고 표지문.

101빌딩은 외관이 매끈하다기보다는 뭔가 울룩불룩, 재미난 모양새여서 그런지, 외벽 유리창에 반사되어

빛나는 주홍불빛들을 전망대에서 볼 수 있었다. 아직 완전 거뭇거뭇해지기 전, 어슴푸레하고 어설픈 분위기의

타이페이 시내를 보자니 마음이 싱숭생숭.

죽순의 모양을 형상화해 타이페이101을 지었다느니, 세계에서 가장 큰 무게중심추라느니, 건물에 대한 다양한

에피소드와 이야기들을 소개해둔 자료들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직접 그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무게중심추를 볼 수 있었는데, 88층과 89층에 걸쳐 건물 중심에 설치된

거대한 구가 노출되어 있는 것이었다. 101의 마스코트인 듯한 그 귀엽지 않은 녀석들, 잔뜩 놀라기만 한 녀석들

옆을 지나 허벅지만한 두께의 쇠줄이 팽팽히 내려뜨려진 공간에 들어섰다.

벽면에 적힌 수치들에 따르자면 이 무게중심추의 무게는 660톤, 직경은 5.5미터, 무식하도록 거대하고 무지하게

무거운 물건이다. 이 무게중심추 덕분에 500여미터에 이르는 건물이 외풍이나 외부 충격으로 흔들릴 때의

움직임을 40%까지 감소시킬 수 있다고 하니 대단하긴 하다.

그런 정보들이 적혀 있던 우글쭈글한 벽면, 좀체 한 큐에 찍히지 않는데다가 글자가 깨져보여서 이거 참 난감.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는 엘리베이터, 일분에 1010미터를 오르내리는 속도라니. 왠지 찰리와 초콜렛공장의

비밀에서 나오는 그 설탕 연료 엘리베이터처럼 사방으로 윙윙대며 날아다니다 끝내 하늘까지 펄펄 날아오를 듯.

89층에는 이 타이페이101 빌딩이 준공되고 완공되기까지의 사건들, 그리고 작년 12월 31일 밤 카운트다운을

헤아리던 그 때 이 건물에서부터 사방으로 터져나간 폭죽들의 화려한 영상을 보여주는 상영관이 조그맣게

있어서, 돌아다니다 지친 걸음을 잠시 쉬어갈 수 있게 해주었다.

다시 내려가는 길, 끝내 아쉬움을 못 버린 사람들의 시선은 창밖에 고정된 채 떨어질 줄을 모른다. (88층을 지나

내려가기 위한 엘리베이터를 찾아가는 길에는 구불구불, 최대한 동선을 늘여놓은 듯한 길을 따라 온갖 매장이

잔뜩 호객행위 중이었다. 중국인의 상술이란 역시 경탄할 만하다, 고 생각하기에 충분할 만큼.)

37초만에 5층에서 89층까지 도착했던 엘리베이터, 이번에 내려갈 때도 그만큼 속도를 내려나, 어쩜 더 빠르려나

싶어서 유심히 바라보고 있던 엘리베이터 내 설치된 그래픽.

5층에 내려서서 아까 올라갈 때 미처 찍지 못했던 기네스재단의 공인서부터 찾아 카메라를 들이댔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승객용 엘리베이터임을 인증하는 내용.

다시 1층으로 내려서서 새삼 올려다본 타이페이101의 천장. 쭉쭉 곧게 뻗은 기둥들도 시원하지만, 저 천장 너머

500여미터 상공까지 올라 101층을 차곡차곡 쌓아올렸을 타이페이101를 휘감고 윙윙거리는 거센 바람의 압력과

소음을 떠올리고는 까짓 것, 하고 말았다. 고개를 한껏 젖혀야 겨우 꼭대기에 시선을 안착시킬 수 있으려나.





타이완의 한 쇼핑몰, 여기서도 역시 별다방은 흔했다. 빅맥지수가 통용될 정도로 전세계적으로 일률적인 레시피를

갖고 있는 맥도널드와는 달리 세계 각지에서 맛본 별다방의 커피는 꽤나 맛의 차이가 있었던지라, 어디를 가든

가능한 한번씩은 맛을 보려고 하는 거다. 게다가 타이완에는, 'Taiwan Tea' 메뉴가 있었다.

눈에 딱 들어오던 차 이름 하나. 무려 동방미인, 東方美人. 영어로 달린 이름이 더 웃긴다. 오리엔탈 뷰티라니.

우롱티가 워낙 미용 효과가 좋다고 하니 저런 이름을 붙였나 싶었다. 별다방에서 동방미인차 한번 맛봐야지,

싶어서 바로 주문.

잔 모양이 특이했다. 정말 커다란 머그잔에, 슬쩍 걸친 채 차잎을 우려내는 용기, 옆에는 조그마한 접시도

함께 놓여 나온 걸 보아하니 적당히 우려내었다 싶으면 저 위로 빼두라는 거 같다.

세련되어 보이는 하얀 잔에 붉은 빛이 감도는 우롱차가 담겨 있어서 뭔가 그럴 듯 해보였다. 근데 사실 맛은

많이 실망했었다는. 타이완에서 이런저런 차들을 계속 마시고, 이전에도 한국에서 여러 차들을 마시면서

조금은 맛을 식별할 수 있게 된 건지 좀체 별다방의 우롱차는 맛이 없었다.

그렇지만 타이완 별다방에서는 이런 녹차류도 팔고 있다는 걸 알게 된 것만 해도, 그리고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별다방식 다기 세트가 있다는 걸 본 것만 해도 꽤나 재미있었던 경험.






그 높이가 무려 508미터. 버즈 칼리파(버즈 두바이)가 완공되기 전까지 세계 최고 높이의 빌딩으로 인증받던

타이페이101인지라 시내 곳곳에서 그 모습이 보인다. 하늘을 찌를 듯 하구나, 왠만한 빌딩은 아무리 바싹

눈앞에 땡겨놓고 원근법의 힘을 빌린다 하여도 딱히 상대가 안 된다.

길가를 다니는 타이완 현지인들이야 쏟아져내리는 햇살을 막느라 양산을 쓰고 다니느라 다른 곳에 시야를

두진 않겠지만, 마냥 모든 게 신기해서 두리번두리번대는 여행자의 마음으로는 뭔가 계속 낯설고 새롭고

재미난 것들을 찾아내려 눈이 벌개져 있는 거다.

오토바이가 유난히도 많은 타이페이 시내, 어디서든 신호만 걸리면 마치 모래와 자갈이 분별깔대기에서

분리되듯 오토바이가 맨 앞으로 몰려나온다. 그 뒤론 커다란 차들이 꼬리를 물고 서 있고. 멀리 하얀 햇살에

투명하게 탈색되어 버린 타이페이101의 윤곽.

어디쯤이던가, 도심을 걷다가 어느 순간 불쑥 눈앞에 나타나버린 101에 깜짝 놀랬었다.

다른 건물들이 그렇게 낮지도 않다. 우리나라 서울이랑 비슷하게 적당히 오래된 저층 건물들도 많고 새롭게

올라간 높고 두꺼운 건물들도 적당히 섞여 있지만, 단연 눈에 띄는 높이와 외관이다. 죽순의 형태를 형상화했단

말을 듣기 전에도 슬쩍 예감할 수 있었다.

단수이에 가는 길이었던가, 어딘가의 고가 위를 달리는 차에서도 멀찌감치 타이페이101의 우뚝 솟은 실루엣이

보였다. 다소 도도해 보이기도 하고, 조금은 외로워보이기도 하고.

타이페이101의 91층 전망대에서 야경을 보겠다며 나선 길, 조금씩 빌딩 앞으로 다가설수록 고개를 젖히는

각도가 가팔라졌다. 호오...서울의 트레이드타워나 63빌딩보다는 확실히, 월등히 높구나.

모양새도 꽤나 정묘하게 만들어진거 같다. 미끈하고 유려하게 뻗은 라인과 금빛 번쩍이는 외관을 자랑하는

63빌딩이나, 상승을 거듭하는 그래프 모양처럼 생긴 트레이드타워와는 또 다른 느낌이 있다. 우선 외관 자체에

돌출된 부분이나 장식물처럼 매달린 부분들이 있어서 그런 거 같고, 왠지 손으로 만질만질하면 그 오돌토돌한

골격의 촉감이 고스란히 전해질 거 같아서 그렇기도 하고.



 
해질녘 101타워 위의 전망대에 올라서 내려다본 타이페이 시내의 야경, 야경이야 어디서든 이뿌다지만

불안정한 대기 탓에 뭉게뭉게 예술구름이 피어나는 하늘 아래 다정하게 깜빡이는 주홍불빛들은 참.

101타워에서 엘리베이터로 올라갈 수 있는 최대높이는 89층, 382미터. 거기에서 계단으로 두 층 올라가면

건물 옥상으로 나와 타이페이 시내를 조감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는 거다.

91층 높이, 390미터에 이르는 그 전망대는 사실 타이페이에 오기 전에는 굳이 오를 필요가 있던 곳이기도 했다.

평소 일하는 사무실 높이가 47층인지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어둠이 내려 주홍불빛이 번지는 그 모습들에서

미감을 느끼기엔 다소 질려버리지 않았나 싶었는데, 그래도 조금 갈등하다가 가보기로 결정. 가도 후회, 안가도

후회할 거라면 차라리 가고 나서 후회하자는...결혼과도 같은 고민.


게다가 현재 세계 최고로 높다는 버즈 칼리파(버즈 두바이에서 이름이 바뀐)도 가봤으니, 그 이전까지 세계

최고 높이라던 이 타이페이101도 한번 가주는 게 인지상정이지 싶어서.

올라서자마자 보인 건 촘촘한 안전철망 사이로 빛나던 조그마한 손톱달. 바람은 철망 사이로 숨바꼭질하듯

윙윙 소리내며 노닐고 있었고, 해가 떨어지며 찜통더위는 급속히 사그라드는 느낌이었다.

아래로 보이는 야경은 89층에서 유리창 너머 보였던 풍경과는 또 다른 느낌을 던지고 있었다. 유리창을 통해

보여지지 않는 날것의 풍경이란 감흥 때문인지도, 시시각각 짙게 나리는 어둠 때문인지도.

이런 높은 건물에서는 꼭 줄을 내려 등반을 하거나, 글라이더를 타고 내려가고 싶은 사람들이 있기 마련인지라,

이런 식의 경고 문구 역시 꼭 있기 마련이다. 그에 더해 흡연 금지, 뜀박질 금지라는 건 자칫 불씨가 날려가서

어딘가 불을 낼까 봐, 그리고 뛰다가 자칫 바람에 날려 떨어져 버릴까 봐 경계한 것일 테다.

101타워, 총 101층으로 되어 있어 101타워라고 불린다지만 일반인에게 공개된 부분은 여기 전망대의 91층까지.

아마 나머지 10층은 전망대가 있는 옥상 위에서부터 다시 탑처럼 솟은 이 부분을 가리키는 것인 듯 하다.

커다란 동그라미를 그리고 있는 전망대를 한바퀴 거니는 동안 하늘은 시시각각 어두워졌고, 언제부턴가 건물의

곳곳에서는 조명이 밝혀졌다. 뭔가 동물원 우리를 연상케 하는 안전철망, 다른 점이라면 갇힌 게 이쪽이란 점.

사방을 뛰어다니며-사실은 걸어다녔지만-사진을 찍어대다 보니 마치 신경세포들 같다. 그리고 신경관들이

촘촘히 뻗어있는 그것들은 마치 101타워, 여기에서부터 모든 것들이 뻗어나간 듯한 느낌. 여기가 그만큼

타이페이 시내 중심가에 있기 때문이겠지만, 멀찍이 둥글둥글 혈관이 뭉쳐있는 정맥류처럼 불빛들이 올망졸망

뭉쳐있는 곳들을 제하고 나면 대체로 가지런하게 뻗어나가고 있었다.

안전철망 따위 쉽사리 넘나드는 손톱달.

중간중간 멀리 내다볼 수 있도록 망원경이 서 있었다. 그 앞에는 철망을 조금쯤 걷어내서 시야를 가리지 않는

센스를 발휘했어도 좋았을 텐데, 사방을 빙빙 두른 철망은 완고하기만 하다. 풍경을 가지런히 칼질해내어

마치 병풍처럼 세워내는 그 솜씨하며.
 
해가 완전히 떨어지고 나니 바람이 더욱 거세진 느낌이다. 어쩌면 조금씩 사위어가는 주위 풍경 속에서 용쓰지

못하는 시각 대신, 온통 바람이 건드리는 그 촉감에 쏠린 탓인지도 모른다.

완전히 어둑어둑해져 불빛을 잡아내기조차 힘들어진 즈음, 굵고 유난한 불빛, 굵은 혈관같은 불빛의 흐름만
 
남아버렸다.





타이완의 거리에는 온통 일본차 뿐이다. 한국차는 5일동안 두 대? 그 정도 밖에 못 봤고, 일본차가 대부분, 그리고

벤츠니 베엠베니 독일 고급차들.

어딘가의 사거리 앞에서 집중적으로 눈여겨본 신호등. 언뜻 보면 어느 나라나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사실 또

은근히 제각기의 개성이 있어서 약간씩 다른 모습을 보이곤 한다. 저렇게 서 있는 빨간녀석 역시 뭔가 신선하다.

대로의 사거리라 빨간 불이 길어서 이리저리 배회하던 카메라에 재미난 게 잡혔다. 건물 벽면에서 사람들이

줄을 타고 내려오고, 위태하게 창밖으로 넘어오는가 하면, 아예 몸을 절반 넘게 기울인 채 사다리를 타고 있다.

살짝 놀랐는데, 다음 순간 피식 웃고 말았다. 건물 벽면에 스티커 작업으로 붙여 놓았던 그림.

그리고 둥그런 건물 외벽에 층층이 이국적인 한자어 간판이 빼곡한 건물도.

오래 기다렸다. 비로소 시작된 파란 불 타임, 숫자가 번쩍이고, 숫자 아래 사람은 흐느적대며 걷기 시작했다.

약간 허리를 구부정하게 숙이고 율동감있게 걷는 게 뭔가 리듬을 타고 있다는 느낌이다. 부드럽게 움직이는

다리와 팔의 흔들림도 그렇고.


동영상까지 찍었는데, 영상이 눕고 말았다. 신호등을 건넌다기보다 뭔가 가파른 비탈을 오르는 등산의 느낌이

강하게 되어 버렸지만 충분히 느낄 수 있을 이 파란 녀석의 리듬감.




타이완의 야시장음식, 길거리음식도 워낙 유명하지만, 허름한 길가 음식점이나 조금 고급스런 수준의 음식점의

음식 역시 뭐 하나 맛이 없는 게 없었다. 상해나 북경에서 맛봤던 중국음식들도 대개 맛있었지만 대개 음식점들

내부는 기름때가 손닿는 모든 곳에 쩔어 있고 기름쩐내 역시 음식점 내에 꽉 들어차 있었다면, 바로 그런 위생상의

문제가 깔끔히 해결된 채 중국 요리의 맛까지 놓치지 않은 게 타이완의 음식점인 듯.

타이완 사람들이 아침으로 즐겨 먹는 '콩국', 두유, 혹은 그냥 영어로 소이밀크, 라고 하면 다들 알아들었었다.

아침으로 워낙 많이들 먹는지 파는 곳도 굉장히 많고, 들고 다니며 마시는 사람도 굉장히 많았는데 콩을 갈아

직접 만들고 며칠 만에 소진해서 새로 만들고, 그러는 것 같았다. 찬 것과 뜨거운 것, 두 종류로 팔던데 찬 두유를

마시면 기운도 나고 땀도 식고. 아침식사로 딱.

아침으로 두유와 함께 먹는 샤오삥(小餠), 깨가 가득하게 뿌려진 채 파삭파삭하고 고소하니 따뜻한 빵만 따로

팔기도 하고, 계란을 스크램블 에그처럼 으깨넣어 팔기도 하고. 
 
타이완에 가면 누구나 '딘타이펑' 본점을 순례하듯 들르곤 하지만, 사실 길거리 이름없는 가게에서 파는

'샤오롱빠오(小龍包)'도 뜨거운 육즙이 그득하게 들어있었다.

조금 업그레이드해서 101빌딩 내의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어본 적도 있었다.

한국의 LA갈비와 비슷한 요리, 좀더 짭조름한 맛이 덜하고, 바닥에 상추가 깔려있더란 점 이외에는 비슷했던 듯.

이건..뭐더라..돼지 고기로 만든 음식이었는데, 오향장육이었던가.. 부들부들하면서도 쫀득한 돼지 껍데기 부분이

간장이 주 베이스로 이뤄진 양념에 포옥 안겨있었다. 그리고 옆엔 썰은 파와 고수.

그 고깃덩이와 채소들을 이 빵에 가운데에 넣어서 먹는 거다. 깨가 촘촘히 틀어박힌 빵 속에 젤리처럼 포들한

돼지껍데기와 고기가 웅크리고 들어가서는 따끈따끈, 쉼없이 입 안으로 들어갔다는.

고궁박물관 찻집에서 맛보았던 '애프터눈티' 세트. 호박과 오리와 배추가 이쁘게 올라와 있었던 고급스런 다과.

그리고 개구리 난소였던가, 뭔가 굉장히 독특한 내용물이 들어가 있던 독특한 후식, 시원하고 대추가 들어가

있어 달콤하고, 부석부석한 덩어리들의 식감 역시 묘하게 이끌렸었다.

101빌딩 89층 전망대에 있던 소 한 마리, 냉기가 뿜어나오는 아이스크림을 꼬나쥐고, 우람한 젖통을 불끈

내 보인 채 서 있던 풍경이 넘 재미있어서 한 방.

우육면, 뉘오우룽미앤. 고기가 있고 없고의 차이로 우육면과 우육탕면의 이름이 바뀌고 가격이 배로 차이가

나던 바로 그 메뉴. 고기가 무슨 맛난 갈비탕에 담긴 갈비살처럼 보들보들 야들야들.

돼지 귀 잘라 무친 것과 콩으로 만들었다는 소세지 모양의 반찬, 반찬은 한 접시에 40NTS던가, 돈주고 따로

샀어야 했다. 콩으로 만들었다는 저 소세지 같은 건..뭔가 아무 맛도 안 나는 거 같으면서도 굉장히 쫄깃한

식감 때문에 마법처럼 손이 계속 이끌리더라는.

융캉제 주변의 刀麵, 일종의 칼국수 집에서 맛보았던 국수. 손으로 한 반죽을 칼로 설설 썰어내는 통에 두툼하고

얇은 면의 다양한 부분에 제각기의 개성실린 맛이 났다.

 그 유명한 융캉제의 얼음빙수. 삥관, 혹은 아이스몬스터라고 불리는 그 곳에서 먹었던 망고 빙수는 과연 최고.

얼음의 부드러움은 밀탑빙수의 뺨을 치고, 망고의 달콤함은 뭇 과일을 무색케 하며, 야박하게 흉내만 낸

망고 시즈닝이 아니라 그야말로 풍족하게 올려주는 망고를 씹다보면 혀를 씹어도 모른다는.;

혹은 난징둥루의 브리즈센터 지하에 있던 레스토랑에서 반짝이던 홍등 아래 먹었던 음식들도 빼놓을 수 없다.

뭔가 마나 감자나 그런 뿌리식물을 갈아서 만든 것 같은 떡과 같은 에피타이저. 알고 보니 '무' 떡이랜다.

돼지 족발과 비슷하면서도 좀더 부드럽고 따뜻하게 찜한 느낌이 강하던 음식, 청경채와 함께 찰진 면발 위에

올려져서 함께 먹어줘 함께 먹어줘, 요러고 있었다. 녀석의 소원대로 발가락 사이뼈를 하나하나 분해해가며

남김없이 먹어 치워줬다는.

사실은 베이징 카오야를 먹어보고 싶었지만 찾지 못하고 패스, 꿩 대신 닭, 아니 오리 대신 닭으로 카오야와

비슷하게 바삭한 껍질을 가진 닭요리를 시켰다. 메뉴판의 그림과는 달리 생각보다 카오야와는 많이 거리가

있었고, 차라리 후라이드치킨에 좀더 가까웠던 요리.

이번 타이완 여행에서 얻은 소득 중 하나라면, '삐딴'을 제대로 맛보았다는 점.

* 네이버 참조 : (중국 요리에서) 오리알이나 달걀을 나무의 재·소금·생석회가루를 섞은 것에 두 달 이상 담근 것. 흰자위는 투명한 적갈색, 노른자위는 진한 녹갈색이 됨. 피단.

그리고 국내에서 이러저러한 기회에 맛보았던 삐딴과는 달리, 타이완에서 몇 번씩이나 맛봤던 삐딴은 일관되게

다른 특징을 보여줬다. 진한 녹갈색의 노른자가 거의 생크림처럼 보드라와져 있다는 점. 심지어 나무젓가락으로

슬쩍 크림 떠내듯 건드리면 노른자가 크림처럼 떠진다는 사실. 게다가 향도 훨씬 진했다.

닭발 요리, 한국에서처럼 뼈없는 닭발 요리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튼 이건 뼈가 알알이 박혀 있는 닭발.

닭발하면 매콤한 맛만 떠올리게 되는 한국인의 상식을 깨고, 달콤하면서도 부드러운 맛이 꽤나 좋았다.

그리고 새우 두 마리가 박혀 있던 촉촉한 밀병 요리. 미끈하면서 쫄깃한 게 떡을 얇게 펴서 그 안에 새우를

박아넣은 듯 했다. 좀 새우랑 껍데기랑 따로 노는 느낌은 아쉬웠지만, 나름 묘한 조합.

두화, 한자로는 豆花, 콩꽃이란 뜻이 되려나. 푸딩처럼 야들야들하고 탄력있는 순두부에 팥이니 타피오카니

아몬드니 원하는 토핑을 얹어서 먹는 디저트 메뉴다. 단팥을 선택하고 나니 약간 실망했던 게, 팥의 향이나

맛이 너무 강해서 '두화'가 그냥 단팥죽처럼 느껴지고 말았다는 것, 한 번 더 기회가 있었다면 타피오카나

아님 그냥 토핑없이 심플하게 먹어 봤을 텐데.




고양이를 찾아낸 한 해외누리꾼은 '일단 한번 찾아내니 잘 보인다'고 귀띔했다. ('고양이를 찾아라!' 이색 사진 화제, 노컷뉴스)

고양이를 찾기가 쉽지 않은 건 사실이다. 우선 눈코입이나 제대로 보여야 얼굴이 어딘지 알 텐데.

이렇게 눈만 말똥말똥뜨고 있어도 마찬가지, 몸뚱이가 어디로 뻗어나가는지 보이길 해야 말이지.

사실 보려고 눈만 크게 뜨면 이렇게 잘 보이는데, 한번 보고 나면 의외로 쉽게 보인다는 말은 정말이다.

심지어는 이런 테이블 넘버를 알려주는 표찰에도 고양이는 숨어있었다.

타이페이, 홍등으로 유명한 주펀의 한 찻집에서 만난 고양이들이다.

이렇게 길게 널부러진 채 발을 모으고 있는 녀석도 있었고,

초록잎을 품은 채 몸을 외로 꼰 모양새의 고양이도 있었다.

메뉴판에도 고양이들은 떼거지로 등장했는가 하면,

금세라도 쥐를 잡을 듯 잔뜩 옹송그린 채 튀어나갈 준비 태세중인 고양이도 있었다.

풀밭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눈알을 뒤룩뒤룩 굴리며 펑퍼짐하게 퍼진 녀석들이 다섯 마리, 고양이 오형제다.

그러고 보니 왠지 올빼미를 닮은 고양이 두 마리.

그리고 각기 특징있는 색깔과 사이즈를 보여주는 세 마리.

찻집 어느 한 켠에는 몸을 동그랗게 만 채 새근거리며 잠들어버린 고양이도 한 마리 숨어있었다.

그리고 약간 무서운 표정을 지은 채 기둥 위에 올라가 손님들을 맞이하는 마중냥이도 한 마리.

뭐, 사실 약간 '고양이를 찾아라'라는 핫 검색어에 편승해 낚아 보려는 불순한 의도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조만간 포스팅하려던 타이완 주펀의 고양이 찻집 풍경.

이 녀석은 이 포스팅의 알파요 오메가.



파란 옷의 경비가 넥타이도 늘어뜨린 채 제대로 누워 자는 중이다. 입에서부터 뿜어나오는 zzzz 장난기

어린 모양새라거나, 필시 뒷춤에 꼽아놓았을 신문지를 깔고 누운 모습이라거나, 들숨날숨에 맞추어 위아래로

오르내리는 퉁퉁한 배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는 것 같다.

기계가 잠시 서비스를 중단한다는 메시지 옆에서 누워자는 이 유머러스한 그래픽, 타이완의 한 ATM기 앞에서

카메라를 들고 잠시 어슬렁거렸던 이유.





타이페이 서북쪽으로 달려나가면 단수이가 있다. '말할 수 없는 비밀'을 찍은 항구도시라고 해야 하나. 바다를

접한 조그마한 마을. 단수이항을 따라 걷다가 떨어지는 해를 잡았다.

배를 끌어 바다로 내려가는 길, 반짝반짝 비늘처럼 햇살이 깔렸다.

육각별 모양으로 빛나는 태양, 자잘하게 출렁이는 잔잔한 바다에 맞춰 너엄실대는 조각배 몇 척.

어쩌다가 햇살이 붉고 둥근 구체로 사진 안에 들어왔을까.

한가롭고 평온하던, 그렇지만 역시 무지 덥고 습했던, 그렇지만 또 바닷바람 덕분에 더위의 팔할은 날려버렸던

곳, 반짝반짝 단수이의 해변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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