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의 '국부' 장개석을 기념하기 위한 중정기념당의 메인 건물은 바로 요것, 커다란 팔각 정자처럼 생긴

하얀색 대리석 건물이다. 그렇지만 그 양쪽에 황금빛과 붉은빛으로 위풍당당한 콘서트홀과 공연장이 버티고

섰을 뿐 아니라 입구참엔 그럴듯한 정문이 서 있어서 조금은 위축되어 보이기도 한다.

우선 이게 중정기념당에 들어서는 입구, 현판에는 '자유광장'이라고 쓰여 있다. 천수이볜 전 총통이 몇년 전

대만에서의 최초 평화적인 여야간 정권교체를 이루고 나서 시행했던 일종의 '역사바로세우기' 일환으로

애초 '중정기념당'이라던가 '장개석광장'이라던가, 적혀 있던 현판을 내리고 '자유광장'으로 개명했다고 했다.


뭔가 이상하다 싶어 보다보니, 다른 일반적인 한자 현판들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적히기 마련인데 이 현판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적혀 있다는 점이 뭔가 생뚱한 느낌을 주고 있던 것이었다.

중정기념당에 올라 돌아보면 양쪽에 커다란 건물 두 채가 버티고 섰고, 잘 꾸며진 정원과 제법 큰 '자유공원'의

앞마당이 보이는 거다.

양쪽 건물은 거의 비슷해 보이면서도 사실 조금씩 모양새가 다르다. 한쪽 건물은 음악당, 콘서트나 연주회가
 
열리는 공간이라고 한다.

중정기념당을 에워싼 건물 유리벽에 비치는 으리으리한 처마의 그림자.

또 하나의 건물은 오페라니 뮤지컬이니, 그런 공연을 위한 공간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양산을 하도 많이 쓰고 다녀서, 가끔은 비가 오는 게 아닌가 하고 헷갈리기도 했다. 특히 지하철을

내려서 지상으로 올라올 때, 사람들이 지하철역 입구에서 일제히 양산을 펼치는 장면을 보고 비가 오는가 싶어

당황했던 기억.

북경 자금성에 갔을 때도 그렇고, 서울의 궁들을 돌아볼 때도 그랬지만 왕이나 황제를 위한 주된 건물의 가운데

길은 아무나 함부로 밟을 수 없게 해 놓았다. 용을 조각해 두거나 여기처럼 이렇게 커다란 태양을 조각해두어

정면으로 바로 걸어들어올 수 없게 만든 거다.


저 태양 문양은 타이완의 국기인 '청천백일기'에 등장하는 그것과 같다. 파란 하늘의 하얀 태양. 그리고 땅에는

시뻘건 피가 흐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타이완의 청천백일기.

생각보다 계단은 높았다. 멀리서 보았을 때는 양옆 금빛 건물에 다소 눌려보인다 생각했는데, 가까이서 보니

크기도 생각보다 많이 크고 높기도 높다. 고궁박물관에서 보았던 것과 비슷한 무늬의 하얀 계단 기둥들에

난반사되는 햇빛에 눈이 부시다.

문득 나타난 꺼뭇한 동굴 안, 뭔가가 웅크리듯 앉아 있었다. 하얗고 강렬한 태양에 길들었던 시야가 좀체 내부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이, 슬리퍼 신은 사람은 들어갈 수 없다는 표지만 크게 보였다. 잠시 고민하다가, 쪼리는

슬리퍼랑 다르니까, 라 스스로 정당화하며 동굴 속으로.

중정기념당의 천장, 바깥에서처럼 하얀 태양이 내리쬐이고 있었다.

이 아저씨가 장개석, 혹은 장제스, 혹은 중정. 일제와 맞서 싸우기보다 공산당을 먼저 패퇴시키겠다면서도

부정부패를 방관하여 민심을 잃고 급기야 중국대륙을 잃어버린, 타이완까지 쫓겨들어와 권위적 독재체제를

십여년간 구축한 인물. 20세기 초중반의 격변기를 지나면서 개인적으로야 참 극적인 삶을 살았겠지만, 대부분

피식민지의 처지에 있던 지역들의 정치지도자들의 궤적과 딱히 다를 바 없기도 하다. 이승만처럼.

그에 대해 타이완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우리나라랑 비슷하게 천수이볜의 집권 몇년동안 심각한

내부갈등과 정치적 지향논쟁이 있었던 만큼, 이제 '반공'과 '친미'를 국시로 삼던 이 나라도 조금씩 과거사를

균형잡힌 시각으로 보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을지 모른다. '국부'라는 모호하고 위압적인 칭호 뒤에 가려진

사실들을 발굴해 내고, 좀더 냉정하고 객관적인 평가가 이뤄질 수 있을 만큼의 시간이 지났지 싶다. 더구나

남북 관계와는 달리 중국과 대만간의 양안 관계는 천천히, 그렇지만 확고한 우호관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으니

어쩜 우리보다 훨씬 나은 상황이다.

중정의 커다란 동상을 지키고 있는 병정놀이 중인 군인. 워싱턴의 링컨도 그렇고, 타이페이의 장개석도 그렇고

다들 너무 크다. 그들은 너무 크고 으리으리한 건물 한 가운데 딱 버티고 서서 부리부리한 눈으로 사람들을

내려다 보는 거다. 게다가 그들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장치들, 이런 호두까기 인형같은 병정들과 반짝이며

내려꽂히는 후광같은 조명들, 먼지 하나 없이 말끔하고 차가운 질감의 대리석, 기침소리조차 조심스럽게

내뱉게 만드는 그 공간의 깊은 침묵과 아스라한 공명 소리까지. 아, 양쪽으로 거대한 국기를 둘둘 말고 있는

데코레이션도 빼놓을 수 없다.

그래서, 그렇게 높은 곳에서, 그렇게 커다란 몸집을 하고, 주위의 온갖 것들이 다 당신만을 떠받드는 공간에

안전하게 보존되어 있으니 참 좋겠수. 그냥, 그런 정치인들의 거대한 동상들이 조금은 눈높이를 맞추고

소탈하게 내려와 있으면 안 될까 싶어서 괜히 장개석에게 툴툴거려 보는 거다.

돌아나오는 길, 현판까지 대리석인가 보다. 햇살이 내리쬐이자 거울처럼 말갛게 빛나며 처마끝을 반사시켰다.

왠지 씁쓸했던 거대 건축물. 누군가를 높이고 금칠하기 위한 기색이 너무 역력해 보였다. 그가 실제로 그런

대접을 받을 만한지 아닌지를 차치하고라도, 그냥 누군가를 그렇게 추앙하고 떠받드는 것 자체가 불편했던
 
거다. 장개석=타이완=국가=숭배의 대상, 따위 그가 의도했을 도식이 거칠게 머릿속에 막 떠올랐다.

장개석은 '신생활운동'을 전개해 국민들에게 유교적 가치를 보급하는데 힘썼다고 한다. 일종의 새마을운동같은
것이었을까, 그래서인지 이 '중정기념당'으로 통하는 조그마한 문들은 대효(大孝), 대충(大忠) 따위의 이름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타이완 거리에는 지금도 여전히 '신의信義로', '인애仁愛로', 심지어, '애국愛國로'같은

지명도 있어서 완전 경악하고 말았었다. 손발이 오글오글.

그들이 이공간을 어떤 의도로 기획했던 간에, 타이완을 어떤 국가로 구상했던 간에, 젊은이들은 모여서 춤추고

웃는다. 뭔가 수화로 된 공연을 연습중인지 손으로 수인을 짚거나 쉼없는 제스쳐를 펼쳐보이고 있었다.

중국과 한국, 일본의 단청과 처마의 기울어짐에 대해서는 중고등학교 때 '국어' 시간 때 몇 가지 지문들을

읽으며 가늠할 수 있게 된 거 같은데, 정말이지 딱딱한 녀석들이다. 살짝 올라가려다 말았다는 느낌.

경직된 그만큼 완고해 보이기도 하고, 강건한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하고. 뭔가 호락호락해 보이지는 않겠다는

결기가 꽉 차 보이는 거다.

돌아나오는 길, 아까는 없었는데 음악당 옆에서 붉은 기를 휘두르며 깃발춤을 연마중인 아이들이 보였다.

묘하게도 펄럭이는 붉은 기를 보면 일단 가슴부터 뛰고 만다. 우와..멋지다 이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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