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고> 임산부나 노약자, 혹은 어젯밤 묘한 짓을 하여 심신이 미약해진 젊은이의 건강과 기분을 해칠 수 있는

사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화시제 시장, 대만의 유명한 하고 많은 야시장들 중에서 뱀이나 자라의 해체쇼를 볼 수 있는 곳이라는 말에

두근두근하며 찾았던 곳이다. 여차하면 이번 여행의 목적 중에 하나였던 '뱀탕'을 시음해볼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실내로 이어져 있는 시장통 골목은 뭔가 다른 스린이나 궁관 야시장과는 또 다른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뭔가

야시시한 상점들도 보였고, 마사지샵하며 횟집하며, 그리고 무엇보다 공간에 가득한 살풋 비린내음. 단순히

기분 탓이라고 생각하기엔 냄새가 너무도 확연히 와닿았고, 점차 냄새의 실체에 접근하며 확인할 수 있었다.

뱀을 커튼처럼 가게 앞에 늘어뜨려놓았다. 다른 가게들도 이미 몇 개를 지나쳤지만 사진 촬영을 허가해 놓은

곳은 여기가 유일했다. 비린내가 확 와닿는 뱀커튼들. 옆의 촘촘한 철망에는 뭔가가 쉼없이 꾸물거리고 있었다.

게다가 커튼으로 걸린 녀석들은, 피와 함께 내장을 모두 뱉어내고 있었던 거다. 밑에 놓인 '빠께쓰'에는 핏물과

함께 뱀의 이런저런 장기들이 흐트러져 있었다. 기-일다란 뱀의 몸통에 그어진 기-일다란 칼자국, 그리고 그

기-일다란 몸통을 타고 흐르는 핏물.

뱀들이 두세마리씩 끈에 목이 감긴 채 주렁주렁.

뒤의 티비에선 언젠가 했을 해체쇼를 녹화해선 무한반복으로 틀어놓고 있었고, 앞에선 반짝거리는 뱀가죽에

구슬처럼 빛나는 뱀눈알이 콕 박힌 채 흔들거리고 있었고.

뱀들이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떻게 보면 뱀의 징그러운 모습을 극대화시켜서 보여주는 듯 하다. 뭐가

되었던 신체를 저렇게 칼질하고 내걸어두면 이뻐보일리야 없지만, 왠지 목졸라 죽인 듯한 그 살벌한 분위기에

더해서 더욱 적나라한 뱀의 표정이랄까, 게다가 쫙 찢어진 입은 살풋 비웃음마저 머금고 있는 듯 해서 더욱.

철망 안에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녀석들. 왠지 이 녀석들은 죽음 앞에서도 초탈할 거 같다. 포유류가

파충류, 특히 뱀 앞에서 느끼는 본능적인 두려움은 어느 문화권에선 경외감과 존경심을 낳았고, 다른 문화권에선

혐오감과 배척을 낳았던 거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지나고, 싸구려스러운 불빛 뭉테기들이 천장에서 흘러내리고, 사진에 찍히지 않는 뱀의

비릿한 향취가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뱀탕은 도저히 시도해볼 엄두가 나지 않아 패스.

그 와중에도 눈이 돌아가는 섹스돌샵, 온갖 종류의 성인 장난감들을 팔고 있었지만 좀처럼 들어가 구경할

엄두도 못내게 만드는 환경이었다. 그저 愛神이라는 간판 제목이 좀 웃겨서 웃었을 뿐, 이내 지나쳐 버렸다.

그리고 또다른 샵. 반투명한 비닐 커튼을 드리웠지만 안에 들어가지 않고도 대충 뭐가 어디에 진열되어 있는지,

저건 어디에 어떻게 쓰는 물건인지 다 알겠더라. 내 상상력이 탁월한 걸까 아님 그것들이 워낙 적나라하게

생겼던 걸까.

아케이드를 지나 밖으로 나오니 조금 살 만하다. 탁하고 비릿한 공기에서 해방되니 야시장 특유의 기름내와

온갖 음식냄새가 뒤섞인 그 오묘한 내음조차 향기롭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몇 걸음 가지 않아 다시 만난 뱀아저씨. 담배를 척, 하니 꼬나물고 무려 '소녀시대'의 댄스에 맞춰

뱀을 주물럭주물럭, 완전 기력이 쇠한 듯한 뱀을 억지로 치켜세우고 있었다.

뒤의 모니터에선 소녀시대가 상큼발랄한 미소를 작렬하며 귀엽귀엽 댄스 중이시고, 앞에서는 담배를 꼬나문

아저씨가 투닥투닥 뱀을 훑으며 엉거주춤 댄스. 이건 좀 굉장히 부조화스럽기도 하고 부조리스럽기도 하고.

무엇보다 소녀시대 팬클럽에라도 급히 알려야 할 일이 아닌가 싶은데.ㅋ '소시가 뱀쇼 배경화면으로 쓰인대요'




음식의 천국 대만에서 술 한잔 안하는 건 너무 가혹한 일이다.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두개 사고, 맥주를 하나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컵라면은 아무래도 내국인용인지 영어 설명도 아주 박하게 찔끔 있어서, 대충 그림보고

맛을 그려보고, 번체자로 씌여진 한자 대충 눈치로 추측해보고.

그래서 요렇게 두 개, 하나는 왠지 길거리에서 많이 본 장면을 그려넣고 있어서, 다른 거 하나는 뭔가 그릇용기를

두 개나 쓰며 조리하는 거 같아 보이길래 풍성해 보여서.

내부에 들어간 건 비슷하다. 분말 스프 하나랑 뭔가 특제 소스 하나. 뭔가 했더니 하얗게 굳어있는 돼지기름,

아마도 국물 위에 맛있게 둥둥 떠있는 돼지기름을 낼 모양인데, 아무리 그래도 하얗게 굳은 돼지기름을 찍찍

봉지에서 짜내는 건 좀...쉽지 않았고 보기에도 좀...

다른 하나는 뭐랄까, 짜파게티와 비슷해 보이는 춘장 소스에 일반적인 분말 스프. 평이한 컵라면이었다.

그리고 맥주. 대만에 왔으니 대만 맥주를 마셔야겠다 싶어서, 타이완피조우. 무덥고 습해서 무지하게 끈끈한

하루를 보냈는지라 맥주 한 잔이 그야말로 '션하게' 바닥나고 말았다.

<막간을 이용해 배워보는 타이완의 음식 매너>

나쁜예) 음식을 먹기 전이나 먹는 중 젓가락을 이렇게 용기에 꽂아 놓거나 걸쳐 놓는 것은 비매너.

(국물에 둥둥 떠 있는 기름들은 아까 하얗게 굳어 있던 그 돼지기름이 녹은 것,  확실히 대만/중국 음식은

기름이 많이 들어가 기름진 느낌이 강하다. 심지어는 컵라면에까지.)

좋은예) 음식을 먹기 전이나 먹는 중에는 늘 이렇게 똑바로 젓가락을 걸쳐두어야 한다고 한다.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젓가락 아랫부분이 국물에 담겨있지 않도록 하려는 위생상의 배려 아닐지.

그리고 용기를 두 개나 쓴다며 날 두근거리게 만들었던 일종의 짜장면은 생각보다 초라한 행색, 짜장소스가

좀 많이 부족하달까, 맛이 심심하진 않은데 보기에 너무 노랗기만 해서 아쉬웠달까. 그렇지만 술안주로는

손색없던 대만의 컵라면들.





(요약) 고궁박물관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 중 하나, 박물관에 위치한 찻집에서 맛보았던 황제를 위한 다과 세트.

고궁박물관 가는 길, 아무리 한국이 요새 폭염이니 뭐니 하지만 대만에는 비길 바가 아니다. 훨씬 뜨겁고, 훨씬

습하다. 작렬하는 태양 밑에서 허둥대다가 하얗게 찍어버린 사진. 버스들 뒤에는 운전사 이름이 번호판처럼

별도로 붙어있다. 오른쪽 밑부분, 하얘서 잘 안 보이지만 실제로는 눈에 아주 잘 띄인다는. 난폭운전이나 사고

발생시 아주 유용할 거 같다.

드디어 도착, 고궁박물관. 장제스가 이끌던 부패하고 나약한 군대가 마오쩌둥의 붉은 군대에 휩쓸리고 나서,

대륙 본토에서의 패배가 거의 기정사실화되던 즈음 전례없는 군사작전이 펼쳐졌다. 청나라 때부터 북경의

자금성에 수집되었던 대규모의 엄선된 중국 국보급 유물들을 대만으로 옮기는 작업. 수십만점의 회화, 도자기,

조각, 서적 등 귀한 유물들이 전쟁의 북새통 속에서도 무사히 이 곳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사실 이건 대만 쪽, 장제스 쪽의 시각이고, 중국 쪽, 마오쩌둥 쪽의 시각으로 따지자면, 그야말로 중국 문화의

정수를 송두리째 빼앗겨 버린 셈이다. 지금 중국에 남아있는 유물들은 청나라 때부터 누대에 걸친 정선 작업을

통과하지 못한 B급 유물이 대부분이라 할 정도니까. 고궁박물관은 그런 박물관이다.

마치 타지마할처럼 온통 하얀 계단을 꾸역꾸역 올라가야 고궁박물관의 본관에 도착한다. 그 와중에 계단의

장식이 눈을 잡아끌었다. 구름 모양인지 십장생의 하나인 영지버섯의 모양인지. 저 너머로는 야자수가

수양버들처럼 휘영청 잎새를 드리우고 있었다.

박물관 내부는 총 3층, 내부는 거의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서 더욱 꼼꼼이 살펴보아야 했다. 사진 따위에 의지해

기억을 남겨둘 수 없으니, 하나하나 눈에 마음에 새겨두겠다는 결의로 근 반나절을 돌아보았다. 특히나 도자기,

그리고 황제의 장난감으로 특수 제작되었다는 보석함이니 장식품들이 굉장히 인상적이어서 기꺼이 많은 시간을

들여 세심하게 관찰하게 되었다.

청대의 도자기와 현대의 도자기 질감을 직접 만져보고 비교해 볼 수 있도록 마련해둔 코너에서 마주쳤던 '조각'.

이건 무려 네 자의 한자가 하나로 합쳐져 있는 글자. 중국이나 대만의 상점에서 재운을 기원하는 뜻으로 종종

걸어두는 장식품이라 하는데, 招財進寶, 초재진보. 재물을 부르고 보배를 나오게 하려는 뜻이 담겼다 한다.

그리고 박물관 내의 화장실 표지. 남여화장실이 바로 옆에 나란히 붙어있기도 했지만, 별도로 여자화장실만

좀더 마련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일인당 '용무'에 필요한 공간이 남자보다 여자가 넓게 필요하기 때문에 같은

갯수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세심한 조치가 아닐까 싶었는데, 종종 급한 남자들이 여자용 화장실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나 보다.

박물관 나오는 길, 유리로 만들어진 자동문에 마치 자금성의 붉은색 대문처럼 오돌토돌 징이 박혀 있었다.

본관 말고도 별관도 있고, 행정용 관리관도 따로 있고. 별관에서는 지금 베트남 특별전시를 열고 있었지만

그것까지 돌아보기에는 다리도 아프고 시간도 넘 많이 걸릴 듯 하여 패스.

대신에 좀 쉴 겸, 박물관에 딸려 있는 찻집에 들어갔다. 찻집 이외에도 고궁박물관을 감싸고 잘 조경되어 있는

정원과 정자 등도 있어서 어딜 갈까 잠시 고민했지만 워낙 더워서 에어컨이 절실했던 터라 망설임없이 실내로.

찻집 내부. 황실에서 즐기던 다과 세트를 맛 볼 수 있다는 곳이라더니, 실내 인테리어가 꽤나 화려하고 세련됐다.

모란차를 시켰더니 투명한 유리잔에 조그마한 잎새가 꽁꽁 뭉쳐진 덩어리 하나를 툭 떨어뜨린다. 정말이지

건조한 느낌으로 툭. 그리고 유리잔 주둥이가 찰박이도록 뜨거운 물을 뽈뽈뽈 부어주었다.

뭉글뭉글뭉글, 곧바로 반응하기 시작하는 덩어리. 바싹 말랐던 만큼 급했던 거다. 뭔가 잔뜩 뒤틀고 꼬깃꼬깃

말려있던 것들이 한껏 기지개키며 일어서고 있었다.

어느새 유리잔을 꽉 채워버린 꽃 한 송이. 초록색 꽃받침과 분홍색 꽃잎, 그리고 위풍당당한 수술까지 꽃송이

하나가 완연하게 피어올랐다. 투명했던 유리잔 속 물빛도 은은한 금색으로 바뀌었고 무엇보다 향기. 꽃향기.

모란차 말고 일반 녹차류를 시키면 이렇게 단정한 다기에 담겨 나왔다.

그리고 드디어 메인, 다과 세트. 정말 그럴 듯한 쟁반-이걸 뭐라 불러야 할지조차 모르겠지만-에 담겨 나왔다.

3층, 2층, 그리고 2층짜리 쟁반이 제각기의 높이와 공간을 확보한 채 이쁘게 빚어진 다과를 사뿐히 올린 채다.

콩으로 빚어진 오리 한 마리. 물결문양 날개깃이 새겨진 날개하며, 우스꽝스럽게 벌어진 부리하며. 검은깨로

콕 눌러박은 귀여운 눈매하며.

그리고 호박모양으로 빚어진 떡, 호박색도 딱 리얼하지만 그 위에 호박 줄기를 묘사하려고 올려둔 건포도는 참.

고궁박물관의 유명한 전시물 중 하나가 황제의 장난감이라는, 옥을 빚어 만든 배추다. 아마도 이 전시품을

흉내내어 만든 게 아닌가 싶은, 떡으로 빚은 배추.

그리고 복숭아 모양으로 빚어진 만두..라고 해야 하나. 호빵이라고 해야 하나. 비록 좀더 허술하고 치졸하게

만들어진 것일지언정 복숭아 모양의 호빵은 그리 신기한 편은 아니지만, 확실히 맛은 달랐다.

그리고 젤리 형태로 만들어진 다과. 투명하면서도 굉장히 탄력있는 젤리였는데, 의외로 맛은 어쩐 영문인지

굉장히 시원하다고 해야 하나. 독특한 식감이었다.

그리고 1층에 담겨 있던 다른 다과. 이 아이는 좀 평범한 형태의 떡이었다. 아무래도 1층에 있는 것보단

2층에 있는 것들이 화려하고, 그 중에서도 3층에 있는 오리모양으로 빚어진 다과가 최고였지 싶다.

또다른 떡, 카카오 가루를 아낌없이 뿌려넣은 떡이었는데, 고명이 평범한 팥이 아니라 검은쌀로 만들었다는

점이 특이했다.

찻집 천장에 달린 조명도 자세히 보니 고궁박물관의 다른 유명한 전시품을 따라 만든 모양이다. 고대한자가

조각된 청동종의 형태가 천장에 주렁주렁.

이쁘게 빨간색 파란색 끈으로 매만져진 하얀 종지들.

여전히 햇살은 미친듯이 내려쬐고 있었고 남국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야자수 한 그루가 박물관 앞 정원에

커다란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지만, 박물관을 한 바퀴 돌고 황제의 다과를 맛보고 났더니 뭔가 세상이 색다르다.

70만점이 넘는 소장품을 갖고 있다는 고궁박물관, 70만점이면 루브르 박물관이 가진 소장품의 배가 넘는 숫자,

게다가 그 퀄리티가 중국 오천년 역사의 정수를 품고 있는 수준이니 더 보탤 말이 없다. 그리고 그 전시품들의

흔적이 여기저기 녹아있는 찻집에서 그 자취를 찾아보며 차 한잔 여유롭게 즐기는 여유까지 부려보는 것,

대만에서 꼭 고궁박물관을 들러야 한다는 사람들의 조언에 나 역시 한 표.





대만 가는 길, 구름이 두껍고 보드라운 크림처럼 비행기 아래로 깔렸다.
 
구름 위로 올랐으니 굉장히 하늘 높이 올라 있는 셈이지만 여전히 달은 멀고도 높다.

파랗게 나염한 천에 손톱으로 폭, 선명히 자국을 남긴 듯한 손톱달이다.

파란 하늘, 이라고 뭉개버리기엔 그 변화무쌍한 색감과 분위기가 너무 생생하다. 더구나 순식간에 휙휙 형태를

바꾸며 능란하게 접근해 오는 그 육덕진 구름들의 향연이란.






생각보다 그녀의 사랑은 많은 것들을 감수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야기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을 극적인 반전에 공을 들이기보다는, 둘의 마음이 얼마나 깊고 단단한지,

둘의 사랑이 얼마나 애절하고 가슴시린 것인지를 느끼도록 하려 애쓰는 것 같다.



그래서, 대만에 간다.

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왠지 멋져 보이지 않나. 지난 번 영화 '청연(Hear you)'에 이어

'말할 수 없는 비밀' 이 두 편의 영화를 보고 대만이 가고 싶어져서 오늘 훌쩍 떠난다라면.


7/15-19, 대만 다녀오겠습니다~* 놀러가는 거여요.ㅎㅎㅎㅎ







영화가 시작되고 나서 수분간, 온갖 세상의 소음들이 삐집고 나오는 그 틈바구니에서 꽃처럼 만발하던 수화들,

처음엔 아무 대사 없이도 이렇게 흡인력있게 당겨낼 수 있다는 데에 마냥 놀랬고, 다음엔 말로 뱉는 대사들 대신

수화만으로도 참 많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했다.


사실 수화, '손으로 하는 말'이라 이해하는 건 조금 어폐가 있는지도 모른다. 수화를 할 때 둘은 서로의 손모양만
 
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표정, 입모양에 몸짓까지 모두 섬세하고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거다. 그들의 눈빛,

입모양, 살짝 스쳐가는 빛과 그늘, 그런 뉘앙스들을 모두 잡아낼 기세로, 수화는 단지 손짓을 이용한 대화가

아니라 거의 완전소통을 지향하는 무엇과도 같다. 더듬이 두개를 완전히 포갠 채 서로의 의식 전체를 온전히

공유하는 개미의 그것과 같은 무엇 말이다.


쉽게쉽게 뱉어지고 그 누구의 귀에도 가닿지 못하는 말들이 얼마나 많은지. 눈을 마주치지 않고도, 상대를

등진 채로도 던질 수 있는 말이란 건 얼마나 허랑한지. "그럼 여태 너희는 만나면서 무슨 이야기를 한 거야?"

그의 아버지가 어이없어 하며 물었고, 그래서 그녀와 그는 말한다. "그동안 우리는 말이 아니라 손으로 했어요."

손으로, 온몸으로, 그들은 이야기를 나누고 사랑한다.


그러고 보면 영화 내내 한 번도 서로에게 전하지 못했던 말, '사랑해'. 자그맣고 귀여운 반전이 지나고 난 후에도

그들은 말할 뿐이다. "워 시환 니". 난 니가 좋아. 그 말로도 충분한 거다. 굳이 뭉게구름같은 수사와 여름철

소낙비같은 고백 말고, 이미 그들은 손으로, 눈으로, 입모양으로, 온몸으로 서로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으니까.



p.s1. 이런 달콤하고 아름다운 영화를 만나면, 잠시나마 심술궂은 시니컬함이 잠잠해지고 만다. 자주는 아니라도

가끔씩은 갱장갱장히 이런 영화가 땡기는 이유.


p.s2. 영화에 대해 아쉬운 점은 딱 하나, '聽說'이란 (아마도) 대만 타이틀을 그대로 써버린 무성의한 제목, '청설'.

차라리 영어제목을 쓰는 게 어땠을까. hear me. 내 목소리를 들으라는 것도, 내 말만 들으라는 것도 아니에요.

내 모든 것을, 내 모든 뉘앙스를 가능한 남김없이 들어주길. 그런 느낌의 영어 타이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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