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하다. 작렬하는 태양 밑에서 허둥대다가 하얗게 찍어버린 사진. 버스들 뒤에는 운전사 이름이 번호판처럼
별도로 붙어있다. 오른쪽 밑부분, 하얘서 잘 안 보이지만 실제로는 눈에 아주 잘 띄인다는. 난폭운전이나 사고
발생시 아주 유용할 거 같다.
대륙 본토에서의 패배가 거의 기정사실화되던 즈음 전례없는 군사작전이 펼쳐졌다. 청나라 때부터 북경의
자금성에 수집되었던 대규모의 엄선된 중국 국보급 유물들을 대만으로 옮기는 작업. 수십만점의 회화, 도자기,
조각, 서적 등 귀한 유물들이 전쟁의 북새통 속에서도 무사히 이 곳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정수를 송두리째 빼앗겨 버린 셈이다. 지금 중국에 남아있는 유물들은 청나라 때부터 누대에 걸친 정선 작업을
통과하지 못한 B급 유물이 대부분이라 할 정도니까. 고궁박물관은 그런 박물관이다.
장식이 눈을 잡아끌었다. 구름 모양인지 십장생의 하나인 영지버섯의 모양인지. 저 너머로는 야자수가
수양버들처럼 휘영청 잎새를 드리우고 있었다.
기억을 남겨둘 수 없으니, 하나하나 눈에 마음에 새겨두겠다는 결의로 근 반나절을 돌아보았다. 특히나 도자기,
그리고 황제의 장난감으로 특수 제작되었다는 보석함이니 장식품들이 굉장히 인상적이어서 기꺼이 많은 시간을
들여 세심하게 관찰하게 되었다.
이건 무려 네 자의 한자가 하나로 합쳐져 있는 글자. 중국이나 대만의 상점에서 재운을 기원하는 뜻으로 종종
걸어두는 장식품이라 하는데, 招財進寶, 초재진보. 재물을 부르고 보배를 나오게 하려는 뜻이 담겼다 한다.
좀더 마련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일인당 '용무'에 필요한 공간이 남자보다 여자가 넓게 필요하기 때문에 같은
갯수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세심한 조치가 아닐까 싶었는데, 종종 급한 남자들이 여자용 화장실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나 보다.
그것까지 돌아보기에는 다리도 아프고 시간도 넘 많이 걸릴 듯 하여 패스.
정원과 정자 등도 있어서 어딜 갈까 잠시 고민했지만 워낙 더워서 에어컨이 절실했던 터라 망설임없이 실내로.
건조한 느낌으로 툭. 그리고 유리잔 주둥이가 찰박이도록 뜨거운 물을 뽈뽈뽈 부어주었다.
말려있던 것들이 한껏 기지개키며 일어서고 있었다.
하나가 완연하게 피어올랐다. 투명했던 유리잔 속 물빛도 은은한 금색으로 바뀌었고 무엇보다 향기. 꽃향기.
3층, 2층, 그리고 2층짜리 쟁반이 제각기의 높이와 공간을 확보한 채 이쁘게 빚어진 다과를 사뿐히 올린 채다.
콕 눌러박은 귀여운 눈매하며.
흉내내어 만든 게 아닌가 싶은, 떡으로 빚은 배추.
만들어진 것일지언정 복숭아 모양의 호빵은 그리 신기한 편은 아니지만, 확실히 맛은 달랐다.
굉장히 시원하다고 해야 하나. 독특한 식감이었다.
2층에 있는 것들이 화려하고, 그 중에서도 3층에 있는 오리모양으로 빚어진 다과가 최고였지 싶다.
점이 특이했다.
조각된 청동종의 형태가 천장에 주렁주렁.
커다란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지만, 박물관을 한 바퀴 돌고 황제의 다과를 맛보고 났더니 뭔가 세상이 색다르다.
게다가 그 퀄리티가 중국 오천년 역사의 정수를 품고 있는 수준이니 더 보탤 말이 없다. 그리고 그 전시품들의
흔적이 여기저기 녹아있는 찻집에서 그 자취를 찾아보며 차 한잔 여유롭게 즐기는 여유까지 부려보는 것,
대만에서 꼭 고궁박물관을 들러야 한다는 사람들의 조언에 나 역시 한 표.
'[여행] 짧고 강렬한 기억 > Taiwan-2010'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반짝반짝 비늘처럼 햇살이 깔린 단수이의 해변을 걷다. (2) | 2010.07.22 |
---|---|
화시제 시장, 뱀쇼 배경화면은 소녀시대. (0) | 2010.07.22 |
달과 별을 조심하라는 타이완의 전철타기. (0) | 2010.07.22 |
타이완 맥주에는 타이완 컵라면 안주가 최고. (2) | 2010.07.21 |
비행기를 타고도 달은 멀었다. (2) | 2010.07.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