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고시공부하던 친구가 절박하게 물어왔다, 자기소개서는 어떻게 써야 하냐고.

돌아보니 내가 취업준비생이라는 약하디 약한 자의 입장에서 사십여곳에 자기소개서를 써제끼던 때가 벌써

일년가까이 지나고 있었다. 무슨 '자기소개서의 달인'도 아니고 친구녀석에게 뭐라 확신을 줄 만큼 정답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정답이 아니라 기본자세만 알려준다는 심정으로 몇가지 팁을 줬다.

자기소개서 쓰기를 집짓기에 비긴다면, 그래서 이런 과정을 탄탄히 밟아간다면, 최소한 짚으로 만들어 금방

비바람이 새고 무너져내리는 집 정도는 피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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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짓기 전 벽돌 모으기 >

1. 해당 기업에 대한 홈페이지 자료 모으기

해당 기업의 홈페이지를 뒤져서 인재상, 비전, CEO인사말에서 강조되는 공통점을 추출해 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몇번에 걸쳐 반복되거나 변주되는 단어들을 그대로 벽돌처럼 자기소개서에 박아넣을 때, 인사

담당자들은 지원자가 자사에 대해 어느 정도 공부해왔구나, 친숙하구나 라고 느끼지 않을까. 예컨대

대부분의 기업이 '고객만족', '고객지향', '고객제일' 등의 단어 중 한 단어만을 골라 죽어라고 홈피에

도배해놓는 행태를 보인다. 그게 그말이지만, 그 기업의 어법이라거나 jargon처럼 쓰이는 '빈출단어'를

활용한다면 아무래도 읽는 사람의 눈에 훨씬 익어보이는 게 인지상정일 게다.



2. 해당 기업, CEO에 대한 기사자료 모으기

다음이나 네이버 같은 검색엔진에 해당기업명 혹은/그리고 CEO의 이름을 키워드로 해서 대략 3-6개월치

신문기사를 찾아본다. 기업이 처한 시장상황이나 이슈, 그리고 최근 기업이 공표한 전략이나 가치에 대한

정제된 내용과 어구를 모아 볼 수 있으며, 이러한 자료들을 모아두면 특히 실무면접이나 CEO 면접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CEO들도 아무래도 본인의 기사는 찾아보게 될 테고, 특히나 기사가 자신에게

우호적이거나 넓은 지면을 할애해 주었다면 뇌리에 남아있을 터, 그러한 기사에서 건드렸던 이슈나

칭찬거리들을 모아두는 건 자기소개서와 면접을 위한 다목적용 벽돌을 구워두는 셈이다.



3. 자신의 이력을 연대기 형태로 정리해 두기

자신의 삶에서 어떠한 부분을 어떻게 떼어내서 자기소개서에 써야할지는, 사실 지원하는 기업의 성격,

업태에 따라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자신의 경험들을 연대기순으로 정렬시키고

각 이벤트들에서 끌어낼 수 있는 가치라거나, 설득력있는 '이야기꺼리'들을 미리 브레인스토밍해둔다면

본격적으로 집을 짓기 시작할 때 시간절약에 큰 도움이 된다. 물론, 자신의 경험들을 어떠한 방향으로

끌고 가서 어떠한 장점과 성격을 드러낼지는 어느정도 글쓰기에 달려 있다.

예를 들어 대학교에서 동아리장을 맡으면서 어떤 행사를 치뤄낸 경험이 있다면, 거기에서 책임감, 융화력,

리더십, 혹은 팔로어십, 높은 성취욕, 근성 등등 포인트를 잡아 이야기를 풀어내는 건 자기 몫인 게다.

어쨌든 연대기 형태로 정리된 경험들은 언제든지 펼쳐보고 필요한 부분을 떼어서 써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는 꼭 필요한 작업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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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 잡기 >


1. 질문의 포인트 잡기

지원동기, 입사 후 계획, 입사 후 포부, 10년후 나의 모습, 자신의 장점 및 단점, 자기 소개, 가정환경 및

성장배경, 이런 식으로 단어로 제시되는 질문들이 있고, 귀하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과

그 이유(가족제외, 2명)를 설명하시오, 무엇을 성취하고 싶은지를 기술하시오, 재학중 경험한 과외활동에

대하여 기술하시오, 이렇게 문장으로 제시되는 질문들이 있다. 어떤 경우던 올바르게 이해하고 답한다면

크게 문제될 거야 없지만, 이럴 때 좀 고민을 하게 된다.

"3번, 지원 동기. 4번, 입사 후 포부. 5번, 입사 10년후 나의 모습."

지원동기와 포부, 그리고 미래의 모습..이란 건 사실 조금조금씩 겹치기 십상인 거라고 난 생각했고,

그래서 대체 어떻게 이걸 구분지어서 내용을 만들어야 할까는 늘 고민이었다. 정답은 없지만, 이럴 땐

스스로 질문의 포인트를 선명하게 구분지을 수 있게 자소서를 쓰는 게 관건이 아닐까 한다. 동기는 A,

포부는 B, 미래의 모습은 C로 명료하게 구분시킬 자신의 장점과 경험을 드러내야지, 동기는 A, 포부는 A',

미래의 모습은 A''가 되어서는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 제대로 답하지 않고 있다는 인상을 주지 않을까.


미리 자신이 이 질문에 어떤 자신의 장점을 부각시킬 것인지, 그리고 어떠한 경험을 쓸 것인지 키워드를

잡아두면 나중에 쓸 때 편했다. 쓰다보면 자칫 방향을 잃고 중구난방이 되기 쉬우니까 일종의 나침반

역할도 해주고. 사실 또 그러한 키워드가 나중에 소제목 달 때 그대로 녹아들어가기도 한다.



2. 벽돌 실어나르기

미리 홈페이지와 기사들에서 모아둔 벽돌들, 키워드와 문장들이 쓰임직한 질문에 옮겨놓는다. 생각해둔

키워드에 부합하는 자신의 경험과 이력도 역시 옮겨놓는다. 이제 이걸 어떻게 잘 얼기설기 엮어서

문장으로 곱게 땋아내릴지가 집짓기, 자기소개서 쓰기의 포인트가 되는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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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돌 쌓기 >

1. 자기소개서의 문장論

문장 자체가, 너무 길다거나 문학적, 혹은 현학적이면 좋지 않고 최대한 구체적이고 명료하게 쓰여야

할 거다. 기자직 같이 글빨로 먹고 사는 직업에 지원하는 것이라면 좀더 현란하고 유려한 글쓰기가

큰 관건이 되겠지만, 대부분의 기업은 담백하고 차분한 호흡의 글을 바라는 것 같았다. 어쩌면 그렇게

튀지 않고 무난한 지원자를 선호하는 기업들의 입맛이 반영된 건지도, 혹은 다소 위험을 무릅쓰기보다

안전하게 가려는 한없이 약한 취업준비생의 안전제일주의 때문일지도.



2. 구체적이고 선명하게 표현하기

당연한 이야기지만, 일반적인 특성-성실하다, 열정적이다, 리더십이 있다..-만 쓰고 치울 것이 아니라

선명한 사례를 제시해 줘야 한다. 동아리장을 맡았을 때 이런 행사를 이렇게 성공적으로 해냈다, 누구에게

어떠한 평을 들었다, 어떠한 경험을 했고 이러한 교훈을 얻었다..라는 식으로 자신의 고유한 경험에 기대어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지 최대한 효과적으로 드러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여기서 '효과적'이라는 말은,

굳이 경험의 전후를 지루하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간결한 문장 한두개로 압축해 낼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어차피 말하고자 하는 건 그 경험 모두를 말하고 싶은 게 아니라, 자신이 거기서 무엇을 얻었는지, 혹은

자신이 거기서 어떤 능력을 보였는지에 대한 설득력있게 입증하는 거니까..인사담당자가 쓱 읽고 지나갈 때

어라, 이게 뭘 말하려는 거야, 라거나 그래서 어쩌라구, 혹은 지루하구만, 이렇게만 생각치 않게하면 되지

않을까나. 좀더 노골적으로 말한다면, 어차피 기업에서 요구하는 인재상이라는 거, 다 거기서 거기다.

성실하고 열정있고 창의력도 있고, 인화력에 포용력에 리더십까지 갖춘, 결국 좋은 건 다 갖춘 사람이다.

어떤 경험을 이야기해도 그러한 긍정적인 가치 한두개야 뽑아낼 수 있는 거고, 그러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란

걸 무리없이 전달해내면 되지 싶다. 자신이 부족한 혹은 나쁜 사람이란 얘기는 아무도 안 할 테니까.



3. 주어진 칸만큼 주어진 기회!

물론 뻔한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쓰는 건 자폭행위나 마찬가지일 거다. 앞에 쓴 문장을 조금 바꿔서 뒤에

첨언하고 첨언하고..그런 식으로 칸을 채우는 건 차라리 안 채우느니만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300자 이내건, 1000자 이내건, 혹은 2000자 이내건, 주어진 칸은 그만큼 주어진 기회라고 본다. 꽉 채워쓸 때

얼핏 봐도 성의있어 보이기도 하고, 안간힘을 써서 썼겠다는 우호적인 이미지를 줄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물론 무작정 꽉꽉 채워쓰는 것도 좋지 않다. 적절히 문단을 끊고, 소제목을 달아주는 게 보기에도 훨씬

좋고 내용을 파악하기에도 쉽기 때문이다. 각각의 문장이 뚜렷한 의미와 목적을 가지고 배치되어 있어야

하는 건 물론이다. 군더더기처럼 잔뜩 붙어있는 말들로 인해 분량이 넘치는 걸 덜어내는 것도 문제가 된다.

결국 너무 과묵해도, 너무 수다스러워도 문제인 거 같다. 어디까지나 인사담당자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들이 자기소개서를 아무리 정독하려 애쓴다고 해도, 이미 수천장의 자기소개서가 눈앞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을 그들의 시선을 유린해서 좋을 게 없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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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 둘러보기 >

 

1. 소제목 달고 퇴고하기

질문당 몇백자 이내라고 되어있던간에, 소제목을 달아넣는 것은 필수인 것 같다. 실제로 경험상 소제목다는

것을 생각지 못했던 때와 달기 시작한 이후의 자기소개서 승률은 차이가 적지 않았던 것 같다. 주위 사람들도

전하는 이야기니까 소제목 다는 건 정말 필수라고 보면 될 거 같다.

구체적으로는, 보통 300자 이내는 한 개 정도 문단으로, 그리고 500자 이내는 두개 문단으로 쪼개되, 500자

이상은 소제목을 두 개쯤 다는 것이 적당한 듯 했다. 소제목은 앞서 말한 것처럼 애초 질문에 대해 자신이

노출시키고 싶은 키워드를 중심으로, 얼만큼 튀는 소제목을 달지는 자신의 결단력, 그리고 지원 기업의

보수성 정도에 달려 있는 것 같다. 예컨대 "도전정신과 나눔정신", 이런 조심스럽고 온건한 제목을 달 수도

있고, "보석같은 기업의 일원이 되기 위하여" 같은 식으로 문장을 구사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2. 전반적으로 흐름 체크하기

몇 개의 벽돌을 떼어내서 오려 붙이는 ctrl+C, ctrl+V 신공을 펼치는 것은 괜찮지만, 다 쓴 후의 검토는 필수!

실제로 이전의 기업명이 수정되지 않은 채 그대로 전송되는 불상사가 종종 발생한다. 그리고 혹시 같은

경험을 두번 써먹지는 않았는지, 동일한 문구..벽돌을 두번 써먹지는 않았는지 확인하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될 일이다.




* 이전에 올렸던 글이지만 이즈음 많은 사람들에게 특히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싶어 다시 발행.




강해지기를 원하는 것은 허약함이며, 우월해지기를 원하는 것은 다름아닌 열등감이다.

자신감을 말하는 것은 불안감의 발로인 것.



얼마전 만난 친구는, 무슨 얘기인가 끝에 '서울대 간판 떼고 나면 너도 별거 없잖아?' 그랬다.

최근 누군가로부터 집중적으로 듣는 얘기 중엔 '별 것도 아닌 스펙만 믿지말고 공부좀 하세요'라는.

사실 새삼스럽지도, 도발적이지도 않은 지적이지만 때가 때인지라 다르게 다가왔다. (사실 그넘의

스펙은 믿어본 적도 없지만.ㅋ)


그치만 난 여태 내가, 혹은 내 능력이 모종의 시험에 처하는 상황이 되면 항상 잔뜩 긴장한 채

'원점부터 다시 평가받는다'는 자세를 취해온 게 사실이다. 내가 과연 그 시험에 통과할 만한지,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받아온 '간판'의 후광을 받을 자격이 있었던 건지, 그리하여 나에 대한 지금의

기대치가 합당한 수준인 건지. 그러한 것들에 대한 자신감을 번번이 다시 허물어뜨렸다가는, 곧 다시

회복하는 그런 피곤한 패턴.


그건 단지 시험에 겸손하게 임하고자 하는 실용적 목표만이 아니라, 혹여 불의의 결과가 나오더라도

충격을 덜 받고자 하는 꼼수이기도 하다. 사실 내 스스로도 내가 어느 정도의 능력을 갖고 있는지,

얼마나 똑똑한지, 아니 대체 똑똑하기나 한 건지 의구심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일이 시도때도 없는

거다.(아마 내 주위 사람들은 더욱 의심하고 있겠지만) 그럴 때는 불쑥 조바심이 고개를 든다.

내게서 '간판'을 제하고 나면, 뭔가 남을까. 좀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그저 어쩌다 수능 한번 잘

쳤을 뿐인지도 모르는데 너무 분에 넘치는 대우를 받아왔단 게 뽀록날까봐. 수능맞춤형 인간일지도

모르는데, 너무 여러 방면으로 호들갑스런 대접을 받아왔던 게 아닐까 불편해져서. 세상에 꽁짜는

없다는데, 언젠가는 다시 전부 뱉어내야 하는 건 아닐까 하고.


해서 서류심사에 합격했다는 소식이 들리기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붙었단 소식에 감사하고,

일단은 당분간 조금 더 잘난척 하고 다녀도 되겠구나 안도하고(아직 내가 어리버리하단 소문이

그쪽까진 안 퍼졌구나, 이러면서), 혹여 떨어진 소식은 얼렁 머릿속에서 지우려 애쓰고ㅡ,

그러고 있다. 아..쉽지 않은 거다, 취직이란. 쳇.


그런 와중에, 이제 최소한 몇자리 숫자따위에 연연치 않을만큼은 철들었어, 라는 믿음으로

얼마전 봤던 멘사 테스트 결과가 나왔다. 몇자리 숫자일 뿐이고, 그저 특정 부문의 지력만을

잰 것 뿐인 결과임에도, 조금은 더 스스로를 믿어봄직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이러면서 애써

퍼올리는 자신감 한주먹. 오늘 시험은 망치셨고. 어쩌면 아무데도 못가겠다는 위기의식으로

방금 네시간만에 네군데 지원서 꼽아버리셨고.



잘난척할 타이밍 = 잘나지못함이 아프게 와닿는 타이밍.

사실 '잘난 척'이란 건 나랑 상당히 거리가 먼데...오늘따라 왕창 가까워져 버리셨다. 흑.



(2007.10.14)





우리 회사는 벌써 몇년째 매 학기마다 학교와의 협의를 거쳐 학점을 인정받는 인턴을 십여명씩 뽑고 있다.

오늘은 상반기 인턴이 3월-6월로 마치고 난 후, 9월-12월 동안 근무하게 될 인턴들의 면접이 있는 날이었다.

상반기에도 인턴 면접때 면접관으로 들어갔었고 당시 경험의 포스팅(인턴 채용 면접관으로 들어가 보니.)이
 
다음 첫화면에 뜨기도 했었지만, 그 때와는 또 다른 것들이 적잖이 보이는 경험이었다.


인턴 면접은 각 팀의 실무자가 나가서 팀의 업무에 대한 짧막한 소개를 한 후, 그걸 기반으로 지원자들-서류

전형을 통과한 지원자들-이 1, 2, 3순위 희망팀을 적어내고 면접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내가 물었던 질문들은 대체로 올 초와 비슷했던 것 같다.


"우리 팀에서 무슨 일을 한다고 알고 있는지? 아까 설명드렸던 내용이 충분히 이해되셨는지?"

"마지막 학기신데 졸업은 어떻게 하실 건지? 연말까지 인턴하려면 구직활동과 병행해야 할 텐데 괜찮을지?"

"경력사항 중의 이것은 무슨 일을 한 건지?"

"앞으로 이쪽 분야와 관련해서 커리어를 쌓고 싶은 건지?"

"친구들이 자신을 센스있다, 눈치빠르다고 평가하는지? 자신을 어떤 사람이라 평하는지?"


조금 까칠하다 싶은 질문이라면 이런 게 더 있었다.

"팀의 특성상 개인의 능력보다 팀웍과 융화력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팀웍을 배우러 들어오겠다니 조금

앞뒤가 안 맞는다고 생각진 않는지?"


이건 뭐 살짝 압박해서 반응을 보려는 질문이기도 했지만, 혹시나 모를 기우에서 말하자면 (원칙적으로)

인턴이나 정식취업이나 뭔가를 가르쳐주려고 사람을 뽑는 건 아니다. 물론 당연히 뭔가를 배우게 되는거고,

그 자리에 딱 맞는 능력을 이미 갖춘 사람이 어디있냐만, 말하기의 스킬 면에서, 설득력 면에서 이런 식의

발언은 조금 주의해야 할 것 같다.


"경력이 좀 다양한 방면으로 뻗어있는데 설명할 수 있는지?"

이건 내 경력도 워낙 일관성이 없어서 많이 들었던 얘기였기에, 이런 가벼운 인턴 면접때 미리 한번

물어보고 대비케 해주고 싶었다. 나는 그럴 때 "얼핏 보면 좀 (미친년) 널뛰듯 하는 경력이라 여기실지

모르지만"이라고 이야기를 시작했었는데..별로 성공적이지는 못했던 듯 하다. 그치만 상대가 묻기 전에

먼저 그걸 방어해주거나, 묻고 나서 뭔가 잘 답하지 않으면 큰 허점이 될 수 있는 부분인 건 틀림없다.


그 밖에 우리팀 하반기 일정상 인턴이 운전면허가 필요할 듯 하여 그것도 물었다.

"운전면허증은 있는지? 운전은 잘 하는지?"

물론 면허증이 결정적인 조건은 아니지만 다만 있으면 좋겠다, 정도.


몇가지 촌평이라면, 올 초에 내가 올렸던 포스팅(인턴 채용 면접관으로 들어가 보니.)에서 지적했던 몇몇 아쉬운 점들,

1) 단답식의 답변이 아닌 서술형의 답변을 하자,

2) 상대와의 호흡을 고려해서 자연스러운 인터벌을 두고 대답하자,

3) 말할 때 태도가 흐트러지거나 고개를 흔드는 등의 동작을 피하자,

4) 마지막으로 묻는 자유질문의 기회를 잘 활용하자.

정도에 더해 다른 것들, 특히 남녀간의 차이가 두드러졌던 것 같다.


서류 통과자, 그니까 면접 대상자 중 남성은 채 1/3도 안 되었는데, 역시 요새 여학생들이 남학생들보다

훨씬 성적관리나 기타 취직준비에 철저한 건 확실한 것 같다. 그리고 사실 야무진 (듯한) 표정과 말투는

남성보다 여성에게 조금 더 유리하지 않나 싶기도 하고. 몇가지 남정네들의 허술한 답변이 맘에 안들었다.


"저는 군대를 다녀와서 인화/협동심/여하튼 좋은 것..을 배웠습니다."

"저는 행정병이었기 때문에 조직 문화에 훨씬 익숙한 편입니다."

"군대가 제 삶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혹은 "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군대에서 있었던 xx입니다."

"군대에서 안 해 본게 없기 때문에 뭐든 시키면 다 잘합니다."

"군대다녀온지 얼마 안 되어 몸쓰는 건 자신있습니다."


군대 갔다와서 조직에 훨씬 적응을 잘 할거라는 장담, 군대 다녀왔으니 협동심을 체화했다는 장담,

이런 대답은 좀 곤란하지 싶다. 군대 문화가 곧 조직 문화는 아닌데다가, '센스있고 눈치빠르며 팀웍을

중시하냐'는 게 '군대 문화에 절어있'냐는 걸 묻는 건 아니다. 물론 여전히 한국의 조직문화가 군대의 그것과

과히 다르지 않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회사도 있는데다가 면접관 개개인과

대면하고 있는 거지 저높이 앉아 조직을 위해 발언하는 기성세대-꼰대-와 대면하고 있는 건 아니다.
 

CEO 면접이나 고위급 면접이라면 좀더 조직차원에서 생각하고 그들의 입맛에 맞게 안전하게 가야하겠지만,

그때 역시 군대를 앞세운 이야기는 위험하다고 본다. 이미 그들도 최소한 머리로는 충분히 군대문화의 폐해와

부정적인 이미지를 공유하고 있는 시대인 거다. 심지어 면접관이 젊은 사람이고, 혹은 여성인 경우에도

그런 식의 이야기를 할 건가.


백번 양보해서 정말 군대에서 개인적으로 그런 값진 체험을 했고, 떳떳이 타인에게 이야기할 수 있고

이야기하고 싶어 미치겠다 하더라도, 실용적인 견지에서도 군대 이야기는 너무 식상하다. 너무 식상하고,

이미 너무 부정적인 이미지가 잔뜩 끼어있어 그걸 만회하기가 쉽지 않은 탓이다. 게다가 놀랍게도(안 놀라움

말고) 꽤나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자기소개서에 군대이야기를 주절주절 적고 있다는 거다. 달리 쓸 만한

경험이 없어서인지, 혹은 정말 이시대 한국 20대 남성의 삶에 그만큼 큰 흔적을 남기는 게 사실이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이경우라면 십분 공감하는 바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남자들, 좀 영리해지자. 는 거다.


자신을 어필하고 자신의 장점을 알리려는데 전혀 참신하지도 않고, 상대의 흥미를 끌지도 못하는 '군대'란 소재를

앞머리에 끼워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건 어떻게 보나 손해보는 짓이란 뜻이다. 가뜩이나 여성들이 이야기하는 것에

비해 어수룩해 보이고, 훨씬 수줍어 보이는데다가 말도 잘 못하는 게 남성들 아닌가.(일반적으로 말이다.)
 



덧댐. 물론 특수직종이나 특정 기업에서는 군대의 경험을 높이 살지도 모르겠다. 어디까지나 난 내가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바에 따라 하나의 추세를 이야기하는 것일 뿐이니,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어제는 우리 회사에서 3월에서 6월, 한 학기동안 함께 일할 인턴들을 뽑는 면접을 함께 했다. 학점인정이 되고

노동부에서 지원받는 인턴제도라 그런지 경쟁율이 정식 공채 못지않게 가혹하다고 한다.

이미 치열한 서류 심사를 거쳐 면접만을 남겨둔 그들은 이미 적어도 한두개의 인턴 경험과 여러 학내외 활동, 또한

컴퓨터 관련 자격증에 제2외국어 자격증까지, 취업준비생으로서 구비해야 한다는 여러 아이템들을 획득한

'준비된 취업준비생'인 셈이었지만, 다들 까만 정장을 어색하게 차려입곤 긴장된 기색이 역력했다.


무엇을 물어봐야 할지, 내가 면접을 보는 입장에서 생각나는 질문은 사실 그다지 신선하진 않았던 거 같다.


우선 암만해도 인적사항을 한번 일별하며 눈에 띄는 특이사항에 대한 질문을 하며 시작하게 되었다.

"경력사항 중에 이건 무슨 내용이었는지?"

"이 전공은 어떻게 선택하게 된 건지?"

그리고 그래도 나름 신선하다 싶었던 건 각자의 이메일 아이디에 대한 의미를 물었던 질문이었다. 이건 사실

내가 취업을 준비하면서 내 아이디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에 가능한 질문이었는지 모른다.


그다음 질문할 만한 건 아무래도, 그런 거다.

"꼭 이 팀에 지원한 이유는 무엇인지?"

"이 팀이 어떠한 일을 하는 팀이라고 알고 지원하게 된 건지?"

이러한 질문들은, 사실 의외로 많지 않은 사람들이 우리 팀에 1지망으로 지원했다는 사실에서 비롯한

건지도 모른다. 지원자들이 팀들의 소개를 전부 듣고 그 중 1, 2지망을 선택해서 각 팀 담당자들과 면접을

보는 방식이었는데, 인사담당자가 우리 팀 경쟁율이 높을 거라고 지레 겁을 줘서 그런 것 같았다.

어쨌든, 아까 내가 설명했던 우리 팀의 일하는 방식과 내용을 제대로 들었는지, 그리고 그걸 자신의 목소리로

다시 이야기할 수 있는지 보고 싶었다.


다들 이야기를 잘 하는 편이었다. 단답식으로 뚝뚝 끊기는 대답을 하지도 않았고, 자신감있는 태도로

자신을 잘 어필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몇 가지 거슬렸던 점은 다소 공격적으로 느껴질 만큼 자신있게 치고 나오는

그(녀)의 반응속도라던가, 말할 때 고개를 흔들거나 입술을 삐쭉이는 태도 정도?

내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로 내 호흡을 채고 나와 대답하는 건 글쎄, 여러모로 좋아보이지 않았다. 생각을

조금 하고 대답하는 게 더 나아 보일 것 같고, 상대가 질문을 주면 그 호흡에 맞춰서 대답을 건네는 게 편안한

분위기로 가도록 도울 거 같고. 자칫 너무 도전적이라거나 비우호적이라고 느끼기 쉬운 듯 하다.

말할 때 고개를 흔들거나 입술을 비대칭으로 삐쭉이는 것 역시 상당히 신경쓰였다. 뭔가 안정되고 차분한

태도로 말하는 게 아니라 중간중간 입술을 씰룩이거나 고개를 흔드는 등의 산만한 제스쳐는 괜시리 내 주의를

흐트러뜨리고 상대에 대한 호감도를 저하시키는 것 같다.



몇가지 질문을 더했다.

"친구들이 당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의 성격은?"

"이 인턴 경험이 앞으로 취업을 준비하는데 어떤 도움이 될 것이라 기대하는지?"


사실 인턴이란 게..그렇게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하는 것도, 재미있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닌 거다. 그렇지만 하루 종일
 
전화기만 붙잡고 RSVP를 확인받는다거나, 등록데스크에서 내빈들을 상대해야 할 일이 많을 테니 센스라거나

발랄함 같은 것이 굳이 요구되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우리 팀 같은 경우에..팀워크를 중시하며 하나의 행사를 같이
 
준비하기 때문에, 말하자면 인턴은 그 중 자그마한 하나의 부분을 준비하는 걸로 끝나버리는 느낌을 가질 수도

있는데, 그런 것들을 감수하고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를 남길 수 있을지 궁금했다. 게다가 전체 그림을 보면서

자신의 맡은 부분이 뭔지 계속 위치를 잡아가지 못한다면 붕뜨고 의미없는, 재미도 없는 고역이 될 수 있을 거라서

염려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는 뻔하지만 중요한 질문.

"무엇이든 궁금한 점이 있으면 물어보세요."
 
이 질문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 같지만, 상대가 얼마나 이 인턴에 열의가 있고 관심이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인턴을 하는 자신을 상상해 본 듯한 지원자는 좀더 구체적이고 한단계 깊이있는 질문을 했고, 그렇지

않은 듯한 지원자는 좀 뜬금없다거나 문득 떠오른 듯한 질문을 했다.


면접을 당하는 입장이 아니라 하는 입장이 되니까, 의외로 재미있는 것들이 많이 보인다. 그 중 하나는 대체로

사람들이 보는 눈은 비슷하다..란 점이었다. 각 팀들마다 눈독 들이는 지원자는 대개 중첩되어 있었고, 그건

어느 정도 첫인상에서 가름나는 거 같기도 하다. 면접이란 것도 어쨌든 사람을 만나고 사귀는 일, 자신의 얼굴과

자신의 분위기에 책임을 져야지 몇 개의 스킬이나 번지르르 외운 말과 단어로 커버될 일은 아니라고 이야기하면

너무 가혹한 걸까.


그나저나 정부는 인턴을 늘리고 신입 정규직 초봉을 줄이니 어쩌니...말이 많다. 20대(혹은 30대 초반)를 희생시켜

기성세대의 기득권을 사수하겠다는 건데, 말도 안 되는 짓거리다. 그렇지만 마치 '학생'이나 '아이'같은 집단이란

게 늘 물흐르듯 흘러가며 집단 구성원들이 바뀌기 때문에 자신들 집단의 이익을 보호하거나 하나의 목소리를

내기 힘든 것처럼, '구직자' 혹은 '졸업예정자'라는 타이틀 역시 하나의 잠정적이고 금세 거쳐갈 임시적인 표식이라

이런 미친 소리에 반대하기가 쉽지 않다. 당장 취직을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단물 쓴물 가릴 처지가 아니란 걸

아니까 더욱 답답할 뿐이다.





*                                   *                                   *

덧댐. 혹시 구직 중이신 분들께 도움이 될까 싶어, 예전에 포스팅해 둔 자기소개서 쓰는 법에 대한 몇가지 팁을

같이 덧붙여 둡니다. 자기소개서 쓰는 법에 대한 몇가지 팁. 





 열반에 든 부처를 상징하는 와불상이 샛노랑 개나리색 옷을 입고 있다. 무슨 돌로 만들어진 건지 모르겠지만, 조금

녹아내린 건지 얼굴이 얼룩덜룩하다. 왠지 어렸을 적 했던 스트리트 파이터의 한 배경화면같은 느낌?

사이즈로 승부한 느낌이다. 더구나 뒤로 돌아서 본 헐벗은 등짝의 남루함, 그리고 발바닥의 꼬질꼬질함이라니.

발가락이 네갠지 여섯갠지.

무슨 탑이었는데...뭐더라...제법 높은 탑에 중턱까지 오를 수 있는 계단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온통 평지만 펼쳐진

태국에서 여기보다 높은 곳이 없다는 설명을 얼핏 어디선가 봤던 거 같기도 하고. 올라가봤는데 주변의 풍광이

온통 발아래로 말갛게 펼쳐졌었다. 탑이라기보다는 무슨 얄쌍한 피라밋같은 느낌?

위에서 내려다본 탑 아래의 풍경. 깔끔하고 실감나게 꾸며진 디오라마 마을같기도 하고, 입체감이 잘 느껴지는

가옥과 대문들이 손에 잡힐 듯 했다. 저 건물은 기억컨대 부처님을 모신 불당이었을 게다.

 여행지마다, 고양이가 참 많이 따른다. 뉴욕서도, 이집트의 다합에서도, 그리고 태국의 아유타야에서도.

굳이 사람을 두 부류로 나눈다면, 나름 말이 되는 것 중 하나가 고양이랑 개로 나누는 거다. 고양이과의 사람,

개과의 사람. 고양이가 가진 도도함과 자존심, 손길에 연연하지 않는 듯하면서도 미묘하게 표정이 흔들리는 듯한

모습. 다합의 모래사장에서 내 그림자를 청해왔던 그 자그마하고 귀엽던 새끼고양이처럼, 아유타야의 한 사원에서

중천에 뜬 태양을 피해 고양이가 내게 왔다. 고양이를 품었다. 그새 '품는 법'을 조금은 더 배웠구나.

적어도, 고양이 한마리 품을 만큼 여유가 생겼으니.


글로벌 고양강아지

 저를 잘 설명할 수 있는 동물을 찾으라면, 아마 고양이와 강아지의 성격을 모두 가진 가상의고양강아지를 빗대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고양이와 강아지가 서로 매우 다른 성격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고양이가 가진 야무지고 조심스러운 성정과 고유영역에 대한 소신 있는 몰입과 같은 것들은, 강아지가 갖고 있는 원만하고 적극적인 친화력과 충성심 등과 뚜렷이 구분되는 특성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러한 두 특성을 모두 갖춘 채 적재적소에 필요한 성향을 드러내어, 최적의 맞춤형 인재로 부족함이 없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고양강아지의 유연한 태도와 타고난 친화력을 바탕으로, 제가 귀 기업에 대해 품고 있는 깊은 애정과 소속감을 펼쳐 보이고 싶습니다. 부드럽고 원만한 분위기를 주도하면서 조직 및 개인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하겠습니다.

 - 산문시집 '구직험난(求職險難)' 제 1장 '글로벌 고양강아지' 일부 발췌, 이채(생몰년도 미상) 作






#1. 이미지(Before & After랄까..)

'한국무역협회'와 '이희범회장'을 키워드로 해서 뽑아 보았던 1년반치 기사뭉치, 월간지, 논문들에서

비쳐진 무역협회란 곳은 전경련을 필두로 한 경제4단체 중 하나라곤 해도 조금 달라보였다. 자력으로

무역하며 위협섞인 엄살을 피워대는 대기업들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근근히 수출하며

먹고살기 바쁜 중소무역업체, 중앙에서 소외된 지방업체의 이익을 통틀어 대변하려 하는 무역업체들의

이익단체. 애초 공기업도 아니고 공공기관도 아니고 단지 한국의 '무역업계'만을 위한 민간단체가

정체성이라지만, 다른 것도 아닌 '한국의 무역'이라니 공공적인 측면을 무시할 수 없는 게다.


해병대 등 이런저런 희떠운 연수스케줄 몽땅 합쳐봐야 아직 한달도 안되었다지만 실제로 중소

무역업체를 위한 일도 많이 하는 것 같아 보인다. 高원화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을 정부에 촉구한다거나,

FTA활용방안을 홍보한다거나..SERI가 삼성이란 일개 사기업의 지적 전위부대로서 충실한 역할을

하는데 반해, 협회산하 국제무역 연구원은 그래도 국가 차원의 시각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중소기업에 대한 관심, 분석, 대안 제시의 노력도 진지해 보이고. 물론 그러한 식의 '수출 XX불',

'세계 XX위'같은 유치한 양적과시가 끊임없이 거슬릴 뿐더러 기업인이 한국의 1등국민이라는 암묵적

전제도 썩 와닿지는 않지만. 그리고 아마도 그러한 필연적 결과로 한미FTA를 앞장서 주도했으며

한EU FTA도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도 무척이나 불쾌하지만.(근데 대체 한미 FTA와 한EU FTA에

대처하는 진보진영의 자세가 왜 이렇게 다른지, 반미의식에 편승해 쉽게 감정을 동원할 수 있겠단

꼼수 > 자본에 대한 문제의식?)



#2. 낯익은 위화감

게다가 벌써부터 거슬리는 문제들도 있다. 만약 중소무역업체와 대기업의 이해가 상충하는 무역현안이

있다면, 무역협회는 어떠한 의견을 채택할 건지? 비록 6만5천여 회원사를 모시는 서비스단체..란 게

공식적인 외피라지만, 정몽구회장이 사회환원한다며 만든 재단위원장에 협회장을 위촉시킬 만큼,

삼성역 무역센터 54층짜리 건물과 코엑스의 번듯한 외양이 중소무역업체들을 왠지모르게 위축시킬만큼,

친재벌과 친기업이란 입장 간의 간극은 만만치 않다. 나아가, 무역협회라지만 수출협회라는 치명적
 
약점. 여태 한국은 수입업체들에 대한 정책적 배려에 소홀해 왔는데, 수입에 대한 막연하지만 뿌리깊은

부정적 이미지 때문일 게다. "무역흑자를 갉아먹는..국부를 유출시키는..신토불이를 나몰라라 하는..

사치스러운.." 등등.


그렇지만 수출만큼 수입도 중요하며, 수입의 질적, 양적인 면에서 뒷받침이 필요하단 인식이

보편화된다면 한국 사회나 기업들이 보다 균형있게 발전할 수 있는 동력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의 무역협회는 '무역흑자가 지고의 선'이라는 중상주의적인 가치관에 기댄 채

수입업체들로부터의 많은 가능성을 사장시켜 왔다고 생각한다. 사실 대부분의 수입은 가공생산을 위한

원자재란 걸 생각하면, 전략적인 측면에서나 원칙적인 측면에서나, 협회가 수입업체들을 외면하는 건

멍청한 짓이다. 사실 이러한 문제점들은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일반적인 '상식'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을 뿐이다. 제대로 의미를 싣지도 못한 채 뭉뚱그려진 친재벌과 친기업, 친기업과 친시장 간의

엄연한 차이. 수출입의 질적 측면, 실제 수익성 등에는 소홀한 채 그저 수입을 최대한 묶고 수출을

최대한 이끌어서 국부를 쌓겠다는 단순무식한 중상주의적 사고.


친재벌과 친기업, 친기업과 친시장간의 모호한 경계에 모호하게 발붙이고 선 무역협회는 그러한 상식이

얼마나 무디고 편향적인지 첨예하게 보여주는 셈이다. 중소기업 편인지 대기업 편인지, 김용철 변호사가

개XX인지 삼성이 XX끼인지. 이미 면접 때 김용철 변호사에 대한 입장을 물었고 나름의 답까지 제시해

줬었던 무역협회다. 흑자면 장땡이라는 단순무식한 사고방식이 여전히 횡행하고 있으며 심지어

신중상주의로 부활하고 있다는 건, 70년대 건설업체 사장나부랭이가 'CEO'라는 21세기적 단어가 가진

마력을 빌려 대통령에 덜컥 당선한 마당인지라 이상할 것도 없다.



#3. 창조적인 불만, 냉소에서 출발하는 낙관,..Whatever.

과장스러운 환영사와 일장훈시들은, 결국은 "초심을 잃지 말아라" 혹은 "비싼 밥이니 맛있게 먹어라"

정도로 요약된다. 누구나 초심을 운운하며 새로운 공간에서의 새로운 시작을 말하지만, 사실 12월 31일과

1월 1일의 차이처럼 문제는 자신의 마음인 거다. 내게 있어, 모든 초심의 초심은 '즐거움'이고..즐겁게

일하고 싶다.

일단은..아직 발령도 안 받은 신입직원 나부랭이로서는, 이렇게 내 새로운 보금자리가 될 곳을 갈구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래놓고 부메랑처럼 돌아올 부담감과 깨어있음의 압박을 기대하고 있다.

내년 이맘때쯤 ver2.0에는 무슨 이야기를 하게 될런지.

12월 26일부터 29일, 군대놀이 3박4일. 자그마치 포항까지 내려가서 받고 왔다.


항상 경이롭다. '피할 수 없는 고통은 즐겨라'라는 마법의 말은, 사람을 좀체 옴짝달싹 못하게 만든 그 공간에선

너무도 강력하다. 당신들은 이곳에 절대 놀러온게 아니며 '불굴의 투지와 필승의 신념으로 세계최고의 무역진흥

서비스기관을 만들라'고 엄포놓는 빨간모자 교관들이 밉살스러워서, '난 절대 놀러왔으며 우리 재미있게 놀자'고

입소 소감을 밝히긴 했는데 사실 잘 놀았다.ㅋ


다만 문제라면, 개싸움도 편든다는 '우리가 남이가'식의 막가파식 동기애를 자랑하는 해병대 교관, Y/N만을

요구하는 발화라는 것이 얼마나 앙상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던 교관들과의 관계, 대체 왜 해야 하는지-알아서

길어올린 '재미'라는 걸 빼고 나면-알 수 없는 제식훈련/유격훈련/해상IBS훈련. 목소리크고 힘세고 지저분하고

우왁스러워야 하는 그 공간의 남자냄새는 생략하더라도.


물론, 일탈적 상황에서 더욱 진하고 끈끈한 동기애가 나올 수야 있겠지. 조심스레 이것저것 재고 체면치레하는

과정을 생략할 테니깐. 글치만 그렇다고 해서 평소로 복귀해서도 그러한 동기애가 굳건히 유지되며 발휘될

거라는 건 뭔가 논리적인 비약이야. 아님 그러한 인간의 감성 자체가 논리적 비약이거나. 어쨌거나, 이로써

12명의 동기와 연수 시작.

일정이 너무 겹친다. 기껏 서류 합격, 내지 필기 합격해봐야 다른 것들이랑 겹치는 바람에 계속해서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수능 잘 풀라고 휴지모양의 아이스크림 케잌이 나왔단 기사를 보고는, 저게 수능생한테 더이상

갈 게 아니라 취업준비하는 아해들한테 가야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토할 것 같은 매경. 친기업적인 논조나 시장편향적인 그런 것들, 다 이해한다고 해도..비문이나 오타 보면

토할 거 같다. 이딴 것도 기사라고 쓰고 있다니, 앞뒤도 없고, 흐름도 없고. 쳇.

그걸 보면서 이것저것 스크랩한답시고 오려놓은 게 한뭉테기가 되었는데, 순간순간 짖쳐오는 회의감. 저게 과연

도움이 될라나.


사실은, 이제야 시작이다. 서류에 붙을까 못붙을까 하루내 두근대며 기다리는 곳이 처음으로 등장하셨고,

여태까지 연습삼아 봤던 면접들이 피가 되고 살이 되야 할 타이밍이 다가오는 중.


이 술이 미처 식기 전에, 단칼에 적장의 목을 따고 돌아와 마시리다.


사실 단칼이 안 된단 게 문제지만. 톱질하듯 설렁설렁, 서류, 상식, 논술, 인적성, 면접, 면접, 그리고 면접. 아마도

신체검사까지..? 마이 아파.ㅡㅡㆀ 변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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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면접에 들어가면, 내가 얼마나 단단한가를 물어본다. 왜 하고 싶고, 무엇을 준비해왔으며, 어떻게 되고 싶은지.

그 세 가지가 핵심이다. 대개 나는, 꼭 하고 싶고, 오랫동안 준비했으며, 이곳에 뼈를 묻고 싶노라는 의지를

전하고자 하지만..그날의 컨디션 따라 스스로의 연기에 대한 만족도가 달라진다. 스스로를 속일 수 있는 정도로

자신이 설정한 이미지에 몰입한 날, 혹은 스스로도 우스울 정도로 자신이 세팅한 이미지가 헐거운 날.


#2.

서류에서 50%의 성공율을 그럭저럭 유지하고 있다. 처음에는 금융권은 흥미없어, 삼X은 안 갈 거야, 그랬는데

글쎄..생각보다 (내가 아는) 괜찮은 직장도 적고, (내가 아는) 직장 자체도 적고. 그러는 와중에 엄마는 '국정X'은

대체 왜 싫은 거냐고 은근히 쪼기 시작하셨고, 직장 다니는 친구녀석 둘은 약속이나 한듯이 새벽녘에 퇴근한다며

전화해선 '공기X' 가랜다. 지금은, 닥치고 닥치는 대로.


#3.

그러고 보면, 이리저리 종횡하고 다닌 경력도 문제다. 인력회사 팀장과 동아일보 인턴기자, 컨설팅펌 RA의

미친X 널뛰는 궤적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 주는 인터뷰어는 없었다. 뭐, 내가 선택한 전장이기도 하니 불만은

없다. 덕분에 대개 예측가능한 범위에서 레쥬메의 검토가 이루어지곤 한다. 다만 방어율은 별개 문제란 거.


#4.

기어코 취직해 내신 모든 선후배 동기들..당신들 정말 무지무지 대단한 사람들이라는 감탄. 그렇게 대단한

분들이었단 걸 이제사 알아챘다는 게 미안할 따름이니.ㅋㅋ 난 갈수록 '초췌'해지고 있다.

#1. 금주.

오늘 새벽 문득 발동된 금주령. 기자질한답시고 그간 쉼없이 술마시며 돌아다닌 게 많이 맘에 안드셨던 게다.

내 8년간의 생활..대학이나 군대나..에서 술 때매 버린 시간이 대체 얼마나 되냐고, 너처럼 술 많이 먹는 녀석

첨봤단 얘기에 불끈 금주 선언. 결국 금주령이 아니라 자체 금주선언인 셈인가..얼굴이 좀 많이 부어버린 걸로

봐서, 함 쉬어가줄 타이밍이긴 하다.



#2. 인턴.

굳이 정리라고 할 건 아직 모르겠다.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기자에 대한 열정이나 동경없이 들어간 탓일까. 훨씬

강하게 하고 싶은 말들 찍찍 해대고, 부사장이랑도 티격태격하고..고시공부하느라 한쪽으로 잔뜩 휘였던 가지를

반대쪽으로 홀딱 급꺾음하는 시늉인지도 모르겠고, 내 속내를 정련하는 과정인지도 모르겠고. 어쨌거나 부질없이

강성좌파 이미지만 바람이 들어가버렸다. 조만간 펑..할지도.


그렇지만 인턴기자질이 끝나고 났더니 또다시 레테르가 휘발되어 버렸다. 뭔가 손에 쥔듯한 안락감이 날아가

버리고, 태엽조차 미처 다 감기지 않은 어정쩡한 장난감처럼, 비실비실대고 있다. 레닌식으로, "What is To Be

Done?"이라는 호기로운 외침은 이제 이물감이 느껴진다. 그 기반이랄 "What Should I Do?"를 되돌이켜 보고

있다. 그다지 생산적이지 않은, 즐겁지도 않은 되먹임.



#3. 글.

이미지겜을 이토록 집요하게 줄구장창 했던 적이 처음이라 그럴까. 내 이미지란 거, 그보다 말과 글이란 거,

무기력하기도 하지만 치명적이기도 한 거 같다. 말의 주술력. 난 소설쓰기엔 그다지 관심도 없지만 재능도 없다고
 
생각한다. 나 자신의 감정을 단도리하기에도 버거운데, 뜬금없이 펄떡이는 글을 써대고 싶지는 않았다. 글은..

아무때고 뱉어질 수는 없는거다.



#4. 사람.

다들 어학연수던, 교환학생이던 다녀온 재원, 재자들.ㅋㅋ 날카로움과 둔중함을 고루 갖추고 있는데다가,

풀어내는 말과 글에 자유로이 악센트, 크레센도, 피아니시모 등을 붙여가며 조이고 풀고, 그렇게 흐름을 통제할

줄 아는 사람들. 사람을 끄는 매력이란 게 이런 거구나, 라고 일깨워준 사람이 있었고, 내게 부족한 것들이 이런

거구나..라고 내 머리를 두드려 주기도 했고. 졸지에 친구들이 잔뜩 늘어버렸다. 멋진 사람들.




#5. 지리산.

용케도 지리산을 향한 마음은 살그머니 간직해두고 있었는데, 정말..가야겠단 생각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거기엔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안다. 단지 거기까지 가는 길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궤적에 우겨넣을 사념과 시간이

필요하단 건 알고 있다. 화욜..가면 목욜쯤 올 수 있겠지 싶다.



..납작하고 까만 작은 돌로 수제비를 뜰 때의 느낌. 어디론가 향하지 않으면 가라앉아 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조바심. 수면을 위태롭게 가로지르는 돌 중 하나, 제일 무겁고 뚱뚱한 거 하나는 '마음'이란 건지도 모르겠다.

뭐, 그냥 맥락없는 잡념이다.ㅋㅋ

알선수재 및 배임혐의로 기소된 정몽구. 그가 조중동, 혹은 동조중의 엄호를 받아 보석으로 나오곤 두번째

공판이었다. 대각선으로 내 바로 옆자리에 앉아있던 검버섯핀 왕년 깍두기 스탈의 할배가 정몽구인줄은 몰랐다.

그는 포승을 차지도, 병원복을 입지도 않고 방청석에 앉아 있다간, 특별히 제공된 푹신한 의자에 앉아 네명

피고인 중의 수괴임을 자랑했다.--;


검찰은 변호인단이랑, 증인이랑 싸우고 있었다. 초동수사 쯤에 어설프게 뱉었던 말들의 사전적의미를 잘

주물러서 방향을 바꿔보려는 증인들의 '잘 기억이 안납니다', '모르겠습니다' 랩소디. 현대우주항공을 왜

두차례나 증자했는지, 0원으로 평가받은 주식을 왜 5000원으로 몇백억어치씩 발행한건지, 그대들에게

구조조정이란 결국 '청산'의 다름아닌 말이었는지, 정몽구는 자기 개인빚을 왜 계열사에 떠넘긴건지, 하나도

풀리지 않는 신비. '절차적 정의'를 찾는 과정은 너무도 지난하다.


네 시간동안 에어콘도 안 나오는 답답한 법정에서, 어디 장례식에 온 양 깜장양복쟁이 현대맨들이 우글우글한

사이에 껴서, 선배가 시킨대로 말하나 빼놓지 않고 다 적고 있으려니 문득 한심해졌다. 아무 알맹이도 없는, 이미
 
모든 신문들에서 몇번씩 우려낸 이야기를 왜 이렇게 소중히 받아적고 있을까. 펜도, 종이도 아깝단 생각.

증인이랑 변호인이랑 입맞춘 게 뻔히 보이고, 논리도 어떻게 끌고 갈지 뻔히 보이는데-국가 경쟁력 운운..-왜

여기서 웃기지도 않은 개그를 보고 있어야 하는지 하고.


신문은 '일용'할 정보를 판다. 유효기간은 하루. 만물은 유전한다. 며칠전까지 현직이던 조부장판사의 법조비리

이야기로 며칠째 시끄러웠지만, 계단형의 진보를 무작정 믿지 않는다면 무의미하다. 우리는 여전히 같은 기둥을

휘감고 뺑뺑이치고 있고, 신문에서 다루는 사건, 사람, 논조, 모든 건 무성생식중이다. 기자란 건, 참 허무할 거

같다. 보람을 찾을 수 있을까. 글나부랭이로, 무엇을 전하고 무엇을 바꿀 수 있을지. 서래마을같은 엽기적인

사건도 몇년 전, 또 몇년 후 마주칠 사건. 정몽구의 보석, 그리고 웃기는 공판도 몇차례씩 보아온 그것. 데자뷔는

뇌의 작용만이 아니다.


하루살이에게나 소중한 게 신문아닐까. 어쩌면 지금 중요한 건 무슨무슨 사건..이 아니라, 도돌이에서 다카포로

무한반복하는 리듬이다. 신문이 죽는 이유는, 더이상 new's가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디선가 본 기사, 어디선가 본 말투. 아마도 예측가능한 결말. 재미없다. 원심력이 필요하다.

모처럼 한가한 토요일, 늦잠 좀 자고 동생데릴러 드라이브 좀하고 '시월애' 좀 보고 천호동가서 친구들이랑

양주먹었더니 다가버렸다. 그러고 보니 인턴시작하고 매일 술을 먹었다. 거의 모든 점심, 저녁마다 반주삼아

마신다는 술이 몇병씩으로 늘어났으니. 술자리의 즐거움이 조금씩 소실되며 '술자리'가 '일자리'로 변질되는

느낌이 짙다. 이것도 '음주'로부터의 소외 현상인겐가.


법조팀으로 옮긴 후, 대검찰청에 견학을 다녀왔다. 인천 가월도 어린이들과 함께 둘러본 대검 내부에서, 검사와의

대화시간이 있었다. 푸근한 웃음을 지어보이는 여검사는, 아이들에게 "가장 무서운 형벌"이 무어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감옥가는 거요, 오리걸음이요, 토끼뜀이요. 어디선가 사형이요, 라고 머리굵은 대답. 검사는 반가워하며

그렇담 사형이 뭘까, 하고 꼬리를 물었다. 선뜻 대답을 하지못하는 아이들. 이제 검사가 곤혹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사형이란 건, 사람을 죽이..도록 시키는 일. 이란 게 그녀의 늦은 대답이었다. '사형'은 사람을 죽이는 일이다.

이토록 단순한 설명을 쉽게 내뱉지 못하는 건, 토끼뜀을 가장 무서워한다는 아이들에게 도무지 설득할 자신이

없어서였으리라. 어쩌면 사형을 합리화하는 지반이란 게 생각보다 약할지도 모른단 기꺼운 생각.


법조팀가서 처음 마주친 사건은, 최근 대법원과 대검찰청 간에 굵은 갈등선을 그은 '김홍수 브로커관련

조부장판사 건'이었다. 마지막 남은 성역이라 칭해질 만한 중진급 판사, 브로커, 고위직 출신 변호사가 얽힌 수뢰

사건인지라 검찰로서도 쉽지 않았던 듯. 대검 3차장검사와의 언론브리핑에서 칼을 품은 말들이 소득없이

날라다니는 것을 보고, 그날 저녁 조부장판사의 '정치적인' 사표가 수리되고 바로 선배기자와 전화인터뷰하는

것을 옆에서 들었다. 음..결론적으로는, 불쑥 터져나온 법원의 치부를 가능한 이뿌게 봉합하는 방법이었던 것

같다. 판검사간의 갈등도 다시 잠복.


에어콘도 시원찮고 천장만 휑뎅그레한 법원건물은 참 위압적이다. 기자 생활 10년까지는 자신이, 자신의

취재원과 동류인 거라고 착각하고 거들먹거린다고 했다. 이러저러한 '높으신 분'들과 함께 밥을 먹다보니, 그

말이 진짜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난민촌같이 부산스럽고 정신없는 기자실로 돌아가면 조금

정신이 들려나..매일같이 정장을 입고 출근한다는 게 무지 힘들다. 원래 여름엔 나시에 쪼리 하나 찍찍 끌고

다니는게 젤인데..ㅠ.ㅠ

"신문은 싸우면서 만드는 거다."

국제부 선배기자가 했던 말이다. 동아일보에서 국제부란 공간은, 귀양지랄까, 다소 소외받고 있는 곳 같다.

정치부에 있다가 노무현 탄핵사태때 미운털이 박혀서 떠밀린 선배. 신문은 싸우면서 만드는 거라면서,

동아일보에 굵게 그어진 균열선 하나를 보여준다. 평기자들 대 데스크 윗계급 사이. 사회부에 왔어도 마찬가지다.

대법원과 대검찰청에 있는 선배들도 동아일보의 '삿대질'같은 기사들을 보고 아연해한다.



그렇게 간단하지도 않다. '동아일보'란 덩어리가 내부의 다양성을 무시해버리듯이, 그렇게 간단히 그어버린

전선은 많은 것들을 지워버린다. 요샌 젊은 기자들이 동아일보 데스크의 입맛에 맞는 기사들을 '알아서' 골라

쓴다는 것, 세무조사때 조선과 중앙의 개뻘짓과는 달리 동아는 기자총회를 거쳐 아무런 조직적 대응을 하지

않기로 했다는 것, 그리고 다른 부서가 관할하는 기사에는 전혀 서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 fact를 다루는

기자는 결국 기능인에 불과하다는 것.

눈높이를 어디에 맞추냐에 따라 새로운 문맥이 계속해서 떠오른다.



인턴기자에 대한 그들의 선입견도 마찬가지다. "한겨레만 보며 감정적으로 치닫고 아주 순진하고 이상적인

편향성을 가진 대학생" 정도랄까. 선배기자들과 말을 섞으면서 계속 부딪히는 편견. 생각보다도 훨씬 더, 우리를

대학생이라고 덩어리짓는 힘보다 갈기갈기 찢는 힘이 클지도 모르는데. 확고한 ready-made의 시각이 편할지는

몰라도, 공허해질 뿐이다. '구호'에서 '구체'로. 갈수록 어려워진다.

동아일보 국제면은 해외토픽인가.

 조금이라도 한국에 관련된 기사는 다른 지면으로 넘어간다. 여타 신문도 마찬가지지만, 동아일보의 국제면은 특히 그렇다. 포차 떼고 장기두는 격이다. 미일-중러의 군비 경쟁, 일본의 군사대국화는 정치면에서 다룬다. 북한, 독도문제는 정치, 사회면, 그리고 동원호는 사회면이었다. 오늘자 발제를 봐도 그렇다. 사실의 선택 자체가 정치적이라는 점은 알지만, 국제면은 한국의 독자들에게 대체로 무미하다.

 국제부에서 종합면이나 사회면을 빌어 쓰는 기사는 그렇지 않다. 동아일보는 국제면을 약간은 진지한 일종의 해외 토픽란으로 이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국제부 기자는 국제면과 일반 지면을 오가면서 기사를 쓰는 것이 원칙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내 지적은 무의미해지겠지만, 국제면 자체로 한국의 독자들에게 어떤 의미를 던지고자 하는가.



사실을 꿰는 바늘은 누가 쥐고 있는가.

 국제면에서 기사화된 ‘미국’, ‘레바논’ 등의 먼나라 이야기들은 해석의 과정을 거치면서 독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의미를 던지게 된다. 스트레이트성의 기사들은 나름대로 깊이 있는 이해와 전문지식을 가지고 쓰여졌고, 균형을 맞추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점은 알게 됐다. 하지만 정작 이러한 사실들을 꿰어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국제부 외부의 칼럼진이나 논설위원이고, 아주 가끔은 ‘기자의 눈’, ‘광화문에서’를 확보한 국제부 기자이다.

 동아일보는 국제부(라는 정체성이 존재하는지는 차지하고라도)에서 그러모은 사실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 고정적인 공간을 보장해주어야 한다고 본다. 물론 동아일보의 정견과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한 조율이야 불가피하겠지만, 동아일보가 포용할 수 있는 정치적 스펙트럼 내에서 국제부 기자가 보다 적극적으로 해석에 나서는 것도 필요하다. 사실과 해석이 떨어질 수 없는 까닭이다. 그것이 바로 언론들이 논조를 세련화하고 서로 소통가능한 기반을 만드는 초석이다.



여전히 특파원이 필요한가

 인터넷을 통해 공간적인 제약을 극복할 수 있게 된 오늘날, 특파원은 해당 지역의 뉴스에 대한 우선 접근권을 상실했다. 특파원에게 남겨진 역할은 크게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현지에서만 얻을 수 있는 생생함을 기사에 투영하는 것이 하나이고, 해당 지역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넓은 인맥을 바탕으로 전문적인 취재를 하는 것이 다른 하나이다. 하지만 동아일보의 특파원 제도는 그러한 문제 의식없이 구태의연하게 운영되는 것 같다.

 지역 전문가를 육성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특파원을 보낼지 말지의 문제가 아니라, 해당 지역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안목을 갖추고 있는지가 문제이다. 기술적인 차원에서는, 단기 특파원 제도를 활용하거나 현지 언론과의 제휴를 강화해서 현지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파원이 왜 여전히 필요한지부터 따져야 한다.



국제부 인턴을 마치는 개인적인 소회

 신문은 더 이상 신속성이나 가독성을 염두에 두어서는 안 될 것 같다. (굳이 신문을 찾아보는) 독자들은 수준도 높고 관심도 크다. 역피라미드형의 우람한 기사틀은 이제 재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자를 ‘글 잘 쓰는 사람’이라고 흔히 칭하지만, 인턴을 해보니 그보다는 ‘사실을 잘 전달하는 사람’이라는 정의가 아직까지는 적절한 듯하다.

 국제부의 인턴 프로그램이 참 좋았다. 기자를 본격적으로 생각해보지 않은 나로서는, 본격적인 기자 훈련보다 이곳의 분위기와 개략적인 이미지를 얻는 것이 훨씬 유익했다. 그리고 이아무개 선배, 김아무개 선배를 비롯한 국제부 기자들도 인턴기자를 귀찮아하지 않고 살갑게 챙겨주는 것이 느껴졌다. 개인적으로는, 점심시간에 이스라엘 대사관으로 뉴스브리핑 갔을 때 이아무개 선배가 점심은 어떡할 것인지 네 번이나 전화를 해서 챙겨줬던 것이 제일 가슴에 와닿았더랬다. 부장님, 이아무개 선배님, 김아무개 선배님의 술 약속도 잊지 않고 있다.



하나 더.

 동아일보는 보수지다. 이는 위험하지도, 감정적이지도 않은 말로 들려야 한다. 국제부 인턴을 두 주간 하면서, 많은 질문을 던지기도 했고, 많은 대답을 하기도 했다. 그러고 나니, 덩어리로 인식하고 있던 ‘동아일보’라는 ‘공기’는 이제 나름의 내부 동학을 가진 ‘기업’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보수적인 사람들에게 보수적인 논리와 사실을 제공하는 것이 이 ‘기업’의 영업방식이다.

 다행인 것은, ‘찜질방 한번 안 가본 기자가 찜질방 기사를 쓰더라’는 인턴 동기의 이야기는 전혀 실감할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 국제부의 선배기자들은 나름의 시각을 가지고 있었고, 많이 열린 자세를 갖고 있어서 좋았다. ‘보수’, 혹은 (상대적인 개념어로서) ‘좌파, 우파’라는 단어가 거부감없이 쓰일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데 일조하는 동아일보를 바란다.

M 컨설팅사에서 2차 인터뷰를 보고 왔다. 1차 인터뷰는 한 번, 2차 인터뷰는 두 번, 3차 인터뷰는 세 번. 거기에

서류심사와 Critical Thinking Test란 90분짜리 객관식테스트를 합치고 다소의 허세를 섞으면 총 여덟 차례의

관문이 뿅.하고 나타난다. 사실은, 2차와 3차에 진입하면 어쨌건 2번, 3번, 인터뷰를 본다는 점에서 관문은

다섯 개다.


케이스 인터뷰에는 나름 적응도 되었고, 살풋 즐길 줄도 알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여름에 RA 정해질 때

인터뷰어가 워낙 칭찬을 해줬던 탓이다. 어떤 방식으로 현상을 쪼개고 접근할지를 먼저 가늠한 후에, 서늘한

큰칼로 고래를 해체하듯이 덩어리덩어리 떼어내기 시작한다. 자신이 하는 작업에 대한 사전 설명과 목차 제공도

필수. 마지막으로는 다른 관점에서 보았을 때 어떠한 차이점이 생겨났을지, 어떠한 근거로 그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하게 된 것인지 한마디 언급해 주고. 실제 접하게 될 사례들의 축소판과 같다고 얘기되긴 하지만, 일종의

지적 유희랄까..현실을 너무 쉽게 설정해놓는 찻잔 속 폭풍, 그런 아이디어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오늘 문제는, 아주 커다란 문제가 나왔었다. 더구나 인터뷰어가 직접 맞닥뜨려 다뤘었던 문제였던 데다가, 예기치

않은 영어면접이 이미 머리를 잔뜩 헝클어뜨린 후였다. 문제는, "샌드위치 위기에 처한 한국 제조업중 한 개사가,

1) 노동인력의 의욕 상실, 2) 노조와의 단체교섭 결과 인센티브 및 상벌제도 무력화, 3) 노동 독려를 '노동착취'와

동일시하는 노동자의 의식'수준'에 처해 어떻게 노동생산성을 제고할 것인지"였다...그걸 알면 내가..ㅡㅡa


어쨌던 답 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논리를 세워 생각하는 것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니까..노동생산성은 노동력

인풋 대비 아웃풋 이라고 정의하고 시작했다. 그치만 문제는, 아무리 라인을 재배치하고 설비에 투자하고
 
서베이를 통해 발굴한 새로운 인센티브 요인을 활용하고 등등을 하더라도, 노동 강도의 강화는 피해갈 수

없다는 것. 인터뷰어의 말을 빌면, 노조가 기업의 '팔다리를 꽁꽁 묶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 강도가 높아지는 것이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설득해 낼 방법을 찾으라는데, 도무지 각이 안 나왔다. 내가 한시간동안 몰입해 있던

그 관점에서는, 노조는 기업의 성장, 한국 경제의 성장을 질곡하는 족쇄 바로 그자체였다.

한국 경제성장사의 이면에 드리워진 역사적 부채, 심화되는 경제적 왜곡, 한국경제의 시스템적인 문제, 그런

학술적이고 역사적인, 혹은 계보적인 이야기들은 당장의 market share, 이윤율 제고에 아무런 힌트도,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 현학적인 주제일 뿐. (기업의 생리란,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생리란 그런게다.)


현장에서 삼개월 동안 작업복을 입고 직원들과 함께 했다는 그 인터뷰어는, 쥐어짜낸 몇 개의 내 아이디어들을

전부 블로킹해 버렸다. 아이디어는 아무것도 아니며, 당장이라도 적용될 수 있는 플랜이 필요하다고 했다. 궤멸.

치사하다, 막판에 대안 하나를 고수하려다 둘 사이에 첨예한 기류마저 흘렀지만..끝내 남김없이 격침.

다소 공격적이고 현장의 느낌을 중시하는 듯한 그 인터뷰어에 대한 반감은 없었지만, 그래도 자신은 그 답을

찾아내어 이후 꾸준한 노동생산성 향상을 이뤄냈다고 얘기할 땐, 살짝 적개심마저 들었다. 제길. 대체 답이 뭐냐.

정말 찾긴 찾은 거냐.


완전히 지쳐서 나와버렸다. 쥐잡듯 농락당하고 무시당한 느낌. 여유가 없어보인다는 피드백은 내게 흔치 않은

것이었고, 뭣보다 자평컨대 1mg의 분석력도, 여유도 자신감도, 지력도 전혀 보여주지 못한 사상 최악의 인터뷰.

정신 좀 차릴라고 에스프레소 투샷을 마시면서도 쓴 맛도 못 느꼈다. 압박이 너무 강했고, 영어 면접에 대해

전혀(!) 준비하지 않은 탓에 압박이 더욱 커져버렸댔다. (아직도 취업준비생 자세가 덜 된 거라고, 궁시렁궁시렁.)


그나마 믿고싶은 구석은, 면접 첫 오분간이 무엇보다 결정적이라는 항간의 소문. 그에 발맞추어 몇마디 차분함과

스마트함을 가장하는 말마디들을 준비했던 것. 일테면, "시작하기 전에 제가 따로 준비해온 레쥬메와 필기구를

꺼내도 되겠습니까." 뭐 이런..-.ㅡㆀ 그리고, 2차니까 아직 한 차례의 기회가 남아있단 것. 평균을 내던 합의를

하던 둘이 싸워서 이긴 사람 맘대로 하던 간에..한 차례 더.

기록 지침: 위대한 항로에서 항해할 때 항해사가 믿을 수 있는 유일한 물건. 섬의 자기를 기록해서 그 자기의 방향에 따라 각 섬을 들러가며 항해해야 한다. 기록 지침이 없다면 위대한 항로에선 절대 살아남을 수 없다.

영구 지침: 기록 지침과 달라서 한 번 섬의 자기를 기록시키면 그 지침을 어디로 옮기든 반드시 그 섬만을 가리키는 지침.

- 원피스 단어백과사전 中 -



그러고 보니 이곳은 여전히 '어디든 되거나 어련히 잘 되겠지'라던 불과 한달전의 마인드의 기록에서 멈춰있었다.

실은 이미 '어련히 잘 된' 홀가분함을 느끼는 목표상실의 멍청한 상태를 지나, 그럼 나는 어떡해야 하나 라는

긴장감을 조금씩 끌어올리는 상태랄까.

연말의 싱숭스러운 분위기를 핑계로 맘껏 늘어져서는 무슨 말로 자신을 추스리기 시작해야 할지 엄두를 못내고

있었을 뿐이다. 어느새 최초의 홀가분함은 퇴락하고 새로이 부딪힐 문제, 선택들이 정신차리고 진지해지라고

재촉하고 있으니.



수십여 곳에 지원을 했고, 하이바도 안 씌워주는 퀵서비스를 타고 시속120을 넘나들며 가능한 선택지를 넓혀

보고자 욕심을 부렸다. 세달동안 온갖 업종의 기업들 앞에서 내가 했던 말과 보였던 행동은 팔할이

'내숭'이었으며, 04년 이래 늘상 껴왔던 반지를 빼는 행위나 한미FTA를 찬성한다는 프리젠테이션, 혹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여자친구와의 선약 대신 회사를 택하겠다는 대답들이 전부 그러한 내숭..혹은 '짜고 치는

고스톱'같은 통과의례였다고 생각한다.



꼭 가고 싶은 곳은 없었다. 사실 '꼭 가고 싶은 곳'이란 단어로 내가 여태까지 지시해 왔던 것은, 들어가기만 하면

내가 선망하던 삶을 이뤄줄 것 같은 레디메이드 형태의 틀이었는지 모른다. 어느정도의 진보성을 두르고 중상류

이상의 소비생활을 영위하는, 미국보다 20-30년 늦은 한국에서 2010년쯤 대박예감의 '보보스'족이랄까.

그치만 그렇게 헐겁거나 만만한 선택지는 없었다. 물질적/비물질적 '보수'와 자신을 위한 '여가'라는 두 측면은

여지없이 상충했으며, 나자신 이미 88만원 세대에서 자유롭지 못했기에 정말 뽑아줘서 마냥 감사할 뿐인 일개

구직자였던 거다.



엊그제 동아일보 인턴친구들을 만났을 때, 나랑 같이 인턴면접을 봤던 친구가 그때 많이 놀랐노라는 얘기를

했다. 내 빤짝이는 귀걸이를 보며 면접관이, 직장에 들어갔을 때 그걸 빼라 그러면 어쩔 거냐 그랬더니 내가

그랬댄다. 그 정도의 융통성도 없이 꽉 막힌 조직이라면 안 가겠다고. 전혀 잊혀졌던 기억이었다. 음..지금까지

내가 의지해온 것들은, 기록지침이었던 걸까. 어딘가 도착하면 도구로서의 효용을 다하고 버려질 뿐인. 갈지자

행보를 부추기는 기록지침말고..흔들리지 않는 영구지침을 한개쯤 품고는 있는 걸까. 나 자신에 대한 혼란.

협소한 정치적 지형만의 문제가 아니라, 진부하게도,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한 혼란.



오늘 우연찮게 중경삼림을 다시 봤다. 당신과의 기억을 통조림에 담는다면 유통기한이 없었으면 좋겠다는..만약

있다면 만년으로 하고 싶다는 대사. 그 대사가 먹히는 이유는, 대다수의 기억은 편리하게도 유통기한이 파인애플

통조림만큼밖에 안 되기 때문일 거다. 사랑과 삶, 영구지침과 만년짜리 기억. 한살 더 먹는다는 따위로, 책임질

것이 많아진다는 따위로, 그걸 찾는 '척'만 하게 되는 건 싫다.

오늘도 점심때 소주, 저녁때 소주, 그리곤 맥주로 입가심..했더니 지하철 노약자석에 앉아 잠이 들어버렸다.

종점에 사는 것이 좋은 점도 있구나 싶었다. 선택지를 버리면, 맘편히 잠들 수 있다. '저, 여기서 내려요' 정도의

대사가 방해하지 않는한, 여닫히는 문과 그 밖에 펼쳐진 풍경은 내게 아무 의미도 없다.



1) 일개미가 쉴새없이 먹이를 실어나르듯, 기자들은 끊임없이 하루짜리 fact를 주워모은다. 자유롭다고도,

자유롭지 않다고도 말할 수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속박이 만만해보일 수도, 혹은 이미 자기검열이 시작되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다만 일정한 수준내에서 자신의 입맛대로 상큼한 먹잇감을 골라든다.


2) 이른바 데스크에서 조율이 이루어진다. 무엇이 'new's인지, 어떤 것이 '기사로서의 가치'가 있을지 정하는

것은, 생각보다 비이성적으로 결정된다. 찜방 한번 안 가본 기자가 찜방기사쓰듯.


3) fact는 언어로 짜여지기 시작하고, 그럴듯한 레테르로 포장된다. 글말 가지고 먹고사는 사람들이라 단어를

배치하고 뉘앙스를 얹어주며 아웃복싱의 쾌감을 느끼다. 어디에 힘을 실어줄지 결정하는 정교한 구조물. 물론,

스트레이트성 기사는 역삼각형의 흉칙한 바디.(이제 신문을 읽는 독자가 신속성, 가독성을 중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면, 문체도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4) 기사의 표현과 호흡이 유지하던 아슬아슬한 객관성의 외피는, 논설과 칼럼에서 화려하게 재정렬된다. 무질서한
 
듯 뿌려져있는 철가루를 바싹 긴장시키는 강력한 자기장. 기사면에 헐겁게 매달려있던 구슬들을 꿰맨 바늘은

누군가에게 날아가 꽂힌다. 조선의 계륵, 동아의 '약탈정부', '노무현조크' 따위 유치한 삿대질, 그리고 그것에

대처하는 유아틱한 정부의 막말은 차치하고라도.


0) 애초, 객관성은 무리다. 기자들은 사실 기능공이다. 누추한 현실을 재단해서 뭔가 있어보이게 짜깁기하는

바느질공. 아니, 기자는 단지 한 땀만 꿰매는 건지도 모른다. 각자가 가진, 서로 구태여 확인하며 맞춰볼 필요없는

정향에 따라서 허용된 한땀을 꿰맨다. 삐뚤빼뚤하게 엮여나간 실의 궤적은 때론 비둘기를, 때론 매를 그린다.

혹은 정신나간 art brut일지도.



...'동아일보'라는 덩어리를 깨서 보기 시작했다. 80년대 해직기자들은 아무러해도 결국 무능력과 비사교성으로

짤릴 처지였단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고, '지식인의 군기'를 요구하는 선배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사실은, 5시가 다가오면 죽을듯 괴로워하며 헛구역질하듯 글을 토하는..안쓰런 족속인거다.

하지만 사회에 버티고 선 건, 동아일보 기자 누구가 아니라 논설과 칼럼을 두른 동아일보 덩어리다. 대체

마이크를 쥔 건 누군가. 기자에게 쥐어진 건 고작 외마디 fact를 울리는 캐스터네츠 아닌가 싶다. 짝. 짝. 짝.

누군가가 그에 맞춰 노래를 부른다.


아, 물론 모든 신문은 정향이 있어야 한다. 동아일보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언론'의 문제. 1인 1매체가

불가능하다면 부딪힐 수 밖에 없는 괴리감의 존재. 게다가 잔뜩 우그러진 정향이라면야.

이번주는 아시아재단이나 ICG같은 곳으로 인터뷰 반, 견학 반 다니느라 상당히 바쁘게 지나갔다. 내일은

저번주부터 추진했던 이스라엘 대사와의 인터뷰. 첨에는 사실 그다지 내키지 않았다.


대사랑 인터뷰해봐야 동아일보 지면을 이스라엘 찌라시로 만드는 게 아닌가 싶어서. 이런저런 기사를 찾아서

사전 조사를 하다보니 이자식..생각보다 매콤하다. 국제부 선배가 오늘 중동 문제에 대한 '간단한 브리핑'을

해줬는데, 딱 그만큼 매콤하다. 이스라엘은 '영토와 평화'를 교환하고자 하며 성경이 점지해준 땅에 조용히

살고 있는데, 테러단체들이 숨통을 졸라온다는 거다. 사실의 채택조차 정치적이라는 사실을 '새내기 교육하듯'

그리도 강조하던 기자들이 정작 균형을 잡는 건 레바논이 '제대로 된' 주권국가가 아니라서 주권침해가

성립되는지가 애매하다는 지점이다.


당하고 있는 사람이 착할 거란 건 환타지다. 장갑차에 치었다고 갑자기 '순결한 애국처녀'로 둔갑하는 건

코미디다. 하지만 똑같이 테러로 맞대응하는 이스라엘이 '평화, 사랑' 운운하는 건 혐오스럽다.


질문지 위의 번호 붙은 것은 선배들이 선정해준 질문에 내멋대로 살짝 시즈닝, 그리고 #표시는 내가 묻고 싶은

것들. 대체 이게 기사가 어찌 나오려나......또 내 질문은 짤려버리는거 아닌지.

음음...동아일보는 조선일보보다도 보수적이다. 의외인 건, 프레시안 편집부장이던가...가 동아일보의 전직

국제부장이란 사실. 인턴을 조금더 일찍 왔어야 했던가.ㅋㅋ


1. 이스라엘은 이번 사태를 헤즈볼라가 이스라엘 군인 2명을 납치한 것에 대한 자위권을 발동한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대대적인 군사작전은 자위권이 갖추어야 할 ‘비례의 원칙’에 어긋나는 대응이라는 평가가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2. 이스라엘의 공격이 계속되면서 어린이나 노약자 등 민간인들에 대한 피해가 크게 발생하고 있다. 헤즈볼라와는 관련이 없는 일반 주거지나 사회 기반시설에도 대대적인 폭격을 가하고 있다는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민간인 피해를 막기 위해 이스라엘은 어떠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


3. 이스라엘 총리가 이란을 이번 사건의 배후로 지목하는 등 점차 대립구도가 아랍권 대 이스라엘의 구도로 변화하고 있다. 헤즈볼라를 무력화하겠다는 애초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전장이 기타 지역(시리아나 이란)으로 번질 수도 있는가. 먼저 이스라엘을 공격하지 않는 한 전장이 두 나라로 확대되지 않는다고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는데, 전황이 장기화되는 경우에도 이는 유효한 약속인가.


4. 이스라엘은 현재 레바논에 헤즈볼라의 무장 해제를 휴전의 전제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분열되어 있는 레바논 내각은 헤즈볼라를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레바논 남부를 무인지대화하거나 다국적군이 주둔하도록 구상하고 있는데, 이스라엘이 생각하는 이번 사태의 궁극적인 바람직한 해법은 무엇이며,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 레바논의 유엔 감시단원들은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초소가 파괴되기 전까지 6시간 동안 무려 10차례나 공격을 중단해줄 것을 이스라엘군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엔 사무총장도 이를 고의적인 공격으로 규정하며 규탄한 바 있는데, 이에 대한 이스라엘의 입장은 무엇인가.


#.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의 작전으로 헤즈볼라가 약화되면, 비록 레바논이 치르고 있는 희생과 대가가 크지만 레바논 정부의 주권 행사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는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알-카에다를 향해 수행했던 비대칭전쟁의 양상을 떠올리게 한다. 이스라엘은 헤즈볼라가 점유하고 있던 지역을 점령할 수는 있겠지만, 결코 단시간 내에 현장을 장악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은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이라크에서 벌어졌던 미국의 대테러 전쟁에서 어떤 교훈을 얻었는가.


#. 사실 여부를 떠나 노르웨이 등 세계적인 차원에서 반미 여론과 함께 반유대 여론도 대두하고 있다. 올해 3월 주한 이스라엘대사도 연세대 채플 시간에 강의를 하던 중 강한 반발을 샀던 일이 있는데, 한국 대중들의 반유대 정서를 막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강연 도중 아랍인들을 테러리스트라고 지칭하고 민주주의도 전혀 모른다는 등의 아랍권 비하 발언)

사실 기자에 대한 동경은 없었다. 단지, 짜장면 받침이 되더라도 일정하게 확보된 지면을 장악한 채 자신의

이름을 걸고 무언가를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 '마이크'를 쥔 그들이 부러웠을 뿐.


국제부를 2주간, 사회부를 2주간 하게 됐다. 원래는 국제부 대신 정치부를 가고 싶었는데, 글쎄..암만해도 전공을

감안한 듯하다. 한국에서 '국제면'은 무슨 이야길 해야할까. FTA, 개성공단, 동아시아 군비경쟁과 우익화, 유엔,

북한문제..아니다. 국제면만이 실을 수 있는 건, 고작해야 얼음축구공을 핥고 있는 북극곰 사진과 어딘가

먼 나라의 축제 사진. 아니면 미인대회 사진?


FTA를 둘러싼 찬반논의가 간과한 건, 이미 한국은 벨트까지 끌러져내린 상태란 거다. 더이상 한나라의

정권이나 시민사회가 독존할 수 없는 세상, 미국조차도. 국제면 폐쇄를 건의해야겠다. 사회, 경제, 정치..살점은
 
모두 뺏긴 채 앙상하게 레바논 넝마 한벌 걸치고 있는 꼴이다. 그것도 경쟁지'조선'이 치는 만큼 따라간 기사.


아니면, 깊이다. 가십거리야 이미 사이버공간에 넘쳐난다. 최근 미국 외교정책의 전환이나, 중동과 유대인의 문제

그리고 약간의 국제정치학적 씨즈닝을 곁들이면 어떨까 싶은데. 글쎄...기사가 한국과 가까워지는 순간 다른

지면에서 요리된다. 조선처럼 적극적으로 국제기사를 '활용'해서 국내 정치를 까는 것도 아니고. 멕시코 대선을

보며 '일자리도 못만드는 정부는 필요없다'는 식.ㅋ


국제부 선배 하나가 그런다. 기사문에 익숙해지면 글을 못 쓰게 된다고. 이건, 어디에서도 잘려나갈 수 있어야

하는 인스턴트 글. 우람하지만 정형화된 역삼각형의 근육미는 그다지 매력적이진 않다. 도마뱀 꼬리처럼 언제고

잘려나간 준비가 된 나머지 글들이 허하다. 속보성이 떨어진다면, 훨씬 호흡을 잘 갖춘 글이 먹힐 수도 있을 거

같은데. 하긴, 알고 있었다. 하루치 상식(내지 상식인 양 포장된 교묘한 프로파간다)을 파는 지식 노동자, 먹고

살아야 하는 밥벌이로서의 기자질. 술자리서 부딪혔던 부국장단 아저씨들은 그들이 이미 태반의 삶을 실어버린

동아일보의 이미지와 정견에 대한 신념이 있었지만, 젊은 기자들은 그렇지 않은 거 같다. 뭐..좀더 깊이 이야기를

해봐야겠지만. 어디까지가 그들의 의지였고, 어디까지가 그들의 타협선일까. 땅따먹기 놀이같단 생각이 든다.

선을 그어 자유로이 밟을 수 있는 땅따먹기.

기자가 뭘까라는, 오늘 시작된 인턴 수업 매 시간마다 내게 불편하게 내질러졌던 질문. 사실 그다지 진지하게

뭘까~하고 생각했던 것이 아니어서, 일단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들으며 관망세를 취하다. 진리를 구성하고,

사회적 책임이 막중하고, 머 그런 것들이 짚어졌다. 김학준 사장은 조선 시대의 사관과 언관에 비유를 하기도,

혹은 군사독재 시절 정의의 횃불로 비유를 하기도 하며, 권력에 대해 결연하게 맞장뜰 수 있는 자세를 강조했고.



개인적인 차원에서, 분명히 기자는 어떤 축복을 받은 직업이긴 할게다. 자신의 호기심을 도발하고, 그것을

충족시키는 쾌감. 무엇 하나 전문지식을 쌓지는 않더라도, 그만큼 자유롭게 알고 싶은 것들을 공부해가며 자신의

발로 눈으로 직접 알고 싶은 사실을 캐낸다는 것. 그저 쏟아지다시피 제공되는 정보에 만족하는 사람들과는

확실히 다른 입장일 거다.



하지만, 지금이 유교적 기치가 공고했던 조선 시대나, 악과 정의의 구분이 선명했던 군사독재 시대와 같을까.

절차적 민주주의가 확보되고 나선, 오히려 제멋대로 호명되는 '민주주의'의 허울. 역설적인 이념 과잉의 시대에서
 
'민주주의'라는 둔탁하고 애매한 수사로는 아무것도 말해지지 않는다. 확고한 지반은 이미 무너졌다.

도끼를 짊어지고 왕에게 상소를 하던 심정으로 오늘날 언론의 사명을 운위한다는 것은, 내게 다시 황장엽씨를

떠올리게 했다. 인간이 중심되는 세상을 구축하기 위한 그의 철학-함이 결국 기대고마는 '민주주의', 그것은

그러나 '미치광이'가 지배하는 북한을 의식해야 하는 한국에서는 의사 민주주의, 곧 반공 이데올로기로 변질된 채

제기된다. 그리고, 그 자신의 삶을 온통 묻어버린 그러한 사고방식은 자기가 옳다는, 옳을 수밖에 없다는

경직성으로 귀결된다. 맞장뜨자라는 도전적 사고. all or nothing의 극단성.

정치 권력에 대한, 시민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대립각.



오늘날 기자에게 필요한 건, 진부하지만 똘레랑스 같은 거 아닐까. 물론 자신의 정견이나 의견이 없을 수야

없지만, 그조차 사회의 이념적 스펙트럼의 한부분을 구성하는 톱니같은 것..이라고 인정하는 것. 구성되는 진실에

수만가지 버전이 있을 수 있고, 압축성이 생명이라는 짧막한 기사글에 담기는 진실이란 허약하기 짝이 없다는

자기 반성..주제 파악. 좀더 경험해보면, 어떻게 생각에 살이 붙어갈지 지켜볼 일이다.

얼마전 GS 중역들과 함께 했던 회식에서 전무 하나가 내게 마치 인사면접보듯 질문했다, 술이 불콰히 취해서

이런저런 얘기중에. 윤선생은, 자네는 나중에 무엇이 되고 싶은가.



그건 날 곤란하게 만드는 질문 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자기소개서, 에세이, 커버레터를 쓸 때 잠시 손을 멈추게

되는 지점. 어쩔까 하다가, 늘상 몇마디 공격을 허용하고 마는 대답을 그대로 읊었다.

무엇이 되겠다는 완결된 꿈은 없습니다, 다만 하루하루 의미를 찾으면서 살고 싶습니다. 원점에서 항상 새롭게

볼 수 있는 시각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변덕스럽진 않습니다.



만약 레쥬메를 들고 하는 Q&A였다면, 아마도 나는 이런 식으로 좀더 읊조렸어야 했을 거다. 이력을 얼핏 보면 좀

미친년 널뛰듯 한다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그 밑에는 일관된 열정이 있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 제가 가장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는 것이 책임감이라 쓴 에세이 역시 그러한 우려를 불식시키고자 함이였구요. 운운.



정형화된 남성성은 목표지향적인 반면, 여성성은 과정지향적이라 했다. 어떻게 보면, 나는 무언가를 갖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갖고 그 무엇을 향해 치닫는 '남성적' 성품이란 게...상당히 희박하다. 똑같이 '성취'라는 결과가
 
나오더라도, 예컨대 이번학기 학점과 같이, 그건 분명 목표학점을 찍어놓고 달린 결과라기보다는 리포트, 중간,

기말..하나하나 찍어나가면서 얻어진 결과였다. 사람들간의 관계 역시 그렇다. 對이성 관계에 있어서도, 애초부터
 
뭔가 이뤄보겠단 심잡고 만난다기보다는..그냥 만나는 게 좋고 보는 게 좋고 그러다 보면 뭔가 되든 안되든, 그런

것 같다. 그냥 '지금의' 것이 좋은 건데, 그 '지금의 것'으로부터 어떤 정향을 추출해내는 사람에겐 오해를

부르기도 하고. (어쩌면 이 모든 건 사람을 겁내고 감정을 두려워하는 내 핑계일지 모른다)



과정 자체를 즐긴다는 말은, 그래서 사회적 통념상 '불건전'하게 들릴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슬며시 빠져나갈

구멍을 항상 보고 있겠다는 말을 뒤집은 것인지도 모른단 얘기다. 원하는 목표 대신 목표를 향하는 길 자체를

즐기겠단 말, 어디로 어떻게 꺽이고 변화/변전/변질/변색/혹은 퇴색(?)되더라도, 사후적인 한마디,

이를 앙다물고/기꺼운 표정으로/썩소를 지으며/비극을 연기하듯, '재밌었어.' 혹은 '그걸로 충분해.'



내가 정말 과정을 중시하는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운전대를 잡고 '지금 현재'만 주시하는 고속주행에선

조그마한 돌멩이 하나가 밟혀도 차가 휘청하듯이, 조그마한 일 하나에 마음 전체가 왈칵 쏟아지기도 한다. 애초

별것아닌, 아주아주 사소한 일 하나라 할지라도, 그건 몇달몇년 간의 내 의지를 순식간에 뒤엎어 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애초 그 바램, 의지란 것 자체가 뭐 그리 대단한 이유나 설득력이 있었겠냐만, 관성에 기대어 응고되어

가던 그 마음이란 게, 한순간에 휘발되어 버린다. 고시를 그렇게 그만 둘 수 있었던 것도, 사람과의 관계를 그런

식으로 정리하는 것도, 돌아서면 무지 차가울 것 같다는 누군가의 사려깊은 통찰도, 결국은 같은 궤적에 있는 것

같다. 현재를 탐닉하는 마음, 그리고 한순간의 (언제고 일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필연적일) 엇나감, 그리고는

망설임 없는 돌아섬. 그 돌아섬에는, 이러한 사건,일상,이벤트를 통해 무언가를 '얻었다'는 자기만족 내지

자기위안과 자족감이 가득한 데다가, 애초 무언가를 끝까지 추구하지 못하는 주의력 결핍장애나 집중력핍진증의

징후가 뚜렷이 드러나는 것이다.



이쯤 되면, 애초 전형적인 여성상에 비추어진 '과정지향적'이란 단어 자체에 마초적이고 악의적인 의도가

내포되어 있진 않은가 의심할 판이다. 아님, 초점을 보다 좁혀서, 나 자신의 성품이란 게 단지 '다소 여성적'이란

식으로 넘어갈 게 아닌 무언가 문/제/가/있/다/라고 보아야 할지도 모른다. 무엇을 끝까지 추구해서

상처투성이가 되더라도 '쇼부'를 보고야 말겠다는 우악스러움(혹은 집요함/보다 중립적으론 굳건함)이 결핍되어

있다. 그리고 여태까진, 어렴풋이 느껴졌던 그러한 빈궁함의 이유를 '목표'가 없다는 데서 찾고 있었지만..

그게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대부분의 일본 애니에서 느껴지는 그 상실의 미학. 이쁜 비극. 그런 결말. 마지막을 얼마나 농도짙은 애수, 혹은

싱실감으로 가득 채울 수 있을지가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듯이, 거침없이 '추락하는' 캐릭터들. 애초 목표를 향해

쏘아진 살이 아니었다는 듯이. 얼마나 이쁜 궤적을 그리며 하루하루 추락했는지가 문제였다는 듯이.



과정이 중요하다고,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라도 그 과정이 충실하고 이뿌다면 된거라고,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그건 언제고 나타나는 돌부리가 버거워지는 순간 널부러지며, '에라 모르겠다

여태 즐거웠으니/행복했으니 됐다'라는 식의 방탕스러움 그것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미 알고 있던 이야기이고, 그런 식으로 해석할 여지 역시 충분히 예측가능한 거였다. 그치만 역시나, 발딛어

직접 감촉하기 전까지는 모든 땅이 미지의 섬이었던 게다.



목표를 놓쳐선 안 되는 거 아닐까. 책임감이란 거, 그런 게 아닐까.

그렇게 합리적이지도, 납득할 만하지도 않지만.



아, 그 전무가 내게 치고 들어온 공격은 그런 거였다. 와이프, 혹은 여자친구가 그런 모습에 실망하지 않겠나.

내 대답. 그런 나를 이해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애초에 그런 관계가 불가능하겠죠. 잘한 대답인진 모르겠지만,

전무는 그저 내 어깨를 몇차례 두들겨 주고는 술한잔 말아주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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