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길을 걷다가 만난 이쁜 까페.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이렇게 소담한 눈송이가 창문 가득

내려앉은, 그리고 무엇보다 손님이 하나도 없어 음악만 조용하게 속삭거리던 분위기가 너무 맘에 들었다.

막 시립미술관에서부터 숭례문까지 한바퀴 걸었던 참이라 조금은 차가워졌던 손과 발이 금세 따뜻하게

화색을 되찾고, 카메라를 끄집어내어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1.5층 쯤으로 된 곳에도 손님은 하나도 없고, 우리가 앉은 1층에도 역시. 저쪽 너머엔 박기영의 콘서트가 벌어지고

있다고 해서 사람들이 전부 그쪽으로 몰렸는지도 모르겠다.

카페 모카. 새삼스레 재발견한 카페 모카의 달콤함이란.


창밖으로 기와가 얹힌 돌담도 보이고 하얗게 번지는 가로등도 보이는가 하면, 건물 앞 나무를 피해 움푹 들어간

형태로 디자인된 캐나다 대사관의 나무 외관도 보인다. 눈꽃들을 경계로 살짝 차갑고 날카로워 보이는 바깥 풍경과

겹쳐서 보이는 이쪽의 포근하고도 따스한 주홍빛 조명과 실루엣들.


포인세티아. 포인세티아의 새빨강 무더기들은 실은 꽃이 아니라 꽃받침. 가만히 들여다보면 방울방울 옹송그려

말려붙은 털실뭉치같은 게 보이는데 그게 꽃이란다. 가뜩이나 풍토가 맞지 않는 한국의 겨울을 버티느라 힘들 텐데

다음번에 가도 그대로 있음 좋겠다. 언제고 정동 쪽을 돌아볼 때 꼭 다시 함 가보고 싶은 곳.


목포는 항구다, 깊은 밤 산책길에 만난 아크로바틱한 조기들.

에 이어지는, 새벽 이른 시간부터 목포수협 위판장을 찾아간 이야기다. 조기가 풍년이라는 요새 어선들이 쏟아내는

생선이 어떻게 모이고 분류되고 포장되는지를 봤으니 이젠, 그 생선들이 어떻게 경매에 붙여지고 팔려나가는지.

온통 새까맣기만 하더니, 어느덧 희뿌여니 바다 저편의 실루엣이 눈에 띈다. 밤새 뱅글거리며 밤바다에서 있을지

모르는 미연의 사태를 방지하던 소리없는 사이렌 불빛이 이제야 조금 졸음이 오는지 한풀 꺾였다.

구름이 많이 끼어서 또렷하게 해가 뜨는 건 구경하기 쉽지 않겠다 예감했지만, 그래도 제법 구름들에 붉은 물이

슬금슬금 배어오르는 게 시시각각 주위 풍경과 분위기를 바꿔놓고 있었다. 하나도 안보이던 먹장 커튼이 걷히고

점차 멀리까지 시야가 확보되기 시작했다.

5시부터 경매가 시작된다고 했는데 좀 늦었다 싶어서 재게 걸음을 놀리는 와중, 벌써 해안가에 나와서 산책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싶어서 한참 바라보며 걸었는데 어느 순간 그네들이 살짝 떨어져 있는 배들을 낚시질하는

것처럼 보여서 깜짝 놀랬다. 배들이 묶여있는 두꺼운 밧줄이 마치 그들이 늘어뜨린 낚시줄 같이 보였다.

밤에 지나다가 '개 풀어놓았음, 물려도 책임안짐'이라는 살벌한 경고문구에 쫄아서 돌아갔던 곳에는 그새

불이 환히 밝혀진 채 일하는 소리가 요란했다. 알고 보니 생선들을 담는 나무상자를 제작하는 공장이랄까,

좁지 않은 마당 한가득 나무상자가 잔뜩 포개어 쌓여있었고, 새벽바다 냄새에 더해 싱그러운 나왕 나무

냄새가 온통 진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설핏 밝아오는 하늘 아래서 노랑색 낡은 간판 위를 빈틈없이 빼곡하게 채운 자그마한 화분들이 눈에 띄었다.

저 나즈막한 2층짜리 건물 2층에 있는 조그만 창문을 활짝 열면 바다가 멀리까지 보이려나. 눈앞의 화분들 때문에

시야가 약간은 가리거나 초록빛으로 일렁일지도 모르지만, 그 전망도 꽤나 매력적일 거 같다.

아직 경매가 시작되지 않은 창고를 지나서, 시끌벅적한 소리를 따라 그 옆의 창고로 향했더니 역시 사람들이 바글바글.

사람 한명이 겨우 걸어다닐 통로를 드문드문 남기고는 온통 바닥을 몇 겹으로 점령해버린 생선들, 그리고 그 통로에

비집고 서서는 경매인의 손가락들과 생선들로 시선을 옮기기 바쁜 사람들이 있었다.

이런 식인 거다. 목포수협 마크가 박힌 빨간 모자를 쓴 경매인분들을 한번 쳐다보고, 그 밑에 지천으로 깔린

셀수없이 많은 생선들의 상태와 크기와 선도를 전문가의 안목으로 식별해내느라 번쩍거리는 눈빛. 금빛으로

번쩍이는 오동통한 조기들은 바다처럼 싱그러운 짠내를 풀풀 풍기고 있었고, 은빛의 긴 칼처럼 번뜩이는

갈치들은 비늘이 벗겨지거나 하는 상처 하나 없이 차곡차곡 포개어져 있었다.


경매에 참여한 사람들은 번호가 적힌 모자를 쓰고 매물에 대해서 제각기의 금액을 말하고, 빨간모자 아저씨는 그걸

다시 확인하며 창고가 울리도록 쩌렁쩌렁하고도 재빠른 목소리로 모두에게 확인하는, 그런 다이내믹한 풍경.

 

 창고 끝에 쌓인 생선들부터 거래가 이루어져서는 점점 옮겨오는 경매인, 그리고 그를 따라 모세혈관같은 샛길을

밟고 신속하고 헤쳐 모이는 사람들. 거래가 끝난 생선들은 리어카나 트럭에 바삐 실리고 있었다. 어느새 점점

부옇게 밝아오는 바다와 하늘.

거래에 나온 건 대풍이라는 조기만이 아니었다. 갈치도 있었고, 복어도 있었고, 고등어니 삼치도 있었고, 심지어

익숙하게 생긴 상어와 이상하게 생긴 상어도 있었다. 거의 '시장에 가면~'으로 시작해 줄줄이 이어지는 무한

돌림노래를 듣고 있는 기분이랄까. 그나저나 마지막 사진의 이상하게 생긴 놈도 상어라니, 신기하다.


그리고 저 녀석. 저 발갛게 달아오른 부분을 보고 '홍어X'이라고 하는 건 아닌가 싶어서 지나는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니까 이것도 모르는 딱한 도시사람을 봤다는 투로 '아귀'라고 알려주셨다. 콩나물넣고 찜으로 쪄먹는

아귀 혹은 아구찜 모르냐고 부연설명이 들어가기도 전에, 그럼 저건 '홍어X'이 아니라 '아귀X'이구나 하고

머릿속 정리를 끝내고 가만히 눈에 담아두었다.

아침식사 시간에 맞추려면 이제 슬슬 떠야겠다 싶어서, 마지막으로 외판장 전경을 담고는 자리를 떴다. 수협외판장

앞면에 내려진 철제 셔터막에는 귀여운 거북이들이 곰실곰실.

이제 저렇게 경매를 거쳐 팔려나온 조기와 갈치 같은 생선들이 위판장 근처 생선가게에서부터 깔리기 시작했나보다.

깔끔하게 포장된 조기 상자하며, 진열대 아래로 추욱추욱 꼬리를 늘어뜨린 갈치들. 갈치 꼬리들이 무슨 고드름처럼

진열대에 매달렸다.

그렇게 돌아오는 길, 이미 해가 바싹 떠올랐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오르는 중이었나보다. 시멘트 바닥 위에

올라와있는 배 위로도, 걸쭉한 물결이 이는 불투명한 수면 위로도, 조금씩 저 너머 바다끝에서부터 천천히

그렇지만 거침없이 햇살이 번져오기 시작했다.

갈매기도 날고, 날다가 지친 새들은 햇살을 받으며 바다에 내려앉아 쉬기도 하고. 구름이 좀만 더 옅었어도

햇빛이 좀더 구름의 장막을 뚫고 넓게 배어나오지 않았을까 아쉽기도 하다.


같은 듯 하면서도 조금씩 느낌도 다르고, 수면 위에 이는 고요한 물결 무늬가 불러일으키는 느낌도 달라서

좀체 해돋이 사진이나 바다 사진은 골라내질 못하겠다. 하여, 그냥 핑계김에 전부 올려버리는 게으름을.


그러다가 역시, 제버릇 개 못준다고 또다시 옆길로 새어서는 꽃도 보고, 어느 낡은 건물 벽면에 기대어선 닻도

구경하고. 산동네처럼 언덕을 따라 층층이 올라가는 건물들을 보며 저 사잇길로 돌아다니면 예기치 못한

재미난 풍경들을 구경할 수 있지 않을까 잠시 고민하기도 하고. 결국은 가보지 못한 길을 남겨두었지만.

이런 운치있는 계단을 밟아 올라 열게 될 저런 낡은 대문도 맘에 들었다. 해풍을 맞고 소금기에 절어 눅진눅진

삭아가고 있을 대문 위로 세워져있는 짧막한 창살들도 방범용이라기엔 시늉만 남은, 경비할아버지같은 느낌.





* 한국원자력문화재단에서 주최한 '에너지체험 블로그기자단'의 일원으로 떠난 출사 여행이었습니다.

목포의 유달산 일출을 찍기로 한 출사 여행이었던지라 저녁 일정은 일찍 마쳤다. 술도 깰 겸 하여 습관처럼

카메라를 둘러메고 훌쩍 혼자서 나온 건 이미 늦은 밤, 그래도 밤 공기도 선선한데다가 바로 옆에 바다를

끼고 걷는 길이 너무 좋아 내처 걸어보기로 했더랬다. 알고 보니 숙소가 위치한 유달산쪽은 옛 목포항이 있던

곳이라나, 몇걸음 걷기도 전에 물결치는 필체로 쓰인 '예향목포'란 돌덩이부터 만났다.

역시 항구도시인지라 길가에 이렇게 닻을 겹겹이 쌓아둔 채 셔터를 내린 상점들도 보이고, 스크류니 프로펠러니

선박에 관련된 장비들을 취급하는 간판들이 즐비하다. 지나는 사람은 고사하고 차들도 흔치 않아 조금 헛헛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혼자 무작정 발길 닿는 대로 밤길을 걷는 건 굉장히 유쾌한 일이다.

나름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선 한밤 중에 단풍놀이도 즐기고. 짭조름한 바닷바람에 절여졌을 텐데도 노랗게 잘도

익은 나뭇잎들이 이쁘다. 그런데 그 밑에 줄줄이 주차해 있는 저 리어카들은 왜 저렇게 바닥이 길게 덧대어져

있는 걸까. 한 두대도 아니고 우르르 세워진 리어카들이 전부 저 모양이니 더욱 궁금증이 이는 거다. 나중에

목포 수협 위판장까지 걷고 나서야 풀린 의문.

목적지를 정해두고 걷는 길이 아니었으니, 골목이 나오면 괜히 한번 꺽어들어가 보기도 하고, 뭔가 호기심을 잡아끄는

게 있겠다 싶으면 옆길로 새보기도 하고, 아니면 굳이 뒤로 되돌아와 확인해보기도 하고. 그렇게 떠도는 중에 지나친

골목 중 하나. 작고 여윈 이층짜리 건물에 문짝은 왜 그리도 많이 달렸는지, 문짝 하나 창문 하나로 이루어진 상점들이

세네개는 들어서 있는 거 같았다. 가로등 불빛을 양분삼아 하얀 스티로폼 상자 속에서 쑥쑥 자라던 상추들도 있었고.

 

정말이지 아무 것도 모르고 문득 다다른 곳이었다. 목포수협 위판장. 불이 환하게 밝혀진 곳이 멀찌감치에서 보이는

거 같아서 그것을 향해 걸었을 뿐이었는데 무슨 마을 잔치라도 벌어진 듯이 웅성대는 분위기에 온동네 사람들이

전부 나온 듯 바글바글한 인구밀도까지. 뭔지 몰라도 바싹 구미가 당겨서 풍경 틈새에 비집고 들었다.


그 결과, 조기가 풍년이라는 요새, 어떻게 어선들이 잡은 생선이 모이고 분류되고 포장되는지 그 과정을 전부

구경할 수 있었다. 더불어 다음날 새벽 5시부터 경매가 진행된다는 정보도 입수해서, 경매가 어떻게 진행되고

어떻게 생선들이 팔려나가는지까지 알 수 있었던 뜻밖의 경험도 할 수 있었다. 우선은 경매를 준비하기까지,

생선들이 집하되고 분류되고 포장되는 과정을 시간순으로. 사진은 어쩌다보니 역순으로 찍혔더라는.

어선들이 항구에 배를 가까이 대고 나면, 크레인차가 배 곁으로 바싹 붙어선 단단히 위치를 잡는다. 온통 칠흑같이

어두운 밤바다에서 불쑥 튀어나온 배와 그 우악스런 불빛으로도 충분히 정신이 혼란스러워지는데, 게다가 어디선가

솔솔 풍기는 기름 냄새와 둔중한 기계의 울음까지.

배의 갑판 위에서 잡은 고기들을 차곡차곡 정리하는 선원 아저씨들. 예비군 모자가 유난히 반짝거리는 젊은이도 있고,

그야말로 뱃사람 느낌이 물씬 풍기는 아저씨도 있고. 옷에 가려 보이진 않아도 그네들의 팔뚝은 두꺼운 근육들로 감겨

사방으로 갈라지지 않을까 싶다. 크레인이 늘여뜨려진 배의 한복판에서 잰 손놀림으로 뚝딱 짐 하나를 꾸린 사람들.


그렇게 잘 여며진 생선 상자들이 크레인의 움직임에 따라 번쩍 들려서는 안전하게 항구 위 단단한 바닥에 옮겨졌다.

두껍고 까만 크레인 낚시바늘이 생선 비늘처럼 반짝거렸지만, 그런 건 일하는 사람이 아닌 놀고 있는 사람 눈에나

보이는 법인가 보다.

한짐을 꽁꽁 안전하게 묶고 있던 두꺼운 밧줄을 헤집어서는 번쩍, 하나씩 옮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옮겨진

생선들은 노란 플라스틱 박스에 부어져서 아주머니들이 분류해주기를 기다리는 신세가 된다. 어찌나 생선들이

많은지, 당연하지만 한마리 한마리 긁히거나 찌그러지지 않게 챙길 여유는 없는 듯 했다. 마치 우유가 담긴

그릇에 씨리얼을 붓듯이 가차없이 부어버리는 그 냉정한 손속이라니.

일렬로 늘어선 아주머니들과 노랑 박스를 무질서하게 가득 채운 조기들과의 기싸움이 시작되고. 아주머니들의

군더더기라곤 없는 정연한 몸놀림과 생각보다 현란한 패션센스에 뒤지지 않는 생선들의 아크로바틱한 자세는

요지부동이었다. 모두 하나같이 입을 쩍쩍 벌린 채.
 

아주머니들은 인어공주처럼 온통 반짝거리는 비늘로 뒤덮인 하반신을 하고 있었다. 창백한 색감의 형광등 아래에서

미끌거리며 반짝거리는 비닐 앞치마 자체의 광택도 눈이 부셨지만. 생선의 사이즈에 따라 각기 다른 상자에 옮겨담는

과정이라고 했는데, 생선들을 분류하는 손놀림에서 일말의 망설임이나 잡생각도 읽어낼 수 없었다. 무슨 '생활의 달인'을

보는 듯한 기분이었달까. 사방으로 날아다니는 생선들은 아직도 숨이 붙어 펄떡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아주머니들이 제각기의 패션센스와 칼라를 과시하며 일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은 왠지 슬며시 웃음이

나오게 되는 그런 따뜻한 풍경이기도 했다. 열두시가 넘은 오밤중에 나와서 쉼없이 저렇게 일하시는 게 그렇게

마냥 재미있는 일은 절대 아니겠지만, 그래도 노랑 박스에 포위당하다시피 한 상태로 끊임없이 새로 부어지는

생선들의 산을 의연하게 해치우시는 모습은, 뭐랄까, 약간 영웅적인 분위기마져 풍겼던 거다.


그리고 그렇게 사이즈별로 분류된 생선을 받아서는 저렇게 가지런히 정리하는 아주머니들이 있었다. 사이즈가

비슷하다고는 하지만 약간씩 자세도 다르고 모양도 다른데, 무슨 테트리스 조각맞추듯이 이렇게 저렇게 짜맞춰선

틀림없이 저런 봉긋한 언덕 모양의 생선박스를 만들어내시는 거다. 그 손놀림 역시 신묘하기가 달인의 경지더라는.

완성된 생선꾸러미엔 저렇게 물을 한바가지 끼얹어서는 창고 맨 뒤쪽부터 차근차근 놓이게 되는 거다.

그 전에 생선의 선도 유지를 위해 빠질 수 없는 얼음 한 삽. 큰 칼 옆에 차고 자세를 잡으신 충무공은 아니라지만

눈삽을 옆에 차고 깔맞춤된 '구루마'에 턱하니 기대선 모습이 어찌나 멋지시던지. 마침 약간 빛살도 새어들어와

머리 위로 내려떨어졌으니 더할나위없는 영웅의 풍모.

이렇게 안에서부터 바싹 붙어선 차곡차곡 채워지는 생선들은 이제 새벽에 있을 경매를 기다리며 네다섯시간을

얼음찜질하는 거다. 물론 이 곳으로 목포 근방의 어선들이 모두 집결하니까 생선량이 어마어마할 수 밖에 없겠지만

얼핏 보기에도 조기가 정말 풍년이긴 한 것 같다. 드넓은 위판장 바닥이 온통 저렇게 빈틈없이 빽빽하게 갈무리된

조기 꾸러미로 깔려 버렸다.

그래도 그 옆에서 수협 위판장 바닥에 대한 나름의 지분을 확보하고 있던 녀석들은 새우젓 드럼통들. 꽁꽁 묶인

주둥이 사이로 용케도 삐져나온 암모니아 냄새가 코를 찔렀다.

보고 나서 웃음이 빵 터지고 말았던 위판장 벽면의 무슨 전기스위치상자. 손대지 맛시요. 위염. '맛시요'란 말은

전라도의 특징적인 억양을 그대로 살려서 적은 거 같은데 왠지 발음하며 읽어볼수록 맛깔스러운 거 같다.

손대지 맛시요. 알았시요, 라고 얼른 대답해 주고 싶은.

조금이라도 자고 몇 시간 후에 있을 경매 모습을 구경하려면 얼른 돌아가야겠다 싶어서, 이제 목적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숙소. 덕분에 돌아가는 길은 무척이나 짧았고, 생각보다 금방 돌아올 수 있었다.

그래도 돌아오는 길에 그토록 길게 덧대어진 리어카들의 쓰임을 알아냈으니, 생선을 담는 나무상자를 가능한

많이 싣고 옮기기 위한 방책이었던 것. 저런 식으로 '대륙'의 느낌 가득하게 나무상자를 바리바리 싣고는

위판장에서 필요할 때 옮겨와서 쓰는 거 같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이미 자정이 지난 늦은 밤이었지만 시꺼먼 바다를 가르며 불빛들이 나타나서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생선을 실은 배인지 아니면 막 내려놓은 배인지 모르겠지만 불빛 세 개가 발톱처럼 수면을

긁으며 앞으로 기어나가고 있었다.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이는 배가 지나가고 나면 길 옆으론 온통 까만 어둠이다. 빵꾸난 구멍으로 새어나올 법한

불빛 하나 제대로 보이지 않는 먹지같은 까만 벽이 하나 바닥에서 하늘 꼭대기까지 세워진 느낌. '바다'라는 곳에서

느끼는 막막함과 망연함이란 건 사실 저런 형태 아닐까 싶었다. 제 손가락도 제대로 식별할 수 없는, 어디가 앞이고

뒤인지도 말할 수 없는 그런 무저갱의 어둠 속. 아마도 밤바다가 웅크리고 있을 그 무시무시한 공간을 옆으로 두고는

열심히 걸어서 숙소로 돌아왔다.






* 한국원자력문화재단에서 주최한 '에너지체험 블로그기자단'의 일원으로 떠난 출사 여행이었습니다.

북촌한옥마을에 위치한 까페 가회, 저번달에 '타투이스트'의 전시가 있다해서 겸겸 다녀왔었다. 전시는

생각보다 단촐했는데, 아무래도 전시의 방점이 '타투'보다는 타투이스트의 예술 세계에 맞춰져서 그런듯.

가장 재미있었던 작품은 여권에 과감하게 그림도 그리고 낙서도 하고, 심지어 저렇게 타투하듯이

재봉틀로 별이니 배니 종이비행기니 박아놓았던 작품.

북촌 한옥마을은 거의 처음 가봤던 거 같다. 안국역에서 내려선 꼬불꼬불한 길을 지나 자칫하면 못 보고

지나칠 뻔한 조그마한 안내판을 용케도 놓치지 않고선, 빗길을 뚫고 가회 갤러리 까페 입성.


입구에서부터 전시중인 타투이스트 전시 관련한 팜플렛과 달력, 온통 그의 '타투' 작품 사진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북촌 한옥마을을 소개하는 A4 한장 크기의 도보자용 지도도 주었는데, 여태 모셔두고만 있다.

왜 이렇게 비가 자주 오는지 걷기엔 참 좋지 않은 날씨 탓이다.

'타투이스트', 아무리 생각해봐도 한국어로 딱히 바꾸기가 애매한 단어다. 문신술사, 문신전문가, 문신예술가.

혹은...뭐가 더 있으려나. 그만큼 한국에서 '타투', 문신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워낙 부정적이고 척박하단

사실을 반증하는 거 같다. 그 와중에도 이렇게 종이 비행기를 주된 테마로 잡고 타투 아트를 계속해온

아티스트가 있다는 건 그 자체로 박수쳐줄 일이지 싶다. 자기 몸을 도화지 삼아 연습하지 않았을까.


그가 갖고 있는 타투 장비들. 저 총처럼 생긴 것에 잉크통을 꼽고서 펜처럼 피부 위에다가 그림을 그리는

거다. 우리나라에서 타투가 뭐라더라, 공중위생법으로 제재받고 있다던가. 딱히 제재할 법이 없으니 저

타투 장비가 위생적이지 못하다느니 병을 옮긴다느니 따위의 조잡한 꼬투리를 잡고서 제재하고 있다는데,

한심한 일이다. 양성화해서 다양한 예술적 디자인이나 그래픽이 발전하도록 하고, 위생상의 문제가

정 그렇게 신경쓰인다면 제대로 관리하면 되지 않을까.


타투이스트 한 명의 작품만이 아니라, 다른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이 이루어진 결과물들도 전시해 놓았었다.

재봉틀을 이용해 저런 아기자기한 그림들을 수놓고는 소녀의 여린 팔목에 뽀빠이처럼 닻 모양이라거나

조폭처럼 '一心' 이런 한자를 수놓는 센스라니.


뭐 벽면 한쪽으로 그런 그림이나 복합 재료로 꾸며진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이렇게 분방하게 채색된

구두도 한 켤레 놓여있었고. 아무래도 갤러리 까페라 그런지 차 마시기도 괜찮은 분위기였지만, 찻잔을

들고 벽면을 따라 돌아다니며 이런 전시물들을 구경하기에도 괜찮았던, 편한 분위기의 천장 높은 까페.

와중에 발견한 맘에 쏙 들던 아이템 하나. 뱅 앤 올룹슨의 오디오였는데, 저 앙증맞은 빨강 세모모양

스피커가 한눈에 확 꽂혀버렸다. 게다가 조그마한 체구에서 울려나오는 사운드가 전혀 뒤지지 않고.

기억해 뒀다가 나중에라도 꼭 사겠다며..일단 위시리스트에 보관.

에스프레소는 생각보다 많이 연했다. 갈수록 진한 커피를 좋아하게 되는 참이라 조금 실망했지만, 그래도

에스프레소 위의 크리마가 여느 까페 체인의 그것보다 훨씬 풍부하고 부드러웠던 듯. 저렇게 활짝 웃고있는

스푼의 애교에도 맘이 녹아내렸다.


들어갈 때 한장씩 나눠줬던 종이는, 전시 중인 타투이스트의 메인 테마인 종이비행기를 접으라며 미리

접는 선이 인쇄된 종이였다. 내친 김에 종이비행기도 접고, 배도 접고 나서는, 영수증 종이로도 조그마한

종이비행기를 마저 만들어버렸다.

그러고 나니 문득 불붙어 버린 종이접기의 마력. 어렸을 때 만들었던 독수리5형제의 비행기를 만들 수

있을까, 스스로 궁금해져버려서 있는 종이 없는 종이 동원해서 결국 만들고야 말았다. 저렇게 입도 쩍쩍

벌어지는 날렵한 모양의 비행기. 양쪽 옆구리에도 비행기 한대씩 합체분리할 수 있고 위에도 한대

합체해놓을 수 있는 궁극의 비행기였었다. 어렸을 때 커다랗고 두꺼운 달력 종이로 참 많이 만들었는데.

그렇게 비행기도 접고 배도 접고, 까페도 온통 둘러보고, 책도 읽고 하는 와중에도 참 줄기차게 내리던 비.

이제 한국은 4계절이 뚜렷한 나라라기보다는 '우기'가 있는 아열대의 나라가 되어버린 건 아닐까.


비가 그치기를 기다려서 북촌한옥마을을 좀더 돌아볼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비는 그칠 생각이 없었다.

이미 에스프레소는 훌짝 다 마셔버린지 오래. 마치 타투처럼 굵고 선명하게 남아버린 크리마의 갈색 띠만

에스프레소 잔 안쪽에 보름달처럼 떠올랐다.

그러고 보면 내 타투를 보고도 사람들이 '참 잘했어요'라거나 '1등급' 따위의 둥근 도장을 찍어놓은 것

같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나도 이쁘다는 생각은 변함없지만, 조금은 더 밖으로 열려있는 이미지였음

좋았겠다 싶기도 하고, 일단 달과 별을 몸에 새겼으니 다음에는 다른 천체를 새겨서 공간을 넓혀야겠다

싶기도 하고. 무엇보다, 사실 가회 갤러리까페에서 전시회를 열었던 이 타투이스트의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내 꺼만한 게 없지 싶어서 조금은 뿌듯.




아무 목적지 없이 그냥 걷기..가 이번 여행을 하면서 괜히 별 이유도 없이 세웠던 고집이었는데

생각보다 그런 건 쉽지 않았던 거다. 가다 보면 문득 지금 방향에 대해 두려움이 생기고, 이쪽이

아니라 저쪽으로 가야 뭔가 중요하고 귀한 걸 놓치지 않을 것 같고, 무엇보다 목적지 없이

휘청대는 걸음 자체에 대한 불안함이 있었던 거 같다. 망망대해에서 무작정 항해하면 이런 느낌이

들지 않을까 싶었다.

조금 타협하기로 했다. 걷다가 여기가 어디쯤인지 지도만 슬쩍 보고 확인하기. 지도를 보고

그곳의 몇몇 이름난 명소를 향해 졸졸 따라가는 길을 인도받으려는 게 아니라, 그냥 정말로

지금 내가 어디에 와있는지만 확인하면 족한 걸로. 누군가 일러주는 대로 길을 가는 건 이미

한국에서 내비게이션의 지령을 따라 운전하는 걸로 질릴만큼 질려버렸으니까.

그러고 나니 조금은 수월하게 걸을 수 있었다. 한참 걸으며 대충 머릿속으로 여기가 어디쯤일지를

상상하다가, 내키는 곳에서 오렌지주스나 망고를 먹으며 쉬기도 하고, 아님 아예 그럴 듯한

까페에 눌러앉아 책을 읽기도 하고, 슬쩍 지도를 곁눈질하며 어디쯤인지를 확인하는 건 나름의

밀고 당기는 리듬감이 느껴져서 좋았다.

길을 가다보면 문득 차들이 쌩쌩 다니는 고가 도로 위를 걷기도 하고, 맨발의 소년이 낚시찌를

던지는 냄새나는 강둑을 지나기도 했다. 누군가가 굳이 담벼락 위에 CCTV처럼 걸어둔 노랑색

물총을 보며 궁금해 하기도 하고, 차도 옆까지 온통 꽃밭으로 가꿔둔 태국인들의 꽃 사랑에

감탄하기도 하고. 더러 황량한 골목으로 부러 꺽어지며 어떤 풍경과 사람들이 숨어있나 슬쩍

기웃거려 보기도 하고. 그러다 문득 동서남북의 방향감, 얼만큼 걸었는지의 거리감이 상실되면

적당한 표지판 앞에서 지도를 펼치는 거다. 여기가 어디지, 하며.

어쩔 수 없이, 랄까 가다 보면 뭔가가 가까워지고 그럼 자연스레 발길이 그리로 향하기도 했다.

뭔가 커다랗고 특이하고 사람과 가게들이 몰려있는 곳들, 몇 대의 대형버스가 관광객들을 토해내고

거두어가는 그런 곳. 인적없는 곳을 한참 떠다니다가 그런 부산한 지점이 가까워진다 싶으면

마치 철가루가 자석의 자장에 이끌리듯 내 궤적 역시 몇 개 지점으로 수렴하고 마는 거다.

그래도, 그렇게 덥썩 일로직진하여 그곳으로 돌입하고 싶진 않았다. 쿡쿡 찔러보고 슬슬

에둘러가며 멀찍이서 감각하다가 우연처럼 이쁜 까페를 발견해서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선그라스를 벗고 시원한 망고&라임 쉐이크를 쭉 빨아서 땀을 식히려다가 차가운 두통에

조금 인상도 써주고. 쿠션을 껴안고 늘어지게 앉아서는 다시 책을 꺼내들어 조금 읽기도 하고.

그렇게 설렁설렁, 이날의 반환점은 왓 아룬이었다.

마음 같아선 그저 걷다가 쉬고 또 걷고, 그렇게 어디로든 거침없이 뻗어나가는 선이 되고 싶었다.

그렇지만 또다시 어쩔 수 없이, 나의 걷기 자체도 해와 달에 귀속되고 마는 거였으니 해가 저물고

어둠이 나리면 슬슬 돌아갈 염려를 할 수 밖에 없는 거다. 그러다 보면 언제나 커다란 원의

궤적을 염두에 두어야 하고, 해가 정점을 찍고 낙하할 무렵 방향을 홱 틀어야 하는 거다.

러시아 민담이었던가, 하루종일 걸어서 원위치로 돌아온 땅이 전부 자기 것이 된다는. 그런

이야기에 빗대자면 나는 하루치 걸어서 무얼 갖게 된 걸까. 어느 광장에 따끈한 대리석 위에서

엉덩이만 비비가 뭐해서 아예 가방을 베고 에라, 누운 채 해가 떨어지고 퍼렇게 멍들다가

까뭇해지는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제 돌아가야 할 때. 여행을 떠나도 돌아갈 곳은 남는다.

여행을 떠나도 돌아갈 곳은 남는다. 원하던 원치 않던. 닭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했다.

조그만 골목에 기대어 테이블을 세우고 음식을 팔았을 허름한 길거리식당, 어디에서나 마주치는

태국 국왕의 얼굴이 어둠 속에서 둥실 떠올랐다.






지브리 미술관에서 나오는 길, 미타카 역을 가리키는 화살표 하나, 미술관을 에워싼 공원을 가리키는 화살표가

또 하나. 미타카 역에서 지브리 미술관으로 이어지는 길이 꽤나 매력적인 산책로라는 이야기에 그쪽으로 바로

빠지기로 결심은 했지만, 지브리 스튜디오의 분위기가 그대로 이어져 있는 공원에서 좀더 여운을 즐기고 싶은

마음도 움찔움찔.

아까 뛰어들어오느라 보지 못했던 지브리 박물관/미술관/스튜디오의 간판.

끝내 문을 나서서 돌아나오는 길, 샛노란 칠이 산뜻한 지브리 스튜디오 건물 안의 커다란 토토로가 배웅해주는

듯하다. 이제 막 스튜디오에 들어선 꼬마아이 하나가 토토로와 눈싸움을 시작했다.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나와 미타카 역쪽으로 방향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태풍 '곤파스'가 가로수를 뽑고 휘두른다던

서울과는 달리 이곳 도쿄는 사람이 몇 명이나 죽어나간다는 전례없는 폭염이 계속되던 중. 비행기 타고 고작

두시간도 안 날아가는 거리인데 이토록 판이한 날씨라니. 이런 점에서도 가깝고도 먼 나라, 맞다.

이국적인 느낌의 신호등, 빨간 신호등의 불빛이 유난히 붉다.

사실 미타카역에서부터 지브리 미술관으로 걸어오면서 점점 줄어들어야 하는 숫자, 미술관까지 300미터

남았음을 알리는 표지판. 푯말을 들고 있는 토토로도, 푯말 위에서 휘영청 몸을 꺽어내는 도마뱀도 귀엽다.

한참 사람들이 많이 돌아다닐 시간 아닌가, 오후 두세시경. 옆에 개천을 끼고 이어지는 골목길에는 그렇지만

사람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고즈넉하고, 조용하면서 깨끗한 거리.

나무도 많고, 집들도 아기자기하고, 그런 산책로를 따라 가다보니 금세 지브리 미술관에서 멀어진다. 어느새

500미터나 떨어졌다. 거꾸로, 미타카역에서 이 길을 따라 지브리 미술관을 향하는 길도 생각보다 금방 가닿을듯.

어느 집 앞마당에 얼기설기 세워진 대나무 울타리에 붙여진 안내판.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개와 고양이 그림이

귀엽다. 뭐, 이런 개나 고양이가 마당에 침범하지 않도록 주의해 달라는 그런 걸까.

좀더 걷다 보니 다른 그림들도 눈에 띈다. 아이들이 손으로 직접 그린 듯한 포스터들, 그리고 검정귀를 가진

하얀 강아지가 푯말로 붙어있는, 그런 류의 귀여운 안내판들.

그리고 칠백미터. 토토로 말고 다른 캐릭터들도 푯말을 들고 있게 하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긴 하지만, 아무리

뭐니뭐니 해도 지브리의 가장 대표적인 캐릭터는 역시 토토로. 붉은돼지 아저씨가 푯말을 들고 있기엔 왠지

어울리지 않는 거 같고.

이번엔 파란 불, 이건 또 아까 신호등과는 모양생김이 다르다. 햇살은 워낙 내리쬐이고 그늘은 또 그만큼

짙고, 도무지 광량을 조절하기가 쉽지 않았던 도쿄.

신호등 앞에는 이렇게 멈춰서서 기다리라며 발자국 모양까지 그려넣는 세심함..이랄까 유머러스함이랄까.

장난스럽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지브리 스튜디오-미타카 역을 잇는 이 산책로의 이름은, '바람의 산책로'. 아닌 게 아니라 개천을 따라 쓸듯이

불어내리는 바람이 머리빗처럼 순순한 방향으로 행인들을 빗어넘기고 있었다.

문득 툭 튀어나온, 그렇지만 너무 과하게 튀거나 부조화스럽지는 않은 일본 스타일 강렬한 집도 한 채 지나고.

그러다보니 벌써 지브리 스튜디오에서부터 천백미터. 그리고 거의 코앞까지 당겨져버린 미타카역.

지브리에서의 여운을 곱씹으며 마음을 탁 놓은 채 걷기에 딱 좋던, 딱 알맞은 거리와 분위기의 산책로.





스마트카가 곰실곰실 기어다니는 파리 시내, 엷은 잿빛의 대리석만큼 하늘이 우중충하던 날 거리를 거닐었다.

스마트카가 참 귀엽다며 서울에서도 저런 차들이 많아졌음 좋겠다고 생각하던 즈음, 거의 달구지 수준으로

낡은, 그렇지만 또 어찌 보면 굉장히 유니크하고 귀여운 녀석이 하나 지나갔다. 네모 반듯하게 각진 '월-E'의

캐릭을 처음 봤을 때 그 가공할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을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이제는 저런 투박한 생김에서도

뭔가 귀여움을 찾아낼 수 있게 되어 버렸다.

화려한 장식이 주렁주렁 꾸며져 있는 다리, 하얀 대리석으로 꾸며진 위에, 구릿빛 주물들을 포인트마다 조금씩

얹어 놓고, 반짝반짝하는 금칠로 마무리. 밤에는 그 위에 주홍빛 불빛이 한겹 내려앉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세느강변, 어느 아가씨가 둔덕에 걸터앉아 다리를 흔들며 사과를 깨물어 먹던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한참을

쳐다봤댔다. 그녀가 가버리고 남은 자리.

한강 고수부지와는 다른 느낌, 뭔가 좀더 풍경들의 디테일이 살아있는 느낌이다. 바닥에 깔린 포석부터. 한강은

그냥 시멘트로 맨들맨들, 아무런 질감이나 요철감이 느껴지지 않는 거죽이 대부분인 거다.

가방을 앞에 앉힌 채 근처 까페에 들어갔었다. 까페 이름은 퐁뇌프. 바로 그런 이름의 다리 옆이었다.

잔이 넘치도록 찰랑찰랑 따라진 화이트와인을 홀짝홀짝. 빵을 담았던 종이봉투가 꼬깃꼬깃해지도록 손에

쥐고 다녔으니 여기서 저 와인의 마지막 한 방울이 사라질 때까지 같이 다 마셔버릴 셈인 거다.

일요일날에 나왔을 적엔 차들의 통행을 막은 채 거리 축제 분위기를 한껏 풍겼던 바로 그 거리, 평일의 찌뿌린

하늘 아래에선 왠지 살짝 쓸쓸한 분위기의 한적한 길가로 변해버렸다.

성 샤펠성당을 지나며 다시 한번 그 뾰족뾰족한 외양을 눈길로 슬쩍 쓰다듬어 주고.

관광객도 잘 눈에 띄지 않던 어느날 오후, 금세라도 비가 꾸물댈 듯한 날씨에 서둘러 걸음을 옮기던 사람들

틈에서 왠지 나도, 여행자가 아니라 현지인인 양 무심하게 한번 올려다 보았다.

자유, 평등, 박애. 프랑스 삼색기에 담긴 그럴듯한 뜻도 그렇지만, 프랑스의 국가 역시 피 냄새가 가득하다.

피를 먹고 세워진, 자라난 그네들의 국가 이미지. 최소한 그 정도의 피값을 주고 기억해 내어야 나라의 기풍이

이러이러한 것이다, 라고 이야기할 만한 건덕지가 생기는 걸까.

노틀담 성당. 프랑스 파리의 중심부는 딱히 랜드마크라 할 만큼 두드러지게 높은 건물이 눈에 안 띄지만, 그래도

단연 노틀담 성당의 아름다운 모습이 시선을 잡아끄는 거다. 자연스레 시선을 붙잡아 두는 효과.

오르세 미술관 지나는 길. 철도역을 개조해서 만들어진 오르세 미술관 옆을 지나면 나도 모르게 언뜻 옛 서울역의

풍취가 떠오르기도 하고, 그리 작지는 않은 사이즈의 도시에서 마주쳤을 법한 철도역사의 기억이 떠오르곤

했었다.




전깃줄을 저렇게 둘둘 말아놓고 있다니, 무거워서 줄이 처지거나 전봇대가 꺽이면 어떡할라고.

곳곳에서 공사중인 지하철들, 새로 지어지는 지하철 역사도 그렇지만 주변의 스카이라인도 그렇게 '저렴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곳곳에 내걸린 빨래들을 흔들어주는 바람. 하얗게 벽면을 날려버리는 햇볕. 며칠새 한겨울과 한여름 날씨를

넘나드는 그 곳 역시 별수없이 이상기온이 창궐한 지구.

이런 요상하고 자기과시적인 건물들은 이제 지구적인 트렌드다. 여기도 두바이나 다른 신흥 개발도시들처럼

평범하고 밋밋한, 그리고 동일한 모양의 건물은 건축허가 자체를 내주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역시

서울의 랜드마크는 성냥갑 모냥 빼곡한 아파트촌이다.)

어디나 그렇지만 거대한 도시의 위용넘치는 스카이라인 곳곳에는 자그맣고 조촐한 사람들의 보금자리가

숨겨져 있다. 국가나 민족 따위 거창한 정체성과 전통과는 상관없이 대개 고만고만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처음에는 중국땅의 스타벅스가 눈에 띄었고, 다음에는 온통 남자뿐인 가게 내부가 눈에 띄었다.

도로 곳곳에 설치된 주차장 안내 표시. 땅이 넓어서 그런지 주차장이 사방에 있었는데다가, 이렇게 현재 몇대의

여유공간이 있다고 알려주기까지 하니까 굉장히 좋은 거 같다. 국내 도입이 시급하다고 사료되오.

거리 가로수엔 온통 조명을 저렇게 휘감아 놓고, 샹하이의 밤거리를 휘황하게 빛나게 하겠다고.

택시 기사는 리츠칼튼 호텔까지 손님을 싣고 다음 손님을 받을 때까지 급한 점심을 먹고 있었다. 무려 폭스바겐

택시, 그 안에서 간단한 음식으로 요기중인 아저씨. 폭스바겐은 중국 시장이 열리던 초기, 너무 거만하고

불친절하게 굴어서 많이 호감도를 상실했다던가, 그렇지만 여기 폭스바겐 택시가 많이 보이는 건 그 때

전부 들여온 거라고 했다.

궁전처럼 꾸며놓은 리츠캂튼 호텔의 정문. 실제로 큰 호텔이기도 하지만, 입구를 이렇게 만들어 놓으니 더욱

커 보인다.

안에는 크리스티 미술 경매품이 전시되고 있었고, 크리스티의 중국식 표현은 佳士得 이었다는.

중국에 미술품 전시장에서 한국 작품을 만났다. 만났는데, 술취한 태권브이가 소주병을 흔들고 있고, 놀다가라는

온갖 명함판 광고가 나부끼는 그런 그림. 반가웠다. 한국이구나 하고.

회의에 들어갔다가 만난 물병. 농부산천. 좋은 물이냐고 누가 물었는데, 이영애를 광고모델로 쓴 브랜드라고 했고

그 말을 듣고 모두들 음~ 하면서 꿀꺽꿀꺽 마셨다는.

회의가 끝나고 난 후, 호텔이 제아무리 멋져보이려 천장을 높이고 대리석을 깔고 백열전구를 휘감아도 어쩔 수

없는 게 있는 거다. 주변의 경관. 그닥, 멋지지 않은 상하이의 그저그런 풍경.

눈물어린 눈으로 세상을 보듯 온통 어른어른 번져나는 조명불빛들. 고가도로 옆에서 갈매기가 날고 있다.

자동문, 이라고 적힌 차의 옆문. 익숙치 않은 글씨 혹은 간체자 청맹과니라는 이유로 저 문을 잡고 낑낑대던

사람이 있었다. 수리비 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질까봐 조마조마.

숙소로 썼던 아파트먼트형 호텔. 근사한 조명과 외관이 굉장히 멋졌지만, 슬프게도 맨날 별보고 퇴근하고 그별

다시 마중가며 출근했는지라. 싱가폴 자본이 상하이에 많이 진출했다더니 이 호텔 건물들도 싱가폴에서 투자,

운영하고 있었다. 냇물이 흐르고 분수가 튕기는 멋진 정원에서도 싱가폴의 상징 머라이온(Merlion : Mermaid+ lion)이

굽어 보고 있었고.

작년 10월에 제주도 출장을 가서 머물렀던 펜션. 제주 컨벤션센터와 가까워서 좋기도 했지만, 일단 통나무로 이쁘게

지어진 2층짜리 펜션이 넘 이뻐서 좋았다. 더구나 2층은 뾰족한 세모꼴 천장이 그대로 살아있었다는.

펜션 자체도 이뻤지만, 앞마당에서 내려다 보이는 귤밭이 정말. 2008년 10월 말께의 노란 제주도 귤밭.

워낙 귤나무가 무성한 잎사귀들을 달고 있어서 무슨 정글 속에 노란 귤 한 박스쯤 쏟아 부어놓은 듯한 느낌.

신라호텔이었던가, 여기 전복죽이 아주 맛있다는 이야기에 죽 한사발씩 먹고 산책삼아 걸었던 호텔 정원.

수영장 바닥을 파란색으로 칠하는 건 참 멋진 아이디어였던 거다. 시원해 보이고, 맑아 보이고, 그래서

뛰어들고 싶게 만드는 파랑물이 일렁일렁. 옆에 있는 파라솔들 역시 매력도 아닌 '마력' 아이템.

신라호텔 뒷길 산책로가 그렇게 유명하다고 하길래, 그래? 이랬더니 여기에 바로 그 쉬리 마지막 장면을 찍은

벤치와 언덕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휘적휘적 걷던 중에 마주친 (징그러운) 잉어떼들.

옛날 이야기 중에 물에 빠진 사람을 물고기들이 수면으로 떠밀어올려 살았다거나, 적들에게 쫓기던 와중에

물고기들이 물위로 떠올라 다리를 만들어 주어 큰 강을 건널 수 있다거나. 이걸 보면 왠지 있음직한 일이다.

어디 한번 먹다 죽어봐라, 하는 심정으로 먹이를 뿌려댔을 거다 분명히.

그러고 보니 이 날도 꽤나 흐렸었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니 한걸음 한걸음 가까워지는 해안가. 깜장이 현무암

울타리를 넘어서는 초록빛 싱싱한 풀밭에 들꽃이 지천이었다.

이게 바로 '쉬리 벤치'. 한석규와 김윤진이 나란히 앉아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다가 어느 순간 When I dream..

그러고 보면 '쉬리'란 언젯적 작품이냐..1999년이었을 거다. 근데 쉬리의 영문명이 Swiri라는 건 방금 알았다.


일망무제의 바다, 터무니없이 큰 물웅덩이를 눈앞에 두고 있으면 왠지 막막해지기도 하고, 멍해지기도 하고, 그렇다.

해변을 따라 제주도에서 흔치 않을 모래사장이 곱게 이어져 있었다.

돌아오는 길엔 억새가 깃발처럼 나부꼈다. 호텔 시설을 굳이 사용하지 않고도, 단지 산책로를 걷고 쉬리 벤치에

한번 앉아 보는 것도 괜찮다 한다. 지나는 길에 잠깐 차 세우고 걸어봄직한, 짧막하지만 꽤나 이뿐 산책로.




#1.

월급날이어서 불끈, 기운이 솟는다는 건 거짓부렁이다.

조삼모사에 넘어간 원숭이도 아니고, 다만 하루를 조금이라도 업시키기 위해 스스로 주입하는 마취약에 가깝지 않을까.

아침 출근길에 누군가의 미소를 보고, 어젯밤 꿈자리의 달콤한 여운으로, 혹은 신기하게 딱딱 맞춰오는 전철 덕분으로..

그런 소소하지만 효과적인 마취약 중 하나.


#2.

20일은 월급날, 오늘도 쌰발랄라 알제리 쉐라톤 호텔은 칠십명 그룹 부킹을 위해 온갖 것을 다 요구했다.

처음엔 여권 사본과 카드 사본, 그다음엔 잘 보이게 스캔된 여권 사본과 카드 사본 앞뒷면, 그다음엔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것은 예약된 방을 캔슬시켜버리겠다는 협박, 다시 칼라 스캔본으로 정리해서 보내주고 나니 급기야 자필 서약서까지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글로벌 스탠더드 따위 없는 거다.


그들과의 시차, 8시간은 어쩔 수 없는 야근을 부른다.


#3.

자려는데 빗소리가 톡톡, 하더니 우다다다 진동하기 시작했다. 원래 이런 밤엔 술 한잔이 제격이지만,

마침 머나먼 콩고에서 오후 6시의 '야근'을 즐기던 친구-형-녀석과 채팅을 신나게 지껄이고는 속을 풀었다.

집에서 회사까지 도성초등학교를 지나고 이마트를 지나고 포스코사거리를 지나는 삼십분의 산책로는,

비오는 날에는 아마 사십분쯤으로 길어질 테니 일찍 자야 하는데. 뭐...차라리 십분 지각하고 말기로 한다.


#4.

여느때보다 이르게 찾아온 더위로, 이번주부터 노타이에 반팔 셔츠 차림이 가능하길래 내일부터 그렇게

입고 다닐 생각이었는데. 내일도 하루종일 비가 온다고 Y가 말해줬다.

비가 내리면 반팔은 썰렁하려나, 슈트차림은 습기먹고 끈적하게 몸에 감기진 않을까, 습기가 잔뜩 포화된

공기 탓에 긴팔은 답답하려나. 이거...쉽지 않은 고민이다.



2층 드농관

'사모트라케의 니케'. 이 천사는 땅위에 막 내려앉은 걸까, 아니면 막 떠나려는 걸까. 헬레니즘 조각 중 손꼽히는 걸작이라는 이 조각상은 명성에 맞게 독보적인 위치를 점유하며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밀로의 비너스 역시 넉넉한 공간을 확보한 채 독보적으로 우뚝 선 채 사람들에 포위당해 있었는데, 마찬가지다.

피사체로서 니케상과 적당한 거리를 격한 채 둥그렇게 포위하고 있는 사람들. 모두 각자의 카메라로 기록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살짝 든 생각..니케의 조각상이나 밀로의 비너스 모두, 그 오랜 명성에서 기인한 후광효과라거나, 혹은 전시 방식에 따른 효과, 그리고 정말 미적으로 작품 자체에서 우러나는 효과를 구분해 볼 수 있을까 하는. 이미 일련의 회로를 따라 미적감각이 유인되고 승인되고, 또 어떠한 감동을 느껴야 할지도 정형화되어 버린 건 아닐까, 하는 삐딱한 딴지를 걸고 싶었다. 과거의 가치를 전승하고 위계를 공고히 하는 박물관의 디스플레이 기법, 혹은 필연적인 보수성.

이런 식으로 해 보면 어떨까. 다른 유물들, 예술품들과 차별화되지 않는 식으로 함께 전시된다거나 하는 식으로,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명작으로서의 명성을 갱신하고 가치를 재평가받을 수 있도록 해 보는 거다. 사람들이 단순히 '걸작'이니까 아름답다라거나 뛰어나다라는 식으로 사고하지 않도록. 스스로 그걸 발견해 내고 다른 점을 느낄 수 있도록.

물론 이 작품이 다른 것들에 비해 달라보였던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특별히 섬세하고도 자연스러운 저 옷자락의 율동감이라거나, 전혀 부자연스럽지 않은-아름다운 몸을 가진 인간을 고대로 대리석으로 굳혀 버린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인체의 비례라거나, 무엇보다 당장이라도 어디로 떠나거나 혹은 막 어디로부터 떠나온 것처럼 느껴지는 그 생생함. 힘있게 쭉쭉 뻗는 날개 역시 상상력의 소산이라기엔 너무도 그럴 듯 하게 리얼한데다가 묘한 느낌을 던진다.

사람들이 지쳐 간다. 사실 루브르의 정수라 할 만한 것은 역시 2층 드농관에 있는 모나리자 등 회화와 3층 리슐리외, 쉴리관에 있는 프랑스 회화들일 텐데, 이들은 무엇을 보며 여기까지 와서 널부러진 걸까. 나 역시도 저기 한 구석에 앉아서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이 점차 뭉글뭉글 부풀고 있었지만 어차피 빈자리도 없다.

제리코가 그린 '메뒤즈호의 뗏목'같은 회화 대작들을 보며 앞으로 조금씩 조금씩 걸어나가다 보니 일종의 '정체 구간'에 들어섰다는 걸 느꼈다. 모나리자가 앞에 있다.

모나리자가 그다지 크지 않은 그림이란 건 알았지만, 저렇게 작은 그림인 줄은 몰랐다. 세로 77cm, 가로 53cm. 온통 모나리자를 위해 열린 공간에 사람들이 그득그득 몰려 있었다. 한걸음씩, 서둘지 않고 내딛으며 모나리자에게 눈싸움을 걸었다.

사람들을 뚫고 맨 앞까지 나아가 한참동안 요모조모 찬찬히 살폈다. 눈, 입술, 얼굴, 손, 좌우 높이가 살짝 다르다는 배경..뭔가 안개가 스멀스멀 신기한 느낌을 자아내는 기법 탓이라곤 하지만, 역시 신비로운 느낌은 어쩔 수 없다. 주위에 웅성웅성대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없다면, 좀더 깊이 그 느낌에 젖어들 수 있을 텐데 아쉽다.

그치만 굳이 내가 파리에서 봤던 것 중 가장 멋졌던 예술작품을 꼽으라면..역시 오랑주리 미술관에 전시중인 모네의 '수련' 연작. ([파리여행] 빛과 바람, 시간에 희롱당하는 수련..오랑주리 미술관.) 모나리자를 그린 레오나르도의 기법도 신묘하긴 하고, 모델이 된 그녀/그의 웃음도 신비롭긴 하지만, 그냥 난 수련이 더 맘에 들었다.

이런 그림도 인상적이었다. 촛불 시위때 등장했던 '유모차 부대'의 어머니들의 이미지도 왠지 오버랩되었고-맥락이 동일하진 않고 역할 역시 다르다지만-, 가운데 여성의 단호하고 결연한 표정이 가슴을 흔들었다.

그런가 하면 이런 평화롭고도 달콤한 풍경..화환을 만들어 자신의 허벅지를 베개삼아 기대 쉬고 있는 아가씨에게 씌워주려는 남자. 여성의 분홍빛 뺨과 발뒤꿈치가 앙증맞다.

레오나르도의 또다른 그림, '두 명의 성녀와 아기 예수'. 프로이트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유년의 기억"이라는 논문에서 이 그림이 그의 성적인 배경이라거나 어릴 적의 기억, 보다 정확히는 어머니에 대한 금기된 욕망을 해소하는 하나의 수단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 논문에서 프로이트는 이 그림에서 발견된 '독수리'의 형체가 레오나르도가 종종 사로잡혔던 '독수리'의 환상이 반영된 것이라 말하며 이런저런 성적 욕망으로 읽어내는데, 저 그림 속 파란 옷자락이 바로 그 형체라 한다.
한참동안 그림 앞에 앉아 대체 어디에 독수리가 있는지 찾고 있을 때, 마침 옆에서도 유럽인 커플도 그 이야기를 하며 새를 찾고 있었다. 그들도 프로이트가 했던 이야기를 기억하고, 그 새를 찾아내려 하고 있었던 게다. 우리는 한동안 대체 새가 어디에 있을지, 머리가 어디고 꼬리가 어딘지 뚫어져라 그림을 바라보았었지만 결국 그들은 포기하고 모나리자에게 가버렸댔다. 난, 내가 찾은 저게 아닐까 싶은데..모르겠다.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어귀에서 바라본 루브르 궁전. 그 중에서도 팔레루아얄 뮤제 드 루브르 메트로 역과 인접한 리슐리외관. 사람드이 이제 조금씩 줄어드는 게 느껴졌다. 다들 저녁을 먹으러 가거나, 다른 곳에 가서 파리의 야경을 감상할 생각이겠지. 난 이제 9시쯤까지만 3층 회화를 둘러보면 되니, 한결 여유로워졌다.

멀리 보이는 카루젤 개선문의 연한 핑크빛 대리석이 단정하고 따스한 느낌이다. 그림자가 잔뜩 길어진 저녁무렵.

3층 쉴리관

앗..이 그림을 보고 깜짝 놀랬다. 이건 어렸을 적부터 우리 집에 있던 도록에 포함되어 있던 그림이었다. 어렸을 적에는 누나 또래라 생각하며 감상했었고, 조금 크고는 비슷한 나이대라 생각했었는데, 여기서 예기치 못하게 다시 만난 그녀는 이제 여동생이겠다 싶다. 하아....예술의 불멸성이란. (여전히 이 작품의 이름과 작가 명은 모르고 있다. 아시는 분은 좀 알려주시길..ㅡㅡ;)

정말 발을 질질 끄는 수준이 되어 가고 있었다. 루브르 박물관을 걷기 시작한 지 거의 8시간여..4층의 회화 중에는 익히 알고 있는 것들도 많았고, 압도적인 느낌을 주는 대작들도 많았지만 카메라를 들이댈 기력이 쇠해가고 있었다. 사실 속으로는 얼른 다 보고 나가서 좀 쉬자, 란 느낌도 없지 않았고, 또 한켠으로는 좀만 더 버티고 여유롭게 보자..언제 또 루브르 오겠냐..란 오기도 있었고.

그 중 이 그림은 지친 발을 좀 오래 쉬게 할 만한 유인이 되었다. '퐁파두르 후작 부인의 초상', 파스텔로 그려진 그림이라 그런지 색채가 부드러우면서 풍요한 느낌이 들고, 또 그러면서도 무지 세밀하고 섬세한 묘사를 해냈다는 점에서 경이롭기까지 했다. 모델인 퐁파두르 후작 부인은 루이 15세의 애첩이었고,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그녀는 당시 사교계의 여왕이었다고 한다. 그랬을 거 같다. 아름다우면서도 지적인 느낌을 잃지 않았고, 정숙해 보이는 듯 하지만 일변해 요부스러움을 과시할 만큼 충분히 유연하고 풍요로워 보이는 표정이다.(딱 내 이상형이다..ㅡㅡㆀ)

3층 리슐리외관에서는 루벤스의 대작들도 감상하며 파트라슈와 네로를 생각했고, 다른 고전파 화가들의 회화를 둘러보았다. 약간의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보았지만 역시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보려면 오르세 미술관을 가야 한다는 말이 맞지 싶었다. 그리고 난 이제 절뚝거리기 시작했다. 신발을 벗고 보니 심각할 정도의 악취와 함께 거대한 물집이 생겨 있었다.

뭐...저렇게 아름다운 루브르 궁전의 야경을 앞에 두고 할 이야기는 아니지 싶다.

이제 박물관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많이 줄었고, 시간도 거의 9시에 육박해 가던 시간에 난 루브르 박물관 10시간 산책 대장정을 마칠 수 있었다. 아직 문이 닫히기 전까지 시간은 좀 남았고, 난 특히나 인상적이었던 작품들을 다시 한번 찾아가 보는 것으로 마무리를 짓기로 했다. 으레 전시회 같은 곳에 가면 내가 취하는 코스가 그렇기도 하다. 우선 한번 쭈욱 둘러보고, 그다음엔 맘에 들었던 작품 몇 개를 찾아가 다시 한번 감상하는 것.

3층에서 퐁파두르 후작 부인을 다시 만나고, 루벤스의 그림들을 다시 보고, 2층으로 내려오며 니케를 다시 만났다. 조금 사람이 적지 않을까 해서 모나리자를 만나러 갔더니 거긴 암만해도 나같은 생각을 한 사람들이 빠질 생각이 없나 보다. 여전히 시끄럽고 웅성웅성 소리가 울려서 잠시 후에 나왔다. 소란스러움을 피해 제리코의 '메뒤즈호의 뗏목', 베로네세의 '가나의 결혼식', '나폴레옹 1세의 제관' 같은 것들을 다시 둘러보던 중, 박물관의 폐문을 알리는 방송이 나왔다.

9시 반 루브르 OUT. 정말 지쳤다. 뜨거운 열기가 가득한 발에서 은은하게 떨림이 느껴질 정도였다.

바람은 소슬한데 루브르의 야경은 왠지 눈물겹도록 따스해서, 왠지 미친듯이 센치해져서 순간 마음의 갈피를 잃었다. 방금까지 내가 있었던 그 공간의 넘치도록 풍요한 감성과 자극들이 원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배가 차면 조금 낫지 않을까 싶어서, 생각없이 노틀담을 향해 걷다가 예술의 다리를 지나게 되었다. 사람들이 와인이나 맥주를 마시며 떠들고 노는 걸 보고 있자니, 왠지 배도 고프고 가슴도 고프다고 생각했었다.

그러고 보니 이건 완전 한국의 가을 날씨였고, 루브르를 나서며 순간 난 '가을'을 탔던 것 같다.





루브르 박물관에 입장하려는 관광객들이 하도 많다는 이야기를 익히 들어왔던 터였지만, 막상 오전 11시 반쯤 도착한 루브르 에는 생각보다 사람이 적었다. 다만 입장권 구매 창구를 몇 개 닫아놓은 데다가 느긋하기만 한 매표원들의 행동에 마음이 조금 답답했을 뿐이었다. 9유로의 입장권, 그리고 최근에 대한항공이 협찬하여 생긴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 대여에는 5유로. 그냥 입장권만 구매했다.

# 루브르 박물관 "열시간 산책 대장정" 전략.

반지층 쉴리관

이곳부터 시작했다. 루브르 궁전의 역사적 변천 모습을 살필 수 있는 전시물들이었다.

루브르 궁전의 원래 모습은 내성, 외성에 해자까지 파여있는 요새 모양의 성이었다고 한다. 윗 사진이 바로 그 때의 모습을 추정 복원한 것일 텐데, 작은 창문에 폐쇄적인 성곽 형태가 아주 단단해 보인다. 공사 중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다는 이런 옛 자취들, 지금의 모습과는 영 딴판인 이런 모습을 보면 이곳도 꾸준히 전란이 이어졌고, 짓고 허물고 다시 짓고 허물어졌던 그런 땅이구나 싶다.

이 동서 1km에 이르는 거대하고도 우아한 궁전의 지하에서 발견된 과거 성벽의 유적들. 루브르 궁전, 아니 루브르 박물관에 들어서서 가장 먼저 발견한 유물은 그래서 바로 루브르의 옛 모습이었다.

반지층 리슐리외관

이어진 길을 따라 리슐리외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런..예기치 못한 난관에 부닥쳤다. 반지층이라곤 하지만 평탄한 하나의 공간을 쓰는 게 아니라 반층 높이만한 계단도 있고 해서, 길을 어찌어찌 좇다가 보면 어느새 리슐리외관 1, 2층까지 오르내리고 있는 걸 발견했다. 완전히 루트가 엉망이 되겠다 싶어서, 차분히 다시 바닥부터 훑기로 했다. 급하게 할 건 없고 아까부터 눈을 끌던 조각들이 보이던 탓이다.
혼자 여행을 다니는 건 내가, 혹은 상대가 원하는 곳에 원하는 포즈로 서있는 사진을 찍기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이렇게 서로 마주보며 공이나 창이라도 던졌는지, 뭔가 역동적인 포즈를 취하는 이 두 조각상 사이에 내가 서 있다 상상하며 사진을 남겼다.

리슐리외관 천장, 그니까 루브르 박물관(혹은 궁전)의 천장은 일부 저런 식으로 자연채광을 위해 뚫려 있었다. 컴컴하던 쉴리관의 중세 루브르 유적과는 달리 화사한 햇살 아래 유백색 대리석 조각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광경은 역시 루트 따위, 9시간 주파 의지 따위 잊어버리게 만든다.

이 청동조각은 아마도 큰 뱀을 잡아죽이는 헤라클레스? 제목을 유념해서 살피긴 했는데, 그걸 다 기억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다만 이녀석은 저 뱀의 생생한 피부질감의 묘사라거나 눈알의 섬뜩함, 그리고 다른 박물관에서 보던 여느 대리석상들의 남근이 대개 애매하게 뭉개져 있는 것과는 달리 당당했어서 특히 인상적이었다. 그러고 보면 이 곳의 대리석상들은 상당수가 제대로 된 남근을 소지하고 있었던 게 눈에 띄었다.

'크로톤의 밀론'이란 작품이랜다. 작가는 피에르 퓌제. 관람 안내문에도 표기된 작품인 걸 보면 뭔가 대단한 작품인가 본데, 내가 굳이 이걸 사진으로 남긴 건 왠지 우스꽝스러워서였다. 엄마~아, 엄마~아, 엉덩이가 뜨거워.

반지층 드농관

유리 피라밋을 중심으로 하여 세개의 건물동이 피라밋의 세 모서리를 바라보고 선 형태다. 매표소는 바로 그 유리 피라밋 아래에 있는데, 일단 티켓을 사고 나면 당일에는 몇 번이던 들락날락할 수 있다. 리슐리외관과 마주본 드농관으로 가기 위해 리슐리외관 출구로 일단 나와 매표소를 지나 드농관 입구로 들어갔다.
'성 막달라 마리아, 16세기 에르하르트의 작품이라고 한다. 그리스도교 관련 예술품에 등장하는 여성은 거의 성모 마리아에 대한 것일 텐데, 게다가 그녀의 성스러움과 고귀함, 거룩함을 드러내고자 노력하는 게 상례라는 점에서 이건 특이하다 싶었다.

'거리의 여인'이었던 막달라 마리아라니. 게다가 저 새침하고 도도한 표정과 몸에 배인 듯 자연스러운 유혹적이고 도발적인 자태, 탐스럽고 구불구불한 긴 머리가 그녀의 벗은 가슴을 지나 음부에까지 교묘히 가려진다. 이뻐서 한참 이리저리 뜯어보았더니 살짝 우울해하는 듯한 그녀가 숨어있었다.

11-15세기 이탈리아 및 스페인 조각이 전시된 이 부근 공간에는 온통 그리스도교 관련 유물들이었다. 십자가상에, 피에타상에..처녀 혹은 아주머니와 아기 하나. 그 소재로 수세기 동안 무궁하리만치 다양한 표정과 구도, 자세를 표현하고 있었달까. 이 '성 막달라 마리아'만큼 인간적인 표정과 분위기가 어린 것 없었던 것 같지만, 그래도 나름 청순, 요염, 새침, 푸근, 센치한 '여성'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자, 이제 반지하층에서 1층의 드농관으로 올라가는 길. 계단 어디메쯤에 있는 궁전의 장식품이던가, 아님 반지하층의 전시품 중 하나던가, 흉상이 루브르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하긴 이 건물 안의 모든 것들은, 한때 궁전의 장식품이었던 것들을 포함해 모두 박물관의 전시품 아니겠는가. 이곳은 약 30만 점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세계 3대 박물관 중에서도 으뜸이라는 루브르 박물관.

루브르 궁전에 미술관이 처음 생긴 건 프랑스 대혁명기인 1793년, 왕실이 수집한 미술품들이 왕가만을 위한 소장품이라는 비판에서 비롯했다고 한다. 오늘날에도 폭넓은 공감대를 얻을 수 있을지 의심스러운 비판이지 않을까. 그때의 혁명적 의식과 기풍이란. 그들의 위에 군림하는 '왕'이 있었기에 왕의 목을 베었지만, 만약 그들의 위에 군림하는 '대통령'이 있었다고 해도 그들은 대통령의 목을 베어냈을 거다.

1층 드농관

뭐더라..저 여자는 아마 월계수가 되고 남자는 그 월계잎으로 승자의 관을 씌워주는 아폴로였을 거다. 아폴로가 큐피드에게 잘난 척하다가 그의 화살을 맞고 저 강의 신 따님이신 여자를 죽도록 스토킹하게 되고, 그녀는 또한 큐피드의 화살을 맞고 무작정 피한다는 슬픈 어긋남의 이야기. 그녀는 싫다 하고, 그는 좋아한다 한다.(그렇다고 보기엔 남자의 눈빛이 열에 들뜨다 못해 잡아먹을 듯이 사나워져 버렸다. 욕정의 개입일까.)

그리스로마 신화란 게 생각해 보면 죄다 유괴, 강간, 치정에 의한 살인사건..그런 거다. 그만큼 원초적이고 원형적인 날것의 이야기란 뜻일까. 에로스만 과잉확대시킨 에로스박물관이나 섹스샵이 아니라, 이런 감정을 담아낸 예술작품에서 더 제대로 에로스를 느낄 수 있는지도 모른다.

'사랑의 신의 키스로 소생된 프시케'란다. 카노바의 작품. 유백색 대리석의 매끈함과 찰진 느낌이 그대로 프시케라는 여인과 천사의 몸으로 이어진다. 저 절묘한 자세하며, 그럼에도 흐트러짐없는 인체의 비율이나 자연스러움하며.

하아..그냥 딱 보면, 딱 이뿌다. 아름답다는 표현이 오바스럽지 않을 만큼.

그리스의 신들을 나타내기 위한 표징으로, 대리석상에는 뭔가 그들의 스토리 중 한 장면이 연출되거나, 양손에 상징물을 쥐고 있거나 한다고 한다. 부엉이를 쥐고 있는 이 신은 그렇다면 아테네, 미네르바.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 무렵에야 날갯짓을 한다. 그치만 저 부엉이는 왜 저렇게 (귀엽긴 하지만) 엉성하게 조각된 느낌이 드는지. 동그란 원통형 몸에다 날개 두개 대충 만들어 꽂아넣은 느낌이랄까.

게다가 내려보고 있는 여신의 저 퉁명스럽고 냉소적인 눈빛. 미네르바를 잡아넣은 그들의 눈빛이고 그들의 움켜쥠처럼 느껴지는 건 과잉한 반응인 걸까.

1층 드농관에서 쉴리관으로 넘어가는 길에 있던 화려한 회랑. 천장화에 나온 사람들을 하나하나 눈으로 감별하며 걷자니 어질한 기분이 들었다.

저런 식의 무늬와 조각이 지금 생활에서 쓰여진 곳을 찾으라면 아마 뭔가 촌스럽게 키치화된 사진 액자나 그림 액자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거 같다. 그렇지만 회랑의 천장부는 황금색의 현란함과 빼곡하게 채워진 문양들, 조각들에도 불구하고 과하다라거나 천박하다는 느낌은 안 들었다. 물론 그건 이 건물 자체가 이런 화려함과 과한 문양들로 그득한 일종의 '테마 파크'이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1층 쉴리관

이건 뭔지 한눈에 알 거다. 너무나도 유명한, 그렇지만 정작 실물은 처음 보는 '밀로의 비너스'. 뭐랄까, 초등학교 때 첫사랑을 나이 서른에 만난 느낌이 이렇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반가우면서도 낯설고 어색하고, 내가 알던 그사람이 이사람 맞는지 싶기도 하고, 그런 느낌이었다.

역시 난 그녀에 대해 모르는 것 투성이였다. '밀로'는 그녀가 발견된 지역의 이름, '비너스'라곤 하지만 사실 그녀의 양손이 부러져 있어서 특징을 밝혀줄 징표가 사라진 탓에 정체는 불확실하단다. 손이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었을지, 그렇게 그녀는 어떤 포즈를 결국 취하고 있었던 건지, 살짝 주춤한 골반과 모델의 워킹인 듯 율동감이 느껴지는 두 발의 실루엣..

가까이서 본 그녀의 얼굴은 내 상상 속에서보다는 훨씬 남성스럽고 강인해 보였다. 너무나도 선명하게 오똑한 코는 살짝 무서워 보이기까지 했고, 다소 심술스럽게 앙다문 입술이나 이마의 생김이란 건 왠지 '이터널 선샤인'쯤의 케이트 윈슬렛을 떠오르게 했다. 그리고 그늘이 지면 식스팩이 살짝 비치는 저 배는 대체...남성의 배라고 해도 믿겠다.

파라오 시대의 이집트 유물. 봉긋한 배와 다소 도식적이지만 끝이 돌돌 말린 머리모양에서 여성스러움이 묻어난다. 물론 좀 딱딱하고 엉성한 신체 묘사는 비너스의 그것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왠지 비너스의 몸은 (이뿌지만) 거구의 여전사나 남성의 몸을 떠올리게 하는 것 같아서 더욱 대비되는 듯 하다.

이곳의 유물들은 역시 카이로 박물관, 혹은 룩소의 '왕의 무덤'이나 '귀족의 무덤'群을 따르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가볍게 돌아보곤 빠져나왔다.

고대 이란의 '아파다나 궁의 기둥머리'랜다. 이런 기둥머리가 수십개가 열을 짓고 늘어서 건물을 받치고 있었을 텐데, 그 규모가 얼마나 웅장했을지 모르겠다. 아마 거대한 기둥들이 백 몇개씩 빼곡히 늘어서 있던 이집트 룩소르사원의 느낌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1층 리슐리외관

1층 쉴리관에서 리슐리외관으로 이어지는 통로의 창밖으로 내다본 루브르의 프랑스식 정원. 깍듯이 정돈된 초록빛 덤불이 구획을 짓고 있는 사각 공간 정원이란 건 루브르 궁전의 반듯한 외양과 잘 어울린다.

메소포타미아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공간에서 철푸덕 주저앉아 스케치 연습을 하고 있는 프랑스의 아이들. 이런 광경은 사실 어느 미술관에서나, 어느 박물관에서나 쉽게 볼 수 있었던 장면이었다. 아이들도 이런 식의 체험학습(이랄까)을 하며 그림을 그리는 것에 익숙해 보였고, 비록 잘 그리진 못해도 뭔가 펜으로 표현하는 법을 익히고 있었다.

이건 아시리아 제국의 사르곤 2세 궁전의 일부를 아예 통째로 복원해 놓은 전시관이었다. 궁전의 입구 한 면을 장식하는 유물들을 원래 장소로 추정되는 곳에 드문드문 배치해 놓았고, 무엇보다 입구 양옆에 버티고 선 이 반인반마의 괴수 두 마리의 위압감이 대단했다. 잘못하면 저 뾰족하고 단단해 보이는 발굽으로 뻥, 하고 걷어차일 듯한 압박감.



자그마한 시테섬은 살살 거닐며 세느강의 운치와 이국적인 파리의 건물들을 구경하기에 좋은 공간인 거 같다. 비록
 
파리지앵보다 관광객이 훨씬 많이 보이는 특이한 도시이긴 하지만 자신의 매력을 올곧이 지키고 있는 듯 한 느낌,

혹은 그런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로부터 뒤섞여 뿜어지는 분위기 자체가 파리의 왠지 모를 들뜨고 설레는

공기를 만들어내는 건지도 모른다. 9월 초가 되니 동양 특히 한국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고 전부 서양 사람이다.

배낭여행을 다니면서 특히나 방학기간에 만나는 한국 사람은 크게 세 부류, 대학생이거나 학교선생님들, 혹은

뭔가 인생에 전환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직장을 접고/쉬고 나온 직장인들. 세 부류 모두 보이지 않는 9월의 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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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공연이 여기저기서 벌어지고 있었다. 일요일이어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실제로 파리 시내 곳곳에서, 지상과

지하를 막론하고 어디에서든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걸 모르고 여행 초반엔 신기하다고 이사람 저사람

마구 찍어댔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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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테섬 어느 다리 위에서 벌어지던 서커스, 자연스럽게 공연이 벌어졌고,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였으며, 그런

자연스런 분위기 속에 나 역시 동화되었다. 따스한 햇볕을 등 뒤로 느끼며 유유자적하는 사람들.

한시간여 동안 레파토리를 펼치는 광대 아저씨를 보며 가로등에 기대앉아 하염없이 구경하다 문득 든 생각.  

아...이런 게 사는 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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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쿼텟까지. 요새 색소폰을 배우는 나로서는 저 아저씨의 멋진 손놀림과 제스처가 인상적이었댔다. 쿼텟 멤버와

사진을 찍어보고 싶었던 한 관광객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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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느강을 유유히 항행 중인 선박, 다양한 종류의 유람선이 각기의 구간을 운행하고 있었다. 최근에 새로 생겼다는

바토 버스..던가, 보단 여전히 바토 무슈가 좋다는 다른 관광객들의 이야기도 유심히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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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틀담 성당의 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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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걸음을 붙잡는 풍경들, 그리고 굳이 잰 발걸음이 아니어도 금세 가닿는 오밀조밀한 공간들. 세느강변에

앉아 사과를 베어물던 아가씨의 회색눈이 계속 나와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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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내 돌아다니면서 관광객들이 다 어디있을까 궁금했었는데 노틀담성당 앞에 꼬물대는 사람들과 관광버스들을

보고 아하, 했다. DSLR과 캠코더로 무장한 관광객들이 이 앞에서 사진을 찍겠다고 저마다 빈 틈을 노려 비집고

파고든다. 

가기 전에 노틀담성당은 요게 다인 줄 알았다. 저 장대한 세 개의 문과 그 위에 얹힌 화려한 조각들. 한바퀴 돌아

보니 그게 아니더란 얘기..뒤에서 보는 건 또 나름의 멋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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