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_01. 후쿠오카 국제공항에서 유후인 가는 길(고속버스 시간표 포함)

 

#2012_02. 유후인 료칸의 열세가지 코스 만찬.

 

#2012_03. 방마다 노천온천이 딸린 유후인 몰.

 

#2012_04. 유후인 료칸의 숨은 그림찾기.

 

#2012_05. 유후인 료칸의 흔한 조식.

 

#2012_06. 유후인역까지 걷는 밤마실.

 

#2012_07. 유후인의 토토로, 그리고 숯의 정령들까지.

 

#2012_08. 유후인 료칸 체크아웃 후의 하루짜리 산책..오전편.

 

#2012_09. 흑마백마가 환대해주는 유후인.

 

#2012_10. 유후인 료칸 체크아웃 후의 하루짜리 산책..오후편.

 

#2012_11. 짙은 녹색의 그림자에 숨어든 금색 비늘의 호수, 유후인 긴린코.

 

#2012_12. 유후인의 편의점털이.

 

#2012_13. 후쿠오카의 밤거리 & 유후인 2박3일 여행일정

 

 

1일차. 후쿠오카 도착, 유후인 도착 (늦은 점심) 온천 (저녁) (밤마실 조금)

 

2일차. (아침) 유후인 마을 구경. (점심) (이른 저녁) 후쿠오카 이동. (늦은 저녁) (도심 구경 조금)

 

3일차. (여유있는 아침) 후쿠오카 출발. 서울 도착. (점심)

 

(끗)

 

 

 

 

 

 

 

 

후쿠오카 하카타역에 내릴 즈음 아슬아슬하게 해가 남아있다 했더니, 숙소에 짐을 놓고 다시 나오니 그새 깜깜해졌다.

 

하카다역, JR선이나 신칸센을 탈 수 있는 후쿠오카의 구도심 중심지다.

 

퇴근시간, 버스를 기다리는 직장인들의 모습은 여기나 한국이나.

 

 

역사 앞에 차곡차고 주차되어 있는 차들에서 번지는 불빛, 그리고 그 너머 그리 높지는 않은 건물들로 이뤄진

 

스카이라인에서 터져나오는 불빛들.

 

 

조리개를 바싹 조이고 바라본 후쿠오카 시내의 밤 풍경.

 

후쿠오카에 와서 라멘을 놓치고 갈 수는 없는 일. 돼지뼈를 푹 고아서 완전 찐득한 국물까진 아니었지만 이정도만 되도.

 

 

다음날 아침, 250엔의 전철을 타고 세네 정거장, 후쿠오카 공항으로 향하는 참이다.

 

게이트에서 비행기로 탑승하는데 문득 눈에 띈 에바항공의 헬로키티 비행기. 저걸 타는 건 아니었고.

 

사실 저런 건 본인이 직접 타는 것보다 누가 타고 있는 걸 구경하는 게 더 재미있다. 대부분의 통유리창 까페가 그렇듯.

 

내가 탔던 티웨이항공의 소박한 기내식. 음...저가항공사의 합리적인 비용 절감책이 반영된 부분이다.

 

그리고 한국, 인천공항에 새초록한 잎사귀들이 돋아났다.

 

 

유후인을 목적으로 했던 2박3일의 여정, 유후인을 만끽하기에는 짧지도 길지도 않은 일정이었지만,

 

후쿠오카 시내 관광을 더하기에는 분명 짧았던 기간이었다. (사실 모든 여행은 늘 너무 짧다. 늘 짧다.)

 

 

1일차. 후쿠오카 도착, 유후인 도착 (늦은 점심) 온천 (저녁) (밤마실 조금)

 

2일차. (아침) 유후인 마을 구경. (점심) (이른 저녁) 후쿠오카 이동. (늦은 저녁) (도심 구경 조금)

 

3일차. (여유있는 아침) 후쿠오카 출발. 서울 도착. (점심)

 

 

 

 

 

 

 

 

'여위는 효과의 우롱차', 후쿠오카나 유후인은 아무래도 한국인 여행객들이 워낙 많아서 이런 한글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편의점이나 어디나, 만화적인 이미지들이 많은 나라인지라 이런 유머러스한 그림도 곳곳에 숨어있다. 저 침흘리는 모습은 참.

 

 

그리고 이번에 마셔본 것 중 가장 신기했던 건, 무려 스파클링 소이 워터. 한국어론 뭐랄까, 탄산 콩물?

 

 

그렇지만 역시 포장도 참 이쁘고 깔끔해서 더욱 호기심을 부채질, 맛은 생각보다 괜찮은 탄산 콩물맛이었다.

 

편의점에 흔한 과자랄까, 스낵이랄까. 이걸 먹을 때는 저 꼬맹이처럼 눈을 가리고 먹어야 하나보다.

 

볶음면이 레토르트 음식으로 편의점에서 이렇게 팔리기도 했다. 양념도 다 되고 야채도 조금 들어간 상태 그대로.

 

오후의 홍차 시리즈 증에서도, 이건 아마 한국에선 보지 못했던 거 같은데.

 

미니쉘 같은 초코렛들이 이렇게 낱갤로 팔리기도 한다. 리라쿠마가 누워있는 포장지가 귀엽다.

 

 

210ml, 딱 한잔감인 월계관의 사케병.

 

편의점 옆에도 굳이 이렇게 음료가 잔뜩 디스플레이된 자판기가 줄줄줄.

 

 

편의점, 슈퍼에 들러서 한바퀴 돌며 이 동네 이 나라 사람들은 뭘 먹고 사나 살피는 것도 여행의 재미 중 하나.

 

특히나 일본의 진하디 진한 마차가 맘에 들어서 꼭꼭 찾아보곤 했던 일본차 코너.

 

그리고 편의점에서 사왔던 라면들, 다다미가 깔린 유후인 료칸의 방에 앉아 시식 시작.

 

 

짜파게티나 볶음면처럼 끓는 물로 면을 익히고 나서 물을 빼 버려야 하는 조리상, 이렇게 속포장지에는 구멍이

 

뽕뽕 뚫리게 되는 부분이 배려되어 있다. 이런 게 정말 일본의 세심함을 보여주는 사례.

 

 

그리고 이 녀석은, 모밀면으로 된 라면..이라고 해야 하나. 온천물 속에서 하드보일드하게 익고 있던 계란 하나를

 

풀어 넣었더니 더 맛있게 먹었던 거 같다. 아니면 그냥 밤늦은 시간에 컵라면과 맥주란 게 으레 그런지도 모른다.

 

 

 

 

 

유후인역에서부터 유후인아동공원을 지나 드디어 유후인에서 놓쳐서는 안 된다는 곳, 긴린코 호수 초입에 도달했다.

 

슬슬 호수에서 흘러나오는 물줄기가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이제 살짝 목이 마르다 싶던 타이밍, 일본까지 와서 물을 사 마시느니 음료를 사마시고 까페에서 차를 마시는 게

 

낫겠다며 계속 그런 걸 마셨던 차에, 저렇게 신기한 '오이 막대'라니. 살짝 짭조름하게 간이 밴 오이가 와삭와삭.

 

기운이 불끈 돋아 씩씩하게 걷고 있는데 여기저기서 보이는 한글들, 그리고 한국인들의 한국말 소리들.

 

 

긴린코 호수 주변을 어슬렁대는 오리들, 처음에 조우했을 때는 정말 화들짝 놀랐는데, 그런 사람 따위 관심도 없는 듯

 

시크하고 여유로운 뒤뚱거림으로 이내 시야를 벗어났던 오리 한 마리.

 

 

드디어 눈 앞에 호수가 펼쳐지기 시작!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호수가 쫙쫙 양팔을 벌린 만큼 커지는 것만 같았다.

 

'긴린코'라는 호수 이름은 金鱗湖, 즉 금색 비늘 호수라는 뜻으로 풀이하면 될 텐데, 석양에 비친 물고기들의 비늘이

 

금빛으로 번쩍거린다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 호수 수면 아래로 팔뚝보다 굵은 물고기들이 미끄러지듯 유영중이었다. 아침해가 빛날 때나

 

저녁해가 가라앉을 때쯤에는 정말 꽤나 볼만하겠다 싶다.

 

 

알고 보니 이 '긴린코 호수'의 물 절반은 뜨거운 온천수, 나머지 절반은 차가운 물이라고 한다. 그래서 아침저녁으로

 

자욱하게 물안개를 피워올린다고 하는데 일정상 그 풍경을 보지 못하는 게 아쉬웠다.

 

 

 

그래도 한낮의 쨍쨍한 햇살 아래에도 짙푸른 녹색이 시원하게 수면 위로 내리깔린 긴린코 호수의 호젓한 분위기나

 

드문드문 호수를 내려다보는 찻집이나 레스토랑들, 잠시 앉아 쉬어가며 시간을 붙잡아 두기에 딱 좋은 곳.

 

멀찍이 신사도 보이고, 저건 왠지 일본 애니메이션 '지옥소녀' 오프닝에 나오는 그 곳 같은 느낌.

 

 

긴린코 호수를 에워싸고 있는 산은 유후인의 명산 유후다케, 유후인 마을에서도 멀찍이 보이던 그 산자락이다.

 

 

 

호수변에 피어난 노란 꽃들이 제법 뜨거운 햇살에 축축 늘어졌다. 호숫물을 쭉쭉 빨아올리란 말이다.

 

 

유후인의 소로들을 거닐 때는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풍경들, 울창하게 숲을 이룬 커다란 나무들과 드문드문 호숫가에

 

모로 누워버린 나무들이라니. 꽤나 깊숙한 자연 속에 안겨 있는 느낌이 들었다.

 

 

 

 

호수를 한 바퀴 돌거나 이리저리 에둘러가는 길들이 꼬불꼬불 서로 꼬리를 물고 있었지만, 이미 유후인 료칸에서부터

 

여기까지 걸어오며 체력도 많이 소모되었으니 굳이 다 돌아보진 않기로 했다. 잠시 짙은 녹색 그늘 아래서 쉬다가 유턴.

 

긴린코 호수 옆을 빠져나가고 다시 샵들이 즐비한 거리로 나가기 전, 아까는 미처 눈에 띄지 않았던 이쁜 가게가 하나.

 

 

인력거가 조금 탐이 나는 순간도 있었지만, 과연 이런 뜨거운 날씨에 사람이 헉헉거리며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끄는데

 

나몰라라 맘 편하게 저 위에 앉아서 갈 수 있을지부터 의문이어서 패스.

 

슬슬 유후인역까지 걸었다. 유후인역에서 긴린코 호수까지 가는 데 걸린 시간은 무지무지 오래, 대충 네다섯 시간 걸렸던 거 같은데

 

여기저기 한눈 안 팔고 적당히 슬슬 내려오니깐 고작 30분쯤 걸렸으려나. 조금 이르지만 유후인에서 먹는 마지막 간식..이랄까

 

혹은 이른 저녁 part1이랄까, 유후인 수제버거.

 

 

이제 유후인에서 후쿠오카로 나가는 가장 늦은 고속버스를 타고 후쿠오카 하카다역 버스터미널로~*

 

 

 

 

 

 

유후인역에서 긴린코호수까지 유유히 걷는 길, 대충 중간쯤의 지점에는 '중앙아동공원'이 있고, 거기서부터 쭉 이어지는

 

직선길을 따라 걸으면 바로 긴린코 호수까지 가 닿게 된다. 소형차 두 대가 간신히 지나다닐 도로 양켠으로는 온통 꽃들,

 

그리고 간식거리를 팔거나 악세서리니 캐릭터상품을 파는 샵들.

 

지도만큼이나 간단하고 쉬운 길이라 좀체 길을 잃을 염려도 없거니와, 실제 거리가 얼마 되지 않아서 쉬엄쉬엄 걷기 좋다.

 

 

바람에 펄럭이는 이발소의 출입문 커튼. 그리고 선연한 붉은 빛을 밝혀든 화분들.

 

비가 내릴 때 처마에서 땅바닥이 패이도록 주룩주룩 흘러내길 빗물을 달래려 살살 타고 흘러내길 길을 늘어뜨렸다.

 

곳곳에서 보이는 인력거꾼들. 꽤나 요금이 비쌌던 거 같은데, 3,000엔이었던가.

 

 

언젠가부터 이곳저곳에 있는 바이크들에 시선이 꽂히기 시작했다. 이 녀석도 참 이쁘네.

 

 

그렇다고 유후인 마을의 길들이 온통 샵들이 빽빽하게 꽂힌 그런 길은 아니다. 이렇게 빈 틈새도 보이고, 그 곳엔

 

옥수수를 걸어두고 말리거나 자전거들을 꼬리물고 주차해두는 공간들이 여백처럼 존재한다.

 

시식거리를 잔뜩 마련해둔 견과류 가게, 고양이를 컨셉으로 한 온갖 상품들을 팔던 가게, 악세사리들을 걸어둘 장식대마저

 

저렇게 이쁜 인형 모양으로 만들어둔 가게들. 어디 하나 그냥 흘려보내기 아쉬운 볼거리들이다.

 

 

특히나 이 고양이를 컨셉으로 잡은 가게는 상상할 수 있는 온갖 종류의 고양이 인형이니 악세서리들이 가득가득.

 

 

 

 

길가에는 이 곳의 유명한 우유 아이스크림도 팔고, 이런 오징어 철판구이도 팔고, 빵에 오꼬노미야끼에 햄버거에..

 

길 건널 때 조심하라며 입을 한껏 벌려 소리없이 외치고 있는 저 꼬맹이, 거참.

 

 

홍등이 길게 이어지는 이 골목도 꽤나 궁금했지만, 조금씩 덥고 발의 무게가 느껴지고 있었다. 스킵.

 

 

 

그래서 다시 까페에 들어가 좀 쉬기로 했다. 해가 중천에 떠오른 시간, 잠시 햇빛을 피하며 땀도 식히고 차도 마시고.

 

 

겸겸 까페 안에 그득한 아이템들도 하나하나 구경하고 사진도 정리하고.

 

유후인에서만 맛볼 수 있는(아마도) 유후인 사이다. 여느 사이다랑 별반 다를 게 없는 맛이었지만, 사실 병이 탐났던 거다.

 

가게 이층의 한 귀퉁이에 놓인 흔들의자. 햇살을 받으며 제 혼자 흔들흔들, 땀을 식히고 있엇다.

 

거품이 양껏 풍성하던 카푸치노.

 

꼬리를 흐느적 거리는 고양이 시계가 참 귀여워서, 저런 건 동영상으로 남겨야지 싶어서 담았더니..옆으로 누웠다.

 

 

온실처럼 온통 유리창으로 세워진 벽들을 돌아보며 나름 이 층에서의 경관을 바라보았다. 어딜 보나 말끔하고 단정하다.

 

 

 

 다시 원기를 좀 회복하고 밖으로.  

 

  

 

 긴린코 호수가 조금씩 가까워진다 싶으니 샵들이 점점 드문드문해지는 느낌이다.

 

 

 

 그리고 여긴 긴린코 호수 옆에 위치한 자동차 박물관. 입구부터 동전을 넣고 탈 수 있는 자동차 장난감이 있어 눈길을 끌었지만,

 

박물관은 문을 열었는지 닫았는지, 좀 휑한 분위기다 싶어서 그냥 스킵. 이제는 긴린코 호수로~*

 

 

 

 

 

유후인에 도착하자마자 눈에 띈 건 사실 이렇게 흰 갈기를 찰랑거리는 백마였다. 백마가 끄는 마차는 그 다음으로

 

시선이 가 닿았고, 아무래도 저 백마의 긴 생머리같은 갈기는 엘라스틴을 한 게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

 

마차에 사람들이 제법 꽉꽉 들어차 있었는데도 백마의 발걸음은 가볍기만 했다.

 

유후인의 파란 하늘 아래 반점 하나 없이 하얀 말이 끄는 고풍스러운 마차라니, 유후인 도착하자마자 분위기가 샤방하다.

 

사실 서울에서도 볼 수 있는 흔한 교통 표지판 역시 하늘로 치솟으라는 의미로 새삼 새롭게 읽히는가 하면.

 

길바닥에 고개를 꿇어박고 귀여운 펭귄들이 가방을 메고 있는 그림을 찍어대기도 하고.

 

 

유후인역사 건물이 떡 버티고 선 유후인의 메인로드.

 

 

곳곳에 나있는 샛길들 하나하나, 재미있는 기억과 예기치 않은 즐거움을 품고 있을 가능성들이다.

 

그러던 와중에 곁눈질을 하며 따가닥 거리는 얼룩말 한마리 추가로 발견.

 

이 녀석도 참 순둥이처럼 생긴데다가 반질반질한 등저리에서 햇살이 자르르 녹아내리는 느낌이다.

 

마차 꽁무니를 조금 쫓다가 포기하고, 어느결에 살짝 달라진 풍경을 구경하고. 여기 사람들은 이미 마차엔 익숙한 듯.

 

그럴 수 밖에. 유후인의 자그마한 마을을 돌아볼 수 있는 마차가 시시때때로 돌아다니다 보니 워낙

 

곳곳에서 조우하게 되는 거다. 깔끔한 아스팔트 위를 다가닥다가닥, 경쾌한 발걸음으로 내달리는 말들.

 

 

문득 궁금해지고 경탄하게 되는 건, 저 흑마와 백마들이 쏟아내는 어마어마한 양의 배설물들은 대체

 

어떻게 처리하길래 이렇게 깨끗하게 거리가 유지되는 걸까. 일본 문화나 교양의 저력인지도.

 

 

 

 

 

 

 

 

유후인 료칸의 체크아웃 시간은 보통 오전 10시, 그때쯤 나서서 후쿠오카나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기 마련이지만 아예

 

하루를 유후인 마을에서 보내기로 했다. 유후인 역의 라커에 가방을 보관하고 가벼운 차림으로 걷기 시작.

 

인력거 아저씨가 토막난 한국어로 흥정을 걸어왔지만 기력이 쌩쌩한 상태에서 저런 걸 탈 리가 있나.

 

 

전날 밤에 미처 걷지 못했던 골목을 좀더 헤집어 보기도 하고, 밝은 대낮에 보니 또다른 풍경에 감탄하며 연방 사진을.

 

 

 

뭐지, 여기가 유후인의 긴자 거리쯤 된다는 걸까. 잔뜩 색바랜 간판을 보면 도저히 그럴 리는 없는데.

 

자판기 왕국답게 담배 자판기가 네다섯대 즐비하게 늘어선 건 제법 장관이었다.

 

 

 

'이웃집 토토로'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숯의 정령을 만났던 곳, 여러 귀여운 아이템들이 많았다.

 

 

이렇게 굵은 터치로 파내어진 등불이 반짝반짝거리기도 했고.

 

 

이 정도 인테리어에, 이렇게 사람 없는 샵이라면 한번 앉아서 쉬어주는 게 예의지만, 아직은 몇 걸음 떼지도 않아서 패스.

 

 

샵들이 줄줄이 이어지는 조그마한 왕복 이차선의 길거리. 그런 샵중엔 퇴마 효과를 연구하는 샵도 있다.

 

 

이런 류의 사이비 과학이랄까, 운명론이 발달한 나라답게 손가락마다 의미를 부여하고 반지를 끼라고 유혹하는.

 

그러고 보니 일본은 아버지의 날이 있었다. 6월 17일, 아버지의 날.

 

조촐하지만 확연한 메인도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골목길은 틈틈이 나타나서 손짓했지만, 꾹 참았다. 일단은

 

긴린코 호수까지 걸어갈 생각이었다.

 

 

 

 

준보석이라 불리는 돌멩이마다 '능력치'를 표시하고 있던 그림. 우와, 이런 건 역시 온갖 종류의 게임이 발달한

 

나라라서 그런지 굉장히 시각적이고 확연하다. 마치 삼국지의 장수들 능력치를 따지는 것 같잖아. 지력, 매력, 무력..

 

이 복을 던져주는 고양이는, 그 주인의 복을 사방으로 던져버릴 셈인지 굉장히 몸값이 비쌌다. 무려 28만엔. 헉.

 

 

그리고 완전완전 귀여운 것들이 가득하던 샵 하나 발견.

 

 

 

날씨도 적당히 따뜻하다 싶었다. 아직 오전이라 그랬겠지만, 5시 버스로 유후인을 뜰 생각이었으니 근 6시간을

 

확보하고 있는 셈이었다. 흐느적흐느적 걷다가 쉬고 배고프면 군것질하고 차마시고 그러기로 했으니 시간은 충분했다.

 

 

그래서 이렇게 샅샅이 샵을 순례하며 사진도 찍고 이것저것 살까 말까 재보기도 하고.

 

 

이 고양이는 가게 앞에 놓인 의자에 배를 깔고 누워서는 슈퍼맨 놀이 중이었다.

 

이 곰인형은 어메리칸 스타일의 바이크에 기우뚱 앉아서 시크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역시 고양이, 고양이. 일본은 왜 이리도 고양이를 좋아하는 걸까.

 

그리고 술을 파는 가게 앞에서 빗자루를 쥐고 있던 고질라.

 

잠시 앉아 쉬었다. 사실 직선거리로만 따지면 얼마 걷지 않았지만, 재미있는 샵들이 많아서 꼬불꼬불 걸었던 걸 헤아리면

 

마치 꽁꽁 감겨있던 실타래를 풀어놓은 것처럼 왕창 늘어날 거다.

 

 

너무너무 유명한-아마도 한국인 사이에서 특히?-롤케잌집 비스픽은 이미 가게 안이 바글바글하길래 스킵.

 

다리를 건너고 나서 만난 또다른 샛길. 개울을 따라 쭉 걷는 길 옆에 색색의 꽃들이 만발해서 유혹하는 중.

 

어느 길 모퉁이에는 누가 만들었을까, 페트병을 잘라서 어찌어찌 만들어낸 바람개비가 팽글거리며 돌고 있었다.

 

 

그리고 예기치 않은 군부대의 움직임. 뭔가 했더니, 나중에 알고 보니 유후인에는 자위대 주둔지가 인접해있었다.

 

 

그리고 조금은 더 고급스럽고 세련되어 보이는 상점들, 음식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쯤에서 간단하게 브런치랄까, 가볍게 점심을 먹기로 했다. 여행 중에는 가볍게 여러 끼를 먹는 게 현지의 다양한

 

음식도 맛볼 수 있고 특히나 유후인 같은 데에서는 길거리 음식이라거나 군것질거리들을 위한 여지를 남기는 방법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막상 메뉴판을 보니 이것저것 맛있어 보이는 게 잔뜩. 치즈 케잌이니 단팥죽이니 고구마 세트는 뭘까.

 

그래서 이것저것 맛보고 일본의 맛난 커피도 마시고, 시원한 에어콘 바람 맞으며 쉬다가 정원에 나가 사진도 찍고.

 

 

그렇게 유후인 마을을 샅샅이 살펴보기로 한 하루 일정의 반나절이 지나가고 있었다. 마을의 분위기만큼 고즈넉하고 여유롭게.

 

 

 

유후인에 토토로샵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대체 얼마나 큰 건지, 도쿄의 지브리 뮤지엄에 비해서 뭐 얼마나

 

캐릭터상품들을 갖다 놨겠어, 하는 마음이었다. 그렇지만. 오가는 사람들의 손길로 민둥머리가 되어 버린 토토로부터.

 

네코버스와 거대 토토로가 떡하니 가게 앞을 지키고 섰다. 게다가 저 빈티지스런 버스 정류장 표시는 애니에서

 

나왔던 바로 그 신기한 버스정류장이 여기라고 일러주는 것만 같다. 이미 심장은 두근두근.

 

 

건반이 후줄근해진 낡은 풍금 위에도 커다란 토토로가 한 마리. 아..나도 토토로 인형 갖고 싶다.

 

게다가 이 센스 돋는 커튼은 또 어쩔 거냐고. 네코버스의 총총한 발길 따라 커튼의 실루엣이 늘어진다.

 

가게 안은 역시 그렇게 크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온통 토토로와 지브리 애니메이션 캐릭터상품들..!!

 

이런 커튼이라고 해야 하나, 토토로가 그려진 벽 장식도 갖고 싶고.

 

낡은 티비 속에서는 계속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이 흘러나오고, 사방에는 마녀배달부 키키의 고양이나

 

토토로가 가득가득. 이들 만으로도 이 공간은 지브리의 세례를 담뿍 받았다는 느낌이다.

 

코엑스에 있는 샵에서 몇번이나 살까말까 망설였던 이 분수들. 토토로와 네코버스가 물장구를 치며 졸졸졸 분수대를

 

따라 노니는 컨셉인데..다시금 지름신 강림. 살까, 살까, 살까?

 

 

집에 있는 토토로를 보고 가족들이 잠시 입씨름이 붙었었다. 물론 가족들은 토토로를 보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는데,

 

토토로가 대체 뭐야. 고양이지 뭐야. 고양이 아니라는데? 그럼 개냐. 뭐 이런 문답들.

 

토토로는 토토로라고, 숲의 정령 토토로라고 몇 번 말해줘야 하냔 말이다.

 

그리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왔던 마녀와 '붉은 돼지'의 포르코.가 그려진 수건도.

 

한참 찍는데 어느결에 점원이 주저주저하며 다가오더니 조심스럽게 말한다. 노 포토.

 

얼른 하나를 사들고 가게를 나섰다. 사실 맘만 먹으면 하루 종일이라도 구경할 수 있지만 그럴 수야 없으니.

 

그리고 또 하나, 유후인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발견한 '숯의 정령'들을 취급하던 상점을 빼놓을 수 없다.

 

 

아아..'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센을 도와줬던 그 녀석들 아닌가. 게다가 '이웃집 토토로'에서 새로 이사온 집에

 

꾸물꾸물 숨어살다가 메이에게 걸리기도 하고 스물스물 밤을 틈타 도망가던 그 녀석들 아닌가.

 

 

검댕이 귀신이라고도 불렸던 거 같고, 숯의 정령이라 불렸던 거 같기도 하고, 여하간 그런 녀석들이 꼬물꼬물대는 샵.

 

 

이 녀석들뿐 아니라 숯으로 만든 온갖 것들을 이쁜 상품으로 만들어 팔고 있는 가게였다. 한번 꼭 들러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

 

 

아, 그리고 결국 지브리샵에서 하나 샀던 건 바로바로 만년 캘린더!!

 

 

 

 

 

 

료칸과 각종 아기자기한 샵들이 즐비한 유후인의 거리엔 저녁이 일찍 찾아온다. 저녁 5시만 되어도 하나둘 가게 문을 닫고는

 

저녁 6시가 될 즈음이면 대개의 상점들이 불을 끄고 문을 내려서 여행자들이 북적이던 한낮의 풍경 같은 건 삽시간에 사라진다.

 

대개 그즈음이면 각자의 료칸에서 석식을 하고 느긋하게 온천을 즐기고 있을 때인지라 그렇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동네 한바퀴 돌아보며 밤마실을 다니는 건 여행의 묘미 중 하나. 픽업차량을 타고 돌고 돌아 도착한 료칸에서부터

 

다시 유후인역까지 걸어보기로 했다.

 

드문드문 불이 켜진 음식점들, 료칸들. 사람 손이 구석구석 닿아 이쁘게 꾸며진 깔끔한 건물들의 표정이 제각각이다.

 

한자로 '이용'이라 크게 적힌 이발소의 빨갛고 파란 간판도 잠시 지난한 회전에서 풀려나 한숨 돌리는 시간.

 

 

유후인 거리의 건물들은 대부분 2층, 끽해봐야 3층이었는데 이 호텔 정도면 굉장히 덩치가 큰 편에 속한다.

 

건물 앞이고 창문틀이고 온통 색색깔의 꽃들이 지천이다. 게다가 9시가 넘어간 밤에도 쓰레기 하나 없고 취객 하나

 

보이지 않는 그야말로 청결한 밤거리.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아도 무섭진 않고 살짝 몽환적인 느낌이었다.

 

조금 어둡다 싶으면 이내 코 앞에서 고개를 박고서 빛을 내려뜨리는 가로등들이 꾸벅꾸벅.

 

두 사람이 서로 손을 맞잡고 하하호호 하며 뱅글뱅글 돌고 있는 듯한 모션을 취하고 잇는 야쿠르트 집.

 

 

마음에 뭔가 짠하게 남던 풍경. 가로등 불빛에 기대어 겨우 하얀색 빛깔을 지키고 있는 저 허름한 양철 건물의 셔츠들.

 

 

그리고 깜짝 놀랐던 자판기. 맥주 자판기야 일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거지만 이렇게 맥주병을 파는 자판기라니.

 

슬슬 걷다보니 벌써 낯익은 유후인역 앞 유후인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역 앞이라고 해서 가게들이 좀더 문을 열었거나 밤늦도록 불야성인 풍경 같은 걸 기대했지만, 아니었다.

 

 

내친 김에 역 안까지 들어가서 구경하기로 했는데, 마침 새빨간 색의 기차가 서있는 게 보였다.

 

 

잠시 멈춘 게 아니라 아예 불을 꺼놓고 유후인 역에 웅크린 채 쉬고 있는 기차. 기차역조차 참 고즈넉하구나 싶다.

 

다시 돌아나오는 길, 택시 한대가 겨우 역사 앞을 지키고 있었고, 그 앞에 바리케이트엔 기차 모양이 꾸며져 있었고.

 

어느 골목에 슬쩍 고개를 들이박아 보니 멀찍이 대낮처럼 환한 풍경이 조금 보이는 거다. 저긴 뭘까, 싶었는데

 

왠지 온통 교교하게 침묵하며 어둠이 나려든 유후인 골목통의 분위기가 더 맘에 들어서 그냥 스킵.

 

그리고 살짝 후각을 자극하며 존재감을 과시하던 공중 화장실.

 

 

손톱달이 떠 있는 밤 하늘 아래에 그림처럼 이쁜 샛노란 집이 반짝반짝 빛망울을 두른 채 편의점 앞을 지키고 섰다.

 

 

아직 그래도 몇몇 술집은 불을 켜놓은 채 한적하게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던 거 같기도 하고.

 

 

버스 정류장 표지판을 빙 둘러싼 원형의 벤치엔 어둠만 내려앉았다.

 

 

크게 한바퀴 유후인 역까지 돌아보고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길, 이 정도면 여자들끼리 여행와서 밤마실 나와도

 

딱히 위험하거나 무섭진 않겠다. 게다가 워낙 조그마한 동네라서 걸어서 돌아보는 재미도 있으니.

 

숙소인 '유후인몰'에 도착하고 나니 하얗고 노란 불빛들이 환하게 밝혀진 게 안도감이 든다.

 

 

 

 

유후인 료칸 '유후인몰'의 조식. 체크인할 때 7시반과 8시의 두 타임 중에서 선택해 놓으면 모닝콜도 겸해준다는.

 

신선한 샐러드로 먼저 입맛을 좀 돋군 후에 밥과 반찬으로 돌입.

 

생각보다 적지도 많지도 않았던, 딱 적당한 만큼의 아침식사.

 

 

반찬들도 조금씩 맛을 볼 수 있는 정도로, 그렇지만 그렇게 하나씩 맛보다 보면 밥 한그릇이 비워지는 정도로.

 

식사가 치워지고 나서 나온 건 정말 간이 하나도 맞춰지지 않은 그냥 생 콩즙이랄까. 콩비지랄까.

 

과일잼이 뿌려진 채 살짝 얼려져서 나온 치즈까지 먹고 나면 조식은 끝~

 

아무래도 일본의 료칸에 묵으면 이렇게 멋진 저녁과 아침을 먹을 수 있다는 게 장점인 듯.

 

자리 옆에 일본 전통 화지로 문창살을 발라 놓고는, 더러 빵꾸가 난 곳에는 저렇게 이쁜 꽃모양으로 땜빵을 해 놨다.

 

 

유후인 료칸, '유후인몰'의 외관 탐구. 료칸에 들어서면서 꼭꼭 눈에 담기던 풍경을 좇아 밖으로 나왔더니

 

곳곳에 숨어있는 깨알같은 아이템들을 찾아내는 게 더욱 큰 재미였던.

 

 

료칸의 입구. 입구에서부터 온통 울긋불긋 그야말로 꽃대궐이다.

 

  

입구에 놓인 차임벨. 여느 술집이나 교실에서 볼 수 있는 벨에도 온통 꽃무늬다.

 

유후인에서 실감했던 '원피스'의 위력. 료칸에도, 유후인 거리에도 온통 원피스!

 

 

 

풀섶에 숨어서 갸웃이 고개를 내민 고양이 인형들을 찾는 재미도 쏠쏠하고.

 

 

유후인몰, 조그마한 세로형 간판 양 옆에 서서 손님을 반기는 마냥 해피한 얼굴의 인형 두개.

 

 

이건 사실 유후인몰이 아니라 이전에 들렀던 숙소에서 담은 풍경. 비슷한 료칸의 풍경이다.

 

 객실문마다 별자리를 따서 붙인 이름, 그리고 나무를 파서 만든 호실 명패.

 

 

1층에 있던 레스토랑의 입구. 이 곳에서 저녁도 먹고 아침도 먹고.

 

 

남녀탕이나 가족탕으로 향하는 길에 발에 채일만큼 많이 널렸던 아이템들, 이 장난감 강아지도 그중 하나.

 

 

완전 싱싱하게 뻗어나간 굵고 탄탄한 대궁 위에서 활짝 피어난 잎사귀.

 

 

 

 혼자 사진에 담긴 고양이는 왠지 도도해 보이는 느낌이 아주 강하지만,

 

  두 녀석이 함께 담긴 사진에서 녀석들은 왠지 다소곳하다.

 

 

그냥 되는 대로 툭툭 아무데나 던져둔 것 같은 악세사리들이 료칸 바깥에 온통 널렸다.

 

 

 

그리고 따사로운 큐슈 지방의 햇살을 온몸으로 흠뻑 맞고 있는 꽃들.

 

2층 객실로 올라가는 길, 그 옆에 소복소복 쌓인 초록빛 무더기들.

 

가족탕으로 꺽어들어가는 길, 그 앞에 빨간 불이 들어온 걸로 보아 어느 가족이 지금 사용중이다.

 

주의할 것조차 딱히 없어서 온통 녹슬어버린 주의 표지판. 이 조그마한 온천 마을이란.

 

 

자칫 못 보고 지나칠 뻔 했다. 저 도자기 밖으로 뛰쳐나올 듯한 고양이 녀석 한 마리를.

 

 

 

료칸에서 펑펑 솟는 온천수 덕분일까, 새로 돋는 잎사귀가 무지 두텁고 반질거린다.

 

 

 

 

사람도 딱히 눈에 띄지 않는 고즈넉한 마을의 조용한 료칸, 건물 밖의 의자에 앉아 흐느적대기 딱 좋은 곳.

 

 

온통 담쟁이덩굴이 칭칭 휘감아 시간도 끈적하게 쉬엄쉬엄 흐르는 곳이라 이끼조차 한모금 머금었다.

 

 

 

 

조화라는 티가 너무 많이 난다 싶어서 처음엔 그냥 지나쳤었지만, 아무래도 그 빨갛고 푸른 색감이 참 선명하다.

 

 

 

어느새 어슴푸레하게 너울지는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풍경, 시퍼런 어둠에 먹힌 바깥 풍경과는 달리

 

아직은 제 색깔을 고르게 지켜내고 있는 테이블 위에 아기자기한 장식들. 

 

 

체크인했을 때 고개를 꿇어박고 서류를 작성했던 딱딱한 책상에도 주홍빛 불빛이 둥실 떠올랐다.

 

  

그렇게 조금씩 어둠이 건물을 갉아들어왔고, 카메라로 담을 수 있는 풍경은 조금씩 줄어들어가고.

 

 

그 와중에 나비 모양 등불은 꽃망울을 향해서 활짝 날개를 펼쳤다.

 

 

 

 

 

 

명불허전(名不虛傳)의 초경량 초광각 렌즈, smc PENTAX DA 15mm F4 ED AL Lim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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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탁스를 ‘단렌즈의 왕국’이라 칭하는 사용자들이 많다. 이것은 리미티드 렌즈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리미티드 렌즈는 차갑고 클래식한 느낌의 알루미늄 외관, 단단하고 야무진 생김새, 작은 크기에 최상급의 화질을 보장하는 펜탁스만의 단렌즈군이다. 스타 렌즈와 더불어 펜탁스 사용자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된 리미티드 렌즈는 외관은 물론 사진 품질 면에서도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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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탁스 DA 15mm F4 ED AL Limited는 소형경량의 기치에 부응하고, 사용자들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2009년 출시된 렌즈다. 펜탁스의 여덟 번째 리미티드 렌즈인 이 제품은 광각 영역을 담당하고 있다. 초경량, 광각의 리미티드 렌즈인 펜탁스 DA 15mm F4 ED AL Limited의 외관과 화질을 차례로 살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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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탁스 DA 15mm F4 ED AL Limited의 외관을 살펴보자면, 렌즈 캡이 눈에 띈다. 톱니가 날카롭게 돋아있는 렌즈 캡은 스크류 방식으로 돌려서 여닫는 방식이다. 검정 알루미늄 재질의 캡을 쥐었을 때 느껴지는 단단한 감촉과 차가운 느낌은 리미티드 렌즈만의 도도함과 세련됨을 은근하게 뿜어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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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렌즈 캡 안쪽에는 벨벳 재질의 검은색 천이 덧대어져 있어 세련된 느낌을 더한다. 완전히 렌즈 캡을 잠궜을 때 전면부의 펜탁스 로고가 바로 정위치할 수 있도록 렌즈와 렌즈 캡을 1:1로 맞춤 제작했다고 하니, 렌즈 캡이 닫힌 렌즈 그 자체로도 완성도와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 무리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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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탁스 DA 15mm F4 ED AL Limited는 6군 8매의 렌즈로 구성돼 있다. 검은색 무광 알루미늄 바디에서 느껴지는 묵직하고 고급스러운 무게감 때문인지, 펜탁스 DA 15mm F4 ED AL Limited의 크기는 실제보다 크게 느껴진다. 하지만, 실제 크기는 63 x 39.5mm에 지나지 않는다. 금속제 본체는 단단하고 야무져 보이지만, 이런 작은 크기 덕분에 무게는 212g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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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 외관을 살필 때 눈에 띄는 것이 바로 꽃모양 렌즈 후드를 내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덕분에 펜탁스 DA 15mm F4 ED AL Limited는 휴대가 간편하다. 내장된 후드가 슬라이드 식으로 미끄러지며 오가는 움직임은 부드럽고 세련된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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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드를 본체에 넣을 경우, 후드 끝의 5mm 부분만 살짝 보이는 모양새 자체도 렌즈의 디자인을 빛나게 해 준다. 후드 사용 시에는 약 3cm 가량 돌출하는데, 이 모양새 역시 부자연스럽다거나 부담스러운 구석이 없다. 렌즈 캡 안쪽과 마찬가지로 검은 벨벳 재질의 천으로 감싸인 후드의 안쪽면 역시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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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탁스 DA 15mm F4 ED AL Limited 렌즈는 APS-C 센서 전용의 디지털 렌즈로써 초저분산(extra-low dispersion, ED)렌즈와 비구면(Aspherical, AL)렌즈를 사용했다. 반원형으로 생긴 비구면 렌즈는 색수차와 광각에서 발생하는 왜곡을 억제해준다. 또한, 렌즈면에는 각종 오염에 강한 SP(Super Protect)코팅이 돼 있어 먼지나 지문 등의 오염물질을 닦아내기 쉽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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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렌즈는 AF / MF 전환을 빠르게 해 주는 퀵 시프트 포커스 시스템을 지녔다. AF 작동 후 초점 링을 돌려 수동으로 미세한 초점을 맞출 수 있다. 이는 흔히 ‘손맛’이라고 표현하는 수동 렌즈의 조작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다만, AF 작동 시 경통이 굉장히 빠른 속도로 회전하는 만큼 소음이 발생한다는 점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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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탁스 DA 15mm F4 ED AL Limited의 최소 초점거리는 광각 렌즈답게 18cm로 짧다. 이러한 최소 초점거리가 렌즈 앞이 아닌 센서면에서부터의 거리를 의미한다는 걸 감안하면 사실상 렌즈 앞에서부터 약 10cm까지 접근하여 촬영이 가능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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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탁스 DA 15mm F4 ED AL Limited 렌즈의 최대 개방 조리개는 F4로 상당 수준의 심도 표현이 가능하다. 조리개 최대 개방 시에는 원형의 빛망울을 만들어내며 조리개를 조일수록 별빛같은 빛 갈라짐 현상을 만들어낸다. 조리개 날수는 모두 7매로 빛 갈라짐은 그 두배수인 14개로 만들어지는데, 조리개 F8에서부터 나타나 최소 조리개 F22에서 가장 크게 나타나므로 야경이나 어두운 실내 촬영에서 활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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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탁스 DA 15mm F4 ED AL Limited 렌즈는 그 작고 유려한 모양새와 더불어 초광각의 풍경을 세심한 질감으로 섬세하게 표현해낸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으로 책정돼, 펜탁스 리밋 렌즈를 사용해 보기를 주저하는 유저라면 우선 펜탁스 DA 15mm F4 ED AL Limited 렌즈부터 이용, 명불허전의 진가를 확인해 보도록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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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탁스 DA 15mm F4 ED AL Limited 렌즈에 더해 줌렌즈만 하나 더한다면 여행이나 출사, 용도를 막론하고 더 이상의 렌즈가 필요없을만큼 최강의 조합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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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ytzsche

 

 

 

원래는 이 곳에 머물 예정은 아니었다. 애초 머물기로 했던 숙소의 사정이 여의치 않아 다른 곳으로 옮겨가게 된 것.

 

그렇게 옮겨간 유후인 료칸 '유후인몰'의 픽업 차량은 벤츠, 벤츠 로고를 단 봉고차였긴 했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유후인 역까지 걸어서 20분이면 가닿는 곳, 유후인 동네가 조그맣고 아기자기한 걸 감안해도 이정도 입지면

 

정말 꽤나 훌륭한 편이다. 그리고 입지보다 중요한 건 그 곳에서 머물 공간의 내부 풍경.

 

 

문을 열고 들어서니 시야가 한없이 쭉쭉 뻗어나간다. 현관을 지나 침실을 지나 다다미방을 지나 저 멀찍이 보이는 건,

 

방마다 구비했다는 실내 노천 온천..!!

 

 

사람 둘셋이 들어가도 모자라지 않을 사이즈의 노천 온천이 뻥 뚫린 하늘 아래 검게 그을린 나무 담벼락과 초록빛 왕성한

 

풀숲의 호위를 받으며 아늑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나중엔 그 뜨끈하고 미끈한 온천물에다가 편의점에서 사온 날계란을 담궈놓고 온천 계란을 만들기도 하고.

 

 

방 안에는 화사한 일본 전통종이로 씌워진 빳빳한 안내 책자에 료칸 객실에 대한 안내가 적혀 있었(던 것 같)다.

 

방에 들어선 손님들을 맞이하는 건 간단한 스낵.

 

그리고 유카타 두 벌과 일본의 진한 녹차 티백이 가득 담긴 다기 세트.

 

 

 

방안 곳곳에는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적당한 장소에 놓여 있었다. 온천에 들고 나갈 수건 꾸러미 옆에는 토끼,

 

열쇠나 잡다한 장신구를 놓음직한 받침대 위에는 꽃바구니, 뭐 그런 식으로.

 

 

어둠이 내려앉은 시각, 개인을 위한 노천 온천이 객실 안에 있다는 건 시간대에 구애받지 않고 아무 때고 온천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고즈넉한 시간대, 둥근 조명빛이 고스란히 옮겨진 온천 수면을 깨고 들어가기.

 

사실 온천물에 날계란을 익혀 먹기는 반쯤 실패하고 말았다. 물이 굉장히 뜨거워서 한참이나 찬물을 섞어야 했지만

 

막상 날계란을 익히기는 온도가 모자랐던 듯 하다. 그렇지만 밤새 온천물에 담겼던 계란들은 정말 굉장히 맛있었다!

 

 

 

개인용 노천 온천탕이 있다는 건, 잠을 자고 일어나 아침에 눈뜨자 마자 첨벙 뛰어들 수 있는 뜨겁고 시원한 온천탕이

 

있다는 이야기. 밤새 지켜왔을 무거운 정적과 침묵이 한순간에 깨어져 나가는 순간. 보통 유후인의 료칸은 오전 10시까지

 

체크아웃을 완료해야 하는데, 그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온천탕 안에서 버티는 게 남는 거다. 몸에나 마음에나.

 

그리고 료칸의 객실 내부를 좀더 살펴보자면, 여느 일본의 호텔이나 숙소처럼 화장실은 꽤나 작다.

 

샤워장과 화장실은 분리되어 있고 각자는 꽤나 협소한 공간. 욕조가 그래도 들어가 있는 게 신기할 지경이다.

 

 

실내에 개인용 노천 온천이 있다고는 하지만, 별도로 공용 남탕과 여탕도 있고, 크고 작은 '가족탕'도 있다.

 

가족탕의 경우는 이렇게 사용하기 전에 빨갛고 파란 램프에 불을 켜두어서 해당 욕실을 지금 사용하고 있다는 표시를 한다.

 

그래야 누군가 사용하러 와서 벌컥 문을 여는 민망한 상황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불빛을 켜두어 표시한다고 해도 만의 하나 가능성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이렇게 가족탕 앞에 표지판도 세워둔다.

 

입욕중, 혹은 비어있음의 표시를 해두는 것에 더해 안에서 사람들의 말소리나 물소리가 들리면 조심해야 할 일이다.

 

 

가족탕 내부에 뻥 뚫린 하늘, 그리고 멀찍이 내려다보이는 유후인 마을의 모습.

 

 

그리고 대나무발로 구획지어지고 천장이 절반쯤 닫힌 가족탕의 모습. 이 정도 크기면 왠만한 목욕탕 사이즈다.

 

파란색 바구니와 빨간색 바구니, 역시 이건 남자용 그리고 여자용 옷을 담아두라는 의미일 듯. 외국에 나가도

 

인류 공통의 색감과 색에 담긴 함의를 이해하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남탕, 여탕이 분리된 여느 온천에서 흔히 보이는 입구.

 

 

 남탕에서 보이는 유후인의 봉긋한 산봉오리, 그리고 저만치 떨어진 다른 건물들.

 

탕 안의 시설만 보면 한국의 시내에선 이제 보기도 힘든 낡고 오랜 목욕탕 같기도 하지만, 여긴 물이 다르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열어본 여탕의 출입문. 부처님 오신 날 연휴가 끼어있는 황금연휴였지만 이곳까지 온 사람들은

 

(특히 한국인들은) 그리 보이지 않아 문을 열어볼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여탕이라고 말해두지 않으면 전혀 남탕과의 차이를 느낄 수 없는 실내.

 

 

유일하고도 중대한 차이라면, 남탕에는 없는 디지털 체중계가 여탕 한구석엔 놓여있었다는 점이랄까. 그리고

 

옷을 보관해두는 바구니가 저렇게 얌전하게 대기하고 있다는 점도 차이점이랄 수 있겠다.

 

 

가족탕, 그리고 남탕과 여탕. 무엇보다도 객실마다 구비된 개인용 노천탕까지. 온천의 수질이 어떤지, 어떤 성분이

 

녹아있는지 같은 거야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분명한 건, 이 곳의 온천 시설은 '개인용 노천탕' 하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이미 일본과 다른 나라의 온천장들을 올킬하고도 남는다.

 

 

 

 

 

 

인천국제공항 ▶ 후쿠오카공항 국제선 by air (1시간 20분)

 

인천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이내 후쿠오카 상공에 진입했다. 티웨이항공사를 이용했으니 기내식은 기대도 안 했는데,

 

그래도 크로와상과 주스로 요기는 할 수 있었다. 비행시간, 1시간 20분. 오전 10시 5분 발, 11시 25분 착.

 

후쿠오카는 삼사년전 한번 시내를 돌아봤고, 이번엔 온천 마을로 손꼽히는 유후인을 섭렵하고 싶었다.

 

공항에서 바로 유후인으로 향하는 고속버스를 타고 출발할 예정이었으니 마음이 조금 급하다.(사실은 그럴 필요가 없는데.) 

 

후쿠오카공항 국제선 ▶ 후쿠오카공항 국내선 by Shuttle Bus(공짜, 15분 소요)

 

유후인으로 향하는 고속버스는 후쿠오카 공항 국내선 1층에서 바로 잡아탈 수가 있다. 우선 해야할 것은 비행기에서 내린 후

 

후쿠오카공항 국제선 터미널에서 국내선 터미널로 가는 셔틀버스를 잡아타는 것. 국제선 터미널에서 화물창고를 지나

 

국내선 터미널로 향하는 공항 내 셔틀버스는 대략 15분 정도 소요된다. 이용료는 공짜.

 

도쿄 같은 대도시들도 그렇지만 후쿠오카 역시 한국인 여행자들이 돌아다니기에 무지 편하다. 전철이나 공항, 백화점 같은

 

주요 시설물에는 전부 영어와 한글이 병기되어 있다. 셔틀버스에서도 훌륭히 제공되는 안내방송을 따라 후쿠오카 국내선

 

공항에 일단 짐과 함께 내렸다.

 

 

후쿠오카공항 국내선 ▶  버스티켓 창구

 

국내선에서 후쿠오카 인근 지역으로 이어지는 고속버스를 타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이미 여기저기 줄을 서 있었다.

 

셔틀버스 내린 곳에서 얼마 걷지 않아 쉽게 고속버스 티켓 판매소를 찾을 수 있었다.

 

창구에 대고 물었다. "유후인, 욘마이킷뿌". 유후인 왕복을 위한 2명의 티켓을 세트로 파는 티켓을 '욘마이킷뿌'라고 한다.

 

(유후인 ↔ 후쿠오카 공항 국내선, 하카타버스터미널, 텐진버스터미널 중 선택 가능)

 

두명의 왕복 티켓이니 총 네 장을 8,000엔으로 살 수 있는데, 별개로 사게 되면 편도에 약 3,000엔 전후인 듯 하니

 

4,000엔 가량 할인되는 셈이다.

 

어라, 영어가 짧은 차표 아저씨가 뭔가 곤란한 표정을 짓더니 위의 시간표를 가리킨다.

 

여기서 유후인으로 출발하는 고속버스는 11:04, 12:04, 13:14, 14:04..이렇게 한 시간에 한대 꼴인데, 12:04분 걸 타면

 

딱 되겠구나 했는데 이미 만차란다. 예약을 사전에 하고 온 단체여행객들이 있었는지, 해서 13:14분 차로 예매.

 

(인천에서 10:05분 출발, 후쿠오카 국제공항에 11:25분경 도착, 입국수속하고 짐찾고 셔틀타면 12시 전후로 도착)

 

버스티켓 구매 ▶ 승차장 확인

 

이게 바로 유후인행 욘마이킷뿌. 앞의 두장이 유후인행 티켓, 뒤의 두장은 나중에 유후인에서 돌아올 차편을 끊을 때

 

필요한 티켓이다. 유후인역 앞의 조그마한 버스터미널에서 저 티켓을 보여주고 원하는 시간대의 버스를 끊으면 된다.

 

티켓을 사고 가만히 보니 이제야 눈에 들어온다. 유후인. 탕포원, 湯布院, YUFUIN이구나.

 

그리고 미처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 하나. 바닥에 노란 색으로 줄이 그어져 있고 각각의 라인에는 행선지가 적혔다.

 

이런 식으로, 유후인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이 라인 안에서 줄을 서서 버스를 기다리는 거다. 애초 티켓에

 

좌석이 지정되어 있으니 줄을 미리부터 서 있을 필요는 사실 없으니 공항 안에서 가볍게 편의점을 들러 군것질이나 조금.

 

 

 

딴짓할 시간(화장실, 편의점, 공항 전망대..)

 

간단히 요기할 거리를 찾는데 역시 일본은 올 때마다 신기한 거리들을 찾게 된다. 볶음라면이라고 해야 하나, 묘한 느낌의

 

라면을 렌지에 덥혀서 따끈하게 먹고, 무려 '스파클링 두유'를 마시며 잠시 공항 벤치에 앉아 쉬었다.

 

그리고 공항 화장실에 들렀는데 이렇게 색색깔로 구분되어 있다니. 색감도 맘에 든다. 

 

후쿠오카 국내선 터미널 ▶ 유후인 by 고속버스 (1시간 40분)

 

정복을 차려입은 아저씨가 마이크를 들고는 들고 나는 버스의 행선지를 외치며 승객들에게 알려주고 있었다. 이제 유후인행

 

버스 올 시간이 다 되었고, 유후인행 버스를 기다리는 버스에는 사람과 짐들이 꽉 차있었다.

 

 

고속버스라곤 하지만 중간중간 서서 사람들을 태우기도 하고 내리기도 하고. 그래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건 이 버스의

 

종점이 바로 우리가 갈 곳, 유후인 역이다. 2시간에 가까운 탑승시간이 좀 지겨울 수도 있겠지만 중간에 휴게소를 쉬거나

 

그런 일은 없다.  

 

휴게소를 굳이 들르지 않는 건, 이렇게 차 안에 화장실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누가 이용하는 건 못 봤지만

 

화장실만 계속 쳐다보고 있던 것도 아니고 고작 2시간 남짓한 버스 여행이었으니 뭐.

 

그리고 다른 일본의 버스 요금 시스템처럼 구간별 운임이 쉼없이 늘어나고 있던 안내창이 붙어있던 버스 앞.

 

유후인 도착! ▶ 숙소

 

유후인에 도착해서 맨 처음 담은 풍경. 조그마한 동사무소보다도 작은 버스 터미널에서 내린 우리를 맞이했던 건

 

흰구름 동동 이고 있는 새파란 하늘, 그리고 반짝거리며 굴러내리는 햇살과 시원하게 내리부어지는 청신한 바람.

 

 

 

우선 숙소에 전화를 걸어 픽업을 요청하고는 잠시 주변을 돌아봤다. 유후인 역에서부터 뻗어나가는 왕복 이차선의

 

조그마한 차로는 아마도 유후인의 메인로드인 듯 하고, 그 양쪽으로 이어지는 자그마하고 아기자기한 상점들은

 

앞으로 둘러볼 곳들. 여느 고만고만한 세계의 도시들과는 달리 작고 살가운 풍경에 두근거리고 있는데 마차가 지나간다.

 

 

 

* 후쿠오카 - 유후인

 

후쿠오카공항 국내선 터미널

유후인 버스터미널(유후인 역)

 1  12:04 13:48 

 2

 13:14

14:58 
 3

 14:04

15:48

 

 

* 유후인 - 후쿠오카 (텐진 버스터미널 - 하카다 버스터미널 - 후쿠오카 공항) 

  유후인 버스터미널(유후인 역) 

후쿠오카 버스터미널(하카다)

 1  08:35  10:53 
 2  12:20  14:38
 3  13:50  16:08
 4  14:35  16:53
 5  15:20  17:38
 6  16:20  18:38
 7  17:00  19:18

 

 

 

 

 

 

배 위에서 화장실이 급할 만큼 긴 시간 배를 탄 적이...부산에서 후쿠오카 건너갔던 때 말고는 없었던 거

같다. 그 쾌속선이야 워낙 시설이 잘 갖춰져 있었으니 딱히 화장실이 눈에 띌 만큼 특징적이지도 않았지만,

남해의 소매물도니 외도를 돌아보는 이 유람선에 이렇게 설치되어 있는 화장실은 신기했던 거다.


뭐,이런 화장실에 눈이 갈 만큼 긴 시간 배를 탔던 것도 이유겠고, '소변만 가능'하다는 저 협소하고 불편해

보이는 조그마한 공간이 불쑥 혹처럼 튀어나온 게 눈에 잘 띄기도 했고. 살짝 문을 열어보고는 그 강렬한

냄새와 위생상태에 질겁을 하며 문을 닫아버렸다는.

사실 파도만 좀 잔잔해서 바다가 거울같이 반반하고 실크처럼 매끈하다면, 그래서 배가 전혀 요동이 없고

흔들거리지 않았다면 화장실이 그렇게까지 되어버리진 않았을 거라 짐작해 본다. 배 위에서 일을 본다는 건

일종의 거대한 천재지변과 정면으로 마주하겠다는 의지, 그 의지로 자폭해버리거나 뒷사람에 민폐를

끼치는 걸 막기 위해 아마도 '소변만' 가능하다고 읍소한 거였나 보다.




이수영이 뮤직비디오를 찍었다는 큐슈 유센테이코헨의 화장실 표시. 울창한 녹색 수풀 사이로

토토로가 튀어나올 것만 같이 야성적이면서도 깔끔하던 일본 전통정원은 정말 일본스럽도록

구석구석 잘 정돈되어 있었고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이 담뿍 쓰여져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화장실표시조차 이렇게 공들여 만들어진 타일조각 작품이니 뭐,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남자 화장실을 손발 쫙 펼친 적극적인 남성의 큰대(大)자 모양의 표시로 형상화했다면

그와 달리 손발을 곱게 모으고 노란색 끈으로 동여매인 듯한 여성의 모습이 대비된다.

빨간 색감이 산뜻하고 이쁘긴 한데, 이런 화장실 표시에서도 역시 일본에서 여성을 보는

시각이랄까 암묵적으로 합의된 채 상식처럼 통용되는 문화가 흐르는 건 아닐까 싶다.

크게 손발을 활개친 검은 옷의 당당한 남자, 손발이 다소곳이 모인 채 아름다운 빨간 옷을

동여맨 여자의 대비.


* Mother nature is calling me, 직역하면 '자연이 나를 부르고 있어' 정도가 되겠지만 보통

이 문장은 허물없는 사이에서 화장실 다녀오겠다는 의미로 새겨지게 됩니다. 여행을 다니며

결코 빠질 수 없는 '답사지' 중 하나가 그곳의 화장실이란 점에서, 또 그곳의 문화와 분위기를

화장실 표시에까지 녹여내는 곳들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국내외의 특징적인 화장실 사진을

이 폴더 'Number one or number two?'에 모아보고자 합니다. 그 표현 역시 우리말로 치자면

'큰 거야 아님 작은 거야?' 정도겠네요^^





후쿠오카(福岡)이라는 지명을 풀어보면 '행복의 언덕'이란 뜻 정도 되려나? 그곳에서 지냈던 며칠동안의 추억을

마음 가득, 그리고 카메라 가득 담아서는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했다. 아사히맥주공장에서 공장
견학과 함께 맥주

시음도 맘껏 하고, 다자이후에 가서 텐만구, 큐슈박물관, 고묘젠지, 그리고 엉성하게
한글 광고가 써져있던

가게들도 구경했다. 이수영 뮤직비디오에 나왔다는 유센테이코헨, 한때 큐슈번주의
별장이었다는 그곳에 가서

한적한 정원을 거닐기도 했고, 라멘과 음식들은 매번 어김없이 성공적이었으며,
아크로스 후쿠오카에서 바라본

후쿠오카의 전경은 굳이 올라가보길 잘했다 싶었다. 캐널 시티나 어딘지
딱히 짚을 수 없는 후쿠오카 시내에서

헤매듯이 쇼핑도 했었다. 구시다신사에서 짝짝 박수치며 흉내를
내보았던 건 역시 잘했다 싶고, 순박해 보이는

아저씨가 한국인이라며 반겨주던 텐진 시내 포장마차(
야타이)는 꼭 한번 더 가보고 싶었더랬다.

당연한 듯 길을 잃고서는 지도 탓을 했었고,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자연스레 다른 길로 빠져서는 생각지도

못한
선물같은 풍경들을 마주했지만, 때로는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파 그저 쉬고 싶은 맘뿐이기도 했다. 같이 배를

타고 왔던 그 많던 한국인 여행자, 혹은 관광객들은 전부 어디로 가 버렸는지 아사히맥주공장에서 한 무리의

한국인 단체관광객들과 맞닥뜨린 때 빼고는 아무 눈치 안 보고 활개치며 다녔었다.

후쿠오카에서 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면 온천으로 유명한 유후인 마을을 꼭 가보고 싶었지만, 일단은 다음으로

미루기로 하고 살짝 섭섭하면서도 뿌듯한 마음으로 하카다항 국제터미널로 향했다. 사실 '행복의 언덕'

후쿠오카에서는 서울과 부산이 도쿄보다 가깝다고 한다. 그만큼 가까운 곳이니 언제든 맘만 울컥하면 달려올

수 있지 않을까..환율만 좀 미쳐돌아가지 않는다면. 이번에 나설 때도 고작 사흘만에 백엔당 원화환율이

백원 이상 올라 천오백원을 넘나드는 바람에 식겁했었다.

터미널 이용권을 구매하고, 유류세를 별도로 또 내야 한다. 유류세는 2,000엔이었던가 부산항에서의 유류세와 별반

차이가 없었던 것 같은데 터미널 이용료는 약간 더 비싼 것 같다. 대인 500엔. 부산항이 2,500원이었던가. 그러고

보면 실제로 여행에서 쓰는 경비 중에 참 많은 부분이 교통비로 들어간다.

마치 공항에 있는 항공사 부스처럼 말끔하게 차려진 게 프레임 내에서는 그럴 듯 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기실 저

프레임을 넘어서는 곳에는 벽들이 버티고 있는, 그런 조그마한 여객 터미널이다.

역시 일본, 이라며 한국을 향해 돌아설 때까지 날 감탄케 했던 건 저 반짝거리는 쓰레기 분리수거통. 물론 한국에도

저렇게 쓰레기를 분리해서 버리도록 구분되어 있는 쓰레기통이 대세라긴 하지만, 하나씩 별도로 세워져 있는 것도

드문데다가 왠지 저렇게 깔끔하게 운영되는 건 못 본 거 같다. 뭐 여기라고 별 수 있겠냐 싶고 알고 보면 어제 밤에

새로 사서 들여놓은 쓰레기통인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최소한 부산국제여객터미널에서 봤던 것들은 지방

중소도시의 시외버스터미널 대합실에 있는 것처럼 퀘퀘하고 지저분했었다.

일렬로 서서 사람들이 꾸역꾸역 배를 타고 있다. 조그맣지만 참 잘도 달리는 배, 비록 바닷바람을 전혀 느낄 수

없게 꽁꽁 싸매진 상자박스같은 느낌이긴 했지만, 그래도 우등버스 정도는 되는 좌석과 안락함이 느껴져서 그닥

답답하지는 않았다. 아마 갑판으로 나가서 바람을 쐴 수 있게 열린 구조라면 벌써 몇 사람은 시속 80킬로미터의

속도를 못이기고 날아가버리지 않았을까.

부산으로 향하는데 조금씩 물방울이 창문에 튄다 싶어서, 파도가 높구나 했다. 그런데 날카롭게 찢긴 칼자욱처럼

쭉쭉 늘어지는 빗방울들이 하나둘 그어지더니, 유리창을 가득 덮어버렸다. 海雨.

좌석 앞 주머니에 들어있는 면세상품 쇼핑책자. 저런 식으로 배가 바다 위로 배의 뱃면을 둥둥 드러내놓고 달리다

보니 그렇게 흔들림도 없고 왠만큼 거칠어진 파도에도 크게 영향받지 않나보다. 바다 위로 비가 솔찮이 내리고

있었지만 그다지 배의 진로에 장애가 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게 다시 돌아온 부산. 짧은 여행은 끝이 나고, 너무너무 길어서 그 사이 누군가는 지쳐 나가 떨어지고 또다른

누군가는 질려서 식욕조차 잃는다는 한평생만큼 이어지는 여행의 베이스캠프로 돌아왔다. 후쿠오카 여행기 끝.
 


"삶에 대해 곰팡내를 풍기는 낡아빠진 시시한 말들을 지혜로 여기는 자는 식탁에 앉을 때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으며, 심지어는 맛있게 먹기 위한 식욕조차도 가지고 오지 않는다." F. Nietzsche.



여행을 다녀온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떠나기 전에도 구시다 신사가 어떤 역사적 배경이 있는지, 또한 어떤 의미가

서려 있는지 그런 건 잘 모르고 갔다. 다만 여행정보를 여기저기서 긁어모으면서 살짝 흠집나듯 기억에 남았던

건 누군가 구시다 신사에서 좋아라 하며 일본식 참배를 하는 사진을 올렸던 여행후기에다가, 또다른 누군가가

이곳엔 명성황후를 시해한 칼이 보관되어 있는데 그런 것도 모르고 마냥 좋아라 할 수만은 없지 않냐고 쓴소릴

던졌던..그런 익숙하고도 새삼스런 반응이었다.


익숙했던 이유는 한국과 일본의 과거사가 마치 '연리지'처럼 얽혀 있어서 어딜 건들든 양국의 상처와 피해의식을

자극하기 십상이란 것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면 부부처럼 일심동체가 된 연리지라고 해도 알고 보면 하나로

붙어버린 지들끼리 영양분과 수분을 더 많이 흡수하겠다고 싸우지 않을까 싶다. 인간과 생명체를 구성하는

유전자 사이에도 이기심이 그칠 날이 없어 쉼없는 전쟁과 꼼수가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일본이나 한국이나

오랜 원한과 오랜 우월감-열등감 관계에 부비부비해왔기 때문에 더욱 날카롭고 민감한 듯 싶고, 그게 만성화되다

보니 너무나 익숙해져 버린 거 같다.


그러면서도 또 새삼스러웠던 이유는, 그런 이야기와 감정의 골이 남아있는 그 경계에 내가 직접 찾아 본 적은

그다지 없었기 때문이지 싶다. 말하자면 옛 적국, 혹은 옛 조국의 원수 품을 찾아 얼마 지나지 않아 (상대적으로)

생생한 과거를 들추어 내고 마는 기회가 될 거 같았다.

그렇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명성황후를 시해한 칼'은 코빼기도 못 봤고 난 그런 뭔가 논란의 소지가 있을 수

있는 공간에 들어섰다기보다는 그저 조용한 도심 속 절간에 들어선 느낌이랄까.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 칼은

유료 공개인데다가 공개 기간이 따로 정해져 있다나 머 그렇댄다. 별 관심도 없긴 했다. 명성황후의 피를 부른 건

그 칼이 아니라 이미 헐떡대며 숨을 몰아쉬던 오랜 왕국, 그리고 강성하게 일어나던 이웃나라와의 구조적 문제라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싶어서 그렇다. 그리고 내친 김에 말하자면, 명성황후가 조선의 국모란 말은 좀 찝찝하다.

그 말이 지금 우리에게 어떻게 읽혀지는지, 어떻게 대통령과 관료 등 근대적 정치시스템을 전근대의 왕, 사대부의

이미지와 중첩시킬 수 있는지까지 생각하면 더 찝찝하다.

조선의 국모란 말, 그것만 놓고 봐도 그렇다. 시해당하기 전 당대 조선사람들에게는 외국문물에 홀린 사치스러운

여자라거나, 시아버지 대원군을 잡아먹고 무능력한 고종을 이리저리 조종하는 교활한 여자라거나, 그런 평들이

적지 않았던 걸로 알고 있다. 실제로 그녀가 조선이 혼란기에 길을 찾아 나서는데 어떠한 공헌을 했는지, 어떠한

비전을 갖고 있었는지도 명확히 드러나지 못할 만큼 당시의 조정이 미미한 힘을 갖고 있었다는 점을 고려해도,

최소한 그녀가 조선왕조와 조선이란 나라의 근본, 백성들을 위해 크게 품을 줄 아는 '국모'였는지는 의문이다.


가설 1. 그녀는 말하자면, 한국인이 아니라 일본인의 손에 처형당함으로써 '국모'의 지위를 획득한 게 아닐까.

마리 앙투아네트처럼 자국의 '신민'되었던 자들에게 처형당하고 왕조 역사의 종지부를 찍었다면, 그녀에게 과연

'국모'라는 칭호가 가당키나 했을까. 물론 그녀를 제거함으로써 대한제국황실의 외교 다변화 노력(혹은 전략없이

시류에 따라 임기응변하는데 그치는, 힘없는 국가의 우울한 이이제이 노력)이 좌초하였다거나 고종에게 확실한

무력 시위를 통해 다른 움직임을 미연에 봉쇄할 수 있어 이후 일본의 침략이 수월해 졌다는 지적도 있지만..결국

전근대적 사회를 극복하려면 그녀와 황실은 어떤 식으로던 전면에서 물러나야 했을 거다. 최소한 그런 거다.

그녀를 '국모'라고 칭하거나 그에 준하는 애정을 표하기는 힘들지 않았을까 하는 예상. 


그녀가 드라마틱한 목소리로 "나는 조선의 국모다"라고 외칠 수 있고 그것에 대해 지금 우리가 한국인임에서

비롯하는 일말의 가슴뭉클함을 느낀다면, 그건 아마도 그 외침의 대상이 외적, 일본 제국주의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아닐까 싶다. 어떤 면에선, 시니컬하게 말하자면 일본인에게 당했기 때문에 그녀가 외려 민족주의적인 아이콘으로

스러져가는 왕조의 상징으로 예기치 않은 새로운 생명력을 얻은 건지도 모르겠다.


가설 2. 그녀를 국모라고 칭하는 데에는, 채 펴보지도 못하고 져버린 대한제국 혹은 제왕적 시스템에 대한 일말의

기대나 환상이 있는 건 아닐까. 이건 좀더 위험한 건지도 모른다. 이제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가 되었다라곤 하지만

허약하기 짝이 없는 시스템과 얼개 이외에 사람들의 의식이나 사고방식은 여전히 전근대에 머물러있는 면이 없지

않은 거다. 예컨대 한국에 여전한 사농공상 류의 귀천의식, 대통령과 공무원에 대한 거대한 복종(그만큼 거대한

불만은 차치하고라도), 교육(이라고 쓰고 시험이라고 읽는다)을 통한 신분상승의 오랜 꿈, 그리고 성숙한 토론을

어렵게 하는 온갖 권위(나이, 학력, 지역...)에 대한 인정. 이야기의 소요를 일으키고 시끄러운 논쟁이 일어나는 것

자체를 악으로 여기는 나라에서 누군가 '성군'이나 '천자'와 같은 제왕적 지도자를 다시 소환하고 싶어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긴 어렵다.


실제로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로 한번 뽑은 대통령이니 더이상 어쩔 수 없다는 류의 입장이나, 박정희같은

리더십과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가 (시끄럽기만 한) 정치인들 다 쓸어넣고 비전을 제시하길 바라는 류의 시대

착오적인 입장이나, 일정한 지지를 받고 있는 육영수같은 영부인상을 얻기 위해 시장통과 뒷골목으로 발품을

팔고 또 일정한 효험을 보고 있는 정치인의 아내들이나, 오로지 부모의 은덕을 입어 아무런 정견도 소신도

없는 사람이 유력한 차기 대통령으로 굳건한 상황이나...후우...정말 '국모', 그리고 '국부'를 원하는 걸까.

대통령은 왕이 아니다. 그리고 대통령에게 바라는 것과 왕에게 바라는 것은 달라야 하며, 대통령을 대하는 예의는

하늘의 현신인 왕에 대한 예의와는 달리 인간을 대하는 예의이면 차고 넘친다. 대통령님, 대통령 각하, 요딴 단어는

좀 피해야 하지 않을까. 누구나 아는 당연한 사실이지만, 파란 기와집에 세들어 사는 사람과 그 주변 똘마니들은

전혀 모르는 거 같아서 중언부언해버렸다. 그리고 인간에 대한 예의는, 때로 아니다 싶을 때 욕도 할 수 있고

성질 못이기면 자리에서 끄집어 내리자고 외칠 수도 있고, 실제로 끄집어 내릴 수도 있는 예의도 포함되는 게

아닌가 싶다. 더구나 12일 라디오연설에서처럼, 자신이 야기한 국회 내 혼란상을 두고 한국의 민주주의를 '해머'로

내리쳤다느니 따위 막말을 하는데야...

어쨌든, 명성황후를 시해한 칼이 구시다신사 이곳에 있다고 해서, 글쎄..굳이 이곳을 비분강개한 심정으로 이를

악물며 돌아본다거나, 괜시리 숙연해지고 장엄해져야 한다고 요구하는 건 무리라고 생각한다. 그건, 옵션이다.

사람이 죽은 것 그 자체가 분명 비극이지만, 거기에 뭔가 의아한 정치적 의도가 첨가된 의미를 부여하며

'충성스런 한국인(더구나 당연하다는 듯 조선인의 연장으로서의 한국인)'으로서 의식하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싶은 사람이나 그런 진지함을 뒤집어 쓰던가. 역사의 무게를 느끼는 사람이라면 굳이 "어떻게 명성황후를 시해한

칼이 있는 신사에 들어가 웃고 박수치며 절할 수 있느냐"라고 갈구지 않아도 뭔가를 생각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소화해 내지 않을까.

그래서 내가 돌아본 구시다 신사, 방금까지 주절주절 써내리면서 몇장씩 사진들을 올렸지만..다른 신사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소원을 빌고, 물로 입을 헹구고, 잘 다듬어진 정원을 보고..다만 이 때 무슨 행사가

있던 건지 아님 여긴 늘 저렇게 대나무 장대를 세워두는지 모르겠지만, 저거 왠지 익숙하다. 무당들 집에 세워진

깃대랑 비슷한 의미, 비슷한 유래 아닐까.

절하는 법이 구분동작으로 설명되어 있었다. 1) 사당 앞의 저 굵은 줄을 한번 당겼다가 놓고는, 가볍게 목례하듯

반절을 하고, 2) 두번 절하..라는 거겠지? 3) 박수를 두번 짝 짝 치고, 4) 다시 한번 절을 한다. 5) 마지막으로는 음..

또다시 가볍게 목례하듯 반절을 하라는 건가..사람들이 돈던지고 저렇게 뭔가 꾸벅꾸벅 하는 걸 옆에서 아무리

지켜봐도 왜그리도 구분동작과 매칭시켜서 이해하기가 쉽지 않던지.


함 나도 해봤다. 너무 어설프고 겸연쩍어서, 뭔가 빌고 어쩌고 한다는 생각은 하나도 없이 그냥 몸짓만 최대한

따라해보겠다는 심정으로 했다. 취한 것은 흉내, 버린 것은 내용..이랄까. 아무것도 빌지 않았다.

소원을 적어 주렁주렁 걸어놓는 저 나무판..그림은 여러가지가 있었지만 이 복던지는 고양이가 젤로 인상적이다.

눈밑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느낌으로, 무지 지치고 힘들어보이는 표정이랄까. 왠지 저녀석한테 복을 받아야 할 게

아니라 저녀석한테 복을 되려 좀 줘야 할 거같은 맥빠진 눈빛. 역시..눈빛이 생명이다.

신사 내를 돌아다니다가 발견한 화려한 가마. 저건 누굴 태우고 언제 쓰이는 건지, 박물관에 진열된 과거의 유물과

달리 아무런 설명도 안 붙어있다. 그건 아마 여전히 실제로 쓰이고 있고, 박제화되지 않은 채로 사람들의 손때가

더해지고 있기 때문일 듯.

좀 뜬금없다 싶던 이 오줌싸개 소년은 대체 왜 여기에 있을까. 빨간 머플러를 감고선 안 어울리게시리 시크하달까

어른스럽달까 싶은 표정을 짓고 있다. 물이 쫄쫄쫄 나오는데, 리얼하구나 싶었다.

신사 한켠에는 무슨무슨 단체나 개인이 봉헌한 듯한 저 엔자 문이 차곡차곡 세워져있었다. 그리고 그 열주문들이

굳건히 박힌 흙바닥에 빈틈없이 채워져있는 갈퀴질 자국. 저렇게 빈틈없이 바닥에 고랑을 내는 건 쉽지 않을 텐데,

자신이 어디로 들어가서 어디로 빠져야 할지, 그리고 언제 밀고 언제 당겨야 할지 같은 '밀고 당기기'의 고수가

한 갈퀴질임에 틀림없다.

신사 본당은 아니었고 옆에 별채처럼 세워져있던 건물. 프랑스에서 네모난 하드 모양으로 싹둑싹둑 가차없이

잘려있던 가로수들에 깜짝을 놀랬었는데, 여기는 뭐랄까 원통형 모양으로 나무를 정돈하는 건가. 그치만 주변의

유유한 연못과 휘영청 늘어져내린 나무들 사이에서 저렇게 혼자만 "Simpson"와이프같은 머리 모양으로 가꿔져

있다는 건 그다지 나무에게나, 보는 사람에게나 유쾌한 기분은 아닐 거 같다.

그리고 일본스럽다..라는 식으로 내게 굳어지고 있는 이미지들, 야박하리만치 단정하고, 나무 자체의 발색을 살려

차분한 느낌의, 화려하지 않고 잘 정돈된 네모난 벤또꾸러미같은 신사 건물들.

이 처자는 누군데 딱 찍혔는지 모르겠지만, 구시다신사에서 밖으로 걸어나가는 길. 뭔가 등불도 주렁주렁하고,

글자 빼곡한 비석도 좌우로 시립해 있고, 그리고 신사 밖을 향해 뻗은 대리석 포장길을 따라 걸으면 바로 버스와

사람들이 번잡스럽게 살고 있는 후쿠오카 시내라는.

놓칠 뻔 했는데, 한켠에는 또 돌로 만들어진 그 예의 문들이 차곡차곡 채워져있다. 그리고 그 앞쯤에서 뭔가를

이빨가득 물고서 수호하고 있는 개인지 늑대인지 여우인지, 여튼 네발짐승 하나의 석상.

구시다 신사는 사람들이 오며 가며 담배 한대를 맛있게 피우고 떠나는 흡연장소의 역할도 하는 것 같다. 잠시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 사이 적지않은 아저씨, 할아버지들이 담배를 한대 뻐금대며 태우고는 떠나갔더랬다.

그리고 그 앞에 놓여있던 재떨이가 압권. 이런 사고가 잦은가..? 아이의 얼굴과 담배의 불티부분, 그리고 어른의

손 높이가 같은 높이로 그려져있다. 그 밑에 떡하니 붙어있는 거대한-어른 몸보다도 길고 두꺼운-느낌표.




이번 여행기는 좀 순서가 뒤죽박죽으로 흘러가는 거 같은데..하카다항에 내려서 패키지 관광객들이 우르르 대형

버스에 올라타고 나면, 다소 한산한 느낌의 하카다항 건물 앞 도로변에 붙어있는 버스 정류장 안내판. 일어, 영어,

그리고 한국어로 적혀 있다. 텐진과 하카다 역 방면 버스가 몇 번인지, 운임이 얼마인지에 대한 2008년 11월 버전

정보랄까.

역시 하카다항 국제터미널에서 주요 버스 노선이 몇시몇시에 출발하는지에 대한 2008년 11월 버전 정보.

저렇게 세분화된 주중, 토요일, 일요일의 버스 시간표는 거의 오차없이 딱딱 제시간을 맞췄던 것 같다. 한국선

이리저리 구불구불해서 좀체 불편한 지하철과 배차 간격이 쉽게 지켜지지 않는 버스 때문에 도무지 대중교통을

이용하기가 쉽지 않은데, 저렇게 시간대를 딱 지켜서 운행되는 버스가 있다면 정말 좋겠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막차 시간이 정말 이르더라는 것 정도?

하카다항 터미널건물에서 나와 처음 밟은 후쿠오카 땅, 그리고 처음 본 풍경은, 어찌 보면 살짝 김이 빠질 만큼

한산하고 변두리스러운 느낌의 도시랄까. 그치만 하늘이 어찌나 이쁘던지 마냥 설렜었다.

아까 그 버스 표지판 앞에 있는 정류장. 제각기 캐리어 하나씩 들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누군가는 버스 노선도를

눈여겨 보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지도를 신문처럼 펼쳐 보고 있기도 하고. 그리고 그 위로 그야말로 하늘색이

그득히 담긴 하늘.

경제학 복수전공을 하면서 졸업논문을 준비할 때, 버스나 지하철 광고판이 얼마나 실제로 사용되고 있는지를

일종의 경제적 UP & DOWN의 지표로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아이디어를 냈었다. 지하철광고공사나 그런

곳의 협조를 얻어 지하철 광고가 어떤 형태로 몇 곳이나 가능하며, 실제로 팔려나간 정도는 얼마나 되는지 자료를

얻을 수 있다면 경기를 선행하거나 후행하는 식으로 추세를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아침저녁으로 보는 텅빈 지하철 광고판, 계약기간이 지나 뒤집어 게시되고 있는 광고들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그 탓일까. 외국에 나가면 광고 공간으로 활용될 수 있는 공간이 얼마나 채워져 있는지를 꼭 유심히 보게
 
된다. 여름에 갔던 파리 지하철은 빈 공간이 거의 없이 광고가 꽉 차 있었고, 이번 일본 여행에서 봤던 버스와

지하철 광고판도 그닥 텅 빈 곳은 눈에 띄지 않았던 것 같다. 그게 이런 식의 버스 사용안내로 채워진다고는 해도.

앞에 타신 한국인 아주머니들은 소녀처럼 설레셨다. 당장 버스를 타고 요금을 어떻게 내야 하는지부터 설왕설래

하시면서도 마냥 즐거우신 표정들. 그분들께 알려드린 것처럼, 버스 뒷문으로 탑승해서 정리권이라고 적힌 곳에서

번호표를 떼어내 자리에 앉으면 된다. 그러면 버스가 출발하고, 앞쪽에 있는 1부터 32까지 숫자가 적힌 전광판에

버스 승차금액이 나타나게 된다. 구간에 따라 요금이 할증되는 시스템인지라, 정류장을 많이 지나칠수록 180, 220,

250..뭐 그런 식으로 숫자가 커진다. 그리고 내릴 역이 되면 자기가 갖고 있던 정리권 번호에 맞는 금액을 지불하고

내리면 된다는 식..

정리권은 이런 식으로 생겼는데, 아주 엷게 한자로 정리권, 그리고 오른쪽엔 좀더 진한 글씨로 숫자가 적혀있다.

흔들리는 차안에서 일케 땡겨서 찍을 수 있었던 이유, 버스가 신호에 걸리거나 해서 멈추게 되면 바로 시동을

꺼버렸다. 에너지 절약 차원인 걸까 아님 공기오염 방지 차원인 걸까..이래저래 좋은 거 같긴 하다. 시동을 자꾸

껐다 켰다 하면서 기름이 더 소모되는 게 아니라는 전제가 필요하지만.

머물었던 호텔은 하카다역 옆의 도요호텔(東洋호텔)이란 곳이었다. 머 특별할 거 없는 조그맣고 깔끔한 비즈니스

호텔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하카다역 근처에 있는 호텔들보다 텐진 시내에 있는 호텔들이 더 놀기에는 좋지 않나

싶지만, 암만해도 하카다역 근처가 좀더 숙박료가 쌌던 거 같다. 그리고 머, 후쿠오카가 그렇게 거대한 도시도

아닌지라, 사실 숙소는 어디든 상관없다. 워싱턴 모뉴먼트 옆에서 노숙도 했었는데 모.

도요 호텔. 밋밋한 외관만큼이나 할 말없는 밋밋한 내부 인테리어였지만, 그래도 2박3일간 여행의 베이스캠프가

되어 중간에 쉬러 돌아오기도 하고..자그마한 술판을 차리기도 하고..

11층짜리 건물이었구나, 머물렀던 곳이 8층이었던가..그러고 보니 호텔을 들고 나면서 한번도 다른 손님들과

함께 엘레베이터를 탔던 적이 없는 것 같다. 심플한 '開', '閉' 표시만 덩그러니.

호텔 로비. 사실 이거 호텔이라기에도 좀 민망할 정도지만, 그렇게 고급스럽고 럭셔리한 게 아직 몸에 맞지 않는

나이인지라(혹은 나이라고 주장하는지라) 전혀 개의치 않았다.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직은

거칠고 무질서스러운 나라들에서 막무가내식으로 돌아다니는 배낭여행이 훨씬 좋다. 다만 저녁 때에는 단백질이나

좀 그럴듯한 음식으로 체력을 보충하고 싶다는 생각이 슬몃 들기는 하고 있지만.

호텔에 짐을 던져주고 걷기 시작한 거리에서 딱 마주친 기모노 복장의 아주머니 네 분. 일렬횡대로 인도를 꽉

채우고 앞서 걷고 계셨는데 어딜 가시는 건지. 뭔가 7인의 사무라이 필이 살짝 나는 게 어딘가 한판 하시러 가시는

건 아니겠지.

거리의 핸폰 가게. 우와~ 이뿌다, 싶은 핸드폰들이 꽤나 많이 보인다. 엘쥐의 쪼꼬렛폰을 여태 쓰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로, 아직 맘에 드는 디자인의 핸드폰을 못 봤다..란 거였는데 글쎄, 앞줄의 귀여운 것들이나 뒷줄 오른켠의

빤짝이는 유리상자같은 것들이라면 심각하게 생각해 볼 것 같다.

무슨 가게인지 얼핏 감이 올 수 밖에 없었다. 커다란 강아지 인형, 그리고 창문 가득 붙어있는 개발바닥 자국.

멀찍이 보면 강아지 사진이나 엑스레이 사진같은 것들이 보이기도 하고 그렇지만, 실은 요 강아지 인형이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게 귀엽다 싶어서.

후쿠오카에서의 첫 점심. 구시다신사를 향해 걷던 도중에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뿜는 작은 골목을 발견했다.

뭔가 인사동 뒷골목이나 명동 뒷골목 같은 곳의 맛집 거리같은 느낌? 이 골목에서 역사적인(?) 첫 점심을

해결하기로 맘먹고 골목으로 진입했었다.

실망스럽게도 아직 시간이 이른지 문이 닫혀있는 가게가 많았다. 그 와중에 두둥, 문을 열고 있는 가게 발견.

라멘집이었고, 하카다의 라멘은 위시 리스트에 들어있었고, 배는 이미 고팠으며, 다리도 아팠기 때문에 냉큼

들어섰다.

자그마한 가게에 뭔가 사진과 장식품들, 쪽지가 빼곡하게 붙어있고, 양념장통이나 소스통마저도 좁은 공간에서

서로 부비적대며 빼곡하게 공간을 메꾸고 있는 느낌이었다. 요약컨대, 왠지 이집 맛있겠구나 하는 느낌.

일본어로만 씌여진 메뉴판에 몇 가지 런치 스페셜이 있길래, 그 중 아무거나 하나를 손가락으로 짚었더니 요런

라멘이 나왔다. 저 안에 들어있는 무려...곱창. 곱이 가득한 곱창이 아낌없이 잔뜩 들어있었고, 가뜩이나 돼지뼈로

푹 고아진 걸쭉하고 진한 국물맛에 곱창의 느끼함이 더해졌다. 무지 맛있게 먹었다. 국물까지 싹 먹었더니 뭔가

장어를 세네마리 구워 먹은 만큼 몸보신을 했다는 느낌? 힘이 불끈 솟았다.

그렇게 힘내서 골목을 나서니, 바로 구시다 신사가 보인다. 고지를 불과 몇 걸음 앞두고선 든든히 속을 채웠으니

가히 최상의 타이밍. 그리고 골목 한 옆에선 나를 향해 웃어주고 있는 한류스타들.


유명한 관광지 A와 B, 그 두 점을 이으며 달리는 길에는, 알게 모르게 숨겨진 재미난 것들을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예컨대 버스를 타고 어딘가로 이동하면서도, 부드러운 필치의 만화와 몽글몽글한 글씨로 뭔가 한국에서라면

딱딱한 표어로 "차에선 뛰지 맙시다" 정도로 (그것도 노란 바탕에 검은 고딕체 글씨쯤으로) 표현할 법한 내용을

재미있게 표현하고 있었다.

그리고 신호에 걸려서 잠시 멈춰설 때마다 시동을 아예 꺼버리고 대기하는 여유롭고 속편해 보이는 운전기사분들,

그걸 당연히 여기며 누구도 조급증을 내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현지인들...모두 낯설지만 내 호흡 역시 한번 길게

내뿜고 맘을 느슨하게 잡도록 해주는 순간들이었다. 텐진 시내 신호등을 건널 때마다 흘러나오는 살짝 유치하고

단조로운 느낌의 노랫소리하며...그런 순간의 강렬한 느낌들을 전하기란, 사진과 글을 아무리 이리저리 엮어보아도

좀처럼 쉽지 않은 일 같다. 어쩌면 내가 찍는 사진들은 아직 그런 긴호흡의 장면이나 느낌을 담아낼만큼은 커녕

당장 짧은 한호흡의 순간을 포착하는 것조차 버거워하고 있어서 더욱 그럴지도.


그런 와중에 찍히는 아무 상관도 없고 내용도 그닥 부어넣기 힘든 이런 사진. 정말 단순히, 저 수달처럼 생긴

동물 만화캐릭터가 귀엽다는 느낌만으로 카메라를 들었었던 것 같은데 막상 찍어놓고 보니 느낌이 반감된다.

가와바타(KAWABATA)..? 여긴 텐진에서 구시다진자였나 캐널시티로 가던 중에 우연찮게 마주친 쇼핑 공간,

강남지하상가나 회현상가 같은 쇼핑 아케이드랄까. 제법이나 길게 이어진 통로 양측으로 의류, 악세서리, 소품,

음식 등등을 판매하는 점포들이 쭉 늘어서 있었다. 복잡한 동선을 요하며 전체를 이리저리 훑어보기가 쉽지 않은

쇼핑몰 형태의 것보다 이런 식으로 일자로 쭉 늘어선 형태가 개인적으로는 더욱 보는 재미가 쏠쏠한 거 같다.

가와바타 쇼핑아케이드..라고 편의상 부르기로 하고, 그 입구 왼켠에 세워져 있던 이 줄타는 느낌의 아저씨상이

잠시 시선을 끌었다.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지나고 있었고 그중에 또 많은 사람들이 관광객처럼 보였지만 그다지

아무도 이 동상에는 관심을 갖지 않고 지나갔던 듯. 그래서 나도 잠시 보다가, 슬몃 인파 속에 묻어서 아케이드

안에 진입하고 말았다. 사실 일본어만 주렁주렁 써져 있던 그 안내판을 아무리 봐도 뭔가 이사람이 누군지, 왜

포즈는 저모냥인지 알 방법은 없었던 거였다.

지그재그 양쪽을 즈려밟으며 조금씩 전진해 나가는 재미랄까. 그렇게 좌, 우, 좌, 우 가게를 하나씩 구경하다 보면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직선거리로는 고작 몇백미터 밖에 못 나갔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을 때가 있다. 또 그럴 때는

꼭 배가 고프거나, 다리가 무지 아프다는 신호가 오는 때이기도 하다.

그럴 때 문득 눈에 들어온 단팥죽 가게..랄까. 뭔가 아케이드 양쪽으로 즐비하게 늘어선 다른 가게들의 밋밋하고

특색없는 외관과는 달리 본격적인 모양으로 클래식한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했고, 마침 어디에선가 방송용카메라를

들고 가게 안에 들어가 촬영을 하고 있었다. 맛집 소개 프로그램같은 느낌?

안에 들어가니 몇 석 안되는 좌석이지만 이미 꽉 차 있는 상태였고, 가게 안 쪽은 바로 하천쪽으로 뻥 뚫려 있어

어르신들이 단팥죽..같은 걸 먹으며 문득문득 바깥을 내다보곤 했다.

이쯤 되면 그냥 한국의 단팥죽과 같다..라고 해도 될 거 같긴 한데, 그래도 경단이 저렇게나 큰 데다가 단팥죽과

함께 먹는 게 단무지가 아니라 닥꽝(이거 어떻게 쓰는 거지..?)일 테니 꼭 한국의 그것과 같다고는 말못하겠다.

일본 음식스럽게 부드러우면서도 달달한 느낌.

그 단팥죽..같은 걸 먹고 다시 힘내서 갈지자 행보를 이어가던 중 만난 화지(和紙)가게. 정말 이쁘고 세련된 색감의

종이가 많기도 했고, 편지지, 편지봉투, 종이인형, 심지어 만들어지기 전의 종이인형 재료까지 다양한 것들을

팔고 있어서 한참동안이나 질리지도 않고 구경할 수 있었다.

이런 편지봉투들, 특히나 저 분홍빛이 왠지 마음에 팍 꽂히는 편지봉투는 사놓으면 언제든 누군가에게라도 편지를

써보낼 때 유용할 듯 싶었지만 말았다. 편지는 내용이 중요한 거다..랄까.

무슨 일인지 문을 닫고 있는 가게도 있었는데 그 문에 내걸린 표지판을 굳이 안 보더라도, 저 공손히 인사하고 있는

그림만 봐도 딱 알겠다. 미안하지만 지금은 문을 열지 않았다네, 라고. 그나저나 저 그림그려진 사람, 팔이 은근

무지하게 짧은 거같다. 목덜미를 넘어 등덜미까지 훤히 보이도록 깊숙이 수그리고 인사를 했으면, 두 손은 아마도

무릎팍이 아니라 바닥에 손바닥을 온통 대고 있을 정도로 내뻗어졌어야 정상아닌가 싶은데.

이게 바로 현실을 왜곡하는 만화적 상상력의 발현.ㅋ

그리고 또다시 느릿느릿 가다가 마주친 이 아저씨들. 아마도 행운권 추첨이라거나, 즉석 뽑기같은 거 아닐까. 이

아케이드 내에서 물건을 사고 영수증을 가져오는 사람에게 저 다람쥐통 같은 뽑기 기계를 돌려 뭔가를 기대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시스템 말이다. 저 할머니는 아쉽게도 아무 것도 받지 못하고 멋쩍게 돌아섰던 거 같다.

가다가 지쳐서 중간중간 후다닥 걸음을 재촉하기도 하고, 재미없다 싶은 가게는 뛰어넘기도 하고,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던 시식코너도 몇개 스킵하기도 하면서 반대편 출구에 나왔다. 여기서 바로 구시다진자가 옆에 보였고

그 바로 옆에는 또 캐널 시티로 바로 이어지는 길이 보였던 것 같다.

캐널 시티로 가는 길, 후쿠오카중앙은행의 광고판이 떡하니 붙어있었다. 사람들이 개미떼처럼 바글바글 이미 모인

채, 새롭게 여기저기서 도우려고 뛰어오는 사람들과 함께 후쿠오카중앙은행을, 혹은 일본경제를 앞으로 밀고

나간다는 느낌의 그림은 정말 일본스러운 뭔가를 반영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캐널 시티로 이어지는 통로는 무지하게 길어서, 후쿠오카 시내의 건물들 사이를 꼬불거리며 이어지는

길다란 육교같은 공중대로를 한참이나 걸었던 느낌. 조명도 침침하고 사람도 그다지 많지 않은 이 통로 끝에서

캐널 시티로 합류하면 별안간 대낮같이 밝고 사람들로 미어터지는 쇼핑몰이 나타난다.

배고파서 들어갔던 어느 라멘집에서 열심히 라멘을 만들던 젊은 청년들. 여기는 무슨 체인도 아니고 딱히 이름난

맛집도 아닌 것 같았는데, 그렇다면 결국 일본 라멘이 정말 내입에 잘 맞거나 정말 맛있는 음식이라는 결론으로 날

이끌어준 장본인들.
뽀얀 국물에 둥둥 뜬 기름 몽우리. 그리고 얇지만 탄력있는 면발에 깊이 스며든 구수한 맛.

교자도 시켰더니 이렇게 세모난 모양의 만두가 나왔었다. 후쿠오카에 무슨 한입교자가 유명하니 어디가 맛있니

하길래 꼭 맛보겠다고 몇군데 맛집도 알아두고 했지만, 다 필요없다. 그냥 우연찮게 길거리를 걷다 이쯤에서 배가

고팠고 별 거부감없이 들어가서 시킨 음식이 맛있으면 대박. 아니어도 딱히 기대가 과잉하진 않았으므로

다이조브데쓰네.

갑작스런 장면 전환 같지만, 모스 버거의 테이블마다 놓인 '지역한정' 남만지역 특산 버거 광고. 모스 버거도 첨엔

뭐 별다를 거 있겠어, 하고 별로 시도해 보고 싶은 생각이 없었는데 막상 어쩌다 보니 들어오게 되었고, 그렇게

맛을 보니 꽤 괜찮았던 케이스였다. 내가 먹었던 건 저..왠지 남만북적동이서융이라며 지들빼고는 전부 오랑캐라던

중국의 중화사상을 되새기게 하는 남만버거는 아니었고 기본 모스 버거였는데, 다소 작지만 부드럽고 말랑거리는

빵과 고기의 조화가 꽤나 괜찮았다.

이 사진은...음...신촌이나 강남 어딘가 쯤의 패스트푸드점에서 수다를 떨고 있는 처자들을 떨리는 마음으로 도촬한

거라 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이국적인 느낌이 1그램도 묻어나지 않지만, 잘 보면 왠지 스타일이나 머리 모양

등에서 니폰삘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모스 버거의 옆테이블에 앉아 수다를 즐기시던 일군의 처자들.


똥*일보 인턴기자질을 마쳐가던 즈음, 인턴들에게 4면의 지면을 주고 담고 싶은 기사를 취재해 오라고 했던,

마지막 기념품삼아 신문을 직접 만들어 보도록 하는 기회가 주어졌었다. 이른바 '바이라인'이라는 기사 아래의

자신 이름 석자가 실리는 것에 환상을 갖고 있던 인턴 동기들은 저마다 열의를 갖고 이런저런 기사거리를

제안하고 취재를 하겠다고 했으나, 사실 무해하고 '건전한' 장난감같은 4면짜리 인턴신문으로 견인코자 했던

관리자들의 태클로 이도저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다지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다고 생각했던 그 인턴신문에 그래도 각자 바이라인 하나씩은 넣어야 한다는 게

또 보기 좋고 건전한 마무리를 위한 전제조건이었달까..결국 난 친구 하나가 발제하고 허가를 득한 주제에 대해

함께 취재하러 나가게 되었었다. 그건 바로 서울에서도 도서관 마냥 한사람씩 공간을 칸막이 쳐놓고 음식을 팔고

있는 음식점이 생겼다는 것. 당시 명동교자와 일부 음식점이 점심 때 혼자 와서 밥먹는 직장인들을 위해 그런

일인용 칸막이가 둘러쳐진 테이블을 설치해 놓고 있었다. 


뭐 여러 사정 끝에 그 기사는 하나의 트렌드를 짚고 있다기엔 무리가 있다 하여 짤리고 말았으나, 그때 처음으로

일본엔 이미 그런 식의 1인용 식당이 왠만큼 자리잡고 있음을 알게 되었었다. 그리고 이번에 후쿠오카를 여행하며

드디어 직접 그런 식으로 구획된 라멘집을 경험했으니.

캐널시티에서 이리저리 구경을 하다가 배가 고파져서 찾은 라멘집. 일본 라면을 두고 느끼하다거나 맛이 너무

진해서 입에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들리지만, 첫날 자그마치 '곱창 라멘'의 죽도록 느끼하고 진득한 맛에 반한

후로는 하카다식 라멘에 홀딱 빠진 상태였달까.


근데 여기, 다른 음식점들처럼 가게 앞에 자판기가 있어 표를 사서 주문하는 건 비슷한데, 뭔가 자리배치도에 파란

불빛으로 '空'자가 적혀 있는 게 특이했다. 뭐지? 테이블이 어디가 비어있다고 표시해 놓은 거 같긴 한데.

자리에 앉기 전 주위를 둘러보다 입구쯤서 발견한 추가주문용지. 드문드문 한자는 뭔말인지 얼추 추측은 하겠다만

일본어가 얼기설기 섞여있어서 좀체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어쨌든 뭔가 돈을 더 내야 추가로 뭔가를 더 집어넣어

라면을 만들어주겠다는 뜻인 듯.

자리에 앉으려니 의자 하나, 그리고 딱 도서관 칸막이가 점유하고 있는 공간만큼을 허용하는 둘러쳐진 테이블.

대체 음식은 어떻게 나오나 싶어 앞쪽으로 고개를 빼어보니 가운데엔 서빙하는 점원이 앞뒤로 움직일만큼의 좁은

통로가 있고, 그 양쪽으로 이렇게 칸쳐진 도서관 책상이 열지어 있는 구조였다.


혼자 와서 밥을 사먹을 수 있다는 건, 때론 그만큼 나이가 들었다거나 철이 들었다는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누군가에게는 무지 꺼려지고 부담스러울 수 있는 그런 피치못한 순간에 이처럼 혼자 조용히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은폐된 채 밥을 먹을 수 있는 공간이란 꽤나 매력적이겠다 싶었다. 앞쪽에 마주보고 있는 사람과 행여 눈길이라도

마주칠까 싶어 길게 드리워진 커튼같은 천조각은 더욱 완벽하게 자기 자신과 앞에 놓인 음식에만 집중할 수 있는

최선의 조건을 제공하게 될 거 같다.

옆에 젓가락통에 함께 꼽혀 있는 종이에는 한국어로 라면 기호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주는 몇가지 옵션들을

제시하고 있었다. 예컨대 기름기 정도, 라면의 감촉, 그리고 비전 조미료를 얼마나 넣을지 같은 것들을 무난한

한글로 적어놓고 있었는데, 꽤나 많은 한국인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고 있는 반증이지 싶다. 다만 하나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은 바로 저 항목, "궁극의 신맛"이 대체 무얼까..심플하게 '있다'와 '없다'만을 선택할 수 있는 양자택일

그 기로에서 난 일단 '있다'를 선택했다.

이게 바로 '궁극의 신맛'이 있는 라면. 살짝 퍼진 느낌의 네모난 라면그릇에 담긴 건 기름기 둥둥 떠다니고 마치

한국의 꼬리곰탕처럼 진한 육수맛이 인상적인 라멘. 한국의 라면을 떠올리게 된다기보다, 오히려 사골탕이나

꼬리곰탕같이, 뼈가 흐물흐물해지도록 고아낸 뿌연 육수가 자연스레 연상된다. 그런 것들은 식으면서 마치 젤리나

묵처럼 국물이 걸쭉하게 굳어버리곤 하는데, 분명 이런 후쿠오카의 라멘도 그렇게 될 거 같다.


뭐랄까, 음식의 계보를 따지자면 일본의 라멘은 분명 한국의 라면보다 꼬리곰탕같은 사골국물에 훨씬 가까운

음식으로 판명되지 않을까 싶다.

이치란. 가이드북에 따르자면, 여기가 관광객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라멘 전문점이란다. 자그마치 1960년도부터

이어온 비밀 양념장이 푹 고아진 돼지뼈 국물에 더해져서 느끼하지 않은 국물맛이 난다고 하는데, 글쎄 난 냄새가

나는지 안 나는지도 모르고 그저 맛있게 먹었을 뿐이었다는.


회사가 코엑스에 붙어있는 나로서는, 그다지 쇼핑몰 같은 곳을 굳이 돌아볼 필요는 없을 거라 생각했었다. 실제로

캐널시티를 돌아보면서 몇몇 샵들이 조금 재미있기는 했지만, 커낼시티는 그냥 후쿠오카에 있는 조금 큰 쇼핑몰

정도라고 치고 다른 곳으로 향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막상 몰 밖으로 나와 천장이 트인 공간에 서니 이미 캄캄해진

어둠을 배경으로 캐널 시티의 화려한 조명이 이뿌게도 붕붕 떠다니고 있었다.
때는 11월 말. 이제 슬슬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달구기 시작하는 타이밍에 맞춤하게도, 크리스마스 트리와 이런저런

태피스트리..라고 하던가, 그런 장식물들이 반짝거리는 조명에 둘둘 감긴 채 뭔가 특별한 광경을 선사하는

커낼시티의 거죽. 솔직히 내장은 그닥 신선치는 않았단 말이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기 위해 기분을 업시켜주는 이런저런 사진들을 보면서 거죽이네, 내장이네 하고 있는 나는

뭔가 싶지만, 어쨌든 이미 작년 크리스마스는 지났고 올해 크리스마스를 기다리기엔 너무 멀단 말이다. 그러고

보자면 사실 크리스마스 당일 아침은 항상 느지막히 10시나 11시쯤부터 시작했었고, 눈뜨고 나서 느끼는 그

허망함이나 부질없음의 느낌은 마치 질긴 고기를 잔뜩 씹고 나서 잇새가득한 이물감 같은 것이었다.


역시 크리스마스는 이브가 최고. 뭔가 마법같은 일이 벌어지기에 딱 좋은 날짜란 말이다. 12월 24일.

한 켠에는 무대 장치도 되어있고, 뭔가 공연도 드문드문 준비되어 있는 모양이지만 내가 이곳을 거닐던 짧은

시간 동안에는 어디에서도 가슴뛰는 기타의 굉음이나 누군가의 호기로운 노랫소리 따위 들을 수 없었더랬다.

이런 건 참 비슷하달까, 상상력의 한계라고까지야 하진 않더라도. 코엑스몰이니 다른 복합쇼핑공간이니 하는

곳은 모두 노래짱 선발대회니 특별공연이니 하는 것들과 쇼핑공간을 융합시킨지 이미 오래인 거다.

이 것들은...어디서 봤더라, 뭔가 애니에서 봤던 듯한 캐릭터들이지만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게 없다. 그냥 단순히

디즈니 만화의 캐릭터를 갖다 쓴 거 같기도 하고, 우야튼 좀 맥락없이 세워진 이 녹색 동물들은 대체 크리스마스와

어떤 연관성이 있길래 저렇게 선물까지 잔뜩 받아가며 알바를 뛰고 있는 겐지.왼쪽 다람쥐 녀석 왠지 왼쪽 입꼬릴

찌그리고 쪼개는 게 기분나쁘다.

이거 자꾸 맘내키는 대로 쓰다보니 anti-Christmas의 기운이 강하게 뻗어나가는 느낌이지만, 정말로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사라진지는 오래인 터..굳이 크리스마스 액세서리라고 생각지 말고 단지 이렇게저렇게 꾸며진 이쁜

장식품이라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그렇지만 저토록 후하게 보이는, '나는 관대하다'라고 창문모양 입으로 온통 외치고 있는 듯한 선물의 집은 역시

크리스마스 시즌이 아니고서는 쉽게 소화할 수 없을 유난스럽고 두드러지는 장식이긴 하다.

커낼 시티에서 맘에 들었던 것 중 하나, 마당이랄까 이 열린 공간을 걷다가 문득 예고없이 마주치는 분수대. 전혀

사람이 다니는 길과 구분되어 있지 않고, 물이 뿜어져 나오는 구멍 역시 바닥면과 같은 높이로 숨겨져 있어서

느닷없이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를 보면 왠지 유쾌한 장난질에 속아넘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몇 그루의 크리스마스 트리, 그리고 그 트리들에 빨간 우산을 하나씩 들린 것처럼 조명이 서있다.

루돌프 사슴코 모양 시뻘건 불빛을 밝혀든 버섯 같은 조명등. 조금만 더 날카롭게 각도가 섰다면 붉게 달아오른

화염의 창이 떠오르지 않았을까.

분수대와 더불어 커낼 시티에서 맘에 꼭 들었던 것 하나는, 바로 요 흡연구역이었다. 어렸을 적 우산을 두세개쯤

동시에 펼쳐놓고 조그마한 텐트를 치고 들어가 공간을 꼭꼭 여몄던 기억이 나게 만드는, 그런 왠지 비슷한 모양의

흡연구역. 저 동그란 천막 같은 곳에 들어가 담배를 피면 왠지 기분도 색다를 거 같다. 게다가 저 푸르스름한

간접 조명은 대체 어디서부터 쪼여지는 건지.

그러고 보니 난 커낼 시티의 후면으로부터 전면의 정문으로 역주행한 셈인가. 어쨌거나 커낼 시티를 한바퀴

관통하고 돌아보는 정문의 산뜻한 네온사인이 깔끔하다. 그렇게 필요 이상으로 휘황찬란하거나 거대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또 여기가 어딘지 알아보기도 쉽지 않을 만큼 왜소하거나 너무 밋밋하지도 않고.

이건...커낼 시티를 떠나 텐진 쪽으로 걷다가 문득 마주쳤던 일본의 모텔 가격표. 혹시 필요하신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랄 뿐. 한국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요금체계가 좀 정교한 게 아닌가 싶다. 180분짜리 REST, 100분짜리 SHORT

TIME, 그리고 FREE TIME과 STAY. 요 두개 차이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선홍색 꽃잎들이 미묘하달까.



아마 도요호텔에서 투숙객들의 편의를 위해 일본어판 관광안내지도 일부를 복사해서 비치해놓은 듯 하다.

한국에서 들고 갔던 가이드북에 나와있지 않은 세부 사항이라거나, 세세한 골목같은 경로를 탐색할 때 꽤나

쏠쏠하게 도움이 되었던 지도였다. 축척이 1:4000이니까 거의 50미터 버전의 내비게이션하고 비슷한 수준아닐까.

후쿠오카 시내 관광을 계획중인 분들에게는 꽤 도움이 될 듯.





하카다역 인근 숙소에서 가까운 전철역까지 걷다 보면 몇군데씩 새로 생겼다는 '신장개업'의 빠찡꼬게임장들을

볼 수가 있었다. 한국에서 바다이야기가 성행했고, 지금도 변종 업소들이 성행하고 있다지만 나와는 별로 인연이

닿지 않는 장소들인 터, 도박장이라고는 몇년전 강원카지노랜드 가서 슬롯머신 하다가 만원정도 기부하고 온 게

전부였다. 시끄러운 소음이 공기중에 붕붕 떠다니고, 그렇지만 아직 신장개업중인지라 약간 어설픈 기류가 흐르는

그 곳에 들어서니 왠 배용준사마와 최지우히메가 보인다.


오...역시 이들이 일본에서 좀 먹히긴 하나 보다 싶기도 하고, 게임기 자체가 온통 겨울연가, 그 둘의 사진으로

도배되어 있는 걸 보니 좀 살짝 질리기도 하고. 대체 저건 무슨 게임일까 잠시 궁금해하다가 돌아서고 말았다.

그 옆라인에 늘어선 또다른 게임기..마치 바다이야기처럼 스크린이 있고, 뭔가 그림이 움직이는 것 같던데 역시

좀처럼 어케 하는 건지 모르겠다. 바글대지는 않더라도 누군가 게임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옆에서 살짝

어깨너머로 배워서 직접 땡겨보기라도 했을 텐데, 워낙 사람도 없고 휑뎅그레한 분위기여서 금방 문밖으로 나섰다.

텐진 쪽으로 가다가 마주친 영화관, 건물 둥근 모서리에 입구가 펼쳐져서는 이런저런 일본영화들을 상영하고 있다.

왠지 간판도 그렇고, 외관도 그렇고 중후하달까, 고풍스러운 느낌이 짙었다. 사실 우리나라도 한 십년전만 해도

종로나 명동즈음의 영화관은 다 저런 느낌 아니었던가 싶은데, 급속히 멀티플렉스관들이 생겨나면서 볼 수 없게

된 게 아닌가 생각했다. 가끔 일제강점기나 6,70년대를 배경으로 한 뮤직비디오나 영화에서나 볼 수 있게 된 정도.

텐진으로 가는 길, 어느새 어둠이 짙게 드리웠고, 야트막한 하천에는 커다란 네온사인 불빛들이 늘어지게 비쳤다.

살짝 비가 내리더니 땅바닥이 금세 촉촉해졌고, 텐진 한 가운데쯤 보도에 박힌 방향 표시판은 공항, 역사 등등의

방면을 안내하며 밟히고, 비에 씻기고 있었다.

안 되겠다 싶어 버스를 타고 다시 하카다역 근처로 돌아나오는 길. 빗방울이 묻어 울룩불룩해진 차창 너머로

어릿하게 굴절되어 들어오는 불빛들. 왠지 모르게 사람을 애잔하게 만들었던 외국의 낯선 밤거리.

하카다역 근처에서 술을 한잔 마시고 들어가려 했다. 일본에 온 김에 제대로 된 이자카야에서 오꼬노미야끼 같은,

일본식 안주들과 따뜻한 사케를 마시고 싶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서울에선 열걸음마다 채이는 이자카야 술집이

역 근처에선 좀체 찾을 수가 없던 거다. 어찌어찌해서 들어간 술집에선 오꼬노미야끼 같은 것 대신 꼬치류를

주로 팔고 있었다.


게다가 메뉴판은 온통 일본어뿐, 영어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곳이어서 옆사람들 먹는 것을 보며 손가락으로 가리켜

음식을 주문해야 했다. 다행히도, 옆자리에 앉았던 분이 후쿠오카에 와서 사신 지 오래되셨다는 한국분이셔서,

그분의 도움을 받아 몇가지 안주류를 무난히 주문하는데 성공. 팽이버섯베이컨말이꼬치, 닭고기꼬치, 관자꼬치,

게다가 실패였다고 후회하고 만 고래고기까지. 울산 사는 군대 선임이 늘 고래고기를 한번 맛보여주겠노라고

약속만 하고 여지껏 못 지켰던 터여서, 늘 고래고기에 대한 선망과 호기심이 넘실대던 터였다. 그렇게 과거의 오랜

욕구를 따라 질러버린 고래고기는, 시커먼 색의 고기가 가지런히 잘려서 한 열 점 나왔던가. 어찌나 짜던지, 또

어찌나 고기가 퍽퍽하던지 한입 살짝 베어물 때마다 사케 한모금을 머금어야 했다.

정말 맛있던 건 이 가리비 구이..랄까. 속이 옹골찬 가리비 하나를 큼직하게 몇조각으로 썰어서는 버터를 조금

넣고 조개구이집에서 굽듯 철판 위에서 굽는 거다. 고소하면서도 짭조름한, 게다가 탱탱거리면서 쫀득거리는

가리비의 식감이란. 손님들이 들고나고 주문하고 호출할 때마다 큰소리로 이럇사이마세~ 아리가또고자이마스~

어쩌구~ 라고 경쾌하게 떼지어 외치는 종업원들의 외침 속에서도 홀연히 그 존재감을 과시하는 가리비.

한참 먹고 마시다가 문득 바라본 자리 앞 철판에선 김을 걷어낸 삼각김밥 모양의 주먹밥이 노릇노릇 구워지고

있었다. 저건 또 뭘까..이미 어느 정도 배도 찼고 술도 오른 상태였지만 한국 돌아가서 저런 걸 또 언제 맛볼 수

있겠어, 라고 생각하고는 싸가기로 했다.

찰지게 모양잡힌 하얀 삼각밥이 철판 위에서 몇번씩 뒤집어지는 동안 꺼뭇꺼뭇하게, 또 누릇누릇하게 익혀졌다.

그리고 얼추 지금쯤 꺼내지 않으면 타지 않을까 싶은 타이밍에 맞춰, 주방장 아저씨가 앞뒤로 간장을 발라주고는

철판에서 건져냈다.

숙소에 돌아가 포장된 삼각주먹밥을 풀고는, 가져갔던 위스키 미니어처병을 홀짝대며 안주삼아 맛을 봤는데 역시

조금 과하게 먹는게 아닌가 싶긴 해도 먹을 땐 먹어주는 게 남는 거란 확신이 들었더랬다. 겉은 누룽지처럼 살짝

딱딱하면서도 간장 때문에 달콤짭조름하고, 속은 밥알들이 쫀득하게 찰싹 엉겨있고. 꽤나 맛있었다.


그치만 주점을 나서면서 살짝 기분이 찜찜했던 건, 왠지 바가지를 썼다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4000엔이 약간 넘을

정도로 나왔는데, 물론 다른 단품 안주들에 비해 월등히 비쌌던 고래고기나 가리비구이를 시켰고 잔술도 꽤 많이

시켰다고는 해도..은근히 머릿를 굴려 예상했던 금액과 적잖은 차이가 있었던 것 같았다. 어쨌든, 맛있게 마시고

먹었으니 됐다고 치고 금세 머릿속에서 휘발시켜 버렸다.

그보다 조금 전 술에 기분좋게 취해서 숙소로 돌아가는 길, 하카다역 옆 굴다리를 지나는데 별 생각없이 한장

찍어본 사진, 카메라도 같이 술을 마셨었던 겐지 사진 속 불빛들이 온통 일렁인다.

 




 

다자이후역으로 가는 길, 양옆에 늘어선 상점들이 성업중이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던 건 이 뽑기기계.

마치 수백마리 종이학들이 푸드덕대며 날아오르는 것처럼, 주홍빛 종이가 투명한 원통 안에서 서로 부딪쳐가며

나부끼고 있었던 거다. 저 꼬맹이는 첨엔 다소 움찔거리며 겁내하는 것 같았는데, 아마 저 종이새들이 그악스럽게

휘몰아치는 기세에 겁먹었겠지만, 이내 손을 조심조심 내뻗었다.그 모습을 옆에서 의젓하게 지켜봐주는 오빠.

잠시 지켜보고 있는 사이에도 꼬마손님들이 쉼없이 다녀간다. 닌텐도DS니 WII니 그런 경품이 걸려 있다는 것도

꼬마손님들을 이끈 동기겠지만, 저렇게 원통안에 갇힌 채 맹렬한 기세로 날아다니는 종이를 한번쯤 손뻗어

잡아 보고 싶다는 순수한 호기심이 더욱 크지 않았을까.

사람 참 많다. 다자이후 역에서 다자이후텐만구, 혹은 고묘젠지까지 이르는 그 짧은 구간에 빼곡하게 늘어선 작은

상점들도 꽤 볼만한 게 많아서인지 사람들의 발길이 좀체 서두르는 기색이 없다.

전통의상을 차려입은 꼬맹이가 두손으로 캔을 그러쥐고 마시는데, 어찌나 귀엽던지, 저 말똥말똥한 눈망울하며.

'소녀떼'들도 주말을 맞아 놀러온건가. 아님 하교길에 잠시 들른 건가. 군것질거리를 파는 몇몇 가게에는 여지없이

그네들이 길게 줄을 늘어서있다. 일본 교복이 이뿌단 말은 많이 들었는데, 역시 예외는 있는 법이다.

고명에서 매실향이 조금 나는 찹쌀떡이랄까. 얘들을 머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는데, 소녀떼 팬들을 모아들이고

있던 것의 정체는 바로 이것. 한 개에 105엔, 다섯 개에 525엔, 열 개에 1050엔, 열다섯 개에 1575엔, 스무 개에

2100엔. 많이 산다고 전혀 가격할인이나 덤도 없는 시크한 가격체계.

이곳에서 유명한 건가 보다. 똑같은 걸 파는 가게가 몇개나 늘어서 있었는데, 손님이 많은 집은 줄이 엄청 길게

늘어서 있고 없는 집은 썰렁했다. 만드는 방법은 약간씩 달라서, 어떤 집은 이렇게 손으로 반죽을 떼어 틀에 넣고

만드는가 하면, 또 다른 집은 마치 호두과자 기계처럼 자동으로 움직이는 과정을 통해 만들고 있었다.

이런 식이었는데, 역시 기계로 만드는 곳에는 별로 사람이 모여있지 않았다. 가격이 다르지도 않았는데, 그렇다면

더더욱 손맛이 들어간 (것처럼 보이는) 곳에서 사고 싶은 게 인지상정일 테다. 달다 싶으면서도 쫀득하고 부드러워

금방 먹게 된다. 그렇다고 찰떡처럼 찰지지는 않고 살짝 흐물흐물한 편이라, 많이 사갖고 들고 다니기는 무리였다.


덧붙이자면, 이건 '우메가에모치'라는 떡이라고 한다. 이하는 '후쿠오카 관광가이드북'의 관련 자료 내용.

"스가와라노 미치자네 공이 에노키샤에서 불우한 생활을 보내고 있을 때, '조묘니'라고 하는 노파가 공을 동정하여

가끔 이 떡을 가지고 와서 공의 무료함을 달래주었다고 한다. 공이 서거했을 때 이 떡에 매화나무 가지를 덧붙여

보냈다는 고사에서 기원되어 우메가에모치라고 불리우게 되었다.

이 떡에 공의 영혼이 깃들어 있기 때문인지 우메가에모치를 먹으면 병마를 막을 수 있다는 특효가 있다고 하여

널리 유명해지게 되었다."

좀..앞뒤가 맞지 않고 매화와 떡을 잇는 이야기가 워낙 빈약하다 싶긴 하지만, 어쨌든 병마를 막을 수 있댄다.

근데 왜 스가와라노 미치자네 공은 죽어버린 거지?ㅡㅡ;

한국 관광객이 역시 많은지, 종종 한국어 설명이 병기되어 있는 곳도 눈에 띄었다. 근데 이게 뭥미.."감자기 경단"??

감자 경단이면 감자 경단이지 감자기는 뭐람. 난 첨에 얼핏 '갑자기 경단'이라고 읽었었다. 갑자기 경단이 먹고

싶어지면 와서 먹으란 겐가 했다.

한국인이 이 관광객 틈에 어딘가 스며들어 있겠지만, 일본/중국/한국인의 구분을 잘 해내는 편인 나로서도 찾아

내기가 쉽지 않았다. 11월 중순께 급격한 엔고 추세로 인해 뜸해졌을 수도 있고, 한국관광객들의 여행 비수기라

그럴 수도 있겠고. 서양 관광객도 거의 눈에 안 띄었는데 찍고 보니 용케 비 아시아권으로 보이는 관광객 한명이

사진에 잡혔다.

꼬치는 300엔~ 무지하게 비싼 거 아닌가. 한국이던 일본이던 관광지 주변 물가란 건 참..그렇다.

그렇게 다자이후 역까지 돌아나왔다. 바로 다시 돌아갈까 하다가, 조금 반대편길을 돌아보기로 했다. 그리 넓은

번화가가 펼쳐져 있지도 않고 시골 읍내처럼 한두 블럭에 걸친 상점가가 보여서, 금세 돌아볼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건물들이 폭이 좁다. 대부분 슬림하게 빠진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건물들의 색감도 대체로

차분하고 담백한 느낌이다. 간판도 한국처럼 서로 튀려고 그악스럽게 다툼하는 자극적이고 천박한 색과 모양이

아니라는 게 또 하나의 발견.

"티셔츠가 아주 싸지고 있습니타?" 티셔츠가 싸면 싼 건지 대체 싸지고 있는 건 뭘가. 아주 싸지고 있으니 조금더

기다렸다가 사라는 건가. 이걸 발견하고 재밌어서 한참 실실거렸다.

같은 가게, 티셔츠에 씌여진 일어 단어들을 삼개국어로 설명해 놓았다. "무책임", "우리 길을 간다!", "파란만장",

뭔가 그럴듯한 의미가 있어보이고 적당히 반항기 어려보이는, 딱 내가 좋아할만한 문구들이 적혀있었는데, 마지막

하나 설명을 보고 대체 뭘까 한참 고민해야했다. "깨지만 나무"???? "Bad boys or Bad girls"가 대체 왜 그렇게

번역이 되는 걸까. 게다가 깨지만 나무..란 말은 대체 무슨 뜻이란 말이냐. 근데 정말 "Bad boys or Bad girls"을

한국어로 어떻게 바꿔야 할까 생각해 보았다. 좀 격하게 나가자면 "씨X놈X들", 좀 부드럽게는 "나쁜 녀석들"정도?

하카다 큐슈난지. 대학 다닐 때 동경대에서 교환학생을 왔던 친구가 큐슈 출신 남자였다. 교환학생을 와서 머리로

공부하러 온 게 아니라 '간'을 사용해 공부하러 왔다던 그와 숱한 술자리를 가지면서 배운 몇 안되는 일본어 중

하나. 큐슈난지. 한국에 경상도싸나이가 있듯 일본엔 큐슈난지가 있다고 했다.

우유부단 티셔츠. 아...이 가게 정말 재미있는 티셔츠나 소품들이 많아서 한참동안 구경했다. 저 티셔츠를 입고

있으면 왠지 우유부단해지는 건가.

금세 끝나버린 번화한 골목 뒤에는 또 무슨 신사인지 절인지. 예전 철없을 적 좋아라, 하면서 보았던 일본 만화

"오 나의 여신님"의 주인공들이 사는 절이 이런 곳 아니었을까.


지독히도 남성중심적인 판타지로 가득한 그 만화에서. 찌질한 주인공을 둘러싼 세명의 여신이 가진 이름들은,

알고 보니 게르만 전설에 나오는 세 운명의 여신 노르네스의 이름을 차용한 것이었다. 과거를 아는 우르트르

(울드), 현재를 담당하는 베르트란디(베르단디), 그리고 미래의 여신인 스퀼트(스쿨드). 그치만 개인적으로 이

세명은, 메이드/선생/아줌마(엄마) 취향을 위한 베르단디, 군복녀/SM/누나/직장녀 취향을 위한 울드, 그리고

롤리타(소녀)/안경녀/여동생/교복녀 취향을 위한 스쿨드로 짜여진, 이후 일본의 연애시뮬레이션게임의 섬세하게

분류된 캐릭터 구축을 위한 선행적 작업이 아니었을까 싶다..고 말한다면 너무 과한 걸까.

조금 더 걸어가다가 보게 된 다자이후의 주택가. 다닥다닥.

푸른 대나무밭에 기대선 집들 역시, 다닥다닥.

계속 걸어나가다 보면 어디가 나올까 궁금했는데, 조금씩 풍경이 시골스러워지기 시작했고,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산까지 보이는 걸로 보아 더 가봐야 돌아올 때 힘이 들테니 돌어가자는 판단을 내렸다. 발의 피로도가 누적되는

것을 감수하고 미지의 뭔가 재미있는 것들을 탐사하기엔 이득보다 비용이 커질 뻔한 지점에서 돌아서다.

돌아오는 길에 발견한 고등학교. 학교이름을 저렇게 크게 써두는 것도 한국에서는 못 본 거 같다. 보통 교문에

자그마한 문패를 걸거나 표지석을 세운 게 전부아니었나. 적어도 내가 봐왔던 한국의 학교들은 그랬던 듯.

문득 앞에서부터 오는 버스를 보고 놀랐다. 운전수가 서서 운전하고 있네, 하면서. 잊고 있었는데, 일본은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다. 그리고 다자이후에 온 관광버스들은 모두 저런 분홍색 옷의 안내원이랄까, 조수랄까 앞좌석에

타고 계셨던 거 같다.

돌아가는 길. 개찰구는 뭐, 한국이랑 별반 차이는 없다.

티켓을 사서 처음 들어가면서 넣으면 저렇게 구멍이 뚫려서 나오고, 나오면서 넣으면 그냥 먹어버린다.

텐진행 급행열차. 밝은 하늘색 차체가 둥글둥글한 모양새가 귀엽다.

굳이 일본어를 몰라도 영어 한글이 병기되어 있어 누구한테 물어볼 필요도 없다. 편하면서도 살짝 섭섭한 게,

여행을 가서 모르는 사람 붙잡고 말걸고 길묻고 친해지고, 그런 것들도 재미가 쏠쏠한데 자꾸 표지판에 의존하게

된단 말이다.

다자이후에서 텐진까지. 여긴 거의 일본어밖에 안 쓰였다. 이래서야 까막눈.




고묘젠지를 둘러싼 야트막한 담장길을 따라 나오는데, 단풍나무가 빼꼼히 배웅을 한다. 들어설 때 보이지 않던

풍경, 나무 밑둥으로 하얀 자갈이 고랑을 그리며 깔려 있는 모습이라거나, 저 건물 너머 그림같이 이쁜 정원이

펼쳐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고묘젠지에서 다자이후 역으로 돌아나가는 길, 길 양옆에 이런 울타리를 쳐 놓았다. 푸른 대나무를 다듬어 긴

장대로 만들고는, 목책에 구멍을 뚫어 걸어두거나 저렇게 대나무를 가뿐히 접어 고정시켜 놓은 모습이 특이하다.

커다란 규모의 관광포스트들, 예컨대 다자이후텐만구, 큐슈국립박물관, 혹은 고묘젠지 이외에도 자잘한 사원이나

사당같은 것들이 곳곳에 즐비하다. (아마도 관광객) 출입금지인 걸로 보아 신사 본연의 목적에 충실한 곳인 걸까.

오후가 되면서 사람들은 더욱 많아졌다. 753명절을 지내러 부모님 손잡고 텐만구에 가는 듯한 가족들하며, 점점이

보이는 소풍나온 듯한 학생들까지.

그런 와중에도 비둘기 한마리에 완전 몰입해 있는 귀여운 딸내미. 주위의 공기가 들썩들썩, 사람 버글대는 휴일

분위기로 꽉 차 있지만 그런 따위에 연연치 않는 듯, 꼬맹이와 비둘기 주위엔 왠지 다른 질감의 공기가 느껴진다.

석탑 위에 버티고 선 저 동물형상이 우스워서 사진을 찍었는데, 글쎄 잘 안 나온 거 같다. 물고기나 해마 비슷하게

생긴게 꼬린지 발을 힘껏 차올리고서는 마치 물구나무서다가 고개만 꺽인 자세로, 정면을 보고 있다.

고묘젠지의 담장길이 끝나는 곳에 이르면 바로 이렇게 민가들이 버티고 서있다. 커다랗게 적힌 한자들 때문일까,

뭔가 한국같지만은 않은 분위기가 풍기는데, 그게 어디서 비롯하는지 모르겠다.

국화 화분을 앞에 내놓은 채 장사 중인 가게도 있고. 근데 이사진은 내가 뭘 찍고 싶었던 걸까.ㅡㅡ;

이렇게 이쁘게 잘 관리받고 있는 집도 있고. 일본의 집은 작기로 유명하다는데 그렇게 봐서 그런지 정말 다 작아

보인다.

이건 뭘까. 뭔가 넓은 부지를 차지한 채, 사당을 둘러싼 녹지에 원형 산책로까지.

그렇게 다시 다자이후 역근방까지 도로 나왔다. 살짝 꾸물꾸물한 하늘, 꾸물꾸물 모여들어 이젠 장사진을 이룬

관광객들 혹은 참배객들.

화장실을 잠시 가려는데 여기도 남/녀 표시가 특이하다. 여기저기서 이렇게 화장실 남녀표시를 그간 찍어온 것만

따로 모아보는 것도 재밌겠다 싶다. 선남, 선녀.

다자이후 근방에는 다자이후텐만구, 큐슈국립박물관, 그리고 고묘젠지가 일단 역 근처에 옹기종기 모여 있어서

금방금방 돌아볼 수 있고, 약간 떨어져서 절이라거나 유적지, 혹은 과거 토성의 흔적같은 게 산재해 있다고 한다.

다자이후 역에 가면 자전거 대여소가 있다고, 거기서 빌려서 돌아보는 것도 괜찮을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갔는데

별로 의지가 없어서였는지 찾지 못했다. 후쿠오카(텐진)역에서 다자이후까지 가는 법은 위와 같음.ㅋ


다자이후 역에 내리면, 다자이후덴만구 이외에도 고묘젠지, 그리고 교토박물관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고묘젠지는

'고케데라-이끼사원'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곳으로, 이끼로 육지를, 흰모래로 바다를 표현한 정원과 돌로 '빛 광'

(光)자를 써놓은 정원, 그리고 아름다운 단풍과 진달래로 유명한 사원이라고 한다.
고묘젠지 입구 모퉁이길에 세워져있는 볼록거울에 꽉 채워진 이웃집 풍경.

고묘젠지는 다자이후텐만구를 돌아보고 나오다 보면 빠지는 조그마한 샛길따라 나타난다.

고묘젠지, 대체 이게 무슨 뜻일까 했었는데 한자를 보니까 좀 풀린다. 광명선사..구나. 안내판의 한자들을 띄엄띄엄

읽어보니 임제종 계열에 속하는 철우원심스님이 약 700년전 창건한 절로서 다자이후텐만구의 결연사라는 거 같다.
절 앞측 정원은 열다섯개의 돌이 빛광자를 나타내고 있다는 큐슈 지방의 유일한 석재정원이라는 듯 하고, 절

내부의 정원은 육지나 섬을 이끼로 표현했고, 하얀모래로 바다를 표현했다는 것 같다. 음...어디까지나 내 맘대로의
해석.ㅋ

들어서려는데 현판의 초록빛이 이목을 끈다. 아마 이끼사원으로도 불리는 이곳의 특징을 감안해서겠지만, 녹색을

사용해 저런 편액 글씨를 써놓은 것은 처음 봤다. 대문 너머 붉은 단풍과 어울려 산뜻한 느낌을 준다.

대문을 지나면 바로 나타나는 하얀 돌 가득 깔린 앞마당 정원. 여기가 아마도 빛 광자 모양으로 돌들이 늘어서

있다는 곳일 텐데, 전혀 알아볼 수가 없었다. 대체 어떻게 그 글자, 光자가 나타난다는 걸까. 외려 눈에 띄는 건

저토록 완벽하게 고랑이 파인 바닥. 긁개 같은 것으로 잘 가다듬어 놓은 거같은데, 그 이랑 틈새에 단풍잎들이

내려앉아 더욱 선명히 굴곡을 드러냈다.

고묘젠지 안으로 들어가면 보이는 큰 방, 방 앞쪽에 마치 무대처럼 꾸며져 있는 이 조그마한 단상과 좌우에 도열한

그림 그려진 문짝은...뭘까. 뭔가 이 신사의 중심부가 여긴가 보다 싶다. 누군가의 죽음을 기억하러 왔는지 검은

옷의 사람들이 이 곳에 무리져 있기도 했고.

이제 절 내부의 정원으로 들어갔다. 사실 들어갈 수는 없는 것 같았고, 모두들 목조건물 대청마루랄까, 내부를

향해 펼쳐진 대청마루, 혹은 열린 복도에 서서 정원을 감상했다. 하얀 모래로 바다를, 초록색 이끼로 땅을 표현했단

설명이 그럴듯 하다. 그렇담 저 튀어나온 괴석들은 바다에 불쑥대며 솟은 섬들이겠고, 저 나무들은...땅덩이의

사이즈와 비례해 생각하건대 거의 하늘을 꿰뚫만큼 높이 솟은 신목이겠군.

이런 정원을 밟게 해놨다면 얼마나 쉬 망가지겠냐만서도, 한번 저렇게 그림같이 잘 꾸며진 정원을 거니는 것도

정말 운치있고 행복할 거 같다. 저 하얀 자갈들의 바다는, 밟을 때 자갈자갈 소리를 내지 않을까.

고묘젠지 본건물과 옆의 건물을 잇는 구름다리. 이 다리를 건너면 뭐가 나올까 해서 살짝 들여다봤더니, 경읊는

소리와 함께 꽤 많은 사람들, 아마도 가족들이 제를 지내고 있었다. 여긴 단순히 관광지가 아니라 실제로 그런

종교의식을 거행하는 곳이었던 게다. 자연 발걸음소리도 더욱 죽이고 걷게 되었다.

이런 식의 대청마루, 혹은 열린 복도. 건물과 바깥 마당을 막고선 저 울타리가 있으니 마루라기에는 좀 그런가.

11월 중순의 일본 후쿠오카, 처마지붕 아래 단풍이 연하게 든 나무들을 담고 싶었는데..지붕 아랫도리가 너무

어둡게 나왔다.

건물 벽면을 따라 쭈욱 돌면서 정원을 완상하다가 한 컷. 정원과 건물 사이를 가르고 있는 저 경계가 선명한 걸

보면, 정말 이 정원은 두고 보기 위해 만들어진 정원같긴 하다. 흔히 일본과 한국, 중국의 문화적 차이를 담벼락

높이가 거의 낮고, 조금 높고, 매우 높다면서 그 의미를 이렇게저렇게 부여하곤 하는데, 정원만 두고 보면 중국과

일본의 정원은 보통 도매금에 묶이곤 하는 것 같다. 한국의 '자연미'에 비해 중국과 일본은 너무 인위적이라거나

특히 일본은 인간과 유리된, 감상용으로서의 정원을 꾸민다거나. 모종의 가치평가가 내재된 그런 지적을 꼭

따르고 싶지는 않지만, 여긴 확실히 그런 감상용 정원이긴 하다.


다만 그런 '감상용'이라는 단어가 갖는 모호성을 생각해 보자면, 저런 풍경을 배경으로 한 채 차를 한 잔 한다거나

사람들과 담소를 나눈다면..굳이 유리되어 있다고 말할 필요는 없지 않나. 당장 유센테이코헨같은 정원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다니면서 풍경에 녹아들었으니, 꼭 "일본의 정원은 이래"라고 말할 것도 아닌거 같기도 하고.

옆건물로 건너가는 길, 조그마한 다다미방안에 무릎을 단정히 꿇고 앉아 격자무늬 창을 통해 정원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

조그마한 물받이 돌그릇...이거 대체 이름을 뭐라고 해야할지 원...에 뭐가 있다고 저렇게 불편한 자세로 몇분씩

카메라를 들이대고 계시던 할아버지 한 분. 그 열의가 좋았다. 그리고 대체 무엇을 찍으시는 건지 무지하게

궁금해져서, 옆에서 여기저기 얼쩡거리며 구경하다가 드디어 빈 자리를 꿰어차고 들어앉았다.

아..!! 작게 탄성이 터졌다. 그 안에 단풍나무가 담겨 있었다. 물에 비친 선연한 붉은 빛의 단풍나무.

옆에는 정말 제대로 된 마루에서 사람들이 단정하게 무릎을 꿇고 앉아서 정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원을 보기도

하고, 옆사람과 이야기도 하고, 아이들이 노는 것에 때론 눈길을 빼앗기기도 하면서, 그렇게 유유자적하는

분위기. 뭔가 이 곳은 다른 질감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저 사람들이 앉아서 보고 있던 풍경. 11월인데, 아직 대세는 청량한 초록빛이다.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서려는데, 가지런히 정리된 게다와 담백한 나무질감의 서랍장이 차분하다.

고묘젠지의 가을 풍경.

그래도 제법 울긋불긋한 느낌인데다가, 하얗게 내려앉은 가을 햇살이 지붕에 서렸다.

2층으로 올라가 난간을 잡고 내려본 고묘젠지의 앞면 정원. 완벽하게 빗살무늬가 새겨진 하얀 자갈정원바닥에

빨간 단풍잎이 고랑마다 내려앉아 더욱 선명하다.

고묘젠지를 들고나는 입구. 엉성하게 연두빛 잎사귀를 틔운 나무가 시야를 가렸다.

뭔가 그럴듯한 포스를 풍기며 가지를 사방에 뻗어나간 붉은 단풍.

2층 지붕에 살짝 가려진 단풍나무. 얼핏 보면 지붕에 불이 붙은 것 같지 않냐...는 강변이었는데, 어떤지 모르겠다.

한바퀴 돌고 잠시 정말 대청마루에 앉아서 좀 쉬었다. 나무의 원색을 최대한 끌어낸 채 별다른 채색이 더해지지

않은 담백하고 단정한 건물이, 붉고 푸른 주변 풍경에 더해져 제법 화려한 느낌도 풍긴다.


"위험하다!!"라는 표지판이 산책로와 산책로가 아닌 건물옥상 어딘가를 구분해 놓은 이곳은 후쿠오카 한 복판의

계단정원을 품은 건물, 아크로스 후쿠오카. 계단식 건물 옥상 가득히 펼쳐진 녹지에 구불구불 나있는 산책로를

빗겨나면 왠지 건물 내부 어딘가로 쿵, 추락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이 엉성한 한국어로 된 경고판때문에 비로소

생겨난 것이었다.


후쿠오카 한복판에 나무가 무성한, 비탈진 야산같은 건물이 있다고 들었다. 여행을 다니며 건축물 순례를 하는 건

좀 내키지 않았던 터라 그냥 모르쇠 스킵할까 하다가, 텐진 중심부 근처길래 설렁설렁 산책 겸 걸어가 보기로 했다.
후쿠오카를 몇 개의 구역으로 나누는 개천, 물이 마르는 겨울철 11월이라 그런지, 아니면 수량 자체가 원래 풍부치

못했던 건지 물이 잘박잘박하다. 유속도 그렇게 빠르지 않아 수면 바닥에 이끼가 잔뜩 끼어있었고 냄새도 조금

풍겼다. 이걸 또 '신화적인 돌파력'을 가졌다는 어떤 사람이 본다면 싹 갈아엎고 수돗물을 흘려보내자고 할지 모를

일이지만..그래도 여긴 선진국 일본이다.

지나가며 잠시 들러본 섹스샵. 일본이라 좀더 특이한 게 많지 않을까 했는데, 올 여름 파리 몽마르뜨언덕 아래의

섹스샵거리에서 봤던 것들과 별반 다를 게 없어서 조금 실망했다. ([파리여행] 물랑루즈 거리의 홍등가.)

단물이라곤 한방울도 남지 않은 '지구촌시대'라는 단어를 빌어 생각하자면, 사람들 혹은 남자들의 성적 취향과

자극원까지도 지구적 차원에서 보편화해 버리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일본AV와 정체불명의 옷가지들,

중국제 성인용품의 세례를 받고. 성의 영역에서도 개별성과 고유성은 지켜져야 할 가치가 아닐까 싶다. 한국

고유의 섹스샵, 고유의 성인 문화..머, 이미 뭔가 차고 넘치도록 있긴 한 거 같긴 하다만 그런 유흥문화말구.

지도에 따르면 대충 요  신호등을 건너 작은 다리만 건너면 바로 계단식 숲처럼 꾸며진 건물,

아크로스 후쿠오카가 보여야 하는데 잘 모르겠다. 그냥 머...여느 거리와 비슷한 고만고만한 높이의 반듯한

건물들 밖에는, 딱히 시야를 잡아끄는 것이 없어서 갸우뚱대며 파란 불 횡단보도를 건너다.

아..가까이 가니 네모반듯한 한 켠이 점차 무너져 내리며 땅바닥까지 끌리는 게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더구나 반짝이는 건물 외관에 동강동강 비쳐지는 맞은 편 건물의 적나라한 토막 마술쑈까지.

건물을 따라 쭈욱 걸었다. 무슨 야구장 스타디움같은, 계단식 관중석이 있는 원형돔을 종으로 절단한 내부를 보는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맨들맨들하게 절단면이 빛나는 걸로 보아 상당한 고수의 실력이다.

아크로스 후쿠오카에서 잠시 내 시선을 돌리게 했던 건 이 폭주족틱한 복장의 자전거 아저씨. 그렇다, 아저씨.

뒷모습만 보면 젊은 애가 뭔가 주렁주렁 매달고 자전거를 타고 있구나 싶지만, 사실 앞을 보면 살짝 주름이 얹히기

시작한 연세의 아저씨라는.

아크로스 후쿠오카, 이 건물은 애초 국제회의, 문화, 정보 시설을 위한 공간이라고 하는데 실제 내부는 그다지
 
색다르진 않았던 것 같고, 건물 한쪽 사면을 층층이 타고 올라가는 저 녹색의 물결이 정말 신기했다. 좀 만화같기도

하고, 왠지 열대우림지대의 오랜 옛 유적을 타고 올라가는 짙푸른 녹색 덩굴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하여튼간에

저 계단식 정원은 건물 꼭대기까지 연결되어 산책할 수도 있다고 했다.

아크로스 후쿠오카의 녹색 계단과 맞닿아 있는 자그마한 녹지는 바로 텐진 중앙공원.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꽤

많이 나와서 옹기종기 둘러앉아 있기도 하고, 강아지와 산책도 하고, 한쪽에서는 젊은애들이 빈 플라스틱 술병을

들고 묘기를 연습중이다. 뭔가 했더니 아마 칵테일 바에서 바텐더로 일하는 가보다. 다양한 모양의 병을 가져와선

저글링도 하고, 둘이 주고 받기도 하면서 병이 깨질 염려가 없는 잔디밭 위에서 오래오래 연습을 했다.

저렇게 배경으로 초록빛, 드문드문 붉은 단풍빛이 가득 얹힌 건물의 완만한 경사면을 두고 있으니 풍경이 무지

나른하기도 하고 평화로워 보이기도 하고, 그렇다.

텐진 중앙공원의 놓인 벤치, 적당하게 뒤로 누운 벤치에 반질거리는 짙은 나무색이 사람을 부른다. 

시루떡처럼 층층이 얹힌 그 녹색 계단식 정원에 오르는 첫 관문. 이 곳에 대한 정보를 얻으면서도, 다들 올라갈

수는 있는데 올라가보지는 않았다, 는 식의 말만 있어서 난 끝까지 올라가야겠다고 다짐했었다. 뭐, 좀 꼬불대며

올라가야 하는 거 같긴 했지만 우거진 수풀 때매 제대로 길은 안 보였고, 까짓 길어봐야 건물도 그렇게 높지도

않은데 얼마나 걸리겠냐 싶어, 출발.

조금 올랐다 싶어 길을 되짚어 돌아보니 '풀떼기'들이 금세 시야를 막아섰다. 좀 가다 좌회전 한번, 또 좀 가다가

우회전 한번, 얼마후 다시 좌회전, 이런 식으로 우르르~ 좌르르~ 스텝정원을 올라섰다.

거의 다 올라왔다 싶을 즈음, 유난히 붉은 잎사귀를 소담히 얹은 여윈 나뭇가지가 후쿠오카 시내를 덮었다.

꼭대기에 올라와서 내려다본 아랫마을 풍경. 건물만 빼곡한 공간과, 이 곳 아크로스 후쿠오카가 품고 있는 작지만

짙은 가을숲, 그리고 텐진 중앙공원의 느낌이 영 다르다.

사실 전망대는 1미터 정도 위에 따로 설치된 공간이 있지만, 문이 닫혀있다. 아마 목욕탕 휴일 표시하듯 빨간 색

글자로 토,일,휴일을 적어놓은 걸로 보아 '정기휴일'이겠거니 하고 별 미련을 남기지 않았다. 머 사실 조금 위에

더 올라서서 보나 지금 여기 높이에서 보나 비슷한 거다. 게다가 후쿠오카시의 마천루라는 게 상당히 나지막해서,
 
그러고보니 여기보다 높은 건물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한참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보니 여기 앉아 혼자 빵과 우유를 먹던 아가씨도 내려가고, 이어폰으로 귀를 막고는

멍하니 아랫쪽 어딘가를 바라보던 양복쟁이 아저씨도 내려갔다. 슬 그림자도 길어지고, 문득 바람이 차다고 느껴

서둘러 내려오기 시작했다. 마침 등장한 경찰관 아저씨, 내가 한국인임을 한눈에 알아보곤 말보다 행동으로,

내려가라고 연신 손사래를 친 덕분에...마치 쫓겨내려오듯 후다닥.

내려오는 길은 반대방향으로. 그니까 오른 길을 되밟아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길로 아크로스 후쿠오카를

좌우로 헤집으며 내려가는 길. 아까 오르면서 만났던 빨갱이 단풍보다 더욱 선명하고 짙은, 그래서 더욱 이뿐

단풍을 만났지만 살짝 사진 한장 찍고 말았다. 사실은 단풍잎을 챙겨오고 싶었는데..경찰관이 계속 따라내려오며

지켜보는 바람에 엄두도 못냈다는.

내려오고 나니, 경찰관이 왜 그렇게 몰듯이 따라내려왔는지 알 거 같다. 애초 정원에 올랐던 정원 입구에는 오늘

더이상 입장이 불가능함을 알리는 표지가 있었고 문도 굳게 닫혀있었던 것. 아마 경찰은 마지막으로 남은 사람들은

혹시 없는지 살피면서 한번 코스를 순회했던 것 같고, 그러다 보니 나랑 계속 겹쳐서 내려왔던 게다. 내 뒷통수가

솔찮이 따갑다고 느꼈던 건...아마도 과민반응이었던 듯. 하기야 이렇게 철저히 관리하지 않으면, 워낙 군데군데

으슥한 곳이 많아서 자칫 범죄의 온상으로 전락하기 십상이겠다.

텐진 시내로 가서 저녁을 챙기기 전 마지막으로 한번 둘러보았다. 어느덧 해도 많이 기울었고, 건물빛은 다소

둔탁해진 느낌이다. 파리 루브르 박물관이 고풍스런 옛 대리석 궁전과 철재와 유리 재질의 유리 피라밋을 하나의

풍경안으로 잘 엮어낸 느낌이라면, 여기는 건물 하나에 자연의 영역, 그리고 인간의 영역을 오밀조밀하게 중첩해

놓았다는 느낌이랄까. 한번쯤 들러볼만한 곳이지 싶고, 또 한번 들렀다면 꼭 올라가볼 만한 계단식 정원이었던

것 같다. 그다지 높지도 않고 길지도 않고, 경사도 완만해서 슬슬 오르기 딱 좋은 동네 뒤 야산같은.



어제 뉴스를 보니까 이명박대통령이 한-중-일 삼국 정상회담을 하러 간 곳이 후쿠오카랜다. 귀를 쫑긋 세우고,

찍찍대는 소리는 적당히 걸러가며 듣다보니 어라, 후쿠오카 큐슈국립박물관에서 원자바오 중국총리랑 아소 다로

일본총리를 만났대는 거다. 불과 몇주전 내가 갔던 그곳을 뒤따라와서 정상회담을 했구나, 하는 맘에 반가워서

여행다녀온 내 이야기를 부랴부랴 포스팅.


그나저나, 이명박대통령을 줄여서 쓰려다보니 이명박통이 된 건데...왠지 이거 의도치않게 와닿는다. 이명朴統.

우선 기차를 탄다. 다자이후텐만구와 인접해 있어서 아예 날잡고 다자이후텐만구, 고묘젠지, 그리고 규슈박물관을

돌아보면 반나절 내지 하루코스가 될 거 같다. 나 역시 아침 일찍 다자이후로 가는 기차를 타고, 소풍가듯 그곳을

향하는 일본인들 사이에서 함께 설레하며 출발.

니시테쓰(西鐵) 다자이후역에서 내리면 이렇게 영어, 일본어, 그리고 한국어로 병기되어 있는 표지판들이 가고자

하는 곳까지 안전하게 모셔다 준다. 일본과 한국, 참 가까운 나라이긴 한 거 같다. 서로 왕래가 이만큼 잦으니만치

관계도 그만큼 좀 친근해졌으면 좋겠는데, 참 간단한 일일 수도 있을 텐데 좀체 어렵다. 예컨대 서울, 부산, 도쿄,

후쿠오카의 사이즈를 비교하는 거나 마찬가지의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서울과 도쿄에서 지방의 영양분을 모두

취하면서 각자의 존재감을 경쟁하고, 자신들이 마치 한국과 일본, 그 자체인양 비대한 몸집을 흔들며 상대보다

앞서기 위해 부산의, 후쿠오카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강준만교수가 쓴 지방은 식민지다, 라는 책을 요새 읽고 있는

탓일까. 모든 걸 중앙 지역, 일부 계층으로 집중시키는 블랙홀 혹은 기생충같은 몇몇 것들이 참 마뜩찮다.

다자이후 역 앞의 골목을 따라 쭈욱 걷다보면 깔끔하게 정리된 일본의 전통 가옥들이 늘어서있다. 전통가옥이라

할 수 있을지, 살짝 자신감이 없어지는데 뭐..일본에 대해 무지한 탓이려니 한다. 얼마전 월미도에 놀러갔을 때

차이나타운 귀퉁이에 옛날 일본조계였던 지역을 조그맣게 복원해두었던데 그때 봤던 단정하고 왠지 수줍은 집들과

비슷하게 생겼다.
음...막상 긁어오니까 별로 비슷하단 느낌은 없지만, 그래도 그 깔끔하고 단정한 외관에서 느껴지는 '왜색'이란 게

공통적이라고 우선 우겨두기로 하자.

이 길을 따라 쭉 가면 다자이후텐만구에 와 닿고, 조금 가다가 오른쪽으로 틀면 큐슈박물관이랜다. 아직 관광객이

많이 들지 않은 거리에는 가게문을 열고 장사를 준비하는 주인아저씨 아주머니들만 분주하다.

마침 국화 품평회랄까, 뭐 그런 누가누가 국화 잘 키웠나 보자는 대회가 있나 보았다. 크고 작은 국화꽃들이 사방에

전시되어 있었고, 그 화분 옆이나 앞에는 아마도 출품자의 신상정보가 적힌 듯한 팻말이 함께 있었다.

주먹만한 꽃들이 눈을 부라리듯 화분 위에 딱 버티고 서있다. 어떻게 저렇게도 탐스럽게 키워냈는지, 꽃잎 한장

한장이 목련잎처럼 두툼하게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다자이후 관광협회장상, 다자이후시상공회상 등등 이아이들은

검증된 애들인 거다. 음...자세히 보면 저 무거운 꽃때문에 대궁이 처지지 않도록 빳빳한 마분지로 된 턱받침들을

하나씩 괴고 있다. 그렇지 않음 아마 몸을 못 가눴을 테니, 얘들 쫌 많이 심각한 대두다.

다자이후 큐슈박물관 가는 길에 마주치게 되는 조그마한 사원 미니어쳐 같은 구조물들. 한옥의 날아오를 듯 유려한

처마지붕도 멋지지만, 이런 처마 모양도 멋지다. 말아올리다 만듯 단정한 끝마무리로부터 급격히 배불러오른 처마

중앙께까지. 돌아봤던 신사들이나 다자이후텐만구나, 대충 지붕은 모두 이런 모양에서 딱히 벗어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다자이후텐만구를 향할지, 큐슈박물관을 향할지 그 분기점쯤에서 재롱을 피우려는 듯 준비된 원숭이. 대체 무슨

재롱을 피우려나 보고 가려고 잠시 미적거리며 어슬렁댔는데, 이넘의 원숭이는 새초롬하게 빼고만 있고 외려

할아버지만 열심히 드럼(이랄까 북이랄까)을 두드리고 계셨다. 나중에 오는 길에 보니 결국 뭔가 사람들에 둘러

쌓인 채 재롱을 피우는 것 같긴 하던데.

큐슈국립박물관 입구. 다른 입구가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이렇게 다자이후텐만구쪽에서 들어서는 입구를 통하면

상당히 긴 에스컬레이터 구간을 지나야 박물관에 도착하게 된다. 얼핏 보아하니 저 뒷쪽의 산을 넘어야 박물관이

나타나는 것 같다. 이명박통이나 중국, 일본 총리와 수행원들도 이쪽 길로 왔을까? 왠지 분명히 다른 곳에 또다른

입구가 있을 거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이렇게 불편한 곳을 감내할 만한 양반들이 아닐 텐데.

바로 오르막 에스컬레이터. 상당히 가파른 기울기의 에스컬레이터가 상당히 길게 올라간다. 아마 한강 밑에까지

내려가고 혹은 밑에서부터 올라가야 하는 여의도역의 에스컬레이터 정도? 그정도로 길고 가파른 느낌이었다.

그렇게 올라서고 나면 다시 한동안 수평 에스컬레이터를 타야 한다. 이번에는 5호선 김포공항 역쯤에 있는 무쟈게

긴 그 수평에스컬레이터를 타는 느낌이었다. 아..모든 걸 다 자신의 기존 경험과 지각에 어떻게든 맞춰보며

이해하고 소화시키려 애쓰고 있는 거다. 역시 그 양반들은 이쪽길로 안 왔을 거란 확신이 다시금 강해진다.

그렇게 오랫동안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터널을 지나, 불쑥 빠져나온 바깥에는 큐슈국립박물관이 냅다, 라는

느낌으로 덜컥 버티고 섰다. 일본의 국립박물관 중에서 가장 크다던가, '일본문화의 형성을 아시아사적 관점에서

조망하는 박물관'을 기본 이념으로 한다는데, 그게 무슨 말인지는 들어가보고 이해했다. 일본만이 아니라 아시아

각국의 역사도 고루 소개하며 일본과의 비교문화사적 특징들, 그리고 상호 교류한 흔적들을 보여주려는 듯했다.

아이들 놀이방같이 아기자기하게 꾸며져서는, 저 신발장에 신발을 벗어두고 들어가는 곳인거 같아 들어가봤다.

신발을 벗고 바닥에 붙어있는 발바닥 모양을 하나씩 꼭꼭 짚어가며 들어서니, 정말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다.

아시아 각국의 아이들 전통의상을 입어볼 수도 있고, 전통놀이같은 것도 가볍게 체험할 수 있게 해뒀다. 시간대에

맞추면 뭔가 체험학습도 벌어지는 공간인 듯. 속내야 어쨌든 외견상 많이 어른인 만큼, 냉큼 나와버렸다.

박물관 입구에 높이 서있는 이건 뭘까, 구시다신사에서도 비슷한 걸 봤었는데, 뭔지를 모르겠다. 뭔가 축제나

행사 때 쓰이는 조형물인거 같긴 한데, 사람이 딱히 탈만한 자리가 있는 것도 아닌 거 같고, 그리고 저 인형들은

보기에 기분이 좋지는 않다. 음...그나마 여기 출연한 사람들은 뭔가 근대의 복장과 근대의 제스처-한 손을 들어

환호에 답한다던가 하는 등의-를 취하고 있어서 이질감이 덜한 편이다.

뒷면에 있는 이 아저씨들, 누님들은 대체 왜이리 기괴한 느낌을 풍기는 거냐고. 마치 케이블에서 드문드문 봤던

일본 애니 '지옥소녀'를 떠올리게 하는 표정, 그리고 몸짓이다. 대체, 다시한번 대체, 이게 무슨 용도로 쓰이는

걸까 궁금해 죽겠다.

더구나 그 탑이랄까, 인형들이 층층이 버티고 선 조형물이 놓인 곳이 이렇게 양광이 찬란히 스며들어오는 단정한

현대식 건물이란 데서 더 부조화스런 느낌이 커졌던 거 같다. 음...잊고 있었는데, 그래서 여기서 이명박통이 일본,

중국총리와 만나 삼국 정상회담을 했다는 거다. 박물관에서 정상회담을 하는 건 다른 무미하고 삭막한 회의장에서

하는 것보다 인문학적이고 부드러운 느낌을 줄 수도 있을 거 같은데, 왜 좀체 그런 아우라가 안 씌워지는 건지.

안을 둘러보고 다시 돌아나오는 길, 왠지 요 '간판' 앞에서 다녀왔음다~ 하고 사진을 찍어야 할 거 같기도 하고,

유치하게 그런 사진을 찍어야 하냐는 거부감 사이에서 심적 갈등을 일으키던 사이 놀러온 일본 여학생 두명이

헤실대며 바로 여기서 사진을 서로 찍어주고 난리가 났다. 저 동그란 '간판'을 힘주어 미는 척도 해보고, 둘이

셀카를 찍기도 하고, 약간 떨어진 채 지켜보고 있던 나를 살짝 의식한 채 신나라 하길래, 그네들이 떠나고 나도

사진 한장. 저 사진 너머 정자에서 잠시 쉬었다가 그 뒷길을 걸어보고도 싶었지만 마음만 향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쭉 내려오고 나니 아까 미처 못봤던 곳이 눈에 들어왔다. 큐슈국립박물관 입구라고 했던 건물

맞은편쪽에 있는 자그마한 놀이공원. 한눈에 보기에도 월미도 놀이공원 사이즈인데, 그래도 꽤 산뜻하게 꾸며놓은

듯 했다. 입구까지 조금 걸어서 무슨무슨 놀이기구가 있나, 가격은 얼마인가 한번 알아보기나 할까 하다가, 귀찮아

그냥 돌아서버렸다.


일본식 포장마차를 '야타이'라고 한댄다. 후쿠오카엔 나카쓰쪽 야타이가 유명하다고는 하던데, 가기 전 귀동냥한

팁들에 따르면 그쪽은 이미 많이 수많은 관광객들의 발길로 '더럽혀졌다'고 했던가. 바가지도 심하고, 맛도 그냥

그렇고, 친절하지도 않은 것 같다는 중평이었다. 우선 나카쓰쪽 야타이를 구경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텐진쪽

야타이를 가기로 맘먹고 호텔을 나섰다.
자전거가 빼곡히 주차되어 있는 텐진의 거리.

텐진 기차역 부근의 횡단보도, 해가 살짝 뉘엿거리며 넘어가는 시간대, 택시기사 아저씨는 벌써부터 차에 조명을

밝혔다. 퇴근하고 번화가를 활보하는 직장인들이 확실히 늘어나서 거리는 더욱 붐비기 시작했다.

텐진(天神)역의 사통팔달한 지하상가 내 점포들은 10시부터 20시까지 영업을 한댄다. 그리고 통로의 개폐시간은

새벽 5시 반부터 24시 반이라나. 지하상가를 이리저리 배회하다가 아무 구멍으로나 나서서 조금만 걸으면 저녁엔

금방 야타이를 찾을 수 있다.

텐진 지하상가는 11월 중순부터 이런 치장을. 아마 크리스마스를 맞이해 단장한 듯 한데 뭔가 유치하고 엉성해

보인다. 그치만 지하상가 천장을 온통 파란 불빛으로 치장하고 나니 어쨌든 크리스마스 기분은 살짝 동하는 듯.

서울도 명동지하상가나 강남지하상가 천장을 저렇게 꾸며놓으면 조금은 더 연말 분위기가 나지 않을까. 이제

12월도 중순인데 그다지 서울 거리에서 연말 분위기가 느껴지질 않는다.

길가다 마주친 야타이. 윙버스에서 추천하는 야타이 위치들과 가게 이름을 뽑아오긴 했는데, 그걸 보고 어딘가를

찾아가는 것보다 그냥 아무 곳이나 내키는 곳을 들어가는 게 낫겠다 싶었다. 어느 곳에 무엇이 있더라, 하는 후기를

참고해서 굳이 그곳을 찾다보니 빙글빙글 돌기만 하고, 비슷비슷해 보이는 가게들 사이에서 괜히 거길 고집할

필요가 없을 거 같았다.

그렇게 꼬리잡기하듯 뱅글거리며 골목길을 돌던 중 마주친 자판기에서 식권을 뽑아 주문하는 라멘집,

그치만 살짝 촌스런 노랑초록파랑 불빛이 일렬로 늘어선 '누름'버튼에는 메뉴가 지정된 것보다 비어있는

버튼이 더 많아 보인다.

그런 점에서 이 자판기는 정반대, 빈틈없는 진열과 누름버튼으로 전면을 메우고 있다.

일본을 두고 자판기의 왕국이라고도 하던데, 정말 이렇게 빼곡한 담배 자판기는 무시무시한 포스가

느껴진다. 네모난 담배갑의 오와 열을 딱 잡고 늘어세워서는, 왠만한 편의점에서 파는 것보다 더 많은

종류의 담배를 팔고 있는 자판기.

도시의 야경. 후쿠오카시의 중심가, 큐슈지방 최대의 번화가라는 이곳은 그렇지만 서울보다는 조금 덜 복잡하고,

조금 덜 시끄럽고, 그리고 조금 덜 큰 거 같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일본도 도쿄 중심의 중앙집중식 개발이 이루어

졌다는 이야기를 대학교 때 무슨 강의에선가 들었었다. 한국 제2의 도시라는 부산과 수도 서울 간의 격차가 너무

현격하게 나는 것처럼, 아마 도쿄와 후쿠오카간에도 그 정도의 차이가 나는 것일까.

문득 그 네 도시간의 부등호 관계가 궁금해졌다. 도쿄>서울, 서울>후쿠오카, 후쿠오카>부산? 부산>후쿠오카?

자리를 잡고 들어간 야타이, 이미 아저씨 세네명이 정면에 앉아 잡고기탕에 아사히 병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리고 오른쪽으로는 한 직장동료인 것처럼 보이는 형님누님들이 즐겁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는. 이번에

후쿠오카를 다녀와서, 일본사람들이 조용하다느니 타인을 배려한다느니, 깨끗하다느니, 그런 식의 '상식'에

반하는 모습을 많이 보고 왔다. 택시 기사들은 보행자 신호임에도 횡단보도를 무시하는가 하면, 전혀 조용하지

않은 사람들이 주위를 아랑곳않고 떠드는 식당, 호텔 로비..

한국인이라고 하니까 무지 반가워하면서 오래전에 누군가 꼽아두고 간 한글 명함을 수고로이 찾아 보여줬다.

후쿠오카에 다녀간 누군가 이곳이 맘에 들었었나보다. 약간의 취기가 묻어나는 글투로, 행복하세요~ 랜다.

오뎅도 맛있고, 뒤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는 건 잡고기들이 잔뜩 들어간 탕이랄까, 그냥 간단히 잡고기탕 정도.

그거랑 따뜻한 사케 한잔을 마시자니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마주앉은 형님누님들과 영어를 빌어 말도 섞고

간단한 생존 일본어를 선보이기도 하고. 대머리 주인아저씨 미소가 푸근했다.

말이 안 통한다네, 바가지를 씌우네, 온갖 조언들을 명심하고 왔었지만 이건 너무 쉬웠다. 짧은 몇마디에 마음이

훈훈해졌었고, 주인 아저씨는 한국에서 왔단 얘기에 어찌나 반가워하며 신나하시던지, 경계심이 녹아내렸다. 

잡고기탕 한 그릇, 오뎅 다섯개, 따뜻한 사케 세 잔 정도시켰던가, 1300엔밖에 안 나와서 내일 또 와야지 했었지만.

짧은 일정으로 다녀올 때 아쉬운 건, 맘에 들었던 곳을 다시 한 번 찍을만큼의 여유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 뭘

먹어도 맛있고 어딜 가도 좋으니..계속 새로운 곳, 새로운 음식, 새로운 사람을 찾는 게 낫다는 판단을 하게 되는

거다. 대체 얼마쯤 되는 일정이어야 긴 거냐고, 얼마쯤 되야 갔던 곳을 다시 찾겠냐고 묻는다면..글쎄, 그러고 보면

짧은 인생, 한끼를 먹어도 맛있는 것, 새로운 것을 먹겠다는 사람을 주위에서 많이 보는 것 같다.


가게 사진을 찍고 돌아섰다. 내일을 기약했지만, 속으로는 당장은 힘들 테고 담에 언젠가 또 후쿠오카에 오게 되면

꼭 찾아보겠다고 다짐.

포장마차 안에 있는 동안 날이 더 쌀쌀해졌다. 따뜻한 사케를 마시고 풀렸던 몸이 다시 옹쳐매여지는 느낌의 추위.

입김을 내뿜으며 찍으려던 풍경에, 입김은 안 찍히고 술기운에 젖은 손가락의 떨림만 담기고 말았다.

텐진(天神)이라고 쓰인 왼쪽 끄트머리에 있는 숫자들은 몇번 버스인지를 나타내는 숫자들. 그리고 각 노선마다

쭉쭉 뻗어나가며 지나치는 정류장들을 그려놓고는 일정 구간을 넘어서는 순간 할증되는 금액들이 빨간 색으로

적혀있다. 예컨대 하카다역(博多驛)즈음까지는 100엔, 그 이후부터는 220엔.

게다가 평일(월-금), 토요일, 일요일 버스시간표가 다 따로 게시되어 있는데, 생각보다 막차 시간이 이르다. 조금만

더 미적거리다 일어났으면 텐진서 하카다역 근처 숙소까지 걸어가야 할 뻔 했다. 택시비는 무지하게 비싸다는 얘길

어디선가 또 들어놨어서.

집에 오는 길, 하카다역 굴다리를 지나면 바로 도요호텔 앞길이 나온다. 호텔로 들어가려는데 앞에서 다코야끼를

팔고 있는 게 보인다. 왠지 일본의 다코야끼는 뭔가 다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차선 방에 가서 술안주 삼아 2차

술판을 벌여야겠다 하고 냉큼 샀더니, 녹차 캔음료 두개에 사탕 두개, 게다가 물티슈까지 두개 바리바리 비닐봉지

안에 챙겨주는 거다. 따로 다코야끼 위에 뿌리는 가쓰오부시도 챙겨주고. 오....이런 친절하고 세심한 서비스라니.


다코야끼 자체는 서울에서 먹어본 것과 별반 다르지는 않았다, 문어냄새가 조금 더 풍기는 거 같다는 호의 섞인

편향된 느낌과 약간 더 쫀득한 거 같다는 역시 호의 섞인 주관적 식감을 제하고 나면, 녹차캔 두 개와 사탕 두 개,

물티슈 두 개만큼, 그리고 그걸 건네주던 아저씨의 살가운 미소만큼 더 맛있었다는 게 정확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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