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물게도, 거미줄이 보일 때가 있다.

의지를 갖고 자유롭게 살고 있단 건 이러저러한 거미줄 틈새에서 몸을 뒤채며 되뇌이는 망상같은 것.


제대하며 두번 다시는 내의지와 무관한, 무기력한 상황에 처하진 않겠다 다짐했지만 사실 그건

애초부터 허세나 뻥카에 가까웠다. 거미줄이 드리워진 천장이 불쑥 도드라진 오후.


어쩐지 오늘 기분이 무지하게 싱숭생숭했다. 그러고 보니 어제는 납량특집인 듯한 '군대 꿈'을 꿨던 것 같다.

잔뜩 얼고 쫄아있던 이등병 시절, 밤에 코 곤다며 두루마리 휴지를 던지고 쓰레빠를 던지고 하이바를 던지고

급기야 하이바를 뒤집어 씌우고 주먹질에 발길질을 해대다가 새벽까지 내무실 전체를 뒤집어놨던 말년 병장의

패악질이 생생히 되살아났었다. 그치만 어쩌나,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밤에 잘 때 코에다가 휴지를 돌돌 말아

(소음기 삼아) 끼우고 자는 거랑, 그자식 팬티니 반팔티니 널어주고 거둬오고 개켜줄때 한개씩 두개씩 돌에

감아 지뢰밭에 던져버리는 정도. 그조차도 지 팬티 자꾸 사라진다며 또다른 낙수물효과식의 구타를 낳았지만.

아, 휴가 나오던 날 세살인가 어리던 바로 윗고참이 아침에 주임원사실에 가두고 갈구고 주먹질하던 것 역시

잊을 수 없는 기억. 훈련소에서 특식이라며 나눠줬던 '치토스'의 '따조'가 허가받지 않은 놀이기구라며 전부다

수거해가고 다먹은 과자봉지를 네모나게 '파지해서' 버렸던 기억도 있다.


뭐, 재미있던 기억도 있다. 민노당이 최초로 원내진출하던 때 BX를 털어 밤새 복분자주를 부어라 마셔라 했던

기억, 밤에 동기들과 BX 냉장고 불빛을 조명삼아 맥주궤짝에 앉아 한박스씩 마셔대던 기억, 그리고 여전히

남아있는 그 녀석들까지. 그 때나 지금이나, 군대는 인간과 인간성에 백해무익하다고 믿고 있지만.


네이트 대화명을 바꿨다. "장어를 뜯고 삼계탕을 마시니 남는 것은 애정욕."에서, "6년전 오늘, 제대할때만 해도
 
꿈많던 소년."으로. 2004년 8월 5일, 제대를 했었다. 무려 2년 5개월하고도 1주일, 지랄같은 군생활을 마치고

거대한 마침표, 혹은 쉼표를 내려놓는 기분이었던 것 같다.


기념삼아, 바로 그날, 6년전 오늘 올렸던 싸이월드의 끼적거림 하나쯤 스크랩.



궁극의 업. (2004.08.05)

정말이다. 이제서야 비로소 난 몇가지 아직 내가 희미하게밖에 잡아내지 못하던 감정표현들과 상황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거 같다. "감정이 복받치는" "심장이 두근거릴정도로 좋은" "가슴이 벅차오르는" "가슴이 부풀어오르는"

"죽도록 좋은""뱃속이 요동치도록 좋은"..게다가 몇몇 가슴시리도록 절박해보이는 갈구의 표정들, 자유의 몸짓들...

그런 놓여남의 순간들...그런 것들이 나름대로 단단하고도 생생한 느낌으로 내 안에 이제야 각인된 듯한.


어제 잠시나마 평소 늘 가던 자기계발실의 두번째 자리에서, 아무것도 생각이 안 떠오르고 할말을 집어낼 수 없이
 
멘탈이 아웃된 상황에서 꾸역꾸역 그 공간에서의 마지막 일지를 적었다. 아무 생각도 못할 정도로 그저

좋아서였는지, 혹은 실감이 안 나서였는지, 아님 한번 풀려버린 긴장을 추스리지 못하고 여전히 늘어져

버려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말년휴가 복귀때 꼭 챙겨간 일기는 막판까지 아무런 기억도 남기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마무리를 할 생각이었을 뿐인데, 감정이 토해지더군.


울컥울컥, 제대다 제대. 이제 여길 뜬다. 약간 늦었다. 아님 약간 이른지도 모르겠다. 아무생각없이, 제대다 제대.


넘 경계심없이 올라갈 때까지 올라와버린 걸까. 살짝 돌아갈 길이 걱정된다. 이 '궁극의 업'된 경지에서...어떻게
 
해야 상처받지않고 연착륙할 수 있을지. 그야, 제대하고 나서 세상이 뒤집히길 바라거나 갑자기 모든 일이 날

중심으로 훌훌 풀리길 바라는 것도 아니고, 그럴 거라 여길만큼 내가 '불손'하진 않은 거 같다. 다만, 아무리

'겸손한' 해방감일지라도...지금과 같은 거의 완벽하리만큼 충만한 행복감은, 금세 스러져버릴거란 게 뻔한 걸.


마치 무진장 좋은 영화를 봤을 때 당분간 입을 딱 다물고 그 황홀함을 두고두고 되새기려 애쓰듯이..그렇게

당분간은 혼자 있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어느 순간엔가 입을 떼게 될 거란 걸 알고 있는 데다가,

더이상 '군바리'라는 핑계로 주위에 투정부릴 수 있는 조건이 아니기에 조금쯤은 입다물고 지금의 감정을 아껴서

맛봐야겠다. 살아간다는 게 어찌할 수 없는 늙어감의 동의어라면 어찌할 수 없는 상처입음 또한 같은 거 같다.

감정이 움직움직하며 긁히고 까이고 패이고 혹은 흉터가 이지러지거나 조금씩 상실해 가기도 하고, 그렇게

조금쯤 '신품 인간'의 기준에서 빗겨나가는게 피할 수 없는 과정인 거 같아서..흔치 않은 이런 업에 올랐을 때

내 의지와 상관없이 외부로부터의 충격으로 경착륙 내지 추락해 버리고 싶진 않거든. 최대한 이뿌게, 고아한

곡선을 그리며 일상적인 평정심으로 돌아갈 생각이다. 우왁스런 진폭으로 리듬을 헝클어뜨리는 일은 사절.


몸값 어쩌구 하며 만남을 '종용'하거나 '선택'하려 하던 군바리의 투정은 이제 접어야 할 때, 인간들과 같은

생활을 살며 비슷하게 바빠지겠지. 제대했고, 세상이 경천동지는 커녕 어줍잖은 기상 이변조차 없이 멀쩡했고,

여전히 아무일 없이 조용했거나 여전히 어제처럼 시끄러웠고, 사람들은 여전히 두다리로 걸어다녔고,

전화통에 불이 나는 일도 없었고, 행인들이 화환을 걸어주거나 꽃을 뿌려 주는 일도 없었으며, 여전히 땀은

끈적하고 불쾌했고, 밥을 안먹으면 금세 배가 고파왔고, 이제 슬 피곤을 느끼며 잠도 오기 시작했고, 내가 아는 한
 
오늘을 임시 공휴일로 삼거나 국경일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은 절대로 없었다.


그렇게 어쨌든 난 홀로 궁극의 업된 상태를 체험하며 제대했다. 제대.




* 제대가 오신다. (2004.07.06)

끝나간다. 담주 화욜임 말년휴가 나간다. 부산가서 이틀정도 놀다가, 잘함 알바 거기서 구해서 한 이삼일 더

일하고=놀고 할지 모르는 일이며..2주간의 휴가를 마치고 또다시 드러운 기분으로 복귀하면 8일만 개김 된다.

머 제대선물도 받을 거 같고, 제대회식도 뽀지게 함 할 테고. 부대 함 삥 돌면서 인사해주고, 그러면...

클클클...나도 제대란 걸 하는군.


한달 고참들이 제대하고 나서야 나도 제대하겠구나, 란 느낌이 정말 찐하게 들었다. 제대란 걸 하긴 하는구나.

이제 내 차례구나. 여전히 전역신고하고 부대를 내려올때의 기분이 상상조차 안가긴 하지만, 그래도 일단 부대

정문정도까지는..내 상상력이 뻗어갔다. 제대를 하면, 하면서,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장면이 몇개 더 늘어날 거

같다. 아우슈비츠의 수용소에서 탈옥한다던가, 쇼생크탈출의 포스터와 같은 액션에 담긴 감정, 사형선고받았다가
 
전기의자가 고장나서 무기형으로 감형되는 죄수, 그 정도까지는 감정을 얼추 이입할 수 있지 싶다.


외박 나갈 때마다 집에서 그런다. 너처럼 유난하게 군대 싫어하는 넘 첨 본다고. 머, 어느 집의 경우를 보셨는지

몰겠지만, 제대회식할 때쯤 보면 그래도 내 '유난스러움'이 외롭지 않단 걸 느낀다. 다들 감춰놓고 있었거나,

잠시 무뎌져 있었거나, 혹은 제대하기 위해 걍 외면하고 있었거나...그게 폭죽처럼 펑펑 터지는 때가 제대회식이란
 
자린 거 같다. 남은 자들에 대한 위로, 좆같음의 새삼스런 일깨움(얄밉다..), 바깥에 대한 동경...근데 알아버린

거 같다. 군생활 끝, 이란 말로 어떤 일상을 매듭짓는 일이라거나 새로운 시작 등의 말로 심기일전해보려

해보아도, 내가 분기탱천하는 그 순간에 세상 전체가 깨어 새로운 의욕으로 쇄신되는 것도 아닐 뿐더러 이미

'못 가볼 길'이란 건 하루하루 내 전망을 좀먹고 있는 셈인 탓이다. 아니, 그다지 부정적으로 말하거나 보고

있는 건 아니다. 존재가 귀속되는 공간과 시간, 그 밖의 제반조건들-객관적이던 주관적이던-자체가 존재를

구성한다니까. 그냥 내가 바라볼 수 있는 지평이나, 내가 발딛을 수 있는 지형이나..내가 코드와 모드가 통해서

소통할 수 있는 인간群이나..그런 것들은 새까만 어둠 한가운데서 작은 꼬마전구 주위의 세상을 구성하는 셈이다.

그림자를 가진 것들.


해서, 제대라는 이벤트를 수행한다고 미션 클리어, 넥스트 스테이지, 이딴 문구가 뜰 리도 없고, 아마 2002년

1월 쯔음의 세상이 나름대로 나이먹은 채 '연속'되어 성큼 다가올 거 같다. 비슷하게 돌아가는 세상에, 비슷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 비슷한 단검과 방패를 가지고, 비슷한 능력치에 약간의 경험치를 더한채 복귀한다. 환류.


제대가 오신다. 아무런 환상이나 근거없는 기대 따위 버리고 replay다. 결국 같은 곳에서, 약간의 문스텝으로

시동을 걸어줄지언정, 2년 6개월은 나나 너나 훌륭하게 해치웠다. 글치 세상아?ㅋ

전역..이란 단어의 의미를 새겨 본 적이 없었다. 역종을 바꾼다는 의미. 마침표의 뉘앙스는 담겨 있지 않았었다.


이중국적 문제부터 김일병의 '사고'까지. 병역 기피자들에 대한, '문제사병'에 대한 들끓는 분노가 돌아간 곳은,

군대를 다녀와야 사람이 된다거나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해야 대/한/민/국/에 살아남을 자격이 있다는 식의

이야기뿐이었다. '우리는 하나였다' 란 반쪽짜리 진실의 울먹임처럼, 이아이들 모두 다 내자식같다는 말이 담은

교묘한 울타리처럼. 군대 안 가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가 그만큼의 농밀한 부러움임을, 숱한 '문제사병'을

죽여왔던 총구가 이제 밖으로 돌려졌을 뿐임을 솔직히 말하지 못하고, 그저 감정의 극단과 극단에 선채 배설을

위한 쉬운 해답과 쉬워보이는 상대만 밟아대는 걸까.


근 1년만에 전투복을 입어봤다. 월욜, 화욜 훈련했던 석박사들보다 약간은 말을 안 듣는다는 교관들의 얘기에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너무 순순하게 충성~이라고 경례를 올려붙여주고, 툴툴대면서도 열을 맞춰

'이동'하는 나 자신과 개구리얼룩 속에 묻혀버린 사람들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어쩔수 없이 착해빠진

먹물들이라고, 풍선처럼 부푼 머리에 감정이 눌려버린 공허하고 얕은 인간이라는 게 훤히 드러나는 거 같았다.

강렬하게 뭔가가 가슴에서 치받아 오는 걸 느끼면서, 정말 자연스럽게 티비에 나올법한 예비군 아저씨의 모습..

웃도리 풀어제치고 주머니에 손찌르고 모자삐뚜름히 돌려쓴..을 연출할 수 있었지만, 교관 아저씨가 옆으로
 
지나갈 때마다 슬그머니 손을 빼내고 단추를 채우는 척했다. 배터지기 직전의 개구리같이 바람만 잔뜩 들어갔다.


총을 쏘기가 싫었다. 훈련소 때 탄알이 총안에서 뭉그러졌던 사건 이후 삼사십살은 훌쩍 넘은 총을 믿을 수도

없었지만, 총을 다룰 때 나는 신경질적인 금속성과 호흡을 깨뜨리는 파열음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냥

'못쏘겠습니다'하고 열에서 빠져나왔으면 좀더 맘이 편했을라나. 굳이 말앞에 '머리가 아파서'란 말을 붙이고

말았다. 어찌 생각하면 솔직하지 못했고, 돌이켜 생각하면 그게 이런 '연극'에서 내가 맡은 역할에 합당한

대사라고 생각했다.


주어진 역할이다. 어찌됐건 저들은 교육을 시켜야 하는 입장이고, 약장수처럼 떠들어대며 말안듣고 통제안되는

예비군들에게 군인 정신을 불어넣어야 한다. 그리고 나는, 내가 맡은 역할은 정말 쓰잘데기없고 짜증만 나는

훈련을 최대한 개기고 민간인임을 잊지 않으며 군복이 주는 마력과도 같은 압박감과 대치하는 것. 말로 자신의

사정..개인적인 의사를 이해시킬 여지도, 필요도 없다. 원하는 게 각기 달라, 결국 그 누구도 만족스럽지 못하고

양쪽 다 신경만 곤두선채 스스로 회의가 들고 만다. 대체 이 나라는 어찌 되어가는 것이냐, 그리고 대체 이

같잖은 병정놀이를 왜 해야하냐.


그런데 교관들의 홈경기였고, 내겐 일종의 어웨이경기였다. 더구나 복장과 말투와 스케줄..같은 것들을

장악당한 채, 스멀대며 돋아나는 이전의 원치않던 습관들과 기억들을 쓰게 바라봐야했다. 여전히 북괴란

단어를 쓰고 정신나간 김일병을 저주하며, 그리고 갈수록 전우애가 상실된 채 '빠져가는' 군대를 한탄하는

교관들이. 전쟁놀이, 병정놀이에 몰입한채 진지하게 계급과 조직을 신봉하는 그들은 너무 많은 고지를

선점하고 있었다. 


'이왕 온거 열심히 하다 나가자'라는 맹목적인 성실함의 호명, '누구 한명이 방만하면 나머지 동료들이

힘들어진다'라는 식의 연좌제적인 책임감 부여. 그러한 식의 꼬임은 언제나 말문을 막고 만다. 내 맘대로 하면

되는 건줄 알았는데, 막상 표정과 이야기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눈앞까지 바싹 끌어당겨졌었다. 참 다양하게

응용될 수 있는 이야기다. 내 의지, 내 각오를 믿고 뛰어들고 나니 주위에서 옷소매를 잡아당기는, 눈길을

잡아당기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거다. 바꾸어 보려다가 바뀌고 만다는, 진부한 얘기.


그리고 호루라기. 규칙적인 파공성으로 신경을 긁어놓는 그 소음을 무시하기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딘가에서 어딘가로 이동을 '강제'하면서, 발은 안맞춰도 좋으니 열만 맞춰라..고 했던 교관들. 발을 질질

끌면서도 양순하게 끌려가는 머리만 굵은 얼룩무늬들. 1번부터 99번. 제각기였던 스텝이, 호루라기가 울리기

시작한지 얼마안돼 대략 일정한 발소리를 만들고 있었다. 호루라기 소리와 재우치는 교관들에 짜증을 내면서도,
 
발이 한덩이로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억지로 엇박을 내딛으려 해봐도, 아님 그 거슬리는 소리를 쌩까보려 해도 내 몸은 헐떡이며 호루라기 소리하고

붙어먹고 있었다. 짜증나 죽을듯이 머리에서 거부감을 울컥 퍼올리는 것 만큼, 내게 삽입되었던 행동 패턴들과

양식들이 어느새 내 몸을 통제하고 있었다. 문득 깨달아버린 왼손의 담배처럼. 항시 경례를 준비해 비워놓아야

했던 오른손을 피해 왼손에 걸려진 담배는, 일이병때 그곳에서 내 낙하지점을 대략 상상해보기 위한 낙하물의

역할도 맡았더랬다.


빠져나왔다고 생각한지 일년여만에, 다시 그 말도 안되게 어이없고 쓰레기같은 곳에 처했더니 온몸의 구정물이

들고 일어나 화답하는 꼴이다. 그치만 어째야 했는지. 어떻게 했으면 만족했을지도 사실 모르겠다. 경례구호에

맞춰 어영부영 모자끝쯤 갖다붙였던 손가락 두개쯤..을 아예 쉬게 냅뒀어야 했을까. 총 들고 다니며 전쟁얘기,

핵폭탄 얘기만 해대는 동선을 못견디겠다고 주저앉았어야 했을까. 누군가는 당연한듯 명령하고 누군가는

깍듯이 각진 자세로 부름을 받잡는 조직을 인정치 못하겠다고 뻗대봤어야 했나. '다'나 '까'의 말투 따위 엿이나

먹으라고 귀를 틀어막아버릴껄 그랬나..


대체 왜 하는지도 모르겠는 예비군훈련따위, 두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은 일은 안 한다고, 원치 않는 공간에

처하진 않겠다고 결심했었는데. 애초에 가지 말았어야 했는지도. 굳이 꾸역꾸역 찾아가서 조국을 위해 총을 쥘

몸뚱이만을 요구하는 곳에서 짐승처럼 '부려질' 필요는 없었던 거다. 근데...애초 군바리로 이름불리기 전부터,

그리고 지금도, 한꺼풀만 들추면 인간이 사육되는 곳에서 살고 있는 거다. 남자나 여자나. 티비를 보면 진행자의
 
말끝마다 미친듯이 감탄하는 방청객들이 넘쳐나고, 인터넷에는 대한민국과 독도와 축구에 몰입해버린

대한민국 국민들이 있을 뿐이고. 현실적으로는, 앞으로 6번 더 예비군 훈련을 받아야 한다는.


제대..전역. 轉役. 그 공간은 근 반세기동안 그러했듯, 내 몸을 숙주로 삼고 사회를 칭칭 옭아맬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있었다. 이런 제길, 잡탕인 거다. 에이리언을 품은 시고니 위버가 자살을 택하듯, 최초의 보균자가

숨을 끊었어야 했나..?


..대답이 궁해졌다. 어쩔꺼냐면.




(2005. 7. 1)
전역..이란 단어의 의미를 새겨 본 적이 없었다. 역종을 바꾼다..는 의미. 마침표의 뉘앙스는 담겨 있지 않았었다.


...그런데 교관들의 홈경기였고, 내겐 일종의 어웨이경기였다. 더구나 복장과 말투와 스케줄..같은 것들을 장악당한

채, 스멀대며 돋아나는 이전의 원치않던 습관들과 기억들을 쓰게 바라봐야했다. 여전히 북괴란 단어를 쓰고

정신나간 김일병을 저주하며, 그리고 갈수록 전우애가 상실된 채 '빠져가는' 군대를 한탄하는 교관들이.

전쟁놀이, 병정놀이에 몰입한채 진지하게 계급과 조직을 신봉하는 그들은 너무 많은 고지를 선점하고 있었다.

'이왕 온거 열심히 하다 나가자'라는 맹목적인 성실함의 호명, '누구 한명이 방만하면 나머지 동료들이

힘들어진다'라는 식의 연좌제적인 책임감 부여. 그러한 식의 꼬임은 언제나 말문을 막고 만다.


...대체 왜 하는지도 모르겠는 예비군훈련따위, 두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은 일은 안 한다고, 원치 않는 공간에 처하진

않겠다고 결심했었는데. 애초에 가지 말았어야 했는지도. 굳이 꾸역꾸역 찾아가서 조국을 위해 총을 쥘

몸뚱이만을 요구하는 곳에서 짐승처럼 '부려질' 필요는 없었던 거다...
(
전역, 轉役)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둔탁하고도 거친 말들과 그 뒤에 버티고 선 사고방식들, 그 모든 걸 비주얼하게

보여주는 얼룩덜룩한 국방무늬가 가시처럼 날 쿡쿡 찔러댔고, 난 처음 입대할 때처럼, 처음 예비군 훈련 받을

때처럼, 그렇게 하나도 익숙해지지도 타협하지도 못한 채 그저 움찔움찔 경련을 일으켰다.


사람 죽이는 법을 까먹지 않게 하려고 우르르 불러모았댄다. 북괴가 눈앞에 있다고 생각하고 수류탄을 던지랜다.

책임이 있으니 의무도 있는 거랜다.(이게 무슨 말인지..자유가 있으니 책임도 있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자유 운운하기엔 넘 척박하고 열악한 상황이니 병정놀이오타쿠들, 교관들도 차마 그렇게는 못하고 나름 변형한

거겠지. '이게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지..'라는 속편하고 살짝 효험도 있다는 체념 역시 무기력해지는 이상한

공간인 게다, 군대란.) 비상식으로 가득차서, 외려 상식을 들고 말하기엔 유치해 보이고 까칠해 보일 수 밖에

없게 만든다. (
예비군훈련..4년차.)


그리고 5년차 예비군. 여전히 속은 편치 않지만, 조금은 익숙해졌다. 그냥 오늘 밤 늦게까지 딴 짓 좀 하고,

엠피쓰리에 노래 좀 넣고 충전하는 거 잊지 말고, 그럴 생각이다. 어차피 내일 가서 어떤 자세로던 어떤 시간에던

잠드는 건 문제도 아닐 테니..괜히 교관들의 이상한 이야기나 멍청한 짓거리들에 울컥하지 않는 한.


날씨가 다시 좀 추워지긴 했지만 뭐, 어차피 군복을 입으면 마음이 서늘해지고 컨디션도 지랄같아지니 상관없다.

아니다, 이명박이 최근에 예비군 훈련도 내실화하라고 했다던가. 무사히 돌아와야겠다. 작년 예비군 훈련 때에는

땅벌을 건드려서 팔다리가 퉁퉁 부은 예비군들을 한시간넘게 미적대며 잡아두다가 항의 끝에 겨우 엠뷸런스 타고

병원으로 후송되었던 일도 있었다. 물론 예비군 훈련시간으로 인정도 못 받았었고.


대체 뭘 어떻게 내실화하려나, 대체 뭘 어떻게 또 괴롭히려나. 개성공단도 말아먹고 남북관계도 말아먹고 또

무슨 말씀을 내려 반공정신을 고취하시려나. 듣고 싶지도 않은 X소리 안 들으려 귀막을 자유도 없는 곳.



오늘 예약했놨던 항공권을 예매하면서 여행 준비가 끝났다.

국제학생증도 만들었고, 여행자보험도 들었고, 티켓팅도 했고 여비도 내가 할 수 있는데까지는 모아서 환전했구.

짐싸야 할 것들 목록도 챙겨봤고, 여행수첩도 마련했고.


음...이제 떠나기만 함 되는군^^*

그래도 연초에 삘받아서 계획했던 거, 글구 최대한 내힘만으로 가보려 한 거 대략 성공한 거 같아서 뿌듯하네.ㅋ

첨엔 동유럽을 가볼까 했다가 중동쪽으로 선회해서 4개국 정도 욕심부렸지만, 머, 터키 열흘, 이집트 열이레쯤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누군가 유격훈련가냐고 걱정하길래...ㅡ.ㅡㆀ


이제야 살짝 긴장도 되지만 그보다는 역시 흥분흥분.ㅋㅋ

오늘은 홍대입구 쪽서 일을 했는데, 용접봉에서 뿜어나오는 빨간 쇳물방울이 머리위서 폭격하는 와중에 4층높이로

100키로짜리 ㄷ자 프레임을 200개 올리는 졸라리 빡센데다가 사실 '일당잡부'가 해서는 안될 일을 하고 말았다.

어찌나 짱나던지.--++

게다가 인력소 측에선지 아님 그 현장 측에선지 내 일당 5천원이 새고 있었단 말이다. 밥값 만원 포함해서 칠만원,

소개료 오천원 빼고 오만오천원을 받아왔다던데, 현장서 하는 말은 총 칠만오천원, 밥값빼고 육만오천원에서

소개료를 10%빼는 게 아니냔 얘기.


거기서 쭈욱 일하던 용역아저씨들 살벌히 욕해가며 열받은 모습도 볼만했지만, 용역업체 소장이랑 현장 책임자를

통화시켜 누가 거짓말하는지 확인해보자는 내 말에 걍 우물우물 넘기려는 모습이 참...할아버지뻘 되는

아저씨들한테까지 농을 건네며 하대하는 소장의 위세란 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또한 '경험'삼은 알바생의 입장과 선택의 여지없이 '밥줄'삼은 직장인의 입장..그런 차이.


이제 며칠만 더함 아마 앞으로 내가 '알바'삼아, '경험'삼아 노가다를 뛸 일은 없지 않을까 싶다. 묘한

자유스러움으로 먼지와 흙이 범벅된 차림으로 돌아다니거나(용산역 만남의광장), 묘한 기분으로

근처 유흥가를 돌아다니는 커플을 보거나(한양대, 홍대입구), 혹은 체력이 바닥에 떨어진 걸 절감하면서 그저

시간만 기다리며 헐떡이기도 하고, 아저씨나 나같은 알바생들이랑 무지막지한 스킨십을 거쳐 친해지기도 하는

그런 일이었던지라...재미있었다.ㅋ
제대 전날까지도 작업 절라게 시키는 이넘의 부대인지라 나역시도 원래는 오늘부터 쭈욱 작업이 있었던 게다.

콘크리트 비벼서 흡연장 다시 만들고-저번 외박때 경력을 쌓아놔서 다행이다..그땐 칠만원이었는데..ㅠ.ㅠ-

내무실 건물 도색 다시 싹 하고..젠장, 더이상 말하기도 짱나는군. 그나마 직전에 나간 녀석들처럼 위험한

제초작업이 아닌게 다행인가.


어쨌거나, 시간이 해결해 줄테고, 여행 계획 다 짰다.

터키 11일, 그리고 이집트 17일.

애초에 생각했던 터키-시리아-요르단-이집트가 무리였다 싶어서, 일단 글케 경로를 축소하고 깜냥을 줄여낸담

계획을 짜다 보니까 처음 생각했던 것보단 덜 아쉽네. 내 첨 계획을 본 누군가 그랬듯 유격훈련 가냐는 식의

일정이 아니라, 터키-이집트를 좀더 여유롭게 '즐기는' 데 충분할 거 같기도 하고.


뭐랄까, 못가본 길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가게 될 길에 대한 기대나 설렘..이 역시 훨씬 크다. 단순해서 그런건지,

아님 '현실적'인 틀지워짐을 납득한 탓인지 간에, 의외성과 불확정성이 점차 줄어가고 일종의 '정향'이 가다듬어

질수록 일말의 안도감이 드는걸 스스로 느끼고 있다. 흠...글타고...내가 무슨 계획만능주의자라거나

짜여진 대로 안가면 클나는줄 아는 넘일 턱도 없고, 여전히 이집트 쪽의 일정은 닫혀 있지 않으니...


여행 계획 '대략' 다 짰다고 얘기해야 할라나.
티켓을 예약했다.

이스탄불 in, 카이로 out. 일정을 짜다보니 계속 질문이 생긴다.

뭘 보려 하는건지. 무얼 기대하며 가는 건지.


구체적으로는, 섭렵하는 나라수로 치면 자그마치 4개국을 한달만에 주파한다는 걸 내 자신에게 어떻게 해명해야

할지. 국경에 개의치 않고, 걍 북회귀선을 넘어 적도로 달리는 그 코스의 몇개 지점들을 꾹꾹 눌러 밟으며..예컨대

터키의 안탈랴, 시리아의 다마스쿠스, 어디의...이런 게 아니라 걍 사람 사는 곳, 글케 둘러보려한다.


여행, 몇 군데의 꼭 보고 싶은 장면들..터키의 카파도키아라거나, 시리아의 다마스쿠스, 요르단의 와디럼 사막,

아님 이집트의 피라밋과 나일강위를 미끄러지는 펠루카...그런 것들을 꾹꾹 눌러 밟으며 나머지는 최단경로상에서

해결해 봐야겠다. 자꾸 스케줄 잡다보니까 시간이 참...모자르단 생각이 들지만. 어쩌겠어.ㅋ


어느새 이럭저럭 쌓아놓은 자료가 A4 한권(250장)이 넘어버렸다. 그걸...짱날 때 담배를 입에 무는 대신

눈에 물고 있다.
예순이 넘은 아저씨하고 같이 일하면서 참 많이도 이야기했던 날이었다. 울 집이 둔촌동이었던 시절..날 '도시'와

연결시켜줬던 2호선 성내역 옆에 자리잡은 '노동현장(절라 뻘쭘함..이단어는 내 취향이 아냐..ㅋㅋ)'이 그간의

작업공간과는 어찌나 판이한 질적 퀄리티를 갖고 있던지.


일거리를 맡기면 대략 될 만한 시간이 흐를 때까지 알아서 하게 냅두고..괜히 이일저일 못시켜서 안달인 나쁜넘이

없다. 화장실에 똥피라미드 군락이 형성되어 나로 하여금 뚜껑을 덮고 그위로 올라가게 하는 일도 없었으며..

저번 때와는 달리 콧물딱을 일없는 따스한 봄볕에 마음이 쾌청하였던 터에..무엇보다도 일거리자체가 그다지

힘들거나 오염스럽지 않았던 거다. 덕분에 일하다 쉬는 타이밍에 문자도 여기저기 날려보고 했던 거구.ㅋ


그냥, 날 자게 냅두지 않는 모종의 일로 말미암아 3시반에야 잠들고 5시에 인나야 했던 거...그 피로함에 맞물려

내게 다시금 '현실'을 들이대고 만 사건...어쩜, 오늘처럼 이렇게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하고 새롭게 하늘을

바라보는 것 그자체로...내 여행은 이미 애초 생각했던 때부터 시작되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순간, 이미

충분하지 않은가...라며 물러서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오늘처럼, 작업을 위한 먼지구덩이의 남루한 작업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 속에서 내가 뽑아든 나의 작업복, 새로

빨아진 채 작업날을 다시 기다린 째진 청바지, 이번에 부대에서 업어온 얼룩무늬 잠바, 그 색깔이 왜 그리 선명하고

화사하던지 스스로 눈치가 보일 지경이었다. 그 위화감을 의식하고 있다가..몇분 지나지 않은 횟가루 풀풀

날리는 작업에 금세 '낡아버린' 모습에 맘이 편해졌다.


오늘은 같이 일했던 사람들도, 나하고 같이 금방 '낡아버린' 거 같아서...봄볕을 즐기기에 별다른 애로가 없었달까..
엊그제, 둘째날 갔던 현대산업개발 오피스텔 현장 갔다가...잠시 옥상서 시멘트푸대 나르던 중 코엑스에 한눈을

팔았는지 못을 '삽입'해 버리고 말았다. 발바닥에다가. 푸욱.

자재에 박혀있는 못이 각목을 받침삼아 하늘로 솟은 자태가 워낙 공공연하기로 항시 주의깊게 발딛을 곳을

마련하고 있었으나, 벌써 몇번씩 운동화 바닥이 못을 맞이했다가 내 발바닥의 눈부신 반사신경에 기대어

소박놓기를 거듭했던 터였다. 그치만 푸대의 무게가 어깨에 실리고, 고개의 움직임이 180도로 제약되어 버린

상황에서 더구나 뒷걸음까지 쳐버렸으니.


무언가 쑤욱 피부조직을 날카롭게 헤집고 들어오는게 꼭 주사맞는 느낌이 들었다. 절라 큰 콘크리트 못.

10센치는 되려나..쫌 깊게 박혔는지 발을 들고 휘둘러도 각목이 발바닥에 붙어있다, 달랑달랑 딸려서 말이지..쳇.

어느새 땀에 흠뻑 젖은 채 신발과 양말을 벗고 주저앉아 피를 빼내고 있었더니 작업반장님이 '연장'을 들고 쪼그려

앉는다. 망치로 발바닥을 치니까 그 리듬에 맞추어 피가 뽁,뽁,뽁 뿜어나왔다. 제길, 한두대는 아프더니 그담엔

발바닥이 얼얼한게 마비된 느낌이다, 내발같지가 않은..--ㆀ


대충 피가 다 나왔다 싶으니까 반장님 얘기가, 파상풍걸릴 수도 있으니 집에 가서 약 사 먹으란다. 소염제.

그리고는...계속 나르랬다.-.ㅡ^


오후에, 콘크리트국물이 14층부터 비산되어 마침 옆에 있던 주차장 차들에 잔뜩 튀었단다, 튀었다고 닦으랜다.

갑자기 세차요원으로 변신해서, 차를 한 스무대 닦았다. 그러고 나니 또 딴 쪽으로 가자고, 그쪽이 더 급하다고

델꼬 간다. 크라이슬러 한대랑 엑센트가 완전히 점박이가 되어있었다. 자재반장도 나오고 호스까지 동원되서

-걸레질 잘못하면 상처난다고-차를 닦기 시작했다. 크라이슬러만. 비싼 차니까 조심하라고 잔뜩 호령해대며

이것저것 반말로 시키는 게 절라 맘에 안들었는데, 30분동안 그 차 한대에 네명이 달라붙어 완전 새차를 만들어

버렸다.


그리곤 어디서 비니루 갖고 와선 차를 아예 포장을 해버린다. 마른 걸레로 물기까지 싹 제거하고는 비니루로 차를

감싸고 청테이프로 고정시켜 버렸다. 그 사이, 옆에 있는 액센트는 머...가끔 호스의 물길이 엇나가면 잠시

씻겨지고 옆차에 달라붙은 사람들이 몸으로 뭉개면 그때서야 잠시 닦여지고. 

걸레질 함 대충 하고, 대충 비닐로 덮어놓고 치웠다.


처음엔 외제차랍시고 절라 알아서 '기어주는' 분위기에 맘이 안 들었는데, 차닦다가 5시반이 넘어버리니 나중에 걍
 
세차하는 일 자체가 맘에 안 들었던 거 같다. 아님 나흘만에 첨으로 반말지꺼리하는 씹탱을 드뎌 만나서였는지.

결국 왜 기분이 드러워져 버렸는지 확실히 알지 못한채 5시 40분이 되어서야 일을 끝냈지..


물론 공사장측서 차를 닦아줘야 하는 게 맞을 텐데, 그 닦아주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조차 상대와 자신간의 거리..

재정상태..혹은 그 상징에 따라 절라 편파적이라는 게 맘에 걸린다. 그게 실제로 편의적이어선지-돈많음 목소리도

클테니 나중에 골치아플수있겠지-아님 합리적이어선지-비싼 차니까 여차해서 보상들어감 부담되겠지-모르겠지만

액센트 타는 사람이 얼마나 불만 갖겠어, 외제차 타고 다니는 사람이나 권력있다는 사람들, 그리고 그에 따라

이렇게 다른 대접을 받는다는 게..
오늘은 창동, 북한산 인수봉이 희뿌연 스모그 사이로 희끗거리는 아파트 신축공사장에 갔었다. 완죤 전국구로

돌고 있다는 느낌이다. 아침에 5시에 인나서, 창동역 앞서 바리바리 작업복을 가방에 담은 아저씨들 만나 북한산

I'PARK 공사장으로 갔었지...여긴, 얼마전 내무실서 후임들이 서울 여긴 얼마짜리고 저긴 얼마짜리고-마치 서울

사는 사람은 그 모든 집값과 노른자위를 다 꿰차고 있는 양-물어보는 와중에 내게 들이대졌던 신문광고에

나왔었기 땜시 기분이 묘하더군.ㅋ


첫날은 비록 17층짜리였다 하나 지하4층서 일했고, 어젠 15층짜리 건물 15, 14층서 일했고..오늘은 24층짜리 옥상,

그니까 25층서 눈 치웠다, 오전 작업. 눈치우는 거야 워낙 '단련'된 일여서 나름대로 자부심을 갖고 일했으되, 워낙

꽁꽁 얼어붙어서 마치갖다 깨가면서 모닥불에 지져감서 진행해야 했어서 생각보다 오래 지체..


공사장용 엘리베이터-일명 호이스트카-가 강풍에 휘청거리는 게 느껴질 정도로 사방이 뚫린 그곳은 어제보다도

삼엄하던 것. 오늘 간 곳은 특이하게도 아주머니들이 '오야지(작업반장)'로 있어서 아저씨들이 꼼짝못하고

아줌마들의 호령을 따라야 했는데, 머...유독 '어린' 나야 원래 아줌마들이 하도 좋아해줘서 잼나게 일할 수 있었다.

마치 아들내미처럼 잘 챙겨주시고 살갑게 대해 주시더라구.ㅋㅋ 첫날 같이 일했던 아저씨들을 다시 만났더니

무진장 반가워해주시며 마스크도 챙겨주시고, 잘 따라 다니라고 신경도 써주시고. 으레 그렇듯 담배 한까치의

휴식시간엔 군인 '무용담'이 왕래하고.ㅋ


일은 오늘도 별로 어렵지 않았는데, 문제는 추위였다. 어찌나 춥던지..사무실서 줏은 전투복내피(일명 깔깔이..)를
 
외투삼고 옷을 몇개씩 껴입어도 무진장 춥더라. 이넘의 노가다판에는 거개가 군용물품이다. 아예 전투복 일체를

빼입고-줄까지 칼같이 잡힌..-오는가 하면, 귀마개에 깔깔이, 워커까지..-.ㅡ^


삽을 쥐고 굴신운동을 오전 내내 해서인지 배가 무진장 아팠다. 가건물로 지어진 화장실이지만 칸이 여섯개나

있다..왼쪽부터 까면 정상이고 가운데부터 까면 변태, 오른쪽부터 까면 피해의식이 강한 사람이란 이야기가

기억나서 왼쪽부터 까기 시작했다. 무데기무데기무데기...변기가 양변기면 뭐하노...그대로 앉음 찔릴 판이다,

뾰족한 산을 이루고 있더군...절라 충격. 제길.


어쩐지~ 화장실이 이러니 아파트 집집마다 구석탱이엔 그게 얼어있던 거였구나..아까도 정체를 모르고 손으로

집고서야 알아차렸더랬다. 몇번이나 예기치 못한 조우를 했던 것인지. 정말이지 거기 아주머니 말씀대로 아파트

전체가 똥천지다. 어쩔 수 없이...이미 갈데까지 가버린 그 높이를 더욱 융기시킬 수 없어, 걍 뚜껑을 닫고 그 위에

쪼그릴 수 밖에 없더군..쿨럭.


내일은 또다시 삼성역이다. 일단 낼까지 하면 대략 터키서 이집트가는 비행기 값정도 마련하는군.ㅋㅋㅋㅋㅋ
아침 6시에 만난 오늘의 동료는 서른여덟의 아찌 하나, 서른셋의 총각 하나, 그리고 마흔셋의 애아부지 하나.

삼성역이라 해서 설마 코엑스를 드가랴 했는데, 역시 코엑스는 안 드가고 큰길 맞은편의 15층짜리

신축공사현장으로 갔다.


아직 벽도 안 선 채 그저 기둥 몇개로 콘크리트 판때기 몇개 층층 받혀놓은 형상인 그 곳은, 정말 바람이 무진장

씨게 불었다. 14층에서 왼갖 잡일들을 하면서 안전도구 하나 달랑 쓰고..플라스틱하이바..몸의 무게중심이

간당간당하게 건물 내부에 심긴 채 고개와 몸을 빼든 장면이 첨엔 보기만 해도 섬찟거리며 똥꼬..했으나, 대략

점심먹고 참먹을 때 쯤엔 유유히 길 건너 코엑스와 아셈타워를 바라보며 몸을 살짝 뺄 정도로 익숙해졌더랬다.

여전히 근처 든든해 보이는 무언가를 한손에 잔뜩 우겨넣은 상태였지만.ㅋ


사실 '잡부'라는 거, 특별한 기술도 필요없고, 다만 약간의 딴딴한 비위와 약간의 체력만 있음 걍 된다. 군대랑

상당히 비슷한 게 사람들의 스타일, 말투, 일처리하는 방식, 점심 먹고 난 후의 '오침', 적당히 담배 한대 피운다며

10분을 띵기는 식의 '유도리'. 아, 나 짐 한달째 금연 성공 중이다.ㅋㅋㅋ 덕택에 아저씨들 다 담배물 때 난

하이바깔고 앉아 손에 입김불고 있지만.--;


어쨌거나 인건비가 상당히 쎄다는 것에 자체적으로 대략 공감하고 있기도 하다. 물론..하이바에 눌려 잔뜩 떡진

머리와 흙덩이진 옷차림으로 삼성동의 그럴듯한 식당서 쿠폰내고 밥먹긴 좀 글타. 게다가 사람들은 왜 이리

공사장을 종횡하며 다니는지. 그래도 솔찮은 재미가 있는 게, 이럴 때가 아님 공사장의 그 부실한 '엘레베이터'

언제 실컷 타보겠어..중간에 고장나서 결국 점심하고 참은 15층서 걸어내려왔다 올라가야 했다지만.


여튼지간 오늘은 몸이 고된 것보단, 정신적으로 상당히 쫄았단 게다. 친한 선배 말이 예리한게, 내가 의외로 겁이

많단 말야..ㅡ.ㅡㆀ 말만 드럽게 한다지.ㅋ


낼은 창동이다, 아주 걍 서울 투어를 하는구먼. 몸이 살~ 삐그덕거리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워낙 추워서리.
왠만함 이번엔 나와서도 죽은 척 갈라 그랬는데 결국 우려하던대로 세인들의 분노가 폭발해 버렸구나...-.ㅡ^

아무리 휴가가 많다느니 언제 다녀왔다고 또 나오느니 그래도 어쩌겠어, 공군은 휴가(연가)와 외박은 전혀 별개의

문제라니깐. 외박주로는 11월초에 나왔던 거 이후로 두달이 넘었단 말이다.


어쨌거나, 이번 외박부터는 자중하며 '생산적인' 시간을 갖기로 맘먹었다. 제대하고 바로 배낭을 꾸려볼까 하고.

제대할 때까지 여행갈 자금이나 '생산'해서리, 집에 손벌리기도 민망하고 더이상 환대도 못받는 상황도 타개하고자

하는게 내 아이디어.


해서, 현대 해상에 들어갔다.

현대 해상 사옥이 어디 있는지 아나? 광화문의 이순신 동상을 축으로 등거리상에 교보빌딩을 마주 보고 있는 곳의

초현대적인-메탈과 유리가 두드러진-건물이 바로 그곳, 지금 보수 공사중이다.

오늘 4시50분에 인나서 인력회사 나가서는 방금, 집에 들어왔지...지하 4층에 있는 보일러실을 손봐주고 왔다.

일당 55,000원. 사실 60,000원인데 소개비조로 인력회사서 5,000원을 가져가더라구.


그나마 일거리도 거진 없는 겨울에, 경력이라고는 고2때 장난처럼 두 주 했던 거 말고 그저 군바리일 뿐인

(그것도 펜대굴리며 문서나 도장범벅 만들어놓는) 나로서는 굉장히 감지덕지지. 일은 머, 말그대로 인력, 군대의

그것과 별반 다를 게 없을 정도고, 힘든 정도는 글쎄...일병, 이병때보다는 쉽고 상병 떄보다는 어려운 편..

병장으로서는 쫌...측정불능. 요새 작업 나간지 하도 오래 되어서...대조군이 없군.ㅋ


그래도 시설담당 나대리나 같이 용역나간 아저씨들이 다들 군바리라고 일잘한다고 인정해 주는 거 보니 나쁘진

않은 듯하다고 혼자 생각하고 있다. 여태 월급 받은 건 외박 나올때마다 족족 다 뽑아 먹었으니 이제부터

군에서 받는 월급/보너스, 일케 일해서 버는 돈, 그런 것들 열심히 다 합침 대략 여행경비나올꺼같아서, 계속

열심히 살아 볼 생각이다. 일자리가 안정적이면 좋겠다만...어쩔 수 없지. 국가에 매인 이 한 몸, 무엇을 할 수 있다

말이오. 노동일 혹 노가다, 이건 뭐랄까...경험삼아라기보다는 지금 내가 돈을 모을 방법이 이것밖에 없었기

때문에 하는 게지. 싫단 건 아니고, 어쩜 이런 자세가 제대로 된 '현장활동' 아닐까 싶어서. 호호호.


내일은 삼성역, 어디서 일할진 몰겠다만 기대만발이다.


전역..이란 단어의 의미를 새겨 본 적이 없었다. 역종을 바꾼다..는 의미. 마침표의 뉘앙스는 담겨 있지 않았었다.

이중국적 문제부터 김일병의 '사고'까지. 병역 기피자들에 대한, '문제사병'에 대한 들끓는 분노가 돌아간 곳은,

군대를 다녀와야 사람이 된다거나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해야 대/한/민/국/에 살아남을 자격이 있다는 식의

이야기뿐이었다. '우리는 하나였다'란 반쪽짜리 진실의 울먹임처럼, 이아이들 모두 다 내자식같다는 말이 담은

교묘한 울타리처럼.

군대 안 가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가 그만큼의 농밀한 부러움임을, 숱한 '문제사병'을 죽여왔던 총구가 이제

밖으로 돌려졌을 뿐임을 솔직히 말하지 못하고, 그저 감정의 극단과 극단에 선채 배설을 위한 쉬운 해답과

쉬워보이는 상대만 밟아대는 걸까.


근 1년만에 전투복을 입어봤다. 월욜, 화욜 훈련했던 석박사들보다 약간은 말을 안 듣는다는 교관들의 얘기에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너무 순순하게 충성~이라고 경례를 올려붙여주고, 툴툴대면서도 열을 맞춰

'이동'하는 나 자신과 개구리얼룩 속에 묻혀버린 사람들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어쩔수 없이 착해빠진

먹물들이라고, 풍선처럼 부푼 머리에 감정이 눌려버린 공허하고 얕은 인간이라는 게 훤히 드러나는 거 같았다.

강렬하게 뭔가가 가슴에서 치받아 오는 걸 느끼면서, 정말 자연스럽게 티비에 나올법한 예비군 아저씨의 모습..

웃도리 풀어제치고 주머니에 손찌르고 모자삐뚜름히 돌려쓴..을 연출할 수 있었지만, 교관 아저씨가 옆에 지나갈

때마다 슬그머니 손을 빼내고 단추를 채우는 척했다. 배터지기 직전의 개구리같이 바람만 잔뜩 들어갔다.

총을 쏘기가 싫었다. 훈련소 때 탄알이 총안에서 뭉그러졌던 사건 이후 삼사십살은 훌쩍 넘은 총을 믿을 수도

없었지만, 총을 다룰 때 나는 신경질적인 금속성과 호흡을 깨뜨리는 파열음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냥

'못쏘겠습니다'하고 열에서 빠져나왔으면 좀더 맘이 편했을라나. 굳이 말앞에 '머리가 아파서'란 말을 붙이고

말았다. 어찌 생각하면 솔직하지 못했고, 돌이켜 생각하면 그게 이런 '연극'에서 내가 맡은 역할에 합당한

대사라고 생각했다.

주어진 역할이다. 어찌됐건 저들은 교육을 시켜야 하는 입장이고, 약장수처럼 떠들어대며 말안듣고 통제안되는

예비군들에게 군인 정신을 불어넣어야 한다. 그리고 나는, 내가 맡은 역할은 정말 쓰잘데기없고 짜증만 나는

훈련을 최대한 개기고 민간인임을 잊지 않으며 군복이 주는 마력과도 같은 압박감과 대치하는 것.

말로 자신의 사정..개인적인 의사를 이해시킬 여지도, 필요도 없다.

원하는 게 각기 달라, 결국 그 누구도 만족스럽지 못하고 양쪽 다 신경만 곤두선채 스스로 회의가 들고 만다.

대체 이 나라는 어찌 되어가는 것이냐, 그리고 대체 이 같잖은 병정놀이를 왜 해야하냐.

그런데 교관들의 홈경기였고, 내겐 일종의 어웨이경기였다. 더구나 복장과 말투와 스케줄..같은 것들을 장악당한

채, 스멀대며 돋아나는 이전의 원치않던 습관들과 기억들을 쓰게 바라봐야했다. 여전히 북괴란 단어를 쓰고

정신나간 김일병을 저주하며, 그리고 갈수록 전우애가 상실된 채 '빠져가는' 군대를 한탄하는 교관들이.

전쟁놀이, 병정놀이에 몰입한채 진지하게 계급과 조직을 신봉하는 그들은 너무 많은 고지를 선점하고 있었다.

'이왕 온거 열심히 하다 나가자'라는 맹목적인 성실함의 호명, '누구 한명이 방만하면 나머지 동료들이

힘들어진다'라는 식의 연좌제적인 책임감 부여. 그러한 식의 꼬임은 언제나 말문을 막고 만다. 내 맘대로 하면

되는 건줄 알았는데, 막상 표정과 이야기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눈앞까지 바싹 끌어당겨졌었다. 참 다양하게

응용될 수 있는 이야기다. 내 의지, 내 각오를 믿고 뛰어들고 나니 주위에서 옷소매를 잡아당기는, 눈길을

잡아당기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거다. 바꾸어 보려다가 바뀌고 만다는, 진부한 얘기.


그리고 호루라기.

규칙적인 파공성으로 신경을 긁어놓는 그 소음을 무시하기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딘가에서 어딘가로

이동을 '강제'하면서, 발은 안맞춰도 좋으니 열만 맞춰라..고 했던 교관들. 발을 질질 끌면서도 양순하게 끌려가는
 
머리만 굵은 얼룩무늬들. 1번부터 99번. 제각기였던 스텝이, 호루라기가 울리기 시작한지 얼마안돼 대략 일정한

발소리를 만들고 있었다. 호루라기 소리와 재우치는 교관들에 짜증을 내면서도, 발이 한덩이로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억지로 엇박을 내딛으려 해봐도, 아님 그 거슬리는 소리를 쌩까보려 해도 내 몸은 헐떡이며 호루라기

소리하고 붙어먹고 있었다.

짜증나 죽을듯이 머리에서 거부감을 울컥 퍼올리는 것 만큼, 내게 삽입되었던 행동 패턴들과 양식들이 어느새

내 몸을 통제하고 있었다. 문득 깨달아버린 왼손의 담배처럼. 항시 경례를 준비해 비워놓아야 했던 오른손을

피해 왼손에 걸려진 담배는, 일이병때 그곳에서 내 낙하지점을 대략 상상해보기 위한 낙하물의 역할도

맡았더랬다. 빠져나왔다고 생각한지 일년여만에, 다시 그 말도 안되게 어이없고 쓰레기같은 곳에 처했더니

온몸의 구정물이 들고 일어나 화답하는 꼴이다. 그치만 어째야 했는지. 어떻게 했으면 만족했을지도 사실

모르겠다. 경례구호에 맞춰 어영부영 모자끝쯤 갖다붙였던 손가락 두개쯤..을 아예 쉬게 냅뒀어야 했을까. 총

들고 다니며 전쟁얘기, 핵폭탄 얘기만 해대는 동선을 못견디겠다고 주저앉았어야 했을까.

누군가는 당연한듯 명령하고 누군가는 깍듯이 각진 자세로 부름을 받잡는 조직을 인정치 못하겠다고 뻗대봤어야

했나. '다'나 '까'의 말투 따위 엿먹으라고 귀를 틀어막아버릴껄 그랬나..

대체 왜 하는지도 모르겠는 예비군훈련따위, 두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은 일은 안 한다고, 원치 않는 공간에 처하진

않겠다고 결심했었는데. 애초에 가지 말았어야 했는지도. 굳이 꾸역꾸역 찾아가서 조국을 위해 총을 쥘

몸뚱이만을 요구하는 곳에서 짐승처럼 '부려질' 필요는 없었던 거다. 근데...애초 군바리로 이름불리기 전부터,

그리고 지금도, 한꺼풀만 들추면 인간이 사육되는 곳에서 살고 있는 거다. 남자나 여자나.

티비를 보면 진행자의 말끝마다 미친듯이 감탄하는 방청객들이 넘쳐나고, 인터넷에는 대한민국과 독도와 축구에

몰입해버린 대한민국 국민들이 있을 뿐이고. 현실적으로는, 앞으로 6번 더 예비군 훈련을 받아야 한다는.

제대..전역. 轉役. 그 공간은 근 반세기동안 그러했듯, 내 몸을 숙주로 삼고 사회를 칭칭 옭아맬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있었다.

이런 제길, 잡탕인 거다. 에이리언을 품은 시고니 위버가 자살을 택하듯, 최초의 보균자가 숨을 끊었어야 했나..?

..대답이 궁해졌다. 어쩔꺼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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