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내 가슴을 뛰게 하는가? - 2004.10.27(수) 한겨레.

외국출장 가는 비행기 안에서 한국 청년을 만났다.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하기 전 배낭여행을 하고 있다고 했다. 내 세계 여행기를 읽었다는 그 친구가 내게 물었다.
“재미있는 세계 여행이나 계속하지 왜 힘든 긴급구호를 하세요?”

“그 일이 내 가슴을 뛰게 하고 피를 끓게 만들기 때문이죠.”

이렇게 대답하고 나서 속으로 깜짝 놀랐다. 몇 년 전 케냐에서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동아프리카 케냐와 소말리아 국경 근처에 우리 단체의 구호캠프가 있었다. 대규모 가뭄 긴급구호로서 식량 및 물 배분과 동시에 이동 안과병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곳은 한센병(나병) 비슷한 풍토병과 함께 악성 안질이 창궐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곳이었다.

그 이동 병원에 40대 중반의 케냐인 안과의사가 있었다. 알고 보니 대통령도 만나려면 며칠 기다려야 할 정도로 유명한 의사인데 이런 깡촌에 와서 전염성 풍토병 환자들을 아무렇지 않게 만지며 치료하고 있는 거였다. 궁금한 내가 물었다.

“당신은 아주 유명한 의사면서 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이런 험한 곳에서 일하고 있나요?”

이 친구, 어금니가 모두 보일 정도로 활짝 웃으며 말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기술과 재능을 돈 버는 데만 쓰는 건 너무 아깝잖아요? 무엇보다도 이 일이 내 가슴을 몹시 뛰게 하기 때문이죠.”

순간 벼락을 맞은 것처럼 온몸에 전율이 일고 머릿속이 짜릿했다. 서슴없이 가슴 뛰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 그 의사가 몹시 부러웠고, 나도 언젠가 저렇게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었다. 그 제대병도 잠시 생각하더니 약간 흥분된 목소리로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하는 것 아닌가?

“나도 언젠가 그렇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고는 내 가슴을 뛰게 하는 긴급구호를 하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물었다. 나는 이 일을 하는 데는 어떤 교육을 받고 어떤 기술을 습득하느냐보다 어떤 삶을 살기로 결정했느냐가 훨씬 중요하다고 믿는다.

예컨대, 자기가 가진 능력과 가능성을 힘있는 자에 보태며 달콤하게 살다가 자연사할 것인지, 그것을 힘없는 자와 나누며 세상의 불공평과 맞서 싸우다 장렬히 전사할 것인지를 말이다. 나는 두 번째 삶에 온통 마음이 끌리는 사람만이 긴급구호를 제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은 좀처럼 지치지 않는다. ‘누가 시켰어?’ 이 한마디면 일하면서 겪는 괴로움이 곧바로 사그라들곤 한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겉멋에 겨워 흉내만 내고, 남 탓을 하거나 작은 어려움에도 쉽게 포기하기 십상이다.

“나 역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지만 현실은 다르잖아요?” 제대병이 더욱 진지하게 물었다. 물론 다르다. 그러니 선택이랄 수밖에. 평생 새장 속의 새로 살면서 안전과 먹이를 담보로 날 수 있는 능력을 스스로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새장 밖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가지고 있는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며 창공으로 날아오를 것인가.

새장 속의 삶을 택한 사람들의 선택도 존중한다. 나름대로 충분한 장점과 이점이 있으니까. 그러나 세상 많은 사람들이 새장 밖은 불확실하여 위험하고 비현실적이며 백전백패의 무모함뿐이라는 말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새장 밖의 삶을 사는 한 사람으로서, 새장 밖의 충만한 행복에 대해 말해주고 싶다. 새장 안에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이 견딜 수 없는 뜨거움도 고스란히 전해주고 싶다. 그러니 제발 단 한 번만이라도 자신의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며칠 전 비행기 안에서 한 청년에게 던졌던 질문, 내가 나에게도 수없이 하는 질문을 여러분께 드리며 ‘한비야 칼럼’을 마친다.

“무엇이 나를 움직이는가? 가벼운 바람에도 성난 불꽃처럼 타오르는 내 열정의 정체는 무엇인가? 쓰고 또 쓰고 마지막 남은 에너지를 기꺼이 쏟고 싶은 그 일은 무엇인가?”

한비야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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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이야기를 끌어나가려면, 적당하고 보기 좋게 재단된 멘트들로 상대가 드러날 수 밖에 없는 거겠지만,

내 생각엔 저건 별로 와닿지 않는다. 일단...저 말투...군바리틱한 저딴 딱딱한 말투를 내가 썼을 거 같냐..ㅡㅡ;;

또...저리 어눌하거나 쉽게 감동을 먹으며..내가 저자세로 나갔을 거 같냐..--; 마지막으로..내가 청년이냐..ㅡㅡ;;;

사실...'제대병'이라거나 '청년', '친구'란 말보다 걍 모군..정도 불러줬음 좀 좋아..하는 아쉬움으로.ㅋㅋ

머..XXX(23, 서울, 01x-xxx-xxxx) 이런 식으론 아니더라도 말이지. 누군가에게 해석되고, 또 그것이 누군가에게

다시 전달이 된단 건...상당량의 자중손실(dead-weight loss)을 유발하는군. 어긋나게 맞춰진 500개짜리 조각

퍼즐같이 왠지 찜찜한 느낌이다. 딱히 두드러진 차이가 있는 건 아닌데, 우리가 서로 생각했던 이야기의 초점과,

이 글에서 드러내려 했던 초점과, 그런 것들이 살짝살짝 어긋나면서 무언가 그녀가 아는 내게서 휘발되어 버렸단

느낌. 언로를 누가 확보했느냐, 누가 마이크를 쥐었느냐의 문제일까.

내 목소리가 변조됐다. 내목에 변조장치-.ㅡ^ 비야누님, 누나라고 불러달라면서요..ㅜ


조심하라구~ 조만간 마이크쥘 여러 사람들.ㅋㅋ 아니, 어쩜 우리가 가진 이 답답하고 무기력한 언어와 조악한

감정이입의 상상력이란 원죄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참, 한비야 그녀의 이 칼럼은 2005년 12월 발간된 "머뭇거리지 말고 시작해"(공선옥, 샘터사)라는 책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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