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모슬포항, 제주도의 다른 곳과는 다른 식으로 맛볼 수 있는 고등어회를 파는 곳이라 갈 때마다 꼭 고등어회를 벼르곤 한다.

 

조금 숙성된 고등어회에 야채를 조금 얹고 김에 싸먹는 식인데, 고등어가 어찌나 윤기가 자르르하고 맛나던지.

 

...배고프다.

 

그리고 회를 뜬 고등어의 남은 잔해로 거의 끈적해지다시피할 만큼 지리를 끓여내오시는데, 이것도 역시 술 도둑.

 

원래는 '만선'이라는 곳만 맛집인 줄 알았는데, 그 옆에 있는 '돈방석'이란 곳이 더욱 맛난 고등어회를 맛볼 수 있게 해준 거 같다.

 

사진은 돈방석에 다녀갔다는 어느 시인이 주인 아주머니를 두고 읊은 시라고.

 

 

 

독일의 나치는 처음에 공산주의자를 죽이려 했습니다.
나는 공산주의자를 위한 어떤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다음에 나치는 유태인을 죽이려 했습니다.
나는 유태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무말도 안했습니다.

그다음 나치는 노동운동가를 죽이려 했습니다.
나는 노동운동가가 아니었기 때문에 아무 말 안했습니다.

나치가 천주교인을 죽이려 할 때
나는 천주교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무 말 안했습니다.

그 다음엔 나치가 나를 죽이러 왔습니다.
그땐 다른 사람을 위해 말해 줄 사람이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 독일 루터교 목사 Martin Niemoeller



* 최근 특히나 마음에 새겨지는 문구.


늘 궁금했었다. 차디차게 식어버린 연탄, 까만 기운이 모두 쇠잔해버린 연탄은 어디로 갈까.

어렸을 적 동네에서 심심찮게 보였던 연탄재들은 더러는 짖궂은 아이들의 장난질에 깨지고

더러는 아래층 할머니가 가꾸는 텃밭에 가루로 뿌려졌더랬다. 다 타고 남은 연탄에 어떤

영양분이 남았는지, 혹은 어떤 재미난 구석이 남아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기껏해야 신발을

넘어 바지 아랫춤까지 풀풀 날려오는 먼지만 만들어낼 뿐이었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말라, 는 어느 시인의 시구는 외려 연탄재가 얼마나 함부로 대해지는지를

보여주는 역설이다. 처음과 같이 뜨거운 마음이 아니어서, 처음과 같이 초롱초롱하고 씽씽

돌아가는 눈빛과 머리가 아니어서, 또 처음과 같이 뭐든 가능성으로 남아있던 미지의 낯설고

곤혹스런 두려움이 아니어서, 식어지고 둔해지고 익숙해져서 모든 것들은 연탄재가 되고 만다.


때로는 하얗게 재가 되어버린 연탄재를 까만 봉지에 담아놓듯 까만 척, 아직은 이루어진 것보다

이룰 것들이 많은 척을 하기도 한다. 가능성으로 남아있는 빈 공간이 아직은 뭔가에 더럽혀진

공간보다 많은 척 위장을 하기도 한다. 그건, 걷고 있는 길의 끝이 보일 때에도 마찬가지다.

길을 걷고 있으니까, 어쨌든 끝을 알 것 같더라도 그 끝에 이를 때까지는 잘 해내고 싶으니까.


계속해서 덜컥덜컥, 내 주위에서 딱딱하게 굳어오는 '내일'이란 것들이 가끔은 굉장히 거슬릴

때도 있지만, 또 어느 때는 그다지 거슬리지 않아 마치 내 몸에 맞는 옷인 양 느껴질 때도 있는 거다.

생각하기 나름. 내 몸에 얼추 맞아들어가는 단단한 옷 한 벌을 입고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을 간편하게 입력해두는 거일 수도 있고, 혹은 내 몸의 자유를 억압하는 구속구일 수도 있고.


하얗게 태워버린 연탄들이 까망색 비닐봉다리를 옷인 양 걸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순간 온갖

잡생각이 들어버렸었다. 저 연탄이 나인지 아니면 저 봉다리가 나인지 운운.



@ 경주, 분황사와 황룡사지 언저리.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완전히 망가지면서

완전히 망가뜨려놓고 가는 것: 그 징표 없이는

진실로 사랑했다 말할 수 없는 건지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뼈아픈 후회, 황지우 詩)



w/ '프리미엄 막걸리' 우리쌀 청정수 솔바람. 딱히 특별한 맛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냥 탁주.




이 세상 그 어느 나라에도
애국 애족자가 없다면
세상은 평화로울 것이다

젊은이들은 나라를 위해
동족을 위해
총을 메고 전쟁터로 가지 않을 테고
대포도 안 만들 테고
탱크도 안 만들 테고
핵무기도 안 만들 테고

국방의 의무란 것도
군대훈련소 같은 데도 없을 테고
그래서
어머니들은 자식을 전쟁으로
잃지 않아도 될 테고

젊은이들은
꽃을 사랑하고
연인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무지개를 사랑하고

이 세상 모든 젊은이들이
결코 애국자가 안 되면
더 많은 것을 아끼고
사랑하며 살 것이고

세상은 아름답고
따사로워질 것이다.


                                - 애국자가 없는 세상(권정생, 2000)


*                *               *

李대통령 "공무원이 야구 대표팀보다 애국심 부족" 하다는 기사를 보고 그가 진화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드디어 그가 '애국심 이데올로기'를 영리하게 써먹겠다는 '개념을 탑재'했구나 싶기도 하고, 이래서야 그의 정책과

마인드에 반대하기가 더욱 쉽지 않겠다는 위기감도 들고. 


그가 자신의 무대뽀식의 추진력을 정당화하는데 필요한 개념들을 챙기기 시작하고, 그러한 개념들 중 하나가

특히나 취약한 안보라는 핑계로 이 나라 사람들에게 매우 민감한 '애국심'을 동원한 효과적인 국가주의라면...

에효.


간판들이 조금씩 젖는다
나는 어디론가 가기 위해 걷고 있는 것이 아니다
둥글고 넓은 가로수 잎들은 떨었고
이런 날 동네에서는 한 소년이 죽기도 한다.
저 식물들에게 내가 그러나 해줄 수 있는 일은 없다

언젠가 이곳에 인질극이 있었다
범인은 '휴일'이라는 노래를 틀고 큰 소리로 따라부르며
자신의 목을 긴 유리조각으로 그었다
지금은 한 여자가 그 집에 산다
그 여자는 대단히 고집 센 거위를 기른다

가는 비......는 사람들의 바지를 조금 적실 뿐이다
그렇다면 죽은 사람의 음성은 이제 누구의 것일까
이 상점은 어쩌다 간판을 바꾸었을까
도무지 쓸데없는 것들에 관심이 많다고
우산을 쓴 친구들은 나에게 지적한다

이 거리 끝에는 커다란 전당포가 있다, 주인의 얼굴은
아무도 모른다, 사람들은 시간을 빌리러 뒤뚱뒤뚱 그곳에 간다.
이를테면 빗방울과 장난을 치는 저 거위는
식탁에 오를 나날 따위엔 관심이 없다

나는 안다, 가는 비......는 사람을 선택하지 않으며
누구도 죽음에게 쉽사리 자수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쩌랴, 하나뿐인 입들을 막아버리는
가는 비.......오는 날, 사람들은 모두 젖은 길을 걸어야 한다

- 기형도, '가는 비 온다'

 *                                                  *                                                  *

빗방울이 톡......톡...톡, 톡톡, 번지다가 어느 순간 쏴아하고 쏟아지던 태국의 밤거리.

비가 번져나가면서, 번들거리는 불빛이 온통 사방으로 녹아내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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