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궁금했었다. 차디차게 식어버린 연탄, 까만 기운이 모두 쇠잔해버린 연탄은 어디로 갈까.

어렸을 적 동네에서 심심찮게 보였던 연탄재들은 더러는 짖궂은 아이들의 장난질에 깨지고

더러는 아래층 할머니가 가꾸는 텃밭에 가루로 뿌려졌더랬다. 다 타고 남은 연탄에 어떤

영양분이 남았는지, 혹은 어떤 재미난 구석이 남아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기껏해야 신발을

넘어 바지 아랫춤까지 풀풀 날려오는 먼지만 만들어낼 뿐이었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말라, 는 어느 시인의 시구는 외려 연탄재가 얼마나 함부로 대해지는지를

보여주는 역설이다. 처음과 같이 뜨거운 마음이 아니어서, 처음과 같이 초롱초롱하고 씽씽

돌아가는 눈빛과 머리가 아니어서, 또 처음과 같이 뭐든 가능성으로 남아있던 미지의 낯설고

곤혹스런 두려움이 아니어서, 식어지고 둔해지고 익숙해져서 모든 것들은 연탄재가 되고 만다.


때로는 하얗게 재가 되어버린 연탄재를 까만 봉지에 담아놓듯 까만 척, 아직은 이루어진 것보다

이룰 것들이 많은 척을 하기도 한다. 가능성으로 남아있는 빈 공간이 아직은 뭔가에 더럽혀진

공간보다 많은 척 위장을 하기도 한다. 그건, 걷고 있는 길의 끝이 보일 때에도 마찬가지다.

길을 걷고 있으니까, 어쨌든 끝을 알 것 같더라도 그 끝에 이를 때까지는 잘 해내고 싶으니까.


계속해서 덜컥덜컥, 내 주위에서 딱딱하게 굳어오는 '내일'이란 것들이 가끔은 굉장히 거슬릴

때도 있지만, 또 어느 때는 그다지 거슬리지 않아 마치 내 몸에 맞는 옷인 양 느껴질 때도 있는 거다.

생각하기 나름. 내 몸에 얼추 맞아들어가는 단단한 옷 한 벌을 입고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을 간편하게 입력해두는 거일 수도 있고, 혹은 내 몸의 자유를 억압하는 구속구일 수도 있고.


하얗게 태워버린 연탄들이 까망색 비닐봉다리를 옷인 양 걸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순간 온갖

잡생각이 들어버렸었다. 저 연탄이 나인지 아니면 저 봉다리가 나인지 운운.



@ 경주, 분황사와 황룡사지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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