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베니아의 류블랴나, 용이 지키는 도시답게 건물들은 나즈막하면서도 나름의 운치와 위엄을 간직하고 있었다.

 

 

 

류블랴나 성을 향한 오르막길, 사람이 채 오르기도 전에 양옆으로 어깨 부딪기며 열지어선 집들이 먼저 지쳤다.

 

 

 

류블랴나 구시가에 있는 성당, 그 벽면에 기대어선 (아마도) 대주교님과 성모상, 그리고 가운데의 성화.

 

벽공에 마련된 피에타상, 밤에도 사람들이 바라볼 수 있도록 조명을 내걸었다.

 

심지어 성당의 정문은 이렇게 고통받는 예수의 모습을 그대로 돋을새김해둔 청동문이다.

 

 

 

류블랴나 구시가의 중심, 그리 크진 않지만 꼿꼿한 오벨리스크가 광장의 중심에서 하늘을 향해 뻗었다.

 

 

 

어느 갤러리였던가 박물관이었던가, 유서 깊어보이는 건물의 안마당으로 들어가서 발견한 류블랴나의 시내 지도.

 

그리고 다른 갤러리에서는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진전이 한창이었다. 사진보다 전시공간이 더욱 눈에 들어오기는 또 처음이다.

 

 

광장의 바닥도 나름의 문양을 촘촘히 그려내고 있는 곳, 뭔가 아기자기하고 앙증맞은 느낌의 도시다.

 

 

 

좁은 골목길에 무심코 세워 놓았을 자전거조차도 왠지 그림이 되어 버리는 곳.

 

특별할 것 없는 허름한 건물 입구의 다닥다닥한 우편함에도 각기 개성이 묻어나는 곳이기도 하고,

 

 

주렁주렁 매달린 신발들로 이곳이 쉽게 벗어나기 힘든 매력적인 곳임을 곳곳에서 과시하는 도시기도 하다.

 

 

 

아이고, 여긴 참..많은 사람들이 와서는 눌러앉고 말았나 보다.

 

류블랴나의 자그마한 구시가를 이리저리 가로지르며 골목도 구경하고, 이쪽에서 본 저쪽 모습, 저쪽에서 본 이쪽 모습을

 

요모조모 뜯어보던 사이에 안 그래도 흐렸던 하늘은 천천히, 그렇지만 확실하게 꺼뭇꺼뭇해지고 있었다.

 

 

 

 

 

 센트럴역에서 나와 조금 걷다보면 자칫 놓치기 쉬운 간판이 보인다. 홍콩의 지하철역이 으레 그렇듯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바로 세계에서 가장 길다는 힐사이드 에스컬레이터가 출발. 참고로 이곳의 시꺼멓게 그을려 글씨도 알아보기 어려운 간판엔

 

'the Central Escalator Link Alley Shopping Arcade'라고 적혀 있다.

 

 다짜고짜 시작되는 에스컬레이터. 1994년 300억원이 넘는 자금을 투입해 2년반만에 완공했다는 800미터짜리 에스컬레이터다.

 

연간 2천만명이 이용하는 이 에스컬레이터는 산 윗동네 사람들의 출퇴근을 돕고 교통 정체를 완화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애초 출퇴근용이니만치 오전엔 하행, 오후엔 상행으로 방향을 바꾼다고 한다.

 

 그런 내용이 적혀 있는 안내판, 에스컬레이터를 안전하게 타기 위한 온갖 지침이 총망라되어 있는 듯 하다.

 

 중간에는 이렇게 벽화가 그려져 있기도 하고.

 

 

건물 중턱에서 툭툭 튀어나와 사방으로 연결되는 아케이드를 따라 에스컬레이터로 합류하는 사람들하며.

 

 어느새 에스컬레이터가 오르는 길 아래로는 저만치 간판들이 늘어뜨려져 있을 만큼 높이 올라왔다.

 

 

 

 아래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정수리도 보이고.

 

 

 초록빛 화살표를 따라 멍하니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싣고 주변 풍경을 살피느라 정신이 없는 사이 어느새 소호.

 

 소호의 조금은 음침하면서도 술렁이는 분위기를 간직한 골목통을 지나고.

 

 어느 그럴듯한 바에 앉아 맥주병을 홀짝거리는 하얀 머리의 멋진 할머니도 만나고.

 

 그새 이렇게나 많이 올라왔나 가끔은 뒤도 돌아보며 에스컬레이터가 직선으로 관통해온 궤적을 헤아려보고.

 

 위로 오를수록 점점 눈에 띄는 주택가의 올망졸망한 풍경들을 보며 그들의 일상이란 어떤 걸까 상상해보기도 하고.

 

 아무래도 소호를 넘어 위로 올라가면 주택가라 '볼 것이 없다'더니 관광객의 출입이 드문지 에스컬레이터까지 뚫고 들어온

 

왕성한 생명력의 파초 이파리가 불끈.

 

 그런 와중에 이어지는 주택들의 창문들. 에스컬레이터 양쪽 풍경을 온통 꽁꽁 닫힌 창문으로 막아버렸지만, 그래도

 

저렇게 리듬감있게 매달린 화분들이나 몇가지 소품들로 지나는 사람들을 배려했달까.

 

 

 끝까지 올라갔더니 정말, 당황스럽도록 아무것도 없는 휑한 주택가여서, 어쩔 수 없이 조금 걸어내려가야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오를 땐 몰랐는데, 꽤나 가파르고 길다. 더구나 내려가는 길이나 무릎 도가니에 꽤나 부담이 가는 듯.

 

이 정도의 경사라면 조금 실감이 나려나. 마침 빨간 색이 화려한 홍콩의 택시들이 우르르 멈춰서서 신호를 기다리던 장면.

 

 

국민적 자존심까지 걸고서 삼수 끝에 획득해낸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확정된 직후의 뜨거운 열기는

한여름 무더위와 함께 한풀 가신 듯 하고, 이제 동계올림픽 개최로 발생할 득실에 대한 냉정하고 차분한 손익계산과

함께 '승자의 저주'를 피하고 가능한 최대한의 성과를 끌어내기 위해 머리를 맞대자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시점이다.


'New Horizons'라는 모토를 앞세운 평창의 비전을 앞장서서 구현하며 진두지휘할 사람, 최문순 강원도지사를

만났다. 애초부터 그가 기획한 아이템은 아니었지만 이제 강원도의 수장으로 앞장서 행사를 준비해야 하는 그가

동계올림픽을 둘러싼 이러한 기대와 우려의 교차 속에서 어떠한 마음가짐을 갖고 있는지, 그리고 성공적인 동계올림픽

개최를 위해 어떠한 준비를 하고 있는지를 제한적인 시간과 조건하에서나마 들어보는 시간이었다.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에

대해서 처음부터 반대했고 유치 이후에도 걱정만 맘속 한가득인 본인으로서는 나름 궁금했던, 걱정됐던 몇 가지 지점들에

대해서 질문하고, 질문의 형식을 빌려 우려를 전달할 수 있는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의 대답을 듣고 우려가 좀

사라지고 개최해야 되겠다는 설복이 되었냐고? 답은, 인터뷰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각자의 마음 속에 있지 않을까.


인터뷰는 평창의 한 음식점에서 진행되었으며, 평창 동계올림픽의 개회식과 폐회식이 진행될 메인스타디움이

위치한 알펜시아 리조트를 둘러보고 메인스타디움에서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기념 콘서트'를 함께 관람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파워블로거얼라이언스'에 소속된 블로거 중 한명으로 인터뷰에 참석하게 되었다.)

최문순 강원도지사. MBC사장, 한국방송협회 회장, 민주당 국회의원, 민주당 유비쿼터스위원회 위원장, 그리고

2011년 4월 이래 강원도지사로 선출되기에 이르렀으니 뻣뻣할 만도 하건만, 그는 남들보다 먼저 물병을 잡아

물을 따랐고 막걸리병을 들어 잔을 채웠다. 무겁거나 위엄부리는 몸가짐이 아니라 그냥 친근하고 부담없는

윗집 아저씨를 만나고 있는 느낌이랄까. 그게 '감자'란 별명을 멋쩍게 소개하던 문순C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그렇지만 사람에 대한 첫인상은 빗나가기 쉬운 법, 아무리 이렇게 소탈하게 웃는 모습이 인간적이고 호의적으로

보인다 할지라도 중요한 건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품고 있는 컨텐츠다. 게다가 개인 최문순이 아니라 평창

동계올림픽의 성공개최를 위한 도지사이자 '공인' 최문순을 만나야 하는 자리다. 그렇다. '공인'이란 건 이럴 때나

적당한 단어다. 공인에 대한 공적인 인터뷰. 먼저 궁금했던 건 평창 동계올림픽을 어떤 식으로 치뤄낼지에 대한 각오였다.


그는 도지사직을 수행한 후 가장 행복했던 기억으로 동계올림픽 유치를 꼽았다. 강원도의 수익원 대부분은 관광에서

발생하는데, 동계올림픽 개최를 통해 내외국인 관광객들을 많이 유인하여 열악한 도의 재정과 인프라를 확충하고

싶다고 했다. 154만에 불과한 강원도 인구의 국민소득은 만오천불에 지나지 않을 만큼 낙후되어 있는 강원도의

인프라와 재정상태를 극복할 수 있는 계기로 삼겠다는 다짐이다. 인천과 강릉 간 고속화철도를 개통하고 용산과

춘천간 2층 철도를 운행하는 등 철도, 도로 등 기반시설을 확충하기로 했으며, 다른 관광상품들도 많이 개발하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당연히 '비용' 문제와, 그렇게 개발된 관광상품들의 질적, 문화적 수준에 대한 질문이 이어지는 순서다. 그는 '동계올림픽의

저주'란 단어를 사용하며 본인이 적자 올림픽에 대한 우려를 인식하고 있음을 나타냈고, 가능한 기존 인프라와 경기장을

재활용해서 적자가 나지 않도록 할 것이라 답했다. 또한 문화가 바탕이 된 관광상품을 만들어내야 실제로 관광산업이

발전하는 것이라며, 중국, 대만, 홍콩 등 눈 구경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눈꽃 체험 관광이라거나 DMZ 안보관광을

상품화할 것을 구상하고 있다고 했다. '눈꽃'의 경우, 작년 상해엑스포 때에 기업연합관에서 인공으로 눈을 뿌리는

이벤트를 정기적으로 실시하여 큰 호응을 얻어내기도 했던 터라 어느 정도 검증된 아이디어라고 생각되지만, 안보관광은

요새 같이 냉각된 남북관계를 중앙정부 차원에서 해결하지 않고서는 쉽지 않겠다 싶다.

평창 동계올림픽에 대한 또다른 포인트는 환경 문제다. 가리왕산에 대한 환경평가가 졸속이라느니, 대규모 토목공사와

인프라 건설로 환경에 커다란 타격이 갈 거라는 우려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그는 강원도의 관광경쟁력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지 묻는 질문에 주저없이 '환경'을 꼽았다. 강원도처럼 울창한 숲이 보존되어 있는 지역은 세계적으로

흔치 않으며, 산과 바다를 모두 만끽할 수 있는 공간이란 굉장히 소중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강원도 내 지역마다

다양한 옥수수맛이라거나 고유한 산지가 아니고서는 좀처럼 제맛이 나지 않는 황태 같은 특산품에 대해서 줄줄 읊는데

정말 강원도에 대한 애정이 있지 않고서는 이런 디테일한 부분을 챙길 수 있을까 싶어 조금 감탄했다.

그가 강원도지사에 출마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그의 어머니에게 '최문순'이란 사람에 대해 물어보면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내가 말안해도 강원도민이 먼저 알 거라고. 그는 연임에 대해서는 이미 욕심이 없다며

어느 인터뷰에선가 밝힌 바도 있거니와, 2018년에 열릴 평창 동계올림픽을 자신의 치적으로 삼아 이름값올릴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는단 게 개인적인 감상이었다. 도지사의 공관을 최초로 일반에 개방했다는 데에서는

문득 대통령 별장 청남대를 최초로 일반에 돌려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오버랩되기도 하던 최문순 도지사.

그가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어떻게 준비할지, 어떤 문제를 인식하고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해서 좀더 깊이있게

묻고 싶었지만 시간과 장소가 여의치 않았고, 그래도 날림이나마 대강은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평창 동계올림픽이 진정 온국민의 축제로 성공리에 치뤄지려면, 뭔가 큰 건 하나 했다고 무턱대고 기뻐하고는

잊어버릴 게 아니라, 계속해서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검사하는 과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 않을까.

굳이 포스팅의 제목을 '숙제 검사'라며 도발적으로 달아본 이유기도 하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의 주무대가 될 알펜시아 리조트의 이곳저곳, 유럽의 어느 분위기있는 리조트를 옮겨놓은 듯한

이국적이고 고급스런 외양이 눈에 확 띈다. 2018년, 지금부터 7년 후. 이 곳에서 치러지는 동계올림픽은 어떠한

모습일까, 최문순 도지사와 함께 땀흘려 일하는 사람들에게 격려와 관심이 필요한 거다.

지치지도 않고 미끄럼틀을 내려오는 아이들의 발랄한 웃음소리가 공간을 가득 메우고, 함께 즐기려는 아이들이

전부 모여들어선 벗어던진 신발이 땅바닥을 덮었다. 그렇게 모두가 행복하게 즐길 수 있는 축제가 되길 소망해본다.




 

여행 정보


주요 관광지


아쉬하바드(수도)

1881년 러시아 수비대가 건설

1893,1895,1929년 지진으로 파괴와 재건 거듭

1948년 지진으로 도시 전파, 약 11만명 희생

민족 역사 박물관

1998년 11월 9개의 전시관으로 개관

중생대 자료, 니사의 신석기 유물, 청동기 유물 등 약 50만점의 자료 전

조로아스터교 종교의식에 쓰였던 제기가 유명

카페트 박물관

□ 주소 : Archabil av.31

□ 전화번호 : 48-97-32

□ 관람시간 : 매일 10:00-17:00 (화요일 휴관)

□ 관람요금 : 외국인 $10, 내국인 2 DTM

1994년 개관

골동품 융단 및 대형 수직 카페트 전시

크기 : 302㎡, 무게 : 1.2 ton 의 대형 수직 카페트 전시 (기네스북 등재)

Ertogrul Gazy 모스크

□ 주소 : Shevchenko str.48

□ 관람시간 : 매일, 24시간

□ 관람요금 : 무료

1998년 터키가 건설 투르크멘에 선물

총 7,000명(남자 5천, 여자 2천)이 동시 기도 가능

코브 아타(동굴의 아버지) 동굴

□ 관람시간 : 매일 09:00-18:00

□ 관람요금 : 외국인 30 DTM

아쉬하바드 남서쪽 170km에 위치

대형 강당 같은 공간 존재(230x20x57m)

52m지점에 유황 성분을 함유한 수온 33-37도의 호수(72m x 30m) 위치


◆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 지정지

메르브

ㆍ 1999년 투르크메니스탄 최초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ㆍ 마리시에서 북동쪽으로 약 25km

8백년전 바그다드, 카이로, 다마스커스 등과 이 이슬람의 가장 중요한 거점도시 중 하나

ㆍ 13세기 몽골군의 침입으로 완파

쾌네 우르겐치

ㆍ 2005년 투르크메니스탄에서 두 번째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ㆍ 아쉬하바드에서 북쪽으로 480km

ㆍ 고대 호라즘 제국의 수도

ㆍ 중앙아에서 제일 높은 67미터의 쿠트룩 테미르 첨탑 위치

○ 니사

□ 관람시간 : 주중 09:00-17:00 (13시~14시 점심, 일요일 휴일)

□ 관람요금 : 외국인 10 DTM

ㆍ 2007년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세 번째로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

ㆍ 아쉬하바드에서 서쪽으로 18km

ㆍ B.C 3~4세기 고대국가 파르티아의 수도

ㆍ 그리스의 영향을 받은 유물 다수 출토

ㆍ 13세기 몽골군의 침입으로 완파


치안상태


안은 비교적 양호한 편이나 아프가니스탄 접경지역으로의 여행은 자 제하여야 함.

시내에서 불시 검문이 잦은 바, 외출 시 반드시 여권 또는 신분증을 소지하여야 함.


교통


○ 교통 소통 원활한 편임.

○ 외국인의 경우 대중교통수단보다는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편리함.

시의 경우 영어가 거의 통하지 않으며 요금은 기준요금이 아니 흥정을 통해 결정함. 보통 20~30분 정도 소요되는 거리라면 $2~$3불 정도 지불함.


환전 & TIP


환전은 보통 도시 곳곳의 환전소를 이용하며 고정 환율로 $1당 2.843 마나트임.

일부 호텔을 제외하고는 신용카드나 T/C는 통용되지 않음.

신용카드 사용시 수수료 5% 별도 추가.

○ Tip은 호텔 객실 $1, 식당은 인원에 따라 $1~2 정도 지불.


국제전화


투르크메니스탄 → 한국

ㆍ 일반전화

810 - 82 - 2 - xxx xxxx

(한국)(서울)(전화번호)

ㆍ 휴대전화에 통화시

810 - 82 - 0을 제외한 휴대전화번호

(예 : 810-82-11-234-5678)

한국 → 투르크메니스탄

ㆍ 일반전화

001 또는 002 - 993 - 12 - xxxxxx

(투르크멘)(아쉬하바드)(전화번호)

ㆍ 휴대전화

001 - 993 - 66(또는 65) - xxxxxx

(투르크멘)(사업자번호)(전화번호)

(예 : 001-993-66-123456)


의료


재국은 의료 시설이 크게 낙후되어 있으며, 약국은 많으나 간단한 의약품도 구하기가 어려운 바, 감기, 설사, 소화제 등 상비약은 휴대하는 것이 좋음.


위생


돗물은 식수로 사용 불가하며, 반드시 생수를 사서 마시는 것이 안전.


전기


기는 220볼트, 50㎐이고 콘센트는 일반적인 둥근 2핀 콘센트. TV, VTR은 SECAM 방식임.


색안경 착용 권장


히 여름철에는 햇빛이 강한 바, 눈 보호를 위해 색안경을 착용하는 것이 바람직함.


에티켓


○ 방에 들어서면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개인적으로 다가가 한사람씩 인사를 나눠야 함.

○ 방에 누군가 들어서면 항상 일어서서 맞이해야 함.

○ 누군가 방문하면 항상 차와 음식을 대접함.

○ 휘파람을 부는 것은 예의 없는 행동임.

○ 나이 많은 사람에게 대들지 않아야 함.

○ 상대방이 무안해질 말을 삼가.

○ 문지방에서 손님을 환영하거나 악수하는 것을 피함.

○ 손님은 항상 대문을 통해서 맞이하고 집안에 들어와서 환영함.

○ 공공장소에서 배우자에게 애정을 표시 삼가.



현지 주요 연락처


재외공관 정보


○ 주소 : Embassy of the Republic of Korea, Archabil avenue 25 Rahat Hotel,Ashgabad, Turkmenistan

○ 전화 : 993-12-48-97-61(62)

○ 팩스 : 993-12-48-97-60

주요 호텔정보 (아쉬하바드 시내)


○ President Hotel (5성급)

- 주소 : Archabil Higway

- 전화 : 993-12-40-00-00

- 팩스 : 993-12-40-02-22

○ Grand Turkmen Hotel (4성급)

- 주소 : Gerogly Street, 7

- 전화 : 993-12-51-05-55

- 팩스 : 993-12-51-12-51

○ Four Points Ak Altyu (4성급)

- 주소 : Magtumguly ave., 141/1

- 전화 : 993-12-36-37-01

- 팩스 : 993-12-36-35-43






<경고> 임산부나 노약자, 혹은 어젯밤 묘한 짓을 하여 심신이 미약해진 젊은이의 건강과 기분을 해칠 수 있는

사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화시제 시장, 대만의 유명한 하고 많은 야시장들 중에서 뱀이나 자라의 해체쇼를 볼 수 있는 곳이라는 말에

두근두근하며 찾았던 곳이다. 여차하면 이번 여행의 목적 중에 하나였던 '뱀탕'을 시음해볼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실내로 이어져 있는 시장통 골목은 뭔가 다른 스린이나 궁관 야시장과는 또 다른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뭔가

야시시한 상점들도 보였고, 마사지샵하며 횟집하며, 그리고 무엇보다 공간에 가득한 살풋 비린내음. 단순히

기분 탓이라고 생각하기엔 냄새가 너무도 확연히 와닿았고, 점차 냄새의 실체에 접근하며 확인할 수 있었다.

뱀을 커튼처럼 가게 앞에 늘어뜨려놓았다. 다른 가게들도 이미 몇 개를 지나쳤지만 사진 촬영을 허가해 놓은

곳은 여기가 유일했다. 비린내가 확 와닿는 뱀커튼들. 옆의 촘촘한 철망에는 뭔가가 쉼없이 꾸물거리고 있었다.

게다가 커튼으로 걸린 녀석들은, 피와 함께 내장을 모두 뱉어내고 있었던 거다. 밑에 놓인 '빠께쓰'에는 핏물과

함께 뱀의 이런저런 장기들이 흐트러져 있었다. 기-일다란 뱀의 몸통에 그어진 기-일다란 칼자국, 그리고 그

기-일다란 몸통을 타고 흐르는 핏물.

뱀들이 두세마리씩 끈에 목이 감긴 채 주렁주렁.

뒤의 티비에선 언젠가 했을 해체쇼를 녹화해선 무한반복으로 틀어놓고 있었고, 앞에선 반짝거리는 뱀가죽에

구슬처럼 빛나는 뱀눈알이 콕 박힌 채 흔들거리고 있었고.

뱀들이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떻게 보면 뱀의 징그러운 모습을 극대화시켜서 보여주는 듯 하다. 뭐가

되었던 신체를 저렇게 칼질하고 내걸어두면 이뻐보일리야 없지만, 왠지 목졸라 죽인 듯한 그 살벌한 분위기에

더해서 더욱 적나라한 뱀의 표정이랄까, 게다가 쫙 찢어진 입은 살풋 비웃음마저 머금고 있는 듯 해서 더욱.

철망 안에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녀석들. 왠지 이 녀석들은 죽음 앞에서도 초탈할 거 같다. 포유류가

파충류, 특히 뱀 앞에서 느끼는 본능적인 두려움은 어느 문화권에선 경외감과 존경심을 낳았고, 다른 문화권에선

혐오감과 배척을 낳았던 거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지나고, 싸구려스러운 불빛 뭉테기들이 천장에서 흘러내리고, 사진에 찍히지 않는 뱀의

비릿한 향취가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뱀탕은 도저히 시도해볼 엄두가 나지 않아 패스.

그 와중에도 눈이 돌아가는 섹스돌샵, 온갖 종류의 성인 장난감들을 팔고 있었지만 좀처럼 들어가 구경할

엄두도 못내게 만드는 환경이었다. 그저 愛神이라는 간판 제목이 좀 웃겨서 웃었을 뿐, 이내 지나쳐 버렸다.

그리고 또다른 샵. 반투명한 비닐 커튼을 드리웠지만 안에 들어가지 않고도 대충 뭐가 어디에 진열되어 있는지,

저건 어디에 어떻게 쓰는 물건인지 다 알겠더라. 내 상상력이 탁월한 걸까 아님 그것들이 워낙 적나라하게

생겼던 걸까.

아케이드를 지나 밖으로 나오니 조금 살 만하다. 탁하고 비릿한 공기에서 해방되니 야시장 특유의 기름내와

온갖 음식냄새가 뒤섞인 그 오묘한 내음조차 향기롭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몇 걸음 가지 않아 다시 만난 뱀아저씨. 담배를 척, 하니 꼬나물고 무려 '소녀시대'의 댄스에 맞춰

뱀을 주물럭주물럭, 완전 기력이 쇠한 듯한 뱀을 억지로 치켜세우고 있었다.

뒤의 모니터에선 소녀시대가 상큼발랄한 미소를 작렬하며 귀엽귀엽 댄스 중이시고, 앞에서는 담배를 꼬나문

아저씨가 투닥투닥 뱀을 훑으며 엉거주춤 댄스. 이건 좀 굉장히 부조화스럽기도 하고 부조리스럽기도 하고.

무엇보다 소녀시대 팬클럽에라도 급히 알려야 할 일이 아닌가 싶은데.ㅋ '소시가 뱀쇼 배경화면으로 쓰인대요'




내일 아침에 뱅기 타고 인도로 가면, 뉴델리와 뭄바이를 거쳐 월말에나 돌아오게 된다. 출장이란 건, 남이

떠나는 걸 보면 부러운 거고, 자신이 떠나는 때엔 힘들고 더러 지치는 거고. 특히나 이런 대규모 인원이 함께

하는 출장을 준비하는 건, VIP가 낀 출장을 준비하는 건.


인도는 처음이다. 첫경험이란 거, 굉장히 중요한 건데 '출장' 따위 무디고 둔탁한 도구로 '인도'라는 통조림을

까려다가 자칫 이미지를 통째 날려먹는 건 아닐지 걱정스럽기도 하다. 뭐, 대형 버스에 아저씨들과 꽉꽉 채워

앉아 타지마할 코앞을 찍고는 돌아오는 그런 날림 일정이 예정되어 있기도 하니까, 딱히 그런 걱정을 기우라고

치부하기도 그렇다.


사실 출장은 일이다. 여행의 느낌은 '주'가 아니라 '부'가 되어야 하는 거고, 어쩌면 '여행'이란 호사스럽고 가슴

떨리는 단어보다는 '관광'이라는 왠지 피상적이고 거저 먹는 듯한 단어에 어울리는 거다. 근데 내가 그렇다.

그냥 여행처럼 생각하고 떠나게 된다. 카메라부터 챙기고, 여행정보로 뭐가 있는지 쑤시고 다니고. 뭐, 해야 할
 
일 다하고 남는 짬에 혼자 기분 내며 비행기 타고 걷고 구경하면 되는 거니까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출장인지 여행인지 관광인지 모르겠는 그거, 덕분에 생일도 인도 뭄바이 쯤에서 맞게 되겠지만 일단은

'쵸큼' 설레고 있다.





여행 정보

주요 관광지

인도는 5,000년의 역사와 더불어 풍부한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는 세계 굴지의 관광 자원국임.

○ 바라나시와 카쥬라호의 힌두 유적지, 보드가야와 아잔타의 불교 유적지, 델리와 아그라의 이슬람 유적지 등이 유명함.

- 최근에는 히말라야의 설경과 트레킹, 라자스탄의 사막 사파리 등 대자연의 풍경을 즐기려는 관광객도 크게 늘어나고 있음.

○ 관광개발공사(ITDC)는 열악한 숙박 및 교통시설 개선을 위하여 노력하는 한편, 관광객 유치를 위한 홍보를 전개 중임.

○ 뉴델리 및 인근 주요 관광지

- Red Fort : 무갈왕조 제5대 황제 샤자한이 건설(1639~1748 년)한 성으로 올드델리의 대표적 관광명소로 붉은 빛의 사암으로 지어져 '붉은 성'이라는 이름을 얻었음.

- India Gate :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여 전사한 9 만 명의 인도 병사를 위한 높이 42m의 위령비

인근 지역

- Taj Mahal : 아그라(델리에서 남동쪽으로 약 220Km)에 있는 세계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꼽히는 건축물로, 무갈 제국의 제5대 황제 샤 자한이 죽은 왕비를 위해 지은 무덤 (1631 건축시작, 1653 완성)

- 암베르 포트: 자이푸르 외곽 언덕에 위치한 가장 볼 만한 장소 중 하나, 1600년 만싱경에 의해 시작되어 현재 모습으로 완성된 것은 18세기 스와이 싱에 의해서임. 붉은 사암과 흰색 대리석으로 구성된 힌두와 무슬림 건축 혼합의 대표적인 예임.

비자

○ 인도에 입국하는 모든 외국인은 비자가 필요함. 우리나라와는 2005. 10월부터 외교관 여권 및 관용 여권에 대해서는 90일 이내에서 비자가 면제됨.

비자 종류

기간

발급 주체

단기비자(복수)

15일 ~ 6개월

해외 주재 인도 공관(대사관) 재량으로 발급

장기 비자

1년 이상

해외 주재 인도 대사관이 본국(인도) 해당 부처 (Ministry of Home Affairs)에 조회하여 발급

- 1년 이상의 비자 소지자(외교관 제외)는 인도 도착 후 1주일 이내에 외국인 등록소(FRRO)에 등록해야 함.

- 인도에서 체류 중 체류 기간을 연장하고자 할 경우에는 외국인 등록소(FRRO)에 신청하면 됨.

- 비자 신청 시 특정 지역에 대해서는 특별 허가가 필요함.

○ 발급처 : 주한인도대사관(서울시 용산구 한남동 37-3)

- 전화번호 : (02) 798-4257/4268/0962

- 근무시간 : 09:30~13:30, 14:00~16:00(공휴일 및 토요일 휴무)

- 소요시간 : 신청 후 3박 4일

- 소요비용: 6개월 65달러, 1년 이상 115달러, 2년 이상 210달러

○ 구비 서류

- 단기비자 : 신청서(APPLICATION FORM), 사진, 여권

- 장기비자 : 신청서, 인도 측의 초청장 또는 계약서 등의 근거 서류, 여권

입출국 정보 및 세관 정보

○ 입국 정보 및 세관 신고

- 인도 루피화(Rupee)의 반입 불가

- 5,000달러 이상 반입시 세관에 신고

- 950ml 이하의 위스키 1병, 담배 2박스(20갑) 면세 통관

- 기타 향수, 화장품 등 2,400루피(85달러)까지 면세 통관

- 비디오카메라 등 대형 아이템은 여행장 물품(TOURIST BAGGAGE RE-EXPORT FORM)양식으로 신고 후 반입하고 출국 시 신고함.

- 상업적 가치가 있는 샘플의 경우 인보이스를 반드시 지참하여 필요시 관세를 내고 통관해야 하며, 인보이스가 없을 경우 세관원 임의로 관세를 산정하거나 압류하는 경우가 있음.

- 출국 및 입국 공항에 모두 환전소가 있으며, 환전에는 반드시 환전 증명서를 받아 보관 하여야 나중에 외화로 재환전할 수 있다는 점에 유의

○ 출국 정보 및 세관 신고

- 출국 시 원칙적으로 공항세를 지불함. 파키스탄, 네팔, 방글라데시, 부탄, 스리랑카 등 인접국인 경우 150루피, 기타 국가로 출국할 경우 300루피이나 항공권 구매 시 이 비용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임.

- 인도에서 120일 이상 체재 후 출국할 경우에는 "소득세 납입증명서(INCOME TAX CLEARANCE)"를 제출해야 함.

○ 주의할 사항

- 출장차 입국하는 업체의 경우 대부분 제품의 샘플 등을 지참하고 입국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 경우에는 관세 부과를 고려하여 미리 인보이스를 소지하는 것이 바람직함. 인도는 아직 어느 정도의 언더 밸류는 인정되고 있으며 제품에 따라 다르지만 최대 40%까지도 언더 밸류를 하는 것으로 알려짐.

- 전시물품의 경우 반송이 확실할 경우 까르네(Carnet)를 받아 오는 것이 최선이지만, 경우에 따라 현지에서 처분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 일단 인보이스를 지참하는 것이 좋음.

- 또한 아무 준비 없이 입국하는 경우 화물을 찾아서 세관을 통과하기 전에 트렁크나 가방이 분필로 X 마크를 그어둔 것은 반드시 지우고 나오는 것이 요령. 이는 X-레이 체크에서 세관 검색대에서 검사하라는 표식이기 때문임.

환전

○ 통화 단위/종류

통화 단위

RS(RUPEE, 루피), PAISA(파이사, 1/100RS)

동전

지폐

25, 50 PAISA, 1, 2, 5RS

2, 5, 10, 50, 100, 500, 1,000RS

고액 계산 단위

(인도에서만 통용)

LAKH(랙: 10만 루피),

CRORE(크로르: 1,000만 루피)

○ 환전은 공항 환전소나 시내 은행 및 호텔에서도 가능하지만, 호텔의 경우 은행이나 공항 환전소에 비해 다소 불리한 환율을 적용함.

○ 또한 일정 수준 이상의 레스토랑이나 쇼핑센터의 경우 달러로 지급이 가능하지만 달러가 통용되지 않는 곳도 많아 일정 금액 이상의 경우 환율 면에서 가능한 환전하여 지급하는 것이 유리함.

- 국제적인 카드는 일정 규모의 상점이나 호텔, 레스토랑에서 사용하는데 거의 문제가 없음.

우편

○ 인도의 우편 서비스는 정부가 운영하는 우체국과 민간 기업이 운영하는 우편 서비스로 구분됨. 그러나 정부 우체국은 시간이 많이 걸릴 뿐만 아니라 서비스의 질에서 민간 업체에 비해 크게 뒤지기 때문에 대부분 민간 업체의 우편 서비스를 이용함.

○ 꾸리에(Courier) 서비스라 불리는 인도의 민간 우편 서비스 업체는 수십 개가 존재하며 대부분 특정 민간 우편 업체를 지정해서 우편물이 있으면 해당 업체의 직원이 우편물을 수령하여 배달함.

- 비용은 델리, 뭄바이, 첸나이의 경우 시내 배달 비용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으며 비용은 10-20루피(250원), 인도 최남부의 경우 약 40루피(1,000원) 정도임.

국제 전화

○ 국제전화 (인도에서 한국으로 전화를 걸 때)

- 00(국제전화) + 82(한국 국가코드) + 지역 코드(단 앞자리‘ 0’ 은 제외) + 전화번호

- 서울 전화인 02-123-4567번으로 전화한다면 00-82-2-123-4567 로 함. 한국과의 국제 전화 비용은 지난 수년간 많이 인하되어 공중전화 기준으로 1분당 약 400원 정도

○ 인도시내에서 국제전화를 할 때는 거리에서 STD/ISD라고 적힌 노란 간판이 달린 공중전화 박스에서 할 수 있지만, 우리와 같이 동전이나 카드를 투입하는 것이 아니라 미터기로 사용 내역이 자동 기록되고, 공중전화를 관리하는 사람이 청구서에 따라 금액을 청구함. 호텔 등에서도 당연히 국제전화, 인도 시외 전화를 이용할 수 있지만 일반 공중전화보다 몇 배 이상 비싸므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음.

국내 전화

○ 인도 국내 전화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첫 자리가 0번으로 시작되는 지역(도시) 번호를 누르고 전화번호를 누르면 됨. 예를 들어 뭄바이에 있는 123-4567번으로 전화할 때는 022-123-4567로 누르면 됨.

○ 또한 최근에는 인도에서도 핸드폰 사용이 일반화되고 있어 출장 시 전화를 사용하고자 할 경우는 핸드폰을 임차하여 사용하는 것이 가장 편리하고, 비용도 싸게 이용할 수 있음.

전압

○ 인도는 전력 공급이 수요를 쫓아가지 못해 약 10%정도의 수급 격차가 상존하여 단전이 일상화되고 있음. 일반 가정이나 호텔 등에서 자체 발전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으며, 불안전한 전기 사정으로 일반 생산 공장에서도 외부 전기를 사용하지 않고 자체 발전기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음.

○ 전기 규격은 50HZ, 220V가 표준임.

- 한국(60HZ)과 헤르츠가 달라 한국에서 반입한 국산 전자 제품(특히 모터 부착)의 경우 가동되기는 하지만 100% 효율을 발휘하지 못하고 일정 기간(1~2년) 사용 후 문제가 있는 경우도 있음.

○ 전압의 등락폭이 커 180~280V 까지 움직이므로 민감 제품은 안정기를 사용하는 것이 필수적임. 이외에도 컴퓨터 등에는 UPS를 부착하여 전기가 나갈 경우 자동으로 UPS 전원이 연결되도록 하는 것이 일반적임.

교통

○ 인도에서 외국인으로 이용할 수 있는 시내 교통수단은 택시가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음. 택시에는 우리 식의 미터기를 장착한 택시가 있으며 일반 거리에서는 지나가는 택시를 세워서 이용할 수 없으며, 호텔이나 특정 지역에서 택시를 불러서 타고 가는 형태임.

○ 택시 요금은 대표적으로 델리의 국제선 공항(인디라간디 공항)에서 약 25~30분이 소요되는 시내 호텔까지의 요금이 200루피(약 5 불) 전후이며, 뭄바이, 첸나이의 경우 공항에서 시내 호텔까지 요금은 300~400루피 수준임.

- 미터기가 부착되어 있기 때문에 반드시 타고나서 미터기로 하라고 운전사에게 확인하는 것이 요금에 대해 분쟁을 없애는 방법임.

○ 일반 시내버스의 경우 요금이 저렴하지만 연결 노선이 불편하고 언어 소통, 추행 등의 문제가 있어 힌디어 구사가 어느 정도 가능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용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며, 특히 여성의 경우 버스 내 추행 가능성이 많은 점도 유의해야 함.

도량형

○ 표준 단위

단위

도량형

거리

Meter

중량

Gram

○ 실제 생활에서는 feet가 주요 도량형으로 사용되고 있어 투자 업체의 공장 구매 및 주택 임차의 경우 한국에서 사용하는 평당으로 환산하기 어려워 도량형 환산표를 사전에 준비하는 것이 거리 및 면적을 측정하는 데 도움이 됨.

○ 인도에서도 호텔이나 고급 식당 등에서 일정한 금액의 팁은 상당히 보편화되어 있으나 미국과 같이 팁 관행이 엄격하지는 않으며, 다만 크게 부담을 느끼지 않고 가능한 상황에서는 주는 것이 좋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됨.

호텔에서 숙박을 할 경우 1박당 40~50루피, 호텔에서 벨보이나 짐 운반 등의 서비스를 받을 경우 1인당 10루피 정도를 주면 적당함.

비즈니스 참고사항

비즈니스 에티켓

○ 약속 잡기

- 인도인들은 시간 엄수를 높이 평가하지만 스스로가 실천하지는 않으므로, 언제든지 약속이 바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스케줄을 유동성 있게 잡을 필요가 있음.

- 계약 체결과 관련된 의사 결정은 오직 최고위층에 의해 이루어짐.

- 인도 경영층은 오전 11시에서 오후 4시 사이에 약속을 잡는 것을 선호함.

- 수많은 종교적 공휴일에는 비즈니스가 이루어지지 않음. 지역별로 서로 다른 공휴일들이 있으며, 해마다 날짜가 바뀌므로 사전에 미리 확인하여야 함.

드레스 코드

- 남성은 정장을 갖추어야 하나 더운 날씨로 인해 양복 상의와 넥타이는 생략하는 경우가 많음.

- 가죽으로 된 의상은 피하는 것이 좋음.

- 여성은 전통 의상이나 바지 정장(pantsuit)을 선호함.

대화

- 대부분의 인도인들은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하는 것을 즐기며 비즈니스 미팅에 있어서도 가벼운 잡담으로 회의를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임.

- 일반적으로 인도인들은 개방적이고 우호적이며 서구 국가에 비해 사생활에 대한 관념이 낮은 편임.

- 인도인들은 직접적으로 반대 표시를 하지 않는 편임.

화제

- 인도인들에게 있어 매우 인기 있는 세 가지 화제는 정치, 크리켓, 영화이며, 최근에는 경제 개발이 추가됨.

- 인도인은 자신들의 풍부하고 오랜 문화적 유산에 자긍심을 갖고 있으며, 특히 외국인들에게 그들의 역사와 전통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함.

피해야 할 주제들

- 종교에 관해서 논하는 것은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지만 한편으로 종교는 그들의 일상에 매우 깊게 뿌리박고 있기 때문에 특정 종교 의식에 대한 순수한 질문은 매우 환영받을 수 있음.

- 대부분의 국민이 파키스탄에 대해서는 매우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으므로 이와 관련된 주제는 피하는 것이 좋음.

- 자신들의 경제 발전을 매우 자랑스러워하기 때문에 빈곤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매우 꺼리며, 만약 외국인이 먼저 그런 주제를 꺼낸다면 아주 무례한 비판으로 받아들일 것임.

호칭

- 상대방을 부를 때 “Professor”, “Doctor”로 부르는 것이 좋음.

- 한 사람의 지위는 나이, 학력, 직업, 카스트에 따라 정해지는 경향이 있으며 특히 정부 기관에 근무하는 것은 민간 부문에 종사하는 것보다 훨씬 고상한 것으로 인식됨.

○ 이름

- 인도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성(surname)을 사용하며 특히 북인도에서 그러함. 여성은 남편의 성을 따름.

○ 협상

- 지방어로 번역까지 할 필요는 없지만 언제나 명함을 주도록 함.

- 어떠한 경우에도 육체적 다툼을 벌이는 것-옷깃을 잡는 것을 포함해서-은 용납되지 않으며, 아무리 불쾌한 경우에도 미소로 응대하는 것이 가장 득이 됨.

- 경직된 계급 사회적 특성을 감안할 때 직원은 오직 직원만 대면하게 되므로 보스가 직접 미팅에 참석하여 상위 레벨의 상담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함.

- 접대는 비즈니스에 있어 핵심 요소로서, 대부분의 상담은 차가 나올 때까지 시작조차 하지 않으며 가벼운 잡담으로 시작함.

○ 기타

- 대부분의 인도인은 힌두교도이고, 힌두교는 남녀의 공공연한 접촉을 금지하고 있음.

-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힌두교도들의 전통적인 인사말은 “namaste(나마스떼)”로서, 인사법은 턱 아래에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이는 것임.

- 누군가를 부를 때는 손바닥을 아래로 해서 손가락을 움직임. 손바닥을 위로 할 경우 모욕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음.

- 손을 엉덩이 근처에 올린 채 서 있는 것은(‘arms akimbo’) 화가 났다는 의사 표시이므로 유의해야 함.

-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것은 결례이며, 인도 사람들은 보통 턱으로 가리킴.

- 발은 청결하지 못한 것으로 인식되므로 절대 자신의 발이 다른 사람에게 닿지 않도록 주의하고 만약 닿았다면 사과해야 함.

선물

○ 선물을 받자마자 열어 보는 것은 예의가 아님.

○ 초대를 받았을 경우에는 초콜릿, 꽃 등의 작은 선물을 준비하는 것이 좋고, 선물 포장은 흰색, 검정색은 피하고 녹색, 빨간색, 노란색을 쓰는 것이 좋음.

○ 술을 마시는 사람에게 수입 위스키는 아주 좋은 선물이 되며, 만약 현금을 선사하는 경우가 있다면 금액을 홀수로 맞추어야 함.

상관습

○ 인도 비즈니스맨이 가지고 있는 사업 관행과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 사업 관행의 괴리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특히 유의해야 함. 인도 바이어들을 직접 상담한 후 바로 거래에 연결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도 실제 오더 및 대금 결제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므로 느긋한 마음으로 임해야 함. 특히 인도 정부 기관은 느린 업무 처리로 악명이 높음.

○ 인도는 대표적인 가격 시장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가능하다면 제품의 기능을 옵션으로 두어 기능을 줄이는 한이 있더라도 가격에 융통성을 줄 수 있는 것이 좋음. 가격 협상은 최소한 몇 차례를 각오해야 하므로 마지막까지 가격의 마지노선을 제시하지 않는 것이 좋음.

○ 대금 결제는 처음부터 L/C 나 T/T 로 해야 함. 인도인들은 인도인들 사이의 거래에서도 대금을 지불하지 않으면 물건을 주지 않는다고 할 정도이며, 대금 결제에서 신용을 제공하는 것은 문제의 불씨를 만드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야 함.

○ 일정 규모 이상의 거래는 선적 시 바이어로 하여금 선적 전에 제품을 검사하거나 그에 준하는 동의를 얻어 내는 것이 좋음. 단순히 샘플로만 합의하고 선적한 경우 나중에 제품의 불량이나 하자를 이유로 제품 도착 후 제품 수령을 거절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함.

○ 계약서를 꼼꼼히 검토하는 것은 기본이며, 제품 검사에 대해서도 검사 기관을 특정한 경우 검사에 소요되는 기간이나 비용을 미리 확인하여 비용에 반영하여야 함.

○ 제품의 성능 등에 대해서는 그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함. 애매한 표현은 화를 자초하거나 제품 수령을 거절하는 빌미를 제공하게 됨.

○ 계약에 관한 모든 사항은 반드시 문서로 남겨야 함. 인도에서 경험이 많은 사람일수록 인도와의 거래에서 신사도(gentlemanship)는 없다고 말할 정도로, 단순히 선언적인 내용을 말로 약속한 것은 인도와의 거래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음.

근무시간

○ 공무원들의 근무 시간은 09:00~17:30이며, 토/일요일은 휴무임. 그러나 대부분의 정부 부처는 10:00 시 이후에야 정상적인 업무가 시작되는 편임.

- 또한 부서별로 근무 시간이 다소 차이가 있으며, 뭄바이 공무원 근무 시간은 10:00~17:00 또는 10:30~17:30 으로 이원화되어 있음.

- 첸나이 공무원 근무 시간은 10:00~17:00임.

○ 민간 기업은 업체의 사정에 따라 상이함.

- 은행의 근무 시간은 평일 10:00~16:00, 토요일은 10:00~12:00 에 정상 영업. 다만 현금 인출기는 24 시간 동안 사용 가능함.

현지 주요 연락처

주요 연락처

○ KOTRA 뉴델리 무역관

- 주소: Korea Trade Center, New Delhi B A-602 Signature Tower, South City, NH-8, Gurgaon, 122001, Haryana, India

- 전화: (91-124) 4628-500

- 팩스: (91-124) 4628-501

○ 주 인도 한국 지상사 협의회(코트라 첸나이 무역관 사무국 담당)

- 전화: (91-44) 2433-7280 /핸드폰(91-98400 25933)

○ 뉴델리 한인회

- 전화: (91-11) 5165-5061/2

- 한인회장: 이중훈

○ 임마누엘 교회(뉴델리)

- 주소: 24, Lodi Road, New Delhi

- 전화: (91-11) 2612-2409

- 담임: 김광선 목사

○ 베델교회(뉴델리)

- 주소: British School 강당

- 전화: (91-11) 2651-9986(천성조 목사), 2686-5260(황선옥)

대사관 정보

○ 주 인도 한국대사관

- 주소: 9, Chandragupta Marg, Chanakyapuri Ext. New Delhi- 110021 (뉴델리 국제공항에서 차로 15분, KOTRA 뉴델리 KBC에서 차로 10분 소요 거리)

- 전화: (91-11) 2688-5374/6, 5412, 5419

- 팩스: (91-11) 2688-4840

○ 뭄바이(구 봄베이) 총영사관

- 주소: Kanchanjunga Bldg., 9th FL., 72, Peddar Road, Mumbai 400026, India

- 전화: (91-22) 2388-6743~5

- 팩스: (91-22) 2388-6765




* 위의 자료는 외교통상부, KOTRA, 수출입은행, 한국무역협회, CIA 등의 자료를 기초로 작성되었습니다.




UAE 알기

지정학적 위치

총 면적은 83,600㎢로서, 동쪽은 오만, 남서쪽은 사우디아라비아, 북서쪽은 카타르와 접하고 북쪽으로 페르시아 만에 면해 있음.

영토의 동단이 하잘 산맥이고 그 밖에는 평탄하며 아라비아 만 연안에는 작은 섬들로 이루어져 국토 중 초원은 2%, 석유와 천연가스 매장량이 세계 최대량으로 추정됨.

지형 특색

해발 최고높이 120m, 대부분의 지형이 사막 평지로 이루어져 있고, 주 요 도시들은 해안지역에 발달함.

약 6천만 년 전 해수에 침잠되어 있었던 영향으로 소금지대가 산재

기후

사막성 기후: 고온 다습 아열대성기후 및 사막성기후 (최고 53℃)

연중 강수량: 60~100mm

약사

연도별 역사 개관

1853 영국과 "영구해상평화조약" 체결

1892 영국과 배타협정(Exclusive Agreement) 체결, 영국의 보호령

1958 아부다비에서 석유발견(1962년부터 채굴시작)

⇒ 1966 두바이에서 석유발견(1969년부터 채굴시작)

1968 영국정부, 1971년까지 모든 영국군 철수 성명 발표

1968.2 카타르, 바레인을 포함한 9개 토후국 연합최고회의

(Supreme Council of Rulers)결성에 합의

1970.6 바레인 및 카타르, 연합 결성 안에 반대하여 독자노선 채택

1971.12 6개 토후국 (라으스 알카이마를 제외)으로 구성되는 UAE 국 가로 독립

1971.12 아랍연맹 및 UN 가입(132번째)

1996.5 연방최고회의에서 잠정헌법을 정식헌법으로 채택,

Abu Dhabi를 연방수도로 공식 확정

2004.11 Sheikh Khalifa 아부다비 왕세자, 대통령으로 선출

2006.2 Sheikh Mohammed Al Maktoum, 부통령 겸 총리,

두바이 통치자로 선출

정치 개황

정치 정세

○ 아랍에미리트 연방 최고기관은 각 토후국 수장들로 이루어진 연방 최고평의회

○ 모든 사안에 대한 결정은 5명 이상의 찬성으로 이루어지며, 가장 큰 토후국인 아부다비와 두바이의 군주는 거부권

○ 각 토후국은 자치권을 가지고 있어 내부문제에 대해서는 해당 토후국 군주에게 모든 권한이 있음.

○ 1996년 5월 연방최고평의회는 정식헌법을 채택하고 아부다비를 연방수도로 공식 확정하는 등 독립 25주년을 맞아 연방으로서 점차 안정화되어가는 추세임.

○ 연방 대통령과 부통령은 토후국 군주들 중에서 선출하고 대통령은 총리와 내각을 지원함.

○ 1971년 이후 대통령은 아부다비의 자이드 국왕(Shaikh Zayed)이, 부통령은 두바이의 라시드 국왕이 계속 맡고 있었으나 2004년 11월 2일 자이드 국왕이 사망하자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였고 2009년 현재 대통령은 셰이크 칼리파 빈 자에드 알 나흐얀임.

○ 의회는 각 국왕이 임명한 의원들로 구성되며, 임기는 2년 임.

○ 의원 수는 토후국별로 정해져 있는데 아부다비 8명, 두바이 8명, 샤르자 6명, 라스알카이마 6명, 아지만 4명, 푸자이라 4명, 움알카이와인 4명으로 총 40명

○ 정당은 없으며, 사법권은 연방대법원 / 종교관련 사건은 샤르아 법원에서 헌법이 아닌 이슬람 계율을 근거로 재판함.

각료 회의 구성

○ 행정부

- 연방정부 대통령 : 국가원수이며 행정부를 관할함. 군사, 외교 관련 국한된 정책권한을 가지고 최고통치자 위원회·회의의 거부권을 행사함.

- 각료회의(Council of Ministers) : 각료 위원회가 행정부 역할을 담당하며 에미리트 규모별로 각료를 할당함. 역할은 그다지 크지 않고 명예직에 가까우며 국가의 재정을 감시하고 국가 예산을 편성함.

- 지방자치의회(Central Municipal Council) : 우리의 지방자치 의회에 해당하고 민간항공, 석유, 치안, 재정, 투자, 경제정책 등을 독자적으로 담당함.

○ 입법부

- 연방평의회(Federal National Council) : 임기는 2년, 의원은 총 40명임. 명목상 의회와 유사한 기능을 담당하며 각료위원회가 상정한 법안 검토·심의하여 의견을 제시할 뿐 변경하거나 결정할 권한은 없음. 사안에 대한 결정은 5명 이상의 찬성으로 이루어짐. 각 국왕이 임명한 의원들로 구성됨. (아부다비: 8명, 두바이: 8명, 샤르자: 6명, 라스알카이마: 6명, 아지만: 4명, 푸자이라: 4명, 움알카이와인: 4명)

○ 사법부

- 최고사법평의회(Supreme Judicial Council) : 1999년 사법부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설립되었으며, 사법 제도 발전을 위한 법률 제안 및 판사 임명을 위한 조언을 함.

- 법원 : 3심제(원심, 상소심, 최고심) 실시함.

- 이슬람 법원 (샤리아) : 이슬람 관련 사안에 대한 판결 및 코란의 율법에 대한 유권 해석을 내리는 종교재판소임. 2004.10 사법개혁법 공포를 통해 법무부내로 편입되었음.

외교

외교정책 기조

걸프협력이사회(GCC : Gulf Cooperation Council) 회원국 및 아랍권 국가와의 전통적인 협력 관계 유지함.

- 단, 아랍세계의 대의명분보다는 국가 실리를 우선시 하는 다각적․독자적 외교노선 유지함. 기본 외교 정책은 비동맹 중립정책으로서, 외세로부터 정치경제적 독립을 유지하는 것이며, 타국의 국내 문제 불간섭, 주권독립 존중, 무력에 의한 영토 획득을 금하고 있고,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오만, 카타르, 바레인과 결성한 GCC(Gulf Cooperation Council: 페르시아만 연안 협력회의)의 협력 체제를 강화하고 지역안보를 위하여 협력함.

- 아랍권의 단결과 안보 확립, 국교인 이슬람의 이념 구현 및 이슬람권의 단결에 주력함.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에 관해서는 반(反)이라크방침을 분명히 함과 동시에 미국·프랑스군(軍)에게 기지 사용권을 인가함. 걸프전쟁 후 이라크에 대해서는 유엔 결의의 준수를 주장하는 한편, 이라크 국민을 돕는 인도적 지원을 하고 있음.

○ 친영(親英)·친서방 외교노선 유지

- 1971년 12월 영국군 철수 이후에도 계속 고수함. 사회주의 국가들과는 교류가 없었으나 1984년에 중국, 1985년 11월에 소련, 1986년 11월에 유고슬라비아와 정식으로 수교함.

대 이란 관계

○ UAE 기본입장

- 이란을 UAE에 대한 잠재적 위험요인으로 인식하고 미국과의 안보협력 등을 통해 이에 대비코자 하고 있으나, 양국 간의 도서 분쟁에도 불구, 이란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기본적인 관계를 개선해 나가려는 입장.

- UAE 국민 중 상당수에 달하는 이란계가 경제계까지 중요위치를 첨하고 있는 외에, 이란이 UAE의 주요 재수출시장이라는 점에서 이란과의 실질적인 관계를 간과할 수 없는 점도 UAE-이란 관계의 미묘성.

○ 이란과의 도서 분쟁

- 양국 간 최대 쟁점이 3개 도서 문제에 대해 이란은 소유권에 관한한 협상의 여지가 없다는 입장인 반면, UAE는 양국 간 직접대화 또는 ICJ를 통해 해결하자는 입장(이란은 ICJ회부에 반대)

- UAE로서는 국내 정치적 측면 등을 고려해 주로 GCC, 아랍연맹으로 하여금 수시로 UAE 입장에 대한 지지를 표명토록 하고 있으나, 현재로서는 동 분쟁 해결을 위한 뚜렷한 진전이 없는 상태임.

- GCC 회원국의 대이란 관계개선관련, UAE는 우선 도서문제 해결 후 대이란 관계개선 입장이나, 사우디, 카타르 등은 대이란 관계개선은 궁극적으로 도서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는 입장임.

대 미국 관계

UAE는 걸프전의 교훈과 이란과의 도서 분쟁 등으로 대미 안보의존 추구함.

○ 이에 따라 미국의 영향력이 증대되는 가운데 미국은 이를 바탕으로 안보협력 차원에서 UAE에 대한 미군 및 군사 장비의 사전배치문제 등을 제기하는 한편, 군사 분야를 중심으로 미국기업의 대 UAE 진출을 적극적으로 추진 중임.

○ 단, UAE로서는 대외적으로 가급적 대미 안보의존 인상을 피하고자 하고 있으며, 미국의 제반 재정부담 요청에 대하여는 선별적으로 명분이 있을 경우 유보적 입장을 취하려 하고 있음.

대 EU 관계

○ EU는 영국을 위시한 서구국가의 전통적인 대 UAE 기반위에 UAE 시장에 대한 경제, 통상에서의 계속적인 우위 유지를 추구함.

○ 한편, GCC가 EU의 주요시장인데 비대 GCC의 대 EU진출은 석유화학제품 등에 대한 EU의 탄소세 부과 등으로 심한 무역 불균형 상태임.

○ 이에 따라 UAE는 여타 GCC 국가들과 GCC-EU 간 각종 협의채널을 통해 EU의 대 GCC 기술이전, 투자촉진 및 EU의 탄소세 폐지 등을 주장하는 한편, 장기적인 관점에서 GCC 공동시장 구축물을 추진함.

아랍에미레이트 체류정보

일반방문

○ 입국 시 이민 심사대에서 여권을 제시하면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입국 스템프를 찍어 주고 그것으로 단기체류 비자(30일)가 완료되며 별도의 비용은 없음. (단, 여권 분실 등으로 인하여 발급받은 여행증명서로는 UAE 입국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여권을 지참해야함)

- 2009.2월 현재 우리국민의 경우 UAE 입국 시 비자 발급비용을 면제받고 있음.

○ 단, 이스라엘 출입국 기록이 있는 여권을 소지했을 경우는 입국이 거부되므로, 이스라엘 출입국 스템프는 반드시 별지에 받아 사용하다가 아랍국가 입국 시는 제거해야 함.

기후 및 복장

기후 : 8월 두바이 날씨는 현지의 여름에 속하며 낮 기온은 영상 40도 안팎으로 일교차는 약 10-15도 가량이며 예년의 경우 습도는 70-80% 안팎임

복장

실내에서는 에어컨 시설이 완비되어 온도 조절이 되므로 춘하복이 적당하며 긴팔 상의 및 하의 평상복이 필요

. 2월 기준 기온 : 일일 최저 15도, 최고 30도 안팎(평균 22-25도)

. 공식행사 : 춘추복 또는 춘하복 수준의 양복 무난하며 실내의 경우에는 에어컨 시설이 잘 되어있어 다소 춥게 느껴질 수 있음

. 외부 활동 : 외부 비공개 행사시에는 햇살이 강해 선글라스나 피부보호를 위해 얇은 긴팔 상의가 적합

환전

○ 시내 곳곳에 산재해 있는 은행 및 환전소(Exchange)에서 자유롭게 환전 가능함. 기준 환율은 US$1 = Dh3.67이다. 적용환율은 은행이나 환전소마다 다소 상이함. 한국이나 여타 외국과 비교할 경우 은행이나 환전소가 취하는 마진이 적은 편임.

- 시내 환전소의 경우 적용환율은 보통 달러 매입 시 US$1 = Dh3.65, 달러 매도 시 US$1 = Dh3.71 수준임. 환전소가 대체로 은행보다 유리함.

- 호텔에서도 환전이 가능하나 US$1=Dh3.5로 다소 불리함.

전기 규격(220V, 50hz)

○ 한국산 전기제품 사용이 가능하며 단, 전기 소켓의 경우 영국식(3구식)을 따르고 있어 2구짜리 전기용품 사용 시에는 2구짜리용 연결플러그를 슈퍼마켓에서 구입하거나 호텔 측에 요청해야 함.

시차

○ 우리나라와의 시차는 KST-5시간으로 한국이 정오(12시)일 때 UAE는 오전 7시이며 섬머 타임은 실시하지 않음.

근무시간

○ 관공서는 오전 7시부터 오후 1시 30분까지 근무하며 목요일과 금요일은 휴무하고 있으나 2006.9.1일자로 UAE 공공부문 휴일은 목, 금요일에서 금, 토요일로 변경되었다.

○ 단, 민간부문의 경우 목, 금 또는 금, 토 휴무 중 선택할 수 있으므로 바이어 방문 등을 위한 출장 시 필히 사전에 확인이 필요함.

○ 국영기업의 경우는 기업별로 다소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오전 7시부터 오후 3시까지 근무함.

○ 민간회사 및 상점의 경우는 회사 방침에 따라 상이하며 가장 일반적인 경우는 토요일 에서 수요일까지는 8:00-13:00, 16:00-19:00까지 근무하며 목요일 오전근무 (8:00-13:00), 금요일 휴무임. 토요일에서 수요일까지 8:00-13:00, 16:00-19:00까지 근무 하고 목요일, 금요일을 쉬는 경우도 있음.

○ 상점의 경우 대개 오전 10시에 영업을 시작하며 오후 10시에 업무를 종료하며 새벽 1시 까지 영업하는 곳도 있음.

○ 외국계 업체의 경우에는 본사와의 업무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금, 토요일을 휴무 하는 경우도 많음.

○ 또한 라마단 기간 중에는 대부분의 업체들이 단축(9시-2시)근무 하므로 오후에는 상담이나 전화통화가 불가함.

전화통화 방법

투숙호텔에서 전화 통화 시 : 9번을 눌러 외부선 연결 후 번호입력

국제전화 이용 시

- 국제전화코드(00)+국가코드+지역번호+전화번호

- 서울의 경우 : 00+82+2+전화번호

○ UAE에서 팁은 의무는 아니며 팁을 주지 않아도 큰 문제는 되지 않으나 팁 관행이 확산되고 있으며 호텔 등에서 포터가 짐을 옮겨줄 경우에 5디람 (한화 약 1500원)정도의 팁을 지불하면 적당함.(침실 청소 시 머리맡 눈에 띄는 곳에 침대 1개당 5디람 정도를 놓아두면 됨)

○ 음식점에서는 서비스료가 음식요금에 포함되어 있는 경우에는 별도의 팁을 줄 필요는 없으나 서비스료가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경우에는 음식 값의 5-10% 정도를 팁으로 주어도 무방하며 의무는 아님.

교통

○ 택시 : 두바이 미터택시는 모두 新型으로 2000 cc 이상의 중형차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회사이름이 적혀 있으므로 구분이 어렵지 않음. (DUBAI TRANSPORT TEXI, METRO TEXI, CARS TAXI 등)

- 일반기본 요금(주간) : 3Dhs ( 1km 마다 1 Dhs 추가 )

- 일반기본 요금(야간) : 3.5Dhs

- 두바이 국제공항 출발 기본요금 : 20 Dhs

○ 렌트카 : 대중교통 수단이 불충분한 만큼 렌트카 이용이 활발하며, 공항과 시내 곳곳에 렌트카 사무실이 있어 편리하게 각종 차량을 렌트할 수 있음. 도시 간을 연결하는 대중교통수단이 있기는 하나 외국인 방문객이 이용하기는 어려우며 렌트카나 일반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바람직함. 직접 운전하기 위해서는 국제면허증이나 임시면허증이 필요함.

치안

○ 치안상태는 양호한 편이나 늦은 시간에 혼자 어두운 곳을 걷는 것은 삼가 할 필요가 있으며 특히 인적이 드문 곳에 혼자 다니는 것 보다는 그룹으로 행동하는 것이 안전하다.

운전

현지인들의 운전습관이 난폭한 편이며 특히 야간 운전 중 과속으로 인한 사고가 빈발한 지역이다.

긴급전화

○ 경찰서 : 999

○ 교통경찰 : 996(교통사고접수)

○ 전화번호 안내 : 181

○ 콜택시 : 04-208-0808

○ 대사관 : 02-443-5337

○ 공항도착안내 : 04-216-6666





* 위의 자료는 외교통상부, KOTRA, 수출입은행, 한국무역협회, CIA 등의 자료를 기초로 작성되었습니다.




여행 정보



주요 관광지


인도는 5,000년의 역사와 더불어 풍부한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는 세계 굴지의 관광 자원국임.

○ 바라나시와 카쥬라호의 힌두 유적지, 보드가야와 아잔타의 불교 유적지, 델리와 아그라의 이슬람 유적지 등이 유명함.

- 최근에는 히말라야의 설경과 트레킹, 라자스탄의 사막 사파리 등 대자연의 풍경을 즐기려는 관광객도 크게 늘어나고 있음.

○ 관광개발공사(ITDC)는 열악한 숙박 및 교통시설 개선을 위하여 노력하는 한편, 관광객 유치를 위한 홍보를 전개중

○ 뉴델리 및 인근 주요 관광지

- Red Fort : 무갈왕조 제 5 대 황제 샤자한이 건설(1639~1748 년)한 성으로 올드델리의 대표적 관광명소로 붉은 빛의 사암으로 지어져 '붉은 성'이라는 이름을 얻었음.

- India Gate : 제1 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여 전사한 9 만 명의 인도 병사를 위한 높이 42m 의 위령비

인근 지역

- Taj Mahal : 아그라(델리에서 남동쪽으로 약 220Km)에 있는 세계7 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꼽히는 건축물로, 무갈 제국의 제 5 대 황제 샤 자한이 죽은 왕비를 위해 지은 무덤 (1631 건축시작, 1653 완성)

- 암베르 포트: 자이푸르 외곽 언덕에 위치한 가장 볼 만한 장소 중 하나, 1600 년 만싱경에 의해 시작되어 현재 모습으로 완성된 것은 18 세기 스와이 싱에 의해서임. 붉은 사암과 흰색 대리석으로 구성된 힌두와 무슬림 건축 혼합의 대표적인 예임.


비자


○ 인도에 입국하는 모든 외국인은 비자가 필요함. 우리나라와는 2005. 10월부터 외교관 여권 및 관용 여권에 대해서는 90일 이내에서 비자가 면제됨.

비자 종류

기간

발급 주체

단기비자(복수)

15일 ~ 6개월

해외 주재 인도 공관(대사관) 재량으로 발급

장기 비자

1년 이상

해외 주재 인도 대사관이 본국(인도) 해당 부처 (Ministry of Home Affairs)에 조회하여 발급

- 1년 이상의 비자 소지자(외교관 제외)는 인도 도착 후 1주일 이내에 외국인 등록소(FRRO)에 등록해야 함.

- 인도에서 체류 중 체류 기간을 연장하고자 할 경우에는 외국인 등록소(FRRO)에 신청하면 됨.

- 비자 신청 시 특정 지역에 대해서는 특별 허가가 필요함.

○ 발급처: 주한인도대사관(서울시 용산구 한남동 37-3)

- 전화번호 : (02) 798-4257/4268

- 근무시간 : 09:30~13:30, 14:00~16:00(공휴일 및 토요일 휴무)

- 소요시간 : 신청 후 3박 4일

- 소요비용: 6개월 65달러, 1년 이상 115달러, 2년 이상 210달러

○ 구비 서류

- 단기비자 : 신청서(APPLICATION FORM), 사진, 여권

- 장기비자 : 신청서, 인도 측의 초청장 또는 계약서 등의 근거 서류, 여권


입출국 정보 및 세관 정보


○ 입국 정보 및 세관 신고

- 인도 루피화(Rupee)의 반입 불가

- 5,000달러 이상 반입시 세관에 신고

- 950ml 이하의 위스키 1병, 담배 2박스(20갑) 면세 통관

- 기타 향수, 화장품 등 2,400루피(85달러)까지 면세 통관

- 비디오카메라 등 대형 아이템은 여행장 물품(TOURIST BAGGAGE RE-EXPORT FORM)양식으로 신고 후 반입하고 출국 시 신고

- 상업적 가치가 있는 샘플의 경우 인보이스를 반드시 지참하여 필요시 관세를 내고 통관해야 하며, 인보이스가 없을 경우 세관원 임의로 관세를 산정하거나 압류하는 경우가 있음.

- 출국 및 입국 공항에 모두 환전소가 있으며, 환전에는 반드시 환전 증명서를 받아 보관 하여야 나중에 외화로 재환전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함.

○ 출국 정보 및 세관 신고

- 출국 시 원칙적으로 공항세를 지불함. 파키스탄, 네팔, 방글라데시, 부탄, 스리랑카 등 인접국인 경우 150루피, 기타 국가로 출국할 경우 300루피이나 항공권 구매 시 이 비용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임.

- 인도에서 120 일 이상 체재 후 출국할 경우에는 "소득세 납입증명서(INCOME TAX CLEARANCE)"를 제출해야 함.

○ 주의할 사항

- 출장차 입국하는 업체의 경우 대부분 제품의 샘플 등을 지참하고 입국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 경우에는 관세 부과를 고려하여 미리 인보이스를 소지하는 것이 바람직함. 인도는 아직 어느 정도의 언더 밸류는 인정되고 있으며 제품에 따라 다르지만 최대 40%까지도 언더 밸류를 하는 것으로 알려짐.

- 전시물품의 경우 반송이 확실할 경우 까르네(Carnet)를 받아 오는 것이 최선이지만, 경우에 따라 현지에서 처분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 일단 인보이스를 지참하는 것이 좋음.

- 또한 아무 준비 없이 입국하는 경우 화물을 찾아서 세관을 통과하기 전에 트렁크나 가방이 분필로 X 마크를 그어둔 것은 반드시 지우고 나오는 것이 요령. 이는 X 레이 체크에서 세관 검색대에서 검사하라는 표식이기 때문임.


환전


○ 통화 단위/종류

통화 단위

RS(RUPEE, 루피), PAISA(파이사, 1/100RS)

동전

지폐

25, 50 PAISA, 1, 2, 5RS

2, 5, 10, 50, 100, 500, 1,000RS

고액 계산 단위

(인도에서만 통용)

LAKH(랙: 10만 루피),

CRORE(크로르: 1,000만 루피)

○ 환전은 공항 환전소나 시내 은행 및 호텔에서도 가능하지만, 호텔의 경우 은행이나 공항 환전소에 비해 다소 불리한 환율을 적용

○ 또한 일정 수준 이상의 레스토랑이나 쇼핑센터의 경우 달러로 지급이 가능하지만 달러가 통용되지 않는 곳도 많아 일정 금액 이상의 경우 환율 면에서 가능한 환전하여 지급하는 것이 유리함.

- 국제적인 카드는 일정 규모의 상점이나 호텔, 레스토랑에서 사용하는데 거의 문제가 없음.


우편


○ 인도의 우편 서비스는 정부가 운영하는 우체국과 민간 기업이 운영하는 우편 서비스로 구분됨. 그러나 정부 우체국은 시간이 많이 걸릴 뿐만 아니라 서비스의 질에서 민간 업체에 비해 크게 뒤지기 때문에 대부분 민간 업체의 우편 서비스를 이용

○ 꾸리에(Courier) 서비스라 불리는 인도의 민간 우편 서비스 업체는 수십 개가 존재하며 대부분 특정 민간 우편 업체를 지정해서 우편물이 있으면 해당 업체의 직원이 우편물을 수령하여 배달함.

- 비용은 델리, 뭄바이, 첸나이의 경우 시내 배달 비용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으며 비용은 10-20루피(250원), 인도 최남부의 경우 약 40루피(1,000원) 정도


국제 전화


○ 국제전화 (인도에서 한국으로 전화를 걸 때)

- 00(국제전화) + 82(한국 국가코드) + 지역 코드(단 앞자리‘ 0’ 은 제외) + 전화번호

- 서울 전화인 02-123-4567번으로 전화한다면 00-82-2-123-4567 로 함. 한국과의 국제 전화 비용은 지난 수년간 많이 인하되어 공중전화 기준으로 1분당 약 400원 정도

○ 인도시내에서 국제전화를 할 때는 거리에서 STD/ISD라고 적힌 노란 간판이 달린 공중전화 박스에서 할 수 있지만, 우리와 같이 동전이나 카드를 투입하는 것이 아니라 미터기로 사용 내역이 자동 기록되고, 공중전화를 관리하는 사람이 청구서에 따라 금액을 청구함. 호텔 등에서도 당연히 국제전화, 인도 시외 전화를 이용할 수 있지만 일반 공중전화보다 몇 배 이상 비싸므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음.


국내 전화


○ 인도 국내 전화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첫 자리가 0번으로 시작되는 지역(도시) 번호를 누르고 전화번호를 누르면 됨. 예를 들어 뭄바이에 있는 123-4567번으로 전화할 때는 022-123-4567로 누르면 됨.

○ 또한 최근에는 인도에서도 핸드폰 사용이 일반화되고 있어 출장 시 전화를 사용하고자 할 경우는 핸드폰을 임차하여 사용하는 것이 가장 편리하고, 비용도 싸게 이용할 수 있음.


전압


○ 인도는 전력 공급이 수요를 쫓아가지 못해 약 10%정도의 수급 격차가 상존하여 단전이 일상화되고 있음. 일반 가정이나 호텔 등에서 자체 발전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으며, 불안전한 전기 사정으로 일반 생산 공장에서도 외부 전기를 사용하지 않고 자체 발전기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음.

○ 전기 규격은 50HZ, 220V가 표준임.

- 한국(60HZ)과 헤르츠가 달라 한국에서 반입한 국산 전자 제품(특히 모터 부착)의 경우 가동되기는 하지만 100% 효율을 발휘하지 못하고 일정 기간(1~2년) 사용 후 문제가 있는 경우도 있음.

○ 전압의 등락폭이 커 180~280V 까지 움직이므로 민감 제품은 안정기를 사용하는 것이 필수적임. 이외에도 컴퓨터 등에는 UPS를 부착하여 전기가 나갈 경우 자동으로 UPS 전원이 연결되도록 하는 것이 일반적임.


교통


○ 인도에서 외국인으로 이용할 수 있는 시내 교통 수단은 택시가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음. 택시에는 우리 식의 미터기를 장착한 택시가 있으며 일반 거리에서는 지나가는 택시를 세워서 이용할 수 없으며, 호텔이나 특정 지역에서 택시를 불러서 타고 가는 형태임.

○ 택시 요금은 대표적으로 델리의 국제선 공항(인디라간디 공항)에서 약 25~30분이 소요되는 시내 호텔까지의 요금이 200루피(약 5 불) 전후이며, 뭄바이, 첸나이의 경우 공항에서 시내 호텔까지 요금은 300~400루피 수준임.

- 미터기가 부착되어 있기 때문에 반드시 타고나서 미터기로 하라고 운전사에게 확인하는 것이 요금에 대해 분쟁을 없애는 방법

○ 일반 시내버스의 경우 요금이 저렴하지만 연결 노선이 불편하고 언어 소통, 추행 등의 문제가 있어 힌디어 구사가 어느 정도 가능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용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며, 특히 여성의 경우 버스 내 추행 가능성이 많은 점도 유의해야 함.


도량형


○ 표준 단위

단위

도량형

거리

Meter

중량

Gram

○ 실제 생활에서는 feet가 주요 도량형으로 사용되고 있어 투자 업체의 공장 구매 및 주택 임차의 경우 한국에서 사용하는 평당으로 환산하기 어려워 도량형 환산표를 사전에 준비하는 것이 거리 및 면적을 측정하는 데 도움이 됨.




○ 인도에서도 호텔이나 고급 식당 등에서 일정한 금액의 팁은 상당히 보편화되어 있으나 미국과 같이 팁 관행이 엄격하지는 않으며, 다만 크게 부담을 느끼지 않고 가능한 상황에서는 주는 것이 좋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됨.

○ 호텔에서 숙박을 할 경우 1박당 40~50루피, 호텔에서 벨보이나 짐 운반 등의 서비스를 받을 경우 1인당 10루피 정도를 주면 적당





* 위의 자료는 외교통상부, KOTRA, 수출입은행, 한국무역협회, CIA 등의 자료를 기초로 작성되었습니다.





 

여행 정보



주요 관광지


○ 지나 묘지(The Tomb of Jinnah)

- 파키스탄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 받는 MOHAMMAD ALIJINNAH (QUAID-E-AZAM)의 묘소로 카라치 주요 호텔에서 15분 거리에 있음.

- 이슬람 양식으로 지어진 대형 건물 내 관이 안치되어 있으며 수문장 교대가 볼만하며 또한 지나의 업적 및 소장품이 진열되어 있는 박물관도 있어 파키스탄의 건국 역사를 살펴볼 수 있음.

모헨조다로

- B.C. 3000~1500년경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인더스 문명의 중심으로 이루는 도시유적으로서 유네스코에 등록된 세계적인 유적지

- 모헨조다로에서 볼 수 있는 면밀한 도시 계획은 벽돌의 크기나 자 ·저울추의 출토에서 볼 수 있는 도량형의 규격화와 함께 철저한 관리가 이루어졌음을 추측하게 함.

- 그 밖에도 토기·동기(銅器), 아직 해독되지 못한 문자를 새긴 인장(印章), 장신구 등의 유물이 있음.

LAHORE

- 라호르는 무굴제국 시대의 수도로 SHALIMAR 정원, BADSHAHI 사원 등 유적 및 유물을 관광할 수 있는 곳임.

PESHAWAR

- 파키스탄 북동쪽 아프가니스탄과 접경하여 있는 도시로 실크로드의 주요 교역로. 인근 산악 지대의 풍경이 뛰어남.


비자


○ 파키스탄 정부는 미국의 대 아프가니스탄 공격 관련 사태 추이에 따라 출입국 보안 강화 조치를 취하여 2001.9.26 이후부터 파키스탄에 입국하는 외국인은 재외 공관에서 발행하는 유효한 입국 비자를 취득하여야 입국이 가능함.

○ 파키스탄의 조치로 그동안 지속되었던 한ㆍ파 비자 면제 협정은 한시적으로 유보되었으며 따라서 파키스탄 입국을 원하는 한국인들은 반드시 주한 파키스탄 대사관 또는 영사관에서 입국 사증(비자)을 취득하여야 파키스탄으로 입국할 수 있음.


출입국 절차 및 유의사항


○ 입국 시 여권(비자), 입국 신고서를 입국 심사대에 제출하고
입국 허가 받으며 출국시에는 비행기표를 소지한 승객만 공항 건물 내에 입장할 수 있음.

- 출국장에 들어가자마자 모든 수하물은 X-Ray 투시 검사를 받음.

○ 세관 검사

- 기내에서 세관 신고서를 작성하는데, 특별한 것이 없으면 신고하지 않아도 됨.

- 세관검사대는 X-Ray 투시기가 있어 수하물은 투시기를 통과시켜 의심이 가는 가방만 열어 보나, 그냥 통과시키는 경우도 있음.

○ 주의 사항

- 이전에는 내국인에게는 술, 비디오테이프, 전자제품 등에 엄격한 검사를 하고 외국인들에게는 검사를 완화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군사정부집권(1999. 10월) 이후, 특히 최근 들어서 외국인 수하물에 대한 검사도 엄격해져 주류 반입 등은 엄격히 규제되고 있음.

- 수하물을 찾은 후에 입국장으로 나올 때는 수하물표(Tag)를 제시하여 본인의 수하물임을 반드시 증명해야 하므로 수하물표 지참이 필요함.


통신/전화


○ 전화 사용

- 전화 회선 사정이 좋지 않으며 전화 보급률이 낮음.

- 서울 국제 통화료의 경우는 분당 약 84루피이며, 시내 통화인 경우는 분당 8루피, 시외 통화 요금도 매우 비싸 국제 통화 요금의 50%에 육박함.

휴대폰

- GSM 방식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CDMA는 도입 초기 상태

- 휴대폰은 SIM Card라는 번호 칩을 구입하여 장착하고, 대부분 정액 카드를 사(보통 1,000루피) 요금을 사전 입력시켜서 사용함.

- 국내 업체의 로밍 서비스를 이용할 경우 출발 전 공항에서 로밍폰을 지급받아 현지에서 사용할 수 있으나 통화 연결이 원활하지 못하고 요금이 상당히 비싼 편임.

한국으로의 통화 방법

- 현지에서 한국으로 전화 시는 먼저 00를 누르고 다음 국가, 시, 해당 전화번호를 누르면 됨.

- 교환을 통해서 전화 시는 0102 또는 102를 누르면 교환이 나오는데 이때 해당 전화 번호를 불러주면 되며, 주의해야 할 점은 파키스탄에서 국제 통화 시 수신자 부담(COLLECT CALL)은 불가능함.

인터넷

- 파키스탄은 인터넷 환경이 매우 좋지 않으며, 통신 인프라의 부족으로 ADSL 서비스는 도입 단계에 있어 한국에 비해 비용이 높으며, 가정에서는 주로 전화선을 많이 사용함.

편지/소포/특사 운송 관련

- 파키스탄 국내 우편은 Pakistan Post를 이용할 수 있으며 국내외 소포 및 특사운송 회사로는 DHL을 비롯 OCS, FedEx 등 다수의 다국적 기업이 진출해 있음.


교통


○ 시내 교통 : 버스, 택시 및 릭샤 등이 있음

- 버스, 택시 및 릭샤(3륜차) 등이 있으며 버스는 대부분 에어컨 시설이 없고 상태가 불량하여 외국인이 이용하기에는 부적합함.

- 릭샤(3륜차)도 공해 및 안전상의 문제로 권장할 만하지 않음.

- 가급적 택시를 이용하는 편이 바람직한데, 택시를 이용할 경우 사전에 목적지와 요금을 협의한 후 이용해야 요금 관련 불필요한 논쟁을 피할 수 있음.

철도

- 철도의 총 길이는 8,775KM으로 기관차 시설의 노후화 및 부족으로 원활하게 운영되지 못하고 있음.

- 외국인이 이용하기에는 적절하지 못하며 현지 유력 인사들은 대부분 항공편을 이용함.


전압


○ 전압 : 220V(산업용 440V), 50Hz

○ 전압이 불안정하여 200~240볼트 범위를 수용 하는 제품이 수명이 오래감.

○ 전압에 민감한 전자제품(냉장고, 오디오, 컴퓨터 등)은 Automatic Voltage Regulator를 사용하는 것이 좋음.

○ 산업용은 380볼트까지 떨어지기도 함.


도량형


○ 파키스탄의 도량형은 기본적으로 우리나라와 같이 미터, 그램, 톤, 리터 등을 기본으로 채택하고 있음.

○ 영국 식민지의 영향으로 feet, inch, 파운드 등도 많이 사용됨.


환전


○ 화폐 단위 : 파키스탄 루피(Rupee)

○ 환전은 공항 내 환전소 호텔, 은행, 기타 공인 환전소 등이 있는데 시내 공인 환전소에서 환전하는 경우 은행이나 호텔보다 유리

○ 환전 시, 환전 증명서를 가급적 보관하는 것이 재환전(루피화를 미 달러로)을 할 때 우대를 받을 수 있음.

○ 대형 호텔 및 일부 고급 레스토랑을 제외한 대부분의 상점에서는 신용카드 결제 시스템의 미비로 인해 신용카드 사용이 불가능한 실정임.


여행시 유의사항


○ 치안

- 카라치의 치안 상태는 좋지 않은 편임. 차량 절도 및 강도 사건이 자주 발생하며 간혹 시내에서 총격전이 벌어지기도 함.

- 파키스탄은 폭탄 테러 다발 국가로 정치, 종교, 또는 동업자 간의 알력 다툼으로 인한 폭탄 테러가 종종 발생함.

- 따라서 모든 곳에서 검문검색이 심함. 호텔에서도 차량 트렁크 및 엔진후드를 열어보고 차 내부나 밑에 폭발물이 있는지 검사함. 또 호텔 및 주요 건물의 출입문에서는 검색대를 통과해야 하고 핸드백이나 가방도 열어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건물에 검색이 있으며 특히 공공 건물이나 외국인 회사가 많은 유명 건물이 심한 편임.

○ 응급

- 병원이용의 경우, 현지 병원은 일반적으로 예약 후 치료가 가능하나 긴급 환자의 경우는 응급실을 이용할 수 있으며, 응급실은 휴일이나 근무 후(24시간 근무)에도 운영됨.

- 병원 내 약국은 대개 새벽 2시까지 열어 긴급한 약은 병원 내의 약국에서 처방전 없이 구할 수 있고, 현지에서 감기약은 COF COL, 두통제 및 해열제도 쉽게 약국에서 구할 수 있음.

팁 문화

- 호텔이나 식당 등에서의 팁 지불은 관행화되어 있는 편임.

- 금액은 서비스의 형태나 질에 따라 다르나 고급 식당 이용 시 100루피 안팎의 수준에서 지불하면 됨.

기타 주의 사항

- 회교국인 관계로 과다한 노출은 삼가고, 특히 여자와 사진을 찍자고 하거나 악수를 청하는 것은 큰 실례임. 필요 이상으로 자주 여자에게 눈길을 주는 것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므로 삼가는 것이 좋음.

- 물은 항상 생수(용기로 포장되어 있는 것)를 사용하는 것이 좋으며 특히 물 때문에 설사 등 복통을 일으키는 일이 잦기 때문에 최대한 주의가 필요함.

- 술과 돼지고기는 금지되어 있으며, 금식 기간인 라마단 중에는 외부에서 음료를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는 것도 조심하는 것이 바람직함.

- 현지인들은 문화 및 종교적 자부심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거래 시 이에 대한 비방은 금물이며, 호텔이나 공공장소에서 반바지 차림으로 다니는 것도 좋지 않음.






* 위의 자료는 외교통상부, KOTRA, 수출입은행, 한국무역협회, CIA 등의 자료를 기초로 작성되었습니다.




고묘젠지를 둘러싼 야트막한 담장길을 따라 나오는데, 단풍나무가 빼꼼히 배웅을 한다. 들어설 때 보이지 않던

풍경, 나무 밑둥으로 하얀 자갈이 고랑을 그리며 깔려 있는 모습이라거나, 저 건물 너머 그림같이 이쁜 정원이

펼쳐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고묘젠지에서 다자이후 역으로 돌아나가는 길, 길 양옆에 이런 울타리를 쳐 놓았다. 푸른 대나무를 다듬어 긴

장대로 만들고는, 목책에 구멍을 뚫어 걸어두거나 저렇게 대나무를 가뿐히 접어 고정시켜 놓은 모습이 특이하다.

커다란 규모의 관광포스트들, 예컨대 다자이후텐만구, 큐슈국립박물관, 혹은 고묘젠지 이외에도 자잘한 사원이나

사당같은 것들이 곳곳에 즐비하다. (아마도 관광객) 출입금지인 걸로 보아 신사 본연의 목적에 충실한 곳인 걸까.

오후가 되면서 사람들은 더욱 많아졌다. 753명절을 지내러 부모님 손잡고 텐만구에 가는 듯한 가족들하며, 점점이

보이는 소풍나온 듯한 학생들까지.

그런 와중에도 비둘기 한마리에 완전 몰입해 있는 귀여운 딸내미. 주위의 공기가 들썩들썩, 사람 버글대는 휴일

분위기로 꽉 차 있지만 그런 따위에 연연치 않는 듯, 꼬맹이와 비둘기 주위엔 왠지 다른 질감의 공기가 느껴진다.

석탑 위에 버티고 선 저 동물형상이 우스워서 사진을 찍었는데, 글쎄 잘 안 나온 거 같다. 물고기나 해마 비슷하게

생긴게 꼬린지 발을 힘껏 차올리고서는 마치 물구나무서다가 고개만 꺽인 자세로, 정면을 보고 있다.

고묘젠지의 담장길이 끝나는 곳에 이르면 바로 이렇게 민가들이 버티고 서있다. 커다랗게 적힌 한자들 때문일까,

뭔가 한국같지만은 않은 분위기가 풍기는데, 그게 어디서 비롯하는지 모르겠다.

국화 화분을 앞에 내놓은 채 장사 중인 가게도 있고. 근데 이사진은 내가 뭘 찍고 싶었던 걸까.ㅡㅡ;

이렇게 이쁘게 잘 관리받고 있는 집도 있고. 일본의 집은 작기로 유명하다는데 그렇게 봐서 그런지 정말 다 작아

보인다.

이건 뭘까. 뭔가 넓은 부지를 차지한 채, 사당을 둘러싼 녹지에 원형 산책로까지.

그렇게 다시 다자이후 역근방까지 도로 나왔다. 살짝 꾸물꾸물한 하늘, 꾸물꾸물 모여들어 이젠 장사진을 이룬

관광객들 혹은 참배객들.

화장실을 잠시 가려는데 여기도 남/녀 표시가 특이하다. 여기저기서 이렇게 화장실 남녀표시를 그간 찍어온 것만

따로 모아보는 것도 재밌겠다 싶다. 선남, 선녀.

다자이후 근방에는 다자이후텐만구, 큐슈국립박물관, 그리고 고묘젠지가 일단 역 근처에 옹기종기 모여 있어서

금방금방 돌아볼 수 있고, 약간 떨어져서 절이라거나 유적지, 혹은 과거 토성의 흔적같은 게 산재해 있다고 한다.

다자이후 역에 가면 자전거 대여소가 있다고, 거기서 빌려서 돌아보는 것도 괜찮을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갔는데

별로 의지가 없어서였는지 찾지 못했다. 후쿠오카(텐진)역에서 다자이후까지 가는 법은 위와 같음.ㅋ


다자이후 역에 내리면, 다자이후덴만구 이외에도 고묘젠지, 그리고 교토박물관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고묘젠지는

'고케데라-이끼사원'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곳으로, 이끼로 육지를, 흰모래로 바다를 표현한 정원과 돌로 '빛 광'

(光)자를 써놓은 정원, 그리고 아름다운 단풍과 진달래로 유명한 사원이라고 한다.
고묘젠지 입구 모퉁이길에 세워져있는 볼록거울에 꽉 채워진 이웃집 풍경.

고묘젠지는 다자이후텐만구를 돌아보고 나오다 보면 빠지는 조그마한 샛길따라 나타난다.

고묘젠지, 대체 이게 무슨 뜻일까 했었는데 한자를 보니까 좀 풀린다. 광명선사..구나. 안내판의 한자들을 띄엄띄엄

읽어보니 임제종 계열에 속하는 철우원심스님이 약 700년전 창건한 절로서 다자이후텐만구의 결연사라는 거 같다.
절 앞측 정원은 열다섯개의 돌이 빛광자를 나타내고 있다는 큐슈 지방의 유일한 석재정원이라는 듯 하고, 절

내부의 정원은 육지나 섬을 이끼로 표현했고, 하얀모래로 바다를 표현했다는 것 같다. 음...어디까지나 내 맘대로의
해석.ㅋ

들어서려는데 현판의 초록빛이 이목을 끈다. 아마 이끼사원으로도 불리는 이곳의 특징을 감안해서겠지만, 녹색을

사용해 저런 편액 글씨를 써놓은 것은 처음 봤다. 대문 너머 붉은 단풍과 어울려 산뜻한 느낌을 준다.

대문을 지나면 바로 나타나는 하얀 돌 가득 깔린 앞마당 정원. 여기가 아마도 빛 광자 모양으로 돌들이 늘어서

있다는 곳일 텐데, 전혀 알아볼 수가 없었다. 대체 어떻게 그 글자, 光자가 나타난다는 걸까. 외려 눈에 띄는 건

저토록 완벽하게 고랑이 파인 바닥. 긁개 같은 것으로 잘 가다듬어 놓은 거같은데, 그 이랑 틈새에 단풍잎들이

내려앉아 더욱 선명히 굴곡을 드러냈다.

고묘젠지 안으로 들어가면 보이는 큰 방, 방 앞쪽에 마치 무대처럼 꾸며져 있는 이 조그마한 단상과 좌우에 도열한

그림 그려진 문짝은...뭘까. 뭔가 이 신사의 중심부가 여긴가 보다 싶다. 누군가의 죽음을 기억하러 왔는지 검은

옷의 사람들이 이 곳에 무리져 있기도 했고.

이제 절 내부의 정원으로 들어갔다. 사실 들어갈 수는 없는 것 같았고, 모두들 목조건물 대청마루랄까, 내부를

향해 펼쳐진 대청마루, 혹은 열린 복도에 서서 정원을 감상했다. 하얀 모래로 바다를, 초록색 이끼로 땅을 표현했단

설명이 그럴듯 하다. 그렇담 저 튀어나온 괴석들은 바다에 불쑥대며 솟은 섬들이겠고, 저 나무들은...땅덩이의

사이즈와 비례해 생각하건대 거의 하늘을 꿰뚫만큼 높이 솟은 신목이겠군.

이런 정원을 밟게 해놨다면 얼마나 쉬 망가지겠냐만서도, 한번 저렇게 그림같이 잘 꾸며진 정원을 거니는 것도

정말 운치있고 행복할 거 같다. 저 하얀 자갈들의 바다는, 밟을 때 자갈자갈 소리를 내지 않을까.

고묘젠지 본건물과 옆의 건물을 잇는 구름다리. 이 다리를 건너면 뭐가 나올까 해서 살짝 들여다봤더니, 경읊는

소리와 함께 꽤 많은 사람들, 아마도 가족들이 제를 지내고 있었다. 여긴 단순히 관광지가 아니라 실제로 그런

종교의식을 거행하는 곳이었던 게다. 자연 발걸음소리도 더욱 죽이고 걷게 되었다.

이런 식의 대청마루, 혹은 열린 복도. 건물과 바깥 마당을 막고선 저 울타리가 있으니 마루라기에는 좀 그런가.

11월 중순의 일본 후쿠오카, 처마지붕 아래 단풍이 연하게 든 나무들을 담고 싶었는데..지붕 아랫도리가 너무

어둡게 나왔다.

건물 벽면을 따라 쭈욱 돌면서 정원을 완상하다가 한 컷. 정원과 건물 사이를 가르고 있는 저 경계가 선명한 걸

보면, 정말 이 정원은 두고 보기 위해 만들어진 정원같긴 하다. 흔히 일본과 한국, 중국의 문화적 차이를 담벼락

높이가 거의 낮고, 조금 높고, 매우 높다면서 그 의미를 이렇게저렇게 부여하곤 하는데, 정원만 두고 보면 중국과

일본의 정원은 보통 도매금에 묶이곤 하는 것 같다. 한국의 '자연미'에 비해 중국과 일본은 너무 인위적이라거나

특히 일본은 인간과 유리된, 감상용으로서의 정원을 꾸민다거나. 모종의 가치평가가 내재된 그런 지적을 꼭

따르고 싶지는 않지만, 여긴 확실히 그런 감상용 정원이긴 하다.


다만 그런 '감상용'이라는 단어가 갖는 모호성을 생각해 보자면, 저런 풍경을 배경으로 한 채 차를 한 잔 한다거나

사람들과 담소를 나눈다면..굳이 유리되어 있다고 말할 필요는 없지 않나. 당장 유센테이코헨같은 정원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다니면서 풍경에 녹아들었으니, 꼭 "일본의 정원은 이래"라고 말할 것도 아닌거 같기도 하고.

옆건물로 건너가는 길, 조그마한 다다미방안에 무릎을 단정히 꿇고 앉아 격자무늬 창을 통해 정원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

조그마한 물받이 돌그릇...이거 대체 이름을 뭐라고 해야할지 원...에 뭐가 있다고 저렇게 불편한 자세로 몇분씩

카메라를 들이대고 계시던 할아버지 한 분. 그 열의가 좋았다. 그리고 대체 무엇을 찍으시는 건지 무지하게

궁금해져서, 옆에서 여기저기 얼쩡거리며 구경하다가 드디어 빈 자리를 꿰어차고 들어앉았다.

아..!! 작게 탄성이 터졌다. 그 안에 단풍나무가 담겨 있었다. 물에 비친 선연한 붉은 빛의 단풍나무.

옆에는 정말 제대로 된 마루에서 사람들이 단정하게 무릎을 꿇고 앉아서 정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원을 보기도

하고, 옆사람과 이야기도 하고, 아이들이 노는 것에 때론 눈길을 빼앗기기도 하면서, 그렇게 유유자적하는

분위기. 뭔가 이 곳은 다른 질감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저 사람들이 앉아서 보고 있던 풍경. 11월인데, 아직 대세는 청량한 초록빛이다.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서려는데, 가지런히 정리된 게다와 담백한 나무질감의 서랍장이 차분하다.

고묘젠지의 가을 풍경.

그래도 제법 울긋불긋한 느낌인데다가, 하얗게 내려앉은 가을 햇살이 지붕에 서렸다.

2층으로 올라가 난간을 잡고 내려본 고묘젠지의 앞면 정원. 완벽하게 빗살무늬가 새겨진 하얀 자갈정원바닥에

빨간 단풍잎이 고랑마다 내려앉아 더욱 선명하다.

고묘젠지를 들고나는 입구. 엉성하게 연두빛 잎사귀를 틔운 나무가 시야를 가렸다.

뭔가 그럴듯한 포스를 풍기며 가지를 사방에 뻗어나간 붉은 단풍.

2층 지붕에 살짝 가려진 단풍나무. 얼핏 보면 지붕에 불이 붙은 것 같지 않냐...는 강변이었는데, 어떤지 모르겠다.

한바퀴 돌고 잠시 정말 대청마루에 앉아서 좀 쉬었다. 나무의 원색을 최대한 끌어낸 채 별다른 채색이 더해지지

않은 담백하고 단정한 건물이, 붉고 푸른 주변 풍경에 더해져 제법 화려한 느낌도 풍긴다.


"위험하다!!"라는 표지판이 산책로와 산책로가 아닌 건물옥상 어딘가를 구분해 놓은 이곳은 후쿠오카 한 복판의

계단정원을 품은 건물, 아크로스 후쿠오카. 계단식 건물 옥상 가득히 펼쳐진 녹지에 구불구불 나있는 산책로를

빗겨나면 왠지 건물 내부 어딘가로 쿵, 추락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이 엉성한 한국어로 된 경고판때문에 비로소

생겨난 것이었다.


후쿠오카 한복판에 나무가 무성한, 비탈진 야산같은 건물이 있다고 들었다. 여행을 다니며 건축물 순례를 하는 건

좀 내키지 않았던 터라 그냥 모르쇠 스킵할까 하다가, 텐진 중심부 근처길래 설렁설렁 산책 겸 걸어가 보기로 했다.
후쿠오카를 몇 개의 구역으로 나누는 개천, 물이 마르는 겨울철 11월이라 그런지, 아니면 수량 자체가 원래 풍부치

못했던 건지 물이 잘박잘박하다. 유속도 그렇게 빠르지 않아 수면 바닥에 이끼가 잔뜩 끼어있었고 냄새도 조금

풍겼다. 이걸 또 '신화적인 돌파력'을 가졌다는 어떤 사람이 본다면 싹 갈아엎고 수돗물을 흘려보내자고 할지 모를

일이지만..그래도 여긴 선진국 일본이다.

지나가며 잠시 들러본 섹스샵. 일본이라 좀더 특이한 게 많지 않을까 했는데, 올 여름 파리 몽마르뜨언덕 아래의

섹스샵거리에서 봤던 것들과 별반 다를 게 없어서 조금 실망했다. ([파리여행] 물랑루즈 거리의 홍등가.)

단물이라곤 한방울도 남지 않은 '지구촌시대'라는 단어를 빌어 생각하자면, 사람들 혹은 남자들의 성적 취향과

자극원까지도 지구적 차원에서 보편화해 버리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일본AV와 정체불명의 옷가지들,

중국제 성인용품의 세례를 받고. 성의 영역에서도 개별성과 고유성은 지켜져야 할 가치가 아닐까 싶다. 한국

고유의 섹스샵, 고유의 성인 문화..머, 이미 뭔가 차고 넘치도록 있긴 한 거 같긴 하다만 그런 유흥문화말구.

지도에 따르면 대충 요  신호등을 건너 작은 다리만 건너면 바로 계단식 숲처럼 꾸며진 건물,

아크로스 후쿠오카가 보여야 하는데 잘 모르겠다. 그냥 머...여느 거리와 비슷한 고만고만한 높이의 반듯한

건물들 밖에는, 딱히 시야를 잡아끄는 것이 없어서 갸우뚱대며 파란 불 횡단보도를 건너다.

아..가까이 가니 네모반듯한 한 켠이 점차 무너져 내리며 땅바닥까지 끌리는 게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더구나 반짝이는 건물 외관에 동강동강 비쳐지는 맞은 편 건물의 적나라한 토막 마술쑈까지.

건물을 따라 쭈욱 걸었다. 무슨 야구장 스타디움같은, 계단식 관중석이 있는 원형돔을 종으로 절단한 내부를 보는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맨들맨들하게 절단면이 빛나는 걸로 보아 상당한 고수의 실력이다.

아크로스 후쿠오카에서 잠시 내 시선을 돌리게 했던 건 이 폭주족틱한 복장의 자전거 아저씨. 그렇다, 아저씨.

뒷모습만 보면 젊은 애가 뭔가 주렁주렁 매달고 자전거를 타고 있구나 싶지만, 사실 앞을 보면 살짝 주름이 얹히기

시작한 연세의 아저씨라는.

아크로스 후쿠오카, 이 건물은 애초 국제회의, 문화, 정보 시설을 위한 공간이라고 하는데 실제 내부는 그다지
 
색다르진 않았던 것 같고, 건물 한쪽 사면을 층층이 타고 올라가는 저 녹색의 물결이 정말 신기했다. 좀 만화같기도

하고, 왠지 열대우림지대의 오랜 옛 유적을 타고 올라가는 짙푸른 녹색 덩굴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하여튼간에

저 계단식 정원은 건물 꼭대기까지 연결되어 산책할 수도 있다고 했다.

아크로스 후쿠오카의 녹색 계단과 맞닿아 있는 자그마한 녹지는 바로 텐진 중앙공원.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꽤

많이 나와서 옹기종기 둘러앉아 있기도 하고, 강아지와 산책도 하고, 한쪽에서는 젊은애들이 빈 플라스틱 술병을

들고 묘기를 연습중이다. 뭔가 했더니 아마 칵테일 바에서 바텐더로 일하는 가보다. 다양한 모양의 병을 가져와선

저글링도 하고, 둘이 주고 받기도 하면서 병이 깨질 염려가 없는 잔디밭 위에서 오래오래 연습을 했다.

저렇게 배경으로 초록빛, 드문드문 붉은 단풍빛이 가득 얹힌 건물의 완만한 경사면을 두고 있으니 풍경이 무지

나른하기도 하고 평화로워 보이기도 하고, 그렇다.

텐진 중앙공원의 놓인 벤치, 적당하게 뒤로 누운 벤치에 반질거리는 짙은 나무색이 사람을 부른다. 

시루떡처럼 층층이 얹힌 그 녹색 계단식 정원에 오르는 첫 관문. 이 곳에 대한 정보를 얻으면서도, 다들 올라갈

수는 있는데 올라가보지는 않았다, 는 식의 말만 있어서 난 끝까지 올라가야겠다고 다짐했었다. 뭐, 좀 꼬불대며

올라가야 하는 거 같긴 했지만 우거진 수풀 때매 제대로 길은 안 보였고, 까짓 길어봐야 건물도 그렇게 높지도

않은데 얼마나 걸리겠냐 싶어, 출발.

조금 올랐다 싶어 길을 되짚어 돌아보니 '풀떼기'들이 금세 시야를 막아섰다. 좀 가다 좌회전 한번, 또 좀 가다가

우회전 한번, 얼마후 다시 좌회전, 이런 식으로 우르르~ 좌르르~ 스텝정원을 올라섰다.

거의 다 올라왔다 싶을 즈음, 유난히 붉은 잎사귀를 소담히 얹은 여윈 나뭇가지가 후쿠오카 시내를 덮었다.

꼭대기에 올라와서 내려다본 아랫마을 풍경. 건물만 빼곡한 공간과, 이 곳 아크로스 후쿠오카가 품고 있는 작지만

짙은 가을숲, 그리고 텐진 중앙공원의 느낌이 영 다르다.

사실 전망대는 1미터 정도 위에 따로 설치된 공간이 있지만, 문이 닫혀있다. 아마 목욕탕 휴일 표시하듯 빨간 색

글자로 토,일,휴일을 적어놓은 걸로 보아 '정기휴일'이겠거니 하고 별 미련을 남기지 않았다. 머 사실 조금 위에

더 올라서서 보나 지금 여기 높이에서 보나 비슷한 거다. 게다가 후쿠오카시의 마천루라는 게 상당히 나지막해서,
 
그러고보니 여기보다 높은 건물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한참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보니 여기 앉아 혼자 빵과 우유를 먹던 아가씨도 내려가고, 이어폰으로 귀를 막고는

멍하니 아랫쪽 어딘가를 바라보던 양복쟁이 아저씨도 내려갔다. 슬 그림자도 길어지고, 문득 바람이 차다고 느껴

서둘러 내려오기 시작했다. 마침 등장한 경찰관 아저씨, 내가 한국인임을 한눈에 알아보곤 말보다 행동으로,

내려가라고 연신 손사래를 친 덕분에...마치 쫓겨내려오듯 후다닥.

내려오는 길은 반대방향으로. 그니까 오른 길을 되밟아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길로 아크로스 후쿠오카를

좌우로 헤집으며 내려가는 길. 아까 오르면서 만났던 빨갱이 단풍보다 더욱 선명하고 짙은, 그래서 더욱 이뿐

단풍을 만났지만 살짝 사진 한장 찍고 말았다. 사실은 단풍잎을 챙겨오고 싶었는데..경찰관이 계속 따라내려오며

지켜보는 바람에 엄두도 못냈다는.

내려오고 나니, 경찰관이 왜 그렇게 몰듯이 따라내려왔는지 알 거 같다. 애초 정원에 올랐던 정원 입구에는 오늘

더이상 입장이 불가능함을 알리는 표지가 있었고 문도 굳게 닫혀있었던 것. 아마 경찰은 마지막으로 남은 사람들은

혹시 없는지 살피면서 한번 코스를 순회했던 것 같고, 그러다 보니 나랑 계속 겹쳐서 내려왔던 게다. 내 뒷통수가

솔찮이 따갑다고 느꼈던 건...아마도 과민반응이었던 듯. 하기야 이렇게 철저히 관리하지 않으면, 워낙 군데군데

으슥한 곳이 많아서 자칫 범죄의 온상으로 전락하기 십상이겠다.

텐진 시내로 가서 저녁을 챙기기 전 마지막으로 한번 둘러보았다. 어느덧 해도 많이 기울었고, 건물빛은 다소

둔탁해진 느낌이다. 파리 루브르 박물관이 고풍스런 옛 대리석 궁전과 철재와 유리 재질의 유리 피라밋을 하나의

풍경안으로 잘 엮어낸 느낌이라면, 여기는 건물 하나에 자연의 영역, 그리고 인간의 영역을 오밀조밀하게 중첩해

놓았다는 느낌이랄까. 한번쯤 들러볼만한 곳이지 싶고, 또 한번 들렀다면 꼭 올라가볼 만한 계단식 정원이었던

것 같다. 그다지 높지도 않고 길지도 않고, 경사도 완만해서 슬슬 오르기 딱 좋은 동네 뒤 야산같은.



일본식 포장마차를 '야타이'라고 한댄다. 후쿠오카엔 나카쓰쪽 야타이가 유명하다고는 하던데, 가기 전 귀동냥한

팁들에 따르면 그쪽은 이미 많이 수많은 관광객들의 발길로 '더럽혀졌다'고 했던가. 바가지도 심하고, 맛도 그냥

그렇고, 친절하지도 않은 것 같다는 중평이었다. 우선 나카쓰쪽 야타이를 구경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텐진쪽

야타이를 가기로 맘먹고 호텔을 나섰다.
자전거가 빼곡히 주차되어 있는 텐진의 거리.

텐진 기차역 부근의 횡단보도, 해가 살짝 뉘엿거리며 넘어가는 시간대, 택시기사 아저씨는 벌써부터 차에 조명을

밝혔다. 퇴근하고 번화가를 활보하는 직장인들이 확실히 늘어나서 거리는 더욱 붐비기 시작했다.

텐진(天神)역의 사통팔달한 지하상가 내 점포들은 10시부터 20시까지 영업을 한댄다. 그리고 통로의 개폐시간은

새벽 5시 반부터 24시 반이라나. 지하상가를 이리저리 배회하다가 아무 구멍으로나 나서서 조금만 걸으면 저녁엔

금방 야타이를 찾을 수 있다.

텐진 지하상가는 11월 중순부터 이런 치장을. 아마 크리스마스를 맞이해 단장한 듯 한데 뭔가 유치하고 엉성해

보인다. 그치만 지하상가 천장을 온통 파란 불빛으로 치장하고 나니 어쨌든 크리스마스 기분은 살짝 동하는 듯.

서울도 명동지하상가나 강남지하상가 천장을 저렇게 꾸며놓으면 조금은 더 연말 분위기가 나지 않을까. 이제

12월도 중순인데 그다지 서울 거리에서 연말 분위기가 느껴지질 않는다.

길가다 마주친 야타이. 윙버스에서 추천하는 야타이 위치들과 가게 이름을 뽑아오긴 했는데, 그걸 보고 어딘가를

찾아가는 것보다 그냥 아무 곳이나 내키는 곳을 들어가는 게 낫겠다 싶었다. 어느 곳에 무엇이 있더라, 하는 후기를

참고해서 굳이 그곳을 찾다보니 빙글빙글 돌기만 하고, 비슷비슷해 보이는 가게들 사이에서 괜히 거길 고집할

필요가 없을 거 같았다.

그렇게 꼬리잡기하듯 뱅글거리며 골목길을 돌던 중 마주친 자판기에서 식권을 뽑아 주문하는 라멘집,

그치만 살짝 촌스런 노랑초록파랑 불빛이 일렬로 늘어선 '누름'버튼에는 메뉴가 지정된 것보다 비어있는

버튼이 더 많아 보인다.

그런 점에서 이 자판기는 정반대, 빈틈없는 진열과 누름버튼으로 전면을 메우고 있다.

일본을 두고 자판기의 왕국이라고도 하던데, 정말 이렇게 빼곡한 담배 자판기는 무시무시한 포스가

느껴진다. 네모난 담배갑의 오와 열을 딱 잡고 늘어세워서는, 왠만한 편의점에서 파는 것보다 더 많은

종류의 담배를 팔고 있는 자판기.

도시의 야경. 후쿠오카시의 중심가, 큐슈지방 최대의 번화가라는 이곳은 그렇지만 서울보다는 조금 덜 복잡하고,

조금 덜 시끄럽고, 그리고 조금 덜 큰 거 같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일본도 도쿄 중심의 중앙집중식 개발이 이루어

졌다는 이야기를 대학교 때 무슨 강의에선가 들었었다. 한국 제2의 도시라는 부산과 수도 서울 간의 격차가 너무

현격하게 나는 것처럼, 아마 도쿄와 후쿠오카간에도 그 정도의 차이가 나는 것일까.

문득 그 네 도시간의 부등호 관계가 궁금해졌다. 도쿄>서울, 서울>후쿠오카, 후쿠오카>부산? 부산>후쿠오카?

자리를 잡고 들어간 야타이, 이미 아저씨 세네명이 정면에 앉아 잡고기탕에 아사히 병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리고 오른쪽으로는 한 직장동료인 것처럼 보이는 형님누님들이 즐겁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는. 이번에

후쿠오카를 다녀와서, 일본사람들이 조용하다느니 타인을 배려한다느니, 깨끗하다느니, 그런 식의 '상식'에

반하는 모습을 많이 보고 왔다. 택시 기사들은 보행자 신호임에도 횡단보도를 무시하는가 하면, 전혀 조용하지

않은 사람들이 주위를 아랑곳않고 떠드는 식당, 호텔 로비..

한국인이라고 하니까 무지 반가워하면서 오래전에 누군가 꼽아두고 간 한글 명함을 수고로이 찾아 보여줬다.

후쿠오카에 다녀간 누군가 이곳이 맘에 들었었나보다. 약간의 취기가 묻어나는 글투로, 행복하세요~ 랜다.

오뎅도 맛있고, 뒤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는 건 잡고기들이 잔뜩 들어간 탕이랄까, 그냥 간단히 잡고기탕 정도.

그거랑 따뜻한 사케 한잔을 마시자니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마주앉은 형님누님들과 영어를 빌어 말도 섞고

간단한 생존 일본어를 선보이기도 하고. 대머리 주인아저씨 미소가 푸근했다.

말이 안 통한다네, 바가지를 씌우네, 온갖 조언들을 명심하고 왔었지만 이건 너무 쉬웠다. 짧은 몇마디에 마음이

훈훈해졌었고, 주인 아저씨는 한국에서 왔단 얘기에 어찌나 반가워하며 신나하시던지, 경계심이 녹아내렸다. 

잡고기탕 한 그릇, 오뎅 다섯개, 따뜻한 사케 세 잔 정도시켰던가, 1300엔밖에 안 나와서 내일 또 와야지 했었지만.

짧은 일정으로 다녀올 때 아쉬운 건, 맘에 들었던 곳을 다시 한 번 찍을만큼의 여유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 뭘

먹어도 맛있고 어딜 가도 좋으니..계속 새로운 곳, 새로운 음식, 새로운 사람을 찾는 게 낫다는 판단을 하게 되는

거다. 대체 얼마쯤 되는 일정이어야 긴 거냐고, 얼마쯤 되야 갔던 곳을 다시 찾겠냐고 묻는다면..글쎄, 그러고 보면

짧은 인생, 한끼를 먹어도 맛있는 것, 새로운 것을 먹겠다는 사람을 주위에서 많이 보는 것 같다.


가게 사진을 찍고 돌아섰다. 내일을 기약했지만, 속으로는 당장은 힘들 테고 담에 언젠가 또 후쿠오카에 오게 되면

꼭 찾아보겠다고 다짐.

포장마차 안에 있는 동안 날이 더 쌀쌀해졌다. 따뜻한 사케를 마시고 풀렸던 몸이 다시 옹쳐매여지는 느낌의 추위.

입김을 내뿜으며 찍으려던 풍경에, 입김은 안 찍히고 술기운에 젖은 손가락의 떨림만 담기고 말았다.

텐진(天神)이라고 쓰인 왼쪽 끄트머리에 있는 숫자들은 몇번 버스인지를 나타내는 숫자들. 그리고 각 노선마다

쭉쭉 뻗어나가며 지나치는 정류장들을 그려놓고는 일정 구간을 넘어서는 순간 할증되는 금액들이 빨간 색으로

적혀있다. 예컨대 하카다역(博多驛)즈음까지는 100엔, 그 이후부터는 220엔.

게다가 평일(월-금), 토요일, 일요일 버스시간표가 다 따로 게시되어 있는데, 생각보다 막차 시간이 이르다. 조금만

더 미적거리다 일어났으면 텐진서 하카다역 근처 숙소까지 걸어가야 할 뻔 했다. 택시비는 무지하게 비싸다는 얘길

어디선가 또 들어놨어서.

집에 오는 길, 하카다역 굴다리를 지나면 바로 도요호텔 앞길이 나온다. 호텔로 들어가려는데 앞에서 다코야끼를

팔고 있는 게 보인다. 왠지 일본의 다코야끼는 뭔가 다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차선 방에 가서 술안주 삼아 2차

술판을 벌여야겠다 하고 냉큼 샀더니, 녹차 캔음료 두개에 사탕 두개, 게다가 물티슈까지 두개 바리바리 비닐봉지

안에 챙겨주는 거다. 따로 다코야끼 위에 뿌리는 가쓰오부시도 챙겨주고. 오....이런 친절하고 세심한 서비스라니.


다코야끼 자체는 서울에서 먹어본 것과 별반 다르지는 않았다, 문어냄새가 조금 더 풍기는 거 같다는 호의 섞인

편향된 느낌과 약간 더 쫀득한 거 같다는 역시 호의 섞인 주관적 식감을 제하고 나면, 녹차캔 두 개와 사탕 두 개,

물티슈 두 개만큼, 그리고 그걸 건네주던 아저씨의 살가운 미소만큼 더 맛있었다는 게 정확할 듯. 


학문의 신인 '스가와라 미치자네'를 모신 곳. 901년 '우다이진(右大臣)'이라는 장관직에서 돌연 다자이후로 좌천된

미치자네는 2년 후, 이곳에서 세상을 떴다고 한다. 그리고 그 무덤 위에 세워진 것이 이 '텐만구(天滿宮)', 그니까

신사로서 이곳에서 기도를 하면 학문의 뜻을 이루고 부와 행운이 따른다나. 시골마을로 밀려난 이사람이 왜 무려

'학문의 신'으로까지 추앙받고 있는지는...글쎄, 관직운과는 별도로 학문적 성취가 대단했나 보다, 라고 생각했다.

다만 '학문적 성취'를 빌도록 특화되어 개창했을 이 신사가 언제부터 부와 행운까지 얹어주는 종합선물세트로

탈바꿈했을지 생각하다 보니, 결국 사람들은 언제 어느시대고 그런 것들을 바라는 법인가 부다 싶다.

다자이후텐만구에 가는 길에는, 엔 기호처럼 생긴 저런 문을 몇개씩 지나야 했다. 어렸을 적 민족사관이니 뭐니에

빠졌을 때에는 우리나라의 솟대, 천군의 상징이 저 문의 원형이라더라, 라고 외치는 비분강개조의 목소리에 동해

합세했었지만,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가까운 지역이 영향을 주고 받는 건 당연한 거고. 과거를 금칠하는 건 곧잘

현재를 비하하고 부정하는, 과거로의 목적론적 세계관을 초래하는 것 같다. 자랑스러운 한민족을 끊임없이

이야기하면서 외려 '지금 여기'의 우리들에게 끊임없이, 그리고 과도하게 부끄러워하는 함정. 그러다가 덜컥

부국강병, 군사강국을 이야기하고 '다물'을 이야기하며 북벌이니 남벌이니. 심지어는 핵무장을 통해 무궁화꽃이

피었다고 비분강개조로, 혹은 격정적인 연설조로 눈물이 그렁그렁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유아적 발상.

그런 시끄러운 감정과잉의 것들보다는 차라리 요런 게 훨씬 좋다. 저 꼬맹이의 할머니뻘 되어 보이는 분이 아기를

들쳐앉고는 봉헌된 '신성한 소'의 옆에 바싹 붙어 사진을 찍고는, 잠시 눈을 감고 뭔가를 빌었다. 조용히.

또다시 지나는 문, 조금씩 본전에 다가설수록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었다. 일본도 우리나라처럼 교육 문제가 심각한

곳이니만큼, 학업성취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이 다자이후텐만구는 아마도 영원토록 무궁하지 않을까 싶다.

일본은 얼핏 듣기로 대학교만이 아니라 중고등학교도 어딜 가는지가 중요하다고 하던데, 어쩜 여태껏 한국보다

더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미, 조만간 한국 청소년들의 스트레스가 급격하게 상승해서

금방 따라잡고 또 추월할 거 같단 생각이 강하긴 하지만.

마침 이곳을 방문했던 날이 11월 15일, 일본 명절인 시치고산(753)이라고 했다. 여행을 다녀온 후 일본인 친구에게

물어보니, 마치 우리나라에서 아이들을 위한 백일잔치나 돌잔치를 하듯 일본에서 아이들의 건강과 행운을 빌어

주는 행사라고. 아이들이 무사히 크고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하기 위해 전통의상을 곱게 차려입고 신사에 가서는
 
조상신에게 인사도 하고, 사진도 찍고 하는 날이란다. 말그대로, 7, 5, 3살짜리 아이들을 위한 날.


정작 이렇게 이뿌게 차려입고 온 아이들이 꾸역꾸역 정말 쉼없이 신사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을 때에는, 무슨

중학교 입학시험이나 초등학교 입학시험을 앞두고 있거나, 막 치르고 왔나 했다.

저렇게 귀엽게 차려입은 아이들을 양손에 잡은 어른 한 명, 그리고 카메라를 쥐고선 버둥대는 아이들을 열심히

지휘하며 사진을 찍고 있는 어른 또 한 명. 그렇게 구성된 가족들이 대부분이었다. 아이들이나 아이들이 입은

옷이나 어찌나 귀엽고 앙증맞던지, 도촬 아닌 도촬이 계속되고 말았다는.

우리나라 산사에 오르면 입구에 시원한 샘물이 있듯, 후쿠오카에서 들어가본 모든 신사에도 그런 샘물이 있었다.

물맛이 좀 이상하다 싶어 그냥 손만 씻고 말았는데, 일본 사람들도 나이가 좀 든 사람들 아니면 딱히 마시는 것

같진 않다. 하기야 이런 신사가 한국의 절들처럼 산등성이에 버티고 서서 사람을 목마르게 하는 것도 아니고.

아이를 보고 귀여워 죽겠다고 생각하면 결혼할 나이라고 하던데, 한 세네살쯤 되어보이는 이 꼬맹이 아가씨의 눈이

어찌나 말똥말똥하던지. 그치만 결혼은 아직.

커다란 붉은 등을 지나면 인제 다자이후텐만구의 본전이다. 흐릿하게 디테일을 죽여놓고 보면 색감이나 목조건물

양식이나 얼핏 한국과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고, 요모조모 따지다보면 딱히 닮았다기도 민망하지 않을까

싶도록 달라 보인다. 부산에서 배타고 고작 3시간여 달리면 도착할만큼 가까운 곳인데, 사실 아는 게 없다.

본전 앞마당 좌측에는 점쟁이같은 사람들이 천막을 치고 아이들과 부모들을 불러모으고 있었다.

꼬맹이가 점을 본 건지, 부적을 산 건지, 흐뭇한 아버지는 한 손에 잡은 뭔가를 늘어뜨리고 있는데, 애기는 바싹

얼어있는 표정이다. 여린 눈, 여린 피부가 감당하기엔 가을 햇빛이 너무 눈부셔서 그랬던 건가.

본전에 올라가 절을 하고 나오는 아이들에게 신녀, 라고 하나...그 누님들이 풍선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 다홍빛

치마에 팔소매가 너풀대는 하얀 저고리, 그리고 반들거리는 긴 생머리를 정갈하게 동여맨 흰 머릿수건..(?)까지.

뭔가 단순히 전통을 지킨다는 느낌의 '민속촌 도우미'가 아니라 성당의 수녀님들에서 느껴지는 단정하고 깔끔한,

그리고 뭔가 비세속적인 '종교인'의 느낌이 들었다.

꼬맹이의 옷매무새를 가다듬어주고 있는 부모들. 그리고 언니가 빠알간 원색의 전통의상을 입고 있는 게 여전히

낯선지 빤히 바라보는 여동생. 무엇보다 저 꼬맹이가 들고 있는 쪼꼬만 빽. 꺄아.

얜 뭘까. 한국이나 태국의 절에서 많이 봤던 것들과 비슷하긴 한데, 그렇다고 해태나 머 그런 불교설화상의 동물은

아닐 테고-여긴 신사 안이니까-, 그렇다고 한국설화에 있는 철을 먹는 불가사리, 이런 것도 아닐 테고-여긴 일본

이니까-, 정체가 싱숭생숭한 만큼이나 싱숭생숭한 저 눈빛. 녀석의 기분을 모르겠다. 좋다는 건지 나쁘다는 건지.

본전에 들어가려는지 사람들이 길게 줄을 늘어서 있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 유유히 지나는 신사 관계자분. 감청빛

바지와 살짝 비취빛을 띈 저고리의 색감이 청신하다. 그리고 왠지 약간의 대머리 느낌이 더할나위없이 잘 어울리는

거 같다고 느꼈다. 저 의상을 걸치고 시커멓게 숱이 많은 머리였다거나, 곱슬머리였다면 전혀 안 어울렸을 듯.

본전에 들어앉아 뭔가 빌고 있는 학부모들, 그리고 아이들. 사람들이 꽉 차들어왔다가는 쑥 빠지고, 또 다음 팀이

꽉 차들어왔다가는 파도처럼 쑥 빠진다.

그리고 한 가운데 당당히 버티고 앉아 뭔가를 읊고 있는 아저씨. 일본 제품들에서 종종 느껴지는 세련된 색감은

어쩜 저런 전통의상으로 전승되는 과거의 빛깔들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 뿐인지도 모르겠다. 한국도 요새

세련되고 고급스런 색감의 한복이 많이 나오던데, 아직 그런 빛깔을 갖고 제품에 잘 적용하지는 못하고 있는 듯.

점보는 듯한 곳에 갔더니 무려 일인당 오천엔. 당시 1000엔에 15000원하던 환율이었으니..무지하게 비싸다. 그치만

그야말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역시, 불황 속에서도 아이들만 잘 타겟으로 하면 지갑은 쉽게 열린다. 특히

최근 '소황제' 외동아이 문제가 심각하다는 중국이나, 더 말할 것도 없는 한국이나, 그리고 일본은 그렇지 싶다.

뭔가 빨갛고 노란 종이들이 가득히 묶여있다. 내가 어렴풋이 아는 바로는, 신사에서 점괘를 보고 운이 좋으면 그냥

가져가고, 좋지 않으면 신사 안에 묶어두는 곳이라고 하던데, 그럼 저 이뿌게 묶인 종이들이 온통 악운을 예언한

것들인 건가. 일본어로 뭐라고 쓰여 있긴 한데 영 까막눈이다. 그래도 한자는 잘 읽는 편이지만, 일본어에 쓰이는

식으로 한단어씩 뚝뚝 끊겨 쓰여서야, 좀처럼 이해불능인 게다.

그 아마도 악운을 예견해서 이곳에 동여매진 종이들 사이로 바라본 텐만구 건물.

사진을 찍다보면서 느낀 거기도 하고, 지금 또다시 느끼는 거기도 하지만, 어쩌면 난 아이들이 이뻐서라기보다는

저 쬐끄만 사이즈의 일본 전통의상..아마도 기모노?..의 색깔과 라인, 그리고 문양들에 꽂혔는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저렇게 등 뒤에서 커다란 꽃모양으로 묶인 허리띠의 깜찍함이라니.

말하자면 다자이후텐만구의 기념품점인 듯 한데, 파는 게 대부분 부적이다. 이미 수험생활과는 상당히 멀어져버린

몸인지라, 학업관련 말고 다른 종목에 괜찮은 물건이 있음 기념품으로 사갈까 했으나 그다지 땡기는 게 없었다.

뭐...솔직히 녹록치 않은 가격도 한 몫했달까.

100엔짜리 제비라고 한국어로 적혀있다. 한국사람들이 꽤 많이 오나본데, 그치만 내가 다닐 때에는 다른 한국인들

거의 못 만났다. 아사히 맥주공장 견학갔을 때 만났던 게 사실상 유일무이한 한국인과의 접촉이었던가. 급격히

올라버린 환율 탓에 적지않은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추거나 다른 곳으로 돌렸다고 했고, 게다가 인근 국가에는

주로 패키지 여행이 많은 탓인지도 모른다. 내 일정 자체는 그다지 한국인을 피하려는 속셈이 없었으니.

다소...기분이 언짢았던 표지판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 열매처럼 주렁주렁 달린 소원 적는 나무판들. 저렇게

조그마한 꼬맹이들이 뭔가를 간절히 두눈 꼭 감고, 혹은 머리를 푹 떨구고 빌고 있다. 합격을 바란다.

저만한 아이때부터 세상에 거부당한 느낌에 직면해야 한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비극이지 싶다. 경쟁을 통한

선별작업도 좋고, 무한경쟁을 통한 체질개선도 좋은데...아직 가을햇살도 뜨겁고 눈부신 아이들이란 말이다.

어떤 면에서는, 학업 성취라는 달콤한 과실을 설득력있는 스토리에 꿰어맞춘 이 다자이후텐만구는 살짝 애교스런

사기에 가까울지 모른다. 적극적으로 아이들의 '학업 성취'를 팔면서 그렇게 크지 않은 돈을 박리다매식으로

그러모으고 있는 게다. 머, 사실 어떤 종교던 뭔가를 팔고 있는 거지만, 다소 노골적이고 상대적으로 다소 단순한

것을 팔고 있다는 점에서는 무지 심플하고 담백한 공간이기도 하다. 여기선 부활이니 천국이니, 그런 세련된 걸

팔지는 않으니.

이 호리병들은 뭘까. 뭔가 안에 손오공이라도 가둬뒀을 법한 호리병들이 담고 있는 건, 사람들의 밝은 소원일까

아님 뭔가 이곳에 버리고 가고픈 악운이나 나쁜 감정일까.

그런 식의 소원적어 걸어두는 나무판은 다자이후텐만구 본전을 둘러싸고 쭉 계속 이어졌다. 어떤 한국사람은

독도는 한국땅, 이렇게 격정적인 궁서체로 적어놓기도 했고-미리 여기와서 그런 글을 쓰려고 붓을 챙겨올 만큼

용의주도했던 걸까, 아님 펜으로 붓의 궤적을 그릴만큼 집요했던 걸까-우리 사랑 영원하게 해주세요, 혹은 대학

가게 해주세요 운운운. 일본어는 하나도 모르지만, 일본어로 적힌 것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을 거다.

바글바글한 꼬맹이들과 부모들을 품고 있는 본전 건물 뒷켠을 돌았더니 인적이 툭, 끊겨 있었다. 더러는 나무에

걸리고, 남은 햇볕들이 땅바닥에 누웠다.

신녀..라고 해야 할까, 라고 두번째 갈등. 여기서 있는 사람들은 계속 이곳에서 사는 사람들인 걸까, 아니면 뭔가

일로 하는 걸까, 아님 알바? 아까는 '종교인'의 포스가 느껴졌던 뒷태였지만, 이렇게 인적없는 곳을 종종걸음치는

모습에서는 왠지 몇세기 전 일본에 불시착한 느낌, 민속촌의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 시치고산(753)을 맞아 가족사진을 찍으려는 듯 흥정하는 가족, 그리고 요 쪼꼬맣고 귀여운 아가씨의 뒷태.


하카다 역 주변에서 12번 버스를 타고 유센테이 공원으로 향했다. 한 30-40분쯤 갔을까, 버스 안에 사람들이 잔뜩

탔다가 다시 대부분 내렸을 즈음 한적한 교외 동네가 나타났다. 유센테이, 友泉亭. 아는 거라곤 이수영이 여기서

뮤직비디오를 찍었다더라, 그리고 정말 그림같은 풍경이 펼쳐지는 곳이라더라, 그거밖에 모르고 무작정 와본 길.

정류장 지나 이런 돌담길을 마주치니 대충 이게 유센테이 공원의 외곽이겠거니, 감이 왔다. 입구까지 조금 걷다.

가을. 바삭할만큼 구워진 삼겹살처럼, 잘 말려진 갈빛 낙엽들을 머리에 이고 있는 안내판.

정(靜)..숙, 이겠지. 입에 손을 갖다대고 쉿, 할 필요도 없이 늦은 아침. 인적없이 고요한 공원에 발을 내딛었다.

한참 지나서야 부스럭거리며 나온, 그리고 채 자리도 못 잡고 있는 아저씨. 단정한 건물과 규칙적인 기왓장 배열.

작지 않은 연못을 경계로 두 세계가 마주보고 있었다. 위아래가 바뀌어도 이 고즈넉하고 신비로운 느낌은 같다.

초록물이 번진 것처럼,  오랜 돌위에 이끼가 슬몃 끼어들었다.

바람조차 조용히 불고 지나는 찬란한 수면 속, 혹은 수면 위 세상.

아무도 보는 사람 없지만 표지판이 이끄는 대로 순순히 '순로'를 걷는다. 무작정 반대로 가지는 않을 만큼의 나이.

쉼터. 큰 연못을 가깝게 끼고, 때로는 살짝 멀게 두고 걷는 코스라지만 내겐 그다지 길지도, 힘들지도 않았다.

나무그늘모양 물웅덩이 밖으로 뛰쳐나가려 하는 금빛 물고기.

깔끔하면서도 정갈한 맛이 똑 떨어지는 느낌의 저 석조상에서 풍기는 꼿꼿한 존재감.

만원짜리의 경회루를 한번은 제대로 봐야했다는 생각을 했다. 이래선 대조군이 외국, 실험군이 한국이 되고 말 듯.

저 둥글둥글한 탑 너머, 저 배배 뒤틀린 수풀 너머 암흑물질이 가득한 곳에는 토토로가 살고 있지 않을까.

네 활개를 쫙 펼친 '당당한' 남자용 표식.

빨간 천으로 팔다리를 다소곳이 싸매고는, 노랑 밴드로 이뿌장하게 동여맨 느낌의 여성용 표식.

연못에서 쏘아올린 분화구 속에서 피어오른 수풀들이 까칠해보인다.

설계도가 분명 필요했을 거다. 설계도에 더해, 적당한 크기와 모양의 돌들을 골라내어 섬세히 배치하는 수고로움.

90도, 그리고 또 90도. 그렇게 가차없이 전개된 대나무 울타리.

오랜 청동기유물처럼 사방에 초록색 녹이 슬어있어서, 싱싱한 녹색 수풀과 녹슨 이끼의 경계조차 허물어져버렸다.

들고남(出入)이 아니라, 서서 들어가는(立入) 걸 금지하고 있는 걸까. 유방이 기어지났다던 가랑이 사이도 아니고.

대인배는 200엔, 소인배는 100엔. Y자와 등호 =자가 포개져 인쇄된 듯한 게 엔 표시의 기원을 더욱 궁금케 만든다.

물에 절반, 땅에 절반 빚지고 있는 누각 위에 오르다.

잎사귀가 붉어지는거야 자연의 섭리, 일본색이 무척이나 강한 낯선 정원에서 내편처럼 든든히 느껴지던 단풍.

원근감과 입체감을 상실한 굵고 검은 나뭇둥치가 얼기설기 펼쳐지고, 붉고 푸른 조각들이 꽉 메워진 모자이크화.

액자식 구성, 스토리 속의 스토리. 1인칭 주인공을 바라보는 전지적 작가 시점의 희롱처럼 고양이가면을 씌웠다.

이끼처럼 곱게 깔린 융단이 살짝 주름이 진 듯하여 맘이 좋지 않았다. 저걸 반듯이 펴주어야 하는데.

정숙해 보이는 연못속 세상을 흐트리는 방법은 간단하다. 50엔, 누룽지밥알처럼 엉겨붙는 물고기들의 아비규환.

다다미도 이뿌고 비슷한 사이즈의 단정한 문짝도 이뿐데, 저 빨간 요가 매트같은 게 영 거슬린다.

방 한구석에 놓인 화분 한 점과 그림 한 폭이 공간을 자극하며 운치를 더하고 있었다.

대나무를 찰지게 엮은 매듭, 그리고 이끼가 점령한 지역과 자갈자갈 소리를 내는 산책길을 고집스레 선긋는 기와.

고풍스런 청보랏빛 우산이 이렇게 이뻐보이는 건, 결혼을 앞둔 두 사람의 의상과 분위기 때문이었을 거다.

버스 노선도를 가만 보면 유센테이에서 텐진(天神) 지역을 지나 하카다역(博多驛), 300엔까지 오렌지색 라인 12번.

 주중, 토요일, 그리고 일요일의 운행스케줄이 다 달라 무척이나 복잡해 보이지만, 시간만 잘 지키면 된다. 쉽다.

유센테이 공원을 나서다가 발견한 스탬프 두 개, 기념품삼아 꾸욱 눌러 가져오려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유센테이 공원. 과거 지방영주의 가옥이었던, 다도체험이 가능한 새롭게 정비된 일본식 정원이랜다.

그렇지만 이런 설명서는 한국에 돌아와 비로소 펼쳐보아도 좋다. 그림같은 풍경이 가득했던 유센테이 공원.

"아사히 비~루 코~죠", 내 발음이 이상했는지 호텔 프론트의 직원들은 난 아무것도 몰라요, 이런 천진난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분명 후쿠오카에 오기 전 알아본 바에 따르면, 아사히 맥주를 무한정 마실 수 있는 행복한

공간이 있다고, "아사히 비루 코죠"라고 이야기하면 다들 알 거라고 했던 거 같은데, 아사히 맥주공장이 하카타역
 
근처에 있다는 걸 아는 직원도 거기에 무료 시음을 제공하는 견학 코스가 있다는 건 금시초문이랬다.

다행히도 난 전화번호를 갖고 있었고, 호텔 로비의 공중전화를 써서 직접 통화해보기로 했다. 어차피 사전에

예약을 하고 가야하는데다가 영어가 가능하다고 했으니. 092-431-2701. 얼마를 넣어야 할지 몰라 우선 있는 잔돈

탈탈 털어넣었다. 요금이 툭툭 떨어지면서, 안내 아가씨와의 통화가 시작. 위치를 파악하고, 시간을 정하고.

한국인이라고 했더니 한국어가이드를 대동한 한국인들 단체 관광객들과 같은 시간으로 예약해 주었다. 원래는

한국어가 아닌 일본어로만 설명이 제공된다던가. 오픈시간은 오전 9시반부터 오후 3시까지였고, 난 3시 10분전에

도착하기로 했다.

비오는 날은 맥주를 마시는 게 아니라고 하지만, 그래도 아사히 생맥주를 포함한 술 자체를 워낙 좋아라~하는 터라

딱히 개의치 않고 호텔을 나섰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우중충한 날을 맞아 호텔 엘리베이터 안에 붙여져 있던

조그만 우산 판매 광고. 참...아기자기한 글씨에, 아기자기한 광고. 일본이다.

드문드문 젖어 있는 도로 위를 건너기 전. 숙소는 하카다역 근처 '도요(東洋) 호텔'이란 곳이었고, 하카다역에서

로컬 트레인을 타고 남쪽으로 한정거장 내려가면 '다께시타(竹下)'라는 곳이 나온다고 했었다. 관광안내소에서

가는 길을 물었더니 '다케시타'라길래 왠지 낯익은 단어다 싶어, 아 다케시마? 그러면서 '竹島'를 써보였더니 그게

아니라 죽하(竹下)였다. 어쩐지...'다케시마'란 이름의 역이 뜬금없이 후쿠오카 내지에 있을 리가 없지.

이게 바로 다께시타 행 티켓. 원래 커다란 기차역이 그렇듯 잔뜩 혼잡한데다가 공사까지 여기저기서 진행중이어서

더욱 정신없던 하카다역에서 무조건 역무원에게 다가가 가는 길을 물었더니 쉽게 해결해 주었다. 티켓 사는 곳도,

기계에서 티켓 사는 방법도, 그리고 차를 어디서 타야하는지도 자상히 지도받은 후에 기차를 기다리기 시작.

참, 티켓은 편도에 320엔. 왕복 640엔이었으니...고작 한정거장 가는 건데 한국물가로 치면 무지 비싼 거려나...

그치만 후쿠오카 내에서 버스 한번 타는 데도-시내 중심구간에 한정되어 운행하는 100엔버스를 제하고는-220엔,

혹은 그 이상인 걸 감안하면, 사실 전혀 비싸단 느낌도 없이 표를 샀었다. 이미 환율에 대한 건 고작 사흘만에

환율이 백원씩 폭등하는 엔화의 강세에 질렸을 때, 피눈물을 흘리며 환전하면서 맘을 접었기 때문인지도.

하카다 역 구내. 후쿠오카 시내를 돌아다니면서도 계속 느끼던 거지만, 되게 한국과 비슷한 느낌이면서도 뭔가

미묘하게 다르다는 느낌이다. 단순히 일본어 표지판이나 간판 때문만도 아닌 거 같고. 전반적으로 매우 비슷하지만

살짝 낯선 느낌을 던지는 그 무엇, 끝내 무엇인지 속시원히 모른 채 돌아왔다.

더블체크를 위해 다께시타행 기차 타는 곳을 물었더니 정말 친절하고 열심히 가르쳐준 역무원 아저씨. 타는 곳은

애초 표살 때 가르쳐주신 분 말씀이 맞았는데, 로컬 트레인은 배차간격이 무지 길다는 사실은 미처 몰랐다. 거의

20분 간격으로 있는 거 같던데, 덕분에 여유있게 도착하겠거니 했던 예상이 보기좋게 틀어지고 말았다. 이젠 되려

지각했다고 안 들여보내주면 어쩌나, 걱정해야 하는 단계에 이른 것. 그나저나 역무원 아저씨, 카메라 의식하고는

기차 들어오는 것 무지 열중해서 바라보고 계신다.

하릴없이 20여분을 기다리면서 빗발이 점차 굵어지는 걸 보았다. 비가 내리는 걸 볼 때마다 참..인간들이 어줍잖단

생각을 하게 된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하고 어쩌니저쩌니 잘난척을 하는 인간들이지만 비가 내릴 땐 고작 우산이

전부다. 그런 식의 천조각/비닐조각으로 비를 긋는단 건 진부할대로 진부해졌음에도..별로 더 좋은 대응방법을

고안치 못하는 것 같다. 그치만 역시 일본에선 투명비닐우산이 많이 보였다. 불의의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는

투명 비닐 우산. 모 프로그램의 적극적인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선 아직 그다지 쉽게 보이진 않는다.

플랫폼 한가운데 버티고 선 스낵코너.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자판기. 외국음식에 대한 넘치는 식욕과 호기심은 늘

절제와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을 압도했고, 일본에서도 역시 곱창라면이니 뭐니 거의 돼지뼈가 흐물거릴 때까지

고아진듯한 느끼하고 진한 라면에 매료되어 버렸댔다.

한국의 '노약자석'은 기실 나이많은 분들을 위한 자리로 여겨지기 십상이다. 그래서 굳이 별도로 '임산부석'이란

표시를 '노약자석' 옆에 붙여야 할 정도로, 눈으로는 '노약자' 혹은 '장애인'석이라고 읽히되 머리로는 '노인'이라고

이해되는 어색한 간극이 곧잘 몇몇 사건들로 드러나곤 한다. 노인에게 자리양보하지 않는다고 폭언, 구타, 그러다

같이 경찰서도 가고, 혹은 배안나온 임산부를 억지로 일으키는 노인에 대한 항거, 분노..그런 이야기들.


일본은 '우선석'이라는 개념을 쓰고 있었다. 애기가 있거나, 임신했거나, 노인이거나, 혹은 신체가 불편한 사람을

우선 앉도록 하는 우선석. 노인에게 벌떡 자리를 양보하는 젊은이의 모습이 꼭 한국에서만 멋지고 자랑스러운 건

아닐 거다. 그리고 한국의 그것은, 개인의 선택 이전에 구조적으로 강제되는 '미덕'이라는 점에서 제대로 된

미덕이 아닌지도 모른다.

하카다(博多), 한자음으로는 '박다'라고 읽히는 곳에서 고작 한정거장, 다케시타.

기차에서 내려 빠져나오는데 불쑥 눈에 띈 '우측통행' 표지판. 그리고 얼마전 다른 블로그에서도 봤었지만, 일본도

에스컬레이터 두줄서기는 안 하고 있었다. 한 줄서기가 굳어져 있는 것 같던데 대체 왜 갑자기 생뚱맞게 두줄로

서자고 잘되지도 않는 걸 억지로 밀어붙이는 건지. 이 역시 그 모 프로그램에서 다뤘던 거 같은데..글쎄, 성격도

급하고 걸음도 빠른 나로서는 두줄서기는 죽을 맛이다. 괜히 이래라저래라 하지 말고 그냥 한줄서기가 정착된 이상

거기서 보완책을 마련하는 게 정답아니었을까. 캠페인, 계도, 그런 식의 고압적이고 수직적인 태도란 참.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지각한 사람은 아사히 맥주를 공짜로 맛볼 기회를 박탈할지도 몰라, 라는 염려로

우산도 안 쓰고 뛰었다. 다행히 기차역에서 내려 한 백미터 정도 걸었더니 바로 앞에 보였다.

헐떡이며 들어가니 이미 견학투어는 시작했댄다. 그렇지만 내 뒤에도 다른 한국인 여행자들이 여유있게 입장하고

있길래, 왠지 마음이 푹 놓였다. 설마 한두명도 아니고 이렇게 많은데 안 들여보내주지는 않겠지 싶어서.


처음으로 마주한 견학 포스트는 맥주의 재료를 소개하는 곳이었다. 보리니 뭐니 샘플을 구비하고 있었고, 중국집

간장/식초통처럼 생긴 곳에 담긴 보리는 직접 시식을 해볼 수 있는 깨끗한 것이라고 했다. 몇알 입에 넣고 씹어

봤더니 생각보다 무지 고소하고 달콤했다는.

복도를 따라 이어지는 견학 코스에는 이렇게 맥주를 만드는 방법을 소개해 놓기도 하고, 아사히맥주의 연혁을

소개하고 있기도 했다. 저 주홍빛 판대기에 하얗고 커다란 거품이 그려진 건 왠지 환타나 써니텐 오렌지맛스럽지
 
싶었다. 그리고 저 연혁을 차근차근 보기에는 생각보다 움직이는 스피드가 빨랐다. 4,50분만에 견학을 마쳤던 거

같은데, 그렇게 빠르진 않아도 거의 쉼없이 걷기는 했던 것 같다.

이런 식으로 앞에서 저 빨간 옷을 입은 직원분이 일본어로 설명을 해주시면 한국인 단체관광객을 이끄는 한국인

가이드분이 통역을 해주셨다. 보통 단체여행객은 이럴 때 끼어서 설명을 듣는 배낭여행자들이나 개인여행자들을

기피하고 싫은 티를 팍팍 내던데, 이분들도 별로 좋아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그 가이드가 통역해주면서 내뱉는

말풍선들을 내가 혼자 들고 가서 독식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뱉어진 말들은 한없이 잘게 부서져 퍼지는

비누방울처럼 공간가득 채워지는 거 아닌가. 그렇담 그거 좀 같이 들으면 어때서 사람을 눈치주고 노골적으로

가라고 하는지. 뭐, 여기선 그렇게까진 안했지만 다른 데선 많이 겪었던 일이다.

중간에 잠시 앉아 쉴 수 있는 의자도 있는데, 왜지 사람들이 분위기잡고 앉아서 사진찍기 딱 좋은 지점같았다.

저 은빛 알루미늄 컵위에 올라앉은 건 분명 맥주거품을 표현하고 싶었던 거겠지만, 난 그냥 커피 위에 얹혀져있는

휘핑크림이 생각나는 건 왤까. 너무 과장스럽게 표현된 거같지만, 그만큼 아사히 맥주의 거품이 맛있다는 건

어필하고 싶었으리라 관대하게 납득하기로 했다. 이제 견학코스가 거의 끝을 향해 달리고 있었고, 난 제한시간내에

최대한 많이 맥주를 마시기 위한 컨디션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복도 중간중간에 마주친 맥주 모양의 그림. 저런 세세한 곳까지 맥주와 연관된 장식을 채우다니 이곳이 정말 공장
 
견학 프로그램을 오랫동안 했다는 반증일 수도 있겠고, 아님 익히 알려진대로 일본인의 꼼꼼하고 섬세한 면을

드러내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이 사진을 보곤 이런 곳까지 신경써서 관찰한 사람이 더 꼼꼼하다고 이야기해준

사람도 있었지만 말이다.

우리를 계속 안내해주었던 밝은 웃음의 인상좋은 아가씨. 견학 코스 중 사진을 찍지 말도록 제한한 곳이 딱 하나

있었는데, 바로 아사히 맥주가 어떻게 환경보호, 자원재생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를 전시한 곳이었다. 맥주의

펫병으로는 폴리섬유를 짜내어서 직원들이 입고 있는 옷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기타 알루미늄캔, 남은

보리찌꺼기 등도 모두 남김없이 재활용하고 있다고 했지만, 역시 입고 있는 저 옷이 100% 아사히맥주 펫병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제일 놀라웠다. 벌써 근 30여년 이전부터 그렇게 철저한 자원재생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니,

역시 선진국다운 면모다. 그리고 그것은 자연히 그렇게 된 게 아니라, 정부의 적극적인 규율 그리고 지원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드디어 무료시음회장 입성. 약 20분정도 진행된다고 했는데,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한 30분 가까이 시간이 주어졌던

것 같다. 누군가 여기에서 맥주를 네 잔 마셨다고 했던가, 난 그 얼굴모를 블로거에게 뜨거운 호승심을 느끼며

최소한 다섯 잔은 마시리라 굳게 다짐하며 들어섰다.

우선 첫잔은 아사히 생맥주, "첫잔은 슈퍼 드라이로 마셔주세요"라는 한국어 안내문이 있을 정도다. 그리고 두번째

잔부터는 흑맥주를 마시던 생맥주를 마시던, 본인이 원하는 걸 달라고 하면 저 아주머니들이 따라주신다. 왜 이런

무서운 얼굴의 사진이 남았는지 모르겠지만, 다만 맥주를 청하면 쾌속무비한 속도로 손을 놀리시는 아주머니들이

그저 고마울 뿐. 생맥주도 맛있고 흑맥주도 맛있고.

사전에 인원수에 맞춰 테이블에 저런 안주를 인당 한개씩 배치해 둔다. 그리고 중간에 초콜렛이라거나 기타 안주를

맛보라며 조금씩 더 주는데, 그런 것들은 시음회 공간 한 옆에 있는 매점에서 팔고 있는 것들을 판촉하는 거라고

보면 될 거 같다. 그 매점의 매대에 마련된 시식용 안주들이 눈에 띄길래 새로 술잔 받으러 오고가는 길에 하나씩

집어들기도 했지만, 역시 맥주 본연의 맛을 느끼려면 안주는 없어도 그만이다.

생맥주, 흑맥주, 흑맥주, 생맥주, 흑맥주..기어이 채웠던 다섯잔은 아마 이 패턴으로 비웠던 것 같다. 듣던대로 단체

관광객들 중 술을 잘 안하시는 분들은 꽤나 많아서, 그분들은 주스 한잔만 마시고 금방 일어서시기도 하고, 매장에

무슨 안주를 파나 구경도 하고 그랬다. 그 와중에 다섯잔이라니 좀 심했다 싶기도 하지만, 사실 그렇게 부어라하며

마신 것도 아니고 상당히 여유롭게 마셨는데도 시간이 충분했던 느낌. 정말 30분쯤, 혹은 그이상 시간을 할애해

주었던 거 같다. 그러니 이렇게 사진도 함께 찍고, 주변 사진도 찍을 여유도 있었겠지.

마지막으로 일어섰다. 사람들이 전부 빠지고 나니 다시 자리를 정돈하고 내일 견학 프로그램을 준비하시나 보다.

어쨌든 이분들은 오늘 우리 3시 견학 일정을 끝으로 시마이.

왠지 나가기가 아쉬워서 매장이랑 근처를 살짝 둘러보았다. 생맥주와 흑맥주가 끊임없이 흘러나와 잔을 채우던

저 샘터가에는 이제 사람 한명 보이지 않고, 반대편에 있는 매장은 뭔가 뒷정리로 분주하다.

아까 견학하면서 처음 받았던 브로슈어에 꼽혀있는 한국어 광고글, 대체 누가 쓴 건지 모르겠지만 참 빼뚝거리는

글씨에 꾹꾹 눌러박힌 느낌표들이라니, 정말정말 상품을 팔고 싶은 느낌이 확 전해지는 거 같다. 요컨대, 저

매장에서는 요런 것들을 판다는 거다. 그치만 시식해 본 바에 따르면 글쎄, 맥주가 제일 맛있었다.

가리키는 대로 문을 나서니 밖에는 여전히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그치만 아까와 다른 건 어쨌건 빈속에

맥주를 다섯잔이나 들이마신 내 부유하는 정신상태. 조금씩 후끈해지는 머리와 목덜미에 와박히는 빗방울이

간지러우면서도 시원한 게, 이유없이 유쾌해져버렸댔다. 그냥, 취기가 돌았단 얘기.

다시 다케시타 역으로 갔더니 아까 서두르느라 미처 보지 못했던 스탬프가 한 옆에 놓여 있었다. 아사히 맥주공장

기념 스탬프쯤 되려나, 찍을 만한 종이가 잡히지 않아 그냥 하얀 받침대에 하나 이뿌게 눌러 찍고는, 사진으로

남겼다. 그러고 보니 오른쪽의 네모난 도장은 또 무슨 그림이었을까, 미처 못 보고 있었는데 이제 눈에 들어온다.

확실히 살짝 취했었던 겐가.

맥주 만드는 공정. 비단 아사히 맥주만이 아니라 모든 맥주가 이런 공정을 거쳐 만들어질 게다.

들고 온 명함, 후쿠오카에 갈 일이 있다면 꼭 들러볼 만한 코스인 거 같다. 맥주 공장이라는 곳을 그렇게 쉽게

갈 수 있는 것도 아닌 데다가, 아사히 맥주가 맛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왠지 갓 제조했을 거 같은 느낌의

신선하고 맛난 맥주를 맘껏 먹을 수 있단 사실만으로도 꽤나 괜찮지 않나 싶다.



중동 쪽 사업 아이템을 찾고 있다면 이 사진을 주목해야 할 거 같다. 

이 뜨거운 나라들이 어쩌자고 물탱크는 건물 옥상에 저렇게 적나라하게 드러내놓고 있다. 사우디에서나 카타르도

마찬가지, 그래서 일반집은 물론이고 오성급 특급호텔에서도 차가운 물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실제로

아무리 차가운 쪽으로 손잡이를 돌려놓아도 나오는 물은 뜨겁길래 혹시나 하고 반대쪽으로 돌리면 약간 과장해서 

증발직전의 끓는물이 나왔었다. 그게 다 저렇게 직사광선에 노출된 물탱크 때문이다. 최소한 저기에 차폐, 단열을

위한 커버를 씌우는 간단한 시설 만으로도 이 곳의 사람들에게 찬물 세례를 가능케 해주리란 생각.

비자 때문에 예상치 못하게 공항에서 너무 지체되고 말았다. 어느덧 어둑어둑해진 거리를 밝히는 네온사인중에

문득 눈에 가는 게 있다. 저건 분명 술집에 오라고 달콤하게 꾀는 네온사인. 금주령이 공식적으로 너무너무 엄격히

지켜지고 있다는 사우디, 어쨌건 술집 간판을 발견치는 못했던 카타르, 그 어디서도 술을 맛보지 못했던 터에 저런

술집간판이 눈에 띄는 동네에 온 것만으로도 뭔가 조금은 더 낯익은 동네에 온 반가운 느낌이었다.

쿠웨이트 Courtyard Marriot 호텔. 이미 많이 어두워진 상황에서, 호텔정문 앞 현관지붕이 마치 인디아나존스에서

성배찾는 편에 나왔던 투명한 다리처럼 생겼다고 생각했다. 불빛들이 많이 반사되면서 반짝거리고, 그 투명한

지붕 뒷켠에서 비치는 불빛들이 섞여들면서 꽤 화려했는데, 막상 사진에는 담기지 않았다.


이곳의 호텔 역시 들어서면서 탐지대와 금속탐지기를 각각 사람과 짐들이 통과해야 했지만, 그렇게 깐깐하게 굴진

않았던 거 같았다. 사우디나 카타르 호텔에 들어설 때마다 가방을 열어 물건을 확인해 달라고 요청받았던 일행 중

한 분이 여기선 아무 문제없이 통과했던 것만 봐도 그랬고, 이전과는 달리 위압적이지 않은 자그마한 탐지기를

첫눈에 띄지 않도록 구석에 밀어넣어둔 느낌이 들었던 것도 그랬다.

저녁 먹으러 간 곳에서 마주친 고양이. 그 곳이 유별난 곳이었는지, 아님 쿠웨이트가 대개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고양이들이 사방에서 어슬렁대며 쏘다니고 있었다. 이 건방지고 사랑스런 것들.

호텔 방안에서 발견한 쿠웨이트식 나침반. 저 화살표가 친절히 메카가 있는 방향, 무슬림들이 기도를 해야 하는

방향을 일러주고 있다. 어떻게 보면 좀 이해가 안 되기도 하는 게, 다른 종교들은 보통 신은 어디에나 편재한다고

가르치면서 아무데나 대고 기도를 한다. 물론 대개 신을 형상화한 십자가던 조각상이던 그런 물체를 앞에 두고

기도를 하게 되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런 기도의 대상을 정형화하는 것을 단연코 거부하는 이슬람교가 막상 기도

방향에 있어서는 저렇게 불편하고 까탈스러워 보이는 기준을 고집하는 건 왜일까.


그런 면에서 보면 저 '나침반'도 다소간 무슬림들의 고민이 녹아있는 건지도 모른다.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

메카가 있는 그곳을 나타내는 건 그냥 네모난 상자 모양, 혹은 단순한 건물 모양일 뿐이다. 특별히 메카나

기도의 방향을 나타내는 상징이 발달, 아니 발생하지도 못한 이슬람교의 처지에서 보면 저런 식으로 특별한

의미가 담기지 않은 기호로 메카를 표시하는 게 당연할지도.

호텔 창밖으로 내다보인 쿠웨이트 시내 전경. 내가 중학교 때던가 이라크의 점령과 뒤이은 걸프전을 치러낸 이곳은

덕분에 호텔이 흔치 않고 높은 건물 찾기가 쉽지 않은 곳이 되어버렸다. 덕분에 호텔 숙박비도 상대적으로 좀더

비싼 편이었다. 건물을 지어올려도 언제 또 이라크가 공격해올지 모른다는 학습된 두려움이 존재하고 있었고,

그런 불확실한 부동산 투자보다 다른 분야의 투자처를 찾았다는 얘기다. 그렇게 찾은 다른 투자처가 바로 두바이.

두바이의 건설붐을 뒷받침한 총알은 실제로 쿠웨이트의 투자자들로부터 나온 것들이라고 한다.

사진과는 그닥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세상에서 가장 비싼 돈은 뭘까. 달러, 엔, 유로, 파운드? 몰랐는데 쿠웨이트

디나르(DINAR)화가 가장 비싼 돈이다. 1쿠웨이트 디나르는 자그마치 5,416.32원이다.(2008.11.27 현재)

1쿠웨이트 디나르는 또 3.66739달러, 달러가 아무리 요새 갈수록 힘이 빠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건 어제오늘

이야기도 아니고, 새삼스런 것도 아닌 오래전부터 그랬던 거다. 어마어마하게 비싼 쿠웨이트 디나르화.

미국이 중동에서 일으킨 전쟁들의 가장 큰 전비부담도 직간접적으로 쿠웨이트가 가장 크게 짊어졌다고 하는데,

그런데도 여전히 정부 재정은 건전하기 짝이 없댄다. 갱장히 돈이 많은 나라다.

상담회 진행을 하며 총총거리고 다니다 몇번씩 타는 엘레베이터가 그때마다 재미있는 거다. 따로 층수가 정해진

버튼을 누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고 싶은 층 번호를 저 전화기 다이얼같은 걸 눌러서 입력을 하는 식이다.

그러면 A부터 D까지 이름이 붙어있는 엘리베이터 중 하나의 이름이 딱 뜨면서 그쪽의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층수가 적힌 번호를 누르느냐, 아님 층수 자체를 본인이 입력하느냐의 사소한 차이랄 수도 있겠지만

왠지 꽤나 새롭고 흥미롭게 보였다.

미처 방안을 어지를 시간조차 없이 짧았던 쿠웨이트에서의 체류시간. 단지 일박만 하고 밤비행기로 돌아가는

스케줄이어서 그랬는데, 다음에는 더 길게 올 수 있기를 바랬다. 기름값이 1리터에 60원(20센트)라는 이 기름진 땅.

순수쿠웨이트인은 100만명에 그치고 외국국적의 사람들이 200만이 넘는다는, 역시나 한국인으로서는 쉽게 상상키

힘든 상황이지만, 병원, 학교 등 대부분이 국영으로, 거의 무료나 다름없이 제공되는 유토피아같은 이미지의 땅.

이렇게 된 건, 쿠웨이트의 석유채굴 원가가 무지 낮기 때문도 한 몫했다고 한다. 대부분 육상에 위치한 유전이어서

석유채굴 원가가 배럴당 3불 정도밖에 안된다는 거다. 국제원유가가 백이삼십불에서 보합이라고 쳐도 대체 얼마나

수익률이 높은 장사를 하고 있는 건지.

밤비행기를 타러 가는 길에 마주친 쿠웨이트 타워(Kuwait Tower), 총 3개의 탑으로 구성되어 있는 조형물이라고

설명은 들었는데, 대체 왜 내 눈에는 저 조명이 이뿌게 비치는 탑 하나밖에 안 보이는 건지.

쿠웨이트를 나서는 공항에서 마주친 내가 보지 못한 쿠웨이트의 풍경들. 아...저런 곳이구나. 그렇지만 이곳에

두고 오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얼른 출장을 마치고 집에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이 뭉싯뭉싯 커지기 시작한

터라 그다지 미련은 없었다. 다음에 또 오면 되지, 라는 생각으로 가볍게 아쉬움을 끊어냈다.

이런 옷을 입은 배나오고 전반적으로 뒤룩뒤룩한 아저씨들을 보는 것도 이제 다시 흔치 않은 일로 돌아간다.

실내에서 담배를 꼬나물고 피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던 곳, 여성들의 눈만 보고 아름답다, 아름답지 않다고 느끼게

되는 곳-물론 사우디를 제한 나머지 나라들은 그다지 엄격하지 않았지만-, 꼭 출장이어서가 아니라 술을 마시기가

불가능에 가까운..살기 힘든 곳, 그런 곳을 벗어나 서울로 돌아오는 길은 갈 때보다 짧았다. 지구 자전의 도움을

받아, 10시간이 넘게 걸리던 서울-두바이 구간이 불과 8시간 45분이 소요되는 두바이-서울 구간으로 단축됐다.



쿠웨이트의 수도 이름은? 쿠웨이트. 정확히는 쿠웨이트 시티(Kuwait City)라 해야 할까. 카타르에서 쿠웨이트까진

고작 1시간 15분. 그치만 비행기로 1시간 안팎의 거리는 뭔가 가늠하기 어려운 격차가 있다. 서울에서 제주도도

50분, 서울에서 광주던가..그 거리도 45분. 서울에서 베이징도 대략 한 시간이었던 거 같다. 아마 미처 비행기가

제 고도에 올라 제 속도를 내기 전에 다시 착륙 준비를 하게 되기 쉬운 시간이지 싶다.


쿠웨이트 공항에 내려서면서 보인 공항 주변 풍경은, 사우디나 카타르나 비슷하다. 인천공항에 내려설 때처럼

서해쪽 섬마다 무성하고 파릇한 나무들같은 건 보이지 않는 건조한 그림.

현지에서 안내를 나온 아저씨가 완전히 우리를 잘못 인도해버렸다. 결과적으로 그 덕분에 비자를 받는 데 1시간반

넘게 걸리고 말았으니..비행시간이 그보다 짧게 소요되었던 걸 생각하면, 비자 받으려고 기다리는 동안 다시 한번

카타르로 날아 도착했을 거라고 모두들 툴툴거렸다. 이 상황에 딱히 적당하지는 않을지 몰라도, 역시 해외에 나감

외국인보다 한국인을 더 조심하라고 했던 거다. 그리고 내 경우엔 정말 그랬던 때가 많았다.


1) 비행기에서 내리면 바로 달려나간다. 저렇게 'VISA ISSUING'이라고 적힌 표지를 보고 종종걸음을 쳐서 얼마나

빨리 도착하느냐가, 비자 발급 기다리다가 홧병나 죽느냐, 혹은 늙어 죽느냐를 결정할지도 모른다.


내 경우, 굳이 일행들을 비행기 내리자마자 모아놓고 인원체크한 후 일일이 인사를 하겠다고 고집하는 그 아저씨

덕분에 이미 이 때 게임이 종료된 상황이었다. 늙어 죽을 운명.

2) 화장실 같은 건 조금 참았다가 비자 발급 순서기다리면서 가도 충분하다. 괜히 다른 곳의 화장실 사인과 달리

남자가 양쪽 허리에 손을 척하니 걸치고 있는 모습 같은데 혹해서 카메라를 찾는다거나 볼일을 보겠다고 들어가면,

비자발급대에 5분 늦게 도착해서 50분 늦게 떠날지 모른다.

3) 이렇게 세관으로 통하는 한 층 아래 내려가는 계단이 있지만, 우선 그 오른켠에 있는 비자 발급대에서 비자를

발급받고 내려가야 한다. 역시 쿠웨이트는 다른 아랍국가들보다 훨씬 친미적이고 자본주의적이라는 이미지에

걸맞게, 제일 먼저 마주치는 가게는 바로 맥도널드였다. 그 맥도널드를 지나면 바로 나오는 저 비자발급 표지.

사실은 여기까지 고작 50미터 정도를 얼마나 빨리 주파하는지가 관건이었는데, 우리는 일행을 다 모아 나와서는

화장실도 들르고, 일일이 인사도 다 하고 명함도 주고 받고. 그랬다.

3-1) 이미 모든 상황이 끝나고, 대기표 번호가 오육십번 밀려있는 상황에서..보다 나은 내일을 기약하며 참고삼아

찍은 사진. 이렇게 밑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오면 그 오른쪽에 저렇게 조촐한 비자발급대가 있는 거다. 저기서

시간 허비안하고 얼른 나서려면 달려야 하는 거다.

4) 비자발급대에 가면 무조건 빈 공간에 들이미는 게 아니라, 왼쪽 번호표 발급대에서 번호표를 뽑고 순서를

기다려야 한다. 한국인은 번호표 없어도 괜찮아, 이런 말도 안되는 억지 부리면 1시간반 기다리는 거다.


약 대여섯명이 비자 발급 업무를 맡고, 창구를 열고 있는 거 같았다. 도착하고서 잔뜩 그 앞에 앉아서 기다리는

사람들 보고 잠시 황망했다가, 또 번호표 필요없이 그냥 아무데나 가서 하면 발급해준다는 그 아저씨 말듣고

들이밀었다 구박당해서 또다시 황망..알고 보니 번호표는 680번대..그리고 현재 창구에 찍혀 있는 번호는 그보다

훨씬 앞에 있는 610-620번대.


더욱 놀라운 건 이들의 일처리 행태였다. 마치 슬로모션처럼 천천히 일하는 거야 그렇다고 쳐도, 한사람 해결하고

다음 사람을 불러야 하는데 좀처럼 부르질 않고 호출번호도 바뀔 줄을 모르는 거다. 그리고 멍하니 넋놓고 허공

쳐다보고 있거나, 옆사람과 잡담을 하고 있거나, 전화기를 만지작거리거나. 자신들앞에 입국자들이 3열짜리

의자에 빽빽히 앉아서 자신들의 차례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건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았다. 가끔 책임자인 듯한

사람이 돌아다니면서 그런 사람 등 뒤를 손으로 쿡쿡 찌르면, 그제서야 어슬렁어슬렁 손을 뻗어 호출번호를

새 번호로 바꾸고는 손님을 맞는다. 그렇게 한명씩 쿡쿡 찌르고 다니는 감독자의 몸짓도 역시 나른하고 게을러

보였지만, 그래도 찔리기 전까지 움직일 생각조차 없어보이는 그 사람들에 비하면 무지 부지런하고 성격급한

사람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그런 식으로..번호가 한번 바뀌는데, 그니까 한 사람 비자 발급하는데 십분 정도

걸리는 느낌이었다.

5) 이게 번호표 발급기계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바로 그 옆에 있다. 'Service is Optional'이란 문구. 일종의

급행료를 받는 곳인 게다. 그냥 비자를 발급받는 경우, 원칙적으로는 25달러, 더러는 30달러를 받는다. 무슨 말이냐

하면 원래 25달러가 공식적인 가격이지만 창구에서는 대개 30달러를 요구하며, 이미 잔뜩 고압적이고 권위적인

공무원들에 주눅이 든데다가 오랜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 비자를 받는다는 것 자체를 감사해 하기 마련이라

그냥 모르고 주는 거다. 약 20명의 일행 중 딱 한명만 30불 내고 5불을 거슬러 받았고, 나머지는 모두 30불을

당연한 줄 알고 내버렸다.


그런데 급행료의 경우, 50불을 주면 번호표가 필요없이 바로 발급받을 수 있으니, 시간이 보다 중요한 사람은

급행료를 내고 갈 만하지 싶다. 더구나 우리의 경우, 일행 중 하나가 모르고 내라는 돈 다 내고 Optional

Service를 받아 먼저 짐을 찾으러 내려간 덕분에 짐이 그새 없어지진 않을까 하는 걱정을 덜 수 있었지만,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짐의 안위를 걱정할 판이었을 게다. 어쩌면 급행코스 때문에 더욱 번호표 라인은

오래 기다려야 하는지도 모르고, 자신들의 수입을 위해 더욱 기다리게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기다리다

지치면 돈 더내고 급행코스를 밟으라는 거 아닐까.

6) 이 조잡한 종이는, 실제 저렇게 번호표 받고 기다리면서 적게 되는 비자 발급 신청서다. 대체 어떻게 복사를

하는 건지, 좀 다시 깔끔하게 프린트해서 대량복사해놓으면 안 되는지, 네모반듯해야 할 표들이 휘영청 야자수처럼

너풀대고 있다. 자신의 순서가 되면, 혹시 그전에 홧병걸려 죽거나 늙어 죽지 않는다면, 정확히 25불과 함께 저

신청서를 내면 이제 저기에 도장을 찍어주고 직인을 붙이고 한다. 그게 바로 쿠웨이트 비자, 그자체가 되는 거다.


그러다가 잉크가 떨어져서 도장이 흐릿하니 안 찍히면 그 핑계대고 또 한참 손놓고 쉬기도 하고, 기껏 됐나보다

하고 저 비자를 들고 아랫층으로 내려가면 뭔가 빠뜨린 게 있다며 다시 계단을 거슬러 오르기도 해야 하고..

쿠웨이트 비자 받기가 이렇게 힘든 건지는 미처 몰랐다.

공항을 벗어날 즈음 나타나는 그림. 흥, 웰컴 투 쿠웨이트란다. 웰컴은 커녕, 첫인상부터 너무 사람을 힘들게 하는

동네란 느낌만 팍팍 각인되고 말았다. 어쨌든 살아 생전에 비자 받기 위해 기억해야 하는 것은, 가능한 빨리

비자 발급대를 찾아 번호표를 받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비자 발급비는-급행이 아니라면- 25불이라는 것.


뜨거운 태양빛이 키큰 야자수 잎새에 흐트러진 회색 아스팔트길, 옆으로는 태양만큼이나 눈부신 바다를 끼고서

우리를 태운 대형버스는 시내투어에 나섰다. 카타르 도하의 해안도로는 다른 오랜 유적들과 함께 도하, 혹은

카타르에 가서 꼭 가봐야 할 곳 중 하나로 손꼽히곤 한다.

제한속도 80, 그렇다곤 하지만 차들이 왠지 시내 한복판에서보다 천천히 달린다는 느낌이 들었던 건 내 착각일까.

옅은 남색바다가 저렇게 옆에서 출렁이고 있는데 말이다. 그리고 왠지 운치있게 쪽쪽 뻗은 도로 중앙의 야자수들.

그리고 야자수 잎새 사이에서 얼쩡대는 저쪽 해안가의 스카이라인도 심심치는 않다.

내 마음대로 차를 멈췄다 다시 달렸다 할 수 있었다면, 저 사람들처럼 차를 세우고 바다쪽을 바라보며 잠시라도

바람을 쐬었을 텐데, 하다못해 패키지 투어라 해도 가이드를 꼬셔서 차를 세웠겠지만 어쨌든 지금은 일하는 중인

게다. 카메라를 손에 계속 쥐고 있기도 사실은 꽤나 민망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일행분들 찍어준다는 핑계를 대며

꿋꿋이 쥐고 있었다.

야자수 아닌 다른 종류의 나무를 본 건 꽤나 새로웠다. 더구나 저렇게 특이한 모양새로 다듬어진 나무라면.

차들 너머, 어릴 적 갖고 놀던 레고에서 푸른색 무성한 '나무'랑 똑같이 생긴 것들.

이게 무슨 호텔이었더라...하얏트 호텔이었던가. 곱게 관리되고 있는 저 잔디밭은 멀찍이서 보기만해도 무지

보드라울 거 같은 느낌이다.

지조없이 살짝살짝 구불거리면서도 이 해안도로가 집요하게 잡고 놓을 줄 모르는 것은, 바로 옆의 바다.

우체국이었던가, 무슨 관공서 앞에서 오토바이를 세워두고 그늘에서 잠시 쉬고 있는 콧수염 아저씨. 여긴 아무리

뜨거운 햇볕이 쨍쨍하고 내리쬐어도 그늘 아래만 들어서면 선선한 기운이 금세 차오른다. '더위'라는 게 꼭 우리

나라처럼 덥고 끈끈한, 그래서 불쾌한 무엇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

대통령궁이었던가, 카타르 최고지도자의 집무실이라고 들었다. 별로 건물이 특이하다거나 볼만한 걸 품고 있다는

생각은 안 들었고, 그나마 건물 정수리에서 펄럭이는 카타르 국기조차 바람결에 적극펄럭인다기보다는 이리저리

돌아누우며 어떻게든 안 일어나려는 휴일 아침의 내 모습 같다. 외려 저 촘촘하고 날선 느낌의 둘러친 담에 시선이

가닿는다.

울타리쳐진 담 끄트머리에 저 뾰족스러운 것들, 정말 누군가 무단으로 저걸 넘으려다가는 자칫 커다란 빵꾸가

몇개씩 생기고야 말 거 같다. 카타르가 그렇게 정치상황이 불안하거나 외교적인 긴장관계에 있는 것도 아닌데,

굳이 저렇게 살벌한 담을 둘러칠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버스가 계속 달리면서 지나가는 그 최고권력자의 집무공간..그제서야 바람이 조금 일었는지, 카타르 국기가 조금

몸을 일으킬 염을 냈나보다.

특이한 형태의 모스크..겠지? 둥글게 둘둘 휘감긴 느낌의 진흙색 건물, 맨 위 탑꼭대기에 초승달 모양 장식이

선명하다. 저 위에 올라서면 아마 도하 사방이 내려다보이지 않을까 싶도록 전체적인 건물들이 납작 엎드려있다.

해안도로가 그래도 유명한 이유는 이런 싱싱한 잔디밭이 사방에서 유지되고 있는 덕분 아닐까 생각했다. 황량한

모래바람과 쉼없는 땡볕세례에 까실까실 뾰족해진 잎새들만 품고 있는 이곳 녹색공간에 저렇게 풋풋하고 약한만큼

섬세한 녹색이 번창하고 있다는 게, 보는 사람의 맘을 왠지 안도하게 만드는 거 같다.

길가에는 저런 식의 조경이 꾸며진 정원도 있었다. 물도 차있지 않은 조그마한 풀 위를 가로지르는 아무 쓸데없는

다리, 아무 쓸데없는 계단같아 보였지만, 그래도 버스 밖을 계속 바라보는 보람이 된다.

길가의 표지판. 다른 건 다 몰라도 눈이 저렇게 이쁘다면 왠지 다른 외모도 모두 적잖이 화려하고 이쁠 거 같다.

신체의 실루엣이 하나도 드러나지 않는 저 검정 두루마기는, 그녀들에게는 더러 아쉬움을 유발하지 않을까.

얼마전 올린 포스팅에서, 사우디와는 달리 카타르에서는 여성 기업인들이 상담회에 참석하는 모습을 보았다고

했는데, 운전 역시 마찬가지다. 엄격히 여성의 운전이 제한되어 있다는 사우디와는 달리 카타르에서는 이런 여성

운전자가 꽤나 흔하게 보였다. 흔히 외국인들이 중국, 한국, 일본 등지를 '유교문화권'이라 묶어서 이해하는 것에

대해 지나친 단순화라거나 너무 범주가 크다고 불평할 수 있듯, 아랍권 국가들 역시..'아랍권'이라는 형체불분명한

칭호보다 개별국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와 접근이 필요할 때 아닌가 싶다.

점심을 먹으러 간 곳은 개성시 초입에 있는 봉동관이라는 음식점이었다. 얼마전까지는 이 곳의 유일한 북한식

고급 음식점이었지만, 평양관이라는 곳이 근처에 문을 열면서 독점 체제가 깨졌다고 했다. 그 이전에 비해서

서비스하는 게 훨씬 부드러워지고 친절해졌다는 짧은 촌평도 곁들여졌는데, 실제로 내가 겪은 바에는 참 친절했던

것 같았다. 한층짜리 건물 외양만 봐서는 마치 시골 어디메쯤에서나 쉽게 볼듯한 콘크리트 벽돌로 설렁설렁 지어진
 
어설픈 가건물 같은 느낌이었다. 게다가 군데군데 페인트가 벗겨져 나간 건물 전면에 내걸린 저 간판, 자칫 머리가

부딪히지 않을까 싶을 만큼 야트막하다.

일행들과 함께 조그마한 방으로 안내되었다. 상해에서였던가 북한에서 운영하는 옥류관을 갔을 때랑 비슷한

분위기의 홀이 옆에 있고 그 앞켠엔 무대도 있는 듯 했지만, 우리는 8명이 겨우 자리잡아 서빙을 받을 만큼의

자그마한 방으로 들어갔다. 무대가 있는 홀로 가는 게 좋지 않을까 했지만, 사실 난 '반갑습니다'라거나 '휘파람'류

노래와 연주가 이어지는 그 공연은 이미 봤었기 때문에 그냥 북쪽에 와서 일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는 조용하고 밀폐된 방도 좋겠다 싶었다.


서빙되기 전에 화장실에 가서 손부터 씻으려는데, 남위생실/여위생실, 이렇게 명패가 붙어있었다. 마치 대학가의

허름한 주점에 달린 화장실같이 삐그덕대는 얄팍한 문짝으로 가리워진 그 내밀한 공간.

그러고 보니 자꾸 각지의 화장실 사진을 올리게 되는 듯 한데, 개성서 둘째간다면 서러워할 이 봉동관의 자그마한

화장실 모습.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거울이나 세면대 같은 것 하나 없고 그냥 물도 내려가지 않는

소변기 하나, 그리고 옆에 수도물이 나오는 호스 하나.

여러 메뉴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일인당 30달러짜리 식사를 하면 우선 술이나 음료가 나오고, 몇가지 음식이

연이어 푸짐하게 나오고, 그리고는 평양냉면이나 쟁반냉면을 마지막으로 서빙해준다고 한다. 물도 새 병인듯한

이 '고려 신덕산 샘물'의 마개를 따서는 따라주었다. EVAIN이니 FIJI니 외국물을 마셨을 때 느껴지는 다소 생경한

뒷맛이나 목넘김과는 달리 부드럽고 시원했다. 제주삼다수랑 비슷한 거 같기도 하고.

술은 백두산들쭉술이니 뭐니, 꽤 종류가 많다고 했지만 괜히 술먹고 실수하지 말자고 음료수를 달라고 했다.

음료수라고 하니까 잘 못알아듣는 것 같아서, 이쪽 공장에서 오래 일하신 분이 다시 주문했다. 단물주세요.

그러니까 나온 '대동강 사과 탄산단물', 탄산의 느낌은 그렇게 강하지 않았고 노란색이었는데 꽤 맛있었다.


음식은 꽤나 여러가지가 나왔다. 녹두전, 소꼬리찜, 오리구이, 닭백숙, 잡채, 양고기 볶음. 우리를 전담하던 '접대원

동무'에게 양고기나 이런 식자재는 어디서 조달하느냐고 물어봤더니 모두 북한산이라고 한다. 북한은 양을 곧잘

키우고 있다고 했다. 거기에 도라지무침, 김치 등 밑반찬도 푸짐하게 나와서 배부르도록 먹었지만, 마지막에 나온

평양냉면은 끝내 남기고 말았다.


30달러짜리 식사면, 공단에서 일하는 공원들의 반달 월급인 셈이다. 그렇게 애초부터 살짝 불편한 마음으로 앉았던

자리였던데다가 테이블 위로 가득 펼쳐지는 음식들을 보면서 더욱 맘이 불편했었다.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절박한

사람이 그득한 이곳 북한땅에서 이렇게 호사로운 밥상을 받아들고는 얼마 먹지도 않고 깨작대다가 남긴다는 건..

아침을 못 먹고 서둘러 나왔던 탓도 있었지만, 그런 마음이 쿡쿡 찔러왔기에 약간 무리를 하면서까지 먹었던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조미료를 전혀 쓰지 않은 이 쪽의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고 닝닝하다고 얘기도 한다지만,

난 외려 그 깔끔하고 담백한 맛이 땡기기도 했다.

나오는 길에 '접대원 동무'한테 여기 맥주는 무슨 맥주가 있는지 물어봤더니 한켠에 놓인 냉장고를 보여준다.

대동강맥주. 맛을 못 보고 돌아가는 게 아쉽긴 했지만, 일단 어떻게 생겼는지라도 알아놨으니 담에는 꼭 맛보기로

했다.

'접대원 동무'. 보통 어떻게 불러야 하냐는 질문에 그렇게 부르라고 한댄다. 사진이 실물보다 못 나왔지 싶은데,

우리는 김민희 살짝 닮았다느니 이영아 닮았다느니 이야기를 했더니 그게 누구냐고 물어보았다. 한국에서 유명한

배우이자 모델이라고 하니, 그때까지 아저씨들의 얄궂은 농담들을 능란하게 받아넘기며 얼굴색 하나 안 변하던

그녀가 살짝 얼굴을 붉히며 좋아하는 것 같았다. 여기에서 일하는 '접대원'들은 상해나 북경에 있는 옥류관으로

순환하며 일하는 것 같은데, 다들 출신성분도 좋고 예술학교를 나와 노래나 악기에 모두 능숙한 솜씨를 보인다고

했다. 게다가 20대 초반 정도의 나이임에도 천연덕스럽고 센스있게 사람들의 말을 받아치거나 받아주는 그 밀고

당기는 감각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일행 중 한 분이 계속 이 아가씨와 사진을 한장 찍자고 조른 덕분에, 그 사진을 찍어준 나 역시 이렇게 한 장 같이

찍는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손도 꼭 잡아주셨던.ㅋ


'접대원'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남한 토양에서 뱉는 순간 상당히 불건전한 느낌으로 변하고 마는 것 같다. 그런

같지만 다른 단어의 뉘앙스를 악용했던 사례가 바로 2006년쯤엔가, 당시 열린우리당 당의장이었던 김근태의원이

졸지에 '북측 접대원과 춤을 추는 추태'를 부렸다고 보도되며 '개성공단 춤사건'으로 비화되었던 것이다. 그

장소가 바로 여기, 봉동관이라고 했다. '북한처자와 춤을 춘 좌파세력의 총수'라고까지 매도하는 극우세력들의

선정적인 비난은 당시 핵미사일 발사직후 그런 일이 있었다는 점에서 일부 심적으로 이해는 간다고 해도,

앞뒤맥락 끊어놓고 '북측 접대원'이라는 단어를 설명없이 모호하게 방치하는 건 너무 악의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공연을 구경하는 사람중 연장자나 좌장 격으로 보이는 사람을 무대 위로 끌어올려 잠시나마 함께 율동을

하는 건 흥을 돋우기 위해 일상적으로 있는 일이라고 한다.


어쨌든 불과 1-2분, 앞 무대에서 노래부르며 춤추던 북측 '접대원'의 채근에 못이겨 춤추는 시늉을 했던 그는

보수세력의 십자포화를 맞았고, 유력한 대선후보에서 급전직하하고 말았으니..

봉동관을 떠나 길가로 내려서는 계단에는 그간 내린 눈이 조금 쌓였다. 쌓였다기보다는 살짝 얹혀있다는 느낌이

더 강할 정도로, 그렇게 얄포롬하게 내려있었다.

아마 저 왼쪽에 있는 길을 계속 가면 개성 시내로 들어갈 수 있나보다. 원래 개성공단 내에 있는 모든 교통표지판엔

서울 방향과 개성 방향이 표시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그 글자들이 파란 페인트로 지워져 버렸고,

남아있는 표지판이나 버스 정류장 표지에는 '현대아산', '관리위원회' 등의 공단 내 지명만 남아버렸다고.


아마 교통표지판에 있는 '개성'과, 특히 '서울'이라는 글자가 계속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지 않을까 겁났던

게 아닐까 싶다. 이쪽 방향으로 조금만 쭉 가면 서울이 나오는구나, 그리고 저쪽 방향으로 조금만 가면 개성시내가

보이겠구나. 이런 자각이 언제든 동토를 뚫고 싹을 틔울 수 있을 테니.

다시 본공장으로 돌아가는 길. 차창에 내려앉은 눈발은 금세 물방울로 녹아 흘러내리고 있었다.

차에 내려앉은 눈방울들이 금세 녹아버리는게 차내의 온도때문이라면, 정말 이렇게 초록색 솔잎위에 내려앉은

눈발이 녹지도 않고 가만히 쌓여있는 건 살짝 경이롭기도 하다. 눈이 녹지 않을 만큼 차가운 온도로 저 초록색

싱싱한 솔잎의 체온이 내려가 있다는 건데, 용케 얼지도 않고 잘 버티고 있는 셈이니까 말이다.

아까는 스쳐지나갔던 것들이 조금씩, 배가 빵빵하게 불러버린 내 눈에 들어왔다. 라인마다 한 개씩 위에 달려있는

저 금일목표, 현재목표, 현재실적을 나타낸 안내판. 비록 찰리채플린은 모던타임즈에서 저런 단순 제조작업을

풍자하기도 했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제조업을 경원시하기는 하지만, 사실 일자리 창출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제조업을 살리는 거라고 생각한다. 괜히 금융선진화니, 대규모 토목공사니 할 게 아니라..

그렇다고 저런 목표량 때문에 일하는 사람들의 건강이나 삶이 위협받아서는 안 되는 건 당연하다.


애초 개성공단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은 남북간의 관계가 계속 진전하고 호전되기만을 바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것도 아닐지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남북관계가 점차 발전하면서 노동자에 대한 통제가 점차 완화되고

숙련공이 자유롭게 다른 직장으로 옮겨다닐 수 있다거나 임금인상과 복리후생 등의 측면이 불거지게 되면,

저임금의 이점을 바라보고 개성에 들어갔던 기업들의 경우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런 점에서

이들은 남북관계의 현상유지를 내심 바라고 있을지도 모르며, 그게 전진이던 후퇴던 너무 급박한 움직임은

원치 않고 있다는 건 확실한 거 같다. 지금이야 어쨌든 북쪽에서 정한 최저임금선에 맞춰서 노임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매년 5% 상당의 일률적인 임금상승도 충분히 용인할 수 있는 상황인 듯.

해서, 남과 북의 관계 개선을 견인하는 여러 행위자 중에서 이렇게 북한 측에 이해관계를 가진 남측 기업인들은

점차 보수화된 입장을 표명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봤다.

흔히 북한의 글씨체는 왼쪽의 저런 힘있고 전투적인 필체, 게다가 빨간 색과 검은 색이 장렬하게 섞여있기 쉽다고

생각하게 되지만, 오른쪽에 보이듯 저렇게 단정하고 힘뺀 글씨를 쓰는 사람도 북한에는 있는 거다.

아까는 제대로 귀기울여 듣지 않았지만, 여유있게 한바퀴 다시 돌아보면서 계속 가사를 분별해내려고 애쓰며

듣게 된다. 작업장 내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스피커에서 나오는 노래는 마치 군가 풍의 씩씩하고 감정이 과잉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는데, 중간중간 장군님 어쩌구, 승리 어쩌구 하는 가사가 들렸던 거 같다. 북한의

대중가요 같은 거 아닐까 싶은데, 노래하는 아저씨나 아가씨나, 금방이라도 감격해서 울어버릴 거 같은 목소리다.

작업장과 사무실 공간을 구획하고 있는 낮은 파티션. 앞에는 '자본주의의 꽃'인 광고 포스터 안에서 전지현이

화려한 외모와 모션, 그리고 옷차림을 과시하고 있었고, 뒷켠에는 하얀 머릿수건에 하얀 작업복, 주홍빛 앞치마를

두른 여공원들이 열심히 옷을 만들고 있었다.

청소를 깨끗이. 청소조로 짜여있는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보면 참 재미있었다. 아까 봉동관에서

양념을 많이 한 음식 먹으면 건강에 안좋다고 한마디하던 '접대원' 아가씨에게도 느꼈던 거지만, 이곳은..그리고

이곳의 사람들은, 마치 30년 전쯤의 한국과 같지 않을까 싶다. 우리 할머니또래의 이름들, 할머니또래의 입맛..

그렇지만 우리처럼 (아직은) 팽팽하고 젊은 사람들.

그렇지만 또 자주 개성공단을 왕래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면, 이곳에서 일하는 여공원들의 화장이 갈수록

짙어지고 화려해지고 있다고 하니, 이곳의 시간은 어쩜 우리네 경제가 압축성장했듯 그렇게 압축해서 총알처럼

흘러버릴지도 모르겠다.

2시 30분, 출경할 때처럼 꼬리를 물고 늘어선 차들이 북한군 차량의 인도를 기다리고 있다. 혹시나 해서 살짝

켜본 네비게이션에서는 노이즈 섞인 한국TV 방송이 볼만하게 나오고 있어서 깜짝 놀랬다. 정말 이렇게 가깝구나.


북한을 벗어나기 전에도, 들어올 때와 똑같은 절차를 밟았다. 금속탐지기와 검색대를 지났고, 아까 들어올 때

삑, 소리를 유발했던 코트의 금속 쇠붙이는 또다시 삑, 소리를 내고 북한군인 아저씨의 이목을 끌었다. 북측에서

발부했던 출입증은 반납했고, 내 카메라에 찍힌 사진들은 끝에서 끝까지 샅샅이 검사당했다. 군인아저씨가 직접

카메라를 쥐고는 사진을 한장 한장 빠르게 넘겨가며 매서운 눈매로 체크를 했다는 사실. 혹시 뭔가 꼬투리를

잡지는 않을까, 나도 모르게 뭔가 이상한 게 찍혀있는 건 아닐까..예측할 수 없는 위협이 언제고 머리를 쳐들 수

있다는 생각에 은근히 긴장했었지만 별탈없이 넘겨받았다. 하기야, 출입국으로 오면서 몇차례나 샅샅이 찍은

사진들을 확인했었고, 스스로 쫄아서 지워버린 사진도 적지 않았으니까.

개성공단 지구를 벗어나는 길에 세워져 있는 저 커다란 붉은 별이 박힌 바리케이트. 어렸을 때 똘이장군이니 뭐니

반공만화 드라마에서 보았던 북한군인들은 모두 머리위나 가슴팍에 커다란 붉은 별을 달고 있었다. 그것도 왠지

음흉한 느낌을 주는 붉은 색이었거나, 좌우지간 이뿐 빨강이라는 느낌은 전혀 안 들었던 거 같다. 근데 솔직히

군복은 북한 군복이 좀더 이뿐 거 같은데. 소련과 중국의 대륙식이랄까, 그런 군복과 유사한 느낌으로.

유리창 너머 보이는 전면의 커다란 송전탑. 저 탑을 통해 무려 15만여 볼트로 내달리며 남측의 전력이 북측의

개성공단으로 공급되고 있는 거다.


아까 그 봉동관에는 이 전기가 공급되는 게 아니겠지? 밥먹는 와중에 세네차례나 전기가 끊겼더랬다. 갑자기

형광등이 꺼져버리고 주위가 조용해지는 순간, '접대원'이나 이곳에 오래 머물렀던 분들은 놀랍지도 않다는

표정이었지만 난 정말 개성의 전력수급이 이렇게 열악하다는 걸 체감하고 깜짝 놀래버렸다. 개성은 북한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큰 도시인데, 실제 하루에 전력이 들어오는 시간은 네다섯시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비무장지대를 건너, 자유의 다리를 건너면서 계속 카메라를 만지작거렸다. 어쨌든 지금 남쪽으로 향하고 있는 거고

지금 사진을 찍던말던 북측에서 어떻게 제재할 방법이 있겠어, 그리고 남측에서도 그렇게 빡빡하게 나오겠냐라는

생각을 했지만...어쨌든 북한 지역은 벗어나기로 했다. 언제 어디서 총알이 날라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게다. 북측과 남측의 구역을 식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직선도로를 따라 함께 늘어선 가로등

중간쯤 꿰어진 저 플라스틱 링을 보면 알 수 있다. 남측 구역은 노란색 링을 끼고 있고, 북측 구역은 파란색 링을

끼고 있는 거다. 실제로 이 사진을 찍은 건 비무장지대를 한참 지난 후의 일.

입경하는 코스는 북한에 들어갈 때와 비교하면 훨씬 간단했고, 훨씬 부드러웠다. 아까 카메라 검사받을 때 한번

크게 풀린 긴장감은, 일렬로 마치 장송행렬하듯 천천히 전진하던 자동차 대열에서 벗어나 남측 출입사무소에서

일단 내리면서 다시금 완전히 해제되었다. 그러고 보니 입경, 표지판에는 한자와 영문이 모두 병기되어 있다.

왠지 그 밑에 웰컴 투 코리아 혹은 웰컴 백 투 코리아, 이런 거라도 적혀 있어야 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지만, 또한 금세 내가 개성을 갔다왔고 북한땅을 밟았다는 사실이 꿈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혼란한 느낌도 들었다. 이건 너무 가까운데, 너무 다른 세상이었다.


저녁때 종로에서 가볍게 술한잔 마시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으레 그렇듯 떠들썩하게 와 하고 퍼지는 웃음소리와

시끌벅적한 붕붕 떠있는 분위기. 개성에서 첫눈을 맞았던 나는, 서울에도 첫눈이 왔다는 사실을 여기 와서야 알게

되었다. 난 오늘 하루 어디를 다녀왔던 걸까 싶었다. 차로 불과 한시간 거리면 그렇게도 비슷하고 닮은 사람들이

참 다른 세상을 감각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서로에 대해 이다지도 낯설고 모를 뿐더러 무관심하게

지내고 있다는 사실, 너무나 놀라운 건데..아무리 놀라운 것도 반세기가 넘으면 그저 진부한 레토릭이 될 뿐인가.


개성엔 편의점이 있을까? 공업단지 내의 도로를 돌아다니다 보면 불쑥 어디 모퉁이에선가 나타난다.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바로 옆쯤에 있는데, 무려 '개성공업지구점'이란 거창한 지점명도 갖고 있었다.

안 들어가 볼 수 없어서 얼른 들어가 봤더니, 북한 아가씨인 듯한 젊은 처자가 카운터를 보고 있다. 엷은 화장에

남측 기준으로 평범한 복장이어서, 순간 여기가 개성 맞는지 의심스러운 지경이었다.

그렇지만 역시 이곳은 개성, 북한이 외화벌이를 위해 위험한 시장경제 실험을 벌이고 있는 곳 아닌가. 모든 상품은

달러로 가격이 표시되어 있었고, 그 점원누님은 아마도 16년동안 편의점 알바를 뛰어온 알바의 달인인 듯 능란하게

손님들을 받고 있었다. 다만 다소 들떠 보이고 리드미컬한 북한 사투리가 도드라졌다는 점을 빼면.

이곳에서 파는 담배나 술 종류는 면세가 되기 때문에 가격이 상당히 싸진다고 한다. 이 곳에 주재하며 일하는

남측 직원들은 2주정도마다 남쪽으로 돌아갈 때 애용하기도 한단다.


이 곳에서 쓰이는 돈은 달러, 최소단위는 1달러지폐라는 것이 북한에 넘어오기 전 방북 교육의 내용이었다. 그렇담

저 센트 단위의 거스름돈은 돌려 주려나, 아님 그냥 올림하려나. 편의점을 떠나는 순간부터 궁금했지만 끝내

궁금증을 해소하지 못한 채 돌아오고 말았다. 혹시 모두들 기를 쓰고 센트 단위 거스름돈을 안만들기 위해 머리를

쓰며 상품을 고르려나. 0.9달러짜리를 샀다면 꼭 1.1달러짜리라도 하나 골라서 같이 사는.

그 옆에는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라는, 남측의 관리 주체가 있다. 지금 현재 이곳은 2번째 포스팅에서 이야기한

판-옵티콘으로 입주하기 전까지 임시로 머물고 있는 곳이라고 한다. 자동차들에 붙어 있는 번호판들을 보면, 흰색

번호판은 이쪽에서 상주하며 쓰이는 차량이거나 잠시 넘어왔던 차량, 그렇게 남쪽 차량을 의미하고, 노란색 판은

북한 차량이다. 노란색 번호판을 단 차량을 꼭 사진으로 남겨놓고 싶었지만, 대부분 그런 차들은 제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타고 있었기 때문에 차마 찍을 수가 없었다.

개성공단 내에는 병원도 있다. 그린 닥터스라는 단체에서 운영하는 병원인데, 1층짜리 건물에 남과 북의 의사와

간호사가 다소 섞여서 남, 북한의 환자를 각기 치료중이라고 했다. 이를테면 남쪽 소속의 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병원 한쪽 공간에는 남측 의사와 간호사가 주가 된 채 두세명의 북측 의사, 간호사가 함께 진료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병원의 다른쪽 공간에는 북측 의사와 간호사가 주로 포진하여 북쪽 소속의 환자를 치료한댄다. 그 두 공간

사이에는 반투명한 유리문이 설치되어 있는데 꼭 항상 열려있는 것만은 아니라고 했다.

남측에서 은행도 건너가 있었다. 다소 작다 싶은 지점 수준의 규모였는데, 창구가 두 개 정도 되었던 거 같다.

한쪽 벽면에는 그간 다녀간 귀빈들의 방문 사진이 스크랩되어 있었다. 이명박은 서울시장 재임시절 개성공단을

한번 쭈욱 둘러본 듯 하다. 여기저기서 그의 사진을 볼 수가 있었다.

참 심플한 메뉴판이다. '안내표'란 말은 글쎄, 북한에서 고친 말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어색한 느낌은 없는데

메뉴판이란 단어 대신 바꿔봄직한 거 같다. 그래봐야 영어+한자를 한자어로 바꾼 거에 불과하지만. 어쨌든 어느

건물인가에는 이런 찻집도 있다. 다시 한번, 참 심플한 안내표다. 1달러, 1달러, 2달러, 2달러, 1달러. 여기선

최하 1달러지폐를 통용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진 듯한 느낌이다.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가 현재 소재하고 있는 건물 한 켠엔가 붙어있는 한반도 지도. 출입증에 보였던 것처럼

명백하고 과장스럽게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저기 얼룩처럼 보이지만 분명히 의도된 두 개의 점을 볼 수 있다.

참 드문 경험이지 싶은데, 독도에 대한 한국정부의 명쾌하고 단호한 입장을 이렇게 쉽사리 마주칠 수 있단 건.

'소방대'도 있다. 이 사진을 찍어도 될지 안 될지, 그리고 저 옆에 살짝 찍힌 아저씨의 츄리닝이 '제복'에 포함될지

안 될지..백만분의 일초 사이에 머릿속에 온갖 걱정과 근심이 어른거렸다. 북한, 개성이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었단

사실도 놀랍고 슬펐지만, 내가 스스로 이렇게 개성에 다녀왔노라 글을 쓰면서도 단어와 표현, 뉘앙스를 스스로

정제하고 가다듬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슬픈 것처럼. 아, 그러고 보니 이 사진 안의 차들은 모두 노란색 번호판을

달고 있는 북한측 차량이다.

개성공단 내의 도로를 달리면서 보면, 서울이나 어디 남녘 소도시를 다니는 것과 차이를 거의 느낄 수 없을

정도로 그렇게 친숙하고 낯익은 풍경들에 놀라게 된다. 단순히 남과 북의 민족적 일체감...운운이 아니라, 개성공단

내 도로나 가로등, 도로표지판까지 모두 한국 측에서 제공한 것이기 때문인 거다. 파란색 도로표지판의 색도나

그 글씨체까지 모두 남측에서 통일되어 있는 바로 그것들이다. 


우리가 탄 차 앞에서 달리는 트럭에 빼곡히 탄 북측 인부들. 사실은 저것도 애초의 룰과는 벗어나는 일이다. 애초

약속하기로는, (노랑 안전모를 쓴) 북측 사람들은 (노란 번호판을 단) 북측 차에만 타고, (흰색 안전모를 쓴) 남측

사람들은 (흰색 번호판의) 남측 차에만 타기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게 어디 되겠나 싶었다. 아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얼굴 맞대고 한공간에서 일하고 이야기하며 '살고' 있는데, 편의적인 이유에서든 심리적인 이유에서든

그런 불편한 룰은 금세 지워질 수 밖에 없었을 거다.

노란색 안전모들이 몽글몽글 뭉쳐져 있던 그 계란판같은 트럭 위에서 살짝 드러난 얼굴. 나이를 가늠하긴 힘들지만

꽤나 연로해 보이시고 피곤해 보이시는 표정이다. 아님 단지 코가 간질거려서 잠시 재채기를 하려고 하셨는지도.

저런 식으로 유려하게 씌여진 한글 간판이 이 개성공단을 꽉 채울 수 있다면 그것도 꽤나 멋진 광경이 되지 않을까.

이미 몇가지 서체, 그것도 대부분 일본에서 유래되었다는 서체에서 별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는 남측의 한글디자인

그리고 한글문화에 조금은 자극을 던져 주면서, 북한이 남한이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례가 될 수 있을지도.

현대아산 사무실에 들어왔더니, 개성상황실이 있다. 벽면에는 시베리아횡단철도와 중국횡단철도와 연계해서

발전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개성을 보여주기 위한 온갖 도면이 붙어있었고, '복스럽게' 생긴 북한아가씨가 우리에게

개성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개성은 유명한 박연폭포와 한석봉이 판액을 쓴 걸로 유명한 남대문, 그리고

정몽주가 피살당한 선죽교 등의 문화유산을 품고 있습니다..운운. 어라? 피살? 단어가 상당히 세다고 느꼈는데,

나만 그렇게 느꼈던 걸까. 설명중인 아가씨는 여전히 피냄새가 풍기고 훈김이라도 오를 듯한 그런 단어를 발음해

놓고서는 아무렇지 않은 듯 이런저런 설명을 이어가고 있었고, 주위의 다른 사람들도 별반 반응이 없었다.

저 디오라마 한가운데 있는 붉은 기둥 같은 건 아마도, 거대한 김일성 동상인 듯 했다. 개성 시내 한가운데에는
 
저런 게 서있나 보다. 설마 조명까지 저 섬뜩한 붉은 색으로 비추는 건 아니겠지.

현대아산의 개성상황실에서 능숙한 말투와 자세로 흐트러짐없이 개성의 현황, 개성공단의 향후 계획에 대해

설명하던 아가씨. 내가 카메라를 들고 멈칫거리는 걸 센스있게 눈치채곤 한마디 해주었다. 자유롭게 사진찍으셔도

됩네다. 그 말 듣고 당장 찍은 그녀의 발표 모습. 겉모습만 보곤 남한과 북한의 처자를 구분하기가 그리 용이하진

않은 듯 하다. 남측보다 결혼이 빨라서 20대 초중반에 결혼을 한다고 하는데, 그 이전까지는 남측과 비슷하게

연령대에 맞는 외양을 유지하다가, 결혼 후 아이를 낳고 나서는 같은 나이의 남측 여성에 비해 한 10년쯤 더 나이가

들어보인다고 한다. 아무래도 출산을 위해 모체의 영양분을 모두 아이에게 넘겨주고 나서 그를 보충할 충분한

영양이 공급되지 않는 환경이니까 그렇지 싶다. 산후조리, 그리고 산중 영양섭취의 중요성이랄까.

개성은 저기다. 강화도에서 다리 하나만 건너면 금방 닿을 수 있는, 아마 서울까지 가는 것보다 개성에 가는 게

더 가까울 거 같다. 참 가깝다. 이렇게 남측에 최근접한 곳을 공단시설부지로 내놓을 수 있었던 건 확실히 김정일의

일인독재에서 기인한 결단력이 아니었을까 싶다. 당시 북한 군부에서는 격렬한 반대가 있었지만 김정일은 이를

모두 물리치고 기어코 이곳을 남측과의 경협사업에 내어준 거라고 들었다.

이게 개성공단 1단계 공장구역, 백만평에 이르는 부지라고 한다. 현재 노동집약적 업종 중심의 개발사업은 완료된

상태로, 남북경협의 기반을 구축하는 단계라고 한다. 약 250여개 업체가 들어가서 실제 50여개 업체가 공장을

가동중이라고 하는데, 주로 봉제, 신발, 가방 등의 상품이 만들어지고 있다.

2단계 공장구역은 250만평에 이르며, 기계, 전기, 전자 등 기술집약적인 산업을 발전시켜 세계적인 수출기지로의

육성을 꾀하고 있댄다. 배후지역에는 골프장도 두세개 건설될 예정이라고 하는데, 음...골프장이랜다.

3단계 사업은 IT, 바이오 등 첨단산업 중심으로 550만평을 개발하여 동북아 거점 생산기지로서의 역할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한다. 이게 2012년까지의 계획이라고 했는데..글쎄, 현재까지의 정치적, 경제적 상황으로 보아서는

다소 지연될 가능성이 크지 싶다. 그리고 다소 지연되더라도 좋으니 그런 청사진대로 개발이 될 지에 대해서는,

글쎄, 지켜보는 수밖에 없지 싶다.

1단계 공장구역과 3단계 공장구역 사이로 고속도로와 경의선 철도가 놓여 있을 텐데, 그 부근에 상업구역을 만들어

저런 고층빌딩을 잔뜩 올릴 계획도 갖고 있다고 했다. 저 반달 형태의 호수는 남북한의 화합과 번영을 상징한다고

했던 거 같은데, 너무 먼 이야기인 거 같아 사실 흘려들었다.

빨간 선이 고속도로, 노란 선이 경의선 철도. 지금도 도라산역에서는 북측으로 하루에 한 차례씩 철도가 운행중에

있다고 한다. 딱히 무언가를 싣고 옮길 것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해주지 않으면 모처럼 놓인 철로가 못쓰게

되고 수명도 짧아진다고 했던 것 같다.


놀랬던 건, 설명을 하던 북한 아가씨의 입에서 '세계적인 경쟁력', '가격경쟁력', '세계 일류', '세계 시장'같은

자극적인 단어들이 잔뜩 튀어나왔다는 사실이었다. 아..북한도 변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비로소 들었던 순간.

현대아산 건물 위에 올라 개성공단을 조망했다. 아침부터 하늘이 잔뜩 의뭉스럽게 꾸물꾸물하더니 기어코 눈발을

뱉어놓고 있었다. 황량한 공사현장이 산재해 있고, 저 기분나쁜 판-옵티콘은 어디서나 잘 보이지만, 그래도 올해

첫눈을 개성에서 맞게 되다니 기분이 색다르다. 처음에는 딱딱하게 뭉쳐진 싸리눈이 투둑대며 떨어지더니, 조금씩

부드러운 눈발로 바뀌어 나리고 있다.

눈이 내리는 걸 보면서, 어처구니없게도 내가 든 생각은 머리에 바른 왁스물 흘러내리겠다는. 어느순간 눈내리는

것이 싫어진다면 나이를 먹었다는 증표라고 했지만, 단지 머리에 뭔가를 바르지 않던 시절과 멋 낸답시고 뭔가를

바르기 시작한 이후라는 차이가 아닐까 싶다.

시계가 순식간에 잔뜩 움츠러들어 버렸다. 거대한 감시탑 혹은 망루처럼 세워져있는 저 관치냄새 풀풀 풍기는

건물도 슬몃 눈발이 만들어낸 장막 뒤로 한 걸음 숨어들었다. 그리고 여긴 개성.


남북출입사무소 뒷문으로 나가 차를 타려 했는데, 주위의 차들도 그렇고 우리 차도 그렇고 모두 분주하다. 
차 앞의 번호판을 흰 판으로 가리고 있었다. 아무 것도 안 적힌 흰 판으로 고정시켜 가리는 경우도 있었고,

'림시(아마도 임시번호판이란 뜻이겠지만)'라고 적힌 번호판으로 덧대는 경우도 있었고.
 
그리고 차 한쪽에 저런 붉은기를 꼽아 놓아서, 여러 차들이 모두 그런 깃발을 꼽아 둔 걸 보면 마치 어딘가

단체로 여행가는 차들 같다. 저 깃발은 현재 이 차량은 비무장 상태로서, 합법적으로 북한에 방문한 차량임을

식별할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으레 호전적인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붉은 기보다는 이왕임 하얀색

깃발이 낫지 않을까 잠시 생각했다가, 그건 자칫 북한에 투항한다는 뜻으로 읽힐 수도 있겠구나 싶어서 이내 폐기.

실제로 그런 논의가 남북간에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남조선 동무, 백의민족답게 흰색으로 하갔시오?" "북한에

사는 친구 A-yo, 그건 우리가 백기들고 투항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니 다른 색으로 합시다." 운운.

또 하나, 차 안에 있는 네비게이션은 탈착이 가능한 경우 빼두고 가져가지 말도록 하고, 이것처럼 아예 빌트인

형태의 것이라면 회선을 끊고 흰 종이로 덮어 두어야 한다. 그렇게 부산하게 준비를 마친 차들은 일렬종대로

북쪽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 남한측 2km, 북한측 2km의 비무장지대(DMZ)를 지나 북측에 있는

출입사무소까지 가는 동안에는 사진 촬영이 일체 금지되어 있다고 했다. 차들이 비무장지대 한 복판으로 천천히

나아갔고, 어느 지점쯤에선가 남측 군인들이 탄 지프가 멈춰서서는 우리가 가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앞쪽에는 북측 군인들이 탄 지프가 우리가 오는 걸 지켜보고 있었고. 그렇게 우린 남에서 북으로 '인수인계'.

겨울로 가는 문턱이라 그런지 비무장지대라 해도 뭐랄까, 사람 손 타지 않은 천혜의 자연..이란 이미지는 별로

느낄 수가 없었다. 누렇게 죽어가는 풀떼기들과 나무들이 있을 뿐이었는데, 정말 어느 순간 그 나무들이 무척

키가 작아지고 어린 것들만 보인단 느낌이 들었다. 북측 지역에 넘어섰던 즈음일 게다.


차에 함께 탄 일행 중 한명이 한번 더 주의를 단단히 주었다. 주위에 사람이 없고 풀떼기만 보이는 것 같아도,

북한군인이 어디선가 다 보고 있다고 하면서 사진은 절대 찍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북한군인들이 찍은 사진을

전부 검사하며, 혹시 사진촬영금지지역에서 찍힌 사진같으면 벌금 몇백달러에 자칫 카메라 압수까지 당할 수

있다고 했다. 별 수 없이 카메라를 얌전히 꺼두고 차창에 붙어 열심히 눈알만 굴렸다.


우리가 가고 있는 길 옆으로 커다란 송전탑이 따라 오고 있었다. 개성공단 지역의 전기 수급을 담당하기 위해

남측에서 전기를 송전하기 위한 설비라고 했다. 송전탑이 든든히 남과 북을 잇고 있는 듯한 느낌.

정주영회장이 몰고 왔던 소떼들이 바로 이길을 지나 북으로 갔다고 하던데, 아마 그 소떼의 걸음속도로 천천히

움직이는 차들이었지만 4km는 금방이었다. 그래서 불과 십분 안팎? 그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저 앞에 북측

군인들의 경계 초소가 보였고, 붉은 별이 그려진 바리케이트가 얼기설기 놓인 것이 보였다.


서울에서 개성까지 불과 80여km. 참...가깝구나 싶었다. 그러면서도, 남한에서 북한으로 넘어가면서 말그대로

깜깜하기만 한 구역, 블랙박스를 지나면서 은근히 긴장했던 걸 깨달았다. 그리고 아마 북한을 다시 떠나기

전까지는 이런 긴장이 계속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물론 그 블랙박스는 북한에서만 설정한 건 아니겠지만.

북한측 출입사무소에서 비행기 입국심사하듯 검색대를 지나, 세관에 출입증을 제출했다. 빨간 계급장과 김일성

배지가 달라붙은 채 칼같이 각잡혀있는 누런 북한군복을 입은 군인이 딱딱한 낯빛으로 나를 맞았다. A4지 몇장에

걸쳐 프린트된 소속, 이름 등등의 표를 한장씩 넘겨가며 내 이름을 확인하길래, 그보다 먼저 내 이름을 발견한 내가

손가락을 짚어 여기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랬더니 도장 한 방, 쾅 찍고는 통과. 딱히 무섭게 하려거나 긴장감을

준다기보다는, 그냥 그 군인은 나를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으로 보는 느낌이다. 소 닭 보듯 하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바로 공장으로 들어섰다. 김대중 대통령이나 김정일국방위원장도 방문한 바 있고, 최근에 북한군 고위

장교가 개성공단 내 공장을 돌면서 짐싸는데 얼마나 걸리는지 물어볼 때 맨 처음 다녀갔을 만큼 개성공단의

대표적인 공장이다. 한붓그리기를 하는 듯 죽 지그재그로 이어진 형광등 아래 북한사람들이 잔뜩 모여있는 광경을

첨 맞닥뜨리고 살짝 당황했던 건 단지 미처 심적 준비가 안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공장 건물 입구를 들어서면

바로 그 옆에서부터 작업 라인이 늘어서 있단 걸 몰랐기 때문에 당황키도 했지만, 솔직히 이렇게 많은 북한 사람과

한 공간에..그것도 상대적으로 소수인 입장으로 마주하는 건 처음이었다.

그렇지만 내 속내가 어떻게 복잡하게 돌아가는지 상관없이 그네들은 모두 자신들이 할 일에 골똘히 열중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재단하는 공원(직원)들, 그리고 차례차례 순서를 거쳐가며 봉제를 해나가는 공원 라인들.

그러고 보면 난 단지 의류 제조공장이란 곳에 처음 들어와서 느낀 생경함을 북한사람들과의 대면에 대한 문화적

충격으로 잘못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사방에서 돌아가는 재봉틀 소리, 그리고 자신의 수족인양 민첩하게 쓰이는

다리미와 각종 도구들. 처음엔 그냥 이 '봉제실 2반'의 전체 덩어리를 뭉뚱그려 보고 있었지만 조금씩 한 명 한 명,

여공원들의 표정과 움직임이 눈에 들어왔다.

우선 공장을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2층에 있는 샤워실, 북측 공원들은 이곳에서 샤워하는 걸 무척 좋아한다고

했다. 기본적인 먹는 문제조차 쉽게 해결하지 못하는 동네에서, 수도시설이나 전기시설이 제대로 되어 있을 리가

없는 거다. 설혹 제대로 되어 있다고 해도 샤워를 하는 건 쉽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샤워실'이란 문패 아래 붙은

스케줄표를 볼작시면, 보이는가. "샤와실 리용계획".

그 옆에는 생각보다 훨씬 괜찮은 수준의 식당이 있었다. 2005년이던가, 이 업체의 개성공장 준공 기념 패션쇼를

이 공간에서 열었다고 한다. 의자와 테이블을 모두 치워놓고 만들어진 런웨이 위에서 김태희가 워킹을 했다는데,

한국 최고의 여배우가 온다는 소식에 이곳 공원들이 모두 기대감에 충만해 있었댄다. 근데 정작, 김태희는 기대에

못 미쳤다며 그녀와 함께 워킹을 했던 다른 모델이 더욱 이뿌다는 한 목소리였다고 했다. 아마도 조금 통통하고

'복스럽게' 생긴 녀성을 날씬하고 다소 마른 체형의 여성보다 선호하는 이쪽의 미적 기준이 작용한 결과일 게다.

어쨌든, 왠지 그녀와 나는 여러모로 같은 공간을 점유하고 있다는 묘한 생각을 잠시. 크흑.

원래는 식사를 제공하지 않는 것으로 합의가 되었으나, 언젠가부터 중식을 제공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중식은 이곳에서 일하는 북측 인력들의 가장 중요한 식사시간이란 말은 굳이 덧붙이지 않아도 알 만하다. 제법

식단도 다양하게 잘 나오는 거 같은데, 모든 식자재는 남측에서 건너온다고 한다.

다시 1층의 작업 공간으로 내려와 한 바퀴 빙 둘러보았다. 한달의 약 60불의 임금을 받고 있는 이들은 대부분

고졸 이상의 높은 학력 수준과 이해력을 갖고 있다고 했다. 다만 인사관리의 권한이 남측 업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북측에 있다고 해서, 근태관리라거나 인센티브 부여, 혹은 내가 이해한 바대로 보다 나이브하게 말해 작업장내

규율 확립과 효율성 증진을 위한 조치를 취할 수가 없다고 한다. 사실 이 여공원들도 북측 상부에서 여기에 와서

일해라, 하니까 일하는 거지 개인의 희망이나 의지가 반영되어 배치된 것은 아니란다.

작년 말께 있었던 제2차 정상회담에서 노전대통령이 언급했던 개성공단 인근 기숙사 건설 문제는, 아직까지는

아무 후속방침이나 조치가 없다고 한다. 이미 개성 인근의 노동력을 모두 흡수한 상태라 하던데 공장들이 증설되면

새로 신규 인력을 어디서 끌어올지도 문제고, 그들이 어디에서 머물지도 문제가 될 거 같다. 다소 심한 경우일지

몰라도, 이곳에서 일하는 한 북한아가씨는 밤 3시에 일어나 밥을 하고 치장을 하고는, 4시 40분께 집을 나선다고

한다. 공단에서 운영하는 셔틀버스가 있긴 하지만 코스가 다양하지도, 길지도 않아서 어느 정도 걷거나 자전거를

타야 하며, 그래야 6시 반이던가 출근 시간에 맞출 수 있댄다. 하여 취침시간은 9시에서 9시반. 참...빡빡한 삶이네

속으로 생각했지만..맘 속 한구석에선 월급쟁이란 북녘땅이나 남한땅이나 비슷하구나, 했다.

처음에는 작업장 밖에 안 보이더니, 조금씩 사람들이 보이고, 그리고 그들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그네들은 자기들끼리 웃으며 이야기도 드문드문 하고, 뭔가 짜증이 났는지 작업반장같은 사람한테 목소리 높여

살짝 항의도 하고, 옆사람이 시범보이는 걸 진지하게 눈여겨보며 배우기도 하고, 가끔은 발랄한 웃음소리도

시끄러운 재봉틀 소리와 함께 풀어놓기도 했다.

이렇게 재단을 하는 사람이나, 제봉을 하는 사람이나, 심지어는 숙련된 작업 고참으로 작업반장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이나, 임금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한다. 어쨌든 집도 한 채씩 국가에서 제공하고, 일자리도 제공해주고,

기본적인 식량도 국가에서 (원칙상) 제공하게 되어 있는 사회주의 국가에서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능력에 따라 소비하는(혹은 벌어가는)" 자본주의 사회의 원칙이 아니라,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소비하는" 이상적인 원칙에 한결 가까운 건 맞겠지만..글쎄, 아직 그 누구의 필요도 채울만큼 충분히

주어지지는 않는 건 확실하다. 북측에서 커미션삼아 떼어가는 몫의 문제일 수도 있고, 일시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북측의 불공정하고 불완전한 형태의 노동시장이 갖는 문제일 수도 있고.

공장을 나서서, 새롭게 지어지고 있는 신공장 건설현장을 가보기로 했다. 빨간 기를 꼽고 '림시' 번호판을 단 차를

타고 조금 움직이니 금세 공사현장이다. 노랑색 안전모를 쓴 사람은 북측 인부, 흰색 안전모를 쓴 사람은 남측

인부 혹은 기술자라고 한다. 이 곳에 새로 지어질 공장은 여태 개성공단에 입주한 업체들이 지은 공장들 중 최대

규모가 될 것이라고 하는데, 실은 개성공단에 입주한 기업들 중 적지 않은 수는 아파트형 공장에 입주해 있기

때문이기도 할 거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공사 현장이나 공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찍는 건 되고, 경찰복이던 군복이던 제복을 입은 사람을 찍으면 안 된다.

공장 내부에서는 맘껏 찍어도 되지만, 개성공단이 차지한 땅 바로 그너머서부터 시작되는 민가들은 찍으면 안

된다. 다 쓰러져 가고 페인트칠조차 드문, 지붕엔 다 썩어들어가는 것처럼 보이는 너덜너덜한 기왓장이 용케

달라붙은 채 웅크린 폐허같은 민가들이었다. 개성공단과 바로 인접한 개성시내에는 12층짜리던가, 엘리베이터가

있는 고층아파트가 있긴 하지만 엘레베이터는 안 움직인지 오래라고 했다. 북측 윗사람들이 무작위로 지정해준

자신의 집이 그 꼭대기층이라면, 게다가 자신이 5,60대 노인이라면, 죽을 때까지 집아래로 몇번 내려오지도 못하는

비극적이고도 희극적인 일이 실제로 벌어진다고 한다.

남측도 우스운 건 마찬가지다. 개성공단 중앙에 높다랗고 지어올리고 있는 저 건물은,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가

입주해서 행정, 법제 관련 업무를 담당할 곳이라고 한다. 아마 남측의 관료나 높으신 냥반들이 왔을 때 호텔로도

활용되지 않을까 싶다. 저렇게 높은 건물을 대체 무슨 용도로 다 채울 건지 모르겠다.

이렇게 보니까 조금 뜨악하달까, 푸코가 이야기했던 판-옵티콘이 생각났다. "감시와 처벌"이란 그의 책에서 나왔던

근대적 의미를 충실히 구현한 360도 전방위를 감시할 수 있는 감옥 시스템. 끽해봐야 몇층짜리 건물이 전부인

요 야트막한 동네 한가운데다가 저런 건물을 떡하니 지어올려서 감시라도 하겠다는 건지, 그 건물 설계의 의도가,

조금 요란하게는 철학이 궁금해졌다. 개성공단에 입주해 있는 업체들의 편의를 봐주고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마인드가 제대로 서있다면 저런 과잉하고 권위적인 건물에 부담감이나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을까. 관치의 느낌.

산을 따라 빙 둘러쳐진 녹색의 펜스는 사실 남북출입사무소를 지나 자유의 다리를 건너 비무장지대를 지날 때부터

줄곧 우리를 따라 내달리고 있었다. 한발짝이라도 저 펜스를 넘는 순간 허가받지 않은 '입북자'가 되는 거라고.

'입북자'라는 건 '탈남자'의 같은 말인 걸까. 그렇담 '탈북자'를 북측에선 '입남자'라고 하려나. 희떠운 생각 한조각.


북한에서는 그런 이야기도 들린다고 했다. 최근 '비타협적인 자세'를 견지하며 북측으로 삐라를 마구 뿌려대는

사람들을 과연 이명박 정부가 못 막아서 못 막는 건가. 이미 촛불집회 때 유모차 부대라는 애기아주머니들도

강경하게 대처하고 진압했으면서, 이제와서 민주주의 국가라고 못 막겠다는 걸 믿으라는 건가. 물론 법적인

근거가 있고 없고의 차이라거나 등의 미시적 차이를 모르고 한 말이겠지만(해가 진 후 집회 및 시위를 금지한

어이없는 법률이라거나 지극히 자의적인 법적용 등을 차치하고 말하더라도) 거시적 차원에서는 일견 수긍할

만한 구석이 없지 않다고 생각했다.

공장을 돌아보고 나오려는데, 옆에서 한 북측 인부 아저씨가 설렁설렁 자전거를 타고 지나길래 서둘러 셔터를

눌렀다. 마치 남녘땅 시골 촌로들이 자전거를 타듯 거칠것 없는 유유한 자세로, 많이 차갑고 매콤한 바람이 불어

얼굴하며 손등이 온통 새빨개졌음에도 그 바람결을 즐기는 것 같은 태도로 움직이는 게 너무 인상적이었다.

어쩌면 이것이 북측의 삶의 패턴이랄까, 리듬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에 비하자면, 내 삶의 리듬은 어떤지

돌아보게 되었다.



* 아마 태그에 몇가지 북측과 관련된 금칙어가 있는 것 같다. 애초 올렸던 글이 티스토리 메인홈에 노출되지 않고

거의 읽혀지지 않았던 걸 보고 태그를 좀 수정했더니 그제서야 메인홈에 정상적으로 게시되었던 것 같은데..

뭐가 금칙어였을까.
문득 눈을 뜨니 제법 얼음이 올라붙은 자그마한 강이 보인다. 아마도 임진강의 지류일 게다. 
아침 7시반에 모여 개성으로 출발하기로 했는데, 추운 바람에 뻣뻣해져버진 몸을 삽시간에 녹여버리는 지하철의

빵빵한 난방 탓에 10분 정도 지각하고 말았었다. 미친 듯이 뛰었던 탓일까, 죄송합니다, 를 연발하며 차에 타고는

피곤함과 노곤함이 걷잡을 수 없이 밀려와 금세 또 잠들어버렸었다.


지금 난 개성으로 가고 있다. MB정권이 출범하고 나서 쉼없이 삐걱대던 남북관계, 급기야 개성공단의 존폐를

위협하는 이야기들마저 떠다니다가 급기야 다음달부터 개성으로 통하는 육로를 제한, 통제하겠다는 북측의

통고가 전달된 상황이다. 이번 개성행도 몇 주전부터 갈 수 있을지, 혹 재수없으면 못 가게 되는 건 아닐지 적잖게

걱정했었지만, 그래도 어쨌건 난 북측에서는 통행증이, 남측에서는 방북증이 무사히 발급되었다고 했다. 방북증이

북한을 갈 때 쓰는 여권이라면 통행증은 일종의 비자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 함께 오기로 했던 다른 사람같은 경우

이유는 모르겠으되 북측에서 통행증 발급을 거부했다고 한다.

가을걷이를 끝낸 임진강변 들녘의 풍경이 고즈넉하다. 난 육로를 통해 개성에 방문하게 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곳을 방문하는 10시부터 14시30분까지 무얼 볼 수 있을지 잔뜩 휘저어진 상태였지만, 우아한 날개짓을 뽐내는

새떼들을 보며 조금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했다. 여차하면 총 맞는 거 아닐까, 북한사람들이 다시 경직되었다고

하던데 자칫 맘에 안들면 못 들어가거나, 혹은 못 돌아오는 거 아닐까. 이런저런 걱정과 설렘이 교차했다.


이곳 남한 최북단의 마을, 얼마전 가봤던 장단콩 마을을 포함한 파주 근방의 마을은 모든 세금이 면제된다고 한다.

게다가 병역의 의무 또한 면제된다고 하니..논밭에 나가든 마을 밖 마실을 나가든, 혹은 새로운 트랙터나 차를 사든

일일이 군인들에게 알리고 움직여야 하는 불편함 쯤은 감수할 만 하지 싶다. 아닌가..?

남북출입사무소 앞에 들어서니, 이미 많은 차들이 열맞춰 서있었다. 한대씩 들어가는 게 아니라, 대략 삼십분

단위로 끊어서 한꺼번에 움직인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나도 아침에 지각만 안 했으면, 사무실 들어가서 "개성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사무실이 있는 건물 앞에서 차를 타고 바로 개성에 다녀오는 경이로운 그림이 나왔을 텐데..

늦는 바람에 지하철 역 앞에서 픽업당해버렸다. 개성간다는 말을 마치 옆집 철수네 가듯 별일 아닌 것처럼

무심하지만 시크하게 내뱉는 그런 멋진 그림은 그래서 다음 기회로.

남북출입사무소에 들어서니 사람들이 바글대는 게, 그냥 무슨 대합실쯤 온 느낌이다. 1층에선 사람들이

출입증 신청을 위해 기다리고 있고, 2층에는 이제 오늘 다녀올 사람들이 출발 시간이 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남북출입사무소의 광고판은 계속 이런저런 잔소리를 늘어놓고 있었는데, 예컨대 컴퓨터 반출하면 혼난다~

라는 이야기. 군수용으로 전용될 수 있는 전략물자 통제라는 차원에서 노트북이던 데스크탑이던 컴퓨터 반출이

금지되어 있댄다. 대부분의 사무를 컴퓨터로 처리하는 요즘 세상에,  개성에 가서 일하시는 분들이 좀 많이

불편하겠다 싶었다. 게다가 몇가지 금지품목이 더 있었다. 정확치 않은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배율 10배 이상의

망원경/쌍안경, 휴대폰과 충전기, 160mm이상 렌즈의 카메라, 그리고 시집과 소설책, 종교서적 등이었다.


휴대폰은 북측 주민들이나 공원(북에서 직원을 '공원'이라 부르는 건 중국식이지 싶다, 꽁위엔)들 손에 넘어가면

자칫 영화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을 테니까. 문득 받은 전화 건너편의 사람이, 내레 북조선 인민입네다, 이렇게.

그리고 시집과 소설책은 다소 의외인데, 자본주의적 문화가 담겨있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 차원에서

여성의 나체나 누드가 담긴 책도 반입 불가.

또다른 잔소리는, 모든 식물류, 그리고 흙이 부착된 식물 반입금지라는 국립식물검역원의 안내가 있었다. 이런

경고가 좀더 절실한 건 역시, 지금 여기선 사람들이 육로를 통해 외국에 다녀오는 거니까 그렇지 싶다. 비행기를

통해 먼거리를 왔다갔다 하는 거라면 좀더 관리가 편하겠지만, 그냥 자신이 집에서부터 타고 온 차 그대로 갔다가

오는 거니까..암만해도 좀더 의뭉스런 노림수들이 먹힐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을까.


개성을 포함한 북한 남부지역엔 말라리아가 창궐하고 있는데, 그 징후 중 하나는 '무기력증'이라는 안내에 살짝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렇다면 나는 말라리아 초기 징후가 하루에도 몇번씩 수시로 도지는구나. 가장 좋은 예방책은

모기에 물리지 않는 거라는 다소 무책임해 보이는 설명에 분개하려다가, 지금같은 때엔 말라리아 염려는 없다는

일행의 설명에 급격히 평온해졌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손씻기 등 개인위생에 철저하란 이야기는 잘 듣기로 했다.

2층 한 켠에는 저런 사물함이 있고, 가기 전 이런저런 짐들을 넣어두고 있었다. 이런저런 책들이 들어있는 가방과

함께 핸드폰을 잠시 꺼두고는 함께 넣어두었다. 천원, 오백원짜리 두개로 문이 잠기는데 잔돈이 없어서 맞은편

북한상품 판매소 아줌마한테 바꿔달라고 부탁했다. 혹시 나중에 짐 다시 꺼낼 때 돈도 돌려받나요, 하고 여쭈니까

그래서 어디 장사가 되겠냐고, 공짜가 어디 있냐고 타박하셨다. 나는 혹시 이것도 일종의 남북경협 활성화를 위한

인프라로 간주해서 정부가 지원해주는 건 줄 알았지만, 역시 공짜는 없는 자본주의 세상이다.

손에 카메라만 든 채로, 한결 홀가분한 몸으로 출발 전까지 좀더 둘러보기로 했다. 1층에는 우리은행이 있어서

원하는 사람들은 달러화로 환전을 해갈 수 있다. 개성, 평양과 금강산 지역에는 달러화가 통용되며, 기타 지역에는

유로화도 통용된다고 하는데, 원화는 안 받아준댄다. 혹자는 미국과 극렬히 대치하고 있는 북한이 달러 아니면

안 받아주는 게 아이러니하다고 비웃듯 말하기도 하지만 글쎄, 보기에 따라서는 당연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개성공업지구 관리위원회는 행정이나 각종 인허가, 법제를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일종의 통일부 산하기관으로

생각해도 될 거 같은데, 여기 남북출입사무소 2층에는 도라산 출장소가 나와있었다.

출발 전 약 25분에 걸쳐서 방북교육을 받아야 한다. 10분 정도 동영상을 보며 개략적인 사실들에 대해서 교육을

들은 후, 나머지 시간은 사무관이 그 내용을 보완하고 질문을 받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화해와 번영의 시대를

맞이하자는 첫 멘트가 다소 생경하게 들렸다. 10년간 나름대로 진지하게 발전해 온 남북관계가 이렇게 순식간에

얼어붙고 퇴행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었다. 그래서 더욱 그간 남북경협을 통해 쌓아온 경제적 연결고리가 소중한

게 아닐까 싶다. 꼭 그 경제적 이해관계로 인해 관계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기능주의적인 기대가 아니라 해도,

남과 북 모두에서 이전의 공고했던 '국가' 행위자 아래의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생겨난다면 최소한 파국은 막을 수

있는 가능성이 올라가지 않을까 해서.

정말인지 모르겠는데, 최근 방북했던 사람 중 김정일국방위원장의 병세를 물었다가 즉시 추방당한 사람이 있다고

했다. 왠만하면 민감한 이야기는 피하되, 꼭 해야 하는 경우는 이런 호칭을 써서 말하라고 했다. 대통령님...이라...

국방위원장님이 아니라 국방위원장인데, 대통령님이 아니라 대통령이어야 하는 거 아닌가. 대통령 자체로 이미

존칭인 거잖아. 괜시리 걸어보는 딴지인지도 모르지만, 어디 가서 우리 MB대통령님은,(꼭 MB가 아니라 해도)

우리 대통령님은 어쩌구저쩌구, 이렇게 말하는 거 웃긴다. 왠지 우리 대통령님께서는..이라고 말해야 할 거 같다.

금강산 관광이 어느새 10년이 되었다. 남북간 통신선도 얼마나 오래 되었을지 모르겠지만, 노후화되고 있어 서울을

떠나 개성으로 향하는 걸음을 방해하고 있다. 통신선은 노후화하고, 이산가족분들도 고령화하시고, 그리고 (전쟁의

기억을 잊어간다고 한탄하는 것만큼이나) 하나의 공동체로서의 기억도 휘발되고 있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라는

포스터에 등장했던 도라산 역 앞의 철마는 워낙 부식이 심해져서 자칫 폭삭 부스러져 내릴 정도가 되었기 때문에

포스코에서 5억원을 들여 복원중이라고 한다. 그만큼 오랜, 아주 오랜 휴전 중이다. 그리고 그 휴전 기간동안

두 나라는 서로를 의식하면서도 외면한 채 기형 내지는 불구가 되어가고 있다. 시간의 세례를 받아 늙고 낡아가는

것들은 죄가 없을 거다. 죄가 있는 것은, 그러한 기형화된, 불구화된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혹은 소극적으로

득을 보는 집단 아닐까.

남북간 출입만을 규율하고 있는 공간이라 그런지 영어나 한자로 병기되어 있지 않아 그 정확한 뜻은 추측하는 수

밖에 없지만, 입경, 출경은 아마도 거의 99%의 확실성으로 경계 경자를 쓴 出境, 入境이라는 한자를 쓰지 않을까

싶다. 설마 서울 경자를 써서 出京, 入京이라고 쓰지는 않을 테고. 국경을 넘어선다는 의미일 거다. 한반도라곤

하지만 막상 대륙에 이어진 반도라고 느낄 수 있는 경험은 여지껏 없었던 게 사실이다. 단지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았거나, 부산에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거나. 그런데 이제 이렇게 땅을 밟으며 국경을 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하나의 국가로 인정해야 할 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예민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국경이 아니라 다른 말로 바꾸지 모. '대한민국'이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영토의 경계를 넘는 경험.

남북출입사무소에 붙어있는 포스터. 흰색 저고리에 까만 치마를 입고 머리를 야물게 빗어올린 북한 아가씨가

인상적이었다. 하나된 개성공단, 세계로 미래로라..사실 개성공단은 평소 내게 일종의 딜레마를 던지기도 했었다.

마치 절대빈곤선 부근에서 허덕이는 제3세계 아이들을 부려서 커피를 따게 한다거나, 낮은 임금을 주며 잡일을

시키는 상황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쉽게 판단이 안 서듯이 말이다. 개성공단 혹은 북한의 저임금 노동자를

'활용'해서 가격경쟁력을 부활시켜 한국의 부, 혹은 한국 기업들의 부를 축적한다는 건 일종의 윈-윈일 수도

있겠지만..이미 우리 사회의 노동자층이 정규직, 비정규직, 외국인노동자(이주노동자) 등으로 고착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또하나 저임금노동자의 공급처로 전락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걱정스럽기도 했다.

2층 오른켠에는 북한상품 판매소가 있고, 비매품으로 전시된 북측 도예가의 작품들과 수십년은 묵은 듯한 더덕,

상황버섯 등으로 빚은 술, 그리고 제1차 남북정상회담 기념 도자기가 놓여있었다. 한 차례 정상회담으로 뭔가

경천동지할 일이 급박하게 전개되리라고 기대치는 않았지만, 뭔가 많이 바뀌었다 싶으면서도 역시 또 뭔가가

허전하다. 당장 불과 작년에 있었던 제2차 정상회담은 그 시기와, 결과와, 의미 등에 있어 많은 논란이 있었음에도

결국 기억조차 희미하게 지워지고 말았다. 아직까지는.

예전에 어디에선가 북한술을 파는 걸 봤었을 때는, 고작 몇 종류 안 되었던 거 같은데 지금은 이런 두 줄짜리

진열대를 두 칸이나 차지한 채 늘어서 있다. 학교 앞 '그날이 오면' 서점에서 운영했던 '미네르바'였던가, 그 찻집서

한과와 함께 백두산 들쭉술을 마시면서 학회 세미나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술 참 맛있었던 거 같은데 뭐라도

한 병 살까 하다가 말았다.

이게 북한에 들어가기 위한 비자 역할을 하는 출입증이다. 눈길을 끌었던 건 파란 색으로 그려진 한반도 지도에도,

밑에 스탬프 모양으로 만들어진 엠블렘에도, 한반도 등허리 건너 편 동해바다에 점 두 개가 선명하게 보인다는

사실이다. 거의 비등한 사이즈로 그려져 있는 저 점 두 개. 언제부터 우리나라가 한반도 그림을 그릴 때 저토록

선명하게 독도를 표기했던가 싶다.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굳이 독도를 저렇게 뻥튀기한 사이즈로까지

부각시켜서 그릴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고. 또, 혹 남북간에 쓰이는 이런 출입증에만 쓰이는 거라면 괜히

못난 애비가 집안에서만 위세피우는 식인 건 아닌가 싶어서 의아하기도 하고.

출입증과 함께 받은 방북증명서를 보여주고 세관을 통과했다. 방북증명서는 주민등록증처럼 생긴 플라스틱카드로,

유효기간이 5년쯤 되는 복수 여권인 셈이다. 반면 출입증은 북한에서 돌아올 때 반납하게 되는 단수 비자인 셈.

수속을 마치고는 남북출입사무소 뒷쪽 문에서 차를 기다려야 한다. 차는 운전기사 한 명과 함께 별도의 수속을

밟고 이 곳에 와서 다시 일행들을 태우고 출발하게 되는 식이다.

개성, 이라는 표지가 선명한 뒷문어귀에서 한 할아버지가 고개를 떨구고 계신 모습을 보았다. 지난 세월에 닳고 또
 
다듬어져 표정조차 가늠키 힘든 얼굴을 떨구고 상념에 젖은 것처럼 보이셨는데, 무슨 생각을 하고 계셨을까.

할아버지의 속내엔 무슨 이야기들이 숨어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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