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부터 둘레길 코스에 딱딱 맞춰서 주파해나갈 생각은 없었다. 1코스 종반부의 민박집에 자리를 잡고 났더니 


2코스 끝에 도착해서도 여전히 체력도, 시간도 남았다. 설렁설렁 3코스를 계속 가보기로 한 참이다.



모내기에 한창이던 시절, 저렇게 여리고 자그맣던 아이들이 올여름 무더위와 가뭄에 잘들 버티고 있기를 바랄 뿐.


둘레길 코스를 따라 함께 흐르는 강 너머엔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우는..(이 가사가 맞는지는 모르겠다만서도)



어느 장소의 분위기를 아는데엔 한번의 방문으로는 택도 없다. 사계절을 다 보는 것, 그리고 하루의 시간대마다


달라지는 풍경을 담는 것, 그런 공을 들이고서야 이 공간이 가질 풍성한 느낌을 비로소 가늠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꽃길을 따라 가볍게 걸어가던 길 끝의 어느 마을. 베이지색으로 단정하게 칠해진 담벼락에 벽화가 꽃길을 이어준다.



3코스의 진행방향을 알려주는 표지판, 그 아래 개구멍을 꽉 들어채운 시퍼런 잡초.


담벼락에 기대 섰던 나무의 등걸에 기대어 그려진 벽화의 센스가 재미지다.



요새 축사는 그렇게 소똥 냄새가 멀리 않을 만큼 위생적으로 관리되고 있는 듯. 코앞에 도착해서야 저 안에서


뒹굴거리며 되새김질중이신 소들이 보였다.


산비탈을 따라 제법 층층이 포개진 다랭이논, 그리고 그 옆을 지나 구불구불 이어지는 둘레길.


3코스에는 황매암을 경유하거나 산신암을 경유하는 두가지 갈래길이 있다는데, 어쩌다보니 황매암으로 와버렸다.


코스 표지판을 부지불식간에 놓쳐버렸거나, 아니면 생각보다 길안내가 부실하거나 둘 중 하나.



그래도 황매암을 둘러보며 잠시 다리를 쉬어가는 건 꽤 괜찮았다. 산속길 깊숙이 숨은 곳에서 문득 마주하는


자그마한 암자의 정취도 그렇고, 온통 푸릇푸릇하게 감싸고 올라오는 녹색의 기운도 그렇고.






지리산 둘레길 중에 가장 인기있다는 3코스, 아무래도 1박2일에서 이 코스를 배경으로 촬영했던 덕분인 거 같은데


역시나 방송에 나왔던 장소라는 현수막이 이렇게 떡하니 붙어있다. 




이런 개울을 지나고 산길을 계속 걷다 보면, 


현지 주민들이 지각없는 일부 둘레길 여행자들에 대해 읍소하는 이런 표지판도 보이고.


유려하게 구부러지는 마을길이 산모퉁이로 사라지고 숲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고즈넉한 풍경.




그리고 마을과 함께 수백년을 함께 했을 오랜 낙락장송 한 그루. 가지를 휘청휘청 늘어뜨린 모습이 연륜 가득하다.


대충 두어시간을 걷고 나니 장항마을에 도착, 또다른 아름드리 나무에 기대 만들어진 쉼터에서 맥주랑 라면으로


간단히 요기를 하며 머리를 맞댄 결과 숙소로 이제 돌아가기로. 죽자고 걷기보단 여유롭게 가자는 컨셉이니만치.



버스 시간표를 잠시 확인해보니 대충 이삼십분만 기다리면 한대 오겠다 싶다. 이런 여유로운 자세라니.





* 정신나간 울릉도 2박3일 도보여행.

 

 

행남등대에서 도동 여객터미널로 향하는 길, 섬 곳곳에서 보이던 검정 염소들이 여기서도 심술궂은 눈빛을 하고 대기중.

 

 

등대에서 도동항까지는 약 1.8km, 그렇게 길지 않은 거리지만 작정하고 한걸음 한걸음 음미하며 걷기로 했다.

 

참고로 이 코스는 '1박2일'에서 울릉도를 다녀가며 꼭 짚고 갔던 바로 그 코스. 도동항~행남등대~촛대암 구간이다.

 

 

그래서 글보다는 사진 위주로 포스팅~* 슝슝 넘겨보시다 보면 바다와 함께 걷는 분위기가 1g이라도 풍기길 바라며.

 

 

 

 

 

높은 곳에 선 등대에서 내려와, 아까 소라계단으로 불쑥 올라선 높이만큼을 내려선 즈음 다시 바다가 보인다.

 

 

묵호에서 들어가는 배는 더이상 도동항을 쓰지 않고 그 아래쪽 사동항에서 입출항하게 되었다. 상인들의 반대가

 

없지 않다고는 하는데, 그런 점에서 산책로에 대한 접근성은 과거보다 좋지는 않을 듯.

 

 

쉼없이 철썩이는 파도 앞에서 굳이 꿋꿋하게 높다란 돌탑을 쌓아올린 인간들의 집요하고 무모한 소망들.

 

저 방송이 천년만년 갈 것도 아니고, 촬영지란 게 뭔 커다란 의미가 있는지도 모르겠는데. 여하튼 페인트칠 지대로.

 

 

 

 

저렇게 기묘하게 돌을 세워둔 건 또 뭐지 싶어서 눈여겨 보게 되던 돌탑 하나. 본드로 붙였으려나.

 

짠기 다 온몸으로 맞으면서도 꿋꿋이 꽃을 피워냈다. 꽃잎이 찌글찌글해졌을지언정 빛깔은 굽힘이 없다.

 

 

 

 

 

 

제법 오르내림이 크던 산책로. 두사람이 함께 지나기에도 부담스런 좁은 길, 바싹 몸을 당겨서 철퍽 앉아 쉬었다.

 

 

 

 

 

제법 가파른 계단에서 삼일째 혹사 중인 발에 급기야 경련이 살짝. 절룩거리며 걷다가 제멋대로 눌린 셔터에 한장.

 

 

 

멀찍이 보이기 시작한 도동항의 뱃전들.

 

 

 

 

 

이게 뭐라더라, 육손이였던가. 티비에 나왔던 그거라고 옆엣 어른들이 말씀하시던데, 뭔가 좋은 건가 싶어 일단 찍고 보기.

 

 

그리고 도동항 도착 전에 하나 나타나는 쉼터. 끊길 듯 이어지는 꼬불꼬불한 산책로길이 재미있다.

 

 

 

 

 

 

 

 

 

 

 

 

바닷물을 잔뜩 머금고 시뻘겋게 녹이 슬어버린 구름다리 하나가, 그저 살짝 시멘트더미 위에 얹힌 느낌으로 떠 있다.

 

잠시 앉아서, 1.8리터짜리 물통을 내려놓고, 삼각대와 옷가지로 꽉 찬 가방을 내려놓고, 신발을 벗고 쉬는 참.

 

 

아이들이 쏟아내는 새우깡 부스럭지를 향해 엄청시리 달려드는 갈매기떼들.

 

 

 

 

 

 

 

바닷물에 삭아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군데군데 암석이 얇아지다가 녹아내린 듯한 풍경의 해안가 돌벼락.

 

 

 

거대한 돌과 돌 사이로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산책로를 따라, 앞서거니 뒷서거니 구멍을 희롱하는 바람을 따라.

 

 

 

 

 

저런 빛깔은 파란색 타일로 바닥이 덮여있는 실내 수영장에서나 봤던 거 같은데. 연신 산책로에 포말을 뱉어대는 바다의 빛깔.

 

 

 

 

 

 

 도동항이 가까워질 무렵, 해산물을 파는 노점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걸어놓은 게 틀림없는 울릉도산 오징어.

 

 

 그리고 도동항으로 내려서는 입구. 오징어 그림이 푹 파인 그림을 좇아 계단을 내려가면 해안산책로의 종점이다.

 

그렇게 울릉도에서 가장 번성한 항구이자 가장 번화한, 도동 도착.

 

 

 

속초의 갯배. 온전히 사람의 팔힘으로, 아니 온몸의 힘을 실어 잡아당기는 쇠줄을 따라 꾸역꾸역 움직이는 사각형 배.

속초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청초호를 끼고 갯배선착장까지 걷는 길. 호수라고는 하지만 속초항 앞을 지나 바다로

나갈 수 있어서인지 가장자리를 따라 고깃배들이 일렬주차중.

서울역 광장에서 종종걸음치며 날개를 퇴화시키는데 힘쓰는 비둘기떼들마냥, 속초에선 갈매기들이 그런다.

청호대교 위를 따라 완만한 오르막길을 오르는 길. 빗발이 듬성듬성 내리는, 그렇다고 우산쓰기는 애매한 날씨.

대교의 고갯마루쯤에 오르면 바깥으로 툭툭 튀어나온 전망대 비스무레한 곳이 있다. 고개를 슬쩍 빼면 저만치 갯배가 떠다닌다.


다리 아래 아스팔트 바닥에서 생선 대가리를 토막치는 분도 보이고, 바싹 뭍에 붙여놓은 조각배도 보이고.

가까이 다가갈수록 점점 크게 보이는 갯배. 배라기엔 참 투박하고 모양새가 없어서, 그냥 커다란 네모 부표라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천천히 산책하는 속도랄까, 그래도 한걸음씩 단단히 힘주어 밟아가듯 확실히 전방진행중인 갯배들.


다리 아래, 생각지도 못한 곳에 이런 화사한 그림이 숨어있었다. 하트가 샤방샤방하게 날리는 복어커플.

이런 플래카드는 좀 없어도 좋을 거 같은데. 하긴 이런 방송의 힘이 없었다면 찾아오기도 쉽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이용요금은 성인 200원, 아이 200원, 자전거 200원, 손수레 200원. 갈 때 200원, 올 때 200원.


자전거 두 대가 왜 저렇게 묶여있나 했더니, 가을동화에서 그들이 탔던 자전거라고 한다. 그보다 더 흥미롭고 시선을

잡아당겼던 건 저 오징어 모양의 장승. 속초 시내 곳곳에 세워두면 나름 명물이 될 거 같은데.

갯배로 건너가는 구간은 굉장히 짧아서, 설설 걸어가는 속도의 갯배라곤 하지만 채 2-3분도 안 걸리는 거 같다.

그래도 이렇게 갈매기가 마구 날아다니는 엄연한 바다 위를 저렇게 간단한 뱃조각에 기대어, 아저씨가 끌어주는

쇠줄에만 의지해서 건넌다는 건 꽤나 독특한 체험이다. 속초의 이곳, 갯배선착장을 지나면서야 경험해볼 수 있는.

뱃손님이 다 내릴 때까지 저렇게 쇠줄을 바투 땡겨잡고는 배가 흔들리거나 풀려나지 않도록 고정하고 계신 아저씨.

 

속초시내에서 걸어다님직한 거리 내에 있는 볼거리들. 야트막한 스카이라인, 허름하고 한산한 거리는 걷기 좋은 듯.






대나무에 기대어 층층이 발판을 얹은 수십개짜리 덩굴계단. 안 그래도 위로 갈수록 작아져보이는 원근법의

마법에 더해, 일정한 비율로 줄어드는 잎사귀의 모습, 그러면서도 몇몇번째 계단에선 그 비율을 깨뜨리고

불끈 자라난 잎사귀들의 배열이 리드미컬하다.

담양의 죽녹원. 서울에서 전남 담양까지 내려갔으니 사람들이 많이 없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입구부터 꽉꽉

들어찬 사람들, 매표소에서 티켓을 사는 데에도 줄이 잔뜩 늘어서서 입구를 벗어나지 못하고 한참 기다려야 했다.

입구에서 뒹굴고 있던 팬더 몇 마리. 왠 팬더인가 했는데, 생각해보니 대나무와 팬더는 자연스레 이어지는

한쌍이었던 거다. 어려서부터 훈련받은 그런 견고한 고리가 내 머릿속에서 깨어진 건 아마도 핑크팬더와

쿵푸팬더의 영향 아닐까. 제법 익살맞은 팬더들 사이에 선 꼬맹이, 암만해도 팬더들 따라 지어본 표정이지 싶다.


사방으로 휘휘 뻗어나는, 그렇지만 그렇게 부담스럽게 길지는 않던 죽녹원의 코스를 거닐면서 눈에 띄었던 것 중

하나는 나무를 자연 그대로의 모습 그대로 살린 채 가로등 기둥으로 활용하고 있던 모습.

온통 대죽들, 고개를 잔뜩 꺾어 올려야 겨우 그 너머 하늘이 보일 정도로 잘 자란 대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그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은 에어컨 바람도 울고 갈 정도였다. 꼬맹이들 앞니 빠진 새로 바람이 노닐듯, 그렇게 간결하고 호리한

대나무 사이로 바람이 노닐며 그 푸른 청량감을 한껏 머금는 듯 하다.


대죽의 색깔도 약간 소프트한 무광택 코팅이 살짝 입혀진 옥빛이랄까, 보는 것만으로도 서늘한 기분이 드는데

실제로 살짝 손만 대어도 대나무가 빈 통속에 보관하고 있던 냉기가 맹렬하게 전달되었더랬다. 죽순의 떡잎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쭉쭉 뻗어나간 대나무 하나, 워낙 순식간에 자라난다니 가능했을 듯.


그런데 대숲이 울창하게 우거진, 그 숲의 짙고 깊은 느낌을 만끽하는데 종종 방해가 되던 현수막들이 보였다.

"저는 대나무입니다. 저를 만지거나 제몸에 낙서하지 마세요. 제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꽤나 섬뜩한 문구다.

근데 정말, 그런 현수막이 버젓이 내걸려있는 앞에서도 차키를 들고, 펜을 들고 대나무에 하나씩 달라붙어서

글자를 파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꽤나 많이 눈에 띄던 거다. 나이가 많던 적건 상관없이. 심지어 이런

엄마에 대한 사랑이 가득한 낙서라거나, '개개개자로~' 시작되는 말을 이어놓은 낙서도 있더라는.


대나무들의 저런 눈물어린 읍소에도 불구하고 저런 낙서를 의연하게 하는 사람들은, 담양특산품인 이런

대살회초리로 체형을 내려야 하지는 않을까. 수학여행 때던가 기념품 가게에서 회초리를 사갔던 옛날의

아련하고도 아팠던 기억을 새록새록 자극하던 대살회초리 특산품. 손바닥에 몇대 시험해보니 찰지구나.

죽녹원은 총 여덟개 코스로 구성된 산책로를 갖고 있는데, 크고 작은 원을 그리며 죽녹원 안의 숲을 돌아서

그 코스를 전부 밟아도 두어시간이면 충분한 거 같았다. 그 중에서 특히 눈에 띄었던 건 '1박2일 촬영지 가는길'.

아무리 저 프로그램이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고 해도, 저렇게 안내판에 덕지덕지 붙여놓는 게 맞을까

모르겠다. 더구나 이승기가 빠졌었다는 연못엔 '이승기 연못'이란 이름까지. 한 3년만 지나도 저게 왜 저런

이름이 붙었는지, 저기서 뭘 찍었는지 기억도 잊혀질 텐데, 그땐 지우고 새로 안내판을 세우려나.


이 정도까지는 괜찮다는 거다. 그냥 여기가 이런 영화, 이런 프로그램 촬영했던 곳이라는 것만 표시를 남기면

될 것을, 뭘 전체 지도에다가도 요란스레 '1박2일'이니 '이승기연못'이니 정식으로 표기를 해 놓았을까.


 

*토막상식(@ 죽녹원 안내판).   <죽림욕의 효과>

ㅇ 음이온 발생
  - 음이온이란 전기를 띈 눈에 보이지 않는 미립자로 마이너스 전하가 음이온이다.
  - 대숲에서는 음이온 발생량 1,200~1,700개 발생 (음이온 발생량 700개 이상일 경우 사람은 시원함을 느낌)

ㅇ 풍부한 산소 방출
  - 대나무숲 안과 밖의 온도는 약 4~7도씨 가량 차이가 난다.
  - 대숲 1ha당 1톤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0.37톤의 산소를 발생

ㅇ 심신안정 효과
  - 뇌에서 알파파의 활동을 증가시켜 스트레스 해소, 신체/정신적인 이완, 심신의 안정 효과


 


 


여덟 코스 중에서도 가장 경사도 있고 길도 좁던 곳은 추억의 샛길, 고 노무현 대통령이 2007년 이곳을 방문했을 때

산책했던 코스라고도 한다. 대나무뿌리가 얼기설기 드러난 흙길 양쪽으로 하늘높은 줄 모르는 죽의 장막을 친

대나무숲 사이를 걸으니까 땀도 안 나고, 걸을수록 상쾌한 느낌이 드는 게 죽림욕 제대로다. 그치만 맘 한켠으론

대통령이 걷기엔 좀 너무 정비되지 않은 거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던 건 사실. 그의 소탈함이 반영되었던 걸까.


죽녹원이라고 대나무숲만 울창하리라 생각했는데 그런 건 아니었다. 낮은 곳에는 저렇게 하얀 꽃망울을 매달고 있는

차나무도 있었고, 드문드문 덩굴이 말려올라간 나무들도 있었고.

근데 죽녹원 가운데에 있던 이 동상은 대체 누굴까. 못 찾은 거 같기도 하지만 안내팜플렛이나 지도나 동상

근처에서 아무런 설명도 없었던 거 같다. 그런데 누군가 저렇게 파랑땡땡이 스카프를 곱게도 감아놔서

차갑게만 보일 수 있는 동상에 살짝 온기가 감도는 것만 같다.


죽녹원 맨 안쪽에 웅크리고 있던 한옥체험마을 가는 길. 깔딱고개를 넘어서듯 경사가 급 가팔라졌다가 급 내리막으로

이어지는 길을 지나면 한옥들과 정자들이 조그맣게 무리짓고 있는 마을이 나온다. 경사가 가팔라서인지 옹골차게

짧막한 마디가 꽉 차있는 대나무뿌리가 흙바닥 위로 꾸물꾸물 기어나와선 자꾸 발목을 잡았다.

한옥체험마을, 몇 개의 연못이 이어져있었는데 괜히 궁금해지는 거다. 이 중에서 어디가 '이승기연못'인 거지.

혹시나 하고 굽어본 안내판엔 이승기연못 대신 죽녹원 두꺼비를 지켜달라는 이야기만.

한옥마을과 죽로차체험관, 그리고 시비공원이 모여있는 곳인지라 조경도 잘 되어 있고, 잔디가 곱게 깔린 사이로

구불구불 이어지는 자갈길은 정말 걸을 맛이 나는 구간이었다. 적절히 안배된 연못과 건축물들, 그리고 나무와

벤치들까지 아기자기한 그림같은 풍경이 돋보이던 곳.


정자에서는 어느 명인 한분이 가야금을 뜯으며 구성진 가락을 한 소절 뽑아내리고 계셨고, 굳이 그 앞에 총총이

모여서 듣지 않아도 부드러운 바람결에 날려 오는 소리가 가을날의 정취를 더했다.


그리고 이곳 연못에서 잠시 앉아 쉬면서 이곳저곳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남은 사진들. 연못 너머 벤치에 우뚝

선 아기를 어르고 있는 부모의 부산스럽지만 행복해 보이는 풍경이라거나, 곳곳에서 쌍쌍이 벤치에 앉아

가을하늘과 가을바람, 가을공기를 즐기는 어린 연인들의 모습들이 보기 좋았다.


돌아나오는 길, 그러고 보니 요새 코스모스 보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얼핏 듣기로 외국산 국화던가, 그런

외래종에 밀려서 점점 코스모스 개체가 줄고 있다고 신문기사를 봤던 거 같은데. 벌 한마리가 부산하게

움직이며 허벅지에 노란 꽃가루테를 두르고 있었다.

죽녹원을 나오다가 잠시 돌아보았더니, 누렇게 변색된 대나무를 촘촘이 엮어만든 담벼락이 터져나갈 듯

거침없이 쭉쭉 뻗은 대나무숲의 기세가 충천한 느낌이다. 저래서야 비가 와도 물방울이 안으로 새어들어갈

틈이나 있으려나 싶도록 빼곡하게 밀집해선 시퍼런 색감과 칼날같은 잎사귀 모양을 자랑하고 있던 죽녹원의

대나무숲. 아무래도 대나무숲은 '임금님귀는 당나귀귀' 이야기를 머릿속에 소환해내는 거 같다.





월화수목금, 그리고 토일. 이 사이클만 무한히 남아버린 듯한 일상.

막상 얻고 싶은 것들은 보행로 밖에 있는 거 아닌가 싶으면서도 저렇게 커다랗고 위압적으로

씌여진 글씨 앞에서 고분고분 차선을 지키고 순서를 지키고 예의를 지키고 있다.


그렇게 안전한 보행로만 따라걷는다고 또 길을 잃지 않는 것도 아니면서.

당장 보행로가 저렇게 활처럼 휘어지는 곳에서, 또 다시 갈등하고 마는 거다.

같이 휘영청 휘감아돌아야 할지, 아님 보행로 밖으로 '탈주'해서 누군가 무언가의 앞에 설지.


길 (G.O.D.)

내가 가는 이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 곳은 어딘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오늘도 난 걸어가고 있네

[준형]사람들은 길이 다 정해져 있는지 아니면
자기가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가는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이렇게 또 걸어가고 있네

[호영]나는 왜 이 길에 서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이길의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까

[계상]무엇이 내게 정말 기쁨을 주는지
돈인지 명옌지 아니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인지
알고 싶지만 알고 싶지만 알고 싶지만
아직도 답을 내릴 수 없네

[데니]자신있게 나의 길이라고 말하고 싶고
그렇게 믿고 돌아보지 않고 후회도 하지 않고
걷고 싶지만 걷고 싶지만 걷고 싶지만
아직도 나는 자신이 없네

[호영]나는 왜 이 길에 서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이 길의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까

[태우]나는 무엇을 꿈꾸는가 그건 누굴 위한 꿈일까
그 꿈을 이루면 난 웃을 수 있을까
hoo~ 지금 내가 어디로 어디로 가는 걸까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살아야만 하는가

나는 왜 이길에 서있나(왜 이길을)
이게 정말 나의 길일까(이게 정말 나의 길일까)
이 길의 끝에서 내꿈은 이뤄질까(내 꿈은 이뤄질까)

나는 무엇을 꿈꾸는가(난 무엇을)
그건 누굴 위한 꿈일까(꿈인가 hoo~)
그 꿈을 이루면 난 웃을 수 있을까






출구라고 적힌 간판이 환하게 빛을 밝혔다.

무언가가 나오고 밀어내어지는 곳이 출구, 그런데 출구 앞 볼록거울에 비친 출구는

외려 다시금 그걸 꾸역꾸역 되짚어넣고 밀어넣는 그런 구멍처럼 보였다.


뗏국물이 말라붙은 더러운 거울은 출구의 기능을 반사시켜 뒤집은 것도 모자라서,

출구란 글자도 앞뒤로 바꾸어 구출이 되고 구출 역시 반전시키고 말았다.

왠지 막막한 느낌. 출구도 막히고, 구출도 글러먹은 더러운 거울속 세상.


1박2일의 짧은 남해안 여행이 끝나고 올라오는 길,

뭐 하나 바뀐 것도 없이 돌아올 곳만 정해져있다는 사실에 실망했던 거다.




@ 광주, 어느 백화점 주차장 출구 앞.
2010년도 어느새 사흘이나, 예수님도 무덤에서 벌떡 부활할 만큼의 시간이 흘러버렸다.

연말연시, 뭔가 특별한 포스팅-예컨대 2009년 결산 같은-을 해야하나 생각해봤지만 그다지

내키지 않아서 이것저것 요새 뭐하고 지내는지, 무슨 생각하는지 끼적끼적. 좀체 포스팅해 본

적이 없는 연예계 관련 포스팅.


#1. 유희열이 싫어진 이유.

며칠전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오랜만에 보다가, 예전에 퍽이나 좋아했던 유희열의 목소리,

말투, 화법, 외모까지 모든 게 다 맘에 안 든다고 틱틱대는 자신을 발견해 버렸다. 왜일까,

한참 생각하다가 깨우쳐 버렸다.
유희열...이명박과 묘하게 닮았다. 실은 굉장히 닮았다. 아놔..MB 때문에 좋아하는

뮤지션 하나를 잃고서 시작하는 2010년 새해다.


#2. 강호동이 싫은 이유.

정확히 말하자면 강호동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라고 해야 맞을 거 같다. 흔히 유재석의

매너와 게스트를 배려할 줄 아는 면을 상대적으로 강조하고 부각하긴 하지만, 강호동의

스타일은 굉장히 남성적이랄까 마초적이랄까 좀 그렇다. 그가 이끄는 1박2일은 무한도전과는

달리 위계가 명확하고, 그가 담당하는 캐릭터는 좋은 말로 하자면 대체로 '듬직하고 의리있는

맏형', 뒤집어 말하자면 군대 말년병장의 느낌? 적당히 여유있고 유들유들거리면서도 자신의

지분과 위치를 양보하지 않는.


우야튼, 그냥 그가 맡은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혹은 그가 티비 속에서 연기하는 캐릭터의

문제일 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2009년 K본부 연예대상 시상식에서 그가 대상에 선정되고

내뱉은 제일성이 굉장히 거슬렸다. "재석아, 이 상 내가 받아도 되나~" 였던가. 대상 후보가

자기들 둘만 있던 것도 아니고 다른 후보들이 몇명씩 있었는데, 굳이 그렇게 '양강 구도'임을,

자신이 의식하던 건 유재석 한 명 뿐이었음을 이야기할 필요가 있었나.


그의 말을 듣던 다른 대상 후보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곁다리였음을 씁쓸하게 되씹어야

했을지도 모르고, 혹은 그냥 쿨하게 축하하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생각없이 내뱉은

한마디가 때로 누군가에게 큰 상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감수성과 배려심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상상해보고 좀더 조심스럽게 이야기하는 자세가 부족한,

그래서 '통크고 남자다운' 캐릭터라고 생각했었는데 어쩌면 그는 그 캐릭터를 '연기'했던 게

아닌지도 모르겠다.




일요일 9시 반에 있는 시험, 감독관은 8시 반까지 도착해서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을 받아야 한다. 사실은 김밥

한줄로 나오는 아침을 먹기 위한 시간이기도 하다. 저번에 시험 감독할 때는 시간을 착각해 응시자들처럼

9시반까지만 가면 되는 걸로 생각해 버려서, 좀 곤란해졌었다.


시험장으로 쓰인 고등학교, 내가 담당한 교실에 마침 시계가 없어서, 각각 90분짜리 1교시, 2교시 시험시간내

살아있는 시계 역할을 맡아야 했다. 10분 지났습니다, 20분 지났습니다,...절반 남았습니다,...5분 남았습니다.

사실 다른 때 같으면 시간 공지도 막판에 20분, 10분 남았을 때나 해주고 더이상 답안지를 바꿔줄 수 없습니다,

정도만 이야기해주는데 오늘은 마침 시계를 차고 오지 않은 사람들이 요청을 해와 성실하게 시계 놀이를

해줄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들고 갔던 '경쟁에 반대한다'라는 책을 읽다가-시험장에서 이런 제목의 책을 읽는단 것 자체가 좀

아이러니라고 느꼈지만-한문단 읽고 시계확인하고 두문단 읽고 시계확인하고, 그러면서 문득 1박2일에서였나

이승기가 벌칙 수행으로 커다란 시계를 들고 다니며 매시간 '세시~!', '네시~!' 큰 소리로 알려주는 장면이

떠올라 버렸다. 왠지 불끈불끈 그렇게 해보고 싶은 마음이 동하면서, 30여명의 수험생이 머리를 싸매고 문제를

푸는 상황에서, '여얼~씨~!'라고 천연덕스럽고 용감무쌍하게 외쳐주는 상상에 혼자 킥킥대고, 혼자 당황했다.


어차피 방송으로 중요한 내용은 멘트가 나오니, 최대한 시험 시작 후에는 말을 줄이고 자그마한 소음도 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시간을 보냈다. 시험장에서 감독관을 몇 차례 맡아봤지만 가능한 말을 줄이고, 시험치는데

신경이 쓰일 만한 요소, 걸리적댈만한 요소를 미리 차단해주는 게 관건인 거 같다. 있는 듯 없는 듯, 괜히

감독관이라고 우쭐해서 내 경험입네, 떠들거나 어깨에 힘주며 이래라저래라 지시하거나 하고 싶진 않아서.


2교시까지 끝나고 시험지랑 답안지를 걷어서 나오려는데 나이 많으시던 아저씨 응시생 한 분이 고맙습니다,

이러셨다. 교정을 나서는데 우르르 쏟아진 응시생들의 신발 바닥에 붙은 노란빛깔 은행잎이 이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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