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현의 희망프레임, 운좋게 그 1기 회원에 합류하게 되어 토요일 새벽같은 아침에 약수역 출사를 나갔다.

 

굉장히 소탈하고 편안한 스타일의 조세현 선생님은 재개발을 앞둔 이 지역의 분위기를 쿠바 하바나의 그것에 비겨보아도

 

전혀 모자람이 없다며 곳곳에 숨어있는 풍경들을 잘 찾아보라 말씀해주셨고,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부지런히 찍었다.

 

w/ Pentax K-5, 43mm limited

 

 

 

약수동도, 작년 드로잉 수업 들으며 쏘다녔던 여느 서울의 뒷골목처럼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그렇게 무너지고 헤집어진 폐허에서 인간적인 풍경들을 찾을 수 있다는 건 사실 아이러니라 부르기도 뭐하다.

 

대책없이 까발겨진 내밀한 일상, 고유명사 '집' 안에서의 안식과 평온함을 담당하던 가재도구들이 길거리에 전시된 풍경은

 

외려 인간적이기도 하니까.

 


더이상 사람이 앉을 수 없는 쇼파. 더이상 24시간 담배를 팔 수 없는 편의점. 더이상 ...외부로부터 내부를 지킬 수 없는 현관문 따위.

 

그렇게 보면 다소 안쓰럽고 흉물스러워 보이기도 하지만 반대로는 어떨까. 반대로 한때는 그런 역할을 맡고 온기를 전했다며

 

무너져내리는 형체를 애써 가다듬고 있는, 그 의연함 같은데서 공감하고 마는 거다.

 

재개발을 앞둔 동네에서 스산함을 느끼는 건 어쩜 그런 건지도 모른다.

 

억지로 길가 위에 끄집어내진 원주민들의 삶과 추억들이 발하는 온기가 아무런 응답을 받지 못한 채 소모되고 있다는 사실.

 

그것들을 이해하고 소중히 다뤄주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그래서, 그 스산함은 결국 사람으로부터 비롯한다.

 

내가 끄집어낸 감정, 기억, 일상을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다고 느낄 때의 그 상처.


 

 

 

 

 용산의 망루, 왠지 남일당 건물의 그 사건을 떠올리게 만들던..약수역의 주인없는 옥탑방.

 

제법 경사가 급한 언덕길을 한참 올라가고서야 기사분들도 한숨 돌리는 이 곳, 421 버스의 종점.

 

 

 온통 깨지고 뜯겨진 건물 내부. 슬몃 안으로 들어가 보기라도 할라치면 어디선가 득달같이 달라붙던 철거현장 작업반들.

 

눈부시게 새하얀 햇살도 가려버리는 우중충한 가림막 안쪽의 숨겨진 폐허.

 

 

누가 무슨 이유로 현관문을 저렇게 살풍경하도록 부숴놓았을까. 

 

 두 개의 그래프, 혹은 두 개의 덩어리. 그리고 흑과 백.

 

 

 빨랫줄에 꽂힌 빨래집게까지 일일이 챙겨줄 여유 따위는 없이 다들 떠난 건 아닐지.

 

잠시 반짝 빛났을 이 곳의 부동산 경기. 이제는 숱한 부동산 간판들만 가림막 안쪽의 세상에 묻어두고 말았다. 

 

 

 아마도 자전거가 묶여있진 않았으려나, 장바구니 무거운 아주머니가 스쿠터를 세워놨던 건지도 모른다.

 

 

 재개발 지역 앞의 높다란 아파트들로부터 수혈이라도 받는 듯, 굵은 전선동앗줄이 하늘에서 내려왔다.

 

 아마도 연세 지긋하실 아버지와 아들, 손목을 꼭 잡고 나란히 머리를 빛내시며.

 

 새로 지어진 아파트촌, 그리고 이제 사라질 재개발촌. 교회 첨탑으로 겨우 자존심의 높이를 맞췄다.

 

 

 

길고 지루하던 겨울이 갔지만 여전히 스쿠터엔 두껍고 낡은 레자가죽의 장갑이 꽁꽁 싸매어져있다.

 

재개발, 그건 이렇게 훌쩍 뒤집어져버린 화분 같은 걸지도 모른다. 한줌만 대접받으며 옮겨지고 나머지는 고꾸라지는.

 

 

 

이른 아침부터 시작됐던 출사가 끝날 즈음 올려다본 하늘. 철거 현장의 분진을 막기 위해 둘러쳐진 가림막은 햇빛마저 막았다.

 

 

 

 

공지천을 굽어보는 테라스 난간, 아가씨가 걸터앉아 피리를 불었다. 옷자락이 나부끼고 바람이 불었다. 가느다란 팔목에

 

살풋 긴장이 어렸다. 피리를 어루만지던 손가락들이 바람을 더듬었다.

 

 

 

 

 

 

포항 호미곶,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해돋이를 볼 수 있다는 이 곳을 가본 사람이던 안 가본 사람이던 제일 먼저 떠올리게 되는 건

 

바로 이렇게 바다에서 불쑥 솟아오른 커다란 손의 형상. 갈매기들이 쉬어 가는 다섯 개의 봉우리이기도 하다.

 

 

사실 보는 각도에 따라서 생각보다 작아 보일 수도, 혹은 뜬금없어 보일 수도 있는 이 청동 조각상은 '상생의 손'이라는 이름으로

 

새천년을 축하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99년 12월에 완공된 상생의 손, 호미곶 해맞이 축전을 기리는 상징물로, 육지에선

 

왼손, 바다에선 오른손 이렇게 두 손이 함께 도우며 살자는 뜻에서 만들었다고 하는데 가장 놀라운 사실은 이 손이 육지에도

 

하나 더 있다는 사실. 처음 알았다.

 

 

 

성화대에 있는 화반은 해와 달을 의미하고, 두 개의 원형고리는 화합을 의미한다던가.

 

바다에 있는 오른손보다 조금 작은 사이즈로 만들어진 육지의 왼손. 그 앞에는 독도 일출과 피지의 일출에서 얻어온 불씨가

 

2000년 1월 1일 이래 꺼지지 않고 불을 밝히고 있었다.

 

새천년 기념관 전망대에 올라 내려다본 왼손과 오른손, 상생하라는 두 개의 손이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커다란 공을 쥐고 있는 듯

 

살짝 움켜쥔 모양새로 서로를 마주하고 있었다. 호미곶에 와서야 알게 된 손 조각상의 진실이랄까.

 

호미곶에 도착하면 딱 보이는 꽃마차들. 말갈기를 쉼없이 희롱하고 있던, 제법 쌀쌀한 바닷바람에도 말들은 꿈쩍없었다.

 

상생의 왼손을 에둘러 바다쪽으로 훅 들어가는 전망대. 바다 쪽에서 육지를 배경으로, 미친 듯이 날아다니며 시야를 가리는

 

갈매기들 틈새로 상생의 오른손을 볼 수 있다.

 

 

전망대 걸어들어가는 길에 한번씩 걸음을 멈추게 만드는 거대 문어상. 포항이 문어로도 유명한 데다 심지어 문어축제도 있다는 사실.

 

 

더이상 나갈 곳 없는 전망대의 끝단에 서면 정확히 동쪽을 가리키고 선 꼬마 아이의 동상이 있고, 호미곶의 위치가 잡혀 있는

 

한반도 지도와 나침반이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분분히 날아다니며 상생의 손을 향한 시야를 여지없이 가리는 정신사나운 갈매기들. 사람들이 자꾸 과자를 던져댄 탓이다.

 

이쪽에서 보이는 상생의 오른손 측면샷. 아무래도 육지의 왼손보다 크기도 크거니와 그림도 훨씬 이쁘게 잡힌다.

 

다시 광장으로 돌아와서, 미처 보지 못했던 가로등에 눈길이 간다. 포효하는 호랑이 형태의 한반도가 장식된 가로등이다.

 

같은 형태로 동해를 향해 포효하는 호랑이상 , 검고 노란 줄무늬가 선연하던 가로등 호랑이와는 달리 흰색과 하늘색의 줄무늬를 가졌다.

 

그리고 파란 하늘에 둥싯 떠있는 하얀 달을 움켜쥐려는 듯 내뻗은 육지의 왼손상.

 

 

광장에는 지난 새천년의 흔적들이 여기저기 남아있었다. 전국 최대의 가마솥이라거나 각종 기념물들. 그 와중에 수쳔년 전의

 

연오랑 세오녀 설화를 기념한 기념탑이 하나 숨바꼭질중.

 

 

새천년 기념관 전망대로 가는 길은 엘레베이터와 계단. 계단으로 갔더니 대충 4층에서 5층 정도 높이가 되는 거 같다.

 

 

옆에 나란히 선 풍력발전기 한 대. 시험삼아 돌리는 건가 싶기도 하고, 뭔가 효성의 광고판 같아보이기도 하고.

 

 

확실히 바닷바람이 매우 세게 몰아치기는 했다. 아이들은 저마다 얼레를 하나씩 손에 쥐고 연을 날리고 있었고,

 

호미곶에 갓 도착한 아이들은 일단 부모손을 끌고 연 하나씩 사달라고 조르고 있었으니. 그나저나 바닷가의 소도시답게,

 

혹은 바닷가의 명소답게 저런 연들을 담은 종이박스에 새겨진 글자가 눈에 잡힌다. 돌자반.

 

 

 

 

 

육칠년만인가, 참 오랜만에 다시 찾은 추암 해수욕장. 그리고 추암 촛대바위.

 

추암의 해돋이를 보겠다고 부지런히 달렸지만, 아쉽게도 날씨가 도와주지 않아 어슴푸레한 빛의 띠만 보고 말았다.

 

그래도 여전했던 건, 마치 거대한 대포를 쉼없이 쏘아올리듯 온몸을 진동시키는 삼엄하고 우람한 파도소리.

 

 

 

 

 

이전에도 이런 식으로 울타리도 꾸며놓고 망원경도 가져다 놓고 그랬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사람 한명 찾기 힘든 추암의 해안 산책로. 해는 구름 뒤에서 스물스물 떠오르고 있겠지만 바닷바람은 살을 에인다.

 

 

 

 

아스라히 보이는 배 한 척. 그리고 수만년 파도에 으깨지면서도 여전히 뾰족 솟은 돌부리 하나.

 

 

이 곳의 풍경을 한층 더 삼엄하게 만드는 건 여느 해안선에서처럼 바다를 온통 가로막고 선 철책들.

 

 

추암 촛대바위 들어가는 길목, 아슬아슬하게 곡예를 부리며 서 있는 돌멩이들. 위태로운 소원들.

 

추암 촛대바위 들어가는 길의 낡은 집 한 채는, 아마도 칠팔년전에도 눈에 담아놨던 풍경이다.

 

 

 

 

파도에 떠밀려온 온갖 쓰레기들, 외적을 막아낼 철망엔 쓰레기만 걸렸다.

 

 

철망에서 흘러내린 녹물이 온통 시뻘겋게 바닥을 적시고 있는 곳. 이제 60년이 되어가는 살풍경이다.

 

 

 

 

추암 촛대바위, 해수욕장 옆에 조각공원. 얼마나 관리를 안 하고 있는지 잡초가 보풀보풀.

 

 

좀 뜬금없다 싶은 조각공원 너머로 파랑주황 슬레이트 지붕이 이어지고 그 너머 수평선이다.

 

 

 

추암의 일출을 보러 가는 화살표 따라 노니는 청둥오리들의 물결.

 

 

 

추암역이 원래 이렇게 생겼었던가. 해수욕장 바로 앞에 있는 기차역은 좀 뜬금없어 보이기도 한다.

 

 

역사 건물도 없이 그저 철로 옆에 플랫폼 하나가 전부인 추암역. 내려다보니 주차장에 글자가 떠오른다. 공허한 문구.

 

 

 

마지막으로 한번 더 해안가를 거닐고 촛대바위에 눈길을 준 후, 해가 완전히 떴지만 결국 해돋이를 보는 건

 

실패했음을 확인하고 묵호로 달려가기로 했다. 울릉도로 떠나는 배를 타기 전 해돋이를 보려 왔던 참이었으니.

 

 

추암 해수욕장에 접근하려면 이렇게 차 한대가 겨우 다닐 수 있는 굴다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옆에 사람이라도 걸어지난다 하면 꼼짝없이 조심운전해야 하는, 그런 좁고 어둡고 짧은 굴다리 터널.

 

 

 

 

 

 

 

코엑스에서 열리고 있는 2011 아트페어, 올해로 10회째를 맞이한다는 KIAF, Korea International Art Fair다.

코엑스 주위 강남권에 회사도 많고 하니 잠시 짬을 내어 구경나온 회사원들도 적잖이 보였다. 네이버에서

세운 아트월 중 하나인 배병우의 소나무 사진을 유심히 감상중인 어느 회사원의 뒷모습이 진지하다.

이번 아트페어의 스폰서인 네이버는 곳곳에 아트월을 세워두고 그 앞에서 사진을 찍을 수도 있고, QR코드를

읽어서 해당 작가의 작품들을 좀더 자세하게 감상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하고 있었다. 포토월이란 단어는

많이 익숙하지만, 아트월(Art Wall)이란 단어는 처음 들어본 거 같은데 참 좋은 아이디어 같다.

이제 많이 유명해진 이동기 작가의 '아토마우스'도 아트월 하나를 차지하고 있었고, 마를린 먼로의 얼굴이

어슴푸레 드러나는 모자이크 그림도 눈길을 모으고 있었고.


이번 아트페어는 9월 22일부터 26일, 그러니까 다음주 월요일까지 코엑스 1층 전시관에서 열린다.

약 17개국의 200개 가까운 갤러리가 참여했다나, 총 작품수가 5천점에 이른다니 왠만한 미술관

전시회를 둘러보는 것보다 시간이 훨씬 많이 걸렸던 거 같다. 뭐, 미술관 전시회처럼 주제가 명확하고

이야기 흐름이 있는 전시는 아니고 갤러리들이 소장한 예술작품들이 우르르 쏟아진 셈이니 보다보면

살짝 소화불량에 걸릴 듯한 느낌도 없진 않지만, 그래도 나름의 재미는 쏠쏠하다.

이렇게 맘에 드는 작품 앞에서는 발걸음을 멈추고 한참 감상하며 저게 뭘까,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 걸까

그런 궁금증이 어깨에 잔뜩 얹힌 채 매료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제목이 뭐더라, the sunny day? 뭔가 해피한 날의 표정이긴 한데, 가슴엔 날이 시퍼렇게 선 식칼이 꼽혔다.

표정과 액션, 형상과 제목간의 모순으로부터 뭔가 궁금증이 스멀스멀 일어난다.

love였던가, 비슷한 이름이었던 거 같은데. 온몸에 하트를 덕지덕지 붙이고 있는 여자의 눈매가 저리도 앙칼진건

뭘까, 사랑의 흔적만 온몸에 남기고 뒤돌아서는 남자에 대한 무언의 항변이나 지난 사랑을 그리는 안타까움일까.

이것도 맘에 들었던 것 중에 하나. 제목이 unmasked였던가. 마스크를 벗어던지듯 얼굴껍데기를 온통 벗겨버린

듯 근육과 지방이 고스란히 드러난 얼굴. 그렇게 얼굴껍데기가 벗겨지고 나니 오히려 모든 표정이 지워진 채

그야말로 무표정한 모습이다.

요새 새롭게 각광받고 있는 회화 소재 중에서 한국적인 미감을 물씬 풍기는 재료가 바로 자개. 색감도 그렇고

반짝반짝하는 광택도 그렇고, 화려하면서도 세련된 분위기를 풍기는 그림이다.

입체의 형태는 시각에 따라 하트로 보이기도 주머니로 보이기도, 혹은 그저 평평한 평면으로 보이기도 한다.

신기한 재료들, 철사망을 어떻게 매만져야 저렇게 갈기를 휘날리며 내닫는 말의 형상이 떠오를 수 있는 건지,

그리고 저 초현실적인 그림에선 나뭇이파리나 털들이 왜 툭툭 그림 밖으로 튀어나와 붙어있는 건지.

저런 분방한 상상력도 경탄스럽지만, 그런 상상을 저렇게 작품으로 구현해낼 수 있는 그 능력도 부럽다.

일견 엉성하게 만들어지다 만 듯한 손, 심지어 손가락도 세 개 밖에 없는데다가 질감도 굉장히 거친데,

그게 또 이렇게 뭔가 절절해보이고 짙은 감성이 담긴 느낌을 던져준다.

이런 식으로, 숫자던 구체적인 물체-단추니 포크 따위-를 터무니없이 큰 사이즈로 재현하는 작품들은

이미 하나의 트렌드가 되어 버린 거 같다. 색감까지 알록달록 이쁘긴 한데, 왠지 이건 0부터 9까지

일괄구매해야 할 거 같다. 그치만 실제로는 숫자 하나만 구매해서 소장할 수도 있다더라는.

눈에 익고 친숙한 사이즈를 확 바꿔버림으로써 뭔가 미감을 자극하는 방식은 회화에서도 등장한다.

귤이니 콜라병이니 따위를 향해 진격하거나 공격중인 군인들의 모습이 연작으로 담겨있던 어느

한국 작가의 작품들은 그런 베이스에 나름의 아이디어를 얹어 고유한 특징을 만들어내려는 시도인듯.

전통 회화와 오브제들이 바둑판무늬로 짜여져서는 설치미술작품이 된 거라고 해야 하나. 특히 저 노랑 버스랑

말 인형이 맘에 든다.

굉장히 다양하고 신기한 작품들이 그득한 전시장 안에서 문득 '니모를 찾아서'의 니모처럼 생긴 물고기가

둥둥 허공에서 유영하는 모습이란 그렇게 초현실적이진 않았다. 요샌 저런 'R/C 생선풍선' 있구나. 그런

정도의 감흥. 그치만 다시 생각해보면 저거 꽤나 재미있어 보이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눈에 띄던 조각들. 아니지, 이걸 조각이라 하기도 그렇고 음..걍 미술작품, 이라는 게 무난하겠다.

저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얼마나 거짓말을 해댔길래 코가 저렇게 낭창낭창하도록 길어졌을까.

풍선아트를 그대로 굳혀놓은 듯한 저 선명하고 발랄한 색감의 작품은 분명 내가 이름을 아는 작가의

그것 같기도 한데. 이름을 까먹어서 잘난 척할 타이밍 1회 상실. 뭐, 이름 외우는 게 중요한 건 아니니.


금과 은으로 장식된 듯한 새하얀 마차랄지, 삼륜차랄지, 바이크랄지. 가만보면 좌석 등받이 쪽에 붙은

조그만 모니터에서 뭔가 사람들이 꼬물거리고 있다.

저렇게 낮은 곳에 있어서야 지나는 사람들의 부주의한 발길에 밟히면 어쩌려고. 하얀 모래가 깔린 가운데

허우적대고 있는 두 사람, 뭔가 개미지옥이나 사막의 구덩이같은데 빠진 절망적인 상황 같다.

그리고 뭔가 반복적인 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저 녀석들이 있었다. 눈과 입, 아마 실제

사람의 눈과 입을 따서 투영시킨 거 같은데, 쉼없이 꿈벅거리고 말하고 하품하는 그 형체가 기괴했다는.

그리고 이런 클래식하고도 반가운 작품을 소장, 전시하고 있는 갤러리도 있었다. 당대에는 획기적이고도

참신했겠지만 이미 그 뒤로 너무 많은 사람들이 따르고 있는 백남준의 미디어아트. 그의 작품은 뭔가

손때묻고 오래되어 따스한 온기가 도는 낡은 기계의 느낌이 난다. 오래된 재봉틀이나 빈티지스러운

바이크에서 느껴지는 그런.


나 같으면 BMW에 이런 식으로 도색을 하진 않겠다. 차는 참 이쁜데 말이지.

정말이지 전시장은 너무도 광활했다. 사람도 무척이나 많았지만 워낙 넓고 천장도 높아서 갑갑한 느낌은

들지 않았고, 그렇게 전시장 한가운데서 방황하다가 작가들이 붓을 흩뿌리며 작품을 만드는 것도 직접

볼 수 있었다. 어렸을 때 미술 시간에 저렇게 붓에 물감 찍어서 휙휙 뿌리는 건 참 재미있었는데. 


중세시대 귀족들을 희화화하는 걸까, 커다란 목장식을 벌통으로 바꿔놓고는 얼굴 곳곳에 벌을 붙여놓은

작품도 있었고, 베르사유 궁전 거울의 방을 촬영하곤 이리저리 매만진 작품 앞으로 온통 분해되어 버린

바이올린의 조각들이 가까스로 서 있었다.

그런가 하면 인도네시아던가, 그 나라의 정치 상황과 사회 분위기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이런 사회성 짙은

작품들도 더러 있었다. 폴리스 라인 뒤에서 죽어 나자빠져 있거나, 그 라인을 의식하며 권력에 대한 충성을

허둥지둥 맹세하거나, 혹은 라인을 밟고 경계에 선 사람의 모습까지. 내 맘대로 읽어낸 거지, 실제로 무슨

의미를 담고 어떤 역사적 배경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리고 센스가 넘치는 회화들. 안 그런 것들이 없었지만 특히 저 사이클 장면을 그린 그림이 와닿았다.

부시와, 테레사수녀와, 달라이라마가 레이싱 중이다.
 

눈이 시뻘개진 나무 늘보가 괴물처럼 흐물흐물하게 변해가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이 담긴 그림이 있는가 하면,

그림 아래쪽에 창을 내고 알루미늄을 붙여선 공간을 틔워버리고 나비 두마리를 날려보고 있는 그림도 있었다.

그리고 칠판처럼 배경이 그려진 그림 위에 저런 뜬금없는 고추를 그리거나 명함을 오려붙이고, 낙서를 마구

해서는 마치 학예회날이나 만우절날, 혹은 교생 떠나가는 날의 칠판을 그대로 떼어온 듯한 그림도.

누구의 입버릇을 빌건대, "내가 추석 연휴 때 스타워즈 에피소드 1,2,3,4,5,6을 전부 봐서 아는데," 스타워즈의

캐릭터들은 정말 그 풍요롭고 탄탄한 스토리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나서, 이렇게 예술작품으로 환생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들이다. 다스베이더의 가면 너머 숨어있는 그 깊고도 복잡한 심경, 그걸 그대로 전유해서

예술 작품 자체에 깊이를 얹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지 않을까. 그리고 스타워즈 자체가 수많은 아티스트의

소재가 될만큼 강력하고 매력적인 자극이었다는 반증이기도 할 거다.


여하간, 다스베이더를 소재로 삼은 저런 작품들, 아..하나 갖고 싶다. 스타워즈 빠돌이가 되어버렸다.

최근 인터넷에서 실사판 화투패라고 돌고 있는 것도 있던데, 그것도 제법이었지만 이렇게 뭔가 메카닉의 느낌이

담긴 화투판도 괜찮은 거 같다. 심지어 비광의 저 냥반은 스케이트를 신고 있는 거 같다.ㅋ

한국 작가 누구더라, 의 태권브이는 맨발로 당나귀를 타고 있다. 태권브이의 저 입모양은 이모티콘으로 따지면

-0-, 이런 느낌을 주는 거 같아서 재미있다.

저런 그림 참 좋다. 도발적인 자태와 눈빛, 흘러내린 머리까지. 나중에 집에 걸어두고 싶은.

그리고 이런 툭 까내리는 메시지도 좋다. 다짜고짜 뻐큐란다.

모네의 그림을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하며, 무질서해 보이는 수많은 붓질이 한송이 수련꽃으로 피어나는

모습을 보았던 기억처럼. 이 여인의 얼굴 그림 역시 가까이 들이대면 이런 조악해 보이는 어설픈 동글백이가

수없이 숨겨져 있었던 거다.


사진 작품들도 제법 있었다. 익히 알려진 배병우 작가의 작품들 말고도, 저런 작업은 어떻게 한 걸까.

어린왕자의 B612처럼, 조그만 별에서 벚꽃나무가 거침없이 뻗어나가 우주를 채웠다.

그리고 아마도 수많은 도장들을 모아서 프레임 안에 채운 게 아닐까 싶은, 크기도 높이도 모양도 내용도

전부 제각각인 것들이 모여서 커다란 직사각형의 작품에선 무슨 디오라마같은 입체감이 느껴진다.


뭐라더라, 설명을 들었는데 대도시의 밤풍경을 내려다보면 이렇게 혼란스럽고도 화려한 이미지일 거라

했던가. 작가가 실제로 그런 걸 의도했는지 모르겠지만, 딱 보면 정말 혼란스럽기는 하다.

예술은 늘 최신의 과학 기술과 성과를 또다른 표현수단으로 받아안고는 했다. 3D 아트는 그런 의미에서

조금 늦은 건 아닌지 싶을 정도다. 안경을 썼더니 너무 어지러워서 패스.


이거...레이 아닌가. 아니면 다른 변신물의 캐릭인가. 모르겠지만 일본 애니에서 뛰쳐나온 게 분명한

저 소녀가 캔버스 위에 그려져 있다니, 저런 작품도 유쾌하니 맘에 든다. 사방에 뭔가 변신중이라는

듯한 범상치 않은 기운이 휘감겨 있는 것도 맘에 들고.

중국 아티스트들의 작품도 요새 '투자가치'가 충분하다더니 꽤나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급변하는

중국 사회의 모습을 때로는 풍자적으로 때로는 시니컬하게 담고 있는 그들의 작품 중에 특히나

너무도 적나라해서 눈에 확 들어왔던 작품. 색감도 굉장히 선명하고 멀리 떨어져 조그매보이는

천안문 광장 앞에 당당히 선 하이힐 신은 쪽쪽 곧은 다리들이 인상적이었다.


거칠게나마 한바퀴 돌아보고 나오니 훌쩍 지나 있는 시간, 소화하기 버거울 정도로 너무 많은

전시물들이 있다는 건 장점이자 단점이어서 본인 깜냥에 맞춰서 즐기기에 딱 좋은 기회일 듯 하다.



"이곳 금남로는 광주시민들이 계엄군에게 맞서 5.18 광주항쟁 기간 중 연일 격렬하게 저항했던 항쟁의

거리다. 5월 18일 카톨릭센터 앞에서 최초의 학생 연좌시위가 있었으며 5월 19일부터 수많은 시민들이

끊임없이 모여들어 투쟁 의지를 불태웠다. 5월 20일 저녁에는 택시를 중심으로 100대 이상의 각종

차량이 참가한 대규모 시위대가 이 거리를 누볐다.

21일 계엄군의 집단 발포 전까지 30여만 광주시민이 매일 운집, 군사독재 저지와 민주화를 촉구했던

금남로는 5.18광주민중항쟁을 상징하는 거리다. 5.18광주민중항쟁 이후에도 항쟁의 진실을 밝히려는

투쟁이 이 거리를 중심으로 전개되었고, 가톨릭센터에서는 민주화를 위한 시민 집회가 계속 열렸다.

항쟁 당시 가톨릭센터에서는 천주교광주대교구청과 CBS광주방송국이 들어서 있었다. 천주교광주

대교구청에서는 시내 곳곳에서 벌어진 계엄군의 살상행위와 이에 저항하는 시민들의 피어린 투쟁을

전국에 알려 광주의 진실을 세계에 전파하였다."

그런 곳이 이 곳, 광주 금남로. 1980년 5월 21일 계엄군의 집단 발포로 500여명이 사상당한 곳이자, 항쟁

처음부터 끝까지의 중심무대였던 곳이다. 대검으로 임산부를 찔러죽이고 도망가는 시민의 뒷통수를

곤봉으로 내리치고, 심지어 무고한 시민들을 대상으로 총을 쏴갈긴 곳. 예전의 첫 느낌은 생각보다

굉장히 좁은 곳이란 거였고, 이번에 다시 찾고서 느낀 건 이제 아무것도 남지 않았구나, 하는 민망함.

몇걸음 뗄 때마다 세워져있는 조형물들을 마주하게 되어서 하나씩 찍어보기 시작, 그렇지만 그 조형물들이

80년 광주의 기억에 이어져있는 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판단한 기준은 작품의 형태와 제목,

그 이상 판단할 여지가 없기도 했거니와 금남로 양측으로 곤두선 건물들에 수반된 공공미술작품으로

늘어선 거 같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작품이 고추상의 작품이어서 결국 판단은 작품 제목에

많이 기댈 수 밖에 없었는데, 그렇게 내린 결론은 역시 광주의 기억을 떠올리는 작품이 거의 없었다는 것.

제목 : 상징.

제목 : 평화를 추구하는 무등여인상.

제목 : 평화로운 나날.

제목 : 사랑.

제목 : 여심.

물론 금남로가 온통 광주의 기억으로 짓눌려있어야 한다는 건 아니다. 광주시내의 중심이니 박제된

역사적 공간으로만 남아있어서도 안 되고 그게 가능하지도 않은 거다. 생활인들이 살아가는 한복판이니.

다만 금남로공원처럼 이렇게 약간의 공간이라도 조성해서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그 아픈 사건을

기억하고 되살리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정말 너무나 아무것도 안 남아있는 거다.

금남로4가 전철역 입구에 서있는 지방 무가지 신문박스. 신문은 하나도 안 들어있었다. 그것보다 눈에

거슬렸던 건 그 뒤에 저 싸구려스럽고 촌스런 노랑색 담장.

뭔가 봤더니 노란 바탕색에 돌멩이인 양 그려놓은 회색 얼룩이 얼룩덜룩한 얄포름한 합판을 억지로

세워둔거다. 차들이 지날 때 흔들흔들거리는 게 꽤나 위태해 보였는데, 가늘디 가는 쇠줄 하나가

억지로 그 담장형태의 싸구려 장애물을 지탱하고 있었다.

작은 사거리에서 만난 경찰초소. 뒤로 쉼없이 지나는 버스와 택시들, 이 거리에서 100대가 넘는 대형차량들이

시위에 합세해서 도청을 향해 행진했던 그런 날, 저런 경찰초소를 온통 불태우고 무너뜨리며 전진하던 그런

날, 어쩌면 그때가 한국 민주주의 정신이 도달했던 정점 아니었을까 싶어 우울해졌다.

금남로 지하상가에도 뭐가 있나 내려가봤지만, 아무것도 없다. 현재를 살아가는 생활인들의 복작복작함,

지하상가 특유의 활기와 어수선함은 좋지만 왠지 괜히 아쉽다. 지상에도, 지하에도, 어디에도 그 사건은

기억할 만한 흔적과 자취를 남기지 않았나 보다. 괜히 화장실 사진이나 한번 찍고.

올라오는 길, 대피소 사인. 80년에는 지하상가가 없었다고 알고 있는데, 정확치는 않다. 그랬다면 더욱

끔찍한 참사가 생겼을 가능성이 크다. 전경들, 군인들이 사람들을 토끼몰이하듯 쫓아다녔을테니.

제목 : 꿈(DREAM).

제목 : 추의 사념에서.

이렇게 조각들을 찍는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회의가 들 무렵. 지하철 환풍구에 누군가 페인트로

박아둔 글자가 눈에 확 띄었다. **반대. 뭔지 모르겠지만, 뭔가를 반대한다는 표시, 그리고 저렇게

오래도록 남아 뜻을 전하려는 의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강렬하다. 단순히 미감을 전달하는 것에

그치는 것처럼 보이는 두루뭉실한 조각상들을 보다가 눈에 확 꽂혀버린 두 글자. 반대.

제목 : 꿈의 나라로.

제목 : 삶(LIFE).

2011 광주비엔날레에서 채택된 시민 공모 디자인인 듯. 큐브 같기도 하고, 뭔가 이쁜 상자같기도 하고. 저런

공공 설치물에 미감을 더하는 건 대체로 맘에 든다. 물론 주변 경관이나 색감과의 조화라는 부분이라거나

실용적이고 경제적인 부분도 따져야겠지만 기본적으로 '도시를 누비는 디자인'이란 건 긍정적인 거 같다.

제목 : 함께 부르는 노래.

어렴풋이, 꿈 대신 해몽인지도 모르지만, 광주의 역사적 기억에 그 영감이나 의도의 부스러기를 빚지고

있는 듯한 작품들이 없진 않았지만 계속 아쉬운 와중이었다. 좀처럼 딱 깨놓고 여기가 그런 공간이었다,

말하고 공식적으로 기억하는 기념물은 왜 없는 거지. 그러다가 인도 한복판에 굉장히 어색한 위치에

설치된 벤치 두개를 보았고, 벤치에 시선이 팔려서 못본 채 지나칠 뻔 하다가 겨우 발견.

'5.18 민중항쟁 사적 4'라는 잔뜩 녹슨 글자는 쉬이 읽히지도 않는다.


사적비의 뒷면. 숫자가 4라고 붙어있는 걸 보면 다른 것들이 더 있다는 얘긴데, 요새 지자체들 잘하는 것들을

왜 여기엔 적용하지 않나 모르겠다. 포스트마다 인증 도장을 찍을 수 있게 부스를 설치해 둔다거나, 사적들의

위치를 알려주는 지도를 비치해 둔다거나. 사실 올레길이니 갈매길(부산)이니 바우길이니 온갖 걷기코스가

개발되고 있는 요즘에, 이런 사적들을 잇는 순례길 하나 만들면 좋지 않을까. 굉장히 차별화된, 그리고

세계적으로도 주목받는 80년 광주의 기억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거 같은데. 


제목 : ~~ 문.

그렇지만 현재 금남로는 커다란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메시지 불명의, 오로지 거리 미화를 위한 듯한

조각들과 '부자되세요'라는 강력한 생활형 주문에 멈춰 있는 듯하다. 다시 말하지만, 미술 자체에 불만은

없고, 오히려 다른 거리에 비해 많은 미술작품들이 인상적이기도 했지만 이런 거대한 역사적 공간을

그냥 묵히고 있는 게 안타까운 거다.


제목 : 풍경.

제목 : 묵시-전환기적 시점에 서 있던 이들에 대한 기억.


그리고 문화전당역, 이라는 역명을 가리키는 버스정류장. 문화전당이라.

제목 : 5.18민주항쟁을 상징하는 기념조형.

제목을 까먹은 조형물 하나를 마지막으로, 짧막한 금남로 두어 블록의 산책이 끝났다. 길 양쪽을 온통

돌아보며 확연히 건물에 부속된 조형물을 빼고 길가쪽으로 설치된 작품들만 찍었는데 정말 꽤나 많다.

그리고, 광주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나 은유가 확연한 작품은 정말 꽤나 없다.

그리고 또 하나 범상치 않게 보이던 시그널. 추억의 7080 충장축제라던가. 광주의 7080은, 흔히 티비에

나오는 추억의 7080쑈라느니 하면서 달달한 통기타 노래들을 공유하는 그런 게 가능할까. 단순히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 그 시대의 부조리와 아픔을 온몸으로 겪었던 사람들이 종종 토로하듯 그 시대에

멋내고 통기타치고 고고장 다니는, 그런 문화만 있던 건 아니었던 게 분명한데 말이다. 마냥 축제인듯

아름답고 멋지게 빛바랜 추억이라 말할 수 있을까. 특히 광주에서.


내가 감정과잉의 상태로 광주를 걸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괜히 하나하나 민감해져서, 광주에서 사는

생활인이라면 어이없다 싶을 정도로 이미지 하나하나에 반응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래도

외지인이라 해서, 실제로 그 고통을 겪지 않은 이방인이었다 해서-아직 태어나기도 전이었다는 훌륭한

핑계에도 불구하고-할 말을 못하거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건 아니니까. 금남로에서 80년 광주가

흔적도 없이 소멸되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단 게 솔직한 심정이다.




왓 아룬, 새벽사원이라 불리기도 하는 이 곳은 첫날 일정을 위한 일종의 반환점이었다.

5년 전에 다녀갔던 그 곳. 그 때도 나름 똑딱이로 사진을 남기고 나름의 감흥을 남겼었다

"거대한 것들과 함께 사진을 찍으려면, 적당한 거리잡기가 가장 중요하다.
얼마만큼 거리를 격해야 나와 당신의 그림이 이뿌게 나올 수 있을지..
당신의 위풍당당함과 아름다움을 해치지 않고 내가 그 곁에 자연스럽게 설수 있는 사진은.

너무 멀면, 모든게 용서될 것 같다. 고작 한웅큼 흩뿌려진 저녁 햇살 만으로도
너무도 부드러워보이는 당신의 실루엣.

너무 가깝게 들이대진 말기. 그 오색찬란한 빛깔과 생생한 질감이 사실은
사기접시를 깨넣고 붙여넣은 재활용품처럼 보일 수 있으니.

고슴도치가 사랑을 하듯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바싹 다가가기엔 한 평생 호흡이 길다.
크레딧이 올라가도 삶은 계속되고, 한마디 말로 감정을 전달한다는 건 편집기술의 승리일뿐.

간격잡기는, 고수의 스킬. 당신은 내 간격 안에 들어와있어. 베인다.


p.s. 풍경만이 아니라, 사람도, 삶도, 너무 거대해보이는 요즘이다.



정말이다. 이 커다란 사원의 그 오밀조밀하고 오톨도톨한 질감이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있었다.

어떻게 새겨넣었는지 일일이 눈으로 쫓으려면 어지러울 정도로 현란한 무늬들에 온통 둘둘

감겨 있는 거대한 탑, 그리고 요기조기서 탑을 온몸으로 (그리고 한쪽 무릎을 확 꺽어 바닥을

찍은 채) 받치고 있는 신들. 그저 탑의 굵은 윤곽만으로 섬세함과 장엄함을 던져준다.

그렇지만 역시나, 몇 걸음 가까이로 내딛으면 금세 드러나는 거다. 그 굵고 단호한 선 뒤에

가려있던 디테일들이란 게 얼마나 불규칙하고 마구잡이식으로 붙어있는 타일 조각들인지.

하나하나 정갈하게 붙어있다기보다는, 철퍽 접착제를 덧바른 후에 준비된 타일들을 꾹꾹

빠르게 붙여나간 게 아닐까 싶은 느낌으로 더러는 회칠 속으로 잠겨 있기도 하고, 조금은

들떠 있기도 하고.

원래 왓 아룬이 완공되었을 때는 지금과 같은 모습을 의도하진 않았다고 한다. 중국에서

태국의 왕에게 선물로 보내온 온갖 자기들이 있었는데 딱히 왕이 달가워하지 않아 그걸

이 곳의 사원을 꾸미는데 활용했다고 한다. 더러는 깨뜨려서 모자이크 타일처럼 썼지만

사진에서처럼 조그마한 자기는 통째로 붙여 장식하기도 했나본데, 하나가 쑥 빠졌다.

저건 누가 챙겨갔으려나. 괜히 손가락을 힘을 주어 옆의 자기도 슬쩍 건드려보고.

위로 오를수록 가팔라지는 중앙탑에는 사방으로 계단이 나있다. 위로 오르는 사람들은 점점

몸을 탑에 의지하며 파이프 난간을 굳게 잡고, 밑으로 내려오는 사람들은 거의 엉거주춤한

자세로 스물스물 계단에 붙어 기어내려오고.

탑의 중턱까지 올라와서 한숨 돌렸다. 짜오프라야 강이 내려다 보이고, 단정한 사원의 뒷끝있어보이는

뾰족한 부리들이 생생히 보이고, 온통 평지인 방콕 시내가 멀리까지 보이고. 남국의 햇살보다

바람이 더 힘센 공간이기도 했다. 따끈한 햇살을 시원한 바람이 산산조각낸 채 사방으로 날려보내는.


그렇지만 이미 상당히 좁아진 공간, 한바퀴 탑을 돌아보는데 좁은 통로를 비비적대며 사진도 찍고

바깥도 구경하는 사람들이 발에 걸리는 곳이기도 했다. 그리고 사실, 사방을 바라보는 각도와 시야가

몇 가지로 제한되어 버리는 곳이기도 했다.

다시 꾸역꾸역, 더이상 방문객에게 허용되지 않는 제한선까지 올라왔다. 조금더 높아졌고

그만큼 멀리까지 방콕을 바라볼 수 있었고, 짜오프라야 강 너머 꼬물대는 사람들이나 차들이

조그만 벌레처럼 보이는 곳이었다. 아까 중턱쯤에선 남국의 햇살과 바람 사이에 입을

오른쪽으로 벌린 부등호가 한 개 정도 끼어있었다면 여기는 한 두세개 쯤. 햇살<<<바람.


그만큼 몸을 움직이기도 어려워졌다. 공간이 더욱 좁아져서는 이미 올라와있는 사람들이

돌아보는 방향으로 일방통행밖에 가능하지 않았을 뿐더러, 보여지는 세상도 광각으로 잡힌

그저 작고 귀여워서 마냥 용서가 되는 듯한 사이즈. 그러고 보면 왓 아룬을 멀리서 볼 때의

느낌이나, 이 위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 볼 때의 느낌이 같다.

거의 수직에 가깝게 솟아있는 탑의 나머지 상단부, 여기에서도 몇 명의 역사가 조금 졸린 눈을

하고서 탑을 떠받치고 있었다. 조금은 더 인상을 쓰고 있어야 실감이 더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지만 이 탑을 떠받드는 것 자체가 굉장한 공덕이라 여겼으리라 생각하면, 저 나른하고

흐뭇한 표정이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그렇지만 가만 보면 탑 상단부에는 이렇게 코끼리들이 머리를 모은 채 커다랗게 휘영청한 상아 이빨과

길다란 코를 휘두르며 금방이라도 탑 밖으로 튀어나올 듯 육박하고 있는 거다. 조그마한 창문 하나를

완전히 꽉 메운 채 탑의 사방에서 돌진하는 녀석들, 그 무게만 해도..하며 어림짐작해보려다가 말았다.

탑 위에서 내려다보는 왓 아룬의 화려한 전경. 저렇게 길고 가늘게 뻗어있는 첨탑은 어떻게

위에 올렸을까. 길기도 길지만 무게도 무게일 텐데, 균형을 잡고 유지하기도 쉽지 않지 싶다.

언제 이 곳에 공양된 화환인지는 모르겠지만, 한낮을 버텨낸 것만으로도 대견하다.

비실비실 수분을 잃고 축 처져버리긴 했지만 아직 그 색과 향은 여전했다.

다시 내려왔다. 탑을 한바퀴 둘러보기에도 여유롭고, 탑의 위와 아래, 디테일과 실루엣을

내키는대로 올려보고 굽어보기에는 역시 아래에 내려와 있는 게 좋은 거 같다. 위에 오르면

아무래도 시각도, 시야도 특정하게 묶여버리고 마는 거다. 그렇게 여기저기 훑어보다가

발견한 저 일란성 쌍둥이 난간 장식들 틈의 미운 오리 한마리. 훼손된 장식을 회색 시멘트로

그냥 다시 붙여버렸나 보다.



그러고 보면, 역시나 태국 사람들은 참 꽃을 사랑하는 거 같다. 모든 장식문양은 결국 꽃.

넓은 꽃잎, 좁은 꽃잎, 긴 꽃잎, 짧은 꽃잎, 그렇게 왓 아룬 사원 전체를 꽃밭처럼 뒤덮은 꽃들.

탑 근처를 돌아다니다가 발견한 토끼 분수대. 금색 토끼가 사실적으로 묘사된 조각이 신묘년

토끼해를 맞은 사람들에게 나름 의미를 던지는 듯 하다. 근데 태국도 십이지신의 개념을

매년 적용해서 의미를 부여하려나, 그건 잘 모르겠다.

그리고 이 곳의 아이들에게 이 사원은 그저 잔디가 파릇파릇 깔려있는 폭신한 공원. 깔깔거리며

배드민턴을 치고 있는 아이들이 시선을 확 끌어당겼다.

바로 앞의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짜오프라야 강 동안으로 넘어가는 길, 꽃 한송이 한송이를

묘사하던 타일 조각들, 탑의 구석구석 피어난 그 꽃송이들, 그것들이 그어내던 미묘하고 자잘한

떨림 같은 선들이 싹 걷혀버렸다. 그리고 다시 처음에 봤던 모습 그대로, 단호하고 기하학적인

굵은 선으로 강렬하게 그어진 탑 한덩이만 남아버렸다.


+ 태국여행, 특히 방콕에 들러 이국적인 문화를 만끽하고 싶다면 방콕호텔 예약은 판매못한 객실을

모아 저렴하게 판매하는 '레이트스테이즈'를 추천하니 참고하면 되겠다.






@ 외도, 보타니아 해상농원.


 
일시 : 2011년 2월 22일(화) PM 23:22부터

장소 : "다른異 색깔彩을 지켜낼 자유"
              옛)異彩가 꿈꾸는 경험적세계의 유토피아적 가능성

                 (http://ytzsche.tistory.com)

● 자격 : 1) 이 작품을 보고 느껴지는 감흥을 간단히 묘사해주시고
           2) 작품의 제목을 붙여주세요. 

              + 초대장을 받을 이메일주소!^-^*


주최 : yztsche(이채, 異彩)

제공 : 초대장 19장


In Honor 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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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zsc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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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ce Tuesday February 22,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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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 갔던 제주도, 미성년자 관람불가의 성인용 조각공원에서 발견했던 조각들은 온통

남자와 여자의 몸 일부만을 소재로 다양하고 참신한 아이디어들이 반짝거렸었다. 꼭 그만큼

그 공원 내의 화장실도 재기발랄함이 가득했는데, 남자용 화장실 유리문에 그려진 남자가

여느 파란색 인물이 다소곳하고 밋밋하게 선 것과는 달리 실감나는 포즈와 물줄기를 그리고

서있던 거다. 그리고 또 하나 놓칠 수 없는 뽀인트는 바로 저 손잡이.

여자쪽은 어떠냐 하면,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사실 빨간색 여자가 남자와 똑같이

두발 쩍 벌리고 선 채 '여기가 여자화장실이에요' 하는 건 좀 리얼리티가 떨어지는 거다.

저렇게 실제 포즈를 잡고 물줄기까지 고래처럼 뿜어줘야, 아 여기가 여자화장실이구나

하지 않을까. 남자화장실보다 재미있는 모양, 훨씬 공들여 만든 게 분명한 손잡이는

역시나. 대박 센스.



* 참고 : (19금) 제주의 미성년자 관람불가 조각공원.




* Mother nature is calling me, 직역하면 '자연이 나를 부르고 있어' 정도가 되겠지만 보통

이 문장은 허물없는 사이에서 화장실 다녀오겠다는 의미로 새겨지게 됩니다. 여행을 다니며

결코 빠질 수 없는 '답사지' 중 하나가 그곳의 화장실이란 점에서, 또 그곳의 문화와 분위기를

화장실 표시에까지 녹여내는 곳들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국내외의 특징적인 화장실 사진을

이 폴더 'Number one or number two?'에 모아보고자 합니다. 그 표현 역시 우리말로 치자면

'큰 거야 아님 작은 거야?' 정도겠네요^^



신주쿠에서 약 한시간 반 오다큐선 급행열차를 타고 도착한 하코네, 질좋은 온천과 일본식 전통 료칸으로 이름을

떨치는 곳이지만 등산열차, 케이블카, 로프웨이, 유람선 등등을 타며 한바퀴 돌아볼 수 있는 그 짙푸른 녹색의

자연이 품고 있는 미술관이나 아기자기한 사원들도 무지하게 매력적인, 어찌됐건 절대 놓칠 수 없는 곳이다.

그 곳 중에서도 '족탕'을 품고 있는 야외 정원으로 기억에 남는 '조각의 숲 미술관'.

등산열차로 '초코쿠노모리'역에 하차하고 백걸음도 채 안 걸어 매표소 입구에 도착했다. 일반 1600엔, 그렇게

싸다고는 할 수 없는 입장료인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굳이 하코네에 와서 여길 돌아보고 싶었던 이유는 딱 두개.

피카소 작품이 많이 소장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족탕'이 있어 지친 발을 잠시 쉬어갈 수 있겠다는 나름의 안배.

입장권을 끊고 들어서는 길은 에스컬레이터로 조금 내려가는 길, 하코네 자체가 산에 기대어 경사가 급격한

동네이기도 하니까 미술관도 너른 부지를 마련하려면 좀 아랫턱으로 내려가야 하나보다.

에스컬레이터를 내려와 굴다리를 지나면, 시꺼먼 그늘과 새하얀 햇살이 극명하게 대비를 이루는 풍경. 너무

갑작스레 공기가 바뀌고 밝기가 바뀌니까 약간 어리버리해진다. 이상한 나라에 끌려들어온 앨리스의 느낌이랄까.

사실 '이상한 나라'라고 번역해 놓은 건 어폐가 있다. 'Wonderland', 놀라운 나라라면 모를까, 이상하다는 표현은

정상적인 것은 이런 거라는 전제가 숨어있는 셈이다. 사람 열명쯤 덮고 잘 수 있을 만큼 커다란 계란 후라이들이

공원 곳곳에 이렇게 철푸덕 떨어져있다면, 이상한 나라일까 놀라운 나라일까.

커다란 머리가 분수대에 뉘어져 있기도 했다, 온통 싱그러운 초록색의 가짜 잎사귀 화환을 한 채.

조금 올라서는 계단길, 뱀이 몸을 구불거리며 나아가듯 유연하고 정연하게 구불대는 계단 손잡이가 재밌다.

그리고 빨주노초파남보의 프레임들이 네모난 무지개를 만들고 있기도 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어서

보는 각도에 따라 완전히 중첩되기도, 혹은 약간씩 서로의 몸을 잡아먹으면서.

네모난 무지개 옆으로는 커다란 몸집의 소가 커다랗게 불어난 젖통을 드러낸 채 띠굴띠굴.

어른 대표선수의 목을 두 발로 힘껏 조르고 있는 아이 대표선수. 불끈 튀어나온 어른 선수의 두 눈이 극렬한

고통을 맛보고 있음을 반증하고 있는 듯.
꽤나 커다란 '조각의 숲', 색색깔의 목마도 품고 있고, 너트처럼 생긴 조형물들도 여기저기 흐트러진 듯

설치되어 있고. 그렇게 애기들이나 아이들이 만지고 타고 기어들어가며 놀이터처럼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어느 사거리길 한가운데, 커다랗고 반짝거리는 금속공이 매달려있었다. 내가 지나온 뒷길을 계속 비쳐주던

금속공이었지만 그 아랫춤까지 바싹 다가가서 올려다보니 사거리길 사방을 모두 펼쳐내어 준다.

조각의 숲 미술관에서 중심부에 해당하는 건 바로 이 별 모양의 정원, 미술관 입구에는 챙긴 지도의 그림으로

봤을 때는 그냥 별 모양으로 다듬어놓은 정원이겠거니 했는데. 실제로 보니까 저렇게 깊숙이 차라리 통로라고

해야할 만큼 미로처럼 길을 내놓았다.

입구도 있어서 정원 안으로 들어가 거닐어 볼 수도 있었는데, 이건 정원의 꽃들을 굽어보며 맘편히 산책하는

느낌이 아니라, 어딘가에 숨어있는 치즈를 찾아 헤매며 '내 치즈는 누가 옮겼을까' 정도를 중얼거릴 법한

그런 미로에서 헤메이는 느낌이다.

별 모양의 정원 옆에는 또, 통나무들을 얼기설기 이어만든 커다란 둥지 같은 것이 있었다. 저건 뭐지, 뭔가

얼음덩어리를 쌓아서 만든 이글루를 흉내낸 통나무 버전 이글루같기도 하고, 새들이 지푸라기를 물고 와서

짓는 둥지를 인간 사이즈에 맞춰서 지어놓은 것 같기도 하고.

아이들이 완전 좋아라 하던, 내부는 마치 에일리언이 잔뜩 알을 까놓은 오염된 우주선의 느낌. 여기저기

축축 늘어진 에일리언 알같은 놀이공들을 향해 원투 잽을 날리는 여자아이의 스텝이며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제법 짙은 그늘을 드리운 이 곳에서 어른들은 조금 쉬고, 아이들은 권투를 익히고 있었다.

그야말로 얼기설기, 이런 거 설계하기도 쉽지 않았겠다 싶다. 뭔가 나름의 규칙이 있었을 테고 그것만 알면

지어나가기는 생각보다 수월할지도 모르지만, 애초에 통나무를 이런 식으로 쌓아올려서 뭔가를 커다랗게

지어서 사람들을 들여보내 놀게 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예전에 다방에서 하릴없이 쌓아올렸다는 육각성냥갑 속

성냥들의 탑쌓기와는 차원이 다른 거다.

그리고 피카소. 이 곳에서 피카소 관은 마치 가장 소중한 것을 깊숙이 숨겨놓듯 미술관 맨 안쪽에 위치해 있다.

피카소의 드로잉, 조각, 도예 같은 작품들 300여점이 소장되어 있는 이 곳에 가까이 다가가니 뭐랄까, 명당의

느낌. 사방을 산들이 삐쭉삐쭉 호위하며 에워싸고 있고, 미술관 전체 부지를 출렁이던 구릉도 피카소 관 앞에서

잘 다려진 와이셔츠처럼 판판하게 펼쳐졌다.

들어가는 길, 이미 나는 무지개가 뜬 아래 귀여운 우산이 장식되어 있는 우산꽂이에서부터 감탄하고 말았다.

내부는 사진촬영금지, 그래도 2층 전시관으로 올라가는 길에 푸르스름하게 정돈된 햇살을 내어놓는 스테인드

글라스가 너무 이뻐서 한 장 찍고 말았다.

피카소 관에서 나오니 바로 앞에 있는 건 '심포니 조각'. 저 커다란 탑 하나가 고스란히 작품인데 내부로

들어가면 타워를 에워싼 스테인드글라스 조각으로부터 번져들어오는 빛깔의 향연에 감탄하고 만다.

그리고 바로 그 탑을 바라보며 쉴 수 있는 위치, 그곳이 바로 그토록 궁금해 마지 않던 '족탕'이 있는 곳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맨발벗은 두 발을 탕에 담근 채 앉아서 쉬고 있었지만, 그래도 드문드문 빈 자리가 많아

쉽게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양말을 벗고 발을 살짝 물에 담궜더니, 너무 뜨겁지도 않고 싱겁지도 않은 그런 온도다. 따스하게 물이 발을

보듬어주는 정도의 온도. 뒷목이 시원해지는 느낌이 발끝에서부터 찌릿찌릿 전해졌다. 십여분 앉아서 앞의

미술품들도 하나하나 눈으로 좇아보고 주위 여행자들도 구경하다 보니 금세 땀도 식어버리고 완전 기운을

회복해서 벌떡 일어날 수 있었다. 정말 강추. 야외 족탕을, 이런 야외 미술관을 거닐다가 중간쯤 잠시 쉬며

체험해 볼 수 있다는 건 흔치 않은 데다가 굉장히 절실하기도 한 경험.

어떻게 보자면 서울에 있는 올림픽공원이랑 비슷하기도 하다. 자유로이 들어갈 수 있는 잔디밭에 심심치 않게

세워져 있는 온갖 예술품들, 어렸을 적 올림픽 공원에 소풍을 가고 사생대회를 가고 백일장을 가고 또 소풍을

가고 했을 때에는 '출입금지' 표지판이 있거나 말거나 잔디밭 깊숙이 들어가서 조형물들을 막 타고 놀고

그랬었는데. 이제는 저런 벤치에 앉아 조금은 차분하게 쉬고 싶은 맘이 더 커져버렸다.

그래도 이런 식으로 풀밭에 뒹굴고 있는 조각 사람을 보면 괜히 나도 같이 옆에 가서 똑같은 자세로 엎드리고

싶고, 그게 안된다면 이렇게 똥침이라도 놔주고 싶고. 아직은 그런 맘이 욱씬욱씬.

앗. 이 녀석은 현대미술관에서도 봤었는데, 그때 설명해주던 도슨트가 굉장히 비싼 작품이라며 무지무지 뿌듯해

하던 게 기억에 남아있다. 거대한 신체, 어딘지 일그러진 채 뮐렌도르프의 비너스를 떠올리게 만들던 그것.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뮐렌도르프의 비너스가 현대 사회에 살면서 힐을 신고 핸드백을 든 느낌.

숲 가장자리에 슬어있는 벌레들 알뭉치 같기도 하고, 칭칭 감긴 거미줄 같기도 한 이것, 완전 아이들이 좋아죽는

또다른 놀이 공간이다. 어렸을 적 꿈꿔보던 그런 스릴넘치고 아드레날린 쭉쭉 분비되는, 좁은 통로를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며 불쑥불쑥 예기치 않은 곳에서 고개를 내미는 그런 반투명한 공간.

어느새 잔뜩 커져버린 내 몸뚱이에는 가혹하게 작은 구멍과 통로 공간을 원망하다가, 사실은 어느새 저런 곳에

들어가 와와 소리지르며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기엔 '쪽팔림'을 알아버린 스스로를 원망하다가, 옆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우리, 제로나 할까.

그렇지만 난 군대도 현역으로 제대한 신체건강하고 정신멀쩡한 이땅의 성인남성. 얼굴 따위 붙어있지도 않은

두 팔모가지가 권해오는 제로 게임보다는 이런 남녀 신체의 향연이 훨씬 좋단 말이다. 와우.

삼각대를 들고 다니며 사진을 찍다가, 문득 삼각대 다리 한쪽에 꽃대궁이가 낑겨 있는 걸 발견하고 깜짝 놀랬다.

어디서부터 따라나섰는지 모르겠지만 새하얀 꽃잎의 부드러운 색감도 그렇고 나풀거리는 모양새도 그렇고

너무 청초해 보인다.

돌아나오는 길, 그래, 아까는 오른쪽의 좀더 각진 문으로 이 '조각의 숲 미술관'에 들어왔댔다. 이번에 나가는

문은 좀더 둥그렇고 좁은 문. 들어오는 문과 나오는 문이 같을 필요도, 그 모양이 같아야 한다는 법도 없는데

이런 식으로 입구와 출구가 다른 것도, 모양새가 다른 것도 신선하기만 하다.

독일의 캐릭터던가, 왜 그 엑스자 모양의 입을 가진 과묵한 토끼인형 미피(Miffy)전도 특별전의 형식으로

하고 있었다.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옆에서 방문자들을 배웅해주던 스탠드로 변신한 미피. 참 뭐랄까, 끝까지

재미있게 해주는구나 싶었다.

* '조각의 숲 미술관' 지도.




신주쿠의 빌딩숲 사이를 걷다가 문득 발견한 거대한 글자탑. L.O.V.E. 글자가 이렇게 차곡차곡 쌓여있는 모습도

모습이지만, 그 글자의 크기가 뭔가 낯설만큼 커서-저렇게 큰 글자로 씌여진 책장 한 페이지의 사이즈는 또

얼마나 클까-주변의 풍경을 살짝 일그러뜨리는 듯 했다. 붉게 달아오른 러브.

신주쿠의 도쿄도청 뒤쪽, 오거리던가 사거리를 건너려다 저 너머에 있는 빨간 글자조각을 발견한 거였다. 사실

그보다 먼저 눈에 띄었던 건, 사거리를 삥 둘러 세워진 신호등과 가로등을 고리처럼 이어주던 환.

그 글자가 거기 놓였다는 게 보이지도 않는 듯 완전 무심하게 지나는 사람들은 도쿄의 현지인들, 이렇게 요리조리

카메라를 들이대는 사람은 여행자들..이라지만, 사실 이런 글자가 서울의 테헤란로 어디메쯤 덜컥 떨어뜨려놓은

듯 놓여있으면 지나칠 때마다 기분이 묘해질 거 같다. 너무너무 익숙하고 뻔해서 진부해진 공간이 문득 새로워지고

재미있어지는. 발바닥을 간질간질하는 느낌. 혹시, 이 글자 외지인에게만 보이는 건가.

이번엔 측면 사진. 정면에서 2D로 볼 때와 또 다른 3D의 위엄. 그리고 두툼한 깊이가 느껴지는 만큼이나 더욱

커다란 존재감을 가지고 주변공간을 휘어버리는 그 간질간질함.

사실 이 오리지널 'LOVE'의 또다른 버전은 파주 헤이리에서 본 적이 있다. 그 때도 그걸 보고 꺄아~ 하면서

마냥 신기해했던, 포스팅까지 했던(Alice in 헤이리.) 기억. 그 때 보았던 건 그치만 한글 자모로 만들어놓은 것,

게다가 훨씬 작고 귀여운 사이즈에 얄포름한 두께를 가진 것이어서 이만큼의 임팩트는 느껴지지 않았었다.

같은 모양새여도 그 크기에 따라 느낌이 이렇게나 달라질 수 있단 건, 아무리 본질이 이러니저러니 잘난 척 해도

생각보다 사람이란 동물이 단순하고 곧이곧대로 이미지를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는 걸까.

내킨 김에 신주쿠의 야경 한 장. 신기하게 생긴 건물들이 쭉쭉 시원하게 뻗어오른 그곳.





@ 상하이 엑스포공원.


토욜일욜 충전한 에너지를 오일동안 아껴써야 하니 하루에 내가 써야 할 에너지는 충전치의 1/5분량인데

어제 내가 써버린 에너지는 뻥안까고 7/5는 써버린 느낌이었다. 논리상 에너지가 엥꼬났으니 휴가를 써서

쉬어야 하는 건데 정작 오늘은 아침부터 행사 준비. 이제야 끝내버렸다.


오늘 써버린 에너지는, 어디서 퍼올려졌는지는 모르겠으되 대략 충전치의 10/5 정도? 아마도 이런 식으로

수명을 갉아먹느라 인간이 불로불사의 존재가 못 되는 게다. 어디서든 대가리 박고 푹 잤음 좋겠다.



반띠아이 쓰레이는 앙코르 유적지에서 약 38km, 한 시간정도 툭툭을 타고 가야 하는 길 위에서 소 달구지도

만나고, 자전거 레이스를 하겠다고 덤비는 꼬맹이들도 만나고.

밝은 감색 승복을 나부끼는 스님들과 허술한 기념품 가게 옆도 씽 지나쳐버렸다. 역시 여행은 속도가 느릴수록

재미있는데 말이다. 할애할 수 있는 시간 자체가 충분하게 확보되지 않으니 자꾸 압축적으로 보려는 마음이

동하게 되는 거겠지만. 그래서 사실 가끔 여행 많이 다니는 자칭 '고수'들이 그렇듯 패키지로 나가는 '관광객'을
 
낮추어 볼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빠알간 꽃의 무게를 못 이기고 축 처진 것처럼 보이는 줄기들.

반띠아이 쓰레이에 거의 다 도착할 즈음, 눈에 번쩍 띄었던 꼿꼿한 나무 한 그루. 뭔가 왼쪽의 무성한 이파리의

가지와 앙상한 오른쪽의 가지가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드디어 반띠아이 쓰레이다. 근 한시간에 가까운 시간을 달려 여기까지 꼭 와야 했을까, 살짝 반신반의하는 맘이

없던 건 아니었지만, 여긴 입장권 판매소부터 다르다. 깔끔히 정비된 간판에 사원 주변을 둘러싼 듯한 연꽃밭.

입구서부터, 뭔가 조각이 다르다. 선명하고 섬세하고, 빈틈없이 화려하다.

'링가'들이 두줄로 정렬한 채 순례자를 중앙사원으로 인도하는 통로. 바닥의 포석은 더러 유실되고 이리저리

비틀어져 버렸지만 링가의 불끈한 형태는 그대로다. 상상 그대로인 것이, 저 링가란 파괴의 신 시바를 추상화한

형태로 표현한 것으로 시바신이 사람처럼 상상되기 이전 그의 존재를 나타낸 조각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건

고대인들이 으레 그러하듯 남성의 성기 모양을 따서 상상되었다고 하는데 벌써 모양새가 딱 그렇다.

사원 중간중간 부서진 조각들에도 꼼꼼하게 번호가 매겨져 있다는 건, 이 사원이 한번 철저하게 스캐닝되어

관리되고 복원되고 있다는 의미와 같지 않을까. 이 조각이 있어야 할 곳, 소용되는 곳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단

것일 테니 말이다.

얼마나 깊고 정교하게 조각을 했는데 살짝이라도 손을 대면 으스러져 떨어져나갈 것만 같다. 무슨 부드러운

붉은 색 목재를 조각한 것같기도 하고, 그렇지만 이건 모두 붉은 사암, 돌이다.

링가가 세워져 있던 장소, 성소가 흐르는 곳이라 하는 곳을 '요니'라 한다. 옆을 지나가던 한국인 가이드의

설명을 훔쳐들은 바, 이것 역시 여성의 성기를 본따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그래서 링가와 요니가 만나는 이

곳을 성스러운 장소로 여겼었다고. 미루어 추측해 보자면 아마 성기 그 자체가 창조나 풍요, 생산력을 상징할

수 있었겠구나 싶다.

가까이 다가가서 볼수록 굉장하다. 멀리서 볼 때부터 충분히 그 돌출감을 실감할 수 있을 만큼 깊고 세밀하게

조각되어 있엇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이건 무슨 부드럽고 다루기 쉬운 코르크 재질로 만든 장식 같기도 하다.

이렇게 입체적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아름답게 만들 수 있었던 당대의 장인들은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았을까,

캄보디아의 전통 사회에서도 '사농공상' 같은 유교적 위계가 있었는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사원이 그렇게 높지는 않지만 온통 조각으로 가득해서 밑에서부터 훑어올라가는 시선이 위에까지 가 닿으려면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린다. 쉽게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을만큼 강렬한 매력을 가진 반띠아이 쓰레이.

그러고 보면 '반띠아이 쌈레', '반띠아이 쓰레이' 등등 '반띠아이'로 시작하는 사원들이 적지 않다. 반띠아이란

크메르어로 '방으로 둘러싸인 사원'이라는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그리고 '쓰레이'는 (발음을 잘 해야겠지만)

'여성'을 의미한다고 하니, 반띠아이 쓰레이는 사원의 여성적인 섬세함과 아름다움에 걸맞는 이름을 가진 셈.

앙드레 지드가 소싯적에 여기서 '동방의 모나리자'라 불렸다는 이 여신상을 도굴하려다가 잡혀서 6개월 실형을

살았다고 한다. 그가 여길 도굴하려던 게 1924년, 그런데 더 놀라운 건 이 아름다운 사원이 발견된 게 고작 그

십년 전, 1914년이라는 사실이다. 얼마나 잊혀져 있었던 걸까.

하아...할 말을 잃게 만드는 저 조각들. 천년 전의 것이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엣지있게' 생생하다. 슬쩍

손을 뻗쳐 모서리를 만져보니 여전히 빳빳한 게, 막 조각해 내었을 때의 뚜렷한 각도가 그대로인 게다.

약간 사원 옆으로 튕겨나와 거리를 두고 바라보았다. 아기자기한 높이에 그다지 크지 않은 스케일의 사원임엔

틀림없지만, 붉은 빛을 가득 품은 정말 아름다운 사원이다. 해가 뜰 때나 질 때 보면 햇살에 붉은 빛이 반사되어

더욱 이쁘다고 하는데, 빈약한 상상으로나마 그 풍경이 대충 감이 간다. 아니, 그때의 감동이 어느만큼일지

대충 감이 간다는 게 맞겠다.

육체적 피로나 따꼼한 발바닥 따위는 잊고 아무리 감격한 채 사원을 헤집고 다녀보려 해도 한가지, 뜨거운 불볕

더위는 어쩔 수 없다. 잠시 나무 그늘에서 쉬면서도 사원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반띠아이 쓰레이에도 외부를

빙 둘러 해자가 있었다고 한다. 이제 자취가 거의 남지 않을 만큼 사라져버렸지만, 어쨌건 흔히 '유럽의 성'에서

연상하는 해자는 캄보디아에서 연원했다는 것.

3개의 탑을 앞세운 중앙성소는 원숭이 상들이 빙 둘러 수호하고 있고, 외벽에는 빼곡하게 여신상이나 코끼리상

혹은 나가(뱀)상, 덩굴무늬 등이 조각되어 있었다. 굉장히 화려하고 사치스럽기까지한 느낌이었는데, 아쉽게도

사진상으로는 색감이 좀 날아가버렸다.

근데 대체 지드가 훔치려 했던 '동양의 모나리자'라는 여신상은 어떤 걸까. 하나씩 꼼꼼이 살피며 대체 뭘까,

했는데 약간씩 표정과 몸짓의 뉘앙스가 다르다. 뭐였을까. 지드가 반해 버려서 도굴까지 꾀했던 그 여신상은.

사실 여신상은 중앙성소의 벽면마다 하나씩 안배되어 있을 정도로 많은 수가 조각되어 있는 데다가, 사이즈도

생각보다 그리 크지 않아 맨눈으로 관찰하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극히 드물게도 이곳은 사원 보호를 위해

일정 거리를 확보한 채 출입제한선을 설정해 두고 있는 거다.)

어느 문화재나 그렇지만, 그림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와 이야기를 알고 보면 더욱 재밌다. 그렇다고 여기에 직접

가이드북에서 읽은 배경 이야기들을 그대로 옮기는 건 의미없는 짓 같고, 그저 비주얼과 개인적인 이야기만

털어놓아도 보고 싶은 맘이 무럭무럭 동하지 않을까 기대해 볼 뿐. 사실은 여행 가기 전 열심히 관련 책도 읽고

힌두교 신화와 주인공들의 이야기에 대해서도 입에서 술술 나올 만큼 익숙하게 공부를 했었는데, 어느새 다

까먹어 버렸다.;

또다시 중앙성소 주변에서 발견한 '요니'. '반띠아이 쓰레이'는 시바신에게 바쳐진 힌두교 사원이라고 한다.

그래서 시바신을 형상화한 초기 형태랄 수 있는 남성 성기 모양의 '링가', 그리고 그것과 한짝인 '요니'가

곳곳에서 모셔지고 있는 거라고.

여기에 조금 남아있는 해자의 흔적. 원래는 해자 바깥 쪽으로 외벽이 하나 더 있었다고 하는데 거의 흔적이

사라져 버렸다. 해자너머로 보이는 반띠아이 쓰레이의 중앙사원과 그곳을 향한 통로들이 장난감같이 귀엽기도

하고, 테마파크처럼 아기자기하기도 하고.

너무 거리를 두었는지 사원의 디테일한 아름다움은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초록빛 정글과 대비되는 붉은 사암

재질의 벽돌들이 또다른 미감을 자극한다.

가루다(조류의 왕)도 보이고, 비슈누(코끼리)도 보이고, 말탄 시바도 보이고, 머리만 남고 자신의 몸을 모두

뜯어먹었다는 악마 칼라도 보이고. 아니 저토록 정교한 덩굴장식은 대체 어떻게 천년을 버티냐고.

연꽃밭 한 가운데 잘 꾸며진 화장실이 있다. 아마 캄보디아를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화장실이 아닐까 싶다.

아름다운 연꽃들. 여행객들의 영양분을 먹고 살아 더욱 아름다워졌으리라.

화장실에서 발견한 어이없는 그림 하나. 휴지걸이 옆에 붙은 그림이 뭔가 보고 실소(失笑)해 버렸다. 샤워하지

말랜다. 워낙 더운 나라, 더구나 반띠아이 쓰레이까지 왔을 여행객들이면 얼마나 꼬질꼬질 힘이 들었을까.

이런 어이없는 그림이지만, 오히려 이런 일이 얼마나 많이 생기길래 오죽하면 그러겠어 싶기도 하다.

캄보디아에서 봤던 개 중에 가장 활기차 보이던 개. (다른 개들과는 달리) 그래도 불볕더위가 내리쪼이는

시간대에 그늘에 숨어 퍼지지 않고 네 발로 당당히 버티고 서서는 화장실 다녀오는 사람들 냄새를 맡던 녀석은

꽤나 똘똘해 보였다.



시립미술관 가는 길은 늘 설렌다. 덕수궁 돌담길의 운치도 그렇지만 도심에서 한발 벗어난 곳의 고즈넉하고

적적한 분위기가 맘에 든다. 게다가 몇 시간꺼리 재미나게 놀 수 있는 소재들을 만나러 가는 거니까, 아마도

어렸을 때 큰 길건너 아파트촌에 있었던 '기린놀이터'로 달음질치던 기분이 이랬을 거다.

앤디 워홀. 대량 생산, 무한 복제의 시대에 걸맞는 '팝아트'를 창시한 예술가이면서 헐리웃과 세계의 '유명인사'

그 자체를 이미지로 소비해낸 자칭 '기술자'이기도 하다. 정치적 영향력, 역사적 중요성 따위와 관계없이 그저

사람들이 잘 알고 제혼자 친숙한, 그야말로 '쎌레브리티(Celebrity)'로서, 그는 마를린 먼로와 레닌, 마오쩌둥을

같은 반열 위에 놓고 작업을 하는 거다.

그의 숱한 '선정적'인 말들 중 이런 것도 있다. "미래에는 모두가 15분씩은 유명인이 되는 기회를 얻을 것"이라

했던가. 그의 작품들은 마치 익명의 일반인이 유명인이 되듯 하찮고 사소한 상품과 물건들에 초점을 맞춘 것이

꽤 많이 보인다. 너무도 흔한 세제 상자, 통조림스프 따위가 열맞춰 세워진 모습을 재구성한 작품들이 그렇다.


그가 창조해내는 세상은 모든 것이 이미지화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제통도, 재클린 케네디의 죽음도,

레닌과 마오의 이데올로기도, 교통사고와 심지어는 죽음조차 변주되는 해골의 이미지로 나타난다. 그는 왜

자신이 기계처럼 예술작업을 하고 싶다고 했을까. 뭔가 그림 뒤에서 심오한 의미를 찾고 온갖 기호를 암호처럼

배열하던 기왕의 미술과는 다르다는 뚜렷한 선긋기였는지도 모르겠다.

더이상 스스로를 근대적, 혹은 그 이전 시기 '예술가'라는 단어가 갖는 아우라로 포장하지 않고, 단순한 하나의

직업으로서의 예술가를 자처하고 자본주의 상업미술과 근대 미술과의 접점을 찾는 여정을 걸었달까. 그런

점에서 그의 세계는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탈근대의 미학과 미감들에 대한 하나의 클래식인지도 모른다.


다만, 솔직히 말하자면 탈근대, 포스트모더니즘의 '클래식'은 이제 조금은 유치하고 촌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아무리 앤디 워홀이 전례없는 예술 양식과 미감을 개척했다고는 해도 사실 워홀식의 작품들은 이미 무수한

발전 혹은 변화를 거쳐 사방에서 볼 수 있는 거다. 자본주의적 광고와 예술의 벽은 허물어진지 오래, 일상의

것들을 주목하고 새로운 문맥에 배치하는 시도 역시 그 자체만으로는 너무도 진부해진지 오래. 


게다가 재키-재클린 케네디-의 죽음이나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한 참사가 이미지로 어떻게 소비되고 소진되는

지에 대해서는 워홀보다 지금 시대의 사람들이 훨씬 익숙할 수 있는 거다. 물론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여전히

워홀의 참신하고 날카로운 시각이 필요하달 수도 있겠지만, 사람들이 익숙해진 만큼 다른 예술가들은 다시

꾸준히 낯설게 하기를 시도하고 있는 거다. 굳이 앤디 워홀의 문제의식으로 돌아가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앤디 워홀의 바나나 그림이 프린팅된 벽면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들. 그들이 찍고 있는 사진 한장한장,

그게 바로 앤디 워홀이 다양한 색감으로 표현한 마릴린 먼로라는 작품이고 네가지 색깔의 레닌 작품인 거다.

이미 이미지는 넘치는 데다가 심지어 유사한 곳에서 유사한 피사체-음식, 건물, 풍경 따위-가 쉼없이 복제되고

변주되고 있는 세상에서, 어쩌면 우리가 워홀을 관람해야 할 것이 아니라 그가 우리의 시대를 관람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는 자신의 작품 뒤를 보려 하지 말라고 했다. 거기엔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과연 그런지는 별개 문제지만

그는 자신과 자신의 작품이 '충분한 만큼 오랫동안 바라보아'지는 걸 두려워했나 보다. 충분한 만큼 오랫동안

바라보기. 이미지의 매트릭스를 깰 수 있는 건 역시 성찰의 힘이라는 이야기가 되는 건가, 모르겠다.

그의 작품 뒤로 걸어나오면서, 몇가지 그의 말들을 되씹어 봤다. 말장난같기도 하면서, 묘하게 여운이 있다.

* 사람들은 시간이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실제로 사람들은 그들 자신에 의해 변화한다.

* 인생은 그들 자신의 변화하는 모습을 되풀이하여 보여주는 시리즈의 연속물이다.

* 사람들은 점점 더 오래 살고 늘어가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오랫동안 아이로 살아갈 것인지 배워야 한다.

* 사람을 가장 흥분시키는 매력들은 결코 만날 수 없는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한다.

* 예술은 당신이 벗어날 수 있는 다른 세상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마지막 것, 미술관이나 전시관을 굳이 꾸역꾸역 찾아 돌아보는 이유기도 하다.

시립미술관 1층에서는 "조각적인 것에 대한 저항"전이 열리고 있었다. 다들 앤디 워홀전만 보고 여기를 지나쳐

가버리는 듯, 들어가니 관람객은 나 혼자 뿐이었다. 작품들을 보다 보면 불현듯 스스로 되묻게 된다. 근데 이거

조각전이었지? 조각은 뭐지? 하고.


커다란 덩어리 하나 혹은 여러개가 단단하고도 조용하게 지표 위에 버티고 있는 게 전통적 의미의 조각이라면

그 모든 것들 하나하나를 의문에 빠뜨린다. 덩어리가 아니거나, 단단하지 않은 액체/기체거나, 조용하지 않고

회전하거나 불규칙하게 움직이거나, 지표 위가 아니라 벽면이나 천장에 있거나. 형체가 하나로 고정되어 있지

않은 도발적이고 불안정해 보이는 것들, 그것들을 '조각'이라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시각이 아니라 청각과

촉각까지 끄집어내는 작품들이다.


개인적으로는 앤디 워홀전만큼 재미나게 관람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반짝거리는 아이디어들이 가득했던

전시 공간이었다. 앤디 워홀의 그것들이 조금은 더 '클래식'하고 '올드'해 보인 이유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시립미술관에서 돌아나오는 길, 아까는 참 앙상하고 못나보였던, 무슨 파리채마냥 똥그란 철사에 전선 그물망

얼기설기 엮인 듯 보였던 그곳에 불이 들어왔다.



(19금)이라 쓰고 어여들 와서 많이 봐라, 라고 읽는다.

뭔가 했다. 미성년자 관람불가라느니, 미성년자 휴게실을 별도로 설치 운영중이라느니 요란은 떨었지만 대체

한국에서 어떤 정도의 수위까지 가능할까 싶었다. 마침 데세랄을 지르고 처음 나간 출사, 그것도 야간 출사인

셈이어서 전시된 작품 하나하나 여러 차례 찍어가며 성능을 시험했다. 그다지 즐겼던 건 아니다.ㅋ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몇몇 장난스런 벽화가 나타나고는, 이런 수돗가가 나타났다. 불끈 힘을 쓰는 근육질의

남정네, 귀엽게 톡 배가 튀어나온 땅딸한 아저씨, 비쩍 골았지만 길이(응?)는 못지 않은 할아버지까지.

땅에는 관람 동선을 알리는 '버섯'이 큼지막하게 그려져있고, 하늘에는 남녀가 네발로 기고 있었다.

아저씨의 불룩한 바지, 그리고 불독의 뭉툭하고 불룩한 콧날. 방향이며 각도가 절묘하다. 제목은 사진상으로

잘 보이진 않지만 이름하야 "즐거운 산책".

농염한 여체였다. 색계에서 탕웨이가 보여주었던 동양적 육체미랄까, 늘씬하고 쭉쭉 시원하게 뻗어나간 느낌은

없지만 굉장히 탐스럽고 욕정적인. 하늘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엉덩이하며.

저 오늘 한가해요, I'm not busy. 라는 제목이었다. 아 그러신가요, 저는 앞으로 계속 한가해요, 라며

당장이라도 덤벼들 태세를 0.5초간 갖췄다가 움찔, 해제했다.

쟤들은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을 하며 즐기는 걸까, 아니면 땅에 거꾸로 처박혀서조차 탐닉하는 걸까.

발등을 묘하게 꺽어세운 거대한 다리 네개가 분수대 한가운데서 엉켰고, 내 머릿속에선 구지가와

처용가가 묘하게 얽혔다. 다리 둘은 내것이건만 나머지 둘은 누구것일꼬, 머리를 당장 내놓지 않으면

구워먹으리.

아, 작가의 센스작렬. 호미걸이랜다.
 
그나저나 이들의 불끈 달아오른 욕구와 애정을 표현하기에는 하반신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걸까.

행여 하반신만 잘라내 보여주는 건 이것이 '애정'이 아닌 '욕정', '육욕'에 가깝다는 함축은 아닐지.

인도의 경전 카마수트라. 만트라의 기원이 되었다던가, 얼추 알고 있기론 중국의 소녀경과 함께 성적 에너지의

활용을 통한 인간 정신의 고양, 궁극의 해탈을 꿈꾸었다던, 그렇지만 낮은 차원에서는 방중술의 묘법을

가르쳤다던 책이다.

신혼부부들이 많이 찾는 제주도인 거다. 저기에 서로 얼굴 집어넣고 행복한 결혼생활, 행복한 애정생활하며

백년해로하라는 뜻이겠거니, '건전'하게 발전적으로 생각키로 했다.

거시기, 그 뭣이냐, 할때의 거시기가 이 거시기인지는. 당근과 버섯, 로켓과 뱀대가리, 심지어는 부리까지

동원되었던 '이상한 나라의 응응응들'. 그러고 보면 내게 가장 인상깊었던 '거시기'의 묘사는 채털리부인의

사랑, 거기에 나오는 산지기의 아내가 가진 응응응을 묘사하던 장면이다. 새의 부리같았다던가.

오호......'비밀의 화원', '다복솔', '깊은 산속 옹달샘', '마르지 않는 샘', '지옥의 불구덩이'.

세상의 모든 은유는 어쩌면 하나로 통한다.

밑에는 연결된 크랭크가 있어서, 손잡이를 잡고 돌리면 위의 모빌이 움직인다. 덜커덕덜커덕, 덩기덕쿵더러러러

쿵기덕 쿵덕. 몇개의 모빌 연작이었는데 앞에는 저마다 다른 제목이, 혹은 설명서가 붙어있었다. '부드럽게

돌리시오', '유연하게 돌리시오'..뭐 그런 따위의 지침.

굉장히 맘에 들었던 구도였다. 제목은 천하장사. 무슨 쏘세지도 아니고..했다가, 아. 했다.

말뚝박기를 영어로 번역하자면 Horse Riding이랜다. 썩 와닿는 의역이다. 여성의 간절하면서도 섬세한

손놀림은 에로틱하고, 욱씬, 고개를 쳐든 그것은 굉장히 도도하고 원시적이다.

고개를 쳐든 이유? 고기가 물을 따르듯. 응응응은 응응응을 찾기 마련. 나비모양 문신의 탁월한 포지셔닝. 

왠지 구릿빛 재료가 그대로 그네들의 피부질감으로 살아난다. 바다의 왕 포세이돈이 바닷가 모래사장을

거닐던 처자를 납치했다더라, 하는 식의 이야기에 어울릴법하다 싶은 건, 이들을 떠받치는 욕정이란 이름의

해일 때문인 걸까. 그런 와중 일본의 촉수괴물이 나타나는 성인망가를 연상케 하는 해일의 미묘한 물결.

여성상위 시대. 유방의 옛 고사를 따르자면 저 다리 밑을 기어야 나중에 큰 인물이 될 거라능. 

거꾸로 여자를 메다꽂고는, 발사~* 갑니다 슝슝슝. 뱅글뱅글 돌아가는 유도미사일처럼 하염없이 지루한

동심원을 그리며 목표물을 향해 뻗어나가는 '가늘고 긴' 응응응.

공원은 꽤나 넓었다. 그리고 몇 개의 실내 전시관을 갖고 있었는데, 거의 성인용품점을 방불케 하는 수준의

화려한 데코와 구비용품들이 흥미로웠던 전시관이 하나-여기는 파리 몽마르뜨에서 구경했던 성인용품점보다

볼 게 많았다. [파리여행] 물랑루즈 거리의 홍등가.-있었고, 이곳은 나무를 깍아 만든 목공 조각들을 전시하는

곳이었다. 작품들은 뭐, 이미 수많은 남근석이니 남근목이니 그런 문화에 익숙하니만치 별다른 건 없었지만

가끔 재미난 것들도 있었다. 이 사진처럼 제목이 정말 운율감있게 딱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고.

이 작품처럼 뭔가 정말 진하게 와닿는 필을 던져주는 것도 있었다. 시작, 을 말할 때의 설레임과 일말의 망설임,

잘해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과 걱정, 혹은 격정적인 기대감 따위. 주위에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사람이

있다면 기꺼이 사서 선물하고 싶어지는 작품이랄까.(주위에 그런 사람이 없어서 하는 말이다.)

커다란 원을 그리며 조각공원을 한바퀴 돌아 나오는 길, 이번에는 '세차게 돌려주세요'라는 제목, 혹은 요청이

붙어있는 모빌 옆을 지나치게 되었다. 아, 하고 뭔가 깨닫고 말았다.

벤치조차 범상치 않은 그곳, 낮에 갔으면 꽤나 뻘쭘하거나 재미없었을 것 같다. 적당히 어둠이 배경을 지워주고

다른 사람의 이목을 가리워주는 시간에, 조금은 더 '몰래 보는 재미'가 커지는 밤에 가는 게 좋은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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