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날 추운 계절에도 타임스퀘어에 나와있을런지는 모르겠지만, 뉴욕 타임스퀘어에 다녀온 사람들은 모르는 이가 없을만큼

 

유명인사가 되어버린 '벌거벗은 카우보이', Naked cowboy. 남여를 불문하고 뭇 시선을 한눈에 받는 찰진 궁둥이.

 

 

기타를 설렁설렁 치며 노래를 부르다가도 사람들이 다가오면 포즈를 취해주고, 저렇게 같이 사진을 찍기도 하고.

 

 

 

요모조모 뜯어보면 다리도 제법 이쁜 편이고, 몸도 탄탄하니 좋다. 저러니까 벗고 다니지, 란 생각도 드는데.

 

 

어머니들이고 딸내미들이고 모두 활짝 웃으며 그와의 포즈에 동참.

 

그리고 한켠에선 웃통을 벗어제낀 아저씨의 온몸에다가 굵은 선으로 그림을 그려넣는 아저씨도 있었고.

 

 

스머프와 픽사 애니메이션 캐릭들이 실사화되어 난무하기도 했다.

 

 

뉴욕의 악명높은 경찰이 말을 타고 순시 중이기도 했고, 누군가는 프리허그 팻말을 들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고.

 

아무래도 키티는 실사화하면 좀, 머리가 너무 커서 어색하기 그지없다는 생각이 들고.

 

정말 미국적인 캐릭터가 성조기를 꿰매어 만든 듯한 옷을 입고 있는 쥐시키.

 

스폰지밥은 그냥 진짜 스폰지밥같이 생겼는데,

 

아무래도 키티는 이상하다.

 

 

그리고 이 사람도 참 끈질기게 보이는 사람, 2001년엔 자유의 여신상이 보이는 배터리파크에 이런 사람이 있었는데.

 

그런가 하면 인디언 추장같은 아저씨가 젖퉁을 드러낸 채 팅커벨이랑 이야기를 하고 계시기도 하고.

 

엘비스는 길을 무단횡단하는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꽥꽥 고함을 지르다가도 카메라 앞에선 급 방긋해주시는.

 

 

 


작은 아이디어 하나를 밀고 나가보려는 영화, 약간의 뒤집어보기로부터 이야기는 번져나간다.

그렇다. 춘향전의 주인공이었던 춘향과 몽룡에 쏟아지던 스포트라이트가 조금 심기에 불편했다면,

춘향전의 순순하고 아름다운 해피엔딩이 조금 순진하다 싶었다면, 춘향과 몽룡의 사랑이야기에

약간의 땀 냄새를 섞어주고 싶었다면 딱 생각해 볼만한 스토리 아닐까.


아쉽달까, 약간 뒤로 갈수록 다소 긴장감이 떨어지고 익히 알고 있는 '춘향전'으로 돌아오는 듯한

느낌이 짙어지는 건 사실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을 거다. 이야기 자체가 방자의 시각으로 시작해서

처음엔 굉장히 새롭고 참신한 내용이 짙게 드러나긴 하지만, 뒤로 갈수록 오리지널 버전의 이야기로

복귀해서 춘향-몽룡의 갈등선에 얹힐 수 밖에 없는 거니깐. 방자의 이야기만으로 계속 뻗어나가는 게

쉽지 않은 건 이런 식으로 비틀고 뒤를 비추는 이야기가 가진 한계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재미있다. 방자의 사랑과 질투, 춘향의 신분상승욕과 사랑, 그리고 몽룡의 또다른 사랑과

질투가 뒤섞이면서 훨씬 질펀하고 복잡하며 순수하지 않게 전개되는 사랑 이야기도 그렇거니와,

전라도 한량 '장판봉'의 전설같은 작업기술들도, 그리고 무엇보다 조여정의 몸이-혹은 가슴이-

굉장히 눈과 귀를 모으던 요소들이었다. 개봉 당시 야하네 가슴이 얼마나 크네 등등 이야기가

나왔던 게 조금은 이해할 만하다 싶기도 하고. (나야 '색계'가 야하고 안 야하고의 기준이지만)


조금 뒤집어 이야기하자면, '여자의 마음을 먼저 얻어야 사랑에 성공할 수 있다'느니 '여자의 마음을

이해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식의 장판봉 레퍼토리는 결국 여자의 몸과 마음을 얻기 위한 술책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게 이 영화의 한계랄까, 춘향전의 빈틈을 잘 버혀내어 숨겨진 이야기를

해보려던 영화의 의도 역시 어쩌면 또다른 남자인 '방자'의 시각에 치우치면서 강조된 것은 춘향의

벗은 몸과 섹스. 그렇게 결국 춘향은 아리땁고 당당한 여자 정도로만 묘사되고 만 건 아닌지 싶기도 하다.

조여정의 연기나 춘향의 캐릭터를 이야기하기엔 너무 평면적으로만, 혹은 방자와 몽룡 간에 경쟁하는

목표대상으로만 드러난 거 같아서 하는 이야기다.


영화를 보고 나서 사흘이 지났더니 조여정의 벗은 몸 정도만 기억에 남은 상태, 그렇게 쓰는 리뷰.




#1. 포지티브 Ver. : '빽투더퓨처'

점점 시야가 좁아들어지더니 어느 시점에서 점 하나, 그 점조차 팟 꺼져 버리는 시점이 분명

있었을 거다. 언제가 되었건, 누군가 그런 미래를 바로잡고 나를 돕고자 2010년으로 되돌아와

알게 모르게 암시를 계속 내렸던 건 아닐까. 어떤 이유로든 안과에 나를 데려다 앉혀놓으면

나머지는 의사가 알아서 하리라고 생각한 건지도 모른다. 덕분에, 아주아주 초기에서부터

발견해 내어 잘 관리할 수 있게 된 셈이니 미래는 바뀌었다.



#2. 네가티브 Ver. : '안경탈출 대작전 대실패'

국민학교 1학년 때니까 어느새 20년도 넘었다. 첨엔 물색없이 '박사님'처럼 보인다는 말에

기뻐했던 꼬마녀석이 이젠 겨울철에 더운 방안에 들어오면 훅 끼쳐오는 안개를 불편해하고

점점 두꺼워진 안경알에 얼굴선이 왜곡되는 걸 신경쓴지 오래인 시간. 문득 마음을 먹었고

이십여년 만에 안경으로부터 탈출하나 싶었더니 보기 좋게 좌초하고 말았다. 무엇보다 맘에

들지 않는 건, 이제 평생 관리해야 할 만성질병 한두개쯤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가

되었다는 건가 싶은 막막한 피로감.



#3. Fact 1. (압구정 Y안과, 강남 S안과)

시력교정 수술에는 라식, 마이크로라식, 무통라섹, M-무통라섹, ICL(렌즈삽입술) 등이 있으며,

고도근시의 경우 대개 M-무통라섹을 통해 각막두께를 약 50마이크로미터쯤 상실하는 것으로

교정 시력에 근사한 시력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수술 후 3일 정도 어두운 동굴에서 쑥과 마늘을

먹으며 버텨야 눈에서 피눈물이 멈춘다고 하는 속설이 있으나, 직접 체험하기 직전에 수술이

취소되어 검증할 방법이 없어지고 말았다.



#4. 시니컬 Ver. : '빼도박도 못하는 서른 인증'

A: 녹내장? 치료받으면 나아?

B: 아니, 리미트엔이 무한대로 갈 때 실명. 낫진 않고 평생 관리. 고혈압같은 거래.

A: 내 통풍이랑 비슷한 건가. 아님 무좀이라거나.

B: 글치.

A: 자넨 안경 쓰는 게 그나마 지적으로 보인다구.

B: 이제 무좀이니 통풍이니 뭐니 고질병 한두개쯤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B: 슬슬 고장나기 시작하는 나이란 게 맘에 걸리고,
B: 그리고 안경이 다시 얼굴에 찰싹 들러붙었단 것도 꿀꿀해.

A: 하긴, 벌써 서른을 넘었으니. 어째 우울한데.

B: 그러고 보니 이제 빠른 생일이네 만나이네 어쩌네 빼도박도 못하고 서른의 영역이야.



#5. Fact 2. (강남 S종합병원)

녹내장이란 안압상승 및 다른 여러 가지 위험요인으로 초래된 진행성의 시신경 손상과

이에 따른 특징적인 시야장애를 보이는 질환을 총칭하여 이르는 말이다..가장 큰 위험인자는

나이와 안압이며, 근시, 당뇨병, 편두통, 고혈압, 저혈압 등이 있을 때 더 잘 발생한다. 가족 중

녹내장 환자가 있을 경우 발생률이 높아진다고 알려져 있다..환자 자신이 자각할 수 있는 증상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겉으로는 정상처럼 보이므로 조기에 발견하여 적절한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이미 손상된 시신경은 회복시킬 수 없기 때문에, 조기에 발견하여 진행을 억제하는

것이 최선의 치료이다.



#6. 시니컬 Ver.2 : 짝부랄아외로워가 쓴 밤일과 녹내장의 상관관계에 대한 논문

B: 육체의 내구연한이 다 되어가나 봐.

A: 밤일 좀 줄이시죠.

B: 밤일 이지랄ㅋㅋㅋ 씨발로마ㅋㅋㅋㅋㅋㅋ

A: 밤일과 녹내장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논문있던데. 이미 입증된 거임.

B: 아 그래?ㅋㅋㅋㅋ 하지 말라던?ㅋㅋㅋㅋ

A: 남아공 붕가붕가유니버시티에 짝부랄아외로워씨가 쓴 논문

B: 그리곤 제적당해 니미씨부럴털털카를 몰고 기둥서방노릇하며 나쁜 남자노릇한다는 그 아저씨 말이지?

A: ㅋㅋㅋㅋㅋㅋㅋㅋㅋ



#7. Quotation.


모든 것들에는 유통기한이 적혀 있다.

내 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면 만년으로 하고 싶다.

<중경삼림>



모든 것들에는 유통기한이 적혀 있다.

내 육체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면 만년까진 바라지도 않으니,

백년만이라도 무탈하게 아무 말썽없이 굴려먹을 수 있기를.





#8. 남은 것.

라섹하고 피눈물을 흘리며 삼일 정도 장님놀이하려고 냈던 휴가가 휑하니 비어버렸다.

지방에나 한바퀴 빙 둘러보고 친구들 만나고 올까 생각 중이다. 아침마다 낯선 잠자리에서

일어나 제일 먼저 안경을 더듬더듬 찾겠지. 씁쓸하다.






경마장 가는 길, 기도문을 바치다.

에서 기도문을 바친 효험이 있었던 건지, 과천 경마공원에서 경마 세 게임에 만원을 베팅하고 나선 깨달은 바가

있었다. 아, 여기가 바로 '내집마련'의 꿈을 이뤄줄 곳이로구나.ㅋ

삼천원이 (구만원이 되려다가) 만이천팔백원이 되고, 이천원이 삼천이백원이 되고, 그리고 (약간 삐끗해서)

오천원이 사천오백원이 되는 곳. 게임비 낸다고 치고 몇시간 재미있게 노는 것도 좋았지만, 그보다 더 좋았던 건

사실 말들을 잔뜩 볼 수 있었다는 것. 정확히 말하자면 꿈틀꿈틀 굵게 일렁이는 말근육들을 보는 재미랄까.

고등학교 일학년때 학교 바로 옆에 있는 올림픽공원으로 소풍갔다가, 도망나와선 무려 네 명의 친구들과 함께

비디오방에서 봤던 게 '옥보단'이었다. 좁은 비디오방에 바글대며 앉아서는 옥보단을 보고 있던 상황도 꽤나

기억에 오래 남았지만 역시 '옥보단'이라고 하면 말의 근육이 인상에 꽂히는 작품.

경주가 시작되기 삼십분쯤 전에 1000미터짜리 트랙 옆의 조그마한 트랙을 빙빙 돌며 사람들에게 말을 보여주는

시간, 정보지를 손에 쥔 아저씨들이 날카롭게 말을 살피고 전광판을 살피며 뭔가를 적기도 하고, 계산을 하기도

하고. 내 나름으로 나도 열심히 살폈던 건, 말들의 걸음걸이가 경쾌한지, 신경이 곤두서거나 겁먹어 보이진

않는지, 그리고 역시 '말근육'이 쩍쩍 갈라져 있는지.

이 녀석은 긴장한 탓인지 자꾸 트랙을 벗어나려 하더니, 급기야 앞발을 쳐들고 진저리를 친다. 무슨 사고라도

나는 건 아닌가 싶어 잠시 긴장했지만, 침착한 인도자의 토닥거림으로 이내 차분해졌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말근육의 향연. 군살 하나없이 날렵하면서도 딱딱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냥 에너지덩어리가 

꿈틀꿈틀대며 말의 형체를 빚어낸 건 아닌가 싶도록 아름다운 몸이다.

이 녀석은 경주에 나서기 전부터 벌써 땀이 번질번질, 바싹 땡겨진 근육들이 범상치 않았다. 스타카토로 톡톡

튕기듯 하는 걸음걸이도 그렇고 온몸에서 뿜어내는 기운도 그렇고. 이 녀석이 일등한다는 데 걸었으면 무려

구십배의 배당을 받았을 텐데, 소심하게시리 삼등 내에 들 거라는 데 걸어서 열두배밖에 안 되었다는 슬픈

이야기.

요새 재미있게 보았던 미드 '스파르타쿠스', 그야말로 말근육을 가진 로마시대 검투사들의 피와 살이 사방에

흩뿌려지는 하드코어한 이야기지만 적어도 근육에 있어선 이 말들보다 못한 거 같다. 팽팽하게 긴장감을

머금은 채 사방으로 갈라지며 부들부들 떨리는 저 근육들.

말들이 조그마한 트랙 위를 몇 바퀴 도는 새 전광판에서는 전국 각지에서 이번 게임에 걸린 판돈이 무려 이십억을

넘어가고 있었다. 제각기의 말들에 걸린 배당률도 돈이 쌓이면서 시시각각 변해가고 있었고, 아무래도 강력한

우승 후보일수록 배당률이 낮은 건 당연한 이치. 증권 시장이랑 비슷한 거 같기도 하고.


어쨌든 이런 식으로 돈 놓고 돈 먹기의 판에서는, 무엇보다 돈 앞에서 마음을 다스리는 게 가장 중요한 거 같다.

적당히 포트폴리오를 짜서 손실을 통제하는 가운데 전략적으로 승부를 칠 줄 아는 감을 가다듬는 건 그 다음.

그러고 보니 정말 8번 말의 사진을 많이 찍긴 했다. 어쩌면 난 말을 알아보는 천부적인 눈을 가진 건지도

모르겠다는.ㅋ '경마가 가장 쉬웠어요' 한권 쓸까부다.;

마지막 바퀴는 기수가 말을 타고 돌았다. 경마에서 이기려면 아무래도 체구가 작고 가벼워야 한다더니 정말,

저 강인하고 아름다운 말 위에 기수가 살짝 얹힌 느낌이다. 전혀 무거워하지도 않을 거 같고, 오히려 에너지

충만한 저 말들이 방방 날아가지 못하도록 슬쩍 자그맣고 가벼운 돌멩이로 눌러둔 거 같달까.

경기가 시작되기 직전. 트랙을 정돈하는 차들이 지나가고, 전광판에서 차츰 줄어들던 마권 구매가능 시간이

종료되었다. 그리고 저 멀리서부터 두두두두, 말들이 내달리며 일으키는 흙먼지와 응원소리가 점점 다가오기

시작했다. 천 미터라고 해서 너무 짧은 건 아닌가 했는데, 의외로 엎치락 뒤치락 거푸 순위가 바뀐다. 심장이

쿵쾅쿵쾅 두근대면서 옆사람의 흥분과 고함소리에 전염되더니 눈앞을 쌩하니 지나가는 말들을 따라 시선이

먼저 올라가고, 그다음 양손이 번쩍 올라갔다. 일등이다!

안으로 들어가서 마권을 돈으로 바꾸고,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며 다시 마권 구매표를 한 장 뽑았다. 컴퓨터용

사인펜으로 구매표에 표기를 해서 카운터로 가져가면, 이번 경기에서도 마권을 다시 돈으로 바꿀 수 있을까.

이거 크게 욕심만 안 내고 잘만 하면 야금야금 돈 벌 수 있겠는데. 


경마장 바닥엔 휴지처럼 쓸모없어진 마권이 잔뜩 널부러져 있었다. 토요일이 지난 로또처럼.

그러고 보니 맘의 여유만 있다면, 경마장에서도 가을을 느끼기란 어렵지 않았던 하루.



별 생각없이 빌려든 디비디, 저번 여름 시사회에 당첨되고도 못 갔던 영화였던지라 왠지 묵은 숙제를 해낸다는

기분으로 보게 되었댔다. 사실 별 거 없을 거 같은 영화, 그저 그런 로맨틱 코미디겠지 싶었다.


"키스를 못하면 그게 안되잖아. 애피타이져와 메인요리같은 거지."

몰입하게 된 계기는 간단했다. 키스는 섹스를 부르는 마법의 언어, 키스없는 섹스란 상상할 수 없다는 남자의

말 한마디. 느슨한 눈빛을 풀어놓고 느슨하게 보던 영화에 바싹 기대어 행간을 읽어보려 애쓰게 되고 말았다.

'그것'이 말하는 바는 사실 단순한 섹스를 이르는 건 아니다. 세상의 남자를 두 종류로 가르라면, 사랑 없는

섹스가 불가능한 사람과 사랑 없는 섹스가 가능한 사람, 이렇게 가를 수 있지 않을까. 몸과 마음이 함께 갈 수

있을지 없을지,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리고 그는 전자였다.


연애가 어느 시점에 다다르면 여자는 남자에게 묻는다. 자긴 내 몸이 좋은 거야 아님 내가 좋은 거야. 나와

하는 게 좋은 거야 아님 그저 함께 있어도 좋은 거야. 몸과 마음, 욕망과 마음을 구분지으며 자신에 대한

순도 백퍼센트의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하기 쉽다. 영화에선 다행히도 남자와 여자는 그런 경계를 일찍이

뛰어넘는 것처럼 보인다, 현실에서도 그럴 수 있을까 싶도록. "뾰루지 퇴치용으로 여자를 만나는 건 싫어."


대신 그들이 봉착하는 혼란스러움은 조금은 조잡스러운 거다. 남자는 여자친구가 있고 여자는 이미 결혼한

몸, 법률적 '주인'-부부는 서로가 서로의 몸에 대한 주인이란 의미에서-이 있는 거다. 키스로 시작된 그들의

일렁이는 감정에 무엇이라 이름붙일지 몰라 서로를 시험에 들게 하고 다시금 맛보고 괴롭히는 모습은, 마치

질풍노도 십대의 그것과 같다. 키스로 불붙은 서로의 몸을 두고 이게 순수한 감정일까 아니면 잠시 환각에

취한 걸까 갈피를 못 잡는 모습이다.


"지루한 일상을 탈피하고픈 욕망이 만든 일탈일까. 사랑이 아니라 속궁합만 잘 맞나? 난 남들보다 나약해서
이유없이 흔들리는 건가? 난 너무 이기적이어서 내 생각만 하는 건가? 달랑 키스에 애무 갖고 인생을 뒤집어
엎을 수 있나?"

어휘는 다를지언정 그들이 겪는 혼란스러움은 어쩌면 다시, 처음이다. "난 지금 그의 몸이 좋은 걸까 마음이

좋은 걸까. 그와의 키스가 좋은 걸까 아니면 사랑하고 있는 걸까." 차마 사랑이라는 단어를 유부녀의 입과

여친 있는 남자의 입에서 다른 사람을 향해 뱉어내기 힘들어서일 뿐, 그녀 역시 몸과 마음의 이분법적 사고에

빠져들고 말았다. 남자는 끊임없이 설득하려 하고, 우정도 사랑의 일종이며, 함께 있으면 즐겁고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그런 끌림이 바로 사랑이라고 되풀이 말하지만 그다지, 효과는 없어 보인다.


여기서 싸우게 될 상대는 두 가지다. 일부일처제라는 혼인제도, 그리고 지금의 남편/혹은 여친. 싸울 맘이 

용케도 생겨서 싸워야 한다면 상대가 그렇단 얘기다. 영화는 혼인제도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 대신, 멋지게

이별하는 방법에 대해서 약간의 힌트를 남긴다. 그건 다시금 사랑할 수 있게 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이기도

하니, 제도적 측면을 우회하여 '사랑'을 끈질기게 추구하는 사람에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우리 이쯤에서..헤어지자. 자기 잘못 아냐. 자기 탓 안해, 탓은커녕 자긴 부족한 게 없어. 근데 내 사랑이 부족한
거 같아...더 노력해볼걸 하는 아쉬움은 남아. 요즘 내가 많이 소홀했지? 안됐지만 진정한 사랑을 만났어.
헤어지게 되서 맘이 안 좋다.." 운운.


글쎄. 새로운 사랑들에겐 과거를 닫아버리는 불쾌하지만 건설적인 '통과의례'라 해도, 남는 사람에겐 분명

치졸하고 열불 뻗치는 변명이다. 그의 여친처럼 "서툴러서 그런건데 뭐. 서툴다고 뭐랄 순 없지."라고 쿨하게

넘어갈 수 있으려면 그야말로 운명론자쯤이나 되야 하지 않을까. 그래도 둘만의-셋 이상의 사랑도 있을 수

있겠지만-사랑을 위해 상처받은 이들에게 용서를 구해야 한다면, 그런 걸 구할 수 있는 절대자가 있다면

말이지만, "그(전 남편)가 불행하면 나도 불행할 거 같애"라는 여자의 말에서 그녀가 짊어질 짐을 헤아릴 수

있으리라.


이야기의 화자는 그녀 자신이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는 마지막을 가까스로 봉합한다. "미련은...좋은 추억으로

남았으면 해요. 애써 알려고도 만나려고도 하지 말아요. 그냥 키스가 끝나면 떠나요. 말없이, 눈길도 주지 말고

어떤 표정도 짓지 말아요. 여운은 가슴속에 추억으로 담아두기로 해요."
키스를 마친 후 몸과 마음의 반응을

정지시켜 버린 그녀, 그렇담 그녀는 사랑한 걸까 아닌 걸까. 키스는 몸이 반응한 걸까 마음이 반응한 걸까.

어쩌면 키스는 몸과 마음이 모두 담긴, 그래서 역시나 소크라테스 말마따나 '가장 힘센 도둑'인지도 모른다.


키스를 못하면 그게 안 된다. 키스란 건 마음을 말하기도, 몸을 말하기도 한다. 마음이 안 땡기면, 몸이 안 땡기면

섹스가 안 된단 이야기. 첫번째는 (남자를 좀더 믿어도 된단 의미에서) 의미심장하고, 두번째는 뻔한 이야기.


"키스는 나누기 전엔 가벼울지 무거울지 아무도 몰라요."


 



 

#1.

지난 토, 일요일은 충북으로 1박2일 여행을 다녀왔다. 말도 안 되지만 무슨 '파워블로거'와 함께 한다는

충북도청 주최 팸투어에 낄 수 있었고, 여행이란 소재로 다들 한 가닥씩 하신다는 쟁쟁한 블로거들과 함께

충북의 이곳저곳을 돌아보는 기회였던 게다. 재미도 있었고, 새로운 사람들도 만날 수 있었고, 블로그에

있어서도 뭔가 시야를 넓힐 계기도 되었고. 무엇보다 갓 봄이 다가오는 시골길을 쏘다닐 수 있었다는 사실에

마냥 좋았던 1박2일이었다.


#2.

마음이 아무리 사방으로 쏘다녀도 몸은 솔직하다. 당장 몸이 나른하게 처져 있거나, 전혀 자극에 반응하지

않는 경우라면 머릿속에 아무리 오만 상상과 욕심이 꿈틀거려도 전부 부질없는 거다. 예전엔 사실 인간은

동물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었다. 혹은 몸은 단순히 마음이 타고 다니는 일종의 탈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런 게 아녔다. 몸이 내키지 않으면 마음이 아무리 재우쳐 봐야

꼼짝도 않는 거다. 몸은, 마음보다 순결하다. 멍충이.


#4.

종로 바닥에서 술을 잔뜩 마시고 돌아왔다. 얼마전 '반폭'이라며 소주반/맥주반의 술잔을 돌리며 쉼없이

들이키던 술자리, 혹은 밉상 고참이 낀 회사에서의 술자리같은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유쾌한 자리였다.

대학에 들어간지 어느새 십년이 넘어버린 채 같이 늙어가는 처지라며 서로 엉덩이도 툭툭 쳐주고

육두문자도 남발하는 그런 자리였어서 더욱 즐거웠는지도. 하갸 언제는 안 그랬냐만서두.


#5.

커다란 T/F에 포함되어 일할 뻔 했다. 지난 1월의 출장 이후 연이은 행사 쓰나미가 지날 만 하니 거푸 바닷속

깊이 잠수를 빙자해 꼴깍꼴깍 사경을 헤맬 뻔 했던 거다. 다행인지 무사히 지나쳐갔고, 이제 다시금 예측가능한

세상에서 예측가능한 시간표를 살아갈 수 있게 된 거 같다. 무언가 굉장굉장히 정신없이 지나버린 1, 2월.

다시 정신 좀 차리고 살아야겠다고 새삼스런 다짐 한 번. 당장 내일부터 출근은 자전거로 해볼까나.




'색계'에서 나왔던 양조위의 쓸쓸한 엉덩이, '베티블루'에서 나왔던 그녀의 치명적인 목선.

말이 아니라, 눈빛이 아니라, 몸의 실루엣과 살풋한 움직임만으로 자신의 감정을 뿜어낼 수 있다는 건 종종 대단한

능력으로 찬사받곤 한다. 그들에게는 연기가 무르익었다느니..등골이 오싹했다느니..등의 상찬이 주어진다.


딱 버티고 선 두 다리의 폼새가 예사롭지 않다. 자신의 농장에 울타리를 두르는 심정으로 지면을 딛고 선 두 다리와

그것들이 버텨내는 지상의 몸뚱이를 위한 공간을 확보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노골적이다.


손에 쥔 가방이나 신문뭉치는 종종 상대를 제압하는 효과적인 무기로 기능한다. 옆구리에 박히는 가방 모서리의

선뜻한 느낌은, 이것이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상대를 패퇴시키고 자신의 공간을 지키거나 혹은 넓히겠다는 집요한

경고로 읽히곤 한다. 가끔 신문뭉치를 쥔 손으로 머리를 매만지는 척하며 근접해온 상대의 목덜미나 안경, 혹은

얼굴을 가격한 후에는 뻘쭘한 민망함조차 사치라는 양, 모른 척 시치미로 일관하기도 한다.


그들의 어깨는 두 개의 뿔처럼 기능한다. 좌우로 휘저으며 사람들을 밀쳐낸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공간을 베어

들어가는 능력을 갖췄달까. 그냥 어깨일 뿐인데, 어깨가 내 어깨나 가슴 어간을 무지근하게 압박해왔을 뿐인데

기분이 확 상한다. 때론 큰소리로 으르렁대며 협박하는 어깨를 만나기도 하는데, 그럴 때는 정말 불끈 달아오르며

나 역시 어깨에 감정을 싣게 된다. 그에 또다시 예민하게 반응하는 상대의 어깨.


마치 소싸움하듯 그렇게 어깨를 겨누고 상대의 빈틈을 노리고 있다. 지하철이 덜컹, 하는 그 순간을 잘 잡아채면

아닌 척 꼬투리 안 잡히고도 한번쯤 세게 질러줄 수 있겠다 싶어서. 지하철 문이 여닫히는 순간의 혼란을 잘

이용하면 누가 했는지 모르게 한번쯤 세게 쥐어박아줄 수 있겠다 싶어서.


눈은 절대로 마주치지 말 것. 눈이 마주치는 순간 싸움으로 번질 게다 아마.



* 얼마전 아침엔..마치 바다에서 막 걸어나온 인어아가씨인 양, 긴 머리에서 물방울이 뚝뚝뚝뚝 쉴 새없이

떨어지는 아가씨 뒷통수에다 30분동안 코박고 서있어야 했다. 퇴근하고 싶은 맘 뿐이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