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에 나온 영화, 그 즈음 언젠가 대학 근처 '비디오방'에서 봤던 영화다. 새삼 영화 내용을

되짚기도 애매한 시간이 흐른 지금 다시 본 그 영화는, 그 때와는 많이 다른 느낌을 전했던 거다.

굳이 이렇게 글을 남겨 영화를 기억하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학에 갓 들어간 그녀가 도쿄로 떠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집과 고향을 떠나 차창 밖 햇살조차

덜컹이는 기차를 타고, 그녀의 마음은 알 수 없는 미래와 터무니없는 공백으로 가득한 가능성으로

뛰놀았을 거다. 뭐가 기다리고 있을지, 무엇을 하게 될지, 어떤 삶이 펼쳐질지. 


대학교라는 공간은 그랬다. 이곳저곳에서 선배들의 뜨거운 공연이나 거침없는 움직임이 있었고,

무엇을 배울지 어떻게 시간을 쓸지, 그 모든 것들이 스스로에 맡겨져서 그녀처럼 나 역시도 처음엔

살짝 당황하기도 하고 여기저기 뜬금없이 기웃거려보기도 하고. 아무래도 좋아, 라고 생각했다.


정말, 아무래도 좋은 때였고 아무래도 좋은 곳이었다. 그 낯선 공간과 사람들이 낯익어지면서 점점

사그라들고 말았지만, 마치 낮과 밤 사이의 그 퍼런 빛을 사방에 머금는 몽환적인 시간대에 그렇듯

묘하게 들떠 있는 기분은 잊을 수가 없는 거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뚜렷해지고, 점점 그리워지는

그런 느낌. 뭔가 완전히 새롭게 시작하고, 전혀 알 수 없는 삶으로 나를 흘려보내는 그런.


그녀의 사랑은 그런 순간의 정서를 하나로 모아내는 그런 거였다. 새롭고 낯선 삶으로 흘러온지

한달쯤 지난, 4월의 어느날에나 일어날법한 사랑 이야기. 전혀 앞을 내다볼 수 없고 어떻게 해야할지

하나도 모르겠는 그런 상황에서, 문득 쏟아내리는 소낙비처럼 한순간의 격동을 따라 마음을 전하고

전해받는 그런 사랑. 앞으로의 진부한 전개 따위가 아니라 그 순간으로 아름다운 사랑.


이전에 봤을 때에 비해 강렬하게 와닿던 것들은 그런 거였다. 한순간, 그 자체로 아름다운 삶과 사랑.

더이상 뭘 더할 것도 없이 하루하루 살아있는 자체로, 살아서 느끼던 그 자체로 아름답던 시절이

있었노라고. 다소간의 회고체, 약간의 '노화 자각' 증상이 보태어진 그시절의 재구성이겠지만,

모든 게 마냥 설레고 들뜨기만 하던 그런 때가 있었고, 지나버렸다는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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