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빛 부서지는 도끼질의 향연

영화는 굉장히 세다. 감독의 전작 '추격자'에서 송곳에 찔릴듯 말듯한 아슬아슬한 장면이 허리춤서

발끝까지 저릿저릿하게 만들었다면, '황해'에서는 거침없이 후비고 들어간다. 식칼이던 도끼던,

심지어는 족발 뼈다귀로 사람을 쑤시고 갈기는 장면들은 굉장히 리얼하고 잔혹하다. '스파르타쿠스'와

같은 화려하고 아름답게 꾸며진 핏밫 영상이 아니라 그냥 정말 사람을 때려죽임 저렇게 죽겠구나,

저렇게 피가 쿨럭쿨럭 솟아나와 끈적하게 흐르고는 뚜욱 뚝 떨어지겠구나, 싶은 거다.


사람들을 움직이는 건, 사랑.

한 사람을 노리는 두 무리의 집단이 있고, 각각의 필연적인 이유가 있다. 누군가는 아내를 구해오고

복수하려는 양가감정으로, 누구는 자신의 '애인'과 바람난 '형님'에 대한 복수심과 질투심으로, 누구는

새로운 사랑을 위한 '옛사랑'의 종말을 고하려는 의지와 사랑의 힘으로. 연변에서 택시기사를 하던

구남(하정우)이가 사람을 죽이기로 하고 한국에 들어오는 순간 발동되는 톱니바퀴는 두 집단의 움직임

속에서 더욱더 복잡하게 얽혀 들어가 그를 빼도박도 못하는 상황으로 옭아매고 만다.
 

다른 무리들도 마찬가지, 예상치 못하게 중첩된 살의(殺意) 속에서 난마처럼 얽혀가며 서로를 도륙해

나간다. 그 무참하고 거침없는 살육전에 몰입할 수 있는 건, 그들이 그렇게 움직일 수 밖에 없었다는 걸

납득했고 이해했기 때문일 거다. 모든 살인과 폭력의 이면에는 명확한 대상을 향한 분노와 복수심이

자리잡고 있었고, 그 이후에도 점차 들불처럼 번져만 가는 상황을 통제하고 마무리짓기 위한

헛되지만 의미있는 폭력이 이어졌달까. 처절하고 잔인한 도끼질의 향연을 눈크게 뜨고 지켜봐야 했다.


단 한 명 유일하게 돈을 좇아 움직이는 인물, 개장수

다른 메인 캐릭터들은 어쨌거나 '사랑', 혹은 사랑에서 파생된 감정찌꺼기들로 채찍질당하며 칼질하고

도끼질을 한다지만, 단 한명 유일하게 초연한 자세로 사람들을 꼬챙이로 꿰는 사람이 있다. 개장수(김윤석).

그는 여러모로 흥미로운 인물이다. 굉장히 심플하고, 또 굉장히 단호하면서 냉정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를 움직이는 동력은 오로지 돈, 그리고 그의 행동은 깔끔한 금전관계의 그것처럼 명료하고 깨끗한

느낌마저 드는 거다. 그런 단순한 사고회로, 행동패턴을 따라간 그의 길 끝에는..


구남은 위로받았을까.

피가 철철 흘러넘치는 영화가 얼마나한 빛을 보여주랴만은, 영화는 비극이다. 모두가 상처투성이가 되어

사랑을 잃고 우정을 잃고 돈을 잃은 셈이다. 그래도 하나, 조그마한 빛망울은 남는 것 같다면 너무 자의적인

기대일까. 구남(하정우)이 그의 아내를 그려보는 환상이 시시각각 변해가는 모습에서 그런 위로의 단편을

발견한 건 나만은 아닐거라고 생각한다.


애초 다른 남자를 올라타고 한껏 즐기던 아내의 환상은, 정작 조선족이 고단한 삶을 이어가는 한국의 현실을

보면서 다른 환상으로 대체된다. 이제는 이곳에서 의탁한 남자에게 얻어맞고 쫓겨나는 그런 환상(상당부분

현실과 맞닿아있던)으로 괴로워하던 구남이 마지막으로 봤던 건, 세련되게 차려입고 연변의 기차역으로,

자신과 아이에게 돌아온 아내의 모습. 구남은 위로받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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