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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 사진폴더에 지저분한 사진들을 정리하다가 몇 장 선별해서 올렸던 포스팅들에 이어.

 

 

잡다구레한 사진들이지만 나름 하루하루 일상을 짚어나가고 있어서 재미있는 듯.

 

어느 고등학교였더라, 무슨 자격증 시험감독으로 나갔을 때 교실 형광등스위치에서 발견한 낙서. 딱 남고 수준.

 

또다른 학교의 또다른 자격증 시험감독이었던가, 고루하게 나가던 교훈에 급 '훈훈한 우리'라니. 훈훈한 교훈.

 

추석 때, 초등학교 다니는 조카가 가져왔던 문제집 푸는 걸 도와주다 만난 문제. 담배피는 그림이라고 했었다, 이녀석.

 

무역의 날 행사, 이제 그만 좀 보고 싶은 그 사람.

 

뭔가 기분이 아주 더러웠던 날, 어느 술집에 장식되어 있던 성생활 교과서.

 

이런 기사는 기억해둘만하지 않을까, 싶어서 제목만 덜렁 뜬 연합의 속보를 캡쳐.

 

매달 나가진 못하지만, 영유아 보호센터에서의 봉사활동. 색색의 형광펜이 그참. 

 

유난히도 길고 추웠던 이번 겨울, 동면에 들어간 오토바이는 그래도 이삼일에 한번씩 시동을 걸어줬었다.

 

뭔가 삶에 흔들림없는 '영구 지침'이 생긴 건 아닐까, 설레던 맘 가득하던 그 때.

 

강릉 경포 앞바다를 보겠다고 무작정 떠났던 그 겨울, 그 바다. 그리고 만화책 한 컷.

 

 

오물렛? 오믈렛 아니고? 오물오물 오물렛.

 

선유도 공원의 어느 벤치에 누워서 누군가에게 하늘을 보여주고 싶다 생각했었다.

 

겨울, 봄, 그리고 여름이 곧 올테고 그러고 나면 가을. 사계절이 한번 도는 셈이다.

 

부모님이 최초의 커플폰이자 스마트폰으로 프라다폰을 들여놓으셨던 날.

 

속초의 갯배를 타러 걷다가 발견했던, 암수 서로 정다운 저 복어 두마리.

 

유난히 과시성 국제행사가 많던 시절, 핵안보정상회의 때 받아들었던 비표.

 

어느 금요일 오후, 겨울비가 주룩대며 낙하하던 비사이로 막 내달리며 7시간짜리 마라톤 워크샵을 하러 가던 날.

 

새롭게 시작하는, 이전부터 생각은 있었던 그림 그리기. 팔레트에 물감을 짤 때의 느낌이란.

 

서울과 울산을 당일로 주파하는 코스란 생각보다 녹록치는 않았지만.

 

만수무강을 위해 오토바이를 팔고 나니 자전거를 사야 하나, 볕좋고 바람좋은 날씨에 싱숭생숭.

 

일단은 걷고 있다. 족저근만염을 막기 위해 출퇴근은 정장에 트레킹화로 대체.

 

다시 찾았던 강릉.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흰색과 검은색의 모노톤으로 채색은 끝.

 

문득 시선을 잡아당겼던 작품 하나를 다짜고짜 폰카로 찍어서 저장.

 

올해 건강검진은, 사람을 물총새로 변신시키는 대장내시경을 처음으로 포함시켜보았다.

 

그야말로 5월의 햇살. 눈 깜짝하니 벚꽃이 사그라들었고 뜨거운 햇살이 촘촘해졌다지만.

 

온통 산산조각이 난 푸우를 겨우겨우 맞춰놓았지만, 배은망덕한 녀석은 오른손에 총을 쥐었다.

 

한강둔치를 따라 걸으며 바라본 성산대교의 야경. '행복'이란 추상어의 구체적 현현.

 

지하철 플랫폼에 적힌 시들이 다 좋은 건 아니지만, 그때의 기분과 상황에 따라 딱 와닿는 때가 있다.

 

 

 

 

 

 

"감정은 욕망과 그 욕망의 달성 사이에 있는 시간 속에 숨어 있다."(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 올더스 헉슬리)

 

 

 

 

 

 

아직 채 형체도 못 이룬 꽃잎들이 때깔부터 욕심을 냈는지 벤치 지붕위 또아리를 튼 등나무 덩쿨에 보랏빛 커튼이 치렁치렁. 

 

바람이 슬쩍 불 때면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한껏 뒹굴면서도 그게 또 재미있다고 때이른 꽃향기를 퍼올리는 중이다.

 

 

 

 

 

 

 

부엌에서 그리 크지도 않은 '톡', 소리가 났다.

 

뭔가 싶어서 가봤더니 매끈하게 반짝거리는 하트 반쪽이 나머지 반쪽을 기다리는 중.

 

 

한 사람의 심장이 붉은 실로 묶였다는 인연의 심장을 당겨올리는 소리였다. 톡.

 

 

 

 

 

 

 

 

 

 

 

@ LG아트센터



일시 : 2012년 4월 25일(수) AM 00:00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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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신부도, 어느 누구도 밟지 않은 Virgin Road. 몇걸음 내딛지 않아 끝에서 끝까지 걸어가는 짧은 길이라지만

 

그 길 끝에 섰을 때와 돌아나올 때의 마음가짐이나 무게감이란 건 달리 비할 만한 데가 없을 거다.

 

신부를 맞을 준비, 어깨를 한껏 부풀려 애써 용기를 내고 길 끝에서 나설 채비를 하는 그.

 

 

신부와 아버님이 그 길 끝에 나란히 서고, 어깨 사이로 보이는 그는 조그맣게 얼어붙었다.

  

 

 

 

 주례가 없는 대신 양가 아버님의 축사로 갈음하는 (갠적으론) 바람직한 결혼식순에 따라, 둘은 무대 가운데에 자리잡았다.

 

덕분에 잔뜩 늘어난 사회의 역할, 종이 몇장에 빼곡하게 적힌 멘트를 주섬주섬 읽는 안경알이 뱅글뱅글.

 

 

 신랑의, 신부의 아버님은 살짝 아마추어같으면서도 진심어린 축사를 전해주시고, 신랑신부는 이를 경청하고.

 

직접 제작한 손팻말까지 흔들며 '축하합니다~ 축복합니다' 노래해주던 사람들.

 

결혼식장을 담느라 부산하게 움직이던 카메라 둘, 캠코더 하나. 스냅을 맘대로 찍어달랬으니 맘대로 찍는 중.

 

식이 마칠 즈음 양가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잠시 눈물이 그렁그렁하던 두 사람, 하객들에게 다소곳이 인사.

 

 순식간에 파아~ 하고 터져버린 팡파레. 이렇게 눈깜짝할 사이에 빤짝이가 뿜어나갈 줄이야.

 

마음이 바빴는지 성큼성큼 순식간에 버진로드 끝까지 도달한 두사람. 사방으론 온통 팡파레의 내용물이 튀었다.

 

어쩐지, 뭔가 밋밋하더라니. 키스는 버진로드를 내려오는 순간. 언젠가 문화평론가 문강형준이 쓴 본인 결혼에 대한

 

글을 읽고 나서부터 이 순간에 꼭 떠오르는 구절이 있다. 이제 새로운 걸음을 떼는 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구절.

 

ⓒ 문강형준의 읽기. (http://blog.naver.com/caujun?Redirect=Log&logNo=60121067014&from=postView)

 

 

이제 인증샷의 시간. 글쎄, 신랑신부가 찍힌 사진은 많이들 갖고 있겠지만 신랑신부의 시각에서 찍힌 사진은 어떨까.

 

 

그 와중에 식장을 화사하게 꾸미던 화병들이 치워지고, 한쪽의 케잌 역시 계약조건에 없던지라 무사히 원대복귀.

 

 

4월의 신부를 탄생시킨 대기실, 그리고 축하하러 온 사람들의 배를 불려준 피로연장. 

 

서울여성플라자 웨딩홀, 언젠가 여기서 연극을 본 적도 있었던 거 같은데.

 

 피로연장에 소주병과 맥주병이 세팅된 테이블 위 노랑 조화조차 이뻐보이는 날은, 친구의 결혼식이다.

 

 벚꽃이 만발하고 연둣빛 잎새가 우쭐우쭐 몸을 뒤채는 4월의 봄날.

 

 제주도 강정마을에서 구럼비를 돌침대삼아 신혼여행 잘 다녀오시길. (얼굴 및 신분노출 안 시키는 사진만 골라골랐음)

 

지금 맞잡은 두손 놓지 않고 이대로 평생 행복하게 알아서 잘 살겠지 뭐.

 

 

 

 

아직은 앙상한 겨울나무 두 그루가 코엑스 유리벽 너머에서부터 뿌리를 내리더니 코엑스 대리석 바닥에까지

 

촘촘하게 잔뿌리를 내리뻗었다. 앨리스가 뛰어들었던 거울 속 풍경으로 뛰어든 거 같기도 하고.

 

그 풍경에 이렇게 소용돌이를 더하는 장난, 필터를 쓰던 프로그램을 쓰던 여러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가장 간단하고 재미있는 방식은 역시 두손으로 꽉 잡은 카메라를 직접 돌리며 셔터를 누르는 거다.

 

삼각대로 고정하듯 카메라의 축이 단단히 잡혀 있지 않아서 회전이 조금 찌그러지기도 하고, 그래서

 

저렇게 형광등 불빛이 지렁이 똥싸듯 삐뚤빼뚤해지기도 하지만. 그리고 회전의 중심이 어디로 잡힐지

 

알 수 없어 여러번의 시행착오를 겪기도 하지만, 그런 의외성과 예측불가능성이 매력이라면 매력이다.

 

꼭 사진이 수직수평을 제대로 잡고 있지 않더라도, 이 정도의 기울기로 왠지 모를 분위기나 뉘앙스를

 

담아낼 수 있는 사진도 있지 않을까. 예컨대 세상이 뭔가 잔뜩 망가지고 헝클어지고 멸망할 듯한 느낌.

 

 

 

 

 

 

 

 

#1. 은근과 끈기가 미덕인 나라라서 그런가. 새누리당의 선전과 낮은 투표율은, 민통당의 삽질과 기타등등에도 비롯하고

 

결국 이 나라의 수준을 보여준다. 그래도 진보신당은 살아남길 바랬는데.

 

 

#2. 가장 큰 승리자는 MB, 그리고 박근혜. '이명박근혜'란 단어가 승인받은 셈이니까. 박근혜 대통령여왕폐하가 강림하시겠구나.

 

 

#3. MB 4년차에 이런 결과라는 건, 지금이야말로 절망할 때라는 거다. 애써 괜찮은 척 '새누리당의 승리가 아니라 민주당의 패배'

 

라느니 따위 말장난하지 말고. 승리한 새누리당과 죄씻김받은 MB의 강고한 지지층에 절망하고, 또 반대편의 오합지졸 세력들과

 

여러모로 제한적인 그 지지층에 절망하고.

 

 

#4. 패배에 대한 귀책사유를 여기저기서 찾나본데, 아직 그 '패배'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의 공약수조차 찾지 못하겠다.

 

선거가 끝나도록 '반MB' 이외의 공약수를 키워내는데 실패한 야권의 무능은, 사실 그 역사가 길고 오래다.

 

 

#5. 말뿐인 '반MB' 구호의 거품이 걷혔다. 누구나 씹고 다니는 게 유행이던 껌조각이 공급과잉에 이르자 일부는 그에

 

음모론과 집단주의를 짬뽕시켜 더욱 자극적인 껌이나 팔고 다니다가 금배지 줏어먹을 뻔하고.

 

 

#6. 분명한 사실 하나, 연초만 해도 새누리당은 굉장한 위기감에 휩싸였었다는 거. 뭐 하나 제대로 해명하고 책임진 것도 없이

 

4/11이 왔는데, 심지어 계속 악재가 있었음에도, 그들이 과반수를 넘보는 제1당으로 건재하다는 건..지금은 절망할 때란 거다

 

 

#7. 김용민 패배와 기타 이슈에 대해 언론의 노골적 편향을 문제삼기도 하지만, 애초 그가 세습받은 공천이 원죄.

 

거리의 재담꾼이 얻은 인기를 선거에 그대로 가져다 쓸 수 있겠다 여겼던 얄팍한 계산 혹은 무개념 역시.

 

 

#8. 나꼼수가 스마트폰처럼 사람들을 감각적이고 '스마트'하게 만들어 성찰하고 숙고하는 힘들고 난망한 정공법을 기피하게

 

만들었다면, 민통당과 통진당은 스마트하지도 못한데 각자의 정공법을 대중에게 한목소리로 전달하는데 철저히 실패했다.

 

각자의 정공법이 애초 있는지도 의문.

 

 

#9. 이토록 대안없는 민통-통진당 연대에나마 표를 준 사람들의 갑갑함과 열망을 봐서는 그들 지도층에 분노가 치밀고,

 

이토록 대안없는 정당만 짝사랑하며 진보신당이나 녹색당이 표를 주지않은 그들 '보수적인' '진보'지지층에 분노가 치미는 거다.

 

 

#10. 박근혜 대통령여왕폐하가 납실 거 같다. 빨간당과 '이명박근혜'의 견고한 지지층에, 무능하고 무기력하며 배부른

 

민통당-통진당 지도층에, 대안도 못내놓는 그들만을 짝사랑하는 민통당 지지층에, 그리고 투표조차 나서지 않게 되어버린

 

뿌리깊은 무기력과 냉소에 절망해버렸다.

 

 

#11. 더 짜증나는 건, 박그네가 우야튼 현 정치인들 중 대중에 소구하는 정치적 감각이 돋보이고 있다는 점. 단순히 애비의

 

후광만은 아니란 거다. 그 와중에 투표율도, 투표결과도 모든 게 이지랄인데다가, 대안이 될 진보신당이나 녹색당은 해체..

 

 

#12. 투표결과가 51:49던 99:1이던 이긴 자가 국회에 입성한다. 이제 4년간은 이 결과로 만들어진 국회가 굴러갈 텐데, 이런

 

상황에서 야권이 대통령을 만들어낸들 얼마나 뭘 할 수 있을까. 만들어내봐야 노무현의 내외적 한계가 그대로, 혹은 그이상일 텐데.

 

 

#13. 4년간 누적된 MB에 대한 피로감과 반발심을 날려버릴 정도로 무능력하고 무기력했던 야권. 역사에 죄를 짓는다는 건

 

아마도 이런 걸 말하는 거다. 청와대는 '국민들의 현명한 선택'을 환영하고 나섰다.

 

 

 

 

 

 

 

시뻘겋구나. 이제 박근혜 대통령여왕폐하 취임식만 남은 거 아닐까...

 

어제 출구조사 발표 때부터, 아니 그전의 미미한 투표율을 체크할 때부터 예감했던 결과지만 여전히 멘붕.

 

멘붕을 이기지 못하고 오전내내 북한땅을 뻘겋게 칠하면서 멍하니 보내버렸다.

 

 

 

 

 

 

 

 

 

 

 

아침에 출근길 댓바람부터 진눈깨비에 호되게 콧잔등을 얻어맞고 나니 하루종일 정신이 나갈락 말락.

 

아무래도 이런 때는 따뜻한 나라에서 '피서' 아닌 '피한'을 즐기고 싶다는 마음이 무럭무럭 자라나기 마련,

 

마침 제스프리에서 뉴질랜드 원정대를 소집하여 키위도 골드키위, 그린키위 막론하고 잔뜩 먹여주고

 

요트세일링이니 마오리족 문화행사 등등도 체험시켜준다고 하니 덜컥. 이벤트에 응모해보았습니다.

 

 

 

@ 홍콩



일시 : 2012년 3월 29일(목) PM 10:40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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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빠진 신호등이 파랗게 빛나는 걸 보고는 어딘가로부터 훌쩍 시야 안으로 날아들던 비둘기 한마리.

 

온통 빨간 불이 삼엄하게 들어온 차도 위 육교를 건너며 짐짓 시크하게 담배를 꺼내무는 아저씨.

 

그리고 온통 쾌청한 파란 하늘, 드문드문 소리도 없이 흘러가는 흰구름따라 게으르게 깜빡이는 신호등 하나.

 

 

 

"내 비밀은 이런 거야. 매우 간단한거지.

 

오로지 마음으로 보아야만 정확하게 볼 수 있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 법이야."

 

 

다른 사람에게는 결코 열어주지 않는 문을...


당신에게만 열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야 말로... 당신의 진정한 친구이다.

 

 

 


차들이 복작거리는 사거리, 깜빡이도 켜지 않고 대가리부터 디밀고 보는 마구잡이 운전자들이 잔망스런 각다귀떼처럼

귀찮게 굴더니 슬쩍 빨간불 맨앞으로 밀쳐놓았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원하던 원치않던 쉬어 가는 타이밍.


버팔로 떼처럼 온갖 소음과 말풍선들을 동댕이치며 앞으로 앞으로 내달리는 차들에 가로막힌 시선을 둘 곳 없어

하늘로 조금 띄워올렸더니 보석상자처럼 말갛게 닦인 백퍼센트 유리벽 건물엔 흰구름과 파란하늘이 담겨 있었다.








첫 경험은 대부분 부끄러운 실패작이지만 점점 실력이 향상된다.

천천히 하는 것이 더 좋다.

최고의 결과를 얻으려면 그냥 흐르는 대로 내버려둔다.

절제하기 힘들다.

엄청나게 훌륭하지는 않을 때라도 꽤 괜찮다.

한 시간을 할 수도, 1~2분이 걸릴 수도 있다.

실험은 보통 재미있지만 고통스러울 때도 있다.

1년에 한 번 하는 광란의 행사보단 매일 조금씩이라도 하는 게 낫다.

충동을 억누르면 어딘가에서 폭발하기 마련인데 그 어딘가가 마음에 안들 수도 있다.

교습을 받을 수는 있지만 필요치는 않다.

여기에 돈을 치르는 사람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지 말아야 할 곳에서 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이 당신의 방법에 대해 어떻게 말하든 상관없다.

다 끝나고 나면 뭔가를 바꿔야 한다. (종이나 침대 시트)



참여연대 부설 아카데미 느티나무강좌 '고경일, 김부일의 서울 드로잉' 3기, 출발.


위에 예시로 들어놓은 에셔라거나 김홍도의 병진년화첩이라거나, 나카지마 리에라는 사람의 일러스트라거나

심지어 에드가 드가의 인물 소묘까지, 저런 경지까지 따라갈 수야 없겠지만 그래도 뭔가 굉장히 재미있을 듯.(두근두근)




 ⓒ 공주님의 소꿉놀이 [손문상의 그림세상] 정수장학회 이야기 /손문상 화백

● 관련기사 :

조순형 “박근혜, 유신 독재 진지하게 사과해야” (경향, 2012-3-16)

김종인 "박근혜 유신체제 사과요구는 연좌제"  (시사IN, 2012-3-15)

전여옥 “박근혜, 지적 인식 능력이...” (노컷, 2012-3-16)

조순형 “박근혜, 유신독재 시절 관련 공식입장 표명해야”  (아주경제, 2012-3-16)

박근혜, 이제 그만 하시지 (프레시안, 2012-3-15)



● 일시 : 2012년 3월 16일(금) AM 10:00시부터


           "다른異 색깔彩을 지켜낼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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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격 :

'유신공주' 박근혜에게 
독재자 박정희 시대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주장에 대해
논리적인 근거를 들어 반박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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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최 : ytzsche(이채, 異彩)

● 제공 : 초대장 6장

"병 걸리셨어요!" [손문상의 그림세상] '안철수 돌풍' 한방에… /손문상 화백

진실이 드러나다? "박근혜, 혹시 거품…" [손문상의 그림세상] 10·26 후폭풍 /손문상 화백

내 스위치를 켜주세요. 여섯 개나 되는 스위치.


@ 코엑스.

심심하니 '야한 사진' 한 개 더.


돼써 돼써 이제 그런 가르침은 돼써
매일 아침 일곱시 오십분까지 우릴 조그만 교실로 몰아넣고.



이제 됐다고 소리칠 곳도 모호해진, 누가 몰아넣는지도 모르게

스스로 넥타이를 졸라매고 천장낮은 조그만 사무실로 발걸음하고 있는 나는야 서른두살.

나이를 엔간치 먹었어도 몸뚱이만 늘어나고 주름만 생겨났지 나아지기는 커녕 그자리 그대로구나.


서태지 1집이 나온 게 1992년 3월 23일이었다니 어느새 이십년 전이다.

그새 국내 가요시장은 K-POP으로 바뀌었고 '교실이데아'를 목놓아 부르던 아이들은 넥타이를 맨 어른이 되었다.

아, 그러고 보니 서태지는 이미 어른들을 위한 노래도 만들었댔다. 시대유감.


거 짜식들 되게 시끄럽게구네 그렇게 거만하기만 한 주제에
거짓된 너의 가식때문에 너의 얼굴 가죽은 꿈틀거리고

나이든 유식한 어른들은 예쁜 인형을 들고 거리를 헤메 다니네
모두가 은근히 바라고 있는 그런날이 오늘 바로 올것만 같아



'나이든 유식한 어른들'을 까는 가사에 속이 후련한 건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조금 찔려오는 건

아무래도 이십년 가까이 흐른 시간 탓인지 모른다. 어쨌던 서태지와 아이들 20주년..! 스페셜한 뭔가 없으려나.





교실 이데아

됐어(됐어)이젠 됐어(됐어)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그걸로 족해(족해)이젠 족해(족해)
내 사투로 내가 늘어놓을래

매일아침 일곱시 삼십분까지
우릴 조그만 교실로 몰아넣고
전국 구백만의 아이들의 머리속에
모두 똑같은 것만 집어넣고 있어
막힌 꽉 막힌 사방이 막힌
널 그리곤 덥썩 모두를 먹어 삼킨
이 시커먼 교실에서만
내 젊음을 보내기는 너무 아까워

좀더 비싼 너로 만들어 주겠어
네 옆에 앉아있는 그애보다 더
하나씩 머리를 밟고 올라서도록 해
좀 더 잘난 네가 될수가 있어

왜 바꾸진 않고 마음을 조이며 젊은날을 헤멜까
바꾸지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

됐어(됐어)이젠 됐어(됐어)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그걸로 족해(족해)이젠 족해(족해)
내 사투로 내가 늘어놓을래

국민학교에서 중학교로 들어가며
고등학교를 지나
우릴 포장센타로 넘겨
겉보기 좋은 널 만들기위해
우릴 대학이란 포장지로 멋지게 싸버리지
이젠 생각해봐 대학!
본 얼굴은 가린 체 근엄한 척
할 시대가 지나버린건
좀더 솔직해봐 넌 알수 있어

좀더 비싼 너로 만들어 주겠어
네 옆에 앉아있는 그애보다 더
하나씩 머리를 밟고 올라서도록 해
좀 더 잘난 네가 될수가 있어

왜 바꾸진 않고 마음을 조이며 젊은날을 헤멜까
바꾸지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
왜 바꾸진 않고 마음을 조이며 젊은날을 헤멜까
바꾸지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

됐어(됐어)이젠 됐어(됐어)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시대유감(時代遺憾)

왜 기다려왔잖아 모든 삶을 포기하는 소리를
이 세상이 모두 미쳐버릴 일이 벌어질것 같네

거 짜식들 되게 시끄럽게구네 그렇게 거만하기만 한 주제에
거짓된 너의 가식때문에 너의 얼굴 가죽은 꿈틀거리고

나이든 유식한 어른들은 예쁜 인형을 들고 거리를 헤메 다니네
모두가 은근히 바라고 있는 그런날이 오늘 바로 올것만 같아

검게 물든 입술 (정직한 사람들의 시대는 갔어)
숱한 가식속에서 (오늘은 아우성을 들을수 있어)

왜 기다려왔잖아 모든 삶을 포기하는 소리를
이 세상이 모두 미쳐버릴 일이 벌어질것 같네

부러져버린 너의 그런 날개로 (너는 얼마나 날아갈수있다) 생각하나
모두를 뒤집어 새로운 세상이 오기를 바라네

너의 심장은 태워버리고 너의 그 날카로운 발톱들은 감추고
돌이킬수 없는 과거와 모두다 잘못되어 가고 있는데

검게 물든 입술 (정직한 사람들의 시대는 갔어)
숱한 가식속에서 (오늘은 아우성을 들을수 있어)

왜 (기다려왔잖아 모든 삶을 포기하는 소리를
이 세상이 모두 미쳐버릴 일이) 벌어질것 같네

바로 오늘이 두개의 달이 떠오르는 밤이야
네 가슴에 맺힌 한을 풀수 있기를...

오늘이야

한달전만 해도 저 그래피티는 없었던 거 같다. 아니, 보다 확신을 갖고 말하자면 한달전만 해도 저것들은 없었다.

동작대교 남단을 지나 올림픽대로로 내달리기 직전의 교각에 도장처럼 찍혀 버린 피스, 그래피티. 간단하고 앙상하지만

어쨌든 누군가가 아마도 야음을 틈타 스프레이로 그려둔 게 아닐까 싶다.

자꾸 지나칠 때마다 눈에 밟혔던 거다. 기분이 묘하게도 요새 자꾸 여기저기서 저 그래피티를 보는 것 같단 느낌도

들고 해서. 배달 오토바이의 철가방에서도 보이고, 뒷골목 벽에서도 보이고 뭐 그런. 자꾸 그런 게 보이니까 뭔가

요새 한국의 '그래피티계界(그런 게 있다면 말이지만)'에 PEACE 마크가 다시 유행인 건가, 1960년대 말의 미국처럼.

그런 생각도 들곤 하는 거다.



사랑과 정열을 그대에게, 피쓰~!

홍세화 진보신당 대표

여러분이 <진보신당>입니다

13000개의 바위를 밀어 올리는 이 시대의 시지프스들에게 띄우는 편지

“시지프스가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은 바로 이 돌아오는 동안이고 멈춰 있는 동안이다. 바로 바위 곁에 있는 기진맥진한 얼굴은 이미 바위 그 자체인 것이다! 나는 이 사람이 무거운, 그러나 한결같은 걸음걸이로 끝도 알지 못하는 고뇌를 향하여 다시 내려가는 것을 본다. 그의 고통처럼 어김없이 되돌아오는 휴식 시간, 이 시간은 의식意識의 시간이다. 그가 산꼭대기를 떠나 신들의 소굴로 차츰차츰 빠져 들어가는 순간마다, 그는 자기의 운명보다 우위에 있는 것이다. 그는 자기의 바위보다 더 강하다.”

―알베르 까뮈, 《시지프스의 신화》 중에서


뒤늦은 새해편지

당원 동지 여러분.


설 연휴가 지난 지도 오래고, 2월도 중순을 넘어가고 있으니 새해인사를 전하기엔 새삼스런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본디는 ‘신년사’라는 걸 통해 동지 여러분께도 말씀을 건넬 계획이었습니다. 오래된 관행도 그렇고, 새해의 첫걸음을 응원하고 희망어린 비전을 제시하는 게 마땅한 도리라는 사람들의 권고도 있었지요. 어느 해인들 그렇지 않은 때가 있었겠습니까만, 너나할 것 없이 강조하는 2012년의 중요성 때문에 더욱 그것을 피할 수 없는 숙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저는 신년사라는 말이 싫었습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으로 시작하는 순간 과장되고 거짓된 말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무렵, 이른 아침 집을 나와 경의선 기차역까지 걷는 동안 문득 신년사를 편지글로 고쳐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밤에 쓴 편지를 아침에 다시 읽지 말라”고 어느 시인이 말한 적이 있지요. 결국은 못 부치게 될 테니까요. 하지만 저는 그 경구를 이번에는 잊기로 했습니다. 그것이 절망이든 희망이든, 저는 제 속에 깃든 진심을 차라리 드러내는 쪽을 선택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늦은 밤에 쓴 이 편지를 아침에 읽지 않은 채 여러분께 곧장 띄웁니다.



시지프스를 떠올리다



모든 사람이 행복하거나 그 반대인 시대는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최근 20년 동안 너도나도 ‘위기의 시대’를 입에 올리지만, 하나의 위기가 지나고 나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의 범주는 급속히 좁아지고 불행을 감내해야할 사람들의 그것은 같은 속도로 확대되어왔습니다. 23년 만에 영구 귀국한 2002년 1월로부터 지난 10년 동안 그 격차라는 것이 이 정도까지였나 하는 점을, 고백컨대 저는 최근에서야 비로소 깊이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지난해 11월 당대표가 되고 나서 3개월 동안 저의 일상을 중요하게 차지한 것은 불안정 노동이라 부르는 비정규 노동자들, 정리해고된 노동자들의 투쟁 집회 현장을 찾아가는 일이었습니다. 어쩌면 이 3개월 동안 다닌 곳이 지난 10년 동안 갔던 곳보다 많지 않을까 싶네요. 그냥 다닌 게 아니었습니다. 발언 순서를 기다리면서는 왜 그리 긴장되는지, 또 마이크 앞에서는 다른 분들처럼 큰 목소리로 자신 있게 외치지 못하고 자꾸만 허둥대는 자신이 또 얼마나 어색하게 느껴지는지...


세상에 이리 많은 싸움이 있는데, 세상은 왜 이리 조용한가를 생각하면 숨이 막힐 지경입니다. 이 길고 지루한 싸움의 끝을 대체 누가 가늠이나 할 수 있을까요? 네 번의 겨울을 맞으며 1500일 가까이 싸우고 있는 재능교육 선생님들의 거리농성장을 찾던 날이었습니다. 이 막막하고 외로운 싸움을 목도하고 나오면서 저는 문득 그리스 신화의 시지프스를 떠올렸습니다. 산꼭대기까지 무거운 바위를 끝도 없이 되풀이해서 밀어 올려야 하는 형벌을 받은 시지프스. ‘그래서 어쩔 건대?’라는 자본의 비정한 얼굴에 맞서 부르튼 두 손으로 기약 없이 바위를 굴려야 하는 부조리한 운명을 감내해야 하는 이들이 어찌 이분들뿐이겠습니까 마는.


그러다 또 문득 저는 진보신당 당원 동지 여러분을 생각했습니다. 다른 이들이 하루아침에 뒤로 하고 떠난 당을 떠나지 않고 지키고 있는 여러분이 바로 이 시대의 시지프스가 아닌가요? 냉소와 무관심과 외면에도 불구하고 두 팔을 뻗어 당을 지탱하고 다시 산 아래로부터 가파른 산비탈을 기어오르고 있는 우리의 운명이 시지프스의 그것 아닌가요?


1% 대의 지지율, ‘통합’이란 이름표를 단 야당들의 틈바구니에서 소외된 원외정당의 설움, 언론의 외면, 고집불통이란 딱지, 명망 정치가들이 남기고 간 부정적 유산과 상처, 무정한 옛 동지들에게 ‘진보(신)당’이란 이름마저 도용당하는 비애, 이당 저당 가릴 것 없이 ‘좌클릭’이요 진보를 자처하는 현실, 조합원들의 민주적 선택권을 몰수하여 3자통합당에 대한 변형된 배타적 지지방침을 관철시키려는 민노총에 대한 울분……. 기나긴 지난 1년여의 통합논쟁으로 지치고 힘겨워 주저앉은 당원들과 지역당협이 적지 않다는 소식을 듣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왜 여기에 남아있는 것일까요?



자존감自尊感에 대하여


당원 동지 여러분.


13000개의, 저마다의 바위를 밀어 올리고 있는 바로 여러분이 이 시대의 시지프스들입니다. 알베르 까뮈처럼, “산꼭대기를 향한 투쟁 그 자체가 인간의 마음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하다”고도, 그러므로 “우리는 행복한 시지프스를 상상해야만 한다”고도 차마 지금은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제가 여러 글에서 했던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가는 길이 어려운 게 아니라, 어려운 길이기에 우리가 가야 한다.” 이 말도 지금은 잠시 유보해 두겠습니다.


그러나 이 말 한마디는 반드시 해두고 싶습니다. 당원 동지 여러분,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이제 <진보신당>입니다. 우리에겐 13000 개의 진보신당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선 ‘정치적 자존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우리는 자본주의문명 자체의 위기가 눈앞에 전개되는 상황에서 정작 자본주의 이후를 대비해야할 진보정당은 소멸의 위기에 처한 슬픈 역설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여도 야도 ‘좌클릭’이 유행인데 우습게도 왼쪽에 있던 사람들마저 몸은 ‘우클릭’하는 이 역설의 시대를 우리는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까요? 몸과 머리가 따로 노는 이 어처구니없는 자기분열의 시대에 그저 목이나 어루만지며 안심하자는 이야기는 물론 아닙니다.


정치 혹은 정당은 자신의 정치적 자존감에 존립합니다. 자존감은 우선 시간과 상황의 변화에 따라 요동치지 않고 자기정체성의 현재와 과거와 미래에 대해 끊임없는 확인하려는 노력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누구인지,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물음을 어떤 경우에도 포기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이 질문이 누락된 정당은 누군가의 말장난처럼 ‘가설정당’일 수는 있어도 진정한 의미에서의 정당일 수 없습니다.


정치가 자존감이 아니라 수數나 세勢에 존립한다고 믿는 사람들의 눈에는 흩어지지 않고 남아있는 진보신당 13000 당원들은 불가사의한 존재들로 보일지 모릅니다. ‘끝없는 패배’가 두려운 이들에게 정치적 자존감이란 것은 그저 던져버리고 달아나고픈 거추장스런 시지프스의 바위로 비쳐졌을지 모릅니다. 두 가지의 아주 다른 길이 있는 것입니다. 산꼭대기만을 쳐다보다 바위를 버리고 달려가는 ‘상층연합’의 길이 있는가하면, 바위를 밀어 올릴 때나 바위를 찾기 위해 산 아래를 향해 걸을 때나 묵묵히 자신의 발끝이 향하는 길을 보고 걷는 ‘하층연합’의 길이 있습니다.


당원 동지 여러분 가운데는 제가 당대표가 된 직후 어느 인터뷰 자리에서 했던 말을 기억하는 분이 계실 겁니다. 진보신당 당원들과 저의 힘겨운 노력이 실패한다면 우리는 즉시 ‘하방下放’을 선택하여 새로운 진보정당의 밀알이 되겠다는. 처음부터 패배주의로 시작하느냐는 지적도 없지 않았습니다만, 사실은 이것은 안토니오 그람시의 1926년 <리용 테제>를 떠올리며 했던 말이었습니다.


한때 사회당(PSI) 좌파의 지도자였던 무솔리니의 파시즘의 광풍 앞에서 반半합법적 존재로 탄압받으면서 궤멸의 위기에 처한 이태리 공산당(PCI)은 자국 내에서 당대회를 열지 못하고 프랑스 리용으로 당원들을 소집하지요. 그람시는 이 당대회의 테제에서 5만 당원에게 ‘하방’을 명령합니다. “북부의 노동자와 남부의 농민을 조직하고 그들의 혁명적 동맹을 공고화하라”는 이 테제에 따라 당원들은 민들레 씨앗처럼 공장으로 농촌으로 학교로 퍼져나가 삶의 근거지마다에서 진지를 구축하지요. 그리고 파시즘의 몰락 이후 당은 50만 당원을 가진 서유럽 최대의 대중적 좌파정당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동지 여러분.


벌써부터 머지않아 다가올 4월 총선에서 진보신당이 살아남을 것인가 해산될 것인가를 놓고 말들이 분분합니다. 진보신당의 존재가 자신들의 뒷덜미를 잡는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간절히 희구할지도 모르지요. 여기에 판돈을 걸어야 한다면 아마도 후자 쪽에 수북이 쌓이겠지요.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패배할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어렵게 존속시키려던 당은 해산되고 우리는 다시 시지프스처럼 산 아래로 무거운 발걸음을 다시 옮겨야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민들레가 뿌리째 뽑혀도 갓 털을 단 씨앗들이 흩어져 큰 숲을 이루듯, 당이 해체되고 진보신당이란 이름이 사라져도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13000개의 진보신당으로 남아있다면 머지않은 시간에 13만의, 130만의 진보정당이 출현할 것입니다. 그람시는 감옥에서 병사했지만, 그의 두뇌를 20년 간 작동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호언하던 파시즘 권력은 사라졌어도 그의 《옥중수고》를 우리가 지금 읽고 있습니다.


어떻게 져야 할까요? 아니면 어떻게 이겨야 할까요? “싸움은 승리를 위해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 <시라노>의 유명한 마지막 대사입니다. 저는 두렵지 않습니다. ‘13000개의 진보신당’이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가 확신할 수 있다면, 총선이라는 한 번의 전투에서의 승리와 패배는 절대적인 중요성을 갖지 않습니다.


하나의 씨앗과 한 알의 밀알에 우주가 있듯이, 여러분이 각각의 존재가 진보신당일 수 있다면 말입니다. 이것이 자존감의 두 번째 비밀입니다. 씨앗과 밀알이 썩어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에서 보듯이, 자존감은 ‘자기다움’에 대한 치열한 물음이자 ‘자기해체’를 무릅쓰는 용기입니다. 이 두 가지는 따로 작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다움에 대한 확신이 있는 사람만이 자기해체의 용기를 가질 수 있습니다.


새로운 진보정당을 위한 지난한 진보좌파연석회의의 과정은 바로 이 ‘찾기’와 ‘만들기’의 동시적 진행과정입니다. 우리가 우주를 품고 있는 밀알의 자존감이 있다면 무엇을 주저하고 무엇을 두려워해야 합니까? 이번 임시당대의원대회의 주요 안건 가운데 하나인 사회당과의 통합문제도 그렇습니다. 긴 시간을 자본주의 극복을 위해 분투해온 사회당과의 통합은 총선에서의 유·불리를 따지는 사고로 접근해서는 안 되는 사안입니다. 그것은 정체성이 유사한 이웃 당은 소외시키면서 어제까지 한 지붕 아래 있을 수 없다던 정당과는 입에 침이 마르기도 전에 손을 잡는 정치공학을 끝내고 이제 자존감의 정치를 시작하겠다는 우리의 의지를 보여주는 실천이며, 보다 넓은 진보좌파정당 건설로 나아가는 정치조직의 자기정비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창당을 모색하는 녹색당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유와 성장과 소비가 미덕인 시대에 이 지배적이고 주류적인 가치와 씨름해온 생태주의자들은 또 다른 시지프스들입니다. 오늘의 신자유주의 교리와 자본의 독재가 강요하는 삶이 결코 ‘올바르지도’ 않고, 앞으로 온전히 ‘가능하지도’ 않은 것이라면 자본주의 극복에 있어 좌파와 녹색은 전략적 동맹관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보수는 물론이고 진보까지도 사로잡아온 ‘성장의 신화’로부터 벗어나는 일은 우리에게는 과감한 자기해체의 모험과 결단과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녹색과 좌파가 서로의 보완재로 보지 않고 내적 일치를 향해 나아가는 ‘가치의 연대’가 이 시대 한국의 진보좌파 앞에 놓인 가장 중차대한 숙제라고 인식된다면, 우리는 좀 더 담대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겸허하고 섬세한 선거연대를 시도하되, 일시적인 비대칭성이 주는 난관 때문에 비관하지 맙시다. 시간문제일 뿐 ‘녹색좌파’의 새로운 전망은 기어이 우리를 하나 되게 할 것입니다.


배제된 자들의 서사전략


불과 얼마 전까지 평당원이었던 사람이 당대표의 역할과 업무를 파악하기에도 석 달이라는 시간은 넉넉지 못합니다. 그런 제게 총선과 대선이 있는 이 2012년의 초입은 일찍이 통과해 본 적이 없는, 캄캄한 입을 벌리고 있는 긴 터널의 입구에 서있는 것 같아 현기증이 느껴질 지경입니다.


금융자본주의의 위기에다 이명박 정권의 실정까지 겹쳐 어수선한 정국에서 집권 보수세력의 재집권이 어려워지고 자유주의 야당으로 정권교체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들 이야기합니다. 야당의 총선 승리와 정권교체가 이루어지면 2013년 이후의 미래가 밝을 것으로 이야기하는 지식인들도 있지만, 그러나 그이들의 말처럼 그런 상황이 노동자들의 처지에, 진보정당의 미래에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다줄 수 있을까요?


예컨대 세계적 차원의 경제위기가 거대한 파고로 밀려올 때 수구적 보수세력인 새누리당만이 야당인 상황이 우리 사회에 유리할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그람시는 파시즘을 가리켜 “사라져가는 옛것을 대체할 새로운 것의 출현이 지체되는 위기 국면에 등장하는, 다양한 병적 징후들” 가운데 하나로 규정한 바 있지요. 과거 어설픈 당근과 가혹한 채찍 사이에서 사회적 격차가 오히려 고착되었던 이른바 ‘민주정부 10년’ 동안처럼 자유주의 정권 주도의 위기관리가 한계에 부딪혔을 때 파쇼적 상황이 도래할 가능성도 있는 것이지요. 거듭 강조하지만, 진보정당은 그러한 상황에 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성으로 비관하더라도 의지로 낙관하라’고 말한 이도 그람시였지요. “선장은 배가 난파되었을 때 자신의 배를 떠난 최후의 사람이 되어야 하며 다른 모든 사람들이 무사하게 된 후에만 배를 떠날 수가 있다”고 말한 이도. 기억들 하시는지요? 여러분께 드리는 첫 인사글 말미에 “두려운 것은 고통 자체가 아니라 의미 없는 고통”이라고 한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을 제가 인용했던 것을. 부조리한 운명으로 고통 받고 있는 이 시대의 시지프스들을 떠올리며 그때의 그 말을 다시 반추해 봅니다. 고통과 번민에서 곧바로 어떤 의미든 찾고자 하는 것, 이것은 아마도 의미 없는 고통을 하루하루 끝도 없이 이어가야 하는 이들의 삶에 오래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던 지식인적 사고가 지닌 허영 아니었나는 생각에 얼굴이 붉어집니다. 그러면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요?


“눈물은 아래로 흐르고 숟가락은 올라간다”고 했습니다. 천하를 논하는 ‘큰 정치’가 따로 있고, 삶의 고통을 다루는 ‘작은 정치’(혹은 민생 정치라 부르는 것)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큰 정치’에서 말해지는 희망을 위해 목전의 삶의 불행과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인다면 그것은 다만 거짓일 뿐입니다.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숟가락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아래로 흐르는 눈물을 감추어야 하는 사람들의 생존의 최전선에서, 아래로 전가되는 불행의 크기를 가늠하고 그로부터 정치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 바로 이것이 진보정치여야 한다는 것이 저의 결론입니다. 이것이 자본주의 위기의 시대에 대응하는 ‘아래로부터의 연대전략’입니다.


당원 동지 여러분.


여러 경로로 이야기한 바 있지만, 저는 우리 당의 비례대표전략을 <배제된 자들의 서사 전략>이라 이름 붙이고 싶습니다.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억압당하고 묵살되는 것은 물론이고 대기업 노조 중심의 노동조직으로부터도 소외되거나 외면당해온 ‘배제된 노동’을 비례후보의 전면에 내세우고 이들이 만들어온 삶과 사랑과 투쟁의 서사를 무기로 이 시대의 자본권력과 지배이데올로기와 싸우는 것을 이번 총선의 중심전략으로 삼으려 합니다.



그러나 이번 총선은 진보신당이 맞이했던 다른 어느 때보다 가혹한 조건에서 치르는 선거가 될 것입니다. 명망정치인들이 다 빠져나간 자리에 이제 무명의 척탄병들이 서 있습니다. 초라한가요? 패배가 너무 불 보듯 빤한가요? 이렇게 생각하면 어떻겠습니까? 우리 당의 지역후보가 13000명이라면? 무명의 척탄병들 옆에 13000명이 나누어 선다면? 그렇다면 이번 선거가 이 시대의 난장이들과 시지프스들이 오만한 권력과 물신을 향해 돌멩이들을 쏘아 올리는 싸움의 장, 축제의 장으로 변할 수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으시는지요?


여러분이 <진보신당>입니다. 우리 자신이 지닌 가능성을 미리부터 보잘 것 없는 것으로 축소시키지 말아주십시오. 그저 부조리한 운명에 순응하는 존재로 여겨지던 시지프스는 까뮈를 통해 끝없이 패배하면서도 운명에 저항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위대한 존재로 재해석되었습니다. 그가 주목했던 것은 시지프스가 떨어진 바위를 다시 밀어 올리려는 순간이고, 고뇌에 찬 얼굴로 잠시 정지한 시간입니다. 그것은 운명을 응시하는 시간이고 운명을 밀어 올림으로써 운명보다 한 뼘씩 우위에 서기 시작하는 순간입니다. 알베르 까뮈로 편지를 시작했으니 그가 《시지프스의 신화》의 첫머리에 쓴 구절로 끝을 맺겠습니다.


오! 나의 영혼아,

불멸의 삶을 애써 바라지 말고
가능의 영역을 남김없이 다 살려고 노력하라!


진보신당 대표


1. 네 삶을 적으라.

2. 가족과 연을 끊으라.

3. 네 부모를 막 대하라(부모는 아무리 막 대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4. 5크로네 이하의 돈 때문에 이웃을 치지 말라.

5. 촌스런 자들을 미워하고 조롱, 무시, 경멸하라.

6. 셀룰로이드 소매 달린 옷을 절대로 입지 말라.

7. 스캔들을 일으키기를 꺼리지 말라.

8. 후회하지 말라.

9. 스스로 목숨을 끊어라.


보헤미안의 존재미학을 담은 저서 "프라크리스차니아 보헤멘"에서 노르웨이의 작가/철학자이자 무정부주의 활동가였던

한스 헨릭 예거(1854-1910)이 정식화한 보헤미안의 라이프 스타일.



@ 씨네21 no.839, '진중권의 아이콘' 지면의 "창조적 개새끼"에서 발췌.




● 일시 : 2012년 2월 7일(화) PM 23:50부터

● 장소 : "다른異 색깔彩을 지켜낼 자유"(
http://ytzsche.tistory.com)

● 자격 : 1) 보헤미안의 9계명 중에서 맘에 드는 것 하나를 고르고,
             2) 그 이유를 간단히 말씀해 주세요.(비밀 댓글)

            + 초대장을 받을 이메일주소!^-^*

● 주최 : ytzsche(이채, 異彩)

● 제공 : 초대장 18장







드물게도, 거미줄이 보일 때가 있다.

의지를 갖고 자유롭게 살고 있단 건 이러저러한 거미줄 틈새에서 몸을 뒤채며 되뇌이는 망상같은 것.


제대하며 두번 다시는 내의지와 무관한, 무기력한 상황에 처하진 않겠다 다짐했지만 사실 그건

애초부터 허세나 뻥카에 가까웠다. 거미줄이 드리워진 천장이 불쑥 도드라진 오후.




바이러스 검사가 시작되어버렷..ㅋㅋㅋ


대설경보니 주의보니 오후부터 푸지게 눈이 올거라더니, 눈도 눈이지만 날씨도 참 추웠던 1월의 마지막 날.

잡았던 약속들도 취소하고 모두들 퇴근하자마자 집으로 바삐 돌아가던 것과는 반대로, 역귀성하듯 텅빈 도심의

한적한 섬에서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그새 눈은 그치고 눈물은 흘러내려 고드름이 되어버렸다.








다른 부분은 차치하고, 방송에 나왔다는 "정 전 의원께서는 독수공방을 이기지 못하시고 부끄럽게도 성욕감퇴제를

복용하고 계십니다. 그러하오니 마음 놓고 수영복 사진을 보내시기 바랍니다"라는 발언 부분만 보자.


나꼼수를 소비하는 개인들이 어떤 생각을 하던, 그리고 이에 반응해 비키니 사진을 올리던 뭘 하던 개인의 자유다.

그걸 두고 개인의 진심인지 얼굴 한번 팔아보려는 장삿속인지 따지는 것 자체는 의미도 없고 결론도 없다.


문제는 나꼼수다. 더이상 비주류도 아니고 약자도 아니다. 비주류이기에는 일반 대중의 정서와 너무 영합하고 있고,

약자이기에는 말 한마디한마디의 파급효과가 너무 크다. 이제 나꼼수는 MB집권 5년차 시대의 주류이자 강자다.


애초 씨바,씨바 거리며 육두문자와 마초스러운 모습을 드러내던 건 그들 스스로 비주류이자 약자를 자처하였기에

희석되었거나 용인되었는지 모른다. 불만과 불쾌함을 꾹꾹 눌러참는 것이 아니라 터뜨려 표현하는 게 통쾌해서.


그때나 지금이나 '나꼼수'가 설정한 '선/악'의 닫힌 구도에 희망버스니, 비정규직 문제니, 양성문제니, 체제 문제같은

심각하고 복잡한 문제는 들어설 곳이 없었다. 나꼼수가 권력화되기 전엔 괜찮았다. 수많은 목소리 중 하나였을 뿐.


지금은 다르다. 우리는 이제 주류화되어 대중의 등에 올라탄, 권력화된 '나꼼수'를 듣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예전과 다름없이 자체의 문제의식 내에서 닫힌 이야기를 하고 있다.
수세적으로 닫힌 이야기가 아닌 공세적으로 닫힌.


그 와중에 여성은 자위를 위한 '도색잡지' 수준으로 격하되고 말았다. 그들의 높이에서 그것은, '하대'에 가깝다.

이거 괜찮은 건가. 다른 이슈들이 전부 희화화되고 상처받고 대상화될 수 있다는 가능성, 그리고 그 조짐은 아닐까.


나꼼수 팀이 이전처럼 자유롭고 분방한 방송을 원한다면, 그리고 권력화와 주류 감성을 경계하고 싶다면, 이번 문제는

분명히 털고 가야 할 일이다. 그들이 사회적 약자와 조직되지 않은 비주류를 보는 시선이 어떠한지에 대한 바로미터다.




* 프레시안 만평, 손문상 화백의 그림 "씨바, 거기 조용 좀 합시다"



그녀의 시선을 정면으로 맞서며 조심스레 자세를 잡는다.

그녀는 아이폰, 나는 카메라. 바싹 움켜쥐어 상대에 겨누고는 잠시의 틈을 노리는 순간.


그녀가 한걸음 비틀어 내딛는 걸 신호로 한바퀴 팽팽한 원을 그리며 서로를 향한 맹렬한 연사.

온실 속 꽃들과 이파리들이 나부끼는 중에도 서로에 가닿는 초점은 용케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비비적대는 걸음걸이를 감히 플라맹고의 춤에 비기는 건 황송한 노릇이겠지만,

카메라와 아이폰으로 세워진 방패를 벗겨내려는 놀이는 그렇게 사랑춤이 되고 말았다.




@ 아침고요수목원.
This is a crazy world.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상이죠.

These can be lonely times.
외로운 날들도 많겠죠.

It's hard to know who's on your side.
누가 내편인지 알기 어렵죠.

Most of the time.
거의 매번 그렇죠.


Who can you really trust.
누굴 믿고 의지할 수 있나요.

Who do you really know.
누굴 정말로 잘 안다고 자신하나요.

Is there anybody out there who can make you feel less alone.
조금이나마 당신을 덜 외롭게 해줄 사람이 어딘가에 있나요?

Sometimes you just can't make it on your own.
때로는 혼자서 헤쳐나갈 수 없는 일들이 있잖아요.


If you need a place where you can run,
만약 달려갈 곳이 필요하다면,

If you need a shoulder to cry on,
만약 기대어 울 수 있는 어깨가 필요하다면,

I'll always be your friend.
제가 언제나 당신의 친구가 되어드릴께요.


When you need some shelter from the rain,
쏟아지는 비를 피할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면,

When you need a healer for your pain,
당신의 아픔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면,

I will be there time and time again.
제가 매번 당신 곁에 있을게요.

When you need someone to love you,
만약 누군가가 당신을 사랑해 주길 바란다면,

Here I am, hmmm.
여기, 제가 있자나요.


If you have broken dreams, just lay them all on me.
만약 산산조각난 꿈들이 있다면, 그것들을 다 제게 내려놓으세요.

I'll be the one who understands.
제가 당신을 이해해 줄 그 한 사람이 될게요.

So, take my hand.
자, 제 손을 잡아요.


If you reach emptyness,
만약 마음이 텅빈 것 같다면,

You know i'll do my best
당신은 알죠. 제가 최선을 다해

To fill you up with all the love That I can show someone.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 있는 사랑으로 당신의 텅빈 마음을 가득채워 줄 것을.

I promise you you'll never walk alone.
당신이 절대로 혼자 걷지 않을 걸 약속할게요.


Well, if you need a place where you can run,
만약 달려갈 곳이 필요하다면,

If you need a shoulder to cry on,
만약 기대어 울 수 있는 어깨가 필요하다면,

I'll always be your friend.
제가 언제나 당신의 친구가 되어드릴께요.


When you need some shelter from the rain,
쏟아지는 비를 피할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면,

When you need a healer for your pain,
당신의 아픔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면,

I will be there time and time again.
제가 매번 당신 곁에 있을게요.

When you need someone to love you,
만약 누군가가 당신을 사랑해 주길 바란다면,

Here I am, oooo
여기, 제가 있잖아요.


Everybody needs somebody who keep a heart and soul in two.
누구나 마음과 영혼 둘 다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죠.

Well, if you need a place where you can run,
만약 만약 달려갈 곳이 필요하다면,

If you need a shoulder to cry on,
만약 기대어 울 수 있는 어깨가 필요하다면,

I'll always be your friend.
제가 언제나 당신의 친구가 되어드릴께요.


When you need some shelter from the rain,
쏟아지는 비를 피할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면,

When you need a healer for your pain,
당신의 아픔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면,

I will be there time and time again.
제가 매번 당신 곁에 있을게요.

When you need someone to love you,
만약 누군가가 당신을 사랑해 주길 바란다면,

Here I am.
여기, 제가 있잖아요.

Here I am.
여기, 제가 있잖아요...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전후로 '참여연대'가 마치 대기업에 협찬금을 강요한 것처럼, 혹은 이른바 '좌파정권' 10년동안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던 것처럼, 심지어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 후 참여연대가 뭐라도 될 것처럼 오해하고

우려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무래도 박원순 서울시장이 당선되고 나서 참여연대가 어떤 행보를 보일지에 대한

관심이자 우려이자 조바심일 수 있겠다.


작년 한해동안 얼마 되지 않는 돈이나마 참여연대에 보태고 연말정산을 위한 '기부금 영수증'을 받으며 함께

받은 감사장엔 그런 오해나 악의적 선전에 대한 명쾌한 정답이 있어서 공유 한번 해보기로 했다. 창립이래

지난 17년간 지켜온 독립재정의 원칙에 한점 부끄러움 없다는 내용이고, 2012년에도 따뜻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는데 매진하겠다는 내용이다.


좀더 자세하게는, 정부지원금은 일체 받지 않고 받은 적도 없으며, 대기업 기부금 역시 받지 않고 있으며(이는

'아름다운재단'에 제공된 기부금이 참여연대에까지 전달되리라는 오해에 대한 해명), 무엇보다 참여연대 출신의

서울시장이 취임했다고 해서 대표적 시민단체인 참여연대의 자세가 달라지지는 않는다는 다짐이 담겨 있다.




2011년이 갔고, 많은 매체들과 사람들이 나름의 한해 뉴스를 정리해보았습니다만

개인적으로 2011년은 "원자력 발전"에 대해 속편하고 게으르게 손놓고 있던 인류에게

굉장히 큰 이정표가 되는 해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그런 와중에도 '원전 르네상스'를

외치며 국내외로 원전을 확대 가동하려 드는 정권도 있다지만, "100-1은 0"이 되고 마는

원자력 발전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과 대안 마련이 훨씬 현실적인 접근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 관련글 : 원전 견학 후기. 원전이 스스로 말한다, 100 빼기 1은 0이라고.



2011년을 휴지통 속에 넣어 뚜껑 덮고 청테이프로 칭칭 감아서 발로 뻥, 차서 내버릴 게 아니라,

작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났을 때의 충격과 공포에 눈돌리고 애써 둔감해지며 폭탄을 안고 살것이

아니라, 그런 비정상적이고 치명적인 현실에 분노를 느끼는 것이 '온고이지신'하는 방법 아닐지요.

지금도 후쿠시마 원전에서는 방사능물질이 계속 새어나오고 있고, 바람과 해류와 도로를 타고

방사능물질은 이 조그마한 별 지구 방방곡곡으로 번져나가고 있을 텐데요.



● 일시 : 2012년 1월 2일(월) PM 14:44부터

● 장소 : "다른異 색깔彩을 지켜낼 자유"(
http://ytzsche.tistory.com)

● 자격 : "후쿠시마", "원전" 이란 키워드로 검색하면 금세 뜨는 무서운 사진들, 한번 쭉 훑어보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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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최 : ytzsche(이채, 異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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