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집회 때, G20 때, 그리고 각종 크고 작은 집회시위 현장에서, 지금은 핵안보정상회의장 주변을 그의 차벽이 감쌌다.

평소라면 현대백화점 근방을 들고 나는 차들로 붐비고 있을 코엑스 인근 6차선도로가 한개 차선만 남기고 모두 비었다.

우리 나라 국격을 높이려면 이 공간은 '핵무기'와 '강대국만의 밀실 국제정치'를 반대하는 시위대가 배치되었어야 했다.

더 평화롭고 안전한 세계를 만들겠다는 그들의 노력. 정확하게는, '핵 독점'에 근거한 강대국 중심의 세계질서 유지.

지방에서까지 수만명이 동원되었다는 짭새들. 안쓰럽기도 하지만, 존재만으로도 위압적이고 명령조인 그들은 불편하다.

웃는 얼굴 탈을 뒤집어쓰고 있는 포도리 나부랭이 인형이라도 출동시켰다면 조금 나았으려나.

횡단보도 신호등이고 교통신호 시스템은 모조리 무용지물, 파란불로 깜빡이며 보행자를 인도하는 신호등이 무색하다.

G20때처럼 블럭 전체를 차벽으로 감싸고는 몇개 되지도 않는 출입문을 만들고. 금속탐지기와 엑스레이 탐색기를

지나도록 하는 경호처와 경찰 인력들. '완장'질에 대한 무조건반사적인 혐오일지도 모르지만 그들이 떽떽거리는 건 팩트.

대체 이런 회의가 한국에 도움이 되는 건 뭘까. G20때처럼 측정도 불가능한 국가브랜드 제고효과니 뭐니, 그딴 거

말고 당장 이 동네에서 출퇴근하거나 먹고 사는 사람들, 그리고 자율의 허울을 쓴 차량이부제 나부랭이의 부작용을

따져보란 말이다. 삼성역에 전철이 서지도 않고 버스도 내리지 않으며 셔틀버스 따위 제대로 챙겨주지도 않고,

코엑스몰이니 인근 음식점은 대부분 문을 닫아 밥한끼 챙겨먹기도 힘든데 '니가 누구냐'며 '가방엔 뭐냐'며

으르렁거리는 짭새들을 참아내주는 사람들의 피해 말이다.

소방차에 닭장차에, 이중 차벽으로 둘러쳐진 코엑스 인근을 다시금 한겹 커다란 차들이 둘러싸고 있다.

M본부니 K본부니 S본부 이외에도 온갖 종편 방송국들 차량까지 차곡차곡 주차되어 있다.


짭새들이 고생하는 걸 모르는 바 아니나, 민생에나 좀더 신경쓰는 게 어떨꼬. 이를 두고 개고생 혹은 MB시대의

아이콘이 된 노가다 도구의 이름을 빌어 '삽질'이라 한다.





벌써 아득한 옛일처럼 느껴지는 2010년 G20 서울정상회의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

아랫쪽에 얼핏 보면 '맹박'이라 잘못 읽힐 거 같은 대통령의 사인도 있다.

몇 번을 지나치면서도 늘 저게 무슨 기념물인가 싶어 궁금하기만 했었는데, 알고 보니까 그런 거다.

정상회의장 오찬장 벽면에 디자인된 로고를 잘라서 제작했다는, 일종의 재활용이랄까.


뭐..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키보드 앞 손가락들이 씰룩거리지만..그냥 하나만 궁금해 해보기로

한다. 저거 나중에 예컨대 경매 같은데 나온다 치면, 얼마나 하려나. 순수하게 가격이 궁금하단 차원.


1984 (반양장) - 10점
조지 오웰 지음, 김기혁 옮김/문학동네


솔직히 그런 책들이 있다. 제목을 워낙 많이 들었거나 그 핵심 아이디어라며 쉽사리 인용되는 한두가지 개념에

워낙 익숙해진 탓에 미처 읽기도 전에 이미 읽었다고 착각하고 마는 책. 예컨대 '빅브라더'같은 단어가 그런

착각을 일으킨다. 하루키의 1Q84를 두고 '아이큐84(IQ84)'라며 이상하게 읽어대는 어떤 문학평론가를 조소하다가,

그러고 보니 나 역시도 하루키가 1Q84라며 비튼 제목의 원전 격이랄 조지 오웰의 '1984'를 여태 읽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정말정말 굉장히 멋진 책이다. 하루키를 무지 좋아라 하지만, 그의 1Q84는 조지 오웰의 1984과 매우 '다르다.'

그리고 아마 2984년쯤에도 살아남아 찬사를 받을 작품은 조지 오웰의 1984일 거라는 데 걸겠다. 물론 두 작품은

제목 빼고는 별로 주제도, 내용도 겹치지 않으니 굳이 두 작품을 비교할 필요도 없겠지만. (그래도 굳이 1Q84를

제목으로 내건 하루키가 1984의 문학적 성취를 의식하고 호승심을 느끼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거다)


뭐랄까, 두 번째 이 책을 다시 읽었을 때 불현듯 마오쩌둥의 '영구혁명론'이 떠올랐다. 사회주의가 성취되기

위해서는 한번의 혁명, 한번의 전복으로 충분하지 않으며 애써 이뤄낸 성취가 무위로 돌아가거나 후퇴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모든 분야에 걸쳐 근본적인 변혁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게 그 '영구혁명론'의 대강인데,

이 책에서 그려지는 1984년의 세상은 그런 영구혁명이 진행되고 있는 세상인 거다. 다만 그 혁명은 위로부터의

혁명, 그러니까 기득권층, 더 적나라하게는 지배계급의 '영구혁명'이라는 점이 결정적인 차이겠다.


1984년의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권력, '빅브라더'는 역사의 흐름을 이해했다, 혹은 이해했다고 믿는다. 권력을 쥔

상층계급에 대항해서 자유와 평등, 정의 따위의 수식을 내건 중간계급이 하층계급을 끌어들여 그들을 전복시킨다.

그리고 중간계급은 상층계급으로 자리이동하고 다시 새로운 중간계급이 생성되어 다시 이 과정을 반복한다는

식의, 커다란 순환을 무한반복한다는 것이다. 이제 권력은 그 역사의 흐름을 이해했으니 그 지식을 활용하여

자신의 권력을 영구히 보유하려 한다. 중간계급이 성장하기 위해서 집적되어야 하는 부를 족족 소진시키고,

중간계급을 각성시키기 위한 지식을 황폐화시키겠다는 황당하지만 살벌한 전략. 그게 지배계급의, 지배계급을

위한, 지배계급에 의한 '영구혁명'의 목표다.


듣기엔 우습지만 그 결과는 참담하다. 온 인류를 먹여살리고 노동에서 해방시킬 수 있을 만큼 경이로운 수준에

오른 생산력은 주변국과의 쉼없는 전쟁을 위한 총과 대포를 위해 소모된다. 현재의 세상을 비교하고 평가하기

위한 나침반이자 전거로서 기능해야 할 과거의 역사, 과거의 지식은 매시간 새롭게 씌여진다. 늘 전시체제 하에서

동원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제 전쟁이 없던 시기를 기억하지 못하며, 배급되는 신발과 면도날의 질과 양이

불과 일년 전에 비해서도 양호해졌는지를 따지지 못한다. 그들은 전쟁의 광기에 불현듯 휩싸이면 빅브라더를

위해 만세를 부르며, 집안 화장실마저 감시하는 사상경찰 하에서 억지웃음을 지을 뿐이다.


권력이 자원을 무익하고 비생산적인 쪽으로 소모해버리고 적극적으로 이데올로기를 동원해 자신들을 정당화하는

건 2010년 지구에서는 이미 익숙해져 버린 풍경이다. 한국만 해도, 온 국민을 먹여살리고 북녁의 주민들까지

먹여살릴 수 있을만큼의 풍요한 자원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굳이 희소하게 만들어 버린다. 전쟁무기를

구매하고 국외와의 불공정한 경쟁에 노출시키며 4대강 같은 무익한 사업에 쏟아부으며 '소모'하고 있다는 현실이다.

그러면서 자신들을 옹호하기 위한 논리와 이데올로기를 만들기에도 게으르지 않다. 권력과 언론간 '반복과 차용'의

근친교배를 통해 사실로 굳어져버리고 마는 정치적 프로파간다들. 천안함 사태가 그렇고, G20가 그렇고,

사대강 사업이 그렇고, FTA옹호론이 그렇다. 그 와중에 국내이슈를 덮어버리는 애국 마케팅도 절묘하다.


조지 오웰의 상상력은, 그렇지만 이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괜히 그를 '디스토피아'의 무시무시한 재현자로

이야기하는 게 아닌 거다. 이들, '빅브라더'를 전면에 내세운 채 역사의 수레바퀴를 멈춰버리려는 이들은 사회를

통제하고 구조를 고착화시키려 안간힘을 쓸 뿐만 아니라 아예 인간의 사고 자체를 개조하려 든다. 기계에서

자동으로 배열된 몇가지 단어로 짜맞춰진 시와 노래만을 유포하고, '섹스를 더럽게 변질시켜' 억압된 성욕을

전투적인 증오심과 지도자 숭배로 전환시키는 거다. 근본적으로는 인간의 사고능력을 둔화시키고 제거하기

위해서 언어 그 자체를 새롭게 정리한다. 어휘를 계속 줄이고 줄여서 생각의 폭을 좁히고, 결국에는 생각할

필요도 없는 기계인간을 만드는 것이 빅브라더가 생각하는 혁명의 완수.


빅브라더의 생각대로 될까. 미묘한 차이를 드러내는 다양한 동사와 형용사들, 깊은 사고와 반성을 가능케 하는

관념어들이 없어지면, 정말 인간이 변화할까. 그리고 신발깔창처럼 제작되는 노래와 시들이 재래의 예술을

대체하면 인간의 문화는 황폐해지고 말까. 성욕을 억압하면 인간들이 까칠해져버려서 전투적으로 변하고

전시상태의 비인간성을 흔쾌히 받아들이게 되는 걸까. 전통적 가정을 하나의 상호 감시단위로 변화시킬 정도의

강력한 감시와 통제라면 그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수락할 수 밖에 없게 될까.


모르겠지만, 조지 오웰은 그렇다, 그렇다, 그렇다고 말한다. 이미 그의 주인공 윈스턴조차 찢겨진 시체의 팔목을

무심히 발로 차내어 버릴만큼 황폐해졌고, 자신을 미행하는 사람을 곡괭이로 살해하고 말겠다 다짐할 만큼 살벌하다.

결국 지독한 고문과 자기 부정을 거쳐 윈스턴이 빅브라더를 사랑한다 고백하는 최후의 순간에 이르면, 오웰의

예측은 옳은 것이었다고 동의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되고 마는 거다. 이런 상황이라면, 이런 상황에까지 몰리면

인간은 멸종하고 말겠구나, 역사는 멈추고 말겠구나, 기껍지는 않지만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거다.


그게 단순히 조지 오웰의 '사고 실험'이었으면 좋겠다. 아직 어떤 권력도 빅브라더만큼 철저하게 국민들을

통제한 바 없으며, 언어를 조직적으로 퇴화시키는 건 고사하고 문화와 사생활과 사고방식을 규율하고 억압한

적은 없다고 믿고 싶다. 그렇지만 불길하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한 인간 신체에 대한 구속력-생체권력-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해졌고, 국가와 자본주의의 동학 내에서 대중문화는 스스로 천박해진지 오래다. 전신을

스캐닝하고 개인정보와 생체정보를 집적하며,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란 너무 쉬워졌다. 민주주의의 이름을

팔아 하향평준화를 강제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자기 성찰과 반성적 사고를 단련하기 위한 시간은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이슈들에 선점당한다고 느낀다면, 너무 시니컬한 건가.


다행히 아직은 그렇게까지 위태롭지 않다고 해도, 조지 오웰의 이 암울하고 염세적인 이야기는 여전히 값지다.

자연스런 흥망성쇠의 역사 흐름을 멈춘 채 현재의 지위와 특권을 영원히 장악하겠다는 그들 권력자들의 욕심은,

조지 오웰이 그 결과로 그려낸 세상은 낯설지언정, 그 욕심 자체는 지독히도 진부하고 익숙한 거다. 그들은

언제고 둘 더하기 둘은 다섯이라며, 그들을 위해 유리한 시각으로 세상을 보기를 강권한다. 너무도 익숙한

이야기 아닌가. 4대강은 운하가 아니고, FTA는 모두에게 유리하며, 아랍인은 테러리스트이고, 미국은 영원한

우방이자 세계경찰이고, 그리고 둘 더하기 둘은 다섯이란 이야기.


둘 더하기 둘은 다섯이다. 2+2=5, 라디오헤드의 이노래가 1984의 이 대목에서 비롯한 건 아닐까.

이제 끔찍해질 거야, 도망칠 곳은 없어. 비명을 지르고 고함을 쳐도 이제 너무 늦었어.


Are you such a dreamer
To put the world to rights?
I stay home forever
Where two and two always makes up five

I lay down the tracks
Sandbag and hide
January has april′s showers
And two and two always makes up five

Its the devil′s way now
There is no way out

You can SCREAM IT, you can shout
It is too late now

Because...
You′re not there!

payin′ attention
payin′ attention
payin′ attention
payin′ attention
You have not been paying attention

paying attention
paying attention
WHEN I SAY SOON oohh

I try to sing along
But I get it all wrong
′Cause I’m not
′Cause I’m not

I swat ′em like flies but like flies the buggers keep coming back NOT
But I’m not

All hail to the thief
All hail to the thief

But I′m not
But I′m not
But I′m not
But I′m not

Don′t question my authority or put me in the box
′Cause I′m not
′Cause I′m not

Oh go and tell the king that the sky is falling in

When it′s not
But it′s not
But it′s not
Maybe not
Maybe not

길을 걷다가 문득 이상한 광고 같은 걸 발견했다. 서울시의 상징이라는 해태가 몸을 뒤틀고 있는

정류장 옆으로 서울시가 표준화한 구둣방 한쪽벽에 붙어있었다. 아직 몇 걸음 앞에 있던 풍경,

뭔지 뚜렷이 보이진 않지만 왠 금빛 동상같은 형체 옆으로 어렴풋한 세 글자는 분명 표.창.장.

헉. 정말 허걱이다. 표창장 맞다. 직장인 여러분에게 서울특별시가 주는 표창장이랜다. 상장 모양의

광고에는 심지어 서울특별시의 휘장까지 금박으로 박혀서 레알 표창장의 흉내를 제대로 냈다.

직장인 여러분에게 서울시의 빛나는 영광을 돌린다니,  대체 무슨 영광이고 뭘 표창하나 했더니

그놈의 G20이다. 죽지도 않고 또 온 각설이마냥.

표창장 문구 왼쪽에 그려진 건 상패라고 해야 하나, '위대한 서울시민상'이란 간질거리는 이름도

이름이지만, 황금빛 번쩍이는 직장인이 겉옷을 벗고 둘러멘채 가방을 든 모습도 왠지 비장하고

의연하고 영웅적으로 보이는 게 굉장히 간질간질하다. 


서울시가 직장인 여러분에게 (언제 줬는지도 모르게) 주는 상패에 담긴 문구.

"직장인 여러분, 여러분은 서울시를 세계가 놀랄만한 눈부신 성장을 이뤄낸 도시로 만들어주셨기에

이에 서울을 빛낸 '위대한 서울시민'으로 임명합니다."


G20 준비한다며 오바육바 떨어가며 온갖 불편을 끼쳐대고 과잉대응을 해대더니, 순식간에

잊혀져버린 성과없는 말잔치라기엔 뭔가 아쉬웠던 걸까. 이런 식의 광고라니. 왜 하필 '직장인'만

대상으로 주는 건지 모르겠다. 다른 비직장인들은, 특히나 수능까지 늦췄던 학생들은.


취업 준비중인 대학생들한테는 안 감사한가. 이왕임 그들 앞으로도 하나 만들어서 도시 곳곳에

나부끼는 건 어떨지. 이력서 경력에 한줄 적도록. 수훈사항, 서울시에서 '위대한 서울시민상' 받음.



청계천에서 열리고 있는 2010년 세계등축제, 얼마전 화재사고가 터지는 등 불상사가 있었지만

워낙 사람들이 몰리고 호응이 좋은 탓에 일주일인가 축제기간이 늘었다고 했다. 정확히는 몰라도

슬쩍 주워들은 이야기만 믿고서 다짜고짜 청계천으로.

십장생들, 학과 영지버섯, 거북이 등등이 소라광장에서부터 시작. 청계천 양쪽 수변으로는

색색의 등들이 두 줄로 내걸려 있었고, 아랫쪽 통행로는 사람들이 기차놀이를 하며 순례중.

연보랏빛 벚꽃도 샤방하지만 그 나무에 슬몃 몸을 기댄 소녀는 더욱 샤방샤방.

용궁을 형상화한 듯 사람몸통만한 잉어들이 펄떡이며 호위하고 있는 화려한 구중궁궐.

중국의 경극에서 볼 수 있는 변검을 소재로 한 등인 거 같은데, 자꾸 어딘가의 도박장이 떠오르는

이유는 뭔지 모르겠다. 빠찡꼬의 색감과 비슷해서 그런 듯.

굉장히 역동적인 동작을 보여주는 두 개의 등. 일본의 무사거나 신 아닐까 싶은데, 얼굴에

빨간 칠하고 칼든 저 분은 스트리트 파이터의 옛 캐릭터 혼다를 닮았다.

타이완에서 온 이 아저씨는, 주위에 금전을 질펀하게 깔아두고 '금전의 신' 행세를 하는 중.

남미의 어느 나라에선가 왔다는 이 초록빛깔 괴물등과 그 너머 캄보디아의 앙코르왓 모양의 등.

피사의 사탑이 원래 이 정도로 심하게 기울었나, 싶도록 완전 기우뚱한 등은 좀 위태위태해 보인다.

2012 여수세계박람회의 마스코트들인 듯. 뭐, 치렁치렁한 머릿결 외에는 그다지 특징적이지는

않은 캐릭터란 생각이 조금.

그러고 보니 대충 한 달 후면 크리스마스도 오는구나. 굉장히 심플하게 만들어진 형태지만

이런저런 그림들이 그 단순한 형태를 잘 보완해서 이쁘게 만들어진 듯. 살풋 부푼 별도 그렇고.

여기는 G20를 위한 공간, 스무 개 나라의 국기가 청사초롱으로 만들어져 빛나고 있었다.

'지난 인생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운운 할 때의 그 주마등, 등 안에 초를 켜두고 밑에 바람개비를

달아두면 안에 있는 그림통이 빙빙 도는 대류현상이 일어나서 '말이 움직이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해서 주마등이라고 한다. 스무 개 나라에서 온 말과 국기가 함께 빙빙 돌던 주마등, 아무 것도

성취없이 원점으로 도로 돌아간 G20 서울 서밋의 훌륭한 상징이긴 하겠다.

익살스런 표정의 장승들, 특히나 활짝 잇몸을 드러내며 웃고 있는 지하여장군의 기백이 대박이다.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한국의 전래동화를 소재로 제작한 등 중에서 가장 맘에 들던 것 하나.

마침 올해가 호랑이해였고 내년이 토끼해니까, 늘어지게 퍼져앉은 호랑이 옆에서 담배연기

훔쳐 마시고 있는 눈빨간 토끼녀석이 좀더 눈에 밟히는 건지도 모르지만.

여기도 토끼, 이 녀석은 좀 덜 귀엽다. 밑에 있는 별주부 녀석은 뭐가 좋은지 헤벌레, 아, 금세라도

토끼 녀석의 간을 빼다가 용왕님 병을 고칠 수 있다는 기쁨에 은근슬쩍 잠겨 있을 때겠구나.

등불만 봐도 전체 스토리를 빠바박 떠올릴 만한 몇 개의 동화 내용들이 담긴 아름다운 등들이

지나가고, 그 담에는 좀더 경쾌하고 즐거운 모양의 등불들이 등장. 제기를 차거나 말뚝박기를

하느라 시간가는 줄 모르고 노는 어린이들. 그렇지만 가만히 보면 말뚝으로 박혀있는 녀석의

표정이 썩 밝고 재미있지만은 않다. 외려 굉장한 리얼리티.ㅋ

눈이 벌건 거북선도 떠있었다. 토끼의 해를 맞이하여 거북선의 용머리 눈알도 토끼눈처럼

빨갛게 충혈시켜주는 건 센스일지도.

뜬금없지만 무지 귀엽던 개 등불 옆을 지나, 메뚜기가 느적거리고 쇠똥구리가 거대한 똥을 말고 있는

풀밭을 지났다. 그러다보니 거의 종로1가쯤까지 걸은 듯 하다.

세계등축제의 마지막 전시 등불은 뭔가 '등불'의 개념파괴를 시도한 듯한 LED조명이 휙휙

지나다니는 강아지 한 마리. 파트라슈의 개처럼 얼룩덜룩한 무늬가 개의 온몸에서 이리저리

옮겨다녔는데, 그냥 난 좀전에 있었던 그 귀엽고 작지만 따뜻한 불빛을 품고 있는 강아지가 좋았다.

그리고 조금 맘에 걸리던 것들, 청계천을 대낮같이 밝힌 등불과 청계천 수로 가운데에 수십개씩

설치된 철구조물 때문인지 수로 가장자리에 잔뜩 뭉친 채 부유하고 있던 조그마한 물고기들.

치어 수준의 어린 물고기들 같았는데, 이 녀석들은 어느 수족관에서 사왔을라나.

당장 눈에는 보기 좋고 사진찍기 이쁘기는 하다지만 그런 등불들이 청계천 위에 둥둥 떠있는 듯한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서는 수로 바닥에 이렇듯 튼튼한 철제 구조물을 받쳐두어야 하는 거다.

저것들이 위생상 괜찮은 건지도 모르겠고, 밤 시간에 저렇게 밝은 불빛들이 한동안 켜져 있어도

수중 생태에 괜찮은 건지도 모르겠고, 저런 장애물들이 수로에 잔뜩 있으니 물 흐름에 장애가

생기지 않을지 그것도 모르겠고.

돌아나오는 길, 청계천 내에는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지 않다는 표지판이 보였다. 물흐름장애 및

수질오염방지를 위한다는 명목인데, 두 가지 전부 세계등축제에도 해당될 여지가 있어보인다.

청계천이 정말 복개천인지 아니면 거대한 인공수조인지, 거기 사는 물고기들이 생태계가 되살아난

증거인지 아니면 서울시청에서 사다가 뿌린 건지, 따위의 문제들은 이미 많이 지적되었으니 생략.


다만, 마치 백조가 물 위에서 우아하고 아름답게 미끄러져 다니는 것 같아도 그 밑에서는 쉼없이,

그리고 고생스럽게 물갈퀴를 젓고 있다는 이야기처럼, 사람들이 한줄로 서서 순례하듯 구경하는

어여쁜 세계등축제가 벌어진 청계천 수중에서는 뭔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고생스럽고 힘겨운

삶을 사는 물고기나 수중생태계가 있음을 한번쯤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파란 지붕 아래 살고 계신 G님,


G20 마치고 모쪼록 미끄럼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천안함 사건을 정략적으로 이용하기에 골몰해서 객관적인 증거조차 부실한데 남북대결을 조장한 점,

민간인은 물론이고 여당 정치인까지 사찰하더니 이제는 범죄조직처럼 대포폰까지 동원한 점,

UAE에 원전 반값에 후려쳐서 들이밀고는 이 나라 군인들을 용병으로 끼워판 점,

한미FTA 협상에서 자동차만 내준다더니 은근슬쩍 쇠고기까지 내주려 하는 점,

국가안보를 포기했다던 전정권들에서조차 반대했던 124층 제2롯데월드를 순식간에 허용해준 점,

동네 구석구석 자리한 SSM문제로 지역 상권이 무너지지만 기껏 목도리 하나로 입씻으려 하는 점,

정권의 나팔수 KBS 수신료 인상시켜서 조중동의 종편채널 배불려주려고 야금야금 진행중인 점,

복지의 기본틀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나라에서 부자들을 위한 감세정책만 펼치고 있는 점,

모범적이던 인권위 파행으로 몰아넣는 등 강부자, 고소영 식의 코드인사로 문제를 일으킨 점,

견찰, 떡찰을 동원한 전직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과 노골적 비난을 통해 자살을 교사한 점,

세계 어느 나라보다 종교간 불화가 없던 나라에서 노골적인 기독교 편향을 드러내어 갈등을 조장한 점,

국민들이 원하면 안 하겠다더니 4대강이 결국 수심6미터 이상의 대운하로 변신중인 점,

용산에서 타죽어간 철거민들의 눈물은 나몰라라 부동산거품 키우기에 혈안인 점,

노사협상 테이블에 경찰이 들이닥쳐 급기야 노측 대표가 분신까지 시도하게 사주한 점,

반값 등록금 따위 대선공약은 고사하고 비리사학 부활시키고 비정규직만 양산하는 점..


여기저기 G덫이 너무너무 많습니다.

친구분들과 사진 찍으실 때는 모쪼록 '기무치' 대신 '김치'라고 해주시기 바라며,

친구분들께 각 나라 언어로 '미끄럼주의'가 무언지도 꼭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 더, 옆의 미키마우스와 너무 친한 척 하다가 다른 큰 나라 쥐들에게 단체로 다구리당하는

불상사는 피하시길,



P.S. 님의 죄목에 더 추가될 굵직굵직할 항목이 뭐가 있을까요. 워낙 많은 일들이 순식간에 벌어져 놓은지라

하나하나 헤아리기도 쉽지 않네요.

(사진은 한겨레 재인용)

경찰이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 공식 포스터에 풍자그림을 그린 시민을 강제연행한 뒤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법원에서 기각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경찰이 G20 회의를 앞두고 과잉 대응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2일 서울 남대문경찰서 등의 설명을 종합하면, 경찰은 지난달 31일 G20 공식 포스터에 풍자그림을 그리던 박아무개(40·번역가)씨 등 2명을 긴급체포한 뒤 박씨에 대해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공동손괴)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그러나 법원은 2일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달 31일 오전 1시30분쯤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주변 가판대에 붙여진 G20 홍보 포스터 7장에 검은색 스프레이를 이용해 쥐 그림을 그려 훼손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이 그린 풍자 그림은 “세계가 대한민국을 주목합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세계지도를 바탕으로 청사초롱이 그려진 G20 공식포스터 오른쪽에 쥐가 등의 손잡이를 쥐고 있는 모습이다.


박씨는 “회원국이 돌아가면서 주최하는 의례적인 행사를 정부가 너무 호들갑스럽게 포장하고 있는 것 같아 풍자하고 싶었을 뿐인데 경찰이 구속영장까지 신청해 놀랐다”고 말했다. 박씨의 변호인인 박주민 변호사는 “불과 몇 달 전에도 서울시 홍보 포스터에 대학생들이 풍자글을 쓴 것이 방송에 나왔음에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경찰이 G20을 앞두고 본보기로 박씨를 혼내주려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조창배 남대문서 형사과장은 “국익을 위해 중요한 국제 행사를 앞두고 국격을 높이는 국가 홍보물을 더럽히는 것이 (시민의) 정상적인 사고라고 생각하기 어려운데다 사안이 가볍지 않다고 판단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G20 포스터에 쥐 그렸다고 구속영장 신청? 한겨레  2010.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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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정상적인 사고'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넘의 쥐 참 잘 생겼다.

경향 보도에 따르면 구속될 뻔 했던 두 사람은 "경찰 조사에서 이들은 “단지 G20의 ‘G’라서 쥐를 그린 것일 뿐”이라면서 “정부가 G20에 매몰된 상황을 유머스럽게 표현하려 한 것인데, 이 정도 유머도 용납이 안되느냐”고 말했다고.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그 정도 유머도 경찰이 내달려와 구속시키겠다 으름장 놓는 게 현실인 나라라면.ㅜㅜㅜㅜ




더이상의 논평을 주렁주렁 다는 건 무의미한 노릇, 그냥 오늘 이슈가 되고 있는 블룸버그통신의

G-20에 관한 한국 정부의 자세를 비판하다 못해 빈정거리는 듯하게까지 느껴지는 기사 원문은

대체 어떤가 싶어 따왔다.


(원문)

City officials leave their desks this week to sweep the streets of Seoul while seven-year-old children study economics as South Korea mobilizes its citizens for the Group of 20 meeting.

 

Posters hail the summit and video billboards tower above central Seoul exhorting its 10 million citizens to mind their manners when Barack Obama and Hu Jintao visit on Nov. 11-12.

 

South Korea President Lee Myung Bak, nicknamed “bulldozer” during his days running the nation’s biggest construction company, is deploying up to 60,000 police and troops to avoid the burning cars, smashed windows and 900 arrests that marked the last G-20 meeting in Toronto in June.

 

“I cried tears and Korea’s national anthem echoed in my heart when South Korea was selected to host the G-20 summit,” a fourth-grader wrote in a posting on a children’s website hosted by naver.com, South Korea’s most-visited internet portal.

 

The child, whose name and school are not identified to protect their privacy, is among hundreds who have posted questions on the site asking for help with G-20 homework projects. The Kids Chosun Ilbo, the junior edition of the nation’s highest circulation newspaper, published a page-2 article Oct. 26 explaining the currency market and the contents of the communique issued by G-20 financial chiefs on Oct. 23.

 

Lee hailed the event as a chance for the country to be a “protagonist in world affairs” in an Oct. 18 nationwide radio address. Advertisements on television promote the G-20 as an occasion to celebrate the nation’s rise from the ruins of the 1950-53 Korean War to Asia’s fourth-biggest economy.

 

Korean War

 

Demonstrators in Europe and North America clashed with police at previous G-20 meetings in Pittsburgh and London. The International Monetary Fund’s $57 billion bailout of South Korea during the 1997 Asian financial crisis, which helped avert the economy’s collapse, also triggered protests in Seoul over bank sales and job losses.

 

The city of Gyeongju in the south of the country provided a taste of what’s to come this time when it asked local farmers to grow special apples for the meeting of G-20 finance chiefs last month. The farmers ripened parts of each apple’s skin at varying rates to produce the name of a G-20 country on each fruit.

 

In Seoul, the education ministry postponed college entrance examinations by a week until Nov. 18 so they don’t clash with the summit. Schools in the vicinity of Coex, the meeting’s venue, may change their hours to cut traffic, according to Kim In Jong, chief of the presidential security service.

 

Hyundai Limos

 

Hyundai Motor Co., the nation’s largest automaker, on Oct. 28 delivered 129 vehicles to summit organizers, including Equus limousines to chauffer leaders from Incheon airport and around Seoul. KT Corp., South Korea’s largest provider of phone and Internet services, is providing smartphones and tablet computers for leaders and senior officials.

 

“We’re ready to make it possible for participants from overseas to watch TV channels from back home,” Seok Ho Ik, vice chairman of KT Corp., said last month. “We want to go beyond just providing communication support for the meetings, to promote South Korea as the No. 1 country for IT.”

 

Kim of the presidential security service said 20,000 police officers are being mobilized to keep demonstrators away from the Coex conference site in southern Seoul.

 

“We will deal with violent protests with a level of strictness never before seen,” he said at a briefing on Oct. 8.

 

Protest History

 

Kim also said South Korea is on alert for possible threats from North Korea, including explosions at “major facilities,” suicide bombings, chemical assaults or cyber attacks.

 

North Korea’s state-run Rodong Sinmun newspaper today said the South’s security preparations were “slander.”

 

“All this fuss has an extremely provocative and foul nature,” the newspaper said in an editorial carried by the Korean Central News Agency.

 

South Korea has a history of street protests over labor issues and demonstrations at gatherings of world leaders in the region. At an 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summit in Busan in November 2005 attended by then U.S. President George W. Bush., riot police used water cannons and batons to disperse 30,000 protesters, some wielding iron bars.

 

Human Rights

 

In Hong Kong less than a month later, at least 1,500 South Korean farmers rallied outside World Trade Organization talks, many battling with police in the city’s worst violence in a decade.

 

Disruptive demonstrations, often focused on poverty, the environment or human rights, have been a feature of world summits since riots broke out in Seattle at World Trade Organization talks in 1999.

 

Kim said he’s obtained intelligence on 500 people with a history of organizing violent protests, who will be kept out of the country or closely watched. A further 40,000 police and troops will be on hand to guard against attacks by international terrorists or North Korea, Kim said.

 

Heavy-handed tactics may not go down well with visiting dignitaries. Singapore was criticized when it deployed 10,000 security personnel and banned outdoor protests in 2006 during World Bank and International Monetary Fund meetings. Then World Bank President Paul Wolfowitz said the city-state suffered “enormous damage” to its reputation.


‘Divided Nation’

 

South Korea’s $832.5 billion economy grew more than fourfold since the Summer Olympics in 1988, a year after South Korea emerged from almost three decades of military dictatorship.

 

“The event will help raise global awareness of South Korea, whose image has been predominantly that of a divided nation or just another fast-developing economy,” said Lee Dong Hun, a research fellow at Samsung Economic Research Institute. “This is a chance for South Korea to elevate its status as a real contributor and lead player in global affairs.”

 

He estimates South Korea can reap at least 21.6 trillion won ($19.2 billion) from hosting the G-20 meetings as increased global recognition helps boost exports. South Korea’s economy is forecast to grow at 6 percent this year.

 

Still, more than 430 stores inside the Coex site may suffer reduced sales on Nov. 12, when ordinary citizens will be banned from entering the building as security is tightened for leaders including U.S. President Obama.

 

Shuttered Stores

 

Hyundai Department Store Co. said it will close its Coex branch on Nov. 11 and 12. Average weekday sales in November last year were about 1.5 billion won, the Seoul-based company, said in an Oct. 26 e-mail response to questions.

 

South Korean sports personalities and film stars have joined the call to promote the event.

 

Kim Yuna, the Olympic champion figure skater dubbed Queen Yuna by her fans, joined Manchester United soccer player Park Ji Sung as goodwill ambassadors for the summit. A 20 meter high by 100 meter wide poster featuring Kim and actress Han Hyo Joo in front of Seoul City Hall bears the slogan: “The world’s future opens with Korea.”

 

“Girls Generation,” a nine-member pop group famous at home and in Japan for songs including “Kissing You” and “Baby Baby,” joined a team of stars supporting the event.

 

Today, Yeun Jae Han, 48, an assistant director with the Seoul Metropolitan Government’s environment management division, will head out to the conference venue to help volunteers scrape gum from nearby streets.

 

“I’m so proud of being part of this meaningful event for the nation,” he said.

 

To contact the reporters on this story: Bomi Lim in Seoul at blim30@bloomberg.net Jungmin Hong in Seoul at jhong47@bloomberg.net

 

To contact the editors responsible for this story: Bill Austin at billaustin@bloomberg.net Will McSheehy at wmcsheehy@bloomberg.ne

 

By Bomi Lim and Jungmin Hong - Nov 1, 2010

* G20멀미가 날 지경이다. G20성공개최를 기원하는 음악회에, 바겐세일에, 각종 이벤트 행사에, 심지어

금융권에서는 G20 성공개최 기원 예/적금까지 팔고 있다. 미쳤다. 미친 소리를 한두번 하는 게 아니라

언론 보도와 온갖 홍보 기제를 동원해 지껄이니 미친 소리가 진지하게 들리는 와중이었다. 회원국들이

돌아가며 대륙별로 열리는 행사, 순번에 따라 아시아 서울에서 열린 것 뿐인데 이토록 난리부르스다.

걍 닥치고 있었는데 속이 후련한 기사가 떠서 공유. 프레시안 2010/11/01, 방금 오른 따뜻한 글.*


"G20 두번 하면, 전국민 1년간 놀고 먹는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코 앞으로 다가왔다. G20은 한국을 포함한 20개 나라가 금융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는 회의다.

정부는 G20 서울정상회의를 최대 치적으로 포장하는 모양새다. 이명박 대통령은 1일 라디오연설에서 "서울 G20정상회의 개최를 통해서 대한민국은 국제사회 질서를 주도적으로 이끄는 나라로 한 단계 도약하게 되었다"고 강조했다. 이미 각급 금융기관들은 G20 정상회의에 따른 경제효과가 수십조 원에 달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고 있다.

단 이틀간 열리는 회의를 두고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나온다. 예상 경제효과 규모가 2002한일 월드컵보다 더 크게 추산된 이유를 알기 어렵고, 정상회의 결과에 따라서는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에 가까운 이익까지 챙길 수 있다는 전망은 지나치게 부풀려졌다는 이유다.

▲1일 오전 경찰이 미국대사관 인근을 수색하고 있다. 이날부로 경찰청은 서울에 을호비상령을 내렸으며, 오는 6일부터는 전국에 갑호비상령이 떨어진다. 이번 G20 정상회담에 대비해 경찰은 역대 최대 호위인원인 5만여 명을 배치키로 했다. ⓒ뉴시스

G20 경제효과 31조?

현재 G20 정상회의의 경제효과를 추산한 대표적 연구기관은 무역협회 산하 국제무역연구원과 삼성그룹의 삼성경제연구소다. 국제무역연구원은 G20 정상회의 개최로 내년부터 발생하는 경제효과는 31조3000억 원에 달하며 이로 인해 16만6000여명의 고용효과도 얻을 것으로 전망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최소 21조5000억 원에서 최대 24조5000억 원의 간접 경제효과를 예상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국제무역연구원은 G20 정상회의 결과 국제공조가 성공한다면, 그로 인해 총 450조 원이 넘는 막대한 경제효과를 얻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한국 GDP(1000조 원)의 절반에 가까운 수치다. 국제무역연구원 말만 따르면, G20 정상회의를 두 번만 열면 우리나라 전국민이 1년간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는 셈이다.

이와 같은 놀라운 결과의 주요 원인은 간접효과다. 수출기업들의 광고비가 절감되는 등 직접적인 경제자극 효과는 수천억 원에 불과하다.

이와 관련, 국제무역연구원은 "외국인 내방객들의 지출과 그로 인한 부가가치 상승으로 969억 원의 직접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추산한 직접효과는 1023억 원이다. 짧은 기간 안에 이와 같은 대규모 지출이 일어날 수 있느냐는 지적에 대해 이들은 정상들이 모이는 만큼 씀씀이가 클 것이라는 점을 내세웠다.

결국 예상 경제효과의 대부분이 언제 어떤 식으로 발생할지 가늠하기 어려운 간접효과다. 우선 국제무역연구원 자료를 보면 G20 정상회의에 따라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코리아 프리미엄'으로 변하는데 따른 한국 기업의 광고효과가 1억5000만 달러에 달한다. 이는 종전보다 기업들의 광고비 5.3%가 늘어난 것과 같은 결과로, 이에 따라 수출 3.9%가 증가한다. 이렇게 늘어난 추정 수출이익이 20조1427억 원(173억 달러)이다.

보고서를 작성한 국제무역연구원 관계자는 "광고효과(1억5000만 달러)는 직전 G20 개최국인 캐나다의 광고효과 1억 달러를 토대로 추산했고, 기업들의 매출대비 광고선전비를 조사한 한국은행 자료(매출의 광고비 탄력성 0.72)를 바탕으로 광고효과에 따른 기업 이익을 계산했다"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경우 간접적 파급효과 21조5000억 원의 근거로 △국가이미지 제고에 따른 기업이미지 동반 상승 효과 1조 원 이상 △광고효과에 따른 기업 인지도 1.3%포인트 이상 상승 등에 따른 수출 증대 효과가 최소 19조 원에서 21조9000억 원에 달하리라고 봤다.

보고서를 쓴 삼성경제연구소 관계자는 "서베이 결과 G20 정상회의에 따라 우리나라 인지도가 1.3%포인트 이상 오르리라는 대답이 나왔다. 연구소에서는 이에 따른 기업 이미지 상승률이 1%포인트가량 되리라고 추정했다"며 "매출의 광고비 탄력성을 0.194로 잡아 경제효과를 산출했다"고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삼성경제연구소가 국제무역연구원에 비해 광고효과에 따른 매출증대효과를 더 보수적으로 잡아 추정 경제효과가 차이가 났을 뿐, 미래 추정이익 산출 방식에는 큰 차이가 없었던 셈이다.

근거 있나

문제는 이렇게 산출된 경제효과가 실질적인 근거를 갖고 있느냐다. 이들 연구기관의 발표자료를 보고 직접 관련 데이터의 적합성을 연구했던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이와 같은 대규모 이벤트에 따른 유의미한 수치는 결코 나오지 않았다"며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홍 연구위원은 "G20보다 실질적 투자와 경제효과, 국가 브랜드 제고의 가치가 훨씬 컸던 1988년 서울 올림픽, 2002 한일 월드컵 전후 경제데이터를 분석했으나 유의미한 통계를 찾지 못했다"며 "심지어 서울 올림픽 이후 우리나라의 수출 증가율은 오히려 뚝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홍 연구위원은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국내 고용 유발 효과가 없고, 방문객 수가 적고 기간도 짧은 G20 정상회의에서 대규모 경제효과가 발생할 리가 없다"며 "매일 전세계를 돌아다니면서 투자결정을 내리는 기업인들이, 세계 정상들이 모였다는 이유만으로 한국 상품을 더 사기로 생각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되물었다.

당장 한일 월드컵 당시와 비교해봐도 이번 보고서들은 지나치게 근거를 잡기 어려운 간접효과를 강조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한일 월드컵 유치로 인한 직접 부가가치 창출액 5조3000억 원, 생산유발 효과 11조5000억 원을 추산했고, 간접 효과는 100조 원으로 산정했다. 이는 국제무역연구원이 추산한 G20의 최대 경제효과(450조 원)의 4분의 1에도 못 미친다.

그마저도 파악이 불가능한 결과다. 한국 경제가 월드컵 유치로 인해 이득을 누리고 있다는 연구결과는 이후 나오지 않았다. 최근 경제위기 탈출이 월드컵으로 인한 것인지, 한은의 저금리 기조 덕분인지, 정부의 정책 덕분인지를 설명할 수 있는 어떤 조사도 불가능하다.

이와 같은 지적에 대해 해당 보고서 작성자들은 "G20를 몰라서 하는 소리"라고 해명한다.

삼성경제연구소 관계자는 "이전에 G20 정상회의를 열었던 캐나다, 미국, 영국은 세계인 누구나 아는 선진국이지만 한국은 G7이 G20로 확장된 후 이를 개최하는 첫 개발도상국"이라며 "G20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대표주자로 한국이 뽑힌 효과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심지어 정부 관계자들조차 G20의 중요도에 대해 큰 생각을 하지 않아 답답한 마음으로 보고서를 썼다"며 "당장 지정학적 위험 감소에 따른 해외 조달비용 감소 효과만 1조4000억 원에 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선전도구로 지나치게 활용"

▲이명박 대통령은 G20 정상회의 서울 유치를 큰 업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G20 정상회의는 회원국들이 번갈아가며 유치하는 행사다. ⓒ뉴시스
그러나 여지껏 정상급 회의를 유치한 개발도상국이 많지만 이들 국가가 이 회의로 인한 혜택을 누린다는 근거는 찾기 어렵다. 한국의 독립을 논의한 카이로회담 개최지 이집트가 이후 누린 경제적 이득이 얼마였는지, 환경보전의 지구적 선언을 이끌어낸 브라질 리우선언 결과 브라질 경제가 얻은 이득은 쉽게 설명하기 어렵다.

김명록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두 연구기관의 보고서를 보면 온갖 추정이 가득해 굉장히 주관적"이라며 "발표자의 생각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어 전혀 객관적이지 않다"고 비판했다.

그는 "정부가 G20을 마치 선전도구인양 활용하고 있는데, 그 안에서 논의되는 내용이 어떠냐가 더 중요하다"며 "지금으로선 후진국 개발이슈, 금융개혁 논의 등이 제대로 논의되지 못할 가능성이 있는만큼, 한국에서 열리는 회의가 특별한 상징성을 갖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 이명박 대통령은 G20 정상회의의 서울 개최가 확정된 후 "총성 없는 전쟁터"라는 말을 쓸 정도로 업적임을 강조했으나, G20 정상회의는 회원국들이 대륙별로 돌아가며 개최하는 회의다. 어차피 한국에서 열릴 수밖에 없다.

/이대희 기자

#1.

대학신문 쪽에서 2학기 개강호에 회사 광고를 실어달라며 컨택이 왔다. 

인지도 못 올려서 안달난 회사도 아니고, 광고라니 뜬금없다 싶었는데 갑자기 1면에 커다랗게 광고를 싣기로.

G20 정상회의 및 비즈니스 서밋의 성공개최를 기원한다는.


후배들의 반응이 대략 두 종류로 갈릴 텐데 두가지 경우의 수 모두 부끄럽다.

저 쓰잘데기없는 대가리들 말잔치갖고 지랄을 트는구나. 일번.

우리나라가 '지구촌 유지'의 일원이 되고 개최국이 되었다니 뿌듯하구나. 이번.


일번은 내가 부끄럽고, 이번은-이번처럼 생각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그들이 부끄러워지겠지.

정말 그렇다. G20 따위 말의 성찬만 벌어지는 행사 때문에 수능도 미루고, 택시기사들 두발검사도 하고,

온갖 광고를 통해 '국론 통일'을 기하는 그들의 정치적 의도와 유치하고 천박한 동원방식이라니.


하아..짱난다. 대학신문은 재정도 부족치는 않을 텐데 광고 유치에 있어서도 좀 걸러서 받지. 제길.



#2.


어제는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 초청 오찬행사에 갔었다. 신라호텔에서 있었던 오찬,

왕의 형님, 상왕, 이상득 의원은 전날 본인이 만찬도 주재했다더니 여기 오찬에도 왔었고, 청와대에서 있었던

만찬까지 빠지질 않았다. 자원외교의 선봉장이란 이미지가 그에게 그만큼 절실한 거겠고, 굳이 볼리비아

리튬 자원의 중요성을 폄하할 생각도 없지만, 공석에서 일국의 대통령을 일러 '동생'이라 칭하는 그런 사람의

맨파워에 기대어 우리나라 자원외교를 하기엔, 너무도 불연속적이고 불안하기만 하다.


개인의 공과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로 해결되어야 할 텐데, 송민순 전장관이 격하게 비판한 것처럼 지금 정부의

외교는 사실상 외교가 아니다. 대강의 정책도 없고, 일관성도 없으며, 나름의 레버리지를 활용하겠다는 것도

없으니. '자원외교'도 이상득 일개인의 공적이 아니라 한국외교 전체의 공적이 되어야 하는 거다.


볼리비아엔 리튬만 있는 게 아니다. 전력 생산이나 광물 분야에 대한 적극적인 국유화를 통한 수익의 국가적

환원을 꾀하는 '빨갱이식 정책', 노인복지 및 학자금 지원확대를 통한 적극적 내수진작책까지. 자원만 빼먹을

생각말고 이런 아이디어를 배우는 건 어떨지.






원래는 올해 말에나 완공될 예정이었다. G-20 개최일자에 맞춘다며 9월까지 완공된다는 이야기가 얼핏 들리더니

어느 순간 8월 15일 광복절(그들은 '건국절'이라 하는)에 맞추어 완공될 거라 했다. 뭐, 그렇게 바싹 일정을

땡겨도 되는 것인지, 부실복원될 가능성은 없지 않은지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있었지만 기어코 8월 15일에 맞춰
'완공'된 광화문이 열렸다.


광화문 복원 ‘속도전’ 강압…현장 작업자들 “부실 우려” (한겨레)

광화문에 개판깔다 (시사IN)

"광화문 복원 ‘속도전’ 강압…" 에 대한 촌평 (개인블로그 ; 진성당거사)

광화문 복원‘속도전’강압, 현장 작업자들 “부실 우려”, 편법복원 등 보도기사(2010.7.1 한겨레신문)와 관련한 문화재청의 입장 (문화재청 보도해명자료)

뭐 요지는 무리한 공기 단축을 위해 오히려 원형을 훼손하고 있거나 혹은 제대로 복원하지 않고 있다는 것,

결국 부실 복원이라는 이야기인데, 두고 보면 알 일이지만 그때쯤이면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

역시나 사람들은 뭔가 '배출구'를 찾아 헤맨다는 느낌이다. 광화문이 열리던 날, 그토록 뜨겁던 날씨였음에도

광화문 근처는 사람이 그득그득했다. 뭔가 거리로 나오고, 모여서 함께 즐길 기회만 있으면 그악스럽게 모이는

거다. 어떻게 보면 대단하고, 또 어떻게 보면 참 안타깝기도 하고. 월드컵 때 거리에 나가지 않음 바보 취급당하는

거나, 광화문 완공식 날 역대 최고라는 십여만의 인파가 몰린 거나 뭔가 병들었다는 징후가 읽히는 거 같아서.

사실 숭례문이나 광화문을 복원한다고 할 때 개인적으로는 아예 공사 과정을 관광 아이템화하는 건 어떨까,

그런 아이디어가 있었다. 전통적인 도구를 갖고 전통적인 방식으로 느리지만 확실하게 복원하고, 복원과정에

참여한 노동자들이며 장인들도 전부 전통 복식을 차려입고 일을 하는 거다. 공사 현장 자체를 활짝 공개한 채

복원이 완료된 결과물 뿐 아니라 복원 과정 자체에도 역사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질까.


(동물원 창살 속 환상의 동물 해태. 2010/05/10 )

그게 이렇게 해태를 쇠창살 속에 가둬두지 않고, 광화문과 숭례문을 네모난 박스 안에 가둬두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의 관심과 애정을 더욱 키우며 '함께' 복원해 나가는 방법이 아닐까. 도난 위험 따위 보안에 문제가 있다

싶으면 아예 포졸이 복장에 삼지창 꼬나쥐게 만든 경비 인력을 동원할 수도 있었을 텐데.

여하간, 그렇게 개방된 광화문. 사람들이 성난 파도처럼 서로 어깨 부딪기며 광화문을 지나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사진을 찍겠다고 문득 멈춰선 사람들 덕에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걷던 사람들은 서로 발도 밟고 부딪히고

카메라에 머리도 부딪히고. 그렇지만 두 마리 봉황이 펄쩍 날아오른 단청 그림이 그려진 천장은 아무래도

눈길을 빼앗고 마는 거다.

광화문을 들어서니 넓은 공간이 있고, 바로 일직선상에 흥례문과 근정전이 보인다. 이전에 조선총독부 건물이

놓였었고, 덕분에 각도가 빗겨나 이전되었던 광화문, 한국전쟁때 소실되고 박정희 때 콘크리트로 무지하게

발라졌던 광화문, 사실, 내부가 어떻게 제대로 복원이 되었는지, 저 기왓장 밑에 대나무발이 깔려 있어야할지

'개판'이라는 나무판이 깔려 있는지는 겉으로 보이지 않으니 모르겠다. 그냥, 일직선상으로 복원했다는 점,

조금은 더 조선의 정궁스러워진 위엄과 분위기를 되찾았다는 점이 당장 보이니까 일단은 좋아 보인다.

흥례문을 오르는 길, 자금성에서도 그렇듯 동아시아의 왕궁은 왕과 왕족의 영혼이 다니기 위한 가운데 통로를

제한해 두었다. 그리고 어라, 이런 게 예전에도 있었던가. 흥례문에서 근정전으로 넘어가는 길, 네모지고 길다란
 
연못이 있고 가운데엔 짧막한 돌다리가 있다. 이 돌다리 위에서 수호하느라 여념이 없는 네 마리 신물 중의

하나가 '흑록'이라던가 그 비슷한 이름을 갖고 있다던데, 성군이 잘 다스려 태평성대가 도래할 때 나타나는

영물이라고 했다.

근정문을 지나 근정전으로. 햇살이 워낙 뜨끈뜨끈하게 내리쬐는 서슬에 사람들은 우산을 양산삼아 쓰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도 연신 부채질을 하며 땀을 식혔다. 근정전 위에 바글바글 올라가 있는 사람들.

근정전은 복원 이전에도 똑같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사실 어디서부터 어디가 복원된 건지 알아보기가 쉽지

않았던 데다가 딱히 어디를 복원했다는 안내도 없어서 좀체 헷갈리더라는. 다만 한가지 확실한 건, 근정전에

들어설 때 경복궁의 정문이 아니라 인사동에서 이어지는 옆구리에 해당하는 문으로 들어섰다는 정도?

근데 굉장히 느낌이 다른 건, 역시 정문에 해당하는 광화문에서부터 직선으로 쭉 이어지는 그 길을 따라

내부로 들어섰기 때문인 듯. 궁궐에 덥썩 옆문으로 들어서는 게 아니라, 정문에서부터 하나씩 문을 지나며

들어서게 되니까 안으로 들어설수록 마음가짐이 뭔가 달라진다. 이전에 있던 것들도 새삼스런 눈으로 보게 되고.

근정전 위에 오르니 기와지붕들이 층층이 보인다. 그 너머로 살풋 고개를 내민 인왕산까지. 구중궁궐의 심처에서

바라보던 세상의 스카이라인은 이런 것이었을까.

일월성신도를 뒷배경으로 하고 자리잡은 채 국사를 보았을 근정전 내부. 왼쪽 오른쪽 측면의 문이 좁게 열린 곳으로

사람들이 우글우글, 이런 날은 자세히 들여다 보는 거 아니다, 하면서 카메라만 고개디밀고 대충 내부를 찍었다.

천장에 그려진 두 마리 황금용이 꿈틀대는 조각은 사치스럽다는 느낌은 피하면서도 꽤나 화려하다.

왕좌 앞에 차려진 신하들이 부복할 공간, 방석 하나씩은 챙겨두었더라.

사람이 넘 많았다. 이런 날은 그저 살짝 분위기만 즐기고 얼른 빠지는 게 상책이지 싶었다. 그늘만 찾아 살포시

즈려 밟으며 다시 돌아나오는 길.

대만에서도 돌아다니다가 사람들이 지하철 역에서 지상으로 올라나오자마자 우산인지 양산인지를 펼치는 통에

비오나 하고 맨날 깜짝깜짝 놀랬었는데, 이제 한국도 그렇게 되려나 보다. 우산이 양산도 되고 양산이 우산도

되는, 열대성 기습폭우 '스콜'이 게릴라처럼 치고 빠지는 동남아 기후.

광화문의 뒷통수 사진. 여전히 사람들은 순례하듯 열지어 광화문을 지나 흥례문으로, 근정문을 지나 근정전까지

앞으로 앞으로 걷고 있었다. 이 또한 광화문의 뒤틀어진 각도가 원상복귀되어 일직선상에 궁궐이 놓인 덕분이다.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선 것은 ‘대한민국 국민은 세계가 인정할만큼 위대하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서입니다.

...G20 정상회의 유치는 한 마디로 이제 대한민국이 아시아의 변방에서 벗어나 세계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이제 세계사적으로나 민족사적으로 진정한 21세기가 열리고 있습니다."


오늘 오전 10시 청와대에서 주요 방송 생중계로 전달된 특별기자회견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이런 말들을 했다고 한다.

G-20 정상회담을 서울에서 내년 10월에 개최하기로 결정된 것을 두고 만세삼창을 하니 어쩌니 어처구니없는 쌩쇼를

벌이는 게 한참 어이없던 와중이었다. 그게 뭐라고. '세계 유지'들의 모임이니, '지구 GDP의 85%'를 담당하는 부자나라

클럽이니 하는 천박한 표현들은 최소한 '선진일류국가'의 지도자란 사람이 앞장세울 말은 아닌 거 같은데.


'세계가 인정했다'느니, 애정결핍에 시달리는 애아이마냥 타인의 관심과 인정을 갈구하는 그 사람 이야기는 별로 하고
 
싶지 않고. 사실 하고 싶은 얘기는 다른 거다. 고등학교 국어시간엔가 배웠던 '억양법'. 사전에서 찾아보면 "문장중에서

앞에서 누르고 뒤에서 추기거나 먼저 나무라고 나중에 칭찬하는 등의 형식으로 의도하는 바를 더욱 강조하는 수사법"

이라고 되어 있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사람은 착하다, 착한데 못생겼다."라거나 "예수천국 불신지옥(혹은 불신지옥

예수천국)"류의 뚜렷한 대비를 통해 드라마틱한 쏠림현상을 이끄는 거다.


G-20 정상회담하면 '선진일류국가'가 되고 갑자기 '지구마을 유지'로 회원증이라도 발급받는 건지, 실제로 의장국이

운신할 수 있고 산출해낼 수 있는 여지와 영향력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다. 회의적이다. 거슬리는 건, 아직 어떻게

준비되고 어떤 효과를 낳을지도 모르는 그 정상회담-혹자는 1988 올림픽 유치에 비기기도 하지만-을 강조하기 위해

그 앞에서 후줄근하고 '변방적'이며 얼마나 보잘것 없었는지 부각되는 현재와 과거의 모습이다. 자신의 키가

크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 마주선 사람 키를 사정없이 낮춰잡는 유치한 꼬맹이같은 놀음.


G-20 정상회담을 계기로 세계에서 인정받았다는 한국인의 위대성은, 여태까지는 세계에서 인정받지도 못하고 폄하되고

있었다는 말인가. 이젠 글로벌 차원의 아젠다 세팅능력을 갖춘 엄연한 선진국가라는 건, 이전까지는 이른바 '반미용공'

세력이 말하던 바 주권국가로서의 몇가지 결격사유를 갖춘 중진/후진국가였다는 말인가. 세계정상들의 축하를 받으며

손을 꼭 붙잡았다는 그의 새삼스런 감회와 비견되는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담에서의 이준 열사 에피소드는 왜 이리

뜬금없다 싶을까. 세계의 중심에 서기까지 아시아의 변방에서 고생만 죽도록 했다던 스토리, 진부한 신데렐라 드라마도

아니고.


그 모든 '변방국', '주변국', '非주요국'의 에피소드, 이미지들은 오로지 'G-20 이후'의 세계 중심국가 한국을 극적으로
 
묘사하기 위한 수사다. 미래에 우뚝 설 선진국가 한국의 국민으로 마음껏 자부심을 느껴라, 라는 주문이다.

역설적인 것은 미래의 불확실한 성취를 앞당겨 맛보라며 국민들에게 저런 상찬을 들이미는 순간, 지금까지의 현재가

가없이 남루해지고 변변찮아진다는 사실이다. 이런 위대한 국민으로서의 자부심을 느껴보라는데 되려, 지금까지

살았던 나라가 사실은 이토록 찌질한 나라였나, 별거아닌 나라였나 자괴감을 진하게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거다.
 

과거 10년을 오로지 부정하고 지워버리는데 골몰하는 사람들이니 의도적인 '과거사 단절'의 일환인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건국60년을 기념하고 이산가족 상봉 회차도 1회부터 다시 세듯이 말이다. 그렇지만 사실 도래하지 않은 미래의
 
영광을 찬양하고 열광하기 위해 '지금, 여기'를 자학하고 비하하는 패턴은 익숙하다. 앞서 말했던 '기독교적 교리',

혹은 대부분의 종교가 갖는 현세와 내세의 비교가 대표적일 거고, 소위 '민족주의사관'의 헛점 역시 마찬가지다.

종교에선 순결하고 완전한 내세를 부각시키기 위해 비참하고 부조리한 현세를 강조하고, 바이칼호까지 뻗는

대륙을 호령하던 과거의 감춰진 영광과 위대함을 드러내기 위해서 쪼그라든 반도정신을 들먹거리게 되는 식으로.


G-20 정상회담이 정말 뭔가 한국이란 나라에 '양질전환'의 계기를 갖고 올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이제는 한물이
 
아니라 두물 세물 빠져버린 '21세기'를 새롭게 구분하여 '진정한 21세기'와 그 이전 '거짓된 21세기'를 분류하는

판이다. 그렇게 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앞장서 달콤한 미래를 말하는 사람들은 믿지 말라고 니체선생님이 그랬다.

더구나 그들처럼 프로페셔널한 거짓말쟁이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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