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델리와 뭄바이 출장 중에 들렀던 아그라. 오전에는 온통 우윳빛깔 대리석이 반짝거리던 타지마할을

 

둘러보고 점심을 먹고 막 아그라에 도착한 참이었다.

 

 

타지마할이 온통 희뽀얀 백색의 광선으로 가득했다면 이곳은 온통 붉은 벽돌이다. 과거 16세기 이곳이 무굴제국의

수도였을 때 악바르 대제가 착공해서 샤자한 황제가 완공했다는 아그라포트. 타지마할과는 고작 2.5킬로 떨어진 곳.

 

 

 

성채의 입구에서 빈 페트병을 두드리며 여행자들을 반겨주는 원숭이들. 성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며 놀던.

 

 

 

이곳 아그라포트는 왕비를 위해 타지마할을 지으면서 재정이 사실상 파탄 상태까지 이르게 한 샤자한 황제가

 

말년에 유폐되어 있던 곳이라고도 한다. 붉은 사암의 독특한 느낌에 비애가 덧씌워지는 이야기가 서려있는 셈.

 

 

 

 

 

샤자한이 갇혀있으면서 창너머로 내다보는 풍경은 저런 게 아니었을까. 눈앞에서 창살이 어른거리는.

 

 

파란 하늘에 하얀 달이 떴다. 붉은 사암 벽돌로 지어진 건물, 파란 하늘, 그리고 하얀 달.

 

 

 

 

 

붉은 건물이라지만 속살은 또 하얗다. 타지마할에 쓰였던 하얀 대리석과 같은 것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이건, 왠지 스파르타의 근육맨들이 나왔던 영화 '300'의 그 세트장 같은 느낌의 구덩이.

 

여차하면 괘씸한 신하나 다른 나라 왕의 사신을 발로 차서 저 구덩이 아래로 밀어뜨려버리는 건가 했는데,

 

건물 안으로부터 수로가 저렇게 파여져 있는 데다가 그렇게 깊지 않은 구조를 보면...목욕탕 같은 건가 싶다.

 

 

성탑의 창 너머로 보이는 타지마할의 하얀 실루엣. 야무나 강을 사이에 두고 고작 2.5킬로미터 떨어져있단 게 실감난다.

 

샤자한은 타지마할이 가장 잘 보이는 곳, 무삼만 버즈(Muasamman Burj)에 갇혀 있다가 죽었다는데 아마 이 근방일 듯.

 

 

아마도 여기 어디쯤. 타지마할에 잠들어있는 그의 아내를 그리며 보냈을 샤자한의 한숨과 불면의 밤이 새겨진 곳.

 

 

 

 

 

 

성을 떠나 돌아나오는 길, 여전히 밀려들어오는 여행자들과 나가는 사람들이 오가기에는 다소 벅차보이는 성문.

 

성곽 높은 곳에서 어미 원숭이를 졸졸 쫓아다니는 살짝 여윈 새끼 원숭이, 그리고 그 위에서 내려보는 앵무새 한쌍.

 

 

 

여행을 다녀오면 남는 것, 기억, 사진 그리고 티켓.

 

16세기에 만들어진 아그라포트만큼 오래되어 보이는 포스를 풀풀 풍기는 쓰레기통.

 

아그라포트 옆에 버스들이 열맞춰 세워져있는 대형차 주차장..이랄까. 버스가 들고 나는 문이 참.

 

그 옆에 섰던 자전거도 인상적이다. 일일이 고철을 하나씩 붙여 만든 것 같은 빈티지스러움이 가득.

 

아이들은 아그라포트의 붉은 성벽 따위는 배경처럼 밀어둔 채 뛰어노느라 여념이 없다.

 

택시가 주차되어 있는 한쪽 구석에선 달구지에 매인 말이 물을 벌컥거리며 마시고 있고.

 

어른들이 장기 비슷한 걸 두고 있는 평상 앞엔 염소들을 돌보는 까무잡잡한 아이가 그림자에 숨었다.

아그라포트를 감싸고 도는 해자는 과거엔 분명 좀더 깊고 넓었을 텐데, 이젠 염소가 풀을 뜯는 곳이 되고 말았다.

 

 

 

버스를 타고 아그라를 떠나는 길, 엉망진창인 교통질서는 카이로에 못지 않구나.

 

 

 

 

세계각국의 유명 건축물들의 미니어처를 모아두었다는 제주 미니미니랜드, 삼십분의 일이라거나 십오분의 일

사이즈로 줄여놓았을 뿐 실물과 똑같다는 그 건축물들이 모인 곳을 어떻게 해야 가장 재미있게 돌아볼 수

있을지 생각해보니, 다녀온 곳들, 보았던 곳들 앞에서 각자 인증샷을 찍으면 괜찮겠다 싶다. 간 데가 몇군데

안된다 하더라도 뭐, 어쨌든 세계 곳곳에 산재한 명소들이 한 곳에 모여있단 건 큰 메리트니깐.

건축물들 미니어쳐 앞에 섰을 때, 걸리버가 소인국에 떨어졌을 때의 느낌에 최대한 가까울수록 성공적인

거 아닐까. 소인들이 꼬물거리며 지어올리고 그 안에서 사는 건물들의 디테일이나 리얼리티란 건 그야말로

최고의 수준일 테고, 그들 소인들보다 크고 무딘 손으로 조그마한 건축물을 지어올리려면 말이다.

타이완의 중정기념당, 한 사람을 위한 공간, 중정기념당에서 장개석을 생각하다.

중국 자금성, 블로그를 시작하기 전, 내가 카메라랑 그다지 친하지 않던 시절 다녀왔던. 비가 내리는 궂은

어두컴컴한 날씨였지만 황금빛 기와지붕과 붉은 담벼락은 여전히 화려하게 반짝거렸다.

캄보디아의 앙코르왓, 캄보디아#31. 채색의 흔적을 발견하다, 앙코르 왓(1/3)

캄보디아#32. 박스 안의 박스, 무한선물상자를 열어보는 즐거움, 앙코르왓2

캄보디아#33. 앙코르왓의 전경보다 많은 것을 담고 있던 연못, 앙코르왓3

캄보디아의 앙코르톰. 사실 앙코르왓은 씨엠립의 여러 옛 사원 중 하나의 이름일 뿐.

캄보디아#4. '크메르의 미소' 바이욘(앙코르 톰)

이집트의 스핑크스. 이집트#7. 카이로 달동네를 거쳐 피라밋으로.

이집트#8. 쿠푸왕 대피라밋 안의 석관에 누워보다.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과 플랫아이언빌딩이 있었는데, 여기도 2001년..까마득한 과거에 다녀왔는지라.

뭐 자유의 여신상이나 플랫아이언에서 찍은 건 아니지만 어느날의 월스트리트.  풍요로운 땅 뉴욕의 공립도서관.


태국의 왕궁, 왕궁(Grand Palace)에서 만난 수호상, 랍스타 퍼레이드.

공원이 꽤나 넓었다. 무려 120여점의 건축물을 오밀조밀 세워둔 세계 7대 미니어처 파크라니 이정도 크기는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지만, 조경까지 생각하고 지역이니 나름의 테마에 따라 보기좋게 진열하려면 정말 쉽지

않은 작업이었을 거 같다. 어느 순간 비가 쏴아 쏟아붓기 시작해서 부랴부랴 비를 피하다가 결국 어쩔 수 없이

우의를 사입고 구경을 재개했다.


인도의 타지마할, 인도#5. 우윳빛깔 풍만한 타지마할의 자체발광, 하악하악.

미국의 워싱턴 국회의사당. 여기도 2001년에 3개월동안 체류하며 불법으로 알바하며 모은 돈으로 갔던 곳.

쿠웨이트의 쿠웨이트타워, [쿠웨이트] 24시간의 쿠웨이트 체류.

중국의 만리장성, 미니어처 건축물과 건축물 사이에 뱀처럼 몸을 좌우로 뒤채며 늘어져있었다. 

역시 내가 블로그를 하기 전, 카메라랑 친하기 전에 다녀왔던 곳. 


미국의 백악관. 워싱턴을 샅샅이 훑었던 그 때, 마일스톤 앞에서 잔뜩 폼을 잡고 사진을 찍었던 곳.

그리고 역시 미국의 링컨 기념관. 이번에 정말 재미없던 트랜스포머3에서 저 거대한 의자에 앉은 링컨을

밀어내고 나쁜 로봇이 편하게 앉았었다.

여긴 다녀오진 않았지만, 이 곳에서 가장 크고 이쁜 미니어처 중의 하나가 아닌가 싶어서 한 장.

이탈리아의 트레비분수였다던가.

이것도 뭔지는 모르겠지만 초록빛깔 잔디와 잘 어울리는 게 왠지 스위스 쯤에 있는 뭔가가 아닐까.

안 가본 나라가 너무 많은 거다. 이곳에 모인 것들은 전세계 곳곳의 50개국을 대표하는 한두점들일 뿐인데도

이 중에서도 안 가보고 모르는 것들이 이리도 많다니. 미니어처 말고 진품을 직접 보고 싶은 맘이 무럭무럭.

그리고 한국의 불국사. 여기야 뭐, 초등학교 때 중학교 때 수학여행으로 많이들 갔었지만, 막상 혼자던 친구랑이던

한번 다시 가면 새삼스러운 구석이 참 많던 곳이다. 불국사 말고도 경주라는 도시가 그랬다.

청와대. 시화연풍, 청와대 들어가기.

남대문, 지금 열심히 복원공사중일 텐데 이전보다 더욱 오리지널에 가깝고 단단하게 복원되면 좋겠다.

건축물들만 밋밋하게 열맞춰 늘어선 게 아니라, 나름의 야트막한 언덕이나 구릉이 있었고 또 이런 나무들도

있었으며 연못도 있고 다리도 있고 그랬다. 이끼가 파랗게 낀 보슬보슬한 촉감의 나무에 덩굴 하나가 체인처럼

기둥을 휘감은 채 흘러내린 모습이 너무 이뻤다.

하루방을 뭔가 캐릭터로 만들어보고 싶었던 거 같은데, 좀 아쉽다. 좀더 간결하고 참신하게 바꿨으면 훨씬

좋지 않았을까 싶다. 무엇보다 좀더 귀여웠어야 했지 싶다.


제주도 똥돼지를 멀뚱하게 바라보는 젊은이 하루방.

아무래도 제주가 좀 습하고 따뜻하고 그래서 그런지 나무들이 조금만 그늘진 곳이다 하면 저토록 빽빽히

이끼가 끼는 거 같다. 온통 연두빛 융단을 휘감은 듯한 느낌의 나무둥치.

세계 위인들의 조각상들도 있었다. 어떻게 선정된 위인들인지 모르겠지만 한국 선수로는 충무공 이순신과

세종대왕. 아마 화폐에 활용된 인물을 기준으로 한 게 아닌가 싶은데 그보다 놀랍고 기분좋았던 건 바로

맑스가 이 곳에 전시되어 있단 사실.

너무 흥분한 나머지 맑스의 조각상 뒤에서 주먹 불끈 쥐고 인증샷 찍고는 맑스 조각상을 따로 찍는 걸

깜빡하고 말았다.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는 러시아어가 적혀있는 그의 조각상을 전시하다니,

미니랜드가 급 좋아져버리게 되었다.

그리고 만화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공간도 있었다. 스머프들이 뛰노는 마을 뒤에서 음흉하게 웃으며

쳐다보고 있는 가가멜과 그의 고양이 아즈라엘도 보인다.

그런가 하면 얄미운 표정을 짓고 있는 똘똘이 스머프 뒤로 텔레토비도 보인다.

그리고 원피스! 루피와 조로, 샹띠가 멋진 포즈를 잡고 있었는데 애들 보다는 오히려 내 또래의 '어른'들이

더 좋아라하던 포토존이었던 듯. 그나저나 대체 원피스는 언제 완결되려나.

무엇보다 캐릭터들 중의 압권이자 대미는 우리의 뽀통령. 모자빨과 안경빨일 뿐, 조그만한 눈에 앞머리 탈모가

진행되고 있다는 게 함정이라지만 그래도 아이들에게 인기만점이던 포토존.

이건 태권V의 입체그림이라고 했다. 정해진 뷰포인트에 두발을 고정하고 그림을 바라보면 바닥에 그려진

그림이 마치 벽처럼 일어나는 걸 느낄 수 있다는 거다. 아마도 지정된 점으로 집중되도록 소실점을 잡고선

원근을 감안한 덕분인 듯 한데, 페인트칠한지 좀 오래라 발색이 선명하진 않아도 제법 일어난 느낌이다.

쥬라기공원에 등장했던 렉터, 티라노사우루스도 있었다. 꽤나 정밀하게 묘사된 피부나 이빨, 발톱의

모양새가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박치기하는 애들, 이름이 뭐더라, 그 초식공룡들도 마치 산책로를

점거할 듯한 기세로 산책로 옆에 서 있었다.


마지막으로 들렀던 곳은, 무료라는 글자를 큼지막하게 박아두고 있던 매직거울체험관. 미로공원에서 이미

겪었듯 길 찾기에는 영 젬병이란 걸 알고 있었는데, 이 기둥이 무한하게 이어지는 듯 보이는 거울의 방에서

자칫 못 나올 뻔 했다. 두 손을 엉거주춤 벌리고 앞의 공간을 더듬으며 그게 거울인지 아님 열린 공간이지

확인하며 한참을 버벅댄 후에야 빠져나올 수 있었다는.

비만 안 왔으면 좀더 둘러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는데, 그래도 제법 꼼꼼하게 다 살펴보았더니 두시간 가까이

흘렀던 거 같다. 나오는 길에 눈길을 잡았던 건 오줌싸는 소녀의 상. 이건 대체 어느 나라에 있는 조각상을

소개한 건지는 전혀 확인하지 못했지만 익살맞은 표정이나 편안해보이는 자세가 매력적이었다.





아그라포트에 오르던 길, 꼬맹이 하나가 근엄하게 포즈를 잡았더니 뒤에서 뭥미,하고 꼬나보는 원숭이 하나.

끼약끼약 소리를 지르며 어디선가 줏어온 빈 페트병을 콩콩 바닥에 치고 있던 녀석.

왠지 부시맨이 콜라병을 처음 집어들었을 때를 떠올리게 만들었던 녀석의 페트병 탐구생활.

바로 옆으로 사람들이 와글와글 지나가고 지나오고 있었음에도 별 관심도 없고, 경계심도 없다. 소니 개니

말이니 낙타니 원숭이니 새니 다람쥐니, 어떤 동물이건 좀체 사람을 경계하질 않는 동네였다.

그러고 보니 붉은 빛을 띈 성채 아그라포트에는 원숭이가 많았다. 자기들끼리 뛰놀기도 하고, 높은 곳에서

저 아래를 굽어보며 상념에 젖어있기도 하고.

쫄래쫄래 쫓아다니는 새끼 원숭이 덕분에 시선을 왕창 끌던 (아마도) 어미 원숭이. 새끼일 때는 대개

어떤 동물이건 귀엽다던데, 원숭이는 예외인 거 같다. 차라리 큰 놈이 좀더 귀엽다 싶을 만큼 뭔가

얍실하고 음흉한 표정의 꼬맹이.



너무 하얘서 어리벙벙하던 타지마할을 등지니, 들어설 때 심상하게 보였던 녹색 잔디밭이나 적갈색 벽돌건물이
새삼스럽다. 잔디밭 위에서 노니는 하얗고 우아한 새들이 눈에 딱 띈다.

타지마할의 아름다움은 정면의 분수대에 물에 반사된 아름다운 모습을 최고로 친다는데, 그런 호젓한 광경을

맛볼 수 있는 행운은 여전히 가능할지 모르겠다. 그저 하염없이 밀려오고 밀려가는 여행자들.

사람이 워낙 많아 전경을 방해받지 않고 찍기가 이렇게 어려운데, 게다가 가뜩이나 희끄무레한 녀석이라

시간대도 중요하지 싶은데, 고즈넉한 새벽이나 저녁무렵, 아무에게도 개방되지 않은 타지마할을 독점할 수

있다면 굉장히 다른 분위기, 그리고 굉장히 다른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 같아 아쉬웠다.

갑남을녀의 여행객 중 하나인지라, 찍히는 건 사람이 반 풍경이 반.

타지마할의 현관문에 멈춰서 감상중인 사람들.
이곳부터 조금씩 복원/보수 공사가 진행중이었다. 그러고 보면 엔간한 문화 유산들은 대개 돌려가며 보수

중인 타이밍이다. 앙코르왓도 그렇고, 타지마할도 그렇고, 파리의 그것들도 그렇고. 인류 문화유산은 보수중.

입구부터 죽은 척 널부러져있던 강아지들 중의 한 마리였을까. 유연한 포즈로 늘어진 채 타지마할을 바라보던

녀석이 한순간 카메라를 의식한 듯 벌떡 일어나 도망쳐 버렸다.

'현관'을 지나면서, 갈색과 적색이 섞인 듯한, 뭔가 노릇노릇하게 잘 익어 맛있어 보이는 색깔을 띄고 있던

현관의 천장은 생생한 입체감까지 완비하고 있었다. 사물을 조각하고 모사할 수 없는 이슬람의 문화적 특성상

기하학적 문양과 형상들이 발전했다는 말이 역시 허명이 아니었다.

뒤늦게 돌아나오는 길에서야 발견한 표지판. 타지마할엔 남문, 동문, 서문이 있는 거다.

참...여기 개들은 전부 기력이 쇠했나보다. 나무가 드리워준 그늘 안에 포옥 안겨 있었다.

타지마할을 끝내 벗어나기 전 돌아본 길, 좀더 자유로웠다면 하루종일이라도 돌며 햇살도 기다리고, 조금이나마

사람이 적은 타이밍을 노린답시고 어슬렁거렸을 텐데. 아쉬움이 가득.





타지마할의 안, 정교하게 육각 벌집문양을 새겨넣은 대리석 너머로부터 넘어들어오는 벌집문양 햇살.

타지마할의 매끈한 대리석 바닥에 부딪혀 튕겨나오는 햇살도.

안에는 타지 왕녀의 석관이 있었고, 그 옆에는 유일하게 타지마할의 좌우대칭을 깨는 왕의 무덤이 놓여있었다.

사진 촬영이 금지되었던 그곳, 어차피 나무 창살이 촘촘히 둘러쳐져 눈으로 감상할 생각이었다. 컴컴하던

묘실에서 나와 올려다본 타지마할의 입구 천장.

옆에 그려진 캘리그래피. 아랍어인 듯 한데, 이슬람의 영향을 받은지라 코란의 구절이 아닐까.

벽면에 새겨진 준보석 조각들. 저렇게 자그마한 조각들을 거대하고 도톰한 흰색 건물 전체에 선물포장 띠처럼

둘러놨다. 그 정도 해놓으니 멀리 떨어져 보아도 뭔가 공이 많이 들어갔구나, 정교하구나, 란 느낌이 드는 걸까.

선물포장 띠 아래에는 아예 대리석에 꽃들을 조각해 넣은 판들이 주욱 늘어섰다. 사후에나마 왕녀를 꽃밭에

뉘이고 싶었던 마음이 느껴진다. 더구나 단단한 대리석으로 피워낸 꽃이니 사시사철, 몇백년이 지나도록

하얗게 피어있는 셈.

문득 내려다본 타지마할 옆의 강둑, 원숭이 몇 마리가 짙은 그림자를 넘나들며 뛰놀고 있었다.

강 너머 보이는 길다란 장벽과 오똑하니 솟은 탑. 저기도 뭔가 유적인 거 같은데.

강둑 위에 올라있는 셈이다, 그러고 보니 타지마할과 그 부속 건물들은.

타지마할의 옆구리와 허리춤쯤, 빈틈없는 꽃밭. 하얀 대리석에 음영을 남기는 건 수백만번의 조각질.

자칫 온통 하얗게만 나오기 쉬운 사진, 해가 조금씩 중천으로 오를수록 뽀얀 국물이 우러나는 타지마할.

신발을 벗고 타지마할을 둘러보았던 왕비 타지의 후손 1人이 되돌아나오는 길. 쉼없이 사람이 내려오는

통에  텅 빈 출구를 포착할 수 없었다는.

가까이서 유심히 바라볼수록 무슨 꽃받침같이 세심하고 정교한 느낌이다.

타지마할의 오른편, 아직 그림자가 저렇게 길게 늘어지는 시간임에도 꽤나 후끈했던 공기와 바람.

그러고 보면 참 새가 많았다. 이름모를 까막새들이 휘휘 선회하던 타지마할의 실루엣이 조금씩 강렬하게 빛나기

시작하는 시간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타지마할 바로 앞, 폐가처럼 방치된 건물 안에는 녹슨 용수철이 드러난 매트리스가 하나, 그리고 하얀 수염을

기른 할아버지가 한 분 쪼그리고 계셨다.

그 옆에 '코카콜라'를 파는 음료수 상점은 나무 가지에 묶어둔 천을 지붕삼고 있었고.

중앙선을 유유자적 활보하는 위풍당당한 소들은 세상부러울 것 없다는 눈빛과 표정으로 사람들을 내려보았다.

옆에선 길가에 의자 하나, 거울 하나, 그리고 보자기 하나와 가위 하나로 머리도 깍고 면도도 하고 맛사지도

해주는 만능 이발사가 판을 벌였다.

삼륜차를 끌고 손님을 기다리는 아이들은 그저 햇볕을 쬐러 나왔는지도 모른다. 극성스럽지 않고 허허로운

느낌마저 불러일으키는 아이들의 몸짓들. 그들의 호흡에 맞추어 보는 게 여행일 텐데.

저런 길거리 음식을 서서 먹는 사람들 틈에 끼어서 같이 웃음도 나누고, 눈짓도 나누는 거 말이다.

타지마할 매표소까지 나가려면 또다시 저런 바리케이트를 지나 버스를 타야 한다. 나름 삼엄하다면 삼엄한

경계, 총을 든 정복 경찰들도 적잖이 보이지만, 사람들에서 풍겨나오는 어쩔 수 없는 나른함이랄까 유유자적함.

매연을 내뿜지 않는 전기 자동차가 입을 벌리고 대기중. 얼른 삼켜지려다가 옆에 비친 이상한 생명체에 깜짝.

쓰레기통에 얼굴째 들이박은 채 뭔가를 열심히 후비고 있는 숫소.

관광지 주변의 북적북적한 공기는 그대로인데, 뭔가 다른 거 같다. 뭐지...?

또다른 전기 자동차가 앞서 출발. 저 차랑 내가 탄 차랑 요금이 달랐었다. 미미한 차이였지만.

자전거 위로 나무를 한 짐 해가는 아저씨와 장애물 경기를 하듯 심술궂게 길을 툭툭 끊어놓은 바리케이드.

짧막한 거리를 운전한 기사 아저씨는 차가 서자마자 휙 내려버렸다. 클랙션이 도드라진 운전석의 모양새.

이 차 역시 운전석은 오른쪽, 문득 궁금해진 건 엑셀러레이터도 왼쪽으로 옮겨간 걸까? 왼쪽 운전석에선

엑셀레이터가 오른쪽, 브레이크가 왼쪽인데.

화장실 풍경은 습관처럼. 트럼프 카드의 킹과 퀸이 버티고 선 분홍색 화장실 건물.

자전거 삼륜차를 릭샤라고 한다던가, 저런 것도 한번 타봤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배낭 꾸려서 한번 떠야겠다.

소방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채 양동이 몇개 매달아 놓은 게 전부다. 영어와 힌디어로 모두 적힌 채

사이좋게 매달린 양동이들. 그리고 나무둥치엔 흰색 페인트를 발라두었다. 환경 미화의 측면에서 가로수들에

저렇게 색칠을 한다던데, 저게 이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지구상엔 있는 거다.

쓰레기통, 흙으로 빚어낸 듯한 갈색 쓰레기통엔 힌디어가 가득이다.

타지마할을 가리키는 파란색 입간판. 닳고 헤진 벽돌 두개로 받쳐놓은 모습이 허술하지만 정겹다.

나무 그늘을 제대로 활용해 주시는 이발사 아저씨. 뭔가 장비도 잔뜩 갖춰놓은 게 그대로 여느 이발소 내의

풍경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그리고 버스를 잡아타고 떠나는 길, 문득문득 창밖을 휙휙 스쳐지나던 남루한 천막들 중 하나를 가까스로

잡아챘다. 저런 삶을 누리는 사람들로부터, 절대적 빈곤의 악함을 끄집어 내어야 할까 아님 정신적 풍요의

중요성을 끄집어 내어야 할까. 둘다 자기 입맛에 맞는 식으로 그들의 삶을 쉽사리 재단하는 건지도 모른다.




  

 

타지마할, 해가 아직은 주섬주섬 자리를 챙겨 일어나는 시간임에도 이미 하얗게 반짝이고 있었다.

그리고 이미 잔뜩 입장한 채 타지마할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 그들이 입은 형형색색의 옷가지들이 하얀색

사원의 투명하고 말간 느낌을 더욱 부각시켰다.

원래 타지마할 궁전을 유명하게 만든 건 건물 이외에도 이 분수. 물에 반사된 궁전의 실루엣까지 안배된 분수와

주변 정원이 포인트라고 한다. 아쉽게도 물이 말라있던 이쪽의 분수. 그러고 보니 형태가 얼핏 워싱턴의

워싱턴 모뉴먼트와 그 앞 분수대에 닮아있는 것 같기도 하다.

문득 뒤로 돌아서 방금 통로처럼 지나쳐버린 건물을 올려 보았다. 허술하지 않게 촘촘히 장식과 문양들을

새겨 두었다. 이 정도면 굉장히 그럴 듯한 '현관'이랄까, 우윳빛깔 궁전에 들어서기 위한.

타지마할로 다가서는 길, 별 모양으로 다듬어진 정원의 포석들이 특이하다.

뽀얀 우윳빛깔 궁전과 마주한 붉은 빛 머금은 거대한 현관, 그리고 그 사이를 잇는 분수라. 중간쯤 놓인 무대는

아마 궁전 내 연회나 의식을 위한 장소로 쓰이지 않았을까. 지금이야 여행자들의 사진찍는 포인트로 잘 쓰이고

있다지만.(전날의 숙취를 이기지 못하고 엉망으로 찍혀나온 사진들..;; )

꽤나 길었다. 붉은 현관문을 지나 길게 뻗은 분수를 끼고 하얀 궁전으로 다가가는 길은.

타지마할 오른켠에 지어진 이 건물은 뭔가 궁전의 부속건물인 듯.

정말 뽀얗다. 우/윳/빛/깔/타/지/마/할/~! 정도로 주먹쥐고 흔들며 외쳐줘야 할까, 싶도록 뽀얗고 아름답다.

그리고 풍만한 꼭대기의 돔은 논외로 치더라도, 가까이 다가설수록 입체적으로 도톰하고 육감적으로 느껴지는

저 궁전의 볼륨감.

양끝의 첨탑. 벽돌로 차곡차곡 쌓았을 텐데 저렇게 아귀도 딱 맞고 매끈하게 떨어지는 건 흡사 여인의 각선미.

신발을 앞에서 벗고 저곳에 보관해두거나, 아니면 신발 위에 발싸개를 하거나, 어쨌든 '부정한 신발'신은 발로

올라설 수 없는 곳.

입구와 출구. 또다시 알 수 없는 힌디어. 알고 보니 지역마다 쓰이는 알파벳도 조금씩 다르다고 한다. 아놔.

타지마할 오른켠의 그 건물. 대체 뭐하는 델까 앞께까지 얼쩡거려보았지만 문도 닫혀 있고, 모르겠다.

다시 관심은 온통 요 희여멀건하고 도톰한, 여성스러움이 듬뿍 묻어나는 궁전으로.

분수와 나란히 걸으며 전체적인 실루엣만 바라보다가, 이제야 조금씩 디테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자체 발광이랄까, 준보석 돌들을 다듬어 박아둔 테두리도 정성스럽지만 그 안 대리석판에 새겨진 꽃나무들의

문양 역시 범상치 않은 느낌이다.





델리에서 약 200킬로 떨어진 아그라에 도착, 티켓 오피스 앞에 섰다. 약 200킬로면 사실 한국에서야 두시간임

주파할 수 있는 거리지만 여기 기준으로는 네시간 반 정도. 안 그래도 전날의 숙취가 고스란히 누적된 상황에서

멀미 기운마저 느껴지고 있었다.

그래도 티켓을 받아드니 없던 힘도 불끈 생겨나서, 정신차리고 돌아보기 시작. 티켓 뒷면의 도장은 타지마할

티켓을 사고 아그라의 다른 네 개 유적을 돌아보면 할인을 받을 수 있다는 표시라는데, 살짝 빵꾸가 뚫려있는

AGF, 아그라 포트만 돌아볼 수 있었다.

매표소 옆에 붙어있는 노천 까페/레스토랑으로 들어서는 길, 기둥마다 그려진 소박하고 단순한 그림들이 눈을

끌었다.

그러고 보니 매표소 건물 입구 위에서 지그시 내려다보고 있던 코끼리, 비슈누상. 굳럭을 상징하는 시바신의

화신 중 하나라는 비슈누다.

매표소에서 타지마할까지 가는 방법은 두 가지, 약 1킬로 정도 걸리는 그 길을 걸어서 가는 방법이 하나, 다른

하나는 전기 자동차를 이용해서 가는 거다.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타지마할의 보존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아

실은 몇년정도 비공개로 쉬게 하라는 권고를 받을 정도였던지라 도입된 전기 자동차라고.

인도의 정정은 사실 그리 확립된 편은 아니다. 작년에도 테러가 있었고, 카슈미르 지방을 둘러싼 파키스탄과의

알력이라거나 분리주의자들의 격한 움직임도 유의할 대목. 타지마할까지 가는 길은 계속 이런 체크포인트와

장벽들을 넘어서야 했다.

그런 와중에도 여유있게, 쓰레기통 깊숙이 얼굴을 처박고 먹을 거리를 찾는 소 한마리.

길 끝에서 타지마할의 입구를 만났다. 적색 벽돌로 매끈하게 가다듬어진 저 성벽 너머엔 타지마할이 있다.

인도 날씨는 꽤나 후텁지근할 거라 생각했지만 델리나 아그라 지역은 사실 1월엔 그다지 기온이 높진

않은 편이다. 다소 쌀쌀한 봄의 아침날씨정도랄까. 그럼에도 저렇게 댓바람부터 길거리에 사지를 뻗고

누운, 그야말로 개팔자 상팔자의 강아지들. 

역시나 입구 옆에는 소총을 둘러멘 경비원들, 경찰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아예 벽돌로 저렇게 진지까지 구축해

놓았을 정도로, 테러의 위협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현실로 체감하고 있나보다.

마법의 숲을 지나 늪을 건너, 금속탐지기와 거친 손놀림의 스캐너를 거치면 타지마할 입성.

난 타지마할에 들어가면 바로 새하얀 그 궁전이 나타날 줄 알았다. 그렇지만 현실은 기대를 배신하고,

쭉 이어지는 테라스와 붉은빛 벽돌담. 이것도 이쁘지만 난 얼른 타지마할이 보고 싶을 뿐이라구~ 생각하다가

사실 타지마할이 뭔지도 제대로 안 알아보고 덥썩 여기까지 왔음을 깨달았다.

저기가 타지마할로 들어서는 입구. 타지마할은 힌두교와 이슬람의 영향이 혼합된 방식으로 지어진 사원으로,

익히 알려졌든 '타지Taj'라는 왕비를 위해 바쳐진 사후궁전인 셈이다. 현지어로는 '따즈마할'이랄까, 좀 다르게

발음하는 것 같던데.

외국인 여행자들이 쉼없이 들고 나고, 그 와중에 두껍게 무장한 병사들은 살벌한 쇠막대기들을 들고 발소리

척척 맞추어 사방을 순시하고 있었다.
 
정확한 좌우대칭이 되도록 힘썼다는 이야기, 힌두교 사원들이 엄격하다 싶을 정도로 좌우대칭 형태에 집착한

것처럼 타지마할 경내의 건물들 역시 마찬가지 맥락인 거다.

건물 안을 지나던 길, 어둑어둑한 실내에서 문득 발견한 창문 하나, 쏟아지던 햇살.



1월말의 뉴델리는 생각보다 많이 쌀쌀했다. 아직 겨울의 기운을 씻어내지 못한 그곳에 머무는 동안 아침마다

짙은 안개가 자욱이 내려앉았댔다. 희뿌연 안개 속에서는 왠지 덩어리덩어리, 외로움이 감돈다.

문득 들어선 정체구간, 올해 있을 Commonwealth worldcup이라던가, 영연방 국가간의 체육대회를 개최하는

도시로서 부족한 인프라를 많이 확충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뉴델리에서 타지마할까지 가는 길은 왕복

4차선에 불과한데다가 우회로도 없는 거다. 그나마 왕복 2차선이던 것이 한 차선씩 늘은 것도 삼사년 전이라고.

우회로 없는 왕복 4차선에서 정체가 필연이라면, 그 정체구간에서 저렇게 코브라가 혀를 날름대며 춤을 추는

건 그보다 더한 필연. in INDIA.

앞에 선 트럭 위에 늠름하게 버티고 선 검은 물소들의 빈약한 방댕이들. 캄보디아에서도 느꼈던 거지만 동남아

소들은 은근 날씬해주신다.

중간에 잠시 쉬었던 휴게소-랄까, 그냥 간이음식점 겸 기념품판매소랄까-에서 만난 화장실 사인.

조금 안개가 걷힌 차창 밖의 불빛에 기대어 활짝 피어난 운전석 머리 위의 꽃다발. 안전운행을 축원하는 뜻이

있다고 했다.

그래도 차 한가운데 티비도 떡하니 세팅되어 있고 제법 괜찮았던 버스였다. 무엇보다 눈에 띄던 건 운전대

가운데 불룩 튀어나온 빨간색 버튼. 경쾌하고 시끄럽고 방정맞은 벨소리가 저로부터 나왔었다. 인도의 클랙션은

거의 깜박이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내가 지금 추월할 테니 주의해라"라거나, "내가 지금 앞으로 혹은

뒤로 따라붙고 추월할 거다"라는 사인을 모두 미친듯이 울려대는 클랙션으로 해결하고 있었다.

길가 왼쪽에는 이렇게 차들이 주차해있었다. 글쎄 무려, 커다란 대형 트럭이 서로 바싹 마주본채 주차하고

있는 모습. 쟤들은 나중에 도로에 진입할 때 얼마나 왕복 차선을 혼란시키며 진입할까. 좀체 규율이 서있지

않은 인도의 교통체계를 반영하는 주차 모습이었다.

트랜스포머처럼 뭔가 잔뜩 장식이 달리고 보호대가 장착된 트럭들이 시속 40킬로미터 이내라는 규정속도를

지키며 달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뉴델리에서 아그리포트로 가는 길가로 쭉 보이는 풍광들은 참, 누추하고 허름하다.

거의 허물어져 가는 건물들, 가까스로 지탱하고 있는 건물들에 헝겊을 대고 바람을 막고 있는 집들도

부지기수, 얼마나 되었는지 몰라도 해머 한 방이면 줄줄이 넘어갈 듯한 파삭하고 앙상한 벽들이 눈에 띄었다.

자전거를 개조한 삼륜차도 곧잘 눈에 띄고, 앞바퀴를 빼고 있는 자동차는 왠지 신뢰가 전혀 가지 않는

'엔지니어'들이 달라붙어 툭탁툭탁 고쳐대고 있었지만 그 차가 다시 달릴 수 있었는지는 모를 일인 거다.

뭔가 다채로운 색감을 과시하는 인도의 트럭들. 이 차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트럭들이 형형색색의 원색감을

뽐내며 글자와 그림들을 품고 있었다.

삼륜차들, 오토 릭샤가 딱정벌레처럼 바닥에 스물거리며 붙어 달리고 있었다. 저런 차를 타고 달려줘야 정말

여행일 텐데 그저 창밖으로 구경만 한다는 게 넘 아쉬웠을 뿐.

창밖에서 열심히 달리고 있던 오토바이, 그리고 그 위의 인도 전통 의상을 덮어쓴 여성.

그러다 문득 들어선 어느 마을 어귀에선 소가 휘적대며 걷기도 했고, 담벼락엔 저렴한 인도의 노동력 비용을

반영하는 페인트 광고가 퇴락해 있었다. 여긴 왠만한 종이나 현수막 따위의 프린트물 광고가 아니라 손으로

직접 그리게 하는 게 싸게 먹힌다고.

또다시 어느 골목을 지나며. 저 골목으로 들어서면 뭐가 있을지, 누굴 만날지 알 수 없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저 지나칠 뿐. 잠시의 망설임이나 주저함 따위 없이 그냥 휭, 하니 지나쳐버렸다.

한참 달리다가 또 마주친 풍경 중 하나. 뉴델리에서 아고리까지는 약 200킬로밖에 안 된다고 하던데, 교통이

워낙 열악해서 한 다섯 시간 잡아야 한다고 했다. 문득 마주친 새떼, 그리고 소떼.

그에 바로 이어지는 남루한 천막들. 그야말로 거적떼기 하나 씌워놓은 공간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게 틀림없는

사람들.

바로 도로 옆에 연한 채 저렇게 허름하고 갖춘 것 없는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괜찮은 걸까, 걱정스러웠다.

델리는 그래도 온도가 꽤나 내려간다고 하던데, 1월말만 해도 한국의 꽤나 쌀쌀한 봄날씨를 연상케 하던 그런

곳이었는데 자칫 얼어죽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길가에 삼층짜리, 사층짜리 아파트처럼 세워진 닭장들. 닭은 잘 안 보이지만 어쨌든. 소고기를 안 먹는 대신

닭고기의 소비가 많은 나라인 거 같다.

생각없이 바라보다가 깜짝 놀랐다. 저 나무에 열매처럼 매달린 저것들은..

하얀 새들이었다. 사람들이 밑에서 저렇게 집-이랄까 천막이랄까 움막이랄까-을 짓고 얼쩡얼쩡대고 있는데

열매인 양 위장한 채 가만히 매달려 있었던 거였다. 대롱대롱, 이란 단어는 뭔가 밑으로 내려뜨려진 것에

어울릴 표현이긴 하겠지만 저 새들이 날씬하고 앙상한 두 다리로 나뭇가지를 꽉 쥐고 있을 걸 생각하면 왠지

맞춤해보이기도 한다.

이게 철거촌인지 아님 그냥 인도의 근교 풍경인지 헷갈릴 정도로, 건물들은 오래고 낡았다.

이국적인 문양과 장식들을 매달고 있는 건물들. 그리고 저 알록달록한 색감의 건물들, 문화의 차이던 뭐던 간에

각국 사람들이 좋아하고 즐겨쓰는 색감은 생각보다 참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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