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였더라, 어느 여름에 찾았던 수목원 제이드가든에서의 몇 컷들. 추석이 지나고 어느새 서늘해진 날씨 때문인지


사진 속의 왕성한 초록빛이 문득 그리워지는 느낌이다.


특히 이런 진초록빛의 나무그늘 아래에서 느끼는 바람이라거나 그 은근한 냉기라거나.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마주쳤던 자동차 십부제 운행안내판, 오늘은 휴일 내일은(도!) 휴일.
 
추석 당일 월요일날 찍었던 사진이니까, 실은 이야기는 이렇게 이어져야 한다. 엊그제는 휴일, 어제도 휴일,

오늘도 휴일, 내일도 휴일. 이렇게 장장 나흘에 걸친 달콤한 휴일이 있었더랬는데, 금요일날 밤에 눈감고는

문득 다시 뜨니까 수요일 아침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그래서 사무실에 앉아서, 몸을 이렇게 비비 꼬고 있는 중. 책상은 낯설고 키보드는 차가워졌으며, 의자에

인체공학적으로 새겨졌던 나의 둔부 형태 따위 잊혀진지 오래인 거다.

저것도 아니라면 차라리 더치커피를 똑, 똑, 뽑아내는 유리실린더가 배배 꼬인 것만큼인지도 모른다.

죽겠네 진짜. 아무리 오늘, 내일, 모레만 버티면 다시 주말이 돌아온다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북돋아보려

애써도 좀처럼 몸과 마음이 책상머리에 앉을 생각을 안 하고 있다. 오늘은 근무, 내일도 근무, 모레도 근무.


으악. 아무래도 쳇바퀴를 굴리고 있는 거 같다. 슬쩍 돌아나가며 새로운 풍경이 나오는 거 같다가도

알고 보면 다시 제자리인 무한루프. 월화수목금토일월화수목금토일월화수목금토일월화수목금토일

월화수목금토일월화수목금토일월화수목금토일월화수목금토일월화수목금토일월화수목금토일월화수목

금토일월화수목금토일...쪼큼 우울한 연휴 끝+1일차.








추석날 밤 광화문 광장에서 청계천 쪽을 바라보며, 너풀너풀 자욱한 구름들이 쌩쌩 휘감기는 달덩이가

그래도 제법 선명하게 보이던 찰나였다. 내 소원은..

그래도 약빨이 부족하다 싶다면, 추석+1일차의 달님 힘이라도 좀더 보태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추석+1일차, 연휴 마지막날의 달님은 마치 전류가 파직거리듯 갈기갈기 찢긴 구름으로 슬쩍 몸을

가리고 있었다.




겸겸, 추석은 지났지만 추석 기념 초대장 방출. 선착순 세분께 드립니다~* (完)






남양주 마석에 있는 모란공원묘지, 추석이 채 일주일도 남지 않은 때 찾았던 묘지분위기는 그렇지만

정말 썰렁했다. 공기에 짓눌린 채 바싹 말라버린 꽃가지 하나가 화석처럼 대리석 제단 위에 고여있었다.

이전 포스팅 ( 
이소선 여사 마지막 가시는 길. )에서 올렸던 사진들은 이소선 여사의 안식처가 될 공간

중심이어서 그나마 사람들이 북적북적, 공기를 흩어놓고 있었지만 다른 수많은 묘소들은 무겁게 공기가

가라앉아 있었다.

더욱 기분이 울적했던 건, 묘소 곳곳에 붙어있던 이런 관리비 독촉 스티커.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그들이 가고 나서 재산이나 가족이 제대로 남아있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독립운동가들의 후손들도 대개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는데, 민주화운동에 앞장선 이들 역시 묫자리 하나 맘편하게 쓰지도 못하고

죽고 나서도 편히 쉬지 못하는 건 아닌지. 없는 사람들, 재산도 없고 가족도 없는 사람들이 그래도

민주묘역에 묻힐 수 있었던 게 다행인 걸까. 추석때 찾아와 무성한 잡초라도 끊어줄 사람은 있을까.

모란공원묘지에 들어가기 전 입구에서 만난 꽃가게. 한지에 붓으로 엉성하게 써둔 문구가 굉장히

담백하면서도 왠지 호소력 짙어보였다. "아름다운 생화 사시오 여기로 오시오"

모란공원 입구는 야트막한 돌기둥 두개, 그리고 기둥 사이로 녹슬고 성긴 초록색 철문으로 열리고

닫히고 있었다. 철문에 페인트칠은 벗겨지고, 개방시간을 알리는 철판은 글씨가 낡고 삭아 군데군데

떨어져 있었고. 그 와중에 눈에 띄던 건, 아마도 남양주에서도 트레킹코스를 개발한듯 어딘가로부터의

코스가 끝났음을 알리는 '종점 시점' 표지판. 인생이 끝나는 묘역에서 맞는 트레킹 코스의 종점이라.

입구를 들어서니 바로 묘소들이다. 뭔가 마음을 가라앉히고 준비하기도 전에, 촘촘하게 모셔진 무덤들이

눈앞으로 확 달려들었다. 나름 겉에서 보기엔 색색의 꽃들도 꼽혀있어 색깔도 다양하고, 검고 하얀 대리석

조형물들도 묘소 옆을 지키고 있어 그럴듯해 보이기도 하지만, 꽃들은 전부 빛바랜 조화.

민족민주열사 묘역도가 묘소로 들어가는 길 앞섶에 세워져있었다. 많다. 그리 넓은 않은 부지에 꽉꽉

채워진 느낌이다 했더니, 묘역도를 봐도 그 느낌 그대로다. 그리고 중간중간에는 미처 그림에 반영되지

못한 새로 모셔진 분들의 위치가 사인펜으로, 볼펜으로 그려져 있었다.

그 중에 눈에 띄던 표시, 용산참사 철거민 민중열사. 이명박정부는 이미 만원이 되어버린 모란공원묘지의

밀도를 더욱 높이는데 일조하고 있다. 하긴, 이명박정부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노무현 때라고, 김대중

때라고 태평성대도 아니었거니와, 사람들의 피와 땀을 쉼없이 요구하는 괴물이 어딘가에 버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더 크고 넓은 묘역이 필요한 거다.

민주열사 묘역으로 올라가는 길, 문득 머릿속을 맴돌던 노래 하나가 계속 무한도돌이표를 그려냈다.

꽃다지가 불렀던 '열사가 전사에게'라는 민중가요.

꽃무더기 뿌려놓은 동지의 길을
피비린 전사의 못다한 길을
내 다시 살아온대도 그 길 가리라
그 길가다 피눈물 고여 바다된대도
싸우는 전사의 오늘있는 한
피눈물 갈라 흐르는 내 길을 가리라

동지여 그대가 보낸 오늘 하루가
어제 내가 그토록 살고 싶었던 내일
동지여 그대가 보낸 오늘 하루가
내가 그토록 투쟁하고 싶었던 내일
복수의 빛나는 총탄으로 이제 고인 눈물을 닦아다오
마침내 올려질 승리의 깃발 힘차게 펄럭여다오

민주열사 추모비. 신영복 선생의 글씨로 새겨진 글이 뜨겁다.

"의로운 것이야말로 진실임을, 싸우는 것이야말로 양심임을 이 비앞에 서면 새삼 알리라."

"지나는 이 있어 스스로 빛을 발한 이 불멸의 영혼들에게서 삼가 불씨를 구할지어니."


허세욱 열사. 2007년 한미 FTA를 반대하며 분신하신 택시운전 노동자였다. 운전을 하며 틈틈이 얻은

세상사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각종 집회와 진보정당 모임에 빠지지않고 나가기까지, 그렇게 스스로

세상을 공부하고 의견을 말하시던 분. 한미FTA가 지고의 가치인양 치장하는 건 2007년이나 지금이나

매한가지지만..스스로 빛을 밝힌 그의 죽음은 결코 헛되지 않아야 한다고 믿는다.


안타깝던 건, 묘비나 이런 안내문 위에 언제 떨어졌는지도 모를 새똥이 하얗게 말라붙어 있던 모습.

조금만 신경써서 관리해줘도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을 텐데, 햇빛에 하얗게 바래어가는 종이만큼

녹슬고 더러워진 시설물들이 너무 아쉽다.

그래도, 묘비 머리마다 둘린 머리띠가 팽팽하다. 열사정신 계승, 단결투쟁, 이명박정권 퇴진까지. 생전에

그렇게도 자주 둘렸을 머리띠가 이제 묘비에 둘린 채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았다.

어느 노동자의 무덤 앞에는 백기완 선생님의 헌시가 새겨진 돌도 서 있었다. 정말 비장하고 무거운,

새들마저 부리를 여미는 그런 분위기가 꽉 들이찼던 곳.

그리고 전태일. 수없이 고문당하고 고통받고 죽어간 노동자들, 민주투사들의 대명사이자 상징처럼

되어버린 그의 묘소는 제법 색색의 꽃들이 화려하게 놓여있었다. 그 이외에는 다른 묘소들과 크게

다를 바 없던. 그런데 그는 '기독청년'이란 앞머리를 달고 누워있었구나, 갈수록 대형화, 상업화되며

심지어 정치까지 넘보는 교회세력이 들끓는 시대의 눈으로 보니 좀 낯설다.


전태일 추모비. 납작하고 그리 크지 않은 검정 대리석 네면에 빼곡한 글씨로 전태일의 삶과 죽음,

그리고 그의 신념을 적어두었다. 네 면을 순서대로 찍어두었으니 한번 읽어보는 것도 좋을 듯.

돌아나오는 길, 곳곳에서 눈에 띄는 관리비 납부 독촉장이 석상 위에 차례 음식이나 꽃 한송이 대신

모질게도 찰싹 붙어있는게 맘에 걸렸다. 이번 추석에는 무성한 잡초도 좀 정리하고 먼지와 독촉장만

내려앉은 대리석 차례상 위에 그래도 조금은 풍성해도 좋을 음식들이 올라앉아 있으면 좋겠는데.







@ 한강시민공원 잠원지구.


보름달 옆에 떨어질 줄 모르는 저 유난스레 반짝이는 뭉치는 분명 인공위성일 거라 생각했다. 서울 하늘에서

저렇게 밝게 빛나는 별이 보일 리도 없거니와, 다른 별들은 다 어둠 뒤로 숨었는데 쟤만 저렇게 고개를 빼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어려웠으니까. 무슨 용빼는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지만 스모그 자욱한 도시에서 보일만큼 맹렬히 반짝이는 것들은 전부 인공위성, 이라고 믿던 내 얇팍한

과학적 '상식'을 비웃듯, 어젯밤에 그토록 선명하던 저 불빛은 다름아닌 목성이랜다. 항상 달의 오른쪽 허리춤

아래에 떨어뜨린 동전처럼 반짝이는 저 별은.


우야튼, 소원이란 건 지금 내가 아무리 해도 내힘으로는 안 되는 걸 비는 거라 했던가. 올해 추석은 보름달을

보고도 소원을 빌지 않았다. 여차하면 소녀시대한테 말하지 뭐.




종로의 피맛골, 왠지 추석 연휴에는 한번씩 가게 되는 곳이다. 오세훈 시장이 디자인 서울 어쩌구하면서 금세라도

다 밀어버릴 듯 하더니 아직도 '피맛골 고갈비집'은 건재하다. 워낙 추억이 촘촘이 서린 곳이라 참 반가운 곳.

몇 년전이더라, 불이 나는 바람에 가게 절반이 날아가고 그때부터 그냥 이렇게 공터로 놀리던 곳, 그 우켠에 선

건물 역시 완전완전 허름해서 무슨 폐가같기도 하고 쓰러지기 직전같기도 하지만 추석에도 쉼없이 맛있는

고갈비와 막거리를 팔고 있었다. 다행이었다.

아직 시간이 조금 일렀는지라, 가게 안에는 혼자 와서 막걸리를 드시고 계신 머리 희끗한 아저씨 한 분을 빼고는

텅텅 비어 있었다. 모양새도 색깔도, 짝도 제대로 맞지 않는 삐뚤빼뚤 제각기 놓인 의자들.

메뉴판이 있긴 하다. 얼마나 오래전에 붙여놓은 건지 반질반질 윤기가 흐르는 베니어판 벽면과 비슷한 색깔로

누렇게 변해버렸지만, 사실 여기서 다른 건 맛본 적도 없다. 앉으면 그냥 갖다주는 막걸리 한 사발과 고갈비.

메뉴판에도 벽면에도 온통 낙서투성이다. 낙서라기엔 꽤나 그럴듯한 시간과 사건들을 이겨낸 것들.

나왔다. 양은으로 만들어진 양푼에 담긴 막걸리랑 고갈비 한 마리. 여기 막걸리는 뭔지 모르겠는데 탁하면서도

단 맛이 강한 것이 특징이랄까. 살짝 짭조름하면서도 담백한 고갈비랑 같이 먹으면 딱 좋다.

조명은 늘 그렇듯 어두침침하다. 드문드문 박힌 채 테이블 하나만큼의 공간을 겨우 밝히는 전구, 그리고 창밖에서

슬몃슬몃 넘쳐흐른 햇살이 조명의 전부. 아, 냉장고에서 흘러나오는 푸르스름한 불빛도 있구나.

누군가 창문에 깃발을 붙여두었다. 지난 지방선거때 붙였두었던 깃발인 듯. 창밖으로 보이는 리어카들이 왠지

살풍경하다. 저게 혹시 서울시 표준형 리어카인가, 반듯반듯 주차된 그들 앞에서 현란한 녹색 거죽이 입혀진

리어카 한대가 반갑다.

어떻게 보면 토굴같은 느낌도 들고, 나지막한 천장과 울퉁불퉁 고르지 않은 바닥 높이 때문에 행동거지 하나가

조심스러워지는 게 기분이 색다르다. 올 때마다, 여긴 뭔가 정겨움이 그득그득.

이런 화장실 표지판도 넘 좋다. 촌스런 초록색의 왠지 촌스런 남자 여자의 그림도 그렇지만, 과거에는 단호하고

선명했을 화살표 앞뒤꼭지에 누군가 짖궂게 장난쳐둔 모양새들까지, 웃음지을 수 밖에 없는 그림들.

온통 낙서투성이인 벽면, 여기도 뭔가 신품의 냄새를 가득 풍기던 그런 때가 있었을까.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어디서 누구 한명 담배라도 피워올리면 금세 가게 전체에 티가 나는 그런 곳이지만 나름 환기는 잘 되어서 다행,

안 그랬음 무슨 수산시장 같은 냄새가 늘 배겨있었을지도.

이런 낙서들, 추억과 즐거움을 증거하는 흔적들. 이런 게 언젠가 무지하고 둔탁한 포클레인의 무쇠 이빨에

산산이 부서져나가리라고 생각하면 가슴이 싸하다. 그야말로 수십년에 걸친, 수많은 사람들의 집단 작품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이 벽면을 통째로 어디에든 전시한다고 해도 훌륭할 텐데. 사람들은 자신이 이 공간에서

함께 했던 사람, 나눴던 이야기, 서려있는 추억을 기억하며 자신이 남겼던 낙서 한 줄을 곰곰히 찾아보지 않을까.

무엇보다 좋은 거야 그냥 이 공간이 계속 남아있는 거지만.

기둥이라고 그대로 넘어가지 않았다. 화이트로, 검정펜으로, 누군가의 기록 위에 또 누군가가 기록을 덧씌우고

차곡차곡 쟁여간다. 심지어는 전등 스위치까지. 모든 곳에 공평하게 내려앉는 눈송이처럼, 허름한 가게 안

모든 장소에 아낌없이 내려앉았다.

아니, 눈송이는 천장에까지 채워지진 않는다. 낡고 깨져서 여기저기 덧대인 천장 쪼가리에도 어김없이 새겨지는

누군가의 메시지들.

막걸리 한 동이를 기분좋게 비우고, 고등어를 남김없이 해체하고 나서 돌아나오는 길. 들어설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웬 달마도가 입구 앞에 그려져있었다. 저건 정말, 작정하고 그렸겠구나 싶다. 기록을 남기고 전한다는

생각보다는 그저 한순간의 장난이나 술기운으로 끼적인 것들과는 조금 다른 느낌.

이 집 이름이 와사등이었나 보다. 몰랐다. 벌써 수십번은 왔을 텐데, 오는 사람들끼리는 그저 '피맛골 고갈비집',

이렇게만 말하면 통했으니까. 가게 주인 할머니한테 물었다. 여긴 안 없어지죠? 할머니가 그랬다. 여긴 절대

안 없어져요. 계속 있을 거야.


부디 계속 남아있었으면. 맛있는 고갈비도, 누군가의 메시지들도. 그래서 내 추억도.





추석날 서울에 남아서 노는 건 처음이었다. 뭔가 공기가 달라진 채 휑한 느낌의 서울, 덕수궁 미술관에 갔다.

중화전 앞마당에 놓인 품계석들은 원래 왕이 조회를 볼 때 문무백관이 시립할 위치를 표시한 것, 그렇지만

추석을 맞아 품계석 주변에는 온통 '일반 백성'을 위한 플라스틱 의자가 깔린 채 우리 소리 한마당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과거의 한 때나마 '똥돼지들'이 대대손손 해먹던 자리에 '딴따라'와 '무지렁이 백성'들이

편안히 앉아 연휴의 여유로움을 만끽하다니. 유쾌한 추석.





@ 일본 하코네, 야외조각공원


● 일시 : 2010년 9월 20일(월) 18:00부터

장소 : 다른異 색깔彩을 지켜낼 자유
              (구)異彩가 꿈꾸는 경험적세계의 유토피아적 가능성

                 (http://ytzsche.tistory.com)

주최 : yztsche(이채, 異彩)

제공 : 초대장 6장

● 자격요건 : 추석 복 많이 받고 싶으신 분 중에서,
                    소원 적어주시는 분 중에서,
                    선착순으로 드리겠습니다~*

In Honor 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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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zsc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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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ce Monday September 20, 2010



R.S.V.P
ytzsche.tistory.com
 #1. 시사IN이 어떤 생각으로 특별판을 내는데 합의했을까.

시사IN이 단순히 자신의 명의로 '추석 특별판'을 무려 15만부나 찍는다는 사실에 들떠서, 인지도가 올라가서 앞으로 많이 팔아먹을 수 있겠다고 덥썩 합의하진 않았을 거라 믿는다. 그렇다고, 시사IN이 집회나 거리선전전에서 뿌려짐직한 '(피/아의 식별이) 뚜렷하고 (문제의 해법이) 단도직입적으로 선명한' 그런 본래적 의미에서의 '찌라시'용 글투나 주장에 강하다고 자신했으리라 생각지도 않는다. 설마.

시사IN이 시사저널 때부터 이어온 고유한 특징으로, 또 척박한 한국 언론계에서의 나름 존재의 의미로 자각하고 있었던 것은 건조하고 객관적인 글투, 좌/우 진영논리나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차분함과 냉정함 아니었나. 그것이 시사 주간지로서의 본령이자 언론의 기본이라고 믿는 언론사, 언론'기업'이라고 생각했다. 정확한 속사정은 모르겠으되 일단은 어느 모로 보나 추석맞이 특별판, 더구나 선명한 정견을 가진 시민단체의 의뢰를 받아 특별판을 제작하고 배포한다는 아이디어가 너무...뭐랄까, 허를 찌른 나름의 '역발상'이다.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편집권의 소재 문제라느니, 용산참사/4대강 사업 등에 대한 논조 조율의 문제라느니,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대강 그렇다. 애초 왜 시사IN이 그런 특별판을 자신의 제호로 내는데 합의했을까. 특별판의 내용으로만 추측컨대 마치 어정쩡한 상업성 추구와 '먹물'의 '곤조'가 죽도밥도 아닌 것을 만들어내 버린 꼴이다.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순진하게 '광고입네~', '광고 끌어온 기사네~'하고 드러내는 최근의-그리고 그 수는 점점 늘어나는 느낌의-몇몇 기사들과 비슷한 느낌이다. 15만부의 매력, 추석의 대목시장을 놓칠 수 없다는 마음 vs 그래도 나름의 건조하고 분석적인 기사체를 고수하겠다는 마음. 그리고 그 결과는 어정쩡한 '추석 특별판'과 모두의 불만으로 돌아온 듯 하다. 


#2. 시사IN의 정체성은 무엇이라고 내/외적으로 규정짓고 있을까.

그렇다고 시사IN 추석 특별판이 이명박의 거짓 친서민행보를 까고, 4대강과 용산참사에 대한 핏대세운 기사를 담았다면 해결이 되는 그런 간단한 문제도 아니다. 최근 시사IN 기사를 보면 나름 감정이 생생한 '대담'의 방식도 활용하고 조금씩 기사의 열기를 더해가려는 시도가 보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시사IN은 언론 시장에서 상당히 딱딱하고 건조한, 심심하고 지루한 매체로 인식되는 것이 사실이다.

어쩌면 작년 촛불사태 때 시사IN이 거리편집국을 꾸리고 나오면서 시작된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점차 모두에게 유치하도록 선명한 '피/아'의 식별을 강요하는 시대의 문제라는 게 더 맞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시사IN은 뜨거워질 텐가, 아니면 여태껏 견지해왔던 차갑고 냉정한 표정을 고수할 텐가. 이미 시사IN을 아낀다 자처하는 '열혈'독자가 생겨났고, '촛불'들은 시사IN에 대한 이성 이전의 호감을 굳힌 상태다. 그런 단어들, 사실 시사IN의 딱딱하고 무미한 글투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시사IN의 롤모델은, 사견이지만 손석희 정도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손석희 정도의 강력한 카리스마는 '추석 특별판 15만부'로 희석되고 휘발되는 무딘 정체성과 감성, 고민에서 나오기는 힘들다고 생각한다.


#3. 시사IN은 인터넷 소통을 포기할 참일까.

이곳에 종종 글올리는 걸 즐기는 1人으로, 이번 '추석 특별판' 문제가 불거지고 벌어지는 과정을 보면서 조마조마했는데 역시나다. 느리다. 느리고, 무뚝뚝하다. 느리고, 무뚝뚝하고, 고압적이다.

문제가 제기되고 많이 지나서 '시사IN 기자' 한분이 댓글을 달았다. 더 궁금하면 편집국에 전화하란다. 이건 아니다. 시사IN 홈페이지까지 찾아오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가. 시사IN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없고 관심도 없는 사람이 여기까지 와서 글쓰고 댓글달고, 그러지 않는다. 최소한 부정기적인 가판대 독자거나 정기 구독자, 못해도 (광범한 의미에서의) 심정적 지지자다.

편집국장의 편지에서 자랑스럽게 '온라인팀'의 신설을 알렸다. 온라인의 특장은 신속성과 양방향성이다. 아직 가동되지 못했으니 조금만 더 참아달라고 말하기는 민망할 거다. 댓글 단 기자님께는 그나마 '전화하라'는 댓글이라도 달아주어서 감사할 지경이다. 인터넷 공간, 인터넷 공간에서의 소통에 대해 이 정도로 무심하고 시크해서야. 그래도 내 페이퍼 독자에겐 따뜻하겠지, 라고 위로할 수는 없지 않은가. 기사를 차갑고 무겁게 쓰는 건 (개인적으로) 환영이지만, 소통에 있어서까지 그래서야 곤란하다. 지겨운 단어, '소통'이다.

아직까지 시사IN이 왜 '추석 특별판'을 내게 된 건지, 사실 확인 자체도 할 방법이 없다. 인터넷을 활용해 '소통'해라, 정도의 팁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이런 정도로 일이 퍼지고 커지기 전에 무언가 공식적인 입장 표명과 사실 확인이 있었어야 하는 거 아닐까. 문제가 처음 제기된 이곳은 '시사IN 놀이터'지 '버려진 놀이터'는 아니지 않은가.


*                                                           *                                                           *

원래는 블로그에 쓴 글을 시사인 홈페이지(http://www.sisain.co.kr/)의 '자유게시판'에 옮겨 올리는데,

이번엔 순서가 바뀌었다. 검색엔진에서 '시사인', '추석', '특별판' 따위 검색어로 찾아보면 대체 무슨

사건인지 알 수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시사인이란 주간지가 추석 때 특별판을 언소주 등 시민단체의 의뢰로

15만부 찍어냈는데, 애초 의뢰자들의 의도와는 달리 매우 불분명한 논조의, 주제도 합의된 대로 나오지 않았다

한다. 사실 관계는 아직 모르겠지만, 가장 압도적인 상념은 그거다.


시대가 하 유치하여 그야말로 선명한 '피아 식별'을 요청하고 있다. 빨간 색과 파란 색 가득한 촌스러운

태극무늬 단면 위에서 뛰노는 게 아니라, 한뼘쯤 떨어져서 주변의 사괘도 구경하고 하얀 바탕도 감상할 만한

여유, 그런 메타적인 시각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 (단순히 시민단체의 요구가 그랬다는 거 때문이

아니라, 시사인이 그런 '찌라시'로서의 역할을 자처한 것 때문이다. 그게 시대적 위기의식의 발로였던,

아니면 상업적 위기의식의 발로였던간에.)




#1. 매해 추석은, 추석뿐 아니라 명절날 아침은 왠지 약간 어리어리한 시각적 이미지가 남아있었다. 그걸

깨닫는 순간은 늘 아침일찍 일어나 차린 차례상의 제사주를 음복할 때. 아, 작년 이맘때도 아침 댓바람부터

술을 몇 잔씩 마셨었구나, 그래서 아침부터 발갛게 살짝 취했었구나, 하는 깨달음이 온다.


#2. 제사주를 일본주로 올렸다. 조상님들도 늘 우리것만 맛보실 게 아니라 물 건너온 외국것도 좀 맛보시는게

어떨까 싶어서, 라곤 하지만 따로 차례주를 사자니 마침 집에 많은 일본 청주-사케-를 올려도 되지 않겠냐고

내가 쿡쿡 찌른 탓이다. 사실 한때 광풍처럼 일었던 '신토불이'의 프로파간다가 여전히 강고하게 남아있는

곳이 제삿상, 차롓상인 거 같은데 이거 좀 의심스럽다. 제삿상 음식을 꼭 과거 어느 한지점에 고정된 것으로

바득바득 챙겨야 하는지도 의심스럽고, 술이니 음식이 꼭 국내산이어야 하는 이유 역시.


#3. 추석이니 설이니, 친척들 바글바글 모인 풍경의 한 귀퉁이에는 으레 왠지 '촌스런' 화면을 뱉어내고 있는

티비가 시끄럽기 마련이다. 올해도 작년처럼 사람들의 응원소리가 소음처럼 고스란히 담겨있는 야구 경기를

하나쯤 보았고, 한복을 차려입은 진행자들이 우글우글한 프로 몇개를 보았으며, 경이로운 '동안'이라며

시청자에게 억지부리는 프로그램도 빠지지 않았다.


#4. 젊은 것들의 대중가요 세계가 온통 핫하고 쿨하고 섹시하며 불끈불끈한 '사랑'으로 가득하다면, 트로트의

세계는 그 죽일놈의, 끈끈하다 못해 더럽고 무섭다는 '情'이 담겨있다. 몇 번의 사랑을 거치고 나면 사랑이

아니라 정 때문에 살아가고, 정을 추억하며 살아가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정'이나 '사랑'이니 정의내리기

어렵긴 매한가지지만, 어느 지점에서 '사랑'이 '정'으로 바뀌었음은 자각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트로트의

세계가 새롭게 보이는 나이대로 진입하고 있는지도.


#5. 개천절이니 일요일이니 토요일이니 추석이니 연휴가 겹쳤으면 겹친 만큼, 그만큼 찐하게 쉬어주고 놀아

줬어야 할 텐데 전혀 그렇지 못하다. 늘 허무하게 끝나는 명절 연휴. 명절은 쉬는 날이 아닌 탓이다.






MB, 분명히 말하건대 '불난 민심'에 부채질하는 건 대통령이 할 일은 아니다.


민심을 따르다 보니 지지율이 절로 올라간다는 '법칙'을 알아버린 건 좋다. 그렇지만 '나영이 사건'에 대응하는

그의 언행을 보면 민심에 편승하다 못해 차라리 민심을 자극한다는 느낌마저 든다. "평생 그런 사람은

격리시키는 것이 마땅하지 않나 하는 생각까지 할 정도로 대통령의 마음이 참담하다", "어린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 말했단다. 그리고 그 후 쏟아지는 '대책'들이란 게 그렇다.

때마침 '네티즌과 소통을 강화하겠다'며 개편된 청와대 홈페이지 '소통마당'에 첫날 오른 글도 바로 이 사건에

대한 글이었다. (靑 "네티즌과 상호 소통 강화" 홈피에 '소통마당' 개설, 한국일보(09.10.01)) 그의 '참담함'에

화답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법을 개정하겠다, 처벌을 강화하겠다는 소리가 정치권과 정부에서

나오는가 하면, 러시아에서는 화학적 거세를 한다느니 사형까지 고려해야 한다느니 언론도 가세한 참이다.


이미 이른바 '민심'은, 가해자라 추정되는 사람의 인적사항과 사진을 인터넷에 유포하고 법정최고형, 사형에

처하라는 청원까지 벌이고 있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 상황은 잔뜩 성난

불붙은 민심에 MB(와 똘만이), 그리고 언론이 힘을 합쳐 기름을 뿌리며 더욱 흥분시키고 있는 격이다. 게다가

일부 언론은 그 와중에 MB어천가에 여념이 없고 말이다. "국민의 요구에 정확히 부응했다"느니, 심지어 작년

일산 경찰서를 '몸소' 방문했던 기억까지 되짚는다.([현장에서]민심 정확히 읽은 李대통령, 세계일보(09.10.01))


그 잔인무도한 사건에 사람들이 분노하는 건 당연하다. 가해자인 성폭행 전과자의 비인간성, 그리고 법원의

납득할 수 없는 감형 사유, 법감정에 맞지 않게 가벼운 형량까지. 그렇지만 국무회의에서 그렇게 자극적이고

가다듬어지지 않은 '의견'을 표하는 것은 대통령으로 보일 언행은 아니다. MB의 말 하나에 삽들고 4대강으로

돌격하는 단무지들답게, 대책이라고 내놓는 것 자체가 '분노' 해소, 보복에 치중되어 있지 않은가.


형량을 강화한다고 범죄율을 낮출 수 있을지, 처벌 수위를 높인다고 피해자가 실제적으로 도움이 될지를

따져야 하는 거다. 앞으로 장애인으로 살게 될 피해자 아이가 사회에 제대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시스템은

갖춰져 있는지, 우리 사회의 아동보호시스템이나 '아동 복지'의 개념은 어떤 수준인지, 그런 부분을 짚어보고

고치는 게 대통령이 할 일이다. 피해자 아이는 앞으로 고작 월 10만원의 장애인 복지비를 받게 될 거라는데,

가뜩이나 빈약한 복지 예산마저 다 까먹는 건 누구냔 말이다.(나영이사건 파장...참담한 장애인의 현실)


무슨 불놀이도 아니고. MB, 오줌쌀라. 불장난 그만하고 실질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라. 분노는

헤아리되 대응은 이성적으로, 성숙하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죽여라~!'하는 사람들의 성난 외침 속에 숨어있는

변함없이 형편없는 시스템에 대한 절망, 체념을 직시해야 한다. 그래도 일국의 대통령이란 사람이, 말한마디로

자신의 신념이고 평소 언행이고 다 뒤집어 버리게 만드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국민들의 감정을 차분히

가라앉히지는 못할 망정 인민재판용 장작을 하늘높이 쌓아올리도록 방조해서는 안 된다.


혹은 일가친척 다 만나서 정치경제사회 전반을 논하게 될 추석이 지나기 전까지는 계속 이렇게 '나영이 사건'

하나만 이야기하길 바라고 부채질하는 건 부디 아니길 바란다. 지나친 기우라거나 뭘해도 MB욕하는

또라이라는 욕을 먹을 때 먹더라도, 굳이 '나영이 사건'에 대한 MB의 대응을 짚어보고 싶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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