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사IN이 어떤 생각으로 특별판을 내는데 합의했을까.

시사IN이 단순히 자신의 명의로 '추석 특별판'을 무려 15만부나 찍는다는 사실에 들떠서, 인지도가 올라가서 앞으로 많이 팔아먹을 수 있겠다고 덥썩 합의하진 않았을 거라 믿는다. 그렇다고, 시사IN이 집회나 거리선전전에서 뿌려짐직한 '(피/아의 식별이) 뚜렷하고 (문제의 해법이) 단도직입적으로 선명한' 그런 본래적 의미에서의 '찌라시'용 글투나 주장에 강하다고 자신했으리라 생각지도 않는다. 설마.

시사IN이 시사저널 때부터 이어온 고유한 특징으로, 또 척박한 한국 언론계에서의 나름 존재의 의미로 자각하고 있었던 것은 건조하고 객관적인 글투, 좌/우 진영논리나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차분함과 냉정함 아니었나. 그것이 시사 주간지로서의 본령이자 언론의 기본이라고 믿는 언론사, 언론'기업'이라고 생각했다. 정확한 속사정은 모르겠으되 일단은 어느 모로 보나 추석맞이 특별판, 더구나 선명한 정견을 가진 시민단체의 의뢰를 받아 특별판을 제작하고 배포한다는 아이디어가 너무...뭐랄까, 허를 찌른 나름의 '역발상'이다.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편집권의 소재 문제라느니, 용산참사/4대강 사업 등에 대한 논조 조율의 문제라느니,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대강 그렇다. 애초 왜 시사IN이 그런 특별판을 자신의 제호로 내는데 합의했을까. 특별판의 내용으로만 추측컨대 마치 어정쩡한 상업성 추구와 '먹물'의 '곤조'가 죽도밥도 아닌 것을 만들어내 버린 꼴이다.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순진하게 '광고입네~', '광고 끌어온 기사네~'하고 드러내는 최근의-그리고 그 수는 점점 늘어나는 느낌의-몇몇 기사들과 비슷한 느낌이다. 15만부의 매력, 추석의 대목시장을 놓칠 수 없다는 마음 vs 그래도 나름의 건조하고 분석적인 기사체를 고수하겠다는 마음. 그리고 그 결과는 어정쩡한 '추석 특별판'과 모두의 불만으로 돌아온 듯 하다. 


#2. 시사IN의 정체성은 무엇이라고 내/외적으로 규정짓고 있을까.

그렇다고 시사IN 추석 특별판이 이명박의 거짓 친서민행보를 까고, 4대강과 용산참사에 대한 핏대세운 기사를 담았다면 해결이 되는 그런 간단한 문제도 아니다. 최근 시사IN 기사를 보면 나름 감정이 생생한 '대담'의 방식도 활용하고 조금씩 기사의 열기를 더해가려는 시도가 보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시사IN은 언론 시장에서 상당히 딱딱하고 건조한, 심심하고 지루한 매체로 인식되는 것이 사실이다.

어쩌면 작년 촛불사태 때 시사IN이 거리편집국을 꾸리고 나오면서 시작된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점차 모두에게 유치하도록 선명한 '피/아'의 식별을 강요하는 시대의 문제라는 게 더 맞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시사IN은 뜨거워질 텐가, 아니면 여태껏 견지해왔던 차갑고 냉정한 표정을 고수할 텐가. 이미 시사IN을 아낀다 자처하는 '열혈'독자가 생겨났고, '촛불'들은 시사IN에 대한 이성 이전의 호감을 굳힌 상태다. 그런 단어들, 사실 시사IN의 딱딱하고 무미한 글투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시사IN의 롤모델은, 사견이지만 손석희 정도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손석희 정도의 강력한 카리스마는 '추석 특별판 15만부'로 희석되고 휘발되는 무딘 정체성과 감성, 고민에서 나오기는 힘들다고 생각한다.


#3. 시사IN은 인터넷 소통을 포기할 참일까.

이곳에 종종 글올리는 걸 즐기는 1人으로, 이번 '추석 특별판' 문제가 불거지고 벌어지는 과정을 보면서 조마조마했는데 역시나다. 느리다. 느리고, 무뚝뚝하다. 느리고, 무뚝뚝하고, 고압적이다.

문제가 제기되고 많이 지나서 '시사IN 기자' 한분이 댓글을 달았다. 더 궁금하면 편집국에 전화하란다. 이건 아니다. 시사IN 홈페이지까지 찾아오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가. 시사IN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없고 관심도 없는 사람이 여기까지 와서 글쓰고 댓글달고, 그러지 않는다. 최소한 부정기적인 가판대 독자거나 정기 구독자, 못해도 (광범한 의미에서의) 심정적 지지자다.

편집국장의 편지에서 자랑스럽게 '온라인팀'의 신설을 알렸다. 온라인의 특장은 신속성과 양방향성이다. 아직 가동되지 못했으니 조금만 더 참아달라고 말하기는 민망할 거다. 댓글 단 기자님께는 그나마 '전화하라'는 댓글이라도 달아주어서 감사할 지경이다. 인터넷 공간, 인터넷 공간에서의 소통에 대해 이 정도로 무심하고 시크해서야. 그래도 내 페이퍼 독자에겐 따뜻하겠지, 라고 위로할 수는 없지 않은가. 기사를 차갑고 무겁게 쓰는 건 (개인적으로) 환영이지만, 소통에 있어서까지 그래서야 곤란하다. 지겨운 단어, '소통'이다.

아직까지 시사IN이 왜 '추석 특별판'을 내게 된 건지, 사실 확인 자체도 할 방법이 없다. 인터넷을 활용해 '소통'해라, 정도의 팁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이런 정도로 일이 퍼지고 커지기 전에 무언가 공식적인 입장 표명과 사실 확인이 있었어야 하는 거 아닐까. 문제가 처음 제기된 이곳은 '시사IN 놀이터'지 '버려진 놀이터'는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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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블로그에 쓴 글을 시사인 홈페이지(http://www.sisain.co.kr/)의 '자유게시판'에 옮겨 올리는데,

이번엔 순서가 바뀌었다. 검색엔진에서 '시사인', '추석', '특별판' 따위 검색어로 찾아보면 대체 무슨

사건인지 알 수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시사인이란 주간지가 추석 때 특별판을 언소주 등 시민단체의 의뢰로

15만부 찍어냈는데, 애초 의뢰자들의 의도와는 달리 매우 불분명한 논조의, 주제도 합의된 대로 나오지 않았다

한다. 사실 관계는 아직 모르겠지만, 가장 압도적인 상념은 그거다.


시대가 하 유치하여 그야말로 선명한 '피아 식별'을 요청하고 있다. 빨간 색과 파란 색 가득한 촌스러운

태극무늬 단면 위에서 뛰노는 게 아니라, 한뼘쯤 떨어져서 주변의 사괘도 구경하고 하얀 바탕도 감상할 만한

여유, 그런 메타적인 시각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 (단순히 시민단체의 요구가 그랬다는 거 때문이

아니라, 시사인이 그런 '찌라시'로서의 역할을 자처한 것 때문이다. 그게 시대적 위기의식의 발로였던,

아니면 상업적 위기의식의 발로였던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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