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맨하탄의 중심종선을 관통하는 5번가, 그 라인을 따라 센트럴 파크의 동쪽 경계와 록펠러 센터와 뉴욕공립도서관이

 

북쪽에서부터 이어지다가 나타나는 높은 건물이 바로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다. 5th Ave. & 34th St.

 

1931년 5월 1일에 완공되었다는 이 빌딩은 그때부터 벌써 철근으로 구조를 세우고 차곡차곡 세워올린 첨단의 건축물이었다.

 

 

같은 해 지었던 크라이슬러 빌딩은 물론이고 한동안 세계 최고의 건축물 위치를 점했던 파리의 에펠탑까지 크게 앞서는 높이.

 

그러니 킹콩같은 영화라거나 다른 예술 장르에서도 꽤나 자주 불러내어진 소재였단 게 놀랄 일은 아니다.

 

여전히 그 독특하고 미려한 실루엣으로 뉴욕의 아름다운 스카이라인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전망대를 올라가는 길은 11시가 가까운 시간에도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줄을 선 사람들이 많기도 했지만,

 

애초 86층에 있는 전망대까지 가려면 80층에서 엘레베이터를 한번 갈아타는 등 동선 자체가 길기도 했으니.

 

그렇게 결국 86층에서 건물 밖으로. 함께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왔던 노랑머리 꼬맹이들이 앞으로 우르르 뛰어나갔다.

 

 

EASTern side

 

바로 나타난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기준) 맨하탄의 동쪽. 불쑥 솟은 크라이슬러 빌딩 너머로 East River의 검은 물결이,

 

그리고 그 너머로 퀸즈 지역의 불빛이 보인다.

 

하늘 위로 둥싯 떠오른 달이 시야에 들어왔고, Queensboro Bridge가 노랑 불빛을 총총이 드리웠다.

 

동북쪽. 메트라이프 건물 아래쪽에 숨겨진 곳이 그랜드센트럴 역일 텐데, 높이 솟은 건물들에 가려서 보이질 않는다.

 

 

NORTHern side

 

그리고 북쪽. 위쪽에 까만 박스처럼 보이는 부분이 바로 센트럴 파크. 아무래도 맨하탄의 북쪽은 할렘이나 주택가여서

 

맨하탄 미드타운과 다운타운의 화려한 불빛과는 거리가 있다.

 

그래도 북쪽으로 뻗어나가는 5번가의 도로 불빛은 그대로 눈부신 빛의 띠가 되었다.

 

문득 눈을 들어 바라본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의 나머지 윗부분. 관광객들이 건물밖으로 떨어지는 걸 막기 위한

 

쇠창살이 둥글게 안으로 말려들어왔고 그너머로 붉게 밤을 물들인 나머지 탑 부분이 보인다.

 

 

WESTern side

 

그리고 서쪽. 맨하탄의 서쪽으로 흐르는 Hudson River에 연한 부두들 너머 뉴저지 쪽의 불빛들이 야트막하다.

 

아무래도 허드슨 강 건너편의 뉴저지는 퀸즈나 브롱스, 브루클린과 같은 주거지역이니 불빛들이 약하고 낮을 수 밖에.

 

 

 

SOUTHern side

 

그리고 남쪽. 원래 이쪽으로는 우뚝 솟은 두개의 높은 쌍둥이 빌딩이 자리를 잡았어야 했지만, 11년전의 체류 직후 사라진

 

쌍둥이빌딩 대신 공사중인 새로운 WTC 공사현장의 불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리긋는 5번가의 노랑불빛과 살짝 사선으로 내리긋는 브로드웨이의 노랑불빛이 부딪히는 곳,

 

딱 그 지점의 서있는 다리미 모양의 Flatiron 건물이 반가웠다. 무작정 맨하탄을 걸어다녔던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저너머 보이는 두 개의 현수교는 맨하탄과 브루클린을 잇고 있는데, 그중 가까이 보이는 게 Manhattan Bridge,

 

그리고 뒤로 보이는 게 Brooklyn Bridge.

 

 

그렇게 사람들 틈에 낑겨서 한밤중의 뉴욕 야경을 둘러보는데 걸리는 시간은 측정 불가. 도중에 불빛이 빠져들기라도 하면

 

도무지 자리를 뜰 줄 모르고 무한 셔터를 누르게 되는 불상사가 발생하기도 하니 말이다.

 

다시 내려오는 길에는, 86층부터 80층까지는 계단으로 걷기로 했다. 불빛이 대낮처럼 환하게 켜진 통로를 따라

 

앞만 보고 열심히 걷다가 문득 아쉬운 마음이 들어서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의 내부 장기라고 할 수 있는 파이프들을 한장.

 

그러는 새 눈앞에서 계속 염장을 질러대던 커플 한 쌍. 서로 꼭 잡은 두손을 놓을 줄 모르고 정말 저 상태로 86층에서

 

80층까지 자분자분 내려가는 모습이 부럽다 못해 질투심이 일기까지 했다는.

 

기념품샵에서 발견한 킹콩 인형들. 킹콩이라기엔 좀 많이 왜소해지고 다이어트도 했는지 많이 홀쭉한 모습이지만.

 

 

출구로 나가는데 다시 발견한 킹콩. 이정도는 되어야 왕년에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좀 기어올랐구나 할 만한 덩치.

 

그리고 숙소로 걸어 돌아가는 길, 영화 촬영장 조명처럼 내걸린 신호등 너머로 울긋불긋한 엠파이어 빌딩이 보인다.

 

 

 

 

* 정신나간 울릉도 2박3일 도보여행.

 

 

도동을 둘러보는 건 여태 울릉도의 깊고 짙은 자연 풍광을 벗하며 걸었던 길과는 워낙 다르고, 다소 힘든 길이었다.

 

항구에서 떠나고 들어오는 사람도 많고, 무려 삼사층이나 되는 고층건물들이 수두룩빽빽하게 꽂혀 있었으며,

 

차들도 엄청 많아서 그새 낯설어진 탓이다.

 

그런 사람과 건물과 자동차의 틈새에 이런 울릉 역사문화체험센터가 숨어있기도 하고, 잘 보이진 않지만 눈을 크게 뜨고

 

찾으면 보이는 관광용 지도의 힘을 빌어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약수공원 안의 케이블카를 타고 전망대에 오를 참이었다.

 

 

슬슬 오르막길의 시동이 걸리고 있었고, 가는 길에 '호박막걸리'를 팔길래 울릉도 특산 아니겠는가 싶어 사려고 보니

 

2리터 들이 댓병뿐, 혼자 이걸 다 마실 수 있으려나 잠시 고민하다가 먹을 만큼만 먹고 버릴 생각으로 거금 만원을 질렀다.

 

 

오르면서 '뻥' 글씨가 크게 씌여진 가게를 보며 막걸리 한모금, 약수공원 앞을 지키는 독도대장군과 여장군을 보며

 

또 한모금, 생각보다 호박 맛이나 향이 진하진 않고 덩달아 알콜도수도 약한 편이지 싶어 물처럼 마시기 시작.

 

도량에 있는 관음보살 석상 위로 떠다니는 건 독도전망대를 향해 오르내리는 케이블카.

 

다소 과격하고 유치한 발상의 비석도 하나 보고. 독도를 일본이 자기네 땅이라고 한다고 우리도 똑같이 대마도를

 

우리 땅이라고 우기자는 건가. 문제는 그거다. 대마도니 간도니 만주니 이런 소모적인 땅따먹기 논쟁이 우리의

 

'역사강역'-한때 이만큼의 영향권을 가졌다는-을 고치는 수준이라면 좋다, 그치만 근대적 의미에서의 영토분쟁과

 

국토의 확장을 기도하는 차원이니까 문제. 임나 일본부설을 내세우며 조선을 병합한 일본 제국주의와 다를게 뭔지.

 

여하간, 그 앞에 잔디밭도 좋고 너른 돌판도 따끈하길래 잠시 앉아 또 한모금. 어느새 호박막걸리가 저만큼 줄었다.

 

 

약수터가 있어 약수공원이라 했던가, 약수터로 향하는 길목에 있던 잘생긴 돌계단은 그저 한번 눈도장만 찍고.

 

 

그 옆에서 케이블카를 타러 올라왔다. 편도 5분의 왕복 티켓이 어른 7500원.

 

 

 

5분이라고는 하지만 제법 지상과 멀리 떨어진 높이에서 질질 끌려가는 느낌이어서 그렇게 짧게 느껴지진 않았다.

 

 

바람이 불 때마다 쇠줄이 출렁거리며 살짝 스릴감을 맛보여주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는 굉장히 아늑했다.

 

불자동차처럼 새빨간 케이블카가 농담을 달리하는 온갖 초록빛을 배경으로 팝업되어 있는 모습.

 

 그리고 전망대. 울릉도의 울룩불룩한 구릉들 사이에서 배어나온 것처럼 형성된 도동리의 '번화가' 풍경이다.

 

 케이블카를 내려서 전망대까지 가려면 조금은 더 걸어야 한다. 나무데크로 잘 꾸며진 길을 따라 조금만.

 

 구릉줄기에서 굴러내리는듯한 깍둑썰기 뭉탱이들이 도동항에서 바다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배 한 척.

 

 

독도전망대의 다른 쪽 전망 포인트. 저기서는 맑은 날엔 독도가 보인다던데, 사람들이 그쪽으로 많이 가는 것 같아

 

일부러 이쪽으로 온 참이었다. 커다란 술병 옆에 차고 덜렁덜렁.

 

 

그러고 나니 제법 너른 전망대 위 공간이 온통 혼자만의 평상이 되어 버렸다. 가방도 던지고, 신발도 벗고,

 

술병과 종이컵도 일단은 바닥에 내려놓고 사면을 두루두루 둘러보기 시작.

 

 

온통 짙푸른 초록으로 성숙해가는 울릉도의 산하. 그 와중에 사방으로 뱅뱅 굽이치는 하얀 길들 중에는

 

어제그제 내가 걸었던 길도 있을 거고, 갈까 하다 말았던 샛길이나 갈랫길도 있을 테고.

 

삼일동안 뒷주머니에 꽂고 다녔던 울릉도 전체지도는 접힌 부분이 닳고 찢어지고 이제 온통 너덜너덜 걸레가 되어 버렸다.

 

핸드폰을 꺼내 노래를 틀어놓고 맨발로 슬쩍슬쩍 거닐며 피로를 풀어주며 홀짝대다보니 어느새 호박막걸리가 바닥을 보였다.

 

 

한 삼사십분 그러고 있었으려나. 마지막 남은 막걸리를 탈탈 털어넣고 일어섰다. 사방의 시야가 탁 트인 이곳에서

 

굽어본 울릉도 동남쪽의 풍경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음직하다. 노래와, 막걸리의 흥취와 함께. 

 

 

 

다시 내려가는 길. 공식명칭으로는, 티켓에 따르자면, '독도전망삭도시설'인 케이블카는 수시로 운행되어서

 

딱히 사람이 차길 기다리거나 그럴 필요는 없어 좋았다. 어디든 대체로 한산한 편, 몰려다니는 관광객 타이밍만 피하면.

 

 

  

 그리고 인제, 사동항으로 걷기 시작. 바야흐로 울릉도에서 내처 걸었던 2박3일의 일정이 끝나가는 참이다.

 

 도동의 버스정류장을 지나고, 울릉터널을 지나고 흑비둘기 서식지를 지나.

 

 

 두둥, 공사가 한창인 사동항에 도착했다. 이제 일이년만 지나도 이 곳의 풍경은 확 바뀌어 있을 거다.

 

 

다섯시 반에 출항하는 배를 타려 줄을 선 사람들, 갑판으로 나가 바람을 쐴 수도 없는 답답한 배 안으로 일찍부터

 

굳이 들어갈 필요가 없으니 근처를 서성거리며 바람을 쐬다가, 울릉도를 좀더 바라보다가 거의 마지막에 탑승 완료.

 

묵호까지 세시간 반, 딱 그만큼 소요되어 주차했던 차를 찾으니 아홉시가 살짝 넘은 시각. 열심히 서울로 내달려 귀환하다.1

 

 

 

 

* 정신나간 울릉도 2박3일 도보여행.

 

 

태하항 옆의 해안산책로, 뱅글뱅글 말려올라가는 골뱅이 계단이 전신주에서 뻗어나간 전선들마저 감아돌리려 든다.

 

 

한적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의 해변마을. 민박집을 겸한 자그마한 슈퍼와 이발소와 음식점들.

 

 

 

태하 등대와 전망대로 가는 모노레일을 타는 길.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 운행이나 하려나 싶었는데 그래도 수시 운행중이다.

 

 

몰랐었는데 위에 올라가고야 알게 된 사실. 태하등대까지 올라가는데 꼭 모노레일을 탈 필요는 없다. 살짝 걸어올라가는

 

길이 있다고 하는데 걸어보신 분 말씀으로는 그 길도 제법 가파르지만 이쁘다고 했다.

 

 

모노레일 타고 올라가는 길, 거의 수직 급상승하는 느낌으로 가파르게 올라가는 눈높이를 따라 바닷물 수위가 모노레일

 

위로 넘실넘실 차오르기 시작했다.

 

 

모노레일 안에 붙어있던 울릉도 순환버스 시간표. 버스회사 이름이 '우산버스'다.

 

한때 우산국이라는 이름의 나라였던 자취가 이런 식으로나마 남아있었다.

 

 

모노레일은 한 육분 정도, 순식간에 해안가에서 가파른 야산 위로 올라왔다. 태하 등대 가는 길은 한때 굉장했다는 향나무숲.

 

태하 등대와 전망대의 갈림길에서 푯말을 들고 두뺨을 붉힌 오징오징 오징어.

 

 

 

전망대 한가운데에는 밑에서 치받고 올라오는 나무를 위한 공간을 틔워놓았다.

 

 

그리고, 사진작가들이 국내의 10대 비경 중 하나로 손꼽았다는 태하 등대 앞의 푸른 바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동남아 어느 리조트 앞바다에서나 볼 법한 에메랄드빛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아무래도 저렇게 시시각각 다른 빛깔을 내뿜으며 반짝거리는 푸른 파도의 질감이라거나

 

하얀 포말을 포기할 수 없어서 사진들을 골라내고 버리기를 포기해 버렸다.

 

이쪽 끝으로 가서 내려다보다가, 또 다시 저쪽 끝으로 가서 하염없이 내려다보다가.

 

보고 또 보아도 질리지 않는 그 맑고 부드러운 색감이 너무 아름다워서 한참을 머물렀다.

 

어찌 바닷물 색깔이 저런 빛을 띌 수 있는 건지. 

 

 

그리고 등대. 태하 등대는 전망대 바로 옆에 붙어 있다시피 하다.

 

거대한 대왕오징어, 괴수 크라켄이 빨판이 그득한 다리를 꿈틀거리며 지상으로 솟아오르는 중.

 

 

다시 모노레일을 타러 내려가는 길, 아까는 조용하던 염소가 갑자기 울어제끼며 사진을 보챈다.

 

역시 이곳도, 도르레가 설치되어 있어 간단한 물품을 쉽게 오르내릴 수 있게 했다.

 

 

모노레일이 내려가는 방향의 바다, 방파제가 저렇게 정연하게 차곡차곡 놓인 모습은 보기 쉽지 않은데.

 

두 량짜리 모노레일, 어렸을 적 타고 놀던 다람쥐통처럼 동그랗게 생겼다.

 

 

또다시 수직낙하하는 기분으로 가파르게 내려앉는 길, 같이 모노레일을 탔던 분들이 너른 유리창 너머 바다와

 

태하항의 풍경을 바라보느라 여념이 없으시다.

 

 

 

* 정신나간 울릉도 2박3일 도보여행.

울릉도 평리의 예림원(a.k.a. 문자조각공원)을 걸어나와서 다시 북쪽 해변을 따라 울릉도 서안으로 향하는 길.

 

둥글둥글 다듬어진 자갈들이 차르르륵 차르르륵 소리를 내며 파도랑 얼싸안고 나뒹구는 해변.

 

 

 

시멘트 옹벽 아래까지 도톨도톨한 돌기가 선연한 분홍빛 혀를 빼물고는 온통 흐드러진 꽃무더기.

 

그러고 보면, 바다로 향한 등대의 왼쪽은 꼭 빨간색, 오른쪽은 꼭 하얀색으로 반짝거린다. 일종의 약속인 듯 하다.

 

 

현포항에 들어서는 길목, 방파제가 두 팔 벌려 안아주고 있는 야트막한 내해에 소심하게 뻗어나간 구름다리.

 

뒷꿈치가 완전히 아작이 나서, 게다가 울릉도의 길가엔 편의점도 슈퍼도 흔치 않아서, 급기야 현포항에 들어서

 

가장 먼저 눈에 띄인 경찰서에 무작정 들어갔다. 밴드랑 기타 응급약상자가 있을까 했는데, 없다며 근처의 주민분께

 

밴드를 얻어주신 경찰 아저씨를 기다리다 한 컷. 걸음이 빠른 경찰 아저씨가 화면 한구석에 잡혔다.

 

 

맨발도 답이 아니고, 밴드를 발라봐야 이미 뒷꿈치는 피칠갑을 했고. 잠시 암담해하며 쉬어가던 참. 주머니에 꽂았던

 

핸드폰은 그냥 신발에 발 대신 우겨넣고 노래를 틀어버렸다. 신발이 그대로 주크박스로 변신해 버린 참이다.

 

그래도 돌아보면, 한걸음 한걸음 걷다보니 저만치 멀어져 버렸다.

 

 

잠시 앉아 쉬어가던 현포 전망대. 멀찍이 지나쳐온 코끼리바위니 노인봉이니, 송곳니처럼 삐쭉 튀어나온 송곳산도 보인다.

 

그리고 울릉도의 밭떼기에서 자주 보이던 저 조그마한 모노레일. 아니지, 레일이 사방으로 뻗어나가니 '모노'라고

 

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워낙 경사가 심한 비탈을 일구고 가꿔야 하니 이동네엔 저게 필수품일 듯.

 

울릉도는 크게 북면, 서면, 그리고 울릉읍으로 나뉜다. 울릉도 북쪽 해변의 서쪽끝과 동쪽끝을 꼭지점으로 한 역삼각형

 

모양으로 울릉도 북쪽을 차지한 북면의 끄트머리를 지나는 참. 돈키호테를 기다리는 커다란 바람개비가 꽂힌 곳이다.

 

 

현포와 태하 사이, 그러니까 울릉도의 북면과 서면을 가로지르는 고갯길은 구불구불 꼬부랑길.

 

슬슬 짙푸른 군청빛의 바다가 하늘로 기어오르고.

 

조그마한 초등학교 분교 앞 운동장 가득 뭔가를 널어 말리는 계신 아주머니들을 지나.(아마도 울릉도 특산나물 '부지깽이'인 듯)

 

이처럼 씁쓸하고 잔인한 이야기가 서려있는 성하신당으로 도착.

 

 

나이 어린 동남동녀는 서로를 끌어안고 백골이 되기까지 사람을 원망했을까, 울릉도 앞 험한 바다를 원망했을까.

 

 

 

 

* 정신나간 울릉도 2박3일 도보여행.

 

눈이 뜨이고 나니 온몸이 아팠지만, 뒷꿈치는 얼얼함이 그대로 남아있었지만, 짐을 주섬주섬 챙기고 나섰다. 천부항의 아침.

 

 

바다를 따라 시계반대방향으로, 현포를 지나 태하등대까지 가볼까 하는 참이었다. 울릉도의 북쪽 해변가를 따라 몇 걸음

 

걷기도 전에 에어콘 바람같은 시원한 강풍이 불어오는 쉼터가 있길래 일단 쉬고 보겠다며 엉덩이를 붙였다.

 

 

 

 

조금이라도 일찍 나서길 잘했다 싶었던 게, 날이 삼일 내내 흐리리라던 예보와는 달리 둘째날엔 아침부터 햇볕이 쨍쨍.

 

 

바닷가와 도로를 구획하고 있는 콘크리트 블록이 해풍과 파도에 온통 삭아내려 페인트가 벗겨지고 자갈들이 드러났다.

 

버스 정류장. 제법 띄엄띄엄 눈에 밟히긴 했는데 막상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던 한적한 울릉도.

 

 

울릉도 북쪽 해변 중앙에 떡하니 버티고 선 송곳산. 그 앞으로는 추산 몽돌해변이 펼쳐지고, 해변 너머 바닷가에는

 

코끼리 바위가 보인다. 툭 튀어나와 몸뚱이랑 떨어져 있는 굵은 기둥 하나가 영락없는 코끼리 코다.

 

 

각도를 달리 해서-한참 더 서쪽으로 걸어가서- 확인한 코끼리 바위의 코끼리 코.

 

 

 

 

 

투명하고 시퍼런 파도가 넘실거리며 둥글둥글한 돌멩이들을 희롱하는 소리에도 아랑곳않고 부동자세중인 새들.

 

그리고 뒷꿈치가 온통 까져버려서 급기야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걷기 시작한 시점. 그다지 현명한 짓은 아니었던 게,

 

얼마 걷지 못하고 맨발바닥 아래에 물집이 잡혀서 다시 신발을 꿰어차야 했다.

 

 

바다에 이랑을 내고 씨를 뿌리러 갈 기세인 산뜻한 색감의 경운기 한대가 바다에 찰싹 붙어 주차 중이다.

 

그리고, 들어갈까말까 잠시 망설이다가 입장했던 예림원, 문자조각공원. 망설였던 이유는 4,000원의 입장료도 아니고

 

구경온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한적한 분위기 때문도 아니었다. 다만 해안도로에서 걸어가려면 제법 가파른 오르막을

 

꽤나 걸어야 했다는 이유, 게다가 발바닥에 콕콕 박혀오는 잔돌멩이들이 너무 많은 길이었어서.

 

 

 

 

이 바위의 이름은 얼굴바위였던가, 얼굴의 옆 실루엣이 어찌어찌 잘만 따져보면 나타나는 것 같기도 하다.

 

전망대 아래를 잘 살피면 파도가 철썩이며 부딪히는 전복 바위랑 조개 바위도 찾을 수 있다는데.

 

 

 

 

 

얼굴바위 위까지 이어지는 전망대로 오르는 길. 오를까 말까 잠시 고민하다가 저 높이에서 내려다본 풍경이 궁금해졌다.

 

 

 

 

얼굴바위 위의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아침에 꾸역꾸역 걸어온 길. 맨발에 느껴지던 서늘한 콘크리트의 감촉이 서서히

 

달아올라 뜨거워지기에 이른 시간만큼 해가 내달려선 하늘 높이 솟았다.

 

 

조금만 더 걸어가면 이내 도착할 곳, 현포항이 미리 내다보인다. 빨갛고 하얀 등대가 배들을 항구로 이끄는 곳.

 

반듯한 직선에 가까운 도로가 섬세한 물결이 새겨진 에메랄드빛 바다와 싱싱한 초록의 보들보들한 기슭을 가른다.

 

 

 

그리고 전망대에서 발견한 '젖봉' 또는 '찌찌봉'이라 불린다는 제법 리얼한 느낌의 봉우리 하나.

 

 

현포항의 모습을 좀더 바싹 땡겨보고는, 저쯤에서 점심을 먹으면 되겠구나 가늠해보았다.

 

 

 

정말 향기가 그윽하던, 그리고 한번 손으로 훑고 나니 한참이나 손과 온몸에 향기가 배어있던 섬백리향. 이름도 참 이쁘다.

 

예림원, 특히 예림원 안쪽에 자리한 얼굴바위 전망대는 꼭 한번 올라가 보시길 권하고 싶다.

 

 

 지쳐서 나가떨어질 때까지 한없이 걷고 싶은데 어디까지 얼마나 걸어야 할지 알 수 없을 때는, 섬이 답이다.

 

바다로 둘러싸인 한뼘만한 땅덩이, 울릉도에서 2박 3일동안 정신나간 도보여행을 하고 싶을 때 추천하는 일정.

 

눈뜨면 걷고, 어두워지면 멈췄다. 대중교통을 이용한 건 삼일차, 남양에서 저동까지 움직이는 데까지만 한 번.

 

 

제주도 올레길이 조금은 편하고 아기자기한 코스라면, 울릉도 도보여행길은 좀더 거칠고 날것의 느낌.

 

대부분 성인봉 등반만 하고 마는 단체 등산객이거나 버스로 찍고 찍고 다니는 단체 여행객들만 찾는 곳이니만치

 

하루종일 걸어도 만나는 사람들은 손 꼽을 만큼인 곳. '둘레길'도 말만 둘레길이지 그냥 버려진 옛길이랄까.

 

 

미친 짓 한번 하고 싶을 때, 러닝-하이가 아닌 워킹-하이(Walking-high)를 맛보고 싶을 때 한번쯤,

 

내키는 대로 한없이 걷다가 바다가 나오면 발길을 틀면 그뿐이었다. 딱히 정해진 일정도 계획도 없었던 코스.

 

그렇게 3일동안 한걸음씩 꾹꾹 내딛었던 발걸음들을 잇고 나니 저런 길들이 그려졌다. 시속 4km의 세상.

 

 

 

ㅇ 1일차 : 사동항 - 성인봉(KBS중계소 코스) - 천부

 

 

(03:00 서울 출발, 05:30 추암 촛대바위 도착)

 

07:00 묵호여객선터미널 도착

 

07:00~08:00 아침식사

 

09:00 묵호항 출발 (by 씨플라워호)

 

12:30 사동항 도착

 

14:30 KBS중계소(성인봉 등산코스 출발지) 도착

 

17:00 성인봉 도착

 

18:30 나리분지 도착(성인봉 등산코스 도착지)

 

20:00 천부리 도착

 

20:00~21:00 저녁식사 (울릉도식 백반정식)

 

 

 

 

 

 

 

 

ㅇ 2일차 : 천부 - 현포 - 태하 - 둘레길2코스 - 구암 - 남양

 

 

10:00 숙소 출발

 

10:30~12:00 예림원(문자조각공원) 체류

 

13:00 현포 도착

 

13:00~14:00 점심식사 (울릉도식 백반정식)

 

15:00 태하항 도착

 

15:30~16:20 태하등대(모노레일) 체류

 

16:40 태하삼거리(울릉둘레길 2코스 시작점) 도착

 

18:30 구암 도착

 

19:00 남양 일몰전망대 도착

 

19:30~20:30 저녁식사 (약소숯불구이)

 

 

 

 

 

 

 

 

 

ㅇ 3일차 : 저동항 - 행남등대 -  도동항 - 독도전망대 - 사동항

 

 

10:00~10:30 아침식사 (따개비 칼국수)

 

10:40~11:20  저동항 도착 (by BUS)

 

12:00 소라계단 도착

 

12:30 행남등대 도착, 행남해안산책로 시작

 

14:00 도동항 도착 (행남해안산책로)

 

14:30 도동약수공원 도착

 

15:00 독도전망대 도착 (케이블카 왕복)

 

17:00 사동항 도착

 

17:30 사동항 출발 (by 씨플라워호)

 

21:00 묵호항 도착 

 

23:40 서울 도착

 

 

 

 

 

 

 

 

 

 

 

 

 

 

 

 

일본 아오모리현 도와다 호수의 오리배는 이렇게 생겼다. 지금 다시 보니 네스호의 괴물이라거나 공룡이 떠오르는

 

외모이기도 하지만, 그때는 딱 보자마자 원피스의 고잉메리호가 떠오르더라는.

 

나름 원피스의 명장면 중 하나로 기억하고 있는, 고잉 메리호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던 장면.

 

 

호숫가 나룻터에 묶인 채 둥싯거리는 오리배들. 최근에 다시 색칠을 한 건지 부리나 리본이 화사하다.

 

둥싯거리다간 서로의 부리를 입맞춤하며 느그적 휘어진 모가지로 하트를 그리기도 하고.


나룻터 끝에서 바라본 도와다 호수는 어찌나 넓던지, 오리배 페달을 밟는 발놀림이 비장해 보였다.


오리배들을 어루만져주는 두 할아버지, 한가로이 파라솔 아래 앉아 담소를 나누시던 모습.

 

호수를 따라 죽 이어지는 산책로, 울창한 숲과 산을 옆에 끼고 있는 데다가 시선을 어지럽히는 가게나 매점도 없다.

 


호수를 바라볼 수 있는 망원경의 푸르스름한 렌즈가 똘망똘망하다.

 


도와다 신사로 가는 길, 다른 관광대국들도 그렇지만 일본도 맨홀뚜껑을 소홀히 넘기지 않았다.


지금은 한국에서도 보기 힘든 나무 전봇대가 아직도 서 있는 도와다 신사 경내의 산책로.

나무뿌리가 잔뜩 헤집어진 건지, 아니면 벼락을 맞은 건지 위풍당당한 모습에 이끼가 잔뜩 슬었다.

 

곰이 출몰하는 지역이니 주의하라는. 굉장히 무시무시한 표정과 포즈의 곰 앞에서 손도 떨었나보다.



도와다 신사 도착.

 



나무의 잔뿌리가 지면 위에까지 핏줄처럼 툭툭 튀어나온 모습이 땅 속을 궁금하게 만든다.

나무 계단은 하얗게 바랬을지언정 말끔한데 정작 아래 돌받침은 둘로 쪼개진 채 이끼가 잔뜩이다.


 


석등을 둘둘 휘감고 기어오르는 덩굴도, 석등 위에 꽂힌 깃털처럼 나부끼는 풀떼기도 고작 한계절이면 저리도

 

그악스럽게 자라날 텐데, 왠지 바라보는 사람은 거기서 이 신사의 고색창연함을 느끼는 거다.



일본 신사의 '약수터'는 물을 마시는 곳이 아니라 손을 씻어 몸을 정갈히 하는 곳.

 

 

도와다 호수의 명물이라는 소녀상. 소녀라고는 하지만 사실 이를 만든 작가와 평생 해로했던

 

아내의 모습을 본따서 만들었다고 했던가. 호수의 물안개를 잘도 버티고 서 있다.

 

 



도와다 호수 주변을 좀 거닐면서 담은 풍경들.



차를 타고 좀더 올라가 도와다 호수 전망대로 가서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구름인지 안개인지, 희뿌연 간유리 너머

 

풍경처럼 어슴푸레한 호수 너머 풍경과 온통 짙푸른 녹색이 가득한 풍경. 아오모리, 푸른숲靑森이구나.

 


전망대 위로 올라가는 샛길이 하나, 무성한 수풀 뒤로 숨어있었다.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길인지

 

낙엽이니 풀들이 온통 점령해버린 땅바닥엔 발딛은 맨땅 한뼘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자연에 정복당해버린 숲길을 혼자 걷고 있자니 왠지 무섬증도 살짝.

 

어디선가 곰이 나타나면 어떻게 해야할지 살짝 머릿속으로 이미지트레이닝도 해보고.

 


계속 신경을 긁던 까마귀 한마리가 숨어서 울어제끼던 곳을 결국 찾아냈다. 사진 속의 그곳.


슬쩍 제2 전망대까지만 찍고 내려오는 길. 인적끊긴지 오래인 듯한 괴괴한 숲에서 들려오는 소리 하나하나

 

신경을 날카롭게 만들며 불안하게 만들었는지라 내려오는 길은 카메라를 꼭 쥐고 거의 날 듯이 뛰었지만,

 

그래도 푸른 숲과 퍼런 호수의 풍경은 놓칠 수 없어 시선은 계속 도와다 호수에 붙박혀 있었다.

 

 

 

 

 

 

 

 


 

가평에 있는 쁘띠프랑스, Petite France. '조그만, 작은, 이쁜' 프랑스라는 의미일 텐데 워낙 잘 알려져 있는 곳이고,

사진으로도 많이 담긴 이쁜 곳이니만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주차장에 차를 대려니 이미 차들이 그득그득, 인도해 주는대로 길가에 차를 대고 매표소입구로. 아직 바람이 차갑다.

입구를 지나면 나타나는 이국적인 풍경. 파스텔톤의 벽면이나 따뜻한 색감의 기와들, 다양한 표정의 실루엣들이다.

자그마한 분수 광장을 둘러싼 노란 파라솔들, 그리고 다시 파라솔들을 에워싼 색색의 건물들. 그치만 위압적이진 않은.


빨간 제라늄꽃이 창틀에 놓인 건물 사이로 마을의 다른 건물 지붕들이 내려다 보인다.

겨우내 추위와 찬바람에 시달렸을 것들이 이른 봄볕을 찹찹찹 게걸스레 핥고 있다.

제법 복잡하게 이리저리 꼬인 계단들, 산토리니의 새하얀 계단형 건물들을 살짝 떠올리게 만드는.


아직은 누렇게 말라죽은 채인 풀밭이지만 조금만 더 날씨가 풀리고 따뜻해지면 꽃과 잔디가 융단처럼 깔릴 꽃밭.

갤러리 앞에는 벼룩시장이 열렸다. 도자기 인형들이나 접시가 바닥에 누워있는 모습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노랑 우체통.

양철 주전자들이 띄엄띄엄 바닥에 늘어서 있는 폼이 불규칙하면서도 제법 느낌있다.

갤러리 안에 전시된 마리오네트 인형. 얼굴표정이나 옷감의 분위기 같은 것들이 굉장히 섬세하다. 툭 튀어나온 앞니까지.


마리오네트 인형들은 왜 이렇게 전부 인상적인 표정과 기괴한 외양을 갖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눈을 높이 맞추고 있다가 문득 바닥으로 내렸더니 왠 화관을 쓴 처자가 비둘기를 한마리 건네주려고 한다.

안으로 들어가니 생각보다 공간이 넓고 길다. 그 공간을 온통 꽉꽉 채운 프랑스 느낌 가득한 소품들과 장식품들.

프랑스를 상징하는 새, 프랑스의 국조는 수탉이란 걸 갤러리에서 새삼 실감했다. 온통 수탉을 형상화한 장식품들.




근데 한국의 나라새, 한국의 국조는 뭐더라. 까치였던가 싶긴 한데 확신이 없어서 검색해보니 역시 '까치'가 맞단다.

갤러리를 나와 조그마한 프랑스 마을 같은 쁘띠프랑스 내부를 걷는데 딱 나타난 사진찍기 좋은 곳. 사랑하는 사람과

커피를 나란히 내려놓고 카메라 쟁탈전을 벌였던 곳이기도 하다. 


쁘띠프랑스의 전경, 그리고 청평호수까지 멀리 내려다보이는 전망대. 오르내리는 계단이 워낙 좁단 게 에러지만.

이렇게 쁘띠 프랑스의 색색 빛깔의 이쁜 건물들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거나,

청평댐이 버티고 막아서서 바다처럼 넓은 청평호수와 어른거리는 산그림자까지도 보이는 전망이니 올라갈 만 하다.


야생화 산책길을 지나 '사랑의 종탑'으로. 어린 왕자의 스토리에서 '사랑'과 관련한 경구들은 무수히 뽑아낼 수 있겠지만

1층에서 2층, 2층에서 3층을 오르며 사랑에 대한 마음가짐이나 태도를 이르고는 비로소 종에 다다른다. 대앵~ 대앵~

3월 18일부터 시작되었다는 유럽동화 인형극축제, 평소에 하던 샹송공연이니 마임쇼에 더해서 인형극도

열리고 목각인형 콘서트 같은 것도 열리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오후가 무르익을수록 점점 늘어나는 꼬마손님들.

안내 포스터에 나왔던 그 여자분이 그대로 나와서 샹송을 부르는 공연. 조금 딱딱한 표정을 짓고 있던 아저씨들이

문득 어깨를 들썩이며 박수를 치더니 뜨겁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안녕하세요'와 '감사합니다'라는 한국말만 하는 수준의 샹송 가수를 받침해주던 악기는 기타, 그리고

약 백오십년 전쯤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전통악기, 그리고 아코디언 한대.

따님의 초등학교 시절 아코디언을 들고 와 연주하시던 이 분이 활을 이용해서 켜는 방식의 프랑스 악기, 무려

한국에 한대밖에 없다는 이 악기도 연주하셨다. 건반이 감겨있는 모자라거나 어깨의 금색술이 인상적인 분.

 

쁘띠프랑스가 워낙 잘 알려진 명소가 된 데에는 장소 자체가 워낙 이쁘게 잘 꾸며진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몇몇

방송에 등장하면서 더욱 유명세를 얻은 것 같기도 하다. 베토벤바이러스라거나 시크릿가든, 러닝맨까지.

특히 '베토벤 바이러스'의 경우는 메인촬영지가 그대로 보전되어 있어서 전출연자들이 사인도 남겨놓고 세트장의

배치도 고스란히 간직해두었다고 한다. 뭐, '베토벤바이러스'던 '시크릿가든'이던 드라마를 안 봤으니 별 감흥은 없지만.



그 옆에 바로 인접해 있는 건물은 '프랑스 전통주택관'. 근 이백년 가까이 된 프랑스의 고택을 그대로 옮겨다놓은

전시관이라고 하는데, 주름살처럼 깊이 골이 패인 기둥 하나만 봐도 이 집의 범상치않은 연륜이 느껴진다.

천사가 호롱불을 들고 날아다니는 천장에는 슬쩍 단발 비행기도 날아다니고 있지만 현란한 접시장식들로 숨겨졌다.

이것도 한 이백년쯤 되었으려나, 애기들이 타고 놀았을 목말이랄까, 세발자전거랄까.

집 한채를 통째로 옮겨왔다고 하니 이런 전등갓처럼 세세하고 고풍스런 장식물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

이백년전 프랑스의 저택에 살던 사람은 이런 세면대에서 세수를 하고 이를 닦았겠구나. 세련된 색감이나 문양이 참.

화장실의 전경. 앞에서부터 세면대, 변기, 그리고 욕조 하나. 끝.

그런데 이 변기는 남성 전용인 걸까 아니면 남성 소변 전용인 걸까. 이도저도 아니면 그냥 모든 걸 다 저기서 해결?

인형극장 앞에 있던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의 기념사진 촬영용 판넬. 선그라스를 멋지게 낀 애기가 백설공주의

얼굴을 훔치고는 활짝 웃고 있었다.

프랑스나 유럽의 인형극을 부정기적으로 여는 극장이라고 하는데, 'Guignol', 기뇰이란 건 프랑스 전통의

손 인형극을 말하는 거라고 한다. 4-50석 되어보이는 자리가 꽉 차서는 빨간망토 소녀 인형극을 관람.

15분쯤 되는 그리 길지 않은 이야기에 빠른 템포로 전개되는 이야기, 간단한 구조와 심플한 등장인물들까지

아이들이 보기에 딱 좋은 내용과 분량인 듯. 감탄할 만큼 현란한 손놀림이나 부드러운 움직임도 관람 포인트.


처음에 한바퀴 돌아보면서는 그리 크지 않은 조그마한 마을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볼 것들도

많고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생각보다 시간을 오래 들이며 걷게 되었지만, 각도마다 달라지는 풍경도 한 재미.




돌아나오는 길. 샹송 공연에 인형극 공연까지 챙겨보느라 한 세네시간 정도 걸린 듯 하다. 그렇지만 까페에 들어가

커피랑 츄러스도 맛보고, 중간중간 앉아서 쉬기도 했으니 완전 널럴한 페이스였단 걸 감안하면, 작긴 작구나.ㅎ


쁘띠프랑스에서 체크아웃. 조금만 더 날이 따스해지고 야생화니 잔디가 불긋푸릇해지면 더욱 이쁜 풍경이지 않을까.




 

속초 영금정 앞 겨울바다. 짝다리를 짚고 선 어린 커플 한 쌍이 바다에 찰싹 가까이 붙어서서는 방파제의 끝,

빨간 등대가 침핀처럼 박혀있는 저 너머를 함께 바라보고 섰다.

영금정에서 조금 나아가면 바닷가 끝으로 불쑥 돌출한 파란 지붕의 정자가 있는데, 그 곳까지 이어지는 길은

울렁이는 나무 발판을 가진 현수교 스타일의 짧막한 다리처럼 놓였다.

뭔가 원목을 사용했다거나 단청을 담백하게 올린 맛보다는 거칠고 짠 바닷바람에도 굴하지 않도록 시멘트를 발라

만든 정자, 그래도 나름 한번 그 팔각지붕 아래에서 바다쪽이나 영금정 쪽을 바라볼 만 하다.


영금정에 바싹 인접한 항구는 동명항, 국제여객터미널을 너머 보이는 건 속초항. 배들이 가득하다.

그리고 멀찍이 눈안개에 가리어 희끄무레하게 보이는 하얀 눈덮인 산은 설악산 자락이 아니려나 싶은데, 모르겠다.

영금정 앞에 즐비한 횟집들 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던 건 찬란한 다홍빛으로 빛나는 대게들. 다른 녀석들을 꾹꾹

즈려밟으며 자기 혼자 당당하게 포즈를 잡고 선 저 녀석은 장군감.


그리고 속초 8경 중의 하나라는 속초등대전망대. 표지판이 눈에 띄었던 이유는, 갈색 관광지 표지판에 있는

언어가 한글, 한자, 영어 이외에도 러시아어가 보여서.

등대보다도 등대 아래에 있는 매점이 눈에 꽂혔다. 어렸을 적 수학여행 다니면서 보았던 저 후지필름 광고가 그려진

허름한 간판에 궁서체로 붓글씨된 커피, 생수, 라면 따위 메뉴들이 자아내는 운치라니.

그리고 속초관광중앙시장까지 걸어가는 길,한산하고 소박한 거리를 걷다가 문득 마주했던 기발하고 참신한

담벼락 풍경. 삶의 농담 같달까, 폐냉장고를 커다란 벽돌처럼 쌓아서 담길을 따라 쌓아둔 모습은 웃음이 난다.

일본의 대표적인 성이라고 하면 역시 오사카성, 이려나. 아직 오사카를 가보지 못했으니 구체적인 이미지는

하나도 안 잡히지만, 그래도 대략 이런 그림일 거다. 3층 이상의 고층으로 쌓인 탑같은 모양의 기와지붕 건물.

알고 보니 이 건물 자체는 '성'에 포함되어 있는 방어시설이자 망루의 역할을 하는 천수각이라고 한다.

오사카까지 가지 않고 아오모리현 히로사키 공원에 있는 히로사키성에 가서 알게 된 사실 하나.

히로사키성은 1895년 히로사키공원으로 개방되어 사람들이 쉬어 갈 수 있는 공간으로 변모하였는데, 이곳에

벚나무를 심은 것은 약 300년 전부터라고 한다. 현재 공원 안에는 일본에서 가장 큰 왕벚나무와 일본에서

둘레가 가장 큰 왕벚나무를 포함해 약 2600그루의 벚나무가 있다고. 4-5월 벚꽃 축제 기간 중에는 전국에서

약 250만명이 찾아오는 일본 제일의 벚꽃 명소라고도 한다.

히로사키성 천수각은 원래 1611년에 축성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낙뢰를 맞아 완전히 불타버렸고,

1810년에야 재건이 이루어져 지금의 이런 모습을 이룬 것이라고 한다. 에도시대에 재건된 천수각으로는

도호쿠 지방의 유일무이한 것이라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고 하는데, 현재는 히로사키성과 관련한

유물이나 자료들을 전시하며 일반에 개방되어 있어 꼭대기층까지 올라가볼 수 있다.

전시한 유물 중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건 화승총, 흔히 조총이라 부르는 그 '신무기'와 그곳에 들어갔던

옥구슬 총알, 그리고 화약통 세트. 거북이 등껍질이 통으로 쓰이고 있는 화약통도 신기했지만 무엇보다

조총의 탄환으로 동그랗게 갈아서 만든 동그란 옥구슬이 쓰였다는 게 신기했다. 저건, 거의 준보석 아닌가.
 

그리고 남성용 가마. 아마도 이 히로사키성의 번주가 타고 다니지 않았을까, 싶은데 역시나 크기는

매우매우 작아서 요새 체형이라면 열살짜리 어린애가 겨우 들어갈 정도인 거 같다. 까맣게 옻칠이

되어 있는 거나 사람 몸무게를 지탱하도록 단단해 보이는 외관은 그럴 듯 했다.


그리고 또, 신기했던 무기 하나. 이건 '바람의 검심'에 나왔던 그 사슬낫 아닌가. 그저 만화에서만 나오는

무기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걸 실제로 휘두르며 싸웠던 사람이 있었으니 여기 이렇게 똑같이 생긴

무기가 전시되어 있는 걸 텐데. 일본어로 뭐라뭐라 설명이 되어 있었는데 대충 에도시대 무기의 일종,

동으로 만든 추와 철로 된 낫을 사슬로 이었다는 이야기인 거 같다. 저걸 휘둘렀으리란 생각만으로도

굉장히 섬뜩한 느낌이 든다. 여기저기 마구잡이로 가 박히진 않았을까.


그런 불상사가 일어날 경우에 대비해 '윗대가리'들은 이렇게 탄탄한 갑옷을 입고 버티는 거겠지만, 역시

아까 그 남성용 가마의 주인공임에 틀림없을 이 히로사키성의 번주는 참 작다. 요새 열살짜리 꼬맹이의

체구와 비슷했겠구나, 생각에 확신이 들었던 순간.

성의 각 층 옆구리마다 나있는 조그마한 창문을 자세히 보니 동으로 만들어진 거 같다. 파랗게 녹이 슬어서

제법 세월의 더께가 실린 표정을 하고 있던 창문, 아무래도 방어의 목적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서 창문이 작고

저렇게 이중으로 나무 문살을 해둔 게 아닐까. 바깥 풍경을 보기에 딱히 유리한 창문은 아니다.

굉장히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야 2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데 머리고 발걸음이고 온통 조심하라는 표지가

시뻘건 영어로 적혀있다. 아무래도 성의 기본적인 사이즈가 체구가 작은 일본인들 기준으로 맞춰져있어

(영어를 쓰는) 서양인들에게는 꽤나 곤혹스러울 거 같다. 한국인 표준에 가까운 나 역시 저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서 비행기 이코노미석에 끼어앉은 듯한 갑갑함을 느꼈으니 서양인들은 오죽할까.

굉장히 세련되게 만들어진..쟁반이랄까, 접시랄까, 아님 그냥 장식품이랄까. 조개껍데기를 본따서

만들어진 황동색 틀 안에 슬쩍 웃고 있는 듯한 생선이 한마리 돋을새김되어 있었다. 그리고 가만히

자세히 보면 생선 뒷목쯤에 무슨 조그마한 집처럼 생긴 자개가 붙어있기도 하다.

그리고 히로사키성의 번주로 임명되었던 번주들의 변천사를 보여주는 일종의 '족보'. 봉건제도의 시스템상

번주들은 언제고 중앙의 권력자가 임명하고 폐할 수 있었던 거라지만, 실제로는 혼인관계나 세습으로 인한

변화가 더 많은 편이었다고 한다. 그래도 얼핏만 보아도 1600년대 이래 19세기말까지 꽤나 복잡해 보인다.

그나마 번주들의 가문을 나타내는 문장이 때마다 바뀌었으니 다행이지, 유럽처럼 가문이 합쳐지거나 하면

문장도 합쳐지고 했으면 완전 복잡한 문장이 최종적으로 남지 않았을까.

그래서 1895년, 이 히로사키성이 히로사키 공원으로 일반에 개방되기 직전에 이성을 지키고 있던 번주

가문의 문장은 바로 요것. 아마 성 2층에 밀랍인형으로 제작되어 관광객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있는

저 분이 이 성의 마지막 주인 아니었을까.


천수각의 어느 창문에서 내려다본 히로사키 성의 전경. 앞에 새빨간 이쁜 다리가 보이길래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천수각을 떠나 성의 다른 곳들을 살펴볼 때 일부러 지나보았다. 역시 생각했던 대로 천수각을 올려보기

딱 좋은 장소기도 하고, 성의 모습이 시원하게 트여보이는 곳이었다.  

3층짜리 천수각의 꼭대기층은 생각보다 전시물이 없어서, 사람들은 천장 한번 쳐다보며 천수각의 누각이

어떻게 생겼는지 한번 확인하고 사방의 창문에 붙어선 히로사키 성의 전경을 눈에 담기에 바빴다. 어떻게

생각하면 커다란 범선의 전망대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무로 만든 고층건물의 독특한 분위기가 맘에

들었다. 원래 5층짜리로 만들어졌었다니 그때는 이보다 더 높은 위치에서 멀리까지 보였을 텐데 아쉽다.

오른쪽 위에 보이는 게 히로사키성의 천수각, 그리고 나머지 보이는 부분은 히로사키성의 혼마루(本丸).

지금은 온통 초록빛 넘실거리는 벚나무밖에 보이지 않지만 원래는 저렇게 어전과 보물창고, 돈창고 같은

것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었다고 한다.

창문뿐 아니라 천수각의 기와도 청동으로 덮여있었던 거다. 어쩐지 그 미묘한 빛깔이 인상적이다 싶더니

청동이 녹슬어 에메랄드빛 비슷하게 변색되고 말았다. 그런 이끼덮인 듯한 느낌의 색깔이 천수각 벽면의

하얀 빛깔, 그리고 지반을 이루는 돌들의 담백한 색조와 어울려서 꽤나 매력적인 분위기를 연출해냈다.

천수각을 나와 성의 다른 곳들을 둘러보러 걷다보니 어디서도 천수각이 언뜻언뜻 드러난다. 그러면서도

해자를 따라 빼곡하게 심어진 나무들이 휘영청 가지와 잎사귀를 늘어뜨려 좀처럼 완벽하게 제 모습을

노출시키지 않는 모습이, 아무래도 천수각을 외적이나 간첩의 침투로부터 방어하기 위한 고려가 되어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나마 선명하게 나타난 건 아까의 그 빨간 다리, 게조바시 다리 위에서나 겨우.


그러고 보니 천수각을 해자의 깊은 바닥에서부터 떠받치고 있는 기반석들이 만들어낸 콧날이 굉장히

날카롭다. 칼날처럼 우뚝 서있는 기반석의 형태를 저렇게 짜맞춘 것도 신기하지만, 이게 바깥쪽 해자와

중간 해자를 통과한 후에 세번째이자 최종으로 나타나는 안쪽 해자인 걸 감안하면, 혹시 모를 침입과

전쟁에 대한 방비가 굉장히 철저했다는 걸 반증하는 것 같다. 그만큼 불안정하고 전쟁이 일상이던

시대상을 보여주는 거겠지만, 그 언젠가 시체가 산처럼 쌓였을지 모를 저 해자 아래엔 그야말로

반들반들 싱싱하기 이를 데 없는 연잎들이 무섭도록 자라 있었다.


히로사키 성이 통째로 공원과 식물원으로 변한 히로사키 공원에 천수각만 있는 건 아니다. 천수각이

있는 혼마루를 포함해서 북쪽에 남아있는 성곽이라거나, 3개의 망루와 5개의 성문, 삼중으로 된 해자등이

꽤나 그럴듯한 풍광을 만들어내는 거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왕벚나무 옆의 '동내문'의 모습.

활짝 열린 문밖으로 보이는 수령 오래되어 보이는 굵은 나무들은 언제부터 여길 지키고 있었을까.

성문의 쇠경첩이 저렇게 붉게 녹슬고 삐걱거리며 쉬이 움직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지만

문짝에 살벌하게 이열 종대로 징처럼 박혀있는 저 쇠못들의 예기는 여전해 보인다.  


그리고 또다른 문. 거의 비슷하게 생긴 문이 혼마루를 둘러싸고 동쪽과 남쪽에 버티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밖으로

성루 세개가 천수각과 혼마루를 에워싸고 지키는 형태. 좀더 높은 데서 한눈에 볼 수 있었다면 히로사키성이

무엇을 꼬옥 품고서 지키려 하는 건지 바로 알아볼 수 있지 않았을까. 비록 지금에야 온통 벚나무가 가득한

공원이 되어버려서 과거의 그 적나라하고 잔혹한 성의 '권력지도'가 잘 보이진 않겠지만. 모든 것은 성의

중심, 그리고 성의 주인을 위해 고안되고 배치되었을 그 때의 풍경.

히로사키 공원 내에는 세계 각지에서 수집한 식물들과 화초들을 기르고 있는 식물원이 별도의 공간으로

관리되고 있다고 한다. 가보지는 못했지만, 공원 내를 여기저기 정처없이 걸어보는 것 만으로도 거의

무슨 식물원이나 우거진 숲을 걷고 있는 느낌이 들 정도로 나무가 빼곡했고, 온통 녹색이었다. 그치만

별도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다는 그 식물원에는 꽃달력길이나 고산식물들만 모아든 정원 등, 흥미를

돋우는 것들이 적지 않은 거 같으니 기회가 닿으면 가보는 것도 좋을 거 같다.

드문드문 이렇게 숲으로 난 길을 막아선 낡은 바리케이트도 보이고, 그 뒤로는 무려 50여 헥타르에 이르는

이곳 공원에서 벌채한 게 틀림없는 나무들이 차곡차곡 정돈된 채 서로를 의지하고 서 있었다.

그리고 화장실. 공원 여기저기에 이렇게 잘 만들어진 단아한 느낌의 화장실 건물이 있었다. 멀리서 보면

저게 화장실인지 매점인지 잘 모를 정도로 깔끔하고 정갈한 분위기를 풍기는 게 인상적이었다.

히로사키 성에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왕벚나무가 있다곤 하지만 그 나이는 '고작'(?) 120살, 그에

비기자면 500살이 넘는다는 이 나무는 거의 히로사키 성이 지어진 이 땅의 주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 같다. 높이가 거의 18미터에 이르고 둘레도 5미터가 훨씬 넘는 이 임팩트 강렬한 나무는

이젠 그 거대한 몸뚱이를 스스로 지탱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는지 꽤나 높은 곳에다가 저렇게

끈을 칭칭 동여매어 몸이 비틀리거나 쪼개지지 않도록 조치해놨다는 게 좀 아쉬웠지만.

히로사키 성을 돌아나오는 길, 제일 바깥쪽 해자에서 수면을 덮고 있는 풀들을 걷어내고 있는 분들이

눈에 띄었다. 어딜 봐도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고 흐트러짐없이 정갈한 모습이 유지된다 했더니 역시

그건 저런 분들이 계속해서 풍경이 뭉개지지 않도록, 지저분해지지 않도록 신경써서 관리한 덕분.

천수각에 비치된 스탬프를 움켜쥐고, 이걸 과연 여권에 찍어도 나중에 출국하고 한국에 다시 입국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을까 잠시 고민을 했더랬다. 주위 사람들이 신성한 여권에 그런 스탬프를 마음대로

찍으면 나중에 한국 못돌아간다고 겁을 주는 바람에 그냥 다른 종이에 찍고 말았던 씁쓸한 기억이

묻어있는 히로사키성 천수각 기념 스탬프.







* 이번 여행은 하나투어 '겟어바웃' 필진의 일원으로 다녀왔습니다.
Get About - 당신의 여행이야기

제주도 서남부에 '오설록' 차박물관이 있다면 동북부에는 '다희연'이 있는 셈이었다. 너른 차밭이 언덕을

꿀렁꿀렁 넘어다니며 펼쳐진 모습도 장관일 거라 생각은 했지만, 여기는 동굴까페가 있는 데다가 카트를

직접 운전하며 6만평 차밭을 돌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꼭 가보고 싶었던 것.


거문오름 자락에 연해 있다고 하더니 정말, 다원 한쪽엔 거문오름 트레킹코스 종점을 알리는 현수막이

나부끼고 있었고, '다희연'이란 이름보단 '동굴의다원'이란 이름으로 계속 도로표지판이 나오더니 정말,

구석구석 땅밑세계가 은근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갈라지고 터진 검정돌바닥 아래로 슬쩍 내비치는 땅밑의

터널이라거나, 물소리가 졸졸거리며 옆구리가 터친 동굴까지.

우선 카트를 빌려서 다원을 한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6만평에 달한다니 걷기엔 무리인 크기인데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를 피하기엔 저렇게 꽁꽁 비닐차양이 둘러쳐진 전동카트가 제격. 엑셀레이터를

밟으면 소리없이 나가는 그 느낌이 굉장히 신기해서 한두어 바퀴 다원을 돌며 카트레이싱을 펼쳐보기도 했다.

카트를 타다가 발견한 전망대..라기엔 조금 애매한 높이의 2층짜리 건물. 비에 젖은 철계단을 조심스레

휘휘 돌아감으며 2층까지 올라갔더니 탁 펼쳐진 풍경. 몇개 놓인 나무의자와 말간 아크릴창 너머 가지런한

싱그러움이 있었다.

아침부터 여우비가 오고 있었는지라 햇살이 언뜻언뜻 내리쬐는 와중에도 부슬거리는 빗발. 안개가

자욱한 구릉들이 안온하게 감싸고 있는 녹색의 다원. 차라리 비가 조금 온 게 다행이다 싶었다. 사람 하나

마주치기 쉽지 않은 공간에 고즈넉한 공기가 차분하게 내려앉은 채 단단히 응결된 느낌.

카트를 타며 지나친 풍경들. 6만평이란 게 얼마나 넓은지 처음엔 와닿지 않더니, 좀 달리며 둘러보니까

비로소 실감이 간다. 산도 있고 나무도 있고 오르막내리막길도 있고 언덕도 있고 다원도 있고. 저런

흔들의자들이 띄엄띄엄 놓여있기도 하고. 참 많은 게 들어가는구나.

그야말로 '언덕 위의 하얀 집'이다. 빗물에 씻겨 더욱 싱싱하게 풀빛을 뿜어내는 녹차밭과 잔디밭 사이로

깜장돌이 차곡차곡 즈려박혔고, 돌이 이끄는대로 밟아 올라가면 도착하는 언덕 위의 하얀 집. 그리고 다희연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또다른 뷰포인트.

녹차밭만 있다기엔 중간중간 우거진 나무들도 있고, 늘씬하게 뻗은 채 그림처럼 서 있는 나무도 있었고,

아직은 전부 조성완료되지는 않은 것 같지만 자귀나무 동산이나 종가시나무로 조성한 미로 비스무레한 것도

있었다. 나뭇잎이 듬성듬성 가지끝에 성기게 매달린 게 종가시나무인 거 같던데, 아직 미로라기보다는 그냥

정신없이 우거진 종가시나무숲이란 느낌이었지만 조만간 정비되면 괜찮지 않을까. 녹차나무로 팔괘진을

만들었단 곳은 제법 잘 정비되어 있었고, 사진에 이쁘게 나오려면 조금 높이서 내려볼 수 있는 받침이나

사다리를 만들어두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조금 남았던 곳.


곶자왈, 제주도 여기저기에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곳이 많다 했더니 고유명사가 아니라 일반명사였다.

'곶'은 숲, '자왈'은 자갈을 가리키는 제주도 사투리. 그러니까 자갈이 깔려있는 숲길이랄까. 제주도의 독특한

화산지형으로 생겨난 산책로인 셈인데, 비를 맞아 더욱 꺼뭇꺼뭇 구멍송송해진 현무암 틈새로 빼곡히 자리를

잡은 이끼들과 잘박거리며 발 아래에서 뒹구는 자갈들이 묘하게도 정결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다지 길진

않았지만 온통 나무들이 빼곡하게 하늘을 가린 곶자왈 산책로를 걷고 다시 탁 트인 차밭으로 나오니

기분이 묘하다.

그렇게 곶자왈도 숨어있는 6만평의 너른 차밭을 샅샅이 수색하듯 전동카트로 헤집고 나서, 드디어 동굴의 다원

입장하기 직전. 거문오름에서 뻗어내린 여러 자락 중에서도 동굴계 자락 끄트머리에 자리한 덕분에 가능했던

거라고는 들었지만 대체 어떤 식이길래 동굴의 다원이라는 걸까 궁금하기도 했고, 녹차로 만든 아이스크림이나

팥빙수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크기도 했고.

생각보다 깊고, 크고, 넓은 동굴이 조금 이어지더니 불쑥 밝은 빛이 가득한 홀이 나왔다. 뭔가 물이 뚝뚝

떨어지고 흐릿한 조명에 조악한 테이블이 몇개 있으려니 했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고, 깔끔하고 나름

단정한 스타일의 인테리어를 갖춘 천장 높은 까페가 있었던 거다. 30만년전에 형성된 동굴이라더니, 그래서

저리도 넓고 큰가 싶었다.


녹차 아이스크림은 물론이고 녹차빙수, 녹차발효액에 각종 케잌과 빵류까지 제법 잘 갖춘 까페에서 잠시

앉아서 시원한 에어콘을 쐬면서 이것저것 맛도 보며 쉬다 보니 금세 땀이 식어버렸다.


돌아나오는 길, 들어가는 길이나 나오는 길이나 같은 길이었지만, 이런 경우 늘 신기한 건 들어갈 때 못 보았던

것들을 나오면서 새삼 발견하는 경우가 왕왕 있더라는 것. 내가 관찰력이 떨어지거나 주의가 산만해서인지도

모르지만, 저렇게 동굴 외길 한켠에 나란히 걸린 '사랑의 서약'은 왜 아까 못 봤을까.

녹차를 응용한 음식들을 파는 레스토랑도 있고 도자기만들기를 체험해볼 수 있는 전통도요도 있다고

하는데 뭐, 배는 고프지 않고 도자기는 익히 만들어보았으니 전부 스킵. 사전에 예약하면 녹차따기나

녹차팩만들기, 녹차비누만들기나 녹차장아찌, 녹차발효액만들기 체험도 해볼 수 있다고 한다. 조그만

아이들이랑 함께 제주도에 놀러간다면 한번쯤 체험을 해보는 것도 좋을 거 같지만, 머리 굵은 사람들끼리의

여행이라면 짙푸른 녹색의 다원에서 카트를 질주하곤 동굴까페에서 녹차 팥빙수 한그릇 흡입해주는 정도면

충분하지 싶다.



외도에서 촬영되었다는 옛날옛적의 드라마, '겨울연가'를 알리는 낡은 간판이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2002년 드라마였던가..했다가 문득, 군대가는 바람에 마지막 엔딩을 못봤었단 생각이 떠올랐다.

근데 정말 어떤 장면에서 외도가 나왔던 거지? 전혀 기억에 남는 게 없는 걸 보면 내가 놓친 엔딩?

국내 유일의 해상농원,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섬으로 개인적인 취향과 안목이 그대로 투영된

이국적인 아열대 식물들, 평소에 관리가 얼마나 잘 되고 있는지를 느끼게 하던 범상치않은 조경.

온통 하늘로 치솟은 덤불의 끄트머리가 무슨 탑의 형상같기도 하고, 에너지가 뻗쳐나가는 거 같기도.

동양의 하와이라 불리기도 한다는 외도에서 눈에 띄던 건 역시 육지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아열대의 식물들, 황금빛에 가까운 신기한 빛깔을 뽐내던 요 신기한 풀떼기처럼.

산책로를 따라 걷는 길, 한바퀴를 도는데 대략 한시간 정도 소용된다니 걷기 전에 몸을 가볍게

하는 건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이 엘레강스한 화장실 표지 역시 섬주인의 취향이 그대로

묻어나는 하나의 특징적인 포인트일 텐데 조금 거창하단 느낌이 없진 않았지만 이쁘다.

화장실 표지도 표지지만, 전지역 금연을 실시할 정도로 환경을 보호하기에 열심인 이 작은 섬에선

빗물을 저장시설에 모아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아마도 섬이 작아 딱히 물이 있지는 않은가 본데,

이렇게 많이 다녀가는 관광객들을 소화하려니 이런 부탁을 할 수 밖에 없을 듯.

정말이지 깔끔하게 전정된 가로수들, 가지들을 툭툭 쳐낸 모양새가 인상적이다. 옷걸이로 쓰면

딱 좋겠다 싶은 생각도 들고, 저기에 잘못 부딪히면 푹 박히는 거 아닌가 싶어 지레 소름돋기도

하고. 저런 곳의 나무를 켜내면 옹이구멍이 송송 박혀있는 거 아닌가.

2월의 매화꽃. 짙은 초록색의 두텁고 반들거리는 울창한 잎사귀 사이에서 샛노란 술을 가진

새빨간 꽃들이 촘촘이 박혔다. 슬쩍 잎사귀를 차양삼아 햇살을 가리려는 듯한 꽃잎의 제스처가

사랑스럽다.

판판한 평지에 조성된 정원이 아니라 제법 오르내림이 있는 조그마한 산 같은 섬인지라, 이렇게

산책로를 걷는 재미도 더 큰 거 같았다. 더러는 높은 나무로 울타리쳐진 길을 오르기도 하고,

아니면 저런 야트막한 정원수들이 양쪽에 줄서 있는 길을 조심조심 내려오며 전체 섬을

내려보기도 하고.

조금 당황스러웠던 공간, 외도에서 가장 뭐랄까, 이질적이고 뜬금없다 싶었던 공간이었던 거 같다.

물론 갠적으로. 이름하여 '비너스가든'과 '음악당'. 루브르박물관에서 봤던 니케상 비슷한 것도

하나 서 있고, 그리스 느낌 가득한-그렇지만 꽤나 아쉬운 느낌 역시 가득한-구조물이 바닷바람을

맞고 녹슨 채 서 있었다.

프랑스 식으로 잘 다듬어진 정원은 외도의 한복판, 그야말로 외도 정원의 노른자위라고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조금만 늦게 와서 날도 풀리고 꽃도 좀더 피고 녹색도 좀더 싱싱했다면 더 멋졌을 거 같긴

하지만, 뭍은 아직 겨울바람 씽씽 불어닥치는 2월에 갔어도 꽤나 좋았았던 공간.


중간중간에 놓인 벤치 역시 바닷바람에 씻기고 적당히 헐어보여서 오히려 더 맘에 들었다.

괜히 엘레강스한 분위기를 내려 힘준 게 아니라, 그리고 괜히 유럽이나 그리스식의 분위기를

잡느라 꼬불꼬불한 문양으로 흉내낸 게 아니라 좋았다.


같이 갔던 사람들이 여긴가, 여긴가 했다. '겨울연가'에 나왔던 장면이, 나왔던 외도의 풍경이

여기 어디선가 찍혔던 건 아닐까 추측이 난무했던 곳.


곳곳에 숨어있던 귀여운 소품들, 고양이 가족들의 익살맞은 표정도 맘에 쏙 들었지만 색색깔의

기린들이 보이는 시크한 표정과 우물대는 듯한 입모양이 참.

외도의 주인이 얼마나 조경에 힘쏟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몇그루의 잘 가꿔진 나무들.

남자사람 머리만 해도 삐쭉삐쭉대지 않도록 잘 다듬어주려면 삼주에 한번씩은 깎아줘야 하는데,

작다고는 하지만 이 섬 전체를 정원으로 꾸며버린 스케일을 감안했을 때 정말 얼마나 손길이

필요한 일일까. 하나 흐트러짐이나 지저분한 구석없이 이렇게 관리하려면. 



양배추처럼 생긴 꽃..저거 이름이 뭐더라, 맨날 듣고는 까먹어버리는 이름의 꽃들 사이로

곰발바닥이 새겨진 시멘트 바닥을 따라가면, 지금은 출입통제된 정원의 어느 샛길이 나타난다.

막혀있단 거 뻔히 보이지만 곰발바닥이 귀여워서 일단 따라 걷고 보는 단순한 걸음걸이.


이전부터 섬에 대한 로망은 있었다. 한쪽 끝에 서면 다른 쪽 끝이 보이는 그런 조그마한 섬.

외도는 그정도 사이즈는 아니어도, 불쑥 올라선 섬의 중앙부에선 섬의 가장자리가 손에 닿을듯

가깝게 보일만한 사이즈. 정원으로 꾸며진 섬 전체가 한눈에 보였다. 그리고 그 너머 섬들이

가득한 남해바다가 희끄무레한 바다안개를 덮은 채 버티고 있고.

기묘하게 생긴 벤치, 아마도 커다란 죽은 나무를 다듬어서 만든 거 같기도 하고. 그리고 어디론가

통하는 샛길 하나가 또 나무를 얼기설기 엮어 만든 귀여운 바리케이트로 막혔다. 자연스런

나무의 휘어짐이나 모양새가 그대로 살아있는 느낌이 좋다.

날씨에 따라 대마도까지 보인다는 전망대, 오백원짜리 동전은 내가 어렸을 적 통일동산이나

판문점 같은 곳에 올랐을 때부터 변치않는 가격인 거 같다. 물가는 미친 듯이 뛰었어도

전망대용 망원경 가격은 십여년째 그대로.


날이 흐리고 해무도 끼어서, 게다가 딱히 망원경까지 동원하지 않아도 섬 너머는 전부 바다니깐

그냥 맨눈으로 보아도 이쁘다. 그리고 전망대 아랫자락으로 펼쳐지는 외도의 살갗도 참 이쁘고.

거의 외도를 한 바퀴 돌고서, 선착장으로 다시 돌아가는 길. 내려다보이는 '비너스정원'과

'음악당'의 모습이 자그마하니 귀엽다. 그리고 건물 안에서 삥삥 도는 저 계단 역시.


'명상의 언덕'이라는 이름이 붙은 곳에 있는 조그마한 교회, 혹은 성당. 사이즈로는 정말

X딱지만하다는 표현이 딱 맞아떨어질 정도로 작지만, 안에 슬쩍 들어가서 바라본 창밖

풍경은 바다랑 섬들이랑 사이좋게 어깨겯고선 따뜻하기 그지없던.


선착장으로 가는 길, 바닥엔 동글동글 까만 돌들이 모여서 이런저런 기하학적인 문양들을 만들고

담백한 풀꽃모양도 떠올려냈다. 그리고 가로수들 그루마다 둘러싼 깔끔한 돌화분에 박혀있는

산뜻한 타일들, 애기들이 지나가다 관심을 바싹 갖고 하나하나 눈여겨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바닥에 하트 모양이 둥실둥실 떠다니는 공간을 발견, 저 은은하고 부드러운 핑크빛의

하트에는 동글동글하고 작은 조약돌로 두번이나 하트모양으로 띠도 둘려 있다. 일종의 이별여행을

떠났던 곳이니만치, 저런 모양 하나하나에 쿡쿡 가슴이 찔려왔지만, 사랑ing인 사람들이야 뭐.


선착장에 내려서기 직전, 외도의 마지막 포스트인 '외도 갤러리'라는데 다른 것보다 그 뷰가

참 좋았다. 천장이 높아 바람이 숭숭 자유로이 드나드는 커다란 정자 같은 곳에 삼삼오오

앉아서는 바닷바람도 맞고, 멀찍이 시선을 던져둔 채 망연하게 넋놓고 있는 것.

배가 선착장을 떠나는 순간. 선착장과 배 사이를 쉼없이 이간질하며 철썩철썩 거칠게 내지르는

파도를 견디어내려면 저렇게 튼튼한 타이어를 빈틈없이 둘러야 하는 거다. 그렇게 하고서도

바닷물과 바닷바람과 파도와 무디고 둔탁한 뱃전에 쓸려 금세 낡고 허름해지는 타이어들을

보고 있으면, 정말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구나. 늘 긴장 가득한 관계구나 싶다. 배와 항구란 거.




도쿄 신도청도 도쿄의 야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멋진 뷰포인트 중의 하나로 이름높은 곳이다.

도쿄 타워를 코앞에서 볼 수 있는 모리타워와 함께, 도쿄 전역을 내려다볼 수 있고 날이 맑으면

후지산 봉우리도 볼 수 있다는 전망대가 있다.
 
(*이전글 : 도쿄타워가 있는 야경, 모리타워에서 보는 게 최고.)

도쿄도청 제1본청사 45층, 지상 202미터 높이에 남북으로 두개의 전망대가 있다고 하는데,

층수만 따지자면 그렇게 높은 건물은 아닌 거 같지만 도청 건물 밖에서 올려다본 건물 꼭대기는

꽤나 아득해 보였다. 단단하면서도 꽉 차보이는 도청 건물 자체가 주는 위압감도 적잖고.

이런 게 도청이라니, 딱히 우호적인 분위기는 아닌 거 같다.


크고 호화롭게 짓느라 돈을 많이 들였고, 결국 재정상태를 악화시킨 주범 중 하나라는 반성이

있다던가, 한국의 지자체들이 경쟁하듯 높고 커다란 건물들 짓는 모습이나 중앙정부가 이런저런

대규모 토목공사를 강행하는 모습이 겹쳐진다.

도쿄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꽤나 편하다고 생각했던 건, 곳곳에 있는 안내판에 대개 한글이

함꼐 병기되어있더라는 점.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만 잘 따르면 바로 전망대다.

엘레베이터 앞, 청경이 가방을 열어보는 등 소지품 검사를 하고 있었다. 일일이 가방을 열어보긴

했지만 딱히 금속탐지기도 없고 그냥 좀 요식적이라는 느낌. 아무래도 공공건물이고 관광객이나

외부인이 늘 왔다갔다 할 테니 안전문제는 신경을 써야겠지만, 동시에 한명한명 제대로 검사하면

관광객들에게 불편을 끼치고 명소로서의 위상도 추락할 건 뻔한 일이다. 그 중간 어디쯤에선가

타협을 했다는 딱 그 수준의 검사.

엘레베이터는 굉장히 평범했다. 아무런 장식도 없이, 외부를 바라볼 수 있는 전망 엘레베이터도

아니었고, 속도가 그렇게 빠르지도 않았으니까. 도쿄 도청 전망대는 꽁짜니까 이런 곳까지

정비하길 바라는 건 무리인지도 모른다. 전망대는 뭔가 도청 건물의 '부록'같은 느낌이랄까.

단순히 '부록'이라고 표현하면 이 쪽에서 내려다본 야경에 대한 실례가 될 거 같긴 하다.

굵직굵직한 고층건물들이 옆에 나란히 서 있었고, 해가 저문지 꽤나 지났음에도 여전히

불빛이 층층이 새어나와 도쿄의 밤거리에 떨궈지고 있었다.

전망대를 한바퀴 돌아보며 도쿄 시내 전경을 360도 구경할 수 있었고, 눈에 띄는 주요 건물들이

무슨 건물인지를 알려주는 설명도도 붙어있었다. 그렇게 이름붙은 건물들 너머로 무수하게

빛나는 자그마한 불빛들, 너무 작아서 부스럭지같기도 하지만 그런 것들이 모래알처럼 번져있어

더욱 아름다운 풍경이 나오는 거 같다.

한바퀴를 빙 맴돌고 나서는 전망대 안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모리타워 전망대에 비해서는

뭐랄까, 좀 어수선한 분위기다. 여기저기 기념품가게나 까페가 늘어서 있는 것도 좀

어색한데 거기서 파는 것들도 좀 두서도 없고 특색도 딱히 없고, 그래서 아마 그런 느낌이

더욱 심하게 드는 듯 하다. 일반 사무동 건물의 빈 사무실을 텅 비우고 활용하는 느낌.

그런 어정쩡한, 두서없는 기념품이랄까 오락거리 중의 하나. 정체를 잘 모르겠다. 한국어와

중국어로 된 설명이 적혀있긴 한데, 읽어도 잘 뜻이 전달되지 않는 데다가 살짝 바랜듯한

탁하고 뿌연 조명부터가 싸구려티가 풀풀 풍기는 듯. 그나저나 저 한국어는 왜 저렇게도

어색한 건지, '일본의 선물에 아무쪼록 한국어'? 자동번역기로 대충 번역한 거 같다.

어쩌면, 이곳은 그저 크고 화려하고 웅장하게만 지으려던 도쿄 신도청으로 생긴 재정악화를

해소하고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예정에 없이 대중에 공개된 전망대인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큰 건물을 도청 기능으로 모두 채울 수 있을리도 없으니 공실율도 상당하지 않으려나, 일단

전망대 한층부터 빼서 이런저런 기념품가게니 까페 집어넣어놓고 활용하고 있는 건 아닌지

심히 의심스러웠다. 뭐, 도쿄에 놀러간 입장으로서는 저런 그럴 듯한 야경을 볼 수 있는

포인트가 하나 더 생긴 셈이니 땡큐지만.

일본이란 나라, 참 민감하고 조심스럽게 평해야 할 나라 중 하나겠지만, 하나는 분명하다.

우리나라가 걷게 될 길은 이 나라가 걸었던 길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

패션이나 음식류의 최신 트렌드도 그렇지만, 대두되는 사회적 문제들도 그런 거 같다.

어쩌면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송도니, 용산이니, 아님 다른 지자체의 우후죽순처럼 솟아나는

건물 꼭대기층 전망대에서 야경을 볼 수 있게 되는 건 아닐까, 그렇진 않았음 좋겠다.





도쿄타워가 있는 야경, 모리타워에서 보는 게 최고. 에서 이미 보았던 그 야경, 좀 더 자세히 보고 싶은 사람을

위한 안내도. 도쿄 타워를 기준으로 어디가 어디에 해당하는지, 빌딩들 하나하나에 이름을 불러주는 순간

내게 와서 꽃이 될지도.






도쿄의 야경을 보겠다고 도쿄타워에 오르는 건, 뭐랄까, 코끼리를 보겠다며 꾸역꾸역 코끼리 등짝을 기어오르는

개미와 비슷한 짓을 하고 있는 거다. 도쿄타워의 내부가 궁금하다면야 모르겠지만, 도쿄타워없는 도쿄의 야경은

왠지 심심할 수 밖에 없는 것. 그래서 도쿄타워가 있는 도쿄의 야경을 보려면 모리타워에 가라고들 한다.

롯폰기힐즈에 있는 모리타워, '고작' 52층짜리 건물이지만 그래도 왠지 서울에 있는 54층짜리 트레이드타워보다

많이 높고 커보인다. 단순히 타워만 있는 게 아니라 주변 쇼핑몰과의 연계라거나, 빌딩 주변의 녹지공간이라거나

본격적으로 마련해둔 전망대 공간이나 모리미술관 같은 시설물들이 양팔을 활짝 벌려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는 분위기 때문인 거 같다.

전망대로 바로 직행하는 엘레베이터, 모리 아트뮤지엄과 도쿄시티뷰, 전망대가 있는 52층. 타이완의

101빌딩처럼 미친 듯이 빨리 쏘아져올라가는 느낌은 없었지만 뭐, 괜찮다.


그리고 다른 것들보다 도쿄의 야경. 도쿄는 참 크다는 느낌, 게다가 빌딩들이 이렇게 촘촘하게 늘어서있단

것도 인상적. 아무리 서울의 도심이래봐야 고작 몇 블록만 지나면 하늘까지 치솟던 스카이라인이 어느결에

땅으로 잔뜩 가라앉아있기 마련인데, 여긴 도쿄의 도심중에 도심이라고는 해도 참. 게다가 사방에서

반짝이는 불빛들까지.

도쿄에 오기 전 '도쿄타워'를 이제야 보았었다. 생각보다 영화 중에서 도쿄타워의 비중은 크지 않았고, 내부의

모습도 그렇게 많이 노출되지 않았는데 다녀온 사람들은 전부 생각보다 별 거 없더라는 입을 모은 반응들. 낮에

보면 더욱 별거 없다는 둥 많은 이야기를 듣고 갔지만, 불빛이 온통 내려앉은 도쿄 시내에 우뚝 서서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불이 환하게 켜진 도쿄타워는 꽤나 멋지다.


모리 미술관에서의 전시와는 별도로, 전망대 내에서도 다른 특별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공룡전'. 전망대의

유리는 뭔가 빛이 난반사되지 않는 특수유리를 갖다 꼽아놨으면 좋겠는데 사방에서 빛이 튕기는 바람에 사진

찍기도 쉽지 않았지만, 심하게는 이렇게 공룡 한마리가 도쿄타워를 쥐고 흔드는 듯한 일루젼이 펼쳐졌다.






각국의 발렌타인데이가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다는 건 알았지만, 타이완의 발렌타인 데이는 8월 16일이라고 했다.

타이페이101의 1층이나 지하에는 쇼핑몰과 레스토랑들이 있는데 온통 발렌타이데이, 그리고 아버지의 날을

맞는 판촉 행사 중이었다. 아버지의 날..은 언제일까 근데.

전망대에 올라가는 티켓을 사려면 5층, 매표소로 가야한다. 거기에서 바로 89층까지 올라가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야 하는 것. 5층까지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 화려하게 꾸며진 101빌딩의

외관을 담은 포스터가 그럴 듯 하다.

곳곳에 붙어있는 전망대 입구를 가리키는 화살표를 따라 가다보면 금세 도착했다. 높다란 몰 천장이 시원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공간이 넓어 보이게 했었는데, 코엑스몰이나 그런 곳도 천장이 좀만 더 높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천장이 높으면 왠지 좀더 쾌적해 보이고, 여유로와 보인다.

도착한 전망대 매표소. 왠지 매표소 입구에서 서로 얼굴을 마주친 사람들끼리 알 수 없는 경쟁심에 휘말려서

거의 뛰다시피 줄을 섰던 순간. 중국에서 온 단체 관광객도 많이 보였고 드문드문 한국어도 들렸지만 나는

아무것도 안 들리는 척 모른 척.

그리고 드디어 전망대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줄에 합류, 옆에는 왠 전구처럼 똥그란 녀석이 놀란

표정을 짓고 있길래 이게 뭐하자는 플레인가 싶어 요모조모 뜯어봤더니, 아하. 숫자 101을 저렇게 형상화한 것.

그렇게 귀여운지는 모르겠는데, 그래도 101의 숫자를 갖고 참 솔직하게 이미지화했구나 하는 느낌은 강렬했다.

89층, 통유리로 된 사면 너머로 내려다보이는 타이페이 시내의 전경, 당장 방금 다녀왔던 국부기념관의 모습이

조그맣게 보인다.

이제 막 어두워지려는 찰나, 점점이 이어지는 불들이 한순간 팟, 하고 일제히 빛나기 시작했다.

타이페이101 빌딩의 외관에 달려있던 경첩 같은 장식물들, 여기서 자세히 보니까 이렇게 생긴 거였다.

순식간에 어둑해지는 하늘 아래, 불룩 돋아난 실핏줄처럼 점점 도드라져 보이는 불빛들과 더불어 떠올라

보이는 타이페이의 야경, 창문에 거의 코를 박다시피 구경하고 있었는데 문득 눈에 들어온 경고 표지문.

101빌딩은 외관이 매끈하다기보다는 뭔가 울룩불룩, 재미난 모양새여서 그런지, 외벽 유리창에 반사되어

빛나는 주홍불빛들을 전망대에서 볼 수 있었다. 아직 완전 거뭇거뭇해지기 전, 어슴푸레하고 어설픈 분위기의

타이페이 시내를 보자니 마음이 싱숭생숭.

죽순의 모양을 형상화해 타이페이101을 지었다느니, 세계에서 가장 큰 무게중심추라느니, 건물에 대한 다양한

에피소드와 이야기들을 소개해둔 자료들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직접 그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무게중심추를 볼 수 있었는데, 88층과 89층에 걸쳐 건물 중심에 설치된

거대한 구가 노출되어 있는 것이었다. 101의 마스코트인 듯한 그 귀엽지 않은 녀석들, 잔뜩 놀라기만 한 녀석들

옆을 지나 허벅지만한 두께의 쇠줄이 팽팽히 내려뜨려진 공간에 들어섰다.

벽면에 적힌 수치들에 따르자면 이 무게중심추의 무게는 660톤, 직경은 5.5미터, 무식하도록 거대하고 무지하게

무거운 물건이다. 이 무게중심추 덕분에 500여미터에 이르는 건물이 외풍이나 외부 충격으로 흔들릴 때의

움직임을 40%까지 감소시킬 수 있다고 하니 대단하긴 하다.

그런 정보들이 적혀 있던 우글쭈글한 벽면, 좀체 한 큐에 찍히지 않는데다가 글자가 깨져보여서 이거 참 난감.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는 엘리베이터, 일분에 1010미터를 오르내리는 속도라니. 왠지 찰리와 초콜렛공장의

비밀에서 나오는 그 설탕 연료 엘리베이터처럼 사방으로 윙윙대며 날아다니다 끝내 하늘까지 펄펄 날아오를 듯.

89층에는 이 타이페이101 빌딩이 준공되고 완공되기까지의 사건들, 그리고 작년 12월 31일 밤 카운트다운을

헤아리던 그 때 이 건물에서부터 사방으로 터져나간 폭죽들의 화려한 영상을 보여주는 상영관이 조그맣게

있어서, 돌아다니다 지친 걸음을 잠시 쉬어갈 수 있게 해주었다.

다시 내려가는 길, 끝내 아쉬움을 못 버린 사람들의 시선은 창밖에 고정된 채 떨어질 줄을 모른다. (88층을 지나

내려가기 위한 엘리베이터를 찾아가는 길에는 구불구불, 최대한 동선을 늘여놓은 듯한 길을 따라 온갖 매장이

잔뜩 호객행위 중이었다. 중국인의 상술이란 역시 경탄할 만하다, 고 생각하기에 충분할 만큼.)

37초만에 5층에서 89층까지 도착했던 엘리베이터, 이번에 내려갈 때도 그만큼 속도를 내려나, 어쩜 더 빠르려나

싶어서 유심히 바라보고 있던 엘리베이터 내 설치된 그래픽.

5층에 내려서서 아까 올라갈 때 미처 찍지 못했던 기네스재단의 공인서부터 찾아 카메라를 들이댔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승객용 엘리베이터임을 인증하는 내용.

다시 1층으로 내려서서 새삼 올려다본 타이페이101의 천장. 쭉쭉 곧게 뻗은 기둥들도 시원하지만, 저 천장 너머

500여미터 상공까지 올라 101층을 차곡차곡 쌓아올렸을 타이페이101를 휘감고 윙윙거리는 거센 바람의 압력과

소음을 떠올리고는 까짓 것, 하고 말았다. 고개를 한껏 젖혀야 겨우 꼭대기에 시선을 안착시킬 수 있으려나.





그 높이가 무려 508미터. 버즈 칼리파(버즈 두바이)가 완공되기 전까지 세계 최고 높이의 빌딩으로 인증받던

타이페이101인지라 시내 곳곳에서 그 모습이 보인다. 하늘을 찌를 듯 하구나, 왠만한 빌딩은 아무리 바싹

눈앞에 땡겨놓고 원근법의 힘을 빌린다 하여도 딱히 상대가 안 된다.

길가를 다니는 타이완 현지인들이야 쏟아져내리는 햇살을 막느라 양산을 쓰고 다니느라 다른 곳에 시야를

두진 않겠지만, 마냥 모든 게 신기해서 두리번두리번대는 여행자의 마음으로는 뭔가 계속 낯설고 새롭고

재미난 것들을 찾아내려 눈이 벌개져 있는 거다.

오토바이가 유난히도 많은 타이페이 시내, 어디서든 신호만 걸리면 마치 모래와 자갈이 분별깔대기에서

분리되듯 오토바이가 맨 앞으로 몰려나온다. 그 뒤론 커다란 차들이 꼬리를 물고 서 있고. 멀리 하얀 햇살에

투명하게 탈색되어 버린 타이페이101의 윤곽.

어디쯤이던가, 도심을 걷다가 어느 순간 불쑥 눈앞에 나타나버린 101에 깜짝 놀랬었다.

다른 건물들이 그렇게 낮지도 않다. 우리나라 서울이랑 비슷하게 적당히 오래된 저층 건물들도 많고 새롭게

올라간 높고 두꺼운 건물들도 적당히 섞여 있지만, 단연 눈에 띄는 높이와 외관이다. 죽순의 형태를 형상화했단

말을 듣기 전에도 슬쩍 예감할 수 있었다.

단수이에 가는 길이었던가, 어딘가의 고가 위를 달리는 차에서도 멀찌감치 타이페이101의 우뚝 솟은 실루엣이

보였다. 다소 도도해 보이기도 하고, 조금은 외로워보이기도 하고.

타이페이101의 91층 전망대에서 야경을 보겠다며 나선 길, 조금씩 빌딩 앞으로 다가설수록 고개를 젖히는

각도가 가팔라졌다. 호오...서울의 트레이드타워나 63빌딩보다는 확실히, 월등히 높구나.

모양새도 꽤나 정묘하게 만들어진거 같다. 미끈하고 유려하게 뻗은 라인과 금빛 번쩍이는 외관을 자랑하는

63빌딩이나, 상승을 거듭하는 그래프 모양처럼 생긴 트레이드타워와는 또 다른 느낌이 있다. 우선 외관 자체에

돌출된 부분이나 장식물처럼 매달린 부분들이 있어서 그런 거 같고, 왠지 손으로 만질만질하면 그 오돌토돌한

골격의 촉감이 고스란히 전해질 거 같아서 그렇기도 하고.



 
해질녘 101타워 위의 전망대에 올라서 내려다본 타이페이 시내의 야경, 야경이야 어디서든 이뿌다지만

불안정한 대기 탓에 뭉게뭉게 예술구름이 피어나는 하늘 아래 다정하게 깜빡이는 주홍불빛들은 참.

101타워에서 엘리베이터로 올라갈 수 있는 최대높이는 89층, 382미터. 거기에서 계단으로 두 층 올라가면

건물 옥상으로 나와 타이페이 시내를 조감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는 거다.

91층 높이, 390미터에 이르는 그 전망대는 사실 타이페이에 오기 전에는 굳이 오를 필요가 있던 곳이기도 했다.

평소 일하는 사무실 높이가 47층인지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어둠이 내려 주홍불빛이 번지는 그 모습들에서

미감을 느끼기엔 다소 질려버리지 않았나 싶었는데, 그래도 조금 갈등하다가 가보기로 결정. 가도 후회, 안가도

후회할 거라면 차라리 가고 나서 후회하자는...결혼과도 같은 고민.


게다가 현재 세계 최고로 높다는 버즈 칼리파(버즈 두바이에서 이름이 바뀐)도 가봤으니, 그 이전까지 세계

최고 높이라던 이 타이페이101도 한번 가주는 게 인지상정이지 싶어서.

올라서자마자 보인 건 촘촘한 안전철망 사이로 빛나던 조그마한 손톱달. 바람은 철망 사이로 숨바꼭질하듯

윙윙 소리내며 노닐고 있었고, 해가 떨어지며 찜통더위는 급속히 사그라드는 느낌이었다.

아래로 보이는 야경은 89층에서 유리창 너머 보였던 풍경과는 또 다른 느낌을 던지고 있었다. 유리창을 통해

보여지지 않는 날것의 풍경이란 감흥 때문인지도, 시시각각 짙게 나리는 어둠 때문인지도.

이런 높은 건물에서는 꼭 줄을 내려 등반을 하거나, 글라이더를 타고 내려가고 싶은 사람들이 있기 마련인지라,

이런 식의 경고 문구 역시 꼭 있기 마련이다. 그에 더해 흡연 금지, 뜀박질 금지라는 건 자칫 불씨가 날려가서

어딘가 불을 낼까 봐, 그리고 뛰다가 자칫 바람에 날려 떨어져 버릴까 봐 경계한 것일 테다.

101타워, 총 101층으로 되어 있어 101타워라고 불린다지만 일반인에게 공개된 부분은 여기 전망대의 91층까지.

아마 나머지 10층은 전망대가 있는 옥상 위에서부터 다시 탑처럼 솟은 이 부분을 가리키는 것인 듯 하다.

커다란 동그라미를 그리고 있는 전망대를 한바퀴 거니는 동안 하늘은 시시각각 어두워졌고, 언제부턴가 건물의

곳곳에서는 조명이 밝혀졌다. 뭔가 동물원 우리를 연상케 하는 안전철망, 다른 점이라면 갇힌 게 이쪽이란 점.

사방을 뛰어다니며-사실은 걸어다녔지만-사진을 찍어대다 보니 마치 신경세포들 같다. 그리고 신경관들이

촘촘히 뻗어있는 그것들은 마치 101타워, 여기에서부터 모든 것들이 뻗어나간 듯한 느낌. 여기가 그만큼

타이페이 시내 중심가에 있기 때문이겠지만, 멀찍이 둥글둥글 혈관이 뭉쳐있는 정맥류처럼 불빛들이 올망졸망

뭉쳐있는 곳들을 제하고 나면 대체로 가지런하게 뻗어나가고 있었다.

안전철망 따위 쉽사리 넘나드는 손톱달.

중간중간 멀리 내다볼 수 있도록 망원경이 서 있었다. 그 앞에는 철망을 조금쯤 걷어내서 시야를 가리지 않는

센스를 발휘했어도 좋았을 텐데, 사방을 빙빙 두른 철망은 완고하기만 하다. 풍경을 가지런히 칼질해내어

마치 병풍처럼 세워내는 그 솜씨하며.
 
해가 완전히 떨어지고 나니 바람이 더욱 거세진 느낌이다. 어쩌면 조금씩 사위어가는 주위 풍경 속에서 용쓰지

못하는 시각 대신, 온통 바람이 건드리는 그 촉감에 쏠린 탓인지도 모른다.

완전히 어둑어둑해져 불빛을 잡아내기조차 힘들어진 즈음, 굵고 유난한 불빛, 굵은 혈관같은 불빛의 흐름만
 
남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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