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드북에 딱 한 줄, 그렇게 나온 정보만 믿었던 게 실수였던 거다. 코스프레걸들을
보겠다는 일념으로 주말에 맞춰 당도했던 아키하바라는 전혀 예상과 다른 곳이었다.
* 알고 보니 코스프레는 하라주쿠에서 주로 볼 수 있다고 한다. 하라주쿠 역 근처 다리 옆이
본산이라던가, 아키하바라는 건물 내 실내에서 드문드문 볼 수 있는 정도라고.
본산이라던가, 아키하바라는 건물 내 실내에서 드문드문 볼 수 있는 정도라고.
씽씽거리고 달리고 있었고, 대로변엔 온통 게임샵들 뿐. 플레이스테이션 같은 게임기를
직접 체험해보는 사람들이 있고, 줄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고, 흘낏흘낏
구경하며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고.
코스프레걸들을 구경하는 대신 애니메이션 샵들을 구경하기로 맘을 정하고, 5-6층짜리
건물이 통째로 애니메이션 관련 상품을 파는 그런 건물들을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캐릭터들의 코스튬을 파는 가게들은 신기했다. 유니폼이나 응원복 같은 걸 맞추는 옷가게나
수선집 같기도 하고, 다소 유치하다 싶을 정도로 빨강 파랑 원색의 의상들이 줄줄이 걸려있었다.
에메랄드색 가발도 가발이지만 머리뒤로 깍지낀 두손의 포즈는 또 뭔가 싶고. 그래도 저런
옷은 옷걸이에 빼곡하게 걸려있는 다른 것들과는 달리 인간이 입을 수 있겠다 싶은 느낌.
재질도 그렇고 모양새도 그렇고.
원색의 빤짝거리는 나이롱 재질의 옷들 말고, 단정하면서도 신선한 느낌의...ㅋㅋ
여전히 에반겔리온의 캐릭터들이 살아있구나 싶어서 기쁘기도 하고, 그 이후 이만한 작품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거지 싶어서 아쉽기도 하고.
저 물건의 용도는 바로 마우스 패드였던 거다. 이미 만화에서부터 풍만하게 그려졌던 그녀들의
가슴을 팔목받침으로 써서 손목의 피로도 줄이고 터널증후군도 방지하겠다는 그 갸륵하고도
참신한 발상이라니. 그 유쾌한 용도를 확인하는 순간 빵 터지고 말았다.
끝까지 등장했던 녀석들이 이런 실리콘 재질의 물컹이는 것들이었던 거다. 푸시시식, 하며
바람 빠지는 장면과 그 때의 배두나의 눈빛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영화.
[공기인형] 짤그랑대는 기네스 병맥주, 사람의 마음이 그렇다.
모양새라거나 특징들이 어찌나 변화무쌍하던지 자꾸 눈이 가더라는.
마음으로 곱게 담아두고, 잠시 바람쐬러 건물 밖으로 나와 또다시 옆 건물로.
죽어버리지 않을까. 쟤는 뭘까, 하는 의구심과 경계심을 가득 품은 눈화살들.
쉼없이 자전거 페달을 젖는 강아지라거나, 질릴 줄 모르고 돌아보게 되는 마력이 있던 곳.
귀여운 저 포장 때문이라도 한번 더 눈이 가게 되는.
Just Don't do it이란 절묘한 말장난이 일본의 심각한 청년실업과 고용불안을 시사하는 듯.
들었던 건 역시 미야자키 하야오의 캐릭터상품들. 지브리 스튜디오 샵에서도 못 봤던 것 같은
캐릭터상품들이 많이 있었다.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하야오의 아이들.
도쿄의 어느 관광지에서고 팔고 있던 녀석. 복던지는 고양이 스몰사이즈가 우르르.
이러저러한 캐릭터상품들도 구경하고, 일본냄새가 물씬한 아이디어상품들도 보고,
그러다가 밝은 햇살 속으로 나오면 또 드문드문 메이드복을 입은 아가씨들이 이런
메이드샵 광고지도 나눠주고. 만화캐릭터의 뽀얗고 맑은 피부, 커다랗고 그렁그렁한
눈망울, 여릿한 허리와 가늘고 기다란 다리 따위와는 전혀 거리가 먼 그녀들이
우르르 찍혀 있는 광고지를 요모조모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던 일본의 추억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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