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파 밸리의 중심가, 나파 다운타운에는 와인을 시음할 수 있는 트렌디한 와인샵들과 함께 레스토랑과 베이커리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상점가가 형성되어 있다. 제법 와인 관련한 아이템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고, 캘리포니아 와인과 함께

 

간단한 점심을 챙겨먹는 것도 좋을 법한 지점이다. 마침, 11월의 나파밸리는 담쟁이가 익어가는 계절.

 

 점심을 간단하게 먹으려는 사람들의 심리 때문인지, 아니면 그만큼 유명하게 인지도가 높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프렌치 베이커리 앞에서 어마어마하게 늘어선 줄.

 

 

 샵들에서 구경할 수 있는 재미있는 소품들과 와인 관련 아이템들을 구경하면서 이곳저곳에 인심좋게 널려있는 음식들을

 

시음시식하다 보니 딱히 배가 고픈 줄도 모르겠더라.

 

 

 

와인병을 재활용한 생활 소품들도 많이 판매되고 있었는데, 이런 그럴듯한 조명 역시 와인병을 그대로 활용한 사례.

 

와인병을 녹이거나 이어붙이거나 아이디어가 반짝거리는 상품들도 있었지만 촬영이 금지된 경우도 왕왕 있어 촬영 실패.

 

 

 나파 밸리의 다운타운을 돌아다니는 와인 트롤리, 저속으로 운전하는 버스라 그런지

 

창문도 없고 관광객들은 모두 탁 트인 창문을 바라보고 옆으로 앉아있다.

 

 

 온통 빨갛고 노랗고, 그리고도 푸릇푸릇한 나파밸리의 가을.

 

 

캘리포니아 와인의 본산 나파 밸리에서는 자전거 보관소도 와인 숙성을 위한 오크통을 재활용해 만들어 놓았다.

 

다운타운에서도 중심가에 있는 마켓플레이스를 가로지르는 길. 골목 곳곳에서 향긋한 와인 향기가 번져온다. 

 

 

  

다운타운 곳곳에서 마주하는, 그야말로 그림같은 집들과 잘 가꿔진 정원. 그리고 새빨갛게 불타오르는 단풍.

 

오퍼스 원의 양조장이었던가, 나파밸리의 아름다운 길을 달리며 가이드 아저씨가 알려줬던 커다란 와이너리.

 

 

 

유후인 료칸, '유후인몰'의 외관 탐구. 료칸에 들어서면서 꼭꼭 눈에 담기던 풍경을 좇아 밖으로 나왔더니

 

곳곳에 숨어있는 깨알같은 아이템들을 찾아내는 게 더욱 큰 재미였던.

 

 

료칸의 입구. 입구에서부터 온통 울긋불긋 그야말로 꽃대궐이다.

 

  

입구에 놓인 차임벨. 여느 술집이나 교실에서 볼 수 있는 벨에도 온통 꽃무늬다.

 

유후인에서 실감했던 '원피스'의 위력. 료칸에도, 유후인 거리에도 온통 원피스!

 

 

 

풀섶에 숨어서 갸웃이 고개를 내민 고양이 인형들을 찾는 재미도 쏠쏠하고.

 

 

유후인몰, 조그마한 세로형 간판 양 옆에 서서 손님을 반기는 마냥 해피한 얼굴의 인형 두개.

 

 

이건 사실 유후인몰이 아니라 이전에 들렀던 숙소에서 담은 풍경. 비슷한 료칸의 풍경이다.

 

 객실문마다 별자리를 따서 붙인 이름, 그리고 나무를 파서 만든 호실 명패.

 

 

1층에 있던 레스토랑의 입구. 이 곳에서 저녁도 먹고 아침도 먹고.

 

 

남녀탕이나 가족탕으로 향하는 길에 발에 채일만큼 많이 널렸던 아이템들, 이 장난감 강아지도 그중 하나.

 

 

완전 싱싱하게 뻗어나간 굵고 탄탄한 대궁 위에서 활짝 피어난 잎사귀.

 

 

 

 혼자 사진에 담긴 고양이는 왠지 도도해 보이는 느낌이 아주 강하지만,

 

  두 녀석이 함께 담긴 사진에서 녀석들은 왠지 다소곳하다.

 

 

그냥 되는 대로 툭툭 아무데나 던져둔 것 같은 악세사리들이 료칸 바깥에 온통 널렸다.

 

 

 

그리고 따사로운 큐슈 지방의 햇살을 온몸으로 흠뻑 맞고 있는 꽃들.

 

2층 객실로 올라가는 길, 그 옆에 소복소복 쌓인 초록빛 무더기들.

 

가족탕으로 꺽어들어가는 길, 그 앞에 빨간 불이 들어온 걸로 보아 어느 가족이 지금 사용중이다.

 

주의할 것조차 딱히 없어서 온통 녹슬어버린 주의 표지판. 이 조그마한 온천 마을이란.

 

 

자칫 못 보고 지나칠 뻔 했다. 저 도자기 밖으로 뛰쳐나올 듯한 고양이 녀석 한 마리를.

 

 

 

료칸에서 펑펑 솟는 온천수 덕분일까, 새로 돋는 잎사귀가 무지 두텁고 반질거린다.

 

 

 

 

사람도 딱히 눈에 띄지 않는 고즈넉한 마을의 조용한 료칸, 건물 밖의 의자에 앉아 흐느적대기 딱 좋은 곳.

 

 

온통 담쟁이덩굴이 칭칭 휘감아 시간도 끈적하게 쉬엄쉬엄 흐르는 곳이라 이끼조차 한모금 머금었다.

 

 

 

 

조화라는 티가 너무 많이 난다 싶어서 처음엔 그냥 지나쳤었지만, 아무래도 그 빨갛고 푸른 색감이 참 선명하다.

 

 

 

어느새 어슴푸레하게 너울지는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풍경, 시퍼런 어둠에 먹힌 바깥 풍경과는 달리

 

아직은 제 색깔을 고르게 지켜내고 있는 테이블 위에 아기자기한 장식들. 

 

 

체크인했을 때 고개를 꿇어박고 서류를 작성했던 딱딱한 책상에도 주홍빛 불빛이 둥실 떠올랐다.

 

  

그렇게 조금씩 어둠이 건물을 갉아들어왔고, 카메라로 담을 수 있는 풍경은 조금씩 줄어들어가고.

 

 

그 와중에 나비 모양 등불은 꽃망울을 향해서 활짝 날개를 펼쳤다.

 

 

 


얼마전 도쿄 여행을 다녀온 친구로부터 선물받은 깜찍한 아이템, 고양이 볼펜이다.

고양이 양팔이 번쩍! 위로 올려져서는 검정색 쓰자, 하면 오른손 내리고, 빨간색 쓰자, 하면

왼손 내리는 식의 아주아주 깜찍한 볼펜.

원래 만년필을 즐겨 쓰지만 당분간 이 펜을 써주기로 했다. 왼손 내려, 오른손 내리지 말고

왼손 내려, 왼손 내리지 말고 오른손 내리지 마, 오른손 내려, 따위의 구령을 맘속으로

붙여가며 찰칵찰칵 빨강색 검은색 모드를 바꿔주는 거 은근 재미있어서.


게다가 여행을 가는 길에 만년필을 갖고 다니는 건 넘 부담스러워서, 4박 6일동안 따뜻한

남쪽 나라로 도피하는 여행에는 딱이다. 오늘 출발, 3월 2일 새벽 6시반에 도착, 그리고 바로

집으로 내달려서 짐놓고 옷갈아입고 출근. ㄷㄷㄷ

방콕은 예전에도 한번 다녀왔던 곳이고, 딱히 꼭 집어 방콕을 가고 싶던 게 아니라 그저 순전히

따뜻한 남쪽 나라를 가고 싶다는 일념으로 온갖 가까운 동남아 국가들을 뒤지다가 나온 곳이라서

아무 계획도 없고 예약한 숙소도 없고 그냥, 티켓만 들고 간다.


일단은 그저 온종일 걷고, 배고프면 까페나 조그만 음식점에서 먹고 마시고, 열대 과일 잔뜩 먹고

특히 두리안 잔뜩잔뜩 먹고, 사진 많이 찍고, 가져가는 책 두권 다 읽고 오고, 이것저것 헝클어진

머릿속도 좀 청소하고, 그럴 생각이다. 아무 계획없이, 특별한 목적없이 휴양하러 가는 건데

막상 써놓고 보니 굉장히 할 일이 많은 거 같다는..;


하얀 고양이 인형은 '개운초복', 운을 열어주고 복을 불러준다는 인형이니 부디 비행기 안 떨어지고

이상한 범죄에 휘말리지 않고 몸건강히 마음건강히 돌아올 수 있기를. (아무래도 이런 새삼스런 걱정은

요새 비행기 추락사고로 섬에 불시착해 벌어지는 미국드라마 LOST에 빠져있던 탓이 크다.)




이전에는, 그래도 세상에 '꼭' 있어야 하는 것들, 이것 아니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있었다.

이것, 이사람, 이길, 뭐가 되었던 그렇게 절대 놓치거나 없어져선 안 될 것들이 있다고 말이다.

다른 것들이 전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도 그런 '머스트해브' 아이템들만 쥐고 있으면

결국 길을 잃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세상이 그렇게 '꼭' 있어야 할 것들은 있고 '결코' 있어서는 안 될 것들이 없는 동네가 아니란 건

점점 더 리얼하게 실감하고 있는 중이다. 한발씩 뒤로 물러나면서 양보하기 시작해서, 꼭 이길만이

길은 아니란 것, 꼭 이러저런 가치나 아이템이 필수는 아니란 것을 배워가면서 주춤거리다 보니까

뒤에 숨겨둔 '머스트해브' 아이템의 목록들이 어느새 한두줄로 줄었다.


그리고, 꼭 이사람이어야 한다는 식의 사고방식도 어쩌면 그렇게 양보해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

이사람 아니면 안된다, 이사람이 평생에 한번 만날 내사람이다, 라는 생각이 이사람이 아니어도

괜찮을지 모른다..라는 식으로 바뀌어나가는 건, 그런 배움의 한갈래일지도 모른다. 애초 모든

만남과 이어짐과 헤어짐은 순간순간 눈앞에 놓인 갈래길을 두고 일어난 겁과 망설임의 결과.


'꼭'과 '결코' 따위 단언할 수 있는 여지라곤 있지 않은 흐물흐물한 세상에서, 객관적인 표현으론

'융통성'이 생겨나고 있는 걸까.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최소한의 단단한 기준점을 잡아두고 싶었던

마음 그자체가 욕심이었고, 애초에 길잡이가 되어줄 만한 변치 않는 무언가, 꼭 쥐고 놓지 말아야할

무언가는 있지도 않았단 걸 조금씩 납득하고 있다. 슬프지만.



p.s. 요샌 'lost'의 세계에서 방황하는 중. 말 그대로 lost in lost.  시즌 1과 2를 이틀에 주파하고

시즌3를 달리고 있다. 하루하루 아무 생각없이 돌을 굴리듯, 똥을 말듯.
이웃님 블로그를 방문했다가 문득 눈에 띈 지구살리는 법, <샤워를 하며 소변을 보자>라는 캠페인을 보았습니다.

에이 뭐야, 이미 실천하고 있는 거잖아~ 라는 식으로 넘기려는데, 재기발랄한 댓글들이 눈에 띄었어요.

많이 부끄러워하실 것 같아 전부 세심하게 닉넴을 지워버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캄보디아에는 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 있습니다. 파리 스티커를 붙인다거나, 각얼음을 부어넣는다거나,

철망이나 플라스틱망을 깔아넣는다거나, 동글백이 나프탈렌을 수 개 깔아놓아도 해결되지 않던 '튀는 XX방울'에

대한 새롭고 급진적이며 경이로운 해결책, 가히 신의 창조물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수준의 그것은 바로! 두둥(again)
아아, 파인애플을 썰어넣은 모양이랄까요, UFO 출현형태 중 많이 노출되기로 소문난 바로 그 신비롭게 '구멍난

원기둥'형태, 가운데를 공략하려는 인간의 본능적인 심리를 꿰뚫고 있는 그 날카로운 통찰력이 구현된 궁극의

나프탈렌입니다! 그렇게 가운데를 공략해도 물방울이 사방으로 비산하는 것을 자연스레 막아주는 저 배려심깊은
 
구멍이라니. 아...어머니의 따스한 품을 생각나게 만드는 감동의 나프탈렌입니다ㅜ 저 완만한 구멍의 생김 역시

가이없이 자연스러우면서도 시간의 흐름, 아니 액체류의 씻김에 순응하는 호연지기의 자세를 그대로 현현하고

있네요. 아아...감동이어라.


이정도면 나프탈렌의 신 아닐까 싶습니다. 일견한 것만으로도 손끝부터 발끝까지 저릿저릿, 인간 지성의 한계가

없다는 말이 빈 말이 아님을 실감하게 됩니다. 이걸 고안한 사람은 아마도 아인슈타인의 화신이 아닐까요.

일단 눈물을 닦고, 감사한 마음으로 바지춤을 내리고 경건하게 자세를 잡습니다. 아아아...좋아라, 키모치이이...

응? 여튼. 첫째, 물방울이 튀지 않습니다. 전부 구멍안에 가두어져 차분하게 흘러내리네요. 둘째, 성취감을

자극합니다. 구멍을 조준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없던 오줌도 나올 지경입니다. 셋째, 나프탈렌이 신속하게

녹아내리며 공기를 정화합니다. 청결한 화장실의 기본은 향취겠죠. 넷째, 변기가 깨끗하게 유지됩니다.

물방울이 튀지 않고, 게다가 저 작은 구멍안으로 대부분 수렴되니 위생상 효과가 탁월합니다.


이거, 대박 아이템 아닐까요?? 혹 실제 사업상 이 아이템을 활용코자 하시는 분은 자유로이 하시되,

제게 스톡옵션 쵸큼만 넘겨주시거나, 집 한 채만 사주셔요^^;;;;;


저녁때 기자 친구를 만났다.

요새 어떻게 지내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그리고는 다른 친구들의 근황을 묻고,

레드망고에서 아이스크림을 핥으며 이러저러한 기사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얼마전 국방부 선정 불온도서에 대한 헌법소원을 냈다가 파면당한 법무관이 알고 보니 같은 과의 친한

일년 후배였다는 깜놀한 소식에서부터, 누군가는 누구와 사귀기 시작했고 누군가는 무지 외로워하고

있다는 잡다한 소식까지. 장자연 리스트에서부터 박연차 리스트까지.


난 그에게 모종의 부탁을 했고, 그는 '등가교환의 법칙'에 따라 내게 뭔가를 요구했다.

기사거리를 내놓으랬다. 거북아 거북아 기삿거리를 내놓아라 아니 내어놓으면 구워먹으리.

정말 머리를 짜내어 십여가지의 아이템들을 제시했지만, 번번이 '킬'.


요새 고층빌딩을 많이 세운다는데, 실제 고층빌딩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겪는 생리적 변화와 어려움을

취재하면 어떨까. 그건 47층에 근무하는 당신의 민원성 아이템이니까 킬.

요새 무급휴가를 많이 내보낸다는데 그들이 휴가기간에 알바를 한다더라. 이미 많이 팔린 소재니까 킬.

어디 보니까 1인시위하고 있던데 그거 취재하면 어떨까. 사안의 중요성이 떨어지니까 킬.

음식점들에 비치된 명함 응모함이 조작되어 단골에게 사은쿠폰이 발급되는 거대한 음모의 기운이 느껴지는데
 
그걸 밀착취재하면..시끄러, 킬.

출근길 지하철이 차간 간격조정으로 멈출 때마다 마이크로 삑삑대며 퉁명스럽고 시끄럽게 안내방송이

나오는데, 그런 건 애초 의도였을 고객 서비스 마인드에도 부합하지 않는 거 같은데..메트로 홈피에 올려, 킬.

인턴을 뽑아놓고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문제라고 하던데 내가 일하는 데서는 아주 잘 관리하고 있어서 어찌

한번 나를 취재하러 오면 어떤지. 그런 청탁성 아이템은 꺼져버려, 킬.

아침에 출근할 때 보면 머리도 안 말리고 물 뚝뚝 흘리면서 서있는 아가씨들 있는데 그건 제2의 개똥녀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물귀신녀'정도로 조어해서 취재해봐. (이 대목에서 잠시 무진장 한심하단 눈빛 작렬)

제2롯데월드 올린다던데 그걸 한번 더 파보면...아니다, 이미 그건 나올 얘긴 다 나왔고 정치적 결단의

영역이야 모..그래서 (용기를 잃고) 스스로 킬.


올킬.

'등가교환의 법칙'에 따라 나의 부탁은 소멸되어 버릴 뻔 했으나, 그나마 하나가 그럭저럭 살아남은 덕에

아직 간당간당 목숨은 붙어있는 상태다.

코엑스가 길거리 캐스팅의 명소 중 한 곳이라고 하던데, 한번 하루종일 버티고 서서 그럼직한 아가씨들

취재해 보는 건 어떨까. ...끄적끄적. 그렇게 살아남은 하나.


기자 안 하길 잘했다. 이렇게 아이디어가 빈곤해서야.



중동 쪽 사업 아이템을 찾고 있다면 이 사진을 주목해야 할 거 같다. 

이 뜨거운 나라들이 어쩌자고 물탱크는 건물 옥상에 저렇게 적나라하게 드러내놓고 있다. 사우디에서나 카타르도

마찬가지, 그래서 일반집은 물론이고 오성급 특급호텔에서도 차가운 물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실제로

아무리 차가운 쪽으로 손잡이를 돌려놓아도 나오는 물은 뜨겁길래 혹시나 하고 반대쪽으로 돌리면 약간 과장해서 

증발직전의 끓는물이 나왔었다. 그게 다 저렇게 직사광선에 노출된 물탱크 때문이다. 최소한 저기에 차폐, 단열을

위한 커버를 씌우는 간단한 시설 만으로도 이 곳의 사람들에게 찬물 세례를 가능케 해주리란 생각.

비자 때문에 예상치 못하게 공항에서 너무 지체되고 말았다. 어느덧 어둑어둑해진 거리를 밝히는 네온사인중에

문득 눈에 가는 게 있다. 저건 분명 술집에 오라고 달콤하게 꾀는 네온사인. 금주령이 공식적으로 너무너무 엄격히

지켜지고 있다는 사우디, 어쨌건 술집 간판을 발견치는 못했던 카타르, 그 어디서도 술을 맛보지 못했던 터에 저런

술집간판이 눈에 띄는 동네에 온 것만으로도 뭔가 조금은 더 낯익은 동네에 온 반가운 느낌이었다.

쿠웨이트 Courtyard Marriot 호텔. 이미 많이 어두워진 상황에서, 호텔정문 앞 현관지붕이 마치 인디아나존스에서

성배찾는 편에 나왔던 투명한 다리처럼 생겼다고 생각했다. 불빛들이 많이 반사되면서 반짝거리고, 그 투명한

지붕 뒷켠에서 비치는 불빛들이 섞여들면서 꽤 화려했는데, 막상 사진에는 담기지 않았다.


이곳의 호텔 역시 들어서면서 탐지대와 금속탐지기를 각각 사람과 짐들이 통과해야 했지만, 그렇게 깐깐하게 굴진

않았던 거 같았다. 사우디나 카타르 호텔에 들어설 때마다 가방을 열어 물건을 확인해 달라고 요청받았던 일행 중

한 분이 여기선 아무 문제없이 통과했던 것만 봐도 그랬고, 이전과는 달리 위압적이지 않은 자그마한 탐지기를

첫눈에 띄지 않도록 구석에 밀어넣어둔 느낌이 들었던 것도 그랬다.

저녁 먹으러 간 곳에서 마주친 고양이. 그 곳이 유별난 곳이었는지, 아님 쿠웨이트가 대개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고양이들이 사방에서 어슬렁대며 쏘다니고 있었다. 이 건방지고 사랑스런 것들.

호텔 방안에서 발견한 쿠웨이트식 나침반. 저 화살표가 친절히 메카가 있는 방향, 무슬림들이 기도를 해야 하는

방향을 일러주고 있다. 어떻게 보면 좀 이해가 안 되기도 하는 게, 다른 종교들은 보통 신은 어디에나 편재한다고

가르치면서 아무데나 대고 기도를 한다. 물론 대개 신을 형상화한 십자가던 조각상이던 그런 물체를 앞에 두고

기도를 하게 되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런 기도의 대상을 정형화하는 것을 단연코 거부하는 이슬람교가 막상 기도

방향에 있어서는 저렇게 불편하고 까탈스러워 보이는 기준을 고집하는 건 왜일까.


그런 면에서 보면 저 '나침반'도 다소간 무슬림들의 고민이 녹아있는 건지도 모른다.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

메카가 있는 그곳을 나타내는 건 그냥 네모난 상자 모양, 혹은 단순한 건물 모양일 뿐이다. 특별히 메카나

기도의 방향을 나타내는 상징이 발달, 아니 발생하지도 못한 이슬람교의 처지에서 보면 저런 식으로 특별한

의미가 담기지 않은 기호로 메카를 표시하는 게 당연할지도.

호텔 창밖으로 내다보인 쿠웨이트 시내 전경. 내가 중학교 때던가 이라크의 점령과 뒤이은 걸프전을 치러낸 이곳은

덕분에 호텔이 흔치 않고 높은 건물 찾기가 쉽지 않은 곳이 되어버렸다. 덕분에 호텔 숙박비도 상대적으로 좀더

비싼 편이었다. 건물을 지어올려도 언제 또 이라크가 공격해올지 모른다는 학습된 두려움이 존재하고 있었고,

그런 불확실한 부동산 투자보다 다른 분야의 투자처를 찾았다는 얘기다. 그렇게 찾은 다른 투자처가 바로 두바이.

두바이의 건설붐을 뒷받침한 총알은 실제로 쿠웨이트의 투자자들로부터 나온 것들이라고 한다.

사진과는 그닥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세상에서 가장 비싼 돈은 뭘까. 달러, 엔, 유로, 파운드? 몰랐는데 쿠웨이트

디나르(DINAR)화가 가장 비싼 돈이다. 1쿠웨이트 디나르는 자그마치 5,416.32원이다.(2008.11.27 현재)

1쿠웨이트 디나르는 또 3.66739달러, 달러가 아무리 요새 갈수록 힘이 빠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건 어제오늘

이야기도 아니고, 새삼스런 것도 아닌 오래전부터 그랬던 거다. 어마어마하게 비싼 쿠웨이트 디나르화.

미국이 중동에서 일으킨 전쟁들의 가장 큰 전비부담도 직간접적으로 쿠웨이트가 가장 크게 짊어졌다고 하는데,

그런데도 여전히 정부 재정은 건전하기 짝이 없댄다. 갱장히 돈이 많은 나라다.

상담회 진행을 하며 총총거리고 다니다 몇번씩 타는 엘레베이터가 그때마다 재미있는 거다. 따로 층수가 정해진

버튼을 누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고 싶은 층 번호를 저 전화기 다이얼같은 걸 눌러서 입력을 하는 식이다.

그러면 A부터 D까지 이름이 붙어있는 엘리베이터 중 하나의 이름이 딱 뜨면서 그쪽의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층수가 적힌 번호를 누르느냐, 아님 층수 자체를 본인이 입력하느냐의 사소한 차이랄 수도 있겠지만

왠지 꽤나 새롭고 흥미롭게 보였다.

미처 방안을 어지를 시간조차 없이 짧았던 쿠웨이트에서의 체류시간. 단지 일박만 하고 밤비행기로 돌아가는

스케줄이어서 그랬는데, 다음에는 더 길게 올 수 있기를 바랬다. 기름값이 1리터에 60원(20센트)라는 이 기름진 땅.

순수쿠웨이트인은 100만명에 그치고 외국국적의 사람들이 200만이 넘는다는, 역시나 한국인으로서는 쉽게 상상키

힘든 상황이지만, 병원, 학교 등 대부분이 국영으로, 거의 무료나 다름없이 제공되는 유토피아같은 이미지의 땅.

이렇게 된 건, 쿠웨이트의 석유채굴 원가가 무지 낮기 때문도 한 몫했다고 한다. 대부분 육상에 위치한 유전이어서

석유채굴 원가가 배럴당 3불 정도밖에 안된다는 거다. 국제원유가가 백이삼십불에서 보합이라고 쳐도 대체 얼마나

수익률이 높은 장사를 하고 있는 건지.

밤비행기를 타러 가는 길에 마주친 쿠웨이트 타워(Kuwait Tower), 총 3개의 탑으로 구성되어 있는 조형물이라고

설명은 들었는데, 대체 왜 내 눈에는 저 조명이 이뿌게 비치는 탑 하나밖에 안 보이는 건지.

쿠웨이트를 나서는 공항에서 마주친 내가 보지 못한 쿠웨이트의 풍경들. 아...저런 곳이구나. 그렇지만 이곳에

두고 오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얼른 출장을 마치고 집에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이 뭉싯뭉싯 커지기 시작한

터라 그다지 미련은 없었다. 다음에 또 오면 되지, 라는 생각으로 가볍게 아쉬움을 끊어냈다.

이런 옷을 입은 배나오고 전반적으로 뒤룩뒤룩한 아저씨들을 보는 것도 이제 다시 흔치 않은 일로 돌아간다.

실내에서 담배를 꼬나물고 피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던 곳, 여성들의 눈만 보고 아름답다, 아름답지 않다고 느끼게

되는 곳-물론 사우디를 제한 나머지 나라들은 그다지 엄격하지 않았지만-, 꼭 출장이어서가 아니라 술을 마시기가

불가능에 가까운..살기 힘든 곳, 그런 곳을 벗어나 서울로 돌아오는 길은 갈 때보다 짧았다. 지구 자전의 도움을

받아, 10시간이 넘게 걸리던 서울-두바이 구간이 불과 8시간 45분이 소요되는 두바이-서울 구간으로 단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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