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중순에 가기로 했던 인도/파키스탄 출장이 취소되었다.


회장, 부회장이 바뀌고 임원진 전원 사표를 제출하는 등 인사이동의 격변기 속에서도 꿋꿋이 홀로-인턴과 둘이-근 

한 달간 준비했던 출장이었는데, '당장 성과가 나오는 사업'을 하라는 윗선의 말 한마디로 취소되고 말았다. 이제

뉴델리와 카라치 측과 모두 연락이 완료되었고, 인쇄물도 모두 발주했으며, 항공편과 비자도 해결되었고, 거의

출발만 하면 되는 상황까지 이르러서 취소된 거다. 이유는 요새(글로벌 경제침체와 엔고라는 정황상) 중요한

시장은 중국과 일본인데 왠 뜬금없는 인도와 파키스탄이냐는, 그리고 이런 류의 출장을 가봐야 당장 회사에도,

관련 기업들에도, 그리고 '국가경제'에도 도움될 것이 없다는 지적이다.


그간 내가 혼자 낑낑대며 일했던 게 아까워서가 아니다. 어차피 어렸을 적에는 모래성 쌓았다가 뭉개고 다시 쌓고

그러면서 잘도 놀았댔다. 윗사람의 말 한마디로 올해 전반기 중요사업 하나가 증발해버린 게 참 허무하기도 하고,

내가 하는 일이란 게 고작 그렇게 쉽게 없어져도 될 만한 건가 하는 허탈감도 없지 않지만, 그런 건 뭐..괜찮다.

조직의 생리라는 게 으레 그런 거 아니겠는가.


당장 돈이 되는 사업, 당장 성과가 보이는 사업.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다. 그리고 그 '돈이 되는'이라는 표현이란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어떨 때 쓰여야

하는지조차 불분명한데다가, 더우기 발화자 스스로 일관성을 무너뜨리며 혼란스럽게 그 표현을 여기저기

붙이고 있다. 당장 무역투자사절단을 함께 나갈 사장님 몇분이 계약을 하면? 계약은 안 하지만 평소 거래하는

바이어와 직접 만나서 공장을 둘러보고 관계를 돈독히 하면? 계약은 안 하지만 새로운 바이어를 발굴해 심도있는

대면상담을 할 수 있었다면? 아니면 특히 파키스탄과 같은 '오지'의 시장을 직접 확인하고 가능성을 타진하는

기회가 된다면?


작년 울 회사가 최초로 대학교를 돌며 채용설명회를 했을 때, 나는 '사기업의 다이나믹으로 공익을 추구한다'는

점을 이 곳의 최대 매력으로 꼽았었다. 돈을 버는 조직이 아니라 돈을 쓰는 조직, 그리고 그렇게 돈을 쓰며 중소

업체들의 해외시장 개척을 돕고 재계를 대표해 외국내 한국의 지분을 높이는. 물론 당장의 성과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를 위한 인프라를 제공하고 기회를 확장시키는 역할을 하는 게 조직의 본령이 아닐까 했다.


게다가 엄연히 그곳을 가고자 하는 기업들이 있고, 이미 이렇게까지 일이 진척되었으며, 우리 회사가 그들의

의지로 지켜지는 조직이 맞다면,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싶다.


'MB'의 냄새가 난다. 전봇대 몇개 뽑는 것으로 기업의 애로를 해결했다 뿌듯해하는, 당장 몇십억 몇십조의 상상도

못할만큼 거대한 (상상된, 혹은 계산된) 수치를 들이대며 국민들을 위압하는, 그리고 뭐든 당장 성과를 내놓으라며

기존에 합의된 법이고 절차고 무시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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