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빠진 신호등이 파랗게 빛나는 걸 보고는 어딘가로부터 훌쩍 시야 안으로 날아들던 비둘기 한마리.

 

온통 빨간 불이 삼엄하게 들어온 차도 위 육교를 건너며 짐짓 시크하게 담배를 꺼내무는 아저씨.

 

그리고 온통 쾌청한 파란 하늘, 드문드문 소리도 없이 흘러가는 흰구름따라 게으르게 깜빡이는 신호등 하나.

 

 



사무실서 죽도록 웃고 말았다..







어떤 미로든 그 곳으로 들어서는 입구는 굉장히 친절하다.

길을 잃게 되는 길을 알려주는 이상한 표지가 커다랗게 놓인 그곳에서 시작이니까.

그러고 보면 유원지의 '유령의 집' 같은 곳도 마찬가지다.

눈에 잘 띄고 절대 놓칠 수 없는 그 입구, 를 지나치고 나면 정신이 혼미한채 이리저리 쫓기는 거다.


출구는 어디일까. 출구는, 출구는 어디일까...입구는 어디였을까.

블랙박스의 시꺼먼 내부 같은 그 안에서 술취한 듯 갈지자로 헤매다보면 차라리

입구를 다시 찾아서, 그 표시가 가리키는 반대로 내닫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지는 때도 있었다.

결코 찾을 수 없는 뫼비우스의 실마리를 찾듯 결국 내딛는 걸음걸음은 제자리걸음이 되지만.


방향감각을 완전히 상실해서는, 대체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뒤인지,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건지 아니면 뒤로 멀어지고 있는 건지 따위를 하나도 알 수 없게 되버리는 순간.

누군가 날아올라 내가 어디 있는지를,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보고 말해줄 수 있으면 했다.

그럴 때가 아마도 죽어버렸다는 신의 손끝이 움찔움찔 경련하는 순간일 거다.


날아올라 무찔러라 메칸더의 용사들아, 최후의 승리는 우리 것이다.

일본의 방사능 물질이 둥그런 지구를 휘감아 도는데, 2012년에는 지구가 망한다는데 여전히

나는 차마 어쩌지 못할 내 신변잡기와 하찮은 일상을 견디지 못하고 심호흡을 뱉는다.

뫼비우스의 대지 위에서 비둘기의 날개를 부러워한다.




@ 서울대공원.
그러고 보면, 석굴암의 나한들이나 다른 부처들의 체형은 대부분  이뿌다. 얘네들처럼. 비록 풍파에 휩쓸려 배에

할복이라도 한 양 커다랗게 칼자국이 나있고 머리가 분리된지 오래라지만, 가슴에서 배로 이어지는, 그리고 상체와

하체가 연결되는 그 매끄러운 곡선은 이상적이다. 정말. 달마조사 정도나 배불뚝이로 형상화될까, 그조차 달마의

득도과정에서 이야기되는 '추함'의 이미지를 상징하는 하나의 팁으로 본다면, 몸에 대한 이상화는 생각보다

오래되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이 부처의 득도수행중의 금식과 고통을 형상화하는 종교적인 의미가 더욱

컸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마치 예수의 삐쩍 마른 몸띵이처럼) 글쎄..여전히 통하는 모티프 하나는,

퍼진몸=게으름..정도 아닐까. 살빼야겠다--+

삐죽거리는 탑들을 이어놓은 회랑에는, 원래 뚜껑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모르게 황폐해진 벽면과, 그 벽면에

기대어 선 부처상들이 열지어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마치 시멘트로 군데군데 엉성하게 보수해 놓은 것같은

붉은 벽돌 구조물같은 모양새지만, 원래부터 저렇게 덮여있던 회칠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마침 뿌연 안개가 빗방울을 머금고 대지에 무겁게 포복중이어서 그랬는지도.

원래 금박이 입혀져있었던 건지, 아님 시주 대신 사람들이 소원을 빌며 금박을 한조각씩 붙여넣은 건지 모르겠지만

오돌토돌한 돌기가득한 머리를 괴고 누운 부처의 뺨과 오른쪽 팔엔 드문드문 금박이 묻어있었다. 그리고 몸뚱이를

가리고 있는 커튼같은 노란색 천. 나중에 들으니 저 '옷'도 신도들의 보시로 만들어진댄다.

이곳의 스님들은 모두 주홍색 옷을 입고 계신다. 그래서 아유타야 사원에 촘촘이 늘어선 부처들도 모두 주홍빛

천을 휘날리고 계시다. 아..지금 다시 간다면 훨씬 이뿐 사진들을 찍을 수 있을 것만 같은 풍경.

가부좌를 튼 후 눈은 코끝을 내려다보듯 반개(半開)를 한다. 숨은 그칠 듯 그치지 않는 조식(調息)을 하고...운운.

고등학교 때 기수련에 관심을 가져선, 도우(道友)들과 계룡산에 올라선 밤새 비닐 거적을 뒤집어쓰고 이슬맞으며

연공(練功)을 했던 적이 있었다. 요런 비슷한 자세..였지 싶은데. 그치만 이분의 눈은 코끝이나 배꼽이 아니라 앞에

마주선 사람을 흘겨보는 느낌이다. 손에 들린 건방진 음료수는 또...언제 다 마셔버린 거냐.ㅋ

이왕 시주를 할 거면 온전한 한 컵을 주던가, 저건 누군가의 장난이 아닌가, 쓰레기를 버려놓은 건 아닐까, 혹시

내가 저걸 치워서 버려주면 부처님이 복을 내려주진 않을까 잠시 고민했다.

은근히 와불이 많다. 저렇게 누워 있는 부처는 이곳의 햇살과 왠지 너무 잘 어울리는 느낌이다. 뭔가 얇고 부드러운

실크같은 막이 태양에서부터 너울지며 떨어져 내려 온몸에 감기는 느낌이랄까. 무슨 선블록오일 광고문구처럼

끈적이지 않고 순식간에 흡수되는 뽀송거림. 그리고 기분좋은 나른함까지. 내가 부처라도 눕겠다.

요건 뜬금없는 보너스샷. 비둘기고기 통조림. 태국의 길거리나 공원에 왠지 비둘기가 눈에 띄지 않는다 싶었다.

맛을 보고 싶었는데, 그다지 맛있어 보이지 않아 관뒀다. 나름 여러가지 색깔의 통에 담긴 걸로 보아 여러가지

양념맛이 가미된 듯 했지만, 사실 저렇게 담겨있는 고기는 제아무리 한우 차돌박이라 해도 안 땡길 게다.



사실 태국이 어떤 나라인지, 무슨 풍광이 유명한지도 이번에야 처음 알았다. 사실 내 세계지도는 미국, 터키,

이집트 그리고 남한 땅덩이가 전부였던 거다. 여행 갈 때마다 부딪히는 질문은, 대체 무엇을 보러 가는지. 무엇을

느끼러 가는지. 아무리 피하려 해도, 제약된 시간 내에 한 지역과 그 땅위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본다는 건, 유명한

관광지 그리고 짧막한 관광영어를 벗어나기 힘들다. 

진부한 멜로드라마처럼 타고 내리는 감정선들도 사실은 그렇다. 이미 누천년 이래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느꼈고,

봐왔고, 글로 풀어왔던 감정들. 이미 모든 게 읊어졌고, 말해졌다. 무수히 많은 관광객들이 다녀갔고,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생멸했고, 사람들은 두터운 대지의 더께위에 흙한줌을 보태며 쓰러진다.


그냥...그래도...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으면, 아무리 진부하고 범용한 감흥이라도, 내 아가미로 한번 걸러 나오지

않으면 속이 안 풀린다. 그래서...어쩔 수 없이, 혹은 적당히 용서하는 기분으로 카메라 앞에서 어정쩡한 포즈를

잡아주며 증빙샷.

무슨 골프장처럼 넓게 펼쳐진 푸른 잔디밭 위에 곧추선 붉은 벽돌 구조물들이 단단하고 야무져 뵌다. 햇살만큼이나
그림자도 진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