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선문 근처의 야경을 보러 나선 길, 깔끔한 파리 지하철, 메트로의 좌석 배치는 마주보고 앉는 예전 기차와

전철의 여유공간을 합쳐 놓은 듯. 게다가 저 커다란 볼록거울은 버스 뒷문위에 달린 그것과 같다.

지하철역에서 올라서자마자 파랑색 에펠탑이 하늘을 받치고 선 게 보인다. 이미 남빛 하늘은 무지근해졌다.

루브르 박물관으로 넘어가는 화려한 다리. 넘어갈 생각은 아니고 개선문으로 갈 생각이다.

파리의 국회의사당이었던가. 하얀 가로등 불빛이 담백한 대리석벽에 부딪혀서는 한결 부드러워졌다.

개선문 올라가는 계단. 쉼없이 나선형으로 올라가는 길이라 속도를 내다보면 순간 어찔, 한 순간이 있다. 살짝

내려다보면 무슨 달팽이관을 꾸역꾸역 말아올리는 느낌이기도.

개선문 내부를 장식한 금속제 문양들. 아마도 영광의 월계관을 상징하는 게 아닐까, 월계수잎이 빼곡히 꼽혔다.

그리고 야경, 거대한 ㅁ자 형태의 라 데팡스를 향한 직선대로는 헤드라이트 불빛을 한껏 머금었다.

[파리여행] 새로운 신전, 라 데팡스

그리고 파랑색 거인. 다소 마른 느낌이긴 하지만 그래도 파란 뼈대에선 안정감이 느껴진다. 그리 높지않은

건물들 사이에서 뾰족, 튀어나와 내려다보고 있다.

[파리여행] 기시감이 덕지덕지, 에펠탑과 야경들.

남빛 하늘은 점점더 어두워져선 푸른 빛이 완전히 사그라들었지만, 그러고 나니 파란 거인 에펠탑이 사방으로

파랑 불빛을 쏴대고 있다. 흡사 등대.

그리고 파리 시내. 프랑스정원식으로 네모박스모냥 손질된 가로수들이 열맞춰 늘어선 커다란 울타리가 있고,

어디론가 향하는 자동차들이 유유하다. 다정다감한 불빛이 돋을새김해주는 운치있는 건물들의 윤곽선.

다시금 꼬부랑꼬부랑, 달팽이보다는 오랜 암모나이트 정도의 거칠고 울룩불룩한 껍데기가 떠올랐던 계단.




라데팡스같이 앞뒤 분간키도 힘든 네모난 구조물에도 인간적인 편견을 투영시켜, 시내 중심을 향한 뻥 뚫린

사각 공간이 정면이라 친다면 그 반대편은 자연 뒷통수라 치부할 수 있을 게다. 그 뒷통수, 라데팡스 신개선문의

뒷켠으로 한 바퀴 돌아보다가 다소 기이하다 싶을 정도의 묘한 길이 한 줄기 뻗어있는 걸 발견했다. 너무 강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쉽게 뿌리칠 수 없을 만큼의, 간질간질한 호기심.


저 길은 뭔데 마치 다리처럼, 주변 지역보다 높은 위치에서 쭉 뻗어있는 걸까. 어디까지 뻗어있을까, 그리고 그

끝은 어디로 닿아 있으며, 내게 어떤 풍경을 보여줄까. 마침 적당하게 길..이랄까 다리랄까..의 좌우를 감싸고 도는

녹색 커튼이 모종의 관음증적 욕구까지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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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 좌우켠에는 온통 십자가의 물결로 일렁이고 있었다. 외국은, 아마도 여기서 내가 의식하는 '외국'이란

대개 서양 문화권, 혹은 기독교 문화권에 속한 국가들이겠지만, 공동묘지가 참 잘 꾸며져 있고, 꽃들이나 조경이

화사해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을 자아낸다. 워싱턴 국립묘지를 찾았을 때도, 그 좌우로 각잡힌 채 딱 정렬된

하얗게 빛나는 비석의 행렬과, 싱그런 녹색으로 가득한 그 공간에서 풍기는 신성하고도 고요한 느낌이 인상깊었다.


여긴 그런 통일된 모습을 보이는 건 아니지만, 저 분방하고 자유스런, 그치만 동시에 각자 비슷한 공간만을

확보한 채 다른 이의 휴식공간을 밀쳐내거나 위압하는 느낌이 없다는 점에서 왠지 유쾌하다. 돌판 한장을 이불

둘러쓰듯 얹고서는, 쟤들은 죽고 나서 기억되는 모습도 똘레랑스의 프랑스답구나..싶었다. 용하기로 소문났다는

지관이 대통령 후보들, 한 명도 아닌 여러 명에게 이 곳의 음택을 쓰면 대권을 쥘 것이라 했다고 자랑삼아 떠드는

동네인 데다가, 음택의 규모, 호화로움 자체가 살아있는 자들의 호통소리에 비례하는 곳에 비하면 말이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프랑스의 한 공동묘지일 뿐..며칠 후에 가본 나폴레옹의 무덤은 가히 그리스 신전과 같았고,

여기라고 그런 부정적인 이미지나 사실들이 발에 채이지 않으리라고 기대하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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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뒤돌아서 바라본 라데팡스 신개선문, 굳이 '뒤'에서 바라본다 해도 별반 '앞'과 구별될 만한 지표가 없다.

그리고 아까부터 은근히 내 뒤를 따르는 저 까무잡잡한 아저씨, 앞에도 뒤에도 사람은 하나 안 보이고 난 자꾸

관광객들이 멈춰선 채 정체된 신개선문에서 멀어지는데 왠지 위협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내가 사람 하나 없는

이 쭉 뻗은 다리..같은 길 위에 있다는 현실인식이 먼저였을까, 혹은 저 아저씨의 피부색 혹은 '아저씨'라는 연령과

성별에서 기인한 편견이 먼저였을까. 나는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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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길이 끝났다. 마치 신개선문에서 쭉 뻗어나와 어딘가로 날 이어줄 듯 하던, 끝이 안 보이던 다리같던 곧은

길이 갑작스레 끊기면서 잠시 황망해졌다. 대체 이 길의 효용이 뭘까, 내가 여기까지 걸어온 게 고작 이 끝에서

멈추기 위해서였단 걸까, 어쩌면 그다지 큰 실패없이 항상 어딘가로 나를 이어주고 데려가던 길들에 대한 순진한

믿음, 그리고 나 자신이 살아온 지금까지의 날들이 끊겨버린 길을 쉽게 용납하지 못하는 건지도 모른다. 감히

누구 앞이라고 길 따위가 끊기냔 말이다..라는 식으로.


여긴 대충 파리시의 끝이겠구나. 멈춰있는 타워 크레인과, 왠지 인적이 끊긴 채 나지막한 건물이 드문드문한 변두리.

무덤만 가득한 게 왠지 정체되어 버린 느낌이다. 마치 서울에서 복작대며 살다가 조금만 서울 외곽으로 나가도

전혀 다른 '촌스럽고 정체된 듯한' 풍광이 펼쳐짐에 놀라듯, 그렇게 살짝 놀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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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평등'이란 가치가 구현된 파리의 공동묘지..란 얘기는 역시 넘 성급한 것이었는지도. 그새 높아져버린 내

안목으로 보기에는, 아까의 관목 울타리 속의 조그만 공간 속에 우르르 박혀 있는듯한 무덤보다는 이렇게 좀더

트인 공간이 훨씬 좋을 거 같다. 왠지 이쪽이 꽃다발도 더 크고 화려해 보인다. 역시, 상대적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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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지만, 그 옆에 있는 아파트는 무슨 재향군인회가 관리하는 관사일까 싶었다. 풀색과 갈색으로 얼룩무늬를

그려놓은 왼쪽은 육군 출신을 위한, 하늘색과 갈색으로 얼룩진 오른쪽은 공군 출신을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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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데팡스 주변에도 그랬지만, 어딜 가도 공공 미술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그리하여 미술(문화)에 대한 익숙함과

자연스러움을 느낄 수 있다. 이건 타키스의 금속과 물을 소재로 한 설치 미술..이란 게 가이드북의 설명이지만, 그걸

몰라도 자연스레 시선을 끌고 무언가 그게 없었다면 허전했겠다, 라는 느낌을 촉발시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광화문 흥국생명 건물 앞에서 망치질하고 있는 모빌 같은 것, 최근에 그걸 보다 잘 보이도록 도로 쪽으로 한 발짝,

30센티 정도 되려나? 그만큼 나오도록 재설치하는데 드는 돈이 몇 억이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어쩌면 이제

한국에서도 몇 억원의 돈보다 공공 영역의 미술이 갖는 가치가 커지고 있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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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막다른 끝에 도달해서 잠시 내가 머뭇거리는 사이, 그 흑인 아저씨는 손톱만하던 얼굴이 주먹만하게, 그리고

내 얼굴만하게 커져 보일 만큼 가깝게 다가왔다. 난 우선 손에 들고 있던 지도와 다이어리를 가방에 쑤셔넣고,

한 손에 쥔 카메라의 줄을 바싹 틀어쥐었지만, 슬쩍슬쩍 바라본 그의 표정에서는 나에 대한 별다른 관심이나 욕구를

느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아저씨의 허리춤에서 달랑이는 무전기.


아마 신개선문 주변을 순찰하는 관리원 아저씨였던 게다. 내가 인적이 드문 곳에 굳이 꾸역꾸역 들어가니까 나름

신경이 쓰이셨던 건지, 아님 단순히 순찰 중이셨고 마침 나와 경로가 같았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쭈욱 걷는

동안 잠재적인 범죄자 혹은 위협요인으로 고려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미안해졌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뉴욕의

출근시간대 만원지하철에서는 치한을 만났고, 이집트 카이로의 나일강 유역에서는 '바나나' 아저씨를 만나 꾀임에

들었던 바 있다는..예전의 기억들.


다시 돌아온 라데팡스 신개선문 아래에서 바라본 사람많고 복닥이는 개선문쪽의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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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여기저기서 회전 목마가 보인다. 에펠탑 아래에서도, 생 제르망 거리에서도, 그리고

라데팡스 이곳에서도. 아이들이 그렇게 좋아한다는데, 내 유학생 친구는 이곳의 문화 자체가 (상대적으로) 저자극

이란 사실에서 회전목마가 융성하는 이유를 찾았다. 설득력 있는 거 같다. 느긋한 호흡의 참 담백하고 낭만적인

놀이기구 아닌가. 그말은 곧 속도감없고 금방 싫증나며 단순한 데다가 심심한, 재미없는 놀이기구라고 번역되고

말겠지만..뭐, 나도 회전목마는 타는 것보다 타는 걸 보는 게 더 재밌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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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건 세자르의 조각, 엄지손가락만 툭 던져 놨길래, 나도 내 신체 중 엄지손가락만 분절시켜서 사진 속에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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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데팡스, La Defense Grande Arche 역은 라 데팡스의 거대한 구조물들을 찬찬히 구경하기엔 그다지 친절하지

않은 역이라고 생각했다. 너무 깊숙히 라 데팡스의 신 개선문 주변에까지 가 닿음으로써 그 주변에 배치되어 있는

재미있을 것 같은 건물들을 둘러보기 어렵게 해놨기 때문이다. 차라리 한 정거장 먼저 내려서, 이리저리 둘러보다

필요하다면 라 데팡스 역에서 전철을 타 다른 곳으로 옮기자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는 탁월한 선택이었지 싶다.


Esplanade de la Defense 역에서 내려선 바로 앞에서 바라본 라 데팡스의 신 개선문. 한 변이 110미터나 된다는

이 거대한 건축물은 루브르 박물관, 카루젤 개선문, 튈를리 정원에서 콩코드 광장, 개선문을 잇는 그 직선상에

위치해 있다. 파리 시내 어디에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녹지공간은 역시나, 라 데팡스로 가는 길에도 아낌없이

자리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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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에서 내려 바로 반대편을 바라보면 이렇게 개선문, 그리고 그 너머의 샹젤리제 거리가 보일 정도다.

왠지 개선문을 향한 길 양켠으로 뺴곡히 자리한 야트막한 건물들이 다소 누추해 보이거나 혹은 오래되어 보이는 건

신 개선문을 향한 그 길에 놓인 건물들이 모두 높다랗고 현대적인 깔끔한 건물들이었기 때문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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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가이드 북에 '라데팡스'라고 설명되어 있는 "신 개선문 주위에 고층 빌딩이 줄지어 있는, 파리 서쪽의 부도심"

그 자체는 여러 건물들의 총합이자, 이러저러한 건물 앞 예술품들이 자아내는 분위기가 특별한 일정 규모의

공간을 이야기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랑드 아르슈, 즉 신 개선문으로 향한 순례길에는 첨단 건물들이, 마치

서울의 강남 테헤란로에서처럼 즐비하게 하늘을 찌르고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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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이른 아침이어설까, 그다지 관광객이 눈에 많이 띄지는 않지만, 이렇게 깔끔하게 정비된 길은 분명 세기도

쉽지 않을 만큼 많은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대비하고 만들어진 곳이 아니었을까. 앞으로는 라 데팡스의 신개선문을

바라보며, 뒤로는 드문드문 개선문과 개선문까지 직선상으로 놓인 아기자기한 거리들을 굽어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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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개 껍데기를 엎어놓았다느니, 햇빛을 반사하며 다른 빛깔을 낸다느니 여러 묘사들이 꼬릿말처럼 붙어있는

건물들이 좌우로 정렬해 있었지만, 차라리 몇 개 눈에 띄는 건물들에 대해 눈길을 기울이느니만 못했던 설명이었다.

이 독특한 색깔을 고수하는 정체불명의 원통은 왠지 언제라도 하늘높이 쏘아올려질 법한 상승의 느낌을 한가득

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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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 도착한 순간부터 거슬렸던 모종의 이미지가 극대화되어 한눈에 들어온 참이다. 왜 얘들은 정원을 이렇게

각잡아 네모반듯하게 세워놓고 싶은 걸까. 입대 직후 훈련소에서 치토스 한 봉지씩을 나눠주며 생색을 내고는,

다 먹은 봉지를 각잡아 딱지접어 내라던 부조리한 상황이 왠지 겹쳐 떠올랐다. 게다가 그 때 치토스 안에서 나왔던

자그마한 따조..였던가, 그건 허가받지 못한 놀이기구로 훈련병들 모두 반납해야 한다는 인정머리없고 유치하다

못해 진절머리나는 명령을 내려받고 나서 난 앞으로의 군생활이 이따위일 거라고 깨달아 버렸었다.


어찌됐건 그다지 유쾌하지 못한 따조와 각잡아 반납한 치토스 봉다리의 기억을 되새기게 만든 "네모 반듯한"

프랑스식 정원의 한 결정적인 단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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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다른 여유롭고 단정한 건물들과는 다르게 하늘 높이 치솟은 건물들은, 왠지 건방지게 으스대고 주변의

녹지 공간을 위압하는 느낌이다. 제 아무리 나무가 자라봐야 내 어깨만큼이나 오겠냐는 식의 시니컬한 분위기.

그 한가운데서 발견한 나무의 형상은, 왠지 언젠가 주위 고층건물들의 벽을 타고 올라 하늘 가득 짙푸른 녹색을

퍼뜨릴 것처럼 희망을 품은 데다가, 왠지 모를 야망의 느낌마저 전달하고 있었다. 힘내라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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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나무들, 혹은 자그마한 정원의 테두리를 감싸고 있는 것들은 아래와 같은 사랑하는 두 남녀의 접촉과

같은 제스처로 풍성해져 있었다. 단지 나무를 자라게 하는 정원과 사람이 밟고 거니는 길거리와의 구분선만을

표시하고자 함이 아니라, 그 자체로 왠지 사람의 이목을 끌고 풍경을 의미심장하거나 회상조로 만들어버리는 조각.

조각 안에서 두 남녀의 키스는, 파리지앵들이 어느 곳에서나, 주위를 괘념치 않고 표현하는 그들의 달떠오른 감정

그리고 느낌을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았다. 부러웠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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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데팡스 신개선문에 가까이 갈수록, 고층건물이 즐비한 일종의 테마파크같은 느낌이었다. 가로세로 110미터에

육박하는 거대한 ㅁ자 건축물은 글쎄, 별다른 감흥보단 그저 참 커서 눈에 잘 띄는구나 정도의 쭉정이같은 감상을

남겼고. 외려 그 근처 다른 개성있는 건물들에 또다시 눈이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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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데팡스의 그랑드 아르슈, 신개선문 바로 왼쪽 켠에 있던 건물의 창문틀은 독특한 문양을 그리며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었다. 일종의 퍼즐 조각처럼, 아니면 서로 연결된 폭탄 꾸러미처럼 표시된 건물의 창문을 보고 있으면,

왠지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 역시 커다란 편견이나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채 신선한 방식으로 세상을 보고,

문제를 보고, 그럼으로써 돈을 (그나마 벌음직하게) 벌고 있으리란 기꺼운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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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 앞에서 왠지 익숙하고, 그래서 슬퍼보이는 느낌의 직장인들이 담배를 피우거나 담소를 나누고 있었지만,

저 발랄한 정문을 바라보면서 역시 난, 저들은 뭔가 재미난 공간에서 일하는 게 아닐까, 저만큼 참신한 공간이라면

왠지 무언가를 내주고 일을 해도 괜찮지 않을까, 얼마간은...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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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다니는 여행의 가장 큰 약점이란, 역시 자신이 들어가 있지 않은 사진을 많이 남기게 된다는 점일 게다.

외국인들의 형편없는 사진 실력을 보건대, 그리고 외국을 한가로이 돌아다니는 한국인이란 방학을 맞은 대학생,

여름휴가를 맞은 직장인 혹은 학교 선생, 그리고 뜬금없는 삶의 전환기를 주장하는 '아저씨'들임을 고려할 때,

9월 초의 이 타이밍에 내 사진을 찍어주길 바랄 만한 동양인을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와 같았다.


도구의 인간답게, 주변의 사물을 이용해 스스로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잔뜩 오목해진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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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전적으로 보는 사람이 얼마나 정서적으로, 감정적으로 고양되어 있는지를 판별할 수 있는 사진과 같다.

저 건물, 은근슬쩍 왼쪽으로 허리를 굽히고 있다는 사실이 누군가에게는 오호, 하면서 놀라와 할 만큼의 사실,

그치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뭐 무너질 거 같은 긴장감은 하나도 없네, 하면서 어줍잖아 할 만큼의 사실.


사실과 사실 사이에서 입장을 정하는 건, 단지 짬뽕을 먹을지 짜장면을 먹을지, 혹은 라면을 두 개 끓일지 한 개

끓여 찬 밥을 말아 먹을지를 정하는 것처럼, 전적으로 자신의 문제란 건 알고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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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랄까, 저 터무니없이 크고 무쓸모한 건축물이 조금씩 가까워지고 내 시야를 갑갑하리만큼 가로막는 걸 느끼면서,

왠지 이곳이 파리라는 세상의 끝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몇 걸음 더 딛고 나면 영화 "13층"에서 나왔던

것처럼 엉성한 CAD 작업으로 내뻗어진 얄팍한 궤적 몇 개만이 세상의 실재를 주장하는 "세계의 끝"이 나타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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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세계의 끝"이란 느낌 때문일까, 아님 단순히 교정되지 않은 채 제멋대로 넓적넓적하게 자라버린 치아의

배열처럼 엉성하게 놓여있는 빈틈많은 계단 때문일까, 유난히 계단 사이에 끼어 있는 꽁초가 많았다.

어느 계단을 밟으나 쉬이 눈에 띄는 빼곡히 꼽혀있는 꽁초들, 아마 이후의 사람들로 하여금 "에라 모르겠다"라는

느낌으로 담배꽁초를 휙ㅡ 던져버리게 만들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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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데팡스의 그랑드 아르슈, 즉 신개선문은 개선문과 유사한 그 백색의 돌덩이 자체가 가진 특질과 아름다움을

구현하고 싶었던 게다. 거기에 라 데팡스를 순례하는 순례자들이 현대 미술가들의 조각을 너그러이 평가하여

자칫 딱딱해 보이기 쉬운 고층 빌딩가를 화려하게 장식하게끔 하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애초 라 데팡스 지구를

상징하는 '그랑드 아르슈'는 1989년 7얼 14일 프랑스 혁명 200주년을 기념해 만든 건축물이다. 옥상 전망대에서는

멋진 지상의 직선과 파리 시가의 전경을 내려다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왠지 어딘가에 올라 전경을 바라보는

투어 가이드란 게 딱히 내키지 않아서 그냥 조용히 조형물을 올려 보았다. 왜 이런 걸 만들었을까, 프랑스 혁명

200주년을 기념했다고 하기에는 너무도 추상적인 형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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