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밟아온 일종의 학습효과에 의하자면, 어릿한 관광객 티를 안내고 다니는 가장 쉬운 첩경은 바로

무단횡단과 신호등 쌩까기에 달려있다. 백팩과 카메라, 지도와 물병을 들고 어리바리하게 두리번대는 건 질색.

"신호등도 변변찮은 이곳의 도로는..무단횡단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재미삼아 합주해내는 클랙션의 무아지경과 도처에서 밟히는 브레이크의 굉음, 게다가 온전한 차 찾기가 힘들 정도로 광폭한 운전자들이라니...카이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8차선 도로 옆에 주저앉아 찍은 사진. 아마도 이런 것이 앞으로 내가 건너야 할 길이겠거니 하는 맘으로.."

이집트로 여행을 떠났던 한 여학생이 카이로시내에 도착해 거리를 건너 숙소로 가려다가 '지옥의 레이스'를 펼치는

도로 위의 미친듯한 운전자들을 보며 질겁한 나머지, 그대로 한국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Arc de Triomphe, 무려 열두 개에 이르는 거리가 모이는 그곳에 쾅, 하고 서있는 개선문인데, 어릿한 관광객 티

안내는 첩경은 무단횡단과 신호등 무시하기에 달려있다는 신념을 실천코자 당당히 무단횡단을 해버렸다. 주위에

경찰차를 멈춘 채 사방을 살피던 경찰이 호루라기불며 쫓아올려고 액션을 취하고, 사방에서 차들은 빵빵대고

난리도 아니더만. 알고 보니 다른 곳은 괜찮아도 여긴 워낙 번잡해서 자칫 생명줄을 놓을 수도 있더란 얘기.

그러고 보면 아마 교통 면에서 여기가 제일 혼잡스러운 느낌이었던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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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발견한 지하도, 이 곳을 통해 내려갔으면 되는 거였는데 사실 눈에 잘 띄지 않았다. 생각보다 큰 개선문을
 
보고 설레버린 내가 뒤도 안 돌아보고 무조건 건너려 한 탓이 큰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난 못 보고 지나쳤던 꽤나

긴 지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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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도 밑은 생각보다 조명이 박하다. 그것도 천장을 향해 쏘아지는 간접조명이어서 살짝 음침한 느낌마저 들었다.

위에서는 차들이 씽씽 잘도 지나가고 있다지만, 그런 노상의 소음은 모두 제거된 채 앞사람과 나 자신의 발걸음만

묘하게 섞여 울리는 공간을 지나면 개선문 위로 올라가는 표를 파는 매표소가 나오고, 개선문에는 안 올라가고 단지
 
그 지상에서 구경하고 싶은 사람은 그냥 표를 사기 위해 늘어선 줄 옆으로 당당히 올라가면 된다. 어차피 개선문

올라갈 사람들도 표를 보여주는 곳은 지하도를 올라온 지상, 개선문 옆구리에 붙은 자그마한 문인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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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찍이 보이는 라데팡스, 라데팡스에서 여기 개선문까지는 사실 걸을 만한 거리긴 할 것 같았지만 이 날의 일정이

좀 많이 걸을 것 같아 체력을 아끼기로 하고 전철을 탔었다. 왠지 이쪽의 가로수들은 아직 네모반듯한 각이 잡히지

않은 상태란 게 신기할 정도로, 내가 가진 파리의 가로수 이미지란 건 모두 냉동실의 얼음만드는 판에서 얼려진 양

반듯하고 평평하게 규율된 깍두기 스타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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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굵은 쇠사슬을 그네처럼 타고 앉아서 바라본 개선문의 다양한 조각들. 그 중에서도 특히 내 맘에 들었던 건,

라데팡스 쪽을 바라본 쪽 오른켠에 새겨진 부조. 에테크스라는 예술가의 "저항"이라는 작품이라고 한다. 내가

학교다닐 때 돌을 들고 전경들과 맞서려다 최전선에 있던 농민 아저씨의 머리를 깨뜨렸을 때에도, 여하간 내

심장은 뜨거웠으며 아마 표정도 저렇게 결의에 가득차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다. 왼쪽 다리를 부여잡고 있는

아마도 절박하고 왠지 비루한 표정의 늙은 애비, 그리고 갓난쟁이의 목이 꺽여버린 것도 모른 채 자신의 애절한

눈빛을 보아주길 바라는 아내까지..'저항'이란 건 저 두눈 홉뜨고 온몸의 근육을 긴장시킨 투사의 이미지로만

묘사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다리를 잡고 앞길을 가로막으려는 저런 절실하고 좌절스런, 그리고 고통스런 장애까지

함께 하는 행동이라는 걸 말하고 싶은 거라고 내맘대로 감정이입해 버렸다.


뭐랄까, 유모차를 내세운 게 비정한 게 아니라, 유모차로 표상될 모정과 그녀의 아이 사이로 긴장감을 눈에 안

보이게 흘려넣는 놈들이 나쁜 거다. 건강과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고 전혀 깨닫지 못하는 그 불감증이라니, 굳이

집회 및 시위가 어떠한 공간이며 공권력이란 게 무엇을 하는 게 '상식'인지 묻지 않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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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날씨란 게 얼마나 변덕스럽냐면, 고작 개선문을 정확히 절반 돌아 샹젤리제 거리 쪽의 오른켠 조각을

구경하러 왔을 뿐인데 그사이에 희뿌옇던 하늘에다 한국의 그것과도 같은 높고 푸른 가을하늘을 풀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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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조각은 뤼드라는 사람의 "1792년 의용병들의 출정", 일명 "라 마르세예즈"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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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샹젤리제 거리쪽 왼켠의 조각, "1810년의 승리". 승리의 여신이 나폴레옹에게 승리의 팡파레를 불어주면서

월계관을 씌워주고 있다. 아...요런 센스쟁이 조각가 같으니, 월계관 씌워주는 여신은 키작은 나폴레옹보다

낮은 곳에 위치해 놓은데다가, 살짝 허리까지 비틀어 키를 낮춰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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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면의 커다란 조각, 그리고 그 위에 놓인 네모난 조각작품들도 모두 전쟁에 관한 것이었다. 전쟁, 그리고 승리,

딱 하나의 조각만이 전장에서 전사해 운구되는 어떤 장군의 행렬을 묘사했던 것 같다. 나폴레옹이 치뤄낸 숱한

전쟁이 그를 영웅으로 만들었으니, 어쩔 수 없이 그는 전장에서 흘린 숱한 이의 피에 대한 부채를 지고 '전쟁광'이

될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전쟁을 기억하고, 기리고, 재생하며.

참, 정작 나폴레옹 그 자신은 개선문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죽었다고 한다. 그의 시신만이 이 문을 통과했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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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선문 중심에 배치된 무명 용사의 묘. 미국 워싱턴의 국립묘지에 있는 JFK 의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여기에도

꺼지지 않는 불이 피어오르고 있었는데 헌화가 끊이지 않는다는 가이드북의 과장스런 표현이 구라는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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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찰 중인 경찰 아저씨와 누나. 아까 날 노려보며 호루라기를 볼이 터져라 불어대던 그 아저씨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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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짜리 관광버스는 꾸준하게 관광객들을 토해놓기도 하고, 내가 있던 곳에서 갈 곳으로 그들을 옮겨놓기도 하고,

혹은 갔던 곳으로 돌려놓기도 한다. 시간이 남을 때 버스를 타고 시내를 한번 느긋하게 돌면서 구경하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지만, 결국 줄창 걸으면서 파리를 헤집고 다녔다. 그러고 보니, 유난히 벤츠, BMW 등 고급 차종의

택시가 많아서 한번 택시도 타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더랬다. 더구나 파리는 택시를 타고 내리는 택시 정류장이 따로

있어서, 아무 데서나 타고 내리는 건 안 된다는 신기한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길래 더욱 호기심이 일었었는데,

다음에 출장 중에 들르게 되거나 다시 여행차 오게 된다면 그 때는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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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국기와 나란히 펄럭이는 유럽연합의 기. 유럽연합이 화폐 통합을 통해 유로화를 만들고 유통시킨다고 했을

때 반신반의하며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을까, 했었는데 어느덧 달러화보다 강한 화폐가 되고 말았다. 왠지 이런 걸

재테크의 관점에서 아쉬워하는 스스로를 깨닫는 순간이란 건, 씁쓸하다.

예전에는 유럽연합이라는 틀로 주변강대국 독일과 영국을 묶어놓으려는 프랑스의 역사적 경험과 정치적 감각에

대해 감탄하거나, 혹은 동아시아에서 이와 같은 정치적 연합체가 가당키나 할지에 대한 공상을 했던 것 같다..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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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란 하늘, 그리고 하얗게 빛나다 살짝 우중충하게 녹아내린 대리석에서 살풋 아쉬운 개선문. 산성비의 영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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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형의 십이거리, 그 한복판에 섬처럼 덩그머니 서있는 개선문으로부터 샹젤리제 거리쪽으로 나왔다. 이번엔

제대로 지하도를 통해 빠져나왔고, 표를 사서 개선문 위에 올라볼까 했으나 지하도를 가득 메운 구매희망자들의

줄 길이를 보고는 얼른 마음을 접었다. 개선문 위에서 보는 야경이 에펠탑에서 보는 야경과 더불어 손꼽히는 파리

야경을 선사한다니, 다음에 밤에 와서 표를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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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 어찌나 순식간에 뭉쳐오르는지, '뭉게뭉게'라고 중얼대며 파란 하늘을 메꿔나가는 거 같았다. 나는 이제

샹젤리제를 거쳐 루브르 궁전까지 걷기로 했다. 그 와중에 보이는 검정색 벤츠 택시.

그리고, 개선문을 가려면 꼭 지하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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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개선문을 소개한 브로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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