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eudo라는 단어는 그럴듯한 한자어로는 의사(似)라고 표현되는데, 간단하게 짭퉁..이랄까.

pseudo
[] a. 허위의, 가짜의;모조의 (네이버 사전 발췌)

샹젤리제 거리의 끄트머리에 있는 두 채의 궁전, Petit Palace와 Grand Palace이 딱 그런 짭퉁 궁전이다.

Palace란 이름만 봐도 영락없는 궁전인데다가, 역사도 꽤나 되어 보이는 게 고풍스럽고 화려한 외관과 맞물려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지만-유학간지 일년이 넘은 내 친구도 내가 가이드북의 도움을 받아 알려주기 전까지는

전혀 몰랐다고 한다-사실은 그렇다.


어쩌면 바로 큰 길 건너 맞은 편에서 광채를 내는 금빛 돔에 혹한 나머지 자연스레 이곳도 뭔가 대단한

사람이 살았던 곳임에 틀림없으리라는 지레 짐작 탓인지도 모른다. 화려한 금빛돔과 저 화려한 좌대에 얹힌

조각들이 대체 뭘까, 하고 조금씩 그쪽으로 향하다가 멀찍이 있는 앵발리드까지 가버릴 뻔 했다.



이 두 개의 궁전, Palace는 애초 1900년에 열린 파리 만국박람회를 대비해 건축된 공간이라고 하며, 일종의 전시

공간으로 기획되어 지금도 다양한 미술 작품을 전시하는 미술관으로 쓰이고 있다니 궁전의 필수조건인 왕족 따위

이 건축물 내에 살았던 적조차 없는 게다.


이게 그랑 빨레, 거칠게 말하자면 '큰 궁전'이랄까. 그러고 보면 개선문도 그렇듯 그리스 시대의 건축물들을

다시 되살려 지은 느낌이다, 파리의 이름난 건축물들이란 것 중 상당수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게 쁘띠 빨레. 고등학교 때 친구 한녀석이 잘난 척하겠답시고 쁘띠 부르주아 어쩌구 할 때부터 알았던 프랑스

단어 'Petit'는 '작은'이란 의미를 담고 있으니, '작은 궁전'쯤 되겠다. 이름에 걸맞게 자그마하고 여리여리한 체구의

소녀같은 느낌을 가진 건물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파리의 거리에서 종종 마주친 자그마한 차, 저 차 이름이 뭐더라..서울 시내에도 저런 차가 많이 다니면 좋겠다고,

당장 나부터도 저런 귀여운 차를 타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사실 한국에서는 차 자체가 하나의 신분의 상징처럼

쓰이는 것 같다. 차에 약간의 상처만 나도 무슨 큰일이 난 양 스트레스받고 싸우고..어떤 물건이나 쓰다보면 닳고

부서지고 하는 건 당연한 건데 항상 반질반질 광택이 흐르고 상처 하나 없이 말끔하길 바라는, 더구나 검은색을

그리도 선호한다는 사람들의 심리란 건 대개 과시욕이나 물신과의 동일시 경향과 맞닿아 있을 거 같다. 그러니

저렇게 경제성이나 실용성에만 초점을 맞춘 차는 시장에서 살아남기 힘들려나..아직은.


'아직은'이라는 말을 뒤에 덧붙이다가, 나 자신이 일종의 역사적 목적론에 빠져있음을 자각했다. 우리나라의 의식

수준이나 생활수준이 점점 고양되어 언젠가는 꼭 프랑스나 다른 선진국처럼 되리란 법은 없는 건데, 그랬으면 하는

바람이 너무 크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마침 쁘띠 빨레는 월요일이라 휴관, 화요일날 가서 찍은 사진을 좀 올리자면 내부로 들어가면 가운데 이런 정원과

물이 말라붙은 자그마한 분수가 있다. 굳이 안으로 들어와서 미술품을 감상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다.

일본인 한 명이 이 정원을 바라보는 까페에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적기도 하고, 담배도 태우고 있는 걸 보고

왠지 동질감이 느껴졌다. 그렇지만 말을 걸어 보는 순간 깨어지고 만 그의 평화로움과 여유로움. 영어를 못한다.


외국에 나가서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을 왠지 느낌으로 구별해 낼 수 있다는 건 늘 신기한 느낌이 든다. 서양인들은

유럽-그것도 북유럽, 서유럽, 동유럽까지 세분되기도 하지만-과 미국, 캐나다나 남미를 우리처럼 구별해 내는 것

같다. 다니엘과 다닐 때 물어봤더니, 그녀는 아마도 입고 다니는 옷 스타일과 브랜드로 구분이 가능한 것 같다고

했지만 내 생각엔 왠지 외모나 말로는 설명못할 무언가 미묘한 기류나 분위기의 차이를 감지하는 게 아닐까 싶다.

실제로 내가 그를 일본인일 거라 생각한 것도 그다지 합리적인 근거는 없었던 게, 그는 상당히 한국적으로

생겼던 데다가 옷에는 아무런 브랜드나 힌트가 될만한 디자인이 없었던 것 같았다는 걸 봐도.

쁘띠 빨레의 창문을 통해 바라본 그랑 빨레의 어수선한 분위기. 다음달인가 개관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었다.

쁘띠 빨레는 그렇게 많은 소장품을 갖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고, 화요일에도 지하 전시관은 닫았고 1층도 일부만

개방하고 있었다. 덕분에 무료 입장하기는 했지만 사실 나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외려 까페에서 보낸 시간이 더 길었던 것 같다. 다이어리 정리 좀 하고, 이런저런 간단한 소감들 적어 놓고..지갑
 
정리도 좀 하고. 애초 빠리에서는 루브르, 오르세, 오랑주리 미술관만 볼 생각이었기 때문에 미련없이 털고 나서는

길에 쁘띠 빨레 앞의 피그말리온 조각상을 마주쳤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핑크빛이 감도는 자그마한 1층짜리 건물이 이뿌기도 했지만, 앞에 세워진 피그말리온 상. 그가 만든 조각상과

사랑에 빠진 순간이 형상화되어 있었다. 조각 하나, 장식 하나에도 나름의 스토리가 있고 의미가 담겨 있다는 점,

개선문을 따라지었다는 '독립문'이나 다른 한국의 근현대 건축물들에 결여되어 있는 점 아닐까. 형상은 따와도

그에 서린 이야기는 수입할 수 없다는 걸 진지하게 알아채지 못한.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얘는 윈스턴 처칠, 2차 세계대전 중 "We shall never surrender"라고 하면서 독일 점령군에 저항하는 프랑스 내

레지스탕스 활동을 독려했던 녀석이라 그런지, 쁘띠 빨레 근처에 동상도 세워놓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리고 내가 가방과 카메라를 내팽개치듯 내려놓고는 大자로 누워선 잠시 쉬었던 분수대 앞 잔디밭. 여행의 묘미

중 하나는, 아무도 나를 모를 테니 아무도 신경쓰지 않고 하고 싶은대로 하고 다니는 거다. 막말로 내가 긴머리

가발을 쓰고 다니던, 바지 위에 팬티를 입고 다니던 누가 신경이나 쓰겠냐는 얘기, 더구나 여긴 파리인데.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