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나의여신님.

울드와 스쿨드와, 뭐니뭐니해도 베르단디.

내 중학교 시절 그녀의 화려하고도 섬세한 머릿결을 칼로 한올한올 파서 코팅하던 녀석과 친구였는데, 유유상종이었던 것이다. 오나의여신님 극장판 ost의 라이브공연 버전을 들으며 공부를 하는 척 그 간드러지고 꿀떨어지는 목소리에 집중했었더랬다. (지금 생각하면 오나의여신님의 그림체는 무하의 그것과 비교함직하지 싶다.)

십년 넘도록 연재되어온 스토리를 갈수록 희귀해지는 만화방을 찾아 잘도 따라오면서, 어디선가의 애니 팬시샵이던가 전시회던가에서 사왔던 책받침, 콘티 자료집과 네컷 만화집까지 지금까지 고이 갖고 있는 스스로가 대견하면서도,

또 그와중에 종반에 이르러 케이를 고자로 만들었던 베르단디의 '속임수'라는 설정에 잠시 멘붕했다가, 초반에서 중종반을 지나며 같은 베르단디를 그리고 있는 게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심각하게 변신해 버린 작가의 그림체에는 만성적으로 뜨악함을 느끼면서도, (갠적으론 초반의 통통함과 종반의 각진 달덩이 그 사이 어디쯤이 참 좋았는데)

이렇게 오그라들면서도 아름다운 결혼식 장면으로 완결되었다는 건 뭔가 내 안에서도 함께 슥 완결되는 느낌을 던져주는 거다. 뭐, 물론 전적으로 남성 위주의 하렘물이라거나 입맛에 맞춘 캐릭터들의 진열 등등의 부분은 이미 쇽 극복한지 오래지만서도. (코슥)

#돼지의왕 #연상호 #부산행 #창 #영화스타그램 그림체는 낯설고 동작은 엉성하다. 움푹 패인 눈매와 불쑥 솟은 광대를 강조한 인물들은 만화의 미덕인 '뽀샤시'의 덕을 전혀 누리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런 영화를 보고 몇번이나 전율이 돋고 말았다.

학원폭력에 대한 이야기지만, 그보다는 어떤 사회적인 관계에서던 약자의 위치에 선 사람들에 대한 집요하고 사정없는 묘사라고 말하는 게 낫겠다. 약자라고, 피해자라고 선하거나 순할 것만 같은가. 그네들의 어둠은 오히려 가해자들의 일방적인 것보다 더욱 깊고 독하지 않을까.

표출되지 못한 분노와 폭력성은 어디로 가는 걸까. 그것들이 애니메이션으로 표현된다면, 그래. 이렇게 어둡고 음침하고 일그러진 세상에 사람들일 수 밖에 없는 거다.

p.s.그러고 보니 '부산행'의 연상호 감독이었다. 아..이 사람 뭐지.



미야자키 하야오의 지브리는 여전했다. 미세한 감정의 떨림, 격랑을 그대로 애니메이션 안의 풍경으로 떠올리는

그 섬세하고도 정교한 이미지라거나, 두말할 것 없는 음악, 무엇보다 문득 말려들어간 위기상황에서 흔들리는

세계를 부여잡고 어느새 훌쩍 커버리는 아이들의 대견하고도 안쓰러운, 그리고 가슴 따뜻해지는 이야기 역시.


특히, 고작해야 고등학생인 그녀가 어머니에게, 좋아하는 선배가 생겼는데 알고 보니 그 선배의 아빠가

우리 아빠랑 같은 사람이에요? 라고 묻고는 그 대답에 끝내 허물어지며 눈물 터뜨리는 장면의 임팩트란.

불쑥 낯설어진 아빠와, 선배와, 그녀 자신의 세계를 어쩌지 못하고 그저 버텨낼 뿐이다가 무너지는 순간.


영화는 시간이 흘렀다 하여 변해서는 안 되는 것들, 간직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아침마다

깃발을 끌어올리는 그녀의 습관이라거나, 아빠엄마에 대한 신뢰 혹은 사랑이라거나, 첫사랑 선배에 어쩔 수없이

끌리는 마음이라거나, 그리고 '도시 미화'가 진행중인 와중에 동아리 건물을 지키겠다는 학생들의 의지같은.


아쉽게도 중간중간 조금 안타까운 부분이 있었다. 그녀의 큰 갈등 요인이 되는 '출생의 비밀' 비스무레한 상황은

한국적인 상황에선 너무도 자주 써먹어버린 대표적 '막장 전개'의 소재인 거다. 지브리 스튜디오가 한국의

막장 드라마의 뻔한 레퍼토리를 사전에 숙지하진 않았을 테니 그쪽을 탓하긴 어려울 거 같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느 지브리 스튜디오의 주인공들이 그렇듯 그녀와 그 역시 영화가 끝날 때쯤엔 잔뜩

애정어린 눈길로 바라보며, 그들의 앞길이 모쪼록 행복하기를 바라게 되는 거다. 처음 등장할 때는 그저

바르고 착한 아이일 뿐이라 생각했던 그들이, 조금씩 눈매가 깊어지고 인생의 비밀이랄까 가치를 고민하며

진정으로 어른스러워지는 걸 고작 100분도 안 되는 영화 한 편으로 감지할 수 있다는 건 축복같은 일이다.




아오모리현이 품고 있는 세계 최대의 너도밤나무 원생림, 시라카미 산지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되어 있을

정도로 자연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있는 지역이라고 한다. 일반에 개방되어 있지 않은 곳에는 추정수령이
 
400년에 이른다는 아름드리 너도밤나무 'Mother Tree'의 압도적인 커다란 줄기가 사방으로 뻗친 모습이

장관이라고 하는데, 그 방대한 면적과 귀중한 자연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일본에서도 가장 처음으로

세계유산 등록이 되었다고.

 

시라카미 산지에서 일반에 개방된 부분은 정말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그렇게 어마어마한 숲이 뿜어내는

좋은 공기와 피톤치드 덕분일까, 근처에 다다랐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왠지 기분도 좋아지고 공기맛도 다른

거 같다. 우선 비지터 센터에 들어가서 시라카미 산지의 식생에 대한 간단한 오리엔테이션, 다른 것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3살짜리 너도밤나무의 키가 고작 저만큼이란 사실. 3년이나 묵었는데 수첩만도 못하다니.

20살쯤 되어야 이제 사람이랑 눈높이를 맞출만한 크기로 자라난다고 한다. 다른 동물들은 어렸을 때 쑤욱

자라나서는 그대로 쭉 멈춰있기 마련인데, 너도밤나무같은 저런 나무들은 알게 모르게 조금씩, 그렇지만

꾸준히 자라나서 수첩만한 높이에서 어른 사람만한 높이로, 그리고 몇층짜리 건물만한 높이로 자라난다는 게

실감이 나는 전시였다. 그리고 대형 스크린으로 이 곳에 사는 식물과 동물들을 만나볼 수 있기도 했고.

그리고 드디어 시라카미 산지로. 미야자키 하야오가 '월령공주'를 만들 때 자주 찾아와 장면을 참고하는 등

일본의 여러 애니메이션과 영화의 배경이자 영감을 준 장소로 유명하다고 한다. 벌써 들어가는 길에 보이는

산세라거나 숲의 울창한 정도가 차원이 다르다는 느낌이다.

비지터 센터에서 받아온 한글 버전 지도 겸 안내팜플렛. 좀 어색한 번역투가 거슬리긴 했는데, 특히나

4번, '화장실은 적절히!'라는 항목이 특히 웃겼다. 트레킹 코스 중에 화장실이 별도로 없으니 미리 해결하고

입산하라는 이야기일 텐데, '할수 없을 경우에는 구멍을 파서 묻어 달라'는 아주 세심한 지침까지.

정말, 하야오의 월령공주에서 나왓던 커다란 늑대들이 사방에서 불쑥 튀어나올 거 같은 울창한 숲길이었다.

초록색 식물들이 지천으로 온통 삼엄하게 점령한 가운데 잔뜩 쪼그라들어버린 흙길을 한 줄로 서서 조심조심

걸어가는 트레킹 코스. 길은 꼭 필요한 최소한의 손길만으로 정비되어 있다는 게 느껴질 만큼, 이 곳은

사람보다 자연을 우선하여 관리되고 있었다.

온통 초록빛으로 가득한 공간. 아무 말 없이 그저 묵묵히, 숲들이 조금 몸을 웅크려 내어준 길을 따라 걸었다.

자극적인 볼거리나 흥밋거리는 없지만 수천년이나 묵었다는 원시림의 생명력이랄까 신비스러운 아우라를

체감하는 흔치 않은 경험이었다. 거대한 산이나 바다 앞에서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느낀 적은 있었지만

숲을 걸으며 자연에 대한 경외감이 들 줄이야.

숲길을 따라 걸으면서 눈길 닿는 대로, 그리고 숲의 생명력이 느껴진다 싶은 장면들을 찾아 사진을 찍었다.

숲의 생태계에 대해서 중간에 드문드문 설명이 적혀 있기도 했다. 아이들과 함께 온다면 나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는 이 곳에서 제대로 생태 공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다만, 아쉽게도 일본은 대개

외국인에 대한 설명에 인색하더라는. 저런 거 최소한 영어로라도 병기해주면 좋을 텐데 말이다.

울룩불룩 실핏줄처럼 툭툭 튀어나온 나무의 잔뿌리들이 대지를 꽉 움켜쥐고 있었다.


그러다 마르고 시들어 쓰러진 나무는 또다시 다른 나무들이나 식물을 위한 양분이 되고.

그리고 우뚝 우뚝 솟아있는 싱싱한 나무들은 또다른 식물들이 의지하고 살아갈 기둥이 되어 주고.


더러는 비비 틀어진 채 사방으로 꼬이는 사랑의 작대기마냥 나무들 사이를 종횡하는 덩굴식물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기도 한 거다.

그리고 시냇물. 보기만 해도 굉장히 맑고 투명해보이는 물은, 손으로 살짝 움켜보니 뼛속까지 시릴 정도로

차가웠다. 잠시 손을 담궈 몇 번 비비기만 했는데도 온몸에 땀이 쏙 들어가버리는 느낌.

그렇게 온통 초록빛 일색이었지만 전혀 지루하지도, 심심하지도 않더라는. 그렇게 가파르거나 힘든 길이

아니어서 그랬기도 하겠지만, 그냥 이 길이 한없이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너무도 좋았던 길.

그리고 너무도 좋았던 시라카미 원시림.


그렇지만 일반에 개방된 코스는 아무리 길게 잡아도 한시간이면 돌아볼 수 있는 구간이었다. 어느새 길은

살짝 내리막으로 바뀌어 되돌아나오는 중이었다.

이런 곳에 나무에 저렇게 칼로 낙서를 남기다니, 그나마 한글이 안 보이는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려나.

일본인들은 예의를 중시하고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게 국민성이라고들 하지만, 그것도 요즘 젊은 세대들이나

그 아랫세대에는 별로 해당되지는 않는 이야기인 듯 하다. 한국에서도, 젊거나 어린 일본인 관광객들은

버스 안이던 전철 안에서도 주위를 개의치 않고 큰소리로 떠드는 경우를 종종 봤었다.

한바퀴 돌아서 나온 길, 들어갈 때는 딱히 시선을 두지 않았던 약수터가 엄청 반가웠다. 다른 사람들도

한모금씩 물을 들이키고는 그 차가움에 놀라고, 그리 힘들지 않았던 한시간여의 트레킹이 가져다 준

기분좋은 피로감마저 싹 지워버리는 듯 하다고 한마디씩.

다리를 건너 차가 기다리고 있는 주차장으로 가는 길. 워낙 깊은 산중, 깊은 숲속인지라 딱히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트레킹 코스고 일반 차도인지 구분하기도 애매할 정도다. 이렇게 울창한 숲이 풍겨내는 독특하고도

생생한 그 분위기에 매료되어서 일본의 애니메이터나 영화 감독들이 이곳을 즐겨 배경으로 활용하는 게 아닐까.


주차장 옆에는 왠 뜬금없는 놀이터가, 그렇지만 제법 그럴 듯한 스케일로 미끄럼틀도 몇 개씩 갖추고 있었다.

이정도면 거의 놀이터계의 '갑'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그럴 듯 해서, 그대로 지나치긴 아쉬워

굳이 위로 꾸역꾸역 올라가선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와줬다. 밑에서 보기보단 중간중간 속도를 줄여주는

구간들이 작용해서 미친 듯이 빠른 속도로 내려오진 않았지만 엉덩이는 후끈해졌더랬다.





 


 

코엑스에서 열리고 있는 2011 아트페어, 올해로 10회째를 맞이한다는 KIAF, Korea International Art Fair다.

코엑스 주위 강남권에 회사도 많고 하니 잠시 짬을 내어 구경나온 회사원들도 적잖이 보였다. 네이버에서

세운 아트월 중 하나인 배병우의 소나무 사진을 유심히 감상중인 어느 회사원의 뒷모습이 진지하다.

이번 아트페어의 스폰서인 네이버는 곳곳에 아트월을 세워두고 그 앞에서 사진을 찍을 수도 있고, QR코드를

읽어서 해당 작가의 작품들을 좀더 자세하게 감상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하고 있었다. 포토월이란 단어는

많이 익숙하지만, 아트월(Art Wall)이란 단어는 처음 들어본 거 같은데 참 좋은 아이디어 같다.

이제 많이 유명해진 이동기 작가의 '아토마우스'도 아트월 하나를 차지하고 있었고, 마를린 먼로의 얼굴이

어슴푸레 드러나는 모자이크 그림도 눈길을 모으고 있었고.


이번 아트페어는 9월 22일부터 26일, 그러니까 다음주 월요일까지 코엑스 1층 전시관에서 열린다.

약 17개국의 200개 가까운 갤러리가 참여했다나, 총 작품수가 5천점에 이른다니 왠만한 미술관

전시회를 둘러보는 것보다 시간이 훨씬 많이 걸렸던 거 같다. 뭐, 미술관 전시회처럼 주제가 명확하고

이야기 흐름이 있는 전시는 아니고 갤러리들이 소장한 예술작품들이 우르르 쏟아진 셈이니 보다보면

살짝 소화불량에 걸릴 듯한 느낌도 없진 않지만, 그래도 나름의 재미는 쏠쏠하다.

이렇게 맘에 드는 작품 앞에서는 발걸음을 멈추고 한참 감상하며 저게 뭘까,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 걸까

그런 궁금증이 어깨에 잔뜩 얹힌 채 매료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제목이 뭐더라, the sunny day? 뭔가 해피한 날의 표정이긴 한데, 가슴엔 날이 시퍼렇게 선 식칼이 꼽혔다.

표정과 액션, 형상과 제목간의 모순으로부터 뭔가 궁금증이 스멀스멀 일어난다.

love였던가, 비슷한 이름이었던 거 같은데. 온몸에 하트를 덕지덕지 붙이고 있는 여자의 눈매가 저리도 앙칼진건

뭘까, 사랑의 흔적만 온몸에 남기고 뒤돌아서는 남자에 대한 무언의 항변이나 지난 사랑을 그리는 안타까움일까.

이것도 맘에 들었던 것 중에 하나. 제목이 unmasked였던가. 마스크를 벗어던지듯 얼굴껍데기를 온통 벗겨버린

듯 근육과 지방이 고스란히 드러난 얼굴. 그렇게 얼굴껍데기가 벗겨지고 나니 오히려 모든 표정이 지워진 채

그야말로 무표정한 모습이다.

요새 새롭게 각광받고 있는 회화 소재 중에서 한국적인 미감을 물씬 풍기는 재료가 바로 자개. 색감도 그렇고

반짝반짝하는 광택도 그렇고, 화려하면서도 세련된 분위기를 풍기는 그림이다.

입체의 형태는 시각에 따라 하트로 보이기도 주머니로 보이기도, 혹은 그저 평평한 평면으로 보이기도 한다.

신기한 재료들, 철사망을 어떻게 매만져야 저렇게 갈기를 휘날리며 내닫는 말의 형상이 떠오를 수 있는 건지,

그리고 저 초현실적인 그림에선 나뭇이파리나 털들이 왜 툭툭 그림 밖으로 튀어나와 붙어있는 건지.

저런 분방한 상상력도 경탄스럽지만, 그런 상상을 저렇게 작품으로 구현해낼 수 있는 그 능력도 부럽다.

일견 엉성하게 만들어지다 만 듯한 손, 심지어 손가락도 세 개 밖에 없는데다가 질감도 굉장히 거친데,

그게 또 이렇게 뭔가 절절해보이고 짙은 감성이 담긴 느낌을 던져준다.

이런 식으로, 숫자던 구체적인 물체-단추니 포크 따위-를 터무니없이 큰 사이즈로 재현하는 작품들은

이미 하나의 트렌드가 되어 버린 거 같다. 색감까지 알록달록 이쁘긴 한데, 왠지 이건 0부터 9까지

일괄구매해야 할 거 같다. 그치만 실제로는 숫자 하나만 구매해서 소장할 수도 있다더라는.

눈에 익고 친숙한 사이즈를 확 바꿔버림으로써 뭔가 미감을 자극하는 방식은 회화에서도 등장한다.

귤이니 콜라병이니 따위를 향해 진격하거나 공격중인 군인들의 모습이 연작으로 담겨있던 어느

한국 작가의 작품들은 그런 베이스에 나름의 아이디어를 얹어 고유한 특징을 만들어내려는 시도인듯.

전통 회화와 오브제들이 바둑판무늬로 짜여져서는 설치미술작품이 된 거라고 해야 하나. 특히 저 노랑 버스랑

말 인형이 맘에 든다.

굉장히 다양하고 신기한 작품들이 그득한 전시장 안에서 문득 '니모를 찾아서'의 니모처럼 생긴 물고기가

둥둥 허공에서 유영하는 모습이란 그렇게 초현실적이진 않았다. 요샌 저런 'R/C 생선풍선' 있구나. 그런

정도의 감흥. 그치만 다시 생각해보면 저거 꽤나 재미있어 보이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눈에 띄던 조각들. 아니지, 이걸 조각이라 하기도 그렇고 음..걍 미술작품, 이라는 게 무난하겠다.

저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얼마나 거짓말을 해댔길래 코가 저렇게 낭창낭창하도록 길어졌을까.

풍선아트를 그대로 굳혀놓은 듯한 저 선명하고 발랄한 색감의 작품은 분명 내가 이름을 아는 작가의

그것 같기도 한데. 이름을 까먹어서 잘난 척할 타이밍 1회 상실. 뭐, 이름 외우는 게 중요한 건 아니니.


금과 은으로 장식된 듯한 새하얀 마차랄지, 삼륜차랄지, 바이크랄지. 가만보면 좌석 등받이 쪽에 붙은

조그만 모니터에서 뭔가 사람들이 꼬물거리고 있다.

저렇게 낮은 곳에 있어서야 지나는 사람들의 부주의한 발길에 밟히면 어쩌려고. 하얀 모래가 깔린 가운데

허우적대고 있는 두 사람, 뭔가 개미지옥이나 사막의 구덩이같은데 빠진 절망적인 상황 같다.

그리고 뭔가 반복적인 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저 녀석들이 있었다. 눈과 입, 아마 실제

사람의 눈과 입을 따서 투영시킨 거 같은데, 쉼없이 꿈벅거리고 말하고 하품하는 그 형체가 기괴했다는.

그리고 이런 클래식하고도 반가운 작품을 소장, 전시하고 있는 갤러리도 있었다. 당대에는 획기적이고도

참신했겠지만 이미 그 뒤로 너무 많은 사람들이 따르고 있는 백남준의 미디어아트. 그의 작품은 뭔가

손때묻고 오래되어 따스한 온기가 도는 낡은 기계의 느낌이 난다. 오래된 재봉틀이나 빈티지스러운

바이크에서 느껴지는 그런.


나 같으면 BMW에 이런 식으로 도색을 하진 않겠다. 차는 참 이쁜데 말이지.

정말이지 전시장은 너무도 광활했다. 사람도 무척이나 많았지만 워낙 넓고 천장도 높아서 갑갑한 느낌은

들지 않았고, 그렇게 전시장 한가운데서 방황하다가 작가들이 붓을 흩뿌리며 작품을 만드는 것도 직접

볼 수 있었다. 어렸을 때 미술 시간에 저렇게 붓에 물감 찍어서 휙휙 뿌리는 건 참 재미있었는데. 


중세시대 귀족들을 희화화하는 걸까, 커다란 목장식을 벌통으로 바꿔놓고는 얼굴 곳곳에 벌을 붙여놓은

작품도 있었고, 베르사유 궁전 거울의 방을 촬영하곤 이리저리 매만진 작품 앞으로 온통 분해되어 버린

바이올린의 조각들이 가까스로 서 있었다.

그런가 하면 인도네시아던가, 그 나라의 정치 상황과 사회 분위기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이런 사회성 짙은

작품들도 더러 있었다. 폴리스 라인 뒤에서 죽어 나자빠져 있거나, 그 라인을 의식하며 권력에 대한 충성을

허둥지둥 맹세하거나, 혹은 라인을 밟고 경계에 선 사람의 모습까지. 내 맘대로 읽어낸 거지, 실제로 무슨

의미를 담고 어떤 역사적 배경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리고 센스가 넘치는 회화들. 안 그런 것들이 없었지만 특히 저 사이클 장면을 그린 그림이 와닿았다.

부시와, 테레사수녀와, 달라이라마가 레이싱 중이다.
 

눈이 시뻘개진 나무 늘보가 괴물처럼 흐물흐물하게 변해가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이 담긴 그림이 있는가 하면,

그림 아래쪽에 창을 내고 알루미늄을 붙여선 공간을 틔워버리고 나비 두마리를 날려보고 있는 그림도 있었다.

그리고 칠판처럼 배경이 그려진 그림 위에 저런 뜬금없는 고추를 그리거나 명함을 오려붙이고, 낙서를 마구

해서는 마치 학예회날이나 만우절날, 혹은 교생 떠나가는 날의 칠판을 그대로 떼어온 듯한 그림도.

누구의 입버릇을 빌건대, "내가 추석 연휴 때 스타워즈 에피소드 1,2,3,4,5,6을 전부 봐서 아는데," 스타워즈의

캐릭터들은 정말 그 풍요롭고 탄탄한 스토리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나서, 이렇게 예술작품으로 환생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들이다. 다스베이더의 가면 너머 숨어있는 그 깊고도 복잡한 심경, 그걸 그대로 전유해서

예술 작품 자체에 깊이를 얹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지 않을까. 그리고 스타워즈 자체가 수많은 아티스트의

소재가 될만큼 강력하고 매력적인 자극이었다는 반증이기도 할 거다.


여하간, 다스베이더를 소재로 삼은 저런 작품들, 아..하나 갖고 싶다. 스타워즈 빠돌이가 되어버렸다.

최근 인터넷에서 실사판 화투패라고 돌고 있는 것도 있던데, 그것도 제법이었지만 이렇게 뭔가 메카닉의 느낌이

담긴 화투판도 괜찮은 거 같다. 심지어 비광의 저 냥반은 스케이트를 신고 있는 거 같다.ㅋ

한국 작가 누구더라, 의 태권브이는 맨발로 당나귀를 타고 있다. 태권브이의 저 입모양은 이모티콘으로 따지면

-0-, 이런 느낌을 주는 거 같아서 재미있다.

저런 그림 참 좋다. 도발적인 자태와 눈빛, 흘러내린 머리까지. 나중에 집에 걸어두고 싶은.

그리고 이런 툭 까내리는 메시지도 좋다. 다짜고짜 뻐큐란다.

모네의 그림을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하며, 무질서해 보이는 수많은 붓질이 한송이 수련꽃으로 피어나는

모습을 보았던 기억처럼. 이 여인의 얼굴 그림 역시 가까이 들이대면 이런 조악해 보이는 어설픈 동글백이가

수없이 숨겨져 있었던 거다.


사진 작품들도 제법 있었다. 익히 알려진 배병우 작가의 작품들 말고도, 저런 작업은 어떻게 한 걸까.

어린왕자의 B612처럼, 조그만 별에서 벚꽃나무가 거침없이 뻗어나가 우주를 채웠다.

그리고 아마도 수많은 도장들을 모아서 프레임 안에 채운 게 아닐까 싶은, 크기도 높이도 모양도 내용도

전부 제각각인 것들이 모여서 커다란 직사각형의 작품에선 무슨 디오라마같은 입체감이 느껴진다.


뭐라더라, 설명을 들었는데 대도시의 밤풍경을 내려다보면 이렇게 혼란스럽고도 화려한 이미지일 거라

했던가. 작가가 실제로 그런 걸 의도했는지 모르겠지만, 딱 보면 정말 혼란스럽기는 하다.

예술은 늘 최신의 과학 기술과 성과를 또다른 표현수단으로 받아안고는 했다. 3D 아트는 그런 의미에서

조금 늦은 건 아닌지 싶을 정도다. 안경을 썼더니 너무 어지러워서 패스.


이거...레이 아닌가. 아니면 다른 변신물의 캐릭인가. 모르겠지만 일본 애니에서 뛰쳐나온 게 분명한

저 소녀가 캔버스 위에 그려져 있다니, 저런 작품도 유쾌하니 맘에 든다. 사방에 뭔가 변신중이라는

듯한 범상치 않은 기운이 휘감겨 있는 것도 맘에 들고.

중국 아티스트들의 작품도 요새 '투자가치'가 충분하다더니 꽤나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급변하는

중국 사회의 모습을 때로는 풍자적으로 때로는 시니컬하게 담고 있는 그들의 작품 중에 특히나

너무도 적나라해서 눈에 확 들어왔던 작품. 색감도 굉장히 선명하고 멀리 떨어져 조그매보이는

천안문 광장 앞에 당당히 선 하이힐 신은 쪽쪽 곧은 다리들이 인상적이었다.


거칠게나마 한바퀴 돌아보고 나오니 훌쩍 지나 있는 시간, 소화하기 버거울 정도로 너무 많은

전시물들이 있다는 건 장점이자 단점이어서 본인 깜냥에 맞춰서 즐기기에 딱 좋은 기회일 듯 하다.



김포에서 김해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촬영한, 일종의 항공사진이랄까. 어젯밤에 중부지방에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가 내렸다더니 제법 가벼운 느낌으로 쳐내어진 구름들이 하얗게 깔려선

하늘을 가르고 있었다.

조그마한 비행기가 굉음을 내며 분명한 속도감으로 움직이고 있었지만, 구름들은 더러

비행기보다 빠른 속도로 뒤로 물러나기도 하고 혹은 딱 붙어서는 전혀 움직임없이 비행기와

함께 흘러가는 듯 하기도 했다. 비행기 탈 때마다 잠시 구경하다가 이내 창문을 내리고

잠을 청하거나 영화를 보곤 했었는데, 작정하고 카메라를 들이대니 지루할 틈 없이 뭉개지고

다시 뭉쳐지고 또다시 뭉개지는 그 모양새와 디테일한 보슬보슬함에 눈을 뗄 수가 없다.

터키의 파묵칼레, 온통 하얀 석회석으로 이루어져 반짝거리는 새하얀 산이었던 그곳에

다시 오른 느낌이었다. 비행기 문을 열고 저위로 한걸음 내딛으면 딱딱한 바닥이 감각될 듯한.

맨발로 그 하얀 석회석과 미끈거리는 물을 가르며 걸었던 기억이 문득 발에 돌아왔지만,

아니면 북극이나 남극에 둥둥 떠다닐 커다란 빙하에 오른 듯 차가운 느낌일지도 모르겠다.

 

이곳에도 제법 날카롭고 높직한 산맥이 내달리는가 하면, 평야가 넓게 펼쳐지기도 하고,

새하얀 대지 아래를 적시며 잿빛 강이 흐르기도 했다. 예전에 봤던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업'이 떠올랐다. 색색의 풍선들을 매달고 하늘을 나는 집, Adventure is up there라고 했지만

실은 Adventure란 게 어디에나 있음을 이야기하던, 그리고 인생을 순식간에 흘려보내는

압도적인 오프닝이 있었던 멋진 애니메이션. 풍선들 대신 비행기를 탔지만, 그림으로

접했던 그네들의 설렘과 열광, 흥분을 왠지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부산에 거의 도착할 무렵, 지상이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했고 불쑥 굽어진 어떤 강이

온통 황토빛으로 흐르고 있는 게 눈에 띄었다. 탁하고, 무겁고, 혹시나 4대강 삽질때문은

아닌지 마음이 무거워졌다. 하늘에 떠있는 구름이 워낙 새하얗고 가볍고 장난스러워서

상대적으로 더욱 그렇게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그 옛날 하늘빛처럼, 조율 한번 해줘야 하지 않으려나 싶기도 하고.





주말이면 아키하바라의 넓은 대로는 차 대신 코스프레 걸들로 가득 찬다고 그랬었다.

가이드북에 딱 한 줄, 그렇게 나온 정보만 믿었던 게 실수였던 거다. 코스프레걸들을

보겠다는 일념으로 주말에 맞춰 당도했던 아키하바라는 전혀 예상과 다른 곳이었다.


* 알고 보니 코스프레는 하라주쿠에서 주로 볼 수 있다고 한다. 하라주쿠 역 근처 다리 옆이

본산이라던가, 아키하바라는 건물 내 실내에서 드문드문 볼 수 있는 정도라고.


코스프레걸들이 제각기 빼입고 온 의상과 제스처를 선보여야 할 넓은 대로 위엔 차들이

씽씽거리고 달리고 있었고, 대로변엔 온통 게임샵들 뿐. 플레이스테이션 같은 게임기를

직접 체험해보는 사람들이 있고, 줄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고, 흘낏흘낏

구경하며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고.

게임엔 별로 관심이 없으니 그대로 전부 스킵하고 지나자니 이제 망가샵들이 나타나기 시작.

코스프레걸들을 구경하는 대신 애니메이션 샵들을 구경하기로 맘을 정하고, 5-6층짜리

건물이 통째로 애니메이션 관련 상품을 파는 그런 건물들을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활용한 상품들이야 한국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거지만, 이런 식으로

캐릭터들의 코스튬을 파는 가게들은 신기했다. 유니폼이나 응원복 같은 걸 맞추는 옷가게나

수선집 같기도 하고, 다소 유치하다 싶을 정도로 빨강 파랑 원색의 의상들이 줄줄이 걸려있었다.

그 와중에 조금 비싸고 질이 좋아 보이는 옷은 이렇게 마네킹에 입힌 채 디피되어 있었고,

에메랄드색 가발도 가발이지만 머리뒤로 깍지낀 두손의 포즈는 또 뭔가 싶고. 그래도 저런

옷은 옷걸이에 빼곡하게 걸려있는 다른 것들과는 달리 인간이 입을 수 있겠다 싶은 느낌.

재질도 그렇고 모양새도 그렇고.

샵마다 조금씩 퀄리티나 분위기가 달랐는데, 내 취향은 (굳이 따지자면) 이런 쪽이랄까.

원색의 빤짝거리는 나이롱 재질의 옷들 말고, 단정하면서도 신선한 느낌의...ㅋㅋ

굳이 치마가 잔뜩 짧을 필요도 없지 싶은 건, 역시 에반겔리온의 세례를 받았기 때문인지도.

여전히 에반겔리온의 캐릭터들이 살아있구나 싶어서 기쁘기도 하고, 그 이후 이만한 작품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거지 싶어서 아쉽기도 하고.

그러다 발견한 재미난 상품 하나. '원피스'의 캐릭터들이 제법 에로틱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저 물건의 용도는 바로 마우스 패드였던 거다. 이미 만화에서부터 풍만하게 그려졌던 그녀들의

가슴을 팔목받침으로 써서 손목의 피로도 줄이고 터널증후군도 방지하겠다는 그 갸륵하고도

참신한 발상이라니. 그 유쾌한 용도를 확인하는 순간 빵 터지고 말았다.

그리고 슬쩍 올려보는 '공기인형' 상품. 배두나가 주연했던 영화 '공기인형'에서 첨부터

끝까지 등장했던 녀석들이 이런 실리콘 재질의 물컹이는 것들이었던 거다. 푸시시식, 하며

바람 빠지는 장면과 그 때의 배두나의 눈빛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영화.

[공기인형] 짤그랑대는 기네스 병맥주, 사람의 마음이 그렇다.

그 밖의 건담이니 뭐니 캐릭터가 반영된 여러 성인용품들도 한쪽에서 팔고 있었고, 그것들의

모양새라거나 특징들이 어찌나 변화무쌍하던지 자꾸 눈이 가더라는.

그 밖의 여러 기기묘묘한 것들이 잔뜩 있었지만 차마 사진으로 담을 수는 없어서 그저 두눈으로

마음으로 곱게 담아두고, 잠시 바람쐬러 건물 밖으로 나와 또다시 옆 건물로.

아마 사무실에 저런 넥타이를 하고 가면 당장 출근길에서부터 쏟아지는 눈화살에 맞아

죽어버리지 않을까. 쟤는 뭘까, 하는 의구심과 경계심을 가득 품은 눈화살들.

귀여운 물건들도 많아서, 저런 다양한 이모티콘이 그려진 컵이라거나, USB 포트에 꽂으면

쉼없이 자전거 페달을 젖는 강아지라거나, 질릴 줄 모르고 돌아보게 되는 마력이 있던 곳.

캐릭터를 활용한 음식도 한가득이었다. 이름하야 '메이드 쿠키'. 메이드 복장을 한 꼬마아가씨가

귀여운 저 포장 때문이라도 한번 더 눈이 가게 되는.

웃기면서도 다소 의미심장한, 나이키 로고를 패러디한 NEET 로고. No Job, No Guts.

Just Don't do it이란 절묘한 말장난이 일본의 심각한 청년실업과 고용불안을 시사하는 듯.

그리고, 무엇보다도 맘에 들었던 건, 심지어 저 가슴을 활용한 마우스 패드보다도 훨씬 맘에

들었던 건 역시 미야자키 하야오의 캐릭터상품들. 지브리 스튜디오 샵에서도 못 봤던 것 같은

캐릭터상품들이 많이 있었다.

아...이 녀석들을 하나씩 수집하는 건 어떨까, 싶다가도 저 만만치 않은 금액에 깜놀해서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하야오의 아이들.

그리고 마치 우리나라 모든 관광지에서 똑같은 등긁개니 곰방대니 옥돌이니 따위 파는 것처럼,

도쿄의 어느 관광지에서고 팔고 있던 녀석. 복던지는 고양이 스몰사이즈가 우르르.

건물 안에 들어가 샵들을 구경하는 데도 워낙 재미가 쏠쏠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러저러한 캐릭터상품들도 구경하고, 일본냄새가 물씬한 아이디어상품들도 보고,

그러다가 밝은 햇살 속으로 나오면 또 드문드문 메이드복을 입은 아가씨들이 이런

메이드샵 광고지도 나눠주고. 만화캐릭터의 뽀얗고 맑은 피부, 커다랗고 그렁그렁한

눈망울, 여릿한 허리와 가늘고 기다란 다리 따위와는 전혀 거리가 먼 그녀들이

우르르 찍혀 있는 광고지를 요모조모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던 일본의 추억 중 하나.



1. 아이유의 뒷목잡기, 옷벗어던지기의 구분동작.


초당 7매, 말이 그렇지 사실 눈깜짝할 일초의 시간 사이 일곱번이나 사진이 찍힌다는 건

웬만한 DSLR로는 꿈꾸기 어려운 속도인 거다. 반사거울이 계속 찰칵찰칵, 열렸다 닫혀야

하는 DSLR의 구조 때문일 텐데, 그럴 필요가 없어진 덕분에 소니a33의 경우 초당 7매,

소니a55의 경우는 초당 10매까지 연사가 가능하다고 한다. 이 정도면 애니메이션이

움직이듯 사진들을 차르르 넘겨보면서 부드러운 움직임도 만들어낼 수준 아닐까.


그래서 시험해봤다. 아이유가 가장 귀여운 순간이 언제인지, 울 아이유의 '좋은날'이 가장

빛나는 순간이 언제인지 묻는다면 아마 다들 이 순간을 꼽지 않을까? "아이쿠, 하나 둘"

울 아이유가 뒷목잡는 순간, 아무리 뮤직비디오를 되풀이 보아도 늘 아쉽기만 하던 그 

찰나의 기적같은 순간을 초당 7매의 연사로 깨알같이 새겨두고 싶었다.
 
아앙 아이융~* 뒷목 잡을 때 너의 손동작은 이랬던 것이었던 것이구나. 가슴 앞에 다소곳이 모은

두 손으로 슬쩍 쏟아져내린 긴 생머리칼을 넘기듯 올렸다가, 은근히 뒷목으로 향하는 오른손.

고음으로 내달리던 어느 한 지점에서 '아이쿠♡'하며 완연히 오른쪽으로 기울어지는 상체,

그리고 조금씩 찌푸려진 인상마저 한호흡 한호흡 쪼개서 볼 수 있었다. 아아~♡


조금 더 욕심을 내보기로 했다. 옷 갈아입는 장면, 아아, 나풀대며 던져지는 옷가지이고파.

울 아이유의 손끝에서 미끄러진 옷들이 포물선을 그리며 폭신하고 부드러워보이는, 게다가

향기로워보이는 침대를 지나 떨어지고 있었다. 옷이 바닥에 떨어질 때까지 예닐곱번이라도

찍어낼 듯한 기세좋은 카메라로 찍힌 사진이라면 그녀의 향기조차 담길 것만 같다.

흠흠, 초당 7매의 경이로운 연사 성능을 꼭 이런 식으로 시험해 봐야 했는지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은 없지만, 그렇지만 다들 궁금하지 않았을까. 사실 난 별로 아이유에도 관심없고

벗어던져지는 옷가지에도 관심없으며 '아이쿠'의 저 귀..저 액션에도 별 관심없다는. 흥.




2. 가야할 길과 지나온 길을 한 장에 담다.


사실 인물보다는 풍경 사진을 주로 찍는지라, 소니a33의 기능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것 중

하나는 바로 파노라마 기능이었다. 어느 정도냐 하면, 사진에서 보이는 왼쪽길과 오른쪽길이

사실은 같은 길이라고 하면 이해가 쉬울까. 눈덮인 산길 교차로에서 찍은 사진이니까 맨 왼쪽

길과 맨 오른쪽 길은 사실 이어져 있는 한길, 가야할 길과 지나온 길이 한 장에 찍힌 셈이다.

그저 셔터만 누르고 손목만 돌려주면, 알아서 자동으로 파노라마 사진을 만들어주는 거다.

파노라마로 찍히는 사진들은 확실히 보통 사이즈의 사진으로는 담기지 않는 풍경이 전부

담기는 데다가, 상자처럼 접혀있는 공간을 구비구비 평면으로 펼쳐내는 게 재미있다.


일정한 속도로 부드럽게 돌리다보면 이렇게, 180도가 넘는 회전반경이 전부 찍히는 정도니까

가히 괴물같은 성능이다. 파노라마는 '표준 사이즈'와 '와이드 사이즈'로 나뉘고, 왼쪽이던

오른쪽이던, 위로던 아래로던 자유로이 세팅해서 움직일 수 있다.


이렇게 사진 한 장으로는 고작 발끝에서 몇 발짝 앞의 풍경까지밖에 담지 못하고, 멀리 봐야

기껏 나무 끝에서 그치는 풍경이지만 파노라마 기능으로 쏴주면 이런 풍경이 담기는 거다.


워낙 재미있어서 몇 번이나 시도했던 파노라마 사진들, 여차하면 사진 위에서 나무가 거꾸로

꼽혀 있는 모습도 찍을 수 있겠다 싶었는데 좀 어정쩡하지만 그래도 제법 성공했다. 그외에도

다양한 사이즈로, 다양한 방향으로 시도해본 사진들은 확실히 일반적인 사이즈의 사진과는

느낌이 다르다.





3. 빛과 어둠, 숙명적인 싸움 끝에 찾아온 화해무드.


마지막으로 약간 편법이다, 싶을 정도로 사진을 쉽게 찍을 수 있게 해주던 기능 하나만 더.

소나무 사진으로 유명한 배병우 작가가 사진은 '빛, 공기, 바람' 이렇게 세 가지로 이뤄진다

이야기했을 만큼 사진에서 빛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결정적인 거 같다. (나도 잘 모르지만.)



소니a33은 빛과 그림자가 격렬하게 뒤섞여있어 좀처럼 어느 한쪽의 편을 들어주고 다른 쪽을

무시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몇 가지 특출한 기능을 발휘하는 거다. DRO와 HDR. 알아서 적당한

노출로 음영을 조율해주는 게 DRO라면, 한번 셔터로 세장이 내리 찍힌 후에 자연스레 합성되어

최선의 사진을 내놓는 기능이 HDR이라 거칠게나마 요약할 수 있을 거 같다.


그건 꼭 노골적으로 불빛이 일렁이는 깜깜한 배경에서만 유용한 건 아니지 싶다. 좀더

여러 상황에서 다뤄봐야 알겠지만, 당장 이런 두 장의 사진만 비교해도 DRO기능이

발휘된 오른쪽 사진이 좀더 화면 구석구석이 섬세하고 부드럽게 표현된 게 보이니까.

아무래도 파노라마 기능이 참 재미있다. 이런저런 식으로 써먹어보고 싶기도 하고, 다른 식으로는

절대 만들어내지 못할 풍경을 만들어내는 거 같다. 게다가 여태 이렇게 자동으로 파노라마 사진을

만들어내는 카메라는 없었던 거 같은데, 그저 셔터만 누르고 카메라만 돌려주면 알아서 합성해

주는 거니까 여기저기서 시도해 보게 된다.





* 이 글은 소니 a33 평가단 활동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새삼' 블로그 소개와 미야자키 하야오 팬레터. 에서 미리 올렸었던 글, 아무런 가감도 되지 않은

그대로 책 끄트머리에 소개되었다. 여기저기에 넘겼던 글들이 약간씩 손질되었던 경험을 떠올려

보자면 정말 가장 고마운 부분이기도 하다. 사진이 전부 담기진 않았지만 그래도 뭐. 무엇보다

저 반지 사진이 그대로 실렸다는 게 꽤나 반가웠다는.

다음 장에는 내가 도쿄의 '에도도쿄건축공원'에서 찍고 이 블로그에 올렸던 사진들이 컬러로

보기 좋게 편집되어 담겨 있었다. 전부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떠올리게 하는 배경들이다. 다시금 올 여름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듯.



내 사진들과 블로그 소개글이 담긴 '예술분야' 신간은 "애니메이션 사랑을 탐하다"라는 책이다.

대학교수님이신 저자는 우리나라에서 애니메이션을 유치한 아이들용으로만 여기는 현실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우선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에 응축되어 있는 의미와 상징들을 말글로 쉽게

풀어내고자 한다. 그의 애니메이션 한 편으로 이렇게 풍부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잔뜩 뽑아낼

수 있다는 건 사실 나 역시 크게 공감한다. 그의 작품 하나를 리뷰하기란, 왠만한 책이나 영화를

리뷰하기보다 훨씬 어렵던 거다. 숨어있는 의미도 많고, 이리저리 읽힐 수 있는 결도 많고.


아마 애니메이션은 그 안의 공간을 세세한 소품 하나하나까지 전부 창조해 내야 하기 때문 아닐까.

그런 데다가 하야오가 만들어 내는 그 같은 듯 다른 세계의 정밀함과 '레알'함이 더해지니 더더욱.

이 책만 해도 작품 네 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모노노케 히메', '하울의 움직이는 성', 그리고

'추억은 방울방울', 이 네 편으로 책 한권이 만들어졌다. 사실 개별 작품 하나하나로도 책 한 권의

이야기는 나올 수 있는 이미지와 스토리가 꾹꾹 눌러담긴 것들일 텐데, 저자가 욕심을 버린 게다.

그리고 마지막 부록으로 담겨 있는 '이미지를 제공해준 블로그'. 거기에 내 블로그 소개글과

컬러판 사진이 담겨있다. (읽고 싶으신 분은 가까운 서점을 찾으시길..현재 '예술'분야 신간부문에서

괄목할 판매성적을 보이며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배치되었다던데.)

내 이미지들이 들어가 있는 1장,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다룬 챕터의 제목은 '그리움'.

저자는 하야오의 작품 네 편에서 그리움, 두려움, 입맞춤, 결혼이라는 네 가지 열쇳말을

잡아내어 강의하듯 이야기를 풀어간다. 실제로 대학교 교양수업 강의자료로 쓰일 예정인데

이런 식으로 애니메이션을 인문학적 소양을 갖고 분석하고 이야기를 이리저리 진지하게

들춰보는 책은 처음인 거 같다. 아직은 몇 페이지 들춰본 정도지만, 술술 읽히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다는, 개론서와 본격 서적 사이의 균형을 잘 잡고 있는 듯.



뭐, 대학교 교양수업에서 쓰인다니 책이 많이 많이 팔리지 않을까 기대되지만 내게 좋은 건

딱히 없고. 다만 그 학생분들께옵서 이 미천한 블로그를 몸소 방문하시어 이리저리 구경하다

가면 좋을 텐데. 난 사진을 발로 찍는 것 같다, 라는 불만에 빠져있던 요새 굉장히 기분좋은

일이었다. 본문에 드문드문 들어가 있는 사진들에 ⓒytzsche.tistory.com 이란 문구가 전부

붙어있는 데다가 은근히 많이 쓰여서 좋았지만 굳이 아쉬운 걸 잡아내라면, 그 사진들이

칼라가 아니라 흑백이어서 조금 아쉬웠다는 정도. 내 평생의 소원 중의 하나인 내 이름이 박힌,

내가 쓴 책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 사진들이 들어가 있고 내 글이 두 페이지에 빼곡히 실려있어

사적인 애정이 듬뿍듬뿍 담기는 책이다.




블로그를 하다 보니 생각지도 못한 기회가 열리는 때가 있다.

올해 여름 떠났던 도쿄 여행 중에 '에도도쿄건축공원'에 대한 내 포스팅을 보고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한 책을

집필중이신 저자분이 사진을 부탁해오신 것도 그런 사례 중 하나..

* 참고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그 배경이 모여있는 에도도쿄건축공원

기꺼이 수락하며 사진을 닥닥 긁어 보내드리고 나니 블로그도 한 페이지에 걸쳐 소개해준다하셔서, 끄적끄적.


끄적끄적대놓은 글 모아둘 곳이란 역시 이곳밖에 없어서, ctrl+c, ctrl+v.


뭐, 실제로 출간된 책에 얼마나 어떻게 반영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괜한 설레발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써놓은 게 새삼스레 내 블로그를 소개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는데다가, 미야자키 하야오를 내가 왜

좋아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이 있는지라 일종의 팬레터라 치기로 한다.



“다른異 색깔彩을 지켜낼 자유”

제가 2008년 여름쯤부터 차곡차곡 특정 시간과 공간에 얽힌 글과 사진들을 쟁여 모으고 있는 작은 가상 공간(ytzsche.tistory.com)에 붙여놓은 이름이니까 일종의 ‘책제목’이라 해도 될 듯 합니다. 대학에 들어와서부터 줄곧 쓰다가 급기야 군대에 있을 때 전투모에도 단단히 오바로크쳤던 이채(異彩, ytzsche)라는 필명을 ‘여행 블로그’에 어울리게 살리려다 보니 조금 꿰어 맞춘 감이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가끔씩 새삼스런 눈으로 읽어보며 몸과 맘을 돌이켜보게 하는 효과는 있는 듯 하니 다행이랄까요. 여행은, 자꾸만 일상 속으로 녹아들어가 잔뜩 늘어지고 진부해지고 둥글둥글 남들과 닮아만 가게 되는 ‘어른병’을 멀리하기 위한 하나의 치유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 사진 속 ‘절대반지’를 구하러 이집트 룩소로 떠났던 이야기에서부터 서울 이태원 골목, 심지어 소소한 집 앞 골목에서의 이야기로 차츰 제 ‘여행기’를 제 ‘삶’의 이야기로 넓혀가고 싶습니다. 모든 게 낯설고 설레는 여행자의 눈과 마음을 지키면서, 그렇게 다른 색깔 異彩를 지켜내면서요.






‘센’의 세계와 ‘치히로’의 세계가 섞이는 곳

에도도쿄건축공원은 박물관 속 유물처럼 사람과 유리된 채 차갑게 식어버린 ‘민속촌’은 아니란 느낌이었습니다. 아마도 가마지기 영감의 손때가 반질반질 묻은 문구점의 빼곡한 서랍들하며, 녹은 슬었지만 금세라도 삐걱대며 달릴 듯 거리에 서있는 자전거 달구지, 치히로의 부모가 아니라 누구였대도 자리에 앉아 술을 한잔 청할 듯 사람의 온기가 풀풀 나던 주점까지. 하야오가 작품을 구상하며 이곳으로 자주 산책을 나왔던 것도 이곳의 그 묘한 분위기, 1900년대 어느 어간의 도쿄와 2010년의 도쿄가 마구 뒤섞인 채 만들어내는 새로운 느낌과 묘한 에너지에 자극받았던 건 아니었을까요. 웃는 얼굴이 아기같던 안내원 할아버지가 건넸던 바람개비를 공원 돌아다니는 내내 들고 다녔던 것도, 그리고 어느 나무엔가 바람개비를 꼽아두며 주렁주렁 열매맺길 기원했던 것도 모두 그곳이 ‘센’의 세계와 ‘치히로’의 세계가 섞여있는 마법같은 공간이라고 느꼈기 때문일 겁니다.



 

놓칠 수 없는 여행,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계

사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은 늘 그런 식입니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붕 떠서는 어딘가 낯익은 듯 하면서도 생전 처음 보는 시공간에 내려앉아 등장인물들과 어깨를 맞대게 만드는 마법인 거죠. 쌍발 수상비행기가 기관총을 쏘는 시기의 유럽인가 싶다가도 뭔가 낯설어지고, 근대 개화기 즈음의 일본인가 싶다가도 또 뭔가 낯설게 이지러져 있고. 어쩌면 그의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여행’을 하는 것처럼 느끼기도 합니다. 그가 열어주는 소리에 쫑긋 귀를 기울이고, 그가 보여주는 세상에 눈을 떼지 못하며, 그가 상상해낸 이야기에 가슴 두근거리며 잔뜩 설레고 마니까요. 모든 게 낯설고, 흥미롭고, 끝내는 감탄하게 만들어 모든 사람을 ‘여행자’로 변신시키는 그의 재주는 역시 대단하다고 할 수 밖에요. 그가 상상해낸 세계로의 여행은, 그래서 여행자로 살기를 꿈꾸는 제게는 언제든 가슴 설레는 일입니다.

 

* 사실은 사진 한 장 더 넣고 싶던 게 있었는데, 이 것들이 전부 반영될지 아닐지도 알 수 없는 상황에 괜히

책에 누를 끼치는 건 아닐까 싶어 포기했던 게 있다. 누군가; 해맑게 바람개비를 들고 놀이터의 목마를 탄 채

흔들거리는 사진 하나. 하야오 영감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마루 밑 아리에티. 저번주 도쿄 여행에서 지브리 스튜디오를 들렀을 때, 아리에티 캐릭터 상품을 샀어야 했다고

땅을 치며 후회하고 말았다. 이 단호하고 살짝 딱딱해보이는 토끼머리(?!) 소녀에게, 그리고 그녀가 사는 마루

밑장에 이런 이야기와 감정들이 소용돌이치고 있었을 줄은 몰랐다.


게다가 10센티미터 '소인'의 오감으로 감지하는 인간의 세계를 그토록 치밀하게 묘사해내고 활용할 수 있다니,

토끼머리라고 생각했던 그게 야무지게 머리를 묶은 빨래집게라는 상상력에선 정말 영화관 안의 모두가 빵 터지고

말았다. 한층 세련된 OST들과 잔뜩 신경쓴 게 분명한 사운드의 힘을 빌어 그려내는 하야오의 또다른 세계.




이런 거 눈여겨 보면 영화가 더 재미있지 않을까 싶은 몇가지 영화의 단서들을 주워섬겨본다. 당연히 이는

전적으로 내 기준..;;


# 인형의 집.

일반적으로 '인형의 집'이라 하면 인간이 인형을 위해, 그렇지만 사실은 자신의 만족을 위해 제공하는 편의

시설인 셈이다. 그렇지만 여기에 '인형의 집'이라 불리지만 실은 소인들을 위해 수십년전부터 준비되었던

정교하고 아름다운 집이 있다. 생존조차 쉽지 않은 소인들, 아리에티와 그녀의 가족에게 '인형의 집'은

하나의 이상향과도 같은 공간. 그들이 그 집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하는지 그 미묘한 변화를 읽어내는 건

꽤나 즐거웠다.


# 각설탕.

인간으로부터 '몰래 빌리려던' 각설탕이 노골적으로 주어지는 순간, 그리고 다시금 일련의 모험을 거쳐

인간에게서 아리에티에게 건네지는 순간의 어마어마한 차이.


# 할머니.

일반인. 보통 사람. 방학 때마다 곤충 채집을 하고, 딱딱한 껍데기를 뚫고 알코올을 주사해두곤 했던 어린 나.

그녀의 흐물흐물한 잇몸이 느껴지는 웃음이 굉장히 불편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일종의 공범자 의식, 아니

차라리 나라면 방송국부터 불렀을 텐데. 아무래도 할머니가 대책없긴 하지만 순박한 것도 어쩔 수 없구나.

하야오가 좋은 이유 중 하나는, 늙은이라고 늘 현명하거나 진실을 알고 있다는 따위 안전한 '상식'에 기대지

않는다는 점.



# 배경지식 (지브리 스튜디오 보러가기 전 어디선가 주워들은..)

하야오가 지브리 스튜디오를 만든 후 '월령공주'를 만들지 송충이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를 만들지 두 개의

작품을 두고 고심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건너가는 과정만으로 재미있는 영화 하나가

되리라던 하야오의 믿음은 확고했지만, 우선 액션이 좀더 들어간 '월령공주'부터 만들자는 주위의 권유에

월령공주가 만들어졌단다. 아마 그 때의 그 송충이 주인공의 영화를 좀더 의인화하여 다듬은 게 이 영화

아닐까.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건너가는, 그 조그만 발들을 살살살 움직여 시속 10센티쯤으로.


# '매트릭스', 혹은 '인셉션'식의 질문 하나.

마루 밑의 아리에타가 살던 일상은 그녀의 집천장처럼 흔들림없이 단단했다. 단단했던 때가 있었다. 어느

한 시점에서 그녀의 일상은 잔뜩 헝클어지고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건너가야 하는 타이밍이 온다. 알고보니

그녀의 집천장은 얄포름한 널빤지 한장, 몰랐던 건 아니겠지만 어느새 잊고 있었거나 애써 지우고 있었거나.

그렇다고 마루 위의 인간 쇼우가 사는 일상이라고 단단치도 않다. 심장수술을 모레로 남겨둔, 남은 수명을

손가락으로 헤아리는 인간의 세계는 일찍이 무너져내리고 있었던 것.


마루 위냐 아래냐, 그게 문제가 아니다. 하야오, 지브리 스튜디오가 일관되게 말하는 건 하나다.

살아라. 살아라.








이건, 요새 봤던 왠만한 영화 중에 최고다.

Wall-E에 이어 픽사가 또다시 잊지 못할 영화를 만든 것 같다. 업(UP) 말이다.

메가박스 영화관 한가운데에 전시된 풍선이 주렁주렁 매달린 집을 보았을 때도, 다른 영화를 보기 전 예고편으로

할아버지와 뚱뚱한 꼬맹이가 나왔을 때도 이 영화가 이렇게까지 감동적이고 흡인력있으리라곤 생각지 못했었다.

애니메이션이 더이상 아이들만을 위한 것이 아님은 이미 상식이 되어버렸지만, 이제 굳이 애니메이션이라는 표현

방식을 지적하며 다른 실사 영화와는 다른 기준으로 그 예술성이나 완성도를 평가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이건, 요새 봤던 왠만한 영화 중에 최고다. 이야기를 이끄는 호흡의 완급에 있어서나 이야기를 풀어내는 솜씨에

있어서나, 어느 모로 보나 정말 잘 만들어진 영화인 것 같다. 감동을 마구 먹어버렸다.

스포일러의 요소를 최대한 피하겠지만, 사실 이건 영화를 직접 봐야 느낄 수 있으니 별로 스포일링되지 않을 듯.


영화는 이제 시작인데 벌써 눈물이 한번 고여버렸다.

할아버지가 거대한 풍선다발에 집을 매달고 하늘로 날아오르기까지의 삶, 그러니까 그의 생애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초반의 장면들이란 건 뭐랄까, 누군가의 인생에 순식간에 감정이입하면서 문득 일흔세살의 노인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흔치 않은 경험을 하게 해준다. 어느순간, 내가 그 '칼' 할아버지가 되어 있다. 그의 백발이

이전엔 검은 머리였음을 알고, 그의 완고한 표정과 눈매가 이전에는 훨씬 부드러웠고 누군가에겐 애정이 가득했음을

알고 있다. 비행선을 동경하며 늘 모험을 꿈꾸던 아이가 어른이 되고 홀로 남게 된 그런 상황, 영화는 그제서야

시작이다. 영화는 이제 시작인데 벌써 눈물이 한번 고여버렸다. 이런 영화는 본 적이 없다.

"Adventure is up there"?

스토리를 구구절절 이야기할 생각은 없으니 급마무리랄까. 할아버지가 집을 위로 띄울 생각을 하게 만드는 상황,

주위가 온통 재개발에 들어가 고층빌딩이 조그마한 집을 포위한 터였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집을 띄우고 남아메리카까지

날아가기로 한다. 비행선을 동경했던 할아버지 내외의 가슴에 새겨져있던 탐험가의 말, "Adventure is up there"는

늘 '칼' 할아버지에게 하늘을 쳐다보게 만들었댔다. 이야기가 끝낼 때쯤에야 바닥에 안착하는 집의 이미지가 보여주듯

모험이란 건 다소 들뜨고 불안정한 상태, 어딘가에 정착하지 않고 부유하는 상태에서 이뤄지는지도 모른다. 또한 그건,

모험을 하려면 약간은 바닥에서 거리를 두고, 원경에서 세상을 바라볼 필요가 있음을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Adventure is ubiquitous!

'유비쿼터스'란 단어가 한때의 트렌드였던 적이 있다. '어디에나 존재하는, 편재하는' 정도의 뜻을 가진 이 단어가

아마도 이 이야기와, '칼' 할아버지를 이끄는 키워드가 아닐까 싶다. 그렇게 '위(up)' 어딘가 기다릴 모험을 찾아 떠난

길이지만 실은 그의 삶 전부가 모험에 다름아니었음을 깨닫는다. 어느 특정 장소에 도착해야 비로소 모험이 시작되는 게

아니라, 그냥 누군가를 만나고 함께 하며 이야기거리를 만들어내는 것 자체가 모험이었던 거다. 흔히 여행이란 방식으로
 
낯선 곳에 떨어지고 나서야 하루하루의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를 깨닫곤 하듯이 말이다.


'칼' 할아버지는 과거의 일상이 모두 소중한 모험이었음을 깨닫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지금의 순간을 적극적으로

'탐험'하기 시작한다. 그의 집이 비록 과거의 추억을 완성하기 위해, 과거에 약속한 모험을 이루기 위해 위로 떠오르긴

했지만, 수천개의 풍선은 이제 지금의 순간을 위해, 지금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작동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할아버지는

으레 삶의 전성기를 지났다 여겨지는 노인들이 그러듯 어떤 삶의 순간에 멈춰버리지 않고, 다시금 계속해서 살아간다.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기억들을 만들며.



p.s. 다시 생각해보면 애니메이션이어서 유리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애니메이션이라서 가능한 건지도 모르겠다. 장면 하나하나에 스토리의 흐름에 필요한 의미를 부여하고, 움직임
 
하나, 소품 하나까지 의도에 맞게 정밀하게 세공해낼 수 있는 게 애니메이션이니까. 중간중간 화면 전체에 의미가 꽉 차

있다고 느껴지는 장면들이 더러 있었다. 게다가 어떤 건물의 창문밖을 슥 지날때 풍선을 투과해서 집안 내부에 비쳤던 

알록달록한 조명도 그렇고, 집에 묶여 바람에 나부끼는 색색의 풍선들이 보여주는 음악같은 율동감과 반짝거리는

아름다움이라니. 물론 이야기 초반에 나오는 압축적이고도 압도적인 삶의 묘사는 말할 것도 없고.


또 하나 만화라서 되려 유리했던 건 아닐까 싶기도 한 부분이 있다면 할아버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 육체적으로

쭈글쭈글하여 '아름답지' 않으며 뭔가 모험이나 역동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여겨져 극을 이끄는 주인공으로는 잘

캐스팅되지 않는 그런 캐릭터를 무리없이, 감정이입이 쉽게 구현할 수 있었던 건 역시 애니메이션이 갖는 '미화'의 힘

때문은 아닐까. '칼' 할아버지는 사람이 살면서 자연스레 외면에 쌓게 되는 온갖 흔적들로부터 자유로운 건 사실이니까.

어떤 배우가, 어떤 사람이 '칼' 할아버지를 이만큼 연기해낼 수 있을지 잘 상상이 안 간다. 만화라서 유리한 건 역시

역사성 없는 할아버지 캐릭터랄까. 삶의 구린내가 전혀 풍기지 않는 동화(만화) 속의 할아버지여서, 그의 삶에 더욱

쉽게 감정이입하고 그와 함께 울고 웃었던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살풋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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