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들에 우선 놀랬다. 메릴 스트립, 이렇게 사랑스럽고 귀여운, 심지어 때로는 섹시한 중장년의 여성을 연기해 낼
 
수도 있다니 정말 대단한 배우. 그리고 에이미 아담스, 어쩌다 두 번이나 보게 되었던 '마법에 걸린 사랑(Enchanted
 
love)'의 지젤이었단 걸 끝까지 몰랐다. 사랑스런 공주님이셨다.


두 명의 캐릭터, '줄리'와 '줄리아'가 모두 그런 사람들이다. 뭐랄까 약간의 '공주' 캐릭터. 현실 감각이라 할 만한

건 평균에 많이 못 미치면서도 불쑥 열정에 휩싸여서는 두손 그러쥐고 눈 반짝거리며 꿈을 이야기하는.

나이가 들어서도 꿈많고 순수하지만, 그만큼 여리고 철없거나 순진해보인다는 이야기를 듣기 딱 좋은. 줄리아의
 
다소 과장스럽고 생각없게 들릴 수 있는 말투라거나 줄리의 블로그에 대한 순진한 몰입과 기대라거나.


그렇지만 그녀들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요리 앞에서, 정말 하고 싶은 것 앞에서 그녀들은 불쑥 자라난

모습을 보인다. 8년에 걸쳐 요리책을 가다듬는 모습, 1년에 걸쳐 수백개의 레시피를 전부 시도하는 모습,

그 와중에 생겨난 문제들을 직면하고 돌파하는 모습..까지. 자신이 벌여놓은 일의 애초 부여한 의미를

잊지 않고, 그에 대한 책임을 기꺼이 지겠다는 모습은 그들에게 혀를 차던 주변 사람들을 머쓱하게 만들고,

심지어 그들의 열정에 감화되어 박수를 보내게 할 정도다.


사람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 고 말하지만 어쩌면 그 스위치를 못 찾고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 유치하고

무책임한 아이에서 (꼰대가 아닌) 어른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단순히 시간이 흐르길 바라거나 무턱대고

철 좀 들자며 스스로를 타박할 일이 아니라 그 스위치부터 찾아야 할 일인지도 모르겠다. 요리를 통해

성장하는 두 여자의 이야기가 서로 대비되면서 내게 묻는 것 같다. 당신의 스위치는 무엇인가.


그저 '요리를 통한 성장드라마'라고 하기에는 감출 수 없는 미덕이 참 많은 영화다. 그 중에서 무엇보다도

줄리와 줄리아가 현실 세계에서 끝내 만나거나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는 거, 중요한 포인트라

생각한다. 줄리가 요리의 '스위치'를 켜서 어른스러워지기 위해 필요했던 건, 전설의 쉐프 따위 과거의

인물이 아니라 본인을 계속 지켜봐주고 격려해줄 수 있는 '동수'. 그런 점에서 영화에선 두 명의 줄리아가

나온 셈이다. 그밖에 무책임한 해피 엔딩을 지양했다거나 자연스럽게 겹쳐지는 두 여인의 스토리가

인상적이었다거나, 무엇보다 둘의 연기가 좋았다는 정도. 2시간의 러닝 타임이 군더더기없이 깔끔하게 딱

떨어지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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