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수(최민식)에게 이우진(유지태)이 말한다.

"우리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니들도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오대수가 찾아간 최면술사는 그의 자아를 양분하여 그사실을 아는 자아(악한 자신)를 제거해 버리는 시술을

해 놓지만, 성공과 실패를 장담할 수 없다는 여운을 남긴 것. 문득 정신을 차린 대수 위로 눈이 한없이 쏟아지고..

미도(강혜정)가 대수에게 와서 대사. "아저씨..사랑해요.."


대수의 손이 움찔 떨고는 미도의 등저리를 감싸안으며..그 우는듯 웃는듯한, 처연하면서도 결연한 표정이 클로접.

최면이 성공한 걸까. 그래서 그저 그 인상적인 표정은 '복수심밖에 남지 않았다던' 황량한 과거를 매듭짓고

새로운 사람, 사랑을 얻은 감개무량함인 걸까. 혹 최면이 실패로 돌아간 게 아닌지. 이미 누차 대수가 인위적인

조작을 깨부수고 온전히 자각해나갔듯이 말이지.


우진이 누이와의 일을 겪으며 그 현실을 자신이 소화해낼 만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강렬한 증오를 대수에게

투사하며 사건을 왜곡했던 것처럼..'문명화된' 인류의 성금기를 깬다는 일은 아마도 쉽게 묻어버리거나 긍정해

버릴만한 소사는 아닌 거다. 그걸 단지 시술자의 실력, 컨디션. 구상력이랄까, 그런 것에 우연처럼 맡긴 채

지워버릴 수 있단 건 너무 무책임하지 않나..세탁소에 빨래 맡기는 게 아니란 말이다.


해서..결국 최면에의 기댐은 현실을 좀 쉽게 돌파하려는 대수의 꼼수였던 게 아닐까..혹은 조금이라도 꿈인 양

위로받고 싶었던 대수의 painkiller같은 건 아니었을까. 현실이란 건, 그게 설사 사촌과 관계를 맺던 딸자식과

관계를 맺건 결국은 자신이 어떻게든 질겅이며 소화를 시켜나가야 하는 걸 테니까. 다만, 그 와중에 제멋대로

현실을 꾸깃꾸깃 소화하기 편하게 해석하다가 우진처럼 편법을 쓰지도 말 일. 무조건 타인에게 내처 전가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니.


그렇게 생각을 고쳐먹은 걸까. 미도라는 여자를 껴안음으로서 자신이 아프게 깨닫고 있는 그 '현실'을 인정하면서..

대수는 그렇게, 우는듯 웃는듯..처연하지만 결연한 표정을 지은게 아닐지.


사운드트랙이 참 맛깔스럽게 배치가 되었지 싶다. 효과적인 음향과 변주를 통한 분위기 일신. 2시간의 러닝타임을
 
팽팽히 유지하는 극적인 탄탄함과 설득력있는 반전들도 그렇거니와, 하드코어틱한 장면들이 극에의 몰입을

방해하지 않고 외려 받침이 되는 적절한 연기와 안배를 통해 잘 '버무려진 듯'. 멋진 영화였어.



(2003.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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