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감도 홈페이지(http://www.eros2009.co.kr/)엔 자유게시판이 있다. "당신은 어떤 사랑을 원하시나요?"라는 제목아래
간단한 메시지를 포스트잍틱한 비주얼로 남길 수 있게 되어있는데, 온통 욕이다. 트랜스포머2 개봉에 맞춰, 그리고 실은
'대한늬우스' 강제상영에 맞춰 9,000원으로 오른 영화값에 대한 분노, 노출신에 맞춰진 홍보만 믿고 살색그림 펑펑
터져나오는 걸 보고 싶었는데 낚였다는 분노, 혹은 (애국시민의) '한국영화'를 부끄럽게 만들었다는 분노까지.
그렇게 욕먹을 영화인지는 모르겠다. 실은, 꽤 괜찮은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다섯 가지 사랑이야기가 뚝뚝 끊어져 나온다. 김수로의 캐릭터가 겹치긴 하지만, 스토리는 각각 전혀 다른 측면의
사랑을 포착해낸다. 시니컬하게 말하자면 단물빠진 소재들, 다소간의 동성애 코드나 의외의 반전조차 어디선가
한번쯤 본 듯하여 그다지 강력하진 않았지만, 그건 어쩌면 주재료인 '사랑'의 맛과 향을 고스란히 살려내기 위해
일부러 한번쯤 위력을 줄여버린 게 아닐까 싶었다. 클린턴 식으로라면, "Stupid, it's love."
즉석복권과도 같은 기차 티켓을 매개로 벼락처럼 마주친 두 남녀의 감정이 각자의 경험치와 스킬에 따라 어떻게
번져나가고 기어코 그 목적한 바를 이루게 되는지, 그렇지만 그 과정이란 얼마나 복잡하고 쉽지 않은 내적인
꼼수와 갈등들을 지나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His Concern)는 첫 섹스를 하고 난 후 느닷없이 고개를 드는 낯섦과
막막함, 외로움을 보여준다. 또 그 다음 에피소드 '나 여기있어요'는 "사랑하던 사람이 죽었다"고 한줄 정리할 법한
이야기를 그들이 어떻게 서로 사랑했으며 어떤 때 가장 행복했는지, 그리고 남은 자의 눈물이 언제 흘려지고 언제
닦이는지..그렇게 잔뜩 응축된 화면과 스토리로 속삭인다. 알몸으로 있을 때 가장 섹시하지만, 또 알몸으로 안아줄
때 가장 행복하지만, 굳이 섹스는 없어도 된다. 섹스가 없어도 사랑이다.
이런 때라면, 확실히 육체적 '사랑'은 그다지 의미가 없거나 무언가 품격이 떨어지는 뭔가로 보인다. <채털리 부인의
사랑> 한대목을 빌자면, "이 어이없는 엉덩이의 율동, 초라하기 짝이 없는 축축하게 젖은 조그마한 페니스가 시들어
가는 바로 이것...결국 여기에 경멸감을 느낀 현대인은 옳은 것이다."라고 볼 법하단 이야기다.
그렇지만 사랑은 역시 자극적이고 치명적인 무엇이기도 하다. 상대의 정체가 무엇인지,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 채
무작정 페로몬 향내따라 내달리는 남자들이, 혹은 여자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33번째 남자'에서 나오듯 자극만을
좇다보면 어느새 피향기 가득한 식탁 위에 사지가 올라있을지도 모르지만..그럼에도 서른세번째, 서른네번째, 사냥감은
쉼없이 덤벼든다. 상대가 이성이던 동성이던 그것은 별반 다를 바 없다. '끝과 시작'에서 나온 엄정화와 김효진은
이룰 수 없는 대상에 대한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 때로 사랑일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스스로의 정상적인 생활
자체를 파멸로 몰고 가더라도, 그리고 사랑하는 이의 생활을 온통 갈아엎어버릴지라도, 그런 사랑도 있을 수 있다.
그런 섹스는 격렬하다. 끈이 동원될 수도 있고, 피를 볼지도 모른다. 좀더 중요하고 의미심장한 무언가가 된다.
어쩌면, 섹스는 그 자체로 사랑인가. 다시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빌자면, "이 세상에 남은 가장 좋은 것"인지도 모르고,
"당신 속에 들어갈 수 있으니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진리인지도 모른다. 물론 그건 그 번다하고 다소 용두사미로
보일지 모르는 행위로부터 "우아하고 힘찬 육체의 고요함"을 찾아낼 수 있어야 가능하겠지만. 당신을 사랑하니 당신 안에
들어가고, 또한 당신을 사랑하니 당신에게 열어준다는 메타포의 현현.
그리고 '순간을 믿어요'. 사실 이 다섯번째 에피소드는 좀 패착이 아닐까 싶은데, 10대 또래로 구성된 세 커플이 서로의
상대를 시험에 들게 한다는 다소 도발적인 스토리다. 아마 십대의 발랄함과 미성숙함이 전면에 나서지 않고 그보다
나이많은 이들의 '시험'이었다면, 그래서 일종의 스와핑으로 나타났다면 좀더 위태롭고 좀더 위험했을 게다. 감독은
거기까지는 (아마도) 차마 나가지 못하고 만다. 에피소드 다섯개의 배열이 결국 섹스와 사랑의 관계를 좀더 진지하게
묻고자 했던 의도를 품고 있었다면, 마지막 에피소드는 치열함이 조금 부족했고 도발성은 매우 부족했던 거 아닐까.
마지막 영화 크레딧이 올라가며 나오는 내레이션이 보다 분명히 이 영화의 의도를 전달한다.
아마도 그건 섹스와 사랑, 좀더 눈에 익은 편한 단어로는 육체와 정신, 그 중간의 황금비율에 대한 이야기.
내레이션으로 의도는 알겠는데, 답을 주지는 않았다. 나 역시 답은 모르겠다. 다만 영화제목의 권위를 빌자면, 역시
사랑은 오감을 모두 동원해야 하는 것...일까, 라는 정도?
* 사실 영화는 그렇게 야하지 않다. 그 흔한 가슴 한번 나오지도 않고, 부모님과 함께 봐도 별로 안 민망할 듯..
살색그림의 향연을 기대하고 보러 간다면 그닥 비추.
간단한 메시지를 포스트잍틱한 비주얼로 남길 수 있게 되어있는데, 온통 욕이다. 트랜스포머2 개봉에 맞춰, 그리고 실은
'대한늬우스' 강제상영에 맞춰 9,000원으로 오른 영화값에 대한 분노, 노출신에 맞춰진 홍보만 믿고 살색그림 펑펑
터져나오는 걸 보고 싶었는데 낚였다는 분노, 혹은 (애국시민의) '한국영화'를 부끄럽게 만들었다는 분노까지.
그렇게 욕먹을 영화인지는 모르겠다. 실은, 꽤 괜찮은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다섯 가지 사랑이야기가 뚝뚝 끊어져 나온다. 김수로의 캐릭터가 겹치긴 하지만, 스토리는 각각 전혀 다른 측면의
사랑을 포착해낸다. 시니컬하게 말하자면 단물빠진 소재들, 다소간의 동성애 코드나 의외의 반전조차 어디선가
한번쯤 본 듯하여 그다지 강력하진 않았지만, 그건 어쩌면 주재료인 '사랑'의 맛과 향을 고스란히 살려내기 위해
일부러 한번쯤 위력을 줄여버린 게 아닐까 싶었다. 클린턴 식으로라면, "Stupid, it's love."
즉석복권과도 같은 기차 티켓을 매개로 벼락처럼 마주친 두 남녀의 감정이 각자의 경험치와 스킬에 따라 어떻게
번져나가고 기어코 그 목적한 바를 이루게 되는지, 그렇지만 그 과정이란 얼마나 복잡하고 쉽지 않은 내적인
꼼수와 갈등들을 지나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His Concern)는 첫 섹스를 하고 난 후 느닷없이 고개를 드는 낯섦과
막막함, 외로움을 보여준다. 또 그 다음 에피소드 '나 여기있어요'는 "사랑하던 사람이 죽었다"고 한줄 정리할 법한
이야기를 그들이 어떻게 서로 사랑했으며 어떤 때 가장 행복했는지, 그리고 남은 자의 눈물이 언제 흘려지고 언제
닦이는지..그렇게 잔뜩 응축된 화면과 스토리로 속삭인다. 알몸으로 있을 때 가장 섹시하지만, 또 알몸으로 안아줄
때 가장 행복하지만, 굳이 섹스는 없어도 된다. 섹스가 없어도 사랑이다.
이런 때라면, 확실히 육체적 '사랑'은 그다지 의미가 없거나 무언가 품격이 떨어지는 뭔가로 보인다. <채털리 부인의
사랑> 한대목을 빌자면, "이 어이없는 엉덩이의 율동, 초라하기 짝이 없는 축축하게 젖은 조그마한 페니스가 시들어
가는 바로 이것...결국 여기에 경멸감을 느낀 현대인은 옳은 것이다."라고 볼 법하단 이야기다.
그렇지만 사랑은 역시 자극적이고 치명적인 무엇이기도 하다. 상대의 정체가 무엇인지,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 채
무작정 페로몬 향내따라 내달리는 남자들이, 혹은 여자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33번째 남자'에서 나오듯 자극만을
좇다보면 어느새 피향기 가득한 식탁 위에 사지가 올라있을지도 모르지만..그럼에도 서른세번째, 서른네번째, 사냥감은
쉼없이 덤벼든다. 상대가 이성이던 동성이던 그것은 별반 다를 바 없다. '끝과 시작'에서 나온 엄정화와 김효진은
이룰 수 없는 대상에 대한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 때로 사랑일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스스로의 정상적인 생활
자체를 파멸로 몰고 가더라도, 그리고 사랑하는 이의 생활을 온통 갈아엎어버릴지라도, 그런 사랑도 있을 수 있다.
그런 섹스는 격렬하다. 끈이 동원될 수도 있고, 피를 볼지도 모른다. 좀더 중요하고 의미심장한 무언가가 된다.
어쩌면, 섹스는 그 자체로 사랑인가. 다시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빌자면, "이 세상에 남은 가장 좋은 것"인지도 모르고,
"당신 속에 들어갈 수 있으니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진리인지도 모른다. 물론 그건 그 번다하고 다소 용두사미로
보일지 모르는 행위로부터 "우아하고 힘찬 육체의 고요함"을 찾아낼 수 있어야 가능하겠지만. 당신을 사랑하니 당신 안에
들어가고, 또한 당신을 사랑하니 당신에게 열어준다는 메타포의 현현.
그리고 '순간을 믿어요'. 사실 이 다섯번째 에피소드는 좀 패착이 아닐까 싶은데, 10대 또래로 구성된 세 커플이 서로의
상대를 시험에 들게 한다는 다소 도발적인 스토리다. 아마 십대의 발랄함과 미성숙함이 전면에 나서지 않고 그보다
나이많은 이들의 '시험'이었다면, 그래서 일종의 스와핑으로 나타났다면 좀더 위태롭고 좀더 위험했을 게다. 감독은
거기까지는 (아마도) 차마 나가지 못하고 만다. 에피소드 다섯개의 배열이 결국 섹스와 사랑의 관계를 좀더 진지하게
묻고자 했던 의도를 품고 있었다면, 마지막 에피소드는 치열함이 조금 부족했고 도발성은 매우 부족했던 거 아닐까.
마지막 영화 크레딧이 올라가며 나오는 내레이션이 보다 분명히 이 영화의 의도를 전달한다.
아마도 그건 섹스와 사랑, 좀더 눈에 익은 편한 단어로는 육체와 정신, 그 중간의 황금비율에 대한 이야기.
내레이션으로 의도는 알겠는데, 답을 주지는 않았다. 나 역시 답은 모르겠다. 다만 영화제목의 권위를 빌자면, 역시
사랑은 오감을 모두 동원해야 하는 것...일까, 라는 정도?
* 사실 영화는 그렇게 야하지 않다. 그 흔한 가슴 한번 나오지도 않고, 부모님과 함께 봐도 별로 안 민망할 듯..
살색그림의 향연을 기대하고 보러 간다면 그닥 비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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