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였더라, 어느 여름에 찾았던 수목원 제이드가든에서의 몇 컷들. 추석이 지나고 어느새 서늘해진 날씨 때문인지


사진 속의 왕성한 초록빛이 문득 그리워지는 느낌이다.


특히 이런 진초록빛의 나무그늘 아래에서 느끼는 바람이라거나 그 은근한 냉기라거나.






* 비좁고 비싼 서울에서 복닥거리며 버티느니 근교의 괜찮은 땅을 구해 전원주택을 짓고 사시겠다는 것이 우리 부모님의 오랜 꿈이셨다. 마침 건축 쪽에 종사하시는 아버님이신지라 벌써 십여년전부터 어떤 집을 어떻게 지을지에 대한 청사진을 그리고 고치기를 여러번, 그러다가 올해 4월부터 여러 가지 이유로 전원주택을 짓는 계획이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이제부터 올릴 사진들은 드문드문 내가 가서 찍은 사진들과 아버지가 현장을 관리하며 찍으신 사진들이 뒤섞일 예정이며, 가능한 집이 세워지는 시간순으로 실시간에 가깝게 업데이트하려 한다. 관련한 문의나 궁금한 점들이 있다면 비밀댓글로 남겨주시길.

 

 

10. 지중보 콘크리트 타설 작업(1층)

 

2015년 4월 23일, photo by father

 

 

 

전날 세워둔 거푸집, 레미콘차가 와서 콘트리트를 콸콸 쏟아붓고 있는 중. 그러면 저 본에 맞는 벽면들이 짠.

 

 

재미없게 네모지기만 한 외벽과 거푸집이 아니라 요리조리 꺽이고 들어간 모양새가 재미있다.

 

 

 

ㅇ 고인돌, 교과서 밖에서 만나다.(Intro.)

강화도, 대학에 들어올 때까지 교과서에서 배웠던 강화도와 실제로 이래저래 놀러다녔던 강화도의

이미지 사이에는 꽤나 큰 갭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국사교과서 상권이었던가, 표지모델로 봤었던

이런 지석묘, 고인돌의 이미지가 강화도에 대한 대표적 이미지 중 하나였다면, 막상 강화도를

걷고 달리고 드라이브하면서 마주쳤던 풍경 중에 고인돌은 딱히 맞닥뜨렸던 적이 없는 거 같다.


의외로 이렇게 눈에 탁 뜨이는 공간에 그림처럼 놓여있는 것들이 많지 않은데다가 평소에

별반 관심이 없으면 그만큼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아서 그런 거 같기도 하고, 아니면 그저 나만의

특수한 사례에 속할지도 모르지만. 여하간 고인돌을 실제로 본 적도 굉장히 까마득한 거 같고,

한두기 띄엄띄엄 보는 게 아니라 좀 제대로 작정하고 본적도 없는 거 같고.

그러고 보면 고인돌에 대해서 아는 거라곤 탁자모양 북방식, 바둑판모양 남방식, 그리고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매장양식이란 거 정도다. 이래서야 원, 저렇게 얼추 탁자모양 닮은

벤치가 덩그마니 놓여있는 것만 보고도 '탁자모양 북방식 고인돌'이라고 생각할 지경이다.


이미 14회를 맞이했다는 강화도고인돌문화축제, 이번 기회에 단단히 작정하고 고인돌들을

둘러보기로 했다. 강화도 여기저기에 산재해있다는 고인돌, 알아보고 찾아보고, 그러면

더 강화도를, 고인돌의 이미지들을 풍성하게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알고 보면 고인돌은 영어로 Dolmen,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드러나는 거석문화의

한 형태라고 한다. 큰 바위로 석상이나 무덤 등을 만들어 부족의 권위나 영광을 드러내는

문화, 어쩌면 그런 문화는 인류가 지배-피지배의 권력관계로 정립되고 나서 지배계층이

품게 되는 필연적인, 그리고 인간적인 욕망을 그대로 반영하는 건 아닐까. 이집트의 피라밋,

요르단의 페트라, 모아이의 석상들, 그 커다랗고 무쓸모하지만 위풍당당한 석조물들. 

그렇지만 한국의 고인돌이 2000년 UNESCO의 세계문화유산 인증을 받은 건 나름의 고유함과 특성이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우리나라의 강화, 고창이나 화순처럼 고인돌이 밀집된 곳이

흔치 않다고 한다. 전세계에 퍼진 약 6만여기의 고인돌 중 약 2/3(4만여기)가 우리나라에 있는데,

강화도의 경우는 북한과 남한 고인돌의 맥을 모두 반영하고 있어 그 형태가 다채롭고, 고창,화순은

보존상태가 좋고 한곳에 밀집된 특징이 있어 선정되었다.


특히 강화도의 경우, 북방의 탁자식과 남방의 바둑판식이 섞여 있고, 고려산을 중심으로

고지대에 분포하고 있어 연구가치가 매우 높다고 한다. 강화도 고인돌에 대한 연구는 이미

1916년 조선총독부가 본격적으로 시작했을 정도라고 하니 그 학술적 가치를 짐작할 만 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대표적인 고인돌이 바로 첫사진, 그리고 강화고인돌문화축제가 벌어지는

곳인 부근리 고인돌이고, 그 외에 강화도에 산재한 150여기 중 70여기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이 되었다니 저렇게 다양한 고인돌 탐방로를 짜서 둘러볼 수 있는 거다.


ㅇ 고인돌 만드는 법

무릇 유행이란 돌고 도는 것. 선사시대 부족장 Style의 무덤이 언젠가 2000년대 이후 부활해서

새롭게 트렌드가 될지 모르는 거다. 당장 던져진 돌무더기가 산을 이루도록 맞아야 할 사람들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여하간 어떤 경로로던 고인돌(Dolmen) 스타일의 매장 풍습이 다시 유행할

떄를 대비하여 간단히 고인돌 만드는 과정을 보아두는 것도 좋겠다.

1. 채석하기 : 고인돌을 만들기에 좋은 편마암을 큰 바위조각으로 떼어낸다. 특히 강화도는

편마암이 풍부한 덕에 고인돌이 이렇게 많이 축조되었다고 이야기된다고 한다.

2. 바닥돌 세우기 : 땅을 파서 통나무를 지렛대처럼 이용해서 돌을 세운다. 꽤나 많은 인력과

당시로선 적잖은 물자가 동원되었을 테니, 아무래도 고인돌은 지배집단이 강력해진 징표.

3. 덮개돌 운반하기 : 흙으로 바닥돌 주위를 덮어 완만한 경사면을 만든 후, 통나무를 바퀴처럼

활용해서 덮개돌을 바닥돌 위로 끌어올린다. 커다란 고인돌의 경우 덮개돌을 옮기기 위해

천명에 가까운 인력이 소요되었을 거라는 분석도 있다고 하니, 보통일은 아니었던 거다.


4. 고인돌 축조완료 : 완만한 경사면으로 쓰기 위해 덮었던 흙을 전부 파내고, 바닥돌 사이의

양쪽 열린 공간을 막음돌로 막는다. 그러고 나면 이제 '선사시대 부족장 Style' 고인돌 완성.

그 앞에서 제사를 지내던 차례를 지내던, 아니면 굿판을 벌이던 남는 건 선사시대 매장양식을

21세기에 되살린 본인의 취향 문제랄까.


ㅇ 고인돌의 나라, 강화도를 돌아보다.

우리나라는 '고인돌의 나라'라고 불리우기에 손색이 없을 만큼, 수많은 고인돌을 갖고 있단다.

특히나 강화도, 고인돌의 대표적인 이미지로 각인되어버린 이 '강화도 지석묘'의 존재만으로도

강화도는 '고인돌의 나라' 수도 서울깜이다. 이 고인돌은 얼마나 공들여 축조되었는지 바닥이

무려 수십층이나 다져진 자취가 남아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여태까지 저토록 당당한 듯.

그렇지만 사실 대부분의 고인돌들은 저렇게 반듯하고 딱 떨어지는 깔끔한 이미지로 유지되는

건 아니다. 근처에 있는 '신삼리고인돌', 논밭 한가운데 잡초가 무성하게 자란 채 잔뜩 녹슨

철울타리로 둘러쳐진 커다란 너럭바위가 하나 있다 싶었더니 고인돌이랜다. 아놔. 잡초라도

좀 거둬내주고 울타리라도 좀 페인트칠이라도 다시 하던가, 나무울타리로 바꿈 좋겠고만.

그렇지만 요모조모 둘러보며 이 수천년 묵은 커다란 바위의 신비함을 느끼기에는 더없는

효과가 있는 거 같기도 하다. 좀처럼 연대를 식별할 수 없는 바위지만, 저렇게 판판하게

다듬어진 게 수천년 전의 인류 솜씨라는 걸 헤아리려면, 저렇게 잡초라도 무성하고

녹이라도 슬어야 좀 실감이 나는 거다. 바닥돌이 좀만 더 잘 보이면 좋겠지만.


지나던 주민분들, 폭삭 늙으신 할머니 농민분들이 사진찍는 걸 보더니 슬쩍 알려주시던

이야기 한 토막. 논을 넓히겠다며 주인이 저 바위를 움직이겠다고 으쌰으쌰한 적이 있댄다.

그게 언젠지, 삽으로 퍼내려 한건지 굴삭기를 동원한건지는 모르겠지만, 여하간 그날밤

그의 꿈에 머리가 새하얀 노인이 나타나서 크게 꾸짖었다나. 우가우가, 이러셨을려나.

 

그리고 좀더 차로 달리다가 문득 발견한 강화 부근리의 '점골 지석묘'. 제법 잔디도 깔리고

말끔하게 정돈된 상태로 서있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70여기의 강화도

고인돌 중 하나라고 한다. 앞선 '신삼리 고인돌'은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지 않은 곳이었어서

그렇게 방치되다시피 했던 걸까.


고려산 북쪽 능선을 따르다 끝자락에 축조된 점골 지셕묘는 상석과 4개의 바닥돌이 있는

전형적인 탁자형 고인돌로, 원래 상석과 바닥돌이 기울어져 있던 것을 2009년께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청을 준비하며 발굴조사하고 나선 해체하고 다시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문화재를

수선하거나 관리할 때 자주 쓰이는 '해체', '복원'이란 단어가 웬지 고인돌 앞에선 웃기다.

그냥 돌들을 내려놓았다가 다시 제대로 올려놓는, 굉장히 심플한 작업이지 않을까 싶은 거다.

물론 실제론, 제대로 이가 맞았는지라거나 어디를 괴어야 할지 따위 의외로 복잡할 듯.

'강화 삼거리 고인돌군'
엔 그래도 제법 고인돌들이 우르르 몰려있다길래 놓칠 수 없다 싶어

조금 길을 헤매고 뱅뱅 돌면서도 굳이 찾아갔다. 표지판들이 꽤나 오래전 구비된 듯 많이들

헐고 낡은데다가, 그렇게 많지 않아 가는 길 내내 이 길이 맞는지 조바심을 내야했다. 게다가

저렇게 철컥 자물쇠가 걸린 채 수십년은 녹슬고 있는 듯한 장애물까지.

옆으로 돌아 계속 앞으로 걸으니 점점 산길이 깊어지고 경사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산 꼭대기를 오르는 길인가 싶어, 어느 순간부터 끊긴 인적을 찾아 되돌아가야 하나 걱정이

스물스물 일기 시작할 무렵. 문득 저런 조그마한 표지판이 땅에 박힌 걸 발견했다.

그 표지판 옆에는 저런 제법 커다랗고 판판한 바위가 땅에 박혀있었다. 저게 설마, 고인돌인가.

그저 바위라고 생각하기에는 은근히 인공의 손길이 가해진 느낌으로 판판한데다가, 그렇지

않고서야 저런 표지판이 앞에 이름표처럼 붙어있을 리가 없으니깐.

역시 그런 거였다. 계속 오르는 길 양편으로 제법 크거나 많이 크거나 조금 큰 바위들이 누워

있었고, 그게 좀 눈에 띄게 편편하다 싶은 것들엔 저런 '이름표'가 붙어있었다. 이곳 강화도

삼거리 고인돌군에 크고 작은 고인돌들이 십여기나 모여 있다더니, 이런 것들이 이제 그

예고편이나 전조처럼 가는 길에 늘어서 있는 건가보다.

오르막길이 끝나고, 제법 평평해진 중턱에 올랐더니 표지판이 나타났다. 수천년 전에도 여긴

지금처럼 평평한 지형으로 양지바르게도 햇빛을 담뿍 받는 그런 곳이었을까, 수기의 고인돌이

주르르 늘어서 있다니 뭐랄까, 그때의 선사시대인들과 약간의 동질감이 느껴진다. 저들도, 지금

내가 쬐는 이런 햇살을 쬐었겠구나, 오르막길 걷다가 이 평지에 탁 올라서니 기분좋았겠구나.

'강화지역에는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묘제인 고인돌이 산재해 있으며, 특히 이들 중에

10-20여기에 달하는 군집을 이루는 고인돌군이 5개가 있다. 이 중 하나인 삼거리고인돌군은

고려산 북쪽 능선에 위치하며, 모두 10여기의 북방식 고인돌이 3개의 소군집을 이루고 있다.

삼거리 고인돌 중에는 덮개돌에 '성혈'이라고 하는 작은 구멍이 패여있기도 하는데 이를

별자리와 연관짓기도 한다. 2000년 12월 2일 고창, 화순의 고인돌군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그렇게 크지는 않지만 덮개돌이 미끄러져 내려간 걸 제외하면 형태가 제법 온전히 남은데다가

덮개돌이나 바닥돌이 고른 두께로 납작하게 다듬어진 게 꽤나 공력을 기울인 흔적이 역력하다.

가히 삼거리고인돌군의 대표선수라고 해도 될 거 같은데, 무너져 내리지 않았으면 최근에

만들어진 석조 탁자라고 해도 믿었을 거 같다. 차라리 무너지며 뒤틀려서 아마도 부족장의

유해가 뉘여졌을 그 내부 공간이 드러나고 나니까 고인돌스러운 거 같다.
 


누군가가 옆에 굴러다니는 납작한 조그만 돌들로 고인돌을 만들어놓고 떠났다. 뒤로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수천년 전의 커다란 진품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자잘한 고인돌 모형을

보고 있으니 기분이 묘하다. 대부분 덮개돌이 미끄러져 내린 채 낙엽이 두껍게 덮이고, 잡초가

자라고 자잘한 돌들이 틈새를 메우고 있었다.


십여년 전에 조성된 무덤은 무섭지만, 수천년 전에 조성된 이곳 고인돌 무덤은 전혀 무섭지 않다.

그들의 팔다리가 놓였을 공간은 이제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고, 머리가 놓였을 곳에는 특히나

불쑥 뾰족뾰족한 잡초가 자라났다. 그네들의 양분을 빨아먹고 자랐을 거다, 라고 간단하게

치부하기에는 너무 오랜 시간차이가 그곳에 웅크리고 있었다. 이미 그들은 흙으로 돌아갔다가

지렁이에 먹혔다가, 물에 섞여 하늘에 올랐다가 다시 땅위로 흘러내리고 바다로 번져서,

온세상에 흩어져 있을 거다. 
 

그래서 이렇게 싱싱하고 원기왕성한 덩쿨이 되어 나무를 기어 오르기도 하고, 이미 죽어버린

나무등걸들이 때마침 바닥돌처럼 11자로 늘어선 가운데에서 부울쑥, 새싹을 틔우기도 하는건

아닐까. 수천년 전의 인류가 지금의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대체 얼마나 길고 오랜 시간이

그 사이에 놓여있는지 가늠하기도 쉽지 않지만, 그네들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공간인 고인돌을

보고 있노라면 왠지 그 망연한 수천년의 시간이 바싹 땡겨지고 조여지는 느낌이다.
 

비록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계는 수천년동안 깨지지도 녹슬지도 변색되지도 않는 돌처럼

단단하고 완고한 그들의 거석문화가 아니라, 이렇듯 금세 녹슬고 낡아지는 슬레이트 같은 세상은

아닌가 더러 걱정스러워지긴 하지만 그래도. 수천년 전 고인돌을 만들어 지금까지 이렇게 전하는

그들의 본능적인 지혜랄까 원초적인 에너지를 우리도 갖고 있으려니 믿고 싶어지는 거다.


아까 신삼리 고인돌이 덩그마니 놓여있던 논밭을 지나 강화도를 빠져나오는 길.

수천년전 그때처럼 태양이 새빨갛게 떨어져내리고 있었고, '고인돌의 나라' 강화도를

빠져나오면서 내 안 어디에선가 틀림없이 각인되어있을 수천년전 인류의 흔적이 새삼

도드라져 보였다.







백운산에 오르려다 개울을 만났다. 날이 풀리고 산이 뱉어내는 물, 개울 너머가 궁금해서

결국 벗어던진 양말과 신발 속 창백한 맨발이 꽁꽁 얼어붙어버렸다.

花. 신발을 벗어던지고 시원하다 못해 모세혈관까지 꽁꽁 얼어붙는 듯한 개울에 발담그게 만든

풍경, 낙엽이 갈빛으로 깔린 바닥 가운데로 개울이 졸졸거리며 흐르고, 나무들엔 물이 올라

불쑥 연두색 새순이 돋았고, 개울 옆에는 점점이 노랑빛 꽃이 한웅큼씩.

水.
마침 드문드문 내렸던 비로 물이 불기도 했나보다. 수량이 넘쳐서 곳곳에 엉킨 채 섬을 이룬

낙엽들, 벚꽃잎들, 그리고 위에서부터 떠내려왔을 썩은 나뭇가지들. 그렇게 자연이 순환하는

개울 위로 세상은 온통 푸릇푸릇하다.

 


花. 산등성에 가렸는지 아직 꽃눈이 채 다 벌어지지 않은 꽃송이들이 있었다. 분홍색 빛깔이

여리여리하면서도 어찌나 곱던지, 뒷배경처럼 싱싱한 연두빛이 깔린 위에 압정처럼

꽂혀있는 꽃봉오리들이 조만간 폭죽처럼 펑펑 터뜨려지리란 예감에 괜히 가슴이 설렜다.


生. 땅을 온통 뒤덮은 채  사체들의 틈바구니를 비집고 피어난 얄포름하고 여린 이파리들이

눈에 띈다 싶더니, 그 위에 얹힌채 바람에 풀썩이는 노랑 알갱이들이 궁금했다. 잔뜩 몸을

구부려 눈에 힘을 주니 보이는 건 꼬물거리는 아기 거미들.

新綠. 그야말로 신록, 올해 새롭게 뻗어나는 녹색의 잎사귀들. 하늘을 향해 양손을 활짝 펼친

그런 겁없고 당찬 느낌이다. 온몸을 들어 하늘로 향하는 듯한, 그런 거침없고 적극적인

모양새 덕에 굉장히 동적인 분위기가 나는 거다. 게다가 저 이파리들에 햇살이라도 비칠라치면,

온통 속살까지 투명하게 반짝거리며 빛나는 모습이라니.

 

影. 산이 흘려낸 물들은 모두 저수지로 모였다. 봄바람이 불자 바다처럼 잔물결이 일었지만,

그래도 제법 잔잔한 수면 위로 녹색의 나무가, 녹색의 둑길이, 녹색의 산이 전부 담겼다.

가을철의 나무처럼 아직은 헐벗고 앙상해보이는 나무들이지만 좀더 부드럽고 긴장감이

느껴지는 것이 역시, 봄날의 새순을 기다리고 있다는 분위기가 물씬 맴돌았다.




누굴까, 이렇게 여행 가방에 탑을 쌓아올리듯 옷가지들을 소복하니 쌓아두곤 뚜껑도 안 닫고 떠나버린 사람은.

헤이리에 차를 대고 나서 룰루랄라 발걸음을 옮기려다가 저 이쁘장한 분홍빛 클래식한 여행가방을 발견했다.


쏴아~ 하고 불어오는 바람소리도, 그 바람에 괜시리 마음흔들다 나부끼는 낙엽들의 춤사위도, 그리고 문득

서늘해진 가슴도, 점점이 하얀 빛이 새어드는 파랑 하늘도,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게 만드는 가을이다.


한 바퀴 돌아보고 다시 차로 돌아오니 가방은 아무 흔적도 없이 사라져있었다. 왠지 입술을 질끈 깨물며

맛좀 보라지, 하는 표정으로 다짜고짜 여행가방을 싸짊어지고 여행을 떠나는 '불평분자' 아닐까 상상을 잠시.

머릿속에서 탁, 여행가방이 단호하게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근데 현실은...여행이 아니라 출장을 준비하고 있다능.)


@ 헤이리.
헤이리의 아프리칸 갤러리. 국내에서 유일하게 아프리카 목조각상들을 전문취급한다는 곳이다. 입장료는 천원.

무료로 개방된 공간에 하도 사람들이 바글바글대길래 냉큼 천원을 내고 유료 공간으로 넘어와버렸더니 정말

거짓말처럼 사람이 하나도 없다. 그렇게 무료에서 유료로 넘어가는 계단 벽면을 빼곡하게 장식한 전통탈.

각도에 따라 느낌이 제법 다르다. 대충 눈높이를 맞춘 상태에서 보면 나름 우스꽝스럽고 친근한 구석까지도

읽혀지는 표정이지만, 이렇게 밑에서 올려다보니까 차갑게 눈을 흘기는 것 같기도 하고 볼이 잔뜩 부은 채

금세라도 시니컬하게 갈굴 것만 같다.

며칠 전 트위터에서 누군가 알려준 인도의 소식. 코끼리떼가 이동하다가 새끼 코끼리 발이 철로에 끼고 말았다나,

기차가 달려들 때까지 수십마리의 어른 코끼리들이 새끼를 둘러싼 채 버텼고 결국 일곱마리인가 기차에 치여

숨지고 말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먹먹했었다. 그 이야기를 다시 떠올리게 만들었던 너무 리얼한 코끼리,

그리고 그 살점을 뜯어먹는 콘도르떼들.

아프리카, 하면 기린떼도 빼놓을 수 없다. 드넓은 초원을 달리다가 문득 나무처럼 삐죽삐죽 솟아있는 그들의

긴 목부터 마주치는 순간은 아프리카에 대한 일종의 로망. 에버랜드에 생겼다는 초식동물 사파리에 가서 기어이

기린에 먹을 풀떼기를 쥐어주고 말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번.

아프리카의 이 생생한 표정들, 조개껍질과 돌멩이를 활용해서 저런 얼굴을 표현해 낸다는 건, 대담하기도 하고

창의적이기도 하고. 군대 있을 때 '야전성'이란 표현을 우리끼리 썼던 적이 있는데, 뭐랄까,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재빨리 해결하는 응급조치의 순발력이랄까 유연한 발상이랄까. 그런 게 아프리카의 것들에서 느껴졌다.

그런가 하면 이런 식으로 조금은 더 '갖춰진' 인형들도 전시되어 있었다. 옷도 제대로 갖춰입었을 뿐 아니라

눈코입의 묘사 역시 클래식한 아프리카 토속 스타일과는 거리가 있으면서도 아프리카스러운 느낌은 살아있는.

조약돌 세개씩 깜장돌과 하얀돌을 늘어세운 뭔가 단촐한 게임판을 앞에 둔 채 맞은편에 놓인 화려한 의자. 저건

진짜 무슨 게임인지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꽤나 단순한 외양 때문인지 쉬워 보이기도 하고.

강아지가 고개를 슬몃 쳐들고 눈망울을 또르륵 굴려대는 이건, 흔들의자. 반질하게 잘 다듬어진 뒷마무리가 좋다.

책을 세원둔 채 양쪽에서 받쳐두는 책꽂이가 이정도 포스를 풍기다니. 이런 아이템이 제대로 분위기를 가지려면

꽤나 그럴듯한 서재가 있어야 할 듯. 왜 그 마호가니 나무 책상에 벨벳 카펫이 깔려있는 아늑한 방.

기린 모양을 따서 만든 경쾌한 느낌의 의자들. 기린 다리 네 개로 의자의 내 다리를 형상화하고 나니 기린

모가지가 남는다. 모가지가 길어 슬픈 짐승, 바닥으로 잔뜩 꿇어박음으로써 모가지도 해결.

험상궂고 단호한 턱을 가진, 아마도 짐바브웨에서 왔었던 것으로 기억되는 전사의 목각상. 전사의 얼굴 생김이

왠지 동네 어귀 장승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게다가 짚으로 엮은 머리띠며 목걸이를 칭칭 감고 있는 것도

낯설지 않은 느낌.

이쁜 아이템들도 많았지만, 아무래도 이런 것들은 하나만 덜렁 놓여있으면 참 멍청해 보이기 마련이다. 그냥

이렇게 이쁜 것들 눈요기하는 것으로도 잠시나마 아프리카의 뜨거운 태양빛을 머리에 부어내리며 돌아다닌듯

여행의 즐거움을 살풋 맛볼 수 있어서 만족.

아프리칸 갤러리를 나와 경기도 헤이리의 햇살을 한바가지 뒤집어 썼다. 갤러리 앞에서 날개를 퍼덕이며

빙빙 돌고 있던 앵무새가 인사를 했다.





헤이리를 걷다가 '천공의 성 라퓨타'의 경비로봇과 마주치고 말았다. 여기에서 이 로봇을 마주칠 줄은 생각도

못했었는지라 조금은 놀랬고, 어렴풋하던 로봇의 실루엣이 조금씩 세세한 디테일을 곁들여 눈에 들어오면서는

그 엉성하고 옹색한 모습에 실망해버렸다.


이건 너무 엉망이란 생각, 두 팔은 무게를 버티지 못해서 쇠파이프 두개를 지팡이처럼 지탱해 놓았고, 홀쭉한

배와 밋밋한 아랫도리와 두 다리의 이어짐이라거나, 완전히 부식된 채 곳곳이 터져나간 두 발. 그래도 상대적으로

고글을 낀 것 같은 머리통은 잘 남아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 깡통 로봇을 하야오의 경비로봇이라고 한눈에

알아본 힌트도 바로 저 머리통.

미야자키 하야오의 마법솥, 지브리 스튜디오 A to Z.

이게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에 나왔던 경비로봇을 세심하게 재연해낸 지브리 스튜디오

옥상정원의 경비로봇. 뭐, 이걸 그대로 따라 만들거나 세부 모습까지 하나하나 재연하는 데 흥미가 없었다면

저런 식의 버전도 나올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어쨌든 한눈에 이 두 로봇이 '경비로봇'이란 같은 걸 보여주려

하는 '출제자의 의도'를 알아챘으니 그것만으로도 성공이랄까.

그리고 옛날 장난감들을 모아놓은 갤러리에서 발견하고 만 토토로와 고양이버스의 태엽 인형. 그러니까 저 태엽을

잘 감아올려서 바닥에 놓으면 토토로가 우산을 쓴 채 성큼성큼 다가오고, 고양이버스도 체셔고양이같은 웃음을

흘리며 달려드는 장난감인 듯. 갖고 싶다. 갖고 싶다. 갖고 싶다고 한 대여섯번은 중얼거린 거 같다.

그렇지만 이 녀석들은 비매품, 90년대인가 일본에서 판매되던 장난감이라며 진열되어 있던 소장품이다.

토토로 6만원, 고양이 버스 4만원 해서 한 10만원까지는 기꺼이 냉큼 쥐어줄 용의가 있는데.ㅜ







버즈알아랍. '버즈'는 탑이란 뜻의 아랍어다. 아랍의 탑. 저 꼭대기 헬기착륙장에서던가 타이거 우즈가 멋진

티샷을 선보이던 광고를 찍었노라고 가이드가 설명했다. 돛단배를 형상화한 버즈알아랍, 호텔 수준을 구분하는

별 몇개짜리 등급으로 치면 사실 오성등급 이상으로 공인된 건 없지만 자타공인 세계에서 가장 훌륭하다는

자부심으로 무려 '세계 유일의 칠성급 호텔'이라 선전하고 있는 곳이다.

이전에는 입장료를 따로 받고 호텔 내부를 구경하는 호텔 투어도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없어졌다고 한다.

하루 방값이 최소 백오십만원 정도 된다는 이 곳에서 묵는 건 그다지 내게 있을 법 하지 않은 일인지라, 그러면

이제 어떻게 들어가서 구경해볼 수 있냐고 했더니 레스토랑을 이용하면 된단다. 한끼에 이십여만원한다는

식사를 하면 된다고 하는데, 맛은 그다지 없다고. 출장을 다녀오고 몇 군데 경험자들의 사진과 이야기를 둘러

봤지만 역시 그다지 특별한 건 없어 보였다.


칠성급 호텔이라고는 하지만, 그래서 모두가 선망하기는 하지만 막상 제돈을 다 주고 가기는 망설여지는

곳이 아닐까 생각했다. 실제로 버즈알아랍은 대체로 국제회의나 국빈들, 그니까 자기 돈으로 투숙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런저런 '비용처리'가 가능한 사람들을 위한 공간으로 많이 쓰인다고 한다. 그나마도 요샌 공실률이

많이 높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게 10월, 이미 세계경기가 꺽이면서 두바이의 가파른 추락은 예정된 거였는지도

모르겠다. 대외개방형의 경제, 외국자본에 기댄 경제, 토목으로 부양하는 경제 특성상 당연한 귀결인지도.

약간은 가벼운 이야기로 넘어와서, 버즈 알아랍이 내려다보고 있는 바다는 그렇게 아름답지 않았다. 바닷물

색깔도 그렇고, 해안에서 내다보이는 먼바다의 풍경 역시 모래사구에 가로막혀 텁텁한 사막 느낌이 가득했다.

바닷물에 들어간 사람들도 뭐랄까, 짙고 깊은 푸른색의 동해 바다에 몸을 담근다기보다는 야트막하고 탁한

서해바다에서 찝찝한 모래가 수영복 가득 들이차는 느낌을 받고 있지 않을까 괜스런 걱정이 들었었다.

해안가 밖에 있던 휴지통.

버즈알아랍과 마주하고 해안가에 세워진 낮지만 호화로운 고급저택들을 구경하면서, 겉으로 보기에만 좋은

저런 버즈알아랍 같은 호텔보다 저런 펜션이나 호텔에서 쉬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하던 그 때.

같이 왔던 분들과 버즈 알아랍을 뒤로 한 채 기념사진을 찍기로 했다. 각자 가져온 카메라 몇 대로 각각 몇번씩

촬영을 돌아가며 하다보니 꽤나 시간이 흘렀는데, 그걸 하염없이 지켜보며 같은 곳에서 무의미한 빗자루질만

무한반복하고 있던 청소부 아저씨가 문득 눈에 띄었다. 모래를 쓸어내는 것도 아니고, 아마도 사회주의

국가에서 무의미하게 시간을 때우는 노동이라는 게 이런 걸까 싶을 정도로 아무 목적도 의지도 없어보이는

단조롭고 나른한 빗자루질.


일에 대한 인센티브가 없다고 했다. 그냥 정부에서 고용한 외국인 노동자들은 정해진 시간동안 일을 하도록

지시받을 뿐, 일을 잘해내거나 보다 '영리하게' 해내는 것에 대한 관심도 유인도 없기 때문에, 가뜩이나 한달

30여만원의 박봉으로 연명하는 제3세계 노동자들은 그저 시간을 채우고 있기 십상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물가가 굉장히 높은 와중에도 그들의 생존과 연명을 위한 물과 고기등 필수품들의 물가는 굉장히

낮게 유지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함께 들었었다.

버즈 알아랍이 아무리 대단해 보인다 해도, 겉에서 볼 때의 이야기다. 청계천 근처나 양수리쯤에 그럴듯하게

꾸며진 까페 같은 풍경이 밖에서 보면 그림같아 보여도, 막상 안에 들어서는 순간 별거 없어지는 것처럼 어쩌면

두바이에 대한 온갖 찬사와 신화적인 이야기들은 내부에서 보면 정작 어리둥절해질 수 있는 것들 아닐까

싶어졌다. 식물에 비기자면 '웃자라 버린' 거다. 비료를 담뿍 주고, 억지로 줄기를 잡아당겨가며 키워냈지만,

도무지 인프라나 사회시스템이나 작동원리 따위가 외양을 뒷받침하지 못하는 상황이랄까.


선진국은 괜히 선진국이 아니다 싶었다. 그들의 부유함과 번영은 시간을 두고 찬찬히 쌓아올려진 사회적

기반과 문화, 내적인 저력에도 기반하고 있는 건데, 그러고 보면 왜 갑자기 우리나라가 '두바이'를 벤치마킹

하겠다고 설레발친 걸까. 강소국 모델을 원했다면 베네룩스 삼국같은 유럽의 전통있고 오랜 시간 검증된

모델도 있는데, 어디서 족보 없고 검증도 되지 않은 '강남 땅부자'같은 두바이를 들이댄 걸까.

출장길에 계속 의아했던 주제였는데, 결국 두바이 경제는 얼마나 취약한 상태였는지 이제 백일하에 드러나고

만 상황이 되어버렸다. 비록 이게 두바이 신화의 결정적인 붕괴라고까지 말하기는 힘들지 몰라도, 최소한

두바이가 우리나라가 벤치마킹해야할 모범 사례라고 말하기는 이제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돛단배를 형상화했다고. 나중에 석유자원 등이 고갈되었을 때를 대비해 관광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섬으로

세계 지도도 만들고 야자나무 형상도 그리고, 세계 최고라는 빌딩도 세우고 돛단배 모양 '칠성급' 호텔도

만들고. 흔히 두바이를 상상력의 발현과 창의적 미래 대비의 사례로 제시하는 논거들이지만, 글쎄, 솔직히

저런 것들 보러 굳이 두바이로, 중동으로 갈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사실은 이런 사례들은 그들의 안간힘, 그렇지만 사회적 인프라와 문화적 기반을 무시한 외양 불리기란 건 마치

황소 흉내내려다 배때지가 터져버린 개구리처럼, 기본이 갖춰지지 않아 언제고 무너져내릴 사상누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건 아닐까. 정도를 벗어난 '한탕주의식' 발전모델에 가까운. 이런 뻘쭘하고

뜬금없는 건물들만 잔뜩 짓는다고, 건물 신축허가를 받을 때 독특하지 않으면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고 해서

그게 관광자원이 될 거라는 아이디어의 천박함과 비루함은 또 어떤가.

위에서 말한 그런 것들은 그저 짧막짧막, 그다지 논리적 정합성이나 엄밀함 없이 생각해본 단상들에 불과하다.

그저 짧은 생각의 편린일 뿐이니 아닐 수도 있겠고, 결과론적인 해석일 수도 있겠고. 어쨌거나 버즈 알 아랍

앞의 해변가에는 저런 트랙터가 시간마다 모래를 고르고 다녔다. 철저하게 보여지기 위한 공간, 으로

제공되고 있는 건가 싶었다.

뭔가 빼곡한 금지표시로 가득한 표지판. 사람도 몇 명 없는 고즈넉한 해안가에, 더구나 그다지 수영하러 뛰어들

욕망도 일지 않는 모랫빛 뿌연 바닷가에 너무 과하다 싶은 금지조항들을 주렁주렁 달고 있었다.

돌아나오는 길, 어떻게 보면 절지동물이나 오동통한 사마귀같은 곤충의 배 부분을 형상화한 거 같기도 하다.

올록볼록하고 탱탱해 보이는 게 그렇다. 버즈 알 아랍, 각국의 '공용 경비'로 먹고 사는 것이 최선의 전략일

호텔인데 과연 두바이가 국제 컨퍼런스의 허브라거나 국제행사의 허브로서 유망한지는...신혼여행지로 굳이

저길 가서 '칠성급 호텔'에서의 추억으로 행복해할 만한 사람들이 많다면 모르겠지만 유지비나 제대로 뽑고

있을지 또다시 오지랖 펼친 걱정.








버즈 두바이를 바라보기 가장 좋다는 맞은편 쇼핑센터, 시간이 너무 일러 대부분 문이 닫힌 상태였지만,

높이 솟은 건물들과 함께 잘 정돈된, 지어진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분수정원이 두바이의 급격한 축재를

잘 나타내주는 듯 하다. 이 메마르고 황량한 도시에 저런 분수대라니.

대개 모든 건물들이 지은지 얼마 안된, 갓 구워진 쿠키처럼 노르스름한 황토빛이다. 그래서인지 왠지 테마파크

같다는 느낌을 지울 길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조금씩 동이 터오는 하늘, 좀더 뜨겁게 땅이 달구어지고 그림자가 두껍고 짧아지면 이 곳의 풍경이 또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겠지만, 당장은 너무 휑하다. 사람은 없고 풍경만 있다.
두바이가 최근의 모라토리엄 사태를 거치면서 곤욕을 치르고는 있지만, 두바이가 아랍에미레이트, 혹은 중동이

가진 핵심 전력은 아니다. 버즈 두바이니, 버즈 알 아랍이니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두바이는 이를테면 졸부의 땅. 중동의 이름난 부호국 중 하나인 아랍에미레이트의 대표주자는 역시 아부다비.

어쩔 수 없이 이 곳은 여전히 공사가 진행중인, 갑작스런 붐에 불쑥 떠오른 지역이다.

밤새 불이 환하게 켜져있었던 공사현장. 두바이는 전기나 수도 등 기본적인 생활필수시설들에 대해서 자국민에

한해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일년에 몇차례씩 국민들의 빚을 탕감해주거나 일정액을 '하사'하는 다른

중동국들의 사례도 있으니 딱히 두바이가 독특하다고 할 것은 아니지만, 우리 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외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했네 '토목으로 '일어섰네' 어쩌고 하면서 벤치마킹하자고 나섰던 건 사실 우스운 일이다.

자국민에는 무료로 제공되어 밤새 펑펑 낭비되는 전력과 수도 등은 외국인에게는 가혹하리만큼 높은

금액이 부과된다고 한다.

두바이의 일출. 저 멀리 크레인들이 코끼리 코처럼 하늘을 향해 뿌우~ 코를 울리고 있다. 일출인데, 이건 무슨

일몰의 음울하고 축축 처지는 느낌의 이미지.

황량한 땅 위로 이리저리 가로놓인 고가도로가 던져주는 길쭉한 그늘이 도왔겠지만, 그보다 사막지대에선

금과도 바꿀 수 없다는 물을 윤택하게 제공한 덕분이지 않을까. 뚜렷하게 일정 지역만 덮어씌우고 있는

초록색 잔디. 그렇지만 광화문광장을 얄포롬하게 덮었던 화단보다는 수명이 길겠구나 니들은. 겨울은 없잖아.

뭔가 두바이의 도심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확연하다. 갑자기 불쑥 높아지는 마천루, 지금은 버즈 알 아랍 가는

길이다. 어딜 봐도 공사판, 좀처럼 오랜 것은 보이질 않고 모조리 새로 지은 것들 뿐이다.

도로 위를 달리는 스쿨버스. 현지인들은 그다지 교육열이 높지 않아 생각있는 사람들은 걱정하고 있다고 한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이 곳은 '교육'이란 게, 혹은 '학력'이란 게 출세나 돈벌이의 값진 지표로 작용하지 않을

만큼 온 국민이 고루 부유한 곳인 거다. 그렇지만 역시, 혹은 의외로, '상대적 박탈감'의 문제는 여기도 크다고

한다. 어차피 (물질적) 박탈감이란 건 옆사람과의 비교를 통해서 생겨나는 거니까.

여기가 두바이의 강남이랄까, 가장 핵심 비즈니스 구역이라고 한다. 쭉 뻗은 대로 양쪽으로 높이 솟은 건물들,

그치만 왠지 어색한 건, 아무것도 없던 맨땅에서 뜬금없이 솟아오른 듯 보이는, 전혀 배후지역이 보이지 않는

섬같은 건물들이란 느낌 때문일 거다. 아무런 연원이나 전통적 상권 따위 없이 생겨난 건물들, 이것들이 모두

유럽의 자금이나 아부다비의 자금을 빌어 올려진 것들이란다.

차창 밖을 내다보던 중에 문득 눈이 띄였던 건 그래피티. 아랍에미레이트, 두바이에도 그래피티가 있었다니.

두바이의 모랫빛 건물들, 색깔없는 건물들 사이에서 노랑색 페인트칠된 창고건물은 꽤나 눈에 띄었던 건지

놓치지 않고 낙서를 해놓았나 보다. 더더욱 눈에 잘 띄는 약간 어설퍼보이는 그래피티.

참 단조롭도록 쉼없이 나타나는 공사현장들. 제대로 지어졌다 싶은 건물들도 공실률이 생각보다 꽤나 높댄다.

하긴 이렇게 뭔가 제대로 갖춰지려면 한참 남아있는 '신도시'에 누가 서둘러 입주하겠나 싶기도 하고. 단지

높이 솟은 건물들, 현대식의 독특한 외양을 자랑하는 건물들이 모여있다고 뭐가 되는 건 아니지 않겠지 싶다.

두바이를 배우자고 외치던 사람들은, 대체 뭘 봤던 것일까.

버즈 알 아랍이 저멀리 보이기 시작할 무렵, 조금씩 고급주택가가 나타났다. 너른 공간을 넉넉히 써가며 맘껏

녹색의 푸르름을 과시하는 고급 주택들, 왠지 야트막한 인도와 조그마한 신호등이 귀여웠다. 이제 저 너머로

시야를 돌리면 세계 최고의 칠성급 호텔이라는 버즈 알 아랍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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