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에서 만난 책 한 권, 책을 슬쩍 열어보니 미스코리아 머리를 한 어느 여자가 보인다.

언제 찍은 사진인지 모르겠지만, 93년 11월에 나온 책이니만치 그 이전에 찍은 사진일텐데 지금이나 그때나

별 차이가 없다. 표정이 어색한 건 비슷하려나.

93년까지 썼던 일기들을 모아 발간했다는 책인데, 다시 한번 실감한다. 말이나 글을 그럴 듯하게 잘하기는 참 쉽다.

문제는 그런 번드르르하고 군자연한 말들이 아니라, 꾸준히 관찰하고 지켜보지 않으면 알수 없는 행동의 격.

93년 11월 1일 발간된 박근혜의 일기 모음집, '평범한 가정에 태어났더라면'이다.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에서

눈에 띄인 책, 사실 눈에 뜨이게 전면에 배치되어 있기도 했다. 상실의 시대니 문화유산답사기가 저렇게 빼곡히

꽂혀있어 찾기가 쉽지 않은 것에 비하면, 책방에서도 공주 대접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목이 참 자극적이다 싶었는데-자기가 평범한 가정에 태어나지 못해 아쉽다는 함의 속에 약간의

선민의식과 잘난척하는 '공주' 냄새가 난다면 과한 걸까-아니나 다를까, 몇년 후 이 일기 모음집은 '고난을 벗삼아

진실을 등대삼아'라는 이름으로 증보된다. 그 이름은 근데 더 잘못 지었단 느낌을 지울 길 없다. 고난과 진실이라.


기념삼아 사둘까 하다가 말고서는 집에 와서 찾아보니 '평범한 가정에 태어났더라면', 이 책은 이미 오래전 절판된 책.

헌책방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흥미로운, 그렇지만 다소 찝찝한 책이다.

당신이 '평범한 가정'에 태어났더라면, 이렇게 생색내기 식 김치담기 쑈를 하면서 스티로폼 박스에 그대로

김치를 담지는 않았겠지요. 아이들한테 환경 호르몬을 잔뜩 주입할 생각이 아니었다면. (사진은 연합뉴스)




내가 거리 위를 질주할 때 나와 한방향으로 내달리는 노란선은 성실한 가이드라인이 되지만,

선 밖에 서면 뚫고 들어갈 틈바구니 하나 없이 치덕치덕한 노란 페인트 노란 두께에 숨통이 막힐 지경이다.


제 혼자 질주하는 노란선 안으로 뛰어들어 함께 내달려야, 그 두겹세겹 떡칠한 페인트가 비로소 가벼워보일까.

노란선 밖에서 어쩔 줄 몰라 이리저리 배회하던 하루.





올 한해동안 쓴 다이어리를 책상 서랍에 쟁여넣으려다가 문득 궁금증이 생겨버려 정리는커녕

서랍 안의 이전 다이어리들을 전부 헤집고 꺼내어 버렸다. 여태 내가 썼던 다이어리들이 전부

거기에 있었다. 아무래도 글로 쓰인 최초의 다이어리는 초등학교 1학년때의 일기장.


대체 머릿속에 생각이 있었을지도 의심스러운 1학년이긴 하지만 나름 1학년도 한참 지난 11월께

일기여서 그런지 뭔가 이야기의 흐름이 단순하지 않다. 휙휙 뒤바뀌는 사고의 흐름을 그대로

일기장에 옮겨놓은 듯한 내용. 잠시 여기저기 내키는대로 펼치고 읽다가 부끄러워져버렸다.

그렇게 초등학교 때도 꽤나 열심히 일기를 썼다. 조금씩 공책의 줄간격은 좁아졌고 디자인은

덜 유치해졌으며, 선생님이 바뀌며 매년 색깔과 필체가 다른 첨삭이 더해졌지만, 무엇보다

조금씩 글이 길어지고 그나마 말이 되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달까. 서른 권은 채 안되지만

거의 매일같이 꼬박꼬박 썼던 그 때의 일상들, 지금 다시 보니 참..얘는 뭔가 싶다.

그리고 중학교, 고등학교 때 쓰던 다이어리들. 그러고 보니 그때는 학습지를 시키면 예외없이

저런 다이어리를 선물로 주곤 했었던 거 같다. 따로 파는 속지랑 스티커 연초면 으레 잔뜩

사서는 내키는대로 재구성하고, 삼공 펀치로 구멍을 뚫어서 심은하나 최지우 사진이나 엽서도

함께 꼽아두고. 아, 좋아하는 만화캐릭터도 빌린 만화책에서 몰래 오려서 붙여놓곤 했었다.

아..베르단디, 스쿨드, 울드.;;


차마 그 낯뜨거운 잔해들을 옮겨놓진 못하겠고, 속지만 남겨놓은 어느 일년의 기억들, 그리고

나중에 혹 다시 쓸까 싶어 남겼던 껍데기 몇 개만 슬쩍 놓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군대 때 쓰던 다이어리. 어디에선가 한눈에 번쩍 띄었던 디자인의 공책인데, 그냥

틈나는 대로 날짜 '12/30' 요렇게 적고서 끄적이려고 들고 들어갔었다. 아마 일병 때부턴가

들고 갔던 거 같은데, 그 척박하고 비인간적인 돼지우리 속에서 전우 아닌 친구들과 함께

내 위로가 되었던 녀석이다. 어린 왕자, 다시 땡큐.

안에는 따뜻한 캔 하나에 감격하고 누군가의 편지 한통에 행복한 깨알같은 군바리의 일상이

깜장색 153모나미펜으로 꾹꾹 눌러 적혀있었지만, 그런 일상 이외에도 휴가계획이나 제대후

배낭여행 일정 같은 것들, 졸업논문 아이디어들이 제법 빼곡히 적혀있었다.


제대하고 터키-이집트-시리아-요르단을 가려던 계획을 세우고 저렇게 지도도 직접 그리고,

어디 갈지 여행정보나 참고사이트도 모아두고, 여행 예산을 잡고 휴가 때마다 얼마씩 벌었고

이제 얼마가 더 필요한지 모든 걸 닥치는 대로 모아둔 셈이다. 그러고 보니 다이어리에 더해

여행가이드북, 가계부, 지도 역할까지. 제대할 즈음 머릿속에 꽉 들어찼던 저 지도.

내무실 내 관물함 안에다 만들어서 하루하루 두근대며 그어나가던, 제대맞춤형 디데이달력.

아무리 기분좋고 그럴듯한 하루였다고 해도 "제대만이 살 길이다"라는 문구는 저녁무렵이면

으레 절실하게 다가왔고, 휴가라도 다녀와서 한꺼번에 대여섯개를 긋는 날이면 마치 제대가

내일모레인 양 흥분하고 말았던 거다. 그렇게 하루하루 소중하게 바라보던 이 녀석, 어디있나

했더니 다이어리 속에다가 접어서 보관했구나. 서랍을 뒤지는 소소한 즐거움이 이런 거다.

그리고 2007년으로 훌쩍. 대학 다니면서는 사실 대학수첩을 쓰느라고 따로 다이어리를 사지는

않았고, 그렇다고 대학수첩을 충실하게 쓰지도 않았는지라..아마 당시 '나우누리' 과게시판을

워낙 열중해서 이용한 탓인 듯. 그래서 2007년, 저 이쁜 고양이 다이어리를 썼다.

다이어리를 펼치니 툭 떨어지는 건, 여기저기 꼽아본다고 써봤던 영어 이력서 한 장. 사진만

첨부하지 않았어도 합격률이 더 높았을 텐데, 실수였다.


다이어리가 굉장히 이쁘고 화려했던 게, 페이지 곳곳에서 고양이들이 갸르릉거리면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새를 쫓기도 하고 털실이랑 놀기도 했지만 어깨죽지에서 날개가

돋아 하늘을 날기도 하고, 여하간 굉장히 매혹적인 다이어리였다는.

내 마지막학기 시간표였다. 그러고 보면 은근 다이어리에 이런저런 그림을 그려넣은 게

적지 않았다. 시간표도 그려넣고, 만화캐릭도 그려보고, 기린도 그리고, 대체 왜인지는

몰라도. 아..2007년 상반기까지는 학생이었는데, 세월 참 빠르구나. 진부하게도 빠르다.

학생수첩을 들고 다니던 그 이전 어느해, 2005년 김기덕 감독이 우리학교에 와서 강의를 했었다.

그의 영화를 빼놓지 않고 챙겨보며 일일이 감동을 먹다가 아마도 그때 최신작 '시간'을 보고

뭔가 영화에 대한 질문 겸 이야기를 한 후 받았던 사인. 좀처럼 사람들 사인은 안 받지만, 그는

기꺼이 사인을 부탁할 만한 사람. ([리뷰] 날 환장시키는 김기덕, 시간.)


아, 그리고 왼쪽은 취직준비할 때 지원했던 수많은 회사들. 저거 말고도 더 있을 텐데.

2008년, 사회생활을 시작했다..기엔 좀 진부하지만, 여튼 학교를 벗어나 방학도 없고 조조영화도

없는 세상에서 살아간 첫 해의 다이어리다. 뭔가 이제 학생이 아니니까 좀 단정하고 평범한 걸

써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나름 고심해 골랐는데, 아무래도 넘 심심하다.

원래 그런 건 안 하는데 유일하게 한해동안 본 영화니 공연, 전시회 티켓을 몽창 다이어리에

붙여보던 한해기도 했다. 갈수록 어찌나 두꺼워지고 뻣뻣해지던지, 다시는 안 하리라 다짐.

그래도 이런 신기한 공연도 봤었으니 기억해둘 만 하긴 하다. 한예종에서 있던 공연인데

제목이 무려 '카마수트라, 꿈', 대략 내 취향에 수렴되는 전위적이고 그로테스크했던 공연.

그리고 2009년, 다이어리가 이뻐야 한 해동안 곱게 품고 다니며 쓰게 된다는 간명한 진리를

새삼 깨닫게 된 한 해였다. 물론, 다이어리 뒤에 있는 꽁짜 쿠폰은 좋았지만.

그저 한해 일정만 설렁설렁 연초에 적어두고는, 그다지 수정하거나 추가하지도 않고서

일년이 지나버렸던 거다. 다이어리가 안 이쁘다기 보다는, 뭔가 레디메이드된 형태로

우르르 뿌렸다는 느낌이 워낙 강해서 '내꺼~♡'라는 애착이 안 간 거 같다.

그래도 빈 칸은 생각보다 적었던 건, 영화나 공연을 보고 나서, 혹은 여행을 다니면서

날짜에 구애받지 않고 그냥 공책처럼 이렇게 저렇게 글을 쭉쭉 써댔기 때문인 듯. 아마도

이 페이지는 하루키의 1Q84를 읽고 나서 어딘가로 차를 타고 가던 중에 끄적끄적해둔.

([1Q84] 삶에 대한 '방법적 회의'의 밑장, 그리고 '리틀 피플'의 공갈협박.)

2010년 다이어리는 역시 너무 무거웠던 게 패인이었다. 노란색 가죽이 너무 맘에 들었지만

두껍고 무거워서 다소 부담스러웠달까. 그래도 대충 몇월 며칠에 뭘 하고 무슨 일을 했는지까진

적어두었지만, 소소한 생각들, 낙서들은 연초, 그리고 몇 번 마음을 다잡은 타이밍에 몰려있다.

이제 이틀 앞으로 다가온 2011년 새 다이어리, 고양이가 온통 뛰노는 표지가 그간의

다이어리 중 가장 이쁜 거 같다. 참 잘 샀다 싶어 맨날 자랑질하고 다니는 중.

2011년 잘 부탁해, 다이어리군&만년필양.

그렇게, 신발주머니 옥상으로 날려먹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일기쓰듯 하루하루의 궤적을

적었던 다이어리를 한번 일람하고 나니까 왠지 급 나이들은 느낌이다. 그리고 까맣게 잊고 있던

과거의 기억들이 몇 글자 두들김에 선명하게 내 안에서 살아나는 걸 보고 화들짝 놀라기도 하고.


정리하자면, 2011년에도 계속 잘 남겨보려는 의지 +5, 노화로 인한 우울증 +10, 시간낭비 1시간.




여기저기에 글을 흘리고 다니는 게 취미이긴 하지만, 올해는 (아마도) 블로그와 특히나 트위터

때문에 다이어리가 꽤나 띄엄띄엄, 여백의 미를 과시하는 거 같다. 아무래도 회사용 다이어리와

개인용 다이어리를 별도로 쓰는 것도 원인이긴 한 거 같고. 그래서 올해 말에는 제법 고가의

만년필도 하나, 스스로에게 선물하고 다이어리도 완전완전 사랑스러운 걸로 고르고 말았다.

가죽으로 씌워진 2010년 다이어리는 아무래도 조금 두껍고 무겁고 커다란 느낌이 있어서

매일같이 들고 다니며 끼적대기가 좀 불편하기도 했다. 여행이나 출장을 갈 때도 적잖이

부담스러웠던 게 사실. 덕분에 이미 9월부터 다이어리가 헐벗는 징조는 뚜렷했달까.

(점점 헐벗어가는 2010년 다이어리.)

이번 다이어리는 앞뒤 표지에 온통 금빛 고양이가 가득하다. 꾹꾹이를 하고 식빵을 굽고

이렇게저렇게 몸을 흐느적대는 고양이들이 홀딱 반할 포즈들만 취하고 있는 거다. 아무래도

요샌 트위터에도 흥미를 많이 잃었는지라 내년엔 좀더 이 어여쁜 다이어리를 애용할 생각에

가슴이 두근두근.


다이어리 속에도 온통 고양이가 그득그득, 정말 맘에 들었던 건 단 한 페이지에도 똑같은

도안의 그림이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 까맣고 하얗고 점박힌 온갖 녀석들이 나와서 이렇게

놀이기구도 타고, 나비도 쫓고, 풍선도 띄우고, 한장한장 넘기니 monthly plan이 끝났다.

그리고 시작되는 weekly plan의 페이지들. 날짜 표기가 하나도 안 되어 있어서 아까 조금

1월달치만 미리 적어두다가, 워터맨 만년필을 갈피에 끼우고서 귀염이들과 사진 한 장.

아 진짜..인간적으로 너무 귀여운 거 아니니 니들. 바니걸 코스프레중인 괭이녀석, 바나나

코스프레중인 괭이녀석, 그리고 수면안대를 이마에 쓰고서 말똥말똥한 눈빛을 쏘아주는

괭이녀석들까지. 이 녀석들과 함께라면 2011년 완전 해피할 듯. (그리고 나는 삼십대..ㅋㅋ)


weekly plan 다음에는 무지노트처럼 자유로운 공간이 다이어리 삼분지일쯤 차지하고 있었다.

역시나 실망시키지 않는 고양이들의 대향연. 시간을 두고 찬찬히 들여다보았지만 정말정말

페이지 한 장도 겹치지 않는 컨셉의 그림들이라니, 이년전인가, 썼던 다이어리도 고양이가

우르르 나왔지만 그건 사실 어제의 괭이가 오늘의 괭이였고 또 내일의 괭이였다구.

다이어리를 사면서 함께 산 포스트잍. 꺄아~ 저 눈빛하며 다소곳이 두 앞발을 모아쥐고 있는

모습이라니. 2011년 한 해동안 핥짝핥짝 아끼며 사용해 주겠어.

아, 이번에 2010년 올 한해동안 고생한 스스로에게 사 준 만년필. 꽤나 비싼, 워터맨의

만년필인데 사실 제 값을 다 준 건 아니고, 바자회에 나온 신품을 반 값정도의 가격으로

질러 버렸다. 파커, 라미를 거쳐 이제 워터맨까지 진입했으니..이제 몽블랑으로..?!


2011년 한 해동안 잘 부탁해, 다이어리 군 & 만년필 양. 그리고 페이지 곳곳마다

셀 수 없이 많이 숨어있는 괭이들♡ 내가 여기저기 데려가주께욤.ㅋㅋㅋㅋ



매년 쓸 다이어리를 고르는 건 꽤나 중요한 연말 이벤트 중 하나.

무려 일년 동안 들고 다니며 일정을 챙기고 감상을 끼적일 수첩이니 그 짜임새나 편리함을

심사숙고해서 골라야 하기도 하고, 다이어리가 이뻐야 일년 내내 챙겨다니며 쓸 의욕이 생기기

때문이기도 하다.


올해 들고 다니는 건 만년필 회사 워터맨에서 받은 노란색 가죽의 두툼한 다이어리.

4, 5월까지만 해도 하루에 할당된 공간이 모자라다고 툴툴거리며 빼곡하게 채웠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이가 빠지더니 이젠 급기야 듬성듬성 헐벗어버렸다.


문득 펼쳐본 다이어리가 근 반달 가까이 순결하게 남아있어 살짝 충격. 당장 추석 연휴에

어디어디를 다니며 뭘 했는지도 제대로 기억하기 힘든 상황인데, 씌여진 기억이나마

남아있지 않으면 헛 살아버린 듯한 망연함.

9월 마지막 주가 시작되기 전 다시 바싹 조여매는 정신줄.


(사실은 트위터나 블로그 같은 공간에 글을 끄적거리면서 다이어리에까지 글자를 새겨넣을

욕구나 열정이 조금은 식어버린 탓도 크지 않을까 싶다.)





#1.

대학신문 쪽에서 2학기 개강호에 회사 광고를 실어달라며 컨택이 왔다. 

인지도 못 올려서 안달난 회사도 아니고, 광고라니 뜬금없다 싶었는데 갑자기 1면에 커다랗게 광고를 싣기로.

G20 정상회의 및 비즈니스 서밋의 성공개최를 기원한다는.


후배들의 반응이 대략 두 종류로 갈릴 텐데 두가지 경우의 수 모두 부끄럽다.

저 쓰잘데기없는 대가리들 말잔치갖고 지랄을 트는구나. 일번.

우리나라가 '지구촌 유지'의 일원이 되고 개최국이 되었다니 뿌듯하구나. 이번.


일번은 내가 부끄럽고, 이번은-이번처럼 생각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그들이 부끄러워지겠지.

정말 그렇다. G20 따위 말의 성찬만 벌어지는 행사 때문에 수능도 미루고, 택시기사들 두발검사도 하고,

온갖 광고를 통해 '국론 통일'을 기하는 그들의 정치적 의도와 유치하고 천박한 동원방식이라니.


하아..짱난다. 대학신문은 재정도 부족치는 않을 텐데 광고 유치에 있어서도 좀 걸러서 받지. 제길.



#2.


어제는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 초청 오찬행사에 갔었다. 신라호텔에서 있었던 오찬,

왕의 형님, 상왕, 이상득 의원은 전날 본인이 만찬도 주재했다더니 여기 오찬에도 왔었고, 청와대에서 있었던

만찬까지 빠지질 않았다. 자원외교의 선봉장이란 이미지가 그에게 그만큼 절실한 거겠고, 굳이 볼리비아

리튬 자원의 중요성을 폄하할 생각도 없지만, 공석에서 일국의 대통령을 일러 '동생'이라 칭하는 그런 사람의

맨파워에 기대어 우리나라 자원외교를 하기엔, 너무도 불연속적이고 불안하기만 하다.


개인의 공과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로 해결되어야 할 텐데, 송민순 전장관이 격하게 비판한 것처럼 지금 정부의

외교는 사실상 외교가 아니다. 대강의 정책도 없고, 일관성도 없으며, 나름의 레버리지를 활용하겠다는 것도

없으니. '자원외교'도 이상득 일개인의 공적이 아니라 한국외교 전체의 공적이 되어야 하는 거다.


볼리비아엔 리튬만 있는 게 아니다. 전력 생산이나 광물 분야에 대한 적극적인 국유화를 통한 수익의 국가적

환원을 꾀하는 '빨갱이식 정책', 노인복지 및 학자금 지원확대를 통한 적극적 내수진작책까지. 자원만 빼먹을

생각말고 이런 아이디어를 배우는 건 어떨지.






故김대중대통령 추모 공식홈페이지(http://211.233.13.92/?brch=1)에 고인의 마지막 일기 중 일부가 PDF형태로

공개되었다. 생각보다 현 정권에 대해 '세게' 발언한 부분도 공개되어서 왠지 안심했다. 고인이 생전에

침묵하지 않으셨다는 게 안심이 되었고, 서거 후에도 타의에 의해 침묵당하지 않으셨다는 것 역시 안심이

되었달까.



■ 건강에 대한 언급

"살아있다는 것이 행복이고..건강도 괜찮은 편인 것이 행복이다. 불행을 세자면 한이 없고 행복을 세어도 한이 없다."(2009. 5. 2)

이렇게 건강도 괜찮으셨다는 분이 갑작스레...역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충격이 크셨던 게다.


■ 노무현 대통령에 관한 언급

"노 대통령도 사법처리 될 모양. 큰 불행이다. 노 대통령 개인을 위해서도, 야당을 위해서도, 같은 진보진영 대통령이었던 나를 위해서도, 불행이다. 노 대통령이 잘 대응하기를 바란다."(2009.4.18)

고인은 스스로를 노 전대통령과 함께 "진보진영 대통령"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한국 사회에서 '권력을 가진 진보'라는
것에 주어지는 운신의 폭이란 그 두 분의 서거를 돌이켜도 빤히 보이는 것 같아 답답하다.


"자고 나니 청천벽력 같은 소식-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했다는 보도. 슬프고 충격적이다. 그간 검찰이 너무도 가혹하게 수사를 했다. 노 대통령, 부인, 아들, 딸, 형, 조카사위 등 마치 소탕작전을 하듯 공격했다. 그리고 매일같이 수사기밀 발표가 금지된 법을 어기며 언론플레이를 했다. 그리고 노 대통령의 신병을 구속하느니 마느니 등 심리적 압박을 계속했다. 결국 노대통령의 자살은 강요된 거나 마찬가지다."(2009.5.23)

결국 노대통령의 자살은 강요된 거나 마찬가지다....마치 소탕작전을 하듯 공격했던 사람들, 침묵을 지키고 있는 그들.

"고 노 대통령 영결식에 아내와 같이 참석했다. 이번처럼 거국적인 애도는 일찍이 그 예가 없을 것이다. 국민의 현실에 대한 실망, 분노, 슬픔이 노 대통령의 그것과 겹친 것 같다. 앞으로도 정부가 강압일변도로 나갔다가는 큰 변을 면치 못할 것이다."(2009.5.29)


전례는 없었겠지만, 생각보다 금방 또다른 사례가 생겨나고 있습니다...그런데 전현직 대통령 중 당신의 추도사는
누가 해줄지, 누가 이렇게 진심을 담아 울어줄지...먹먹해지네요.


■ 정치적 시사점을 던지는 언급

"끝까지 건강 유지하여 지금의 3대 위기-민주주의 위기, 중소서민 경제위기, 남북문제 위기-해결을 위해 필요한 조언과 노력을 하겠다. '찬미예수 백세건강'"

야당 정치인들이 뭐라뭐라 떠들기는 하지만, 김대중 전대통령만큼 명징하게 현재의 위기상황을 정리한 사람은 없었다.
대정부 비판을 위해서 제대로 된 프레임을 마련해 주었고, 실제로 이후 야당은 이 세가지를 잘 활용하고 있다.


"용산구의 건물 철거 과정에서 단속경찰의 난폭진압으로 5인이 죽고 10여 인이 부상 입원했다. 참으로 야만적인 처사다. 이 추운 겨울에 쫓겨나는 빈민들의 처지가 너무 눈물겹다."(2009.1.20)

동계 철거는 실시하지 않는 게 상례였다는 점에서, 용산 참사는 사정을 아는 모두에게 매우 예기치 않았던 비극이었다.
빈민들의 처지가 눈물겹다고 일기에 적는 당신의 모습에서, 20대 체게바라의 감수성을 본다면 과장일까.


"역사상 모든 독재자들은 자기만은 잘 대비해서 전철을 밟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결국 전철을 밟거나 역사의 가혹한 심판을 받는다."(2009.1.16)

지금이 독재인지 아닌지, 그걸 이론적으로 따지고 분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적인 구속감, 자유의 박탈감'이
더욱 중요한 거 아닐까. 마치 빈부차에 있어 '상대적인 박탈감'이 '절대적인 박탈감'보다 중요한 요소듯이.


"여러 네티즌들의 '다시 한 번 대통령 해달라'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다시 보고 싶다, 답답하다, 슬프다'는 댓글을 볼 때 국민이 불쌍해서 눈물이 난다. 몸은 늙고 병들었지만 힘닿는 데까지 헌신, 노력하겠다."

국민이 불쌍해서 눈물이 난다...는 노 정객의 다짐. '삼김'이라 도매금으로 묶였지만 줄곧 피해자의 위치에 서있었고,
YS 대 DJ의 라이벌구도라 하지만 사실 YS만큼의 막말을 던진 적이 없는 고인. YS와 JP의 일기장엔 뭐가 적혀있을까.
그리고 우리의 MB 일기장엔 대체 뭐가 들어있을까.


■ 촛불집회 관련 언급

"(인류의 역사는 지식인이 헤게모니를 쥔 역사 같다며...)21세기 들어 전 국민이 지식을 갖게 되자 직접적으로 국정에 참가하기 시작하고 있다. 2008년의 촛불시위가 그 조짐을 말해주고 있다."

촛불시위에 대한 이런 심정적 지지, 온건한 입장을 갖기란 '노땅'의 마음가짐으론 쉽지가 않을 터다. 평생의 살아온 길이
고인의 열린 마음, 합리적인 판단을 가능케 한 것일까. 정말 대단한 정치인이었다.



■ 아내와의 사랑

"요즘 아내와의 사이는 우리 결혼 이래 최상이다. 나는 아내를 사랑하고 존경한다. 아내 없이는 지금 내가 있기 어려웠지만 현재도 살기 힘들 것 같다."

"하루 종일 아내와 같이 집에서 지냈다. 둘이 있는 것이 기쁘다."

이희호 여사와의 관계가 참 돈독하셨나 보다. 둘이 있는 것이 기쁘다, 라는 표현에 담긴 애정이 잔잔하게 와닿는다.


■ 기타

"꽃을 많이 봤으면 좋겠다. 마당의 진달래와 연대 뒷동산의 진달래가 이미 졌다.지금 우리 마당에는 영산홍과 철쭉꽃이 보기 좋게 피어 있다."

"내가 살아온 길에 미흡한 점은 있으나 후회는 없다."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

"나에 대해서 허위사실을 공표한 한나라당 의원에 대해서(100억 CD) 대검에서 조사한 결과 나는 아무런 관계 없다고 발표. 너무도 긴 세월동안 '용공'이니 '비자금 은닉'이니 한 것, 이번은 법적 심판 받을 것."

"가난한 사람들, 임금을 못 받은 사람들, 주지 못한 사람들, 그들에게는 설날이 큰 고통이다."



p.s. 김대중 전 대통령님, 허락을 안 받고 감히 '마지막일기' 파일을 제가 첨부하려 합니다. 널리 읽혔으면

하는 마음으로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올리오니 부디 넓은 마음으로 혜량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곳은, 평안하신지요.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