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비밀은 이런 거야. 매우 간단한거지.

 

오로지 마음으로 보아야만 정확하게 볼 수 있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 법이야."

 

 

다른 사람에게는 결코 열어주지 않는 문을...


당신에게만 열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야 말로... 당신의 진정한 친구이다.

 

 

 

쁘띠 프랑스, Petite France 곳곳에서는 쁘띠 프린스, 어린 왕자의 자취를 찾을 수가 있다. 프랑스의 대표적 작가 중 하나인

생떽쥐베리 재단의 공식 라이센스를 갖고  '쁘띠 프린스'를 초청해 '쁘띠 프랑스'를 더욱 풍요롭게 만든 것.


어린 왕자는 평소 자신의 조그마한 별 구석구석을 잘 관리해주었다던가. 별을 꺠뜨릴 수 있는 바오밥나무 씨앗을 솎아내고,

화산이 막혀서 폭발하지 않도록 잘 청소도 해주고. 장미꽃의 진딧물을 잡아내고 유리케이스를 씌워주기도 하고.

생떽쥐베리가 어린 왕자에게 그려줬던 양 한마리. 병든 양, 염소같은 양, 뿔이 난 양 따위를 걸러내는 날카로운 선구안을

가진 어린 왕자가 맘에 들어했던 건 사실 상자 속에 들어있던 양이었는데. 그 상자는 여기에서 못 본 거 같다.

별들을 여행하던 어린 왕자가 만난 어른들.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하고, 술에 취했으며, 쓸데없는 일을 벌여놓고는

스스로 만족하려 애쓰고 있거나 우울함에 빠져있곤 했다. 더이상 나와 전혀 관계없는 딴세상 이야기라 말할 수 없는 것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일이 뭔지 아니?"
"흠... 글쎄요. 돈버는일? 밥먹는일?"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일은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일이란다.
각각의 얼굴만큼 다양한 각양각색의 마음을...
순간에도 수만가지의 생각이 떠오르는데
그 바람같은 마음이 머물게 한다는건 정말 어려운거란다."


"안녕, 잘 있어" 어린왕자가 말했다.
"안녕, 잘가.... 참, 내 비밀을 말해줄게. 아주 간단한 건데.
그건 마음으로 봐야 잘 보인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단다.

"사막을 아름답게 하는 건, 사막이 어딘가에 우물을 감추고 있어서에요..."
"맞아. 집이나 별이나 사막이 아름다운 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야."
"아저씨가 내 여우와 의견이 같아서 기뻐요."



"널 길들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니?"
"아주 참을성이 많아야 해. 우선 넌 나와 좀 떨어져서 그렇게 풀밭에 앉아있는 거야.
곁눈질로 널 볼 거야. 넌 아무 말도 하지마. 말은 오해의 씨앗이거든.
그러면서 날마다
너는 조금씩 더 내게 가까이 앉으면 돼."

"..."
"..."

"너는 매일 같은 시간에 오는 게 더 좋을 거야.
가령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세 시부터 나는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시간이 가면 갈 수록 그만큼 나는 더 행복해질 거야.
네 시가
되면 이미 나는 불안해지고 안절부절못하게 될 거야. 난 행복의 대가가 무엇인지 알게
될 거야."

"나는 해 지는 풍경이 좋아.
우리 해지는 구경하러 가..."
"그렇지만 기다려야 해."
"뭘 기다려?"
"해가 지길 기다려야 한단 말이야."

다른 사람에게는 결코 열어주지 않는 문을...
당신에게만 열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야 말로... 당신의 진정한 친구이다.

"지금은 슬프겠지만
그 슬픔이 가시고 나면(슬픔은 가시는 거니까)
넌 언제까지나 내 동무로 있을거고,
나와 함께 웃고 싶어 질꺼야."

"사막은 아름다와.
사막이 아름다운건
어디엔가 우물이 숨어있기 때문이야.
눈으로는 찾을 수 없어, 마음으로 찾아야 해."

"밤에 하늘을 바라볼 때면 그 별들 중 하나에 살고 있을 테니까.
모든 별들이 다 아저씨에게 웃고 있는 듯이 보일거야."

"누구나 다 친구를 가지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를 잊는다면 나도 숫자 밖에는 흥미가 없는 어른들과 같은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황금빛 머리카락을 가진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정말 근사할 거야. 
그렇게 되면 황금빛이 물결치는 밀밭을 볼 때마다 네 생각이 날 테니까...
그렇게 되면 나는 밀밭 사이로 부는 바람소리도 사랑하게 될 테니까..."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요.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우물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에요.
별이 아름다운 건 보이지 않는 꽃이 있기 때문이에요.
꽃이 아름다운 건 우리가 정성을 들인 시간이 아깝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네가 나를 기르고 길들이면 우린 서로 떨어질 수 없게 돼.
넌 나에게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사람이 되고 난 너에게 둘도없는 친구가 될테니까."

"누가 수천, 수백만 개의 별들 중에서
 하나밖에 없는 어떤 꽃을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그 별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거야."

자그마한 종들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저 버섯같이 생긴 녀석이 '바오밥나무'를 표현하려 했단 건 나중에 알았다.

"내 비밀은 이런 거야. 매우 간단한 거지.
오로지 마음으로 보아야만 정확하게 볼 수 있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 법이야."


"너는 그것을 잊으면 안돼.
너는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는 거야.
너는 네 장미에 대해 책임이 있어."



가평에 있는 쁘띠프랑스, Petite France. '조그만, 작은, 이쁜' 프랑스라는 의미일 텐데 워낙 잘 알려져 있는 곳이고,

사진으로도 많이 담긴 이쁜 곳이니만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주차장에 차를 대려니 이미 차들이 그득그득, 인도해 주는대로 길가에 차를 대고 매표소입구로. 아직 바람이 차갑다.

입구를 지나면 나타나는 이국적인 풍경. 파스텔톤의 벽면이나 따뜻한 색감의 기와들, 다양한 표정의 실루엣들이다.

자그마한 분수 광장을 둘러싼 노란 파라솔들, 그리고 다시 파라솔들을 에워싼 색색의 건물들. 그치만 위압적이진 않은.


빨간 제라늄꽃이 창틀에 놓인 건물 사이로 마을의 다른 건물 지붕들이 내려다 보인다.

겨우내 추위와 찬바람에 시달렸을 것들이 이른 봄볕을 찹찹찹 게걸스레 핥고 있다.

제법 복잡하게 이리저리 꼬인 계단들, 산토리니의 새하얀 계단형 건물들을 살짝 떠올리게 만드는.


아직은 누렇게 말라죽은 채인 풀밭이지만 조금만 더 날씨가 풀리고 따뜻해지면 꽃과 잔디가 융단처럼 깔릴 꽃밭.

갤러리 앞에는 벼룩시장이 열렸다. 도자기 인형들이나 접시가 바닥에 누워있는 모습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노랑 우체통.

양철 주전자들이 띄엄띄엄 바닥에 늘어서 있는 폼이 불규칙하면서도 제법 느낌있다.

갤러리 안에 전시된 마리오네트 인형. 얼굴표정이나 옷감의 분위기 같은 것들이 굉장히 섬세하다. 툭 튀어나온 앞니까지.


마리오네트 인형들은 왜 이렇게 전부 인상적인 표정과 기괴한 외양을 갖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눈을 높이 맞추고 있다가 문득 바닥으로 내렸더니 왠 화관을 쓴 처자가 비둘기를 한마리 건네주려고 한다.

안으로 들어가니 생각보다 공간이 넓고 길다. 그 공간을 온통 꽉꽉 채운 프랑스 느낌 가득한 소품들과 장식품들.

프랑스를 상징하는 새, 프랑스의 국조는 수탉이란 걸 갤러리에서 새삼 실감했다. 온통 수탉을 형상화한 장식품들.




근데 한국의 나라새, 한국의 국조는 뭐더라. 까치였던가 싶긴 한데 확신이 없어서 검색해보니 역시 '까치'가 맞단다.

갤러리를 나와 조그마한 프랑스 마을 같은 쁘띠프랑스 내부를 걷는데 딱 나타난 사진찍기 좋은 곳. 사랑하는 사람과

커피를 나란히 내려놓고 카메라 쟁탈전을 벌였던 곳이기도 하다. 


쁘띠프랑스의 전경, 그리고 청평호수까지 멀리 내려다보이는 전망대. 오르내리는 계단이 워낙 좁단 게 에러지만.

이렇게 쁘띠 프랑스의 색색 빛깔의 이쁜 건물들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거나,

청평댐이 버티고 막아서서 바다처럼 넓은 청평호수와 어른거리는 산그림자까지도 보이는 전망이니 올라갈 만 하다.


야생화 산책길을 지나 '사랑의 종탑'으로. 어린 왕자의 스토리에서 '사랑'과 관련한 경구들은 무수히 뽑아낼 수 있겠지만

1층에서 2층, 2층에서 3층을 오르며 사랑에 대한 마음가짐이나 태도를 이르고는 비로소 종에 다다른다. 대앵~ 대앵~

3월 18일부터 시작되었다는 유럽동화 인형극축제, 평소에 하던 샹송공연이니 마임쇼에 더해서 인형극도

열리고 목각인형 콘서트 같은 것도 열리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오후가 무르익을수록 점점 늘어나는 꼬마손님들.

안내 포스터에 나왔던 그 여자분이 그대로 나와서 샹송을 부르는 공연. 조금 딱딱한 표정을 짓고 있던 아저씨들이

문득 어깨를 들썩이며 박수를 치더니 뜨겁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안녕하세요'와 '감사합니다'라는 한국말만 하는 수준의 샹송 가수를 받침해주던 악기는 기타, 그리고

약 백오십년 전쯤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전통악기, 그리고 아코디언 한대.

따님의 초등학교 시절 아코디언을 들고 와 연주하시던 이 분이 활을 이용해서 켜는 방식의 프랑스 악기, 무려

한국에 한대밖에 없다는 이 악기도 연주하셨다. 건반이 감겨있는 모자라거나 어깨의 금색술이 인상적인 분.

 

쁘띠프랑스가 워낙 잘 알려진 명소가 된 데에는 장소 자체가 워낙 이쁘게 잘 꾸며진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몇몇

방송에 등장하면서 더욱 유명세를 얻은 것 같기도 하다. 베토벤바이러스라거나 시크릿가든, 러닝맨까지.

특히 '베토벤 바이러스'의 경우는 메인촬영지가 그대로 보전되어 있어서 전출연자들이 사인도 남겨놓고 세트장의

배치도 고스란히 간직해두었다고 한다. 뭐, '베토벤바이러스'던 '시크릿가든'이던 드라마를 안 봤으니 별 감흥은 없지만.



그 옆에 바로 인접해 있는 건물은 '프랑스 전통주택관'. 근 이백년 가까이 된 프랑스의 고택을 그대로 옮겨다놓은

전시관이라고 하는데, 주름살처럼 깊이 골이 패인 기둥 하나만 봐도 이 집의 범상치않은 연륜이 느껴진다.

천사가 호롱불을 들고 날아다니는 천장에는 슬쩍 단발 비행기도 날아다니고 있지만 현란한 접시장식들로 숨겨졌다.

이것도 한 이백년쯤 되었으려나, 애기들이 타고 놀았을 목말이랄까, 세발자전거랄까.

집 한채를 통째로 옮겨왔다고 하니 이런 전등갓처럼 세세하고 고풍스런 장식물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

이백년전 프랑스의 저택에 살던 사람은 이런 세면대에서 세수를 하고 이를 닦았겠구나. 세련된 색감이나 문양이 참.

화장실의 전경. 앞에서부터 세면대, 변기, 그리고 욕조 하나. 끝.

그런데 이 변기는 남성 전용인 걸까 아니면 남성 소변 전용인 걸까. 이도저도 아니면 그냥 모든 걸 다 저기서 해결?

인형극장 앞에 있던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의 기념사진 촬영용 판넬. 선그라스를 멋지게 낀 애기가 백설공주의

얼굴을 훔치고는 활짝 웃고 있었다.

프랑스나 유럽의 인형극을 부정기적으로 여는 극장이라고 하는데, 'Guignol', 기뇰이란 건 프랑스 전통의

손 인형극을 말하는 거라고 한다. 4-50석 되어보이는 자리가 꽉 차서는 빨간망토 소녀 인형극을 관람.

15분쯤 되는 그리 길지 않은 이야기에 빠른 템포로 전개되는 이야기, 간단한 구조와 심플한 등장인물들까지

아이들이 보기에 딱 좋은 내용과 분량인 듯. 감탄할 만큼 현란한 손놀림이나 부드러운 움직임도 관람 포인트.


처음에 한바퀴 돌아보면서는 그리 크지 않은 조그마한 마을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볼 것들도

많고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생각보다 시간을 오래 들이며 걷게 되었지만, 각도마다 달라지는 풍경도 한 재미.




돌아나오는 길. 샹송 공연에 인형극 공연까지 챙겨보느라 한 세네시간 정도 걸린 듯 하다. 그렇지만 까페에 들어가

커피랑 츄러스도 맛보고, 중간중간 앉아서 쉬기도 했으니 완전 널럴한 페이스였단 걸 감안하면, 작긴 작구나.ㅎ


쁘띠프랑스에서 체크아웃. 조금만 더 날이 따스해지고 야생화니 잔디가 불긋푸릇해지면 더욱 이쁜 풍경이지 않을까.




 

안녕, 어린왕자는 잘 있니. 사막여우를 만났다. 이집트 사막에서도 총총이 찍힌 발자국밖에 못 봤던 녀석인데,

가을 낙엽을 보러갔던 서울대공원에서 볼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자그마한 몸집, 커다란 귀에 귀여운 얼굴.

샐쭉한 표정이 왠지 고양이를 닮은 거 같기도 하고, 전반적으론 강아지 같긴 한데. 고양강아지랄까.

미어캣. 언젠가 방송에서 이 녀석들의 생태를 담은 다큐를 본 적이 있는데, 전부다 뒷다리에 힘주고 꼿꼿이 서서

멀리 경계하는 포즈가 너무 인상적이었다. 제발 한번만 한마리라도 뒷다리로 우뚝 서봐봐,라고 진지하게

부탁했지만 이녀석, 한참 튕기다간 마지못해 뒤돌아서 서보이더라는.

이녀석도 뭔가 미어캣처럼 두발로 깡충 서는 포즈를 선보이는 동물이었던 거 같은데, 이름이 뭐였더라.

프레리독이었던 거 같다. 컹컹, 개 짖는 소리를 낸다고 했던가. 두발로 선다는 게 저렇게 퍼져 앉는 포즈를

말하는 건 아닐 텐데.

개미핥기, 이 동물이 대중적으로 알려진 건 '개그콘서트'에서 개미퍼먹어, 란 개그가 뜨면서부터 아닐까 싶은데.

참 볼품없이 생기긴 했다. 정장용 옷걸이처럼 굽어져서는 어깨뽕처럼 복슬한 느낌을 주는 개미핥기가 할짝할짝.

나무늘보, 시속 240미터의 지구상에서 가장 느린 동물이라는 설명이 붙어있었다. 계산해보면, 분속 4미터인 셈.

일분에 4미터를 어기적어기적 혼신의 힘을 다해 기어가는 모습을 어디 한번 봐줄 생각이었는데, 의외로 날카로운

발톱을 얽어놓아 나무에 철컥 매달려서는 꼼짝도 안 했다.

초등학생 때였나, 동물도감을 보다가 굉장히 신기하게 생각하며 주위 친구들한테 이런 동물 아냐고 자랑하듯

묻고 다녔던 그놈. 아르마딜로다. 딱딱하고 무거운 갑주를 걸친 듯한 외모도 특이하고, 여차하면 몸을 둥글게

말아버릴 수 있다는 것도 독특한 게, 어려서는 공벌레가 무지무지 커지면 아르마딜로가 되는 걸까 생각했었다.

몰랐던 사실 하나, 저렇게 하얀 털이 숭숭 징그럽게 나있는 줄은...;;

울부짖는 물개 아저씨, 입을 쩍 벌리니까 토토로랑 비슷한 거 같기도 하고. 가지런히 늘어선 이빨이 온통

새까만 게 건강에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올겨울엔 물개 아저씨네 임플란트 해드려야겠어요.

'홍학'이란 새는 발음하기가 참 쉽지 않은 것이어서 '학'의 기억을 마저 발음하려 애쓰던 혀는 늘 미끄러져

'합'에 가까운 소리에 머물고 마는 것이다. 유연하게 움직이는 길다란 모가지는 어쩌면 내 혀보다도 더욱

능란하고 미묘하게 움직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영덕대게를 떠올리게 만든느 길다랗고 뻣뻣한 다리조차

우아하게 사뿐사뿐 즈려밟는 녀석이니.

그와는 반대로, 목이 완전 뻣뻣한 녀석들이 길다랗기까지 하다는 건 사실 꽤나 큰일이다. 털이 헝클어졌을 때

고양이처럼 자기 혀로 자기 털을 다듬을 수도 없을 테고, 잘 때도 여느 동물들처럼 고개를 꺽은 채 둥글게 만

몸뚱이를 베개삼을 수도 없을 테고, 뭔가 늘 부족한 느낌일 거 같다. 몸뚱이도 때론 버거운 판에, 몸뚱이 위에

또 그만한 사이즈의 몸뚱이가 하나 더 얹혀 있는 느낌 아닐까.

낙타의 시크한 듯 빈정대는 표정은 익히 알고 있으니 간단하게. 꾸물럭꾸물럭 입을 놀려대는 모양새는 언제봐도

참 얄밉단 말이다. 그래, 니녀석은 등 위에다가 기름이랑 양분이 담긴 혹주머니를 얹고 있으니 든든하다는 거냐.

가지런히 모은 앞발, 단단히 버티고 선 뒷발. 성스러운 대지의 에너지 순환에 임하는 엄숙한 자세.

물색없이 구박하러 다가왔다가 역사적 순간에 동참하게 된 옆 친구녀석은 슬쩍 고개를 돌려주는 센스를.

곰들은 사진찍히는 데 이력이 난 듯 했다. 한 녀석이 슬쩍 귀염둥이 포즈를 취해서 시선을 집중시키는데 성공하면,

그걸 보고 있던 옆엣 녀석이 슬쩍 포즈를 따라한다. 그런 와중에 울타리 바로 앞까지 바싹 붙어서는 마치

'돈 좀 있냐'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 곰 녀석. 돈이 아니면 '코카콜라'일지도 모른다.

이 곰탱이는 포즈가 은근 인형같다. 앙증맞게 매달려 있는 두 귀도 그렇고, 철푸덕 앉았다는 느낌으로 아무렇게나

던져둔 두 뒷발도 그렇고. 그 와중에 가지런히 날이 선 손톱 열개와 발톱 열개의 위엄.

호랑이들은 뭐, 올초에 왔었을 때 눈도장 찍고 갔으니까 가볍게 스쳐지나주고. 근데 찍고 나서 보니 저 가운데

녀석 왠지 사방에서 다구리 당하는 느낌. 왼쪽 녀석은 머리로 치받고, 오른쪽 녀석은 굵직한 꼬리로 찰싹

때리는 것 같은 순간이 잡혔다.

질펀한 엉덩이라는 표현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 동물이 또 있을까 싶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다고, 토실하다 못해

투실투실 정말 질펀질펀한 엉덩이만큼이나 깊은 골짜기가 패여있었다. 게다가 대충 만들어서 엉덩이 아무데나

대충 붙여놓은 듯한 저 꼬리는 뭐냐. 심하게 좌우대칭을 벗어난 위치인 거 같은데.

모래찜질을 즐기는 코끼리 아저씨는 코가 손이래, 과자를 주면은 코로 받지요, 라지만. 요새 동물원 우리들은

전부 씨씨티비가 달려있어서 누군가 과자를 던져줄라 치면 바로 경고 방송이 나오더라는.






이효석이니 정지용이니, 지역을 대표할 만한 인물이 있다는 건 지자체들로서는 꽤나 '땡큐'한 일일 거다. 아니,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외국끼리도 산타클로스의 고향이 핀란드니 아이슬란드니 하면서 툭탁대면서 서로

갖겠다고 야단인 걸 보면, 요새같이 '마누라와 자식들 빼고 다 파는', 심지어 자신조차 좋은 값에 팔기 위해

버둥대는 시대에 정말정말 땡큐한 일일 듯. 강원도 평창의 인물, 가산(可山) 이효석 문학관으로 향하며 가장

처음으로 들었던 생각.

이효석, 그는 '메밀꽃 필 무렵'으로 중고교 교과서를 평정해버린 인물인 거다. 그 밖의 '분녀'니 '화분'이니 몇개

읽었던 작품들도 있긴 하지만, 그리고 그의 문학관 가는 길목에 문처럼 버티고 선 저 커다란 책들이 보여주듯

다른 대표작들도 많다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메밀꽃 필 무렵'의 그 선뜩하고 소름돋도록 아름다운 묘사들의

임팩트가 워낙 크다. 내게 가장 인상깊은 구절은 "짐승같은 달의 숨소리" 운운하던 그 대목.
 
길 오른편으로 선명한 녹색과 노랑색 모자이크가 조그맣게 펼쳐진 논밭 풍경을 끼고 메밀밭에 포위당한 언덕을

조금 올랐다. '소금을 뿌린듯이' 하얗다는 메밀꽃은 8월말에서 9월초쯤에 피는데, 그때 맞춰 이곳에선 지역

축제가 벌어진다 한다. 올해는 축제기간 중 대부분 비바람이 몰아쳐서 영 재미가 없었다는 메밀부침팔던

아주머니의 전언.

그렇지, 이 대목이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풀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굉장히 운치있고 애잔하면서도 에로틱하고 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섹시한 묘사. 이효석은 정말이지 푸른 달이 풀포기와 옥수수 잎새를 폭풍처럼 덮치는 광경을

보고 말았던 건지도 모른다.

'메밀꽃 필 무렵'의 처음부터 끝까지가 새겨져 있는 판목, 이효석 문학관 바깥 벽면에 걸려 있었다. 잠시 발걸음

멈추고 좋아하는 구절을 찾아보고, 기억이 가물가물하던 장면을 되짚어 읽어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길다면 긴,

그렇지만 사실 굉장히 짧아 보이는 저만큼의 글자들 무더기 안에, 물레방앗간의 속살거림이 있고 달이 따르며

비추는 길도 있고 '짐승같은 달의 숨소리'도 생생하게 담겨 있는 거다.

사실 초기 이효석은 당대 식민지 조선의 인텔리 청년답게 사회주의, 러시아혁명에 동조했던 '동반자 작가'의

일인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일제가 계급주의 문학을 탄압하기 시작한 30년대 초반, 그리고 이효석 개인으로서는

열흘남짓 조선총독부 검열계에서 일하다가 때려치고 말았던 그 즈음부터 그는 인간의 애정욕이라거나 자연에

집중하는 탐미적인 글들을 쓰기 시작한다.


왠지 굉장히 와닿던 구절. "사상적 동감보다도 시각적 애정으로 첫눈에 끌은 그를 주리야가 사랑하지 않을 리

없었다...사람의 육체에 눈이 있고 심장이 있는 이상 이것은 결코 죄악이 아니라고 그는 생각하였다...감정의

명령을 잘 좇는 것이 도리어 양심에 충실한 소이가 아닐까 생각하였던 것이다."([주리야], 이효석)

그의 서재 모습을 재현해 놓은 공간에서 지금의 우리가 느끼는 것과 그때 이효석이 자아내려고 했던 느낌과는

사뭇 다른 점이 있을 거다. 그가 빵과 버터를 즐기고 프랑스 영화감상을 즐기며 유럽여행을 늘 꿈꿨다고 해서

이걸 단순히 서구지향적이라거나 서구적 취향을 갖고 있었다, 라고 이야기하고 말기에는 그 시절의 '서양'과

지금의 '서양'은 꽤나 다른 뉘앙스를 풍기는 거 같다. 그 시절의 '서양'은 뭔가 바다너머, 평생 한 번 가보기도

힘든 그런 곳. 일종의 '피안'이랄까 '노스탵지어' 같은 공간 이미지 아니었을까.


그런 곳을 지향하던 이효석의 지향은 오늘날로 바꿔 이해하자면, '달'이나 '외계' 정도로 알아들음 되려나.

그런 점에서 그를 '서구지향적 모더니스트'라고 하기보다는 '보헤미안' 아님 '노마드(실향민)' 정도로 지칭하는게

좀더 적실한 측면이 있어 보인다. 시대적 좌절 속에서 정면으로 맞서지도 적응하지도 않으면서, 자신의 취향대로

시대에 반응하던 존재. 빵상아줌마나 허경영 따위 짭퉁 말고, 밤하늘 어딘가 자신이 돌아갈 곳이라 믿는 작은 별

B-612를 그리는 어린왕자 쯤이 이효석의 문학세계의 감수성에 맞을 듯.

그렇지만 지구에 불시착한 어린 왕자같은 그인지라, 한글 실력은 참. 도무지 알아보기도 쉽지 않은 난필이다.

'메밀꽃 필 무렵'이 영화로도 만들어졌었다는 사실. 이효석의 다른 작품인 '분녀' 역시 영화화되었었다고 한다.

책을 보고 영화로 다시 보게 되면 십중팔구 실망하기 마련인데 저 영화를 봤던 사람들은 어땠을까. 조금은

아슬아슬하고 색정적인 이미지들을 머릿속으로만 그리다가 직접 눈으로 보게 되어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자그마한 문학관이 나름 칸칸이 알차게 꾸며져 있어서, 메밀의 효능과 메밀을 활용한 음식들을 구경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돌아나오기까지 한참이나 걸렸다. 굉장히 담백하고 선굵게 그어진 '화장실' 사인부터 찾아 한숨돌렸다.

문학관이 C자형으로 둘러싸고 있는 자그마한 정원 한귀퉁이에 섰던 빨간 우체통. 이효석 문학관과 봉평을

홍보하는 무료 엽서에 글을 적어 우체통에 넣으면 나중에 배달이 된다는.

정원 한가운데 책상에 앉아 공책을 펼치고 머릿속 단어들을 가다듬고 있는 가산 이효석의 동상이 있다. 마침

누구라도 와서 앉을 수 있게 비어있는 의자도 이효석 옆자리에 마련되어 있어서 함께 사진찍고 돌아서기 딱

좋은 공간인 듯. 그게 아니라도 이렇게 이쁘장하게 꾸며놓은 벤치도 있고.

문학관 안에는 '메밀꽃 필 무렵'의 인상적인 장면 몇몇을 재현해놓은 인형 세트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그 유명한 '물레방앗간' 장면에서 느껴지는 저 생생한 긴장감과 벌떡거림이란. 젊던 허생원의 손끝이

갈피를 못 잡고 허둥대는 것만 같다.

문학관에서 조금 내려와 걷다보면 이내 그 물레방앗간이 나타난다. 허생원과 동이들이 술을 마시던 '충주집'은

원래 실존했던 거여서 예전 위치 부근에 '복원'해 놓았다고 하고, 이 물레방앗간은 이효석 생가를 복원하면서

함께 만들어 놓은 것이라 한다. 그렇지만 낮에도 저렇게 깊고 완고한 어둠이 자리잡고 있는 곳이라니 왠지

이전에 존재하던 '레알' 물레방앗간과 크게 다르지도 않을 거 같다.

이효석 문학관 주변은 온통 메밀전, 메밀동동주를 파는 집들이다. 이효석의 문학 작품 하나 덕분으로 지역의

아이콘이 되어버린 메밀. 집집마다 초가지붕과 옹기 조각 따위로 한껏 분위기를 내었지만 이 집이 그 중에서도

가장 출중한 듯. 가게 입구 어름에 동이나귀와 성처녀나귀가 장승처럼 버티고 섰다.

그리고 이번에는 조금 다른 버전의 성처녀상. 푸훗.

봉평 재래시장에도 들를 겸 섭다리를 건넜다. 한번 장마에 떠내려가고 나면 다시 만드는데 오백만원이 든다는

섭다리는, 작년 재작년에는 거푸 떠내려갔었지만 올해는 어째 물이 찰랑찰랑하더니 다행히도 떠내려가지는

않았다고 했다. 

걷다가 살짝 출렁출렁하는 느낌이 들어 장난삼아 쿵쿵 뛰었더니 금세라도 밑이 쑥 빠져버릴 것만 같다. 소나무로

틀을 짜고 거적대기와 소나무가지들을 위에 올려서 흙으로 다진 거 같은데, 삐죽삐죽 튀어나온 소나무 가지들도

그리고 자잘하게 균열이 그려져 있는 다져진 흙들도 재미있다.

그에 반해, 이건 정말 아니다 싶던 것들. 말라죽거나 말거나 듬성듬성 갖다가 꼽아놨으니 내 할일은 다 했다고

말하는 듯한 이 인도변의 '꽃.밭.'. 게다가 그 옆에 저 얼룩덜룩한 무늬의 보도블록은 뭔가.

으악. 이건 너무너무 촌스럽고 하나도 도로 바닥과 어울리지 않는 디자인인 거 같다. 무슨 꽃인지 모르겠지만

하얗고 뻘겋고 시퍼런 얼룩이 보도블록에 마치 곰팡이처럼 슬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회색빛 블록이나

검은빛 아스팔트와 맞닿아 있는 상황에서 전혀 쌩뚱맞아 보이는 부조화를 보인다는 것도. 뭔가 튀고 싶었다면

차라리 이효석이나 다른 문인들의 작품을 한글로 프린팅해 넣던가.

봉평 이효석 문화마을, 아기자기한 것들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이어져 있는 데다가 워낙 고즈넉한 동네여서

산책하듯 걸으며 즐기기 딱 좋은 마을인 거 같다. 다음번에는 8월말이나 9월초, 흐뭇한 달빛아래 메밀꽃이

소금을 뿌려놓은 듯 새하얗게 빛나는 때 와봐야겠다. 혹시 그때는 나도 '짐승같은 달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도.



빨강색 러브, 근데 뭔가 이상하다. 영문 알파벳이 아니라 저건 한글 모음들인 거다. L을 대신하는 니은, O를

대신하는 이응, E를 대신하는 ㅌ, 티읕. 그리고 거꾸로 물구나무선 시옷이 제대로 V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조그마한 금속링들을 붙여서 만들어낸 커다란 수탉. 벼슬과 부리의 위엄도 볼 만 하지만, 아직 성글게 자라난

꼬리깃이 좀만 더 풍성해지면 완전 볼 만 하겠다 싶었다. 중닭에서 완연한 장닭으로 변신 뾰로롱.

토이뮤지엄에서 만났던 커다란 인형, 그리고 햇살 가득 들여보내주는 관대한 창문 아래 나뭇빛 책상과 소품들.

화장실 표시가 귀엽긴 한데, 가만 살펴 보면 대체 저 쩍벌녀 꼬맹이는 급하다면서 전화기를 잡고 있으며, 저

어정쩡한 표정은 또 왜 짓고 있으며. 혹시 저 의자가 휴대용 변기인 건가..;

몇 장 너무 재미있는 그림들을 방문객들이 남겨두었길래, 차마 혼자 보기 아까워 사진을 찍어버렸다. 지재권은

전적으로 그리신 분들께 있으며 원치 않으실 경우 변호사 선임 및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

'거짓말하면 묻히는 거다'. 그 아래 정말 묻혀있는 피노키오.ㅋㅋ

어리다기엔 뭔가 '중닭' 정도 크기로 자라난 듯한 '어린왕자'. 소년의 복숭아빛 두 뺨은 싱그럽건만 눈빛속엔

번뇌가 눈물처럼 차올라 있으니 나이먹는 게 아쉬울 따름인가 보오.

입체 카드의 허점. 사람의 시선이 항상 최적의 위치에서 카드를 펼쳐보거나 바라보는 것만은 아닌 거다.

온통 깨어지고 뒤틀린 사자의 얼굴과 앞발바닥. 이글이글 불길처럼 타오르는 갈기, 라기보다는 그냥

되는대로 자르고 구겨놓은 쓰레기뭉치에 불붙은 거 같다.

토이 뮤지엄 앞에는, 심지어 이런 공공 시설물까지 이쁘게 포장되어 있었다. 말 그대로 포장. 무슨

거대한 선물상자같은 게 길가에 떡하니 놓여있길래 뭔가 했더랬다.

그리고, 마치 천공의 성 라퓨타에 나옴직한 장면. 거대한 나무가 건물 안쪽 어딘가에서부터 무럭무럭 자라났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는 덜 떨어진 질문을 좀더 참신하게 바꿔볼 수 있을 듯. 건물이 먼저냐 나무가 먼저냐.






회사에 봉사 동호회 하나쯤 있어야 되지 않을까 하던 차에, 동기들과 의기투합해 뚝딱 만들고는 오늘 첫 봉사활동을 갔다.

서울 어디메쯤에 있는 한 아동 보육시설, 3세미만 영유아부터 초등학생들까지 한 60여명이 머물고 있는 자그마한 2층

건물이었다. 앞뒷 마당을 깔끔하게 쓸고, 마침 고장나 버린 세탁기를 대신해 세탁물을 헹구고 널고, 아가들 밥먹이고

대여섯살짜리 꼬맹이들이랑 놀아주다 보니 시간이 금방 가버렸다.


그냥 아이들하고 잘 놀아주면 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끊임없이 안아줘, 업어줘, 한번만,을

외치는 극성스러운 아이들 틈에서 동기 하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말로 변신한 채 천지사방을 기어다니고 있었고, 나 역시

어느 순간 앞에 두 녀석을 안고 뒤에 한 녀석을 업고 말았다. 자기들 맘대로 해주지 않으면 미워! 하면서 연속 로우킥도

서슴치 않는 무서운 대여섯살 짜리 아이들, 서로 안기고 업히겠다고 아우성치다간 서로의 머리통을 그야말로 퍽, 소리

나도록 내려치는 서슬에 살짝 움찔해 버렸다.


크게 놀랄 일은 아니었다. 3살미만 어린애들의 점심을 챙기면서 시설 근무자는 제대로 본을 보이고 있었다. 다른 애들은

밥 다먹어가는데 넌 왜 이리 늦어, 봉사하는 사람들 왔다고 더 칭얼거리는 거야? 얼른 안 씹을래? 갓 24개월 지났다는

애가 미처 밥을 다 씹어 삼키기도 전에 우악스럽게 숟가락으로 입술을 눌러대고, 책으로 머리를 탁탁 쳐가며 재우쳤다.

비슷한 또래의 아이가 있는 과장님 말로는 자기 애는 밥먹는데 한시간이 넘게 걸린다고 했는데, 그 아이들은 이십분만에

뚝딱 해치워버렸다. 봉사자들 앞에서도 전혀 거리낌없는 그 말투와 태도와 손속이라니. 한쪽에선 갓난애가 죽어라

울어대고 있었는데, 자꾸 어르고 달래주면 버릇만 나빠진다고 그냥 냅두라고 했다. 그런 분위기.


2층의 대여섯살 아이들은 1층으로 내려오는 게 금지되어 있었다. 아이들을 안고 업고 마당에 나가려고 계단을 한걸음
 
내딛다가 방안 가득 아이들의 새된 비명소리가, 게다가 내 가슴팍과 등언저리에서도, 뽑아져 나왔다. 안 되요, 혼나요.
 
그런가 하면, 애들 손이 안닿는 한구석 높은 곳에 쌓여있는 블럭이니 장난감들은 먼지가 묵은 때로 변해 두껍게 쌓여
 
있었다. 누가 봐도 이건 장식용이구나, 싶을 정도의 먼지 두께하며, 건네준 블럭을 주저주저하며 받아드는 아이의

어색하고 조심스러운 태도하며.


그 시설 근무자들을 도덕적으로 탓하려는 생각은 별로 없다.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이기도 하고

여건의 문제로 봐야 하는 게 맞을 거다.
애들은 많고, 근무자 수는 적고, 아이들을 '사랑'으로 감싸야 한다는 이야기는

사실 친부모에게조차도 쉽지 않은 이야기인 것을. 더구나 '봉사'를 한다는 마음에 고양되어 있는 '뜨내기' 봉사자와는
 
달리 근무자들은 그것이 비일상적인 봉사가 아니라 일종의 업무, 주어진 작업일 테다.

오히려 내가 착잡해졌던 건 다른 문제였다.


뾰족한 기술이나 실질적인 도움될 만한 게 없어 사실상 '몸빵'이었다 해도 과언은 아닌 봉사였다. 그저 애들하고 잘

놀아주고, 조금이라도 웃게 해주면 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어쩌면 시설 근무자들이나 아이들에게나 역효과를
 
일으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의 아이는 마냥 이쁘지만, 막상 같이 사는 '가족'(시설 근무자)의 입장에선
 
그게 또 아닐 거다. 아이들이랑 놀아주고 해달라는 거 다 해주고, 그렇게 아이들의 요구사항에 싫은 내색 한번 없이

예스로 일관하러 온 봉사자들이란, 어쩌면 애들을 망치고 애들과 시설근무자들의 관계마저 악화시키는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은 잠깐씩 손님처럼(손님으로) 왔다 가는 봉사자들의 선심쓴 관대함을 최대한 이용하려 들고, 근무자들은 관심의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성격만 극성스러워지고 (사회적인 어법으로 말하건대) '버릇만 나빠지는' 아이들을 다루느라

진이 빠질 거다. 아이들과의 마주침은 흡사 전쟁과도 같아지고, 늘어나는 건 제재요 후퇴하는 건 '당위적인 도덕률'들일
 
거다. 아마도 그렇게 진행되어 오는 상황일 텐데 거기에다가 '애들은 사랑으로'라느니, '절대 때리면 안 된다'느니

배부른 이야기는 차마 못 하겠다.


그 와중에 회사에 제출하기 위해 사진찍고 찍힌다는 행위가, 뜬금없게도 얼마전 고양이까페에 갔을 때의 그것과 중첩되어

보였다. 다소의 어이없음과 불쾌감이 일어날지 모르겠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아동 보육시설에서의 (일회성) 몸빵

봉사활동과 고양이 까페에서의 고양이 사파리-고양이들과 놀아주는 것-의 차이점보다 유사점이 두드러졌다. 몇가지만
 
떠오르는 대로 적어봐도 꽤나 많다.


아이들이 드글드글대는 공간, 고양이가 드글드글대는 공간.
 
적절하고 꾸준한 관심을 줄 수 있는 부모가 없는 아이들, 주인이 없는 고양이들. 

로우킥을 날리고 머리채를 잡아도 귀엽다고 마냥 관대해지는 자세, 고양이가 바지에 오줌을 싸도 마냥 귀엽다는 자세.

아이들(의 버릇, 생활)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는 홀가분한 입장, 고양이에 대한 책임은 질 필요없는 홀가분한 입장.

아마도 노인이나 장애인보다 아이들을 좋아할 취향, 아마도 개나 예컨대 쥐보다 고양이를 좋아할 취향의 문제.


뭐..시니컬하게 나가자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 비교적 온건한 것들도 벌써 이만큼이다. 어린 왕자의 여우가 갈파한 바

서로를 책임지지 않는, 길들여지지 않은 관계란 것은 온실 속 백만송이 장미꽃과 나의 관계다. 일회적인, 혹은 비일상적인

'봉사'가 갖는 치명적인 허점이 아닐까 싶다. 책임질 필요없는 대상에 대한, 취향이 반영된 선심. 더구나 그

누군가의 새삼스런 선심으로 인해서 더욱 사태가 악화될 가능성마저 생겨버린다면.


봉사란 뭘까. 어떻게 해야 제대로 하는 걸까. 한번 다녀오고 고민만 늘었다.

어쩌면, 비일상적인 봉사는, 그야말로 비일상적인 부분에 그쳐야 할지도 모른다. 쓸고 닦고 빨고, 그런 부분. 부족한

사랑을 채워준다는 미명으로 아이들과 놀아주고 마냥 귀엽다며 다 받아주는 '봉사'란 건 길게 봐선 자기만족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아이를 키우는 맘으로, 책임지겠다는 마음이 아니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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