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이 여성보다 회사생활에 쉽게 적응하는 이유 중의 하나를 '군대' 덕분이라 하지만, 굳이 말투까지 군대 말투를

따라야 하나 싶을 때가 있다. '~니다' 혹은 '~니까', 흔히들 다나까로 끝난다고 하는 군대식의 말투를 쓰는 게

조직생리에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꽤나 많은 것 같아서 하는 얘기다. 인턴, 혹은 신입직원들까지도

회사에서는 당연히 그런 말투만이 허용되며 그런 말투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고 어색한 말투를 입에 붙이려

노력하는 거 같지만, 그것도 분위기 봐서 하는 게 맞지 않나 싶다.


회사에 들어오고 처음 만나는 자리, 맘속이야 어떻든 겉으로 보이기에 좀 겸손해 보이고(라고 쓰고 '쫄아보이고'

라고 읽는다) 적당히 긴장한 듯 보이고(라고 쓰고 역시 '군기잡힌 듯'이라고 읽기로 하자) 그런 이미지를 만들려면

역시 그에 딱 어울릴 만한 딱딱하고 경직된 말투가 제격이긴 하다. 군대를 다녀오지 않아 영 어색한 느낌을 지울

길 없다 해도 차라리 다행이다. 그만큼 '조직을 무서워하고 있구나', '잘해보려고 긴장하고 있구나'라는 식의

뉘앙스마저 풍길 수 있으니. 몸에 붙지 않는 붕붕 뜨는 정장 차림 역시 그런 걸 보이기 위함 아닌가.


그렇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처음 이미지, 첫인상의 덫을 피하기 위함일 뿐이다. 적당히 넥타이조임을 풀고 옷차림도

조금씩 편해지듯이, 그렇게 말투도 편하게 가야 뭐 좀 인간같은 느낌이 들고 친해지기도 쉽지 않을까. 물론

회사마다 약간씩 다를 수야 있겠지만, 글쎄, 내가 알기론 그런 식의 딱부러지고 비인간스러운 말투를 고집하는

곳은 없는 걸로 알고 있다. 분위기에 따라, ~했죠. 했어요. 아닌가요? 아니에요? 라고 생각하는데요...등등 다양한
 
어미를 써도 되니까, 너무 생경하고 딱딱하기 짝이 없는 말투를 의식적으로 고집하진 말일이다.


연애나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듯, 처음 관계를 어떻게 맺어가는지가 이후의 관계를 상당부분 규정짓는 것 같다.

근무를 시작한지 한달이 넘어도 사람들과 데면데면한 인턴은 근무기간이 끝나도록 겉도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지지만 의외로 초반에 쉽게 친해지면 이후에도 상대적으로 속편한 인턴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 관계를

쌓아간다는 게 정속 운행이라기보다는 뭔가 초반에 가파르게 얼마나 치고 들어가느냐가 중요한 탓 아닌가

싶기도 하고, 초반에 사람들의 관심을 어느정도 끌 수 있을 동안에 얼마나 호감을 쌓을 수 있느냐가 관건인 듯.


인턴이 어떻게 해야 잘 보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많이들 하는 것 같던데, 경험상으로는 '인사잘하기'가

최선이지 싶다. 사무실에 올라가는 엘레베이터 안에서나 사무실에 들어서는 순간, 혹은 통로를 왔다갔다하며

마주치는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며 인사만 제대로 해도 의외로 쉽게 좋은 평판을 얻을 수 있다. 사실 인턴이

그 밖의 요소로 눈에 띄고 주목받기란 쉽지 않은 게 사실이기도 하고, 정말 두번 뒤돌아보게 되는 정도의 외모

정도가 아니라면 말이다.


사실 인턴이든 신입직원이든 밉게 보고 갈굴 만한 꼬투리가 달리 뭐가 있겠는가. 쟤는 인사도 안 하더라, 쟤는

화장실에서 휑 소리나게 돌아나가버리더라, 눈 마주쳐도 웃지도 않더라..그 정도 꼬투리를 잡을 수 밖에 없는데

선제적 대응 차원에서라도 '인사하기'란 중요한 생존 스킬임은 틀림없어 보인다.


휑한 분위기의 엘레베이터나 통로에서 낯선 얼굴의 직원이 보인다면 주위 사람들은 모두 관심을 갖고 저 친구가
 
누구인지 궁금해 하기 마련인데, 그렇게 알게 모르게 쏠리는 관심에 부응하여 때마다 밝게 인사해준다면 상대도

어느순간 자신의 이름을 묻거나 불러주며 아는 척을 해 주더란 게 개인적인 경험.

뭐 화장실에서는 목례만 가볍게 하라거나, 한번 인사한 사람한테는 가볍게 눈인사만 해도 된다거나 하는 세세한

어드바이스들이 있다고는 해도 어디까지나 그 조직에서 하고 있는 대로 따르면 되는 일이지 싶고, 인사를 먼저

잘 하고 다니는 게 쉽지만 확실한 자신의 존재를 각인하는 정공법이라 생각된다.




"저기요, 무슨무슨 일은 어떻게 하나요?" "저기요, 여쭤볼 게 있습니다." "저기요" 운운.


인턴의 저기요, 비단 인턴 뿐 아니라 신입직원들도 종종 범하게 되는 실수가 아닌가 싶다. 뭔가 다급했거나 당황한

상황에서 나올 수야 있다고 하더라도 가끔 굉장히 차분한 목소리로 이렇게 상대를 부르는 인턴을 보곤 했다.

'Hey'같이 단순히 주의를 환기하기 위한 말이 아니라 일종의 호칭으로 "저기요"를 상습적으로 쓰는 건 좀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어쨌든 인턴으로 있는 동안 함께 일하는 동료, 혹은 선후배로 가깝게 지내야 할 관계인데

마치 시장통에서 익명의 사람을 부르는 듯한 이런 호칭은 피해야 할 것 같다.


인턴이 윗사람들을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회사마다, 또 부서마다 분위기가 다르고 나름의 룰이 있을

거다. 개인적으로는 들어온지 얼마 안된 분들하고는 '선배님' 정도 부르면서 친하게 지내는 게 좋은 거 같다.

그렇지만 역시 가장 바람직하다거나 일반적인 룰은 그공간의 사람들이 서로를 어떻게 부르고 있는지를 알고,

과거의 인턴들이 어떻게 불렀으며, 또 그 분들이 어떻게 불리고 싶어하는지를 그나마 제일 만만하고 가까운 분께

넌지시 여쭤보는 거라고 생각한다. 모르는 것을 물어보고, 좀더 잘해보겠다고 물어보는 건데 쫄지 않아도 된다.

우리 회사같은 경우는 인턴과 주로 함께 일하는 바로 위 직원에 대해서는 '누구 선배'라고 부르고, 다른 분들에

대해서는 직급을 불러드리는 게 룰인 듯 하다. 그 밖의 계약직 등 비정규직 분들에 대해서는 '누구 씨'라고

부르는 게 일반적이다.


첨언하자면, 일부 '몰지각한' 신입직원도 바로 윗 선배를 이런 식으로 부르는 경우가 있어서 '개념없다'란 뒷담화를

듣기도 한다. 인턴이나 신입직원이나, 어떤 면에서는 상당히 겹치는 실수들이나 태도가 보이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인턴 생활을 하면서 어느 정도의 눈치를 쌓고 경험치를 높인다면 나중의 신입직원 생활에도 도움이

적지 않을 거 같다. 역시, 어느 정도는, 하기 나름인 거랄까.



#1.

사무실에서 일하던 중 문득 그녀의 전화를 받고 끊을 때, 그녀는 말한다. "공부 잘해~". 집에서 회사일을 말할 때

나도 문득 말한다. "학교에서~".

아직도 어색한 정장차림과, 좀체 익숙해지지 않는 출근길, 그리고 여전히 번거롭기만 한 아침마다의 의례.

넥타이와 셔츠의 매치. 대학생이자 인턴인 남자아이 하나와 대졸 회사원이자 외부적으론 대리인 남자아이 하나
 
사이에는 서로가 서로를 부러워하는 그런 묘한 분위기가 이따금씩 피어올랐다 사라진다.


#2.

적나라한 금전적 성과로 환산되지 않는 업무의 특성때문인지 이곳 사람들은 확실히 스트레스가 적고, 덜

늙어보인다. 들어오기 전도 그렇지만 들어오고 나서도 줄기차게 들었던 말, 이곳 사람들은 다들 너무 좋다고.

첨에는 정말 여긴 사람들의 인성을 많이 보고 뽑나보다, 할 정도로(글탐 내가 뽑힌 게 100% 시스템 에러겠지만)

사람들이 하나하나, 다들 좋아 보였다. 물론 지금도 좋아 보인다.


다만 그러한 '사람 좋아보임' 이면에는, 굳이 다른 사람에게 까칠해 보이기 싫고 뒤로 싫은 말 듣기 싫다는

암묵적인 계산이 깔려있는 것처럼 보인다. 서로 깊게 개입되지 않고,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허허 웃고 치우는

거다. 그럴수록 뒤로만 말이 무성해지지 않을까. 선배들이 최소 3개월은 나죽었다 생각하고 이미지관리 잘 하고

앞으로도 이미지로 '쇼부'칠 거라는 충고를 던지는 건 괜한 게 아니다. 굳이 부딪히지 않고, 마침 크게 부딪혀야

할 일도 없고 뚜렷이 숫자로 된 성과로 계측되는 집단도 아니니, 좋은 소리 듣고 좋게좋게 가는 게 제일 중요해

지는 거 같다. 아님 술자리에서, 어디에서든 질겅질겅 씹히면서도 정작 본인은 모르기 십상이지 싶다.


누구였더라, 사석에서 남의 뒷담화만 안 해도 제대로 회사생활하는 거라는 말씀은 갈수록 묵직하게 느껴진다.


#3.

내가 외국계 기업을 가고 싶어했던 건, 그곳에는 뭐랄까, 문화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술을 먹어야

빨리 친해진다거나 매일같이 이어지는 술자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그런 거 말고.

여기도 많이 먹는 편은 아니며, 술을 좋아하는 사람도 그다지 많지 않아 보이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으레 술을

깔아놓고 몇차씩 옮기며 마시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을 못찾고 있는 것 같다.


단적으로 합격자 발표 후 가족들을 불러 식사를 함께 하는 IBM의 '가족적'인 마인드는, 사실 한국 기업들에선

찾아보기 힘들 거다. 적어도 협회에선 확실히 그런 거 같고. 그래서 한국 대기업식의 빡빡한 조직문화도 아닌

것이, (다소 이상화된) 외국계기업식의 개인화된, 동시에 다른 방식으로 묶여있는 조직문화도 아닌 것이

어정쩡하게 조직과 개인을 모두 풀어버린 지금의 그림이 아닌가 싶다. 그닥 뚜렷한 묶임이 없고 각자 적당히

친한 척하며 살짝살짝 그림자만 스칠 뿐인 피.상.적.이기 쉬운 관계. 그렇게 두루두루 친하고 둥글둥글 모나지

않은 사람을 높이 평가하는 곳이 아닐까. 하고 다소 기우 중이다. 그리고 나는 여기서 어떻게, 어떤 관계를 누구와

만들어나가야 하는 걸까 생각 중이다.

#1. 환영회

부서에 배치받은지는 어언 한달이 넘어가는데, 외국 출장과 각종 행사로 바빴던 터라 어제야 내 환영회가 있었다.

미루어지다 보니 마냥 내 환영회랄 수만도 없는 게, 대학 같은 과 친구이자 입사 3년 선배인 분께서 우리 부서로

옮겨온 환영회도 더해졌고, 어제 새롭게 합류해 한학기동안 인턴활동을 할 대학생 인턴환영회까지.

여태 팀회식은 한번도 없었지만 익히 예상했던대로 술은 그렇게 먹지 않는 분위기에, 소탈한 팀장님 이하

화기애애한 팀원들의 거리낌없는 대화가 오가는 자리여서 맘에 들었다. 평소 사무실 분위기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 뭐, 아직 내가 바쁜 시기를 경험치 못한 탓도 있겠지만.



#2. 시간.

그러고 보면, 대학 졸업에 이르기까지는 계속해서 시간표가 학기 단위, 월 단위, 시험 단위, 주 단위로 짜여져

있었다. 딱히 시간을 분절시켜서 쓰고 있다는 감각 없이도, 주어진 커리큘럼을 따라가다 보면 알아서 규칙적인

일정과 시간 관리가 가능해지는 그런 상황에서 이십여년을 살아왔던 거다. 거창하게는 근대적 노동자의 예비..

랄 수도 있겠고, 안정적으로 주어진 스케줄표라 할 수도 있겠지만 여튼지간. 그래서, 정식 출근 후 고작 한 달여

밖에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여전히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어떤 스케줄이 가능할지에 대해 감이 안 잡히는 건

당연할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든다. 중간중간 규칙적으로 꼽혀있는 깃발들..이 안 보이니 내가 뭔가 스스로 시간을

덩어리로 묶어가며 써야 될 거 같은데, 아직 일년 한 바퀴도 돌지 않은 상황에서 감잡기가 쉽지 않다. 어쩌면 일의

템포-강약강약이랄까 강약중강약이랄까-를 강조하는 팀의 고유한 분위기 탓, 혹은 고유한 스케줄 탓인지도

모르지만 일단은...그런 식의 타협으로 2월 한 달을 정신없이. 아무것도  계획한 거 못하고 보내버린 스스로를

조금은 살갑게 용서.ㅋ



#3.

열두개가 찍힌 커피빈 쿠폰으로 자그마치 6,200원짜리 아이스 블렌디드를 바꿔들고 올라와선 9시 땡치고 일과가

시작되었음에도 쓰던 글은 마저 써야겠다고 이러고 있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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