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미로든 그 곳으로 들어서는 입구는 굉장히 친절하다.

길을 잃게 되는 길을 알려주는 이상한 표지가 커다랗게 놓인 그곳에서 시작이니까.

그러고 보면 유원지의 '유령의 집' 같은 곳도 마찬가지다.

눈에 잘 띄고 절대 놓칠 수 없는 그 입구, 를 지나치고 나면 정신이 혼미한채 이리저리 쫓기는 거다.


출구는 어디일까. 출구는, 출구는 어디일까...입구는 어디였을까.

블랙박스의 시꺼먼 내부 같은 그 안에서 술취한 듯 갈지자로 헤매다보면 차라리

입구를 다시 찾아서, 그 표시가 가리키는 반대로 내닫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지는 때도 있었다.

결코 찾을 수 없는 뫼비우스의 실마리를 찾듯 결국 내딛는 걸음걸음은 제자리걸음이 되지만.


방향감각을 완전히 상실해서는, 대체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뒤인지,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건지 아니면 뒤로 멀어지고 있는 건지 따위를 하나도 알 수 없게 되버리는 순간.

누군가 날아올라 내가 어디 있는지를,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보고 말해줄 수 있으면 했다.

그럴 때가 아마도 죽어버렸다는 신의 손끝이 움찔움찔 경련하는 순간일 거다.


날아올라 무찔러라 메칸더의 용사들아, 최후의 승리는 우리 것이다.

일본의 방사능 물질이 둥그런 지구를 휘감아 도는데, 2012년에는 지구가 망한다는데 여전히

나는 차마 어쩌지 못할 내 신변잡기와 하찮은 일상을 견디지 못하고 심호흡을 뱉는다.

뫼비우스의 대지 위에서 비둘기의 날개를 부러워한다.




@ 서울대공원.
@ 청남대

@ 헤이리

@ 헤이리

@ 경남 하동

@ 수원 화성

@ 서울대공원

@ 충북 보은

@ 충북 보은



안녕, 어린왕자는 잘 있니. 사막여우를 만났다. 이집트 사막에서도 총총이 찍힌 발자국밖에 못 봤던 녀석인데,

가을 낙엽을 보러갔던 서울대공원에서 볼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자그마한 몸집, 커다란 귀에 귀여운 얼굴.

샐쭉한 표정이 왠지 고양이를 닮은 거 같기도 하고, 전반적으론 강아지 같긴 한데. 고양강아지랄까.

미어캣. 언젠가 방송에서 이 녀석들의 생태를 담은 다큐를 본 적이 있는데, 전부다 뒷다리에 힘주고 꼿꼿이 서서

멀리 경계하는 포즈가 너무 인상적이었다. 제발 한번만 한마리라도 뒷다리로 우뚝 서봐봐,라고 진지하게

부탁했지만 이녀석, 한참 튕기다간 마지못해 뒤돌아서 서보이더라는.

이녀석도 뭔가 미어캣처럼 두발로 깡충 서는 포즈를 선보이는 동물이었던 거 같은데, 이름이 뭐였더라.

프레리독이었던 거 같다. 컹컹, 개 짖는 소리를 낸다고 했던가. 두발로 선다는 게 저렇게 퍼져 앉는 포즈를

말하는 건 아닐 텐데.

개미핥기, 이 동물이 대중적으로 알려진 건 '개그콘서트'에서 개미퍼먹어, 란 개그가 뜨면서부터 아닐까 싶은데.

참 볼품없이 생기긴 했다. 정장용 옷걸이처럼 굽어져서는 어깨뽕처럼 복슬한 느낌을 주는 개미핥기가 할짝할짝.

나무늘보, 시속 240미터의 지구상에서 가장 느린 동물이라는 설명이 붙어있었다. 계산해보면, 분속 4미터인 셈.

일분에 4미터를 어기적어기적 혼신의 힘을 다해 기어가는 모습을 어디 한번 봐줄 생각이었는데, 의외로 날카로운

발톱을 얽어놓아 나무에 철컥 매달려서는 꼼짝도 안 했다.

초등학생 때였나, 동물도감을 보다가 굉장히 신기하게 생각하며 주위 친구들한테 이런 동물 아냐고 자랑하듯

묻고 다녔던 그놈. 아르마딜로다. 딱딱하고 무거운 갑주를 걸친 듯한 외모도 특이하고, 여차하면 몸을 둥글게

말아버릴 수 있다는 것도 독특한 게, 어려서는 공벌레가 무지무지 커지면 아르마딜로가 되는 걸까 생각했었다.

몰랐던 사실 하나, 저렇게 하얀 털이 숭숭 징그럽게 나있는 줄은...;;

울부짖는 물개 아저씨, 입을 쩍 벌리니까 토토로랑 비슷한 거 같기도 하고. 가지런히 늘어선 이빨이 온통

새까만 게 건강에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올겨울엔 물개 아저씨네 임플란트 해드려야겠어요.

'홍학'이란 새는 발음하기가 참 쉽지 않은 것이어서 '학'의 기억을 마저 발음하려 애쓰던 혀는 늘 미끄러져

'합'에 가까운 소리에 머물고 마는 것이다. 유연하게 움직이는 길다란 모가지는 어쩌면 내 혀보다도 더욱

능란하고 미묘하게 움직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영덕대게를 떠올리게 만든느 길다랗고 뻣뻣한 다리조차

우아하게 사뿐사뿐 즈려밟는 녀석이니.

그와는 반대로, 목이 완전 뻣뻣한 녀석들이 길다랗기까지 하다는 건 사실 꽤나 큰일이다. 털이 헝클어졌을 때

고양이처럼 자기 혀로 자기 털을 다듬을 수도 없을 테고, 잘 때도 여느 동물들처럼 고개를 꺽은 채 둥글게 만

몸뚱이를 베개삼을 수도 없을 테고, 뭔가 늘 부족한 느낌일 거 같다. 몸뚱이도 때론 버거운 판에, 몸뚱이 위에

또 그만한 사이즈의 몸뚱이가 하나 더 얹혀 있는 느낌 아닐까.

낙타의 시크한 듯 빈정대는 표정은 익히 알고 있으니 간단하게. 꾸물럭꾸물럭 입을 놀려대는 모양새는 언제봐도

참 얄밉단 말이다. 그래, 니녀석은 등 위에다가 기름이랑 양분이 담긴 혹주머니를 얹고 있으니 든든하다는 거냐.

가지런히 모은 앞발, 단단히 버티고 선 뒷발. 성스러운 대지의 에너지 순환에 임하는 엄숙한 자세.

물색없이 구박하러 다가왔다가 역사적 순간에 동참하게 된 옆 친구녀석은 슬쩍 고개를 돌려주는 센스를.

곰들은 사진찍히는 데 이력이 난 듯 했다. 한 녀석이 슬쩍 귀염둥이 포즈를 취해서 시선을 집중시키는데 성공하면,

그걸 보고 있던 옆엣 녀석이 슬쩍 포즈를 따라한다. 그런 와중에 울타리 바로 앞까지 바싹 붙어서는 마치

'돈 좀 있냐'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 곰 녀석. 돈이 아니면 '코카콜라'일지도 모른다.

이 곰탱이는 포즈가 은근 인형같다. 앙증맞게 매달려 있는 두 귀도 그렇고, 철푸덕 앉았다는 느낌으로 아무렇게나

던져둔 두 뒷발도 그렇고. 그 와중에 가지런히 날이 선 손톱 열개와 발톱 열개의 위엄.

호랑이들은 뭐, 올초에 왔었을 때 눈도장 찍고 갔으니까 가볍게 스쳐지나주고. 근데 찍고 나서 보니 저 가운데

녀석 왠지 사방에서 다구리 당하는 느낌. 왼쪽 녀석은 머리로 치받고, 오른쪽 녀석은 굵직한 꼬리로 찰싹

때리는 것 같은 순간이 잡혔다.

질펀한 엉덩이라는 표현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 동물이 또 있을까 싶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다고, 토실하다 못해

투실투실 정말 질펀질펀한 엉덩이만큼이나 깊은 골짜기가 패여있었다. 게다가 대충 만들어서 엉덩이 아무데나

대충 붙여놓은 듯한 저 꼬리는 뭐냐. 심하게 좌우대칭을 벗어난 위치인 거 같은데.

모래찜질을 즐기는 코끼리 아저씨는 코가 손이래, 과자를 주면은 코로 받지요, 라지만. 요새 동물원 우리들은

전부 씨씨티비가 달려있어서 누군가 과자를 던져줄라 치면 바로 경고 방송이 나오더라는.







@ 서울대공원, '가을방학'의 '가을방학'이란 노래가 떠올랐던 낙엽길에서.



넌 어렸을 때부터 가을이 좋았었다고 말했지
여름도 겨울도 넌 싫었고
봄날이란 녀석도 도무지 네 맘 같진 않았었다며
하지만 가을만 방학이 없어
그게 너무 이상했었다며
어린 맘에 분했었다며 웃었지

넌 어렸을 때부터 네 인생은
절대 네가 좋아하는 걸 준 적이 없다고 했지
정말 좋아하게 됐을 때는
그것보다 더 아끼는 걸 버려야 했다고 했지
떠나야 했다고 했지

넌 어렸을 때만큼 가을이 좋진 않다고 말했지
싫은 걸 참아내는 것만큼
좋아할 수 있는 마음을 맞바꾼 건 아닐까 싶다며
하지만 이맘때 하늘을 보며 그냥 멍하니 보고 있으면
왠지 좋은 날들이 올 것만 같아

처음 봤을 때부터 내 마음은
절대 너를 울리는 일 따윈 없게 하고 싶었어
정말 좋아하게 되었기에
절대 너를 버리는 일 따윈 없게 하고 싶었어

너무나도 늦어 모든 것들이

넌 익숙하다 했지 네 인생은
절대 네가 좋아하는 걸 준 적이 없다고 했지
정말 좋아하게 됐을 때는
그것보다 더 아끼는 걸 버려야 했다고 했지
떠나야 헀다고 했지
"숭, 숭숭,내 말 좀 들어봐."
"끽끽"
"숭, 사랑은 시소와 같대. 서로의 마음이 얼추 비등비등해야 재미있어진다던가. 누구 한 명의 마음이 가벼워지면 다른 한 명이 무거워지면 되고, Vice Versa. 뭣보다 상대가 있어야 제대로 시작할 수 있는 거기도 하고. 뭔 말인지 알겠어?"
"끽끽"

"끽끽"
"잘 듣고 있어 멍충아"
"끽끽끽끽 끽끽끽 끽끽끽끽끽끽끽끽 끽끽끽끽"
"니미뿡이다."


@ 미술관 옆 동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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