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지기를 원하는 것은 허약함이며, 우월해지기를 원하는 것은 다름아닌 열등감이다.

자신감을 말하는 것은 불안감의 발로인 것.



얼마전 만난 친구는, 무슨 얘기인가 끝에 '서울대 간판 떼고 나면 너도 별거 없잖아?' 그랬다.

최근 누군가로부터 집중적으로 듣는 얘기 중엔 '별 것도 아닌 스펙만 믿지말고 공부좀 하세요'라는.

사실 새삼스럽지도, 도발적이지도 않은 지적이지만 때가 때인지라 다르게 다가왔다. (사실 그넘의

스펙은 믿어본 적도 없지만.ㅋ)


그치만 난 여태 내가, 혹은 내 능력이 모종의 시험에 처하는 상황이 되면 항상 잔뜩 긴장한 채

'원점부터 다시 평가받는다'는 자세를 취해온 게 사실이다. 내가 과연 그 시험에 통과할 만한지,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받아온 '간판'의 후광을 받을 자격이 있었던 건지, 그리하여 나에 대한 지금의

기대치가 합당한 수준인 건지. 그러한 것들에 대한 자신감을 번번이 다시 허물어뜨렸다가는, 곧 다시

회복하는 그런 피곤한 패턴.


그건 단지 시험에 겸손하게 임하고자 하는 실용적 목표만이 아니라, 혹여 불의의 결과가 나오더라도

충격을 덜 받고자 하는 꼼수이기도 하다. 사실 내 스스로도 내가 어느 정도의 능력을 갖고 있는지,

얼마나 똑똑한지, 아니 대체 똑똑하기나 한 건지 의구심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일이 시도때도 없는

거다.(아마 내 주위 사람들은 더욱 의심하고 있겠지만) 그럴 때는 불쑥 조바심이 고개를 든다.

내게서 '간판'을 제하고 나면, 뭔가 남을까. 좀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그저 어쩌다 수능 한번 잘

쳤을 뿐인지도 모르는데 너무 분에 넘치는 대우를 받아왔단 게 뽀록날까봐. 수능맞춤형 인간일지도

모르는데, 너무 여러 방면으로 호들갑스런 대접을 받아왔던 게 아닐까 불편해져서. 세상에 꽁짜는

없다는데, 언젠가는 다시 전부 뱉어내야 하는 건 아닐까 하고.


해서 서류심사에 합격했다는 소식이 들리기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붙었단 소식에 감사하고,

일단은 당분간 조금 더 잘난척 하고 다녀도 되겠구나 안도하고(아직 내가 어리버리하단 소문이

그쪽까진 안 퍼졌구나, 이러면서), 혹여 떨어진 소식은 얼렁 머릿속에서 지우려 애쓰고ㅡ,

그러고 있다. 아..쉽지 않은 거다, 취직이란. 쳇.


그런 와중에, 이제 최소한 몇자리 숫자따위에 연연치 않을만큼은 철들었어, 라는 믿음으로

얼마전 봤던 멘사 테스트 결과가 나왔다. 몇자리 숫자일 뿐이고, 그저 특정 부문의 지력만을

잰 것 뿐인 결과임에도, 조금은 더 스스로를 믿어봄직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이러면서 애써

퍼올리는 자신감 한주먹. 오늘 시험은 망치셨고. 어쩌면 아무데도 못가겠다는 위기의식으로

방금 네시간만에 네군데 지원서 꼽아버리셨고.



잘난척할 타이밍 = 잘나지못함이 아프게 와닿는 타이밍.

사실 '잘난 척'이란 건 나랑 상당히 거리가 먼데...오늘따라 왕창 가까워져 버리셨다. 흑.



(2007.10.14)





세계 곳곳의 풍경은 골목길 구석까지 샅샅이 훑어볼 수 있게 되었다지만, 우리 동네의 오래 전 풍경은 좀처럼

찾아보기가 쉽지 않은 거다. 서울 삼성역 일대의 풍경 역시 80년대까지만 해도 비가 조금만 오면 물웅덩이가

사방에 포탄자국처럼 생겨나는 '깡촌'이었다던가.


당시에도 지금과 같은 장소에 봉은사는 그대로 있어서 그걸 기준삼아 대충 코엑스는 어디, 트레이드타워는 어디,

아티움은 어디, 한전 건물은 어디 등등 위치를 잡아볼 수가 있다. 어둠의 경로를 통해 얻어낸 삼십년 전 항공사진,

그러고 보면 참 순식간에 변했다.

삼십년 전, 정확히는 1982년에 국제무역박람회장을 준비했던 장소다. 뒤로 보이는 숲속 한옥이 바로 봉은사.

사진의 발색이 살짝 희미해지고 바랜 듯한 느낌이어서 그런지 봄날 아지랑이처럼 아련하다.

80년대 초만 해도 칼라사진과 흑백사진이 혼용되던 시기였나보다. 사진 오른쪽 쯤에는 타이어 모양으로 생긴

종합운동장이 세워질 테지만 아직은.

저 너머 보이는 숲은 선릉. 아마도 좀더 이전에는 이 근방이 모두 저렇게 숲이었을 텐데, 야금야금 땅따먹기

해서는 지금 저만큼 남을 걸 테다. 왼쪽으로 쭉 올라가는 테헤란로는 그냥, 신작로 하나 덜렁 난 느낌.

88년에 삼성역 옆에 들어차는 종합무역센터 신축 현장. 54층짜리 무역센터랑 코엑스, 현대백화점, 인터콘호텔,

도심공항터미널 등이 한 곳에 집결하게 된 곳이다. 이곳에 그런 고층 건물이 들어서게 된 이유 중의 하나는,

믿거나 말거나라지만, 88년 서울올림픽 때 종합운동장 전경을 전세계에 생중계로 내보낼 때 뒷배경이 너무

허해 보인다는 '쩌~ 위'의 지시가 있었다나.

봉은사 꽤나 뒤숭숭했겠지 싶다. 이런 커다란 공사장이 코 앞에서 온갖 소음을 내며 쉼없이 돌아갔을 텐데.

그리고 2010년. 현재의 삼성역 인근 전경이 찍힌 항공사진이다. 상전벽해.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로 변한다지만

정말, 삼십년도 채 안되었는데 논밭이 빌딩숲으로 바뀌어 버렸다. 그래도 봉은사와 선릉이 녹색벨트처럼 단단히

매여 있어서 다행이지 싶다. 누군가 백투더 퓨처했을 때 알아보기 쉬운 징표들.

서울이라고 전부 고층건물이 즐비하고 끝없는 마천루를 가진 건 아니어서, 조금만 시 변두리로 나가도 굉장히

낯선 풍광에 당황할 때가 있다. 신작로 하나 덜렁 났었던 테헤란로 인근은 그래도, 가장 '국제도시' 서울의

이미지에 값하는 풍경인 거 같다. 고작 한세대, 삼십년동안 이렇게까지 극적으로 풍광이 바뀌어버린 동네라니,

압축적으로 달려온 한국의 경제발전상을 실감케 하는 사진들이다.





보송보송한 솜털이 햇살에 반짝거리는 때는 바야흐로 3월말. 무슨 벌레의 딱딱하고 안전한 고치처럼 섬세하고

보드라운 꽃잎을 단단히 품었던 꽃망울이 쭉, 봄볕에 잡아째지기 직전이다.

춘래불사춘, 봄이 와도 봄같지 않단 말이 내 입안에서 뒹군지는 고작 몇 년, 이 녀석들은 수백수천년 전부터

변덕스럽고 제멋대로인 인간들의 말따위와는 상관없이 때가 되면 피고 지고. 또 피고 지고.







* 이 포스팅은 티스토리 '첫화면 꾸미기 클로즈 베타테스터' 보고용으로 씌여졌습니다.


사진을 주로 포스팅하는 경우, 아무래도 첫화면은 사진첩 첫장을 열어보는 느낌이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사진 블로그'라 해도 여러 테마가 있을 수 있고, 각 테마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노출시킬 수 있겠지만

현재의 첫화면꾸미기 기능은 사진을 주제로 꾸며 보려 할 때 취약점이 많이 발견된다.


1. 사진을 노출할 때 '원본비율'로 하지 않으면 사진이 잘려나간다.

하다못해 어느 부분을 노출할지, 섬네일을 어떻게 조절할지에 대한 선택권이 조금은 더 넓었으면 좋겠다.


2. 사진을 노출할 때 '원본비율'로 해도 이상하긴 마찬가지다.

아래에 보이듯 가로세로로 놓인 사진들이 무질서하게 놓여 있어서, 보기에 좋지도 않고 영 어색하다.


3. 세로 길이에 맞춘다고 쳐도 박스 안에 공간이 남아 영 어설퍼 보인다. 그렇다고 박스 크기에 맞추어 사진의

비율을 이리저리 되는대로 늘릴 수도 없는 거고.

4.  사진들의 첫화면 노출을 위한 옵션이 참 없다. 사진들이니 슬라이드 형태로 해볼 수도 있을 거고, 지금 일부

사진 전용 블로그스킨에서 제공되고 있는 것보다 오히려 못한 거 같다.

5. 제안 - 사진 노출을 위한 첫화면에서는 이런 촬영 관련정보도 바로 노출시킬 수 있도록 옵션을 걸어주면

어떨까 싶다.

6. 제안 - 썸네일 비율을 좀더 다양하게 해주었으면 한다. 원본 사진이 상하거나 왜곡되지 않으면서 의도대로

노출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7. 제안 - 가로세로로 무질서한 사진들을 박스에 각기 담을 수 있도록 해주면 좋겠다. 현재 사진이 있는 포스팅만

인식해서 노출시킬 수 있도록 하듯, 가로사진만 들어가는 박스, 세로사진만 들어가는 박스로 해서 가능한 좀더

이쁘게 배열할 수 있는 선택권을 유저들에게 주면 좋겠다.





@ 충북.

다 커버린 지금의 몸뚱이로 저런 미끄럼틀을 타려면 중간에 낑겨버려서 긴급출동119를 불러야 하겠지만.

단지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맘은 미끌미끌 내장같은 미끄럼틀을 내닫고 있는 거다.




아기곰 푸우가 변태랍니다. 아랫도리가 휑한 이녀석 주전자도 변태인가 봅니다. 상후하박, 하체부실, 그런

단어들을 머릿 속에서 퍼올리게 만드는 주전자로군요.


주전자군은 누가 볼세라 소변기에 바싹 붙어 볼일을 봐야 할 겁니다. 그의 위풍당당한 '부리'는 마치 헛한데다

헛힘쓴 결과로 울퉁불퉁해진 초콜렛 복근을 연상케 하네요.

찻잔은 순진한 척 발갛게 물들고 말았습니다. 겉껍데기처럼 속껍데기까지 꽃무늬가 화려한 찻잔에겐, 거의

자연상태나 다름없이 헐벗은 차주전자의 자태가 부끄러웠던 거겠죠.


혹은 흥분했던 건지도 모릅니다. 주전자와 찻잔은 어쨌거나 한 쌍인 데다가, 게다가 음양의 조화를 따지건대 

성별은 명확하여 주전자군, 찻잔양이 맞지 않으려나요. 뭐, 찻잔이 무슨 생각을 했던 찻잔 속 태풍이지만요.

방심하고 있던 차주전자는 어느새 저만치 떨어져 버린 찻잔을 뒤쫓습니다. 아랫도리에 찬바람이 쎄하니

들어와 바싹 말려올리는 지금은, 같잖은 봄 3월말.


그러고 보면 그들의 무늬는 어디선가 부자연스럽게 끊겨 있었습니다. 뚝 분질러 나눠가졌다던 정인의 증표처럼

왠지 그들의 꽃무늬는 서로에게 힌트가 되어줄 수도 있을 듯 합니다. 주전자의 selling point랄까요.

이윽히, 자웅동체가 되어버렸습니다. 달팽이처럼 뽈뽈뽈, 찻잔과 주전자는 찻잔받침 위를 조용히 기어가지만

성마르게 다그치는 눈길 아래선 그저 멈춰선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그렇게 만개한 꽃 한송이가 풍성합니다.





이전에 찍어두었던 사진들, 지금은 이 공간이 싹 사라져버렸댄다.





'도쿄, 여우비'를 한숨에 다 보아버린 어느 날.


사랑이 폭발했던 순간 김태우의 맹렬한 자전거 추격신, 빼앗긴 사랑, 김사랑만을 향해 쏟아지는 그의 괴롭게

일그러진 표정과 힘겹게 뱉어내는 맹세의 말들이 도리어 굉장히 행복하고, 절정에 달한 듯 죽도록 황홀해

보이기도 한다고 느꼈던 건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하나뿐인 생에서 그런 대사들을 진심으로 내뱉을 수 있다는 것, 그 정도로 감정이 격탕할 수 있다는 건 아마도

로또보다 더한 행운이나 축복에 가까울 거다. 그런 기회를 품고 있는 상대를 만나기도, 그(녀)와 그만큼의 

감정을 기어이 쌓아 올리기도, 그렇게 맘속에서 윙윙대던 말들을 하나씩 끄집어내어 확인하고 명징하게 

가다듬을 타이밍을 찾기도. 그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거다.


...



 
오랜만에 다음 베스트 진입.ㅎㅎ 하긴 그때도 원주였던가, 이쪽 동네분들에게 꽤나 인상적이었던 현수막.

컴퓨터 정리하다가 나온 사진 한 장, 몇 년 전 아버지가 맡은 공사현장에 붙어있던 범상치 않은 현수막.

아버지가 직접 문구를 생각해서 만드신 거라고. "여보! 사랑해!"

청남대에서 채 못다했던 이야기들, 그 중 하나는 대통령이 쓰던 화장실 이야기다. 아직 못 돌아본 코스도 꽤나

있어서 조만간 한번 다시 가봐야겠다고 다짐중이기도 하다.

이렇게 얼기설기 쪼아올린 봉황이 마당에서 깃을 드리우고 있는 청남대. 대통령의 별장이니, 대통령이 쓰던

보트, 대통령이 쓰던 가구, 대통령이 쓰던 숟가락, 대통령이 쓰던 티비, 당연히 대통령이 쓰던 화장실도 있다.

그런 것들이 있는데도 노무현 전대통령이 충북도청에 소유권을 위임하고 민간에 개방된 후 줄곧 적자에 시달리는

이유 중 하나. (전적으로 내 생각이지만) 저렇게 다섯 명을 합성해 놓는 역사의식과 '입장'의 결여. 저 사진은

그저 재임순서로 다섯명을 늘어세웠을 뿐 아무런 메시지도, 의미도 담지 못한다. 정치적 논란이나 '편향'을

우려해서였겠지만, 그래서 남는 의미는 단 하나. 29만원 있다는 살인마나 벼랑에서 떠밀린 정치적 살인의

희생자나, 그냥 '대통령'으로 마주하게 될 뿐이다. 이넘이나 저넘이나 다 똑같애, 정치인이 다 그렇지, 따위

거침없이 사방에 내질러지는 삿대질을 부를 뿐이다.


그리고, 저렇게 다섯 명이 화목하게 서 있는 모습이 현실에서 가능할 법한 이야기인가. 청남대에서 일부

대통령의 후광을 걷어내야 하지 않을까. (기억을 지워버리자는 게 아니라, 무작정 '대통령'이라고 드리워진

후광을 떼내어 버리잔 이야기다.) 차라리 현실 정치에 대한 감을 조금은 더 익힐 수 있는 배움의 장으로

활용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그리고 또 하나의 적자 이유는, 본관에서의 내부 촬영 금지 아닐까. 청남대 본관에 실내화신고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게 여기서 찍었다는 드라마 관련 사진들이다. 드라마는 되는데 왜 일반인은 안 된다는 건지.
 
대통령이 청남대로 쉬러 오면 몸을 뉘어서 쉬었을 그 침대. 대통령의 침대는 왜 사진찍으면 안 되는 건데, 하며

맘대로 슬쩍 셔터를 눌렀다.

대통령의 집무실. 저 스탠드는 왠지 낯익은 게 울집에 있는 내 스탠드와 같은 종류 같다. 저 옷걸이는 왠지 예전

외할아버지댁에 있던 그런 퀴퀴하고 낡은 것과 비슷해 보이고. 아, 그런 건가. 무려 대통령이 쓰는 일상용품이

일반인들의 그것과 같거나 별반 차이가 없으면 '격'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걸까. 와서 보는 거야 어쩔 수 없지만

사진으로 증거를 남기게 하고 싶지 않았던 건지도 모른다.

짠~ 여기가 대통령의 화장실. 세상에, 비데도 없고, 금칠도 안 된 뽀오얀 도자기색 그대로인 데다가, 작다.

사진이 많이 어둡긴 하지만 다를 게 없구나 참. 슬쩍 고개를 디밀었다가, 이내 빼버렸다. 뭔가 대단한 걸

기대한 것도 아니지만 역시나 별 거 없는 거다. 다만 남는 건 상상의 영역, 저기에 바지 내리고 앉아서

볼일을 보았을 전두환, 노태우를 위시한 전임 대통령들의 모습. 더러는 술 먹고서 변기 붙잡고 토했을지도.

가끔 국무에 시달리거나 혹은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에 시달린 때에는 '피똥 쌌을지도' 모를 일이다.

2층짜리 건물인 청남대 본관에 엘레베이터가 생긴 건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된 후라 한다. 발을 절뚝거리던

그에게 꼭 필요한 거였으리라.

테이블과 의자가 놓인 방, 쇼파와 골드스타 텔레비전이 놓인 방, 그 다른 한쪽에는 한식방도 있었다.

다른 나라들의 옛 왕궁이니 대통령궁이니 이런 데도 사진 촬영은 다 허가하던데, 굳이 사진 촬영을 금지한 건

왜일까. 그들의 생활 소품이 찍히고, 화장실이 찍혀서 그로부터 상상력이 뻗쳐나올 걸 저어한 걸까. 그들의

'품격'과 '위엄'에 손상이 가는 일이라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글쎄. 그들이 무슨 김태히나 송혜규도 아니고

이슬만 먹고 살 리도 없고 화장실도 안 갈리 없는 건데.


그런 '인간적인' 모습을 노출시켜서 격이 떨어지리라 생각할 만큼 그들이 높은 곳에 있다고 여겼던 거라면 더욱

심각한 오해다. 드라마 촬영은 허가해 놓고, 그런 스틸 사진으로 본관 1층을 쫙 도배해놓은 마당에 일반인들의

촬영은 막으니 더욱 이해할 수 없다는 거다.

청남대 전 지역은 산나물 채취금지구역, 어쩌면 이렇게 잘 보전된 채 손을 안 탄 지역에 산삼이라도 한 뿌리
 
자라고 있는 건 아닐까.

기념관에 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손바닥 자국. 손금을 볼 줄 안다는 사람은 저 손금 중 생명선이 2009년께

끊겨 있는지 한번 봐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청남대의 화장실 표시. 일반인들을 위한 화장실이나 대통령을 위한 화장실이나 변기는 똑같구나, 왠지 안심한

마음으로 맘껏 사용할 수 있었던 화장실 변기.

청남대 관람안내. 혹시 다음 가실 분을 위한 자상한 배려.





@ GFC Starbucks.

도시를 가득메운 고층 빌딩의 색감이 딱 저런 거 아닐까 싶을 만큼,
칙칙하고 음울하고 건조한 벽면 위로 오른 유리창살.

@ Seoul Zoo.

얼룩진 호랑이가 아니라 녹슨 창살에 맞춰진 포커스.
어쩔 수 없다, 니놈은 살았답시고 자꾸 움직이잖아. 억울하면 철창살로 태어나 녹슬다 죽던가.





어쩌다 보니 수묵담채화처럼 나와버렸달까. 춘삼월 미친눈에도 봄볕 한줌이 그리운 게다.

여리여리한 봄볕에 온통 하얗게 타버린 풍경이지만 은근히 따스한 느낌을 찾아내고 마는 건.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바람만 불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 곳을 찾아 지쳐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곳 없네

(조성모, '가시나무' 가사)


*                                                            *                                                            *

쉴 곳 없고, 편할 곳 없고, 이길 수 없는 어둠만 많고, 슬픔이 무성하다는 온갖 찌질한 핑계들은

결국은 죄다, 내게 기대줘, 날 안아줘, 날 사랑해줘, 내게 숨겨진 빛과 기쁨을 발견해 줘..라는

치기어린, 그래서 이기적인 투정으로만 들리는 거다.


알고 보면, 빛만 가진 사람도 없지만 어둠만 가진 사람도 없고, 자기 안에 온갖 다중인격이 숨어있지

않은 사람도 없는 데다가, 이길 수 없는 어둠이니 슬픔보다 하루하루 녹처럼 슬어가는 '노쇠'의 징후가

천하무적인 거다.


하루라도 보지 못하면 무슨 큰일이라도 생길 듯 꼬박꼬박 무작정 만나던 기억도, 종로통에서의 약속에

늦을까봐 좁은 골목에서 차를 긁어먹으며 질주하던 기억도, 밤새 아팠던 그녀 옆에서 손 꼭 잡아주며

간병해주던 기억도. 그 기억 속 그림에 등장하는 남자는 더 이상 내가 아닌 듯 싶다..


부쩍 늙었다.




정말이지 격하게 아끼는 거다. 기운차게 달려가 뒤에서부터 (이왕이면 멱살에서부터) 잔뜩 부여잡고 거꾸로

껴안아주고 싶을 만큼.

눈 앞에 그려진 브이자를 보곤 흠칫 놀란 표정이다. 뭘 그런 걸 갖고 그러셔, 조만간 달걀 들고 다시 한번

쳐들어갈지도 모른다구.



전두환 혹은 그와 비슷한 피사체에 애정을 표하고 싶은 이는, 지금 당장 짐을 꾸려 청남대로 고고씽.


아그라포트에 오르던 길, 꼬맹이 하나가 근엄하게 포즈를 잡았더니 뒤에서 뭥미,하고 꼬나보는 원숭이 하나.

끼약끼약 소리를 지르며 어디선가 줏어온 빈 페트병을 콩콩 바닥에 치고 있던 녀석.

왠지 부시맨이 콜라병을 처음 집어들었을 때를 떠올리게 만들었던 녀석의 페트병 탐구생활.

바로 옆으로 사람들이 와글와글 지나가고 지나오고 있었음에도 별 관심도 없고, 경계심도 없다. 소니 개니

말이니 낙타니 원숭이니 새니 다람쥐니, 어떤 동물이건 좀체 사람을 경계하질 않는 동네였다.

그러고 보니 붉은 빛을 띈 성채 아그라포트에는 원숭이가 많았다. 자기들끼리 뛰놀기도 하고, 높은 곳에서

저 아래를 굽어보며 상념에 젖어있기도 하고.

쫄래쫄래 쫓아다니는 새끼 원숭이 덕분에 시선을 왕창 끌던 (아마도) 어미 원숭이. 새끼일 때는 대개

어떤 동물이건 귀엽다던데, 원숭이는 예외인 거 같다. 차라리 큰 놈이 좀더 귀엽다 싶을 만큼 뭔가

얍실하고 음흉한 표정의 꼬맹이.



너무 하얘서 어리벙벙하던 타지마할을 등지니, 들어설 때 심상하게 보였던 녹색 잔디밭이나 적갈색 벽돌건물이
새삼스럽다. 잔디밭 위에서 노니는 하얗고 우아한 새들이 눈에 딱 띈다.

타지마할의 아름다움은 정면의 분수대에 물에 반사된 아름다운 모습을 최고로 친다는데, 그런 호젓한 광경을

맛볼 수 있는 행운은 여전히 가능할지 모르겠다. 그저 하염없이 밀려오고 밀려가는 여행자들.

사람이 워낙 많아 전경을 방해받지 않고 찍기가 이렇게 어려운데, 게다가 가뜩이나 희끄무레한 녀석이라

시간대도 중요하지 싶은데, 고즈넉한 새벽이나 저녁무렵, 아무에게도 개방되지 않은 타지마할을 독점할 수

있다면 굉장히 다른 분위기, 그리고 굉장히 다른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 같아 아쉬웠다.

갑남을녀의 여행객 중 하나인지라, 찍히는 건 사람이 반 풍경이 반.

타지마할의 현관문에 멈춰서 감상중인 사람들.
이곳부터 조금씩 복원/보수 공사가 진행중이었다. 그러고 보면 엔간한 문화 유산들은 대개 돌려가며 보수

중인 타이밍이다. 앙코르왓도 그렇고, 타지마할도 그렇고, 파리의 그것들도 그렇고. 인류 문화유산은 보수중.

입구부터 죽은 척 널부러져있던 강아지들 중의 한 마리였을까. 유연한 포즈로 늘어진 채 타지마할을 바라보던

녀석이 한순간 카메라를 의식한 듯 벌떡 일어나 도망쳐 버렸다.

'현관'을 지나면서, 갈색과 적색이 섞인 듯한, 뭔가 노릇노릇하게 잘 익어 맛있어 보이는 색깔을 띄고 있던

현관의 천장은 생생한 입체감까지 완비하고 있었다. 사물을 조각하고 모사할 수 없는 이슬람의 문화적 특성상

기하학적 문양과 형상들이 발전했다는 말이 역시 허명이 아니었다.

뒤늦게 돌아나오는 길에서야 발견한 표지판. 타지마할엔 남문, 동문, 서문이 있는 거다.

참...여기 개들은 전부 기력이 쇠했나보다. 나무가 드리워준 그늘 안에 포옥 안겨 있었다.

타지마할을 끝내 벗어나기 전 돌아본 길, 좀더 자유로웠다면 하루종일이라도 돌며 햇살도 기다리고, 조금이나마

사람이 적은 타이밍을 노린답시고 어슬렁거렸을 텐데. 아쉬움이 가득.





타지마할 바로 앞, 폐가처럼 방치된 건물 안에는 녹슨 용수철이 드러난 매트리스가 하나, 그리고 하얀 수염을

기른 할아버지가 한 분 쪼그리고 계셨다.

그 옆에 '코카콜라'를 파는 음료수 상점은 나무 가지에 묶어둔 천을 지붕삼고 있었고.

중앙선을 유유자적 활보하는 위풍당당한 소들은 세상부러울 것 없다는 눈빛과 표정으로 사람들을 내려보았다.

옆에선 길가에 의자 하나, 거울 하나, 그리고 보자기 하나와 가위 하나로 머리도 깍고 면도도 하고 맛사지도

해주는 만능 이발사가 판을 벌였다.

삼륜차를 끌고 손님을 기다리는 아이들은 그저 햇볕을 쬐러 나왔는지도 모른다. 극성스럽지 않고 허허로운

느낌마저 불러일으키는 아이들의 몸짓들. 그들의 호흡에 맞추어 보는 게 여행일 텐데.

저런 길거리 음식을 서서 먹는 사람들 틈에 끼어서 같이 웃음도 나누고, 눈짓도 나누는 거 말이다.

타지마할 매표소까지 나가려면 또다시 저런 바리케이트를 지나 버스를 타야 한다. 나름 삼엄하다면 삼엄한

경계, 총을 든 정복 경찰들도 적잖이 보이지만, 사람들에서 풍겨나오는 어쩔 수 없는 나른함이랄까 유유자적함.

매연을 내뿜지 않는 전기 자동차가 입을 벌리고 대기중. 얼른 삼켜지려다가 옆에 비친 이상한 생명체에 깜짝.

쓰레기통에 얼굴째 들이박은 채 뭔가를 열심히 후비고 있는 숫소.

관광지 주변의 북적북적한 공기는 그대로인데, 뭔가 다른 거 같다. 뭐지...?

또다른 전기 자동차가 앞서 출발. 저 차랑 내가 탄 차랑 요금이 달랐었다. 미미한 차이였지만.

자전거 위로 나무를 한 짐 해가는 아저씨와 장애물 경기를 하듯 심술궂게 길을 툭툭 끊어놓은 바리케이드.

짧막한 거리를 운전한 기사 아저씨는 차가 서자마자 휙 내려버렸다. 클랙션이 도드라진 운전석의 모양새.

이 차 역시 운전석은 오른쪽, 문득 궁금해진 건 엑셀러레이터도 왼쪽으로 옮겨간 걸까? 왼쪽 운전석에선

엑셀레이터가 오른쪽, 브레이크가 왼쪽인데.

화장실 풍경은 습관처럼. 트럼프 카드의 킹과 퀸이 버티고 선 분홍색 화장실 건물.

자전거 삼륜차를 릭샤라고 한다던가, 저런 것도 한번 타봤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배낭 꾸려서 한번 떠야겠다.

소방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채 양동이 몇개 매달아 놓은 게 전부다. 영어와 힌디어로 모두 적힌 채

사이좋게 매달린 양동이들. 그리고 나무둥치엔 흰색 페인트를 발라두었다. 환경 미화의 측면에서 가로수들에

저렇게 색칠을 한다던데, 저게 이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지구상엔 있는 거다.

쓰레기통, 흙으로 빚어낸 듯한 갈색 쓰레기통엔 힌디어가 가득이다.

타지마할을 가리키는 파란색 입간판. 닳고 헤진 벽돌 두개로 받쳐놓은 모습이 허술하지만 정겹다.

나무 그늘을 제대로 활용해 주시는 이발사 아저씨. 뭔가 장비도 잔뜩 갖춰놓은 게 그대로 여느 이발소 내의

풍경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그리고 버스를 잡아타고 떠나는 길, 문득문득 창밖을 휙휙 스쳐지나던 남루한 천막들 중 하나를 가까스로

잡아챘다. 저런 삶을 누리는 사람들로부터, 절대적 빈곤의 악함을 끄집어 내어야 할까 아님 정신적 풍요의

중요성을 끄집어 내어야 할까. 둘다 자기 입맛에 맞는 식으로 그들의 삶을 쉽사리 재단하는 건지도 모른다.




인도에서, 특히나 뉴델리에서 마주쳤던 트럭들의 뒷켠에는 신기한 사인들이 붙어있었다.

"BLOW HORN", "HORN PLEASE", 클랙션을 눌러달라는 거다. 시끄럽고 짜증스럽기만한 클랙션을 눌러달라고?

처음엔 한두대가 그냥 장난으로 적어둔 줄 알았는데 줄줄이 나오는 통에 점점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이곳의 트럭은 40킬로미터 이내로 달리도록 속도제한이 되어있다고 한다. 그래서 트럭을 추월해

앞서 나가려거나 차선을 바꾸려는 차들은 클랙션을 울려 사인을 달라는 얘기.

대체 저게 무슨 글씨인지, 복잡하고 얼룩덜룩한 글씨 덕에 한참을 쳐다 봐야 겨우 무슨 글씨인지 식별할 수

있는 차들도 있었다. 뭔가 눈을 사팔로 모으고 매직아이 쏘아보는 기분으로.


그리고 인도의 요금정산소. 참 허술하달까 간소하달까. 뼈대가 그대로 드러나보이는 느낌이다.




1월말의 뉴델리는 생각보다 많이 쌀쌀했다. 아직 겨울의 기운을 씻어내지 못한 그곳에 머무는 동안 아침마다

짙은 안개가 자욱이 내려앉았댔다. 희뿌연 안개 속에서는 왠지 덩어리덩어리, 외로움이 감돈다.

문득 들어선 정체구간, 올해 있을 Commonwealth worldcup이라던가, 영연방 국가간의 체육대회를 개최하는

도시로서 부족한 인프라를 많이 확충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뉴델리에서 타지마할까지 가는 길은 왕복

4차선에 불과한데다가 우회로도 없는 거다. 그나마 왕복 2차선이던 것이 한 차선씩 늘은 것도 삼사년 전이라고.

우회로 없는 왕복 4차선에서 정체가 필연이라면, 그 정체구간에서 저렇게 코브라가 혀를 날름대며 춤을 추는

건 그보다 더한 필연. in INDIA.

앞에 선 트럭 위에 늠름하게 버티고 선 검은 물소들의 빈약한 방댕이들. 캄보디아에서도 느꼈던 거지만 동남아

소들은 은근 날씬해주신다.

중간에 잠시 쉬었던 휴게소-랄까, 그냥 간이음식점 겸 기념품판매소랄까-에서 만난 화장실 사인.

조금 안개가 걷힌 차창 밖의 불빛에 기대어 활짝 피어난 운전석 머리 위의 꽃다발. 안전운행을 축원하는 뜻이

있다고 했다.

그래도 차 한가운데 티비도 떡하니 세팅되어 있고 제법 괜찮았던 버스였다. 무엇보다 눈에 띄던 건 운전대

가운데 불룩 튀어나온 빨간색 버튼. 경쾌하고 시끄럽고 방정맞은 벨소리가 저로부터 나왔었다. 인도의 클랙션은

거의 깜박이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내가 지금 추월할 테니 주의해라"라거나, "내가 지금 앞으로 혹은

뒤로 따라붙고 추월할 거다"라는 사인을 모두 미친듯이 울려대는 클랙션으로 해결하고 있었다.

길가 왼쪽에는 이렇게 차들이 주차해있었다. 글쎄 무려, 커다란 대형 트럭이 서로 바싹 마주본채 주차하고

있는 모습. 쟤들은 나중에 도로에 진입할 때 얼마나 왕복 차선을 혼란시키며 진입할까. 좀체 규율이 서있지

않은 인도의 교통체계를 반영하는 주차 모습이었다.

트랜스포머처럼 뭔가 잔뜩 장식이 달리고 보호대가 장착된 트럭들이 시속 40킬로미터 이내라는 규정속도를

지키며 달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뉴델리에서 아그리포트로 가는 길가로 쭉 보이는 풍광들은 참, 누추하고 허름하다.

거의 허물어져 가는 건물들, 가까스로 지탱하고 있는 건물들에 헝겊을 대고 바람을 막고 있는 집들도

부지기수, 얼마나 되었는지 몰라도 해머 한 방이면 줄줄이 넘어갈 듯한 파삭하고 앙상한 벽들이 눈에 띄었다.

자전거를 개조한 삼륜차도 곧잘 눈에 띄고, 앞바퀴를 빼고 있는 자동차는 왠지 신뢰가 전혀 가지 않는

'엔지니어'들이 달라붙어 툭탁툭탁 고쳐대고 있었지만 그 차가 다시 달릴 수 있었는지는 모를 일인 거다.

뭔가 다채로운 색감을 과시하는 인도의 트럭들. 이 차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트럭들이 형형색색의 원색감을

뽐내며 글자와 그림들을 품고 있었다.

삼륜차들, 오토 릭샤가 딱정벌레처럼 바닥에 스물거리며 붙어 달리고 있었다. 저런 차를 타고 달려줘야 정말

여행일 텐데 그저 창밖으로 구경만 한다는 게 넘 아쉬웠을 뿐.

창밖에서 열심히 달리고 있던 오토바이, 그리고 그 위의 인도 전통 의상을 덮어쓴 여성.

그러다 문득 들어선 어느 마을 어귀에선 소가 휘적대며 걷기도 했고, 담벼락엔 저렴한 인도의 노동력 비용을

반영하는 페인트 광고가 퇴락해 있었다. 여긴 왠만한 종이나 현수막 따위의 프린트물 광고가 아니라 손으로

직접 그리게 하는 게 싸게 먹힌다고.

또다시 어느 골목을 지나며. 저 골목으로 들어서면 뭐가 있을지, 누굴 만날지 알 수 없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저 지나칠 뿐. 잠시의 망설임이나 주저함 따위 없이 그냥 휭, 하니 지나쳐버렸다.

한참 달리다가 또 마주친 풍경 중 하나. 뉴델리에서 아고리까지는 약 200킬로밖에 안 된다고 하던데, 교통이

워낙 열악해서 한 다섯 시간 잡아야 한다고 했다. 문득 마주친 새떼, 그리고 소떼.

그에 바로 이어지는 남루한 천막들. 그야말로 거적떼기 하나 씌워놓은 공간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게 틀림없는

사람들.

바로 도로 옆에 연한 채 저렇게 허름하고 갖춘 것 없는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괜찮은 걸까, 걱정스러웠다.

델리는 그래도 온도가 꽤나 내려간다고 하던데, 1월말만 해도 한국의 꽤나 쌀쌀한 봄날씨를 연상케 하던 그런

곳이었는데 자칫 얼어죽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길가에 삼층짜리, 사층짜리 아파트처럼 세워진 닭장들. 닭은 잘 안 보이지만 어쨌든. 소고기를 안 먹는 대신

닭고기의 소비가 많은 나라인 거 같다.

생각없이 바라보다가 깜짝 놀랐다. 저 나무에 열매처럼 매달린 저것들은..

하얀 새들이었다. 사람들이 밑에서 저렇게 집-이랄까 천막이랄까 움막이랄까-을 짓고 얼쩡얼쩡대고 있는데

열매인 양 위장한 채 가만히 매달려 있었던 거였다. 대롱대롱, 이란 단어는 뭔가 밑으로 내려뜨려진 것에

어울릴 표현이긴 하겠지만 저 새들이 날씬하고 앙상한 두 다리로 나뭇가지를 꽉 쥐고 있을 걸 생각하면 왠지

맞춤해보이기도 한다.

이게 철거촌인지 아님 그냥 인도의 근교 풍경인지 헷갈릴 정도로, 건물들은 오래고 낡았다.

이국적인 문양과 장식들을 매달고 있는 건물들. 그리고 저 알록달록한 색감의 건물들, 문화의 차이던 뭐던 간에

각국 사람들이 좋아하고 즐겨쓰는 색감은 생각보다 참 다르다.



초대장을 드리면서 늘 고민하게 됩니다. 이번에 드리는 분들은 간판만 만드시고 사라지시는 거 아닐까,

게다가 공짜영화니 뭐니 선전에 열을 올리시는 스패머는 아닐까 싶어서 말이죠.


다섯 장의 초대장이 꼭 필요한 분들께 돌아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이번에는 제가 사진을 하나 보여드리고, 그 사진에 대해 그럴듯한 '구라'를 풀어주시는 분께 선착순으로

드리겠습니다. 예컨대, 뭐 술이 떡이 되어 머리로 셔터를 눌렀을 거다, 라거나 저 안에 있던 이삿짐을 밤새

나르고 뿌듯해하던 순간일 거다, 라거나 그런 거 있잖아요.

Q.

응모 제한은 없으므로, 한번에 여러가지를 말씀하실 수도 있겠고, 혹은 생각날 때마다 몇 번씩 말씀하실 수도 있겠네요^^


 
● 일시 : 2010년 1월 11일(월) PM 11:11부터

장소 : 異彩가 꿈꾸는 경험적세계의 유토피아적 가능성
                 (http://ytzsche.tistory.com)

주최 : yztsche(이채, 異彩)

제공 : 초대장 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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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ce Monday January 11,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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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놈 바껭(Phnom Bakheng)에 올라 바라본 캄보디아의 석양.

처음에는 두껍두껍한 구름들이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날렵하니 달려나가는 걸 보며 오늘 해가 지는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을까, 싶었다.

조금씩 상앗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하늘, 그렇지만 태양이 뜨겁던 대낮에 보았던 파란 하늘은 한점도 남지

않은 채 안개처럼 풀어진 구름이 하늘가득 점령해 버렸다.

프놈 바껭의 사암 돌덩이 건물에 노란 햇살이 스며들어 자체뽀샵의 경지에 올랐다.

휙휙 소리가 들리는 착각이 들만큼 순식간에 구름이 쓸려나가더니 노란 햇살이 본격적으로 비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까운 곳에서부터 점차 커지기 시작한 빗소리, 쏴아...

하늘은 이렇게 노랗게 밝아져 가는데,

사람들은 우산을 쓰고 우왕좌왕이다. 열대의 스콜을 제대로 실감하는 순간.

빗방울이 들이치는 우산들 너머로 하늘만 혼자 청청하다. 발딛은 이 곳과는 다른 세상, 스크린 속에 펼쳐지는

풍경 같이 비현실적이기도 하고, 황홀하기도 하고. 몽롱해지는 느낌이다.

그 와중에도 하늘 풍경은 계속 변하고 있었다. 당장 눈 앞의 비구름조차 휙휙 어디론가 내달리던 상황, 저 멀리

두꺼운 구름장막이 매초 새로운 질감과 두께감을 과시하며 만화경처럼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울렁울렁 노랗게 빛나는 햇살을 배경으로 막 결혼을 한 듯한 신혼부부의 드레스가 흠뻑 젖어버렸다.

악플처럼 까맣게 몰려오는 먹구름.

어느새 이곳도 비가 멈추고 뉘엿뉘엿 넘어가는 햇살이 만만찮게 뿜어내는 온기가 공기가득 충만해졌다.

한순간 눈을 떼기가 아쉬운 풍경들이 계속 이어졌다. 굳이 말이 더 필요하지 않았던 장면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해가 떨어져내리는 궤적을 좇았다. 석양을 보면 어쩔 수 없이 불러내어지는 센치한 감정,

저렇게 아름다운 풍경이 사그라들고 어느새 어둠 속에 묻혀버린다는데야.

돌아갈 길이 멀어 한 걸음 먼저 프놈 바껭에서 내려섰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지킨 채 저물어가는

남국의 태양에 젖은 옷을 말리고, 지친 몸을 쉬이고, 하루의 기억을 다독다독 갈무리하고 있었다.

프놈 바껭은 야트막한 산 위에 세워진 사원이다. 예전엔 일출이나 일몰을 보러 몰려들었던 여행객들이 어두운

발치를 조심하지 못해 대형 사고도 난 적이 있다고 한다. 여전히 남아있는 야트막한 경사를 따라 조심조심

내려오면서도 끝내 눈을 떼지 못했던 하늘.





2009년 우수 블로거를 소개한다는 티스토리의 공지글이 뜨긴 했지만 그냥 신경도 안 쓰고 있었다.

그냥 연말이 가기 전에 밀린 포스팅이나 열심히 하자는 생각에 마음이 급하기도 했고, 몇 명 뽑지도 않는

우수 블로거에 설마 내가 오르리라곤 생각도 못 했다.

그런데!! 슬쩍 짬내서 들어가본 공지글 첫머리에 많이 본 사진이 나와있는 거 아닌가. 주위에선 저 사진이

멋지다고 생각하냐고 타박도 하고, 좋지도 않은 몸뚱이 사진 치우라고(눈 썩는다고) 비난도 하지만 꿋꿋이

지켜온 사진이다. (사실은 대문사진을 슬슬 바꿔볼까 하던 즈음이었는데, 이렇게 된거 쭉 가야겠다.)

어차피 딱히 '굉장한' 블로거가 될 야망은 없었고 그냥 다녀온 여행, 싸지른 생각들 정리하는 공간으로,

나 자신을 위한 블로그로 쓰고 있던 거니까 '우수 블로거' 인증을 받았다고 달라지는 건 없지만 몇가지 맘에

들었던 것들이 있다.


무엇보다 명함, 블로거 명함을 하나 내돈 들여서 파볼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명함을 이쁘게 만들어서 준다니

그것이 맘에 들었던 첫번째였고, 이제 DAUM에서 내 필명을 검색하면 프로필 이미지와 블로그 이름, 주소,

최근 작성한 글 목록까지 찾아준다는 게 맘에 들었던 두번째였다.(비록 필명은 참 외우기도 힘들고 읽고 쓰기도

쉽진 않지만ㅋㅋ)

그러고 보니 블로그 제목도 필명만큼이나 그렇다. 여태껏 DAUM에서 노출되었던 블로그 제목은 알아서 짧게

축약해 놓았다. "이채의 유토피아적 가능성"이라고. "이채가 꿈꾸는 경험적세계의 유토피아적 가능성"이라는

길고도 난해한 제목을 제법 짧게 응축시킨 거 같긴 한데 그다지 맘에 들진 않는다. (제목도 한번 바꿔볼까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렇게 된 거, 그냥 쭉 가야겠다.ㅡㅡ;)


어쨌든, 우수블로거로 선정된 분들 중에 아는 분이 여럿 보이니 굉장히 반갑다. 모두모두 축하드려요~*



아무리 반띠아이 쓰레이라 해도 역시 크메르 사원 양식을 벗어나진 않는다. 내부는 의외로 담백하고 밋밋한

그대로 인 거다.

조금씩 기울어져 있는 외벽들, 물론 중앙성소가 있는 중심부로 갈수록 화려함은 더해가고 보존상태도 훨씬

훌륭해지지만, 이 곳 역시 천년의 시간을 빗겨나가진 못한 거다.



이빨이 어긋나기 시작하는 벽면, 그리고 황토를 개서 만든 벽돌을 딱딱하게 말려서 반들반들하게 만들었을

벽돌은 조금조금씩 비바람에 갉아먹혀서 구멍이 숭숭 뚫린 채 단단한 부분만 남았다.

링가의 늠름한 자태.

그러고 보니 이런 장식들도 우선 라테라이트 벽돌을 쌓아올린 후에 저렇게 입체감 넘치도록 조각을 해버린 거다.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복명'의 자세로 나름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는 원숭이들. 얘들은 근데 최근에 복원한 건지

전부 색깔이 다르다. 주변의 때묻고 빈티지스러운 느낌과는 전혀 이질적이다.

도마뱀도 더러 지나가던 곳, 어찌나 빠르고 귀엽던지. 문득 초등학교 때 괌에 이민 사전조사차 갔다가 맥도널드

앞 유리창에 떼로 몰려있던 도마뱀들을 콜라 빨대 속으로 몰아놓고 장난치던 기억이 떠올랐다는.

중앙사원의 네 대문 중 세 개는 역시 가짜문이다. 동쪽으로 난 문만 진짜. 가짜문이라고는 해도 외관상으로는

진짜 문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똑같이 장식을 해 놓았다.

얼핏 보면 원숭이들끼리 옹기종기 모여앉아 한담을 나누는 거 같기도 하고. 멀찍이 등돌리고 앉아있는 녀석을

나머지 네 녀석이 뒤에서 뒷담화하는 것 같기도 하고.

여신 뒤의 남신, 여신상에 비해 참 담백하다. 그냥 뭐, 아무 장식이 없이 지팡이 같은 거만 하나 들었다.

저런 식물들, 돌 틈새에 들어가서 뿌리라도 내리면 조각들 떨어져나가는 거 금방일 텐데. 다른 사원들에선

시간을 거슬러 아등바등 외관을 유지해보겠다고 애쓰는 게 안쓰럽고 조금은 치사(?)해 보였지만, 여긴 달랐다.

좀더 잘 지켜졌으면 좋겠고, 좀더 잘 보존되어 많은 사람들이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고. 참 간사하고 기준도 없다, 그러고 보면.





링가와 한쌍을 이루는 '요니'의 바닥. 어디론가 연결되어 샘물이 솟아오를 거 같기도 하고.

또다른 요니, 여기는 연꽃무늬 벽돌이 네모반듯한 요니를 막고 있었다.




또다시 화장실 앞의 넓게 펼쳐진 연꽃밭에서. 아직 봉오리가 터지지 않은 탐스러운 연꽃송이는 정말 크메르

사원의 정형적인 형태와 닮아 있었다. 그 터지기 직전의 봉긋한 옆구리도 그렇고, 봉오리 위쪽의 삐쭉거리는

꽃잎매들도 그렇고. 연잎마저 탐스럽게 늘어졌던 반띠아이 쓰레이.

그 앞에는 상점들의 정비작업이 진행중이었다. 제대로 외관을 갖춘 높은 지붕의 건물들에 입주한 각종 상점들.

지붕을 덮은 갈색 짚이엉이 야무지다.

크메르 전통 공예가인 듯.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나무를 깍아만든 '크메르의 미소'에 색깔을 입히는 모습이

굉장히 몰입해 있었다. 가격을 슬쩍 물어보니 왠지 씨엠립 시내의 시장에서 사는 것보다 비싸다 싶어서 그냥

돌아나왔다.




앙코르왓을 보러 씨엠립을 갔다가 유이를 만났다. 꽃으로 장식을 하고 캄보디아의 전통춤인 압사라댄스를

추고 있었는데, 역시나 여기서도 다른 멤버들을 압도하는 탁월한 춤실력을 선보였다는.




굉장히 화려한 치장을 했지만, 그녀의 미모에 가리어 꽃잎마저 빛을 잃었다. 압사라댄스란, 네이버의 해설을

빌건대 "'물 위(apsu)에서 태어났다(sara)'는 뜻으로 압사라(apsara)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압사라는 '천상의 무희' 또는 '춤추는 여신'이라는 뜻이며, 앙코르와트 사원의 외벽을 이루는 1,500개 이상의 부조에 섬세하고 다양한 모습으로 조각되어 있을 만큼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고대에는
캄보디아 왕실에서만 공연되었는데, 이때 압사라들은 천상의 존재를 표현하는 신성한 임무를 지닌 것으로 간주되어 왕궁에서 기거해야 했으며, 결혼은 금지되어 있었다고 한다.

느리면서 섬세한 춤 동작은 느리고 우아한 전통 음악에 맞추어 진행되는데, 섬세하게 움직이는 손가락 동작이나 몸 동작들에 제각기 깊은 뜻이 담겨 있다. 춤 동작은 왕자와 공주, 거인, 원숭이 등 4가지 주체에 의해 변화하고, 전통 무용의 손 동작은 앙코르와트 사원의 부조 벽화에 나오는 압사라 무희들의 손 모양과 일치한다. 금색을 위주로 하는 화려한 의상과 정교한 분장으로 신비감을 자아내기도 한다.

격식이 매우 까다롭고 손동작이 화려하여 습득하기 어려운 춤으로 알려져 있으며,
캄보디아에서는 정부에서 정책적으로 이 춤을 전수하는 교육을 하고 있다. 무용지도자들은 앙코르와트 사원의 벽화를 기본으로 하여 새로운 춤사위를 만들어가고 있다. 무용 기법도 세월이 지나면서 약간 변하고 있는데, 특히 의상이 매우 타이트하게 변하고 있다. 타이와 그 주변국의 전통 무용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고 한다.

굉장히 엣지있게 뻗어올린 손동작 하나하나가 모두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우아하게 나풀거리는 손가락들,

그리고 내리깐 듯 묘한 눈매가 격하게 매력적이었다.

뒷태 역시 예술.

별로 말이 필요없던 포스팅. 이번 건 비쥬얼로 승부하는 포스팅인 거다.


* 사실 별로 유이를 좋아하지는 않는다.ㅋ




앙코르왓 인근 주택가에는 마당-마당이라고 딱히 뚜렷한 구획이 지어져 있는 건 아니지만-에서 이런 새들이

자유로이 활보하고 있었다. 저게 칠면조인지 오골계인지, 조류의 이름이래봐야 후라이드치킨 양념치킨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인지라 뭔지는 모르겠지만, 꽤나 이국적인 장면이었다. 

그런데 왜 여기에서 마주치는 소들은 다들 갈비뼈가 몇 개인지 셀 수 있을 정도로 말라붙었을까. 일을 많이

시켜서일 수도, 혹은 더워서 힘이 드는 건지도. 먹을 게 부족하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얼추 해가 저물어갈 시간이 가까워 오고 있었다. 앙코르 유적군 외곽에서 씨엠립 시내의 숙소-그것도 하필

꽤나 외곽에 잡아버린-까지 자전거로 가려면 또 두시간여 밟아야 하기 때문에 그걸 감안해 보면 얼른 서둘러

움직여야 했다. 마음이 살짝 조급해져서 그런지 하늘도 조금 어두워진 느낌.

길 양편으로는 우리나라의 촌에서 보이는 그런 무논이다. 빼곡하게 집약적으로 모를 심어놓지는 않았는지

듬성듬성 비어 있지만, 아열대 기후 덕분에 일년 삼모작까지 가능하다는 이 나라에서도 싱그런 녹색이다.

쁘레룹에 가서 석양을 보는 걸로 3-day Pass의 첫날은 시마이하기로 했다. 기어 따위 없는 자전거에서 쉼없이

페달을 밟는 건 보통일이 아니었다. 중간에 잠깐 내려붓던 스콜, 열대성 강우의 물방울이 따꼼거렸지만 차라리

시원해서 좋았다. 그것도 잠시, 채 십분이 되지 않아 언제 비가 내렸냐는 듯 다시 후끈거리는 찜통 속으로.

쁘레룹 앞에 도착하니 이미 석양을 보러 온 듯 여행객들을 실은 버스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앙코르 유적지에서

석양을 보기에 좋은 장소중 하나로 꼽히는 쁘레룹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그냥, 많이 파괴된 채 중앙 성소를 감싸고 섰는 네 개의 보조 사원, 총 다섯 기의 연꽃모양 건축물이 비바람에

쓸리고 닳아빠져 있었다. 쁘레 룹은 사실 이 곳에 올라 석양을 보고 싶단 이유만으로 들른 사원이었다.

위에 오르니 별로 넓지도 않은 공간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일찌감치 명당을 차지한 채 사진을 찍어대는

사람들은 전부 한국어로 된 가이드북에 한국말을 시끄럽게 쓰고 있었다. 왠지 그 압도적인 한국인 여행객

비율에 민망해져 버렸다. 외국인들은 석양 보는 거 별로 안 좋아하나? 아님 이 장소가 석양보기에 좋다는

팁은 한국어 가이드북에만 있는 거 아닐까? 이런저런 추측을 해보았지만, 단일 장소에 이렇게 특정 국가

여행자들이 몰려있다는 건 어쨌거나 그다지 건전한 현상은 아니지 않을까 싶다.

해가 넘어가려는 즈음, 서늘한 바람이 하늘끝에서부터 불어왔다. 구름들도 물통 속 담궈진 붓에서 잉크가

빠져나가듯 삽시간에 쏴아, 하고 하늘 바깥으로 번져나간다.

파노라마로 어떻게 연결해 보려고 찍어 보았으나 실패. 그치만 해가 구름에 가리고 조금씩 땅 아래로 빨려

들어가는 타이밍의 하늘이란 너무 이뻐서, 계속 질릴 줄 모르고 하늘을 보고 카메라 뷰파인더를 보고.

약간씩이지만 다 다르다. 잠깐 사이에도 구름의 모양과 위치는 급변하고, 구름에 반사되는 햇살의 양과 강도에

따라 그 풍부한 느낌과 질감마저 달라지는 것 같다.

구름이 많아 해가 떨어지는 장면을 직접 볼 수는 없었다. 아마 조금 더 뭉개고 있었다면 찍었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버스나 뚝뚝을 대절한 게 아니라 두 다리만 믿고 자전거 페달을 한 시간 넘게 밟아야 할 몸인 거다.

가뜩이나 교통법규도 안 갖춰진 동네, 가로등 따위 정비되어 있지 않은 동네에서 어둑한 길에 자전거를 타는

불상사는 피하고 싶어 아쉬움을 가득 머금은 채 자리를 떠야 했다.

안녕 사자야~ 인사하고 쁘레룹을 내려섰다. 뒤에서는 여전히 한국말이 다른 나라 언어들을 위압한 채 우렁차게
들리고 있었을 만큼 한국인이 '쁘레룹 석양전망대'의 대세였다.

그래도 아쉬워서, 가파른 각도의 계단을 내려서면서도 연신 눈과 카메라는 하늘을 찾았다.

와중에 두 번째 등장하는 '나'.

급변하는 일기 상태가 고스란히 구름의 형상에 반영되는가 싶다. 저 멀리에서 유유히 피어오르는 뭉게구름,

여기저기서 연기처럼 솟아오르는 두터운 구름, 그리고 눈앞에서 내려앉기 시작하는 깜깜한 먹구름.

그야말로 변화무쌍한 하늘, 그리고 남국의 구름이었다.


그래도 일요일 오후, 육천원짜리 전시를 보았으면 사진찍는 솜씨가 조금이라도 나아져야 하지 않겠나 싶은데.

확실히 겨울이었다. 들어갈 땐 흐릴 지언정 사방이 환했는데, 몇시간 지나지 않아 금세 어둠이 짙게 나렸다.
 
어둠 속, 문득문득 도심의 야만스런 불빛과 소음이 정적을 깨뜨리는 가운데 둥실둥실 떠오른 덕수궁 내 중화전.

배병우 작가는 어부였던 아버지를 닮아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하루의 농사를 준비했다고 했다. 그가 찍은 사진

중 태반은 해뜨기 직전, 실내는 묘한 공기에 감싸이고 바깥은 몽환적인 보랏빛이나 초콜렛빛 어둠이 출렁이는

그런 시간에 얻어졌다고 했다. 뭐, 사진이 쉽게 찍히는 건 아니라는 이야기다. 어쩌면 상당부분 '우연'이란

요소가 짙게 작용하는지도. 일단 빛이라는 것부터가 그러니까 말이다.

뭐 그런 노력에 비견되랴만은, 쉼없이 눌렀던 셔터, 그렇게 남았던 몇개의 흔적 중 그래도 조금은 봐줄만

하다 싶은 사진들. 진눈깨비처럼 펄럭이며 내리는 빗물 탓이기도 했지만, 한동안 덕수궁미술관 입구 처마 안에

우두커니 선 채 셔터만 눌렀다.

미술관에서 몇 걸음 내딛다가 뒤로 돌아 한 방, 날려줬다. 이녀석 깜짝을 놀랬을 거다. 아닌게 아니라, 하얗게
 
질려버렸다. 스크림의 그 유령 마스크가 떠오를만큼.

확실히, 몸이 움직이니 구도가 바뀐다. 부지런해야 하는구나. 그러고 보면 그동안 내가 찍었던 사진은, 무쟈게

실용적이었던 것 같다. 내가 보는 것, 내가 눈여겨본 것, 그런 것들을 기억에 남기기 위한, 일종의 USB였다.

기억의 외장하드. 딱히 미감이나 예술적인 측면을 고려했던 것 같지는 않다는 게 솔직한 고백. 아..사진 좀

잘 찍고 싶다. 카메라도 질렀는데 제길.

조금 걷는데 하얗게 질린 덕수궁미술관 벽면에 얼룩이 졌다. 무슨 백한마리 달마시안도 아니고, 괴기스럽게

부풀고 꺽여든 나뭇잎들의 그림자가 벽면에 대고 간질간질, 간지르듯 간만 보고 있었다.

아까 밝을 때만 해도 카메라 수십대가 쏠렸던 광명문, 지금은 나와 일대일, 독대하는 중이다. 역시 빛이 부족한

건가. 커다란 구리 종색깔같은 처마 위 하늘 색깔이 제일 맘에 드는 구석이다.

돌아나가는 길, 느지막히 아침 겸 점심만 먹고 아무 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은 참이었다. 배가 고파서 몸은

뭔가 먹을 것이 있으리라 여겨지는 앞으로만 계속 내달리고 싶어하는데, 손이랑 눈이 브레이크를 잡는다.

참..별 것도 아닌 사진 찍겠답시고 계속 멈춰서서 이리저리 배회하는 모습이라니. 배고파 죽는 줄 알았다.

그리고 사실 그렇다. 낮에 이미 사람들이 우르르 훑고 다닌 길에 닳을 대로 닳아버렸을 구도일 게다. 꼭 내

카메라로 내가 다시 찍어서 내가 다시 간직하고 다시 이렇게 블로그에 올려야 할 이유는 뭘까. 뭐, 모르겠지만

일단은 재미있으니까, 정도의 답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데세랄 지른지 아직 한 달도 안 된 터에 이런 회의와

시니컬한 구렁텅이 따위 빠져들 시간이나 여유는 없는 게다.)

알고 보면 꽤나 넓은 덕수궁과 외부를 연결하는 대한문, 혹은 입장료 내/받는 곳. 특정 포인트를 향해 정연하게

벌어진 등불들과 달리 외부 세상의 불빛은 사방을 향한 사방으로부터의 불빛이다. 잊을만하면 툭툭 떨어지는

산만한 물방울들만큼이나 무질서하고 정신없는 세상이다.

안녕 대한문. 그러고 보면 덕수궁은 꽤나 자주 들르는 곳이다. 일년에 두세번은 가는 듯. 창덕궁 후원-흔히

비원이라 불리는 곳이 여기라던가-을 한번 가봐야겠다고 맘은 먹는데, 아직 한번도 못 가봤다. 배병우 작가가

'생산'해낸 작품 중 소나무를 소재로 한 것은 SNM, 비원을 소재로 한 것은 BWN이란 약자로 시작하는 작품

번호를 가졌다던가.



* 이제부터는 오로지 카메라 자랑을 위한 사진들.

사진으로 일단 찍은 후에 한번 하얗게 불살라 버린듯한 느낌.

사진이 뻘겋게 타버렸다. 그러면서도 묘한 깊이가 느껴지는.

제대로 오래된 사진 느낌..혹은 일반적으로 느끼는 오래된 사진의 분위기란 게 이런 거 아닐까. 누렇게 변색된.

찍고 나서는 아궁이불이 들어오는 구들장 같은 데 기름먹은 장판 속에 한 이십년쯤 묵혀둔 듯한 사진. 

비슷하게 구들장에서 타버린 느낌이긴 한데, 조금 다르다. 타고 나서는, 차가운 가을바람에 한 삼년쯤 식혀진.

뭐, 이문세의 '조조영화'던가, 그런 노래가 떠오른 이유는, 아마 저 오른쪽 창구가 영화티켓 예매소, 그리고

입구는 극장 입구스러워서일 게다. (대체 어디가? 라고 물어도 별로 대답할 말은 없다는...)





배병우라는 사진 작가, 얼핏 귀동냥한 수준이라곤 일본에서 미스터 소나무 라 불릴 정도로 소나무 사진이

유명하다는 정도? 그의 작품을 보기 전 내 감각이란 게, 보고 난 후의 감각과 어떻게 달라질지, 달라지긴 할지

괜시리 궁금해져서 시험삼아 눈앞의 소나무를 찍어보았다.

어라, 들어가려고 봤더니 도슨트의 설명이 오후 네시, 다섯시, 여섯시, 그렇게 있다. 한 삼사십분 밖에서 돌다가

들어가면 도슨트 누나야들과 함께 자상한 설명을 들으며 감상할 수 있겠다 싶어 우선 발길닿는대로 덕수궁을

둘러보았다.

미술전이었다면 뭐 딱히 도슨트의 설명 없이 알아서 이해하면 되겠지, 싶었지만 왠지 사진전은 여러차례 접해

보아도 뭔가 내가 이해하는 게 너무 동떨어져 있는 건 아닐까 자신이 없다. 미술전이라 해도 으레 먼저 한바퀴

돌아보고 도슨트와 함께 한번 다시 돌아보며 내가 받았던 이미지나 느낌들과 비교해 보는 게 또 쏠쏠한 재미,

어떻게든 도슨트와 함께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난 건 더욱 재미있게 전시를 즐기는 첩경이지 싶다. 

전시를 둘러보는 나만의 방식이랄까, 우선 한 바퀴 전체적으로 둘러본다. 몇몇 눈에 밟혔던 작품들은 잘 기억해

두었다가 다시 한번 돌며 그것들만 찾아서 좀더 시간을 할애해 감상한다. 이제 어느정도 정형화되어 버린 

미술전 감상에 비해 아무래도 아직 사진전은 이렇다 할 정도의 전형이 잡힐 만큼 많이 돌아본 건 아니라,

게다가 사진이 뭔지 아직 잘 모르겠어서 조금은 조심스럽다.

뜬금없지만 새로 산 카메라 자랑. 펜탁스가 10월 초 회심에 찬 일격으로 내놓았다는 K-x. 이런 기능이 있다.

설정만 해놓으면 지 마음대로의 색감을 끄집어내어 랜덤으로 찍어버리는. 완전 낡고 퇴락한 느낌이다.

덕수궁을 종횡하며 가로지르는 돌담들, 그 담장을 중간중간 끊어놓고 있는 문들은 자연스럽게 담장과 이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저런 담장에 저런 대문, 아니면 뭘 갖다 붙일 수 있을까.


빗발이 조금씩 흩뿌리기 시작했다. 단체로 출사를 나온 듯한 사람들이 우르르 빠져나가고 위계를 나타낸

비석들이 쪼르르 서있는 마당이 스산해졌다. 사람들은 대부분 덕수궁 입구와 덕수궁 미술관을 이어주는

최단거리 상에 몰려 있었다.

다시 한번 카메라 자랑질. 오오...신기하다 신기해. 같은 공간인데 이토록 다른 느낌이라니.

물, 빛, 바람(공기)를 늘 사진 속에 포착해냈다는 배병우란 사람, 그의 사진을 보면서 몇 가지 느낀 점들이

있었다. 같은 사진이라 해도 '크기'라는 요소에 따라 느낌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겠구나. 같은 공간이라 해도

시간에 따라, 빛에 따라 이렇게 다른 느낌을 줄 수 있겠구나. 구도를 창조해낼 수 있는 그림과는 달리 사진이란

건, 구도를 발견하고 끌어내기 위해 정말 부지런히 발로 뛰어야겠구나. 뭐 그런 것들.

그는 소나무 사진으로 이름을 얻었지만, 일부 비평가들은 그렇게도 말한다고 했다. 그가 한국 해안가에 자라는

옹골지고 고단한 해송이 아닌 다른 지역의 소나무를 테마로 잡았다면 이토록 성공하진 못했을 거라고. 한국의

소나무, 그중에서도 거센 바닷바람을 버티고 열악한 토양조건을 극복해야 하는 주름지고 굴곡진 해송들의

강한 기운을 존중하는 그는, 경주의 왕릉 주변 소나무를 찍은 사진 반대편 전시공간을 온통 까만 천으로 덮어

버렸다. 얘기인즉 왕릉 주변의 소나무들은 지상의 영혼을 하늘로 이어주는 강한 영적 매개체라 맞은 편에

작품이 놓이면 그 기운을 배겨내지 못했을 거라 여겼다는 것인데, 1:1 사이즈로 '생산'된 그의 사진들을 보면

정말 뭔가 기운이 발산되는 듯 했다. (그렇다고 여기서 그런 요청까지 굳이 했다는 작가를 소나무에 미친

'또라이'라고 이야기할 수야 없는 거인데다가, 엽서나 카드 사이즈의 사진과는 다른 모종의 '포스'를 그 1:1

사이즈의 사진들은 분명하게 내뿜고 있었던 거다.)

그는 스스로를 '사진가'가 아니라 부정했다. '예술가'라고 했다.

일반적인 화가들이 붓으로 스스로의 세계를 펼쳐내듯, 그는 카메라로 스스로의 세계를 끌어냈다. 그가 '생산'한

사진들은 단순히 현실의 재생이 아니라 배병우 자신의 의도와 관념이 짙게 투영된 그림과도 같다는 거다. 하여

그의 사진들은 일반적으로 사진의 특성이라 얘기되는 뛰어난 모사성, 구체성, 디테일함이나 세밀함 따위를

대체로 무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냥 소나무 한 그루에 더해 흐릿한 실루엣 쪼금, 그걸로 족한 사진들이다.






@ 제주도.





@ 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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